세월호 희생자의 대변인, 제자 유경근과 예은이
세월호 희생자의 대변인, 제자 유경근과 예은이
박충구 (newsnjoy@newsnjoy.or.kr)
승인 2014.05.13 14:42
감신대 윤리학 박충구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예은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담담한 글입니다. 예은이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이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 유경근 씨의 딸입니다. 유경근 대변인은 박충구 교수의 제자였습니다. 제자를 생각하며 쓴 박 교수의 글을 허락을 받아 가져와 독자들과 나눕니다. 참고로, 그와 오랜 교제를 한 지강유철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이 이 글을 공유하며 올린 코멘트가 있어 아래에 덧붙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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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살아가는 나는 무수한 학생들을 만난다. 학기 중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에는 나의 기억에 남는 이름과 얼굴들이 있지만 대부분 앳된 모습들을 남기고 그들은 교정을 떠나간다.
그리고 간혹 교정에 다시 나타나는 그들은 아쉽게도 앳되고 발랄한 젊은이들이 아니다. 솜털이 보송보송 났던 10대를 만났는데 졸업할 때 즈음 되면 의젓한 숙녀 신사가 되어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목회자가 되어 팔도강산 구석구석 외지로 찾아든다. 젖줄이 말라가는 농촌 교회의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저리다.
또 한참 지나서 교정에 나타난 그들의 팔에는 갓난아기들이 매달려 있다. 그들이 결혼하여 얻은 생명들이다. 그들은 엄마 아빠가 다니던 학교에 나타나 이리 저리 환호를 지르며 내닫는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물어 보지만 곧 잊고 만다. 나 역시 결혼 초기 첫아이를 안고 관회수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아내는 스물여섯,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의 교수로 부임한 이래 신학과 기초 과목으로 윤리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연구 학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다.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A+ 성적을 거의 주지 못했다. 그래도 윤리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자주 나의 클래스를 택해서 자주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내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더니 "교수님, 저 개척했습니다"라며 조그만 봉투를 내민다. 봉투 안의 물건을 꺼내 보니 손 드라이버 상자다. 아마도 개척 교회를 시작하며 나눈 선물 같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나눔교회'. 담임 전도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조그만 상자였다.
그의 이름은 손 드라이버가 필요할 때마다 내 눈에 익었다. 그리고 이번 세월호 참사 소식과 함께 88학번 그의 이름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오늘 JTBC에서 그의 딸 예은이가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 온몸이 저릴 텐데도 그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공동대표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가 끔찍한 현실을 바라보며 유가족들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니 옛날 그 앳된 모습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도 10대의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블로흐는 "인간은 이 삶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두 가지 비극을 피할 길이 없다"고 했다. 고난과 죽음이다. 인간은 정말 예기치 못한 고난과 슬픔을 만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홀로 자신을 향해서도 안녕을 고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필요로 한다.
그는 딸을 얻고서 이름을 '예은'이라고 지었다. 아마도 '예수의 은혜'라는 뜻일 것이다.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예은이를 차가운 바다 속에서 잃게 된 그 정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이 현실이 꿈만 같을 것이다. 그의 깊은 아픔과 상실의 고통에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빈다.
예은이는 아빠 곁을 떠나 하나님나라로 먼저 갔지만 예수의 은혜는 예은이를 잃은 고통에 절며 걷는 이 삶의 여정에서도 아빠와 엄마를 부축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서 철들자 공부만 강요당하며 살아온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그는 예은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예은이같이 아름답고 생기 있는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이 어른들에 의하여 소중하게 보호받는 세상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비극이 결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진실한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 한다.
진실한 화해와 용서가 있으려면 눈앞에서 속수무책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한 이들의 죄와 악이 드러나고, 그들이 앞으로 나와 책임을 지고 진실한 사죄의 고백을 해야 한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우리 아이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박충구 / 감리교신학대학교 윤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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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학자의 글들 중 내 눈길을 사로잡는 이는 단연 감신대 박충구 교수다. 요즘 페북에 올라오는 사회 윤리학자 박충구의 글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그의 글은 너무도 닳고 닳은 신학적 개념에 얽매이거나 교과서적인 모범 답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욕망으로 보통 사람들과 틈새를 만들지 않는다. 맞는 이야기인데 가슴은 움직이지 않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내가 읽기엔 그렇다.
다른 신학 교수들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말이 아니다. 박충구가 다른 점은 교조적인 도그마로부터 상대적으로 폭넓게 열려 있는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달리 표현하자면 박충구는 안 그런 척하면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탈권위적이란 말이다. 명문을 남기겠다는 욕망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글이 화려할 리 있겠나. 박충구의 글은 대체적으로 길다.
오늘 올린, 세월호 유가족 대표가 제자라면서 참척을 당한 제자의 슬픔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은 슬픔의 언어로 출렁이지 않았으나 그랬기에 더 가슴을 파고든다. 존 스토트는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는 사도바울의 디모데후서를 읽을 수 없다고 썼는데, 나는 오늘 박충구의 글의 행간 곳곳에서 딸을 잃은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의 눈물에 젖었다. 이런 독해가 박충구와의 오랜 교제 때문이었을까. 눈이 밝고, 글쓴이가 얼마나 유명한 신학자냐 아니냐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이들이라면 그런 정서를 어렵지 않게 느끼지 않았을까.
지강유철 /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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