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손민석 인민민주주의

손민석
23 June at 14:20  · Shared with Public
대부분의 민주주의 개념이 그렇듯이 인민민주주의 개념도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전에 지인분이 지적해주셔서 찾아보니 정말로 한국의 여러 헌법학 책들이 대한민국의 정체를 인민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식으로 정의해놓고 있는 걸 보고 좀 뭐랄까? 훌륭한 학자들이 썼을텐데 이분들 중에 인민민주주의 개념을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는 분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민민주주의 개념의 가장 큰 문제는 부르주아 독재(자주 지적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하는 독재는 로마공화정 시기의 독재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독재가 뒤섞여 있어 어느 한 의미로만 사용하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와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도 겹쳐 있다보니 실제로 이게 어느 지점에서 단절되는지가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자체가 1, 2단계로 나눠지다보니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흔히 불리는 대의제 민주주의와의 차별성도 그다지 뚜렷하지가 않고, 부르주아 혁명을 대신하는 인민민주주의 1단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의 인민민주주의로의 이행 간의 관계도 애매하다. 이미 부르주아 공화정이 성립되어 있는 곳에서는 인민민주주의를 행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1, 2단계를 구별하는 것이 과연 이전의 2단계 혁명론과 얼마나 차별점을 보이는지도 명료하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성이라는 걸로 넘어가려 하는데 트로츠키에 대한 과도한 왜곡에 기초해 있다고 본다. 더 문제는 인민민주주의 2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성립하는데 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사회주의 간의 단절성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도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와다 하루키 - 서동만은 모든 단체, 경제기구 등이 국가에 종속되는 당=국가=사회의 성립을 기준으로 삼지만 그것도 사실 조금 애매하다. 이미 인민민주주의 2단계에 들어서면 국유화 등의 사회주의화가 많이 진행되기도 하거니와 1단계에서부터 토지국유화 등이 시도되면서 어떤 명확한 기준점을 찾기가 조금 애매하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행위 당사자가 완료를 시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기준인데.. 개념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인민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잘 조성된 개념이 아니다보니 여러 개념들이 섞여 있어 혼란스럽다. 이 문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분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예전에 맑스레닌주의 잘 안다는 이유로 어디 불려나가서 스탈린이 보낸 지령에 나오는 인민민주주의 개념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계속 이 개념 자체가 애매하다고 해서 원망을 받았던 기억이.. 그런데 나는 그 애매함이야말로 스탈린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분단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 적어도 민족주의자부터 시작해서 쁘띠부르주아지, 민족부르주아지 등의 여러 계급, 계층이 참여해서 세력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민민주주의 수립이 의미하는 바는 한반도에 세워질 어떠한 정치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무슨 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고 남조선을 배제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오히려 기광서의 지적처럼 한반도 전체에서의 헤게모니를 추구하던 공산주의자들이 남조선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민주기지"로서의 북조선에서의 인민민주주의의 강화를 시도하면서 분단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나중에 인민민주주의 개념을 갖고 세미나를 좀 해보고 싶다. 연구자들이나 학부생들, 활동가들 등을 모아놓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인민민주주의와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인민민주주의 간의 간극을 통해 현대사를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연구하는 이들도 많지 않겠지만..




인민민주주의 개념을 정말 쉽게 표현한 그림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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