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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rtcS1lponsorhed ·
이영훈은 유튜브와 한국경제 연재를 시작하면서 조선왕조 노예제설로 경도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의 자신의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본인도 어렵겠으니 농노제(소농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노비제를 농노제의 일종으로 보던 것에서 노예제로 바라보는 관점으로의 이행의 계기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법에 대한 이해 때문인 것 같다. 이분이 마르크스주의를 본격적으로 부정하고 "자유주의 역사관"을 만들겠다고 한 뒤부터 훼까닥 하고 계신데 최근에 민법체계를 좀 배우시면서 법적 권리의 유무로 노예제설로 경도되시는 것 같다.
미국 역사학자 제임스 팔레의 조선왕조 노예제사회설과 북조선 역사학자 김석형의 봉건사회설(농노제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초짓다보니 노예제 기준이 계속 꼬이는 것 같다. 조선왕조 노예제 사회설은 거슬러 가자면 1904년 후쿠다 도조쿠의 입론에서부터 시작되어 백남운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1957년 북조선의 김석형에 의해 반박되기 이전까지는 거의 통설이었다. 김석형이 제시한 노비의 구분이 그 유명한 솔거노비 - 외거노비 구분이다. 주인집에 거처하며 그 부림을 받는 솔거노비를 노예로, 밖에서 독자적인 소농경영을 행하면서 공물을 바치는 외거노비를 농노로 파악하며 조선사회에서 후자가 지배적이라 규정함으로써 농노제 사회로 파악하는 게 김석형의 논지였다. 이것이 1990년대 양반가의 분재기가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되기 이전까지 통설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사의 통설에 대해 제임스 팔레는 노비가 매매, 상속되는 주인의 재산이라며 그 법적 무권리 상태를 근거로 조선왕조 노예제설을 주장했다. 김석형의 주장과 팔레의 주장 모두 조선왕조의 양반 - 노비 관계를 일종의 주인의 땅에서 주인의 부림을 받으며 주인의 농사를 짓는 관계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오류가 있다. 이것을 가작(家作)이라 하는데 가작이 지배적 관계였는지 알기는 자료가 부족하다.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쳤지만 자신의 독자적인 땅과 가족이 있었던 납공노비의 범주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좋을지가 핵심쟁점이다.
이영훈은 두 학자 모두 실증적 근거가 약한 것을 제하고 팔레는 지나치게 법제도, 법적 권리 상태만을 보았다고 비판했으며 김석형은 소농경영에만 주목해 억압성을 경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영훈은 시바하라 다쿠지의 입론을 받아들여 납공노비를 농노적 범주의 존재라고 인식하고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 팔레와 마찬가지로 법적 무권리 상태를 강조하며 '동의와 계약' 혹은 '지배와 보호'의 원리가 관철되는가 되지 않는가에 따라 납공노비를 노예적 존재로 인식하며 조선왕조를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만약 동의와 계약 관계가 관찰된다면 농노제(=소농사회)에 진입한 것이기에 자본제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는 파악하는 것 같다. 그렇지 못한 한국 사회는 지배계층인 국가 - 양반과 피지배계층인 농민 간에 동의와 계약, 지배와 보호 간의 관계로 맺어지지 않았다보니 서유럽과 같은 민법체계가 발달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로의 이행 또한 이뤄질 수가 없었다. 시장경제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동의와 계약이 잘 이뤄지고 그에 따른 개인의 권리보장이 잘 작동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보니 반일종족주의가 횡행하며 개인의 자유가 부정되는 '인민주의적 열정'으로 가득한 세상인 것이다.
한국형 시장경제의 미숙함을 조선왕조 노예제설에서부터 끄집어내어 가져가는 그의 주장은 곱씹어볼 지점이 있지만 나로서는 그가 지나칠 정도로 정치화되는 바람에 학문적 엄밀성과 비교사적 관점의 균형을 좀 잃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선해하자면 그는 한국 사회의 특질을 유럽형 봉건제와 등치시키며 지주제 사회 등으로 파악하는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만약 서구 사회와 비슷한 특질을 갖고 있다면 왜 민법 체계와 같은 것이 이쪽에서 발달하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가까운 지인들한테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을 재구성하면서 이영훈의 기존의 조선왕조 농노제설, 소농사회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에 입각해서 볼 때 조선왕조의 노비제는 여러모로 보아도 노예제에 가깝다. 그런 식으로 비판하려 했는데 이영훈이 노예제설로 이동해버려서 약간 김이 샜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책이 나오면 보다 자세하게 논구하고 싶은데 아무튼 내가 보기에 동아시아에 서유럽과 같은 형태의 민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노예제 사회라 하는 건 초기 마르크스의 총체적 노예제론으로 회귀하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는 유럽의 고전고대의 노예제와 아시아의 총체적 노예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직접적으로 명시할 정도로 이 둘을 노예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영훈과 같은 방식으로 본다면 아시아적 경로와 유럽적 경로를 동질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핵심적인 것은 아시아의 중세에 민법이 없었던 것과 유럽의 중세에 형법이 없었던 것 간의 대등한 비교이다. 아시아에는 형법만 있었고 유럽에는 민법만 존재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기 때문에 아시아 중세에도 민법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중세 유럽에도 형법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기는 했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민법적 영역만 존재하던 것이 근대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이 로마법 재발견 등과 얽히면서 근대적 법전체계가 성립되는 것이고, 반대로 동아시아에서는 형법적 영역만 존재하던 것이 인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민법체계가 들어서면서 근대국가로 이행하게 된다. 노예제 - 농노제 사회론에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경로의 이러한 대비를 어떻게 정합적으로 파악할 것인가에 있다.
이영훈의 인식에서는 이러한 대비가 없다. 비교사를 제시하면서도 없다. 그에게는 진보의 선후 관계만 존재한다. 동의와 계약적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 간의 차이, 전자의 우월함과 후자의 열등함의 대비만이 돋보인다. 이러한 대비를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동아시아에 근대가 도래하면서 양계초 등이 왜 그렇게 민법의 도입을 중시했는지, 동시에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그렇게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경제사적 차원에서 명료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저 "지체" 현상만이 남는다. 이는 서구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로 이어지게 된다. 나는 근대 문명이 가져온 빛나는 혜택을 높게 평가하고 그런 것들을 산출해낸 서유럽의 역사적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19세기 유럽 지식인이었던 마르크스의 인식에는 '자유'를 산출한 것에 대한 당대의 서유럽인들의 자부심이 어느정도 녹아들어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는 자본주의가 유럽마저 "아시아화化"한다는 함의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국가의 전제화化에는 그러한 함의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비판이라 본다. 우리가 이 전과정을 이해하면서 잘 사용하면 된다. 아시아적 경로와 유럽적 경로의 대비와 비교는 그것을 더 잘 운용하고 그 너머를 사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영훈에게는 이러한 관점보다는 선후관계만이 존재해 결과적으로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식의 자학적 사관으로 이어졌다. 지체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강조하다보니 종족주의 운운하게 되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관점보다는 대등한 비교를 통해 어떤 식으로 운용하면서 그 너머를 사유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다.
요약하자면 이영훈의 관점은 그저 전통사회와 근대사회 간의 차이를 근대화의 정도에서 찾는 과거 진화론적인 성격이 강하게 묻어나며 중요한 문제제기들, 예컨대 베버가 제기했고 토인비 등이 받아서 확장시켰던 것과 같이 보다 깊고 넓게 보자면 인류의 정신사적 전개 속에서 나타난 큰 대비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즉 토인비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주의, 기독교, 공산주의, 시오니즘 등이 포괄되는 유태적 정신사와 부처의 출현 이후 나타나는 불교, 도교, 성리학 등을 포괄하는 부처적 철학 - 종교 체계의 정신사 간의 차이라는 큰 비교사적 맥락 같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토대의 차이에서부터 정치제도적 차이, 법문화의 차이 등을 거쳐 정신사적 차이로까지 이어지는 이 체계적인 비교사적 분석의 길이 막힌다. 여기에는 이영훈 본인이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이 전제된 것이겠으나 본인이 열어둔 생산적 토론의 장을 스스로 닫는 모양새를 보니 참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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