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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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조선비즈 윤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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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17 08:00


오자와 세이지·무라카미 하루키 지음|권영주 옮김|비채|364쪽|1만4000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 애호가로 유명하다. 재즈와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 음반도 다양하게 모은다. 좋은 연주회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종종 감상문도 남긴다.

그런 그가 일본의 명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만났다. 같이 음반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글렌 굴드와 레너드 번스타인의 브람스 협주곡 1번 협연에 이른다. 번스타인에게 직접 지휘를 배운 명지휘자가 풀어놓는 뒷이야기라니,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에 하루키는 세이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는다.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도쿄와 호놀룰루, 스위스를 돌아다니며 둘이 함께 음악을 들으며 대화한 기록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 클래식에 해박한 하루키. 카라얀과 번스타인에게 배우고 1979~2002년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낸 세이지.

두 사람은 카라얀, 번스타인, 굴드, 제르킨 등 한 시대를 빛낸 음악가들의 음반을 함께 섭렵한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브람스 교향곡 1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서주, 말러의 교향곡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넘나든다. 연주자의 특성이나 지휘자의 성격, 지휘의 기술, 악보 해석의 차이까지 솔직한 사견을 털어놓는다.

가령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가,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을 땐 이런 대화가 오간다.

“이 부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안 맞는데요.”(하루키)

“굴드의 음악은 결국 자유로운 음악이거든.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캐나다 사람이라고 할지, 북아메리카에 사는 비(非) 유럽 사람이니까 그런 부분의 차이가 클지도 몰라요. 그에 비해 카라얀 선생은 베토벤의 음악이란 게 이미 확고하게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린 상태라, 초장부터 독일적이라고 할지, 틀이 딱 잡힌 심포니란 말이죠. 게다가 굴드의 음악에 섬세하게 맞춰줄 마음이 아예 없고.”(세이지)

“카라얀은 자기 음악을 확실하게 하면서 남은 부분은 네가 적당히 알아서 해라, 하는 식이죠. 그 때문에 피아노 독주부라든지 카덴차에선 굴드가 그런대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거든요. 하지만 그 앞뒤가 어째 살짝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하루키)

“협주곡인데 이 정도로 솔리스트 생각을 안 하면서 심포니로 당당히 연주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세이지)

음반 감상에서 시작된 대화가 각자 추구하는 예술의 길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 글 쓰는 법 같은 걸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고, 딱히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서 글 쓰는 법을 배웠느냐 하면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거기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 읽는 이를 앞으로, 앞으로 보내는 내재적 율동감이랄지.”(하루키)

“글의 리듬이란 건 우리가 그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리듬인가요?”(세이지)

“네, 단어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깁니다. 음악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귀가 좋지 않으면 불가능하죠.”(하루키)

“악보엔 오선 밖에 없단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 적힌 음표 자체는 어려운 게 전혀 없어요. 단순한 가타카나, 히라가나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조합돼서 복잡한 문장을 이루면 쉽게 이해할 수 없어져요. 뭐가 쓰여 있는지 알려면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해요. 그거하고 마찬가지인데, 음악에선 그 ‘지식’ 부분이 무척 큰 거예요. 글보다 기호가 간단한 만큼 모르면 정말 철저하게 알 수 없어요, 음악은.”(세이지)

오자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몇 시간씩 집중해서 악보를 읽는다. 하루키도 새벽 4시쯤 일어나 다섯 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한다. 오자와가 악보를 읽는 것과 같은 시간에 그는 글을 쓴다. 하루키는 “그렇기에 오자와씨가 ‘악보를 읽는다’는 행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 의미를 내 것이나 다름없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하루키는 서문에서 “이것은 일반적인 인터뷰가 아니고, 소위 ‘유명인끼리의’ 대담 같은 것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원했던 것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울림 같은 것이었다. 이 대화를 통해 오자와씨라는 인간을 발견하는 한편, 동시에 나 자신의 모습도 조금씩 발견했을지 모른다”고 썼다.

대화에서 오가는 음악의 수준은 전문적이다. 하지만 편한 대화체로 쓰여 어렵지 않게 읽힌다. 여기에는 오자와의 의견도 반영됐다. 그는 하루키에게 “난 이 대화란 걸 마니아를 위해서 하고 싶진 않다. 마니아한테는 재미없지만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읽다 보면 재미있는 걸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보다는 웬만큼 조예가 있는 사람에게 맞춤한 책이다. 당사자들은 쉽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둘의 ‘눈높이’가 평균 위이기 때문이다. 대화에 등장하는 연주자의 이름이나 대략의 특성, 거론되는 작곡가들의 음악 분위기를 아는 정도라면 함께 즐길 수 있겠다.

평소 클래식 음악에 다가가고는 싶지만 막연히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책에 나온 음반을 찾아 들으며 읽어보시길. 수백년에 걸쳐 수없이 연주된 같은 곡이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얼마나 크게 바뀌는지, 감동의 포인트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하루키는 “내 안에는 지금도 ‘

오자와씨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러니 ‘오자와 세이지와 보낸 오후 한때’ 같은 게 책 제목으로 가장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흐르는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즐거운 대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곶감, 주먹밥 등) 간식 장면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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