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Seok Heo
2020 ·
한일(韓日)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모색을 위한 민주주의의 역할(2)
- 65년 체제의 역사와 한계 그러나...
1965년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맺은 한일협정이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있는 와중에 미국의 국제정치학적 전략에 의해 처리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다.
미국은 소련 공산주의 진영의 공세로부터 남한과 일본을 지킬 구상이었다. 그러기 위해 자유주의 국가들의 가치질서 속 한-일간 안보 및 경제 협력을 요구, 촉진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전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일본은 피식민 지배국이었던 한국과 북한을 비롯해 중국과 소련 등의 사회주의 국가까지 협상과정서 배제하였다. 소위,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들끼리의 결탁한 ‘단독강화’ 였다.
당시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문제는 국제법의 범위 안에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과 다시 제휴를 맺기 위해서는 과거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에서 초래된 여러 문제에 대해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었다.
예비회담은 51년에 시작되었지만 최종적으로 타결된 것은 1965년이다. 그만큼 다시 수교가 맺어지기까지 오랜 진통과 협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끝끝내 식민지 지배에 관한 성격에 있어 양국은 합의를 보지 못했고 애매하게 처리되었다.
현재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가 바로 양국 개개인에 대한 청구권의 소멸 및 국가의 외교보호권 발동 여부인데, 이것이 오늘날 징용노동자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한일협정 문서의 청구권-경제협력 규정의 제2조 1항에 따르면 무상자금과 차관 등을 한국에 지불함으로써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또한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 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의 사법부는 제국시절의 징용노동자들은 미지불 임금이나 퇴직금 등을 일본정부에 요구할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 징용노동자 개인의 청구권이 국가에 의해 매듭지어진 관계로 한국 대법원은 일본기업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미지불 임금 등의 민사적, 재무적 권리 등에 관한 것이 아닌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일본기업”들에 대한 위자료라고 명시하였다.
만일 일본 기업자산에 대한 압류가 현실화되면 과거 냉전적 질서 하에 국가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양국 간 정치적 타협과 가치(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에 대한 가치)동맹의 붕괴가 보다 가속화 될 것이라 예측된다.
이는 구(舊)정치권에서도 전 세계 학계에서조차 논란의 여지가 지속되고 있는 ‘한일합방불법론’ 에 전제를 두고 있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이 1965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타국의 국가주권의 침해’ 라는 도덕적 잣대를 바탕으로 단죄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국주의 열강시대에 식민지배 자체가 강제합병의 성격을 지닌 만큼, 당시 국가주권이 무엇인지, 제국주의의 작동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다원화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식민지배에 관한 성격에 대해 양국의 인식 갭이 너무 큰 상태 하에서 봉합된 청구권 협정은 오랫동안 그에 관한 결함이나 한계가 양국 간에 지적되어 왔다. 당시 한국 행정부는 유-무상 통틀어 약 5억 달러에 달하는 공여금액을 국회에 설명하기를,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보상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였다. 반면 일본 내각은 식민지배는 대내외적으로 승인을 받은 합법인 만큼 금액의 성격이 <경제협력 및 독립축하금> 이라고 의회에 설명하였다. 식민지배에 대한 협정 문구를 모호하게 다룸으로써 양국의 국내정치적 형편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던 문제 등을 안고 있는 65년 체제를 파기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한일협정무화론’) 이는 대해 당대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애써 무시한 무책임한 발언의 발로일지 모른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국력의 위치가 많이 대등하다지만, 50년 전의 당시 한국의 국력은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분명 현재 우리의 가치판단으로는 식민지배는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당시의 ‘만국공법’ 에 입각한 서구 열강의 제국질서 하에 일본제국은 대내적으로는 대한제국 황제에게 병합조약문의 서명을 받아내고 대외적으로는 영-일 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조약 등의 승인절차를 진행함으로써 제국들 간에 통용되는 “합법적” 형식으로 한-일 합방을 추진하였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에 합의를 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기능주의적 질서 하에 피식민지배국에 대한 사과나 배상을 한 강대국의 전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적 제약 아래 한국은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를 따르면서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에 필요한 차관 및 자본을 도입하기란 여간 여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한반도 내 남북체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필요가 있던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했고 그에 따라 맺어진 65년 체제는 현실적 측면에서 불가피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북한과 일본의 수교 등 국제안보질서가 변동함에 따라 65년 체제의 일부내용 수정 및 기존 협정내용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합의 등이 필요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65년 체제로부터 탈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지정학적 힘의 감소, 중국의 부상으로 정의되어지는 ‘이중적 위계질서(Dual hierarchy)’ 하에 과거 지속되어온 한-미-일 자유주의국가 협조체제로부터의 이탈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갖고 오게 된다.
새로운 안보 및 평화 동맹체제가 구체화되기 전, 무작정 잘못된 과거유산을 정리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한국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일본은 한국이 65년 체제를 허물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안보에 있어서도 양국 간 연대 및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이 한국에게 방위금 인상을 요구하는 와중에 북한은 한국을 노골적으로 무시, 일갈하며 미국과 단독으로 협상하려 한다.(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건지, 북미대화 동력도 사그라지고 있다.)
지소미아는 연장되었지만 이미 일본은 안보 공조에 있어 한국의 역할을 축소, 베제시키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보이해가 다른 강대국 중국과 러시아에게 한국 영해가 침범 당한 일도 있었다.(2019.07.23) 외교적 우군 없이 이리저리 치이는 국제적 ‘미아’ 형국에 이른 상태는 현재도 매한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는 당위와 실용적 사고가 요구되는 기예인데, 문재인 정부는 비현실적인 국제정세 판단과 더불어 민족적 공조 등의 실체 없는 어느 당위론에만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한일협정에 대한 국제법적인 시각과 한국 민주주의의 협소함에 대해
과거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강제징용노동자문제가 쟁점이 되어 정부는 65년 한일 간 수교절차와 청구권 협정을 조사, 발표하였다. 그 내용 중 대표적인 부분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양국 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및 채무관계 해소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그에 관한 일본의 법적책임은 남아있다.
다만,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불은 개개인의 재산권이나 조선 총독부의 대일채권 등의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과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의 성격을 갖고 있으니 한국정부는 당시 수령한 자금 중 상당금액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근거로 조국 전(前) 청와대 법무부 장관 등이 주장하기를, 청구권 협정에서 한국정부가 받은 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및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배상의 성격이 아닌 보상의 성격이었다고 강조했다.
보상은 ‘적법’ 행위로부터 발생한 손실이나 손해에 대해 지불하는 것이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적법이 아닌 ‘불법’ 이므로 배상을 해야 한다는 논지이다.
국제법을 연구하는 다수의 저명한 학자가 이미 지적하였지만, 이는 지극히 국내법적측면에서만 해석한 사려 깊지 않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가 간 합의나 조약은 당연히 국제법적인 시각을 고려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성원 원광대학교 법학교수의 기고문에 따르면, 국제법은 국내법과 달리 기본적인 배-보상의 기준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법상 불법행위는 유엔 등의 초국가기구에서 다뤄지는데, 국가가 국제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저지르면 이에 대한 국가책임이 발생하고 원상회복이나 금전배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제법을 준수하여 행위를 하였지만 이로부터 발생한 손실이나 손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상 보상의 의무 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국제법상 국가의 적법행위에 대한 법적책임이나 금전지급 의무 등의 개념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개된 한일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에게 피징용자 피해보상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피해자 개개인을 조사하며 확인된 피해자에게는 직접 개별적으로 보상금을 공여하겠다는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이를 거절, 한국정부가 자체적으로 개별 피해자를 조사/구제하겠으니 포괄적 일괄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보상금액만을 한국 측에 공여할 것을 일본에 요구하였다.
따라서 국내법 체계의 배-보상의 개념구조로 한일 청구권 협정을 접근하는 발상은 지극히 근시안적일뿐만 아니라 국제법에 대한 무지의 소지를 드러낼 뿐이다.
과거 배상이 아닌 보상을 요구한 기록은 국제여론전에 있어 오히려 일본에게 ‘대한반도 식민 지배의 성격이 적법이었다고 인정했다’라는 역공의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이 때(과거)는 보상을 요구해 받았지만 배상은 아니니 다시 돈 줘라.’ 라는 식의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통용될지 의문이다.
우리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민관공동위원회의 지침대로 한국정부는 2007년에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약 7만 명에 해당하는 피해자들에게 6184억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이후, 한국정부는 일본의 무상 3억 달러에는 개인에 대한 피징용 손배청구권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였고 개인의 청구권 행사는 어렵다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과거 국제정치 질서나 역사, 양국의 입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당위론적 법률관에 입각해 한일 관계를 뒷받침해온 청구권 협정에 관한 암묵적 해석을 뒤집었다.
인권에 대한 의식이 신장되면서 국가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겠으나, 이를 일본정부 및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야만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한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징용’ 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확대를 위해 제국주의를 선택한 ‘근대국가’의 공통적 현상이기에 단순히 일제의 만행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이든 일본에 의해 구제받지 못한 소외된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65년 체제 하 한-일 간 새로운 정치적인 타협이나 한국정부의 주도를 통한 해결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의 법적책임이 성립되는가도 학계에서도 여전히 공방 중인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결로 말미암아 앞으로 과거 제국의 관동대지진 희생자나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이 부각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 선례에 따라 국제사회의 현실에 앞서나가 남발되는 각종 소송과 법적 잣대는 오히려 대화와 타협 없는 일부 법률가의 자기주장과 요구에 매몰되어 한일 양국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분쟁에 말려들어 오히려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역사문제의 결착과 해결은 영원히 이뤄 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 때문에 개인의 인권문제에 예민한 다른 국가들도 “사법자제의 원리” 에 따라 국가 간 조약의 구속력이 유효하다면 개인의 인권실현을 위한 외교적 보호권 행사에 정부가 상당한 재량권을 발휘하기도 한다.
특히 외교문제와 관련해서 한 국가 내 사법부와 행정부가 충돌한다고 해도 국가의사는 행정부가 대표한다. 어느 조약이나 협정의 해석에 관해 쌍방의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첨예한 사안일 경우에는 국내법이 국제법을 앞서나가지 않도록 사법부의 신중한 판단을 요하는 것이다.
이처럼 법학, 외교학, 역사학 등 학계에서 다양한 이견(異見)이 표출되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의 대부분은(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앞장섰던 것처럼) 대법원의 판결에 반하는 의견을 갖는 것은 일본의 목소리를 대변, 부역하는 것과 다름없고 그들은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는, 피아(彼我) 구별을 통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행정부를 넘어 사법부에도 이러한 세계관으로 동질화되며, 자율적인 시민사회 공간에 논의되어야 할 역사문제가 일방적 진리를 내세우는 국가의 사법기구가 독점하려는 행태를 박유하 교수는 ‘역사의 사법화’ 현상이라 명명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은 다수, 소수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일방적 이념이 정의라는 사고아래, '법 지상주의’의 사법부의 역할을 증대시켰고 다원적 의견이 공존하는 의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總意)’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최장집) 속에 다수라는 이름의 정치적 폭력은 건전한 한일관계 발전에 무익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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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지난 번에 이어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법이 상식을 벗어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는 말을 듣는데요. 한일관계도 그렇고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는 우리사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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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eok Heo
김종현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일방적 선과 악을 단정하는 법의 속성 상, 법적 투쟁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은 요원하다는 바를 한일관계에 빗대 써봤습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 Reply · 26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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