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5

홍승기 | Ramseyer 교수의 ‘위안부 계약’ 논문

(1) 홍승기 | Facebook
저자 및 역자소개
홍승기 (지은이) 

고려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School에서 공부했다. 사법시험 과 미국 뉴욕주(州)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언론진흥재단 감사,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를 거쳤다. 2012년 8월부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저작권위원회 위원, 영상자료원 감사, 예술인복지재단 이사,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를 맡고 있다. 법정영화 에세이집 『시네마 법정』, 실용서 『영화인을 위한 저작권 가이드』, 『문화예술인을 위한 저 작권 상담사례집』, 번역서 『치열한 법정』 등을 출간했다.

격식(formality)을 못 견뎌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위를 맴도는 대화를 혐오한다. ‘읽히지 않는 글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실적용 논문도 생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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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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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지막 공익활동용 잡글입니다. 12월 28일 2015년 위안부 합의 5주년에 맞추어 '신문사 요청으로' 썼으나, "너무 거칠어서" 실리지 못했습니다. 
......
대사관 앞 소녀상
  일본 대사관 앞 보도에 ‘소녀상’이 있다. 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정대협’, 현재는 ‘정의기억연대’로 개칭)가 수요집회 1천 회 기념으로 2011년 12월 14일 설치한 조형물이다. ‘일본군과 경찰이 총칼로 위협해 끌고 간 조선 소녀 20만 명’을 표상한다. ‘20만 명이 끌려가서 238명만 돌아왔다’는 감성적 메시지로 울분을 자아낸 영화 <귀향>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의 우익은 ‘군경이 총칼로 끌고 간 그런 위안부는 없다’고 반격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식민지의 속성이 ‘착취’와 ‘차별’에 있지만, 이른바 정주형(定住形) 식민지를 꿈꿨다는 일본 제국주의가, 교전 상대국이 아닌 제국의 2등국민을 총칼로 위협해서 성노예 집단을 만들었을까? 

정대협이 위안부의 육성을 청취한 증언록 여섯 권은 그 의문에 답한다.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팔렸다는 체념과, 업자에게 취업사기를 당했다는 한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청취에 참여한 어느 연구자는, 위안부의 ‘사회적 정형화’가 위안부 자신의 구술에도 영향을 미치고. 연구팀의 청취 활동도 정형화와 무관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맥락에 어두운 위안부가 일본군과의 추억이라도 회상하면 민족주의 담론에 빠진 연구자들이 혼비백산했다고도 전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있었다. 대통령이 바뀌며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 합의 2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를 내놓았다. ‘대사관 앞 소녀상’도 쟁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보고서』는 그 외교적 수사(修辭)까지도 트집 잡는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은 접수국에게 ‘공관의 안녕(peace of the mission or its dignity)’의 보호를 요구한다(제22조 제2항). ‘대사관 앞 소녀상’이 어떤 절차를 거쳐 설치되었든, 한일관계에 어떤 특수성이 있든, ‘대사관 앞 소녀상’은 그 자체로서 국제법 위반이다. 민간단체인 정대협이 설치하였으니 정부는 모르겠다고 변명하고 버틸 일이 아니다. 

  박유하 교수는 2013년 作 『제국의 위안부』 표지에, “실은 그 옛날의 ‘강제로 끌려간 소녀’도 지금의 투사도 ‘위안부’의 전부는 아니다. ‘위안부’의 그 모든 모습을 보지 않고는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고 썼다. ‘총칼로 끌려간 20만’과 ‘(그런) 위안부는 없다’는 대립을 극복하자는 입장이다. 

‘나눔의 집’ 할머니 아홉 분이 명예훼손 소송을 했다.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 34개 문장이 삭제됐고,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형사 1심법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날 그 사건만을 집중심리한 후 무죄판결을 선고했는데, 고등법원이 덜렁 유죄로 뒤집었다. 쟁점이 명백한 사실관계를 두고 대법원은 4년째 판단을 않고 있다. 

아홉 분 할머니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다면 이 소송을 시작하셨을 리가 없다. 완고한 근본주의를 고집하는 정대협의 행태를 비난하였을 뿐, 그분들의 명예는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은 책이다. 할머니들은 운동가들에게 이름만 빌려줬을 둣하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 5년이 흘렀다. 한일관계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파행의 과속주행 중이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고, 생뚱맞은 ‘죽창가’가 등장하였다. 

윤미향과 정대협의 비리가 터지고도 윤미향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대협을 비판하면 친일파’라는 겁박이 집권층 실세들의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정대협을 비판한 『제국의 위안부』가 계속 ‘유죄’로 남아있는 동안, 생존 할머니 중 또 몇 분이 세상을 떠나는 동안, 정대협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Comments
Park Yuha
신문사가 아직도 눈치를 보는 모양이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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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

하버드대 로스쿨 J. Mark Ramseyer 교수의 ‘위안부 계약’ 논문을 두고 말들이 많다. 논쟁의 초점은 그가 위안부를 성노예(sex slave)라고 하지 않고 매춘부(prostitute)라고 칭하였다는 점인 듯하다. 
Ramseyer는 2019년 3월 discussion paper “Comfort Women and the Professors”에서 글의 기본 이론을 구성하고, 2021년 3월 발간 예정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에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의 온라인판은 2020년 12월에 탑재되었다.)

Ramseyer는 게임 이론을 동원하여 전시 위안부 계약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민간의 공창계약과 비교하면 위안부 계약은) 평판에 대한 부담이나 근무 장소의 위험성에 비추어 전도금/선급금(upfront)이 상당히 고액이고, 계약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며, 계약기간 이내이더라도 전도금을 전액 상환하면 계약관계에서 벗어나 귀국할 수 있더라고 하였다. 월급제와 같이 정액의 보수지급 방식이 아니라 성 노동의 각 수입을 업자와 사이에 분배함으로써 위안부의 나태를 방지하여 업자의 이익을 확보한다고도 하였다. 그의 두 글은 위안부 지위의 법적 성격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계약’의 성격을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논증한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그가 민간의 공창(公娼, licensed prostitute)계약을 전시(戰時) 위안부 계약과 비교한 점에서 정서적으로 불편할 수는 있겠다. 

한편, discussion paper “Comfort Women and the Professors”에서 그는 ‘정대협’ 활동에 대하여 (위안부의 실태를 왜곡한다는 취지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언론에 자주 노출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강제(?) 연행’ 당시의 증언이 상황에 따라 일관되지 않는 점도 지적하고, 『어느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위안부 문옥주의 구술 자료,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이영훈 교수의 연구 등을 - 정대협의 주장과 배치되는 - 위안부 생활의 실제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인용하고 있다. discussion paper의 제목에 ‘교수들(professors)’이 등장한 배경은 이영훈 교수나 박유하 교수처럼 정대협의 주장과 다른 입장을 밝힌 분들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논문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도 제목 그대로 위안부 계약을 중심으로 한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논쟁적 표현이 등장한다. 조선총독부 혹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것도 아니고, 일본 군부가 불량한 위안부 조달업자와 결탁한 것도 아니며, 업자들이 군부대 위안소만을 경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 업자들이 수십년간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유인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업자들에게만 책임을 미뤘다(2.4. Recruitment in Japan and Korea의 말미 Note. 부분). 

업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위안부의 아버지·오빠와 사이에 인신매매를 하고, 위안부를 상대로 취업사기를 자행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의 위안부』가 지적하듯, 그 배후에는 식민지 한국과 대만에서 위안부를 조달하기로 한 일본 군부의 정책 결정이 있었다. 그러한 정책이, 특히 식민지 사회에서 가져 올 결과에 대하여, 일본 군부 및 일본 정부가 책임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것이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사이 위안부 합의문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백히 한 이유이기도 하다(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졸속이라고 비난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더니, 2021년 연두기자 회견에서 돌연 입장을 바꿔 ‘2015년 합의를 존중한다’고 공표했다.)  
논문에서 드러난 Ramseyer의 인식은 그가 위안부 문제에 정통한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일 테다. 그렇다면 후속 연구자가 후속 논문에서 그러한 인식을 ‘오류’라고 지적할 수도 있고, 성실한 독자가 그의 글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논의는 용어(매춘부, 위안부, 성노예)에 몰두하며, 그가 임의로 인용한 국내 학자들을 상대로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하고, 심지어 논문의 철회를 요구하는 등 감정과잉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한 소동에 하버드 대학의 젊은 유학생들까지 가세하였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반일종족주의’ 현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제대로’ 읽지 않고 분노(憤怒)부터 앞세우다 보니 일어나는 해프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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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원희
맞는 말씀이예요. 학문적인 비판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요...
 · Reply · 3 d
홍승기
조원희 분노의 실체가 애매하지요
 · Reply · 3 d
Goonho Yoon
해가는 마당에 이리 흥분한 걸 보니
홍변 살아있네..
그래 내가 홍변 친구란게 자랑스러워요
 · Reply · 3 d
홍승기
Goonho Yoon 두목께서 이렇게 키우셨습니다
 · Reply · 3 d
권성희
인간의 모든 진지한 지적 활동을 존중합니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겠지요.
 · Reply · 3 d
홍승기
권성희 차분히 읽고 앞뒤를 살필 일이지요
 · Reply · 3 d
권성희
홍승기 Very true. 동의하지 못해도 니가 말할 자유는 끝까지 부인하지 않겠다... 누가 말한 거죠?
 · Reply · 3 d
박영길
홍교수,정확한지적입니다,학문의자유가떼문화에지배받던시절이생각납니다,
 · Reply · 3 d
홍승기
박영길 아직도 떼거리들 횡포가 도처에서 보입니다, 박 교수님 ~
 · Reply · 2 d
박상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기반을 둔 근대 조차 아직 우리 사회는 달성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근래 공동체주의라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떼법과 감성적 전체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다 보니. 권력이 아니라 이들 군중들의 눈치를 보느라 학자가. 판사가. 검찰이. 또 변호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갑갑함을 느낍니다.
 · Reply · 2 d
권성희
박상수 우리사회가 반드시 이 이상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Reply · 2 d
홍승기
박상수 염치조차 포기한 법조인들 책임이지요
 · Reply · 2 d
박진식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Reply · 2 d
홍승기
박진식 지혜로운 독자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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