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Favourites · 2to SuepeoolictsSttpemoobernS iaft s16o:rcg5Semcdna5 ·
휴. 내 글을 반복적으로 신고하는 할 일 없는 모지리가 있나보다. 정지 먹고 짜증나서 한동안 안 들어왔다. 이래서 그냥 몇명하고만 소통하는 계정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튼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칼 슈미트의 이론이 소환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슈미트가 반反자유주의적 입장에서 근대국가를 공격했다는 주장을 보고 글 남긴다.
자꾸 사람들은 슈미트를 "나치의 법학자"라는 식으로만 독해하는데 이 사람이 나치하고 협력했을 때 한 얘기들은 사실 이 사람의 주요한 논지, 사람들이 주로 소환하는 1920년대 저작하고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슈미트가 볼셰비키와 함께 나치즘을 정치의 영역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눙치고 넘어가는 해석이다. 이 사람 얘기도 사실 되게 간단한거다.
슈미트가 볼 때 1차세계대전은 기존의 유럽적 공법질서를 부정하는 사건이다. 주권국가의 가장 고유한 권리 중 하나가 전쟁을 개시하고 마무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세계대전의 결과 연합국은 독일을 전쟁범죄를 저지른 국가로 규정하고 처벌해버렸다. 베르사유 체제가 그것이다. 슈미트는 이런 상황이 기존의 유럽적 공법질서, 각각의 주권국가가 자신들 내부의 슈미트 식으로 말하자면 "대지"와의 소통 속에서 그 자신의 민족공동체적 특질을 법으로 구현해나가는 그런 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다. '초월적인 규범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현상이다.
슈미트는 이런 일이 유대적 세계관, 자유주의적 세계관이자 근대기계문명적 세계관인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법사상의 도래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는 볼셰비키, 나치즘, 자유주의=민주주의, 자본주의, 영국 등의 근대문명의 대표자들이 정치를 무화(無化)시키고 있거나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정치의 소멸은 곧 법질서의 소멸이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자유주의 비판이 나온다. 토론장과 공개성을 그 핵심 원리로 하는 의회는 더 이상 정치, "정치적인 것"을 산출해내는 기구로써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볼셰비즘, 나치즘 등의 어떤 특정한 사상 혹은 특정한 정치집단 때문이 아니라 대중민주주의의 형태로 자유주의=의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했다는 특질에서 비롯된다.
슈미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동질성을 그 원리로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동질성은 배타성의 양면적인 부분이다. 우리 민족,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혹은 정치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일부 구성원들 간의 동질성은 언제나 정치에 참여하지 않거나 우리가 아닌 이들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반대로 토론성, 공개성 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배타성과 근원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 속에서 의회가 여러 사회세력들 간의 경제적 이해를 다루는 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토론성과 공개성에 기초한 진리창출 기구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정치가 실종되고 계산 가능한 경제적 문제로의 환원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대중민주주의 속에서는 적과 아군의 설정이라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구현될 수 없다. 슈미트가 보기에 현대 독일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인 볼셰비키와 나치즘이 자유주의 - 민주주의적인 의회에 진출해 체제전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저 의회 내부에서 밤새는지도 모르고 토론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이 무능력함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체제가 자기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독재적 권력이 필요하다. 그의 자유주의=의회주의 비판은 그것이 더 이상 문제해결을 못하고 되려 볼셰비즘, 나치즘 등이 오히려 번성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지, 그것들을 부정하는 게 그의 목적이 아니다. 독재적 권력이 볼셰비즘, 나치즘 등을 제거하는 것에 대항해 "언론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의 규범을 들고 나오는 낭만주의자들을 호되게 비판했을지언정 그가 그들을 자신의 정치적 적대자라 보지는 않았다. 그는 근대세계 자체와 투쟁했다.
이런 주장을 단순화해서 슈미트가 또 나치를 정당화했네, 어쩌네 하는 얘기가 나오지만 슈미트는 '정치'를, "정치적인 것"을 되살리기 위해 독재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슈미트에게 있어서도 독재는 정치가 아니다. 볼셰비키와 나치즘 등의 체제위협적 인사들을 제거하고 난 뒤에야 정치의 영역이 창출될 수 있다. 이런 반(反)체제적인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강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슈미트는 의회제를 전복시키고 전체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자기 주장을 펼친 게 아니라 그것을 수호하고 궁극적으로 법질서의 유지를 위해 주권적 결단으로서의 독재행위를 옹호했던 것이다.
그가 나치즘과 결탁한 이후의 주장도 이 연장에 있다. 그는 이미 세계대전으로 형해화된 주권국가에 기초한 유럽의 공법적 질서로 돌아가야 한다,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 형해화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법이 기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려고 한다. 의회제의 정신사적 위기라는 것도 의회를 뒷받침하는 원리인 공개성과 토론이 민주주의와의 갈등 속에서 형해화되었기에 의미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의회제를 없애자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주권국가에 기초한 공법적 질서가 무너졌을 때 그는 나치즘이 보여주는 생활권, 광역권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대안탐구에 나선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소련 등의 광역권 국가들이 각자의 독자적인 광역권을 설정한 뒤에 서로 건드리지 않는, 개입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보편성에 기초해 타국을 침범하지 않는 상황을 지향한다. 보다 작은 규모의 주권국가로의 복귀를 요청하지 않고 좀더 큰 규모의 광역권적 '제국'을 민족국가화 하려는 시도로 독해해야 한다.
즉 그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 민족공동체의 특질이 담긴 법질서, 그가 '구체적인 (법)질서'라 지칭하는 법체계를 옹호하고자 했다. 그 속에서 정치가, 정치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전개 속에서 어떠한 적도 상정하지 않고 모든 개인을 동질의 원자화된 개인으로 환원하고 계량화된 기계적 자동장치 속에서 살아가는(이 세계에서는 심지어 일반의지조차도 표라는 산수로 표현된다!) 근대인에게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적 입장이다. 반反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가졌을지언정 그가 근대국가 자체를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인 면모를 갖고 있지만 대의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비판에 이것을 끼워넣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법치주의를 무너뜨린다고 비판하는 쪽이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내가 읽고 이해한 슈미트는 그렇다.
이런 슈미트의 사상을 가져와서 슈미트의 근대비판을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바꾸며 인간적인 것의 회복을 외치는 현대 좌파철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슈미트와 하이데거가 그랬듯이 영프미 중심의 근대성을 존재의 내용을 제거하고 그 공허한 형식만 남기는 것으로 파악하든지(하이데거), 정치적인 것을 소멸시킨다고 파악하든지(슈미트), 합리성의 쇠우리에 가둔다고 보든지(베버) 어떻게 보든지 본질을 비슷하다. 기계문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서 선진화된 자본주의 경제를 증오하며 후진 사회의 인간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동학이든 동도서기든 다 비슷한 맥락이다.
선진자본주의의 침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문화의 고유한 것을 중시하는 이런 주장들의 가장 큰 오류는 서구문명의 상징으로서의 "기계" 자체가 엄청난 정신의 집합체라는 점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동양적 정신이든 독일민족정신이든 슬라비즘이든 뭐든 주장하는 것은 본인들의 생각이겠으나 서구 기계문명에 의해 침략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정신문명의 질적 수준에서도 서구에 못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주워먹는 좌파철학들도 반성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끝.
===
3 comments
이호중
아니 이렇게 좋은 글 쓰는데 대체 어떤 모지리가 신고를ㅡㅡ
· Reply · 1 d
이호중
영문학에서 리비스주의와 비슷하네요. 근데 기계문명을 부정하고 과거 찬란했을 것 같은 목가적 농촌 공동체를 지향했던 리비스가 생각나네요.
· Reply · 1 d
손민석
리비스가 로렌스에 대해서도 아마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걸로 압니다. 백낙청은 그런 리비스의 해석에 대항해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으려고 했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그 또한 목가적 농촌 공동체는 아닐지라도 근대 기계문명에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건 맞으니까요ㅎㅎ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