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4

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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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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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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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0. 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0-1. 삼위일체

0-2. 교회

 

1. 구약에서의 계약

 

⑴ 신명기

⑵ 계약을 자르다

 

◆. 혼인 비유

 

⑶ 구원 중심의 종말론

⑷ 다윗 계약

⑸ 하나님과 관계로서의 계약

 

2. 공공(공적) 신학

 

⑴ 개념

⑵ 본회퍼-바르트-몰트만

⑶ 사회적 삼위일체론과 시민적 이성 구현으로서의 공론장

⑷ 성찬 공동체의 세속화로서의 사회

⑸ 복음선교와 사회선교의 균형 필요

 

3. 사회계약

 

⑴ 청교도와 미국

⑵ 사회계약론 총론

⑶ 홉스

⑷ 로크

⑸ 루소

 

4. 그리스 로마

 

⑴ 지배자 숭배

⑵ 민주정치

⑶ 인문학과 종교

⑷ 전쟁

 

5. 신약에서 계약주의

 

⑴ 종말론과 구원 

⑵ 옛 계약, 새 계약


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⑴ 전통적인 교회는 '계시신앙'위주로, 이성을 배제하고 율법주의를 극복하는 성향으로, 세상에 분리된 교회를 추구한다. 반면에, 근대 계몽주의 이후 교회의 세상참여를 중시하는 공적 신학을 중시하는 교회는 영미권에서는 신앙의 개인화를 극복하는 차원으로 형성됐고, 독일사회는 파시즘 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공공신학은 흔히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에 의해서 시작됐다고 논해진다.

 

⑵ 전통적 삼위일체는 세속적 군주권에 대항한 개신교 교파 교단의 교권을 강조하기에 적절할 수 있는 군주적 삼위일체 관점을 취한다. 두왕국론에 의존한 전통적 삼위일체신앙은 세상과 분리된 교회를 지향한다.

 

사회적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영적 공간과 세상 모두를 통치한다고 바라본다. 통전적 신앙을 지향한다. 성령의 순환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을 통한 메시아 신앙과, 예수 중심의 집단인격으로 드러나는 교회공동체의 세상참여의 순환으로 드러난다. (세상참여 신앙을 주장하며, 풀림으로서 행동과 맺힘, 얽힘으로서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무교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균형잡힌 기독교 노선은 사회적 삼위일체를 주장하며 특정교회 파당성의 아전인수로 빠지지 않게, 성서적 신앙으로 제한하는 차원의 복음선교를 중시한다는 주장이다.

 

⑶ 서구 근대 자유주의 국가는 구약성경 유대교 종말론의 영향을 입었다. 무신론적 사회계약주의인 루소나, 유신론적 사회계약주의인 홉스나 로크도 마찬가지다.

 

자유방임경제학의 아담스미스는 구약학 교수였다. 공정한 관찰자를 주장하며 법치를 논하는 자세는, 구약성경에서 본 계약적 관점을 그리스 인본주의로 풀어낸 것이다. 이런 아담스미스의 자세는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과 일치한다.

 

반면에, 민주화 이후 보수진영에 담론의 주도성을 가진 조갑제기자에 의해 주도되는,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 혼자 한 것 같이 몰아가는 것은 헌법의 'ㅎ'자도 모르는 오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통전적 신앙으로서 이성을 논하는 차원도 유대교 종말론과 연결된다. 몰트만은 분명히 자신의 정치신학의 토대를 사회계약주의에 있다고 지적한다.

 

에큐메니칼 신학은 즉 통전적 신앙으로서 유대교종말론에 얽힌 인본주의 요소를 예수신앙적으로 바라보며, 처음부터 성도가 예수 안에서 하나이자 여럿으로 연결돼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단순한 아시아 마피아로서 붕당자체를, 성리학 도덕이 아닌 기독교도덕으로 포장해주는 증세가 강하다.

 

여기서, 그리스 인본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하면서 그런 메시아 소망에 의해서, 유럽시민사회에서 사회를 조이는 성향이 있는 수준의 유럽 사회주의와, 한국의 무속신앙 지평에 존재하는 마을주의로 공산마을이 아니면 '아작을 내버리는' 한국사회주의가 뿌리부터 다른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주의는 타자를 인정하는 유럽형은 들어오지 않고, 군주제 독재형인 레닌 스탈린 김일성 유형만 강하다. 설령, 민주화 이후 유럽좌파 노선을 수입하더라도, 유럽사람의 인간성은 못닮고 무속적 자세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⑷시민적 공공성과 무속에 비벼 먹는 한국식 공공성은 다르다.,

 

시민적 공공성은 이성을 중시하고, 협력관계를 중시하고, 서구 인간형에 깔린 무역사회가치를 중시한다. 반면에, 한국적 공공성은 감정을 중시하고 정착 마을편파주의를 중시한다. 즉, 연고가 닿는 마을 사람은 무죄, 아니면 유죄를 취한다. 또, 한국식 공공성은 마을주의라는 파당성에 공공성자체가 와해되기 쉽다.

 

㈀ 강성노조는 사회에 손상감정을 내세워 피해자인척 하며 공익을 나몰라

㈁ 대기업은 사회에 손상감정을 내세워 피해자인척 하며 공익을 나몰라

㈂ 언론은 사회에 손상감정을 내세워 피해자인척 하며 공익을 나몰라

㈃ 지자체는 사회에 손상감정을 내세워 피해자인척 하며 공익을 나몰라

㈄ 민주유공자 등은 사회에 손상감정을 내세워 피해자인척 하며 공익을 나몰라

 

마을중심 파당성에 공익을 사고못하고, 이익은 마을이 나눠갖고 피해는 상위 정치인 '임금'탓하는 관성이다. 이런 책임전가 악무한에서 절망하여 나자빠진 사람들의 숫자만큼, 민주화 지배권력은 권력 안보(?)를 누리게 된다.

 

한국의 공공신학은 오히려 파시즘 체제의 게르만 신화 이용처럼 한국신화를 이용하는 대중심리 조작현상과 닮았다. 즉, 대안임을 내세우는 지평자체가, 극복해야 할 퇴영적 사태를 닮아 버린 것이다.

 

⑸ 공공(공적) 신학은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로서 세상참여교회는 붕당 서원정치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악습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논해져 왔다.

 

⑹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 국가계약을 무효화를 주장한다. 그 배경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남북연석회의'까지 참여했다가, 그 이후 이승만 정권에 협력했다가 50년대에 반대로 섰던 인맥 집단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그들 중심의 이해관계로서 자신들만 피해자 감정을 주장하는 지평에, 국민 기본권의 온전한 배려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의 공적 신학이 특정 세력에 권력 모아주는 감정의 정치이듯, 공적 신학의 외투를 쓴 통일신학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대한민국 건국계약을 사회계약주의로 설명하면서, 건국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87년 6월 체제의 사회계약주의 미달 현상을 지적하는 게 타당하다. 모든 계약은 투명하게 쌍방이 아는 용어로 돼야 한다. 민주팔이만이 종북혁명 의도의 전제를 알고, 일반 대중은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형성된 계약은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된 수준만이 민주적 적격성이 있다.

 

⑺ 교회의 세상성은 몰트만 신학의 전제처럼 사회계약주의(구약성경의 메시아 소망)에 서야 한다. 반면에, 물질 중심의 샤머니즘 무속신앙에는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기독교 이외의 他종교는 구약의 메시아 소망에 준하는 차원에 가깝게 적응시켜야 한다. 즉, 어떤 종교 집단도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회피하는 갑질 상태를 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집단인격의 공공성은, 결코 특정인의 방대한 교양지식으로 동일시돼서는 안된다. 그럴 때 권위주의 정치를 부활하지 않는 한, 오류가 자율교정되지 않기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국가로부터도 민간으로부터 오류가 교정되지 못하는 차원으로 많이 진행됐다.

 

87년 6월의 민주화체제의 부적합성은 온 국민이 피해를 누리는데, 그 연합세력의 이익을 위해 너무 값싸게 보수정부 탓으로 몰려지고 있다. 또,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는 관료의 무능함이 좌파틀을 억지로 계승한 현 정부의 한계를, 민주팔이 설계제도의 한계면서 보수이념의 한계처럼 몰아가는 논리를 허락하고 있다.


0. 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을 무속신앙에 비벼서 사용한 것에 회개해야 한다.


⑴ 루터 ~ 칼빈의 『기독교강요』: 두 왕국론


  - 계시신앙 중심의 교회 + 세속 통치 군주 : 하나님-교회-세상


㉮ “그리스 인본주의/유대교/ 그리스도교” 배치의 고대 초대교회의 분리주의 전통을 지키려 함.

- 이성 배제 + 율법주의 극복 = 계시신앙 중심. 세상 일탈 초래  


→ 공공(공적) 신학 : 근대 계몽주의 이후 교회의 세상참여 : 하나님 – 세상 –교회


  ㉮ 영미권 : 근대 이후 신앙의 개인(사적영역)화. (헌법 조문에 담긴 ‘국교금지, 정교분리, 종교중립’은 어떠한 교파 교단도 메인영역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 이의 극복차원차


  ㉯ 독일 권 : 히틀러 파시즘에 부역한 독일 교회에 저항한 고백교회의 신앙운동에서

(통상, 20세기의 공공신학은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등에 의해서 시작됐다고 이야기한다)



⑵ 삼위일체와 사회적 삼위일체의 차이


전통적 삼위일체 신앙은 세속적 군주권에 대항한 개신교 교파교단의 교권을 강조할 수 있게 보여지는 군주적 삼위일체 관점을 취한다.


세상과 분리된 의미의 교회를 지향한다.


사회적 삼위일체 신앙은 하나님이 영적 공간과 세상 모두를 통치한다고 바라본다. ‘이성(인본주의)-계시(기독교)-감성’등이 섞인 체험적 영역으로서 성령이 성부로부터, 그리고 고통스러운 세상참여를 감수할 집단인격공동체로서 성령이 성자로부터 취한다. 결국, 성령의 순환으로 맺어지고 집단인격으로서 ‘교회’가 신앙의 강조점으로 드러난다. ‘시민사회’로서 교회이자 ‘말씀 보존’공간으로서의 교회의 양면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차원을 말한다.


사회적 인격으로서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는 측면의 교회를 지향한다.


(존 스토트 목사는, WCC 보수를 취하는 ‘균형잡힌(Balanced)’ 기독교 노선이다. 그는 사회적 삼위일체 신앙이 가지는 한계성으로서 교회 공동체의 행동을 아전인수로 하는 차원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복음선교를 사회선교보다 분명히 우위에 두고, 사회선교가 복음선교에 제한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존 스토트 목사의 ‘균형’은 老子 나 공자가 말하는 중국학에서의 부족 신앙이 말하는 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⑶ 유대교 종말론과 (서구) 인간 본성


㈎. 근대국가의 정당화 노선은 사회계약론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은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구성원에 임했다는 전제이며, 영적 공간과 세상 모두에 임한다는 차원을 전제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및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은 기독교와 연관성을 의식하면서 썼다. 그리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외형상 성경과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루소의 논리의 틀은 구약성경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국민 각 개개인이 절대자와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국민 각 구성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법치주의 마인드는 형성되지 않는다. 이런 법치주의를 유발하는 도덕심은 구약성경이 대부분의 서방국가에 자리했다. 우리에게도 일제 시대 민족의식을 높이는데 구약성경이 자리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도덕경제로서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한 아담스미스는 신학대 구약학 교수였다고 한다. 자유방임주의로서 도덕경제는 스코틀랜드 교회사에서 개신교의 가톨릭 국가주의로부터 분리 차원과 둘도 없이 밀접하다. (반면에, 한국의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자유경제원 측 연구자 논문이나, 한국의 지방자치 논문은 지방자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속신앙에 우겨넣는 사상적 곡학아세가 선명하다!!)


- 도대체, 대한민국을 ‘이승만’ 혼자 세운 것 같이 몰아가며,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체제를 옹호한다면서 건국 과정을 그 이론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 부족 神에 접신적 상태를 지향하는 행동주의. (勤王 친위대 같은) 그래서, 승리하면 자유이고, 패배하면 질곡일까? 이는 씨족주의 고대국가 마인드일 뿐이다. 사회계약주의는 이런 거 하지 말자고 법치주의 토대를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을 영웅 우상으로 멋지게 색칠만하면 사회안정이 된다고 엘리트는 국민여론을 오도한다.


㈏. 근대 정치이슈의 대부분은 유대교 종말론에서 기원된 理性 논리에 연결된다.


몰트만은 자신의 정치신학의 토대가 사회계약주의에 있다고 밝힌다. (이는 한국 민중신학과 태평양보다 더 넓은 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 예수 믿는 지체들이 처음부터 ‘하나이자 여럿’임을(처음부터 교회연합지향적임) 증명하기 위해서 종말론적 소망에 입각된 이성판단을 적용하면서도, 그런 이성판단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십자가 신앙적(고난지향적이며 영광지향적이지 않은)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인권 담론을 예로 들어본다. 그들을 이해하는데에는 그들이 서 있는 지평인 생활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양한 분야의 학제적 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는 공동체적 인격으로서 예수 소망으로 ‘타자’(자기 지향적이 아닌) 지향성이 필요하다.


‘사회적 삼위일체’ =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 ‘시민사회속의 예수 신앙’


반면에 한국의 사회선교는 성도 대중의 ‘感情’을 북돋워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성경에도 대번데번 사용하고 사회과학에도 데번데번 사용하는 게 대세다. 感情으로 참여를 독려하는데, 성서적 계시 신앙도 사회과학 분석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독려하는 사람의 중심주의에서는 타자를 지향하는 이성의 기독교적 사용도 없다. 특정인이 선호하는 자기 동일성 대상을 ‘타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외부인사의 교회 대중을 사용하여 이용하는 정치행사로 드러난다. 이는 무속신앙에 공공신학을 비벼 먹어서 빚어지는 신학적 파행상이다.

- 칼 마르크스가 말하는 고대 공동체는 유대교종말론에서 기인된 서구 인간형 본성이다. 따라서, 독재체제로 전환된 것을 반대한다고 명백히 지적하나 마르크스의 이러한 요소도 부정하긴 어렵다고 바라본 칼 바르트신학은 한국의 냉전적 잣대로 왜곡돼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로서 일정 수준 제대로 작동하는 상황이 있었다 한다면, 칼 바르트 같은 신학으로 드러남은 그런 사회에서는 매우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나, 한국상황의 가치로 신학자체를 난도질하는 자세는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주의는 천도교 후천 개벽 담론으로 혁명론을 바라보고 농촌마을 고대 향수 지향성으로 공산사회 형태를 바라보는 차원이었다. 즉, 유럽 사회주의처럼 시민사회속에서 형성돼 의회마인드에서 제한되는 --일반인들이 견딜만한-- 그런 체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농업 사회 기반으로 공산혁명을 지향한 소련체제와 북한체제와 닮기 쉬웠다. 이는 시민사회 정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체, 소련공산당의 한반도 공작 속에서 형성된 사회주의 문화 때문이다. 다수의 사회주의 문건은 성리학 중화주의 논리와 대동소이하게, 20세기 판 명나라인 소련을 추종하는 보다 더 나은 해석임을 주장하는 선비 붕당형태로 지역마다 분파주의로 존재했다. 공산주의를 미화하는 한국 좌파는 서구 이론을 수입해서 포장하더라도, 자신들의 뿌리에 속하는 유전자는 존재한다. 즉, 공산마을만의 편파적 이기주의를 지향해서 자유민주질서를 해치는 차원이 있다.)


-미국은 화폐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 라 씌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그리스 로마체제(인본주의) 성격은 부정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자고 말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은 다른 의미에서 그리스 로마체제 성격(공산독재체제)에 달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이는 기독교적 집단 인격으로서 ‘교회’의 세상성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초하는 그리스 인본주의/ 유대교/ 기독교 등 어떤 믿음도 한국인에겐 외래 믿음. → 이승만의 『독립정신』에 기록된 기독교 문명으로 서구를 바라보며 배워야 한다는 논리의 정당성


⑷ ‘시민적 공공성’(사회적 삼위일체 신학과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로서 세상참여 교회와 공존가능한)과 ‘무속에 비벼 먹는 한국식(?) 공공성’의 차이


시민적 공공성, 세상참여 서방교회

무속에 비벼 먹는 한국식 공공성

자연계시로서 理性 (합리성)

자연에서 발원된 感情(주관성)

다원주의 지향적 사회협력 관계 (그 매개로서 법치주의 중시)

정착 마을 공동체 지향적 (他마을 배제- 법 감정 희박. = 우덜 마을 無罪, 니네 마을 有罪)

서구 인간형의 보편적 심층 - 무역 사회 친화성

동북아 인간형의 보편적 심층 - 마을별로 조각조각 나뉘고, 그 마을은 씨족장에 인질

㈎ 한국은 강성노조 마을에서 노조 지부장 중심으로 노조(마을)이기주의 - 국가경제 나몰라

   - 대기업사회에 손상감정→노조 마을 피해자주의→노조지부장 중심 단결

㈏ 대기업 경제박사들의 대기업 생존 우선주의 - 근로자 생존 나 몰라

   - 근로자 포퓰리즘에 손상감정 → 경제상류층 피해자주의 → 경제 담론 좌장 중심 단결

㈐ 조선 동아, 등 언론 매체들의 줄 선 정치인 우선주의 - 사회공론 형성 나 몰라

   - 경쟁 매체와 연결된 정치 및 정부에 손상 감정 → 언론사 피해자주의 → 데스크 중심 단결

㈑ 지방자치단체 세수 수입 우선주의 - 사회협력 나 몰라

  - 정부 및 타 지방자치단체에 손상감정 → 특정지방자치단체 피해자(소외)주의→ 지자체 장 중심의 단결

㈓ 언론들의 광고 매출 지상주의 - 사회공론 형성 나 몰라

  - 메이저 언론 및 정부에 손상감정 → 마이너 혼란 피해자주의 → 포털(마이너언론의 천국) 중심 단결


㈔ 민주화 유공자 및 세월호 희생자 중심의 마을이기주의 - 국가적 균형 나 몰라

   - 사회에 손상감정 → 특정 인맥 피해자주의 → 정치에 연결된 특정인 중심의 단결 


공공신학은 ‘하나님의 선교’(미쇼데이)로서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에 제한된 이성의 발현과,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로서 교회공동체 속에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연고 집단의 ‘피해 감정’과 그 연고집단에 파이를 몰아주는 특정인들을 영웅화하는 데에 ‘감정’을 북돋는 상징으로 고정돼 가고 있다.


각각의 마을 중심으로 감정을 북돋게 하고 비용을 받아내며 부작용은 임금탓하는 무당의 장사술이 발전돼, 각 마을에서 국가재정으로 민주화 작업을 치루고 부작용은 대통령 탓하는 식으로 드러난다.


→ 한국 사회는 공공신학이란 것 자체가 오히려 독일 파시즘 체제의 게르만 신화 이용하는 대중심리 조작에 현저하게 닮았다. 무속신앙과 민담 설화 심리학을 이용하여 대중심리를 조작하고, 그것은 대한민국 체제 해체를 지향하며 북한과 연계하는 엘리트와의 연결로 맺어진다.


한국의 교회 목회자들은 사법시험보다 어려운 목사고시를 치루고 선교 현장에 들어선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신학적 오류가 집단적으로 벌어질 때 고치는 발언을 하기 대단히 어렵다. 또,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反보수교회 분위기속에서 민중교회의 오류도 그대로 전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속에서, 신학적 오류를 바로잡기는 대단히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풍성한 지적 성과를 내며 100부 안팎 읽는 학술지에 품위있는 지식정보를 생산하는 대학교수들도, 대중 언론과 결탁된 정치권의 체계적 학술왜곡에 저항하여 뭐라 지적하기 어렵다. (지적하는 순간, 티 안나게 해고가 되는 다양한 장치가 완성돼 있음을 기성세대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알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성적 차원의 공공성 구현으로 보편타당성 대신, 피해자로 손상감정으로 대중 권력을 확보하면 최선이고, 가해자 이미지로 대중권력 확장에 장애가 되면 악이 되는 차원으로 몰린다. 즉, 처음부터 87년 6월 항쟁 때 일반 대중이 기대한 보편적 자유민주 발전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이 선택하는 답안이 정답이 아닐 확률은 높다. 대중언론의 조작질에 안 쏠리는 시민들 보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대중성이란 이유로 움직이게 된다.


⑸ 2015년 광복절은 한국교회가 “말씀보존”도 “성서적 세상참여”도 “애국심”도 아무것도 못하고, 좌파 통일안에 적극 지원하거나(민중교회), 에둘러 간접적인 서포터 역할(94년 김영삼 신한국당 이후 바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노선 주류)을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볼 만한 지점이다.


- 무속신앙에 비벼 먹는 것은 곧 마을주의에 연계되고, 마을주의는 곧 지역성으로 연계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이북 지역이 주는 도교 무속신앙을 믿고 있는 것이란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 북한인권운동은 중요하다. 북한체제를 부정하는 즉시 헌법에 의해 국민자격이 형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인권운동 조차도 ‘지역연고주의’에 입각한 연고주의적 감정이, ‘통전적 선교’로서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로서 공공신학을 시도하려는 의도자체가 없어 보인다. 언제나, 도교 무속신앙적인 감정 몰이로 대중을 모으고, 그 모아지는 대중을 특정인 중심으로 세우는 작업이다. 이는 기독교 예수 신앙과 하등의 상관이 없고, 예수그리스도의 성전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로 보아야 한다. 민족교회 지체로서 왜 처음부터 하나였는가를 통전적 신앙으로 바라보는 공공성의 진척이, 북한인권담론이 95년부터라도 한발자국도 진행되지 못했는가?


공적 신학의 증거 :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붕당 서원정치

한국교회의 악습 : 붕당 서원정치가 현실. 도통 좌장 몰아주기. 수입된 신학은 이를 포장하기 (에큐메니칼에서, 단순한 아시아 마피아에 기독교 신앙이 포장해주는 역할)


⑹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 제헌헌법 성립(건국계약) 무효화를 마침내 주장한다.

- 대학가등 학술집단에 학술지원금으로 연구자들의 반론에 ‘자크’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 박세일씨의 5.31교육개혁 이후 서열화가 대폭 심화돼, 서연고 대학을 장악한 좌파의 추세로 여론이 쏠린다.

-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 국가계약을 무효화를 주장한다. 그 배경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남북연석회의'까지 참여했다가, 그 이후 이승만 정권에 협력했다가 50년대에 반대로 섰던 인맥 집단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그들 중심의 이해관계로서 자신들만 피해자 감정을 주장하는 지평에, 국민 기본권의 온전한 배려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의 공적 신학이 특정 세력에 권력 모아주는 감정의 정치이듯, 공적 신학의 외투를 쓴 통일신학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 이에 이승만 무속영웅화로 응답하는 것이 온당한 판단일까?


㈎ 대한민국 건국 계약은 6.25 전쟁 공산 치하 체험을 하면서 일반 국민은 더욱 확실히 느꼈다. 이는 확정적인 것이다.


㈏ 한번 나라를 팔아먹은 민족이 두 번은 못 팔아먹겠느냐면서 집중적으로 문화선동공작을 하는 것을 믿기도 어렵지만,


㈐ 민주화 이후 무속신앙체제에 덧씌워진 서구 논리는 단 한차례도 정상작동 되지 않았고


㈑ 민주화 이후 체제 설계의 근본적 오류는 군사정부 탓 아니면 보수정부탓으로 몰아간다.


㈒ 대중들은 민주화 시스템의 체제 설계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책임전가를 사실로 믿고,


㈓ 민주화 시스템 전반을 엎을 사회구상력이 부족한 보수관료들은 민주화 시스템을 넘어설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 


건국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세력이 형성된 87년 6월 항쟁에서 대통령직선제 및 박종철 인권을 제외하고, 민주세력이 자기주도적으로 형성된 모든 것은 국민 다수에게 동의된 적 없는 것들.


㈀ 건국 계약 불성립을 주장하며, 민주통일운동을 주장하는 세력의 연고주의인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남북연석회의 사이의 엘리트 마을주의가 보편타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계기는, 87년 6월에 형성됐다.


㈁ 87년 6월의 사회계약은 ‘박종철 인권’ 및 ‘대통령 직선제’ 위에 아무것도 지지한 게 없다. 그 6월의 군중이 문익환 목사 방북 때 반공열기의 대중이자, 현 박근혜 정부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 87년 6월에 6.15 통일안까지 지지됐다는 전제로 형성된 문화세뇌공작은 모두 결격성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모든 이들이 투명하게 알게 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합의만이 유효하다.


⑺ 교회의 세상성을 주장하려면 대한민국 성립의 사회계약주의 해석 위에서야 한다. 결코, 조갑제기자의 징기스칸 영웅주의위에 서면 안된다. 민주팔이 체제를 절대로 못 벗어나게 하는 左로든 右로든 무속질에 국민이 고통 받으며, 그 가운데 특정 엘리트만 편안하게 하려는 과정에 빠지게 된다.


㈎ 구약 성경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서사를 살렸던 한국현대사 해석을 살려야 한다.


㈏ 하나님 나라 공의 구현으로서 국민의 미래 소망을 살려야 한다. 지금 현실로 가장 유력한 것은 사회가 온전히 각종 모순점을 개조하여 ‘사회안정상태’에 접어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무속주의로 과잉 편재된 공간은 엘리트 복지의 과잉, 및 종북혁명에너지의 과잉이다.


- 무속주의의 과잉 편재를 가능하게 하는 조갑제기자의 박정희의 근대화를 ‘산업화’로 고쳐 읽으며, 매 순간 보수진영에서조차, 민족복음화운동의 脫 샤머니즘지향성을 폐기하고 샤머니즘 안에서 50년대처럼 혼란속에 파멸하면서도, 특정 엘리트들만의 환상적인 복지공간 밖을 벗어나지 못하게 고정되고 있다.


 → 실리 문제에 공의구현이 재갈 물리지 않을 만큼, 脫규제로 국가가 없는 빈공간에 서연고 대학 출신 좌파 마피아가 정치 경제에 갑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변화가 절실하다.


㈐ 박정희 체제는 무속신앙 공간으로 ‘악순환’을 권위주의로 막았다. → 무속신앙으로 설계돼 부분공간에서 마을 사람끼리 이익먹고, 부작용은 정부(과거는 임금) 탓하는 논리자체가 황당한 것임을 사회화해야 한다.


㈑ 시민사회가 서로 협력해서 얻어지는 다원성은, 다원주의 가치를 아는 특정인으로 수렴돼서는 안된다. 사실, 다방면에 아는 사람은 드문 연유로 ‘얼굴 이미지’에 도취된 사람들의 헛된 욕망과, 그에 기반한 시스템의 한계성을 접하게 된다.


㈒ 한국사회의 언론은 처음부터 공론장 역할을 포기하고 특정 정치와 줄 선 이익을 추구한다. 한국 교회의 공공신학은 특정 주제에 연결된 특정인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서연고 중심의 학연제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서연고’를 장악한 이념이 이긴다.

→ 이익중심의 서열성을 대폭 해체하던가, 아니면 국가규제를 불가피하게 인정하든가 양자택일이 불가피하다.


㈓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국민을 모아주는 보편 이념으로서 역사서술이 절실하다. 이는 자유민주체제의 헌법원리에 의하며, 조갑제닷컴이나 학술단체협의회 등 특정 단체의 이념의 적용이 아니어야 한다.


<이번 보고서 관련 성경 본문인용>


0-1. 삼위일체


1.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시오 살아 계시고 참되시며 무한하시고 온전하시고 가장 순수한 영이시오 보이지 아니하시고 몸이나 부분들이나 성정이 없으시고 변하지 아니하시고 지대하시며 영원하시고 측량치 못할지며 전능하시고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거룩하시며 가장 자유로우시고 가장 절대적이다.

그의 변하지 않고 가장 의로우신 뜻을 따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에 역사하시며 가장 인애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선과 진리가 풍성하시고, 악과 허물과 죄를 사해주시고 그를 부지런히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며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가장 공의로우시고, 그의 심판은 두려우시며 모든 죄를 미워하시고 죄있는 자를 결코 놓아주시지 아니하신다.

 

2. 하나님은 생명과 영광과 선함과 복이 그 안에 있고 그로 말미암으며 홀로 자존하시며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그가 만드신 피조물의 섬김을 받으시지 않고 자족하시며 피조물들에게로부터 유익을 거두시지 아니하시며 오직 그의 영광을 그들 위해, 그들에게, 그들 안에, 그들로 말미암아 드러내실 뿐이니 이는 하나님은 홀로 만물의 원천이시며 만들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로 돌아감이다. 그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대주재이시오 그 기쁘신 뜻대로 무엇이든 그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그들로 말미암아 하신다.

그의 눈 앞에는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는데, 그의 지식은 무한하고, 무오하며, 피조물에게서 떠나 있음으로 아무것도 그 앞에 알려지지 않음이나 불확실한 것이 없다. 그는 그의 모든 뜻과 모든 역사와 모든 계명에 가장 거룩하시다. 천사들과 사람들과 그 외 모든 만물은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기를 기뻐하신 경배와 봉사와 순종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3. 단일한 신성에는 삼위가 계시는데 본질과 권능과 영원성이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누구로 말미암지 않았고, 낳으신 바 되지도 않았고 나오시지도 않았으며, 성자는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영원히 낳으신 바 되셨으며, 성령은 아머지와 아들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24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김해성⦁남정숙 공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생명의 말씀사, 1983.

*. 페리코레시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0:30)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 10:38)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 14: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


*. 삼위일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요 5:36-37)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요 8:18)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 8:4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 17:5)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6-17)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0-13)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8)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3-14)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 1:2)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딛 3:4-6)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2)

 


0-2. 교회


◆ 참 신자들의 공동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


◆., 교회 비유 : 우리를 교회와 연합시킴으로써 주신 풍성한 특권


- 참 포도나무 가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감람나무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롬 11:17-24)

 

- 곡식 밭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6-9)


-추수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


- 그리스도의 몸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27)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롬 12:4)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 성령의 전과 성도의 교통으로서의 교회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5-11)


◆. 교회의 연합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2-13)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 교회의 목적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엡 2: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19-20)


-예배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6)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2)


- 신자 양육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8)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2-13)


- 세상을 향한 사역 : 전도와 구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요일 3:17)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눅 6:35-36)


- 이와 같은 목적들의 균형을 유지함


 

◆. 교회와 이스라엘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2-1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3: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6-8)


◆. 그리스도와 교회


- 그리스도 = 교회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12)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5)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전 1:13)


- 그리스도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7)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 3:11)


교회 =그리스도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 3:28)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3)





1. 구약에서의 계약


⑴ 신명기


요스튼은 성결 법전이 신명기와 같은 방식, 즉 축복과 저주로 법전이 마무리되는 것이 반드시 신명기의 영향이 아니라, 성결 법전 자체의 내적인 구조와 신학에서 온 것으로 여긴다. 즉,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이스라엘 땅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이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레위기 26장은 농촌을 배경으로 복의 내용이 구성되고 있고, 이에 비해 신명기 28장은 국제 무역 관계도 언급한다. 레위기 26장이 ‘원수의 땅’(레 26:34, 36, 38, 39, 41, 44)에서 벌어질 화를 이야기하는 반면, 신명기 28장은 ‘원수’(신 28:7, 25, 31, 48, 53, 55, 57, 68)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이는 레위기가 땅의 생명성과 거룩성, 신명기가 백성의 거룩함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일반적인 성격에 부합한다. 그러나 레위기와 신명기가 서로 다른 사회 배경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성결 법전이 당시의 주변세계에서 잘 알려진 정치 조약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결 법전은 단지 성소 안에서의 거룩함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세속과 관련된 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제사장 신학의 관점에서 포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김선종, 211-212쪽)


대부분 서구의 학자들은 구약의 계약 사상은 신명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사장 문헌이나 성결 법전이 표방하는 계약 신학은 신명기의 계약 신학을 전제로 포로기 이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에 대해 최근에 성결 법전이 신명기와 다른 신학의 색채를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부터, 성결 법전의 계약 신학이 신명기의 계약신학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종교성을 강조한 연구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 주변 세계의 조약 체결 구조에 비추어 성결 법전을 읽을 때, 그 안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계약의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결 법전은 국제 조약에 무지한 제사장 그룹의 산물이 아닌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성결 법전이 그 종교성과 함께, 정치와 경제 윤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신학의 창조성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거룩함이 바로 사회적 의미로 발현되고 사회적 차원으로 고양되는데, 성결 법전이 표방하는 거룩함은 성소의 울타리를 벗어나, 종교와 사회, 가정과 국가, 정치와 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김선종, 214쪽)


오늘날 공공성이란 개념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예언 활동에 나타나는 경제적 공공성을 탐구하여 이러한 공공성이 ‘토라적 공공성’ 곧 계약법전과 신명기법전의 공공성에 근거한 것임을 규명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공공성이란 그들의 예언활동(하나님 대변활동)이 단지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를 향하여 펼쳐지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는 운명예측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한 공적 언론활동을 한 신언대언자들이었다. 정경적 예언자들은 왕과 왕실을 대변한 제도적 제의중개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유농민의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옹호하는 이스라엘 자유농민 대변인이었다.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에는 많은 신탁대언자들의 활동이 있었으나 특별히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나 고대 근동의 신탁대언자들에 비해 유별한 공공성을 보이고 있는데 그 공공성의 알짬은 경제적 공공성이다. 이 논문은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공공성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토라적 공공성’에 대해서 연구했다. 이 논문의 연구방법은 역사적-주석적, 사회과학적, 그리고 비교문헌학적 연구방법론이다.

이를 위해 첫째, 고대 근동의 예언적 문서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대근동의 신탁대언자들의 예언활동의 특성을 파악하며 둘째, 열왕기서등 성경의 역사서의 연구를 통해 엘리야 등 주전 9세기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공공성과 그 한계를 논했다. 그리고 주전 8세기 예언서인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의 본문들에 대한 주석을 통해 그들의 예언에 나타나는 공공성을 고찰했다. 또한 본 논문은 법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 말하는 공공성 개념에 비추어 주전 8세기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공공성을 규명하고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야말로 오늘날의 공공신학의 원류임을 시사함으로써 학제간 연구에 참여한 셈이다.(한규승, 324-325쪽)


이스라엘 민족은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자신들을 친히 선택하셨으며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았던 인간 역사가운데 전무후무한 독특한 공동체였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양한 언어로 규정하였는데, 그 가운데 폰 라드의 선민(The Chosen People), 언약민(The Covenantal People), 성민(The Holy People)의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특별히 이 셋은 각각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고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련성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가운데 빛나는 경험을 허락하셨다. 장영일 교수는 이스라엘의 신학적 사유의 역사적 기초로 출애굽 및 시내산 계약 사건, 출바벨론, 성전재건 및 계약갱신 사건, 그리고 유월절과 초막절(계약갱신축제) 등을 들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및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자신들만의 소중한 역사를 내면화하고 신학화하여 그들만의 깨달음을 이어갈 수 있었음을 밝힌다.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에서 시민권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사회 계층, 하피루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야웨 하나님의 신비한 도움으로 출애굽 및 시내산 계약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명실 공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로 태어나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신정체제(theocracy)가 출범하게 되고 아울러 이스라엘은 야웨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이 주시는 계명에 성실히 순종하며 열국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것은 오경의 구조 - 모세 이전 시대(창세기)와 모세의 시대(출애굽기-신명기) - 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 모세의 해방과 평등 정신을 자기 시대에서 구체적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던 예언자들은 사회정의 문제, 지도자들에 대한 견책, 식민지 시대의 백성들의 한에 대한 위로, 다시 찾은 고향에서의 제2성전 건축에 얽힌 애환 등, 그들은 그야말로 모두 자기 시대의 아픔과 문제를 온 몸과 마음으로 감싸 안았다.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것의 소중함, 사악한 사회의 구조 악의 위험성,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의 중요성 등 기본적인 삶의 태도와 방법들을 익혀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겠다. 제2이사야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님이시고,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사상을 널리 소개한 예언자이다. 그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닌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팔레스타인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이 아닌,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보편주의적 세계관과 신앙관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제3이사야, 말라기, 요나, 요엘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보편주의를 소리 높여 외쳤던 예언자들이다. 이러한 보편주의 사상은 바벨론 포로 및 출바벨론 사건이라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흐름에 대한 도도한 신학적 반성의 대표적인 열매임에 틀림이 없다. 구약성서의 선교사상은 바로 이런 하나님 통치의 보편주의에 기인한다. 이것은 한편 하나님이 성전에 거하시지만,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출애굽 사건 이후 오랫동안 잊혀 내려왔던 하나님의 자유로우심에 대한 재각성이기도 했다. 제 3이사야나 말라기의 예언은 한마디로 인간은 여호와의 오심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신상욱, 57-58쪽)


29:1의 표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호렙산 계약 외에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이라고 말하며 시작한다. 표제에서 강조되는 것은 ‘언약(covenant)’이다. 호렙산에서 맺은 언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언약을 맺는 이유는 이스라엘은 ‘약속’과 ‘성취’의 경계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앞선 장들의 흐름을 보면 모세는 역사 회고를 통해 유일신 하나님의 인도를 가르치며 그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요구 하였고(1-4장), 약속의 땅에서 실천적으로 지켜야 할, 즉 순종을 위한 율법과 규례, 법도를 가르쳤다(5-28장). 이제 이스라엘은 그 가르침에 따라 살겠다는 일종의 공동체적인 서약을 하며 하나님과 계약을 맺어야 될 때가 된 것이다.

모세의 첫 번째 강론이 그러하였듯이 계약을 맺기 전에 먼저 그것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구술한다(2-8절). 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소집한다(2절). 그리고 출애굽 사건을 ‘현재화’하여 모두가 겪은 일임을 강조한다(2-3절). 4절은 뒤 이어 나오는 광야 40년의 이유를 제시하며 앞 절들과의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출애굽은 하였지만 깨닫는 마음, 보기 위한 눈, 듣기 위한 귀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4절). 여기서 또 현재성을 강조하는 ‘오늘’을 사용하면서 출애굽의 사건이 무슨 의미인지 출애굽 첫 세대뿐만 아니라 현세대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결여됐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은 광야로 갈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수고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와 여호와의 인도를 상징하는 ‘옷이 낡아지지 않음’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음’을 대조한다(5-6절). 따라서 광야시절의 강조점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기 하기 위함이다(6절). 출애굽 때에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기간을 통해 깨닫게(가르치는)하였다는 논리이다. 즉, 광야기간은 훈육과정이었다. 또한 그러한 깨달음(배움)이후에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7-8절). 이러한 논리는 새로운 계약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논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선포, 그리고 초청이 계약체결의 전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언약에 대한 순종을 요구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서언에서 알 수 있는 가르침은 결국 이 계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헤세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0-15절은 이 언약을 체결하는 당사자에 대해 언급한다. 언약체결 당사자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는 언약체결의 특징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현재성의 강조이다. 언약체결에 있어서 ‘오늘’이 반복되고 있다(10, 12, 13, 15절). 언약은 언제나 오늘날의 세대와 맺어진다. 그리고 그 구성원(수령, 지파, 장로, 지도자, 모든 남자, 여자, 유아, 객, 나무 패는 자, 물 긷는 자)에 대해 세밀하게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모든 구성원이 언약체결 당사자임을 나타낸다. 둘째, 영속성의 강조이다. 15절은 언약체결의 당사자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 즉 미래의 구성원까지 확장한다. 계약 공동체의 구성원을 포괄적으로 설정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나무 패는 자, 물 긷는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등장하는 자들이다(수 9:21, 23, 27). 이들에 대한 언급은 계약의 영속성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수단을 통하여 이 계약은 이 말씀들을 읽고 그것의 명령을 들을 후세대들까지도 열려있다. 따라서 현재에 이루어지는 모압 언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모든 미래의 세대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새 언약에 대한 가르침 뒤에 본격적인 계약 체결에 돌입한다. 먼저 계약의 기본조항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16-19절). 십계명과 같은 조항들의 목록이 없다할지라도, 신명기의 으뜸 조항을 드러내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애굽과 광야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것(16절), 우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17절)과 이방신 섬김에 대한 염려(18절)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기본조항이 가리키는 것은 신명기의 으뜸 조항인 ‘유일신 하나님과 그에 대한 배타적인 예배’이다.(김찬진, 69-71쪽)


신명기 이전의 언약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족장(아브라함) 언약과 호렙산 언약이다. 족장언약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히브리민족이 되었는지 나타내는 것이라면(창 12:2), 호렙산 언약은 히브리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 되었는지를 나타내준다(출19:6). 족장언약이 호렙산에서 갱신되어 나타나듯 하나님의 언약은 새로운 상황과 시대에 맞춰 갱신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신명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도 이제 새 상황에 접어들게 되었다. 3.1에서 밝혔듯이 모압 땅은 경계선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땅이다. 즉, 광야와 약속의 땅 사이의 경계지점이다. 언약의 당사자들이 출애굽세대에서 자녀세대로 바뀌었고, 삶의 현장이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바뀔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언약갱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명기는 호렙산 언약을 모압 언약으로 갱신한다. 하지만 모세는 먼저 호렙산 언약의 현재성을 강조하며 호렙산 언약이 그 당시 세대의 언약임을 강조했다(5:1-5). 이러한 특징은 언약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단어(오늘, 이제, 여기)와 일인칭의 사용(우리, 너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밝혔다. 호렙산 언약을 현재화시킴으로써 호렙산 언약은 영속적인 속박력을 가르쳤다. 이스라엘의 자녀세대가 언약의 당사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호렙산 언약의 계승은 중요하다. 그 뒤 필요한 것이 새로운 언약의 체결이다(29:1). 갱신된 새로운 언약을 새로운 세대와 계약을 통해 체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압 언약이다. 특히 모압 언약은 호렙산 언약의 총체적 실패자들을 다시 한 번 언약관계 안에 초청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것은 죄와 불순종을 초극하는 언약이며 언약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표현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관계 맺는 근거이자 이유가 된다.

모세는 언약의 계승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는다. 특히 이 계승에 대한 관심은 5:2-3과 29:14-15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4.3.4에서 밝혔듯이 호렙산 계약을 오늘날 이루어지는 계약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출애굽과 호렙산의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현재의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임을 가르친다. 모압 언약 또한 모든 이스라엘, 즉 현세대와 앞으로 올 모든 세대와 맺은 것임을 가르친다. 따라서 이 언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결국 언약의 현재화와 계승을 통해 이스라엘은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언약 속에 종속됨을 가르친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결속 관계를 명확히 표현하는 개념이 바로 언약이다.(김찬진, 80-81쪽)


『계약법전』과 『신명기 법전』은 동일하면서도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신명기 법전』보다 앞선 『계약법전』에서 노예법을 다루고 있었지만 당시 지도층이나 부유층 사람들은 잘 지키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였음을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비판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계약법전』과 『신명기 법전』이 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첫째, 주전 8세기의 예언자들의 비판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지도층이나 부유층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법을 잘 지키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약자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하면서 지도층과 부유층의 억압과 착취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지도층과 부유층의 사람들도 야훼 하나님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이 외치는 비판을 듣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이행했던 것을 돌이켜 야훼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계약법전』과 『신명기 법전』의 차이점을 보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신명기 개혁 운동의 중심에 있는 암 하아레츠와 지적(知的)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집단은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암몬에 맞서는 왕실 반란을 통하여 왕위계승에 관여하였고,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시켰다. 이 암 하아레츠는 중간 계층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토지를 소유한 농부들로서,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또한 앗수르에 의존하던 므낫세의 아들이 암살당함으로써 생겨난 정치적인 불안정을 국왕 시해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예방하였고, 북왕국을 파멸시킨 왕실내의 경쟁적인 정치 집단들의 권력 투쟁을 방지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제적인 권력관계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기회를 국가 갱신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을 후원한 서기관 사반과 대제사장 힐기야와 같은 지적(知的)집단이 신명기적 개혁 입법의 개념 정립과 법전 편찬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왕의 후견인으로서 개혁적인 이념 노선을 따라 요시야왕을 교육시키고, 늙을 때까지 요시야를 위해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상담 해주었을지도 모른다.(박영선, 78-79쪽)


오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약자에 대한 사랑은 세 개의 법전을 통해 사회적으로 종교적 법들에 의해 다스려 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늘 가까이 함께 계심을 스스로 나타나셨다. 약자에 대한 그들의 삶의 일부분과 경제적인 것, 보상적인 것, 결혼에 관한 부분가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경에 나타난 약자보호 정신은 애굽에서 압제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노예생활에서 구해 주신 구속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사로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오경은 철저하게 계약공동체의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계약체 구성원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십계명과 그 외의 법전들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과 이스라엘의 법도들에 나타난 정신은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현제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희년을 통해 노예와 같은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다시금 자유인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다. 여자 상족 제도인 슬로브핫의 딸를 통해 약자에 위치해 있는 여자들을 보호하였다. 이혼에 관한 법을 통해 억압에서 좀 더 자유롭게 하였다. 사회적 약자로 전략해 버린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 형사취수 관습을 통해 그의 재산과 인권을 보호 받게 하셨다.

도피성 제도를 두어 실수로 사람을 살인한 자는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보호하셨다. 그런 사람은 살인 피의자로서 불안하고 약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호하는 제도를 두어 약자의 인권에도 관심을 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오경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폭넓고 깊게 나타내 주셨다. 중동의 지푸라기 같은 존재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고,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구약의 창대한 이스라엘민족을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자체 내에서 고아, 과부, 객(게르)과 같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세밀한 부분까지 법을 통해 보호해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대상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신 것은 그 경제적 부요를 자신의 것으로만 여기며 삶을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요 단지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이 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적 부요는 청기지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그리스도인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신앙적인 논리이다. 우리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와 부한자와 권력자와 똑같은 백성이기에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심상래, 48-49쪽)


고대 이스라엘의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토라’에 관한 개념 정의이다. 성서에서 ‘율법’이라는 말로 번역된 단어가 히브리어로 ‘토라’이지만, 이 단어의 개념은 영어의 ‘법’(law)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law’가 주로 입법부의 활동과 관련하여 범죄, 처벌, 법정, 소송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히브리어 토라는 주로 ‘교훈’이나 ‘가르침’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훈이나 가르침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처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훈이 법적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라”의 구성에 관해서, 박경철은 토라가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인 이른바 모세 오경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본다. 오경이 비록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경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개별적인 책들이 아니라, 한 권으로 묶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섯 권으로써의 오경이 아니라, 한 권으로써의 토라로 보고 있다.

한편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토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하시겠다는 자신의 뜻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수차례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이미 기존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시려고 결정한 것은 결코 그들이 법을 철저히 지켜서가 아니라, 그들의 신분,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라는 자격 때문이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은 결코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율법이 주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열국의 모델이자 빛이 되는 삶을 통해 열국 앞에 나아가며 열국은 그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배우기 위해 나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수여 받은 율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족장시대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지는 것이며,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율례와 계명 등의 모든 가르침은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살면서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법으로써 ‘토라’이며, 좁혀 말하면 ‘토라의 법전’이다. 이 토라의 법전에 이른바 ‘계약법전(출 20:22-23:33)’과 ‘성결법전(레 17-26장)’이 들어 있으며, 시내산(호렙)에서 받은 ‘토라’에 대한 회상과 함께 다시 한 번 모세의 입으로 전해진 두 번째(Deutero) 법률 모음집이 곧 ‘신명기법전(신 12-26장)’이다.(천광우, 34-35쪽)


구약성서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두드러진 모습중 하나가 바로 약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다. 신명기 10장 18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하나님을 절대적인 약자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어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또 이스라엘 하나님은 약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신다. 이들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나 고난 중에 부르짖을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이었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네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 지라”(출22:21-23).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없고 압제당한 자들을 관심 있게 보시고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라 표현하였다(시 68:5). 잠언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 14:31)고 말한다. 가난한자를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을 같은 맥락에 놓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약자들의 태도에 대한 사회 윤리적인 문제는 신학적이요, 신앙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약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에도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하비루’의 노예생활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민족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이시다.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출 2:23하)이 같은 말씀은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출 6:5, 3:7, 8)또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고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애굽 사람들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신26:6-7)

이 같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것은 야훼의 약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심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배경은 야훼를 섬기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평등공동체를 이루어나가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가나안(땅)의 주인은 야훼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레25:23).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며, 야훼는 모든 땅을 소유하며, 모든 인간들 위에 평등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신이 되었다. 그러나 장착 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약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보호하신다.(최원재, 54-55쪽)


출애굽 직후에 시내산에서 맺은 이 계약은 40년 후 모압 평지에서 다시 갱신되어 백성들에게 재 선포되고 있다. 그 내용은 신명기 29장에 기록된 ‘세겜 계약’이다. 이 ‘세겜 계약’은 시내산 계약과 같은 것이지만 재 선포되면서 몇 가지 대조되는 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세겜 계약이 시내산 계약에는 없는 ‘축복과 저주’라는 구문을 신명기 28장에 내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고대의 다른 나라들의 조약구문에는 없는 계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특별한 용서에 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처음 체결된 시내산 계약에는 저주 구문이 없고, 나중에 갱신된 세겜 계약에는 ‘은혜’라는 개념이 보강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시내산 계약 외에 또 하나의 계약이 세워져야 했는가? 왜 주신 계약에 ‘덧붙여진’ 계약의 말씀이 필요했는가? 시내산 계약을 반복하는 구절인 신명기 6:5을 살펴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문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시내산 계약에 덧붙여진 계약의 말씀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라는 약속을 주셨다. 즉 명령체로 되어 있는 쉐마를 하나님의 약속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약속을 하나님 스스로 지켜 가시겠다는 은혜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민족으로 성장한 이스라엘은 시내산 계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이 옹립되자 그 왕인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겠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는 영원한 위를 확증하는 계약을 체결하신다. 다윗의 약속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주어졌다(삼하 7:12-17). 이 계약은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과 거의 흡사 하지만 이 계약에는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땅과 더불어 그 지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다윗의 집과 왕위가 영원히 보전될 것을 약속하신다(삼하 7:16). 삼하 7장에서 다윗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의 면밀한 관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에게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리라(11절)”고 말씀하신다. 이것의 의미는 백향수궁에 살고 있는 다윗에게 다시 왕궁을 지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을 위해 “영원한 다윗의 왕조”를 주권적으로 세우시겠다는 의미이다.(김영숙, 23-24쪽)


‘여호와를 알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옛 계약의 체제에서는 여호와를 알라는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구절은 호세아의 주제이기도 하다(호 6:6).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못했으며(4:1, 6, 11)이러한 결핍이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호세아가 말하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계약관계에서 본질적인 요소였던 지식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유일한 종주인 야웨를 인정하고 그에게 충실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계약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 6:20-25에서 부모가 또는 제사장들에 의해 가르쳐져야 하는 지식, 즉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하나님이 백성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에 관한 지식으로 계약 전승에 관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이 없을 때 계약의 율법들을 어기게 될 것이다. 호세아는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책망한다.

또한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전인적인 응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야웨를 안다는 것은 야웨의 요구에 응답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도움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렘 22:16). 야웨에 대한 이러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계약은 파기 될 것이나 마지막 날 하나님의 뜻이 승리를 거둘 때 계약은 회복되고 이스라엘은 야웨를 알게 될 것이다(호 2:20). 호세아가 말하는 마지막 날은 예레미야가 말하는 ‘새 계약’의 시대로서 누군가에 의해 가르쳐지는 지식이 아니라 신적인 힘에 의해서 개인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을 통하여 알게 됨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가르침의 반복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새로운 상황 속에서 존재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의 가르침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계약의 관계 유지를 일깨우기 위해 더 이상의 권고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김영숙, 88-89쪽)



⑵ 계약을 자르다


고대의 관습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구약성경에서도 언약 체결 의식에서 “희생 동물을 둘로 쪼개는 관습”이 있었으며 잘려진 희생 동물 사이를 언약당사자들이 지나가는 의식이 뒤따랐던 것을 보게 된다. 이 때 사용된 용어가 카라트 베리트로서 이 문맥의 의미는 “언약을 자른다”로 번역된다. 따라서 베리트는 “언약”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다. 고대 국가에서 언약 체결 후 잘려진 짐승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의식은 “약속을 깨는 자가 죽임을 당한 희생 동물과 같이 취급된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A와 B라는 언약 당사자 사이에 희생 동물을 자름으로서 언약을 분명히 했다.

d. 계약(언약)의 정의

“계약을 자른다”는 성경적 구절은 계약을 수립하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계약 관계를 수립하는 데 표현되는 술어의 전체적인 개념은 삶과 죽음에의 서원이다. 계약이란 “피로 세운 약정” 또는 “삶과 죽음의 약정”인 것이다.

“피의 약정”이란 말은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히 9:22)는 성경의 강조점과도 잘 부합된다. 성경에 나타난 피의 의미는 잔인하거나 살벌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생명이란 피 속에 있는 것이며(레17:11), 피흘림은 생명에 있어서 심판을 나타낸다.

“피로 맺은 약정” 또는 “삶과 죽음의 약정”이라는 구절은 계약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결속의 궁극성을 표현한다. 계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은 결코 인간과 우연한 혹은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신다. 대신 그가 세우신 약정의 의미는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문제를 포함한다.

성경의 하나님 계약에는 흥정이나 교환 또는 교섭이 있을 수 없다. 천지의 절대적인 주가 계약의 말을 명령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은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의 약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장백준, 6-7쪽)


멘덴홀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통일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계약에 근거했으며, 왕국 시대 동안 예언자들이 예언자들의 근본 사상을 간직해 왔고, 그들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진정한 계약 정신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멘덴홀은 이스라엘 법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그 법은 고대 셈족의 민법 전승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특유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 법은 이스라엘과 그의 하나님간의 종교적 관계를 정의하는 데서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 계약을 맺는다는 표현은 계약을 자르다(카라트 브리트) 로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의 브리트(berith)는 쇠고랑이란 의미의 아카디안어 biritu에서 나왔다고 한다.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쇠고랑을 함께 함으로 계약 당사자간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것이다. 계약 개념은 원래 책임(Verpflichtung) 을 의미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그들의 역사에 대한 전문화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나안 정복의 이야기와 사시 시대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발견한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것은 그들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존속하고, 상호간에 그리고 언약의 하나님과의 사이에 진실된 한에 있어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어 나갔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그들이 이기적 고립 상태에서 살거나, 언약의 종교를 부정하였을 때에는 굴욕을 당하였다. 시내 반도에서 그들이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배웠다.(노창용, 73쪽)


앞서 구약의 ‘의’의 개념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구약성경에 있어 ‘의’라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관계의 개념이 몹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간의 관계는 ‘언약’을 기초로 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언약(covenant)은 ‘베리트’로 표현되며, 신구약을 통틀어 298번이 사용되었다. 언약의 개념에 대해 로벗슨(O. Palmer Robertson)은 히브리어로 언약을 세운다는 것에 ‘자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점을 들어, 언약을 주권적으로 시행되는 피로 맺는 계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르는 행동’ 그 자체가 언약은 아니지만 이것은 언약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엄숙한 언약의 체결 과정에서 잘려지는 짐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약의 특징으로 그라아프(S. G. De Graaf)는 언약은 양편 사이의 계약이나 협정과 같은 것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언약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특징으로 이러한 언약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접근하신다는 점을 들고 있다.

구약성경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언약’이라는 단어는 이른바 ‘노아언약’으로 불리는 것으로 창세기 6장에서야 비로서 등장하지만 아더(Kay Arthur)는 이미 창조 때로 그것을 소급해 올라간다. 바로 창조 후의 안식일과 결혼, 노동 등이 창조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라아프 역시도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창조된 것 자체가 은총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계속해서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의 시험과 단련이며, 또한 하와의 창조를 통해 결혼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최태운, 19-20쪽)


‘베리트’라는 말은 그 어원에 대해 견해가 다양하다. 그 견해에 따라서도 또한 다양한 의미들로 나타나는데, 학자들 사이에는 그 의미를 네 가지 정도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로는 아카드어 ‘비리투’에서 왔다는 견해로, 그 의미는 “걸쇠 등으로 고정시키다,” “족쇄를 채우다,” 라는 의미이며, 둘째로는 아카드어에 ‘비리트’로부터 왔다는 견해가 있는데, “~사이에”라는 의미로 쓰여진다. 셋째로는 히브리어 어근인 ‘바라흐’(“먹다”)로부터 왔다는 설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히브리어의 어근인 “보다,” “선별하다” 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바라흐’에서 왔다는 견해 등 이렇게 네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히브리어 베리트가 구약 성서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법적인 표현으로는 가장 대표적으로 관용적인 표현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구약에서 80번 정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계약을 자르다”라는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계약을 자르다”라는 말은 원래는 제사의식과 관련된 표현이다. 즉, 다시 말하면, 제의적인 의식에 있어서 사용되던 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 문장 자체로만 본다면,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관용표현이라는 것의 뜻을 풀이해 보자면, 이 표현 안에 있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짐으로써 서로가 독립적으로 쓰일 때의 원 뜻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계약을 자르다”라는 이 말은 창세기 15장 5-18절에 나오는 제의에서 볼 수 있듯이, “계약자체를 자른다.”라고 하기 보다는 제사에 쓰인, 제물, “송아지”등을 잘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제임스 바에 의하면, “계약”이라는 것이 구약에서 등장할 때에는 이 단어의 의미는 매우 폭 넓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중략) 히브리어 베리트가 조약이나 계약, 의무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은 또한 이 단어가 정치적인 부분과의 연관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는 계약의 의미를 어원적인 차원에서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는 “시내산 계약”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와 같은 시내산 계약의 특징과 그와 관련된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의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그것은 아모스가 속해있는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선포 메세지를 이해하는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정은광, 11-12쪽)


◆. 혼인 비유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계약은 창조를 위한 내적인 기초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계약을 맺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은 계약을 목표로 하였고, 계약 때문에 세상을 창조하신다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은 계약을 자주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에 비유하여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서 남녀의 혼인 계약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맺는 계약의 전망 안에서 고양되게 되었다. 혼인은 계약의 현현이 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계약의 ‘표징’이 된다.(호세 1장,3장; 예레 2장, 3장, 31장; 에제 16장,23장; 이사54장, 62장) 즉 예언서의 종말론에서는 인간 부부가 하느님과 이스라엘백성 사이의 관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특이한 관점에서 고찰된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부부관계로 이해되어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멀어지지만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기다리시고 마침내 새로이 완전한 부부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예언서의 종말론은 복원된 낙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창녀와의 세속의 실재 혼인을 통한 호소에 의해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은총의 친교를 표현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혼인관계로 나타나며,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관계를 애정관계로 표현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호세 2,18)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사랑하신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오가는 사랑에 큰 비중을 두었다. 예레미야 역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관계로 묘사하고 있다.“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예레 2,2) 그러나 신부인 이스라엘은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간음을 저지름에 따라 신랑인 하느님을 배반했다. “내가 보니 배반자 이스라엘이 온갖 간음을 저질렀기에, 나는 그를 내보내며 이혼장을 그에게 들려주었다.”(예레 3,8)

호세아와 예레미야의 혼인에 대한 표상은 에제키엘서 안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하느님과 혼인한 신부인 예루살렘의 간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16장과 23장에 잘 드러난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실재하는 ‘혼인’이라는 개념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비유하여 그 관계를 눈으로 보듯이 그려내고 있다.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비유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조재근, 23-24쪽)

 

이스라엘 역사상 출애굽 후 광야에서 레위인들의 역할은 여호와의 성막을 지키고 제의를 주관하는 일을(민 3-4;8;18), 가나안 진군 시에는 군사적 임무를 (수 3:4;8:30-35), 이스라엘의 왕정 시에는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의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나타난다(대하 17:7-9).이들에게 거주용 성읍을 주었다는 레위성읍 목록은 그 기원은 야훼의 명을 받은 모세에게서 그리고 그 레위성읍 목록에 있는 성읍들의 완전한 점령 지배 시기는 고고학적으로만 본다면 주전 8세기까지로 내려가야만 가능하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가나안 점령시대로부터 다윗 솔로몬의 통치 시에서 히스기야와 므낫세 통치 시 그리고 심지어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의 이상을 담고 있는 것 등으로 그 주장들이 다양하다.

또한 레위인들에게 성소를 지키는 일은 광야에서 모세 때로부터 시작한다. 이런 임무를 맡은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실제로 야훼의 왕국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야훼 왕국에서 군사적 야훼주의를 가진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흩어지게 된 것은 레위성읍을 지명하여 주는 제도에 기초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제도가 여호수아 21장 2절에서는 모세의 권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다. 여호수아 3-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나, 여호수아 8장 30-35절에 세겜 언약을 맺을 때에 레위인의 의무를 가르치기 위해 군사적인 의무를 지닌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땅 전역으로 흩어져야만 했다는 것이다.(허성군, 187쪽)

 

혼인은 “관습 또는 법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계약에 의해 규정된 하나의 사회적 제도”이기도 하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혼인을 “혼인 서약 또는 신고라는 일정한 법률 행위를 통하여 성립되며, 사회복지는 물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특정한 법률적 규범이 요청되는 제도”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혼인은 호적법에 정하여진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성립된다(민법 812조 1항). 혼인 당사자는 혼인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합법적인 성적, 경제적, 사회적 결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혼인도 있으며, 부부 사이의 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혼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혼인을 남녀 사이의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계약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혼인을 계약으로 이해한다면, 만약 계약이 준수되지 않았다거나 앞으로 더 이상 준수되지 않을 때에는 그 계약이 얼마든지 해약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민족의 혼례문화 중에서 특히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은 혼례가 거행되기 전에 예비 신랑과 신부는 혼인계약서에 서약을 해야 하는데,혼인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남녀는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계약으로서의 혼인은 신부대금을 지불하는 관습에 드러난다. 신부대금을 지불하는 관습은 혼례식을 거행하기에 앞서서 신랑의 친족집단에게 신부에 대한 모든 권리가 넘어가고, 그 대가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재화나 돈이 신부가 본래 속한 친족집단에 전달되는 친족집단 간의 계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부대금을 지불하는 관습은 주로 원시농경사회와 집약농경사회, 그리고 목축사회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관습이다. 사회구조가 변화된 오늘 날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신부대금 제도는 행해지고 있다. 농경사회와 목축사회에서는 노동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부대금을 지불하는 것은 신부를 낳아 기른 친족집단이 신부의 출산력은 물론 신부와 신부의 노동력을 잃게 되는데 대해, 이를 얻게 되는 신랑의 친족집단이 보상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혼인할 때 신부의 부모가 신랑 혹은 신랑가족에게 바치는 지참금 제도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를 남자에게 바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부부가 이혼할 경우에 신부의 생활 안정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신부들의 지참금 제도는 신부대금 제도가 존재하는 사회와는 다른 경제체계를 가진 사회의 산물이다. 신부 지참금 제도는 경작지가 고정된 농업과 봉건적인 경제관계에 기초한 경제체계를 가진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조재근, 8-9쪽)


⑶ 구원 중심의 종말론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기초하여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에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에 의해 선민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때, 특별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역사 속에 개입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위대한 구원의 날로 인식되어졌다. 곧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위해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싸우시는 ‘여호와의 전쟁의 날’이요, 심판을 행하시는 날로 받아들여졌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날을 창조, 보존 그리고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역사 궤도 속에서 이해하였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에 대적하는 인간의 죄는 가차 없이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 심판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적들 위에 임하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심판으로써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우주, 온 세상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종말론적 심판이다. 반면에 이와 같은 심판의 선포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희망이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 즉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되어 다윗 가의 통치 밑에서 영원히 보존된다는 미래에의 전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원의 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고소해온 바, 자기중심적인 사상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해석되고 있는데 곧 하나님 편에서 당신의 의를 실현시킨다는 의미에서의 구원의 개념이다. 여호와의 날에 임하는 이와 같은 심판과 구원행위는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요 역사의 주되심을 밝혀주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요 그의 강권적 주권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이에 공의의 하나님이시오,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자에게 도리어 이스라엘의 대적 자가 되신 것이다. 곧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멸하시는 ‘여호와의 날’이 이제는 도리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날이 된 것이다.

이에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은 자신들의 하나님이라는 독점성과 ‘여호와께서 자신들만을 위해 싸우신다.’는 여호와의 전쟁을 굳게 믿고 제멋대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도리어 여호와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어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아닌 언약을 파기한 자신의 백성들을 대적하시는 전쟁을 치르시는 날이 ‘여호와의 날’임을 선포한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날로 대적들을 진멸하시는 심판의 날이다. 이 날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언약을 파기한 선민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심판(징계)하시는 날로 이스라엘의 ‘심판(징계)’의 날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는 ‘언약 파기’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은 시내산 언약시 체결된 여호와의 율법에 불순종하였고 더 나아가 ‘우상 숭배’를 자행함으로 여호와의 분노를 일으켰다. 이에 이사야는 백성들이 율 법을 어긴 일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파기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하였음을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곽동삭, 62-63쪽)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에 처한 경우, 하느님은 당신의 손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기에서 구해주셨고, 이 백성은 이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였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하느님 구원의 체험은 유배이후 초월적인 하느님과 세상에서 겪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간격을 체험하면서, 점차 분명하게 신적 중재 형태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변화되어 간다. 이스라엘에게 다가온 심각한 재난들,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패망이나 바빌로니아 유배 등은 더욱더 메시아 대망과 종말론적 희망의 열의를 강하게 일으키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절망적인 유배상황을 체험하면서 당연히 인간적인 구원자, 하느님의 사자라는 메시아적 희망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세상 민족들 사이에서 구원을 이루는 중심으로, 백성들을 위한 축복을 전달하는 임무로 해석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역사적인 신앙체험 안에 신적인 중재를 소망하게 되고 이 열망은 마침내 메시아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나아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임무가 재해석되는데,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단순히 세상 안에서 주님 현존의 증거가 아니라, 세상 전체의 구원을 이루는 도구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의 몫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구약성경의 이러한 계약사상은 신약시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되게 되는 모습으로 바뀌는데, 주님의 영원한 약속에 대한 이스라엘 희망의 성취라는 차원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하느님 백성은 더 이상 민족적, 혈통적이 아니라 신앙적, 영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지향하시는 구원중심의 종말론적 역사관이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새 구원이 도래할 ‘마지막 때’를 선포하였고, 이때에는 ‘완전한 새 백성’을 만나게 되리라고 선포한다. 여기서 이 새 백성도 구약의 백성과 같이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정화시키시고 성령을 보내시며(에제36, 26), 악인을 분리시키고 겸손하고 의로운 ‘남은 자들’을 보존하신다(이사 10,20; 욥 3,5 참조).

이 새 백성과 새 계약을 맺으시는(예레 31,31; 에제 37,26 참조) 하느님은 이제 백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룩한 백성(이사 62,12), 주님의 신부(호세 2,21), 포도밭(이사 5,1; 에제 2,21 참조)이라 불리 울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백성이 이스라엘과 일치하며(이사 2,2),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나눠 받게 되며(예레 4, 2), 계약에 참여하고, 주님의 종인 중재자에게 약속된 축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이사 42, 6). 그래서 “새 백성은 이스라엘의 혈족을 초월하는 것으로 알아듣게 되어 백성 개념은 보편성을 띠게된다.”(김종민, 16-17쪽)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 구원이 이룩되는 ‘구원사’(救援史)를 가진 백성이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어느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하게 하고 완성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느님이 인간 구원의 경륜을 펴시는 도구로 선택했던 이스라엘이 구약에서 하느님의 백성이었기에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인정되어 구약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인류구원의 구체적 실현은 하나의 구원 공동체의 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이끄심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하느님 백성은 하나의 역사적인 백성 공동체 안에서 인간적, 사회적, 민족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계약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의 집안과 유다의 집안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내 법을 주어 그들 마음속에 두고 그들 가슴속에 기록해 놓으리니,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예레31, 31-34) 구세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맺으실 새로운 계약은 옛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전 인류를 상대로 하는 구원의 계약이었다. 모든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의 백성으로 만드는 이 구원의 새 계약은 전인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의 제사를 바치심으로 완결되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를 따르고 믿는 모든 이는 구원의 계약에 참여하는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새로운 백성의 머리이시다. 이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듯이 새로운 백성도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직 백성이 되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하느님과 구체적이고도 생명력 있는 만남을 계속해야 하고 이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과 의지 안에서 이 부르심의 목적인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되는 구원을 위한 봉사가 바로 그것이다.(김종민, 73-74쪽)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를 거치면서 점점 발전하게 되는데, 이루어지지 않는 ‘주의 날’에 대한 기대와 절망 사이에서 유대인들의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절망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져가고 하나님의 왕국이 곧 이 땅에 도래한다는 종말론적인 사상이 유행하게 된다.

특히 다니엘서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그 나라가 하늘의 구름 속에서 갑자기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다가올 주의 날에 하나님은 지상 왕국을 심판하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의 행복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능력과 주권을 보여주기 위해서 심판과 진노로 간섭하실 것이다. 다니엘서에서 세계는 하나님이 아닌 흉포한 괴물들이 통치하는 영역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 세력에 의해 고통 받고 압제받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만하게 서있는 이 지상왕국을 곧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지금이 아닌 장차 올 미래의 구원의 상징으로 주어졌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개념은 지상의 역사적 실체라기보다 미래의 삶의 소망이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었고 종말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게 되었다. 이 세계는 악이 지배하며 악한 자가 독점하여 흑암의 세력이 만연한 악마의 나라가 곧 그 당시의 현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은 오직 인내로써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여야 하고 주의 나라가 임하심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소망 중에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모든 시련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을 지킨 거룩한 백성은 종말에 이르러 하나님 나라에 참예할 수 있으며, 지혜로운 교사들은 그 나라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승리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날은 곧 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성은 신약에 들어와 세례요한과 예수가 선포하는 말씀 속에서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세례요한과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하여 불순종한 죄인들을 심판할 것임을 선포하며 유대인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공관복음서를 읽어보면 어디를 가든지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그것을 극히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화과나무 잎의 비유나 제자들을 파송할 때 하신 말씀(막1:15; 마10:7; 눅10:9)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가 임박했음을 선포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선포 속에서 현재성을 띠며(눅 16:16; 마11:12), 실재한다.(눅 17:21-22) 그 나라의 권능은 예수의 사역 안에서 현재화되며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요구하는 것이 드러난다. 예수의 전 사역에서 동일하게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중심”이다. 예수의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님 중심적 성격은 그 나라의 임함이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행위에 의존함을 시사한다.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예수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할 자는 그날이 올 때까지 악한 세상과 함께 인내하며 살아야할 것을 강조한다.(마13:24-30; 24:12-13)(엄주현, 67-68쪽)


결국 계약법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이 계약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가지고 계신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이 계약법전에 대한 내용은 출애굽기 20∼23장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는데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 그래서 이 사회에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출애굽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또 하나는 이방민족의 압제로부터 해방이다. 여기서 출애굽사건이 섬김과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들의 섬김의 대상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시기 위해서 출애굽 시키신다. 위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백성들의 고통과 굴종의 왜곡된 섬김을 바로 고치시려고 출애굽 시키신다. 즉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을 올바른 섬김의 상황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한 구원과 봉사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며, 언약 백성간의 섬김을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이 하나님과의 다짐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두 가지 내용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섬김은 하나님(수직)과 이웃(수평)에게 향하는 수직과 수평구조의 결합을 통해서 온전한 섬김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러한 섬김의 모습이 하나님 원하시는 출애굽의 목적이며 한편으로는 하나님 백성의 봉사의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출애굽의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언약백성’된 우리들에게도 출애굽의 정신이 이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새로운 사회의 지향이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부르신 목적(구원과 봉사)은 올바른 섬김, 즉 하나님 섬김과 이웃 섬김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섬김은 ‘아바드’의 의미에서처럼 모든 포괄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 된 도리를 순종으로 표출하는 것이고 이웃을 섬기는 것은 불의의 압제에서 서로 섬기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평등한 사회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이 임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정신에 나타난 섬김은 언약백성의 봉사의무를 제시하며, 아울러 섬김의 모습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언약백성간의 서로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기명언, 20-21쪽)


십계명은 ‘열 마디 말’보다 많은 말들이 있다.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 가운데 ‘잡족’(출 12:38)과 ‘섞여 사는 무리들’(민 11:4)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이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시 규정과 또한 새로운 규합력이 필요했다.(출 19:6) 부버(M. Buber)는 당시 사항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모세는 막 형성된 완고한 유목민 무리들이 자유가 없던 상태로부터 많은 문제를 내포한 자유의 상태에로 이동해가는 동안 그 무리들의 지도자였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 받은 이후 시대에 대한 구약성서의 설명에 의하면, 시내산 계약은 이 같은 중대한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볼 것 같으면 노예들의 해방자이신 여호와의 의지는 모세를 통해 부름을 받고 또 이집트의 억압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에게 직접 선포되고 있다. 계약이 이제는 해방된 자들에게 여호와의 지배하에 그들 생활의 근거로 주어지고 있다. 출 20장 2절에 나오는 계명들에 대한 서론은 이 계명들을 주신 여호와의 정체를 밝혀 주고 있으며 또한 여호와와 이스라엘간의 관계를 확립시켜준 구원의 행동들에 대한 역사를 요약해 주고 있다. “최초의 계명은 해방시켜 주신 분과 해방 받은 자들 간의 관계가 배타적인 관계를 곧 다른 신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구속적 관계임을 선포하고 있다.”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나 , ‘너’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

본 절인 둘째 계명이 여호와 자신이 계시에 대한 이스라엘 반응과 태도를 언급하고 있는 고로 그 의미는 첫째 계명과 셋째 계명과 불가분리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해야 할 신앙의 대상으로 우상과 형상을 지적하고 있다. 전자는 본질적 의미가 강하고 후자는 그 본질을 표시하는 형상에 대한 것을 말한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절하지 말라 그리고 섬기지 말라 하였다.

바울은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5).시편 기자는 이런 우상을 만드는 자와 섬기는 자는 똑같이 어리석은 자이며 하나님께 반역을 행하는 것이라 했다.(시 115:8;135:18)예배의 대상을 절대로 어떤 물건으로 형상화 시키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 계명은 하나님의 계시를 고정된 형태로 나타내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고정된 사상이나 이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시를 다루기 쉬운 정도로 격하시켜 버리는 그런 정신적 우상 숭배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우상의 금지는 인간이 하나님을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모든 시도를 금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계명은 하나님의 자연성에 대한 강조를 금하고 있다. 우상을 금하는 이유로서 첫째 하나님은 질투하시므로 금하고 있으며, 둘째는 하나님은 반드시 형벌을 내리시므로 금하며, 셋째는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금했다.(최선규, 36-38쪽)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간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창세기 3:15의 언약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여인의 후손으로 정하신 것이다. 창세의 족장시대를 통해서 그 언약은 노아-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드디어 출 6:7에서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라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그리고 그 백성들의 하나님이 친히 되셨다.

하나님의 언약, 즉 계약은 창조 후 아담과의 언약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성취되어짐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이 이루어진 후 항상 이스라엘의 위기 때마다 그들을 구원해 줄 존재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셨는데 이 기대감은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다가 왕조 시대가 되면서 왕정에 대한 메시야 사상으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메시야 사상은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약이 성취되 기만을 기다리는 계약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언약의 형태는 크게 왕직, 선지자직, 제사장직의 삼중적 권세를 상징하는 메시야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편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무르익은 메시야 찬송 시들이 성전에서 부르는 찬양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인데, 시편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은 창세기의 여인의 후손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언약적 메시야 사상의 발전 형태를 띠면서 장차 오실 메시야에 관한 사상적 연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시편의 메시야 예언은 ‘시’라는 독특한 문학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고 그 비유와 상징성에서 예표론적 의미와 모형론적 의미가 매우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주기식, 52-53쪽)


레위기의 내용은 출애굽 신학에 근거한다. 출애굽을 통한 야웨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의미는 한 마디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8:1;8:20;9:1;10:3)에 집약될 수 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계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또 그 백성이 되는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맛보게 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을 올바로 섬김에 있다.

레위기는 전체적 구조로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의 제사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게 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예배의 책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예배함으로써 그의 소유가 되는 은혜의 선물을 받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책임과 사명을 나타내고 있다.(정형식, 4-5쪽)


그런데 예언 활동이라는 것이 신의 뜻을 민중에게 드러내는 매개의 역할이므로 선포자와 청중이라는 관계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예언도 그 행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공론의 장’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예언자들이 활동했던 공적 장소가 ‘성문 앞 광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빙켈은 ‘네비임’을 거의 전적으로 성전 제의에 참여하는 예언자들로 보았고 또한 많은 예언자들이 궁중에서 활동하였다. 지배 계층이 주로 활동하는 성전과 제단, 궁중 그리고 지방의 산당도 예언자들의 공적 활동과 관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문은 성소나 궁중과는 달리 군사적,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제의적 기능이 복합된 그 다양한 기능과 개방성으로 인하여 거의 모든 사회지배계층이 연관된 장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언자들이 펼치는 ‘공론의 장’으로서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의 몇몇 본문들을 통해 예언자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던 ‘성문 앞 광장’의 역할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한규승, 202쪽)


구약 성서의 의미는 ‘자유’이다. 출애굽기 21:2-5; 신명기 15:12-13, 18; 예레미야 34:9-10, 14-16; 욥기 3:19 등에서 이 단어는 모두 ‘노예의 해방’을 의미한다.

7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는 이 구절은 함무라비 법전 117조와 비교된다. 3년만 부리고 4년째 해방시키는 함무라비 법전이 더욱 인도주의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함무라비 법전은 시민들을 뚜렷이 3계급 즉 아위룸(최상계급) 무쉬케눔(주인계급) 와드룸(노예)의 계층을 구분하고 있으며 함무라비 법전은 최상 계급인 아위름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고 노예인 와르둠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될 희망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계약의 법전과 신명기 법전은 신분 구별을 하지 않으며 모든 이스라엘인에게 적용시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라는 말씀을 잊어버린 채, 유대인의 이러한 규정을 한 주일의 첫번째 날에다가 적용시키고자 하면서 안식일 엄수를 주장하는 현대인들은, 넷째 계명이 안식일에 관한 법인만큼 노동에 관한 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다시 말하자면 넷째 계명에, 들어 있는 지구의 일부를 한 주일의 한 날에 글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에 관련되는 모든 제도가 처음부터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었던 히브리 토지법의 정신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이 관계를 율법은 분명하게 말하여 준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여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희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라.”(유이근, 8-9쪽)


각 족장의 선택적인 전기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은 선택과 약속의 중심성을 확증해 줄 뿐만 아니라 시험들과 투쟁의 한 가운데서, 살아 있는 신앙의 본질을 깊이 탐구해 간다. 족장기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있어서 구별되지만, 상호관련성 있는 두 차원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구속역사의 일반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후손, 땅, 축복, 그리고 땅의 열방들에 대한 그의 목적들 안에서 한 지위를 약속해 주신 각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족장들은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직접 말씀해 주심으로써 약속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이어가게 하신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리고 야곱은 지파들의 조상으로서 탁월한 지위를 얻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야곱을 연결해주는 과도기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요셉은 이들 족장들의 약속의 부분적인 성취를 맛보게 한다. 이 성취될 약속의 그림자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창세기에 나타난 중심 주제로서의 “구원”은 개별 족장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취된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義)를 얻었고, 이삭은 약속의 자손으로서 아들 됨을 얻었으며, 야곱은 전 생애를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갔고,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큰 영화를 얻었다.(최요승, 79쪽)


하나님은 신정왕국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간적인 변수에 따라서 늘 역동적으로 진행시키셨다. 하나님은 열국과 같이 세습적인 정치지도자 체제를 만들어달라는 백성들의 어리석은 요구대로 왕제도를 허용하셨지만, 왕제도의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선지자 제도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열왕과 백성들의 거듭된 탈선으로 인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 된다.

비록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렘 23:1-8; 29:10-14; 30:3-31:14; 겔 11:14-21; 37장). 이스라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과거의 죄악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는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겔 11:18-21).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기억함으로써 예루살렘에 영광으로 거하신 하나님은 자기 성전을 파괴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기억해야했고, 그들이 순종했다면 그들의 운명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는가를 기억해야 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전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한 대로 그곳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받았으며, 자유롭게 이주하는 일이나 대도시 안에서나 그 근처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었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과 오직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해 있었다.(박노일, 53-54쪽)



⑷ 다윗 계약


고대 근동의 계약, 특히 그나마 자료가 충분히 보존되어 있는 히타이트 제국의 주종 계약을 보면 당시 ‘맹세’를 통해 맺은 계약의 효력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계약을 맺은 당사자인 제후나 종주가 죽었을 경우, 새로 부임한 왕은 또 다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영원한 구속력을 지닌 계약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계약과는 달리 다윗 계약은 ‘영원성’을 띤 계약이다. 다윗 계약은 다윗 한사람에게만 효력을 미치는 그런 계약이 아니다. 또한 다윗 계약은 인간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느님께서 매와 채찍으로 징벌하시고 교육을 시키시지만, 그렇다고 하느님의 은총이 끝나는 그런 계약도 아니다. 그 이유는 다윗 계약이 하느님의 신실함과 충실함으로 맺어진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 계약의 영원성은 하느님의 דסח 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느님의 דסח 는 תירב (계약)의 내용이 되는 동시에, 하느님 스스로 인간과 결속시키는 תירב 에 의존하도록 한다. 하느님과 계약관계에 있는 이들은 하느님의 דסח 덕분에 그분의 충실하고 자비로운 도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דסח 는 인간 편에서 보면 은총인 셈이다.

다윗 계약의 핵심이 ‘영원성’에 있다는 것은, ‘집’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다윗이 하느님의 집을 짓겠다는(2사무 7, 5) 말에 하느님께서는 먼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11절). 이렇게 역설적인 내용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먼저 다윗에게 영원한 ‘집’을 약속하셨다. 그 후 하느님의 은총을 바탕으로 다윗은 하느님께 영원한 ‘집’을 지어 바칠 것이다. 여기에서도 ‘집’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두 ‘영원성’이 연결된다. 이스라엘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영원히 통치하는 다윗이 이 ‘집’을 통해 상호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서해원 69-70쪽)


그래서 다윗 계약에서 말하는 ‘집’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메시아 왕국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서 하느님의 권위와 통치권을 모두 그대로 이어받은 분으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의 보증이시다.

한편 다윗 계약의 실현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계약’적 죽음이라는 의미 안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가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하여 졌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계약의 책임을 지고서 죄인의 자리에서 죽으심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본래의 계약상태로 회복된 것이다.

더 나아가 다윗 계약 뿐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계약은 예수그리스도로 모아지고 통합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계약의 핵심적 주제는 ‘하느님께서 너희를 당신 백성으로 삼고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겠다’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거하시겠다’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계약의 이 주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되고 구체화되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통치자이자 주권자시며,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 나라의 백성들이 될 것이고, 임마누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왕권을 이어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왕국의 진정한 왕이 되시고 우리 모두의 왕이 되신다.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왕국은 권력과 부(富)와 물질이 아닌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왕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왕좌에 앉으셔서 새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 우리는 그리스도 왕국의 백성으로서 이 나라의 완성에 협조해야할 메시아적 소명을 부여받게 된다. 불의와 억압이 없어지고 세상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며, 사람들 간에 사랑의 관계가 드러나고 하느님과 자연과 더불어 인간 사이에 우주적 화해가 이루어지는 그런 메시아적 희망을 하느님과 함께 실현할 메시아적 소명이 우리에게 부여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 계약을 통하여 인간이 당신과 협력하여 우주의 완성과 구원을 위하여 예언자적 사명을 띠고 살아가야할 소명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다윗 계약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아주 중요한 의미이다. 이런 ‘메시아적 소명’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세속화되고 무질서한 가치의 혼돈 속에서 죽어가는 하느님과 세상을 다시 살릴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서해원, 78-79쪽)


야웨와 그의 백성간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다윗의 계약은 야웨께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이스라엘에게 자기 자신을 위탁하시는 약속의 계약 형태이다. 이러한 계약의 형태는 족장들의 계약 형태와 동일한 것으로 계약의 존속 여부는 인간의 복종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은혜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족장들의 계약과 다윗의 계약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약속의 계약은 무조건적인 약속에 의한 영원한 관계를 의미한다.

모세계약은 “만일 내가…”하는 조건부적인 것이다. 거기에 비해 영원한 계약형태인 다윗계약은 무조건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맹세를 통한 일방적인 것이다. 영원한 계약의 존속은 인간의 복종여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에 기인한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은 사무엘하 7장을 보면 다윗계약 성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성전)을 짓겠다는 열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다윗에게 집(왕조)을 지어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특히 영원히 라는 말을 반복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여 세우신 그의 왕조가 영속할 것을 약속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이 계약은 하나님의 성실한 맹세 (시 132:11)에 의하여 그 관계가 영원히 계속되는 영원한 계약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개개의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께 불복종 할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막대기 와 인생채찍”(삼하 7:14)으로 그들을 징계 하신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윗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계약의 책임이 야웨께 있으며 그 분은 일관되게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진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약적 특성은 시편89:19-37과 매우 밀접하게 병행하고 있으며 동일한 주제가 시편132:11-18과 사무엘하 23:5-7에서 언급하고 있는바 이러한 구절들 안에서도 영원한 왕조가 다윗에게 약속되고 있으며 영속성이 야훼의 뜻에 대한 자손들의 충실성에 의해서 결코 제한되어 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다윗계약은 하나님 편에 계약의 책임이 부과된 편무계약의 형태이다.(송상현, 9-10쪽)


그리하여 계약의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고 다윗계약에 대한 주석적 작업을 하기 전 다윗계약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특성과 내용, 아브라함과 다윗계약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 구약성서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서 부각되는 다윗계약에 대한 텍스트인 사무엘하7:1-17을 중심으로 하여 주석적 고찰을 하였다. 먼저 본문이해를 위한 다각적인 예비분석을 실시하였는데 문맥분석을 통하여 사무엘서의 전체적인 내용이 다윗왕조의 창건과 예언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아래 본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기와의 병행기사와의 비교를 통하여 역대기 저자는 제의적 관점에서 솔로몬과 성전에 중점을 둔 반면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 동맹 체제를 중심으로 한 왕정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예비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주석 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 본문은 집이란 중추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옛 선조들의 약속이 취해졌으며 다윗이 야웨를 위하여 집(성전)을 지을 것이 아니라(5절) 야웨께서 다윗에게 집(왕조)을 지어주실 것(11절b)이라는 대귀를 근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핵심은 11절b와 16절에 집약되고 있는 다윗 왕국의 설립과 영원성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에 이 본문이 메시야 기대의 모체가 되었음을 밝혔다. 다윗 계약에서 본 메시야 사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왕정제도가 고대근동의 왕권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을 전제하고 고대근동의 왕권사상과 이스라엘의 왕권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는 유목생활에서 점차 정착생활로 들어가는 때에 보다 강력한 정치적 결합을 필요로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왕정제도의 도입은 역사적 필연성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역사적 필연성 때문에 생긴 왕권은 주변제국의 왕권과는 차이가 있다. 즉 주변제국들의 왕 개념은 신적인 왕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권사상은 신의 왕권에 철저히 복종했고 왕의 신권을 철저히 부인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권 사상은 고대 제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구별되는 가운데 다윗의 영원한 약속이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영원한 약속의 허락은 후에 메시야 사상의 원천으로서 왕과 관련된 메시야 예언이 이사야 9장, 11장, 예레미야 23:5-8 그리고 제왕시편 들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구원사상이 강조되고 있는 이사야서의 고난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그의 기름 받은 자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이 예언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결국 다윗에게 주어진 나단신탁의 약속은 후대 왕을 넘어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이 대망의 메시야가 출현했음을 알린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송상현, 36-37쪽)


⑸ 하나님과 관계로서의 계약


구약성경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다섯 권의 책에는 여러 종류의 법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 전승은 이 다섯 권의 책을 율법 책(신28:61), 혹은 모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뜻에서 모세의 율법 책(수8:31-32)이라고 부른다. 율법, 즉 토라(To-rah)란 듯은 우리가 흔히 복음에 대칭되는 율법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토라의 본래의 뜻은 “교훈”, “안내” 또는 “길”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법은 타 문화권의 법과 같이 사회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백성의 권익과 번영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 정의와 사랑이 넘치게 함에 그 본래의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다. 출애굽기 24:12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정상으로 불러,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기록한 율법과 계명을 모세에게 주시며, 백성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당부하셨다. 이런 법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의 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임금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하나님의 뜻을 위임받아 백성을 인도해야 할 인도자로 생각하였다. 이로 인해 이 지방에서는 많은 법전이 전해지고 있다. 주전 2500년경의 우루나무 법전, 주전 1700년경의 함무라비 법전(서문, 전문을 제외한 282개 조항), 주전 1300년 경의 힛타이 법전과 주전 1100년경의 앗시리아 법전 등이다.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보면, 함무라비 법은 말둑신이 바벨론 왕 함무라비에게 준 것으로 함무라비 왕은 말둑 신의 명령대로 땅에 진리와 정의를 구현했고, 백성의 삶을 번영케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최원재, 13-14쪽)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제사장직은 하나님과 이 민족의 관계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모세 계약에 있어서 본래적인 취지는 전체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출 19:6;레 11:44;민 15:40). 하나님과의 계약은 제사장을 통하여 그 백성들에게 중재되었다. 성서 신학에 있어서 제사장직과 계약의 개념들은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시내산에서의 계약 때문에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고 그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하나님의 거룩의 특징은 이스라엘의 삶에서 반영되어야 했다(레 11:44;민 15:40).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의 기능을 한 지파에 부여하셨다는 사실이 민족의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의 원래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한 지파에게 제사장의 역할이 주어졌다 할지라도 그 제사장 지파를 통하여 전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며 모든 백성들의 시선이 제사장에게 고정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모든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그들 삶의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손영락, 68쪽)

 

하나님은 무엇보다 계약을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 “계약을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지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계약은 ‘관계’를 말하는 용어이다. “계약을 지켜야만 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전까지의 관계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내산 계약의 체결은 이스라엘의 전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세가 중요한 가족의 가장이기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의 근원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 그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신 것이다. 이 계약으로 그들은 장차 들어가 정착할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지표를 제공받은 것이다. 이 계약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창조주와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이것은 계약을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계약은 관계를 말하기에 시내산 계약은 이스라엘에 주어진 ‘선악과’라고 할 수 있다. 계약이라는 것을 관계의 의미에서 본다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선악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즉 계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정녕 죽을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맺은 계약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악과인 셈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의 삶을 유지하려면 계약을 의미하는 선악과를 지켜야 했듯이 이스라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의미하는 계약을 지켜야만 했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공동체에도 “계약을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김영찬, 41-42쪽)


구약에 나타나는 계약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관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약의 계약 개념에서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그 계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 역시도 의로움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계약에 있어 하나님은 주체였고, 시작하신 분이었으며, 보존자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모든 법적인 것과 요구에 우선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이 관계에 있어서는 법적인 측면보다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율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은혜에 기초한 것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이러한 계약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의해 율법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의 계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과의 언약을 기억함으로써 돌보시고 고난과 아픔을 씻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이러한 계약적 신실함으로서의 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최태운, 8쪽)


여호수아 24장을 중심한 새로운 연구가 조약 형태의 전승사 및 역사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르호르(J.L'Hour)는 세겜에서 선포되었으리라고 믿어지는 계약의 원형태를 재구성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의 가설은 대략적인 윤곽면에서, 현존 하는 여호수아 24장이 조약 형태를 띤 계약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여호수아 24장에는 조약에 나오는 역사적 서언이 있고, 또 맹세와 증인이 있다. 그러나 법의 제재, 즉 상세한 법의 내역은 상실된 셈이다. 단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법도를 주었다는 말(수 24:26절)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원래 형태에는 법조항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법조항은 아마도 현재 출애굽기에 실려 있는 계약 법전과 비슷한 것일 것이다. 이 법은 아마도 문맥상으로 시내산 이야기에 옮겨져 모세만이 하나님 법의 매개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이 계약 법전과 여호수아 24장에 남아있는 부분, 그리고 출애굽기 23장 20-33절의 축복의 형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여기에 완전한 하나의 조약 형태를 구성할 수 있다. 시내산 계약과 세겜 언약 공히 구원의 하나님 경험을 통한 계약 관계 형성에 중심된 신학적 주제가 흘러간다. 이는 본래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적 고백이며 그 고백의 필수요소는 구원과 계약이다.(양희선, 158-159쪽)


아이히로트는 계약을 중심점으로 삼았다. 아이히로트는 계약을 완전한 교의적 체계로 발전하는 “교리적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있는 과정”에 대한 중요한 서술로 생각하였다. 이 계약, 또는 살아 있는 과정(계약)은 신의 실재 나타낸다. 그러므로 아이히로트의 신학은 중심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다만 통일된 개념인 계약으로부터 전체적으로 구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시도들 가운데 한 가지를 대표한다고 하였다. 클레멘츠는 구약성서 신학이 유대교와 기독교에 다같이 봉사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간의 대화를 위한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구약성서를 율법과 약속으로 보아, 하나님 백성의 두 집단(유대교와 기독교)이 구약성서를 어떻게 이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는가를 보는 데 있다.

포러는 하나님 사귐과 하나님 나라를, 프리젠도 포러와 같은 입장으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를 중심사상이라고 보았다. 프리젠은 하나님을 모든 구약문서의 초점이라고 했지만 그의 중심은 교제이다. 프리젠은 이 교제의 개념을 구약 메시지의 “근본적인 사상”이라고 했다. 아이히로트의 언약 개념과 비교해서 교제 개념은, “우리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교제를 처음부터 언약상의 교제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제를 언약의 우위에 두었다.

젤린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쾰러는 하나님의 주권이 구약성서의 핵심이라고 보며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은 이 주권의 일부라고 보았다. 쟈콥은 살아 계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사상이라고 보았다.

위의 단일한 개념과는 달리 슈미트는 십계명의 제1계명이 기본계명으로서 구약성서의 초기와 후기의 여러 증인들을 통합할 수 있는 중심점이라고 보고 있다. 침멀리 역시 십계명 중 제1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침멀리는 “나는 내가 존재하는 자다”라는 이름아래서 자기의 백성을 만났던 그 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포착되지 않는 유령이나 도깨비불 같은 것만이 결코 아니라,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기 원하며 그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며 찾아오는 분이라고 말한다. 슈미트는 출애굽기 20장의 “나 야웨”를 강조하는 반면, 침멀리는 신명기 26장의 고백적인 입장에서 “당신―야웨”로 강조한다. 십계명의 계명과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구약신학의 중심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견해이다.(권상덕, 77-78쪽)


어쨌든 율법은 유대 사람들이 야훼 앞에서 엄숙히 다짐한 계약의 맹세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드디어 유다인 공동체의 헌법이 되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페르시아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야훼 하느님의 법에 따라 스스로 내정문제를 조정하는 것이 허용된 공인공동체(公認共同體)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의 국가로부터 하나의 율법공동체로 변모하였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줄곧 율법공동체로서 존속하게 되었으니, 국가로서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더라도 이 민족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잡은 것이다. 모세오경에 나타난 이집트 탈출 사건이 다른 민족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고통 받고 억압당하던 소수 민족이 탈출한 기억으로만 해석될 수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 탈출 사건은 야훼 하느님께서 직접 이루어내신 사건이며, 나아가 야훼 하느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되는 구원이었다.

기적적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다시 고향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이집트 탈출 사건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삶을 통해 각인되고 증거해야 할 구원 사건으로 새롭게 각인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페르시아의 속국이지만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이 공동체를 유지시키고,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지켜나가는 힘은 그들이 가지는 국가적, 정치적, 경제적인 능력이 아니라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이며 구원인 것이다.(황규진, 34-35쪽)


하나님의 의지계시가 오경에서는 모세의 율법·토라로 표시되고, 예언서에서는 환상(Vision)과 환청(Audition)으로 전달된 예언 말씀으로 형태화 되었다면, 성문서에서는 지혜(Weisheit)로 표시되었다.

또한 예레미야 49:7절에 의하면 바빌론의 침공 앞에서 멸망당할 어둠이 자기의 지혜를 상실하는 것을 조롱하는 구절도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지혜자들 앞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새로운 것을 내다보았던 예언자의 신앙이 인과응보적인 지혜 교리를 능가했으며, 안전과 행복을 찾는 인간적인 태도와 고난·고통을 기피하는 기복적-주술적인 신앙, 자기들의 소욕에 의존하는 신앙을 부정하는 지혜를 지혜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곧 예언자의 지식(Wissen)으로 말미암은 지혜다. 곤경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를 맺으면서, 하나님의 현실 속에서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믿는 지혜다. 언제나 도움이 되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현실을 인식하는 지혜다. 나아가서 시편 8편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연을 가꾸고 보살피도록 위임받았다. 인간은 자연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안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는 이스라엘 역사의 주로서 그들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다른 근동의 이웃 나라들에서는 창조가 한때 신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완결된 사건으로 객관적으로 찬양되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시편 8, 18, 24, 74, 136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행위가 현재 역사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창조 사건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모두를 위한 야웨 구원의 출발점이다.

이와 함께 성서는 인간이 자연과 함께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야웨의 규정과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야웨의 규정과 계명을 깨닫고 따르는 것이 곧 삶의 지혜다. 지혜를 통하여 인간은 자연과 세계 속에서 조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지혜는 독자적인 신적 존재는 아니다. 지혜는 야웨의 피조물이며 야웨와 자연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다. 따라서 인간은 선의 실천을 부르는 야웨의 계명 안에서 참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성서는 이제 야웨의 뜻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지혜(잠8:1-21)가 창조 세계의 비밀로서의 지혜(잠 8:22-31절)와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고 이런 의미에서 지혜는 야훼의 요구에 응하는 우리의 결단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준다. 구약의 “지혜는 창조신학의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펼쳐질 역사 안에서의 인간의 책임과 과제를 물으며 사회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한다.(양희선, 164-166쪽)


그러나 모두가 향유하며 누리며 즐거워 할 그 때에 아모스는 그들을 향해, 전혀 다른 무서운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 사이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복’으로 생각했던 그와 같은 전승들(출애굽-정복전승, 선택전승)은 이제 그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전에 없던 새로운 메시지, 곧 임하게 될 심판에 대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줄 수 있는 놀라운 메시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모스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알고 있었던, 그렇기 때문에 접촉점이 컸던 그 전승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들을 향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는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를 드러내었다.(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에서도) 또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총체적인 타락의 모습 앞에서 이제 곧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강력하게 선포해나갔던 것이다. 아모스는 이와 같은 시내산 계약과 관련된 전승을 통해, 백성들을 향해 그 안에 담겨있는 이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바로 이 전승들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표면적인 과거 은혜의 경험을 회상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은혜의 경험들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과 맺었던 계약을 상기시켰고, 또한 계약백성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책무가 있음에 대해 깨닫도록 했던 것이다.(정은광, 67쪽)


언약법전에서 주요한 메시지 세 개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언약이다. 이 언약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시기 원하신다’(출19:3-6;29:45-46)는 하나님의 꿈이 담겨 있다. 언약이란 서로 묶고 묶이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가나안으로 성공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회막/예배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약을 깨어지고, 하나님의 꿈은 좌초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언약 관계는 “피차 의무를 지는 호혜 관계”혹은 쌍방 간의 협력 관계로 승화된다. 조금 과한 말이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모험과 하늘의 도움, 인간의 주도권과 하늘의 은총이 똑같이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없이는 행하지 않으시며,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할 수 없다.(God without us will not; we without  God cannot.)”

두 번째는 언약법전 내에 세속 법과 종교 법이 갈마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근거하면, 세속 법과 종교 법이 양분되기보다는 함께 가야한다는 의미겠다. 그러니까 신앙인이 참답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세속 속에서도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배 드리기 전에 먼저 이웃과 화해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가장 중요한 것인 세 번째는 ‘동기 조항 구절’이다. 성서 본문 상에서 동기 조항 구절은 본문을 읽어가는 지표 역할을 감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여타 고대 서아시아 법전과 구별시켜주는 요소이다. 게다가 본문에서 법 수여자가 야웨 하나님으로 설정(setting)되어 있다. 마치 법을 어기면 곧 하나님께 죄(sin)를 짓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법을 지키게끔 동기를 부여한다.

참 유별나다. 지극히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법조항들을 나열해 놓고, 그 뒤에 그 법을 지켜야 하는 동기를 원인론적으로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한다.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애굽에서의 종 되었던 경험, 나그네 생활의 기억을 상기키면서 말이다.(출22:20;23:6)(김민호, 64-65쪽)


애굽으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통하여 수많은 잡족(출 12:38, 『공동번역』-‘많은 잡식구’)을 포함한 대가족 단위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주할 땅 없이 방황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호하는 평등 공동체가 될 것을 요청하셨다. 십계명, 성막 건축(출 25-31;35-40)과 레위기에 규정된 각종 법과 규례들을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다. 실제로 시내산 언약법에 규정된 무수한 규정들은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 등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신정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테면 고아나 과부, 나그네 등을 포함하는 사회-경제적인 약자들을 압제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그들을 보살피라는 규정들(출 22:21-27;23:6, 9, 10-11; 레19:9-10, 33-34; 23:2-3, 22;25;신 10:18-19; 14:28 ;15:1-18; 16:9-17;24; 27:19등)이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내산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두 가지 전승이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피의 계약’으로 산 아래에서 이루어진 계약이다. 이 경우는 모세가단을 쌓고, 또 열두 지파를 대신하는 열 두 돌기둥을 세우며, 계약서를 읽고 백성들이 “야웨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하며 마음을 다진다(출 24:7). 이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제사 짐승의 피를 뿌리며 “야웨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선언한다(출 24:8). 또 다른 하나의 전승은 ‘식사계약’이다(출 24:1-2,9-11). 이 식사계약은 ‘피의 계약’과는 달리 산 위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피의 의식처럼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산 위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신 가운데 식사를 하도록 했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이안나, 36-37쪽)


이집트 탈출 사건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그 분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4,1; 6,9; 14,31)? 야훼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17,7)? 그 분의 이름은 무엇인가(3,13-15)? 모세는 왜 이렇게 우리를 위험한 모험 속으로 끌어들였는가(14,11; 16,3; 17,3; 32,1)?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근거로 하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탈출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세기를 걸쳐 결과적으로 모세 오경이 확정되던 B.C.E. 450-400년대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성숙되었다. 당신의 백성에게 홀로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하느님, 곧 계약의 하느님을 모세가 알려준 그날 이후, 이스라엘백성은 민족적 생존의 첫 사건, 구체적으로는 이집트 탈출 사건과 시나이 계약을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결국 하느님께서 역사 속으로 개입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시고 그 행렬을 인도하신 야훼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체험하고,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자신이 사람들에게 일깨우신 희망과 믿음에 충실한 분으로서, 노예가 되어버린 불행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전적으로 응답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결국 모든 장애를 이기시고 당신 백성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한데 모으고자 하시는 분으로서 그들에게 계약을 세우고 그 계약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그분께서는 죄를 저지르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비를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바로 이렇게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 준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야훼 하느님이심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시고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는 ‘시나이 계약’을 통하여 계약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이집트 탈출의 목적은 단순히 이집트의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함이 된 것이다. 이 계약 안으로 들어감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으로 하느님의 맏아들이 된다(탈출 4,22; 19,4-6). 이집트탈출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 함께 하시는 분으로 계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자’, ‘창조자’,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영원히 이끌어 줄 ‘목자’요, ‘왕’으로 계시된다.(황규진, 52-53쪽)


그러나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율법을 어긴 일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파기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하였음을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종용하였다. 율법을 어긴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결국에는 때가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언약과 남은 자 사상의 내용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철저히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길을 형통케 하시고 모든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쓰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2:12),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으고(4:7), 야곱의 남은 자(5:7-8), 그 기업의 남은 자 (7:18)를 모두 모으신다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며 또한 남은 자 측면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남는 것이다. 2장 12절에서 내가 모으고 내가 모은다는 구조를 볼 때에도 하나님의 굳은 의지와 구원의 확실성을 볼 수 있었고. 4장 6-7절에서는 저는 자며 쫓겨난 자들이 남아서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릴 때가 오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5장 7-8절은 심판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7장 18절에서는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의 은총에 응답하기를 바라신다는 내용이다.

남은 자 사상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심판과 회복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도성과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이 바라는, 소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소망하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의를 소망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죄 가운데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이다.

죄는 곧 죽음이었다. 하나님의 진노였고 죽어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죄에 대한 댓가이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들도 또한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김성복, 65-66쪽)


지금까지 호세아가 선포한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밝힘으로 호세아의 신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호세아는 그 시대의 모든 문제의 중심을 신앙의 관점으로 보았다. 쿠데타의 정치, 신의 없는 사대주의 외교 정책, 극심한 빈부 격차, 부도덕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패 현상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이해했다. 특히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이 타락하였으며, 바알에 대한 숭배가 야웨 종교를 변질시키고 말았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호세아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4:1)이 없다”며 ‘하나님을 알라’라고 선포한다. 호세아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된 인간 상호간의 윤리적 차원까지 포함하여 말한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를 나타내며 독단적 자기 주장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선택한 구원 역사에 나타난 야웨의 행동과 뜻과 율법을 통해 계약 요구에 순종하는 것임을 말한다. 또 호세아는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종교와 가나안 문화에 빠져들면서 남편 된 야웨 하나님께 음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율법을 백성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제사장 역시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백성들의 야웨 신앙은 바알 종교가 되어 버렸다. 이에 호세아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웨와 맺은 계약을 상기시키면서 현재의 계약 파기 상태를 비난하며 앞으로의 새로운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역사에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고대 전승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출애굽사건이 야웨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만남의 시작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임을 말한다(호 11:1). 이스라엘이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출애굽 사건에서 기인한 것이며, 출애굽 사건은 야웨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의 결과이다(호 12:9;13:4). 이와 같이, 호세아는 출애굽 전승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민족적 실존의 근거는 출애굽 사건 때부터임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을 위해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될 수 있음을 바라고 있다. 호세아는 광야 전승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있어 광야의 유랑 시기는 야웨와 이스라엘 사이의 가장 순수한 사랑의 시기요, 장소임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야웨를 알게 될 것이며, ‘광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첫 사랑과 신실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다시 말해, 광야 유랑 기간 동안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살펴 주신 구원사를 강조함으로써 야웨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그는 말한다. 계약 전승을 통해 이스라엘은 야웨가 선택한 계약의 백성임을 호세아는 밝힌다. 호세아는 그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의 결여로 인해 파괴되었다고 본다.‘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호세아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의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사랑과 순종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단지 자신들이 아는 바에 대해서 전적으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호세아는 날카로운 왕국 비판자로서 왕권 제도 자체를 야웨의 뜻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원칙적이고 신학적으로 문제 삼았다. 호세아에게 있어서 왕국 그 자체가 야웨 숭배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며, 왕국의 설립은 인간 숭배의 한 형태로서 우상 숭배로 간주되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이해를 통해 호세아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에게 예언한다. 이스라엘이 버렸던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이 성취되며,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음을 호세아는 외치고 있다.(정승준, 48-49쪽)


시내산 계약에는 구체적인 약속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출애굽기 19:5- 6에 나타나는 자손에 대한 개념이다. 이 약속은 신명기 7:6에 재 진술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족장들에게 하신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에 근거하고 있다. 출 19:5-6에서 이스라엘은 “내 소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리운다. ‘세굴라’라는 단어가 구약성서에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역대상 29:3과 전도서 2:8 그리고 말라기 3:17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말라기 3:17에서의 사용은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의 특별한 소유가 된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 단어의 용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한 가치를 지닌 신분으로 불리웠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세굴라로서 그들은 세상의 열국 중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고 돌보심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출애굽기 6:7에서 밝히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과 관련하여, 이것은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5절)라는 진술에 ‘그러므로’란 접속사에 의해 연결되는 6-8절에 포함된 몇 가지 약속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29:45-46에서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출애굽기 6:8에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약속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지킴으로 인하여 열국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존귀케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출19:5).(이춘구, 36쪽)


예레미야 새 언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논함에 있어 바로 이 ‘신(神)지식’의 면이 그 불연속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예레미야는 새 계약하에서는 아무도 그 이웃이나 형제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새 계약 하에서 이런 선생이 없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되어졌다. 그것은 자신의 수단으로 가르치는 자들을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자들로 대치하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다른 이들은 아무런 선생도 필요하지 않게 되는 천국의 상황을 일컫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문맥에서 가장 자연스런 해석은, 개 계약 상황은 백성을 위해 계약을 중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은 여호와를 알 것을 백성들에게 촉구하였다(사 1:3;렘 9:3; 호 4:1; 호 6:3). 이러한 구절들은 옛 언약 하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神)지식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옛 언약과 새 언약 간에 연속성이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단지 새 언약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던 인간 중재자들의 요소가 사라지고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과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 속에 직접 가르치시며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강조하는 면에서 불연속성의 특징이 있다. 신구(新舊)계약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고찰함에 있어 불연속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보이는 구절 속에 하나님 말씀의 통일적이고 연속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연속성이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장백준, 49-50쪽)


일방적으로 맺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은 ‘구두 선언’을 통하여 성립된다. 이 때에 언약이 삶과 죽음의 성격을 가진다고 했는데, 즉 하나님은 언약을 통하여 삶과 죽음으로써 피조물에게 자신을 결속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언약적 의식에서 잘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언약 의식에서 희생 제물의 사이로 지나가는 것은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은 단지 구경만 할뿐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구속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죽은 짐승처럼 죽으시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은혜이며, 이 은혜에 대하여 인간은 믿음의 순종을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바로 언약이 종교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은 또한 종교적 의미로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참되고 의식이 있는 영적인 교제를 가져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목표이면서 언약의 주제를 이룬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숭배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이런 언약은 이방 세계에서는 없다. 하나님은 언약을 수립하실 때 자신을 나타내시며, 그리고 교제하는 것이다. 이 언약에는 구속받은 인간, 하나님 자신이 소유한 백성, 즉 거룩한 민족에 대한 은혜로우신 목적과 목표가 들어 있는 것이다.

구속받은 백성과 거룩한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목표는 특별히 이스라엘과의 언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특히 언약의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만이 아니라 “너희의 하나님, 나의 백성”이라는 관계를 포함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 스스로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체결된다는 사실은 ‘영원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에 근거를 둔 것으로 결코 폐기되거나 무효화되지도, 다른 것으로 대체 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불가침으로 간주되고 참여자들의 신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속성이 언약의 바탕이 되어 하나님은 신실하게 자신의 언약을 성취시킬 것이다. 언약을 세우실 때 일방적인 주권적 행사로 언약을 세우시고, 주권적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시는데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로 언약을 성취하신다. 그 언약의 성취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이루어지며, 그리스도를 향하여 통일된 면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언약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언약임을 알 수 있다. 단계적으로 내용이 보충되면서 분명해지며, 뜻이 풍성해지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이춘구, 6-7쪽)


그렇다면 성경의 각 언약들 속에 존재하는 헤세드의 개념은 과연 성도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헤세드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성도의 삶에 적용되면, 성도는 언약을 중요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언약의 중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되는 ‘말씀’(다바르 רבך )을 더욱 중요시 하게 될 것이다. 성도는 언약의 백성이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영원히 언약 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성도들이 받은 은혜는 율법의 멍에로 인해 강제적으로 율법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은혜에 기초하여 더욱 그 은혜의 달콤함과 신실함에 감사함으로 준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세드의 개념이 성도의 신앙생활에 주는 영향력이란 현대 신앙인들에게 실로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 말하자면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언약의 끊어질 수 없는 영원한 보호하심은 성도자신에게 많은 위로와 평강을 준다. 이러한 확신 또한 하나님이 그의 사랑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이제 더 이상 견인줄 없는 견인의 신앙은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흔들리는 신앙의 결과만 낳을 뿐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붙들려 살아가는 성도는 언제나 변함없이 말씀을 붙들며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헤세드 개념의 깊은 고찰을 통해 성도들의 신앙은 더욱 견고해 질 것이며, 승리하는 삶의 연속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실하시며 은혜로우신 약속은 하나님의 언약적 교제 즉, 헤세드의 개념으로 말미암아 더욱 빛나고, 그로인한 신앙의 회복과 전진은 영원한 언약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성도에게 더욱 기쁜 소식으로 다가 올 것이다. 또한 헤세드의 개념에 바른 이해를 통하여서 오늘날을 가리켜 막연히 ‘은혜의 시대’라 호칭하면서 구약의 율법들을 폐기처분하자는 잘못 된 성경해석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달콤한 기쁨을 명확하게 제시해 줄수 있을 것이다.

모세의 언약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적 교제(헤세드)의 발견으로 진리의 좁은 길을 걸어가며, 성도의 생활이 더욱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여러 이단적 사상과 맞서 승리의 기쁨을 항상 맛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한국 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적 교제인 헤세드의 능력을 맛보고, 다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이춘구, 45-46쪽)


즉 히브리 사상은 타자로부터 출발한다면 헬라 사상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이와 같은 차이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아브라함 죠수아 헤쉘은 ‘헬라인들은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배우지만 히브리인들은 (타자를) 존경하기 위하여 배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호세아는 왜 ‘하나님 지식’, 즉 하나님 알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가 호세아의 예언을 인용한 것으로 보도한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12:7; cf. 호 6:6). 그러나 아쉽게도 마태는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면서도 우리의 관심인 ‘하나님 지식’은 정작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태가 인용한 그 구절이 곧 ‘하나님 지식’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안다면 허례와 허식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섬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지식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상호교감과 상호인식을 넓힐 수 있는 촉매제이자 방향타이다. 이와 반대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거나’(호 5:4), ‘잊어버린다면’ (호 4:6), 그 지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다른 신을 좇아 행음하며 분향할 수밖에 없고(호 3:3, 4:13), 그 무지 때문에‘어리석은 에브라임’은 앗시리아로 가고 이집트를 향하여 부르짖지만 굶주리거나 목이 마를 것이며 결국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호 4:14, 5:13, 7:11. cf. 사 5:13).

호세아의 하나님 지식은 히브리 신앙의 출발점과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통행이 아니라 양자가 함께 공유하며 상호 책임적인 관계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야다’의 독특한 사유 인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김창주, 28-29쪽)


2. 공공(공적) 신학


⑴ 개념


공공성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주체로서의 인민, 정향된 목표로서의 공공복리, 공공성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공개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과 교회의 공공성을 재고하고자 할 때 이러한 개념 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공공성을 연구하고자 할 때 공공성의 첫 번째 요소인 인민(populus)에 있어서, 언약백성(covenant people)으로서의 자유농민을 상정하게 된다. 또한 두 번째 요소인 공공복리에 있어서, 구약성경이 말하는 공공복리는 언약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한 백성’(landed people)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안식(공공복리)을 누리는 것이다. 공공성의 세 번째 요소인 ‘공개성’에 있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은 이러한 야웨 종교의 토라적 공공성이 지배 계층의 억압과 착취로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배 계층과의 소통(대립과 격려)을 추구하였던 인물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야웨의 신정통치적 이념이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공개성을 추구했던 인물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주요 공적 활동의 무대가 되었던 궁중과 제단, 성소, ‘성문 앞 광장’은 구체적인 공론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치, 행정, 경제, 제의 등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지배 계층의 집결지가 되었던 ‘성문 앞 광장’은 가장 큰 공개성을 가진 공론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한규승, 56-57쪽)

 

이상에서 우리는 야웨 종교의 공공성의 기초가 되는 땅신학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처럼 땅신학에 기초한 경제적 공공성이 토라의 골격을 이루는 각 법전들에 나타나기 때문에 ‘토라적 공공성’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토라적 공공성’은 땅 신학에 기초한다. 땅은 단순히 토지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 토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활동을 환유(換喩)한다. 노예 해방이나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의 돌봄 역시 땅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토라적 공공성’이란 땅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적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Covenant People)은 ‘땅에 정착한 백성’(Landed People)이다. 언약 백성은 ‘약속의 땅에 정착해서 사는 백성’이고 그들이 곧 “암 카도쉬”로서의 자유농민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이 그토록 강한 비판을 쏟아놓은 것은 바로 땅에 정착한 백성으로서 자유농민들의 삶을 박탈하는 지배계층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땅을 빼앗는 일은 곧 ‘토라적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행위였기 때문이다.(한규승, 103-104쪽)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공동선을 위한 건설적 역할은 교회의 교회다움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즉 교회만의 정체성을 보존하되 동시에 사회적 공공선을 위해 다른 사회 기관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와 시민 사회안에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소수의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관점만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할 수 있는 영역과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바로 교회가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과제와 영역이 아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신앙인의 신앙인다움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신앙인다움이란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는가에 따라 판명된다. 개인의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만 적용시키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회의 좋은 교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도모하는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전제한 상태에서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하기 위해 교회가 갖추어야 할 교회다움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앙인을 신앙인 되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교회가 안팎으로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직관하고,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오늘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소임, 즉 “신앙의 공공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를 주장하는 바이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초반 한국 교회의 과제이자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임성빈, 204쪽)


공공신학과 교회윤리가 ‘미국적’ 맥락에서 꽃핀 것이라는 점은 한국적 적용을 위한 성찰에서 깊이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한국교회가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독특한 한국적 맥락이 있다는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배경으로 제안된 두 가지 윤리적 관점들의 한국적 맥락에서의 적실성(relevancy)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공공성’과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통찰은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키트’(diagnostic kits)인 동시에 교회개혁의 ‘비전’이다.

말하자면 두 관심을 상호보완적으로 비교하고 종합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연결고리는 ‘교회’에 있다. 공공신학과 교회윤리가 교회의 윤리적 기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특히, ‘대안공동체’가 되고 ‘섬김의 공동체’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두 관점 모두에 공유되어 있다. 내용과 방향이 다를 뿐이다. 대안공동체와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윤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교회에 대한 윤리적 관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공공신학 역시 교회를 근간에 두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반증해 준다.

교회윤리에서 교회를 그 자체로 사회윤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로부터의 퇴거를 말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공공신학에서 교회의 공공성의 재고를 통해 교회가 지역사회공동체 및 글로벌 시민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섬김의 모델이 적용되고 있다. 두 관점이 말하는 ‘대안’과 ‘섬김’ 의 방식이 다를 뿐, 교회가 섬김을 통해 대안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동의 관심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문시영, 225쪽)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모더니즘은 결혼, 노동과 경제, 교회생활, 국가로부터 점차 신학적인 의미와 가치를 제거시켰고, 이들을 세속화시켰다. 베이컨과 뉴턴에 의한 과학혁명, 데카르트와 칸트의 철학혁명,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등은 ‘교회’를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몰아내고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사사(私事)화 시켰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가 공적인 영역이 되어버렸고, 교회와 신앙생활은 사적인 영역으로 전락하여,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국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에 대한 공적책임 수행을 도외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이 20세기에 들어서 세속화와 함께 동반되는 사사화(privatization), 소비문화의 편만함과 여성의 역할변화로 인해 사회문화는 급격한 변동을 하게 되었다. 이는 1980년대 영국 대처 수상 시절의 신자유주의적인 기조와 블래어 수상의 제 3의 길에 대한 응답으로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렇게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특히 영국사회에서 공공영역에서의 종교의 역할이 요청되고 있었다. 또한 1, 2 차 세계대전을 치른 독일을 중심으로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본 회퍼와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촉발되고, 미국에서는 계몽주의와 '제퍼슨식 타협(Jeffersonian Compromise)'으로부터 정치로부터 종교가 분리되어 종교를 개인의 영역에 국한하는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강조하면서 1930년대 미국에서는 라인홀드 리버가 공공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서양의 기독교 신학은 공적 영역에서 교회가 수행해야 할 공적책임을 신학의 화두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종교사회학자인 벨라(Robert Bellah)가 그의 논문 「미국에 있어서 시민종교」(1967)에서 시민종교를 “사회에 있어서 일반적인 공적종교”라고 불렀고, 시카고 대학의 교회사가인 마틴 마티 (Martin Marty)가 1970년대의 라인홀드 리버의 공헌에 관해 언급하면서 “공적인 신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함으로써 “공공신학”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으로 본다.(서은지, 23-25쪽)


공적신학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는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로 추정된다. 그는 그의 논문, “Civil Religion in America”에서 초월적인 특정한 신앙들과는 구별된 시민종교를 “사회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공적 종교”(a common public religion)로 부르고 있다. 공적신학이라는 용어는 시카고 대학의 교회사 교수였던 마틴 마티(Martin Marty)가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공헌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때 등장한 공적신학이라는 용어는 종교가 사회적 차원과 동떨어져서 개인적 신앙 차원에서만 다루어지는지는 현상에 대하여 반대하면서 신학의 사회적 책임과 기능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벨라와 마티 모두 신학의 공적 역할이 시민종교와는 분명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벨라는 시민종교가 대중적으로 사회화된 종교라면 공적신학은 기독교적 정보를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의 자료와 대화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적신학은 시민사회의 필요나 문제에 대해 응답하되 국가나 다른 사회단체보다 기독교 전통에 서서 통찰하고자 한다. 마티는 교회가 기독교 전통에서 출발하여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신앙 형성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북미에서 주류 종교였던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의 교인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미국 내 교파의 다양한 분포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주류 종파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경계하면서 주류 종파들이 공적교회로서 공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사회 전체의 관심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추상현, 22-23쪽)


공적신학은 서구권에서 주로 다루어진 신학이다. 그러므로 먼저 유럽과 북미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 후 어떤 배경에서 공적신학이 출발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이루어진 공적신학에 대한 논의가 다음과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역사적, 상황적 요인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근대화과정의 사회의 구조적분화로 인한 종교의 사사화 현상이다. 구조적 분화는 전 근대사회에서 종교 아래 하나로 작용하던 정치, 종교, 예술, 과학등의 분야가 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고유의 합리성에 따라 분리해 나가면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공적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여 그 기능을 정치의 영역에 내어주게 되었다. 그 결과 종교는 사회변혁을 위한 비전을 상실하고 공적 영역보다 종교적 영역 내의 문제들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사사화된 모습을 띄게 되었다.

둘째, 정치와 종교의 분리 필요성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수많은 종교전쟁들을 겪으면서 정치와 종교의 일치에 따른 수많은 폐단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은 유럽인들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낳게 되었다. 그래서 정교 분리는 종교 간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그 결과 정교가 분리되면서 기독교는 정치에서 분리되어 공적 영역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셋째, 서구적 개인주의의 확산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유럽과 북미에서 시작된 개인주의 현상은 근대화와 세계화를 맞이하면서 지구적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로버트 벨라는 실용적 개인주의(utilitarian individualism)과 표현적 개인주의 (expressive individualism)의 개인주의를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 서구적 개인주의가 서구 기독교의 종교적 실천은 개인주의화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세계화를 통하여 계속 확산되고 있다.

넷째, 해방신학의 영향이다. 1960년대 이후 독일의 요하네스 메츠(Johannes Metz),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등과 같은 정치신학자들에 의하여 태동된 해방신학은 1970년대 이후 남미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ez), 얀 소브리노(Jon Sobrino),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후안 세군도(Juan Segundo)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본격적인 프락시스(praxis) 신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해방신학은 신학의 정치적인 성격,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투쟁, 사회의 구조에 대한 개혁 등을 강하게 부각시켜서 교회가 개인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공적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적신학은 교회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다섯째, 다원주의 현상의 영향이다. 다원주의는 현재 존재하는 종교들이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와 포용을 통하여 공적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복지를 위한 대화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공헌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상황 속에 있는 기독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켜나가면서도 다른 종교와 문화 전통들과의 대화에 개방적으로 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도록 요청받고 있다.(추상현, 32-33쪽)


공공신학은 영어의 ‘public theology’를 번역한 말이다. 공공신학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가 신앙이라는 것을 단순히 신자의 사생활과 교회의 내부적 관심 정도로 여기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위해 어떻게 하면 성서적이고 신학적 통찰력들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기독교의 공적(public)성격과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삶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공공신학은 신앙을 사(private)적인 영역이나 개인적 차원에서 한정하지 않고 사회와 공(public)적인 차원의 영역들인, 경제, 정치, 문화, 사회, 기술등에 관련된 제 문제들을 다루려는 신학적 시도인 것이다.

사실 공공신학의 개념과 배경은 1970년대 후반 시카고대학의 교회사가인 마틴 마티(Martin Marty)가 ‘공공의 선’(public good)에 관한 에큐메니칼적인 결단의 내용으로 쓴 그의 책, 『공공 교회』(The Public Church)에서 그 내용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마티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은, 사회를 향한 교회의 무관심들과 철회들을 향한 반대운동이었다. 마티는 종교의 사사화를 통하여 교회가 점차 공적 영역과 삶에 공헌 하지 못하는 미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에 대한 대안적 교회의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공교회 개념을 제시함에 있어서 마티는 한편으로는, 개인과 정부 사이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과 대중(masses)사이를 중재해 주는 제도가 존재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았던 사회학자 알렉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관점을 따랐다. 토크빌은 이러한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기타의 다른 자원 단체들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보았다. 제임스 파울러(J. Fowler)에 의하면, 마티는 이러한 토크빌의 주장에 기초하여 교회는 기독교 전통에 기초하여 공중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신앙을 통하여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티에 의하면 공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있는 사도적 교회로서 신앙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는 교회이다. 동시에 공교회는 사회의 공적 질서에 민감하고 이에 대한 책임성을 지니고 있는 교회이다. 이러한 공교회는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공적 질서 또는 공적 삶에 신앙적 차원의 초월적인 가치를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한다. 공교회는 또한 복음적 열정을 에큐메니칼 열정과 서로 연결시키는 특별한 과제를 수행하는 교회이다. 그는 이러한 공교회의 구성원들은 폭력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타자를 공격하지 않고도 자신들이 믿는 바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신앙의 단계로 인류를 인도해 나가야 하는 중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공신학의 태동기는 1920-1930 년대로 본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본회퍼와 칼 바르트가 이 시기에 공공신학을 창시한 것으로 보고 있고, 미국에서는 라인홀드 니이버가 공공신학을 전개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48 년 암스텔담에서 창립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공공신학을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고, 1960 년대에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신앙이 공공신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진정 공공신학이라는 이름을 내어 놓고, 신학 작업을 전개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인용태, 44-46쪽)


18세기 계몽주의 이래의 모더니즘 전통은 결혼, 노동과 경제, 교회 생활, 그리고 국가로부터 점차 신학적인 의미와 가치를 제거시켰고 세속화시켰다. 베이컨과 뉴턴에 의한 과학혁명, 데카르트와 칸트에 의한 철학혁명,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는 “교회”를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추방시켰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개인화시켰다. 즉 인간의 사고와 삶을 결정하는 것이 교회에서 국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같은 세속적 영역이 되어 버렸다. 이 결과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국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에 대한 공적 책임 수행을 점차 잃게 되었다.

현대 공공신학의 창시자로 1920-30년대의 독일의 본회퍼와 바르트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공공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또한 “공공신학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본회퍼 저서들은 히틀러와의 관계에서 쓰였고, 바르트의 저서들 가운데 『바르멘 신학선언』, 『복음과 율법』, 그리고『기독교인들의 공동체와 시민들의 공동체』들 역시 히틀러를 의식하면서 저술된 것으로 지극히 공공신학의 입장이 담겨있다. 미국에선 니버가 1930년대 공공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므로 공공신학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20세기에 들어와서 등장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후 에큐메니컬운동을 통하여 공공신학이 크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1937년 유트레히트(Utrecht)에서 헌장이 마련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10년 후인 1948년에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이미 1920년대 이래로 발전해 온 “삶과 봉사”(Lifeand Work)를 통하여 공공신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0년대 들어서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 공공신학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공공신학의 용어는 시카고 대학교의 신학자였던 마티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니버의 신학이 지닌 특성을 논하는 가운데 그를 공공신학자로 평가하고 동시에 그의 신학을 공공신학이라고 평가하면서 본래적인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던 니버의 신학과 같은 것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공공신학은 시민종교에 대한 논의와 함께 시작된다.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 독일에서 공공신학이 등장하는 배경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세속화와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적 결과이며, 미국의 경우 시민 종교의 대한 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적인 차원의 논의들이나 사회의 여러 영역들인 문화, 예술, 가족, 과학기술, 경제, 정치에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는 신학적 시도로서, 비기독교 전통들이나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과학 등과 더불어 비판적인 대화를 추구하는 신학 분야이다. 이러한 공공신학은 신앙과 신학을 오직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정치적 자유론과 논쟁한다. 종교를 정치와 동일한 사회의 하위체계로 판단하지 않고 정치의 규범적 기원으로 본다.

그동안 정치적 자유주의는 종교를 공적영역에서 추방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일로 축소시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최소화 시켜왔다. 이에 대해 공공신학은 종교와 사회, 신학과 윤리, 교회와 정치 간의 상호 보충적 관계를 중시하면서, 교회가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위해 기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공공신학은 교회의 당면한 위기가 결코 신학적 범주 안에서만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학제간의 소통을 통해 실현하려고 노력한다.(이승현, 8-9쪽)


보편 교회라는 용어에서 보편적이라는 단어는 특히 개신교에서 포괄적인 우주성을 의미하며 참된 교회의 전 세계성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보편성은 독점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제한과 심연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기적인 분리주의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이다. 또한 ‘거룩한 보편 교회’가 의미하는 것은 사사로움과 거리가 먼 인간의 삶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다. 거룩한 보편적 교회가 시사해 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교회 안에만 존재하시는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공교회라는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신구약성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보편적이란 개념이 의미하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성서는 증언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의 표현으로 사사로운 이익이 통하지 않는 공익의 영역, 즉 만물이 살아 갈 수 있는 보편적이고 공적인 영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개방된 공공의 영역이므로 인간이 모든 동식물을 점령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 집단이나 특정 국가에 의해서 그 공간이 구별되어지거나 독점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인간에 의해 도전받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공공 영역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에게 열려 있는 열린 하늘이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열린 땅이며, 이 열린 공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모두에게 허락된 공공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공공 영역의 파괴는 불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은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함으로써 야기된 현상이며, 따라서 사회 개혁을 통해 공공성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고 또 회복해야 한다. 구약성서의 예언서에 따르면 예언자(預言者)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하는 자(미리 예, 豫)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맡길 예, 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야 했다. 이를 위해 예언자들은 국내외 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별했으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아모스는 사회정의와 하나님의 공의를 강력하게 전하는 예언자였다. 아모스가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는 개인의 착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선에 있었다. 공적 선의 추구였던 것이다. 아모스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과 그리고 제사장들의 사회정치적 불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예언자들은 공공성의 상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선포했다. 나아가 사회정의의 실현을 외면한 채 거행하는 예배는 오히려 형벌의 대상일 수 있음을 선포했다. 이는 인간들 사이의 정의 즉 공공성의 실현 보다 예배 자체가 앞설 수 없다는 의미였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공공성은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틀에 박힌 율법에 근거해서 그들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당시의 로마 정치 체제나 유대교 체제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성이 농후한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유대교의 율법에 어긋나면 죄인이라고 정죄하던 시절에 예수는 율법으로 정죄 당했던 그 죄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공공의 영역으로 그들을 불러냈던 것이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식탁을 사회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유대교 율법에 의해 그어졌던 식탁 경계 자체를 허물어 버렸다. 이는 율법에 따른 엄격한 식사예법을 준수하던 유대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 행위였다. 예수가 죄인들을 식사 자리에 초청함으로써 종교사회적으로 형성해 놓았던 율법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이로써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어 지내야만 했던 사람들이 공적인 자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장정이, 13-14쪽)


⑵ 본회퍼-바르트-몰트만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생애의 핵심이었던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기독교교육의 목적과 방향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전통적 기독교교육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이해함으로 기독교교육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중생과 천국을 향한 성화를 준비하는 교육에 치중했다. 이런 교육은 영적문제만 다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존하는 가치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반면 자유주의 교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의 유토피아 건설로 이해함으로 종교교육은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격교육이나 도덕교육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의 초월적인 차원이나 성서의 하나님 말씀됨을 상실하게 되었다(박화경, 2006, pp.53-54, 128-129). 이런 두 입장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강조되기도 했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의 신학>과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에서 나타난 몰트만의 신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런 이해가 매우 편파적이었음을 인식시켰다.

몰트만에 의하면 예수의 생애와 선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는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적인 두 차원을 포함한다. 미래에 완성되는 종말론적인 나라이지만, 그 나라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역사속에 이미 구현되고 성장하게 되었다. 세상의 옛 질서와 어둠을 뚫고 전 세계를 새롭게 하며 세상 한 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는 계속적으로 커져간다(Moltmann, 1994, pp. 23-24 ; 1989/1990, pp. 147-149).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차안의 세계를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혁하고 새롭게 함으로 성장하는 나라이며, 갑자기 하늘에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으로 성장하는 나라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뒤따라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체인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야할 사명이 있다.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빛에 비추어 현존하는 구조와 질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상응하는 세상의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을 변화시켜나가야 할 사명이 주어져 있다(Moltmann, 1964/1997, pp. 435-452).

하나님 나라가 초월적이면서도 역사적이고, 하나님의 힘과 함께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몰트만의 신학은 그동안의 기독교교육이 얼마나 편파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는가를 반성하고 기독교교육이 하나님 나라의 지평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나라가 기독교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은 기독교교육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차원을 통전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기독교 전통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에 뿌리 내리면서도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며 그 빛 하에서 현재를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체가 하나님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인간의 책임이 강조된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시각은 기독교교육이 전통적 기독교교육의 목적이었던 개인 신앙이나 교회의 차원에서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사회역사적 책임을 담당해야 함을 인식시켰다. 또한 자유주의 교육처럼 기독교전통과 성령의 역할을 상실함으로 인간의 왕국이 되어서도 안 되며, 신정통주의 교육의 목적인 만남과 제자화도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응답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다양한 기독교교육에서 제시된 신앙발달이나 해석이나 해방적 접근에서 제시하는 어떠한 교육목적도 하나님 나라라는 궁극적 목적 아래에 있고, 기독교교육은 하나님 나라의 지평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인식시켰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몰트만의 신학이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님 나라가 기독교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교육 학자들이 나타났다.(박화경, 38-40쪽)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 신학을 공공신학으로 규정하였음을 살펴보았다. 몰트만에게는 하나님 나라 사상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통치로서 하나님 나라, 메시아적 중재 속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통치로서 하나님 나라는 세계와 모든 민족들, 즉 만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보편적 통치에 대한 기대로 보았으며, 메시아적 중재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선취되었고, 이것을 통해서 선취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미래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역사 속에서 약속의 말씀과 영을 통하여 오고 있으며, 그 약속을 믿는 자들로 통해서 성취의 도상에 있다.

몰트만이 이해하는 공공신학의 출발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있다. 공공신학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독교 교회는 역사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편협한 모습을 지속했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도피처로 전락시키고, 메시아의 미래를 버리게 되었다. 특히 근대에 와서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진보를 통하여 천년왕국에 대한 허황된 환상을 소유하게 하므로 오늘날까지 많은 모순들과 고통을 낳았다. 이러한 상황들을 몰트만은 비판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왜곡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왜곡된 관념들을 몰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물러나 국가와 사회의 안전 제도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기존 교회들을 향하여 십자가 신학을 제시한다. 이러한 입장은 여전히 정치신학자이다.(이승현, 65쪽)


그리하여 본회퍼는 ‘하나님-교회-세상’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하나님-세상-교회’의 패러다임으로의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인류역사와 창조세계 전체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어 도구로 쓰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은 칼 바르트와 몰트만,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이어진다.

칼 바르트는 그의 화해론에서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선교에 동참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부활하시어 승귀하신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연합하신 분(the God-man) 또는 신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인류 역사와 교회를 통치하시면서, 인류의 거짓을 노출시키고, 인류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재연합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믿음과 성화의 공동체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의 역사로 (enlightening)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세상 속으로 파송 받은 교회공동체가 되는 것으로 본다. 즉, 하나님의 일터는 이 세상과 창조세계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화해사역 또는 하나님나라 운동 또는 그의 세상을 위한 선교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칼 바르트의 ‘하나님-세상-교회’의 패러다임을 엿볼 수 있다.(서은지, 42쪽)


여기서 몰트만은 공공신학이 바로 기독교 신학이라고 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기독교의 전통인 신학의 틀 안에서 공공신학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라는 기독교 신학적인 명제 하에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비판 할 수 있는 근원이 된다. 그리고 다분히 현재 공공신학을 구성하는 이성의 빛을 비판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성보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기독교 신학적 명제가 사회의 모순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우상들과 거짓 종교들을 비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앙의 소망의 빛 하에서 공공신학을 구성하는 것이 이성의 빛에 종속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몰트만의 공공신학의 핵심은 기독교 신학을 통하여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면서 사회의 공적인 일에 관련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의 공공신학은 이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소망의 빛 하에서 공적인 일에 참여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역사적인 공적인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정체성이 요구 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하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빛 안에서  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공적인 일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마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소망의 빛 안에서 세상을 분별하고 비평한 예언자의 사명과 유사한 예언자 직이다. 따라서 세상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에토스를 비판하면서, 세상의 공적인 일에 참여 할 수 있는 신학이 바로 공공신학이다.(김종수, 88쪽)


⑶ 사회적 삼위일체론과 시민적 이성 구현으로서의 공론장


삼위일체론에 따르면 각각의 신적인 세 위격들은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하여, 서로 안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세 위격들은 그들 각자의 완전한 전개를 위한 상호 공간을 서로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상호 내주를 통해서 세 위격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삼위일체적 사귐으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몰트만은 이것을 삼위일체적 “내재”(immanentia) 내지는 “내실존”(inexistentia)이라고 명명한다. 몰트만은 삼위일체적 상호 공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로 요약한다. “다른 인격 안에 내재하는 한 인격의 친밀하고 완벽한 내주”(Intima et perfecta inhabitatio unius personae in aliis). 아들은 아버지 안에 내주하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내주한다(요 14:9-11).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의 처소(집)”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처소(집)”이다.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고, 아들 안에서 안식하시고, 아들로부터 빛나시는 성령은 아들 안에서 자신의 처소로서의 공간을 발견한다. 삼위일체론 안에서 우리는 인격적인 표상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신적인 위격들 및 그 신적 위격들의 상호관계로서 인식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표상을 통하여 세 신적 위격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내주의 공간을 내어주는 상호 처소(집)로서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삼위일체론이 하나님의 존재를 공간적 표상과 더불어 상호적인 내실존(Inexistenz)으로서 파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격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공간적 관점에서도 사귐의 존재 내지는 공동체적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자신의 바깥에 존재케 하기 위하여 자신의 편재성을 제한함으로써,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하여 하나의 공간을 개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으로부터 창조 세계를 구분하고 “자신 앞에, 자신과 더불어, 자신 속에” 창조 세계를 있게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자기제약”(Selbstbeschränkung), 즉 “자기 끌어당김”(Selbstzurückziehung)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축소시킴으로써, 자기 자신 속에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한 공간을 창조했던 것이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자기제약 내지는 자기축소를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의 창조는 “아버지가 아들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자기 자신을 제약하는 사역이다.”(이동영, 166-167쪽)


몰트만에 의하면 삼위 하나님은 깊은 사랑의 힘으로 다른 인격체와 함께 거하시고, 또한 다른 인격체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 깊은 사랑의 사귐 속에서 삼위 하나님의 각 인격체는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들의 무아적 사랑의 힘으로 삼위일체의 각 인격체들은 서로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온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오며, 자기 자신을 아들로 인식하게 된다.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오며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몰트만에 의하면 페리코레시스가 삼위 하나님의 일체성을 형성시키지만 동시에 페리코레시스 삼위 하나님의 개체성도 형성시킨다. 성부도 성자와의 깊은 사랑의 페리코레시스 속에서 성자와 하나인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성자 역시 성부와의 깊은 사랑의 페리코레시스 속에서 성부와 하나임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아들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는 성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페리코레시스는 삼위 하나님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개념인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개체성을 확립하면서 신적 삶의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이붕흠, 48쪽)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삼위의 인격성과 관계성 및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상호 교대하는 관계들 가운데 있는 세 신적 인격의 공동체로서 상호순환적인 사랑의 통일성(페리코레시스) 속에 있다. 몰트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들이 신적 페리코레시스 안에 드러난 사귐과 교제를 실현하도록 부름받는다고 주장한다. 즉 페리코레시스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 및 상호적섬김으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적 실천과 윤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몰트만은 삼위일체의 상호 순환적 통일성이 하나님과 세계의 상호 내주 즉 우주적 쉐키나(Shekinah)를 종말론적으로 지향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삼위일체론적, 종말론적 만유재신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몰트만 신학의 삼위일체론적 구조는 고전적 유신론과 과정신학의 만유재신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신론의 유형 즉 기독교적 만유재신론(Christian panentheism)을 낳는다. 또한 몰트만은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나라를 향한 운동 혹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회론을 삼위일체론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몰트만 신학의 삼위일체론적 구조는 하나님의 자기제한(케노시스)을 통한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삼위일체 하나님나라의 운동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함께 역동적인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는 데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몰트만의 종말론은 삼위일체론적 구조로 형성된다. 즉 새 창조에서 성령의 내주를 통해 세계는 “삼위일체의 집”으로 변형되고 변화될 것이며, 마침내 그의 백성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영원한 기쁨의 축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이다. 이렇게 몰트만의 신학은 삼위일체적 사고 속에서 이루어지고 삼위일체적으로 정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신옥수, 115-116쪽)


몰트만은 서구 신학의 일신론적이며 군주론적인 삼위일체론과 그에 따른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가 현대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비인간화 현상과 생태계 위기의 시발점이이라고 판단한다. 서구 사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폐쇄적이며 지배하는 주권을 그 통일성의 본질로 하는 절대자로 여겼고, 이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도 세계를 소유하고 그의 뜻대로 지배할 수 있는 지배권이 본래적으로 부여되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사회에 타자를 지배하려는 문화와 자연을 이용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역사적으로 만연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지배권을 창조주 하나님께 상응하는 것으로 여기는 인간이해가 지배와 복종을 용인하는 힘의 문화를 초래하였기에, 정신에 의한 몸의 도구화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사회적인 불평등,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인간의 사회적인 계급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소외와 불평등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속적인 약탈과 파괴가 용인되었다고 비판한다.

몰트만의 인간이해에는 이러한 군주론적인 삼위일체론과 그에 상응하는 지배의 인간학을 비판하며 그에 초래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그는 폐쇄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순환하며 상호침투하는 사랑의 사귐의 관계 안에 있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하여, 개방적이고 관계적이며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종말론적인 희망의 미래를 향하는 동시에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인간이해를 제시한다.

첫째, 몰트만의 인간이해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신체적이며 사회적인 관계들을 강조하는 인간이해이다. 그는 인간을 관계적인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과의 특별한 사귐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규정된 존재로 이해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결단에 의하여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됨은 하나님의 이 결단에 의한 하나님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에서 발견된다. 몰트만은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은 서구 신학에서 주장해온 것과 같이 인간의 어떠한 본성적인 것이나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에 대하여 늘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몰트만은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을 실체적인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관계적이며 공동체적인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전인적인 인간이해를 추구한다. 그는 인간의 영혼과 몸을 이원화하는 것과 지배와 피지배적인 관계 안에서 논의하는 것을 거부하며 인간의 영혼과 몸을 상호 침투하며 순환하는 사귐의 관계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 몸의 도구화 현상을 비판하며 몸이 정신의 소유물이자 도구로서 이해 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몰트만의 인간이해는 사회적 삼위일체 하나님에 상응하는 관계적이며 공동체적인 인간이해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구별과 일치 속에서 평등하고 풍부한 사귐의 관계 안에 있는 사회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현실에서 대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과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인 사귐의 관계에 상응하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규정되어 있다.(김봉한, 62-63쪽)


페리코레시스는 삼위 하나님의 하나 됨을 나타내는 개념인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개체성을 확립하면서 신적 삶의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몰트만은 이러한 신적 페리코레시스적 삶에 기초한 그의 삼위일체론을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라고 했는데, 세 분의 독립된 주체들은 각각의 독특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내주 또는 상호침투를 통하여 나누어지지 아니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교제 가운데 있는 관계적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단일한 실체나 초월적인 주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공동체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공동체는 “개방적 공동체”라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다. 삼위일체 공동체는 세 신적 인격 사이에서만 사귐과 나눔이 존재하는 폐쇄되고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 모든 창조세계를 참여시키고 포괄하는 개방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의 속성으로 그분의 창조세계, 특히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의 사귐 가운데로 부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공신학이 추구해야할 교회와 사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원리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비움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자기 비움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은 지배-피지배의 악마적 상황 아래 놓인 ‘아직’의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모든 인간의 평등을 획득하게 된다.(임승주, 37쪽)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적 교회론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는 메시아적 친교공동체이다. 필자는 정치 윤리적 차원에서 본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적 교회론을 평화의 공동체로 정의해 봄으로써 그의 교회론이 가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평화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평화를 본받아 이 땅에 평화를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뜻한다. 평화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평화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세상에 대해 개방된 공동체이다. 둘째, 평화공동체로서의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화평(和平)을 몸소 실천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화평을 구현하는 공동체이다. 셋째, 평화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이 세상의 피조세계를 살리는 공동체이다. 넷째, 평화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됨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다(박지영, 405쪽)


몰트만에 따르면 위격들은 페리코레시스의 시스템 속에서 상호 내재한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위격 속에서 살며, 삶을 나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구분하는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존재하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결국 서로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교통한다.

페리코레시스의 차원에서 삼위일체 속에서는 한 위격에 대한 다른 위격의 상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부의 상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페리코레시스적인 사귐이 가능하기 위해서 위격들은 고유하고 다른 존재가 가지지 못하는 독특성 혹은 개체성을 가져야 한다. 위격들은 고유한 독특성을 가지고 아버지, 아들, 성령의 순환 속에서 사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사귐이야말로 하나님의 본질인 것이다. 이것은 몰트만이 주장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삼위일체를 새롭게 구상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다.

몰트만은 이러한 순환론적 일치의 과정을 삼위의 내적인 일치의 과정으로 뿐 아니라, 피조물의 구원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본다. 피조물에게서 구원은 무엇인가? 만약 피조물의 고난이 하나님과의 분리인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 구원은 피조물이 은혜로 인해 하나님과의 사귐 안으로 용납되는 것에 있다. 구원은 이 결합에 있으며 분리된 자들의 하나님과의 결합은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맺는 자신이 관계 안으로 인간을 받아들이고 인간을 아버지의 자녀, 아들과 딸로 삼음으로써, 이 결합은 이루어진다. 성령이 아들과 그리고 성령과 맺는 자신의 관계 안으로 인간을 받아들이고, 인간을 그의 영원한 사랑과 그의 영원한 찬양에 참여시킴으로써, 이 결합은 이루어진다.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순환론적 일치는 이러한 관점에서 초대하고 결합하는 이치이고, 그래서 인간 개방적이고 세계 개방적인 일치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적 일치의 개념은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도록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몰트만은 바로 이러한 면에서 삼위일체를 “열려있는 삼위일체”라고 말한다.

또한 몰트만은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의 구분은 인간의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 잘못된 것으로 본다. 초대교회 이후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는 구분되어 왔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하나님 자체’ 혹은 ‘하나님의 본질’로, 경륜적 삼위일체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 혹은 ‘계시’로 규정했다. 또 내재적 삼위일체는 세 위격의 대내적 관계를 형이상학적 사고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경륜적 삼위일체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삼위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세계를 구분해서 보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트만에 따르면 내재적인 하나님 자체는 세상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 유비되고, 경륜적 하나님은 세상에서 그 사역의 결과가 나타나고 세상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세상과 유비된다는 것이다.(이은정, 48-49쪽)


몰트만은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 삶에 주목하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전개했다. 그는 동방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별성과 사회성을 강조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인격들은 개별자가 아닌 관계 안에 존재하는 인격이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은 페리코레시스적 삶으로 삼위일체 상호간에 서열이나 계급이 아닌 자유와 평등의 관계가 기초가 되어 인간의 삶의 모습과 전 삶의 영역에 기초가 된다.

또한 몰트만은 교회가 현대사회에 순응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붙들어 삼위일체론을 재해석하고자 했으며, 삼위일체론이 현대 사회에 절실한 것임을 주장했다. 몰트만은 우리가 하나님을 유일신론적으로 생각할 때 가부장제를 정당화하기 쉬우며, 하나님을 초월적으로 생각할 때 세상과 관련이 없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고,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사물을 관계적으로 보게 되며, 세상에 내재적인 하나님, 세상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 하나님을 보게 됨을 주장했다.

이러한 몰트만의 관점은 이후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발전시켰던 사회적 삼위일체를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하나님 경험의 관점 안에서 삼위일체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 스스로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삼위일체적 역사 이해는 역사의 신적인 역동성을 파악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이는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의 ‘제3부 내가 걸어온 신학의 길’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현대 사회의 요청 속에서 과거의 삼위일체론이 새롭게 정립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몰트만은 서양사에 나타난 억압적인 단일 군주적 체계를 비판했다. 가부장적이고 지배적이 관계가 세상을 지배하고,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몰트만은 사귐의 관계성을 구상하고 그 관계성의 모델인 하나님의 삼위일체 관계성을 새롭게 사귐의 관계성으로 해석하고, 그 사귐적 관계성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형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현대의 가장 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했으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사귐의 공동체를 성립할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유과 사귐의 수평적인 교회공동체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삼위일체론에는 여전히 삼신성의 흔적은 남아 있다고 보여 진다. 이것은 몰트만이 말한, 세 위격이 미리 개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존재하다가 연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각각의 고유한 개별성이 생성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다. 몰트만은 위격을 실체라고 규정했는데 관계 속에서는 각 자가 형성된다면 어떤 기능이나 역할이 형성될 수 있는지. 실체적인 특성이 형성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몰트만 자신은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 연합에 근거한 삼위일체적 원리가 정의와 평등에 근거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주장한다. 곧 “거룩한 삼위일체는 우리의 사회적 프로그램이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몰트만의 주장대로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사회 및 정치 제도를 포함한 우리의 현실 이해에 영향을 끼치기는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신이해와 우리의 실재 이해에서 조금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함을 박만은 지적한다. 비록 우리의 신 이해가 우리의 실재 이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 이해의 변화가 곧 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의 변화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이은정, 72-73쪽)


그런데 이 두 전통 중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서방 교회의 심리적 삼위일체론이었으며 이로 인해 신 안의 통일성은 삼위성을 압도하여 하나님은 세 분이기 이전에 이미 한 분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삼위일체론은 이런 전통을 의심하고 비판했다. 현대의 삼위일체론자들에 따르면 서방 교회의 심리적 삼위일체론은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 안의 삼위성 혹은 복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너무 철학적이며 사변적이어서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 맺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의 삼위성을 먼저 강조했던 동방 교회 전통을 더 중요시하여 그것에서 배우고자 하며 때로는 그 전통을 철저히 재해석해서 더욱 본격적인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은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이 삼위의 통일성을 성부에게서 찾음으로 종속론의 위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면서 세 인격 사이의 더욱 철저한 독립성과 구별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곧 오늘날의 본격적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은 하나님을 서로 완전히 독립되고 구별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이 이루는 공동체(community)내지 사회(society)로 이해하며 이들 사이의 일치 내지 연합을 성부 아닌 세 신적 인격 사이의 통교적 연합(perichoreticunion)에서 찾는다.

오늘날 현대 삼위일체 논의의 중심에는 이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이 서 있으니 이들은 하나님 안의 삼위성과 일체성의 관계, 삼위일체론에서의 인격(person)용어의 사용, 또 이 교리의 구체적, 실제적 의미와 같은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새로운 답변들을 제시하고 있다. 정녕 최근 삼위일체 신학의 큰 특징은 교회사를 통해 주도적이었던 심리학적, 인격 내재적 모형(psychological intra-perconal model)은 점점 뒷면으로 물러나고 사회적 삼위일체론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데 있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강점은 심리적 삼위일체론보다 신약성서의 증언에 더 충실하다는 데 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말할 때 구원사를 통해 현실에 나타나는 성부, 성자, 성령의 통일성을 묻는 신약성서의 증언을 따르는 사회적 삼위일체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둘째로, 사회적 삼위일체 신학의 강점은 그것이 우리 시대의 절실한 요청에 좀 더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과 나눔, 평등과 섬김의 공동체로 이해한다면 이 시대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및 이기주의로 인한 이웃과 공동체의 상실을 극복하고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삼위일체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세 인격 사이의 연합을 오직 그들 사이의 페리코레시스적 연합에서만 찾을 때 삼신론의 위험을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리적 삼위일체가 양태론의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 삼위일체는 삼신론의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적 삼위일체론과 심리적 삼위일체론은 모두 자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불충분한 모델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모든 언어적, 논리적 행위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이기현, 67-68쪽)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사귐의 개념이며 또한 관계론적인 것이다. 몰트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성을 사귐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내용과 여러 자료들을 인용하며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몰트만은 사귐은 사귐으로서 그의 사귐 안으로 초대하며, 자연과 인간의 세계 안에서 자신을 정의롭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의 원형으로 삼는다. 이 표상에 따르면, 교회의 일치를 보증하는 것은 "성령의 사귐"이지, 군주론적인 중앙집권주의가 아니다.

사회적 삼위일체를 통하여 몰트만은 교회와 사회를 위한 실천적인 목표로서 얻게 되며 이를 통해 교회와 사회 안에 평형이 이루어지고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인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나아가 인간과 각 사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평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사회적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상호간에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 내주하시고 하나가 다른 하나 속으로 침투하시어 사랑을 나누시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의 운동 속에 있으니,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요, 교회 공동체의 원형이다.

신적 인격들은 서로에 대한 관계성 속에서만이 아니라, 요한의 진술이 보여주듯이, 서로가 서로 안에 있다. 성자가 성부 안에 성부가 성자 안에 성령이 성부와 성자 안에 그리고 성부와 성자가 성령 안에 존재한다. 서로 안에 있는 인격들의 이러한 친밀한 내주와 완전한 침투는 삼위일체적인 페리코레시스에 의해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순환, 상호 내주, 상호 침투는 사랑 때문에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신적 삶이 서로를 하나로 통일하게 해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하나로 된 분이며 우리와 우리들의 복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으로서 연합됨을 뜻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영원한 사랑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면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그래서 그들의 고유한 신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러한 영원한 사랑은 세 인격들 사이의 ‘동종을 위한 사랑’이며 이것을 넘어서 ‘타자를 위한 사랑’인 것이다.(김형준, 20-21쪽)


넷째, 몰트만은 만유재신론(panentheism)을 주장한다. 몰트만에 따르면 하나님과 이 세계의 관계는 하나님을 이 세상의 불완전한 모습들에 대하여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상처도 받지 않는 모습으로 그리는 고전적 신론의 개념이나, 이 세상에 대하여 끊임없는 종속(codependence)에 빠져 있는 감상적이고 유한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그리는, 과정 철학적 만유재신론의 범주들로도 표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몰트만은 자신의 견해를 ‘삼위일체적 만유재신론’(trinitarian panentheism)이라고 말하고 그것은 양자가 가질 수 있는 약점들을 피하는 한편, 두 견해 안에 있는 진리들을 보존시켜 주며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정아론, 63쪽)


그런데 오늘날에는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처해 있다. 이와 같은 때에, 사회적 비전으로서의 페리코레시스는 우리에게 관계적 존재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돕는다. 관계적 존재론은 우리 인간이 개별적이고 독립된 자아로서 서로를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인격이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사회적 비전으로서의 페리코레시스는 이미 주어진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인격이 형성됨을 인정하기에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공동체성을 형성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또한 진정한 공동체성 안에서 서로의 개별적인 차이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일치성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위한 신학적인 논의에 페리코레시스의 개념의 합의를 적용해 본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의 개념은 한국 내에서 그리고 남북한 사이에서 관계적 존재론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하여 한국내에서 진정한 한국 내에서의 진정한 공동체의 회복에 공헌할 수 있고, 또한 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공동체성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백종현, 165쪽)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삼위일체론의 내용은 인격으로 존재하는 삼위일체의 사역이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성과 사역은 성부의 창조, 성자를 통한 화해, 성령의 성화와 구원으로 이해되어 왔다. 몰트만은 전통적 삼위일체의 사역에 대한 명칭들을 “아버지의 창조”, “아들의 성육신”, “성령의 변용”으로 바꾸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역은 전통적인 사역과 비교했을 때 명칭과 내용에 별다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에 대한 독자적인 인격과 사역을 강조하여 전통적인 성령에 대한 이해와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신적 인격과 관계의 이해를 바탕으로 몰트만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을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세 신적 인격의 독립적인 사역이 아닌 삼위일체의 사역으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처럼 세 분 하나님의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아버지, 아들, 성령의 독립된 개별성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에서 하나님의 삼위 되심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기 때문에 세 분이시다.그러나 동시에 세 분 하나님이 페리코레시스적 하나 됨을 이루는 일체성을 이룬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분’하나님을 말하지만, 몰트만은 ‘세 분’하나님을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세 분 하나님이 ‘하나 됨’을 이룬다는 점이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큰 특징이다. 다음으로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세 분’하나님과 세 분 하나님의 ‘하나 됨’을 살펴보자.(조 에스더, 22쪽)


몰트만은 ‘쉐히나 이론’을 삼위의 상호순환적 사귐인 ‘perichorese’라는 개념을 통하여 발전시킨다. 그는 페리코레시스의 라틴어 번역인 ‘circumincessio’ (perichreo: 둘러싸다)와 ‘circuminsessio ’(perichoreusis: 원을 그리며 춤추다)는 이중적인 의미, 곧 “세 위격들은 서로 안에서의 ‘안식’과 서로 함께 춤을 추는 ‘원무’(圓舞)”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페리코레시스는 각 위격이 다른 두 위격들 안에서 “변화가 많은 원무”로 활동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세 위격들의 “지배가 없는 교통”가운데서 “완전한 평등”이 지배하는 “페리코레시스적 하나됨”를 강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몰트만은 또한 ‘circumincessio’(순환적 내주)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서 페리코레시스를 단지 “세 위격들의 관계”로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세 위격들이 서로 안에 존재하는 “삼위일체의 세 공간들”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에 따르면,“각 위격은 다른 두 위격들 안에서 능동적으로 내주하면서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두 위격들에게 수동적으로 공간을 내어주면서, 곧 자신을 내어주는 동시에 다른 위격들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밀리오리(D.L.Migliore)역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삶 가운데 있는 환대(intra trinitarian hospitality)와 사랑의 춤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페리코레시스의 의미를 설명한다.(방태남, 84-85쪽)


위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분된 세 인격들은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페리코레시스라는 방식에 의해서 완전히, 그것도 평등하게 결합된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몰트만은 성자와 성부의 통일성에 대한 요한복음의 표현을 상호 순환적 통일성으로 이해한다.“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 10:3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요 14:11,17:21 등)와 같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술은 “나”와 “너”를 구분하며, 인식과 의지의 일치만이 아니라, 상호 내주의 일치도 지시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유일한 신적 주체의 두 존재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한 분’(Einer)이 아니라 ‘하나로 된 분’(Einigkeit)이며,‘우리’와 ‘우리들’의 복수로 표현될 수 있는 연합됨이다.

그런데 몰트만은 페리코레시스는 다마스커스의 요한에 의해서 일차적으로 그리스도론에서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된 용어라는 점에 주목한다.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페리코레시스를 통하여 상이한 두 본성인 신성과 인성이 상호 간을 관통한다고 보았다. 몰트만은 이에 착안하여 페리코레시스의 삼위일체론적인 이해와 그리스도론적인 이해를 다음과 같이 결합시킨다.“하나님의 세 위격들께서 동종의 사랑(homologe Liebe)을 통해 그들의 페리코레시스를 형성하신다면,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그분 안에 신성과 인성은 이종의 사랑(heterologe Liebe)을 통해 결합된다.”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개념을 통하여 페리코레시스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써 확장시킨다. 몰트만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동종을 위한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동종을 향한 사랑’을 넘어서 ‘타자들을 위한 사랑’인 창조적 사랑이며, 본질에 있어서 필연적인 사랑일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이다.(곽정훈, 34-35쪽)


몰트만에 따르면 기독교 신학은 단지 공적 삶에서 기독교적인 것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지평 속에서 공공성을 기술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그에게 있어 공공신학이란 이 시대의 고난에 참여하는 신학이며, 동시대인들이 실존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나타내며, 비판적으로 또 예언자적으로 사회의 공적 문제들에 개입하며,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계명과 의에 유의하며, 저항적으로 또한 생산적으로 땅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의 신학은 교회에 머무르던 신학의 영역을 자연과 사회로 확장한 하나님 나라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몰트만은 신적 페리코레시스적 삶에 기초한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라 칭했다.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동방교회적 하나님 이해를 전제로 하고, 이 삼위 하나님께서 페리코레시스적 방식으로 하나(einig)임을 설명하는 삼위일체론이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공동체는 독립된 세 신적 주체의 공동체이다. 신옥수는 성서적 내러티브에 근거한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의 출발점이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을 위해 설득력 있고 적절하다고 말한다.(임승주, 27쪽)


이 삼위일체란 개념은 먼저 “아버지, 아들, 성령 상호간의 일체성”을 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위의 세 가지 근원적 관계는 역시 “분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각 존재 양식의 다른 존재 양식들에의 한 특수한 참여”를 뜻한다. 성경적인 증언에 의하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셋 안에서만 알려지실 수 있고, 삼위께서는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만 알려지실 수 있다. 그러므로 셋 중의 어느 하나도 다른 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하여 각 존재양식은 언제나 다른 존재 양식과 함께 있다. 삼위는 서로 구분되지만 동일한 본질의 것이며, 따라서 내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한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양식은 그들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서로 내적으로 침투하여 다른 존재양식에 참여하고 그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 안에서 다른 위들의 공통의 현존이다. 이 견해는 다메섹의 요한(John of Damascus)의 ‘순환’(perichoresis)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신적인 존재양식들이 상호 간에 서로서로 제한하고 침투하되 그처럼 완전하여 하나는 항상 다른 둘 속에 있고 또 다른 둘이 하나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교리에 의하면, 내적인 하나님의 생명은 세 가지 존재양식의 중단되지 않는 원으로 생각될 수 있다. 바르트는 순환의 교리뿐만 아니라 ‘전유의 교리’를 강조하는 데, 이 개념은 무슨 의미인가? 삼위의 하는 일은 삼위가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지며, 나누어짐이 없이 각 인격에게 전유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전유’(Appropriation)라고 한다. 이러한 전유의 면에서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각 존재양식이 다른 존재양식의 위격을 자신의 것으로 함으로써 각각의 존재양식을 통해서 활동하신다. ‘순환과 전유’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유적 측면에서 보면, 세 존재양식은 그 자신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창조, 화해, 구원이라고 하는 독특한 사역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순환적 측면에서 보면, 세 존재양식은 영원히 서로 관계하면서 하나를 이루며 각 존재양식은 다른 존재양식들과 함께 그의 일을 한다. 한 마디로 삼위는 독자성을 가지면서 사귐 속에 있고 사귐 속에 있으면서도 독자성을 가진다. 따라서 삼위가 하는 사역도 각 위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인 동시에 함께 하는 일이요, 함께 하는 일인 동시에 각 위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이다.(배진교, 24-25쪽)


바르트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계시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각 위격 혹은 양태들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계시 가운데 있는 신적 활동을 통해서라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이러한 경세적 삼위일체로부터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한 각각의 항목으로 나아간다. 즉 하나님은 그 자신을 그 존재가 되도록 계시하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를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인도한다. 즉 성부하나님은 창조, 성자 하나님은 화해, 성령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배진교, 53쪽)


바르트의 신 중심신학은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바르트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주관하였던 계몽주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되는 신정통주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초기 바르트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의 가능성을 긍정하려 했던 자유주의 신학을 부정하려 애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기에, 자유주의의 약점을 정확히 비판할 수 있었다. 바르트는 초기의 논문에서 인간을 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하나님의 긍정의 빛을 발견하는 변증법적 사유의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바울이 이야기를 그 당시에 비추어 스스로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로 재해석한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도덕성에 철퇴를 가함으로써 인간성의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인간은 부정되고,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인간성의 최대 부정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정이 계시 되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사고의 체계는 『로마서 강해』제 2판의 신론, 구원론, 인간론, 교회론, 종말론 속에서 발견된다.

바르트의 초기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 사상은 하나님과 인간을 철저하게 나누어 놓았다. 하지만, 바르트의 신학이 『교회 교의학』을 통해 발전되면서, 바르트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의 유비” 개념을 사용하면서 인간을 향해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하나님의 은총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만 가능한 것은 초기의 바르트 사상이나 후기 바르트의 사상이나 변함이 없었다.(이은택, 61쪽)


여기서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사실은 공론장의 개념은 첫째는 서구 시민계급의 부상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둘째는 공중의 합리적 토론으로 여과된 여론을 매개로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를 하는 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핵심적 내용은 이성의 ‘자율적인 성격’을 기초로 한 자유주의의 확장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그 구체적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공론장은 시민계급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되었으므로 근세 이후의 산물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세 이전에 현대적 의미를 지닌 공론장의 존재여부를 탐구하기는 어렵다.

하버마스는 시민적 공론장을 ‘자유주의적 모델’로 한정시키면서, 그러한 기원을 서양의 중세사회로 소급한다. 그러나 그러한 류의 공론장은 “사적 영역으로 분리해 나간 독자영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대의적 공론장(die repräsentative Öffentlichkeit)”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대의적(代議的)이라고 함은 ‘권력자가 민중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단지 과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대의적 공론장의 이름하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신분에의 상징(Statusmerkmal)” 정도가 될 수 있었다라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사회의 공론장적 윤곽은 18세기 말의 공적 사적 영역에 뚜렷한 분리를 하게 만드는 봉건주의를 성립시켰다는 의미에서 시민적 공론장의 발아점, 즉 맹아(萌芽)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하버마스는 정리한다.

일단 이러한 대의적 공론장 안에서는 자유 시민이 형성되기 이전의 봉건 영주의 지배하에 있었던 농노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전제로 자유주의 범주는 그 관찰의 매개개념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의적 공론장 안에서 본 근대시민 이전 민중은 단지 “초자연적 질서를 형성케 하는 도구이자 그 일방적인 실행자”로서의 의미만을 지닌다. 그러므로 대의적 공론장을 여론을 담는 공론장의 원초적 모습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형이상학적 특성”을 지닌 그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전석환·이상임, 240-241쪽)

 

시민사회는 공공영역으로서 시민사회의 역할 속에서 결사와 제도적 조율의 장은 물론 논쟁과 심의의 장이 된다. 사회적 차이들과 사회문제들, 문화적 정체성, 공공정책, 그리고 정부의 결정과 공동체의 업무들이 개발되고 심의되는 비입법적이고 초사법적인 공적 공간이 바로 공공영역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결사체와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사회는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심의의 자리인 공공영역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담지한다. 첫째, 규범적 합의에 이르기 위하여, 발언과 접근할 때에 평등성을 보장하고, 합의를 위한 사전 정보들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이상적인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제에 해당한다. 둘째, 합의를 도출할 때에는 여론과 공중의 의지형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는 행위 주체들 전부가 하나의 해결책을 위해 협력하기로 동의를 표하는 과정에서 모든 관점들과 이익들이 반영되지 않는 한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영역 안에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셋째, 논쟁과 심의는 자유로운 이성을 통한 합리적인 토론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극단적인 견해들은 완화되며, 협의의 산물로서 공공의 이익이 합의된다.

이상과 같은 요건들은 현실적인 공공영역과 괴리가 있을 수는 있으나, 다원적인 시민결사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공영역의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공공영역은. 정당한 규범적 합의에 이르는 루트를 제공하며, 상이한 비전들을 가진 자발적 결사체들이 협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공공영역으로서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최대로 많은 생각과 관점을 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며, 공중 사이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강영롱, 25-26쪽)

 

하버마스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공론장의 구조변동 [1962]을 통해 17세기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출현한 부르주아 공론장의 자유주의적 모델과 그 구조변동을 다루었다. 여기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의 영역으로 정의된다. 그들은 18세기 초반까지 커피하우스와 살롱, 만찬회 등지에서 궁정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는 문예적 공론장을 제도화했다. 이후 그 공론장은 중산층을 넘어 수공업자와 소상인까지 포괄함은 물론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한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공론장에서 이루어졌던 예술과 문학에 대한 비평 혹은 지적 경연이 이제 경제논쟁과 정치논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버마스(2001: 107-109)는 이러한 공론장의 확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제도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지위에 따른 사회적 위계질서와 경제적 예속관계를 초월한 동등성의 원칙. 둘째, 작품을 상품으로 접근하게 된 사적 개인들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한 해석의 탈독점화. 셋째, 원칙적으로 비폐쇄성 혹은 개방성을 전제한 토론하는 공중의 출현. 요컨대 문예적 공론장에서 정치적 공론장으로의 확장 내지 발전은 “사적 개인들이 인간의 자격으로 그들의 주체성에 대해 의사소통할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자격으로 그들의 공동이익에 따라 공권력을 규정”(하버마스, 2001: 133)함으로써 가능했다. 즉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이 소유자와 인간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갖게 된 것이다. 공론장 내에서 작동하는 자율적 인격들 간의 합리적 비판적 논쟁에 기반한 의사소통적 합의는 18세기의 유럽을 이성의 시대로 이끌었다.

그러나 제도화된 부르주아 공론장은 계몽의 문화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공론장으로 확장 침투하면서 구조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가 분리된 곳에서는 경제에 대한 규제, 조직된 압력집단에 의한 공적 관할권의 사적 이양 등과 같은 “국가의 점진적인 사회화와 동시에 사회의 국가화라는 변증법”(하버마스, 2001: 246)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상호침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사법의 공법화와 공법의 사법화가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의 경계를 흩뜨려 놓고, 가족제도는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재생산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비판적 공중의 토대를 이루었던 신문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대중적으로 상업화되면서 공중은 파괴되고 문화는 비판적 추론을 상실한 이데올로기적 소비의 장이 되었다. 의회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공적 토론의 집회에서 특수한 이해관계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을 반영하는 전시적 조작적 기능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특유의 사회학적 언어로 공론장의 구조변동, 즉 시민사회에서 의사소통적 이성이 파괴되는 구조적 경로를 역사적으로 추적했다.(홍성태, 169-170쪽)

 

이 글에서 나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공존을 위한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에 착근된 정치적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 공존은 공공성의 목적으로서 민주주의라는 이상형을,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은 공론장을 그리고 정치적 상호작용은 의사소통을 통한 정치과정을 염두에 두고서 하버마스의 개념적 맥락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공성은 공론장에 착근된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메커니즘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의 논의 안에서 공공성과 공론장을 개념적으로 환원하는 기존의 해석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다. 공공성과 공론장을 등치시키지 않고 공론장을 통해 공공성을 이해하는 접근방법, 이것이 공공성이라는 거대담론을 훨씬 더 선명하게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많은 사회 정치이론가들이 주장했듯이, 강한 민주주의는 정치체계를 비판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합리적 여론의 형성과 이를 가능케하는 공식적-비공식적 시민의 공론장이 필요로 한다(Dahlberg, 2005). 민주주의는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토론과 자율적 조직을 통해 공적 생활의 어젠더를 형성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들이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번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수동적인 응답자가 아니라 진지한 정치적 토론과 어젠더 형성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정치적 사건과 이슈들에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야심찬 일이다. 그것은 절대로 완전히 성취될 수 없는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모든 불가능한 이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다(Crouch, 2004: 2-3).(홍성태, 188-189쪽)

 

공공영역의 다원성과 복수성은 개별 성원들의 정체성이 유지될 때 성립한다. 시민사회의 성원들은 각각의 자기 이해와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차이’와 ‘다름’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이 ‘차이’와 ‘다름’은 연대와 논쟁의 전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교회됨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은 시민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된다. 물론 교회론에 따라 교회의 정체성을 달리 이해하고, 복음을 해석하는 상이한 방식에 따라 교회의 본질에 대한 비중이 다르겠지만, 다원적이고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복음을 통해 일관된 해석학적인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하우어워스의 담론은 충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는 다원적인 가치가 공존하기도 하지만, 서로 대립하고 적대하는 장인만큼, 적어도 교회만큼은 시민사회의 공적 광장에서 개진되는 다양한 견해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관용적 자세로 대화를 시도하는 일은 분명 공론장의 성원으로서 온당한 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대화는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에, 교회가 분명한 정체성 없이 의사소통에 참여하여 비판적 공개성에 노출된다면 교회의 본래적인 입장이 희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공적광장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교회에 흔들리지 않는 신학적 토대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공공신학을 주창하는 스택하우스는 삼위일체 신론을 통해 다원주의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기초를 마련한 바 있다. 교회의 정체성은 이질적인 것과 연계하고 대화하는 데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고 초월적인 규준에 토대하고 있다.(강영롱, 61-62쪽)



-공론장으로서의 교회


이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존재하는 영역으로서 하나님의 영역이다. 또한 한 사람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므로 사적인 영역이 될 수 없으며 모든 피조물과 인간의 공생의 영역으로서 공적인 영역이다. 인간의 타락에 대해 윤원근은 “무한에 대한 사모함을 무한에 대한 능력으로 과장하여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우리 인간은 타락하였다”고 말한다. 손규태는 “인간이 하나님의 공적 영역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을 종교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인간의 타락이란 공공성의 파괴를 의미하며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죄의 본성을 ‘사유화’와 ‘지배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 영역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은 인간이 자신의 죄의 본성으로서 인간과 피조물들에 대한 지배욕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듀에인 프리즌은 교회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특별한 사명을 이루고자 교회 공동체를 주셨다고 믿는다. 그는 교회를 세상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에 순종해서 사람들에게 정의와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지배욕으로 쟁취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교회의 선포와 교육은 폭력적이어서는 안 되며 폭력을 선동해서도 안 된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은 학습자의 지배욕을 자극하는 교육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협력자로 존재한다면 논리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의 협력자로 존재한다. 논리를 확장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협력자로 창조되었다면 인간은 또한 다른 인간과 동등한 위치의 협력자로 존재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는 나이와 직업과 모든 신분에서 상하적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다양성의 측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협력자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육과 예언자적인 선포는 인간의 ‘지배욕’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교회의 특별한 사명이 된다.(임승주, 33-34쪽)


그러므로 교회의 민주시민교육은 전략적이며 구체적인 사회 변혁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분위기로서 사회적 에토스를 형성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 한 사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함으로 만들어지는 신앙공동체적 스타일과 같다. 다만 교회 내부적인 스타일이 아닌 교회 밖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득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에토스이다. 이는 교회의 방향성에 대한 공유가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교회는 예배 등의 예전적 활동을 통해 각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하나님 나라로의 방향성을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삼위일체적 하나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는 교회 안팎의 사회적 섬김을 통해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 사회적 섬김의 영역은 지구적이며 동시에 지역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행위가 된다. 필요에 따라 교회는 조직체를 만들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섬김과 보호를 비롯하여 사회적 정책의 공공성을 평가하며 정책 입안등에 영향을 미침으로 사회의 규칙들이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적인 해결책이 되도록 할 수 있다.

교회의 민주시민교육은 사회변혁을 주도해야 하지만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저항할 수 있으나 기존의 사회 질서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볼 수 있도록 초대하며 스스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사회의 모범으로서 교회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임승주, 96-97쪽)


먼저 구약의 오경에서는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의 삶 형성 차원이 십계명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십계명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라는 이중적 구조는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 모두를 포괄한다. 전자는 이웃과의 관계로 나타나는 공공성의 근간을 이루며, 반대로 후자는 그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수평적 차원을 다루는 5-10계명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통제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개인적 차원의 덕목을 넘어서서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의 형성, 번영, 소명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즉 부모 공경,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 이웃의 재물 등에 관한 계명들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일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선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처벌도 엄격하게 내려졌다. 십계명의 공공성은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도덕법과 동시에 공동체적 차원의 시민법이 함께 만나는 자리로서의 공공성을 제시한다. 바울서신에는(고전 12:12-27)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가 나타나는 데 이러한 공동체들은 바울의 선교결과로 만들어진 각 지역의 신앙공동체로 유대인, 헬라인, 이방인 등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 공동체 내에서는 다양한 문제와 갈등이 발생하였으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이러한 차이와 계급을 초월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러한 공동체는 구약에 나타나는 출애굽 공동체인 이스라엘 공동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명에 기초한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였다.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전통은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전통을 통하여 이어져왔다. 특히 베네딕트(480-547)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수도생활을 위한 규칙, 즉 베네딕트 규칙서(St. Benedicts’s Rule)를 정하여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연대성이 붕괴되어 가는 당시 중세의 상황에서 성서적인 공동의 삶을 회복해 나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규칙서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막의 수도자들처럼 세상과 분리된 장소에서 고립되어 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성서적 공동체를 이루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감당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베네딕트 규칙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성경공부, 기도, 묵상, 노동, 이웃 섬김의 삶을 통하여 당시의 급변하고 무상한 삶의 상황에 대안적인 형태의 안정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장신근, 282-283쪽)


개방성, 참여, 존중과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신학과 공적영역의 관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지평 속에서 공공성을 기술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신학은 하나님 나라가 되는 세계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공적신학의 공공성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근본주의 신학은 세상에게 개방되어 있고, 세상을 존중하며,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가 과연 믿음을 지킬 수 있을지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몰트만은 “교회의 일치를 보증하는 것은 ‘성령의 사귐’이지 군주론적인 중앙집권주의가 아니”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적 존재방식이야 말로 “자연과 인간의 세계 안에서 생명력 있는 공동체의 원형”이 된다고 주장한다. 근대화에 순응(현대주의)아니면 도피(근본주의)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하고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 속에 살면서 사회의 오류들을 변혁시키는 것이다. 볼프는 “문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낯선 땅이 아니라 그들의 본향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신앙인들은 세상 속에서 “그 문화를 좀 더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가깝게 일치되게끔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아가 사회적 삼위일체는 연대성, 즉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평등하고 열려진 관계에서 하나가 되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고통 받으시는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 있었다면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고난당하셨던 것이다. 예수 안에 임재한 성령님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며 함께 탄식하셨을 것이다. 십자가는 죄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해방하기 위한 사랑의 도구였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아버지의 고통과 아들의 죽음과 성령의 탄식을 초래한 것은 바로 유일한 신적인 고통, 상실된 피조물을 향한 사랑의 고통”임을 깨닫고, 사회적 삼위일체론에서 “연대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를 발견해 낸다.(백수아, 13-14쪽)


현재 한국 사회는 소득격차에 다른 빈부간의 양극화, 전체가구의 1/5를 차지하는 빈곤층, 신 빈곤층으로 연계되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노인부양에 대한 가족책임 등 사회계층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위험의 경험과 대응 또한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중산층은 1992년 76.3%에서 2010년 67.5%로 낮아졌다. 중산층 대열에 남아있는 가구들도 주택비용, 사교육비, 일자리상실 위기 등으로 인해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는 달리 30,40대 화이트칼라층에서 72.7%가 소득분배가 경제성장보다 중요하다고 답하고 있다(조선일보, 2011, 8, 6). 이런 현상은 위험의 경험 및 대응에서 하층계급 뿐 만 아니라 중간계급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간계급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위험을 통제할 가능성은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그리고 새롭게 강화되는 위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자원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복지국가의 수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핵심적인 주체이다. 물론 국가가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시장, 가족 사이에 복지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상호의존적인 결합방식의 복지체제(welfare regime)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더 많은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가족은 적절한 소득과 일자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적절한 사회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시장과 가족 내의 위험들을 막아낼 수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관리 또는 보호가 필요하다.(김영란, 83쪽)


⑷ 성찬 공동체의 세속화로서의 사회


교회란 비종교화를 통하여 본회퍼는 교회를 “교회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말함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무작정 신적 능력과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 교회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에 고난 받으셨고 부활 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의 사귐에 거한다고 이해 한다. 교회에 대한 기본 이해는 조금 더 발전하여서 기독교 인격개념을 만들어 내어 개인주의를 벗어나게 했다. 개인주의를 벗어난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와 책임’의 문제로 까지 교회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타자를 위한 교회’ ‘세상을 향한 교회’, ‘책임으로서의 교회’로 발전해 나갔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신앙인이 그의 짧은 삶을 통해서 후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가 확신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외쳤던 교회는 오늘날 무엇인가? 그리고 공공신학과 과연 어떤 맥락에서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 논문에서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자 했던 결론은 이것이다. 교회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본회퍼도 공공신학도 이 점에서는 매우 유사함을 알게 되었다. ‘타자를 위한 공동체’, ‘공공의 선을 위한 신학’ 그리고 양자 모두 세상에 대한 섬김과 노력 속에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리고 교회 공동체안에 속하는 순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과 책임을 부여 받은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는 의미는 한국교회가 세상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하는 새로운 사명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우리 또한 그 인격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관계를 부지런하고도 성실하게 회복하여, 이 세상을 사랑의 공동체, 화해와 정의가 실현되는 공동체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본회퍼라는 한 신학자가 이미 그의 삶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즉 교회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미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는데 의의가 깊다. 이제 이 인식을 공유하는 공공신학은 사회 비판 적인 학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발전해 나가고, 기독교신학과 교회가 예언자적인 소명의식과 사회과학과 연대활동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김도영, 64-65쪽)


성찬에서 칼뱅의 그리스도의 연합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론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먼저 그의 그리스도의 연합의 개념에서 신론을 다루는 이유는 그의 연합에 의미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성찬에서 창조의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일반은총을 강조하고,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성화와 칭의를 경험하는 기독론적이고 성령론적인 의미가 있다. 특별 은총에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은 칭의를 전제하면서 계속적으로 성화 되어져 마지막 날에 성화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면서도 서로 상호의존적인 변증적인 성격이 있다. 이러한 칼뱅의 ‘연합’이라는 개념은 교회의 표징인 성찬에서 더욱 더 나타난다. 이 때 ‘연합’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거나 어느 한쪽에 강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긴장 관계에 있다. 즉 하나님의 초월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이 서로 아울러 어느 한쪽에 편중 할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성화와 칭의가 서로 구분하지만 서로 분리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서로 속성 교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본성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성찬에서 나타나는 경건은 그리스도의 연합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필수적인 상황은 경험론적이지 이론적이거나 사색적인 것이 아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경험함으로서 비롯되는 하나님의 이중 은총은 끊임없이 경험되는 주관적 인 신앙과 모든 사람에게 부여 해주는 일반은총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성화와 칭의의 이중 은총을 경험하는 자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유한한 죄성을 발견하고 죄사함의 은총을 통하여 감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반해, 일반은총은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뱅의 ‘연합’의 개념은 이 세상의 공적인 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일에 통합 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 할 수 있다.

따라서, 칼뱅의 성찬에서 경험되는 “그리스도의 연합”의 경건은 공공신학을 구성할 수 있는 원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논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작업이 요구 되지만, 여기서는 칼뱅의 그리스도의 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공공신학의 교회론를 구성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김종수, 114-115쪽)


공공성의 부재로 인하여 교회 내적으로는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교회 성장에만 일로 매진하게 하였고, 동시에 기복 신앙 일변도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교인만을 양산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장의 정점에서 동시대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쫓겨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 채 교회의 대형화만을 추구해 온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게 한국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공동체란 사회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상호 의존적 유기체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다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도 공동체성의 회복과 지속이다. 교회의 공동체성 상실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대형 교회만을 바라보며 쉬지 않고 질주해 온 한국 교회는 놀랍게도 공동체성 상실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공공성마저 상실하게 되어 이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타적이고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공격적이고 가장 무례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공공성과 공동체성의 회복이 한국 교회안에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은 교회의 핵심 요소인 예배의 회복에 있다는 점 역시 자명해졌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공동체가 함께 응답하는 예배는 ‘레이투르기아’로서, 이는 한 개인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유익을 구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사역이다.

예배는 공동체의 신앙적 진술이 표현되는 의례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실존적이며 현세적이다. 지금 여기에서 공동체로 모여 우리의 문제를 놓고 함께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 곧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분야의 모든 문제들이 예배에서 배제될 수 없다. 또한 공동체의 상황 역시 예배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경험해보는 차원도 지니고 있기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통해 구현될 세상의 이상적인 가치를 반영하며 지향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예배는 늘 그 시대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보다 더 이상적인 상태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추구하는 공공선이나 공공적 가치의 실현은 예배 공동체가 꿈꾸는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예배에서 성만찬은 공동체의 의미가 가장 잘 표현되는 장이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써 교회 공동체 전체의 연합을 이루어 내는 종말론적 실현이다. 성만찬은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먹고 마시는 공동체의 예전으로서, 거기에는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서로 평등하고 그 어떤 차별도 당하지 않는 거룩한 예전이다. 성만찬을 통해 교회는 스스로를 고립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 몸에 참여하는 유기체적 공동체임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만찬 공동체는 교파를 초월하는 교회의 연합이요 다양성 속의 인류의 연합인 것이다.(장정이, 84-85쪽)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십계명의 10가지 계명 중에서 1계명과 4계명 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을 둔 계명이다. 그리고 5계명부터 마지막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관계를 위한 규범이다. 5계명 이후에 기록된 십계명은 인간의 본성을 약화 시키고 제어하는 성격을 가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개인의 행위가 전체 공동체를 위한 질서와 사회적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만약 이 규범을 개인이 지키지 않았을 때는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았고, 심각한 손해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사형까지도 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모세 오경에 나오는 이 규범은 신앙적인 각도로 볼 수만 없을 뿐더러, 하나님의 신앙에 기초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늘의 공공신학이 지향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지켜야 할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예언서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메세지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분석해 보면, 반드시 종교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체의 운명에 대한 내용과 정의와 공의를 위한 메세지도 있었다. 아모스서 같은 경우는 공법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구약의 예언자는 한 개인의 앞날을 미리 알고 알려 주는 역할이 아닌 공공의 예언자였다. 지혜 문학 속에 있는 여러 교훈적인 가르침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덕목을 가르치는 것과 공동체의 덕목을 가르치는 교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교훈들은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공동체에 흐르고 있는 문화적인 상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의인이 되기 위한 가르침과 구약 성서의 배경이 되는 사회 전체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메세지들, 지혜문학의 공공을 위한 지혜들 그리고 포로기 시대의 공동체적 정체성은 구약성서가 창세기 처음부터 말라기 마지막가지 하나의 커다란 공공신학의 담론서라고 할 수 있겠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공공신학적 의미를 찾아 보면, 구약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의미가 나타난다. 신약에서 새롭게 나타난 제자도를 제시한다. 이것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이야기로 점철된 신약의 제자도가 보여주는 공공에 대한 관심과 실천들은 구약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삶을 통해 보여진 여러 가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는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비주류로 여겨지고 있던 그 당시 갈릴리 죄인들을 제자로 만들었다. 그 죄인들에게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공적인 삶을 회복 시켜 주었으며 이 행위는 그 당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과 마찰을 만들었다.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위계질서를 향하여 공동체의 공적인 삶을 추구했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을 결정하고 책임이 있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공공성과 관련되어 있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 당시 상식의 경계와 범위를 다르게 해석하였다. 예수는 그 사회 안에서 기득권과 종교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기존질서들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으로 해석되어 기독교 공공성의 첫걸음이 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그 관계들 속에서 소외되고 억압 받는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과 ‘함께함’을 통해서 만들어져 가는 미래적 자기 확으로 하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결국 신약성서에 나타난 기독교의 공공성은 그 공동체 안에서 늘 비주류로 참여 하던 죄인들의 사회적인 삶을 공적인 삶으로 전환 시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삶의 주변부에 살아가던 대다수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선포된,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가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은 기존의 경계선을 무너뜨려 버렸다. 예수가 새롭게 보여준 초기 기독교의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들은, 기독교의 공공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김도영, 11-13쪽)


⑸ 복음선교와 사회선교의 균형 필요


복음전도가 개인과 교회적 차원에 국한된 활동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파송으로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선포와 실천이라면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신학적 이해가 요청된다. 환언하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개인과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편협한 선교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복음전파의 내용이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남미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르네 빠딜라(C. Rene Padilla)는 이 주제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빠딜라는 복음이 개인이 각자 부름을 받아 믿음으로 결단하고 응답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동시에 복음은 온 세계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전 우주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복음이 존재 자체로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나, 교회를 넘어선 세상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오직 한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복음이 가진 우주적 차원을 바르게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단순하게 한 개인과의 관계가 아닌 전체로서의 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세상 자체는 하나님과 대립적 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요 3:1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만물의 회복”을 향한 구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이다. 복음의 우주성으로부터 교회 선교의 우주성이 선포된다.

죄에 대한 바른 이해 역시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성서에서 언급하는 죄는 단순한 개인적 또는 종교적 차원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죄는 사회적이며 우주적 차원을 갖는다. 만일 구원 개념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죄는 인간 마음에만 존재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과 연관되어 있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죄에 대한 이해는 회개와 그에 따른 변화의 영향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만일 죄를 영적으로만 간주하면 회개 역시 영적 차원에 국한되며, 죄를 교회적 차원에서 이해하면 회복된 영역 역시 교회적 차원을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범한 죄가 단지 개인적, 내면적, 교회적 차원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와 시대가 제공하는 모든 영역, 즉 물질, 정치, 경제, 철학과 이념, 사회계급, 인종, 국가, 문화 등 모든 영역과 관계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음에서 선포하는 회개로의 부름은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회개는 추상적 의미에서의 죄인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 속에서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을 향한 부름이다. 회개는 역사 안에서 구체화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며)” 세상과의 연관성에서 형성되어 있는 삶을 근본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는 구원론에서 만이 복음선포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빠딜라는 말한다.(한국일, 156-157쪽)

 

복음전도와 교회의 공적 책임은 모두 선교활동에 속한 것이지만 각기 서로에게 환원될 수 없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복음전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동시에 교회의 생명력이다. 전 세계 교회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또한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다. 복음전도는 그 복음의 내용이 담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단지 말로만 선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동반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복음전도나 사회적 실천이 더 강조되어야 할 시대나 지역이 있을 수 있다. 세속사회의 영향으로 크게 약화되어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서구교회나 이전과 같은 활발한 전도활동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정체되어 가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전하는 일에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말을 들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더 주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이 세상에서의 실천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또한 전도는 열심히 하고 교회는 성장해도 말과 행위의 균열로 인해 사회적 신뢰도를 상실한다면 전도는 그 열매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전도의 열심을 회복하는 운동과 함께 철저한 회개와 반성을 통해 복음의 실천력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의 사회를 규정하는 세속사회와 다종교사회에서 기독교의 선교는 거 부당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정체성과 열심을 회복할 목적으로 이전 19세기의 제국주의적 선교로 회귀할 수 없고 또한 해서도 안된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소통의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세속주의자들과의 소통, 다른 종교인들과의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성육신 모델이 우리에게 제시한 바와 같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평화로운 이웃으로 더불어 살면서 때로는 말로, 때로는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어야 한다. 복음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메시지 전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 안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절 바름과 소통이 함께 한다. 우리는 리처드 마우가 말한 것처럼 신실한 믿음과 공손함이 양립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선교에서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한국일, 170-171쪽)


사실 그 동안 기독교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팔복은 너무 편협적이고 전통적인 관점에서만 이해되어 왔었다. 그래서 팔복과 관련된 신앙관, 교회관들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교회적으로만 적용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팔복을 공공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의 신앙관과 교회관들의 상당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복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적 의를 끊임없이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의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은혜와 보답으로 이루어진 수직적 위계 질서를 통해서 로마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면, 팔복은 그 경계와 범주를 규정하고 그 안에서의 관계를 강조하는 기존질서에 대한 예수의 비판적 메시지요, 기독교 공공성의 선포인 것이다. 팔복은 공적인 삶의 구조를 상실한 자들에게 공적인 삶을 복원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팔복을 포함한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설교야말로 진정 공공의 이익을 위한 말씀인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각 시대별로 산상설교에 대한 해석들이 점진적으로 포괄적이고 공동체를 추구하는 말씀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결국 산상설교의 핵심인 팔복의 메시지는 개인에서 공동체로, 공동체에서 세상과의 관계에서 세상에 대한 책무를 강조한 말씀인 것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삶의 배경이 종교와 정치,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정황 속에서 새로운 대안 공동체로 출발하기 위한 메시지인 것이다. 유대교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자신의 뿌리인 유대교와 정치적 배경인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통해서 새로운 대안 공동체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팔복의 중요 메시지는 초기 기독교의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인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고 그들의 의의 정통성에 안주한 반면,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새로운 의를 선포하며 거룩함을 새롭게 정의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들의 의를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의만을 생각했다면, 예수는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바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선포는 산상설교와 팔복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팔복은 율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된 기존의 유대적 삶의 공공성에 대한 비판과 불신을 내포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과 그에 대한 해석이 그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팔복은 새로운 삶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 틀이 기독교적 공공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세상의 질서로 대변되는 기독교 공동체 밖의 질서를 하나님의 질서와 대립시켜며 세상의 질서의 불의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팔복은 세상의 질서에 대안적 질서를 선포한 말씀이다.(인용태, 212-213쪽)


칼빈은 자신의 신학사상을 통해 정치사상을 피력했는데 그는 정치사상의 근원이 신의 주권(sovereignty)에 있다고 했다. 좋은 정치는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그 어떤 것보다도 탁월하고 훌륭한 은사”라고 칼빈은 말했다. 칼빈은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을 땅에 행하는 자”라고 한 예레미야 9장 24절 말씀을 근거로 정치, 사회 문제에 기초가 되는 신의 주권론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정치사상의 기초는 주권 개념이다. 국가권력의 기원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께 있다고 보는 것이 칼빈의 사상이다. 칼빈주의의 관점은 “영역 주권”을 강조한다. 인간 생활 속에는 각자의 고유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책임을 가진 다양한 기관이 있지만 이 모든 권위는 국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나온 것이다. 때문에 국가에게는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정당한 권위가 없다. 온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위만을 인정될 수 있다.

칼빈을 옹호하며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칼빈주의자에 의하면, 국가는 인간의 자연적 본능으로 인하여 자연히 생겼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사회적 충동에서 국가가 생겼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는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사람에게 이 “군서 본능”을 주셨다고 믿어 이 세상이 만일 범죄로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 국가가 있었을 것이다고 예상한다. 사실상 하나님의 나라 곧 완전한 국가가 있었을 뻔하였지만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한 국가가 아닌 죄악세계에 있는 국가의 기능이 존재하게 된 것이며 이 권한은 인류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정부에게 주신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로마서 13장 1~4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부에게 칼을 사용하는 권한과 권선징악 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주장한다. 로마서 13장은 국가윤리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성경말씀인데, 이 본문도 국가권력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력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법을 주셨고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국가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며, 순종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박지숙, 8-9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 놓은 내면적인 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법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자연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연법은 “양심이 옳고 그름 사이를 충분히 분별하게 하고, 동시에 그들 자신의 증거에 의해서 유죄함을 증거”하도록 하는 ‘양심’의 법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양심은 무엇인가? 『기독교 강요』 Ⅳ권 10권 3절에서 양심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감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일종의 매개물로서, 사람이 아는 것을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지 못하게 하며 그 죄과를 인정할 때까지 추궁한다.

그러므로 이 양심은 사람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끌어가며, 사람에게 붙여 놓은 감시인과 같이 모든 비밀을 감시하고, 하나도 어둠 속에 숨기지 못하게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양심은 자연법과 내적인 법을 구성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어떠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후에, 자연법은 희미해져서 그 내용을 명백하게 알 수 없게 되었다. 자연법은 오류의 흑암에 덮여서 더 이상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양심 또한 그 역할을 감당치 못하고, 둔해졌고 교만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연법상으로는 너무 희미한 것들을 분명히 드러내고, 우리의 맥 풀린 양심을 일깨우며 우리의 마음과 기억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려고 기록된 법”, 즉 십계명을 주셨다. 따라서 자연법을 명백하게 표현한 것이 도덕법(십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모든 사람의 마음에 자연법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사회생활의 붕괴를 막아 주며, 둘째, 서로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칼빈의 입장에서 자연법이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만든 법에도 하나님의 율법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방인 철학자들, 특별히 플라토를 읽고 계속하여 인용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법과 이방인들의 법을 공부하면서 성경의 도덕법의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정한 법에 들어 있는 이러한 정의와 형평을 보장하는 내용들은 희미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 놓은 자연법 내지는 양심의 결과라고 생각하였다.(주규문, 43-44쪽)


정치도 그 한 예이다. 정치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그 주권으로 모든 세계를 통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대리자로써 권세자, 관리들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모든 권세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지 않고, 교회와 예배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사회의 관계 속에서 질서와 평안이 유지되고, 공평과 정의, 그리고 사랑과 화해가 지켜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리들은 이런 국가를 이루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렇게 칼뱅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국가’란 단지 중세와 같은 형태의 교회의 지배를 받는 국가를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교회와 예배가 보호되는 국가를 말하지만,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 정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국가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 칼뱅은 몇 가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는 ‘귀족정치와 민주정치가 혼합된 정치 형태’, 즉 현대적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우수한 정치형태라고 하였다. 특히 정권을 잡은 통치자가 국민의 복지를 해치는 독재적 통치를 할 경우는 ‘국민의 관리’ 즉 현대의 ‘의회’들을 통해서 저항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민주주의의 권력분립의 원칙에 해당한다. 칼뱅의 후대 칼뱅주의자들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국민의 직접적인 저항을 주장하였고, 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과 연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칼뱅은 권력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통치되는 ‘법치주의’를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정의가 반영된 국가의 법도 하나님의 율법과 마찬가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뱅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정치사상은 결국 근대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특히 칼뱅의 후예인 칼뱅주의자들은 칼뱅 사상을 더욱 급진적으로 발전시켜서, 직접적으로 정치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 형성에 이바지 하였다.(윤강희, 85-86쪽)



3. 사회계약


⑴ 청교도와 미국


오늘날 미국의 정치적 자유주의 핵심에는 여전히 사회계약론이 놓여있다. 사회계약론이 발흥하는데 원동력이 된 것은 정치사상의 세속화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정된 국가의 의무는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공동선이란 절대적인 공평과 자비와 정의 같은 도덕적 견지에서 규정되었다. 도덕이란 종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공동선”을 지지하는 종교적 개념은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종교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순전히 세속적인 기초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도전에 응한 첫 번째 인물이 토마스 홉스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정치질서의 궁극적 기초라고 주장했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상태”는 적대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이다. 각 개인은 자기 생명을 보존할 자연스런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도둑질이나 살인을 자행해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개개인이 자기 방어권 같은 특정한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그것을 시민 당국에 양도한다면 더 유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결정하는 시점에서 국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권리의 양도를 계약이라 하며, 홉스에게는 이것이 모든 도덕적 의무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회적 의무라는 것이 더 이상 공의 같은 초월적 원칙에 의거하거나 시민사회를 위한 “공동선”에서 유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의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권리 일부를 계약에 의해 양도하기로 결정할 때 발생하는 순전히 개인적 선택의 산물일 뿐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기초가 보다 고상한 선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한 생물학적 충동에 있다고 보는 다윈보다 앞선 자연주의의 한 형태인 것이다.

존 로크도 이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사회질서의 궁극적 근원을 굶주림이라고 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 권리는 먹을 권리이며, 죽음의 위협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굶주림에서 온다. 개인들은 먹을 것을 찾거나 스스로 지배하기 위해 노동하다 보면 사유재산을 창출하게 되는데 자기 재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과 사회계약을 맺게 된다. 그런데 로크는 홉스나 루소에 비해 국가에 훨씬 제한된 역할을 부여했기 때문에,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회 계약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시민 사회의 기초를 더 고상한 선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이익에 눈 뜬 개개인을 시민사회의기초로 제시했다. 로크가 그려 낸 사회상은 원자론적 모습을 띠었고, 거기서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각 개인과 그들의 결핍과 필요가 전부였다.

루소는 시민사회의 유래를 “자기애” 혹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적인 본능에서 찾았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자들 모두가 정치 질서의 궁극적 기초를 순전히 세속적인데 둔 셈이다. 루소는 시민사회의 토대를 종교에서 유래한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스런 생물학적 본능에서 찾았다. 정치적 정통성의 유일한 근원은 바로 각기 고립된 자율적인 개인들의 합의라는 것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전제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계약론은 미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정치이론이자 세속화를 부추기는 세력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사회계약론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는, 초월적인 도덕적 이상을 거부하고 생물학적 충동이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공통분모를 정치질서의 토대로 삼았다는 사실이었다. 종교적 관점은 주변으로 밀려난 반면에, 국가는 근대사회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이양 받게 되었다.

최대의 비극은 18세기와 19세기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일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이층적 개념을 포용한 나머지, 정치철학을 하층부에 속한 “과학”으로 여겼고 그에 대한 독특한 기독교적 관점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당시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세속적 정치 철학, 특히 존 로크의 사상을 수용했다.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로크의 정치이론이 시민사회의 토대를 공평과 정의 같은 도덕적 선이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자기이익에 두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지 마스덴이 설명하듯이, “정부에 관한 로크의 계약론은 사실상 청교도의 언약 개념과 매우 흡사했다. 그래서 본질상 세속적인 그 이론적 기반을 비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층부를 철학적 중립지대로 취급한 탓에 그리스도인은 이질적인 철학을 인식하는데 실패했고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수용한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영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세속화 과정으로 설명이 된다. “홉스와 로크의 자유주의는 자기보존과 부에 대한 욕망이라는 비교적 낮은 인간적 목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스탠리 커츠는 쓰고 있다. 이는 “근대성의 핵심에 있는 만성적 환멸”을 잘 설명해 준다.(박지숙, 34-36쪽)


1627년 매사추세츠 만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신령한 사명을 주셨으며, 자신은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언약을 맺었다고 믿었다. 이들은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이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이 같은 선민의식은 후세대의 미국인들에게도 전해져, 미국인은 자신의 나라가 특별한 땅이며, 산 위의 빛나는 언덕이며, 세상을 비추는 의의 횃불이며,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초기 청교도의 신념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영토 팽창주의는 기독교의 진리를 만방에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일종의 미국의 숙명이라는 종교적 수사로 합리화되어, 멕시코 전쟁(1846-48)은 미국의 청교주의를 대륙전체에 전파하는 것으로, 인디안의 추방이나 학살은 이교도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국가를 건설하라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의 일부로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은 대부분 도덕적인 표현으로 제시되어 왔고, 국제사회의 질서를 위한 정의로운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외교정책의 뿌리 역시 미국 청교도의 선민의식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청교도들이 가진 언약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과 구조적으로 유사했으며, 현실적 적용에 있어서도 유사했다. 그들은 언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법적 유효성을 지닌 공식 계약 또는 약속으로 간주했다. 이 같은 약속은 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요소까지도 포함하고 있었고, 그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신약적 규범에 따르기 보다는 구약적 규범에 충실하였다. 신약은 하나님과 개인의 인격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규정하는데 비해 구약의 율법은 신앙 공동체의 집단 규범을 집행하는데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임창건, 494쪽)


비록 미국 청교도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인 삶을 강조하며, 교회정치의 이상을 회중교회 형태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지만, 세속적 정치의 현실적 영역을 도외시 할 수는 없었다. 영혼과 윤리적인 영역을 지배하는 제도가 교회라면, 육체와 법을 지배하는 영역이 국가라는 정치체계일 것이다. 청교도들이 교회와 국가에 속한 각기의 영역들을 어떻게 관계시켰는가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청교도 사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청교도의 뉴잉글랜드가 신정주의(theocratic)냐 민주주의냐에 대해 수년 동안 상당한 역사학적, 정치학적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비록 최근의 해석들은 신권정치가 우세하였다는 종래의 학설을 부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교도의 정부를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로 생각할 수는 없다. 애드먼드 모간(Edmund Morgan)은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청교도의 견해보다 더 널리 오해되어온 것은 없다”고 말한 바와 같이 이 주제는 다양한 오해의 소지를 포함하고 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 교회와 국가는 모두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극히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교회와 국가는 동반자이지만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하여, 당시의 목사였던 죤 카튼(John Cotton)은 “하나님의 제도(교회와 국가와 같은 통치 제도)들은 친밀하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동일시 될 수 는 없다”(재인용, Andrews 1:450)고 말하였고 죤 대이븐포트도, “하나님에 의해, 모두의 번영을 위해, 같은 장소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대등한 지위”(재인용 Miller Orthodoxy 240)로 간주하였다.

청교도의 뉴잉글랜드에서 교회와 정부는 경건한 사회를 이룩한다는 동일한 기본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에 교회와 정부의 역할은 복합적으로 결부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리를 선출하는 투표권이 교회의 정회원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정부 관리의 선출과정은 성직자의 선출과정과 거의 일치했다. 그들은 천상의 시민권을 가진 자만이 지상의 시민권을 책임있게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와 유사한 의미로 이해 되었다. 정치적 권리행사에 있어 불신자와 동일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청교도 사회에서는납득될 수 없는 궤변이었던 것이다. 비록 뉴잉글랜드에서 교회와 국가의 역할이 중복되는 경향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두 영역이 분리된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동의하였다. 1646년에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교회와 국가의 역할이 토의된 결과, 두 기관의 이상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 “교회는 요구하고 관원은 명령을 내린다. 교회는 자유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관원은 권위의 방식으로 행동한다. 모세와 아론은 동행하여 하나님의 산에서 서로에게 입맞추었다”(Williston 193).

종교가 권력화 되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정치세력과의 결탁이 전제되며, 이 과정에서 소수종파의 희생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종교의 본질적 관심은 초월적 대상에 주어지며, 그 영역 또한 추상적이기 때문에, 만일 종교가 고유의 영역을 고수한다면, 세속적 권력이 자리할 틈이 없다. 또한 정치세력이 만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법질서의 영역에 자신을 위치시킨다면, 종교의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으며, 개입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역사에서 반복되는 종교와 세속정치가 결합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종교와 정치의 연합이 발생한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고유 영역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경제적 이득과 세속적 권력을 정치집단으로부터 보장 받는다. 그 댓가로 정치집단은 그들의 고유영역에서 발견될 수 없는 양심과 윤리 등 추상적인 가치체계의 정당성, 곧 그 정권의 명분과 도덕성을 종교 집단으로부터 보장받는다. 그 결과 종교지도자들은 경제적 이득과 권력을 보장받기 위해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정치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켜 주며, 정치집단은 다수 종파를 구성하고 있는 종교에 차별적 특혜를 부여한다.(임창건, 499-500쪽)



⑵ 사회계약론 총론


주지하다시피, 사회계약은 서로 결사하여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단체를 형성하기로 동의한 자유인들간의 약속이다. 룻소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한 자유는 자연의 선물이다. 그 반면에 성경은 이미 서문에 지적하였듯이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다.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 선물인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정치적 역사는 해방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들을 종속시키기 보다는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독특한 경험으로서 그 관계는 각 관여자에게 대하여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관계까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스라엘이라고도 하는 야곱과 하나님의 관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초기에 인상적인, 그러나 해석하기 어려운 두 사건이 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생자를 바칠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시는 것(창세기 22장)과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그가 그러한 겨룸을 해낼 수 있었음을 보인 것"(창세기 32:22-28)이다. (음선필, 100쪽)

 

구약에서 "법의 지배"는 더욱 더 명백하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백성(인민)의 동의는 하나의 공식적인 행위이며, 또한 그 수락은 일련의 자기에 대한 축복과 저주로 확정된다. 어느 누구도 "(그 법에) 더하지도 또한(거기에서) 하나라도 뺴서는" 아니된다. 그 법은, 선명하게도, 언약궤 안에 보관되어 있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 법은 신민뿐만 아니라 왕도 구속하고 있다. 왕들은 스스로 등사하고 부지런히 읽도록 요구된 법을 지키도록 특별히 지시받는다. 구약의 법의 지배의 문서로서 갖는 위대함을 헤아려 보려면, "하나님과 법 아래서" 통치하여야 하는 왕들의 대체적인 의무를 이행시키기 위하여 보통법이 얼마나 많은 헛수고를 하였는지 생각하여 보라.

왕은 자신을 인민보다 높여 나가는 생활수준을 상정하여서는 아니된다. 이것은 "그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도록 왕에게 요구되었다. 물론 군주의 지배는 법의 지배를 침해하기 쉽기 마련이다. 그래서 왕정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도록 백성에게 훈시하는 것이 구약의 위대한 지혜중의 하나이다.(음선필, 104-105쪽)


시민(citizen)이란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도시국가를 뜻하는 ‘치비타스 (civitas)’나 ‘폴리스(polis)’ 등의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박효종·이진희, 2005: 1). 그렇다면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정체성(citizenship)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할까? ‘citizenship’은 권리 의무 체계로서의 시민권이면서 윤리적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이자 다른 한편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덕성(virtue)으로서의 시민성이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이종렬, 2009: 167). 공동체의 주체인 시민과의 관계 및 시민의 정체성(시민성)에 대한 분명한 파악 없이 정치공동체 모델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연구자는 시민과 정치공동체와의 관계에 대한 규명 속에서 도덕적 자유주의라는 정치공동체 모델 실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민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도덕적 자유주의는 독립된 판단자로서 ‘개인’을 부각시키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와의 상호 연관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사회계약론에서 가정하는 인간관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인 한편 본래적으로 특정한 공동체 내에서 존재하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고립될 수 있는 자아라면 구태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필요도 없기에 사회계약 자체가 요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도덕적 자유주의에서 표방하는 개인 역시 공동체 내적 개인으로서 공동체주의자들이 비판하는 “무제약적 자아(unencumberd self)”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도덕적 자유주의에서 추구하는 시민과 국가와의 이상적 관계는 존중과 배려에 기초하여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다. 공동체가 간접적으로 개인의 자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이 다시 공동체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해나가며 공동체에 영향 주게 된다. 개인이 국가 혹은 공동체로부터 초월할 수 없듯 국가 역시 그를 구성하는 개인의 본성이나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주의에 입각한 가치 간의 압력 속에서 국가가 행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한 일들을 하며 개인의 집합체인 국가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한편으로 전체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편협되지 않고 폐쇄적이지 않은 열린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개인주의와 공동체의식을 이상적으로 통합시킨 시민의 덕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도덕적 자유주의에 기반함으로써 공동체적 이상과 개인의 자유에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개인과 국가의 이상적인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두 주체가 긴장감 있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을 유지해나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와 개인의 상호 존중이며, 이러한 이상적 관계가 실현될 때 둘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며 시민과 국가와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장효민, 186-188쪽)


17세기 들어 사회계약론의 내용으로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평등하다는 개인주의 원리가 내포되고 사회의 형성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고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계약의 근거를 종교적 권위에 의하지 않고 대신 일종의 자연적 관계로 파악하여 정치적∙사회적 인과관계를 동의나 계약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보였다. 특히 계약의 대상에 있어서 신이나 왕과의 계약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계약에 의한 의무 제정과 그를 통한 평화보전을 주장하는 사회계약 담론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사회계약론은 홉스, 로크, 루소 등에 의해 전개되었고 이들이 활동한 17, 18세기를 사회계약론의 전성기라 불리우게끔 하였다. 릴리(Patrick Riley)는 17, 18세기에 논의된 사회계약설을 근대사회계약론으로 규정하며, 근대 사회계약론의 특성을 주의주의의 한 형태라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대 사회계약론은 개개인의 동의(Consent)에서 정치적 의무와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을 찾으려는 시도로서,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가 정치적 의무와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 사회계약론은 특정 공동체의 권력을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구성원의 의지와 합의로부터 정치적 의무와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을 찾으려 했던 담론이다. 통치자 또는 왕은 하늘로부터 정해진 것이므로 신민들에 대한 지배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로부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당사자들 간의 약속이자 계약으로 규정하는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이화용, 126쪽)


사회계약론에 대한 연구자의 주장은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사회계약적 구도는 가치상대주의가 아닌 도덕적 규범 위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다원주의의 사실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규범을 포용력이 높은 메타적인 포괄적 교설인 자율, 책임, 존중을 핵심 가치로 하는 도덕적 자유주의의 기반 위에 구성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로써 자유와 도덕,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계약이 공정한 것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절차적 방법 측면에서의 보강을 통해 사회계약이 지배의 수단이 아닌 협력과 결집의 조건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사회계약의 당사자로서의 권한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계약에 참여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성숙한 인격체로서 간주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함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도덕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무론에서는 공적 숙고를 통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정치 규범을 진정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로 여겨도 되는지 의심할 수도 있다. 정치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이념을 설정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계약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몫으로 주어진다. 이와 같은 시민의 정치 참여는 그러한 참여과정에서 시민이 가치에 대한 입장을 형성, 개선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장효민, 246쪽)


이러한 고전적 계약이론은 최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당시의 자연법 사상과 자유방임주의(laissez faire)의 강한 영향 속에서 태어난 ‘계약의 자유(Freedom of Contract)’라고 하는 관념을 그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이 의미하는 것은, ‘계약이란 자유로운 의사에 기반으로 하는 양 당사자의 합의’라는 것, 그리고 ‘계약의 체결은 양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계약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익에 관하여 합리적 판단능력을 가진 인간상이 전제가 되어 이루어지고, 계약체결 시에 의사형성의 자유 및 선택의 자유만 확보되어 있으면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계약은 항상 가장 합리적 혹은 정당한 계약으로서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되어 왔다. 따라서 반대로 당사자의 한쪽이 잘못된 판단에 의해서 이행의 결과, 스스로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계약을 체결해버렸다 하더라도, 당사자는 그 계약을 어디까지나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법원에서 허가하는 것도 이행의 강제에 그치고 가혹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구제는 삼가야 한다고 여겨진다. 여기에서 당사자간의 특약에 항상 열후한 계약법의 임의법규적 성격과 법원에 의한 계약관계에의 사후적·외재적인 개입에 대한 억제적인 태도가 나오게 된다. 또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 계약체결 시 당사자의 의사 및 그 해석을 기초로 하여 분쟁해결을 하기 때문에, 의사라고 하는 요소가 계약의 내용이나 결과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전적 계약이론은 의사를 핵심으로 체계화된 계약법 이론, 즉 의사이론(Will Theory)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전적 계약법 이론이 그 이전과 무엇보다도 구별되는 분명한 점은 법 준칙(rule)의 일반화(generality)이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계약법은 형태에 있어서 일반적인 법 준칙 뿐만 아니라 가장 실질적인 계약에 적용되는 법 준칙들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계약법은 이러한 법준칙의 일반화로 인하여 추상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이처럼 추상성을 띄는 계약법은 계약의 내용과 계약 당사자에 대한 모든 특징들의 변경이 있더라도 계약법 규정으로 존속하게 된다.(변용완, 14-15쪽)


사적 자치는 다음과 같은 측면들에서 그 한계 및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 사적 자치가 법질서 내의 본질적 구성요소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 사적 자치는 강행법규, 신의칙, 권리남용금지, 거래안전 등의 내재적인 제약원리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구체적인 법률관계에서 사적 자치를 제한하여 정의나 형평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실제에 있어서 그와 같은 규율을 할 수 있는 개별적인 세세한 법규범들이 마련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지만 모든 것을 상정하여 구체적이고 세밀한 법규범들을 설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즉 당사자에게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 계약이나 법률의 규정은 당사자가 장래 처하게 될 상황 변화를 미리 예측해서 완전히 대비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신의칙이라는 추상적 가치개념을 사용하여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을 필요가 있으며 또한 당사자의 계약이나 법률의 규정이 신의칙이라는 사회적 선(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신의칙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정 내지 보완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아야 한다.

성문법은 한번 제정되면 경화(硬化)되기 쉽기 때문에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해서 성문법이 살아있는 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법규범이 세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현실사회에서의 넓은 법률관계 등에서 실질적 법규범 내지 법의 일반원칙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연결통로를 찾아내어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이때 그 통로의 하나로서 기능할 수 있는 도구로서 담론화될 수 있는 것이 신의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변용환, 131-132쪽)


사람은 누구나 계약 을 통한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그 계약에 참여할 상대방이나 계약의 내용 및 형식에 관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율적 의사에 기초해 당사자 간의 합의가 도출되면 각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하여 내놓은 결정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 즉, ‘계약’이라는 ‘법률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적 자치의 핵심 요소로서 국가는 자율적 주체(actor)들 사이의 교환이행을 통한 협력을 가능하도록 하는 계약상 의무들을 승인하고, 사적 당사자들은 어떤 활동을 누구에게 수행할 것인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을 계약자유원칙이라 한다.

소유권 절대 및 과실책임주의와 더불어 근대계약법의 기본원칙인 사적자치의 가장 전형적인 표현 형태인 계약자유원칙은 법적으로는 법질서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사적 당사자 간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당사자 간의 합의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해 외부로부터의 강제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 계약체결의 자유, 계약을 체결할 경우 누구를 상대방으로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를 의미하는 상대방 선택의 자유, 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내용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를 의미하는 계약내용 결정의 자유, 계약당사자의 의사합치만으로 계약은 성립되며 특정의 방식을 요하지 않는다는 계약방식의 자유로 나타난다.(최한미, 4-5쪽)


따라서 계약자유에서 진정한 자유는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지배도 받지 않고 온전한 주체로서 설 ‘비지배로서 자유’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지배로서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계약내용과 관련되지 않고 합당한 이유도 없는 성별이나 인종, 연령, 종교 등의 바꾸거나 양도할 수 없는 개인적 특성에 근거한 차별은 곧 상대방선택의 자의적 행사에서 초래되는 것이며, 이러한 자의적 행사는 곧 타인에 대한 지배를 의미한다. 이것은 계약자유가 아니라 계약자유를 유월한 것이 된다. 인권이라고 총칭될 수 있는 그러한 가치들 앞에서 상대방선택의 자유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어떠한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진보적 변화와 자유개념의 새로운 인식 하에서 상대방선택의 자유는 과연 사법상의 기본원리로 존재할 수 있는가? 계약자유에서 자유를 비지배의 개념으로 이해함으로써, 어떠한 외부규범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약법 자체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받아들 수 있고, 천부적 권리인 인권 앞에서 항상 그 행사가 부정되어야 할 상대방선택의 자유는 언제나 보편타당하게 작동해야 할 ‘원리’로서 인정될 수 없다. 나아가, 상대방선택의 자유의 원리성이 부정됨으로써 계약자유원칙 또한 그것을 지탱하던 하나의 기둥을 잃고, 원리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선택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로 여겨지기 위해서 그것은 개인 간 거래 촉진이라는 계약법의 존재이유를 버리고,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지배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약이 당사자들의 의사합치로 표현될 때, 차별적 계약이나 계약 거절은 일방의 의사에 의한 타인의사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으로 계약자유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데올로기화로 인해 계약의 중심과 각각의 법체계로부터 내몰린 규범들은 계약자유에 대한 개입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은 계약에 있어서 추가적인 규범들을 부가한다. 아티야(Atiya)는 계약법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하여 계약법을 인간의 상호작용 내지 협력활동에 관한 법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런 인간의 협력활동에는 동의, 이득의 교환, 손실적 신뢰, 보호주의적 가치, 집단적 가치, 배분적 정의 등의 다양한 요소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법을 하나의 전형적 행위를 배타적으로 규율하는 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계약자유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처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계약에서 문제를 파악하면서 계약의 기본원리로서 합의존중원칙과 계약자유원칙을 명시하고, 그러한 기본원리에 기초한 구체적인 계약 제도를 조립하여 전통적 계약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곧, 판덱텐 체계의 상대화와 대륙법적 체계를 초월한 보통법(commom law)으로의 접근을 의미하는 것이며, 보완과 제약을 통한 계약자유의 상대화를 실현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요시다 카츠미(吉田克己)는 기존의 민법체계론을 쉽게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계약자유의 보완과 제약에 있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으면서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사법관계 속에 인격적 이익의 관점을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논의를 마무리 짓고 있다. 이 글에서 논했듯이 공화주의적 비지배의 개념을 통해 자유를 재인식함으로써, 외부적 제한이 아니라 계약법 자체에 인권의 가치를 심는 작업이 절실하다. 계약자유에서 자유가 어떠한 형태의 지배도 받지 않고 온전한 주체로 설 자유로 이해될 때, 능동적 주체들의 진정 자유로운 활동이 공동체적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고, 계약법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사적 영역에서의 인권보장을 실현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최한미, 99-100쪽)


계약자유라는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두 의미, 즉 법적·형식적, 그리고 사실적 의미에서 파악할 수 있다. 법적·형식적 의미에서 계약자유라 함은, 개인에게 사적 자치의 일환으로서 계약을 통해 자율적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능을 법적으로 부여·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반면 사실적·실체적 측면에서 바라본 계약자유는 이와 같이 법적·형식적으로 보장된 권능을 타인과 계약관계를 맺으면서 실제로 관철할 수 있는 효율적 기회를 말한다. 계약자유를 통한 자기결정의 사고는 바로 이 두 의미의 충족, 즉 계약자유에 대한 법적 장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체약의사의 결정에서 사실적으로도 방해받지 않았을 때에만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계약자유에 대한 법적 의미와 사실적 이해는 개별 사안에서 자주 긴장·상반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계약자유가 법적으로는 보장되어 있더라도 사실적 측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 손쉬운 예로서 계약체결을 원하는 자가 취득한 목적물의 용도 또는 가격사정 등과 같이 이른바 동기의 착오에 빠져 계약체결에 이르게 된 경우, 또는 급박한 자금압박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아끼던 물건을 매각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 경우 체약자는 공히 법적으로는 의사결정의 권능을 갖고 있지만 잘못된 사정 인식 또는 급박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 같은 권능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실상의 기회를 갖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저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는 계약의 구속력을 부정하면서 그 취소·무효를 인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 경우와 같이 그저 사실상의 이유로 계약자유가 실현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그 구속력을 언제나 부인할 수 있다면, 오히려 법질서가 계약에 부여한 기능, 즉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미래의 법적 생활관계를 안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의 실현을 크게 저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계약의 의사결정에 내재한 두 측면, 즉 한편으로는 자기결정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구속·자기책임의 사고가 표현되고 있다.

물론 현행민법이 사실적 계약자유의 침해에 대하여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의 간략한 예를 본다면, 민법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민법 제103조와 제104조(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와 폭리행위)가 명시하듯이, 성문민법은 의사결정의 자유에 대한 침해행위의 불법성 정도(민법 제110조의 경우),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현저한 균형상실과 피해자의 궁박·경솔·무경험의 악용(민법 제104조의 경우)의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비로소 사실적 계약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계약을 무효로 만들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이를 벗어난 지점에서 사실적 계약자유 보장의 확장을 위한 판례법의 노력이 시작할 것임도 암시받을 수 있다(아래 III.).(김상중, 727-728쪽)


고전적 계약법은 당시 시대에서 요구되던 경제활동에 대한 사적 자치와 자유방임적인 접근법에 가치를 두어, 엄격한 ‘객관론⋅표시주의’를 탐구하고 자유경제에서 계약관계의 촉진에 중점을 두었다. 고전적 계약법에서의 계약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간의 고립된 교환거래(isolated bargain between independent, self-interested individuals)’를 상정하고 있다. 즉, 이성적인 개인들이 특정한 교환에 있어 자신의 이익을 신중히 계산하여 다른 무엇인가를 반대급부로 하는 경우에만 약속을 하거나 이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이행의 조건을 신중히 정의한 합의(agreement)를 통해서 거래를 구체화함으로써, 계약불이행시 법적 구제의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고전적 계약법은 계약을 사적 질서(private ordering)의 영역으로 보고, 합의에 의하여 당사자 스스로 만든 법으로서의 계약법을 상정한다. 불법행위책임과 달리 계약책임의 근거를 계약 당사자의 동의(consent)에서 구하기 때문에, 법원의 역할은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권리를 강제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며, 계약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은 의무를 지우지 않도록 제한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법원은 계약으로부터 발생한 보호되어야 할 권리를 근거없이 침해하는 것이 된다.(김현수, 750쪽)


⑶ 홉스


사회 및 국가 속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삶을 모색하는 것은 개인에게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의무를 부과하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 권력은 자신의 권력 의지를 추구하면서 폭압적인 형식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왜 굳이 사회나 국가를 형성하면서 살아야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독립적이라고 하더라도 홀로 살 수 없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단지 개인이 사회에 우선한다는 것과 개인의 결합을 통해 사회를 설명한다는 것이지, 개인 혼자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단위를 개인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근대 정치철학에서 사회적 삶 및 국가의 정당성 확보는 중요한 문제였으며, 개인의 자유의지에 기초하여 사회, 국가를 구성하는 결합 형식, 정치적 권력과 지배의 정당성을 논한 근대의 대표적인 정치이론이 사회계약론으로, 사상가는 홉스(T. Hobbes), 로크(J. Locke), 루소, 칸트(I.Kant)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자연상태, 계약, 사회상태의 3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국가 혹은 정치사회의 기원과 토대를 분석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자연상태와 그 구성요소로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 개인을 가정한다. 자연상태의 개인들은 자신들의 안전, 질서 혹은 자유와 권리 등 사회적 삶의 편익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의지에 입각한 자발적 계약을 통해 사회상태로 이행하여 인공 인간(인격)인 국가를 수립하여 그에 복종한다. 계약을 통한 정치사회 및 국가의 수립은 정치적 권력(지배, 통치)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지만, 또한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의 기준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회계약론이 자연상태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그 역사적 실재성을 증명하는 것이 기본적 목표는 아니다. 자연상태의 논증보다는 정치사회 혹은 국가의 성립, 즉 인간의 사회적 삶(정치적 권력, 질서, 지배, 통치) 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본성을 통해 폴리스를 자연적인 것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존재의 정당성을 물을 필요가 없었고 정치적 삶을 자유로운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에서 출발하는 근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면서도 왜 굳이 사회, 국가를 구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당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사회계약론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기초한 자발적인 계약이나 동의라는 절차를 통해 정치권력의 수립이라는 사회적 결사의 형식(지배의 정당성)을 제시하였다(금민, 2008: 44-49, Kersting, 2006: 40).(류청오, 228-229쪽)


계약의 절차 역시 단선적이지 않다. 홉스는 두 가지의 절차를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절차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맺어지는 “예비 계약”으로서, 이는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자연상태에 만연해있는 갈등과 위험,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에 처한 개인들은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곧 자기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홉스는 바로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제1 자연법이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없을 때에는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과 유익을 추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계율 또는 일반 규칙이다. 이 규칙의 첫 번째 부분은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는 자연의 첫 번째 근본적인 율법을 포함한다. 두 번째 부분은 자연권의 요약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보호하라는 것이다.”(L 14장 4절, p.80―강조는 홉스) 이러한 자연법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제한적인 자유, 곧 자연권을 포기하거나 유보하자는 데 동의를 하게 되며, 이러한 동의는 계약을 지켜야 할 의무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계약이 어떠한 강제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의무 역시 강제되지는 않는다. 이 의무는 자연법의 명령으로부터 유래한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의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당연히 이 예비적 계약은 쉽게 파기되거나 위반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원래의 계약의 목표인 평화와 안전을 달성하기가 어렵게 된다.(진태원, 138-139쪽)


16장의 논의는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주목할 만한 차이점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16장만으로는 홉스의 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스피노자가 계속 계약론의 문제설정을 견지하고 있는지에 관한의문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특히 『신학정치론』 17장과 18장(및 3장과 5장)에 나타나는 히브리 국가의 역사에 관한 스피노자의 논의를 참조해야만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피노자가 16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계약론의 요소들은 매우 추상적인, 또는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전히 이론적인 것mere theoretica”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16장의 논의는 홉스의 계약론처럼 형식주의적이지는 않지만, 실제의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또는 존재했던 계약에 관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17장에서 제시되는 계약론은 구체적인데, 이는 17장(및 18장)의 주요한 분석 대상이 히브리 국가의 역사, 정확히 말하면 이중적인 계약을 통해 창설된 히브리 국가의 역사적 전개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주어진 국가가 자신의 형태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게 이러한 조건들은 일차적으로 신민들의 복종을 확보하는 것, 신민들이 이유야 어떻든 간에 “주권자의 명령에 일치하게 행위”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히브리 국가의 분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시되는 스피노자의 언급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히브리인들의 역사의 전개과정을 검토해볼 생각인데, 이는 국가의 안전 및 번영을 증대시키기 위해 주권자가 신민들에게 일차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국가의 보존은 본질적으로 신민들의 충성심과 유덕함, 그리고 명령들을 수행하는 굳건한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은 경험과 이성이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것이다.”(같은 곳, p.540)

그렇다면 왜 하필 히브리 국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가? 이는 무엇보다도 히브리 국가가 실제로 계약을 통해, 더욱이 정치적 계약과 종교적 계약이 결부된 이중적 계약을 통해 창설된 매우 드문 역사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실 스피노자가 히브리 국가의 역사를 분석하는 절차는 정확히 자연상태에 대한 묘사, 이러한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 그리고 이 계약을 성립하게 된주권적 권력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 국가에 대한 분석은 스피노자가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계약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먼저 스피노자의 논의를 간단히 정리해보자.(진태원, 155-156쪽)


어쩌면 이에 대한 답을 사회계약론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회계약론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어떻게 시민사회로 이행하였는지를 가상적인 이론의 틀 속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적이란 계약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며 도덕적으로도 사실 무의미하다(킴리카, 15). 그렇지만 사회계약론은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 내지 정부 존재의 정당성에 대한 논리를 담고 있으며, 자연적인 인간 본성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은 일반적으로 철학과 윤리학, 또는 정치학과 행정학 그리고 법학의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 사회계약론에는 두 흐름이 있다. 물리적 힘의 자연적 동등성을 강조하는 유형과 도덕적 지위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유형이 그것이다(킴리카, 1993: 17). 전자는 최초의 선택상황인 자연 상태를 개인 간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능력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반면 후자는 모든 인간의 원초적 무지 상태에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자는 합리성의 기준에 따라 합의가 이루어지지만 도덕성을 훼손하는 반면, 후자는 도덕적으로는 공정한 합의를 도출하지만 그 결과는 원초적 무지에 대한 임의성으로 인해 합리성을 결한다고 한다. 홉스가 전자의 모형을 제시하였다면 로크는 후자를 이어받았다(박정순, 1993:178-179).(배진영, 2-3쪽)


상호 계약이 어느 한 쪽에 의해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 계약은 결코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계약 불이행에 따른 벌을 강제적으로 가하고 불이익을 줄 수 있기 위해서 인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홉스에 의하면 이 기구가 바로 카먼웰더(commonwealth), 즉 국가이다(Hobbes, 1967: 113-114). 이로부터 불멸의 신이 아니라 국가라는 유한한 신으로부터 자기를 평화 속에서 보존하는 기구를 마련하게 되며, 국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의 힘과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카먼웰더라는 인격체를 수행하는 자를 주권자(sovereign)라 하며 그는 주권(sovereign power)을 갖게 된다. 그 외 모든 이들은 그의 신민(臣民)이 된다(Hobbes, 1967: 132).

홉스는 곳곳에서(Hobbes, 1967: 129, 132) 국가의 존재 이유를 개인의 ‘자기보존’과 ‘자기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함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복종은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이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의한 것인 만큼 합법적이다. 그런 만큼 국가는 신의 섭리가 깃든 자연적 산물이 아니라 인간 의지의 인위적 산물이다. 국가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홉스의 논리는 그 당시의 전통 자연법사상과는 다르다. 기존의 자연법사상에 의하면 국가는 신의 섭리에 따라 개인에 우선하여 존재한다. 이 결과 개인의 행위는 국가의 목적에 종속되며 언제든지 그것에 의해 침해받을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홉스에게 있어서 국가는 자기보존을 위한 수단적 도구의 역할을 할 뿐이며,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에 앞서 개인의 자연권이 우선임을 항상 근저에 깔고 있다(박창열, 2003: 362-363). 자기보존과 자기이익이 사회 구성의 원초적 원인이기 때문이다.(배진영, 7-8쪽)


홉스에게 있어서 하이에크와 같은 지식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질서에 관한 그의 사상은 복합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소지를 안고 있다. 홉스의 주권론과 군주제의 옹호는 일단 국가의 설계에 의해 이상적인 경제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설계주의자 또는 구성주의자들의 논지에 이바지한다. 홉스는 그의 서문에서 ‘리바이던’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하였다(Hobbes, 1967: 7).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개인주의와 전제주의의 두 얼굴을 담고 있지만 그가 그의 책 이름을 ‘리바이던’이라 명명한 것은 개인주의 옹호자로 자신이 비추어지기 보다는 국가의 역할과 임무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는 홉스가 국가를 개인 간의 질서를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한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 많은 논자들로 하여금 홉스가 선택한 질서는 국가에 우위를 두고 있는 질서라고(민경국, 2007: 113) 판단케 한 근거인 듯하다.

그러나 홉스는 개인 간의 질서에 대해 언급한 바는 없다. 그가 ‘리바이던’에서 견지하고 있고 늘 마음에 담고 있는 정치적이고 도덕적 사고의 기반은 개인의 ‘자기보존’과 ‘자기이익’추구이기 때문에(Flathman, 2002: 8-9) 그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질서가 개인보다 국가 우위라는 것은 선급한 또는 겉으로만 보이는 결론이지 않느냐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글에서 줄곧 견지해온 “홉스의 국가는 강력하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논지를 감안한다면 홉스가 그리는 질서가 그의 표지 그림에서처럼 반드시 인위적 질서라고 규정할 수만은 없다.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존재를 필요했고 또한 개인 간의 교환을 중요시한 만큼, 그가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였지만 개인 간에 형성되는 자발적인 사회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자연권 우선은 개인 간의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국가가 인정하고 보호해주며 더 나아가 자유로운 경쟁 틀을 깨는 어떤 세력도 차단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홉스는 생각하였다고 해석해도 결코 무리이지는 않다.(배진영, 21쪽)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와 안전을 얻는 만인에는 자연상태에서의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을 것이다. 능력과 욕망에서는 평등해도 바로 그 상태의 한 지점, 이를테면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의 만인의 힘(부)은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또 사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상태의 비참함은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강자는 더 큰 강자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약자는 계속해서 복종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이들 모두는 타인에 대한 공포와 안락함에 대한 욕망을 얻기 위해서 이성의 계율의 도움을 받아 사회계약에 이른다.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모두가 느끼기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어 국가가 설립된다.

바로 이 때 만인은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말로 백성은 주권자에게만 복종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인가? 개인은 자연상태로부터의 공포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도 충족되었는가? 각 개인은 자연상태의 비참함만 면하고자 사회상태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에 들어온 것이다. 국가가 그것을 해줘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홉스의 방책은 공평과 공익에 기초한 분배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공동의 평화와 안전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소유권의 설정과 복지의 문제를 말하고는 있지만, 그의 국가는 시민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힘(부)의 차이와 그로 인한 계급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여전히 홉스의 국가는 개인간의 적대를 화해시키기 위한 ‘질서’의 창출자 또는 매개자인양 중립적인 모습을 띤다. 오히려 절대적인 국가권력의 힘과 그것이 주는 공포는 현존하는 피지배 계급이 자신의 삶을 변혁하고자 하는 희망을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지배계급의 국가의 역할을 하고 만다. 비록 홉스의 본래 의도가 계급으로부터 독립되어 절대적으로 존재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이라는 아젠다를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에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홉스는 내전이 신구 지배계급간의 전쟁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 지배 계급으로부터 확실히 독립적이면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서 그들을 복종시킬 ‘리바이어던’ 기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들 신구 계급 아래서 착취 받았던 피지배 계급의 삶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홉스에게 그들은 국가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인민은 단순히 자기보존에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누리면서 자기 향유를 원하는 자기 삶의 주체이다.(송석현, 117-118쪽)


홉스의 사회계약은 신민들 상호간에 맺어지는 것으로, 리바이어던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에 구속받지 않고 신민들에 대해 천하무적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계약에 동의하게 된 동기에 해당하는 ‘생명과 안전 보장’과 관련해서는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반면 신탁으로 설명되는 로크의 통치계약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한정부를 옹립하는 것이다. 국가의 입법권, 즉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국민에게 공포되어 주지된, 확립된 영구적 법에 의해 통치를 행할 의무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국민의 평화, 생명과 재산, 안전 및 공공의 복지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으로도 행사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적적’ 규제를 받는다. 또한 위임받은 사람들을 제외한 누군가의 어떤 명령도,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든 또는 어떠한 권력을 후원자로 갖든, 공중이 선출하여 임명한 입법부로부터 승인받지 못하는 한 법으로서의 효력이나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 ‘절차적’ 규제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승인이 없으면 법은 법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Locke, 1963). 또한 심지어 정부의 폐지를 결정할 정도로 책임을 묻기도 한다.

로크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를 양도할 수 없으며 개인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자연법의 한계(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지배할 권리를 협정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Locke, 1963). 단, 어떤 사회에 있어서 그 사회가 형성된 목적에 불필요한 것은 그사회에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계약을 통해 변경될 수 있으며 조정될 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Locke, 1963). 이러한 측면에 입각하여 볼 때 로크는 자연법의 한계 내에서 입법 내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가능성의 여지를 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는 사회계약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루소는 주권은 양도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분할할 수도 없다(Rousseau, 1968: 70)고 보아 통치체에 존재와 생명을 부여하기 위한 만장일치에 의거한 “결합”의 계약만을 인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의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은 채, 결합의 원초적 계약을 제외한 정치적 의사결정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그 밖의 모든 사람의 의견을 강제한다며 직접민주주의의 손에 의지한다.(장효민, 54-55쪽)


⑷ 로크


잘 알려졌다시피, 이와 같이 개인의 권리, 국가의 구성, 혁명의 권리를 설파하는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미국혁명, 헌법 제정, 주권(states’ rights) 운동 등, 미국 사회를 형성했던 핵심적인 사건들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의 서두에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로크의 사회계약론의 논지를 그대로 수용하며 이를 식민지 독립 선언의 전제로 삼는다. 즉 그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피치자의 동의” 아래 정부를 구성하는데, “정부가 이 권리를 충족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현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서 새 정부를 세울 권리를 가진다”고 밝힌다. 그리고서 제퍼슨은 조지 3세(George III)의 폭정에 허덕이는 현재의 식민지 상황이 로크가 혁명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의한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 국왕이 식민지의 입법권, 사법권 등을 교란한 예들을 철저히 규명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독립선언서」는 원래 식민지인들이 영국인과 동등한 시민으로서 영국 정부의 피치자가 되기로 계약을 맺었으나, 조지 3세의 학정이 지나치게 심각하여 피치자의 자연권을 위협했기 때문에 이 계약을 파기하고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부에 저항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로크가 설명한 “자연상태,” “시민사회,” “정부,” “백성의 저항의 권리”라는 개념들을 가감 없이 차용하여 식민지의 반란, 즉 미국의 독립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제퍼슨을 비롯한 건국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미국의 상황에 충실히 적용함으로써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세우며 미국 민주주의라는 선진적인 정치 체제의 기초를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는 이 건국 문서를 시작으로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로크의 제 2 정부론 이 제시한 정당한 시민사회와는 거리가 먼 형태로 발전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제퍼슨이나 조지 워싱턴과 같은 예에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미국혁명을 이끈 지도자들 대부분이 노예소유주(slaveholders)이거나 노예무역에 긴밀히 연관된 이들이었고, 이들이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노예제와 관련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확고히 다지는 방향으로 새 국가의 사회계약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수사에서는 「독립선언서」에서 보듯 매우 민주적인 방향으로 로크의 이론을 따랐으나, 실질적으로는 주로 사유재산, 특히 노예제에 대한 자신들의 소유권 보호를 위해 이 이론을 차용했다.(김은형, 250-251쪽)


이와 같이 초월주의 영향 아래 쏘로의 사회참여 이론은 자연법을 창출하는 도덕성의 근원으로서 개인의 권위를 한껏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개인을 “더 높은, 독립적인 권력으로서, 또한 정부 권력의 근원으로서 인정”하고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정부가 지배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Civil Disobedience” 243). 게다가 에머슨의 초월주의에 근거한 쏘로의 개인은 로크나 제퍼슨이 말하는 “피치자”(the governed) 집단 전체의 힘을 아우르는 광대한 존재로서, 정부라는 기계의 오작동을 발견했을 때 로크의 “자연상태”와 “시민사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를 교정할 수 있는 막강한 사회적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쏘로는 “몇몇 사람들이 정부에 무심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정부 범위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자유롭게 자연상태와 시민사회를 넘나들 수 있어야, 즉 탈퇴와 합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왜곡된 정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잊혀진 자연법의 정신을 다시 상기하여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부패한 정부에서 과감히 탈퇴하여 자연상태에 일시적으로 머물려는 현명한 소수, 즉 초월주의적 개인의 시도를 정부가 가로막는다면, 이는 “개혁”을 원천봉쇄하는 행위로서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쏘로는 “현명한 소수”로 대변되는 도덕적이고 독립적이며 강력한 개인의 자발적 저항행위를 강조하는 초월주의적 사회계약론을 제시함으로써 집단적인 행위를 정의하는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김은형, 256쪽)


한때 확고한 지적 설득력을 지녔던 사회계약론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바로 그 지적 설득력의 허구성으로 인하여 18세기에 이르러 반사회계약론자들의 공격을 통해 점차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국가와 정부는 계약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립된 게 아니라’하는 역사주의적 시각에 의해 사회계약론은 철저하게 비판받게 되었다. 그러나 왜 사회계약 담론이 나왔는가를 알 수 있는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실제 개인들의 계약이 이루어진 바 없다는 사실에 의해 사회계약론이 비역사적이라는 지적은 매우 협소한 역사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홉스의 자연상태이든, 로크의 자연상태이든, 자연상태가 제시된 이유는 정치사회 형성을 주장하기 위한 논리전개를 위한 분석 도구로서이다. 자연상태는 실제 존재했던 현실이 아니라 단지 철학적 가설에 지나지 않는 허구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계약을 만들고 그것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사회계약 담론에서 자연상태는 필요한 것이었고, 이 점에서 그것의 역사성 논의의 관건은 현실적 실체의 여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계약이 홉스처럼 절대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시되었든, 로크처럼 휘그당에 의해 시민적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나왔든, 이는 시대적 장벽을 벗어나기 위한 기제였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부란 통치란 저절로 생긴 것 혹은 주어진 것이며 신민들의 의지와는 별개의 것이라 간주되던 시대로부터 통치자와 피치자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한 17, 18세기 사회계약 담론은 새로운 소통을 위한 방식이었다.

가우(Gough)도 지적했듯이, 이미 사회계약론이 국가의 역사적 내력에 관한 설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하더라도, 국가와 신민간의 상호적 권리와 의무를 논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얻기 위한 논리적 전제에 관한 분석으로서의 사회계약론의 의미는 여전하며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이다.(이화용, 147-148쪽)


로크의 계약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자연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합리적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조건이다. 그는 홉스가 자연상태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연권으로부터 절대군주제의 정치권력을 이끌어내는 자연권 개념의 불일치를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계약에 의한 시민정부의 수립을 제안한다. 그 계약의 정당화 근거를 인간의 자연권과 자연적 의무에 관한 자연법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적인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서 신의(truth)와 신뢰(faith, trust)를 준수하는 것이 인간적인 의무이다. 로크가 정치권력의 근거로서 동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공동선의 관념들 즉 사회적 유대 그 자체의 가치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묵시적 동의 개념은 비판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애매하지 않다. 묵시적 동의는 로크가 필머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고 묵시적이라는 말뜻 그대로 명시적 동의 이외의 기본적인 평등과 자유를 위해 모든 계약 당사자들이 반드시 복종하고 지켜야할 정치적 의무와 근거이다. 묵시적 동의의 의무조건들도 분명하게 제시된다. 그것들은 성문화된 법조문에 없는 것뿐만 아니라 지배자가 선량한 미덕을 갖출 것,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고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 그리고 구성원의 재산 보전 및 공공복지라는 목적을 추구할 것 등이다. 요컨대 묵시적 동의는 자연법에 토대를 둔 명문화되지 않은 동의라고 정의할 수 있으므로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정치의무론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의 여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계약과 동의 개념의 근본적인 토대는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자연상태를 지배하는 법칙이다’는 것이 「통치론」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이다. 따라서 그 단순한 정의에 비추어보면 그의 자연법은 자연의 작용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이해관계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개념이라고 오해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법에 관한 여타의 정의들은 이성과 동의어로 사용되며 공동사회를 위한 법을 준수해야 할 도덕적 의무근거와 모든 실정법의 정당근거로서 규정된다. 로크의 「인간오성론」의 입장에서 비추어보면 자연법은 유명론의 본질에 불과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지만 그러나 「통치론」에서 자연법에 관한 인식가능성은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자연법에 관한 신학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전통적 관념을 인류의 평화와 보존을 위하여, 또 모두가 평등하게 정치권력을 합리적으로 제도화해 나아가는 척도로서, 그리고 그것의 준수를 정치적 복종과 도덕적 의무로서 규정한다. 그 경우 로크는 자연법의 인식가능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목적과 관련해서 자연법을 파악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로크의 「통치론」은 자연법이라는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하여 계약과 동의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정치권력을 제도화하려는 제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대에서도 고전적 사회계약론의 전통을 원용하는 것은 복종과 불복종의 의무근거를 사회적 규약에 둠으로써 인간에게 중대한 이득을 확보해 줄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자연적 권리와 의무의 근원을 자연법 관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박성호, 241-242쪽)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에 관한 로크의 해석은 칼빈이나 필머와의 비교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로크에게 부모의 권리는 영구적인 것도 아니며, 신에게서 비롯한 것도 아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 역시 영구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나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를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하거나 종교의 영역에서 도출하지 않고 효의 영역 자체에 국한하는 것은 정치적 지배와 복종을 정치의 영역에, 그리고 신에 대한 예배를 종교의 영역에 국한하는 것과 병행하여 이루어진다. 이로써 로크는 종교에서 정치를, 정치에서 종교를, 그리고 양자 모두에서 부모-자식 관계를 독립시킨다. 로크는 서로 다른 복종의 영역들을 구분함으로써 정치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종교 역시 독자적인 영역으로 만든다. 부모와 자녀 간의 일시적이고 자연적인 지배ㆍ복종의 관계를 통치자와 신민 간의 계약적이고 합리적인 지배ㆍ복종의 관계와 구분하는 작업이 『통치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통치자와 신민 간의 정치적인 지배ㆍ복종 관계를 신과 인간간의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지배ㆍ복종의 관계와 구분하는 작업은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업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에 로크의 자유주의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해된다.

로크는 수직적 위계 속에서 서로 겹쳐 있던 복종의 영역들을 수평적으로 분화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정치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다른 영역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종교 역시 정치의 영향력이나 가족적 관계에서 자유롭게 만든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리를 인간의 자연적 성장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보호의 권리이자 의무로 해석함으로써 로크는 가족 내의 가부장적 지배에서 해방된 근대적 개인의 존재를 또한 예견하였다. 그러나 이 개인은 모든 사회적 제도의 간섭에서 벗어난 원자적 개인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 속에서 다만 그 제도들 간의 비지배적 관계를 통해 자유를 추구하는 ‘세계-내-존재’로서의 개인이다. 만약 우리가 로크의 정치사상을 자유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의 자유주의는 이런 개인들이 시민으로서 상이한 복종의 영역들을 구별하는 기술을 의미할 것이다.(공진성, 200-201쪽)


로크 법철학은 일단 전통적인 신학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통치론” 제2권의 서두에서 로크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이 부여한 자연법의 범위 내에서 자유를 구가한다고 한다. 즉, 신은 이 세계를 공유하도록 인간에게 이양했고,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이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611). 더욱이 신은 인간이 욕망과 합목적성 및 본능의 절대적 지배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 속에 머물러 있도록 강제한다(§ 77). 이로써 인간이 자연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이성, 언어, 본능은 신의 작품인 창조를 유지하고 이를 확대한다는 목적에 기여한다. 성욕과 같은 본능은 개인들을 가족으로 결합시키고, 자기보존본능은 이미 자연상태에서도 평화로운 생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집단을 형성하게 만든다. 신의 법을 인식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이성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며,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말살할 자유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인식하게 해준다.(윤재왕, 358-359쪽)


국민의 저항권과 혁명권에 관한 로크의 이론에서 말하는 국민은 분명 국민의 다수인 무산자가 아니라, 소유권자이다. 물론 이 점은 계몽과 해방의 사상가인 로크를 미래를 기획하는 예언자나 소시민을 위한 민주주의자 또는 잠재적 자코뱅주의자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안겨 줄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히 로크는 그러한 위상을 갖지 않았고, 또한 그 자신 그런 위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로크는 자본가였고, 노예거래회사의 주주였으며 증권투자와 영국은행의 창립주주로서 거부가 된 자였다. 또한 이론가로서 로크는 타인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권을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성립된 소유권만큼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부자와 빈자의 법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오로지 공공복리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서만 의회에서 대표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정당화한다. 자유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의 초기저작에서와는 반대로) 재산적 자유에 집중한다. 독일관념론 철학자들이 로크를 “천박하다”고 비난하거나, 동시대인들 가운데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이 그의 관용원칙(principle of tolerance)이 진정한 종교보다는 상업의 발달을 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로크의 법철학과 국가철학이 갖는 현실적 의미는 그가 속한 계급의 세속적인 욕구를 매우 세속적으로 표출했다는 데 있다.

그의 이론적 출발점은 17세기 영국에서 여전히 통용되던 봉건적 소유개념과의 대립이었다. 이 소유개념에 따르면 국왕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토지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갖지 않으며, 단지 봉토나 영지로서 일시적으로만 지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유개념에 대항하여  로크는 일관되게 초기자본주의적 소유개념을 제시하여, 소유권자의 욕구에 적합한 사회의 정치적 구조를 기획했다. 소유권자에 대한 입법의 복종, 입법에 대한 행정의 복종,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자들의) 법 앞의 평등에 대한 구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용에 대한 그의 호소마저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인 고려에 바탕을 두고 있고, 국가권력의 제한에 대한 확고한 입장 역시 소유권자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관용론”에도 나타나 있다. 즉, 소유권자에게는 일용노동자가 “회교도여서 금요일에 휴일을 갖든 아니면 유대인이어서 토요일에 휴일을 갖든 또는 기독교인이어서 일요일에 휴일을 갖든” 아무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집을 사라고 명령할 수 없는 자가 천당을 살 수 있는 그 자신의 방법을 내게 강요할 수 없고, 내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규칙을 명령할 수 없는 자가 내가 나의 영혼을 구원할 방법을 내게 명령할 수 없으며, 내 부인을 선택할 수 없는 자가 나의 종교를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관헌은 내게 어떠한 종교도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헌이 내 이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내세에서 보상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로크의 사상 전체가 소유권과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전개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다만 이러한 소유절대주의가 맥퍼슨이 말하는 “소유개인주의”의 전형으로서 철두철미 친시민적, 반무산자계급적인 극단적 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시대사적 배경을 무시하거나, 특정한 측면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로크가 인식론의 차원에서 생래적 원칙과 생래적 행위규칙(권리와 의무)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소유에 대한 권리 및 그에 따라 타인의 생명과 소유를 존중해야 할 의무를 자연법으로, 다시 말해 생래적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점에서 인식론과 실천철학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하여 혹시 사소유권자들의 사회 및 사소유권자들의 국가가 보편타당성과 영원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가 의미하는 자유가 오히려 소수의 경제적 자유와 다수의 경제적 부자유를 정당화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가능성은 그의 국민개념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윤재왕, 373-375쪽)


로크의 정치사상은 정부가 창설되기 이전의 자연상태로부터 출발한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향유하며 오로지 자연법에만 구속된다. 로크는 자연법과 이성(reason)을 동일시하며, 이성을 통해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생명, 건강, 자유,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다만 자연법은 개인이 자신을 방어하거나 인적, 물적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또는 타인의 권리침해를 억제하거나 처벌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침해를 허용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자연법은 모든 사람에게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부과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기보전에 관한 권리도 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은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하여 타인을 자의적이며 파괴적으로 지배할 수도 없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타인을 그의 절대적인 권력에 복종시키려고 한다면, 그 순간 타인과의 전쟁상태가 시작된다. 홉스(Thomas Hobbes)와 마찬가지로 로크 역시 자연상태에서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 보전권을 가지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같은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심, 불완전한 이성, 악의, 격정, 복수심에 사로 잡혀 자연법에 대한 권리들을 남용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타인을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자연상태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보전권 중에 자연적 권력을 공동사회에 양도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공동사회는 사람들의 자연적 권력을 현실적으로 행사할 시민정부(Civil Government)를 창설한다. 여기서 보듯 공동사회가 형성되고 정부의 정치권력이 성립되는 데에는 동의와 신탁이라는 두 개의 매개행위가 개입된다. 가장 우월한 공동체의 권위를 지닌 시민정부는 사람들 간의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상태의 위험성을 제거한다. 결국 공동사회와 시민정부는 자연법을 보다 적정하게 실현하고,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로크의 시민정부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강승식, 4-5쪽)


집행부의 강력한 국가긴급권에는 그것이 필요하나 남용될 수 있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로크는 이에 대해 일정한 해법을 제시한다. 공공선에 대한 위협은 국가비상시기에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에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되며, 입법부보다는 집행부가 일차적인 정책결정권자로 기능한다.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시민사회를 보전한다는 중대한 공익을 위해 집행부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거나 심지어 법률에 반해서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의할 점 로크가 집행부의 대권을 절대적인 권한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대권을 인정하되 이에 대한 제도적 통제를 강조함과 동시에 대권의 행사가 독재의 길로 접어드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헌법과 공공선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는 그의 사고에서는 집행부가 공공선을 위해 헌법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 곧 공공선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보면 대권의 행사가 의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을 초헌법적 권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 마디로 로크의 권력체계론은 대권을 수용할 만큼 유연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절대적 통치나 주권적 독재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크의 권력체계론에서 집행부가 대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법적 위기를 초래할 뿐이다. 집행부가 법을 제정, 판단, 집행하는 기능을 독점한다면 이는 시민사회 전체를 향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집행부가 이를 감행한다면 정치권력을 공유하는 입법부와의 전쟁상태가 유발될 것이다. 로크는 만일 집행부의 이 같은 권한 남용을 입법부가 묵인하거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는 시민들이 직접 집행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집행권에 대한 신탁자로서 시민들은 집행부가 헌법을 파괴했는지 여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긍정하는 경우에 시민들은 저항하거나 시민정부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직할 자연적 권리를 갖는다. 이와 같이 로크는 저항권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한 권력체계가 여러 가지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어떤 자유주의헌법도 집행부가 절대권력을 행사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이 그들의 자유를 독재자에게 헌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강승식, 25-26쪽)


로크는 종교에 대한 합리적 토대를 확립하려고 했지만 종교가 합리적 영역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이성의 영역 이외에 그 진리가 색다른 방법 또는 계시에 의해 신으로부터 전달되는 신앙의 영역을 인정했다. 계시는 이성을 사용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해 줄 수도 있고,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진리를 전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종류의 지식도 얻을 수 없을 때 그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 신이 사람에게 준 능력이 판단이며, 우리는 개연성만 있는 곳에서 판단에 의해 믿음, 동의 또는 의견을 갖게 된다. 자연과학의 명제나 역사적 명제는 개연성만 갖고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것들에 동의한다. 계시의 명제들은 최고의 확실성을 전달하고, 제시된 것이 일상 경험, 그리고 사물의 일반적인 경로와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지 아니면 전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단순한 증언을 기초로 하여 가장 높은 정도의 동의를 요구한다. 그것은 그 증언이 속일 수도 없고 속임을 당할 수도 없는 존재인 신 자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크는 계시의 주장이 수용되고 믿어지기 전에 이성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제한을 가한다. 계시의 주장은 그것이 신으로부터 왔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기 위해서 이성과 성서에 의해 판단되어야만 한다. 이성은 모든 일에서 우리의 최후 심판관이며 안내자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계시의 타당성 확립이라는 이성의 과제는 개연성 판단의 하나며, 로크는 계시 판단의 특별한 기준을 규정하지 않았으므로 지식이나 관찰이나 경험에 대한 일치, 증언의 타당성이라는 개연성 판단의 일반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계시에 주어진 동의의 정도는 그것이 신적 계시일 개연성보다 더 높을 수 없다. 로크는 무엇이 신적인 것인지 어떻게이성이 판단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며, 성서가 신의 계시일 개연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판단이 가능하며 성서는 사실상 신적인 기원에서 온 것이라고 믿는다. 확실성에 대한 이성의 능력을 초월하는 문제에서 로크는 명백한 계시에 동의가 주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재영, 34-35쪽)


종교가 매사에 침투해 있던 마지막 시대를 살았던 로크가 고민했던 문제들은 오늘날 더 이상 종교적인 것들이 아니다. 가톨릭교도와 무신론자를 배제하였지만 이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월권으로 본 그의 관용 정신은 오늘날 비기독교에 관한 관용을 비롯한 세속적 다원주의의이론적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찾고, 자유와 관용이라는 미덕을 인류에게 선사했으며, 초월의 세계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지식에 대한 이성의 추구를 멈추지 않게 한 로크를 흄은 “감히 신앙이란 이성의 일종에 지나지 않고, 종교는 철학의 한 분파일 뿐이며, 도덕, 정치, 또는 역학에서 진리를 확증하는 일련의 논증들은 자연신학이든 계시신학이든 모든 신학의 원리를 발견하는 데도 항상 사용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근대적인 의미의 종교 철학은 로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이재영, 51쪽)


자연권(natural rights)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언급될 수 있는 조건으로부터 등장하는 권리”(Becker, 1977: 16)라고 정의될 수 있는데, 의도적으로 설계된 실제 제도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와는 구분된다. “사회 안정 혹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정당화되는 권리들이 자연권이다-비록 최소 필요의 목록이 인간이 창조한 제도의 특별한 내용에 의해 크게 영향 받는다고 할지라도.”(ibid.: 16)

자연권은 대체적으로 위와 같이 정의내릴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자연법에서 근원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연법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자들은 자연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대체적인 견해는 인간이 만든 실정법이 최종적으로 수렴해야 하는 본질적으로 고정된 이상 혹은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이상이나 표준은 과거에는 자연이나 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법학자들은 합리적 존재 및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nature)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연법과 자연권은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자연법은 채무자이든 채권자이든, 주인이든 노예이든, 구속되었든 자유롭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현재에 살고 있든 미래에 살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즉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이런 자연법과 자연권은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고 인간의 본성에 관한 가치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궁극적 원리를 추출하며, 그 원리에서 자연권이 유도될 수 있을 것이다.

로크는 자연권으로 생명, 자유 및 재산에 대한 권리를 제시하였는데,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는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에 대한 권리가 제시되었고, 프랑스의 인권선언에서는 자유, 재산, 안전 및 압제에의 저항에 대한 권리가 제시된다. 최근에는 학자에 따라 다양한 권리들이 훨씬 더 많이 제시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생명에 대한 권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암묵적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생명권에 대해선 거의 이의가 없는 것 같다. 로크는 정부에 관한 둘째 강의에서 “자연 상태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의무를 지우면서 자연 상태를 규제하는 자연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연법인 이성은, 그 법만을 참고할, 모든 인류에게 모두가 동등하고 독립적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혹은 재산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Locke, 1690: II, §6; 강조는 필자의 강조)고 주장한다. 로크는 생명권, 건강권, 자유권 및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생각한다.

동일한 곳에서 로크는 “모든 사람 각자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여야 하며……따라서 유사한 이유로 인하여 그 자신의 보존이 경쟁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는, 가능한 한, 나머지의 인류를 보존해야 하며, 그리고 그는, 범죄자에게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 아닌 한, 생명 혹은 생명의 보존에 공헌하는 것(자유, 건강, 자손, 혹은 다른 좋은 것들)을 앗아가거나 손상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ibid.:II, §6)

로크는 생명권을 제일 중요하다고 보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경쟁적이 아닌 한, 다른 사람의 생명의 보존도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의 보존에 공헌하는 것, 즉 자유, 건강, 자손, 재산 등을 앗아가는 것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환언하면 그는 자유, 건강, 자손 및 재산에 대한 권리는 사실상 생명권에서 파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박상수, 175-176쪽)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각 개인은 다음과 같은 권력을 가진다고 한다. 첫째, 자연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자신과 타인이 보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력이다. 둘째, 자연법을 위반하여 저질러진 범죄를 처벌하는 권력이다. 이와 같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모두 자신의 신체와 소유물을 보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법을 집행하고 지원하는 정치권력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인간을 구속하는 자연법의 기능이 제한적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써 첫째, 자연 상태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공통된 척도로써, 공통의 동의를 통해서 수용되고 인정된 법률과 확립되고 안정된 잘 알려진 법률이 없다. 둘째, 자연 상태에서는 확립된 법에 따라 모든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널리 알려진 재판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자연 상태에서는 비록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이를 지원해주고 그 적절한 집행을 확보해주는 권력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법이 인간을 구속하지만 자연법의 기능은 제한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 자유, 재산의 상호 보존을 위해서”, 시민 사회를 설립해서 자연법을 집행하고 지원하는 정치권력을 확립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자연 상태가 평화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전쟁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 상태는 양면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연 상태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이기 때문에 평화의 상태이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전쟁 상태가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는 언제나 전쟁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전쟁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자연 상태의 다른 한 측면은 ‘가능한 전쟁 상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로크에 의하면 시민 사회가 설립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는 힘의 사용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힘의 사용이 전쟁 상태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즉 인류 역사의 초기에 나타난 자연 상태에서는 때때로 폭력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평화롭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법이 인간을 구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법이 인간을 구속하므로 인간은 이성에 따라서 생활해 간다. 따라서 자연 상태는 평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지은홍, 19-20쪽)


로크는 자연법을 그 근거로 하여,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가능한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상호 동의를 통한 계약에 의해 시민 사회를 설립한다고 하였다. 그 자연상태에서는 자연법이 인간을 구속하므로, 자연상태는 평화의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자연상태는 자연법을 집행하고 지원하는 정치권력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자연상태는 전쟁상태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한 전쟁상태’에서는 자기 보전권과 소유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으므로, 로크는 인간이 시민사회를 설립하게 된다고 하였다. 로크는 시민사회를 설립하게 되는 또 다른 계기는,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 본성이 불완전하게 된 데 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불완전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권력 하에서 소유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민사회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이러한 시민 사회의 설립을 신의 의지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의 논의는 자연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가지는 자연권과 자연법 집행권을 시민 사회에 양도함으로써, 동의를 통한 계약에 의해서 시민 사회가 설립된다고 한다. 즉 시민 사회는 신이 그것의 설립을 의지하고, 인간이 그것을 설립하는 데 서로 동의해서 계약함으로써 기원된다는 것이다.(지은홍, 72-73쪽)


⑸ 루소


룻소는 자기 전후의 대부분의 성경연구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작품에 대한 구약의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다른 책에서와 같이 '사회계약론'에서도 계약 또는 언약을 자기들이 선택하는 정치형태의 기초로 주장하는 학자들과 수없이 논쟁하였다. 또한 히브리 종교를 논하면서도 그는 국가계약의 원형에 해당하는, 여호와의 이스라엘 자손간의 또는 이스라엘 자손과 역대 왕들과의 언약에 대하여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마땅히 따져보아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정치구조의 날카로운 관찰자인 룻소가 왜 그렇게 진정한 '국가계약‘을 간단히 무시하였을까?

이 복잡한 질문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유일한 대답은 바로 위에 언급한 것이었다. 즉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종교적 영향력과 회의에 깊이 매어 있었지만 룻소는 자신의 정치적 선호에 대해 종교에 뿌리를 둔 사상을 의식적으로 흡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이 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서, 또한 성인시절의 지속적인 경험으로서, 무의식적이지만 강력하게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힘으로 남아있었다고 보인다. 그의 '고백'을 읽어보면, 룻소가 성인기에 불면증으로 어려워 하였는데 그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성경을 읽어서 적어도 대 여섯번 통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그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구약 곳곳에 스며있는 '계약의 교리'에 의하여 [무의식적이나마- 영향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음선필, 94-95쪽)


그는 사적인 이익의 추구를 막아 일반의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서는 유능한 입법가와 그 법을 준수하기에 적합한 자질을 갖춘 인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사회계약의 체결과 그에 다른 법률을 제정하는 시점에 그러한 유능한 입법가가 등장해야 하는데, 이는 요행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법률을 준수하기에 적합한 수많은 자질을 구비한 이른바 고상한 시민을 현실 속에서 찾기란 지난한 과제였다. 결국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일반의지를 잘 드러내고 사적인 이익의 추구를 막을 수 있는 법을 제정할 유능한 입법자의 등장도 어려웠고 그리고 고상한 시민도 사실상 존재하기지 않았기 때문에 루소의 입법론은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루소는 전제정부와 전제군주의 독단을 막고 사회계약을 유지할 방책으로 전 인민이 한 곳에 모이게 되는 정기 집회를 내세우고 있다. 즉 주권자인 전체 인민은 정기집회에서 전제군주의 폐단을 금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정부를 교체하기로 결정하면 곧 전제정부의 폐단은 해소된다고 보았다. 즉 모든 시민이 집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정부의 교체도 결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회 계약조차도 파기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를 경우 인민의 결의에 의해 정체변경 즉 사회혁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의 사상은 그 당시 유럽에서 전 인민이 한 자리에 모여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다. 더욱이 전 인민이 모여 정부교체나 정체변경을 결정한 다할지라도 절대왕정이 그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확실한 제재수단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통치자가 악행을 일삼는다면 사회혁명 이외에는 대책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루소는 사회혁명 방법으로 현실성이 없는 전체 인민의 결의를 내세웠지 무력 투쟁이나 무력 혁명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점에서 루소의 사상과 폭력투쟁의 개입이 불가피했던 프랑스혁명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란 어렵다. 또한 루소는 교육과 종교를 통해 사회구성원이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바꿀 수 있다고 역설했으나 교육이나 종교를 통해서 사회구성원 특히 통치자의 심성을 바꾸어 공동체의 이익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집필한 가장 중요한 동기가 당시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면서 갖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던 절대왕정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루소는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의 패악을 바로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루소사상과 그 당시 현실과의 이러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일반의지 개념을 통해 근대 정치사상의 핵심 문제인 개인과 공동체와의 조화, 권력의 균형을 꾀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서양 사상사에 기여한 바가 지대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은은기, 170-171쪽)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공화주의적 전통에 대한 이해 속에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그도 공화주의적 전통을 의식하며 마키아벨리를 단순한 교활한 모사꾼이 아니라 공화주의적 전통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는 홉스, 로크의 사회계약론적 전통을 계승하지만, 그렇게 구성된 국가의 실질적 내용은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좀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요소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예속에 대비되는 자유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정치적 원리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 경제적 평등에 대한 관심은 공화주의적 전통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 장에서 서술된 공화주의의 여러 특징을 루소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2, 3장에서의 논의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루소에게 국가는 사회계약의 산물로 인위적인 것이어서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 속에서의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일반의지와 법에 입각해 조직된 공화국이다. 공화국은 공동의 것으로 군주나 권력자의 치부를 위한 전횡의 수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자신의 자유와 평등 및 행복을 위해 조직된다. 그는 권력자의 부패에 대해, 자신이나 자기 당파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동의 것인 국가를 사유물처럼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였고, 개별의지를 일반의지로 결속시킬 공통성, 즉 공동이익의 형성을 중요시하였다. 일반의지의 표현이며 공동이익의 공유에 의해 수립된 법에 입각해서 국가가 조직되고 통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은 법의 지배를 받는 자가 수립자가 되어야 한다. 국민주권의 원리는 원칙적으로 구성원들이 모두 공동의 일에 대해 참여하고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국가만이 진정한 유기적인 주권자의 정치체, 즉 공화국이 될 수 있다. 공화국의 시민은 공동의 일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로 여기는 시민적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공화국은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미덕이 상실되지 않도록 물질적 조건도 유의해야 한다.(류청오, 248-249쪽)


사회계약론 일반에서는 자연법을 바탕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계약을 통해 주권이 성립한다고 흔히 설명한다. 그러나 홉스의 자연법과 계약 그리고 주권은 논리적, 시간적 선후의 문제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서로 존재론적으로 뒤섞여 있으며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오히려 주권이다. 자연법을 바탕으로 신의성실의 법칙으로서 계약이 성립되고 계약을 통해 주권이 탄생한다는 설명은 주권의 계기를 설명할 뿐이다. 자연법은 계약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며 계약도 주권의 강제력을 통해야만 자신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설립되어야 자연법이 국가의 명령이 되고 그것이 시민법이 된다.”(LV p350)

홉스가 말하는 “진리가 아닌 권위가 법을 만든다.”의 의미는 조금 더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홉스는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과 물리법칙에서 자연법이라는 원칙을 도출해 낸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홉스는 ‘이성’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으로서 ‘자연법은 자연상태에서는 법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평화와 복종을 지향하는 성질’(LV p350)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법은 진리가 아닌 인공인간인 주권자가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언급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 인간의 규율로 적용되지만 이것이 주권에 의해 강제성을 가지고 집행되지 않으면 현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도 비로소 주권 속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완성한다. 따라서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홉스에게 본질적이고 천부적인 자연법은 본디 없었지만 우유성(accident)에 의한 자연의 일반적 법칙으로서의 자연법도 존재할 수없는 것이다.(이원혁, 218-219쪽)


루소는 법이란 보편적 목소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환언하면 일반의지의 목소리이다. 그러면 일반의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간략하게 답하기란 쉽지 않다. 비록 그것이 루소의 모든 정치학 저술들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fertile) 관념이라고 할지라도 루소는 그것에 대하여 매우 애매하다. 예컨대, 만약 내가 한 협회에 가입하면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 속에는 많은 실생활이 있을 뿐 협회는 약해지고 생기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와 나의 모든 동료 회원들이 협회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을 배운다면 협회는 강해지고 생기가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공적 정신, 즉 루소가 말했을 협회를 위한 일반의지를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일반의지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고 일반 선을 바라고 있을 때 그들의 의지이다. 즉 일반의지는 모든 사람의 선을 위한 모든 사람의 의지이다(Wayper, 1954: 144). 위의 예는 일반의지에 대한 한 가지 해석에 불과하다.(임태평, 177-178쪽)


첫째, 루소의 ‘일반의지’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고 일반 선을 바라고 있을 때 그들의 의지이다.

둘째, 이와 같이, 그의 일반의지 개념은 보편적 의미를 갖는 개념이므로,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반면, 국민의지는 보통 시간 상 특수한 순간 동안 과반수 결정일 뿐이다. 따라서 나라의 법은 일반의지의 표현이므로 그 법에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 한다.

셋째, 그 법에 복종하는 루소가 말하는 교육은 훈련이고 일반의지에의 순응을 위한 준비이므로 인간이 자유의지에 동의한다는 것은 자연법과 조화하는 것이다.

넷째, 그러므로 루소가 말하는 교육자는 국가에서의 모든 시민이므로 모든 사람이 자유의지에의 순응을 민중에게 교육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끝으로, 이러한 루소의 정치철학의 긍정적인 측면과는 달리, 그가 초기 소극적 교육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리가 추리에 의하여 이성적이 될 뿐이며, 그리고 사회적 행동에 의하여 사회적 감정을 습득할 뿐이라는 역설을 생각하지 못했다.(임태평, 190쪽)


사회계약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이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서는 안되며, 이미 모여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성의 정신’이 함양되어 있을 것이 요구된다고 루소는 주장한다. 사회성의 정신은 계약의 결과로 생성되어야 할 것이지만, 계약을 맺을 당시에 이 정신은 이미 사람들에게 퍼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자는 오직 신의 권위를 빌어 사회성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데, 그는 이러한 지혜를 배경으로 독립적인 존재인 자연인을 도덕적인 존재인 시민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루소에 따르면, 입법자의 등장이라는 배경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사회계약은 단지 ‘나쁜 정부’(bad government)만을 산출할 뿐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부자의 사기와 기만에 미혹된 빈자들이 계약에 의해 만든 정부는 나쁜 정부, 정당성이 없는 정부로 나타나게 된다. 입법자의 등장 없이는 일반의지는 그것을 압도하는 개별의지에 종속되며, 시민사회를 이끌어 나갈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모세, 리쿠르구스, 누마와 같은 정치가들이 등장하여 입법자의 기능을 수행했다. 모세는 도덕과 율례를 주어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는 정치적 공동체를 이끌어 갔다. 리쿠르쿠스 철의 통치(iron yoke)를 통해, 누마는 종교 의례와 제도를 통해 사회적 감성을 불어넣은 사람들이다. 고대의 법제공자들은 항상 독특한 의식과 축제를 통해 시민들로 하여금 조국에 대한 애착을 제공하였다. 그 민족만의 독특한 사회적 감성을 기반 해야 만 도덕적 공동체의 등장이 가능한 것이다.

입법자는 사회계약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사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주권자가 입법자 대신에 종교를 사용하여 시민들의 사회성을 함양하고자 한다. 시민종교를 통한 사회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일반의지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사회계약으로 나아갈 때 모두에게 퍼져있던 사회적 감성이 어떤 형태로 지속되지 않는다면 루소가 바라던 진정한 연대는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의지란 항상 올바른 것이지만 강력한 사적의지가 나타나면 침묵하고 만다.(김정진, 31-32쪽)


로티와 달리 루소는 개인들이 가진 감성을 기초해서 진정한 연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루소는 도덕 공동체의 “우리 의식”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은 문명화될수록 왜곡되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상태로 올수록 타락하고 만다. 일반의지라는 공적 인격의 형성을 통해서만 인간은 서로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진정한 연대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로티 역시 루소처럼 인간이란 공동체 내에서 형성되는 존재로 보지만 루소와 다르게 인간에게 있는 심오하고 보편적인 무엇이라는 개념을 모두 거부한다. 로티의 자아란 특정한 역사적 공동체 내에서의 삶을 통해 형성된 욕구와 신념들이 뒤엉켜 있는 상태 그 자체이다. 중심 없는 욕구의 결합체가 자아인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능력인 연민의 감정이라는 것도 역사적 우연에 의한 것이며 국지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로티는 이 연민의 감정은 이미 서구 자유주의 역사 속에서 획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루소와 달리 개인이 가진 연민의 감정을 확장시키는 데에 주력한다.

루소의 도덕 공동체 안에서 시민은 타인이 아닌 자기가 만든 법에 스스로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과의 예속적 관계로부터 벗어나 개개인은 진정한 연대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루소의 이러한 시민 공동체는 사회성의 감성을 기반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만의 사회적 감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일반의지는 침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김정진, 48-49쪽)


‘시민’과 ‘사회 속의 자연인’, 공적인 정치 참여와 개인의 내면성과 사적인 친밀감의 공동체를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은, 루소가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타인에게 물리적으로 의존하고 예속되지 않는 외재적인 자유를 확보하는 것과 도덕 심리학적으로 타락한 내면성을 회복하여 진정한 내면적 자유(공화주의적인 자유로운 공동체에서도 확보되지 않는)를 확보하는 것 모두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렇게 파악된 루소의 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르주아 상업사회의 타락한 조건 속에서, 각 개인은 진정한 자유를 확보하기위해서 ‘시민’과 ‘사회 속의 자연인’이라는 인간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중한 무게는 루소의 사상을 결국 비관주의로 치닫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두 가지 인간형 사이의 긴밀한 연결 고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루소의 요구는 더욱 어려운 과제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루소의 요구가 과중한 만큼, 시민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르주아 상업사회가 야기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부르주아 상업사회에서 통일성 있는 내면성을 회복한 개인이 되는 과정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루소의 논의는 현대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사적인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공화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시민으로서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강조한다. 이러한 대립되는 두 견해가 개인이 되는 것과 시민이 되는 것을 선택의 문제로 비추는 경향이 있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인간형을 동시에 주장했던 루소의 독특한 위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루소의 정치사상을 현대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은 이 논쟁을 보다 풍부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김혜미, 45-46쪽)


정리하자면, 입법권력은 오직 인민에게만 속할 수 있다는 루소의 원칙은 정초의 순간에도 예외가 없으며, 입법자가 만든 법은 그 내용에 대한 인민의 자발적이고도 주체적인 동의에 의해서만 정당한 법률로서 기능할 수 있다. 입법자의 법이 참된 지혜를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민의 자발적인 동의를 결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루소가 가장 나쁜 법보다도 나쁘다고 보았던 ‘가장 좋은 지배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루소는 인민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것 역시 입법자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포함시켰다. 루소에 따르면, “현명한 입법자는 훌륭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고, 우선 그 법률의 적용 대상인 인민이 법률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가 하는 것부터 검토”(SC, 72)하여야 하며, 인민들이 법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민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 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인간본성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입법자의 설득(persuasion)이다. 입법자가 “강요하지 않고도 설득하는 권위”(SC, 71)를 통해 인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입법자의 본질이자, 루소의 저작에 등장하는 교사를 포함한 모든 권위적 존재들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본성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에 다시금 주목하여야 한다.(황소희, 45-46쪽)


이처럼 헌법의 도덕적 정당성의 근간이 되는 정의의 내용은 오직 일반의지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으므로, 일반의지에 일치하게 만들어진 입법자의 법률을 포함한 모든 법률은 일반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이상, 그 자체로 도덕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루소는 정의가 법률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정의에 선행한다고 보았으므로(GM. 160), 일반의지의 행사로서 법률이 제정된 뒤에야 정치체의 정의의 내용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명인 이상 언제나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곧, 일반의지를 통해 정의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도덕적인 신(God)의 목소리와 같게 되는 것이다.(PE, 8) 스트라우스(L. Strauss)가 지적했듯, 루소는 일반의지 개념을 통해 전통적 자연법을 대체한 셈인데, 그를 통해 루소는 인민의 의지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도덕적 잣대를 제공하지 않고서도 법률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루소는 덕성을 갖춘 시민에 의해 의지되는 일반의지 개념을 통해 인민주권론과 자연법 이론이 화해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입법자의 구원을 통해 발현된 인민의 양심은 입법자가 만든 법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가능하게 하며, 또한 양심의 목소리를 듣게 된 시민들에 의해 의지된 일반의지는 언제나 정의를 포함함으로써 법률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즉, 시민들에 의지된 일반의지는 사실적인 동시에 도덕적인 의지가 된다. 이에 따르면 결국 입법자는 인간본성의 변환을 통해 시민(citoyen)을 탄생시킴으로써 두 정당성을 모두 갖춘 일반의지에 최초의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헌법제정의 정당성 문제를 해결하는 셈이며, 인간본성을 변화시키는 입법자는 사회계약론의 문제의식의 해결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황소희, 52-53쪽)


그렇다면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을 간략하게 답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하나의 협회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협회에 가입을 한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생각할 것이다. 가입한 회원들이 모두 이렇게 자신의 이익만 따진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 협회는 약해지고 생기가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협회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와 나의 모든 동료 회원들이 협회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을 배운다면 협회는 강해지고 활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협회가 나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공적 정신, 즉 일반의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단 사회 상태로 전환된 인간은 자연 상태와는 달리 사회속에서 가능한 자기 및 종족보존의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결국 삶을 가능케 하는 원칙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애와 동정심과 마찬가지로 같은 목적아래 서있게 되겠지만, 그래도 자연 상태와는 달리 사회 속에서도 자기 자신 및 종족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원칙이어야 한다. 이 때 요청되는 원칙은 다름 아닌 바로 “일반의지”라는 원칙이다. 즉 일반의지는 모든 사람의 선을 위한 모든 사람의 의지이다. 간단히 말해 일반의지란 모든 공동체에 의해 취해진 결정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반의지를 단순히 모든 사람의 의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에게 무겁게 세금을 부과하는 한 정당이 있다면 이 정당을 지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세가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원이 생기고 넓은 도로가 생겨 생활이 편리해 진다면, 또 불후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면 우리는 그 정당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익의 총체일 뿐인 모든 사람의 의지와 일반의지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의지는 어떤 의지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소유되는 그런 정신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그것은 시민마다 자기 자신과 그의 동료 시민을 제도화된 불평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이다. 또 이렇기 때문에 일반의지를 보편적인 법의 목소리라고도 말한다.(박정미, 17-18쪽)


자연적 이성인 자유의지는 미래의 사회적 상태에서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 할 미래지향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루소는 자연과 조화된 역사, 즉 사회 속에서 실현되는 인간성, 그리고 그러한 가능성의 원칙으로서의 일반의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입장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의지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의지란 모든 사람들의 선을 위한 모든 사람의 의지이다. 다시 말해 모든 공동체에 의해 취해진 결정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의지를 따른다고 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지가 무시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계약에 참여하면서 개인은 개별의지를 일반의지로 확장하는 것이다. 개별의지의 확장은 사회에 필요한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의지의 형태로 의욕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의 이행을 의미하며 도덕적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충동으로 행동하던 자리에 의무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욕망의 자리에 권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이기적인 생각을 넘어서 자신의 이성에 문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적으로 누리던 것을 잃었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며 이 자유를 도덕적 자유라 부르는 것이다. 이 도덕적 자유만이 인간을 진정한 자기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의 생각은 폭이 넓어지고 감정이 고귀해져 영혼이 고양되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자유로의 교육이 지향하는 자유는 당연히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 자유의 확장을 막는 것, 모든 자의를 배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자유는 심지어 좁은 의미의 자기 자신을 넘어서 마땅히 지향해야 할 엄격하고 침해할 수 없는 법칙과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의 모습은 일반의지 속에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반의지를 따름으로써 비로소 도덕적, 즉 자기 자신이 부여한 법칙을 따를 자유로의 길이 열리는 것이며 이것은 자유가 신장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은 도덕적 자유의 획득과 신장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자유는 일반의지 실현과 함께 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공동선을 구현하는 한 구성원의 의지가 다른 의지를 억압하면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와 일반의지, 두 의지간의 지속적인 갈등을 통해서 하나로 융합될 때 도덕적 자유는 획득되는 것이다. 도덕적 자유는 형이상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율적 입법의 산물인 실제법과 규칙의 준수를 통해 실현되는 실천적인 자유인 것이다.(박정미, 39-40쪽)


소크라테스/플라톤의 경우와 동일하게 루소의 사상체계 역시 ‘좋음(le bien, the good)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대답 역시 ‘본성대로 있는 것’이라는 그들의 전통에 입각해 제시되고 있다. 루소에게 있어서 본원적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이는 독존이라는 그의 존재형태가 보장해주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는 자유의 의미를 “우리의 의지를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타인의 의지를 우리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산으로부터의 편지』, Huitieme Lettre: 841)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자유란 의지의 문제이며 누구의 의지대로 움직이는가의 문제다.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킬 타인이 없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이 그를 “자유롭도록 강제”(『사회계약론』: 하는 것이며, 이 자유로운 상태가 ‘좋은’ 것이다. 아울러 인간에게 ‘나쁨’은 자유의 상실이며 이는 독존이라는 자연상태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회계약론』이라는 루소의 기념비적인 저서는 자연상태(독존)의 상실을 통해 자유를 상실한 인간들이, 관계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궁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집필된 것이다. 여기서는 ‘일반의지(la volonté générale)’와 ‘양도(aliénation)’라는 두 개념을 통해 루소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관계 속의 인간들이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일차적인 것은 관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책에 불과하다. 루소는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종속시키지 않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각각의 개인들의 의지는 타인들의 의지와 비교할 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텐데, ‘타인들의 의지와 동일한 의지’, ‘타인들의 의지와 상호작용하는 의지’, ‘타인들의 의지와 무관한 의지’가 그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의지는 다시 ‘타인들의 의지를 종속시키는 의지’와 ‘타인들의 의지에 종속되는 의지’로 구별할 수 있다. 루소는 이 구별되는 의지들로부터 저 유명한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이를 “개별 의지들 중 서로 파괴하는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들을 제거하여 남는 상이한 의지들의 총화(ôtez de ces mêmes volontés les plus et les moins qui s’entre-détruisent, reste pour somme des différences la volonté générale)”(『사회계약론』:371)로서 정의한다. 여기서 ‘지나친 의지’는 ‘타인들의 의지를 종속시키는 의지’를, ‘부족한 의지’ 는 ‘타인들의 의지에 종속되는 의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일반의지’의 의미를 다시 살펴 본다면 이 두 의지를 제거하고 남은 부분들의 합 - 타인들의 의지와 동일한 의지와 타인들의 의지와 무관한 의지의 합 - 이 곧 ‘일반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단 자신의 모든 의지를 포기 - 이것이 ‘양도’이다 - 한 후 이 일반의지를 자신의 의지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시키)지 않는 자유의 상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그와 같은 양도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이는 사회계약의 최초 동기와 관련된 것이다.(강성훈, 12-13쪽)


결국 동정심과 공감이 적절하게 발휘되도록 교육될 수 있다면, 도덕교육을 이끄는 중심축은 정념에 있으며 이성은 그에 적합한 수단을 제공하거나 정념의 일탈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만약 루소가 동정에 부여한 역할이 과다하다면 정념이 주도하는 도덕교육론이 흔들리게 될 것이고, 이를 회피하려면 이성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루소는 이성의 기능은 필요로 하지만, 이성에게 중심적 역할을 맡기는 것은 못내 꺼려하는 것 같다.

루소의 도덕교육은 이성적 일반화의 능력에 인류애와 양심을 겸비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도덕교육은 인간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탁월한 존재를 육성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인간교육에 비하여 매우 야심차고 다소 비현실적인 것이 분명하다. 비현실성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루소의 교육사상은 현재 진행형으로 오늘의 맥락에 맞게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시도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루소가 매우 높은 수준의 도덕교육을 제안하기 때문에 그리고 『에밀』 이상으로 교육을 구체화한 루소의 저작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시민교육으로 발전시키려는 모색이 생겨나고, 두 가지 형태의 교육을 통합하려는 시도도 일정 부분 타당하며 유용할 것이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에밀』에서 상당 부분을 시민과 시민사회에 관하여 할애하기 때문에 그러한 모색이 근거 없다고 할 수 없겠다.(이기범, 138-139쪽)


루소는 개인들이 이기심에 몰두하면, 결국 공적 사안은 누군가의 전횡에 맡겨지므로 자기결정권을 상실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모든 개인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사안을 스스로 결정할 의지를 가져야 하고 실제로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루소(1979b)는 촉구한다. 시민들의 참여로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선이 구현된 법이 제정되면, 자기결정의 평등이 보장되어 자유로울 수 있고, 자기결정의 자유가 보장되어 평등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선이 우위에 서고, 공공의 것이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법치국가를 루소(1979b: 192)는 ‘공화국’이라고 명명한다. 일반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공화국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곧 집단적 정체성 (collective identity)과 동일시되므로, 일반의지에 복종하는 시민은 개별적 시민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의 ‘공중’(public)이라는 집합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루소의 시민교육에 관한 논의는 개별적 시민성의 함양이 아니라 집합적 공중의 자질 함양에 관한 논의가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중은 대단히 강한 공동체적 성향으로 결집되어야 하므로 그것을 육성하는 교육을 구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루소는 자신이 요구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방안의 하나로 도덕성이 종교의 차원으로 고양되면 인간이 시민으로 전환되고 개별 정체성을 희생하더라도 공적 정체성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한다. 루소가 말하는 ‘시민종교’ 차원의 도덕성과 정치의식의 고양이 갖는 교육적 함의를 검토하는 일(강성훈, 2010)은 루소의 시민교육에 대한 공백을 메우는 유용한 접근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에 대한 논의는 후속 연구를 기대하고, 여기서는 그 상태가 완전가능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현된 상태로서 긍정적 자존심이 이성과 결합된, 즉 도덕성으로 승화된 상태라고 잠정적으로 이해한다.

루소의 이상적 사회 제안을 정념과 이성의 상호작용 방식 그리고 동정의 정념 변형 방식의 관점에서 논의하면, 루소는 근대의 몰락이라는 현실의 당위성 여부를 ‘반사실적’(counterfactual) 로 검증한다. 즉 “근대의 몰락은 필연인가? 완전가능성의 개념은 필연을 지시하지 않으므로 이성과 정념으로 인간과 사회를 구원할 수는 없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Chazan, 1993). 그 답으로 루소는 ’비교’라는 이성의 행위가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상황이 조성되면, 인정 투쟁이 상호존중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Taylor, 1994). 즉 정념과 이성의 상호작용에서 ‘비교’가 지닌 독소를 빼내면 두 자질의 양면성 중 긍정적 속성이 상호존중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인정 투쟁을 위한 비교가 인간 공통의 고통과 유한성에 대한 비교, 즉 공감으로 대체되면, 이기심이 이타심으로 대체되고 평등과 상호존중이 전제되어 일반 의지와 이상 사회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다고 루소는 믿는다.(이기범, 130-131쪽)


비록 루소의 시민개념을 “주권적 권위에의 참여자”로서 엄격하게 정의하여 신민과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의 인민 개념을 국민 전체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늘날의 이해와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 다소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적 원칙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에밀』의 교육이 한국의 교육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육적 원칙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와 교육에 주는 함의는 결코 적지 않다. 루소의 시민 개념과 역량을 고려할 때, 한국 교육의 목표가 민주시민의 역량을 함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시민이 아니라 부르주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제한 없는 욕망으로 인해 자기 충족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견에 종속됨으로 인해 자기지배권을 획득하지 못한 부르주아, 자기편애를 부추기는 경쟁과 성적, 입신출세, 월반과 선행학습, 그리고 각종 특수교육을 선호하는 교육행태와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다양한 학문예술과 기술진보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영혼에 덕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참된 관념과 참된 감정을 형성하지도 추구하지도 못한 채, 자기편애에 따라 행동하는 부르주아, 사회질서가 인간관계에 대한 참된 관념과 감정으로서 평등성과 인간성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런 질서에 안주하고 부를 쫓음으로써 오히려 그런 질서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정치성을 상실한 “행복한 노예”인 부르주아를 보다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부인되지 않는다면, 과연 한국 정치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한국 교육이 정말로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기대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전인교육, 인성교육, 시민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입버릇처럼 강조하면서도, 교육실제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자기편애, 부도덕성 그리고 탈정치성을 가진 부르주아가 되기를 독촉하는 모순적 행태를 공공연한 비밀인양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의 행태와도 같은 이런 모순적 행태를 버리지 않는 한, 교육과 정치의 목표로서 시민과 민주주의는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루소의 시민교육론은, 18세기의 유럽에 미친 영향처럼, 우리의 인식과 한국의 미래에 빛을 비춰줄 수 있을 것이다.(오수웅, 298-299쪽)


문명사회란 정치사회이고 정치사회는 계약사회이다. 계약이 파기된 사회는 변형된-부패한-자연상태일 뿐이다. 이미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 이 상태는 원래의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폭력이 정당성을 획득한다. 루소에 따르면 지배자의 논리에 따라 제도가 생 rusk 문명사회는 필연적으로 이 지점으로 오게 되는데 이는 불평등에 기인한 문명사회의 모든 법의 특성이 ‘제도수호적’이기 때문이다. 참된 자유와 평등에 기반을 둔 ‘법’으로 개량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사회로 이행될 수 있다는데 루소는 부정적이다. 앙씨끄로뻬디스트와 루소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앙씨끌로삐디스트 써클에 속하는 사상가들은 개선하고 보수하기를 원했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사회와 국가의 근본적인 변혁과 개조를 거의 꿈꾸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파렴치한 악폐들이 교정되는 것을 보고, 더 나은 정치적 상황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들은 개량주의자이다. 기존의 제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점진적 개선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루소는 개량주의의 기만성을 간파하고 있다.

그는 당시 사회를 윤리의식과 문화현상이 유리된 상황으로 파악한다. “예절은 노상 요구하고 명령한다…… 이젠 감히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도 못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강제 속에서는 사회라는 떼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환경에 놓이면 ‘더욱 강렬한 동기가 다른 쪽으로’ 돌려주지 않는 한 다 똑같은 짓을 하게 되어 있다.” 해결책은 혁명뿐이다. 그리고 이 ‘동기’가 기왕의 제도, 즉 파기된 제도로서 폭력만이 지탱해주는 사회의 보존욕구를 능가하는 ‘장애물’이 되어야 하는데 루소는 새로운 폭력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 폭력은 ‘자연의 장애물’처럼 그 자체가 다음 사회의 생존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 ‘장애물’의 한 도구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폭력을 폭력이라는 이유로 기피할 필요도 물론 없다. 아마도 이 경우의 폭력은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는 인간의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계약론』에서 원론적으로 그려지는 ‘소규모 이상국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을 루소는 유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둬야 하겠다.(정승옥, 353-354쪽)


루소는 이전의 자연법학자들이 인간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법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나 법학자의 이성에 기초한 직관에 의존해서, 사람들 사이에 이미 성립되어 있는 규칙들의 집합에 자연법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기존의 법질서를 정당화해주는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루소가 보기에 당시 사회는 도덕이 덕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그 사회의 법들은 구성원들의 자유와 평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강자들의 특권들이 다수의 약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의 법들이 자연법을 반영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루소는 오직 이성에만 근거해서 자연법을 인식할 수 있고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한다. 루소는 이성 또한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성은 다른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고, 인간의 본성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어느 하나에만 기초하는 것은 인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분에 의해 전체가 왜곡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루소는 자연법이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성은 물론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목소리(양심)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그 법에 자발적으로 따르려는 ‘자연적 의무’가 담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소가 말하는 네 번째의 법 즉 자연법은 이성에 기초한 시민법과 실정법 모두에 대해 경쟁적인 관계를 가지며, 시민법과 실정법의 정당성을 판별해주는 기준과 저항의 준거원칙으로 기능하게 된다. 또한 자연법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전환될 때 사회계약의 당사자들의 내면에 새겨진 법이기 때문에, 근본법 혹은 정치법의 토대이자 실현목표로서 진정한 헌법으로 간주되는 것이다.(오수웅 1, 80-81쪽)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도덕은 이성과 감성에 의해 인간에 대하여 형성한 관계관념과 관계감정이며, 인간관계 속에서 습관, 예절, 관행, 관습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도덕들은 그 사회의 인간관계를 도덕관계로 그리고 그러한 관계들이 확장된 도덕관계망을 형성하고 유지하며 결속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들을 규율하는 질서로서 그 사회의 법은 이런 도덕들을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도덕이 덕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 사회의 도덕들은 좋은 도덕들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로부터 도출된 법은 자연법의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덕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도덕들과 그에 기반한 법은 오히려 사람들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족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루소는 18세기 사회의 타락한 도덕들에 대한 해법으로서, 개인과 사회의 도덕들이 덕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교육론,『에밀��과 이미 타락한 도덕들을 가진 사회가 좋은 도덕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서 제도론,『사회계약론��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도덕이 타락하게 되는 원인과 그것을 공고하게 하는 사회적 토대들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추적경로들을 제공하고 있으며,『학문예술론��에서 원인이 되는 인간 본성들을 순화시키고, 도덕이 덕을 반영하도록, 지식이 인간에 대한 진리에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도덕의 상실을 지적하면서, 공유된 도덕이 도출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루소가 당시 사회를 비판하듯, 오늘날의 사회 속에는 이미 학문과 예술에 의해 다양하게 세분화된 도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공유될 수 있는 도덕을 모색함으로써 자연적 정의(자연법)의 실현을 기대하기보다는, 마치 차선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과도 같이, 다양성에 대한 승인 하에서 절차적 정의라도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후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역시, 루소가 “영국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이탈이아인의 공교육은 단지 노예상태를 위한 자격(license)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은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야 한다(GP, 180)”라고 당시의 교육을 비판하듯이,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교육’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오수웅 1, 85-86쪽)


루소는 일반의지를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자유롭도록 강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자유롭도록 강제된다는 것은 루소에 대한 비판자들이 우려하듯이 자유를 폐지하거나 위협하는 강제가 아니라, 사회 상태에서 잠재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위법과 비자유의 상태를 제어하고 시민적 자유와 도덕적 자유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롭도록’ 만든다는 것이 시민적 자유와 도덕적 자유의 창출이라면, ‘강제’한다는 것은 무제한적인 자연적 자유의 제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반의지를 거부하는 자들은 자유롭도록 강제되어야 한다는 루소의 언명은 단순히 전제정치를 낳는 국가 강제력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루소의 인간학적 전제로부터 엄밀하게 귀결되는 결론이자 이제까지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주목되지 못했던 루소의 정치적 비관주의, 현실주의를 대변해준다. 따라서 각자는 정치적 심의에 있어서 정치적 계몽 및 독립성을 가져야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입법자나 시민종교와 같은 장치를 통해 시민적 덕성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유롭도록 강제하는 과정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에 있다. 공동이익을 지향해야 할 일반의지가 각 개인이 갖는 특수의지에 의해 전체의지로 전락할 위험, 통일적이고 유기적이어야 할 인민이 무지몽매하고 개별적인 다중으로 전락할 위험, 인민집회에서 능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시민이 수동적이고 정념에만 사로잡힌 신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일반의지 그리고 인민주권의 원리를 이루는 것이다. 즉 루소의 사회 상태는 항상 부분적으로나마 자연 상태가 돌발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갖는 취약한 것이다. 좋은 법이 좋은 인민을 만들지만 좋은 법의 출처는 또한 인민이어야 한다는 정당한 인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최초의 인민은 그러한 입법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지 못하는 다중이라는 상황이 루소가 사로잡힌 순환 논리의 원천이다. 그러나 만약 사회 상태 속에 자연 상태가 잠재하는 것이라면, 이는 단지 입법자가 요청되는 최초의 사회 구성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해야 하는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일상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난점이다.

그렇다면 왜 루소의 사회 상태는 취약한 것인가? 이러한 역설은 자유보다 질서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라면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루소의 경우 이러한 역설은 자유의 원리를 일관적으로 끝까지 관철시키게 됨에서 귀결된다. 즉 정치의 정당성에는 어떠한 선험적이고 궁극적인 토대가 없다는 것, 인민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들의 의지만이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이라는 루소의 전제는 그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거부할 자유마저도 허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 개인은 일반의지의 실현을 위해서 자유롭도록 강제되어야 하지만, 이들은 ‘자유롭도록’(즉 시민적 자유와 도덕적 자유) 강제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즉 자연적 자유)를 가질 수도 있다. 요컨대 인간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탈자연화/탈본성화(dénaturation)가 요구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따라서 루소의 체계를 떠받치는 이항대립, 즉 사회와 자연, 인민과 다중, 일반의지와 전체의지는 항상 실제로는 혼동될 위험을 가지며 이러한 위험은 일반의지 개념이 갈등적인 과정 속에서 단지 일시적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오근창, 92-94쪽)


고려와 조선시대의 ‘계’는 ‘향도’, ‘향도계’, ‘향도연’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교 행사, 齋會, 會飮, 葬禮 등을 목적으로 민간에서 결성된 사회적 조직체였다. 반면에 ‘계약’은 가마쿠라 시기 백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連署申狀’, ‘連署起請文’에서 출발하여 무로마치 시기에 一揆의 ‘계약’으로 발전 진화하였다.

이렇게 ‘契’와 ‘契約’이 한국과 일본의 각기 다른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출현하였지만, 기능과 역할에서 몇 가지 유사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었다. 그 내용을 비교해 보았을 때 유사점으로는 첫째로 ‘契’와 ‘契約’는 모두 불교 의식과 토속신앙이 관련되어 있었고, 둘째로는 그 성립 배경에는 자율성이 있었다. 셋째로는 구성원 간에 평등의 원칙을 유지하였고, 넷째로는 조직체 내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를 적발하고 시정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즉 한 ·일 모두 불교와 토속신앙의 종교관을 갖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상호 평등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사회적 조직체라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그리고 차이점을 든다면, 한국에서 ‘契’는 일상생활에서 기원하여 유희의 목적이 강하고, 국가의 役을 징발하는데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일본에서 ‘契約’은 통일적으로 主君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고 구성원을 자치적으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12-15세기 한·일 양국의 사회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성격의 사회가 아니라 동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김보한, 292-293쪽)



4. 그리스 로마


⑴ 지배자 숭배


우리사회는 그동안 전형적인 도구주의적 수단에 불과한 강권에 기초한 폭력적 지배체제를 현상적으로는 군부독재,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적 권위주의, 종속적 파시즘 등으로 지칭해왔다. 자본주의적 토대의 문제로부터 연유하는 억압성의 근원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기존의 방식은 여전히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현대정치사에서의 역사적 경험을 이 글에서 고찰하고 있는 고대정치사상가들의 폭군정 비판에 기초해서, 현대의 폭군 개념으로 규정하여 평가함으로써 비판의 자원을 보다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현대의 폭군 은 주로 강권수단에 의존하여 민(民)의 권력을 파괴하고 지배체제를 구축해왔다. 미군정과 친일세력이 연합한 이승만 정권이 대규모의 학살을 자행하며 우익반공사회를 구축한 것,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한강을 도하한 것, 헌정질서를 이용한 유신 쿠데타, 광주학살을 통해 등장한 전두환 정권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가 지적한 폭군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전형적인 폭군들이었다. 우선 첫째로 현대의 폭군 들은 인민의 의사와 여론에 반하는 독재를 자행하였다. 헌정질서의 파괴(쿠데타)는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고, 집권기간에도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면서 체제를 유지해 나갔다. 둘째로 현대의 폭군 들은 인민의 생활여건을 보장하지 않았다. 해방이후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의 초과착취로 인해서 고통 받았고, 이는 생계의 필연성을 넘어선 정치적 욕구의 상승을 막는 효과적인 기제였다. 셋째로 현대의 폭군 들은 도덕적 자질을 갖추지 못하였다. 최고 통치자나 그와 연합한 동맹세력들은 권모술수를 통해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했을 뿐, 덕성 있는 지도자가 행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지는 않았다. 넷째 현대의 폭군 들은 고대의 폭군들이 명망가들이나 신하들을 핍박한 것처럼, 야당의 대표자를 암살하려고 기도하거나 감금하고, 민중운동의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불법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다섯째 현대의 폭군 들은 공권력과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통해서 통치해왔다. 중앙정보부, 기무사, 안기부 등의 공안기관은 물론, 공수부대와 백골단과 같은 군대, 사설깡패까지도 동원한 강권통치의 역사는 그들의 정당성을 누적적으로 훼손해왔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폭군 들은 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당파의 이익을 위해 헌법적 원리 위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민(民)의 권력은 주기적으로 폭발하여 지배계급의 강권수단을 무력화시키기도 하는 현대판 폭군방벌을 시도한 역사가 있어 왔다. 4·19 항쟁, 87년 6월 항쟁, 91년 5월 투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이러한 저항이 성공하기도 했지만, 또다시 구지배세력들이 다시 등장(87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하거나, 구지배세력보다 더욱 폭군적인 정권(4·19 항쟁 이후 5·16쿠데타)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혹은 보다 광범위한 권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세력의 강권에 굴복(91년 5월 투쟁)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저항의 역사를 주로 강권에 의존하는 지배세력에 대해서 주로 권력에 의존하는 저항세력간의 대결, 순수한 이념형으로 추상화시켜 표현하자면 강권 대 권력  대결로 압축해서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권력과 강권에 대한 엄밀한 구분을 하지 못하는 실증과학주의적 권력관이나 푸코류의 관계론적 권력이론의 한계를 벗어나서 보다 규범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과학다운 과학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근현대 정치학의 여러 가지 성과들을 포괄하면서 발전시켜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바른 정치공동체에 대한 판단 기준, 그리고 정치공동체를 파괴하는 폭군을 방벌하는 것을 하나의 의무의 차원으로 이해한 고대정치사상에 대한 재고찰은 우리의 전통주의 담론에서 역사적 진보와 함께 갈 수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게 하는 한편, 동서양간 평등한 문명간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그동안 여러 가지 저항의 담론을 생산해 왔지만, 한국적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고 일정정도 표류해옴으로써 발생한 지성의 비관주의를 일정정도 치료해줄 수 있을 것이다.(엄관용, 95-96쪽)



먼저 의례 형성의 배경에 있어서 동부 그리스 세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지배자 숭배라는 기반을 들 수 있다. 동부의 지배자 숭배는 몇 가지 기반을 근거로 한다. 우선적으로 그것은 지배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그의 힘이 백성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특별한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헬레니즘 시대의 지배자들에 대한 의례 안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며 그들은 백성들에게 공적인 희사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하여 신적인 영예와 함께 인식되었다. 다음으로는 지배자들이 특별한 신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는 관점이다. 왕이 신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는 개념은 왕과 신과의 특별한 관련성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배자를 숭배하는 자들의 동기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지배자에 대한 감사에 근거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반을 근거로 하여 동부에서 아우구스투스는 그리스나 로마의 전통 신들과 동일시되거나 아우구스투스 그 자신이 하나의 신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반하여 서부 황제의례 형성의 기반은 서부에서 전통적으로 있어 왔던 지도자와 함께 생사를 같이 하는 디보티오라고 일컬어지는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로마에 의해 정복 사업이 한창이던 서부에서는 강한 군사적 정서와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이 주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더불어 서부에서 아우구스투스 의례의 성격을 규정짓는 또 하나의 기반은 로마군단 자체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로마 군대의 종교는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충성을 포함하였고 그의 군사적인 권위가 종교적인 권위와 함께 적절하게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음으로 의례 형태의 문제에 있어서 동부 그리스 세계에서의 아우구스투스 의례 수행의 중심지는 신전을 중심한 것이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신전과 제단 그리고 조상을 중심으로 의례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전 안에 제단이 있고 또한 조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황제는 신이라 불렸고 그는 자신의 신전을 가졌으며 그것은 그의 것이라고 나타난다. 아우구스투스 신전은 도시의 중심인 광장에 건립되었고 황제 신전의 탑은 신들의 것보다 더 높이 솟아 있었다. 또한 황제의 조상은 신들의 것보다 더 거대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이 황제의 건축물은 황제와 도시 사이의 관계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황제와 신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에 반하여 서부에서의 의례 수행의 중심지는 제단을 중심으로 하여 시행되었다. 최초의 속주 제단인 루그두눔에서의 제단을 시작으로 한 서부의 제단들은 명백히 로마 당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 외에 군인들에 의해 정복지에 세워진 제단들 또한 아우구스투스의 신성을 선전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기 보다는 승리자이며 정복자로서의 황제를 나타내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부그리스와는 달리 서부에서 주로 의례의 형태가 제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제단은 신전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었고 완성될 때 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았기 때문에 군사 작전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던 서부에 적합한 형태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김활란, 39-40쪽)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아우구스투스 시기의 황제의례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제국 로마가 아우구스투스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통합의 기제로 작용하였다. 동부 그리스와 서부의 지역 엘리트들은 공통적으로 아우구스투스의례를 자신들과 로마 당국과의 소통의 방식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아우구스투스 역시 동부와 서부 모두에서 그에 대한 의례를 제국 통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더불어, 기존의 지역적인 다른 제도들과 의례들 그리고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온 다양한 문화적 관습들의 허용을 통하여 아우구스투스 의례는 도시들과 속주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과 로마 당국 사이에서 하나의 통합하는 힘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시기 황제의례의 이와 같은 기본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국의 동부와 서부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본 글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동부 그리스 세계와 서부는 황제의례의 성격에 있어서도 종교성과 정치성 등의 면에 있어서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뿐만 아니라 의례 형성 배경에서나 의례 수행의 중심지 그리고 의례 시행 집단의 구성원들에서도 차이를 드러내었던 것이다.(김활란, 42쪽)


아우렐리아누스는 태양신 솔을 중심으로 제국의 종교를 개혁하고자 하였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도가 있었다. 먼저 태양신 숭배는 전임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권력 이데올로기 표출에 매우 유용한 정치 도구였다. 우주에 수많은 별들 중 태양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이듯이, 로마 황제 역시 그러한 존재라는 상징을 통해서 자신의 황제권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국민의 정서를 통합하고자 하였다. 당시 로마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가진 거대한 제국이었는데, 여러 민족들이 공통으로 숭배하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태양이었다. 따라서 아우렐리아누스는 황제권의 강화와 국민 정서의 통일을 목적으로 태양신, 즉 데우스 솔 인빅투스(Deus Sol Invictus)를 로마 최고의 신으로 격상시키고, 태양신을 중심으로 하는 제종교통합주의 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엘라가발루스를 훌륭한 모델로 생각하고, 앞서 제국 내에서의 경제적 개혁을 통하여 얻은 두터운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서 종교 개혁을 진행하였다. 첫째로, 아우렐리아누스는 공식적으로 데우스솔 인빅투스를 국가 최고의 신으로 간주했다. 그는 먼저 모든 신을 동등하고 평등한 위치로 만들고, 그의 태양신은 이러한 신들의 총체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적 속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 이러한 속성 덕분에 아우렐리아누스의 태양신은 갈수록 모든 신을 포함하는 제종교통합주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둘째로, 그는 태양 신전을 건축하고, 태양신을 향한 축제인 아곤 솔리스(Agon Solis)를 매 4년마다 개최하였다. 로마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축제는 생활에서 평범한 것이었지만, 특별히 태양신을 위한 축제라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우렐리아누스는 새로운 대신관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새로운 학교는 학교의 의례적 특성을 강조하고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하여, 구 학교와 독립적인 기관으로 설립하였다. 특히 학교 구성원의 대부분을 대개 귀족이나 원로원 의원들 중에서 선출하였는데, 이것은 의례의 전통성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아우렐리아누스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아우렐리아누스는 과거의 학교들에게 대해서도 동일한 정책과 혜택을 유지함으로써, 둘 사이의 불화를 사전에 방지 하였다.

이상과 같이 초기 농업의 신들 중에 하나였던 로마의 태양신은 황제 자신들의 황제권 강화와 국민의 정서를 통합하려는 목적에 잘 부합됨으로써, 격상되기 시작했다. 특히 3세기가 이르면 태양신 솔(Sol)은 국가 최고의 신으로 격상되었고, 나아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종교통합주의적 형태로까지 발전 되었다. 그리하여 태양신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확정되기 이전 혹은 그 직후에도 가장 번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다.(김정준, 37-38쪽)


기원전 8세기 후반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그리스 본토에 전파되자 폴리스 형성기의 주역인 귀족들은 미케네 시대의 영웅들에게 자신들을 투사하고, 서사시적 영웅들의 경력과 연관성이 있는 곳에 성소를 건립하게 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미케네의 지배계급은 아가멤논을 위한 성소를 건립하고 숭배함으로써 옛 지배자들과 전설상의 영웅들과 유대를 강화하였다. 도리아인의 후손인 스파르타는 서사시에 등장하는 미케네 시대 왕 메넬라오스를 위한 성소를 건립하여 선주민 미케네인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고 이념적으로 두 세습왕가의 왕권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아티카 반도에서는 에레크테우스를 위한 성소가 건립되었는데, 이는 아티카 반도의 각 지역 세력에 대하여 폴리스적 입장에서 취한 대응이었다. 아티카 전원 지역의 애매모호하고 익명의 지방 영웅들과는 달리 에레크테우스는 범그리스적 명성을 가진 영웅이었고, 그의 이름을 기록한 서사시 전승은 아테네가 자치적인 촌락들의 느슨한 연방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폴리스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폴리스는 서사시적 전통을 이용하여 범그리스적인 영웅숭배를 권장하고자 했다. 따라서 서사시적 영웅숭배는 폴리스의 정치적 정체성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사시적 영웅숭배의 성립은 정치적 관계의 재정립에서 중요한 기회이고, 영웅숭배의 수혜자들은 새로운 정치집단을 지배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영웅숭배는 철기 시대 동안 그리스 사회에 이어져 온 조상숭배가 발전·변용되어 나타났다. 기원전 10세기 에우보이아의 레프칸디 토움바 언덕에서 발견된 부부의 무덤과 그 위에 건설된 연회장 건물은 공동체의 지배자로서 바실레우스의 등장을 보여준다. 레프칸디 인들은 미케네 시대의 전설상의 영웅들 보다 공동체의 운명을 주관한 바실레우스 가문을 기념하고 조상으로 숭배하고 폴리스의 공적 숭배대상으로 영웅화하였다. 한편 에레트리아의 전사 무덤군은 폴리스 형성기 조상숭배가 영웅숭배로 발전되어가는 관행을 보여준다. 에레트리아인들은 성벽을 확장하면서 죽은 바실레우스 가문 성원들의 무덤이 성벽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여 폴리스의 수호자로 숭배하였다. 폴리스에서 귀족 정치권력은 엄격하게 상속되지도 않았고 쉽게 분할되지도 않았다. 바실레우스들은 조상숭배를 통하여 과거와의 연관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컨대, 기원전 8세기 후반 중앙집권적 경향을 가진 폴리스가 등장하자 각 지방의 개인들 혹은 촌락 공동체 귀족들은 무덤숭배를 통하여 자신들의 고유한 토지소유권∙자치권 등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새로운 정치체제로서 폴리스 당국은 범그리스적인 경향을 가진 서사시 영웅숭배를 통하여 통치 권력의 정통성을 추구하였다. 바실레우스들은 가문의 탁월한 조상을 숭배하고 폴리스의 수호자로 승화시킴으로써 권력 구조의 격변기에 권력을 끌어내었다. 이처럼 지방적 영웅과 범그리스적 영웅은 서로 공존하고, 범그리스적 영웅은 각 폴리스의 다양한 전통을 하나로 통합하기도 하며, 때로는 초월하였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은 각각 독자성을 추구하면서도 공통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변정심, 182-183쪽)


⑵ 민주정치


법이 지니는 사회적 특징은 구성원들이 같은 신앙이나, 같은 지적 수준이 아니더라도 법이라는 공동체 구성의 원칙을 지키는 한에서 다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속주민들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은 로마의 법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리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법은 이러한 공공의 삶을 다른 전제조건 없이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만 해석하고 통합하는 단순한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로마의 법’이란 인종이나 종교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증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따라 ‘공생’과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해시기 동안 기독교는 로마의 통합을 저해하는 대상으로 인식 되면서,공생과 연합의 대상에서는 제외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의 법적 존립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변증가들이 나타났다. 초기 기독교인에 대한 로마법의 관용적 태도가 복음을 전달하는데 이점으로 작용하였지만, 이후 기독교에 대한 로마법의 불관용적 태도는 기독교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장애가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로마문화의 구조적 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들을 로마사회 가운데 제시해야만 하였다. 즉 기독교가 로마사회 안에 화합될 수 있는 종교임을 증명하는데 있어 기독교의 이상적 가치보다는 로마의 현실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답을 찾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후 로마법이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은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먼저는 세속사회 가운데 ‘기독교의 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과, 다음은 교회법을 통해 ‘보편적 교회’와 ‘보편적 신앙질서’를 구현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법적지위 확보를 위한 노력은 변증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변론을 시작하면서, 로마법이 가지고 있는 가치인 공공을 위한 목적에 대하여 변증가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적 기능들과 우월한 도덕성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되기 까지는 이러한 노력에 대한 특별한 결실들은 별로 없었다. 반면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법적 지위들을 만들어 갔으며, 중세교회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후 교회는 세속정치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도록 교회의 법적지위를 사회 가운데 인식시켜 나가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또한 4세기와 6세기에는 교회가 데오도시우스와 유스티아누스의 입법에 관여함으로서 교회의 권리와 영역을 성역화시킴으로서, 국가권력이 교회의 존립자체를 좌우할 수 있는 법적 영향력을 지니지 못하도록 교회를 세속정치와 동등한 지위로 세워 놓았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 로마법은 교회가 기독교 세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세속사회 안에서의 법적 기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세워나가는데 동기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이주환, 16-18쪽)


플라톤은 “법에 복종하는 것은 신에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의미없는 빈말이 아니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가 법의 요구에 따라 목숨을 바친 것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사회의 법은 당연히 성문법보다 불문법, 구체적으로는 관습법의 영향력이 훨씬 컸다. 기원전 5세기 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그리스 사회는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은 파괴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해결의 접근방향은 대조적이었다. 플라톤의 이상사회는 상당한 정도로 경제적 평등, 능력에 따른 비례 평등이 구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의 思想은 理想과 正義를 구현하기 위해 평등으로 이어지는 법의 지배라고 할 수 있겠다. 플라톤은 법을 정치사상의 실현수단으로서 이상 국가 내지 이상 정체를 현실에 구현하는 도구라고 하며, 그 법은 현실에서 통용되는 현실적인 법률이 아니라 참된 治者의 행위를 모방한 이상적인 법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의 지배를 법의 주권성 내지 최소성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성문법과 불문법과의 관계에서 불문법이 성문법에 비해 더 주권적인 것이라고 한다. 결국 법은 국가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물론 국가기관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가지는 주권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의 주권성을 인정하면서도 근대헌법에서의 위헌법률심사와 같이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한 규범적 통제장치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법의 지배를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한 재판적 통제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오늘날의 관점은 근대적 헌법관의 산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란 일반적이고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승인에 기초한 이상지향적인 규칙이라고 하며, 법에 담긴 일반적인 규칙들은 유덕한 성향을 함양하는데 필요한 규칙적 습관들을 정립함에 있어서 최선의 수단이라고 한다. 요컨대 그는 이성과 물리적 강제를 통하여 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법에 대한 존중을 내면화하고 법의 준수를 습관화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와 행복을 실현하는 헌법적 원리로 파악하고 있다.(조은래, 155-156쪽)


반면에 솔로몬 궁에서 J문서를 편집했으리라고 추정되는 J기자의 편집목적은 역사·신학· 정치를 하나로 묶는 커다란 종합을 최초로 보여주며,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는 하나의 커다란 역사” 그러나 이스라엘 고유의 독특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ex. 에덴동산, 이스라엘 인들의 조상 아담과 이브 등). 또한 그는 사사기 9장(동일한 J문서)에서처럼 “아비멜렉의 출현을 통해 군주제 확립을 정당화했다. 솔로몬 왕과 그의 아버지 다윗 왕은 제사장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 교류(기도)를 함으로써, 그만큼 신과 인간의 친밀함을 보였다. J기자는, 제 2창조설화에서 보듯, 아담 창조때의 신의 ‘촉각’을 사용하고, 부성적인 사랑을 나타내고,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e)적인 친근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신의 내재성(immanence)’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세계창조론들은 각각의 그 목적과 상황에 따라 인간의 감각을 다르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창조라는 내용’과 ‘감각이라는 형식’의 연합은 그 형태를 바꾸어가며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끊임없이 국경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구대륙 인들은 이제 고대 그리스 동맹, 로마 제국과 같이 새로운 커다랗고 강력한 국가를 꿈꾸며 유럽연합(EU)을 만들어 경계선을 넓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의 창조와 더불어 구대륙 인들의 감각도 새로이 코드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오히려 새로운 감각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는 것이 더 올바를 수도 있다. 또한 21세기의 또 다른 창조신화인 cyber espace(cyber world)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혀감으로써 이제 인간의 오감은 외재화와 내재화뿐만 아니라 가상화되어 가고 있는 실태이다.(심은록, 175-176쪽)


고대 그리스의 형성은 크레타 섬(Creta)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레타 섬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반도와 아프리카 본토와의 거의 중간쯤에 위치하는데 그곳은 그리스인들이 침입해오기 이전부터 원주민에 의한 찬란한 크레타 문명이 꽃피고 있었다. 그들은 소아시아로 부터의 이주민과 주변민족들로 이루어진 미노스(Minos)인들로서, B.C 3000년경부터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Cnossos)를 중심으로 해상왕국을 이루고 지중해의 교역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크레타 문명이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운 시기는 B.C 2000년경부터 약 5세기 동안이었는데, 그 무렵에 뒷날의 그리스인들을 구성하는 이오니아인(Ionians), 아케아인(Achaians) 등이 다뉴브(Danube)강 방면으로부터 남하를 개시 하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의 일부는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아 미케네(Mycenae)를 중심으로 미케네 문명(B.C 1550-1200)을 이루었으나, B.C 1200년경에는 그리스 북서부에 머물러 있다가 뒤늦게 남하한 도리아인(Dorians)에 의해 파괴되어 버렸다. 이와 같이 에게 해(Aegean sea) 주변의 민족이동이 수세기에 걸쳐 계속 된 끝에 B.C 1000년경에는 에게 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인들의 세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최초의 서양문화는 그리스에서 일어났다. 에게문명의 뒤를 이은 그리스 문화는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과 자극아래 꽃피었으나 오리엔트의 전제국가와는 다른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를 터전으로 하여 성장하였다. 그리스 본토는 그리 넓지 않은 땅에 산맥이 종횡으로 달리고 있어서 그 사이 사이에 있는 계곡이나 좁은 평야 지역에 도시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통일국가는 형성하지 못하고, 아테네(Atenae)와 스파르타(Sparta)로 대표되는 많은 독립된 폴리스의 집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도시국가에서는 전제적 국왕의 지배하에 있던 신민과는 다른 자유시민이 민주정치를 전개시켜 나가고, 그 속에서 인간의 창조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가 있었다.

그리스의 문화는 이러한 자유로운 시민들이 이룩한 도시국가문화라 할 수 있다. 그리스의 문화는 도시를 기초로 하여 발전되었는데 그 특징은 인간 중심 주의적이며 합리적이며 이상주의적이다. 그리스문화는 인간의 능력, 특히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문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헤브라이인들이나 중세 기독교인들이 신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복종을 통해서 구원을 바랐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인들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즉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렇게 완전해진 인간의 모습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문화의 보다 중요한 특징은 그리스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폴리스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고, 폴리스의 번영과 영광을 추구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식을 바탕으로 이성과 개성을 존중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성을 높이고 확대하여 갔던 것이다.

또, 이러한 휴머니즘의 강조는 그리스인들에게 미를 사랑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게 했다. 그리스인들은 풍부한 미적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화의 미를 중요시했으며, 조화의 미는 특히 건축과 조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건물의 특징은 많은 원주가 떠받치는 단순한 형태의 대리석건물이었다. 조형에 있어서도 프락시텔레스(Praxiteles)는 헤르메스(Hermes)에서 인간의 감미로운 감정을 보였으며, 스코파스(Scopas)는 아테네신전의 조형에서 인간의 격정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미술에 있어서의 완전미의 추구는 다른 예술에 있어서도 조화와 균형이 잘 취해진 훌륭한 걸작들을 낳게 하였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자유 시민 공동체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시민은 모두 공공문제에 참여하여 민주적인 집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특히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에서는 민주정치가 발전하여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과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도 인간의 자유를 기반으로 발달했다. 즉 자기표현 및 창조적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학문과 예술은 자유로운 토론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시대에는 철학이 포괄적으로 발전되었다. 그들은 우주의 본질, 진리의 문제, 인생의 의미와 목적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했다.(손효선, 3-4쪽)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폴리스라고 해서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단일체는 아니었고, 그 정도는 폴리스마다 상황이 달랐다. 아테네의 경우, 폴리스의 구성원들은 부족(phyle), 문족 (phrytria), 씨족(genos), 혹은 데모스(demos)로 불리는 집단에 속하여 있었다. 혈족과 관련된 고대 그리스 단어로는 phyle, phratria, ethnos, genos, syngeneia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ethnos는 일종의 국가나 폴리스를 의미하기도 하고, 폴리스의 주민 혹은 보다 큰 규모의 여러 폴리스 연합의 거주자를 뜻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로 genos가 있는데, 그 어원은 gignesthai로서, ‘공통의 탄생’을 의미하였다. 구분하자면, ethnos가 같은 정치적, 문화적 집단을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였다면, genos는 같은 핏줄, 혈통을 가진 집단을 의미하였다. 아테나이나 헬레네스 같은 용어는 같은 ethnos와 genos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는데, 같은 공통의 문화를 가진 ethnos이자, 같은 핏줄을 가진 genos라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ethnos의 하부구조가 genos 혹은 phyle로, 즉 한 ethnos 아래 여러 개의 genos가 있는 것으로 정의하는 경향도 있다. 헤로도토스는 아테네인은 이오니아 genos에 속하고, 스파르타는 도리스 genos에 속하다고 정의한다. 또한 genos에서 나온 단어로 ‘함께(syn) 탄생(genos)을 나눈다, 혹은 같은 탄생’이라는 의미로 syngeneia가 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중 하나로 도리스 genos와 이오니아 genos의 갈등을 들고 있으며, 전쟁 중 같은 genos임을 주장하는, 즉 같은 혈족, 혹은 친족을 의미하는 syngeneia를 이용한 외교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

각 폴리스는 ‘같은 탄생’과 관련한 나름의 전통, 특히 혈족과 혈족의 수호신, 관련 신화를 갖고 있었다. 각 폴리스 구성원들은 폴리스의 수호신 및 조상과 관련한 뚜렷한 자각 의식을 가지고 그와 관련한 신화를 꿰고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인에게 혈족 집단 신화는 현재의 현상을 과거의 결과로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았다. 모르간(J. Morgan)은 그리스인의 혈족 집단 신화를 ‘과거에 관한 신념이나 믿음이 모습을 달리한 것이며,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담론에 권위를 더하고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먼 과거의 신화적 창건자들이 후대의 정치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실은 키레네에서 발굴된 비문 자료에서도 엿볼 수 있다.(최혜영, 97-98쪽)


그리스 비극시인들은 아테네에 대한 충성심과 자긍심이 대단한데, 이는 아테네가 정치공동체가 가져야 할 덕목들, 예컨대 구성원들 간의 화해, 이중적인 인간의 조건을 담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이방인까지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의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현대 민주주의도 추구하고 있는 최고의 덕목들이다. 복수가 아니라 화해를 목표로 삼아야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이중적인 인간의 조건을 신중함과 균형성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방인까지 포용할 줄 알아야만 공동체의 강인함과 지속성이 유지되고 충성을 바칠만한 공동체로 인식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시인들은 아테네가 이런 정치공동체라고 자부하는 것 같다. 혹은 아테네가 설사 그런 공동체로 아직 되지 못했더라도 장차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그들이 아테네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대신 아르고스나 테베 혹은 트로이아 등을 거론하면서 아테네를 메타포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사 아테네가 그런 정치공동체였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상관없이, 비극시인들은 그런 공동체를 최상의 정치공동체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의 정치공동체관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정치공동체를 기본적으로 “이방인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strangers)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적인 정치공동체란 사적인 가정과는 달리 동일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 즉 이방인들의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이방인들의 모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한편으로는 법이나 제도이며 다른 한편 충성심이나 공동체 의식이다.

그 중 플라톤은 자신의 정의관에 의지하여 잘 편재되고 질서 잡힌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과 균형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였다. 이에 비해 비극시인들은 현실의 다양성과 선과 악의 이중성 등을 고려하여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우며 열린 태도를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방인들의 공동체에는 훌륭하고 고상한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 패륜아, 비주류, 야만인, 여성 등과 같이 사회의 소외된 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들도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비극시인들이 생각했던 아테네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여겨진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것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이나 민회의 구성과 같은 것 때문만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속을 절절히 파고든 비극작품들에 녹아있는 아테네의 정신, 즉 화해와 인내, 포용이라는 민주정신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덕목도 바로 이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주력해 왔던 민주화와 그것의 제도화만으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지, 또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즉 정치공동체의 목표가 구성원들의 화해와 공존, 더불어 사는 삶에 있음을 직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신의 회복이 가장 절실해 보인다.(이동수, 198-199쪽)


⑶ 인문학과 종교


그렇지만 고전 읽기는 동시에 체험 교육이기도 하다. 무엇을 체험하는가? 우회와 방황을 저자와 함께 체험한다. 물음을 묻는 방식도 함께 체험한다. 그리고 물음을 묻게 된 근본 동기 혹은 근본욕구를 함께 체험한다. 예컨대 헤겔의 ‘인륜’(人倫, Sittlichkeit) 개념에 관한 지식 정보를 원한다면 Wikipedia 웹 사이트에 들어가 이 단어를 검색하면 된다. 거기에는 잘 발라놓은 생선처럼 간결하고 말끔하게 정리된 개념 설명이 제공돼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헤겔이 이 단어를 하나의 이론 용어로 추상하게 된 문제의식을 체험할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헤겔의 이 체험을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는 자는 『법철학요강』(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을 직접 읽어야 한다. 정보의 풍부함이 아니라 문제의식의 체험이 한 사람을 자유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고전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인류가 생각했던 자체적 가치들을 발견, 음미하게끔 유도하고, 여기에 몰입하게끔 인도한다. 이 몰입은, 그리스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여유(scholê)와 유희(paidia, play)의 형식에서 진행되는 자체적 목적이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다시 빠져 나올 수 있는, 그런 몰입이다. 독자는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전을 통하여 낯선 것을 마주하게 되지만 몇 번의 대면과 접촉을 겪은 후 이것이 자체적 가치를 가지는 소중한 것임을 발견하고서는 이것을 음미하고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낯선 것에로의 몰입은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삶의 지탱을 위해 지녀 왔던 전제들을 낯선 것으로 만든다. 낯선 것에로의 몰입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자리바꿈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편견으로부터, 파편적 관점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민주주의 시민의 덕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몰입의 힘에 의해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고전, 특히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고전은 삶의 근본문제를 건드리게끔 되어 있다. 고전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 속의 삶의 문제를 자기 삶의 문맥으로 옮겨 놓는 것을 유도한다. 그 문제는 더 이상 책 속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이 옮겨 놓기는 독자의 자기애를 각성시킨다. 자기애의 각성이 계몽된 덕 교육의 출발점이다.(이창우, 66-67쪽)


로마제국은 정복전쟁을 통하여 다양한 민족을 속주로 삼았기 때문에 국가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가치들을 로마의 문화로 정착시켜 나갔다. 로마문명의 수혜자였던 초대교회 역시 세속인들과 함께 로마문화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로마문화는 교회에 있어 이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고,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 반문화적인 성향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세속문화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았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로마문화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기독교 정신과 로마문화의 충돌로 인한 갈등으로 박해를 당하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로마문화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통해 기독교 문화로 종합화시키면서 중세교회의 외형적 틀을 세워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문화적 접근들은 긍정적인 신앙의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중세교회는 기독교 사회화라는 목표아래 정작 신앙의 가치를 떠나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외형적 과시의 수단으로서 비본질적인 기독교 전통과 관습을 중세사회 가운데 관철시키고자 노력하였을 뿐이었다. 이후 종교개혁을 통하여 다시 기독교문화는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사회가 급격하게 인본주의 문화를 따라가면서 현대교회는 다시 문화적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이주환, 113-114쪽)


서사시 문학과 서정시 문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서정시에서 처음으로 시인이 개체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서정시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개인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아르킬로스는 오디세이 의 “사람들 각자는 각각 다른 일로 기뻐한다”를 “각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기뻐한다”로 해석했다. 또한 서정시 시대에 처음으로 각 개체들이 다양한 역할을 지닌 채, 유럽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당파의 지도자, 율법가 그리고 참주, 종교적 사상가, 조금 뒤에는 철학 사상가, 조형 예술가 등이 그들의 작품과 제작물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초기 시대와 오리엔트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익명성이 타파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호메로스 시대에는 상이한 개인들이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는 분명한 관념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관념은 서정시 시대에 들어오면서 생겼다. 초기 서정시인들은 인간이 혼을 가지고 있다고 의식했으며, 이것은 신체 기관의 움직임과는 구별되며 모든 물적인 사실 세계와 대립되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서정시인들은 이 감정이 신성의 개입 또는 이와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완전히 독자적 방식으로 각 개인에게 귀속하며 개인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개성적인 무엇이며, 나아가 이들 감정에는 다양한 인간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동일한 감정, 회상, 의견이 포섭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감정은 내면에서 긴장과 모순을 가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심적인 것의 강도와 그 독자의 차원, 요컨대 심오함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정시적인 자각은 비극 시대에 들어와 더욱 첨예화되어 인간 내면의 깊이를 자각하는데, 이 정신적 가치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보편적인 것으로 향한다.

신들의 명령에 따라 영웅들이 행동한다는, 그리고 영웅들의 갈등의 순간에 신들이 개입해 해법을 제시한다는 호메로스의 설정은 인간 행위의 근거 설정이라는 철학의 전통적 시스템을 잘 보여 준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보여 주려는 것은 자유와 책임의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어떤 명령과 수행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은 호메로스 시대와는 전혀 다르게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일견 현대인은 전적으로 자유를 향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이 결정하고 행동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자. 호메로스 시대에 인간은 한 가지 행위의 근거, 곧 신의 명령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행위의 근거들을 갖고 있다. 종교, 사회적 윤리, 법, 과학적 지식, 그리고 그런 것들을 전혀 무시한 개인의 독단 등. 현대인들은 어떤 외부의 힘의 영향도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메로스 시대의 영웅들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으며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런 사실은 호메로스 시대의 영웅들이나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들이나 결코 존재론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김은중, 231-232쪽)


종교 제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일상적 삶 속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순간,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지만 변화의 중대한 단계인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대해 비일상적인 제의의 형식을 부여한다. 또한 인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인간에게 아주 위급한 상황, 가령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나거나 역병이 돌게 되는 상황이나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도 종교 제의가 치러졌다. 특히 이와 같은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인 순간들, 또는 세속적이면서도 성스러운 순간들에 일어나는 종교 제의는 인간의 영혼을 극도로 쇠진하게 만들 수 있다. 가령 그리스인들은 장례의식을 치른 후에도 운동경기를 한다. 장례제의를 통해 죽은 자에 대한 슬픔과 고통으로 쇠약해진 영혼이 운동경기를 통해 신체를 단련시키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다. 그리스 종교 축제가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짓는다. 탁월성은 우리에게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종교축제에서 벌어지는 각종 경연과 경기에서 자신의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평소에도 훈련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탁월성이 올바르게 구현되지 않으면 오히려 신들을 분노하게 만들수 있다. 인간이 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목적으로 자신의 탁월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오만’(hybris)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탁월성을 발휘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에서 유발된 경쟁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고 믿었다. 가령 아라크네와 같이 비록 탁월한 길쌈 솜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이 아니라 자신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가지지 않는 한 오히려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오만’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의 격언 ‘너무 지나치지 말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이론으로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철학 이전에 인간의 탁월성과 관련된 주요 논의는 운동경기를 통해 나타난 신체의 탁월성이나 춤이나 노래 및 드라마 경연대회를 통해 나타난 영혼의 탁월성 등에 주안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혼과 신체의 탁월성을 훈련시키기 위한 훈련이나 교육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탁월성과 관련하여 영혼을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구분하고, 다시 각 부분에 따라 탁월성의 종류를 지성의 탁월성과 성품의 탁월성으로 구분하여 훈련하도록 제시한다. 그리스 종교 축제에서 인간의 탁월성과 관련된 부분은 영혼과 신체 모두에 해당되지만, 그리스 철학에서도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영혼의 교육과 신체의 교육에 대해 상당 부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면 점차 특히 영혼의 탁월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그리스 종교 축제의 다양한 요소는 이미 그리스 철학에서 중시되는 ‘탁월성’과 ‘중용’등과 같은 윤리학적 개념들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장영란, 296-297쪽)


우선 신탁의 의뢰가 정치적 동기에 있었다는 점을 살펴본다면,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 후반은 그리스 전역에서 도시국가가 정착하는 시기였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 정착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 즉 확고한 제도가 성립되기 전 불안정한 시기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탁에 의뢰하였다. 또한 기원전 7세기 말 항해술의 발달과 교역 및 상업이 발달하면서 각 폴리스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시 건설에 뛰어들었다. 식민시를 건설하면서 최적의 정착지를 고르거나 이주한 지역의 적들과의 전쟁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도록 신탁에 의뢰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중에 델포이 신탁은 식민시 확장을 적극 권장했으며 나아가 식민시 확장을 고무시키고 인도하였다. 새로운 식민시가 건립된다면 그곳에 우선적으로 아폴론 성소가 세워질 것이며 더불어 아폴론 신 숭배와 그 신의 제례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탁의 도움을 받아 건설된 식민시에 대해 필요시에 정치적인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시로부터 공물이나 세금을 받아 재원확충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델포이 신탁은 초기 식민시 건설 확장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열성을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델포이 신탁은 폴리스 형성기에 무질서한 권위에 저항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도시국가의 형성에서 질서 유지를 위한 합법적 수단으로도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신탁의뢰에 대한 종교적 동기와 개인적 동기를 살펴본다면, 델포이는 그리스 각지에서 다양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던 종교적 중심지에 해당된다. 그리스인들은 종교적 관습이나 종교적 분쟁 혹은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에 관한 질문을 아폴론 신에게 의뢰하고 재가를 받았던 것이다.

신탁이라는 종교적 제도를 통해 아폴론 신에 대한 신앙의 대상으로써 델피신탁은 종교적으로 범 그리스적 구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리스 국가들의 단일한 종교적 일체감을 조성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그리스인들은 항상 자신의 미래와 운명에 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개인적 과오, 재난, 권력의 상실, 질병, 미래의 운명등과 관련된 신탁을 의뢰하였던 것이다.(문혜경, 78-79쪽)


델포이가 신탁중심지로 절정을 맞게 된 점은 고졸기 시기 참주의 출현과 식민지 건설, 정치적 개혁 등으로 인해 신탁의뢰가 많아졌음을 들 수 있다. 델포이 신탁은 국·내외 문제들에 관해 혹은 새로운 모험에 관해 재가하는 형식으로 응답을 주었다. 그리고 이후 지속적으로 델포이 신탁은 인간사에 관한 자문과 조언을 예언하면서 그 명성을 유지하여 나갔다. 델포이 신탁이 없었다면 그 시기의 불안감과 노출된 긴장을 그리스인들은 견뎌낼 수 있었을까. 도즈는 어떠한 종교가 없을 때, 초자연적인 확신의 필요성, 즉 인간의 권위를 초월한 권위의 필요성이 압도적으로 강해 보인다고 언급하면서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이 이러한 간극을 메웠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델포이의 중요성이 약화된 이유로 사람들이 더 회의적으로 되었다기 보다는 다른 형태의 종교적 확신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델포이 신탁은 그리스 사회에서 정치적·사회적·종교적으로 중심역할을 담당하면서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신탁은 그리스인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방식으로 다가갔으며 그들은 자연적 재난과 국가의 중대사, 인간의 오만 등에 관한 문제를 아폴론 신의 지혜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아폴론 신탁은 아폴론 신에 대한 경신적 성향과 그러한 신탁의식을 원했던 사회적 필요성에 부응하면서 그 명성을 유지하였던 것이다.(문혜경, 87쪽)


⑷ 전쟁


히브리인 성경에 보이는 가끔은 ‘무자비한’ 전쟁의 신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에 보이는 신들 및 인간들 서로 간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신의 정의는 공동체 존립에 필요한 가치관을 투영하고 있으며, 그 투쟁의 대상은 삶의 터전이 되는 땅, 생계에 필요한 양, 사랑하는 여인 등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스 서사시와 성경의 연관성은 개인전의 형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헤시오도스의 5종족의 변천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탐욕은 2, 3의 종족에서도 다소간 존재했으나, 전쟁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4번째 종족인 영웅의 시대이다. 이 영웅의 시대와 연관된 《일리아스》 나 《성경》에 보이는 개인전은 단체전이 아직 완전히 발달되기 전 집단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한 장치였던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 에 나오는 판도라는 유대인 성경의 실낙원의 주제와 상당히 유사성을 갖는다. 판도라 때문에 모든 질병, 고통, 재앙, 노고 등이 인간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도 산고와 노고의 짐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두 경우 다 전쟁에 대한 언급은 없다.

참고로 부기할 것은, 기원전 8세기에 생존한 헤시오도스는 5 종족의 시대적 상계에 관해 서술했으나,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냥 전쟁이 일어날 뿐 아니라 그것이 직업적인 전사들에 의해 조직화, 만성화되는 상황이었다. 헤시오도스의 영웅의 종족이나 구약성경의 전사 신 하나님의 종(백성)들은 필요에 따라 궐기하여 싸우나 직업적인 전사 즉 용병들은 아니고, 밭을 갈고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의 서사시와 유대인들의 성경에 보이는 사회는 훗날 지중해에 나타나는 알렉산드로스 제국, 나아가 전 지중해를 석권하게 되는 로마제국과도 다르다. 이들 제국은 직업 전사들인 용병의 조직적 군사력에 의지하여 군국주의와 전제적 권력을 지향한 위정자 집단을 중심으로 했다. 동시에 공동체 사회는 붕괴되고, 위정자 및 군인과 농민 등의 사회적 기능의 분화, 빈부 계층의 신분 분화가 진행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정의로운 삶은 노동에 의한 평화로운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에서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 과 『구약성경』 은 공통점이 있음을 보게 된다. 다만 구약성경 에서는 신의 정의가 개인 뿐 아니라, 그리스의 서사시에 비해볼 때, 공동체 집단을 대상으로 구체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원심적인 권력 구조의 고대 그리스와 동방적, 가부장적 권력구조의 히브리 인들의 사회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겠다. 그리스와 근동은 그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상호간 문화차용이 없지 않았겠으나, 그 구체적 적용에 있어서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최자영, 63-64쪽)


용병에 대한 당대인의 이와 같은 평가는 무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참주와 돈을 탐하는 용병이 사회구조적으로 갖는 부정적 효과에 대한 반성을 보여준다. 그 관점은 용병의 조직과 전술의 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파커와는 달리 권력의 전횡과 민중에 대한 착취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다. 나아가 용병의 횡행을 경제적 수요��공급의 상관관계, 즉 토지를 상실한 유휴노동력의 증가, 혹은 위정자들의 용병에 대한 수요등으로 설명하려는 현대적 해석은 자칫 사회의 부정적 현상을 부득이한 경제적 논리로 정당화 하게 되는 위험성이 없지 않다. 오히려 그와 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 즉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이를 추구하거나 권력을 탐한다는 점에서는 하층민이나 위정자거나 간에 그 모두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겠다.(최자영 1, 61쪽)


기원전 4세기에 들어 마케도니아에서는 시민병이나 용병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상비군이 조직되었다. 필리포스 2세의 군사개혁은 군사력을 강화하나 비싼 보수를 주어야 하는 용병이 아니라 다소간에 강제적으로 차출되는 의무병을 중심으로 하여 상비군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자유민과 예속민의 중간 지위에 있는 병사들로 전제적 왕권하에 있는 페르시아 인과 공통점이 없지 않다. 시민병, 용병, 그 외 강제차출되는 상비군이 혼합되었던 것으로 상비군에게는 당연히, 용병은 경우 에 따라, 무기 등이 국가에서 지급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병을 오합지졸로 폄하하고 보수를 노리는 직업용병을 효율적인 조직과 전술을 가진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이 아니다. 권력과 영토의 확장을 꾀하는 전제적 왕권 하에서 강제적으로 차출되는 상비군은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고 세금을 착취하는 것이었다. 특히 참주와 그 권력의 유지에 봉사하는 용병은 민주파와의 갈등은 물론 그들 간의 상호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사회를 맹목적으로 호전적, 침략적, 만성적인 전쟁과 분열의 상태로 몰아갈 위험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대 그리스 용병의 횡행을 공급��수요의 원칙에 준하는 경제적 현상의 하나로 간주하려는 현대적 해석은 전쟁을 부득이한 사회 현상으로 정당화하고, 또 권력과 재물을 지향한 인간 탐욕에 대한 반성을 무디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최자영 1, 63쪽)


5. 신약에서 계약주의


⑴ 종말론과 구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명확하게 선포된 복음의 핵심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는 구약성서에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희망이었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자신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이해하였다(시편 96,10; 100,3 참조). 다윗 왕조는 그분의 왕권을 대리하는 것에 불과하였다(판관기 8,23).

그러나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망각하였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다윗왕조는 비참한 멸망을 맞이하였다. 이스라엘은 다시금 왕으로 다스려 줄 야훼의 날을 희망하게 되었다. 즉 종말론적 메시아사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예수는 새로운 메시아의 모습, 즉 봉사와 십자가의 메시아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다스림’의 실체를 드러내었다. 즉 예수의 설교와 그 공적 활동의 중심도 하느님 나라이며 그 테두리도 하느님의 다스림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역시 ‘하느님 나라’를 자신의 사명과 목표로 이해하였다. 즉 예수의 말씀과 업적, 그리고 인격을 통하여 세상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는 현세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근거를 두고 형성된 교회, 즉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통해 작용한다. 교회는 세상과 더불어 하느님이 이루는 역사에 참여한다. 이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전달에 의해 계시되었고 완성될 하느님의 통치 안에서 목표와 종국에 이르기를 희망하기에 하느님 나라는 실로 교회의 미래 그것이다.

때문에 예수는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려 했다. 예수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의지는 열 두 사도의 선발에서 잘 나타난다. 예수는 선발된 열 두 사도로 하여금 자신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도래하는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나타내는 징표로서 악령들을 몰아내게 하였다. 예수의 전 활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즉 하느님 백성의 종말론적 완성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하느님 백성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우선 인간과 세상의 구원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즉 ‘하느님 나라’는 불의한 통치로부터 자유,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의 선언이었다. 세례자 요한에게 있어서 ‘하느님 나라’는 심판의 징표로 이해되었지만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징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느님 나라는 신적 통치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행위, 하느님의 다스림, 즉 하느님현존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다.(김종민, 31-32쪽)


구약에 예언되고 약속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구원경륜을 “다 이루셨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계시하시던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종결되었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은 속죄의 장소가 아니다. 더 이상 외형적, 가시적 성전(外形的, 可視的 聖殿) .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드리심으로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제도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유일하고 참된 속죄 제사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경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께서 오셨다. 성령의 오심으로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한 성도 개개인이 성전이요, 성도 공동체가 성전이 되었다. 외형적 성전(外形的 聖殿), 즉 금과 은(학 2:8)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지어진 신령한 성전(神靈한 聖殿), 영적 성전(靈的 聖殿)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장소나 시기에 관계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그 예배는 성도들이 그들의 생활 전체 영역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드리는 삶의 예배이다.

따라서 성도 공동체가 드리는 공적 예배와 그들 각자가 생활 속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가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신약의 성도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구약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성막)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였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 속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것이 이원론적으로 분리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으며, 이것이 극단으로 흐르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키신 것이다.(박노일, 111-112쪽)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 성경의 아브라함 계약과 다윗 계약과 같은 편무계약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다는 관점으로 보아야지 인간의 응답이 필요 없는 것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동반한 계약 속에서 끊임없이 그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도록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성과 인간의 선택과의 관계를 적당하게 설정하지 못해서 선택을 받은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는다고 하며, 또 선택을 받은 사람은 다 예수를 믿게 되어 있다고 하는 논리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킨다.

칼빈의 예정론을 오해하면,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전제 군주로 만들 수 있으며, 선택과 비선택의 과정에서 때로는 하나님을 무자비한 편애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오해된 선택 개념은 구약 성경의 선택 개념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그 선택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방법론 적인 선택이지,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소수자들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학자들 중에는, 구원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또 전권에 의해 전적으로 성취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의사와 행위가 개입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면서, 인간이 아무리 공로를 세우고, 선을 행하고, 또 믿음을 가지려 하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소위 구원에 있어서의 신정론(神正論)을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 하나님의 예정은 다르다. 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영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으로 선택하시는 성부로서, 또 이 선택을 받은 성자로서, 이 선택에 있어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하나됨을 보존하고 그의 역사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성령으로서 존재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심으로써 모든 인간과 피조물을 구원으로 선택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선택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일군(一群)의 사람을 버리는 분으로 상상할 수 없다. 선택하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찾으시고 선택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회개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자신에게는 심판과 죽음을, 인간에게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예정하셨다. 이제 저주와 죽음 대신 구원과 생명이 모든 인간에게 열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와 신앙 없는 사람도 이미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모든 인간의 구원의 선택은 하나님의 결정이요 약속이며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이 하나님의 결정을 믿고 이것을 받아들일 때, 그의 죄악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 올 때 이 가능성은 실현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그것은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노창용, 90-91쪽)


몰트만에게 있어서 ‘메시아론’이 곧, ‘그리스도론’이라면, 특별히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란, 단순히 미래에로의 소개나 불행으로 부터의 현실적인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의 규정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이 예수를 참 그리스도로 이해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와 그의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론의 전제는 중요하다. 역사적 전제는 구약성서의 메시아 약속과 히브리 성서에 근거하는 유대교적인 희망이다. 이 말은 곧 예수와 그의 역사를 구약성서의 약속들과 현재 이스라엘의 희망의 역사의 빛에서 인식할 때에 우리는 예수를 바르게 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고,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이며, 그 분을 회상한다는 것은 그분의 구원하는 통치를 희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신학 전체를 메시아적 신학으로 본다. 메시아적 파송의 의미는 종말론적인 지평속에 있는 그리스도론이다. 메시아적인 것의 개념은 예수의 인격과 역사로부터 나온다.(권세광, 22쪽)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정치적 경험들에서 연방주의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대의 헬라 세계나 중세의 기독교제국, 동아시아의 중화(中華)세계는 모두 일종의 연방주의적 기획으로서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러한 정치적 기획들은 거의 모두 다루기 어렵고 성가신 적을 거리를 두고 놓아 관리하려는 강자의 방책과 대적하기 힘든 막강한 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약자의 방책을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기초로 정교하게 조응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골적으로 야만적 폭력을 일삼는 상태에 비하여 이 기획들이 ‘더 어려운 평화의 노선’에 훨씬 가깝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전히 덜 어렵거나 심지어 쉬운 평화의 편에 속한다. 민주적 연방주의는, 특히 ‘민주주의’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정치적 어려움 가운데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헌정사에서 민주주의가 불변의 지향이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의 소산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독특한 인간 이해를 전제로 인간의 자유를 초월적으로 정초한 뒤, 다시 그로부터 민주정치를 선험적으로 정당화 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전제를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한 민주정치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초월적 자유를 근거로 민주정치(democracy)를 정당화함으로써 민주주의(democracism)가 정치를 이끄는 불변의 전제인 동시에 근본 동력이 되자, 곧바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치적 불안정이 야기되었다. 자신의 자유를 민주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신적 요청으로 이해되고, 모든 인간이 그 신적 요청을 따르게 되면서, 그 인간 집단들 사이에 무시무시한 정치적 충돌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이 오래지 않아 신적 자유를 내세우는 이념들 사이의 종교전쟁으로 비화된 것은 어쩌면 상당히 논리적인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수십 년간 지속된 참혹한 종교전쟁의 와중에서 그 종식을 위한 정치적 기획들이 출현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학적 주권개념을 세속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획이었다. 대내적으로 최고이고 대외적으로 독립인 주권개념을 통해 국가를 재규정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하려는 것이 그 기획의 핵심이었다. 장 보댕에 의해 제안된 이래 주권론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면서 가히 근대세계의 정치 그 자체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글이 지향하는 더 어려운 평화의 노선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덜 어렵거나 심지어 쉬운 평화의 기획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주권론은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의 모토였던 초월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념을 초집권적 단방국가 및 그것들로 구성된 국제사회라는 획일적인 법적 형식 속에 한꺼번에 매장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권론은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의 실현이 아니라 그것을 방해하기 위한 가톨릭주의 기획으로서의 의미가 강했으며, 17-8세기에 유럽을 석권했던 소위 절대국가의 이념은 그 정점을 보여 주었다.

이에 대항하여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의 후예들은 헌정주의의 전통을 되살리는 다른 기획을 구상했다. 그것은 한 편으로 인문주의자들이 제기한 똘레랑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주권론에 맞서서 헌법의 이름으로 권력분립을 체계화하려는 시도였다. 지금까지도 자유민주주의의 헌법 속에 각인되어 있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및 권력분립의 통치구조는 이처럼 더 어려운 평화에의 시도를 통해서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제도적 외양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과정에서 활용되었던 권력분립의 성격이다. 후술하듯 권력분립은 크게 미래-현재-과거를 축으로 하는 시간적 차원과 개인-역사-초월을 축으로 하는 공간적 차원에서 기획될 수 있다(Ⅲ). 서구의 근대 헌정사에서는 이 가운데 전자가 후자에 비하여 현저하게 강조되었고, 그 과정에서 민주적 연방주의는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혁신이 중앙집권적 단방국가라는 영토적 통합성을 전제로 진행된 까닭에 공간적 권력분립의 이념에 기초한 민주적 연방주의가 작동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헌정주의는 민주적 연방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시간적 차원의 권력분립에 기초한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적 권력분립을 중앙집권적 단방국가의 헌법에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주권론의 기획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이국운, 6-8쪽)


(1) 몰트만은 역사 내재적인 현재적 종말론의 흐름이나 종말론을 영원화하는 것을 비판하고, 종말의 개념을 미래의 개념으로 전환한다. 말하자면, 헬라적 무시간적 영원이 아닌, 강림절적 하나님의 미래의 오심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몰트만의 종말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성서의 표상으로 규정된다. (2) 몰트만은 죽음을 죄의 결과 또는 자연적인 종말로 보던 기존의 신학적 관점을 거부하고,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한 세상 속의 슬픈 질서라는 독특한 관점을 제기했다. 왜냐하면, 몰트만은 죽음 이후의 중간기를 영혼의 중간기도 아니고, 부활한 존재로서의 삶도 아닌, 전인으로서의 인간의 변화와 정화와 새로워짐의 과정을 담고 있는 중간기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몰트만은 믿음 없이 죽은 자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언급했다. 이것은 죽은 자에게 시간이 있다는 증거이다(벧전 3:19, 4:6). 하지만, 그는 종교다원주의자들처럼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관점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죽은 자들의 세계에 전파되는 복음이라는 시각으로 해결책을 시도한다. (3) 한 걸음 더 나아가, 몰트만은 만인구원과 만유구원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인간과 우주는 신격화될 것임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몰트만은 기존의 “죽음에서의 부활” 개념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 부활은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완전한 폐기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을 영혼불멸론과 죽은 자의 부활 교리의 갈등을 화해시키기 위한 중간상태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상의 몰트만의 "죽음과 부활" 이해는 결국 죽음과 부활에 관련하여 "만유구원론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개혁신학의 입장으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과 부활에 관한 몰트만의 종말론적 해석은 결과적으로 기독교 선교의 길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김건동, 66-67쪽)


셋째, 종말론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론 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와 도래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롭게 변형되고 새롭게 각인되며, 그 구체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의 근거는 예수의 부활과 그 미래에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파루시아는 본래 멀리 떠난 이의 다시 오심이 아니라 '임박해 있는 도래'를 뜻한다. 파루시아는 또한 현재라는 뜻도 있는데, 물론 내일이면 지나가 버릴 현재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과 하자면 도래하는 미래'이다. 종말론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논의해야 한다. 비기독론적 역사해석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다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는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기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또 다시 개인화되어선 안 될 것이다. 주검 속에서도 파괴될 수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할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존재”로서 즉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만 파악되어선 아니 되고, 우주의 끝에까지 사무치는 하나님의 지배, 만물에 미칠 하나님의 희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몰트만의 종말론은, 기독교의 진정한 핵심, 즉 신학의 중심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 즉 피조 세계가 썩음에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될 뿐 아니라 완전한 자유와 인간의 공동체적 삶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약속된 대로 성취 되는 것에 대한 희망으로 파악 하며 하나님이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시는 그 나라, 곧 그 종말론적 영광의 나라가 모든 기독교의 교리가 되도록 제대로 형성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학서의 에필로그에서 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독교는 종말론이며, 미래를 내다보며 미래로 향하여 가는 그래서 현재를 혁신하고 변혁시키는 희망으로 정의한다.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현존하는 세계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들’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을 기다리는 피조 세계의 한숨과 신음들에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미래에 대한 약속들에 기초한 기독교의 희망만이 현재적 행복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우리는 죽은 것을 붙잡을 수 있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질문 들을,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답변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몰트만의 관심은 그의 신학적 방법의 핵심이다. 성서적 그리스도교 안에 있는 몰트만의 종말론은 “더 크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한 길이요, 발전이었다.(박승일, 86-87쪽)


둘째, 몰트만에 따르면 종말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종말론적 오심을 현실변혁적인 실천의 원천으로 강조했다고 할지라고, 그 종말의 미래의 완성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역사에 맡겨져 있다. 그러므로 몰트만의 종말론과 그것이 수반하는 구원론이 펠라기우스적이라는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몰트만의 종말론적 유보의 태도는 세계의 질서를 하나님의 질서와 동일시하고 그것을 절대화시키려는 모든 정치신학적인 이데올로기의 공세에 대항하는 정치적, 사회적 비판 이론의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적 영광의 종말론 은 하나의 미학적 신학(ästhetische Theologie)의 정립을 위한 중요한 암시들과 통찰들을 제공한다. 몰트만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시는 종말, 즉 새 창조를 “영광”, “감사”, “찬양”, “노래”, “춤”, “놀이”, “축제”, “판타지”, “웃음” 등의 시문학적, 예술적, 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묘사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학적 사유와 그것을 구성하는 언어는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주의적인 플레임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었던 측면이 있다. 시문학적, 예술적, 미학적 차원을 결핍하고 있는 종교는 유머와 여백과 묵상의 차원이 결여 될 수밖에 없으며, 과도하게 엄숙하고, 지나치게 경직된 도덕적 행동주의로 전락하거나, 무미건조하고 전혀 대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변적인 관념론의 포로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우리의 신학이 시문학적, 예술적(음악적, 회화적, 조형적, 건축학적), 미학적 사유와 언어를 배우고 섭렵하여 그것을 선용해야만 한다는 신학적 통찰을 우리는 몰트만의 종말론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이동영, 180쪽)


몰트만에 따르면 기독교는 종말론적 희망 그 자체이다. 그에 의하면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경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종말론적 미래에 대하여 예표적으로 말하고 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약 성경의 사건들 속에서 종말론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종말론적으로 존재하게 될 현실을 지금 이곳에서 선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성취될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의 현실을 변혁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 역사가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힘과 방향을 제공한다.(장성진, 68쪽)


⑵ 옛 계약, 새 계약


새 계약은 옛 계약, 즉 모세의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기보다 완성하기 위함이다(마5: 17). 옛 계약이 돌판에 새겨졌음에 비해 새 계약은 마음판에 새겨야 한다(고후3: 3). 이 새 계약은 “영원한 계약이며, 동시에 평화의 계약이다”(사50:10, 겔34: 25). 야고보는 “자유의 율법(약2: 12)” 또는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약1: 25)”이라고 했다.

새 계약을 맺은 하나님은 백성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과거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신다. 세상을 지으신 후 섭리하시어 변함없이 자연히 움직이게 하시듯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심을 말한다. 이 새 계약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계약이다.

마5:17의 내용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마태는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문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한다. 즉 예수가 율법을 폐하려고 왔다는 부류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일축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에 대한 유대교 적대자들이 “예수가 율법을 폐하러 왔다”는 주장과 동시에 마태의 공동체 내부에 율법폐기론자들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율법이나 예언자들을 폐하려고 오지 않고 완성하려고 왔다”와 “평화를 주러 오지 않고 칼을 주러왔다”라고 말하는 유형에는 메시야적인 사명과 권위가 들어있다. 즉 이 선언들 속에는 어떤 선지자적인 자기 계시- 비록 이러한 자기계시마저도 예수의 메시야적 자기계시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내용이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증거는 미7: 6과 그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는 마태10: 34 병행구인 눅12: 49∼51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명령을 받고 왔다는 것이다. 예수가 율법완성을 위해서 왔다는 것은 율법의 최종적인 해석자라는 의미이다.(정재춘, 63-64쪽)


마태복음은 부활의 주님과 교회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설정하여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자 공동체가 배워야 할 스승의 가르침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다섯 개의 설교 묶음들이 그런 의도에서 구성되었다. 특히, 마태는 당시 자신이 속해 있던 교회가 지신의 복음서를 통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읽고 뭔가 특별한 교훈을 받게 되기를 원했다. 우선, 유대 공동체로부터의 신학적 공격에 대하여 흔들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라는 교훈을 받게 되기를 바랬다. 이 복음서의 예수의 초상은 대(對) 유대교적인 변호의 결과였다. 결국, 마태의 공동체는 그의 예수 이야기를 통해서, 모세의 권위를 능가하는 예수를 참된 스승으로 믿고, 유대교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했다.

옛 계약은 각자의 몸이나 집에 율법을 써서 부착하였다. 그래서 결국 종교적인 의식이나 외적인 치장에 그쳤다. 하지만 새 계약은 우리의 마음에 심어야 한다. 우리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셔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겠다. 새 계약은 자체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총이지만,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잘못하게 만들기에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계약의 백성으로 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정재춘, 97쪽)


계약은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모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약속들이 점진적으로 그리고 연속적으로 나타난 바 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계약적인 사역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과의 계약적 관계에 있을때만 가능한 것이다.

계약은 믿음의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요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으며 감사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의 충만함은 하나님을 계약의 주로 인정하고 인식됨으로 기인된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계약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계약은 매우 중요하다. 계약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복음을 전할 수도 없으며 성경을 이해할 수도 없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약은 신앙의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실제이다.(박주연, 29쪽)


바르트가 이러한 계약 신학적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의 전체 주석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약 신학적 모티브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창조의 신학을 거기에 연결시키는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새롭게 하고 있는가? 바르트의 창조론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은혜의 계약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창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까지 연관된다는 점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계시가 이미 창조의 계시 안에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율법계약과 은혜계약이라는 이중성 보다는 은총의 종말론적 실현이라는 점에서 경륜사적 발전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적 발전이나 경륜사의 발전 같은 구분보다는 신학의 내적 근거인 삼위 일체적 계시의 역사 속에서 이 모든 구분을 삼위하나님의 역사 활동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역사를, 지금 우리가 만나는 창조의 현실을 진실로 하나님의 내주로 그리고 하나님의 동거하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거기에서 구약과 신약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이 둘 사이의 혼동, 즉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바르트는 그의 성령론적 종말론에서 선명하게 그리고 여러 차례 분명하게 악과 하나님의 은총은 구분되어야 하며 이미 지나가 승리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악은 극복되고 소멸된 것이지 결코 무시되거나 관심 없이 혼동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이 혼동되어 있는 현실은 죄의 현실이며 이 죄의 현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위해서 화해의 길을 열은 것이다. 바르트는 결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분의 선택은 십자가의 선택이었고 고난과 대속의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의 역사를 감당하는 율법과 복음의 이중성은 절대로 구분되어 넘을 수 없는 숙명의 이중성이 아니다. 이 이중성은 바르트가 강조한 것처럼 복음과 율법의 도식 안에서 하나님의 삼위 일체적 복음의 해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계약신학은 바르트의 신학 속에서 현실적이며 삼위 일체적이고 종말론적이며 동시에 신앙적(타자성의 현상학)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황덕형, 102-103쪽)


그러나 새 언약의 배경에서 오늘날 선생이 있는 것은 제한된 의미 속에서 언약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데 이는 잠정적인 시기에서 선생들은, 모든 신자가 새 언약 규정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적 하나 됨을 경험하는 데에 돕는 작용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새 언약 하에서 교육기관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 McComiskey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것은 이론적인 지식적 앎이 아니라 ידע (알다)라는 단어에 담겨진 하나님과의 내적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 언약 아래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전달되었고 그의 은혜는 오직 이, 중보자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새 언약 상황은 백성들을 위해 중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가 직접적이다. 성령은 더 이상 선택된 개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나이와 성별,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부어질 것이다(욜 2:28-29). 그 때에는 심지어 아주 천한 신자들조차도 옛 언약 아래서 사역한 선지자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동일한 권리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의 오심과 역사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보편화’의 핵심으로 두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오심과 역사는 신약 시대에만 유효한, 신약시대의 백성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상 10:10; 16:1 등을 통해서도 쉽게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여러 지도자들에게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성령이 역사하는 면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시대를 성령의 시대로 규정하고,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함으로 모든 가르치는 자나, 교육제도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다. 오늘날 모든 가르치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듯이 구약시대에도 성령은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은 교회 안에 목사와 장로와 교사를 두어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규명함에 있어 구약시대는 성령의 시대가 아니었음으로 가르치는 자가 필요하였고, 신약시대는 성령의 시대임으로 가르치는 자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신약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타당한 해석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적절한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다.(장백준, 57-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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