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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의 연구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 1.
3월에 RICH(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 선생님의 발표에 지정토론자를 맡게 되어서 매우 영광으로 생각하고 선생님의 논문과 저작들을 찾아 다시 좀 더 꼼꼼하게 읽고 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견해 차이가 드러나고(선생의 시각은 내 post-colonial한 시각, 특히 trans-national한 시각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나 스스로의 과격성을 잘 알고 있는지라, 한편으로는 이 견해 차이를 어떻게 의미있는 토론으로 잘 연결시킬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ㅋ.
사실,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은 오랜 동안 서구적 근대성을 보편으로 본질화해 왔던 기존의 시각에 비판을 가했던 선구적인 학자로 나도 존경하는 분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선생의 주장이 근대성 자체를 성찰적으로 살피려는 것이 아니라 서구적 근대성을 "유교적 근대"로 대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선생의 주장 속에서 사실 "서구적"인 것 또는 "동아시아적/유교적"인 것은 충분히 맥락적/구성적으로 설명되지 못할 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본질화되고 있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 왔다.
이러한 선생의 시각의 문제점을, 오늘 내가 읽었던 내용 중에서 하나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 비판해본다면, 우선 선생은 중국과 조선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미미하다고 보시는 듯 하다) 주자성리학이 지배하는 유교적인 시스템이 안착하고 성숙하면서 문(文) 위주의 세련된 사회로 가는데 일본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 유교화되어서 무(武) 위주의 폭력적이고 "후진"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선생은 "주자학을 이념으로 한 국가체제의 건설이라는 조선왕조의 선진모델 수용도 그런 가운데 가능해진 것이었다"라고 하면서(선생의 책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256쪽) 이에 비해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주자 성리학에 기초한 국가 시스템을 당연히 선진적인 것으로 본질화시키는, 이를테면 "유교 근본주의"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견해이다.
사실 나는 2008년부터 여러 논문을 통해서, 해방 이후 남한 역사학계의 조선시대사 연구의 최종적인 목표는, Confucian Fundamentalism에 입각해 유교를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전통으로 다시 발명하는데 있었음을 밝혀왔다. 결국 나는 한국의 이른바 유교적 전통(Tradition)은 Eric Hobsbawm이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context 안에서 이루어진 발명(Invention)이라는 주장을 계속 제시해 왔던 것인데, 사실 이런 맥락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Andre Schmid나 강해수 선생님 등의 훌륭한 연구들이 있다.
여하튼 이런 내 입장에서 볼 때,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조선 주자 성리학과 그에 기반한 유교적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1970년대 이후 남한 역사학계에서 특히 고려말 조선전기 연구를 주도했던 매우 우파적/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대표적인 연구자들이, 당시의 역사적 "발전"의 원인을 모두 성리학과 그것이 추동한 사회경제적 변화에서 찾으려 했던 흐름과 매우 유사하다. 결국 이런 맥락이기 때문에,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이 정치적 입장이 매우 다른 이태진 선생님의 조선시대 유교에 대한 연구를 여기저기서 인용하는 것은 이상하거나 우연하게 볼 것이 아닌, 오히려 매우 이 맥락 안에서는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전전 일본 역사학에 대한 일본 내의 반성이 전후 한국 역사학계의 민족주의적 논점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러한 "역설적"으로 보이는 사정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게다가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일본의 유교적 미숙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결국 일본의 근대성이 폭력적으로 외부에 표출될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보고 있는 미야지마 선생의 시각은, 이른바 독일 역사학계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독일의 역사의 특수한 길, 즉 Sonderweg의 일본판처럼 보인다는 점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임지현 선생님이 주장해 온 바와 같이, 국사의 대연쇄가 더 보편적인 역사의 모델을 설정해 놓고 자국사를 특수한 역사로 보는 Sonderweg의 대연쇄에 다름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이같은 인식은, 결국 진화론적 관점에 입각하여 보편과 특수를 이항대립적으로 파악하면서 역사의 발전을 도출해 내고 이를 자기입장에서만 강조해 온 근대적 역사인식론의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주장은, 스스로 비판해 왔던 바, 과거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이 중국과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 대해 후진적으로 평가했던 논리와, 사실은 똑같은 논리에 기반하여 결론만 정반대로 도출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진화론적인 관점이나 선형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선생의 글에서 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과 맞물리는 것 같다.
난 여기에서 일본이 조선이나 중국에 비해 덜 유교화되어 폭력적이고 후진적이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였다거나 하는 점을 사실로 본질화시켜 이른바 실증으로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실증이라는 것 조차도 맥락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이므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지금 이 논의에서 의미조차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른바 "사실"을 사료로부터 도출해 내는 관점이며 시각이며 인식론이다. 그리고 그런 시각과 인식론적 고민을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서구적 근대성"에 대항하여 "유교적 근대"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 서구나 동아시아의 개념을 본질화시켜 온 기존의 악순환 속에 갇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근대성"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맥락적으로 그리고 초지역적(지역횡단적)으로 이른바 서구와 아시아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라는 점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저서들을 읽다보면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내 생각을 대충 정리하는 정도로 공유하기 위해 쓴 이 글은 여기서 줄여야 겠지만, 위와 같은 이런 맥락에서, 나는 유교적 통치권력의 기원에서 폭력과 전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관해서도 앞으로 미야지마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과도 논의하고 이야기해 보고 싶다.
암튼 위에 쓴 내용말고도 솔직하게 토론해 보고 싶은 점들이 많지만, 뭐 지정토론자로 솔직하게 조금 강하게 말씀드리는 정도야 대가이시니까 이해해주시겠지ㅋ. 혹시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미야지마 히로시 샘의 발표와 내 지정토론의 시간은 나중에 posting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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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RICH)에서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 선생과의 활기찬 토론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내 방식대로의 도발적 wording이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하지만, 내재적이고 고유한 그 어떤 동아시아적 근대성이 있다고 상정하는 것을 통해 서구적 근대성이 극복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관점과, 평소 Post-colonial studies에 대해 가지고 계시던 적대감의 당황스러운 노정까지...
아무리 본인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동아시아를 균질화된 실체로 본질화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남고, 유교를 근대성에 가까운 그 어떤 것으로 본질화시켜 이해하는 문제도 여전히 남고, 진화론적인 narrativization 이외의 다른 역사서술 방식에 대한 고민은 찾기 어렵고, 유교적 근대를 비판적으로 보신다는데 그런 주장의 근거도 잘 와 닿지 않고...
본인도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발표의 마지막에 언급해 놓고도 왜 그 문제점을 비판한 나는 post-colonial한 "그런" 부류로 모는 거지? 더우기, 한국에서 민족주의적 관점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이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전유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이는데. 딱히 뭐라 입장표명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한(의도적으로) 반응...
생각보다 훨씬 큰 인식론의 차이를 실감한 토론.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의견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내 토론의 부족했던 부분과 앞으로 어디 쯤을 어느 만큼 더 짚어가면서 비판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던 것은 소중한 소득.
아무리 본인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동아시아를 균질화된 실체로 본질화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남고, 유교를 근대성에 가까운 그 어떤 것으로 본질화시켜 이해하는 문제도 여전히 남고, 진화론적인 narrativization 이외의 다른 역사서술 방식에 대한 고민은 찾기 어렵고, 유교적 근대를 비판적으로 보신다는데 그런 주장의 근거도 잘 와 닿지 않고...
본인도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발표의 마지막에 언급해 놓고도 왜 그 문제점을 비판한 나는 post-colonial한 "그런" 부류로 모는 거지? 더우기, 한국에서 민족주의적 관점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이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전유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이는데. 딱히 뭐라 입장표명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한(의도적으로) 반응...
생각보다 훨씬 큰 인식론의 차이를 실감한 토론.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의견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내 토론의 부족했던 부분과 앞으로 어디 쯤을 어느 만큼 더 짚어가면서 비판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던 것은 소중한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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