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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ham 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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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책인,
새로 산 책인,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岸本美緖기시모토 미오/宮島博史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역사비평사)를 읽다가 실망만하고 말았다. 말은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일국사적 시각을 넘어서는 인식론적 수준에서의 전환이 아니라, 단지 분석대상의 단위를 한 왕조 중심에서 여러 왕조들을 포괄하는 범위로 확장시킨 후, 다시 그것을 이마누엘 월러슈틴의 근대세계체제와 연결시키는 방식이었다.
사실 이런 류의 연구들에 대해서 혹 transnational하다고 평가를 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사실 그런 평가는 정확하지 못한 평가다. 이러한 연구에 대해서, 그 scale이 golbal하거나 trans-dynastic하다고는 define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This is as good as it gets). Transnational이 그저 Scalibility의 문제로 잘못 이해되어져서는 안된다("Transnational" should not be a matter of scalibility).
Perspective나 Epistemology의 차원에서 또는 역사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연구는 전혀 transnational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 자신이 상정(assume)하고 있는 당대 동아시아의 공통분모인 유교라는 전통이, 20세기 동아시아의 여러 근대국민국가들에 의해 각각 어떻게 재발견되었으며 또한 그러한 각국의 사례들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로 어떻게 연동되어 있었는가 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부재는, 미야지마 히로시로 하여금, 동아시아에 유럽의 근대성이 이식되기 이전에 동아시아인들 스스로가 이미 their own Confucian tradition에 입각한 "east asian"한 근세(early modernity)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고 말하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성찰적인(reflexive)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이러한 주장은 서구를 근대성의 중심에 놓는 서구중심주의적인 시각을 그대로 빌려다가 서구의 자리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나라들로 replace시킨 것으로, 여전히 어떤 center를 substantialize하는 시각이기 때문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러한 자신의 시각이 매우 새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각을 transnational한 시각으로 분석하면, 서구 대신에 동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그가 생각하는 "근세(Early Modern)"라는 과거는 사실 그냥 과거가 아닌, 아주 "오래된 미래"로부터 온 것일 뿐이다. 내가 왜 여기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metaphor를 썼는지는 시공간을 횡단하는 "trans"의 개념을 생각해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것이다.
과거는 어떠했나? 나는 유교문물이 보편문명의 가치로 지나치게 강조되어 Dogma로 군림했던 수백/수천/수십 년전 과거 동아시아의 시공간들을 적어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럼 현재와 미래는 어떠한가? 이제 다가올 거대한 중국과 또한 그 오랜 이웃인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 의해 유교적 가치는 다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재편될 수 있는 동아시아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불안한 기시감(deja vu)를 느낀다.
서구적 보편문명과 동떨어지지 않은 유교적 전통과 그에 입각한 근대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현재와 미래를 해석하는 역사학자들(여기에는 미야지마 히로시 이외에도 몇몇 학자들이 포함될 수 있다)이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한 욕망을 염두에 둔다면, 미야지마 히로시라는 역사가가 상상하고 있는 유교적 전통이라는 공통분모에 입각한 동아시아의 미래(Future of East Asia with Confucianism reloaded)는, 과연 정말 동아시아에 그리고 나아가 전 아시아에 보탬이 되는 희망적인 것일까? 이러한 동아시아의 미래는 과연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그 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한 미래일까? 그 미래는 과연 소위 "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 "아시아" 사람들 모두의 희망을 담을 수 있는 미래일까?
You, Park Yuha and 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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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 Park Yuha
    미야지마선생님과는 가까운 사이지만 어렴풋이 느껴오던 의문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셨네요. 저도 중심만들기는 싫어하지만 정선생님의 담론이 학계의 중심이 되는 그날까지 화이팅!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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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ham Chong
    아 박유하 선생님! 부족한 글을 격려해주시니 황송합니다. 그저 이런 저런 비판도 조금 더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환경만 되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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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n-Joo Kim
    제가 작년에 보내드렸던 수업발제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었죠. 최근 리오리엔트나 동아시아 근대론등의 이른바 중심부 이동론을 보면서 갈증이 해소된다기보다 답답함만 더해가더라구요. 자본주의와 계몽주의, 기독교라는 서구근대의 가치를 대신하기 위해 급조한 동아시아판 전통의 발명 이랄까요? 문제가 되는 근대성자체의극복이나 비판이 없다는 점에서 저도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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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ham Chong
    맞아 헌주야 그런 부분들이 Global history의 문제점들인 것 같다
  • Seunghoon Han
    형...제가 이번학기에 <아시아적 전통의 탐구>를 강의하거든요..한예종에서... 낼 수업이 유교적 전통인데.. 음음.. 형 글 보니까... 강의의 결론에 이야기해야 할 듯 해용..... 물론 저 스스로의 고민도 필요하겠지만용... 주말 잘 보내세용..^^: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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