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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9

알라딘: [전자책]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최원식,신윤환,백영서

알라딘: [전자책]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eBook]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최원식,신윤환,백영서 (엮은이)
논형  2021-03-19 



전자책정가10,0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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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지역으로서의 함의와 충돌의 위기를 가진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공존한다. 문화·경제·정치안보적으로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서 동아시아 국가 간 관계가 깊어지는 듯 보이나 교류협력과 제도화 면에서는 취약하다. 담론의 추상성을 넘어 생활세계에서 느끼는 동아시아에 대해 나누어야 할 때이다.

한국 현장에서 대안을 찾되, 동아시아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해야 우리 문제, 지역 문제, 세계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감각을 교육하고 전승하는 속에서 ‘왜 동아시아인가’를 넘어 ‘어떤 동아시아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최원식·백영서·대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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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오늘의 동아시아를 걷다_최원식

1장 | 동아시아 문화의 탄생
중국 속의 동아시아 문화 | 임우경
문화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동남아 한류 | 이한우
동아시아 속의 한국 온라인게임 | 강재호
‘트랜스 아시아’ 영화 | 김소영

2장 | 동아시아 협력의 실천과제
동아시아 교과서 무엇을 담을 것인가? | 유용태
동아시아 ‘공동대학 설립’ | 백영서
성공적 경제협력을 위한 요건 | 윤덕룡

3장 | 한국 속의 동아시아, 동아시아 속의 한국
아시아계 유학생에게 기대하는 것 | 김명인
결혼이주여성이 본 한국사회 | 김이선
동아시아의 한국학을 위해 | 홍정선
호주 속의 한국학 | 판카즈 모한

4장 | 동아시아의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와 트랜스내셔널 | 임성모
초국가 시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 권숙인
한국화교의 현주소 | 왕은미

5장 | 쟁점으로 본 동아시아 문학과 역사
중국문학 속에 출몰하는 과거사라는 유령 | 백지운
치유되지 않은 식민지 상흔 | 송승석
동아시아 개항과 중국 상인 | 이시카와 료타
일본의 위험한 역사인식의 용광로 | 서민교

6장 | 동아시아와 관계맺기
동남아 경제의 세계화와 동아시아 통합 | 박번순
떠오르는 인도와 동아시아 | 이옥순
아시아 속 유럽 | 황인원
시간이 바꿔놓은 한국인과 몽골인의 운명 | 이평래
러시아와 동아시아 | 한정숙

7장 | 대화
왜 동아시아인가? | 최원식·백영서 대담
동아시아를 다시 생각한다 | 강태웅·백지운·이병한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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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원식 (엮은이)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로 옮겨 2015년에 퇴임했으며,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로 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문학』 등이 있고, 중역본 『文學的回歸』, 일역본 『韓國の民族文學論』, 『東アジア文学空間の創造... 더보기


최근작 : <이순신을 찾아서>,<푸른 연금술사>,<50년 후의 시인> … 총 6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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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환 (엮은이)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작 :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동남아문화 산책> … 총 1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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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엮은이)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문과대학장, 국학연구원장,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현대중국학회장, 중국근현대사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2021년 현재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이자 세교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사회인문학의 길』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동아시아의 귀환』 『중국현대대학문화연구』 『思想東亞: 韓半島視角的歷史與實踐』 『橫觀東亞: 從核心現場重思東亞歷史』 『共生への道と核心現場: 實踐課題としての東アジア』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 리영희 선집』(공편) 『백년의 변혁』(공편) 『내일을 읽는 한·중 관계사』(공편) 『대만을 보는 눈』(공편), 역서로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공역)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 』(공역)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 총 4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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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지역으로서의 함의와 충돌의 위기를 가진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공존한다. 문화·경제·정치안보적으로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서 동아시아 국가 간 관계가 깊어지는 듯 보이나 교류협력과 제도화 면에서는 취약하다. 담론의 추상성을 넘어 생활세계에서 느끼는 동아시아에 대해 나누어야 할 때이다. 한국 현장에서 대안을 찾되, 동아시아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해야 우리 문제, 지역 문제, 세계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감각을 교육하고 전승하는 속에서 ‘왜 동아시아인가’를 넘어 ‘어떤 동아시아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최원식·백영서·대담·중에서

책 속으로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를 점검한 네 꼭지의 글들을 묶어 오늘의 동아시아를 탐색하는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타이완에서 시작하여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나아간 중국의 대중문화붐을 분석하면서 “대중문화를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를 상상하는 일”이 자본과 국가주의라는 만만찮은 난관을 돌파하는 작업과 병행할 때 비로소 창조적 가능성으로 이전될 수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 임우경, 동북아 바깥 동남아로 확장된 한류현상을 검토하며 문화제국주의적 징후를 넘어서 한류가 진정한 상호소통의 언어로 진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평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이한우, “강한 커뮤니티를 유도하는” 특성으로 동아시아를 석권한 한국의 온라인게임들이 거둔 놀라운 성공과 함께 찾아온 위기를 자상히 분석한 강재호, 그리고 범아시아 영화합작이란 새로운 흐름의 대두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짚되 내부의 소수자 문제를 축으로 새로운 대화를 조직하는 ‘트랜스아시아영화 또는 인터아시아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한 김소영. 이상의 1장에서 거둔 글들은 이미 동아시아가 각 나라의 ‘국민적’ 생활세계를 아래로부터 깊숙이 먹어가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2장은 1장의 현실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제도론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엇비슷한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고 견제하는 유럽과 달리 초월적 지위를 가진 제국이 군림해온 동아시아”에서 공동교과서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간명히 요약한 유용태, 동아시아 공동체의 기초를 구축하는 방안으로 “종래와 같이 대학끼리 협약을 맺는다거나 자매교를 늘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제안된 동아시아 공동대학론을 소개한 백영서, 그리고 깊어가는 경제적 상호연관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결성이 지지부진한 동아시아에서 그 장애요인들을 분석하는 한편 무엇보다도 공동체 결성과정에서 한국이 자신의 역할을 높은 수준에서 자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윤덕룡. 네트워크 또는 공동체로 가는 도정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실천적 과제들을 검토한 전형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1, 2장의 문제의식을 계승하여 한국과 동아시아의 통합정도를 다시금 점검한 것이 3장이다.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학생들이 3만 명을 넘어선 요즘, 특히 아시아계 유학생들을, “근대 이후를 모색하는 아시아”, “공동의 동량재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김명인, ‘외국인 100만 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떠오른 “동아시아 개도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를 단일민족신화의 폐쇄성을 해체하고 다문화사회의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실천적 전망 속에서 고찰한 김이선, 동아시아 각국에서 한국학과가 경쟁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가 근본적으로는 “한국 기업에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실용성에 긴박되어 있기 때문에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한 균형 잡힌 관심”에 기초한 한국학 교육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대책을 모색한 홍정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덕에 한국어가 호주에서 아시아 4개 핵심어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튼튼치 않은 호주 한국학의 현주소를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전달한 판카즈 모한, 바야흐로 한국과 동아시아를 마주 세우는 새 교육의 의제설정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점을 절감케 한다.

4장에서는 각도를 달리하여 나라들 사이에 걸쳐 있는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다뤘다. 연변 조선족과 일계 브라질인의 유동적 체류라는 새로운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동아시아 디아스포라의 트랜스내셔널 문제를 “국민국가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민국가 이후의 미래를 전망하는 적극적 의미”로 들어올린 임성모, 전 지구적 자본축적의 운동 속에서 디아스포라조차 “해외에 거주하는 유용한 ‘자원’으로 개념화”하면서 600만 해외동포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포섭하느냐에 따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성격이 결정될 것이라는 새로운 지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권숙인, 타이완의 타이완화에 따라 중국에 대한 귀속감이 강화 중인 노년층과, 한국에 대한 친숙화의 증대 속에 한국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젊은 층으로 분화된 2만 명의 한국화교가 겪고 있는 과도적 성격을 생생하게 보고한 왕은미. 디아스포라 사회 자체가 날카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 그들은 이제 별종의 난민이 아니라 바야흐로, 지역통합으로 가는 길을 선도하는 창조적 경계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5장은 동아시아 각 나라에서 현재 토의되는 문학과 역사의 쟁점들을 다뤘다. 일본과 한국에서 한참 회자되던 문학위기론의 중국 상륙을 알리는 순문학 논쟁의 속셈을 문혁이라는 트라우마와 개혁개방 이후의 탈정치화라는 이중의 압박과 연관지어 해명하면서 지방성에서 대안적 가능성을 파악한 백지운, 40년의 계엄체제가 해소되면서 폭발한 탈중심적 경향이 숙명적 주변성을 극복하려는 향(向)중심의 표출이라는 이중성에 시달리는 타이완 문학의 위기를 날카롭게 분석한 송승석, 일본의 개항이 서구의 충격에 강제된 “서양에 대한 개항인 동시에 중국 상인들을 매개로 한 아시아에 대한 개항”이라는 양면성을 실증적으로 제시한 이시카와 료타(그 동안 간과된 측면을 일깨운 점에서는 귀중하지만 양자 가운데 무엇이 주동인가를 따질 때에는 역시 전자가 축이라는 점을 또한 지나쳐서도 안 될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연합국이 일본전범들을 법정에 세운 동경재판에 대한 일본사회의 논의들, 즉 50년대의 긍정론, 6, 70년대의 부정론, 그리고 그 후 대두한 이분법을 넘으려는 주장들의 추이를 통해 일본사회의 건전성의 지표를 짚는 서민교, 문학론과 역사론이라는 필터가 오늘날 동아시아 각 사회가 마주친 현안에 속 깊이 연동된 중추임을 생생히 보여주는 장이다.

동아시아 안팎의 네트워킹을 점검하는 꼭지들을 배치한 6장으로 우리의 짧지 않은 여정을 마무리한다. 1985년 이후 동남아 경제의 전개과정을 명쾌히 정리함으로써 옹근 의미의 동아시아 구상에서 동남아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환기한 박번순, 1991년 경제자유화 이후 미국·중국·일본 등과 독자적 네트워킹을 통해 “관계의 다원화”를 추구하는 인도의 선택을 흥미롭게 분석함으로써 한국이 “동아시아의 균형자로 떠오른 인도의 중요성을 재발견”할 것을 촉구한 이옥순, 1980년대 이후 “탈유럽 아시아화”와 “탈아시아 미국 중심” 사이를 왕복하는 호주의 대외정책을 분석하여 황색공포에 시달리는 ‘아시아 속의 유럽’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타산지석으로 제시한 황인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오히려 반한감정이 치솟는 몽골의 속사정을 솔직히 전달함으로써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평래, “남북한 어느 쪽과도 ……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야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해 소중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한 한정숙. 동아시아를 축으로 세계를 구상하고 다시 그 안을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반듯이 짚어야 할 포인트들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최원식, '서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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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주도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 2,3권이 출간되었다. 1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의 뒤를 잇는 2권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과 3권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너머북스, 2017)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일단 3권을 손에 들었는데, 도쿄대 명예교수이면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인 미야지마 히로시를 제외하면 모두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이다. 자연스레 국내 한국사와 동양사 연구성과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기획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 는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다른 지역의 근대를 파악하는 방법을 넘어서 각 지역의 개성적인 근대를 파악한 다음 보편적 근대의 문제를 생각하는 작업이 요청된다"면서 동아시아 세계가 이 문제를 검토하는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한다. 따라서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은 다만 서구적 근대를 향해 달려나가는 종래의 19세기 묘사나 연구들과 매우 다르고, 나아가 시각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와 트랜스내셔널한 시점의 접근, 문화와 사유, 삶의 방식을 유교와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동아시아 역사상을 그려낸다."





기억에 내가 미야지마 히로시에 매료된 것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읽은 다음부터인 듯하다. 외부자적 시각에서 한국과 한국사를 바라본 사례로 미국의 제임스 팔레와 함께 귀감이 될 만한 학자가 미야지마 히로시다. 그에 대한 신뢰 덕분에 그가 관연한 책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갖게 된다.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의 교양학술서도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면 좋겠다. 그래야 책이 또 나오기에 그렇다.









한편, 동아시아 담론의 또다른 출처는 최원식, 백영서 교수를 중심으로 한 창비다. 한눈에 조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은 '최원식 정년기념논총'으로 나온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창비, 2015)다. 출간 당시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데, '동아시아론' 관련서들과 함께 폭넓게 읽을 만하다. 더불어, 미야지마 히로시 사단의 동아시아관과 비교해봄직하다...



17. 06. 25.
- 접기
로쟈 2017-06-25 공감 (37) 댓글 (0)




동아시아 담론과 관념사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그린비, 2011)에서 중국 현대사 연구자인 백영서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다가 '동아시아'론에 대한 책 몇 권을 구하러 서점에 다녀왔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다른 여러 아시아>(울력, 2011)가 이번주에 나온 것도 겸사겸사 발품을 팔게 된 계기다.



학술서 범주에 드는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책은 대부분 동네서점에선 구할 수가 없었고(교보 분점이라고 해도) 대신에 경향신문 기획연재를 묶은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논형, 2009)과 함께 몇몇 관련서를 손에 드는 정도에서 타협을 보았다. 가령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충격>(소명출판, 2009)과 함께 구입한 <중국 근현대사를 새로 쓰는 관념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10) 등이 그 '관련서'이다(<관념사란 무엇인가>는 좀 고가여서 일단은 2권만 손에 넣었다).



'관념사'란 표현을 썼지만, 요즘 많이 출간되고 있는 '개념사' 쪽 책이다(짐작엔 '개념사'를 중국어로는 '관념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책의 개요는 아래 소개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내용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은 '중국 현대 정치용어의 형성'이라는 원저의 부제다.
중국 관념사 연구의 선구적 업적으로 꼽히는 진관타오(金觀濤) 대만 국립정치대 강좌교수와 류칭펑(劉靑峰) 홍콩 중문대 당대중국문화연구센터 명예연구원 부부의 <관념사란 무엇인가>(2008)가 우리말로 옮겨졌다(전2권ㆍ푸른역사 발행). 양일모 한림과학원 부원장, 송인재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등 5명이 번역했다.

진관타오 교수 등은 '권리' '개인' '공화' '과학' '천하' '만국' 등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주요 관념어 92개를 선정해 이 단어들이 어떻게 출현했고 어떤 의미로 변천했으며 그 변화의 맥락은 무엇인지를 통계작업을 통해 분석했다. 저자 부부가 1830년부터 1930년까지 100년 동안 중국에서 간행된 주요 신문 잡지 교과서 번역서 등 1억2,000만자 분량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이를 10년 동안 분석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특정한 관념어의 출현과 의미 변화는 당대의 사회변화와 함께 나아간다. 예를 들어 '과학(科學)'은 서양과학이 중국에 처음 알려졌을 때 'science'의 의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격치(格致)'라는 단어가 쓰였다. 과학이 격치를 압도하게 된 것은 1900년 전후다. 중국에서 과학은 전통적으로 '과목을 나누어 관리를 선발한다'는 뜻의 과거제 관련 용어였지만, 1905년 과거제의 폐지와 함께 이 단어가 격치의 대체어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주요 관념어들의 역사적 변화를 고찰한 끝에 저자들은 중국 근현대사의 전개를 '선택적 흡수-학습-창조적 재구성'의 3단계로 보자고 제안한다. 이는 근대 이후 중국사를 '서양으로부터의 기물(器物) 학습단계(양무운동)-제도 학습단계(무술변법~입헌공화)-가치 학습단계(신문화운동)'로 해석하던 통설을 깨뜨리는 것. 저자들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유교적 경세치용의 틀에서 현대화를 시행한 근대(pre-modern), 서양의 현대적 제도를 학습해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현대(modern), 학습의 실패와 관념의 재구성을 시도한 당대(contemporary)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국일보)






이미 개념사에 관해서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주관으로 '한국 개념사 총서'가 나오고 있고 주창자의 이름을 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푸른역사)도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관념사란 무엇인가>는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식 개념사'를 보여주는 듯싶다(한국어판 서문을 보니 비슷한 연구작업이 거의 같은 시기에 기획됐고, 이 책의 번역은 한림과학원의 '동아시아 기본 개념의 상호소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개념사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근에 나온 나인호 교수의 <개념사란 무엇인가>(역사비평사, 2011)를 참고할 수 있겠고, 멜빈 릭터의 <정치.사회적 개념의 역사>(소화, 2010)도 유용한 소개서이다. 국내외 학자들의 글을 모은 <개념사의 지평과 전망>(소화, 2009)까지가 개념사에 대한 '개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념사란 무엇인가>를 자세히 읽고 있는 중앙일보의 기사는 개념사와 관념사의 차이도 지적하고 있어서 참고할 만하다.
관념이란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토대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구조가 아니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키워드와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이다. 이 관념의 다발이 모여서 형성한 것이 이데올로기다. 이 관념을 형성하는 것을 키워드로 본다. 저자는 현대중국 이데올로기 형성의 주역이라 생각되는 주요 관념과 92개의 키워드를 추출해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주요 관념이란 진리·권리·개인·사회·민주·세계·경제·과학·혁명 등이다. 이 관념들을 구성하는 키워드들의 시기별 사용빈도를 통계처리했다. 저자가 10년에 걸쳐 구축한 중국 근현대사상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고 한다.

일례로 권리와 개인이란 관념의 사용추이를 보면, 근대 서양에서 권리의 주체는 주로 개인인데 1900년 이전 중국에서 권리의 주체는 국가였다. 권리의 주체로 개인이 본격 등장한 시기는 1900년 이후다. 이 시기에 전통 중국엔 없던 관념인 개인도 대두된다. 이것이 책에서 말하는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어 개인의 권리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집단이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사회주의가 이를 주도했다고 본다. 저자들은 이같은 통계의 결과를 전통적 관념과 서양 근대적 관념이 언어에 남긴 흔적으로 파악한다. 이 흔적을 쫓다보면 중국 혁명이란 오로지 서양 근대 사회주의 이념의 이식이 아니라 중국 전통 유교의 중국적 재현이란 생각마저 하게 된다.

이들은 중국근현대사의 새로운 시대 구분을 제안했다. 우선 두 저자는 중국 근현대사를 서양 근대 관념의 수용사로 파악한다. 중국 근현대사를 3단계로 나눴다. 서양 근대 관념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단계’-‘학습하는 단계’-‘소화·종합·재구성하여 중국 특유의 현대 관념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를 각각 ‘전근대’(1830∼1895), ‘근대’(1895∼1915), ‘현대’(1915∼현재)로 명명했다(중국식 표현으로는 근대-현대-당대로 우리와 다름. 책은 중국식 표기를 따름). 1919년을 근대의 기점, 1949년을 현대의 기점으로 보는 기존 통념과는 다른 주장이다. 중국사 학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셈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서구적 근대를 중국이 제대로 배워야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서구중심주의 해체를 화두로 삼는 탈근대가 논의되는 이 시대에, 서구 근대적 기획의 완성을 중국사의 과제로 설정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이책을 번역한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은 얼마 전 독일 개념사의 기념비적 저작도 번역한 바 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주도한 『개념사 사전』(전5권, 2010)이다. 개념사와 관념사는 역사학의 전문 용어다. 개념사는 관념사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제의식을 갖는다. 코젤렉의 개념사는 근대의 병리적 현상을 해명하려 한다. 반면 『관념사란 무엇인가』는 서구 근대의 기획을 중국에 실현시키려 한다. 개념사가 반계몽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관념사는 근대적 계몽을 기획하는 것이다.(중앙일보)

해서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관심이 관념사(개념사)로 뻗어나가게 된 셈인데, 아무려나 동아시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역내 교역의 확대나 선린외교 관계의 구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기본 개념의 상호소통이란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선 '동아시아 인문학 지각변동'도 요청되는 게 아닌가 싶다...

11. 02. 02.
- 접기
로쟈 2011-02-02 공감 (2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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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한·중·일, 평화 원하면 ‘제국의 길’ 포기하라 - 동아시아론

[책과 삶]한·중·일, 평화 원하면 ‘제국의 길’ 포기하라 - 경향신문 AMP

한·중·일, 평화 원하면 ‘제국의 길’ 포기하라
한윤정기자
2009.03.06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최원식 | 창비

동아시아론의 제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최원식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가 지난 15년간 매체 혹은 강연에서 발표한 동아시아 관련 원고 14편을 묶었다. 가장 최근의 글은 계간 ‘창작과비평’ 올 봄호에 실린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이고, 가장 오래된 글은 역시 ‘창작과비평’ 1993년 봄호에 실렸던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이다. 탈냉전시대에 즈음한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이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궤적을 담은 이 책은 동아시아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개인적으로는 “이 논집을 묶는 일이 이제 동아시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90년대 초반 옛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권력의 축이 미국 등 서방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결국 냉전의 다른 축이었던 미국의 추락을 전망하면서 동아시아의 역할을 주문한다. 특히 동양평화의 균형추 역할을 해온 한반도에 주목해 일국사의 관점을 벗어나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민족민주운동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동아시아론의 단초는 꾸준히 발전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에는 ‘소국주의’ 론을 제기한다. 당시 외환위기 사태는 세계 경제에서 대국을 지향하던 한국에 큰 상처를 주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 앞에서 저자는 세계 어느 나라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일탈이 불가능해졌음을 지적하면서, 미완의 근대성을 성취하는 동시에 근대 이후의 이행을 바라보는 구상으로 ‘소국주의’를 내놓는다.

이런 맥락 속에서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란 동아시아의 전통사상인 도가와 유가, 이를 종합한 원불교로부터 비롯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추구하는 자세를 뜻한다.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요,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여 가는 것”(소태산 박중빈)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대국주의를 반성하고 소국주의를 재평가하되 국제분업의 주변부에 안주하는 소국주의로 전락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중형국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한국발 동아시아론은 한·중·일 3국이 제국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평화체제를 이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영토분쟁, 역사해석 등을 둘러싸고 이따금 불거지는 신민족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동아시아인이라는 공감각을 계발하는 동시에 각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체 3부 가운데 1·2부는 이론적 논의이고, 3부는 김정한의 소설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 재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고(Go)>, 한류현상, 임진록 등 다양한 텍스트를 동아시아론의 틀로 분석했다. 문학연구자의 관심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거시적이고 이상적이지만 실질적인 제안이 들어 있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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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최원식 (지은이)창비2009-03-02































전자책정가
11,200원

6.0 100자평(0)리뷰(1)

책소개

지난 1993년부터 최근까지 저자가 매체 또는 강연에서 발표한 동아시아 관련 원고들을 추려 간행한 책으로, 동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지난 20여년간 이 지역의 정세를 그때그때 분석·정리하면서 내놓은 ‘한국발(發) 동아시아론’의 종합 정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목에서 암시되듯, 저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반도 및 한국사회 내부의 분열 등으로 극심한 내외적 혼란을 겪는 지금 시대를 ‘제국들의 황혼’으로 정의한다. 90년대 초 이미 서구의 반쪽 강대국 소련이 무너졌고, 그와 짝패를 이루던 미국은 9·11 이후 전쟁의 미궁 속에 빠져들더니 급기야 경제위기의 타격으로 추락의 징후가 농후하다.

이 제국 해체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단연코 제국의 망상을 거절하자고 제안한다. 이제는 잔인한 제국의 시기를 벗어날 때가 이르렀으며, 그 책무를 동아시아가 나눠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되고 핵심적인 주장이다.

최원식의 한국발 동아시아론은 한·중·일 3국의 평화체제를 이룩하되, 동아시아 스스로 제국의 길을 포기하고, 무엇보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에 기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책의 1, 2부가 저자의 핵심적 동아시아론을 모은 것이라면, 3부는 문화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론을 좀더 풍부하게 점검해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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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제1부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비망기:민족주의와 민주주의
동아시아 공동어를 찾아
천하삼분지계로서의 동아시아론

제2부
세계체제의 바깥은 없다:소국주의와 대국주의의 내적 긴장
비서구 식민지 경험과 아시아주의의 망령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제3부
오끼나와에 온 까닭
근대문학과 유교, 길항하는 흔적들:『서유견문』이라는 원천
주변, 국가주의 극복의 실험적 거점:동아시아론 보유(補遺)
한류, 동아시아 소통의 도구
1965년과 2002년:‘포스트 65년’을 위하여
임진왜란을 다시 생각한다:『수길일대와 임진록』을 읽고
한국發 또는 동아시아發 대안?


원문 출처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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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원식 (지은이)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로 옮겨 2015년에 퇴임했으며,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로 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문학』 등이 있고, 중역본 『文學的回歸』, 일역본 『韓國の民族文學論』, 『東アジア文学空間の創造』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접기


수상 : 2010년 임화문학예술상, 2009년 임화문학예술상
최근작 : <이순신을 찾아서>,<푸른 연금술사>,<50년 후의 시인> … 총 6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90년대 초 동구권의 몰락 이후부터 IMF, 9·11사태, 한·일 월드컵에 이어 최근 미국발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근 20여년에 걸친 세계사의 굴곡 속에서 동아시아의 진정한 의미와 나아갈 바를 끊임없이 궁구해온 최원식(崔元植) 교수의 동아시아론집이다.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는 지난 1993년부터 최근까지 저자가 매체 또는 강연에서 발표한 동아시아 관련 원고들을 추려 간행한 책으로, 동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지난 20여년간 이 지역의 정세를 그때그때 분석·정리하면서 내놓은 ‘한국발(發) 동아시아론’의 종합 정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국의 망상을 거절하고 동방의 길로

제목에서 암시되듯, 저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반도 및 한국사회 내부의 분열 등으로 극심한 내외적 혼란을 겪는 지금 시대를 ‘제국들의 황혼’으로 정의한다. 90년대 초 이미 서구의 반쪽 강대국 소련이 무너졌고, 그와 짝패를 이루던 미국은 9·11 이후 전쟁의 미궁 속에 빠져들더니 급기야 경제위기의 타격으로 추락의 징후가 농후하다. 이 제국 해체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단연코 제국의 망상을 거절하자고 제안한다. 이제는 잔인한 제국의 시기를 벗어날 때가 이르렀으며, 그 책무를 동아시아가 나눠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되고 핵심적인 주장이다.
최원식 교수의 한국발 동아시아론의 기원은 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동구권의 몰락 이후 세계의 중심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으로 기운 듯 보였을 때 저자는 홀연히 동방의 길을 택한다. 소련의 붕괴를 보며 저자는 겉으로는 대립했지만 결국 한패에 속한 냉전의 다른 축 미국의 추락을 전망했던 것이다. 당시 동아시아론을 꺼내들면서 저자는 동양 평화의 균형추 역할을 해온 한반도에 주목하여 일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민족민주운동을 모색할 것을 주문했다(?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저자의 이러한 동아시아론의 단초는 꾸준히 발전하여 IMF 무렵인 98년 ‘소국주의’론으로 제기되기에 이른다(?세계체제의 바깥은 없다」). 당시 IMF사태는 세계 경제에서 대국의 길로 향하던 한국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여 저자는 어느 나라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일탈이 불가능해졌음을 지적하면서 미완의 근대성을 성취하는 동시에 근대 이후의 이행을 바라보는 구상으로 ‘소국주의’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그때까지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박정희식 대국주의를 반성하고 민족의 존엄과 민중의 권익이 민주적으로 지켜지는 작지만 단단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91면).

소국주의와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

이러한 소국주의론의 가장 최근 논의가 1부의 맨앞에 실린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대국굴기(大國?起)를 꿈꾸는 중국, 경제를 바탕으로 ‘보통국가’로 부활하려는 일본,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한국 모두 대국의 꿈이 비등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 3국에 각각 요구되는 소국주의의 길을 모색한다. 우선 중국에는 민주화의 과제가 시급하다. 특히 최근 급부상한 티베트문제의 해결에 소국주의의 길을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일본 역시 평화헌법 이후의 소국주의의 길을 계속 이어가야 하며, 소국주의의 우등생 한국은 중형(中型)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특히 저자는 우리 안의 대국주의를 냉철히 의식하면서 그를 제어할 실천적 사유의 틀을 마련해야 할 이때, 백범(白凡)의 문화국가론, 소태산(小太山)의 자리이타(自利利他) 같은 사상을 활용하여 소(小)한국주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최원식의 한국발 동아시아론은 한·중·일 3국의 평화체제를 이룩하되, 동아시아 스스로 제국의 길을 포기하고, 무엇보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에 기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의 강한 민족주의가 최근 인터넷상에서 신민족주의의 충돌로 불거진 사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충돌의 지루한 반복에서 벗어나 우리 안에 억압된 아시아를 일깨움으로써, 한·중·일의 인민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인이라는 공감각(共感覺)을 계발해야 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각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돼야 한다고 강조한다(?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비망기」). 또한 이 지역에서 한 세기 전에 좌절한 아시아연대론의 기획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되, 배타적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미국과 러시아까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비판적 지역주의를 수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 안에 억압된 동아시아를 호출하고 상호소통할 공동어(共同語)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동아시아 공동어를 찾아」).

한국발 동아시아론의 청사진

이처럼 이 책의 1, 2부가 저자의 핵심적 동아시아론을 모은 것이라면, 3부는 문화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론을 좀더 풍부하게 점검해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오끼나와에 온 까닭」은 김정한(金庭漢)의 소설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1977)를 화두삼아 동아시아론의 향방을 짚어보고 동아시아 연대운동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동아시아론자인 와다 하루끼(和田春樹)와 타니구찌 마꼬또(谷口誠)의 동아시아론을 비교·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주변, 국가주의 극복의 실험적 거점」은 동아시아론이 국가주의로 경도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 국민국가들의 경계를 가로질러 분산된 디아스포라에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저자는 재일동포 작가 카네시로 카즈끼(金城一紀)의 소설 『GO』를 ‘주변’의 관점으로 읽어내면서 재일동포사회를 관통하는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의 경쟁하는 국가주의를 넘어서 제4의 모험적 도정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거장 쿠로자와 아끼라(黑澤明) 감독의 「카게무샤」를 통해 한국발 동아시아론의 청사진을 제시한 「한국발 또는 동아시아발 대안?」, 자칫 잊혀질 뻔한 현병주(玄丙周)의 독특한 소설 『수길일대와 임진록』을 재발굴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임진왜란이 갖는 의미를 되묻는 「임진왜란을 다시 생각한다」 등의 다채로운 글이 수록돼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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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과 우석훈


우석훈은 한중일의 행태를 '촌놈들의 제국주의'라 말하지만 최원식은 '제국 이후'를 말한다. 그런 면에서 우석훈은 현실주의자이고 최원식은 이상주의자이다. 최원식은 동아시아의 공동어문학이었던 한문문학을 이야기한다. 유불도에 대한 관심은 당연할테고.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파고세운닥나무 2009-06-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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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론

프레시안에 새롭게 연재되는 글이다. 관심이 가는 주제다.
[동아시아를 묻다·1]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위하여




동아시아론, 버블기의 끝자락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외래어였다는 흔적조차 희미해진 말 아시아(Asia)에 '동(東)'이라는 방위가 달린 이 말은 담론의 대상이자 통찰의 주제로 빈번이 회자되었습니다.

동아시아론. 동아시아에 관한 담론은 탈냉전, 세계화, 지역화, 탈국경화 등의 추세와 맞물려 부상했으며 역내 교류의 증가, 북핵 위기, 중국의 부상, 일본 우익의 준동, 한류의 확산에 이르기까지 현실 사건과 반응하며 현실감을 더해 학술 쟁점 이상의 담론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학술 영역에서라면 동아시아론은 사상사, 문화 연구로부터 지역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전 방위로 논의되며 인문학에서는 주체 구성지평으로, 사회과학에서는 긴박한 분석 범주로서 조명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되어 동아시아론은 인문·사회과학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구라는 인상마저 풍겼습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론은 풍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아시아론은 철지난 담론이 될지 모릅니다. 이미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인상입니다. 여전히 여러 논의가 쏟아져 나오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길 위의 자전거 페달이 공회전하듯 담론은 지면(현실)과 무관하게, 그간 쏟아져 나온 동아시아론의 관성으로 인해 자기운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동아시아 사상사를 공부합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의 성장세가 멈췄다고 아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동아시아론이 외형적 성장을 거듭할 때도 그 번영과 사상적 공백 사이의 낙차가 제게는 눈에 밟혔습니다.

동아시아론은 풍년처럼 보였지만 실은 버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권이 바뀌고 동아시아론에 관한 정책적 수요가 줄고, 관련 사업지원이 끊기자 동아시아론은 거품이 빠지듯 쇠락하는 풍경입니다. 역시 정책적 지원이 줄었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책적 지원 속에서 웃자란 동아시아론은 바로이유로 '동아시아'에 관한 담론임에도 '내수용' 담론으로 성장해왔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한국의 사상계는 어느 사상계보다 '동아시아'를 자주 입에 담지만, 몇몇 값진 시도들을 제외하고는 타국의 사상계와 공유할 만한 동아시아론을 생산해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의 조건으로부터 긴장어린 사상 자원을 빚어내 다른 지역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모호한 지평에 자신의 기대를 투사하는 형국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모호함, 동아시아론의 애매함

동아시아는 분명 모호한 말입니다. '아시아'의 어감에 배인 모호함은 '동'아시아로 좁힌다고 그다지 희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은 모호함을 대가로 지불하는 대신 풍부한 환기 능력을 얻습니다. '동아시아'는 그리하여 화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은 사회 현실의 다양한 면모에 새로 빛을 비추고, 기존의 학문적 대상과 범주들은 그 말 안에서 자명함을 잃거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말은 주체/타자, 근대/탈(반)근대, 국가/지역, 이론/역사 어느 개념과도 복잡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라는 말을 통해 환기되는 문제의식들은 멀리서 넉넉하게 표현하면 다양하다고 하겠으나, 바짝 다가가서 내실을 들여다보면 여러 모순, 불균형한 갈등이 엿보입니다. 동아시아는 하나의 문제의식이 전개되는 전제로 오기도 하며, 문제 상황을 갈무리하는 자리에 오기도 했습니다. 문화 연구에서는 현실의 면모를 새롭게 들추는 분석 틀로 쓰이기도 하며,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힘을 잃으면서 만들어진 공백을 메우며 이념의 위상에 서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말은 직관과 추상의 영역을 오가면서 다양하게 회자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아시아가 지리적 개념으로 안착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동적으로 사용된 까닭은 '동아시아'를 문제의식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시대 배경이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론은 어떤 배경에서 왜 요청되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갈라졌습니다. 앞서 탈냉전, 세계화, 지역화, 탈국경화 등 동아시아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들을 늘어놓았는데, 그런 시대 조건들은 동아시아론이 성장해온 토양이자, 동아시아론을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동아시아라는 말은 모호성을 씻어낼 수 없었고, 그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동아시아론은 생산성을 띠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추상화되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는 때로 자국을 지역의 수준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지평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국민 국가 단위의 자국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장으로 모색되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는 때로 지역 공동체설립경제적 근대화를 기도할 때 조명되기도 하며, 때로는 서구적 근대에 대한 '탈근대적 대안'으로 모색되거나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동학을 지닌 지역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문명론으로 경사되기도 했죠.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는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동아시아'를 앞으로의 비전과 결부시켜야 하는 이유들은 쏟아져 나와 사상계를 넘어 정부 기구와 민간 단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에 관한 상이한 접근들이 논의의 지평을 넓혀 갔지만,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라는 내적 원리는 밝혀지지 않은 채 동아시아라는 말의 모호함에 기대어 동아시아론은 애매하게 확산되었다는 인상입니다.

지금껏 다뤄오던 연구 주제나 기획을 그대로 '동아시아'라는 애매한 담론 장으로 옮겨도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고, '동아시아'라는 말이 붙으면 어떤 현실성마저 띠는 듯한 착시 현상 속에서 '동아시아'는 사고의 지평이라기보다 그럴듯한 수사로 전락해갔습니다. 그리하여 만연한 동아시아론은 구체적 현실에 직면하면 담론의 물질성이 휘발되고 추상성, 관념성을 노출하곤 했습니다.

동아시아가 환기한 것

저는 동아시아론의 쇠락이 안타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쇠락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라면 동아시아론의 유산화 작업에 착수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론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동아시아론을 통해 환기된 몇몇 문제의식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동아시아론은 서구 중심주의와 학문의 식민성을 문제로 부각시켰습니다. 사실 '동아시아(East Asia)'는 '극동(Far East)'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국무부 내에는 '극동 업무(Far Eastern Affairs)'를 대신해 '동아시아 업무(East Asian Affairs)'라는 명칭을 단 부처가 등장했고, 아시아는 전후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개입의 필요에 따라 '동아시아(East Asia)',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 '서남아시아(South-West Asia)'로 구획되었습니다. 즉, '동아시아'는 미국 지역 정책의 필요성에서 등장한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동아시아'는 미국 주도의 지역학에서 한 가지 하위 영역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상계에서 '동아시아'는 다른 맥락으로 전용되었습니다. 동아시아론의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최원식의 "탈냉전 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은 한국 사상사의 흐름 안에 있는 '변방적 경직성'을 질타하며 시작합니다. 교조의 권위에 매이지 않고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의 변증법적 관여를 통해 창조적 비약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백영서는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제기하는 데 이릅니다. 그밖에도 '동아시아'를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성찰하는 지적 지평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런 시도 안에 내재된 역오리엔탈리즘이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동아시아론을 매개해 서구 중심주의, 학문의 식민성 문제는 더욱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지역에서 사상적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 논의는 필요합니다.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 공동의 번영'이라는 수사로는 감출 수 없는 적대 관계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분단, 과거사 문제, 양안 문제, 영토 분쟁, 경제 패권 등의 문제가 상존하여 한국과 북한, 중국과 타이완,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어지러운 갈등이 잠재해 있습니다. 긴장 관계가 어려 있는 각국 간의 역사인식의 충돌, 현실적 규모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지역 인식과 세계 인식의 간극은 동아시아의 문제 상황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지만,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지리적 실체가 아닌 사유의 지평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은 지난 20년 간 이 지역의 문제들을 들춰냈으며, 동시에 자국인 대 외국인, 내부 대 외부처럼 정합적으로 짜인 패러다임에 담겨지지 않는 사고를 산출해냈습니다. 앞으로도 현실상의 갈등 가운데 사상적 연대는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다만 사상적 연대를 도모할 때 국가 단위의 표상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적절한지, 그리고 이 지역 내에 존재하는 지리적·역사적 규모의 비대칭성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는 관건이 될 것입니다.

셋째, 동아시아론은 한국 사상계 내부의 소통을 가능케 했습니다. 한국의 사상계에서 공동 언어의 소실 현상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은 한국 사상계의 다양한 차원에서 논점을 생산하고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동아시아론의 애매함이 가중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국의 사상계에서 동아시아론이 달아올랐던 까닭이 한국의 장소성에 관한 재인식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해두고 싶습니다.

역시 여기서 창비 논자의 동아시아론은 더욱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논의는 건조한 동아시아 공동체론으로 경사되지 않고, 한국의 장소성에 근거해 한국의 동아시아론에 오리지널리티를 주입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냉전 체제의 결절 지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복합 국가론은 분단 체제와 세계 체제의 고리로서 동아시아를 사고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물론 이를 둘러싸고 여러 논자들의 논의가 거듭되었습니다. 무척 값진 충돌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 동아시아론이 공론이 되지 않고, 한국의 상황에 근거하되 타국의 사상계와 공유할 만한 사상적 자원으로 연마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위하여

결국 저는 '내재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탐색해보고 싶습니다. 즉 그저 지역 범주 혹은 지리적 근접성을 뜻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가 과연 무엇일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지금껏 제가 적은 내용에서도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라는 내적 논리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 지점을 공동의 토의 주제로 다듬어나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동아시아론을 장사지낼 때가 아닙니다. 후원 담론의 지위를 상실하고 거품이 꺼지는 지금이야말로 동아시아론은 사상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는지, 자립할 수 있는지가 진정으로 추궁되어야 할 시기입니다.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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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스 2011-09-15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