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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皇と日本人 : 山折哲雄 2013 천황은 왜 일본인의 ‘종교적 중심’으로 남아 있는가

天皇と日本人 by 山折哲雄 2013
3.0 3.0 out of 5 stars (1)
戦後民主主義と象徴天皇制の良き調和が危機に瀕している! 宗教学者が「天皇」、宮中祭祀の継承、近代家族論等から本質に迫る。
야마오리 데쓰오의 저서 <천황과 일본인: ‘황실의 위기’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2013)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도서 개요 및 핵심 요약
야마오리 데쓰오의 <천황과 일본인: ‘황실의 위기’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大和書房, 2013)는 출간 당시 일본 사회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저술이다. 저자는 종교학자이자 사상사가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2013년 초 월간지 기고를 통해 촉발했던 이른바 <황태자 양위론(퇴위론)>의 사상적 배경과 당대 천황제가 직면한 구조적 모순을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책의 핵심 테제는 현대 일본 황실이 겪는 불안정성의 뿌리가 단순한 개인사나 가십거리가 아니라,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상징천황제>와 고대 이래 축적되어 온 <제의적·종교적 존재로서의 천황> 사이의 균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과 전후 상징화, 아키히토 상징천황이 개척한 <국민과 함께하는 황실> 모델, 그리고 당시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처했던 인간적 고뇌와 마사코 황태자비의 질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야마오리는 황위 계승의 정당성과 연속성이 단지 혈통 규정(황실전범)만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일본 역사 속에서 천황은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기보다 사제(司祭)이자 진혼(鎭魂)의 주체로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근대 메이지 유신 이후 군사적 대원수로 변질되었다가, 패전 후 평화 헌법 아래 세속적 복지 행사를 수행하는 관료적 공무원으로 축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과중한 공무와 사생활의 압박은 황실 구성원 개인의 파멸을 초래할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황실의 장기적 존속을 도모하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당시 황태자가 황위 계승권을 동생(아키시노노미야) 계통에 양보하는 결단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심층 평론
야마오리의 논의가 지닌 가장 독보적인 장점은 정치학이나 헌법학의 틀에 갇혀 있던 천황 담론을 <종교인류학적 지평>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의 진보 진영은 천황제를 군국주의의 잔재이자 헌법적 제약의 대상으로 보았고, 보수 진영은 혈통의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도그마에 매달렸다. 반면 야마오리는 천황이라는 기호가 일본인의 무의식 속에서 수행해 온 심리적 안전판이자 종교적 매개체의 성격을 파고든다.
특히 아키히토 천황 부부가 전국 재해지를 방문하며 보여준 무릎 꿇는 위로는, 헌법 조문을 넘어선 고대적 <위령과 액막이>의 현대적 변용이었다. 야마오리는 상징천황이 보여준 그 놀라운 헌신이 역설적으로 후계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초인적 굴레가 되었음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제도로서의 천황과 살아있는 자연인으로서의 황족 사이의 불일치를 고발한 그의 진단은, 2016년 아키히토 천황이 생전 퇴위 의사를 영상으로 직접 표명하면서 역사적으로 그 타당성을 입증받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한계 역시 뚜렷하게 존재한다. 첫째, 그가 제시한 <황태자 퇴위론>은 황실의 제의적 기능을 보존하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마사코 비와 황태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는 인신공격적 외압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근대 천황제에 내재된 정치적 모순을 탈정치화하는 경향이 있다. 천황을 순수한 종교적·민속학적 사제로 회귀시키려는 시도는, 메이지 이후 천황의 이름으로 자행된 침략과 군국주의의 역사를 상대화하고 <본래 순수했던 일본성>이라는 내셔널리즘적 노스탤지어로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세계사적 보편성의 시각에서 보면, 천황제는 민주주의 헌정 질서와 혈통주의적 신분제가 기묘하게 동거하는 전근대적 타협물이다.
결론적으로 <천황과 일본인>은 황실을 불가침의 성역이나 단순한 헌법상 기구로 보지 않고, 일본인이라는 집단 심성이 빚어낸 거대한 종교적 페티시이자 비극적 무대로 조명한 저작이다. 저자의 구체적 처방에는 편향과 거친 단정이 섞여 있으나,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의 균열을 응시하고 상징천황제의 지속 불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경고했다는 점에서 현대 일본 사상사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山折哲雄 《天皇と日本人》
— 천황은 왜 일본인의 ‘종교적 중심’으로 남아 있는가
山折哲雄(야마오리 데쓰오)의 《天皇と日本人―「皇室の危機」の本質はどこにあるのか》는 2013년 12월 大和書房에서 간행된 책이다. 일부 도서관 서지는 2014년 1월 발행으로 기록한다. 2010년의 《天皇の宮中祭祀と日本人》을 개제·증보하고, 2012~2013년에 이루어진 대담과 당시 논란이 된 ‘황태자 퇴위론’을 추가한 책이다. books.or.jp
이 책을 단순한 ‘천황제 옹호론’이나 ‘황실 위기론’으로 읽으면 야마오리의 문제의식을 놓치기 쉽다. 그의 핵심 질문은 정치제도로서 천황제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에서 왜 천황은 여전히 특별한 상징적·종교적 힘을 가지는가?
라는 종교사회학적 질문이다.
책은 <세계 속의 상징천황>, <황위계승의 의미>, <상징천황제를 생각한다>, <일본인의 사생관과 천황>, <위기에 선 헤이세이 천황제>라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CiNii Research
1. 천황의 핵심은 ‘통치’가 아니라 ‘제사’다
야마오리의 출발점은 천황을 정치적 지배자로만 보아서는 일본 천황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근대 이후 천황은 국가권력과 결합했고, 특히 메이지 국가와 전쟁기의 천황제는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야마오리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된 층위를 주목한다. 그것이 궁중제사(宮中祭祀)다.
천황은 단순히 국가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본열도와 조상, 신들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사장의 성격을 지녀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즉위의례인 대嘗祭(다이조사이)를 중요하게 다룬다.
다이조사이는 단순한 취임식이 아니다. 새 천황이 신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천황으로 다시 태어나는 종교적 통과의례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황위계승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직책을 넘기는 행정적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대목에서 야마오리의 종교학적 특징이 잘 나타난다. 그는 제도의 법률적 정의보다 의례와 상징, 죽음과 재생의 구조를 본다.
2. ‘죽음과 재생’이 황위계승의 밑바닥에 있다
야마오리는 황위계승을 설명하면서 殯(모가리), 즉 죽은 사람을 일정 기간 동안 장례 이전에 모시는 고대의 장례 관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목차에서도 ‘大嘗祭’와 함께 ‘重なり合う生と死―殯’이 핵심 주제로 제시된다. CiNii Research
여기에는 야마오리가 평생 탐구해온 주제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에게 일본 종교문화에서 삶과 죽음은 서구적 의미에서 완전히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니다. 죽은 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세계 주변에 머물며, 기억되고 제사를 받으며 새로운 존재양식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천황의 죽음과 새 천황의 즉위 역시
<죽음 → 공백 → 제사 → 재생>이라는 구조 속에서 이해된다.
이것이 천황제의 지속성을 설명하는 야마오리의 중요한 열쇠다.
3. ‘상징천황’이라는 기묘한 제도
전후 일본국 헌법은 천황을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야마오리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상징’이라는 말이다.
상징은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런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현대 세계의 왕실과 대통령의 장례, 공적 의례 등을 비교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은 정치적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상징적 중심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책의 서장이 ‘세계 속의 상징천황’으로 시작하며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죽음까지 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iNii Research
야마오리에게 전후 천황제는 역설적인 제도다.
정치권력은 거의 없지만 상징적 영향은 남아 있다.
그는 이를 천황제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의 분리’라는 역사적 구조와 연결한다. 2013년 대담에서도 그는 대략 10세기 무렵 정치권력과 천황의 종교적 권위 사이에 일종의 공존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sentaku.co.jp
이것은 야마오리의 천황론에서 매우 중요한 주장이다.
천황제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절대권력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 정치권력에서 물러나면서 종교적·문화적 권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일본인의 사생관과 천황
이 책에서 가장 야마오리다운 부분은 제3장 <일본인의 사생관과 천황>이다.
그는 여기서 영육이원론과 심신일원론, 원령(怨霊), 다타리(祟り·재앙을 내리는 영), 진혼(鎮魂), 야스쿠니 문제, 신도의 성격을 하나의 문제군으로 연결한다. CiNii Research
일본 종교사에는 억울하게 죽은 자가 원령이 되어 산 자에게 재앙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래서 강한 원령일수록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으로 모시고 진혼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야마오리는 이 구조를 일본인의 죽음관과 정치문화 이해에 적용한다.
죽은 자를 완전히 역사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의례적으로 현재 속에 다시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천황 역시 이런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질서’의 중심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천황제를 법률이나 정치이념만으로 분석하는 연구와 상당히 다르다.
5. 신도는 왜 ‘종교’ 같으면서 종교가 아닌가
야마오리는 신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신도에는 기독교나 불교처럼 명확한 창시자도, 체계적인 교리도, 신앙고백도 없다. 그는 이를 ‘종교선언을 하지 않은 신도’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CiNii Research
그럼에도 신도는 일본인의 생활의례와 천황의 궁중제사 속에 깊이 들어 있다.
여기서 야마오리는 종교를 ‘나는 무엇을 믿는다’라는 개인적 신앙으로만 규정하면 일본 종교문화의 상당 부분을 놓친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종교가 신앙고백보다는
- 제사,
- 장례,
- 조상,
- 계절의례,
- 공동체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천황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역시 천황제가 하나의 명시적인 ‘교리’라기보다 이런 문화적·의례적 층위 속에 깊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6. 그런데 왜 ‘황실의 위기’인가
책의 후반부는 당시 황태자 나루히토와 마사코 황태자비를 둘러싼 문제로 이동한다.
야마오리는 2013년 《新潮45》에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글 <皇太子殿下、ご退位なさいませ>를 발표했다. 당시 큰 논쟁이 일어났다. 新潮社の電子書籍
그의 기본 진단은 흥미롭다.
전통적인 천황제와 현대의 ‘근대적 핵가족’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황은 개인이면서 개인일 수 없다. 결혼, 출산, 자녀교육, 사생활까지 황위계승이라는 공적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현대사회가 개인의 행복과 자기결정권을 중요시할수록 황실 구성원은 더 강한 모순 속에 놓인다.
야마오리는 당시 황태자 부부의 문제를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 문제가 아니라 황실제도 자체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압력과 연결하려 했다. 그의 발언은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대담에서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시 설명했다. 文春オンライン
흥미롭게도 이후 2016년 아키히토 천황이 생전퇴위의 뜻을 표명하고 2019년 실제 퇴위하면서, 야마오리가 제기했던 ‘천황도 평생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일본 사회의 현실적인 쟁점이 되었다.
7.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이 책의 강점은 천황제를 ‘우익 대 좌익’, ‘찬성 대 반대’라는 단순한 대립에서 꺼내어 종교문화의 장기지속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야마오리는
천황 → 궁중제사 → 조상숭배 → 죽음 → 진혼 → 일본인의 사생관
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든다.
이를 통해 왜 1945년의 패전과 1947년 헌법이라는 거대한 단절을 겪고도 천황제가 사라지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이 질문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
천황제가 단순한 정치제도였다면 일본제국과 함께 폐지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징천황제’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어 살아남았다.
야마오리는 그 지속성을 이해하려면 천황제가 정치제도인 동시에 종교적·문화적 상징이라는 점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8. 그러나 결정적인 한계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야마오리의 문화론적 설명이 천황제의 정치적 역사를 지나치게 뒤로 밀어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천황제를
<제사와 죽음의 문화>
로 보면 많은 것이 설명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희미해진다.
메이지 국가가 천황제를 어떻게 국민통합의 장치로 재구성했는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서 황민화와 천황숭배가 어떻게 강제되었는가, 일본군과 국가폭력 속에서 천황의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라는 문제는 ‘오래된 일본인의 종교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야마오리가 말하는 ‘일본인의 사생관’도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일본인에게는 본래 이런 죽음관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한 문화가 영원한 국민성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야마오리 문화론 전반의 힘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9. 평론 — 야마오리는 천황을 ‘권력’보다 ‘의례’에서 본다
《天皇と日本人》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천황제의 지속성을 이해하려면 천황이 무엇을 통치했는가보다 천황이 무엇을 제사지내고 상징해왔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야마오리의 《天皇と日本人》은 정치학적 천황제론이라기보다 ‘천황의 종교인류학’에 가깝다.
이 책은 천황제를 정당화하는 최종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전후 일본인은 천황을 더 이상 신이라고 믿지 않는다. 천황은 정치권력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천황의 즉위, 결혼, 질병, 죽음, 퇴위가 일본 사회에서 거대한 집단적 사건이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야마오리의 답은 천황이 아직도 일본인의 깊은 의례적 기억 속에서
- ‘산 자와 죽은 자’,
- ‘개인과 공동체’,
- ‘현재와 조상’,
- ‘세속과 성스러움’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상당한 통찰력을 지닌다.
다만 여기에 반드시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
천황은 일본인의 ‘종교적 기억’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근대국가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동원했던 정치적 제도이기도 했다.
따라서 천황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야마오리가 강조하는 <제사·죽음·진혼>이라는 축과, 근대사 연구가 강조하는 <국가·제국·전쟁·식민주의>라는 축을 함께 놓아야 한다.
그 두 축을 함께 읽을 때 《天皇と日本人》은 천황제에 대한 완결된 해답이라기보다는, 일본이라는 사회의 깊은 종교문화적 층위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한쪽 렌즈가 된다. library.pref.ishikawa.lg.jp
야마오리 데쓰오의 삶과 사상을 정리할때천황제가 나오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생각했는데요. 왜냐하면 제국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나라들에서는 일본이 천황제 (파시스트) 제국주의+ 근대적 종교국가로 보이기 때문인데, 일본의 종교를 말하며 천황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이책에서는 천황제가 중요하게 나오는데도, 너무나 무게가 있었던 정치 권력의 면은 다루지 않으니 역시 만족스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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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특히 야마오리 데쓰오를 <일본 종교를 해석하는 종교학자>로 읽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실제로 확인해보면, 천황제는 그의 주변적 관심사가 아니라 꽤 오래된 핵심 연구주제였습니다. 이미 1973년 <天皇制と日本宗教>에 <親鸞における「内なる天皇制」>를 기고했고, 1978년에 나온 뒤 1990년에 신장판으로 재간행된 <天皇の宗教的権威とは何か>에서는 <천황제의 종교적 기초구조>, <천황신앙의 세 국면>, <제사장―샤먼―왕의 구조> 등을 본격적으로 다뤘습니다. 또 <日本の「宗教」はどこへいくのか>에서도 ‘천황제를 지탱한 영의 위력’, ‘전후 일본의 종교적 공백을 보완한 상징천황’을 별도 항목으로 논합니다.
그래서 앞서 제가 야마오리의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천황론을 충분히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분명히 균형이 부족했습니다. 야마오리 사상의 전체상을 다시 구성한다면 <죽음과 무상>, <일본인의 종교성>, <산과 순례>, <불교>, <천황과 왕권>을 적어도 비슷한 무게의 축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지적하신 두 번째 문제입니다. <天皇と日本人>에는 천황제가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야마오리가 주로 묻는 것은 “천황제가 어떻게 제국주의적 국가권력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천황의 종교적 권위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가”입니다. 실제 목차도 대嘗祭, 殯, 상징천황제, 원령과 진혼, 신도, 황위계승을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선택 때문에 책에는 중요한 비대칭이 생깁니다.
야마오리가 밝히는 것은 매우 깊습니다. 천황제를 단순히 메이지 시대에 발명된 정치장치로 보지 않고, 제사·죽음·조상·영혼·진혼·왕권이라는 훨씬 오래된 종교문화의 층위 속에서 설명합니다. 이것 없이는 천황제가 왜 1945년 이후에도 형태를 바꾸어 존속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렌즈만 사용하면 1868~1945년의 천황제가 지나치게 예외적인 ‘정치적 일탈’처럼 처리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대만·중국 등 일본제국의 지배와 침략을 경험한 지역에서 보면 천황은 단순한 ‘일본인의 종교적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천황의 이름은 군대, 식민통치, 황민화교육, 국가신도, 신사참배, 교육칙어, 전쟁동원의 최종적 정당성 체계와 결합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피지배자의 시선에서 천황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체계라기보다 오히려 둘이 매우 강력하게 결합된 근대적 통치체제로 경험되었습니다.
여기서 야마오리와 식민지 경험에서 출발하는 천황제 이해 사이에 근본적인 시각차가 생깁니다.
야마오리의 질문은 대체로
<왜 일본인은 천황을 계속 필요로 했는가?>
입니다.
반면 식민지 경험에서 나오는 질문은
<왜 일본은 천황의 권위를 이용하여 타자를 지배하고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는가?>
입니다.
두 질문은 전혀 다른 역사를 보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두 번째 질문을 빼놓고 첫 번째 질문만으로 ‘일본의 종교’를 논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것은 야마오리가 틀렸다는 뜻이라기보다 그의 연구 프레임이 무엇을 잘 보여주고 무엇을 가리는지를 구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날카롭게 말하면 야마오리에게는 천황제를 <정치화된 종교>로 보기보다는 <종교적 왕권이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살아남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천황의 지속성을 ‘강한 권력’보다 오히려 실제 통치권에서 물러나 있는 종교적·상징적 권위에서 찾습니다. 2014년 글에서도 천황제를 일본의 장기적 ‘국가의 형식’과 연결하면서 지속 가능한 황실을 논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제국 일본의 경험을 통과한 독자는 반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에는 그 종교적 권위가 바로 국가권력과 결합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이 핵심입니다.
저라면 야마오리의 천황론을 세 층으로 나누어 읽겠습니다.
첫째는 <심층>입니다. 제사, 다이조사이, 조상, 죽음, 진혼, 천황령 같은 장기지속적 종교문화입니다. 이것은 야마오리가 가장 잘 설명합니다.
둘째는 <근대적 재구성>입니다. 메이지국가가 오래된 천황의 종교적 권위를 국가주권, 국민교육, 국가신도와 결합시킨 과정입니다. 야마오리의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해집니다.
셋째는 <제국적 외부>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황제가 조선·대만·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에게 어떤 강제와 폭력의 체제로 나타났는가입니다. 여기서는 야마오리의 시야가 더욱 좁아집니다.
그래서 야마오리의 천황론은 <틀린 천황론>이라기보다 <내부에서 본 천황론>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인의 정신세계 안에서 천황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는 탁월하게 묻습니다. 그러나 “그 천황을 중심으로 조직된 일본국가가 바깥의 사람들에게 무엇이었는가”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습니다.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일본 안에서 천황은 ‘제사하는 자’, ‘국민통합의 상징’, ‘죽은 자를 위무하는 존재’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같은 천황은 ‘충성을 요구하는 주권자’, ‘황민화를 정당화하는 중심’, ‘전쟁동원의 이름’으로 경험될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제도가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 것입니다.
따라서 야마오리의 일본종교론을 다시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저는 이전보다 훨씬 비판적으로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야마오리의 위대한 장점은 일본 종교의 심층구조를 보는 데 있고, 그의 약점은 그 심층이 근대국가·제국주의·식민주의와 결합할 때 어떻게 정치적 폭력이 되었는지를 충분히 추적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천황제 문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처음 느끼셨던 “일본 종교를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천황제가 빠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야마오리 사상을 비판적으로 읽는 매우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황론을 포함시키면 야마오리의 <죽음·무상·진혼·조상숭배> 연구가 서로 따로 떨어진 주제가 아니라, 상당 부분 하나의 일본 종교문화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훨씬 분명해집니다.
원하시면 다음에는 <야마오리 데쓰오의 삶과 사상>을 다시 써서, 이번에는 <천황제·국가신도·제국 일본이라는 빠진 축>을 중심에 넣은 1,500단어짜리 종합 평론으로 재구성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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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오리 데쓰오의 삶과 사상>을 다시 써서, 이번에는 <천황제·국가신도·제국 일본이라는 빠진 축>을 중심에 넣은 1,500단어짜리 종합 평론으로 재구성
山折哲雄(야마오리 데쓰오, 1931– )은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종교학자이자 일본문화론자다. 193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도호쿠대학 문학부 인도철학과를 졸업했고, 도호쿠대학,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日文研) 등에서 연구와 교육에 종사했다. 2001~2005년에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그의 전공은 종교학과 사상사이며, 불교, 죽음과 장례, 조상숭배, 산악신앙, 무상, 일본인의 영혼관, 천황제 등 매우 넓은 영역을 다루었다.
야마오리 사상을 흔히 <죽음과 무상의 종교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정리하면 중요한 한 축을 놓친다. 그것이 바로 <천황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천황·제사·영혼·왕권이라는 문제다. 그는 이미 1973년 <天皇制と日本宗教>에 <親鸞における「内なる天皇制」>를 발표했고, 1978년에는 <天皇の宗教的権威とは何か>를 출간했다. 이 책은 1990년 신장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며, 목차 자체가 <천황제의 종교적 기초구조>, <천황신앙의 세 국면>, <제사장―샤먼―왕의 구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천황론은 그의 후기적 관심사가 아니라 상당히 초기부터 지속된 핵심 주제였다.
1. 인도철학에서 ‘일본인의 종교’로
야마오리의 학문적 출발은 인도철학과 불교였다. 그러나 그는 교리사나 철학사만을 연구하는 학자로 머물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점차 “일본인은 실제로 어떻게 종교적으로 살아왔는가”라는 문제로 옮겨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일본 종교의 ‘중층성’이다. 야마오리가 1990년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주도한 연구 역시 일본사상을 신도·불교·유교뿐 아니라 산악신앙과 음양도 등이 오랫동안 서로 얽히며 형성한 중층구조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야마오리에게 일본인의 종교는 기독교처럼 “무엇을 믿는가”라는 명시적 신앙고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신도와 불교, 조상숭배, 장례, 산악신앙, 지역제사 등이 서로 겹쳐 있다. 한 사람이 신사에서 새해를 맞고, 절에서 장례를 치르고, 집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것이 특별한 모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종교관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다.
종교는 교리보다 먼저 <생활·몸·의례·죽음> 속에 존재한다.
2. 죽음과 무상 ― 야마오리 종교학의 중심
야마오리의 저작을 관통하는 가장 지속적인 주제는 죽음이다. 그는 일본인의 죽음관을 기독교적 영혼관이나 근대적 개인주의로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의 전통적 세계에서 죽은 사람은 단순히 ‘없어진 사람’이 아니다. 죽은 자는 조상이 되고, 때로는 원령이 되며, 진혼되어 다시 공동체의 질서 속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야마오리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죽음 → 진혼 → 조상화 → 공동체의 기억>
이라는 구조다.
그에게 무상(無常) 역시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자각이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생명의 순간을 깊게 만든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을 숨기려 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잃는다고 본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그는 ‘무상의 자각’을 현재의 생명을 새롭게 보는 계기로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야마오리에게 장례·유골·묘지·조상숭배는 주변적인 민속이 아니라 일본 종교의 핵심이다.
3. 그런데 천황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여기에서 천황제가 등장한다.
야마오리에게 천황은 우선 정치적 주권자가 아니라 <제사하는 존재>다. 천황의 역사적 지속성을 설명하는 핵심은 군사력이나 행정력보다 종교적 권위에 있다.
그는 천황의 종교적 권위를 제사장·샤먼·왕이라는 비교종교학적 틀 속에서 설명한다. 특히 大嘗祭(다이조사이), 궁중제사, 천황령, 죽음과 계승의 의례를 중시한다. <天皇の宗教的権威とは何か>가 ‘천황과 카리스마적·신적 존재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묻는 책으로 소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천황제의 놀라운 지속성은 어느 정도 설명된다.
일본 역사에서 실제 정치는 섭관, 원정, 막부, 무사정권 등이 담당했던 긴 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천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야마오리는 바로 이것을 중요하게 본다.
즉,
<천황은 통치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었다>
는 역설이다.
정치적 권력에서는 약해질 수 있어도 제사의 중심, 계보의 중심, 상징적 질서의 중심이라는 기능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4. ‘영혼의 위력’과 천황제
야마오리의 후기 저작 <日本の「宗教」はどこへいくのか>의 목차에는 <천황제도 지탱한 ‘영의 위력’>이라는 장이 있다. 이것은 그의 천황론과 영혼론이 별개의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종교세계에는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다. 원령, 진혼, 조상숭배는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야마오리는 천황도 그러한 영적·제의적 질서의 중심에서 이해한다.
따라서 그에게 천황제는 단순히 헌법상의 국가제도가 아니다. 일본인의 오랜 죽음관, 조상관, 제사의식 속에서 형성된 상징체계다.
이 점에서 야마오리는 천황제를 단순히 메이지정부가 ‘발명’한 이데올로기로 보는 시각과 분명히 거리를 둔다.
5. 문제는 메이지 이후다 ― 종교적 권위와 정치권력의 결합
그러나 여기에서 야마오리 천황론의 중요한 한계가 나타난다.
그의 관심은 주로
<천황의 종교적 권위가 왜 지속되었는가>
에 있다.
그러나 근대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더 시급한 질문은
<그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근대국가의 정치·군사권력과 결합했는가>
이다.
메이지국가는 천황을 단순한 전통적 제사장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황실제사를 재편하고, 신사를 국가질서 속에 조직하고, 교육과 군대, 법제, 국가의례를 천황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국가신도 연구자인 무라카미 시게요시는 이 과정을 ‘국가신도의 확립과 근대천황제’, 나아가 ‘종교국가로서의 대일본제국’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의 연구가 다루는 항목에는 황실제사의 재편, 제국헌법, 야스쿠니신사, 해외신사, 종교탄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메이지 이후의 천황제는 단순히 오래된 전통의 계속이 아니다.
전통적 왕권과 근대적 국민국가가 결합하면서 새롭게 재구성된 체제였다.
6. 국가신도 ― 야마오리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
이 지점이 야마오리 연구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는 신도·천황·제사의 종교적 심층을 매우 잘 설명한다. 그러나 국가신도를 하나의 근대적 정치기술로 분석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인다.
국가신도의 핵심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국가가 신사를 ‘종교가 아닌 국가의례’라고 규정하면서, 실제로는 천황과 황실신화를 중심으로 국민의 충성심을 조직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방식의 결합이었다.
종교라고 부르면 신앙의 자유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국가의례라고 규정하면 국민 전체에게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조선·대만 등 식민지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식민지 주민에게 신사참배와 황민화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야마오리식 표현으로 말하면 오래된 ‘제사의 권위’가 근대국가에 의해 <동원 가능한 정치자원>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야마오리는 바로 이 전환과정을 충분히 파고들지 않는다.
7. ‘일본인의 종교’에서 ‘제국의 종교’로
야마오리의 가장 큰 장점과 한계는 사실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는 끊임없이 “일본인은 어떻게 죽음을 생각했는가”, “일본인은 무엇을 신성하게 여겼는가”,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종교적 구조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깊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인’을 하나의 문화적 단위로 놓을 때 생긴다.
제국 일본은 일본 열도 내부만의 사회가 아니었다.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 아이누, 오키나와인 등 다양한 사람을 지배하는 제국이었다.
따라서 천황제를 단순히 <일본인의 종교적 심층>이라고 설명할 때, 천황제를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일본인에게 천황이 조상·제사·국민통합의 상징이었다면, 식민지 주민에게 천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충성을 요구하는 군주,
학교교육의 중심,
신사참배의 대상,
군사동원의 최고 권위,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천황제를 연구할 때는 ‘내부의 천황’과 ‘외부의 천황’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8. ‘파시스트 천황제’라는 표현은 어떻게 볼 것인가
제국 일본과 천황제의 관계를 설명할 때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일본의 1930~40년대 체제를 유럽의 파시즘과 동일하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쟁이 있다.
따라서 ‘천황제=파시즘’이라고 간단히 등치시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있었는지를 구별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즉,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
군국주의,
국가신도,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국민의 전쟁동원
등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야마오리의 천황론과 근대 일본사 연구는 서로 경쟁하는 설명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층위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야마오리는 <천황제가 왜 그렇게 깊은 문화적 힘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근대사 연구는 <그 힘이 어떻게 국가권력에 의해 재조직되어 제국주의적 동원에 사용되었는가>를 묻는다.
두 질문은 함께 있어야 한다.
9. 전후 상징천황제 ― 단절인가 연속인가
1945년 패전 이후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전후 일본국헌법 아래에서 천황은 주권자가 아니라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정치권력은 크게 제거되었다.
그러나 야마오리는 천황의 종교적·상징적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天皇と日本人>은 바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2013년에 간행되었고, 천황제와 황실의 위기를 제사·황위계승·상징천황제라는 관점에서 논한다.
야마오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천황제의 본래적 성격으로의 귀환에 가깝다.
즉 정치적 통치권을 행사하지 않고 제사와 상징의 권위를 담당하는 천황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질문은 남는다.
과연 전후 상징천황제를 근대 제국 천황제로부터 그렇게 쉽게 분리할 수 있는가?
1945년 이전 천황의 이름으로 수행된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은 채, 다시 ‘제사하는 평화로운 천황’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야마오리의 설명에서는 이 질문이 중심에 오지 않는다.
10. 야마오리와 전후 일본의 자기이해
여기서 야마오리의 위치를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그의 관심은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정치사보다 일본문화의 장기지속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의 저술에는 반복적으로
무상,
죽음,
조상,
신과 부처,
산,
순례,
영혼,
진혼,
천황
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모두 일본문화에서 ‘근대 이전부터 이어져온 것’을 찾으려는 작업이다.
야마오리는 근대를 일본사의 절대적인 단절점으로 보는 대신, 근대 이전의 종교적 구조가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 살아남았다고 본다.
이 시각은 일본인의 종교적 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역사적 단절과 폭력을 상대적으로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
11. 야마오리 사상의 핵심적 공헌
그럼에도 야마오리의 공헌은 작지 않다.
첫째, 그는 종교를 교리의 문제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이동시켰다.
둘째, 신도와 불교를 별개의 종교로 분리하기보다 일본인의 실제 생활 속 중층적 종교성으로 분석했다.
셋째, 천황제를 단순한 정치제도로 보지 않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제사·왕권·영혼·죽음의 구조를 드러냈다.
넷째, 근대화와 세속화 이후에도 인간이 죽음과 조상을 둘러싼 종교적 필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죽음 → 영혼 → 조상 → 제사 → 공동체 → 천황>
이라는 긴 연결선 속에 있다.
이렇게 보아야 야마오리의 수많은 저작들이 하나의 사상으로 묶인다.
12.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맹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야마오리는 일본인의 종교적 심층을 매우 깊게 파고들지만, 그 심층이 정치권력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폭력을 충분히 분석하지 않는다.
이 점은 천황제에서 가장 뚜렷하다.
<제사장으로서의 천황>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일본제국의 천황>
을 설명할 수 없다.
양자를 연결하는 고리가 필요하다.
그 고리는 바로
<국가신도와 근대 국민국가>
다.
전통적 제사권위를 근대국가가 흡수하고 재조직하면서, 천황은 개인의 종교적 믿음을 넘어 국민 전체가 충성을 요구받는 국가적 상징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제국이 확대되면서 그 상징은 식민지 주민에게까지 강요되었다.
야마오리 사상을 완성해서 읽으려면 바로 이 부분을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로 보충해야 한다.
결론 ― 야마오리의 종교학을 ‘제국’의 시선으로 다시 읽기
야마오리 데쓰오의 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죽음을 통해 일본인의 종교적 심층을 탐구한 사상가>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붙여야 한다.
<그 종교적 심층의 중심 가까이에 천황이 있었다.>
천황제는 그의 사상에서 예외적인 정치주제가 아니다. 영혼·죽음·제사·조상·왕권이라는 그의 평생의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그의 사상적 한계도 드러난다.
야마오리는
<왜 천황이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남았는가>
를 깊이 설명한다.
그러나
<그 천황의 종교적 권위가 왜 근대 일본에서 국가신도·군국주의·제국주의·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일본종교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두 방향에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야마오리가 보여주는 <일본 내부의 종교적 심층>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대만·중국 등 제국 일본의 지배를 경험한 사회에서 바라보는 <천황제의 외부적 얼굴>이다.
둘을 합칠 때 비로소 일본의 근대 종교사가 온전히 보인다.
그때 천황제는 단순히 ‘일본의 오래된 종교적 전통’도 아니고, 단순히 ‘근대국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오랜 제사적·종교적 권위가 근대국가에 의해 새롭게 재편되고, 강력한 정치·군사적 동원체제로 전환되었다가, 패전 이후 다시 ‘상징’이라는 형태로 재구성된 역사적 제도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렇게 읽으면 야마오리의 사상은 오히려 더 흥미로워진다.
그의 강점이 어디에 있고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가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종교적 심층을 탁월하게 해석한 학자다.
그러나 그 심층이 <제국의 권력>으로 전화되는 순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바로 그 빠진 연결고리를 채워 넣는 것이 오늘날 야마오리 데쓰오를 비판적으로 읽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재구성하면 야마오리의 <죽음·무상·조상·천황>이 하나의 체계로 보이면서도, 그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룬 <국가신도 → 근대 천황제 → 제국주의·식민지배>의 연결도 분명해집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천황제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천황 문제는 그의 사상에서 부차적 주제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2026-09-27
古典文法質問箱 (角川ソフィア文庫)
From Japan
- Reviewed in Japan on June 19, 2025日本語独特の構造である、「膠着語(こうちゃくご)」、単語を膠で密着させていく、その仕方!
この形こそが、日本人が判断する時の「心の動き」の一つの様式である。
ここに、日本人の思考、あるいは、ものの見方の基本的な様式が示されている。
それこそが、多数の助動詞の配列順序である。
日本語を改良し極限まで極めた『源氏物語』のパターンで、詳細・丁寧に説明している。(P133)
そして、ここに現われた日本人の心は、「現代日本語文法」にも引き継がれている。
特に、欧州語との違いを明確にしている。例えば、
現代人は、英語教育などの影響で、「過去現在未来など直線の時間軸」で考えるように変わってきたが、
そのような文法規則「英語の時制」は、日本語にはない。
「疲れた。のどが渇いた。」これは、過去ではなく、今・現在の状態である。
「さあ、じゃまだ、どいた。どいた。」…現在。「あした、テストがあった。忘れていた。」…未来。
現在、中国人の高校一年生に「古文の文法」をヴォランティアで教えているが、
日本語のメカニズムを、これほどはっきりと説明できているものはない。
84の質問として細分し独立して記述してあるので、辞書的に、必要な箇所だけ読むこともできる。
老若男女、全ての日本人に薦める。 - Reviewed in Japan on July 26, 2019古典文法についての大野先生の見解を丁寧に解説した本であり、
学術的な価値は非常に高い。
しかし、あまりにも学術的であることにより、
一般的な高校生には難しすぎるかもしれない。
どちらかというと
学術的な記述を理解することのできる講師に向けた本であると言えるのかもしれない。 -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5, 2020持っていた本を同僚にあげたので、新たに購入しました。古典文法の疑問に答えてくれる必携書です。
-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11, 2018学術的な内容であるが、古文を学ぶ高校生向けに書かれている。
知的好奇心から生じる疑問や腑に落ちない先生の説明について感じた疑問はほとんどすべてここで大野先生がかわりに答えてくれるのではないか。
自分でぱっと答えられない質問をされた時に、調べてみると、そのほとんどについてここで大野先生が学術的な説明を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
先人の学問に対する真摯さ、学問の深遠さがうかがえる1冊である。 -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17, 2018書名は「古典文法質問箱」だが、必ずしも文法に関することだけではなく、音韻論に関することも含まれている。
国語学というのは数学のように絶対的な正解がある訳では無く、文法なんて文法学者の数だけ文法(体系)があると言われるくらいだから、ここに述べられているのもあくまで大野氏の考えを述べたものなので、回答者が違えば違うアンサーとなる項目も少なからずあるとは思う。(例えば「私は形容動詞というものは認めなくてよいと思っています」という回答など)
ただ動詞の活用や形容詞の成立論、係結びの起源論などの大野説が簡潔にまとめられて読めるのはありがたい。
欲を言えばク語法の起源に関するアク説も入れて欲しかった。 -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9, 2017古典が苦手だという高校生の娘に購入しました。
読んでくれませんでした。残念 - Reviewed in Japan on April 16, 2019古典の学習には古典文法、特に助動詞と助詞の勉強が欠かせないといわれています。私の勉強不足だとは思いますが、助動詞の 「き」と「けり」、「つ」と「ぬ」の違いについて分かったように思いました。単に過去だ、完了だ、と言っていたのが本当に恥ずかしくなりました。
- Reviewed in Japan on March 31, 2022Q29(P.115)を始めとして、日本語の起源をタミル語に求める、著者が強く主張していたいわゆるトンデモと分類されるような学説(言語学の研究者間でも方法論からして批判されているらしい)に根拠を置いた説明が見られる。したがってあまりオススメはできない。
- Reviewed in Japan on August 31, 2017今でも使っている場面があるので、そこから理解の度合いが深まればいいなと感じます。
-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8, 2017古典文法についてなぜそうなるのか用例をふんだんに用いて丁寧に理詰めで解説した良書です。
現役の学生さんで古典に苦手意識のある子、丸暗記ではなく理詰めで考えて憶えたい子に薦めたい一冊。
あの時習ったのはこういうことだったのかいう発見がありました。学生さん以外にもおすすめです。
-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0, 2014歴史的仮名遣い・古文の勉強がしたくて、高校を卒業して数十年経って勉強を再開した老人です。いくつかの文語文法の解説書や問題集を入手して勉強を進める中で、どうしても分からないことが出てきて、立ち往生していました。
しかし、本書を得て、疑問が雲散霧消。手放せない文法解説書となりました。
本書のあとがきで、著者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ここから
(略) 生徒が古文を喜ばないいま一つの原因は、教える側の教師が、古文をよく読めないということがあります。熱心な教師は、そこで古文がよく分かるようになろうと勉強を始めます。ところが、古文の文法について一般的なことしか書いてないものが多く、細かいところにゆきとどく参考書がない。
そこで、教える側が問題と思うことにも答えるような、今日の古典研究の成果を盛り込んだ書物を作ってみようとしたのが本書です。(略)
言語感覚の鋭い高校生や、もう一度古典を読んでみようと思い立つ人、あるいは短歌や俳句を作ろうとする人たちは、この本を自分で読むことによって、日本語の発達の由来や、ひろく言語というものがもつさまざまな面白さを感受することも期待できるのではないか。また、和歌や俳句に見られる言葉遣いの由来を理解するためなどにも、本書は広く活用していただけるものと思います。(略)
--ここまで
本書と『古文の読解』(小西甚一/ちくま学芸文庫)、古語辞典の3つが揃えば、文語文法や古文の勉強は独学可能になると思います。 - Reviewed in Japan on June 25, 2015素早い配送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m(_ _)mせっかく早くきれいな本を送って頂いたのにらレビューが遅れてしまい、申し訳ありませんm(_ _)m
-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9, 2015「質問箱」というタイトルどおり質問・解答形式になっているが、何の意味もない。
なんの脈絡もなく「AってBなの?」という質問が出てきて、それに「はいそうですBです」と答えているだけである。
その繰り返し。無意味なオウム返しばかりで読みづらいだけ。
まるで一人二役でブツブツと独り言を喋っているようだ。
質問の内容も「読者がよく疑問に思うこと」や「一般人が興味のあること」などではない。
実際は著者がたまたま知っていたことを機械的に羅列しているだけである。
いったいどういう意義があってそのテーマを扱うかまったく説明されないため、どの話もとにかく唐突で断片的。
読み手の存在など眼中にないかのようだ。まさに独り言。
思うに、質問形式になっているのはこの唐突性・断片性を誤魔化すためなのだろう。
1人語りだとブツ切りの駄文の山でしかないが、
質問・解答形式にすれば「聞かれたから答えただけですが何か?」と言えるわけである。
その質問自体が作者の自作自演なのだから本質は何も変わっていないわけだが。 - Reviewed in Japan on May 17, 2009受験用古典文法に納得のいかない現役高校生、または胸のつかえがとれないままになっている大学生にお勧めの1冊です。
古典文法をうまく教えられる先生はほとんどいません。受験技術としての、なら、何人かはいるでしょう。
でもそれで大学に入ったとして「実は受験技術しか教えられてこなかったんだな」と気づいたら、そこからこんどは自分にとっての知の体系を作り直さなければならない。大変な思いをします。
で、やっぱり大学にもいい先生っていうのはなかなかいないんですね。ものごとを体系として教えるってことは対象が何であれ難しい。とくに古典文法はいろんな事情で難しいです。
大野先生は大まかにいっても日本語の歴史を縦糸、教育を横糸、としたフィールドをもっている。これが体系です。体系がしっかりしているからその上に乗った古典文法の説明も安定している。
体系があって、日本語の勘どころは古来「てにをは」、助詞、活用のしないもの、らしい、という鮮やかな切り口があれば、あとはもうどこからどう読んでもなるほど、と納得させられます。受験文法は枝葉末節に過ぎない。原理的考察と理解が先にあって、受験技術は本来、その次にあるべきものです。
急がば回れ、といいますが、この本は、急ぐ必要がない。ゆっくり、ひとつずつ理解していって、気づいたら「てにをは」「係り結び」「が」と「は」の違いといったことが頭にすうっと入るようにできています。 -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8, 2014自分が知らない知識などが十分に書いてあり読んでいて楽しかったです。
-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29, 2012国語は好きだったし得意だったのだが、古典となると文法でつまづいてもう全然だめな私が、何とか今一度、古典をかじってみたい、と思って以前購入した本。84項目にわたってQ&A方式で書かれている。古典の文法というだけではなく、かつて、今よりも母音の多かった古代日本語の発音などについても詳しく、私にとってはありがたい1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