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뇌구조 | 마광수 | 알라딘마광수의 뇌구조 -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수업
마광수 (지은이)
오늘의책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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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 그가 수업 중 간간히 내뱉는 ‘야함’에 대한 철학적 아포리즘. 이 책에서 마광수 교수는 말한다. “명예, 돈, 권력 등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지만 그것은 결국 성욕과 식욕의 원활한 충족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고.
그는 우리가 흔히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배우자의 외모가 바뀐다’고 빙빙 돌려 말하고 있는 이 세상 돌아가는 법칙을 그만의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말한다. “남자든 여자든 이성을 볼 때 우선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 파악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니 ‘영혼’이니 부르짖으며 ‘정신적 사랑’을 희구하는 척 한다. 모든 만남의 밑바탕은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관능적 경탄’에서 비롯되는데 말이다. 도대체 상대방의 마음이나 영혼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솔직하다. 그래서 욕을 먹는다. 밤에는 야동을 보고 낮에는 야동을 단속하는 인간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면서 “좀 더 솔직해지자”고 부르짖는다. 마광수 교수는 이미 대중 앞에서 가식은 물론 마음의 팬티까지 벗어 던졌다. 남은 것은 독자 자신도 책과 마주앉아 마음의 팬티를 벗어 던지는 것뿐이다.
목차
Ⅰ. 마광수의 세계관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Ⅱ. 마광수의 여성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저는 손톱이 무지 긴 여자한테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현란한 피어싱, 염색, 뾰족 구두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이 야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핥고 잘 빨아야 해요.”
Ⅲ. 마광수의 섹스관
섹스는 재밌는 놀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섹스 왜 했냐’ 물으면 ‘허무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쓰는 수법.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류가 그렇지. 나는 그게 아니거든. 성은 무조건 즐겁다는 거야. 그래서 명랑하게 나가잖아.『돌아온 사라』도 얼마나 명랑해. 사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섹스로 도피한다는 건 핑계야. 면죄부를 받는 수단이지. 신나게 야하게 묘사한 뒤에 ‘아, 허무하다’ 이거면 돼?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Ⅳ. 마광수의 문학관
한국은 문화적으로 촌스럽다 “나한테 문학은 그냥 카타르시스야. 나도 좋고 독자도 좋자 이거지. 나도 대리배설하고 너희도 대리배설해라 이거야. 교훈? 그런 거 없어.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소설이고 뭐고 사랑 빼면 시체야. 근데 사랑이 뭐야, 따지고 보면 성욕이야.”
Ⅴ. 마광수의 추억관
내가 흡입한 여자들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국문과 교수 ‘한지섭(사라 애인)’은 저의 분신이죠. 실제로 홍대 교수 시절, 사라 같은 미술대 여학생과 진한 연애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자들과 연애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필화 사건 이후론 사건 후유증 때문에 쭉 굶었지요.”
Ⅵ. 마광수의 철학관
권태는 권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 “쾌락은 어떤 쾌락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어. 그러나! 섹스만은 안 질린다. 인생도 뭐든 질려. 심지어 밥도 먹다 보면 질려. 하지만 섹스 자체는 절대 안 질려. 물론 한 여자 한 남자하고만 하면 질리겠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랑을 해도 권태가 있잖아. 권태와 변태. 권태로워지면 변태로워지고, 변태로워지면 창조가 나온다. 그게 내 명제야.”
Ⅶ. 마광수의 미술관
예술은 ‘위압적 양심’과 ‘격노하는 본능’을 비폭력적으로 중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며 나이프로 긁어댈 수도 있는 캔버스 작업은 내게 진짜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었다. 그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선 나 스스로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붓을 휘둘러대었는데, 그러다보니 캔버스 작업은 대부분 즉흥성에 의존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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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5 우리는 평생 동안 완벽한 성욕의 충족을 찾아 헤매며 살아간다.
P. 19 육체가 배고플 때 정신이 맑아질 수는 없다. 육체가 배부르면 느긋해지고 객관적이고 철학적이 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가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로 가치관이 바뀔 것이다.
P. 41 내가 늘 이야기하는 페티시가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긴 손톱이다. 20년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변태라고 욕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네일숍이 많아지고 네일아트가 유망직종으로 꼽힐 정도가 되었다.
P. 49 젊었을 때는 성형수술을 골 백번해서라도 아름다운 여자(또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미모’이다.
P. 64 나는 페티시스트(fetishist)이다. 페티시스트들은 특히 허무주의적인 성향이 많다. 죽음에 대한 그리움, 죽어 없어져 영원히 물질화되고 싶어 하는 원초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있는’ 여인의 육체보다 긴 모조손톱이나 스타킹, 특이한 장신구,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 등 ‘물질’로 된 그녀의 부속품에 더욱 집착한다. 그러면서 영원히 무화(無化)되어 없어져버리는 것 같은 쾌감을 맛본다. 접기

P. 78 ‘정신적 쾌락’이 일종의 악(惡)에 속한다고 보는 이유는 그 ‘정신적 쾌락’의 정점에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언제나 종교적 도그마 때문에 고통 받았다.
P. 86 정치적, 문화적으로 후진된 사회일수록 도덕만능주의 경향이 강하고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P. 129 엄밀히 말해 모든 인간은 이성이라는 권위에 복종하는 대가로 문명생활이라는 팁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마조히스틱한 체질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P. 153 나는 인간의 역사가 놀이의 시대에서 노동의 시대로, 그리고 노동의 시대에서 다시 놀이의 시대로 이행되어 간다고 본다.
P. 161 현재적 욕구에 정직하되 ‘길게 보고’ 살며 ‘두고 보자’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 ‘두고 보자’ 정신은 절대로 복수의 정신이 아니다. 시류를 초월해 주변의 유행사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 바로 ‘두고 보자’ 정신이요. 천진난만한 솔직성과 직관력을 지닌 천재의 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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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마광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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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7년 『현대문학』에 시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데뷔
2017년 9월 5일 타계
주요 작품
-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시학』,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 정신』, 『마광수 문학론집』 외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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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보기)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한 위험한 단언
돈, 건강, 친구, 직업, 신앙, 배우자, 명예, 권력, 정신적 만족… 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을 누가 전적으로 부정할 것인가. 가중치를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이지 결국 같은 재료의 다른 요리일 뿐일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행복 레서피에는 주재료가 한 가지다. 동물적 본능의 충족. 그중 단연 ‘섹스’.
그에게 동물적 인간 대 정신적 인간이란 이분법적 개념 사이의 갈등이란 없다. 그에겐 ‘육체적 쾌락만이 선(善)’이며, 진정한 행복은 야한 섹스로부터 오는 부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적 본능의 핵심인 섹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 제도적 규제는 성적 본능의 삐뚤어진 발산만 낳는 지배층의 무기일 뿐이다.
그는 본문에서 “극단적 쾌락주의(원나잇스탠드, 그룹섹스, 부부교환 섹스 등)를 악덕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결국 죽을 때까지 쾌락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갖가지 보수적 윤리와 도덕에 기초하는 성에 대한 금기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스와핑이나 SM섹스, 그리고 성적 표현물에 관한 각종 규제가 풀리면 강간 같은 것은 차츰 없어지게 되고 성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성적 권태를 벌충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에 불과하다. 우울증과 권태를 포함한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 또한 성적 불만족이 원인이라고 본다. 그의 존재 기반, 행복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섹스다. 그는 말한다. “나는 섹스한다, 그래야만 내가 존재한다.”
마광수가 솔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척’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욕망의 버벌(verbal) 배설구인가
마광수 교수에게 ‘인간에게 동물적 본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이성으로 적절히 통제해야 이 사회가 유지되지 않겠냐’라는 식의 절충안을 내밀 틈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즐거운 사라』(1991년) 외설시비로 1992년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을 대표로 그의 지금까지 행보는 ‘성(性)’과 관련된 우리 시대의 통념에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관념적 굴레일 뿐 실상 인간은 ‘개인적’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마광수의 뇌구조』에서도 국가가 통제하는 지금의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대신, 개인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성욕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 및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사랑’을 ‘성욕’의 다른 이름으로 보며, 궁극적 성적 만족은 종족보존의 욕구를 극복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성적 표현과 관련해 우리 시대 문학적, 미적 기준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소위 포르노그라피에서 통용되는 성 용어를 이 책에서도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흔히 도덕적 정화를 뜻하는 ‘카타르시스’를 ‘사디스틱한 성욕과 마조히스틱한 성욕의 대리배설’로 재정의하며, 부도덕한 쾌락 욕구의 직접적 배출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예술)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얼굴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구호는 지극히 위선적일뿐 아니라 ‘마음’이나 ‘영혼’을 부르짖으며 ‘정신적 사랑’ 운운하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받으려면 자칫 천박해 보일 정도로 야하고 진하게 화장해야 한다는 도발적 제안을 하는가 하면,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이는 문화 후진국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마광수는 변태다
그의 사고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는 변태다.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는 그의 주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관능적 허기증을 앓고 있는 그가 변태적 판타지를 긍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하이힐처럼 뾰족하고 시스루룩처럼 엿보이며, 임자있는 사람과의 데이트처럼 아슬아슬하고 사팔뜨기 눈처럼 짝짝이(언밸런스)이고 젖꼭지를 피어싱해 어쩐지 으스스하며, 파운데이션을 두텁게 발라 목과 얼굴이 분리된 과장스러움”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런 여자를 아름다운 여자라고 지칭하는 그의 여성관은 변태스럽다. (아니 후각, 촉각 등 오감 전체가 그렇다.)
“알고 보면 사랑은 별 게 아니다. 사랑은 오로지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접촉감’일 뿐이다. Love is Touch!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만지는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대화가 아니라 살갗끼리의 대화이다. 사랑은 정신적 신뢰감이 아니라 육체적 신뢰감이다. 사랑은 살갗끼리의 접촉이지 성기끼리의 접촉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사랑관은 변태스럽다.
“나의 외로움, 나의 사랑, 내가 살아가는 실존적 이유의 정체가 ‘섹스’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남이 뭐라고 하든, 나의 심리가 혹 변태든 아니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며 살아가는 방법이며 목표이기 때문에”라고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읊조리는 그의 내밀한 고백도 어쩐지 변태스럽다.
마광수, 그의 뇌구조는 정말 변태스러운가. 접기

가장 쉬운 마광수 입문기! 마광수는 재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마교수님 화이팅!!
yusilva 2011-10-04 공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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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역시나...
컴온타스 2014-06-19 공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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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주장은 일관되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떠나

소설가나 교수가 법정에 불려가 재판을 받는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시대의 금기를 거슬린 자들은 어김없이 소환을 당했다. 그렇다. 시기를 잘못 골라 태어나는 바람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는 말이다. 만약 마 교수가 지금 30대 초반이었다면 종횡무진 활약했을 것이다. 당연히 젊을 테니 못생김도 지적인 모습으로 감추어지고 말빨이야 두말할 것 없으니 날아다닐 것이니 무조건 섭외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헹하게도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군사독재시절이었고 박정희가 물어난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그 망령이 떠돌고 있었다.
마광수는 프로이드식 접근을 택하고 있다. 인간의 원천은 성욕과 식욕이며 모든 말과 생각의 형태의 변행에 지나지 않는다. 도리어 성욕에 집중함으로써 헛된 욕망을 물리칠 수 있다. 곧 돈이나 권력같은 허깨비에 불과한 잡욕망에 휘둘리기보다 본래의 욕망에 치중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를테면 길고 가느다른 여성의 손가락이나 손톱에 환장하는 것이 태극기를 휘두르고 박근혜 만세를 외치며 눈물짓는 집회 참가자보다 백배 천배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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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지 2017-02-24 공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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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뇌구조

나는 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을 직접 들었던 학생으로서 교수님은 굉장히 밝고 솔직하고 재미난 분이셨다. 또한 신사다우면서도 권위주의적이지도 않아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편하게 대해주셨고(나는 남학생이었음에도) 수도 그래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마광수 교수님의 책, 그것도 오래전에 출간된 책(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만 읽고(심지어는 읽지도 않고) 마광수 교수님을 마치 성직자가 신도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는 변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광수의 뇌 구조는 마 교수님이 그동안 야한 여자가 좋다거나 즐거운 사라 등으로 이끌어냈던 성담론의 이유와 철학을 담고 있다. 만약에 섹스교가 생긴다면 그 바이블 정도 될 것 같다.
먼저 성담론을 이끌어낸 데에는, 마 교수님의 출생과 성격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마 교수님의 집안은 주변의 부당한 압력으로 몰락한 ‘선비가문’이 아니었기에 애초부터 반드시 되살려야 할 오기를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빨치산 이력으로 몰락한 영남 선비 이문열이 갖고 있었던 오기와 의지를 되새기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기에 마 교수님은 세상을 좀 더 너그럽고, 비권위, 비관념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비관념적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우리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성행위임을 알 수 있었고, 비권위적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그것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마 교수님의 직업이 교수라는 것을 걸고넘어지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는 가장 보수적인 직업에 속한다. 또한 가장 관념적인 집단이다. 그런 사회에서 솔직하게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밤에는 야동을 보고, 낮에는 야동을 단속하는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은 곧 경직된 교수집단과 보수성 양측을 모두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그를 격렬히 공격했고 진보는 보수의 공격 측면에서 또 격렬히 옹호했던 것이다.
보혁논쟁을 떠나서, 관념적 쾌락이 위험한 이유는 정신적 쾌락의 정점에는 일종의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교는 도그마로서 인간을 구속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억압이 강한 곳일수록 육체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머리를 짧게 깎기를 강요하는 곳일수록 억압이 강한 곳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가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로 가치관이 바뀔 것’이라는 주장은 경청해 볼만하다(p.19)
이 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읽어야 하는데, 솔직함의 측면에서 예를 든 내용들(페티시, 야한 여자), 비권위 측면에서의 내용들(유연적 사고), 비관념 측면에서의 내용들(놀이사회, 정신적인 쾌락보다 육체적인 쾌락의 중시) 등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첫 번째 측면에서 든 내용 페티시나 야한 여자의 예만 보고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대가 변해 이제는 성이 어느 정도 사회의 공적인 측면으로 부각되었다. 문학으로는 장정일이 있고 연극으로는 교수와 여제자 등이 있다. 마 교수님처럼 되자는 것이 아니라 마 교수님의 생각도 존중해 보자는 뜻이다. ‘무조건 치밀어 오르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자는 말은 아니다. 인류는 그러한 야수성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대리배설 장치를 개발해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중적 의식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담론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도덕이 이루어진다. 참된 도덕이란 '솔직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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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빛 2011-08-30 공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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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뇌구조

이 책의 저자인 마광수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저자를 처음 알게된것은 즐거운 사라를 통해서였다. 그후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 등을 통해서였다. 그후 그의 작품과 관련된 외설에 대한 문제로 메스컴을 오르내릴 때 등을 통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야한 여자는 보다 솔직하게 스스로의 본능을 드러내는 사람,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천진난만하게 원시적인 정열을 가지고 가꿔 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저자는 공공연하게 체질상 성욕이 명예욕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어보면 성욕에 보다 충실한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그의 사상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가 일으킨 이슈에 관심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책을 썼기에 수감생활까지 하게 되었나 궁금해 하면서 그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가 불러 일으킨 외설 시비는 평소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무척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법하다. 그 관계에 대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미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야 어느 쪽이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발산하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말이다. 나역시 누가 답을 요구한 것도 아니건만 주제넘게 그런 고통을 느꼈던 사람들 중의 하나다. 당시 사회분위기도 그랬지만 책을 읽는 나부터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책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은 기억만 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의 속도를 사회가 발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성문화가 개방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개그프로그램에서 마광수 교수를 흉내 내는 개그맨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인기가 높아졌다.
이 책은 저자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기록한 책이다. 세계관, 여성관,섹스관, 문학관, 추억관, 철학관, 미술관 등 여섯가지 범주로 나누어 글을 모아놓았다. 이 책은 각 내용들이 비교적 길지 않은 내용들이라 어렵지 않게 읽혀져서 좋았다. 책을 읽기전 저자의 뇌구조가 사실 궁금했다. 저자는 “명예, 돈, 권력 등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지만 그것은 결국 성욕과 식욕의 원활한 충족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순수미’보다는 ‘관능미’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관능미’가 단지 퇴폐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야한 아름다움’이 결코 사치와 퇴폐의 상징으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 인간 모두가 ‘본능적 욕구의 당당한 노출’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관능미를 능동적으로 가꿔나갈 수 있을 때, 세계는 비로소 상쟁(相爭)을 멈추고 사랑의 낙원으로 바뀌어질 수 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한다.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넘어서기 위해 저자가 일생 동안 길어 올린 깊은 사유들을 정리한 이 책은 무엇보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해 삐딱한 눈길을 보냈다는 점이 남다르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작가가 생각하는것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성적인 잣대도 어쩌면 시대에 따라 변할것이며 도덕적 가치관 또한 그럴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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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2011-08-23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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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뇌구조

다소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는 마광수 교수님의 성을 중심으로 한 담론과 예술관은 사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전에는 미처 상상할 수도 없는, 아니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역사의 이면에 감춰놓은 또 다른 얼굴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별날 것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본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사람도 있다고 인정하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한국사회, 혹은 한국사회를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어떤 무리들이 마 교수님을 희생양 삼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뒤에 숨어 온갖 파렴치하고 더러운 짓은 다하고 있을 것인지도. 그런 점에서 보면 마 교수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입장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신념이 강할수록 그것은 더욱 이용가치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추측도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마 교수님의 이론이나 성 담론들이 이제는 더 이상 화제가 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할 수는 있어도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대중들이 그만큼 성이나 삶에 대해 개방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욱 더 자유로운 자유와 자율을 위해서 계속 글을 써 나가실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누구나 다 칭송하고 제대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다 그러니까 나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이나 작품들에 대해 쓴소리, 혹은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는 마 교수님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톨스토이나 조정래, 박경리 작가님 같은 분들의 글을 나름대로 설교 이상의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 그런 것? 다양한 관점과 생각이 부족한 세상이니 최소한 재미있지는 않은가? 마 교수님의 생각과 삶이 보편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솔직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솔직해졌을 때 불어닥칠 후폭풍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많은 신진 작가들이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미치는 여파가 미미한 것으로 봤을 때 한 시절을 시끄럽게 했던 마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쉽게 다시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치부는 그만큼 더 견고한 방어막을 갖고 더 썩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할까? 드러낼수록 더 깨끗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언제 입증해보일 수 있을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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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보는사람 2011-10-28 공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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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뇌구조

우리나라 교수들은 목에 힘을 주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권위를 세우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지식인의 대표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식인의 대표중에 작가도 있다.작가들 또한 우리나라 문학을 이끄는 선두주자이기에 그들의 글에 따라 사회풍조가 변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도덕군자적인 흐트려지지 않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광수는 대학교수이다. 더군다나 책을 내었다. "즐거운 사라" 라는 점잖은 사람이 말해서는 안되는 내용이다. 흔히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사적으로는 바람을 피우더라도 공적으로는 아주 도덕인체 한다. 하지만 마광수의 발언때문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하였기 때문이다. 뇌구조에서는 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솔직한 것은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부터 살아오면서 잠재되어 오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때 놀랍기도 하다. 남자들은 야한 여자가 좋을 것이다. 말로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마음또한 어느정도의 미모가 있을때 한에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광수의 거침없는 발언들은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다.
어느정도는 마광수의 발언에 공감할 때도 있다. 자기를 꾸밀줄 아는 여자가 그렇지 않는 여자들에 비해 부지런하다는 것에는 공감하며 또 공감한다. 또 사랑은 길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마광수도 다른 작가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자신의 글들과 다르다고 마광수의 글에 비난을 한다고 미워하면서 자신또한 다른 작가를 좋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완전히 솔직하고 싶으면 자신의 글과 다른 글을 쓰고 있는 내용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솔직한것은 나의 생각도 이해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책의 내용이 좋고 나쁨보다는 그 내용을 읽은 독자가 어떻게 또한 무엇을 받느냐에 따라 책이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광수는 교수이면서도 그냥 자연인의 뇌구조를 가진 듯 하다.
(이 서평은 "오늘의 책"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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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2011-09-05 공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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