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윤정란 | 알라딘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왕비,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윤정란 (지은이)
이가출판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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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 받기책소개
왕비들의 삶을 통해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풀어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철저하게 유교적 여성관을 신봉해야 했던 왕비들이 자신과 자식들 나아가 친정 집안을 위해서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상세하고 섬세하게 밝히고 있다.
험난한 정치 세계에서 유교적인 여성관을 교육받고 자란 왕비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성들과 정치게임을 해야 했을 뿐더러 때로는 같은 여성과도 마찬가지였다. 패배한 왕비들은 폐비가 되기도 했고 자신의 친정 집안까지도 멸문지화를 당한 경우도 허다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지지세력을 만들고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왕비들. 이 책에서는 조선 정치 세계에서 위태롭지만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던 왕비들을 통해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비(妃)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부터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선 왕비들을 중심으로 조선왕조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지식의 습득뿐만 아니라 드라마틱한 흥미마저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학계의 다각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더욱 충실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아냈다.
목차
I. 조선의 기반확립 위해 희생양이 되는 왕비들
신덕왕후 강씨 ― 조선 최초의 왕비, 명예를 회복하다
원경왕후 민씨 ― 왕자의 난을 성공으로 이끈 지략가, 조선의 여걸
소헌왕후 심씨 ― 남편은 성군이건만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현덕왕후 권씨 ― 죽은 지 오십 년 만에 눈을 감다
II. 체계화되는 유교적 이념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왕비들
정희왕후 윤씨 ― 조선 최초 여성정치가로 국정을 다스리다
소혜왕후 한씨 ― 여성교양서 《내훈》을 편찬한 지식인
폐제헌왕후 윤씨 ― 내 아이가 보전되거든 나의 원통한 사연을 알려 주오
폐비 신씨 ― 왕의 비(妃)로 십 년, 폐위되어 군(君)의 부인으로 살다
단경왕후 신씨 ― 역적 가문의 딸, 왕비 된 지 7일 만에 폐위되다
문정왕후 윤씨 ― 수렴청정으로 군주의 권력을 휘두르다
Ⅲ.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정 가문과 함께하는 왕비들
인순왕후 심씨 ― 왕의 탄생을 도운 왕비, 사림들의 정치시대를 열다
의인왕후 박씨 ― 진정 살아있는 관음보살이었다
인목왕후 김씨 ― 대군의 탄생으로 집안의 화(禍)가 시작되다
폐비 유씨 ― 후세에는 왕비로 태어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인열왕후 한씨 ― 큰 세상을 꿈꾼 소현세자, 비운의 왕세자로 만든 어머니
장렬왕후 조씨 ― 아들과 며느리가 죽었는데 내 상복이 중요하더냐!
소현세자빈 강씨 ― 세계화시대로 나아갈 준비가 된 여인, 사사되다
인선왕후 장씨 ― 청나라 정벌을 조선 최대의 과제로 여긴 내조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 권력에 집착했지만 간절한 모정을 지닌 어머니
인현왕후 민씨, 희빈 장씨 ― 폐위와 복위로 엇갈리는 비극적 운명의 두 여인
인원왕후 김씨 ― 영조의 영원한 후견인이 되다
헌경왕후 홍씨 ― 친정 변명과 억울한 인생을 호소하기 위해 쓴 《한중록》
IV. 국정을 주도하는 왕비들
정순왕후 김씨 ― 여주(女主)임을 자처하며, 정권유지 위해 천주교도 학살하다
순원왕후 김씨 ― 왕비 가문의 세도정치시대를 열다
명성황후 민씨 ― 망국의 왕비, 조선의 국모 살해당하다
순헌황귀비 엄씨, 정화당 김씨 ― 상궁 출신이라고 국모 노릇 못할쏘냐?
순명효황후 민씨 ― 종묘사직 위해 모든 슬픔을 속으로 삼키다
순정효황후 윤씨 ― 마지막 국모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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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순조 즉위년(1800) 문무백관들이 용상 아래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용상에는 솜털도 가시지 않은 보송보송한 얼굴을 한 앳된 11세의 순조가 앉아 있었다. 순간 긴장된 분위기를 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수렴 뒤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 꼴이 되는 것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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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4년 12월 20일자 '새로나온 책'
저자 및 역자소개
윤정란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숭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HK교수
(저서 및 논문) 『한국전쟁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여성운동의 역사』 외 다수.
최근작 :
<냉전·종교·인권, 1960~1980년대>,
<전남동부지역 기독교 기관과 지역사회>,
<한국전쟁과 기독교 (반양장)> … 총 27종
(모두보기)출판사 제공 책소개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는 왕비들의 삶을 통해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풀어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철저하게 유교적 여성관을 신봉해야 했던 왕비들이 자신과 자식들 나아가 친정 집안을 위해서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상세하고 섬세하게 밝히고 있다.
험난한 정치 세계에서 유교적인 여성관을 교육받고 자란 왕비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성들과 정치게임을 해야 했을 뿐더러 때로는 같은 여성과도 마찬가지였다. 패배한 왕비들은 폐비가 되기도 했고 자신의 친정 집안까지도 멸문지화를 당한 경우도 허다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지지세력을 만들고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왕비들.
이 책에서는 조선 정치 세계에서 위태롭지만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던 왕비들을 통해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비(妃)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부터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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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집권한 조선왕조에 왕비가 역사속 중심에 있었고 왕비들을 통해서 오백년 조선왕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다.
tmdwn0128 2014-12-23 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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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상 왕비로 추존되거나 책봉된 여인은 44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는 실록에 어느정도 기록을 남긴 30명의 왕비를 다룬 책이다. 남성중심적인 위계질서를 갖고 있던 유교사회, 조선에서 국모라 칭해지던 왕비로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동반자에서 점점 국정에서 배제되어 가던 왕비, 유교적 이념이 체계화되는 와중에 왕비의 입지, 안정되어가는 상황에서 정치세력과의 관계를 매던 왕비, 국정을 주도한 왕비들의 이야기까지, 총 4가지 시기로 구분해서 다루고 있다.
존엄한 자리에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욱더 유교적인 여성관에 사로잡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왕비의 삶이었다. 조선 15대왕 광해군의 왕비였지만, 광해군이 폐위가 되며 함께 폐위가 된 폐비 유씨가 다시는 왕실의 부인으로 태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원을 드린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공신세력을 숙청해 안정적인 기반을 세종에게 물려준 것처럼 외척세력을 숙청한 태종이 니 아비를 죽인 것을 원망하느냐는 말에, "제 아비는 죄인이옵니다. 신첩은 출가외인이라 오래 전부터 상왕 전하를 친가의 아버님으로 여기고 있사옵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던 세종의 부인 소현왕후 심씨의 마음은 어떠했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효’를 중시하는 유교이기에 왕비가 아닌 대비가 되었을 때, 즉 왕의 어머니의 역할이 되었을 때 더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조가 세상을 떠나고 여성으로서 실권을 휘어잡은 정희왕후 윤씨가 그러하다. 수렴청정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했는데, 후에 왕의 자리를 결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할 정도로 판세를 잘 읽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세조와 마찬가지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다. 그 후에 이어지던 현덕왕후 권씨의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내명부가 체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궁에서 왕비의 자리에 올랐을 뿐인데, 그것을 아들이 왕의 자리에서 억울하게 내쳐진 하나의 빌미였다니,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왕비의 시점으로 조선왕조를 바라보니, 이 비극은 연산군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정희왕후 윤씨의 정치적인 계산으로 아들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소혜왕후가 된 한씨는 아무래도 실권을 쥐고 있던 정희왕후와 맞서지 않고, 학문에 관심을 두고 부녀자를 위한 교양서 ‘내훈’을 썼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종이 친정을 하기 시작하자,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의 통치이념을 내세운 젊은 유학자들의 공세를 물리칠 정도로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윤씨를 폐비시키는데 앞장서게 되는데, 후에 이런 문제들이 얽혀서 연산군의 폐악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단종을 떠올리게 된 것은, 연산군은 자신이 강력한 정통성을 확보한 군주라고 생각해왔는데, 윤씨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정통성의 위험을 받게 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는 단종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유교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고단한 면도 있었지만, 또 그녀들이 확보하는 정통성이 왕의 정통성과 직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흥미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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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5-01-21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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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서평]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윤정란 저 / 이가출판사]
이 책은 조선왕조를 왕비들의 삶을 통해서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참 재미있게 보았다. 우선 조선을 건국한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의 부인이자 조선의 첫 왕비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방원의 아내 원경왕후 민씨, 조선 최초의 여성정치가로 활동한 정희왕후 윤씨, 명성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와 희민 장씨, 조선의 마지막 국모였던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총 28명의 왕비들을 통해 조선왕조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역사를 접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시대를 불문하고 여성들을 둘러싼 비극이 결정적으로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일 처음 소개되는 신덕왕후 강씨의 삶이 역사를 바꾼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전부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강씨가 이성계보다 21살이나 어렸고 아름다웠으며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위해 행동한 결과 너무나도 유명한 제 1차 왕자의 난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것만봐도 역사드라마나 역사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욕망과 욕심으로 비극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비운의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강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파헤쳐보자면 당시 조선시대는 일부일처제였지만 이성계는 고려시대의 관습에 따라 두 명의 정실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젊었을 때부터 동거동락을 했던 아내를 향처, 남자가 높은 관직에 올라 개경으로 가게되면 형편에 따라 정실부인을 한 명 더 맞이할 수 있는데 이 아내가 개경에 있는 아내라 하여 경처라고 한다. 이성계의 향처는 이방원의 어머니 한씨였는데 한씨는 이방원이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죽었기에 조선의 첫 국모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성계의 경처가 바로 지금 소개하는 강씨인데, 이성계가 이름뿐인 허울 좋은 공양왕을 유배시키고 조선을 개국한다는 거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거사의 큰 걸림돌이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라고 한다.
모든 왕비들이 그러하듯 강씨 역시 자신의 아들들이 왕세자로 책봉되길 원했고 결국 태조는 사랑하는 강씨와 대신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강씨의 두 아들 중 막내 왕자 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조선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방원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고 결국 가족들끼리 피를 보는 제 1차 왕자의 난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죽은 향처의 아들과 젊고 아름다운 경처의 아들의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처의 어린 아들이 세자로 책봉된 것을 보면 강씨의 영향력이 그만큼컸음을 알 수 있다. 원칙없는 세자책봉을 한 이성계의 결정에 아무리 배 다른 아들들이지만 결국 가족들끼리 피튀기는 비극을 맞게 되고 왕이 된 이방원은 강씨가 죽고나서 아버지 이성계의 부인은 자신의 어머니 한씨 뿐이라며 강씨를 조선 최초의 왕비에서 아버지의 서모, 즉 첩으로 강등하였고 그녀의 자식들까지 죽음으로 몰았다. 어쨌든 개국일등공신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에서 서모로 강등되었지만 서모로 강등된지 3백, 즉 죽은지 3백 년만에 현종때 유교사상에 의해 다시 왕비로 복위되어 정비자리를 회복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싶다.
물론 역사를 보면 수많은 왕비들 중 뛰어난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처세로 왕을 내조, 보필하고 나라의 안정을 위해 살아온 위대한 왕비들도 많았지만 권력의 힘과 유혹이 참 무서운지라 시기와 질투, 욕망으로 인해 역사의 끔찍한 사건의 원흉이 되어 안타깝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왕비들도 많았다. 죽어서까지 이성계를 잠 못들게 했던 강씨도 참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비들의 궁궐 속 세상, 대체 그 세상은 어떻길래 그렇게 욕심을 내고 사람이 변하는 것일까? 국정을 다스린 왕비, 모성애를 보여주는 왕비, 살해당한 왕비 등 그녀들의 삶과 상황, 사건들이 너무 흥미진진하여 빠져들어 읽었다. 이 책의 제일 뒷부분에는 조선시대 왕비 가족의 일람표가 준비되어 있는데 보통 왕족의 일람표는 왕이 우선시 되는 반면 이 책의 일람표는 왕비의 칭호화 생물연도가 먼저라 기준이 달라진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조선 왕비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참 신선했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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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천사 2015-01-22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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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를 바라보다,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아르's Review
조선 왕조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왕을 기준으로 하여 시대를 구분하여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 등26대 조선의 왕을 기억하는 방법까지 따로 있을 만큼 왕을 기반으로 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관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를 호령했던 한 주축으로 하여 읽어 내려가는 역사.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익숙한 것이었기에 별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를 마주하는 순간, 500여년 동안의 조선시대 안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 왕비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명 그 시대를 함께 있었던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녀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일까. 꿈틀거리는 궁금증과 그 뒤에 숨겨져야만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책에 빠져들게 만든다.
“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종실록>79권(세종 19년 11월 12일)에 실려있는 내용으로 1437년 세종대왕이 평상시와 같이 경연에 나가 <시경>을 강독하는 도중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다.
세종대왕은 여성들과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창제한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조선의 여성들은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되던 언어에서 소외되었으며, 외부와의 접촉에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당시 사회를 주도하던 사대부들은 여성들이 외부와 접촉하게 되면 부덕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본문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어 보았을 때, 양반댁의 규수를 뛰어 넘어 시대의 국모였던 그녀들의 삶은 유교에서 말하는 여성관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그 모습대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그녀들의 삶의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치밀하게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했고, 그 안에서 정치라는 두 글자 안에서 혼돈의 시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 최초의 오아비인 신덕왕후 강씨를 시작으로 마지막 국모였던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이 책 안에서는 조선시대 안에 숨겨져 있던 그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정도전은 개국일등공신인 방원이 왕위에 오를 경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의원내각제)의 지지자인 반면에, 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내세우는 인물이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씨의 소생인 방번을 세자로 옹립하고 나섰다. 태조도 속으로는 강씨의 첫아들인 방번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더러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강씨의 청을 물리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중략)
“방번은 사람됨에 광패합니다. 막내 왕자 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 의견에 모두 찬성하여 태조 7년(1398) 11세의 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 모든 것은 강씨의 정치력에 의한 결과였다. 왕위를 넘보고 있던 방원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경우 추후 자신의 운명을 내다 보았던 강씨는 태조 이성계에게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계속 요청하게 되는데 이 일은 추후 그녀의 소생인 방번, 방석, 경순공주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선택이었으며 그녀 자신도 300여년 동안 첩이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둘째 부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살기 위해 도모했던 방안을 결국 그녀의 목을 죄게 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셈이다.
폐비 윤씨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익히 들어왔던 것이기에 그녀의 악행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녀가 사약을 받게 된 사유가 바로 ‘투기’라는 명목이었다고 한다.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당시 본처 이외의 여러 명의 여성을 거느릴 수 있었던 당시 풍속에서는 여성의 투기는 남성들의 시대에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기에 이는 죽음으로까지 다스릴 수 있었는데 현대의 입장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당시의 모습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목을 죄고 있었다.
후비의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은 국가 성쇠에 중대한 관계가 있다. 왕비 윤씨는 후궁으로 들어와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그 후 아무런 내조의 공이 없고 도리어 질투의 마음만 잦아 지난번에 독약을 가지고 궁인을 해치고자 하다가 발각되어 즉시 폐위코자 하였으나 대신들의 청으로 용서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있은 후 개과하기를 바랐으나 지금까지 뉘우치고 고치지 않아 실덕만 늘어갔다. 이로서 윤씨는 위로 종묘를 받들지 못하고 아래로 국모가 될 수 없는 자격에 이르렀다. 이제 윤씨를 폐서인한다. 이는 칠거지악에 의거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심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본문
신숙주에 의해 궁녀로 입궁하게 된 윤씨는 성종의 눈에 띄어 숙의로 봉해지게 된다. 그녀가 후궁이 되고 나서 어머니 신씨 역시 전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정희왕후의 눈에 들었던 그녀는 왕비로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왕비에 오른 지 4개월 후, 그녀는 연산군을 낳게 되니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신명 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따스한 햇살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녀를 향하는 날카로운 화살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슬파란 시간 속의 화룡점정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인데 이 일로 인해 그녀는 폐위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폐위 시키고 나서 성종 역시도 후대의 일어날 사건들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폐비 윤씨에 대해 100년 동안 거론하지 말라고 하며 세상을 떠난 것에는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난 역사의 사건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흘러가야만 했었는지, 과연 이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인지, 마주하는 순간 또 다시 먹먹해질 뿐이다.
민씨는 조선을 둘러싸고 열강들 간에 서로 쟁탈전을 벌이자 이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미 갑신정변 이후 신뢰가 떨어진 나라라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청나라는 자신이 재집권하는데 두 번이나 도움을 주었기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는 위안스카이를 조선에 심어두고 민씨와 민씨 척족세력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씨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제부터는 러시아를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본문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조선의 국모는 명성황후 민씨일 것이다. 한 시대의 국모가 살해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났는데 민씨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될 것이라 믿었던 일본은 믿을 수 없는 이 망극한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당시의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얽혀있는 관계가 이 모든 것들의 시발점이 아닐 수 없었는데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의 열강들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이토록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안에서 벌어졌던 수 많은 이해관계가 조선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것과 그녀 스스로 그토록 주장했던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말을 믿었더라면, 그리고 그 힘을 믿었더라면, 이라는 안타까움이 계속 밀려들게 된다.
그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니 그녀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도 이것이 조선의 전부인 듯 생각하고 있었다. 왕비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왕비라는 자리가 그녀들을 얼마나 옥죄게 하고 있었는지, 국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치력과 암투를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그녀들을 통해 바라본 조선은 그야말로 암투의 전쟁이 아닐 수 없는 듯 하다. 모든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자신을 향한 모든 화살을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그녀들의 삶을 통해 또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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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2015-01-22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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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왕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윗 글은 <세종실록> 79권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인데, 그 조차도 조선의 여성들을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거기에 여성은 제외된다는 말인가? 이럴수가...
그만큼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여자는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고,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나라의 분위기가 그러했는데, 구중궁궐 안에 있는 왕비들은 얼마나 갖혀 사는 삶을 살았을까. 보지 않아도 뻔할것만 같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 모두가 시대적 상황에 순종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로울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용기를 낸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여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들의 삶은 정말 치열했으리라. 여성의 위치에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섰던 왕비도 있었고, 모든 것을 순응하며 살아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친정쪽 가족들과 친척들이 몰살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 왕비들도 있었다. 여성들이 최고의 정치권력을 가진 것은 국정에 참여했던 수렴청정이었다. 그 주인공은 정희왕후 윤씨. 어린 성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한 그녀는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대신들에게 나서기 위해 몸치장을 한 책 속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총30명의 왕비들은 4조로 나누어 등장한다. 조선의 기반확립을 위해 희생양이 된 왕비들. 유교이념을 철저하게 실행한 왕비들, 하지만 그녀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조선이 안정되어 가면서 왕비들이 정치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왕비들. 국정을 완벽하게 주도한 왕비들의 활동들. 이렇게 총 4개로 나뉘어 소개되어 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여성들, 왕비들을 만날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왕이 쓴 글씨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명필에 감동받았다. 조선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았던 그녀들이었지만, 그만큼 마음고생도 심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들에게 후손으로서 아련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요즘은 이래 살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있다.
한씨는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는 남자들의 사리분별에도 달려있지만, 이들을 내조하는 여성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가 않음을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원래부터 심성이 착하지만 성인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된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갓을 쓰고 있는 모습 혹은 담장을 대면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몸가짐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p.116)
인형왕후 민씨는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으나 선천적으로 허약한 데다 6년 간 궁궐 밖에서 생활한 탓에 병이 깊어져 하루가 멀다 하고 누워 지냈다. 자리보전을 한 채 시름시름 앓던 민씨는 복위된 지 7년 만인 숙종 27년 8월 14일, 3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현재 서오릉에 숙종과 동혈이분으로 안장되어 있다. 그 후 민씨의 희비가 엇갈린 생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궁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로 쓴 책이 바로 <인현왕후전>이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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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신 2015-01-21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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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그동안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보면 왕을 기준으로하거나 중요사건이나 정치적부류나 업적을 통한 남성위주의 역사서들이 많았다. 아니면 팜므파탈이라 일컬어지는 여성들은 대부분 문학이라는 장르의 소설로 흥미위주로 다루곤했다. 그래서 그동안 왕비들은 00왕의 부인으로나 아니면 00왕의 왕비로서만 소개되었다. 그래서 조금 색다른 감도 있다. 그리고 국사시간에 외웠던 왕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왕비들의 이름은 너무나도 생소하다. 다들 비슷한것같고 여전히 헷갈린다. 그래서인지 기억하는 왕비의 이름은 극히 소수다. 이책의 시선이 왕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게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고 반가운것은 이제는 남성의 시선이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역사서라는 점에서 누구의 딸이나 누구의 부인이 아닌 점이 이제는 다양화라는 점에서 꽤나 맘에 든다. 조선의 역사를 살피다 보니 두툼한 책이지만 책장은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그리고 연대별분류가 아닌 주제별로 선별해서 왕비들이 활약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조선의 기반을 위해 희생된 국가초반의 왕비들 그리고 유교이념을 철저하게 시행하는 왕비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정가문과 함게한 왕비들 국정을 주도하는 왕비들이라고 분류하여 소개한다. 국가초반에는 후궁들이 많아서 맘고생하던 왕비들, 남편의 뜻을 위해 순종하거나 아들을 대신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여인들,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장기판의 말이 되거나 반역으로 몰려 친정집안과 같이 몰살되는 경우도 있었고 말그대로 인덕을 갖춰 친송받는 왕비도 있었고 국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거나 자신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반사회적인 학살을 자행했던 왕비도 있었다. 또 남편을 도와 여장부로서의 역할도하면서 지략가의 위치를 누리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한편으로는 가족의 정치적 성향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되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누명을 써서 페위되거나 죽은 왕비들도 있었고 국력이 약해 희생되는 왕비들도 있다.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남자가 주도하는 사회속에서 여성은 숨죽여 살아가야하는 시대였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것을 찾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보였다. 마지막부분 왕비의 위치나 역할 그리고 내명부의 내용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은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그자리에 앉기까지의 노력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여성들을 통한 조선시대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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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난테 2015-01-21 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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