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1

노무현 따라잡기 | 김창호 2005

노무현 따라잡기 | 김창호 | 알라딘
노무현 따라잡기
김창호 (지은이)랜덤하우스코리아2005-09-01





책소개
'참여정부' 후반기를 맞아, '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한 국민적 요청에 부응하는 한편, 대통령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국민에게 전달하여, 국민이 정부의 정책 및 실행 현장을 엿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대통령 어록집'이다. 국정홍보처장인 김창호가 엮었다.

외형적으로는 국정 업무보고(2005년) 회의석상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묶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단지 형식적인 회의 내용이 아닌, 보다 큰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국정 운영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직관력과 판단력,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말과 말 사이에서 그간 언론 매체에서 접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대통령의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여러 가지 갈등과 혼란의 상황 속에서 '대통령 노무현'이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전망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 다 바꿔라 그리고 껍데기는 가라
업무보고는 대통령과의 약속이자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행복한 위기감
시작하는 용기가 혁신의 첫걸음입니다
'배 째라'는 식의 해결은 안 돼
이번에는 매 맞는 일 없습니까?
국민이 코웃음 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일 잘하는 조직에 더 큰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이해 당사자들 간의 합의 도출이 정책의 효과를 높인다
어떤 정책이든 임자가 있어야 한다
시멘트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싱가포르 예를 들기 전에
'가서 푹 쉬고 오시오', 이거 달라지는 거 맞습니까?
직무만족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열심히 일한 사람 떠나라'
외교통상부가 엉망인 줄 알았는데
또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역사에 맞서는 민족만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벤치마킹 잘하는 조직이 일 잘하는 조직이다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합니다
기존의 권한과 업무를 줄이자
우리 한국이 신기록을 세워 봅시다
자기 것이 아니면 스스로 버려라
변화는 숙명입니다
기득권을 버리고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우리가 끊을 수밖에 없습니다
법 어기지 않고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세요
확 뜯어고쳤단 말이죠
홍보의 개념 변화도 혁신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여러분이 알고 계십니다
양적 구조에서 질적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군 과거사 문제는 독일의 경우를 참고하십시오
대통령 과제로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2. 혁신은 무슨 놈의 혁신?
청와대는 청과제? 위원회는 위과제?
낙후 지역을 방치하고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나?
공공 부문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혁신기관장.실무자 데이터베이스 만든다
21세기 한국의 전략지도 만든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맞춤형 정책 개발이 혁신이다
홍역 치렀다 생각하세요
기왕 하는 거 화끈하게 성공시킵시다
부처별 업무보고, 계속 받을 필요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혁신, 대통령도 힘껏 돕겠습니다
보상은 보조적인 수단
하던 일도 바쁜데 자꾸 혁신하라 하니까 짜증스럽지요?
슬쩍 베껴서라도 앞질러 가고 싶어
스스로가 일하는 보람을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은 직업이 두 개?
되지도 않는 일을 매년 보고서로 올리나?
그래프로 보고해 주세요
밀어드리기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
이미 금(錦)은 됩니다만 첨화(添花)까지를 부탁합니다
모든 정책에는 저항이 있다
KTV를 통해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공유하자
10년 전 공부를 아직도 우려먹습니까?
변화를 주도할 것인가, 끌려갈 것인가
형식이 바뀌면 행정 문화도 바뀝니다
억울해도 국민이 원하는 수준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일만 잘하면 되지 혁신은 무슨 놈의 혁신?
기싸움을 하자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희생은 적어집니다
문민화 이전에 문민 우위가 먼저입니다
제도화가 혁신이다

3. 문제해결 능력이 관건이다
균형발전 평가, 제대로 하자
답이 없으면 정책을 내놓지 마라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해야 책임 행정이 됩니다
부산항, 이제 부가가치로 경쟁력을 키웁시다
해운업도 중요한 수출 산업입니다
광양항 투자 의지는 확고합니다
어항.어촌 관광으로 소득원을 늘리자
전체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기준을 갖춰야
잘못할수록 성과가 높아지는 성과 관리는 없애야
사고가 나면 그 일을 하던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고민도 하고 학습도 한다
'공정 거래'의 딜레마
'예산 더 달라'고 말하기 전에
'직장 생활'과 '양육'이라는 이중고를 해결합시다
임대 시설을 활용해 보육 사업자 육성하자
4대 강에는 전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규제는 하되 비용은 줄여 주자
노.사.정 회의, 시장판 흥정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한국이라고 못하라는 법 없지 않습니까?
반찬만 많고 허기진 정책보다 배를 채우는 정책을 개발해야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은 대학 정책
정무직 인사 검증, 좋은 방법 좀 찾아 주세요
국외 사적지를 관광지로 만들자
제대군인에 대해서는 추가 서비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비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바꾸면 단가가 달라집니다
공무원들 살판나는 거 아닙니까?
돈 30만 원 받고 누가 시도 때도 없이 상담을 해 주겠습니까?
공급자의 관점과 소비자의 관점을 함께 설정해야
화끈하게 해치웁시다!
모니터링은 페어플레이를 위한 수단
대박을 터트려야지 20%가 뭡니까
'사람 달라, 돈 달라' 안 해서 다행입니다

4. 절대진리는 없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한 방향으로만 접근하지 마라
대통령 말 한마디가 경제를 살린다
비율에 얽매이지 말자
행정과 산업은 두 개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저는 시스템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
우편 사업은 적자가 나더라도 민영화는 안 맞아
건설 경기는 살리고 투기는 막고
민영이 꼭 공영을 이기라는 법 있습니까?
주택 공급은 국가의 공공 서비스
선의의 기능 중첩은 필요하다
쌀 산업의 양면성 문제에 늘 대비해야 합니다
농업 개방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농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지배 구조가 무엇인지 정답을 내보자
시장에는 항상 현명한 참가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제도적으로 물길부터 터놓자
우리가 지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잖습니까?
팽창 논리에서 벗어난 세계적 안목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비정해지겠습니까?
어려운 사람이 우선입니다
때로는 국가가 봉이 되더라도
노동조합을 다시 감독하라고요?
교류는 교류대로, 할 말은 하자
누가 맡느냐도 중요합니다
수단과 목표
이게 정말 '낙하산'입니까?
이공계 우대, 양이 아니라 질
대륙 봉쇄적 사고에 변화를 줄 때가 왔다
'정보 공개'가 가장 효율적인 통제다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신뢰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폐쇄는 낙오다
대통령의 균형 잃은 지시에는 '아니오'라고 하십시오
내가 너무 아는 척하면 창의적 문화가 깨질 수 있어
대북 정책 추진 원칙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계와 정보를 공유하자

5. 목표에 집중하고 생각을 크게 하라
부동산 경기를 죽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행정 환경 변화가 위원회를 만든다
투명한 예산 관리는 투명한 제도에서 시작된다
동반 성장이 중요하다
우체국 금융 부문 민영화는 고용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공공 서비스로서의 정보통신 정책을!
수도권 규제 개혁, 두 마리 토끼 잡는 법
병아리 절반을 밟혀 죽게 해서야
어민 재해보험은 민생 측면에서 보도록 합시다
가 보고 싶고 살고 싶은 농촌 만들기
국민이 건강하면 예산도 아낄 수 있잖아요
가족, 더불어 살기의 출발점
법이 현실에 안 맞아 편법이 생긴다면
교육 재정도 국가적인 R&D 투자다
고위공무원까지 올라가고 싶지 않은 공무원도 있습니다
보훈 대상자는 모두가 애국자다
방향이 옳으면 껄끄럽더라도 갑시다
한.미 동맹,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시스템이다
검찰 인사는 권력의 전횡도 조직 이기주의도 배제해야
나라 예산, 국민의 통제가 필요하다
자율과 통제가 조화되는 제도를 만들어야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인구 많은 땅이 아니라 살기 좋은 땅을 만들어야지요
국회에 가서도 변경되지 않을 예산 전략을!
홍보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 내는 것
통일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국민이 위에 있습니다
국민들에게도 보고합시다
접기


책속에서


저는 시스템주의자이고, 정책으로 보면 실용주의자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면 그런 편입니다. 간판만 내세운다거나 현장에서 분위기 잡는 것을 좀 싫어하는 편입니다. …제가 낯을 좀 가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영향력이 과대 포장되어 있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대통령 말 한마디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통령이 관심 가지면 그 분야에 모든 국력이 집중되는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저는 그것이 '거품이 많이 들어가 있는 또는 과대 포장된 대통령의 이미지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되도록 절제하는 편인데, 가끔 섭섭하는 소리를 듣기도 해서 참 애로가 있습니다. - 본문 134쪽에서

하던 일도 바쁜데 자꾸 혁신하라 하니까 짜증스럽지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하던 일을 그냥 '새롭게'하십시오. 그것이 혁신입니다. - 본문 67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창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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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철학교육을 전공하였다. 수도침례신학교와 중부대학교에서 기독교철학과 헬라어, 히브리어를 강의하였다. 저서로는 『베드로의 고백 그 허와 실』(1994)『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냐』(1998)『예수의 믿음』(2018)『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2021)『유대신비주의 카발라와 생명나무』(2023) 『성서 그리고 도마복음 말씀 Vol 1 / 1-28』(2024) 등이 있고, 이어서 본서(Vol 2 / 29-70)와 함께 도마복음 시리즈 3권(Vol 2 / 71-114)을 출간할 예정이다. 원어성서원 刊 『스테판 원어성경』 데이터 작업과 편집에 참여하였으며 격월간지 『형상과 글』을 창간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방송 김창호TV를 운영하고 있으며, 원어 성경을 토대로 한 해설 요한계시록과 창세기, 산상수훈, 주기도문, 카발리즘, 도마복음, 로마서, 히브리서 등 동영상 약 690여 편이 업로드 중이다. 접기

최근작 : <성서 그리고 도마복음 말씀 29-70>,<카발라와 생명나무>,<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 … 총 16종 (모두보기)
김창호(지은이)의 말
대통령을 여러 차례 뵙게 되면서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정보, 핵심을 꿰뚫고 들어가는 기백, 기존의 정책을 뛰어넘는 정책적 상상력은 제가 이전에 언론을 통해서 접했던 대통령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학자가 아닌만큼 이론적으로 정제돼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저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제 느낌은 '기백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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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따라잡기

노무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모은 책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수있어서 좋았다..
랑랑 2006-01-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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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따라잡아도 알수 있으면 더 좋을 걸..



엮은이2005년 3월말에 국정홍보처장에 임용되어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던 사람이다.

이 책은 김 창호라는 사람이 지은이(저자)가 아니다.

해마다 대통령은 정부의 각부처로부터 주요업무보고를 받는데 그게 아마도 3월에서 4월인가 보다.

책의 내용은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해당부처 각료 또는 담당공무원과 나눈 이야기나

업무의 지시사항들을 정리한 것으로 어떤 내용들은 해박하게 그 속을 꿰뚫어 보는것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잘 모르는 부분을 솔직히 시인하는 부분도 나타난다.

엮은이가 책의 표지에도 언급을 하였지만 대통령의 생각과 말은 국민이 국정방향과 비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거울이자 도구이다. 이 책은 대통령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국민에게 전달하여

정부의 정책과 그 실행현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통령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왜 시장에 나와서 필터링되는 과정에서 왜곡되

게 전달이 될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히 대통령의 생각은 이러했는데 국민들에게는

그렇게 전달되지 못했지? 국정홍보처의 책임방기인가? 정부 각 부처들이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이해

하지 못하고 정책으로 외화시켜내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왜곡된 언론환경(보도) 때문인가?

물론 문제는 여러가지가 결부되어 복합된 현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일반인들에게는 대통령이 무슨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계

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생각을 읽으려고 국민 모두가 이 책을 읽을수야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이 책보다는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이 더 좋은 내용이었던것 같다.

대신 그 책은 저자의 생각이 녹아 있었고, 이 책은 엮은이의 생각이 배제된 날것 그대로의 대통령

육성이라는 차이는 있는것 같다.
- 접기
모듬이 2006-07-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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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습니다만

한가지 아쉬운점은 나름대로의 평가나 해석을 덧붙였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디오게네스 2005-11-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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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김창호 저자의 <노무현 따라잡기>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본문(요약 및 평론)은 세진님께서 지정해 주신 지침에 따라 해라체로 작성되었습니다.

<노무현 따라잡기> 요약 및 평론

1. 서론: 노무현 현상과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

김창호의 <노무현 따라잡기>는 2002년 대한민국 대선 과정에서 불어닥친 <노풍(盧風)>과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인물의 등장 맥락을 다각도로 분석한 정밀한 정치 비평서이자 정치학적 지침서이다. 저자는 단순한 정치인 인물론에 그치지 않고, 노무현이라는 대중적 정치 역동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 체제와 주류 언론, 그리고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어떻게 균열시켰는지 해부한다. 이 책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파격적이었던 수평적 권력 이동과 대중 참여 정치의 원동력을 파악하는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첫째, 기득권 질서와의 침몰하지 않는 대립

노무현 정치의 출발점은 주류 기득권과의 단절과 도전이었다. 학벌, 지역, 세력적 기반이 전무했던 노무현은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인권변호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책은 노무현이 기존의 도식적인 정치 공학이나 영남·호남이라는 지역 구도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을 위해 험지인 부산에 연속 출마하여 낙선하는 등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진 정면돌파 스타일을 집중 조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바보 노무현>의 행보가 대중에게 강력한 진정성으로 다가갔음을 설명한다.

둘째,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디지털 시민참여(노사모)

노무현 현상의 핵심 축 중 하나는 인터넷 문화와 자발적 팬덤 정치의 결합이다. 기존의 거대 보수 언론이 독점하던 여론 형성 구조에 맞서, 노무현은 인터넷 공간과 대중의 자발적 조직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동력으로 삼았다. 저자는 이를 한국 정치사 최초의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정치 혁명으로 바라보며, 미디어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정당 정치의 폐쇄성을 깬 사례로 평가한다.

셋째, 리더십과 소통의 스타일

노무현의 언어는 정갈하고 정제된 기존 정치인들의 언어와 달랐다.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타격하는 언어 습관은 주류 언론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되었으나 대중에게는 강력한 친근감과 신뢰를 안겨주었다. 저자는 노무현의 리더십을 권위주의 해체, 원칙주의, 그리고 탈권위적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한다.

3. 종합 평론: 혁신과 한계의 경계에서

<노무현 따라잡기>는 정치가 대중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그리고 낡은 권위주의와 기득권의 담장을 허물기 위해 어떠한 정치적 자산과 전략이 필요한지를 명확히 포착해 낸 수작이다.

저자 김창호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신화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무현이 가져온 정치적 파격이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냉철하게 짚어낸다. 특히 전통적 여론 매체의 독점적 지배력이 해체되고 대중의 직접 참여가 본격화되는 시대를 내다본 안목은 오늘날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시대적 한계 또한 존재한다. 노무현 정치가 지닌 <제도화의 미흡>과 <소통 과정에서의 극단적 대립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현상으로서의 노무현이 지닌 역동성과 파괴력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현상은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완수했으나, 동시에 정치적 팬덤화와 팬덤 정치에 따른 진영 대립의 심화라는 부작용의 씨앗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따라잡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격적 정치인의 사상과 리더십을 해부하는 것을 넘어, 대중 독재가 아닌 참된 참여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이 갖춰야 할 의식의 지평을 제시한다. 그것은 원칙을 지키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바보의 정직함>이 어떻게 거대한 기득권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세진님, 요청하신 지침을 모두 적용하여 작성해 드렸습니다. 보시면서 더 다루고 싶으신 부분이나 추가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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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1

조용한 제국의 불안한 유산: 1750년 이후의 중국과 세계: Westad, Odd Arne

Restless Empire: China and the World Since 1750 : Westad, Odd Arne: Amazon.com.au: Books




Restless Empire: China and the World Since 1750
by Odd Arne Westad (Author) Format: Paperback
4.4 4.4 out of 5 stars (108)


A prizewinning historian and expert on Chinese foreign relations examines China's relationship with the outside world over the last 250 years, showing how the past will set the course for China's future.

Over the past 250 years of momentous change and dramatic upheaval, China has proved itself to be a Restless Empire.

Tracing China's course from the eighteenth-century Qing Dynasty to today's People's Republic, Restless Empire shows how the country's worldview has evolved. It explains how Chinese attitudes have been determined by both receptiveness and resistance to outside influence and presents the preoccupations that have set its foreign-relations agenda.

Within two decades China is likely to depose the United States as the world's largest economy. By then the country expects to have eradicated poverty among its population of more than one and a half billion, and established itself as the world's technological powerhouse. Meanwhile, some - especially its neighbours - are afraid that China will strengthen its military might in order to bend others to its will.

A new form of Chinese nationalism is rising. Many Chinese are angry about perceived past injustices and fear a loss of identity to commercial forces and foreign influences. So, will China's attraction to world society dwindle, or will China continue to engage? Will it attempt to recreate a Sino-centric international order in Eastern Asia, or pursue a more harmonious diplomatic route? And can it overcome its lack of democracy and transparency, or are these characteristics hard-wired into the Chinese system? Whatever the case, we ignore China's international history at our peril.

Restless Empire is a magisterial and indispensible history of the most important state in world affairs today.

WINNER OF THE 2013 ASIA SOCIETY BERNARD SCHWARTZ BOOK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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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Select Guide Rating
Book Description
A prizewinning historian and expert on Chinese foreign relations examines China's relationship with the outside world over the last 250 years, showing how the past will set the course for China's future.
About the Author
Odd Arne Westad is one of the world's foremost experts on both the Cold War and contemporary East Asian history, having won the Bancroft Prize, the Michael Harrington Award and the Akira Iriye International History Book Award for his seminal book The Global Cold War. A Professor of International History at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he is also co-director of LSE IDEAS, a centre for the study of international affairs, diplomacy and grand strategy.

Odd Arne Westad, FBA, is Professor of International History at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He has published fifteen books on modern and contemporary international history, among themThe Global Cold War, which won the Bancroft Prize, andDecisive Encounters, a standard history of the Chinese civil war. He also served as general co-editor of theCambridge History of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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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ustralia

Jonah Ley
5.0 out of 5 stars Very good book
Reviewed in Australia on 8 September 2018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Very good book, enjoyed reading it
Helpful
Report
From other countries

R. Ross Rodgers
5.0 out of 5 stars Excellent history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1 November 2021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A definite update to the pantheon of Chinese histories, with added analysis that is very clarifying. One important message is that the PRC, which advertises itself as the champion of anti-imperialism, has changed from itself as once being an empire and now, to handle the inclusion of Tibet, Xinjiang, and other non-Han territories, has become a "light" empire, but still an empire.
Written a decade ago, the author subscribed to the notion that China over time would liberalize to get along better with the rest of the world. That opinion now seems dated.
Report

Cheng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Canada on 18 October 2014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good
Report

D. H. Burney
4.0 out of 5 stars Four Stars
Reviewed in Canada on 28 July 2014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Solid history
Report

dplatter
4.0 out of 5 stars intelligent, fast-paced and enjoyabl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9 May 2015
Verified Purchase
I just bought this today and have read Chapter 6 already. What a pleasure to read something so clear, intelligent, fast-paced and enjoyable. If you want something deep, but you're worried about getting stuck with a dry, academic and unappealing book - this is the one for you.
Report

Gabriel Stein
4.0 out of 5 stars Interesting,but risk being overtaken by events
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8 August 2019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This is an extremely interesting overview of China’s relationship with the rest of the world over the past 250 or so years. However, as with all books of this kind, it risks being overtaken by events. For instance, this book was written while relations with Taiwan and China who are relatively good, something no longer the case. It was also written before the Chinese oppression of its Muslim Uighur citizens intensified. Even so, one should not dismiss the relatively optimistic predictions at the end, and as a review of the post, it is excellent.
Report

Kindle Customer
5.0 out of 5 stars Valuable non-American perspective, very well-grounded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9 June 2013
Verified Purchase
Terrific review of Chinese identity, the formative traumas over two centuries, clearly grounded in deep experience of dialogue and interaction with people in China over several decades. Fascinating facts throughout, many drawn from Asian sources, that are arranged fairly systematically, without falling into the trap of a miscellany. Highly worthwhile read, in view of this Mandarin-speaking diplomat after four years of my own efforts to engage the Middle Kingdom.
Report

Andreas Falke
5.0 out of 5 stars Indispensabl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8 September 2013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Great, balanced and relevant history. This is history that holds the key to the present. Interesting is the pattern of insularity and the attempt to reach out and connect with Western society or global society. A must read for anyone interested in China's role today
Report

Lifelong Reader
3.0 out of 5 stars This is an editorial masquerading as a book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2 May 2017
Verified Purchase
Westad has a point of view and he doesn't let the facts get in the way of his recitation. This book is a light-weight observation based on one man's opinion. It is not well researched. The author puts forward his opinion without the benefit of references or footnotes. There are far better books than this one, and I'd recommend you read another.
Report

Isabella Martins
1.0 out of 5 stars Bad printing
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20 July 202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When I received the book, it seems it was printed incorrectly as the book is not cut correctly and the text is at an angle with some words cut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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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okan_WU
5.0 out of 5 stars Good quality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 Sept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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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able price (including handling fee), prompt delivery, excellen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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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
4.0 out of 5 stars Starts a bit staid but finishes very well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3 Jun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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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to-be Yale professor Westad’s book begin as a rather unexceptional modern history of China, treading ground that’s been better addressed in other works, but it gains momentum as it goes, particularly when later fused with his work on the Soviet presence in China and closing with interesting anecdotes from his time as a teacher and his observations on modern culture and political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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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Mallory
5.0 out of 5 stars the information and writing style is fantastic. I am rethinking many of my thoughts about ...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 Ma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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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ad extensively on China. This is a book you don't want to put down, the information and writing style is fantastic. I am rethinking many of my thoughts abou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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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Wolf
4.0 out of 5 stars Very accessible writing and good place to start for those of us with little ...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9 Apri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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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ing this book and learning a ton. Very accessible writing and good place to start for those of us with little knowledge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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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teca per la vendita
2.0 out of 5 stars Misleading cover design and title, not what it says it i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3 Decemb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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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ver is misleading. It says it is about China from 1750 to the present, but in the first chapter it speeds through the first hundred years of its supposed scope. Also, there's about one fact every two pages. The rest is uncited fluff--the author's opinion about this and that but no concrete evidence to support his opinions. If you want a qualitative survey of Chinese modern history and its relationship with the world beyond its borders, you should not expect to find it in thi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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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a
4.0 out of 5 stars Thre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1 Jun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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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book. Just a comment on the shipping, the front corner of the book was bent throughout tran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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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P Bowring
3.0 out of 5 stars Adequat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7 Nov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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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K summary but not as much new to me as had hoped for and been led to expect from reviews I had 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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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ge runner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6 January 2017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Outstanding, fascinating account of Chinese history which explains the factors behind today's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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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Poon
5.0 out of 5 stars Hidden history of China's international relations since Qing Dynasty.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1 February 2014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Much of China's international history have never before seen in textbooks, I recommend this for high school and college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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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Rasiah Ladchumananandasivam
5.0 out of 5 stars To know the pas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0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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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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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eld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4 Februa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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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intere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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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7 December 2017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fascinating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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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ANGPEIPEI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7 September 2014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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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see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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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교수의 <조용한 제국의 불안한 유산: 1750년 이후의 중국과 세계>(Restless Empire: China and the World Since 1750)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책 개요 및 핵심 주제

세계적인 역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는 이 책에서 청나라 최전성기였던 18세기 중반(1750년)부터 21세기 초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260년에 걸친 중국의 대외 관계사와 국가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논지는 중국이 외부 세계에 의해 일방적으로 침탈당하고 반응하기만 한 피동적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내부적 분열과 외부적 충격 속에서도 세계 시스템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자국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온 <불안한 제국(Restless Empire)>이었다. 책은 청 제국의 확장, 제국주의 열강과의 충돌,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현대의 경제적 부상으로 이어지는 역동적 과정을 세밀하게 조망한다.

요약: 중국과 세계의 260년 상호작용

1. 청 제국의 번영과 서구와의 만남 (1750년~1840년대)

18세기 중반 건륭제 치하의 청나라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강력한 제국적 질서를 구축했다. 이 시기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유교적 천하관을 유지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산업혁명과 무역 expansion이 본격화되면서 자족적인 중국 중심 질서는 도전에 직면했다. 아편전쟁은 단순히 무역 분쟁을 넘어, 전통적 천하 질서와 근대 서구의 주권 국가 체제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2. 제국의 균열과 변혁의 서막 (1840년대~1911년)

19세기 후반 청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불평등 조약, 그리고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부 폭동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중국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수용하려는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을 추진했다. 베스타는 이 시기를 단순한 몰락의 과정이 아니라, 중국이 근대 국제법과 주권 개념을 학습하고 자국을 <제국>에서 <근대 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모색한 주체적 변용의 시기로 파악한다.

3. 신문화운동, 공산주의, 그리고 전쟁 (1911년~1949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붕괴한 후, 중국은 군벌 할거와 일본의 침략이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5·4 운동과 같은 사상적 대격변이 일어났으며, 지식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다양한 외래 사상을 탐구했다. 결국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외래 이념을 중국화하여 세계 질서에 다시 개입하는 강력한 주체로 부상했다.

4. 냉전과 현대의 부상 (1949년 이후)

공산화 이후 중국은 소련과의 동맹과 대립, 제3세계 신흥국들과의 연대, 그리고 1970년대 미국과의 전격적인 와싱톤 외교를 거치며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도모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깊이 통합되었으며, 오늘날 미국과 대립하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평론: 역사적 통찰과 시사점

1. 피해자 서사의 극복과 주체적 재조명

이 책의 가장 큰 학술적 공헌은 중국 근현대사를 지배해 온 <굴욕의 세기(Century of Humiliation)>라는 단선적 피해자 서사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중국 공식 사학이나 서구의 일부 시각은 중국을 근대 서구 제국주의에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희생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베스타 교수는 중국인들이 외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서구 사상을 수용하여 자국의 목적에 맞게 재해석하며, 외교적 수단을 통해 주권을 회복해 나간 주체적 행위자(Agent)였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시각은 중국 대외 정책의 내재적 동기를 이해하는 데 강력한 틀을 제공한다.

2. <불안함(Restlessness)>이라는 정체성의 역설

저자가 책 제목에서 사용한 <불안한(Restless)>이라는 표제어는 중국 근현대사의 본질을 꿰뚫는 키워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제국이면서도, 끊임없이 내부 분열의 공포와 외부적 고립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중국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 중국이 보여주는 과도한 Nationalism, 주변국에 대한 강압적 외교 정책, 그리고 정권 유지를 향한 집착 역시 이러한 역사적 불안함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책은 잘 보여준다.

3. 현대 외교 정세에 주는 시사점

이 책은 오늘날의 미중 패권 경쟁과 중국의 대외 확장 정책이 단순히 최근의 경제적 성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난 250년간 지속되어 온 세계 체제와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임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항상 세계와 연결되고자 했으나 동시에 자신만의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길 원했다.

오늘날 국제 사회가 중국을 어떻게 포용하고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베스타 교수는 역사적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시진핑 시대 중국의 외교 행보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세진님, 저자의 다른 작품이나 18세기 이후 동아시아 국제 관계사의 특정 주제에 대해 추가로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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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 아르네 베스타드(Odd Arne Westad)의 <잠 못 드는 제국: 1750년 이후 중국과 세계>(Restless Empire: China and the World Since 1750, 2012)에 대한 약 1,000단어 분량의 요약 평론이다. 이 책은 중국 근현대사를 국내 정치의 흥망이 아니라, 중국과 외부 세계가 서로를 변화시킨 과정으로 해석한다.

<잠 못 드는 제국: 1750년 이후 중국과 세계> 요약 평론

오드 아르네 베스타드의 <잠 못 드는 제국>은 1750년 청나라의 전성기부터 21세기 중국의 부상까지 약 250년 동안 중국이 세계와 맺어온 관계를 서술한 책이다. 베스타드는 중국을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으로 발전하다가 서양의 충격으로 갑자기 근대에 진입한 나라로 보지 않는다. 그의 핵심 주장은 중국의 근현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는 국제화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외세의 침입을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라 외국의 기술·사상·제도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변형한 ‘잠 못 드는 제국’이었다.

책은 ‘제국’이라는 서론과 ‘근대성들’이라는 결론 사이에 11개 장을 배치한다. 변형, 제국주의, 일본, 공화국, 외국인, 해외 중국인, 전쟁, 공산주의, 고립된 중국, 중국의 미국, 중국의 아시아가 주요 주제다. 이러한 구성은 아편전쟁, 청일전쟁, 신해혁명, 중일전쟁, 공산혁명처럼 익숙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만 나열하지 않고, 중국과 외부 세계를 연결한 여러 통로를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1750년 무렵 청나라는 쇠퇴 직전의 낡은 왕조가 아니었다. 만주족이 세운 청은 몽골·티베트·신장·만주와 중국 본토를 결합한 거대한 다민족 제국이었다. 건륭제 시대의 중국은 인구와 생산력, 영토 면에서 세계 최대의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조공관계를 맺었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하고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상업망에도 참여했다. 따라서 중국이 세계를 몰랐거나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통념은 잘못이다.

그러나 청 제국은 18세기 말부터 심각한 내부 문제에 직면했다.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지만 농업생산과 행정능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방관료제는 부패했고 국가재정은 약화되었다. 여기에 서양의 산업혁명과 군사기술 발전이 더해졌다. 19세기의 위기는 단순히 서양이 강하고 중국이 약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구조적 취약성과 국제질서의 변화가 결합한 결과였다.

아편전쟁은 이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영국은 자유무역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군사력으로 중국 시장을 개방하고 아편무역을 보호했다. 중국이 패배한 뒤 체결한 불평등조약은 관세권과 사법권을 제한하고 여러 항구를 외국에 개방했다. 그러나 베스타드는 이 시기를 단순한 ‘서양 침략과 중국의 수난’으로만 보지 않는다. 개항장은 중국인이 세계의 상품·과학·종교·정치사상을 접하는 공간이었고, 중국의 새로운 상업계층과 지식인이 성장한 장소이기도 했다.

외국인은 중국을 억압했지만 중국의 변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전파하는 동시에 학교와 병원, 번역기관을 세웠다. 외국 기업은 중국 경제에 침투했지만 철도·전신·은행·해운과 같은 근대적 기반시설도 확산시켰다. 중국의 개혁가들은 서양의 군사기술만 받아들이려 했으나 점차 법률·교육·정치제도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개혁은 분리된 과정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었다.

베스타드가 특히 중요하게 다루는 나라는 일본이다. 중국의 근대적 위기는 서양과의 충돌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일본의 부상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중국문명을 오랫동안 배우던 주변국이었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식 국가와 군대를 건설했다. 1894~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한 것은 단순한 군사적 패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고 일본이 새로운 제국주의 강국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성공은 중국인에게 충격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모델이었다. 수많은 중국인 유학생과 혁명가가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 정치사상과 과학을 일본어 번역을 통해 배웠다. 민족주의·사회주의·공화주의와 같은 현대 정치용어 상당수도 일본을 거쳐 중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의 교사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침략자가 되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난징학살은 중국인의 근대적 민족의식과 대일 적대감을 결정적으로 형성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었지만 공화국은 안정된 국민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군벌의 분열과 외세의 간섭,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베스타드는 이 시기를 실패한 공화국으로만 보지 않는다. 도시문화와 언론, 대학, 여성운동, 노동운동이 성장했고, 중국인이 세계정치와 국제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창조적 시대이기도 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유주의·민족주의·무정부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등 여러 사상을 실험했다. 마르크스주의도 외부에서 수입되었지만 중국 현실에 맞게 변형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조직과 이념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나 농민을 혁명의 중심세력으로 삼고 장기적인 농촌 게릴라전을 전개함으로써 독자적인 혁명노선을 만들었다. 중국 공산혁명은 외국사상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세계적 이념과 중국의 사회조건이 결합한 결과였다.

베스타드는 해외 중국인도 중국과 세계를 연결한 중요한 주체로 본다. 동남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 정착한 화교들은 자본과 정보, 새로운 정치사상을 중국으로 전달했다. 쑨원의 혁명운동은 해외 화교의 자금과 조직에 크게 의존했다. 이후에도 해외 중국인 사회는 중국의 경제발전과 민족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존재는 중국사가 국경 안에서만 이루어진 역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1937년부터 본격화된 중일전쟁은 현대 중국을 형성한 가장 결정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의 침략은 엄청난 인명피해와 사회적 파괴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중국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공산당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당 정부는 국제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며 일본과 싸웠지만 부패와 경제혼란으로 지지를 잃었다. 공산당은 항일전쟁을 통해 농촌지역에서 조직을 확대했고, 전쟁 이후 내전에서 승리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중국이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새로운 중국도 외부 세계와 분리될 수 없었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동맹을 맺고 사회주의 산업화 모델을 받아들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중국은 미국과 직접 충돌했고,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고립되었다. 베스타드는 이 시기를 ‘중국 홀로’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 고립조차 국제적 대립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중소관계도 단순한 사회주의 형제국 관계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소련의 원조와 기술이 중국 산업화에 중요했지만, 마오는 소련의 우월적 태도와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를 비판했다. 1960년대에는 중소분쟁이 심화되고 국경충돌까지 발생했다. 중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 모두를 경계하면서 제3세계 혁명의 지도국을 자처했다. 문화대혁명기의 급진적 대외정책도 국내 권력투쟁과 세계혁명이라는 국제적 상상이 결합한 결과였다.

1970년대 미중관계의 전환은 중국의 국제적 위치를 크게 변화시켰다. 마오와 저우언라이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접근했고,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냉전질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덩샤오핑 시대에는 미국과 일본, 서유럽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개혁개방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자력갱생의 결과만이 아니라 세계시장 편입, 해외투자, 기술이전, 해외 중국인의 자본이 결합한 결과였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다. 중국인에게 미국은 제국주의적 위협이면서도 근대화의 모델이었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 전쟁을 벌였지만, 중국 학생과 지식인에게 교육과 과학기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경제질서에 참여하면서 성장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경계했다. 양국 관계는 협력과 경쟁, 매혹과 반감이 교차하는 이중적 관계였다.

베스타드는 중국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중국과 아시아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본다. 중국은 자신을 서양 제국주의의 희생자로 기억하지만 베트남·티베트·신장·대만과 같은 주변 지역에서는 중국 자신이 제국적 강국으로 인식될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평화적 발전을 강조하지만 주변국들은 중국의 규모와 군사력, 역사적 우월의식을 경계한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려면 주변국의 주권과 역사적 기억을 존중해야 한다.

책의 결론에서 베스타드는 ‘근대성’을 하나의 서양식 발전경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근대성은 서양·일본·소련과의 접촉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변형되었다. 현대 중국은 전통 중국의 부활도 아니고 서양 근대의 복제도 아니다. 제국의 유산, 민족주의, 공산혁명,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혼합된 복합적 사회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중국을 세계사의 일부로 되돌려놓는 데 있다. 중국의 근대사를 서양에 의한 수난사나 중국 내부의 왕조교체사로만 설명하지 않고, 중국인과 외국인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중국은 침략받았지만 끊임없이 외부를 학습했고, 외부의 사상과 제도를 중국식으로 변형했다. 세계도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변화했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관점은 중국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문명이나 갑자기 등장한 위협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선다.

두 번째 장점은 중국 민족주의의 모순을 잘 드러낸다는 점이다. 중국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과 국가적 굴욕을 극복하려는 해방적 힘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강대국이 된 뒤에는 과거의 피해 기억이 주변국에 대한 우월의식과 공격적 정책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자신은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기억이 중국 자신에게 존재하는 제국적 성격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 250년의 복잡한 역사를 비교적 짧은 분량에 담으면서 많은 사건과 인물이 빠르게 지나간다. 중국 내부의 계급·지역·성별 차이나 농민과 노동자의 일상은 대외관계의 큰 흐름에 가려진다. 외교사와 지식인 중심의 서술이 강하므로 중국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둘째, 베스타드는 중국이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한 능동적 주체였음을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폭력과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보일 위험이 있다. 개항장이 새로운 사상과 경제활동의 공간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군사적 강제와 주권 침해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책이 2012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시진핑 시대의 권력집중과 미중 전략경쟁, 일대일로, 홍콩과 신장 문제, 대만해협의 긴장까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다만 책의 역사적 틀은 이러한 최근 변화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중국의 적극적인 대외정책은 갑작스러운 일탈이 아니라, 제국의 유산과 근대의 굴욕, 혁명적 민족주의와 경제적 세계화가 축적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잠 못 드는 제국>의 핵심 메시지는 중국이 한 번도 완전히 고립된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중국의 강함과 약함, 혁명과 개혁, 민족주의와 세계화는 모두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중국은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동시에 세계를 변화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려면 중국 내부만 보아서는 안 되며, 중국이 미국·일본·러시아·유럽 및 아시아 주변국과 맺어온 역사적 관계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중국의 부상을 찬양하거나 중국 위협론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질서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중국이 과거의 피해 기억을 새로운 위계질서의 근거로 삼는다면 주변국과의 갈등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이 진정한 세계적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힘의 확대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경험과 두려움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베스타드가 말하는 ‘잠 못 드는 제국’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제국과 의로운 나라>가 중국과 한국의 비대칭적 관계를 좁고 깊게 다룬다면, 이 책은 그 관계를 서양·일본·러시아·미국과 연결된 중국 세계관계사의 일부로 위치시킨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중국은 한국에 문명의 중심인 동시에 제국적 강대국이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세계질서에 적응하면서 다시 중심국가가 되려 했다는 베스타드의 일관된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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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정해구 2011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 정해구 | 알라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정해구 (지은이)역사비평사2011-05-13













































책소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가까이는 2008년 쇠고기 수입개방 협상에 대한 반대시위인 촛불시위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의 4·19혁명을 기억해낼 수도 있으며, 1970년대의 반유신투쟁을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4·19혁명 외에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을 말할 것이다. 이렇듯 한국 민주주의는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을 거쳐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한 연구자는 1987년 이전의 한국 민주주의를 가리켜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라고 정의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은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바로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물론 1980년대를 지배한 전두환 정권의 정치·경제·사회도 아울러 서술함으로써 20세기 끝자락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



목차


프롤로그: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
한국 민주주의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이승만 정권 시기의 민주화운동 / 박정희 정권 시기의 민주화운동

01 ‘서울의 봄’과 신군부 세력
부마항쟁과 10·26사태 / 12·12군사반란과 신군부 세력의 등장 / ‘서울의 봄’ 시기 민주화 과정의 전개 / 쿠데타의 준비, ‘충정훈련’과 ‘K-공작계획’ / 갈림길에 선 민주화

02 5·18광주민중항쟁
5·17군사쿠데타 / 신군부 세력의 과잉진압 / 항쟁으로의 전화와 진압의 실패 / ‘절대공동체’ 광주의 ‘해방’ / 광주의 고뇌 / 상무충정작전

03 전두환 정권의 등장과 체제 정비
국보위 설치, ‘숙정’과 ‘정화’ / ‘사회악 일소’와 삼청교육 / 전두환 정권의 출범과 ‘관제 민주주의’ / 국가보위입법회의와 악법의 양산 / 정당성의 부족과 대체적 정당성의 모색 / 민주화운동의 시련과 내연

04 민주화운동의 부활과 전두환 정권의 대응
유화조치 / 학생운동의 부활 / 노동운동의 확산과 강화 / 2·12총선과 선명 야당의 등장 / 재야세력의 결집과 민통련의 등장 / 개헌정국의 갈등과 민주화운동 진영의 분열 / 전두환 정권의 탄압 강화

05 6월민주항쟁
항쟁의 배경과 촉발 / 국본의 탄생 / 6월민주항쟁의 전개 / 지방에서의 항쟁 / 6·29선언, 양보와 분리 지배 / 또 하나의 항쟁, 7·8·9월 노동자대투쟁

06 민주화 이행과 지역주의 정치의 등장
민주화 이행의 한국적 맥락 / 헌법 개정과 1987년 헌법의 등장 / 양 김의 분열, 재야세력의 분열, 지역의 분열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그 결과 / 민주화의 성공,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 / 지역주의 정치의 고착

07 민주화 이후 민주개혁의 성과와 한계
야대여소 국회와 5공청산의 추진 / 통일운동의 부상 / 공안정국 / 야권 공조의 약화와 ‘의사 민주화’ / 민주화운동 조직의 새로운 결성과 재편

08 1980년대 남북관계와 경제·사회
1980년대 중반의 남북대화 /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추진 / 경제안정화 정책과 ‘3저 호황’ / 주식·부동산 투기 열풍과 ‘중산층 신화’ / 대규모 권력비리와 정경유착 / 탈정치의 ‘스포츠공화국’ / 대중문화와 대중조작

에필로그: 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로
민주화 이후의 보수화: 3당 합당과 5월투쟁 / 탈냉전과 남북관계의 진전 / 장밋빛 환상과 경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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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해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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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955년 충남 서천군 출생. 행정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한국 현대 정치와 민주주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저술한 책으로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주의》(공저) 《한국 정치와 비제도적 운동정치》(공저) 《한국민주화운동사1~3》(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큰글자책]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6월 민주항쟁>,<6월 민주항쟁 (양장)> … 총 1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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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1980년 ‘서울의 봄’은 시작되었지만…

박정희가 사망한 10·26사태는 역설적이게도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
즉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의 기대에 부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10·26사태에서 붕괴된 것은 유신체제의 권력구조 전체가 아니었다.
붕괴된 것은 고도로 집중화된 그 구조의 최상층부였을 뿐이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민주화의 기대 속에서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다. 비록 비상계엄이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은 학내 언론자유와 어용교수 퇴진, 족벌재단의 비리 척결 등 학원자율화운동 또는 학원민주화운동을 전개했고,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활발해 사북항쟁 등이 일어났다. 1980년 5월에 들어 민주화 요구의 초점은 분명해져, 계엄령을 즉각 해제할 것과 함께 민주화 일정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시위는 전국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특히 5월 15일 서울의 시위는 서울역에 1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군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10·26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신군부는 ‘서울의 봄’ 초기에 민간정부에 대한 쿠데타 의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충정훈련’ 등 시위 진압훈련을 해나가며 ‘K-공작계획’이라는 언론대책 공작을 통해 쿠데타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광주항쟁의 시작, ‘해방’ 그리고 유혈참사

다른 지역과 달리 광주는 신군부의 5·17군사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이를 초기에 분쇄하고자 3개 여단의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군부 세력의 과잉진압은 그 만행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항쟁으로
전화(轉化)시켰고, 마침내 계엄군의 시위 진압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17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나, 광주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5월 18일 아침, 광주 전남대 교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이루어지면서 광주 시위가 촉발되었다. 신군부는 18일 오후 광주 시위에 대해 초강경의 진압 의도로 7여단과 11여단을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계엄군의 시위 진압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차별적인 만행에 가까웠다. 이에 광주 시민들도 무장하게 되면서 광주에서의 시위는 ‘항쟁’으로 전화하게 된다.
수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항거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게 만들고, 마침내 광주를 ‘해방’시키기에 이르렀다. ‘해방’ 광주는 곧 시민 스스로에 의한 자치 질서를 창출해냈는데, 그것은 광주 시민에 대하여 ‘폭도’라고 매도하던 신군부의 주장을 무색케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철폐를 외치며 시작되어 10일 동안 전개된 광주민중항쟁은 ‘상무충정작전’이라 불리는 광주 진압작전으로 결국 계엄군의 유혈진압이라는 참혹한 결과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나중에 이루어진 공식 통계에 따르면, 광주항쟁은 사망자 154명, 행방불명자 74명 등을 포함하여 총 5,063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
광주항쟁을 진압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 장악을 위한 수순을 밟아나갔다.

되살아난 군사독재정권, 민주화운동의 시련과 내연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19년 뒤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17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다.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말 그대로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은
당국의 탄압을 받아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내연(內燃)하고 있었다.

신군부 세력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순으로 먼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고 정치와 사회 각 부분에서 숙정(肅正)과 정화(淨化) 조치들을 시행했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주요 정치인물과 노동계 인사가 공직 사퇴하거나 해직당하였으며, 주요 언론은 등록 취소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악을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불량배 검거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까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는 막대한 인권침해가 벌어졌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시켜 국회를 대신해 수많은 악법들을 양산해냈다.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정치인들의 발을 묶었으며, ‘언론기본법’으로 언론기관을 통합·흡수·조정했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박정희 정권에 비해 그 폭력성이 더 강화되고 있었다. 그 결과 고문은 박정희 시대에 비해 더욱 일상화되었고, 여기에 강제징집과 같은 조치들도 덧붙여졌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침체되었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광주의 경험을 거친 학생운동은 노동운동을 비롯한 전체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학생운동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는 노학연대 강화로 나타났다. 또한 반미운동의 격렬한 움직임이 나타나 1980년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5년 서울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이 일어났다. 1983년에는 청년활동가들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공개적인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3저 호황, 중산층 신화, 권력비리, 그리고 스포츠공화국

1980년대 후반은 “단군 이래 최고의 경제 호황”이라 일컬어진 ‘3저 호황’을 구가했고,
한국 국민의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긴 ‘중산층 신화’가 만들어졌다. 한편, 최고위 권력을
배경으로 각종 권력비리와 정경유착이 대규모로 자행되었다. 1980년대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한국 스포츠가 급격히 발전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어 한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경제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1980년대 초에 들어 심각한 위기상태를 맞았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화의 구조적 문제들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 중복투자를 조정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크게 호전되어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에 의한 이른바 ‘3저 호황’이 나타나 매년 10%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1980년대는 경제 호황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투기 열풍도 크게 일었다. 여기에는 재벌을 비롯한 사회의 기득권층이 앞장서고, 일반 서민들도 가세했다. 3저 호황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국민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겼는데, 이러한 ‘중산층 신화’의 형성에는 주식 및 부동산 투기 조장을 통해 중간층을 포섭하고자 했던 노태우 정권의 전략이 작용했다.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 지표로 내세우고 출범한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이 시기 대규모 권력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 명성그룹사건, 민정당 대표 정래혁 축재사건, 새마을운동 본부장 전경환의 비리 등이 있었다.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시 특혜를 대가로 재벌들로부터 거둬들인 비자금 규모는 9,500억 원에 달했다.
한편, 전두환 시기 ‘스포츠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스포츠가 적극 장려되었다.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유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도 출범되었다. 이는 군사쿠데타와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유혈진압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을 탈정치화시키고 스포츠 발전의 성과를 통해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의 대미, 6월민주항쟁! 군사정권의 종말

6월민주항쟁의 성공은 민주화 이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주화 이행의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국민 직선의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1987년의 민주화 이행은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한 민주정부의 수립에는 실패했다.

1983년 말 전두환 정권의 유화조치 이후 민주화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 그리고 국민 대중의 ‘최대 민주화연합’ 구축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났다.
6월항쟁을 촉발시킨 사건은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대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전두환 정권은 모든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는데, 이는 6월항쟁을 촉발시킨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통련을 비롯한 재야세력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정치권까지 그 포괄 범위가 확대된 호헌 철폐를 위한 범국민적 연합전선적 기구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했다. 국본은 전국에 걸친 동시다발적 시위를 계획하고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의 강령(대통령 직선제)을 내걸어 항쟁을 확산시켰다.
6월민주항쟁은 국본의 주도로 개최된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 즉 6·10국민대회로부터 시작되어 6·29선언이 발표된 6월 29일까지 20일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6월민주항쟁의 거대한 흐름에 전두환 정권과 민정당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마침내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이후 1980년 신군부 세력의 5·17군사쿠데타를 통해 그 생존이 연장된 군부독재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국민 직선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가 분열하고 이의 영향으로 재야세력도 분열했으며, 지역주의 정치까지 나타났다. 결국 민주화운동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했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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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책들은 역사의 길이길이 남아야 한다.
금태양 2011-05-17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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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이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어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까? 2014-12-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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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시대가 역사책으로 나오다니 세월이 살 같다. 70년대생은 다 읽었으면!
사샤샥 2011-05-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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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역사의 전개과정을 인과적으로 구조적으로 재구성하면서도 사실 중심으로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이 시기 역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다솔 2013-01-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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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에게 분노하라!



어렸을 때였다. 외갓집에 가면 또래가 아무도 없었다. 나와 동생은 늘 심심했다. 당시 아직 미혼이었던 외삼촌들은 어린 조카들과 놀아주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 작은 방에서 외삼촌들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기를 즐겼다. 내가 자주 읽었던 책은 아주 두꺼운 <세계인물사전>과 <한국인물사전>이었다. 거기엔 소위 위인들이라고 불리는 아주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나폴레옹’이라던가 ‘링컨’이라던가 ‘아인슈타인’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비교적 덜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이 적었다. 방학이 되면 며칠씩 머물곤 했던 외갓집에서 나는 늘 이 두꺼운 책들을 뒤적이며, 좋아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외우고, 상상하곤 했다.

어린 나에게 역사는 그렇게 위인들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학교에 다니면서 조금씩 역사를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도 역시 왕이나 장군 같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위주로 역사를 가르쳤다. 나는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역사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소위 ‘운동권’ 선배들에게 ‘학습’을 받기 시작하면서였다. 내가 배워온 역사라는 게 사실은 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중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이런 건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닐 텐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 역사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과거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에서 방조제 건설현장에서 용역깡패들과 맞서면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해 경찰 폭력에 맞서면서, 한미FTA 반대를 위해 전경들과 맞서면서 내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다. 이 나라는 과거 역사에서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문장이 있다. 한국근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나온 말이다.

“1945년 9월 9일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로써 38선 이남에선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8월 15일을 해방의 날로, 광복절로 기억하고, 부르지만, 사실이 아니다. 단지 지배자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날 이후로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이 아니었다. 친일파들이 친미주의자들이 되어, 또다시 이 땅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지배했다. 그들은 독재자들이었으며, 학살자들이었다.

미군정은 이승만을, 이승만은 박정희를, 박정희는 전두환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이땅의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2011년 지금을 살아가는 민중들은 여전히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제시대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다.

이 책은 10.26 사태로 인해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주도권을 잡은 시기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8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서처럼 가장 주요하게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라는 기획의도처럼 그리 어렵지 않다. 제목이 딱딱하다고 해서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편협한 시각이 아닌, 제대로 된 시각으로 80년대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펼쳐들어 볼만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때는 5월이었다. 광주 항쟁 31주년이 지났을 때였다. 배우 김여진이 전두환을 학살자라고 부른 때였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해질녘 망월동 묘역의 스산한 풍경과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늘 골프를 치러 다니는 전두환. 그리고 막대한 재산으로 거대한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는 전재국의 시공사가 생각난다. 그리고 최근에는 강풀의 만화 26년이 생각난다. 앞으로 언제까지 학살자와 같은 하늘아래 살아가야할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그 개기름 흐르는 얼굴로 골프나 치러 다니는 꼴을 봐야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고 싶다. 죄 없는 이들을 학살한 대가로 권력과 부를 가진 그들이 더 이상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는 날이. 더 이상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하는 날이. 더 이상 더러운 돈으로 만들어지는 시공사의 책들이 판매되지 않아서 전재국이 망하는 날이.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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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6-28 공감(17)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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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접근




역사비평이 기획한 역사교양서 〈20세기 한국사〉시리즈 중 네 번째로 한국 현대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전념해온 정해구 선생 작 《전두환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발간되었다. 〈20세기 한국사〉시리즈는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을 식민지,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로 특징짓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십분 반영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서 서술을 목표로 기획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이 책은 민주화, 그 가운데서도 80년대의 그것에 관한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독자의 한 명으로 이 책의 출간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기만 한 ‘1980년대’가 본격적인 역사서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자못 놀랍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본격화한 한국현대사 연구는 그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쳐 박정희 정부 시기까지 연구영역을 넓혀왔지만 1980년대 연구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1980년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한국현대사 연구에 등불을 비춘 1980년대가 시간이 지나 어느덧 그 자체 역사적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 외에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이 시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빠르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출간이 다소 늦은 점 또한 없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86세대라 불렀던(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30대가 아닌) 40대와 그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결코 과거가 아닌 ‘젊었던 시절의 한 때’이다. 그보다 어렸을지언정 1980년대의 자기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30대와 일부 20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기억 속의 1980년대는 그래서 더 각각의 기억에 의존할 뿐 보다 엄밀한 공공의 장에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조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한 이 책의 출간이 늦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의 가장 큰 의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의 성취일 것이다. 이 책 역시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전개과정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대체적인 흐름은 10.26 이후 서울의 봄과 그 기간 신군부의 쿠데타 내지 집권 준비, 5.18 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정권의 성립 이후 민주화운동과 정권의 대응, 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 이행 및 그 성과와 한계, 1980년대 남북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책이 꼭 1980년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관점은 해방 후 민주화운동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1980년대를 자리매김하려는데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이 이를 말해준다. 즉 프롤로그는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사를 간략하게 서술했으며 에필로그는 1990년대 초 직면한 정치사회경제의 실상을 언급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책 곳곳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전두환 집권 후 노동운동을 설명하면서 1970년대의 그것과 비교하는 서술방식이 그러하다(113쪽).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집중하면서도 가능한 장기적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 서술은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이다.



6월 민주항쟁이 한국현대 민주주의사의 중요한 분기점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1960년 4.19혁명과 1980년 5.18 광주민중혁명을 포함해 해방 후 지난한 과정을 거친 반독재 투쟁은 6월 민주항쟁에서 길었던 군부 집권의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면 이후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내면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재도 이어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독자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위상과 내용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데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실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짧게는 1980년 이후, 길게는 해방 후 민주화운동 흐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역으로 6월 항쟁이 있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어떤 운동의 과정을 겪었는가? 또한 항쟁을 통한 실체적 성과를 얻었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와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원했던 민주주의는 같은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가? 이런 물음은 민주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차분히 생각해볼 문제이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가 입에 오르내리는 요즈음 오히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앞서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고 했지만 사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아마도 그것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의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87년 민주화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피상적인 대상이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역사가 이루어온 민주주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각자의 고민을 곱씹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 그러한 고민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숙지와 엄정한 비판적 잣대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에 관하여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교양서로 기본이 되는 책이란 점이다.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의 역할과 그의 의중은 무엇이었는지, 광주의 경험, 광주에 대한 속죄감 등은 이후 민주화 과정에 어떻게 내재되었고 발현양상은 어떠했는지 등 책을 읽고 갖가지 의문점이 생긴다면 계속해서 관련 연구서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마이리뷰에 저장해놓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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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fjj 2011-05-25 공감(8)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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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 운동



----역사의 반복에 대하여




왜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들 말들을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정치를 보면서 잘 느꼈다. 전두환이 쫓겨나고서 진정한 민주주의로서의 처음 투표가 열렸는데, 당시 여당에서는 노태우를 일찌감치 후보로 내세웠고, 야당에서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 당시 민중의 여론을 보면 당연히 야당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고, 문제는 김영삼과 김대중 중에 누가 후보로 나서는지가 최대 화두였다. 그런데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던 두 후보의 거리는 끝내 가장 멀어져 개별 출마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당연히 야당의 표는 분산이 되고 최대 수혜자는 노태우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5공화국의 전 실세가 민주주의로 제대로 시행한 투표에서 대통령이 되는 불상사가 생겨난 것이다. 결과를 보더라도 김영삼, 김대중의 표를 합치면 50 퍼센트가 훌쩍 넘어 30퍼센트의 노태우 후보를 간단히 이겼을 텐데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덕분에 5공화국의 범죄자들은 겉으로는 혹독하게 처벌받는 듯 했으나 여전히 전두환의 비자금 추징금은 어마어마하게 남아있듯이 올바름이 바로 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총선을 내년에 앞두고 대선을 내후년에 앞둔 상황에서 야당의 가장 큰 두 거물, 문재인과 안철수가 결국은 갈라섰다. 사실 저번 대선에서 두 명이 의견을 합치어 단독 후보로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 패했지만 50프로에 육박하는 표를 얻는 힘을 보여주었다. 이번 대선에서 정부의 여러 과오들, 예를 들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나 위안부 문제 졸속 처리 등을 가지고 공격이 아닌 사실만 나열해도 승리할 것만 같은데 야당은 제대로 된 의견도 내지 못하고 서로 싸움이나 하고 있다. 또 여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보면…큰일이다. 과거에 이런 형식으로 갈라지다가 대선 직전에 극적으로 단독 후보로 나와 극적 효과로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란 확신은 없다. 분명히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앞서 말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분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만큼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한국 역사에 대해 무지한 나는 신문을 읽으며 ‘이런 사건이, 이런 추태가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근데 이 책과 같은 근현대사 책을 보니 ‘이런 사건이, 이런 추태가 이미 우리 나라에서 일어났구나’라고 느낀다.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흐름을 잡아야 다음 흐름을 알 수 있고, 한 발짝 앞서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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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헤드 2016-01-0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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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350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3.

인문책시렁 350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5.16.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을 새삼스레 읽습니다. 2024년에 〈건국전쟁〉이란 이름을 붙인 보임꽃이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듯이 나오더군요. 이런 거짓부렁은 아무런 삶그림(다큐)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거짓부렁에 눈속임에 길들이기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24년에 ‘망나니 이승만’을 ‘나라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온다면, 2054년 무렵에는 ‘얼간이 전두환’도 이와 비슷하게 기리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뜨려 하지 않으면 거짓부렁에 놀아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감은 채 힘·돈·이름에 사로잡혀서 멱살질만 해댄다면, 앞으로 아이들은 우리 발자취를 잊을 뿐 아니라, 우리 앞길마저 잃어버릴 만합니다.




망나니나 얼간이가 잘못했기에 그들을 돌로 쳐죽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정주나 고은 같은 얼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들을 바위로 쳐죽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들 민낯을 낱낱이 밝혀서 어떤 허물이었는지 남기고서, 이제부터는 망나니가 힘을 부리지 않도록, 오늘부터는 얼간이가 이름을 날리지 않도록, 앞으로는 얼치기가 돈을 거머쥐지 않도록, 나라를 아름다이 가꿀 노릇입니다.




그런데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도 썩 잘 여민 꾸러미는 아닙니다. 이미 나온 다른 꾸러미를 간추렸을 뿐입니다. 이 꾸러미를 쓴 분도, 다른 꾸러미를 쓴 분도, 다들 입으로는 들불(민주화운동·민주화항쟁)이란 이름을 외지만, 막상 들사람 눈높이로 글을 쓰거나 여미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 어느 곳에도 들사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없습니다. 온통 벼슬판(정치)과 물결판(운동권)에서 맴돌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이만큼 날개를 펴고 숨통을 튼 바탕은 몇몇 ‘길잡이(운동권 인사)’ 때문이 아닙니다. 이름을 안 남기고서 이 땅을 어질게 일군 숱한 순이돌이가 이 땅과 나라를 이끌었어요. 서울에서 몇 사람이 모이고, 부산에서 어느 길을 차지하고,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고 적바림하는 글은 온통 ‘위’일 뿐, ‘밑(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앞으로 누가 이런 책을 읽어 줄까요? 게다가 글이 매우 어렵습니다. 무늬는 한글이지만 하나도 우리말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일제찌꺼기 말씨를 붙들고서 이렇게 딱딱하고 어설피 글을 쓸 셈인지 글바치 스스로 뉘우칠 일입니다.




중국을 섬기던 무리는 우리말을 안 쓰고 중국말과 한문을 쓰면서 우쭐거렸습니다. 일본수렁일 적에도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을 쓰면서 거드럭거렸습니다. 일본총칼이 물러난 뒤에도 내도록 중국말에 일본말에 영어를 마구 뒤섞으면서 막상 우리말을 쓴 적조차 없는 글바치요 길잡이(운동권)입니다. 벼슬아치도 엉터리였지만, 벼슬아치를 나무라는 쪽도 참 얄딱구리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파묘〉 같은 보임꽃에서 헤맵니다. 우리는 여태 〈웡카〉 같은 보임꽃은 찍을 줄도 엄두도 생각도 못 합니다. 조금이라도 날개를 펼 수 있는 나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새롭게 눈뜨고 마음을 틔우면서 아름나라로 나아갈 길을 즐거우면서 사랑스레 들려주는 글과 말과 이야기와 살림을 펴서 씨앗으로 심어야 할 테지요. 엉터리에 망나니에 얼치기가 왜 판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낡은 틀에 새술을 들이부은들 고린내가 날 뿐이에요. 새술은 새자루에 담아야지요. 낡은말을 버리고, 낡은틀을 버리고, 낡은길도 버리고, 낡은나라와 낡은 벼슬아치도 몽땅 버려야, 이제부터 아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최종적으로 붕괴시킨 것은 민주당이 아니었다.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한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자행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항의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마침내 그 항의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맞서 국민적인 항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16쪽)




광주의 ‘해방’ 직후인 22일 오전의 시점에서 ‘해방’ 광주를 이끌 그 어떤 항쟁 지도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광주의 ‘해방’은 시민들의 자연발생적인 항쟁의 결과였을 뿐, 어느 누구의 계획적인 지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6쪽)




항쟁이 지방으로 확산되고 경찰력이 무력화되기 시작한 18일을 전후하여 전두환 정권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제 그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경찰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항쟁의 저지를 위해 군 투입의 비상조치를 감행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145쪽)




독재세력의 후신은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으로 철저한 독재청산이 어려웠을지라도, 또한 대선 패배로 인해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좌절감에 빠졌을지라도, 이제 과거 권위주의 방식의 지배와 통치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179쪽)




정의사회 구현을 내건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 당시 밝혀진 이 같은 권력비리들은 전체 비리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222쪽)




+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시민혁명일 것이다

→ 우리 눈에는 무엇보다도 들너울이 보인다

→ 우리는 먼저 살림너울을 본다

12쪽




일제 식민치하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의 꿈에 고무되었다

→ 일본수렁에서 풀린 이 땅은 새나라를 세우는 꿈에 부풀었다

→ 일본굴레를 벗은 이 나라는 한나라를 짓는 꿈에 기뻤다

→ 일본사슬틀 털어낸 이곳은 한누리를 닦는 꿈에 들떴다

→ 일본불굿에서 나래펴는 우리는 혼누리를 일구는 꿈에 반가웠다

13쪽




한국전쟁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했고

→ 한겨레싸움으로 나라틀은 두레길을 더욱 미워했고

→ 한겨레싸움 뒤로 나라는 거꿀두레로 더욱 치달았고

15쪽




사사오입개헌으로 장기집권을 모색하면서 점차 동요했다

→ 가운올림 뒤집기로 오래임금을 꾀하면서 차츰 흔들렸다

→ 도막올림 판갈이로 오래끌기를 노리면서 이내 기울었다

15쪽




박정희 정권은 이에 일괄적으로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 박정희 나라는 통째로 재갈을 물렸다

→ 박정희는 모조리 재갈을 물렸다

19쪽




부산에서 발생한 시위는 주변의 마산지역까지 확산되었지만

→ 부산에서 일어난 물결은 둘레 마산까지 퍼졌지만

→ 부산에서 터진 들너울은 둘레 마산까지 번졌지만

25쪽




이를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의 난동사태라 주장했다

→ 이를 몇몇 아이들과 빨강이가 어지럽힌다고 떠들었다

→ 이를 두어 아이들과 사납이가 들쑤신다고 떠벌였다

25쪽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항하여

→ 끔찍한 짓에 맞서

→ 몹쓸짓에 맞버텨

→ 사납짓을 맞받아

67쪽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 전두환을 꼭두로 올리려는 물결에서 비롯하였다

→ 전두환을 높이 띄우려는 바람으로 열었다

→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모시려는 구름에서 일었다

→ 전두환을 나라님으로 높이려고 너울대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꼭두빛으로 세우려고 춤추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나라지기로 기리려고 하면서부터이다

87쪽




민주화 항쟁이란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이 더 이상 억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련의 계기를 통해 그 압력이 폭발함으로써 야기되는 대규모 대중 시위라 할 수 있다

→ 들꽃너울이란 힘으로 억누른 틀에 맞선 사람들이 더는 짓밟히지 않으려고 한꺼번에 일어나는 너른바다라 할 수 있다

→ 촛불바다란 모질게 짓이기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더는 밟히지 않으려고 다함께 일으키는 들불이라 할 수 있다

13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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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4-03-0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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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

필요때문에 발췌독을 한 책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시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6.29 선언,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냉전의 붕괴에 따른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89년 여소야대에 따른 5공청산청문회와 전두환의 백담사행 그리고 1990년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구 사회주의 동유럽권 그리고 소련과의 수교.

냉전이 붕괴하고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언’이 주장되던 격변의 시기입니다.

이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와 이에 대항하는 민주화세력간의 대결이 주요 주제이며 1987년 대통령직선 민주주의를 민주화운동세력이 쟁취를 했으나 김대중 김영삼 양김씨의 분열로 신군부세력인 노태우의 민정당이 정권을 잡아서 독재세력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책에서 언급한 민정당 세력은 신군부 독대세력이지만 이후 ‘보수’세력으로 옷을 갈아입고 보수행세를 하게 됩니다.

이때 하지 못한 독재세력 청산은 시간이 흘러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새누리당- 국민의힘( 하도 당명이 바뀌어 순서는 정확치 않습니다)으로 바뀌어 왔고 독재의 유전자는 그대로 보전되어 왔습니다.

이 당시 만주화운동의 학생들이었던 이들은 이후 386/ 586으로 불리면서 근 40여년 정치판을 주무르는 실세가 되고 현 정부의 중심이 됩니다.

신군부 독재세력인 민정당의 후신은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친위쿠데타를 옹호하고 동조하며 그들의 유전자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1980년대부터 최근의 현대사를 보면 한국에서 쿠데타가 얼마나 반번한지, 민주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살면서 쿠데타를 두번이나 겪다니…

이 책은 당시 신군부에 저항했던 두 거물 야당 정치인 중 김영삼의 민주당이 1991년 두 독재세력인 민정당과 김종필의 공화당과 행한 3당합당을 ‘배신’이라고 표현했는데 합당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개인적’야심때문에 독재세력과 손을 잡은것이니 정확한 평가라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에 신군부의 핵심이던 하나회를 숙청했고, 김영삼 이후 집권한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세력에 굴복해 한국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이중구조’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군인들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할 때 대신 검사들이 무소불위의 수사권을 휘둘러 제멋대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한국의 고위관료들과 검찰이 여전히 일본극우의 영향하에 있는 독재성향이라는 사실이 이번 12.3 내란에서 드러난 겁니다.

이번에 딴세상에 사는 파워엘리트의 세계를 간접경험한 겁니다.

40여년전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당시와 2025년 현재 상황이 너무 닮아 기시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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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25-08-3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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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진실을 알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민주화운동사




이 책의 기획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일반인을 위한 한국사 서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했을 때, 글쓰기와 내용이 성공적으로 보인다. 평이한 문체는 누구나 알기 쉽게 1980년대 정치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또 각 장이 30쪽 정도로 내용이 고르게 분배되어 지루하지 않으면서 80년대의 각 국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책 전반으로 특정 세력의 등장, 사건의 발단, 민주화운동의 흐름 등에 대한 배경과 원인, 영향과 결과 등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는 점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향한 학생과 정치인, 재야세력, 노동자, 그리고 일반대중의 간단없는 투쟁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달성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80년대 당시 민주화운동의 한계점들을 빠지지 않고 지적하고 있는 점은 이후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엿보인다.


이처럼 이 책은 80년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이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내용상의 문제이다. 저자가 밝힌대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특징이 ‘운동을 통한 민주주의’였던 만큼 이 책에서도 독재와 저항의 틀이 선명하다. 이는 80년대 민주화 국면을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관점이 될 텐데, 그럼에도 다변화한 한국사회를 고려하는 서술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비록 저자는 학생/정치/재야/종교/노동자 등 민주화운동 세력을 구별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차이점은 잘 드러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중산층’의 등장인데, 중산층 신화, 중산층의 보수화에 대해서는 소략한 느낌이다.



두 번째로 구성상의 아쉬움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 이전 역사문제연구소 20세기 한국사 시리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저자의 말>과 같은 꼭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 성격으로 책에서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지만, 각기 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 90년대 이후의 전망에 중점을 두어 내용에 치중하고 있다. 대중서라는 점을 감안해도 저자 나름의 시각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한편 구성상 다른 장에서 서술된 내용의 일부가 뒤에서 다시 서술되는 경우가 발견되는 점(51쪽과 52쪽, 188쪽과 226쪽)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또 ‘옥에 티’로 오류 두 부분이 보인다. 48쪽 <표 1-2> 출전 부분의 정상용 외 저서는 1955년이 아니라 1990년이다. 227쪽 프로야구 개막 시구 사진 설명 부분에서 개막전 경기는 ‘잠실야구장’이 아니라 ‘동대문운동장’이다. 본문에는 맞게 설명되었는데, 사진 부분 설명이 잘못되었다.



80년대의 진실을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제언을 하자면, ‘왜 한국의 정당정치는 저 모양인가, 시민사회운동은 (비판이 중요하긴 하지만) 왜 비판만 하는가’ 하는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긁어주고 물음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서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모든 걸 얘기해보라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이점은 저자뿐만 아니라 한국사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고민해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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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wmaha 2011-06-0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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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를 역사적으로 상대화하기 시작한다는 것

올해는 ‘2011년’이다.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전두환 정권을 ‘역사학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그리고 이 책이 제목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전두환은 80년대 한국정부의 대통령이었다. 우선은 내용의 특징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 때부터 가늠해도 갓 30년을 넘어서는 오늘 날, 이 시대를 역사로서 다룬다는 것 자체가 한국현대사의 의미 있는 정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이 ‘좋은 책’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이 책은 정말 유용(?)하다. 뭐, 어줍지 않게 역사학을 공부한다고 “설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특정 전공을 정한 상황에서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역사책에 등장하고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그것이 어떤 내러티브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연구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등등을 직접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 같은 ‘시민’을 위해 정말 안성맞춤인 책이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줄거리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독자마다 해석은 다르고 뇌리에 남는 장면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 중에 ‘민주화의 한국적 맥락’을 분석하면서 지역주의가 발현되는 장면 분석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또한 민중운동이 시대를 거쳐 사안별 시위 -> 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 ->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저항 식으로 ‘진화’하였다는 분석도 탁월하다고 본다. 다만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보다 수많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어떻게 독해했으며,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떤 시대가 역사학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할 때”의, 뭐랄까, 구속이나 규정력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긴장감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개념이 적확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책이 서술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개념은 ‘국가’와 ‘사회’이다. 이와 맞물려 서술 구도 역시 ‘억압하는 국가’와 ‘대항하는 사회’로 설정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특징들은 이 책으로 하여금 역사학에서 부르는 ‘민중운동사’ 카테고리 속에 포함되게 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저자도 분명히 의도하고 있는 바일 텐데 촘촘히 살펴보면 차이는 존재하지만,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을 개념상 대략 등치시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다. 이 책의 서술에서 그 주인공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상황이라기보다는 ‘민중’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변혁을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다. 게다가 이 책의 행간에는 저자가 현 정권에 하고 싶은 말들처럼 여겨지는 해석들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항쟁에 대한 설명에서 ‘주도세력이 없었다’거나 ‘중간층도 지지했다’ 등등의 해석은 마치 작년 ‘촛불시위’를 해석하는 진보세력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큰 틀은 이렇다.


‘민중운동사’나 ‘민중사’로서 이 책을 분류할 수 있다면 약간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최근 식민지 시기의 ‘민중’에 대한 해석으로서 점점 주도권을 잡아나가고 있는 방법론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방법론이란 결국 ‘민중’의 개념을 다시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이들에게 드리워진 마르크스주의의 그림자를 희미하게 하고(완전히 걷어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활이나 일상 등을 통해 당시 사회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나도 이러한 방법론이 나온 문제의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즉 당시의 ‘민중’에게 ‘변혁주체’라는 틀을 굳이 씌우지 않아도 당시 사회상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은 오늘 날의 현실을 사는 ‘민중’의 모습으로부터 야기된 면이 있다. 즉 이러한 ‘민중사’의 방법론은 역사학의 실천성이나 현재성을 현실에 맞게 성찰하자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이 책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나오지 않는가? 현재를 기점으로 먼 시기를 연구하는 방법론보다 가까운 시기를 연구하는 방법론이 ‘후퇴’한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사료’라는 측면에서도 80년대는 식민지 시기나 다른 시대보다 양적으로 보다 많은 사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어떤 시대를 비로소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기 시작할 때에 항상 ‘운동사적 관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일까? 일제시대사가 현대사로 불렸던 과거에도 연구의 시작은 마찬가지였다. 뭐,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맥락이 있었다. 하지만 연구대상이 되는 시기가 점점 올라오면서도 그 출발이 지녔던 특징은 대략 같았던 것 같다. ‘민중사’가 아니라 정치사나 경제사도 마찬가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질문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 책의 주제가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에 민중운동사의 전통적인 방법론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또한 다른 무대에서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관점이 이미 작동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 연구자가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문제의식과 자신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맞는 연구를 각자가 진행하는 가운데 학문은 발전해 왔다고 할 수도 있다. 서술의 흐름상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사회변혁의 현재성”을 ‘대중’이 다시 고찰하게 한다는 면에서 이 책에 대해 꽤 감동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감동’과는 다른 결이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스카우트》라는 영화가 있다. 본 지 꽤 되어 정확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대학교 야구부의 어떤 스카우터가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루는 영화다. 시대적 배경은 전두환 정권기이다. 주인공의 연인은 당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 운동가였다. 시위가 일상이었던 그 시절 주인공은 야구부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시위학생들을 진압하게 되는데, 이를 목격하게 된 그 연인은 이별을 선언한다. 주인공은 이별의 이유를 알지 못하며 지내다가 광주로 내려갔을 때 그 연인과 재회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나중에 이별의 이유를 알게 된 주인공은 항쟁에 참여하게 되고 선동열 스카우트 작전은 그가 경찰에 연행되면서 실패하게 된다.


내가 굳이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영화를 막 보았을 때 주인공이 운동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을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두환에 대해 “군대에 있을 때 같이 축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참 남자답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등, 당시 사회의 민주화 열풍을 전혀 내면화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연인과의 재회를 통해 이별의 이유를 알게 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이것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픽션인 것은 확실하지만, 주인공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일상’이 ‘저항’으로 전환되는 다양한 회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민주화운동의 내부에는 사회변혁을 위한 의지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80년대 역사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책은 이런 흐름을 포착하고자 노력하는 책은 아니다.


어떤 시대를 역사학적으로 상대화시키는 작업은 언제나 그렇듯이 녹록치 않다. 더구나 ‘처음(학술서로서 이 책이 처음은 아니겠지만)’은 더욱 힘들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함께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연구자가 ‘의무적’으로 그 시대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이 내포하는 사회변혁에 대한 지향성을 충실히 보여주고, 그 지향성의 한계와 ‘현재성’을 성찰하게 하는 좋은 책이면서, 동시에 어떤 시대를 역사학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할 때 놓이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가 아직은 해결되기 요원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그 공부길을 시작한 선배 학자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수도 있고, 혹은 ‘저주’일 수도 있다. 책 참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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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getf 2011-06-0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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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운동을 알고자 하는 청소년에게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 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서평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일까. 단순히 책을 소개하거나 비평하는 데에 그치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해보자면, 서평은 이 책을 사서 읽을 만한가를 언급해줘야 한다. 돈 값을 하는 책인가, 값어치에 비해 훨씬 가치가 있는 책인가, 영 형편없는 책인가를 잠재적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쓰기란 목적 하에 “필자 자신의 관점보다는 학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이 책의 서술목적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시기의 민주화 이행이 어떻게 전개되고 실패했는지, 그 과정에서 광주민중항쟁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압되었는지, 그리고 5.17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이 이후 체제 정비를 어떻게 해나갔는지 살펴보고자” 시도하였다. 더하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6월 민주항쟁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6월항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한 민주정부 수립이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살피려 하였다.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먹힐만한’ 글쓰기란 뚜렷한 서사가 있는 글쓰기, 역사전개 특유의 복잡성을 최대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글쓰기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풍부한 배경설명과 전개과정이 단순하게 병렬, 나열되기보다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구조화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자 하는 청소년, 이미 80년대 역사에 대해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갖춘 시민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듯하다. 여기서는 일단 역사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청소년의 시각에서만 살펴보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용어들이 더러 보인다. ‘유화조치’, ‘공민권’, ‘NL’, ‘PD’ 같은 용어는 풀어쓰거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당대 운동세력, 정치세력이 각기 다른 입장에 따라 나뉘는 것에 대해서도 보다 쉽게 설명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문장을 한 번 보자.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의 삼민 노선에 머물러 있던 학생운동은 1986년 상반기에 들어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 계열과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 계열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126쪽)

이 문장을 과연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들에 대한 이론적 기반도 각각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과 NDR(민족민주혁명)에서 구했다고 설명하는 데에 그쳐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문적으로 엄밀하게 설명하는 수준에까지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쉽게 배경설명을 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부쩍 강조되는 논리들을 염두에 두어 서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법치’ 나 ‘준법’ 등이 요새 두드러지는데 그 이면에는 정부의 정책이나 지향에 저항하거나 이견을 표출하는 세력들에 대한 정권 차원의 견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맥락을 잘라내고 ‘법치’나 ‘준법’ 그 자체로만 보게 되면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분명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민간교류를 대해 청소년들은 단순히 불법적 행동이냐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냐는 가치판단의 문제와 마주하지 않을까. 역사적 차원에서 특정한 사건을 평가하는 것이 가치판단에 대한 고민의 결과임을 감안한다면, 저자가 생각했던 고민의 흐름을 풀어서 설명해보는 것 자체가 훌륭한 역사서술일 수 있다.


조금 비판이 심했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역사서술이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다. 청소년과 시민이라는 독자설정은 한편으로 분명해 보이지만, 굉장히 그 층위가 다양한 까닭에 필자 역시 서술에 많은 고민을 한 흔적도 발견된다. 어쨌든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청소년에게 그리고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성인 시민들에 한해서 이 책은 유용하다. 단편적으로,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한국 사회의 모습을 구조적으로 잘 엮어 주고 있기에 놓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한 보충도 가능하고,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기에도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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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or 2011-06-0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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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위대한 문화와 문명 그리고 거기에 드러나는 그 유산들은 엄청난 미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과 동시에 위압으로 인간들을 매료시킨다. 그것은 지금 인간에게 무리인 것이고, 그 원리나 속성도 미스터리로 많이 남아있다. 가령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타지마할,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과 진시황제의 무덤들 등을 말이다.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이 모든 것은 아름답고 웅장하고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준다. 이것들이 일어난 것은 당시 신화적인 권력을 보여준다. 그 신화란 대다수의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들의 억압에서 나온 신화다. 따라서 우리 인류가 바로 이 순간까지 즐기고 있는 위대한 문화라는 것은 당시 살아가던 자들의 피, 땀, 눈물로 범벅된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고,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다는 증거다. 위대한 것들이란 바로 그런 것에서 나와도 틀리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런 착취와 폭력으로 이룩한 것들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그것을 대신 책임을 지는 것만 남았다. 단지 그것은 착취, 폭력, 억압이 동원되지 않음에 유형적 가치보다는 차라리 무형적 가치에 어울릴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인종차별주의를 철폐하려던 링컨 대통령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어째든 그런 신화란 우리도 없지 않다. 가령 우리가 찾아가는 위대한 유산을 보면 경복궁, 천마총 등과 같은 문화재를 보면 다 당시 백성들의 피다. 그런 문제를 과거의 지배계층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조선후기 정조가 정약용에게 수원화성을 건축하기 위해 기중기를 제작하여 신축한 점과 그 예산을 모두 개인 자산으로 한 것으로 보아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분명 위대한 문화와 그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건축물 같은 존재들은 분명 백성들에게 힘겨운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신화적인 억압과 착취를 그렇게까지 사용하지 않겠으나, 단지 그것이 상징화된 건축물에서 다른 방도로 옮긴다. 단순히 왕권과 귀족들의 상징보다는 그 상징을 그 사회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신화가 발생된다. 문제는 과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지금이야 좋을지도 모르나, 그 당시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문제였다.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순간이니 얼마나 심각했을 것인가?







지나간 과거라고 하여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과거로 통해 우리가 오늘날의 현실을 이래저래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지금의 새로운 신화가 먼 미래에선 하나의 문화가 될지? 그리고 그 신화의 공간에서 언제나 희생제의는 필요하다. 한국의 전통적인 신화에서 건국신화와 무속신화로 분리되나, 적어도 건국신화에서는 위기와 시련이 있고, 무속신화에서는 피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신화는 멈출 수 없는 영원한 기계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사라지지 않은 이상 신화란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경제화 성장이란 신화, 특히 한강의 기적 뒤에는 어떤 신화가 숨어 있을까?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말 신화와 가까운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에서 식민지화 된 망국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동족상잔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어차피 소비에트연방이 사회주의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독재적 전체주의를 내포한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이란 큰 전쟁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분노와 냉소, 절망과 고뇌만을 낳았다.







이런 국가에서 세계 경제대국은 엄청난 발전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신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예전에 소비에트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이 1930년대부터 경제대개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굴라크라는 농민의 수탈과 숙청, 자국의 노동자들의 강제적인 억압과 폭력에서 가능했다. 특히 1930년대 후반의 대살육은 한낮의 어둠이란 소설까지 만들게 하였다. 소비에트연방은 그 덕분에 미국과 유럽에 위협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 것이다. 대부분 성장을 이룩한 곳에서 특징은 과도한 착취, 폭력, 억압이 숨어있다. 그리고 희생 뒤에는 엄청난 발전이 따르고, 거기에 따른 이득을 보는 자가 있었다. 이런 경향은 어느 특정 역사만 아니라 대부분 그런 과도기 부분을 거쳤다. 따라서 어느 국가만을 지정하는 것이 모순이다. 모든 역사의 문명 속에는 착취, 억압, 폭력이 존재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가 가지기 위해서 누군가 포기해야 한다.







그러면 그 포기해야할 사람들이 지금 우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 뒤에는 항상 이런 문제들이 그냥 외면한 채 지나왔다.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희생은 따른다. 그러면 그 희생의 존재는 누가 지어 가야할 문제인가?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그런 문제를 차례대로 보여준다. 과연 민주자유공화국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있는가? 아니면 자본의 자유만을 위한 곳인가? 분명 인권에서 자본의 자유는 자유의 1가지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권도 자본의 자유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독재라는 것은 그렇게 무섭다는 점이다. 무엇인가의 큰 접점이 보이면 그 다른 가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가주의적인 전체주의는 파시즘이란 공포의 정치가 시작된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착취와 증오가 하나의 사회적 미덕으로 자리 잡히면 파시스트가 결국 왕이 되고 만다. 그런 세계에서는 신화란 그저 성공을 위한 계단에 불과하다. 그 당시의 계단을 밟고 우리는 지금 서 있고, 앞으로 가려면 다른 사람을 계단으로 만들어야 하는 점에서 그 계단의 층간 기둥과 지지대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그 모든 것은 약자의 몫이다. 물론 그런 과도기의 일정부분은 안전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일을 다시 원하고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경악할 노릇이다. 타인의 죽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419혁명 때도 부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에 눈이 박힌 채 죽은 학생과 서울에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이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는 그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고통이 따른 것이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 역시 신화인 셈이다. 단지 전자는 일부 특권층을 후자는 보편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적어도 헌법이나 윤리가치를 보면 후자가 맞으나 현실은 전자로 가려고 했다. 특권층에게 다시 자신에게 특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가 있었고, 그런 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재창출하려고 했다. 국민세금을 착취하고, 금융을 조작하고, 게다가 사회 불공평을 하나의 자유주의로 보려고 했다. 적어도 지상자유주의라면 상대방이 무얼 하든지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을 이상 참견할 권리가 없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정치적 자유주의의 추구는 권력에 대항되는 반역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스페인에서 프랑코라는 잔인한 독재자가 있었다. 20세기 중후반인 1975년까지 스페인을 공포를 준 그가 사실 스페인 봉건사회의 부산물이었다. 사관학교의 교장인 그는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 군사쿠데타 주모자이다. 그는 내전의 승리 권력을 잡았고, 그 와중에 막대한 살인과 폭력을 휘둘렸다. 그에게 대항하던 세력이 사회주의자이던, 자유주의자이든, 무정부주의자이든 적어도 과거의 독재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한 세력들에겐 잔혹한 총과 칼을 겨누었다. 천재 프랑스 화가 피카소가 왜 게로니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는가?







한국과 세계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정치라는 것은 상황의 극적인 부분에서 그 이름을 새긴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숨겨진 이면의 역사가 존재한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화, 민주화란 것은 그냥 그대로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뒤에는 각종 폭력과 투쟁의 대립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피를 흘린 주체는 언제나 약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무서운 역사의 주사위는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이다. 당시 그것이 최선이라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최악의 수단이라고 하면 일단 그 이야기는 듣겠다. 그런데 현재까지 왜 우리는 또 막다른 가로에서 더 크고 무서운 위기를 맞이할까? 그때 말하던 것은 전부 허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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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2-08-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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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보기 전에 읽어두면 좋을 책들



영화 <1987>이 화제다. <신과 함께>의 독주 속에 개봉했음에도, 20여일만에 약 500만 관객을 모으며 분전 중이다.<1987>이 이처럼 흥행에 성공한 데에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한 몫했지만 촛불혁명 이후 각성된 시민의식도 영향을 미첬다. 2017년 초 박근혜가 탄핵되기 까지 시민들은 30년 전 1987년 6월의 열사들처럼 저항했고 승리했다(물론 1987년 6월의 승리는 반쪽짜리 승리였지만). 그 열기가 채가시기 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다. 덕분에 영화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나는 1987년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나 태어났다. 그 당시의 기억따윈 없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내가 온전히 기억하는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2001년의 9.11테러이다. 그 이전 시기의 정치적 상황따위 나는 모르고 자랐다. 그렇기에 1987이란 숫자는 내게 낯설다. 근현대사 교과서에나 존재하던 시대다. 고2, 고3시절 배운 역사는 오직 문제 풀이를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지식들은 그 어떤 역사의식도 심어주지 못했다. 그런 내게 정치적 각성(거창하게 말한 것일뿐, 간단히 생각의 변화 혹은 '의심'이라고 해도 좋다)일으킨 사건이 두 가지 있다.'세월호 사건'과 '촛불혁명'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었다. 세상은 미쳐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다.잘못된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바보이거나 사이코패스이다. 나는 둘 다 싫었기에 촛불을 들었다. 나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놀랍게도 세상은 우리의 움직임에 응답했다. 70 ~ 9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내게 이는 시민에 의해(혹은 나에 의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낀 최초의 경험이었다.




사설이 길었다. 영화 <1987>의 개봉은 내게 2016년 말 촛불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영화가 보고싶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민주화운동을 어땠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무엇을 좀 알고 보고 싶었다. 근현대사 공부는 수능 이후 완전히 접었기에, 나는 이 분야에 완전히 무지하다. 박종철도 이한열도 모른다. 전두환이 나쁜놈이라는 데 왜 나쁜놈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내겐 후자의 이유가 더 컸다. <1987> 보기 전 워밍업의 목적도 있으나, 악당 전두환을 제대로 욕하기 위해 혹시라도 마주할 일베 회원들과의 언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유이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흡사 교과서 같은 책이다. 역사 평론서가 아니다. 사실을 논하기보단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서이다. 본 책이 전달하는 역사는 1970년대 말 부마항쟁 및 10.26사태에서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 및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까지이다. 약 10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사실만을 건조하게 전달한 책이지만, 그 사실 자체의 힘 덕분인지 책이 매우 재미있다. 8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다이나믹하고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희망에찬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두환의 폭압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시체가 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 연대하며 저항했다. 박종철, 이한열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둘에겐 수많은 동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혁명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크게 세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오래동안 맴돌았다. 첫번째는 '1987년 6월의 대학생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이다. 586세대(구 386세대, 86년도에 20대를 보낸 현 50대)의 현모습을 보라. 현재 그들 세대의 대표적 별명은 개저씨, 꼰데가 아니던가. 심지어 그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사람은 변한다지만 이 변화는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김문수'라는 한 단어로 그들의 추악한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변한 것일까? 두번째는 '그 당시의 연대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이다. 대학가에 더이상 연대는 없다. 이미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2009년에도 소위 '캠퍼스의 낭만'은 없었고, 지금은 더 처참하다. IMF사태 이후 민주vs비민주의 투쟁보단 자본vs비자본의 경쟁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젠 가진자와 없는 자의 투쟁이다(물론 박근혜의 등장이 다시금 민주와 비민주의 투쟁을 잠시 부활시켰다). 세번째는 '전두환'의 실체이다. 그동안 나쁜놈이다라는 말만 들어왔지 정확히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젠 안다. 그는 대한민국 최악의 악인이다. 세계사를 통틀어서 그처럼 무자비하게 자국민을 학살한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는 6월 민주항쟁 당시에도 군을 투입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추진한 88올림픽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여튼 이젠 그를 당당히 욕할 수 있다.




서평이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써야하는데 다소 감정적으로 글을 쓰고 말았다. 양해바란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내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일깨워주었다. 역사서로도 교양서로도 훌륭한 책이다. 영화 <1987>을 보고자 하는 젊은 예비 관객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분량도 얇아서 빠른 시일 내에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을 읽을 여력이 없다면 백무현의 <만화 전두환>을 추천한다. 일단 만화라 거부감이 적다. 또 만화이다 보니 인물 표현이 보다 입체적이고 사건 전개가 역동적이라 본 책보다 쉽게 전두환 시절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박종철 열사의 31주기이다(역시 CJ다. 이런 것 까지 계산하고 영화 개봉시기를 정했나 보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날에 서평을 쓰니 마음이 벅차다.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다.이제 <1987>을 보는 일만 남았다. 아는 만큼 보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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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 2018-01-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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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의 죽음

전두환이 죽었다. 뉴스를 접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은 화가 난다. 사형을 시키거나 평생 감방에 가둬두어야 할 살인마를 경호인력까지 붙여서 잘 살게 두다가 결국 자연사했다. 모든 생명은 존귀하고 존엄하겠지만, 예외가 있다면 살인마나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 인간인데, 이렇게 편하게 가게 두면 안 되는 인간인데. 화가 난다.강풀 작가의 웹툰 [26년]과 영화가 떠오른다. 비록 암살은 범죄이지만, 저 학살자는 암살 당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었다. 웹툰 연재 당시에도 또 이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도... + 더보기
감은빛 2021-11-23 공감 (2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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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읽을 만한 책

금요일 밤은 대개 가장 편안한 시간이지만 원고가 밀린 날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으며 잠시 기분을 내본다. 어느덧 6월이고 여름이다. 오며가며 타고다니는 버스도 에어컨을 켜지 않지만 후덥지근하기에 체감으론 이미 여름이지만. 이 여름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건 필립 딕의 <화성의 타임슬립>(폴라북스, 2011)이다.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 + 더보기
로쟈 2011-05-28 공감 (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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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의 망령: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다

한국 현대사에서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국민의 상처를 담고 있는 검은 기억이다. 정해구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이렇게 기록한다. “1980년 광주는 단지 지역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권력에 의해 자유와 생명이 유린된 참혹한 비극이었다.” 그 비극의 중심에 비상계엄이 있었다. 광주는 무자비한 계엄군의 폭력 아래 목소리를 잃었고, 민주주의는 칼날 위에 선 채 흔들렸다.그리고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은 한 주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날이다. 그러나... + 더보기
맥락없는데이터 2024-12-04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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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광주 비엔날레 방문

2016년 10월 29일, 제가 태어나서 광주를 2번째를 방문했다. 처음 방문한 적은 아마 2년 전 3월 정도, 친구장사와 관련하여 도와줄 일이 있어서 잠시 같이 광주로 갔다. 당시 내가 광주를 갔을 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방문한 곳은 광주시 북구에 위치한 518민주묘지에 갔다. 518이란 사건이 일어난지 3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당시의 상처가 깊은 모양이었다.이번에는 슬픔과 고통이 베여진 곳이 아니라 환희와 창의가 숨을 쉬는 광주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다른 광역시와 달리 광주는 공기가 매우 깨끗했고, 대신 시내 진입... + 더보기
만화애니비평 2016-11-10 공감 (1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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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구 교수(전 성공회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요약 및 평론

1. 요약: 신군부의 권력 찬탈과 1987년 민주항쟁의 역사적 궤적

정해구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등장한 신군부의 집권 과정부터 1980년대 치열하게 전개된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10년을 정치학적·역사적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저자는 1980년대를 단순한 '수난과 독재의 시대'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 폭발하고 사회 제 반역동성이 재편된 결정적 전환기로 파악한다.

제1부 신군부의 등장과 5·18 민주화운동

10·26 사건 이후 찾아온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짓밟히는 과정을 다룬다. 신군부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광주에서 무자비한 유혈 진압을 감행했다. 저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신군부 정권의 도덕적·정치적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했음을 지적하며, 이후 1980년대 전체 민주화운동의 도덕적 원천이자 출발점이 되었음을 분명히 한다.

제2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와 억압 기제

전두환 정권이 언론통폐합, 언론인 해직, 삼청교육대 운용, 학학간첩단 사건 조작 등 강압 기제를 통해 사회 전반을 통제한 방식을 파악한다. 정권은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성과와 88 서울올림픽 유치, 교복·통행금지 자율화 등의 유화책을 통해 독재 정권의 정통성 부재를 감추려 시도했으나, 본질적인 민주화 요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제3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발전과 다변화

5·18의 충격 이후 변모한 학생, 노동자, 농민, 지식인 세력의 연대 과정을 추적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단순한 정치적 독재 반대를 넘어 미국에 대한 재인식(반미 운동의 등장), 사회주의 및 변혁 이론의 수용, 그리고 학출(학생 출신) 노동자들의 공장 침투를 통한 노동운동의 활성화 등 운동의 깊이와 넓이가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제4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5공화국의 종말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가 불을 지핀 6월 민주항쟁의 전개를 기술한다.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사망을 계기로 넥타이 부대(넥타이를 맨 직장인)까지 광장으로 뛰어들면서 범국민적 항쟁으로 발전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어 일어난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현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음을 다룬다.

2. 평론: 80년대 운동사의 체계적 정리와 87년 체제의 한계 성찰

(1)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위치 재정립

저자는 전두환 정권의 성격과 이에 저항한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결정적 열쇠로 '광주'를 제시한다. 5·18은 신군부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정통성의 원죄가 되었고, 운동권에게는 '광주의 피에 대한 부채의식'과 '미국의 역할에 대한 환상 파괴'라는 사상적 대전환을 가져왔음을 명확히 짚어낸다. 이를 통해 80년대 한국 사회가 왜 그토록 격렬한 이념적·운동론적 분화 과정을 거쳤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2) 민주화의 주체로서 '범국민적 연대' 조명

이 책의 장점은 1987년의 승리가 일부 학생이나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한 데 있다. 학생들의 선도적 투쟁 위에 노동자·농민의 생존권 투쟁이 결합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시 중산층(넥타이 부대)이 가세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라는 범국민적 연대 기구가 형성된 과정을 정치학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분석한다.

(3) 87년 체제의 성과와 미완의 과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

정해구 교수는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한국 사회가 독재를 무너뜨리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위대한 승리로 평가하면서도, 그 한계 또한 가차 없이 지적한다. DJ와 YS의 분열로 인한 양김씨의 후보 단일화 실패, 그 결과로 나타난 노태우 신군부 세력의 재집권은 87년 항쟁이 '사회 변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에 머물게 만든 결정적 한계였음을 성찰한다.

(4) 아쉬운 점 및 한계

청소년과 일반 시민을 위한 교양서라는 시리즈의 특성상, 1980년대 운동권 내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이념 지형(NL과 PD의 노선 논쟁, 사회구성체론 논쟁 등)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또한 전두환 정권기 '3저 호황'이 가져온 중산층의 소비문화 대중화나 대중문화 통제 정책이 시민들의 의식 구조에 미친 복합적인 영향에 대한 서술이 정치사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다소 간략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합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압제 속에서도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한국 시민 사회의 저력을 가장 명쾌하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담아낸 역작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자유와 투표권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 얻어진 것인가를 일깨워주며, 87년 체제를 넘어 더 깊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과제를 안겨주는 유용한 역사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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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 정해구 ---- 1,000 단어 요약 평론

정해구의 이 책은 1979년 10·26 이후의 ‘서울의 봄’에서 출발하여 신군부의 집권, 5·18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정권의 통치, 1987년 6월민주항쟁과 이후 민주화 이행까지를 다룬다. 특히 민주화운동이 성공했음에도 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했는지를 중요한 문제로 제기한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요약 평론
정해구 지음

정해구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1979년 박정희의 죽음에서 1980년대 말 군사정권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고 다시 회복되었는지를 서술한 책이다. 책의 중심에는 전두환 개인보다 그를 권력의 정상에 올려놓은 군부, 정보기관, 관료조직과 냉전적 국가체제가 놓여 있다. 동시에 저자는 민주주의를 회복한 힘이 몇몇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아니라 학생, 노동자, 시민, 종교인과 재야운동가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저항이었다고 본다.

책은 10·26 이후의 ‘서울의 봄’, 12·12군사반란, 5·17비상계엄 확대, 5·18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정권의 수립과 통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장, 1987년 6월민주항쟁, 이후의 민주화 이행을 차례로 다룬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1987년 민주화의 성공과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 지역주의 정치의 형성, 3당 합당 이후 민주화의 보수화까지 검토한다.

<1. 서울의 봄과 신군부의 등장>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살되면서 18년에 걸친 장기독재가 끝났다. 시민들은 유신체제가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생들은 학원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요구했고, 정치권에서는 헌법 개정과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군부 내부에서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박정희 피살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며 정보와 군 지휘체계를 장악했다.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고 군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장악했다.

정해구는 12·12를 군 내부의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규정한다. 합법적인 군 지휘체계를 무너뜨리고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권력을 탈취했기 때문이다. 신군부는 국가안보와 군 기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정치권력의 장악이었다.

1980년 봄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요구가 확대되자 신군부는 이를 사회혼란과 공산주의 세력의 선동으로 몰았다.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봉쇄했으며, 김대중·김영삼 등 정치인과 재야인사를 체포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서울의 봄은 다시 군부의 총칼에 의해 중단되었다.

<2. 5·18광주민중항쟁>

광주는 신군부의 폭력에 가장 먼저,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도시였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계엄군의 학교 봉쇄에 항의하자 공수부대가 학생과 시민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군인들은 곤봉과 대검을 사용하고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폭력은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택시기사, 노동자, 상인, 주부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하면서 희생자가 늘어나자 일부 시민은 무장했다. 계엄군이 도심에서 일시적으로 철수한 뒤 광주는 시민들이 자치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해방공동체가 되었다.

시민들은 부상자에게 헌혈하고 식량을 나누었으며, 시민수습위원회를 구성했다. 금융기관과 상점에 대한 대규모 약탈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광주항쟁이 무질서한 폭동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무장한 시민들이 국가폭력에 저항하면서도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했던 것이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광주는 고립된 채 패배했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를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하고 언론보도를 통제했다. 그러나 생존자와 유가족, 종교계와 민주화운동 세력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정해구에게 광주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다. 광주의 희생은 신군부 정권이 국민의 동의가 아니라 군사폭력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후 학생과 재야운동가들은 민주화운동을 단순한 개헌운동이 아니라 광주학살의 책임을 묻는 투쟁으로 발전시켰다.

<3. 전두환 정권의 수립과 통치>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사회 전반을 장악했다. 공무원과 교사를 대규모로 해직하고 언론인을 강제해직했으며, 언론사를 통폐합했다. 노동조합과 학생조직도 해산하거나 재편했다. 삼청교육대에는 범죄자뿐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와 무고한 시민까지 강제로 끌려가 폭행과 강제노동을 당했다.

신군부는 정치인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여러 악법을 만들었다. 이후 전두환은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새 헌법을 만들었지만 대통령선거는 여전히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권위주의 통치를 유지하면서도 박정희 유신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다.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웠다.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고 교복과 두발 규제를 완화했으며,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정치적 자유의 확대가 아니었다.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면서 스포츠와 오락, 대중문화를 이용해 시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 했다. 흔히 이를 ‘3S정책’, 곧 스포츠, 스크린, 섹스를 통한 대중의 탈정치화로 설명한다. 실제 정책이 단일한 비밀계획으로 존재했는지와 별개로, 전두환 시대의 대중문화 확산이 정치통제와 결합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권은 경제안정과 국제행사 유치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으로 수출과 경제성장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성과가 전두환 정권의 업적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로 형성된 산업기반, 세계경제의 유리한 조건,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결합한 결과였다. 성장의 이면에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부동산과 주식 투기,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가 확대되었다.

<4. 민주화운동의 시련과 성장>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은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많은 운동가가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고, 대학과 노동현장은 국가의 감시 아래 놓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은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학생운동 내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성격과 변혁의 방법을 둘러싼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미국이 전두환 정권과 광주학살을 묵인하거나 지원했다고 보는 반미의식도 확산되었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했다.

1983년 말 전두환 정권이 일부 해직교수와 학생을 복교시키는 유화조치를 취하자 민주화운동은 빠르게 성장했다. 대학에서는 학생회가 부활했고,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확대되었다. 종교계와 지식인, 재야인사들도 연대조직을 만들었다.

1985년 2·12총선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한 신한민주당이 예상 밖의 지지를 얻으면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확인되었다. 제도권 야당과 재야 민주화운동이 함께 개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내부에는 노선 차이도 존재했다. 일부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다른 일부는 군사정권 퇴진과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주장했다. 정해구는 이러한 차이가 운동의 활력을 보여주면서도 때로는 대중과 운동권 사이의 거리를 확대했다고 본다.

<5.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민주항쟁>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처음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나 언론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를 통해 고문과 조직적 은폐의 실상이 드러났다.

박종철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정권은 국민의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서도 4월 13일 현행 간접선거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명된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결정이었다.

야당과 재야, 종교계, 학생과 시민사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대통령 직선제를 공통 요구로 내걸어 다양한 세력을 결집했다. 운동의 요구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집중한 것이 6월항쟁의 대중적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다음 날인 6월 10일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학생뿐 아니라 회사원, 상인, 종교인과 평범한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 시위를 지지했고, 시민들은 시위대에 물과 음식을 제공했다.

전두환 정권은 군 투입까지 검토했지만 광주학살이 반복될 가능성과 서울올림픽을 앞둔 국제적 압력, 군 내부의 부담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노태우는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 확대 등을 약속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6월항쟁은 군사정권이 스스로 베푼 정치개혁이 아니었다. 국민의 지속적인 저항이 정권을 양보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전환은 거리에서 싸운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6. 민주화의 성공과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기본권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여 민주화 세력의 표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정해구는 이를 ‘민주화의 성공,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라고 설명한다. 시민들은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정치세력은 권력교체에 실패했다. 민주화운동 내부의 분열과 양김의 경쟁, 지역감정과 기존 국가조직의 힘이 노태우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1988년 총선에서는 여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했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의 비리와 광주학살 문제가 공개적으로 다뤄졌다. 전두환은 백담사로 물러났고 군사정권의 범죄는 부분적으로 청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면서 거대한 보수정당이 탄생했다. 이 3당 합당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일부가 구군부 세력과 결합한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진전되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과거청산은 제한되었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1980년대를 전두환이라는 한 인물의 악행이나 몇몇 민주화 영웅의 투쟁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두환의 집권은 하나회라는 군부 사조직, 보안사와 중앙정보부, 관료와 재벌, 냉전적 반공체제가 결합한 결과였다. 이에 맞선 민주화운동도 학생운동만의 성과가 아니라 노동자, 종교인, 재야인사, 야당과 시민이 장기간 축적한 저항이었다.

특히 5·18과 6월항쟁을 연결하는 서술은 설득력이 크다. 광주는 1980년 당시에는 군사적으로 패배했지만, 그 희생은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근본에서 무너뜨렸다. 광주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1987년 시민들은 군사정권의 폭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았고, 정권 역시 다시 군대를 투입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 광주는 패배한 항쟁이면서 장기적으로는 민주화의 도덕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저자는 6월항쟁을 학생운동의 승리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운동세력이 대통령 직선제라는 최소한의 공통목표를 제시했을 때 넓은 시민층이 참여할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은 급진적인 주장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력이 연합할 수 있는 요구를 만들었기 때문에 승리했다.

‘민주화의 성공과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라는 분석도 이 책의 중요한 통찰이다. 제도를 바꾸는 것과 실제 권력을 교체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1987년의 민주화는 중요한 승리였지만 군부와 관료, 재벌, 보수언론과 지역주의 정치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항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에는 몇 가지 한계도 있다. 첫째, 민주화운동의 정당성과 성취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운동권 내부의 권위주의, 이념적 경직성과 성차별을 충분히 비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조직 내부에서도 개인의 자유보다 조직의 노선을 우선하거나 여성 활동가를 보조적 역할에 머물게 한 경우가 있었다.

둘째,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경험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어진다. 1980년대는 폭력적인 독재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경제성장, 컬러텔레비전, 프로야구, 자가용과 아파트, 소비문화가 확산된 시대이기도 했다. 많은 시민은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경제적 상승과 생활의 변화를 경험했다. 이러한 모순적 일상을 더 깊이 다루었다면 전두환 정권이 억압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던 이유를 더욱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미국의 역할에 대한 분석도 더 세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냉전과 한미동맹을 이유로 신군부의 집권을 사실상 용인했고, 이는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반미의식이 성장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안보와 민주주의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있었으며, 1987년에는 군사적 진압보다 정치적 타협을 압박했다. 이를 단순한 지원 또는 반대의 구도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넷째, 1987년 이후 민주화의 한계가 주로 정치지도자들의 분열과 지역주의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재벌 중심 경제구조, 노동시장 격차와 부동산 문제처럼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킨 요소도 더 깊게 다룰 필요가 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다고 해서 직장과 학교, 가족과 경제조직까지 자동으로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쟁취된 역사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훌륭한 대중역사서이다. 4·19, 부마항쟁, 5·18과 6월항쟁으로 이어진 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 앞에서도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책이 오늘날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전두환이 얼마나 잔혹한 독재자였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적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유지되는가, 언론과 사법기관이 권력에 종속될 때 시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특정 세대나 정치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1987년의 민주화는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었다. 정치적 자유는 확대되었지만 경제적 불평등, 지역주의, 권력기관의 폐쇄성과 과거청산의 미완성은 남았다. 따라서 이 책의 궁극적인 교훈은 민주주의란 한 번 획득하면 영원히 보장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기억하고 참여하며 권력을 감시할 때에만 유지된다.

이 책은 특히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와 함께 읽을 때, 개발독재가 경제성장을 통해 정당성을 얻은 과정과 그 체제가 시민의 저항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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