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평화주의자로 미화된 36년 고정간첩 김낙중 2024

평화주의자로 미화된 36년 고정간첩 김낙중 < 국제 < 기사본문 - 주간조선

평화주의자로 미화된 36년 고정간첩 김낙중
기자명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입력 2024.10.13

1993년 6월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낙중 전 민중당 대표가 항소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photo 연합

2020년 7월 30일 자 각 일간신문에는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 전 민중당 대표 별세’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김낙중은 36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다 1992년 8월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인물. 과연 그가 평화주의자고 통일운동가인지 살펴보자.

김낙중은 1935년 12월 11일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농(富農)이었다. 파주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하였다. 그는 나름 여유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나 대학 시절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6·25 남침전쟁의 잔악성을 경험하고도 “조국통일을 위해서는 서로의 통치권을 승인하고 초국가적인 기관으로 고려민주연방회의를 조직, 운영해야 한다”라는 이른바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를 정립하고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망상을 가지고 1955년 6월 25일 고향집에서 가까운 임진강을 통해 자진 월북하였다.



임진강 통해 자진 월북

월북 후 김낙중은 1년 정도 대남공작부서인 연락부(현 문화교류국)의 초대소에 수용되어 간첩교육을 받았다. 또한 5개월간 인민경제대학(당 간부양성기관) 특설반에 입교하여 체계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사상과 전략전술 및 대남혁명론을 이수하는 혜택을 누렸다. 김일성에게 충성맹세문을 제출한 후 지령을 받고 1956년 6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였다.

그의 공작암호명은 ‘김강천’이었다. 그는 검거 후 수사기관 조사를 받으며 북한 간첩으로 포섭된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단순히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월북했는데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수감되었다가 겨우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결국 간첩 혐의는 무죄를 받았고 월북 행위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까지 받았다. 당시 대공수사기관과 사법체계의 허술함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김낙중이 북한으로부터 하달받은 지령은 귀환 후 장기매복하여 노동계에 들어가 활동할 것,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을 포섭하여 지하조직을 구축할 것, 북한당국의 ‘평화통일호소문’을 남한당국에 전달할 것 등이었다. 그는 북한과의 비상연락선과 해외도피선까지 구축했다. 그는 1957년 10월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에 편입하여 서울대 및 고려대 출신들과 협진회, 신조회 등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기관지까지 발행하며 북한 사회주의노선을 학습, 전파하였다. 고려대 후배인 정◯암과 안◯협을 포섭하여 1961년 8월 15일 임진강을 통해 월북시키기도 했다. 고려대생 10여명을 규합하여 지하조직인 북악회를 결성하고 활동하다 1963년 검거되어 3개월간 복역한 일도 있다.

그는 1968년에 고려대 대학원(경제학)을 졸업하고 1972년부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노동문제연구원을 개설하여 좌경 노동운동을 전파하였다. 또한 지하조직 NH회(National Humanism)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1973년 정부전복음모로 수배되자 도주하여 서독을 통해 입북을 기도하다 검거되어 징역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만기출소 후 ‘굽이치는 임진강’(1985) 등을 저술하며 자신의 활동을 통일운동, 평화운동으로 미화하고, 북한의 대남노선인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조미(북한·미국)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통일” 등을 전파하였다. 1988년 말 자신이 정책실장으로 있는 ‘민족통일촉진회’가 주관한 세미나에 베이징대 사회대학원 교수 이상문이 찾아오자 자신의 저서와 활동사항을 북한에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1990년 2월 재차 방한한 이상문 교수와 접촉하여 북한과의 연락선을 재개하였다.

안기부 관계자들이 1992년 8월 검거된 김낙중 간첩 사건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연합

직파간첩 최모와 접선

그는 북한에서 보낸 직파간첩과도 접선했다. 1990년 2월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사회문화부(구 연락부, 현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최모(35세)가 이상문 교수를 언급하며 찾아오자 서재로 안내하여 접선하였다. 당시 김낙중은 “당신이 북한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의심했는데 최모는 1955년 입북 시 김낙중의 행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전달받은 자신의 저서를 언급하며 자살용 독약앰플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때서야 경계를 풀고 “동조자를 포섭하여 지하망을 구축하라”라는 등의 지령을 하달받았다.

김낙중은 최모에게 평화통일연구회 사무총장 노중선(1940년생)을 하부망으로 구축하고 자금책으로 심금섭(1929년생, 청해실업 대표)을, 정치권 침투망으로 권두영(1929년생, 고려대 교수 역임, 민중당 고문)을 포섭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는 최모로부터 ‘무두봉 11’이라는 암호명을 받았고 무인포스트(간첩장비 비밀 매설장소) 설정, 간첩통신 장비, 독약앰플 등을 수령하고 관련 훈련을 받았다. 공작금으로 미화 30만달러도 수수하였는데 그때까지 북한의 공작금으로는 최대 액수였다.

김낙중은 1990년 10월 직파간첩 최모의 안내로 서울에 침투한 거물급 공작지도원 임모(65세가량)를 서울 시내 다방과 파주 고향집에서 접선하였다. 임모는 “새로이 창달될 민중당에 우리 인자를 침투시켜 민중당을 혁명의 전위당으로 육성하라. 김선생(김낙중)도 민중당에 입당하여 합법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혁명사업을 수행하라. 각종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통해 북한 노선을 지지하라. 차기 총선(국회의원 총선거)에 인자를 원내에 진출시켜라” 등의 지령을 내렸다.

1991년 10월 재차 남파된 공작지도책 임모와 다시 접선하여 “민중당 선거를 지원하겠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국회에 진출, 원내교두보를 확보하라. 총선에 당선가능한 인사를 집중 지원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는 이미 약정해놓은 무인포스트에서 공작금 150만달러를 발굴하여 총 18명의 민중당 후보에게 총 7900만원씩 선거 자금을 지원했다. 북한은 19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이 참패하면서 해체되자 A3지령을 통해 새로운 혁신정당을 건설할 것을 다시 지령하기도 했다.



북한의 합법정당 공작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혁명적 전위정당이라는 지하당 공작 외에 합법공간에서 남조선혁명전략을 수행할 ‘합법적 전위정당’, 이른바 ‘진보정당’의 구축을 위해 주력해왔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확산된 종북 주사파세력 등이 1990년대 들어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였고 이들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자 자신감을 갖고 합법적인 공간에서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정당 결성에 매진한 것이다. 북한은 1990년 초 대남 간첩공작부서인 ‘사회문화부’(현 문화교류국)에 ‘정당지도과’를 신설하고 진보정치세력 양성지원, 진보정당 창당 지원 및 진보정당 침투·장악 등의 공작을 전개해 왔다.

여기서 진보정당은 ‘전술당’이며, 지하당은 ‘전략당’의 위상을 갖는다. 북한은 전술적 차원에서 한국의 변화된 정세에 부응하여 합법공간에 진보정당을 구축하여 활용하고 혁명의 주·객관적 상황(이른바 결정적 시기)이 조성되면 혁명의 참모부이자 사령탑인 혁명적 전위정당인 지하당 주도로 봉기하여 혁명을 완수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북한이 고정간첩 김낙중을 통해 민중당 창당공작을 지령한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 창당대회에서 김낙중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거물급 여간첩 이선실이 10년간 국내에 암악하며 민중당 창당공작에 매진해왔는데, 이선실망과 김낙중망은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또 다른 간첩 손병선망을 구축하여 침투하는 등 북한은 이른바 복선포치(複線布置)의 전형적 양태를 보여주었다.

김낙중은 그간의 간첩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10월 김일성 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이때 거물급 직파간첩 임모를 통해 김일성이 보낸 산삼과 녹용을 받기도 했다.



김일성 훈장과 210만달러의 공작금 수령

김낙중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은 확인된 것만 3회에 걸쳐 미화 210만달러(당시 우리돈 15억원 정도)다. 이 중 110만달러는 남대문시장 등에서 암달러상을 통해 쪼개서 환전하여 공작금으로 사용하였고, 100만달러는 자신의 집 장독대 밑에 비닐봉지로 밀봉하여 보관했다가 압수되었다. 그가 받은 공작금은 역대 최고액이었다. 36년간 암약한 고정간첩 김낙중은 하부망 심금섭, 노중선, 권두영과 함께 1992년 8월 안기부(현 국정원)에 의해 검거되었다.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가 노획한 물품을 보면, 권총 1정, 실탄 48발, 소음기 1개, 대북송신용 메모리식 무전기 1대, A3 지령 수신용 단파라디오 2대, 난수표, 기본암호표, 약어 등 간첩통신문, 자살용 독약앰플 4개, 대북보고용 은서 만년필 및 해독약품, 공작금 보관액 100만달러 등 총 60여종 150여점이었다.



간첩에게 관대한 사법시스템

김낙중은 1993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5년도 안 되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8월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출소 후 자신의 간첩활동을 참회하고 반성하기는커녕 평화운동가, 통일운동가로 자신을 미화하며 언론 기고, 대담, 강연 활동 등을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 철수, 핵무기 철거, 양심수 석방, 연방제통일 등 북한 노선을 대변하고 다녔다. 2006년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2004년 노무현정부 발족)는 조사 결과를 통해 김낙중이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공작금 210만달러와 공작장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김낙중이 간첩이 맞다는 발표다. 김낙중은 2020년 8월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낙중은 통일운동가인가? 통일운동가는 맞는데 ‘자유민주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적화 통일운동가’였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김대중 육성 회고록 (특별 보급판)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2024

김대중 육성 회고록 (특별 보급판)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알라딘


김대중 육성 회고록 (특별 보급판) - 김대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지은이)한길사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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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책소개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서거 15주기를 맞아 그의 육성으로 작성된 마지막 자서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출간한다. 1924년 신안 하의도에서 출생했을 때부터 2009년 서거하기 전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마지막 일기를 남긴 위대한 정치가이자 정치사상가인 김대중은 역사의 퇴행을 온몸으로 이겨냈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6·25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국가 번영을 체험하고 선도한 인간 김대중의 회고를 통해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 참으로 엄혹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그 현장을 우리는 이 책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목차


후세대들이 찾는 살아 숨 쉬는 기록물 |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펴내면서

1. 나의 고향 하의도와 목포
2. 혼돈과 역경의 시간들
3. 시련 속에서 꽃피운 의정활동
4. 민주세력의 리더로 떠오르다
5. 유신독재에 맞서다
6. 서울의 봄부터 13대 대선
7. 13대 국회부터 15대 대통령 당선
8.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약
9. 민주인권대통령
10.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작
11.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외교
12. 후배 정치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감사의 말씀 | 김홍업・김성재
한국 정치의 나침반이자 항해도 | 류상영・장신기・박명림
김대중 대통령 연보
김대중 대통령 육성 연설 QR코드 목록


책속에서


P. 15 그후에 일본 사람들에게 이 땅을 몰래 팔아넘겼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 하의도 농민운동입니다. 하의도의 이런 저항 정신이 어린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68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심지어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치인은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해야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항상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P. 149 그렇게 어렵게 당선되었으니 당연히 기뻤어요. 그러나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각나서 울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슬펐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내 선거를 돕겠다고 산골짜기까지 와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P. 197 나는 한 번도 대책 없이 비난한 적이 없어요. 정부 여당을 추궁할 때에도 감정적으로 소리 지르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논리와 근거를 갖고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자세로 접근했어요. 이렇게 하니 정부 여당은 나를 두려워했어요.
P. 253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평화통일로 나아가지 않고 남북한이 계속 대립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국민이거든요.
P. 256 우리가 있는 한반도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서 우리의 국익과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P. 263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경제성장의 결과를 특정 소수에게 너무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부의 편중을 막고 노동자・농민・빈민 등의 경제적 생활안정을 이루고 중산층 중심의 계층구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대기업에 의존한 성장은 궁극적으로 경제의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 더보기
P. 302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미국과 일본의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회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미국, 일본의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는 것이었어요. 여건이 되는대로 국내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지원 활동도 하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었어요.
P. 315 전 세계에서 독재를 한 나라가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 일본 등에 살면서 본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본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참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지식인・언론인 등이 우리나라의 저력에 대해서 다시 평가하게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교포들의 활동에 대... 더보기
P. 322 이때까지 아무 말 없던 한 납치범이 “이불을 싸서 던지면 떠오르지 않는다” “상어밥” 이런 소리를 했어요. 수장시킨 후에 내 시신이 떠오르지 않게 해서 사건을 은폐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이런 말을 듣고 난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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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24년 8월 23일자 '책&생각'



저자 및 역자소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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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3년 11월 연세대학교에 기증하여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이다.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 개인에 대한 자료와 그와 관련된 민주화운동, 정당사, 재임기 활동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전문적인 사료연구 기관으로, 한국의 대통령기념사업 및 대통령학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수상 : 2025년 만해문학상
최근작 : <김대중 육성 회고록 (특별 보급판)>,<김대중 육성 회고록 (양장)>,<김대중 전집 1 세트 - 전10권> … 총 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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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비밀구락부>,<상처와 결별하기>등 총 671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868,910점), 미술 이야기 15위 (브랜드 지수 29,686점), 철학 일반 17위 (브랜드 지수 32,04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서거 15주기를 맞아 그의 육성으로 작성된 마지막 자서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출간한다. 1924년 신안 하의도에서 출생했을 때부터 2009년 서거하기 전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마지막 일기를 남긴 위대한 정치가이자 정치사상가인 김대중은 역사의 퇴행을 온몸으로 이겨냈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6·25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국가 번영을 체험하고 선도한 인간 김대중의 회고를 통해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 참으로 엄혹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그 현장을 우리는 이 책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 전문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된 유일한 자전적 성찰이자 기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진들과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 42시간 26분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실이 바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이다. 이 책에는 김대중 대통령만이 증언할 수 있는 경이로운 인간 실록이자 한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겪은 역사 풍경이 담겨 있다. 소년기와 청년기, 해방 전후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시대와 사회를 통찰하는 그의 생각과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룬다.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 시절, 4·19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에 나서고, 박정희 쿠데타와 유신 선포 속에서 죽음을 딛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한다. 다시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수난받는 민중의 역사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큰 정치인 김대중의 행로는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나 투옥과 망명을 통해 정치인 김대중의 정치 사상은 찬란하게 성장한다. 감옥에서의 높은 수준의 독서, 망명과 유학을 통한 세계적 지성과의 교류와 토론은 그를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일으켜 세운다. 5번의 죽을 고비와 6년에 걸친 투옥, 3년여의 망명생활과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권에 대한 확고한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한다.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체득하게 된다.

김대중은 참으로 험난한 생애를 살았다. 이 책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대거 담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길을 걷는 김대중의 삶은 참으로 놀랍다. 그의 삶과 이론과 성찰이야말로 세계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한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유학 시절 스티븐 호킹과 이웃일 때 찍었던 사진 등 김대중도서관이 미공개한 사진 10여 장을 포함한 64장의 역사적 사진이 실려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QR코드를 넣어 김대중 대통령의 음성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큰 정치가의 소명의식과 더불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한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의 전략과 사상을 읽게 한다. 불의에 단연코 저항하면서 펼쳐내는 그의 정치역정은 같은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들에겐 감동이고 축제 같은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신군부의 온갖 유혹을 뿌리친다. 지지를 보내는 국민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한 평화전략과 평화정신은 국제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세계의 양심은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특히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는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오늘의 혼탁한 한국 정치상황에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새로운 정치를 발전시키는 나침반이자 항해도가 될 수 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는 김대중의 정치적 리더십과 평화정책, 인권정책, 복지정책에 대한 그의 사상과 전략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그의 정치적 지혜와 전략전술 그리고 국정운영 철학과 실천은 오늘날의 어두운 정치현실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하의도와 목포에서 얻은 정신적 자산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질문지를 받으면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 대통령이 하의도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어린 시절과 젊은 날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자세히 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당시 하의도는 농지 대부분이 기존 지주들의 탐욕에 의해서 결국 일본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였고 농민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작쟁의를 일으켰던 곳이었다. 저항 정신이 있는 지역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아버지는 마을의 구장이었다. 덕분에 『매일신보』가 집으로 배달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면을 열심히 읽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의도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던 김대중 대통령은 공부를 위해 목포로 이사했다. 일제강점기 목포는 7대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큰 규모의 항구도시였다. 목포공립상업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김대중 대통령은 웅변에 소질을 보였다. 2학년 담임 무쿠모토 선생님은 “김대중의 웅변은 일본 대의사가 의사당에서 한 것에 못지않다”며 칭찬했다. 졸업 이후 목포 전남기선에서 일하다 해운 사업을 했다.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상업도시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해운회사와 『목포일보』를 경영하면서 경제의 흐름을 배우고, 회계를 비롯한 각종 경제 지식까지 깨우쳤다. 이때의 경험은 국회의원이 된 후 정책 수립과 예산 심의를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해방 직후 ‘일본 천황이 항복했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거리에 붙이고 다녔던 것, 목포공립상업학교에서 철수 전의 일본군과 학생들이 충돌했을 때 소방차를 타고 가서 중재했던 것, 1946년 대구 10·1 사건 때 목포 지역 정치적 라이벌의 무고로 구금당했던 것 등 다양한 젊은 시절 일화가 등장한다.
사업 대금을 받으러 서울에 올라갔다가 6·25 전쟁이 발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강을 건넌 후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걸어서 목포까지 내려갔다. 생환 이후 사업을 계속하던 김대중 대통령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보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무소속으로 3대 총선에 출마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투신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후 민주당에 입당해 소장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 인권과 평등,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신념으로 행동했는지를 회고한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면모는 지극히 자유민주주의자다. 자유, 평화통일,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가혹한 탄압을 받아왔던 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입당 후 출마한 1958년 총선에서 불법적으로 후보등록을 취소당했고, 1961년 국회의원 첫 당선 3일 후 5·16 쿠데타가 발생해 선서도 하기 전에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면서 지도자로 성장한 그는 1969년에는 3선개헌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 세력과 함께 반대투쟁에 나선다. 당시 효창운동장에서 했던 연설은 “15분 연설 도중 박수가 20번 가까이 나올 정도로 아주 큰 호응”을 얻었다.

“경제개발의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다 보니 노동자와 농민은 희생되고 중산층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도 제대로 발전하기 힘듭니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이 된 김대중 대통령은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박정희 정권에 타격을 줬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씨의 공화당 입당은 위헌이고 국회법 위반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무효가 된다”는 사실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박정희 정권의 본격적인 경계를 받기 시작했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회고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변인·선전부장 등을 역임하며 독재를 통한 경제발전을 비판하고, 진정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성과라고 인정받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이때의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이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한 것은 지방자치제다. 부정선거를 막고,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을 높이며, 야당의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 선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1990년에는 13일간의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지방자치 실시를 관철시켰다.

“역사를 길게 보면 결국 국민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 패배한 경우는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패배할 수는 있지만 역사는 바른 길로 진전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위협이 찾아왔을 때마다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 두 번의 망명과 평생 6년여의 감옥 생활을 했다. 첫 번째 망명은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되었을 때 일본에서 다리 부상을 치료하던 중 국내 소식을 듣고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서 투쟁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 민주화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해외 민주세력을 일깨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는 그때 일본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살해를 당할 뻔했던 때의 증언을 생생히 담고 있다.
구사일생으로 국내에 귀환한 후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침체되어 있는 유신독재 반대투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된다. 이 사건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자 부담을 느낀 유신 정권은 김대중 대통령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서울대학교 감옥병실로 이감시켰지만, 회고에 의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그곳에서 “창문을 모두 폐쇄해서 밖을 볼 수 없었고 햇빛을 쬘 수 없었다”는 “지옥을 체험”했다.
전두환 정권 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투쟁은 계속됐다.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함께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일으켜 김대중을 연행했다. 이때 김대중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광주시민이 100명 넘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쓰러지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협력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했을 때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광주에서 죽은 수많은 시민을 배신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죽겠다고 결심”하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후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망명은 국제사회의 구명운동을 통해 1982년 형 집행정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것이었다. 이때도 “미국이 한국의 독재정치와 인권유린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까지 만나 설득하며 미국 상하원의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을 더욱 압박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하려고 목숨을 건 귀국을 단행했다.

“나는 민주화운동이 목표로 한 것은 자유·인권·평화가 뿌리내리고 확산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권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자 가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권 있는 민주주의”를 민주화의 본질이라고 인식했다. 인권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은 13대 국회의원 때부터 성과가 있었다. 1989년 가족법 개정을 위해 평민당 총재로서 책임지고 총력을 다했던 것이다. 당내 남성 의원들도 달가워하지 않는 문제였지만 다른 당 총재들과 노태우 대통령까지 설득하여 간신히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남녀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갔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사상전향제를 폐지하고 양심수를 석방해 대한민국을 민주인권국가로 평가받게 했다.

■ 대한민국 최고의 국제공공재
‘김대중’의 평화외교

“전쟁은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하게 하고 고귀한 생명도 무수히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투옥되고 납치되고 망명투쟁을 하는 등 김대중 대통령의 행보는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대통령 당선 후 국가부도 직전의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켜 빠른 속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지식정보·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며 세계는 경이로운 눈빛을 보냈다. 북한·일본과도 화해하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격이 상승해 외교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외교는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째, 1971년 7대 대선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4대국 안전보장론’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감안하면 남북한 사이의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도 주변 4대국(미·일·중·소)과의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소한 평화통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하는 ‘협력적 자주’의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 중국의 장쩌민 주석,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협조’와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동안 반목과 대립을 해온 우리 민족이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깊습니다.”

둘째, 김대중 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에 따라 남북관계를 발전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 이질감이 생겼기 때문에 즉각적인 통일이 아닌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1971년부터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대통령 임기에는 3단계 중 1단계인 ‘남북연합 구성’을 이루려고 목표했다. 남북연합의 핵심은 각종 대화와 상호합의였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과정을 생생하게 밝힌다.
셋째, 김대중 대통령은 동남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했다. 1983년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그니노 아키노 의원과 ‘아시아민주전선’을 만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서기로 했지만 아키노의 암살로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에는 ASEAN+3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동아시아 비전그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시작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까지 이어지는 등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각종 정책에 대한 공부입니다. 공부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그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공부와 연마를 통해 준비된 대통령으로 시대의 부름을 받았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보면, 그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최고의 쓰임을 받았던 이유가 일찍부터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국제관계, 경제, 첨단기술, 문화 등 미래사회를 전망하고 대비하는 통찰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특정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을 갖추”는 것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첫째,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화를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파악하고 외국자본 문제에 대비했다. “부존자원이 적고 국내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 자유화 조치를 취해 외화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선진 경영 능력을 배우고 금융기관들도 선진 금융 기법을 배우도록 했다. 이런 노력이 IMF 차입금을 당초 계획보다 3년 빨리 상환하고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평가한다.

“나는 당시 세계가 기존의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대전환기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김대중 대통령은 지식정보화 사회가 될 것을 대비하여 “산업화는 늦었지만 지식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냈다. 1970년대부터 기존의 저가상품 대량생산으로는 더 이상 경제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대중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등을 읽으며 지식산업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래서 집권 초부터 지식정보화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다했다. 컴퓨터 보급, 초고속정보통신망 설치, 전자정부 구축, 기술력을 가진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해 정보화 사회를 이뤘다. 필요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했고,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교육정책의 목표를 바꾸고, 모든 학교에 PC를 제공하는 등 교육정보화 사업을 추진했다.

“문화적 역량은 군사력·경제력과 함께 한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셋째, 김대중 대통령이 준비했던 것은 문화·관광의 발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화가 진전되고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줄면서 여가시간에 즐길 문화·관광상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콘텐츠를 잘 개발하면 엄청난 수익으로 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이유로 2001년 문화 부문 예산 1조 원 시대를 열고, 예산의 상당 부분을 문화콘텐츠 분야에 배정해 문화산업 발전에 초석이 되도록 했다. 또한 스크린쿼터를 지켜내 한국영화 발전에 큰 공을 인정받아 2003년 춘사 나운규 영화제 공로상을 받은 내용도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대중경제의 목적은 복지사회 실현에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복지와 관련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오래전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대비해온 것은 복지정책이었다. 1950년대 시사평론가로 활동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복지는, 1971년 대선 때부터 공약으로 나타났다. 미국 망명과 영국 유학 등을 통해 복지에 대한 서구사회의 최신 정책과 논쟁들을 알고 있었던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의 복지정책을 구상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집권 후 김대중 대통령은 노동 능력이 있는 사람의 자활을 돕는 ‘생산적 복지’를 지향했다. 또한 근로 능력과 상관없이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했다. 4대 사회보험인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과 급여 수준을 확대해 대한민국을 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 연대와 통합을 실천한 첫 대통령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원한과 증오의 어두운 잔재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연대와 통합이었다. 김대중의 정치는 이념, 진영, 지역을 넘어서는 연합정치였다. 해방 직후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김대중 대통령은 좌우합작 노선을 지지했다. 영구분단으로 가지 않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두고 방법을 모색했다. 3당합당으로 보수대연합이 만들어졌을 때 김대중 대통령의 신민당은 이기택·노무현 등의 민주당과 민주대연합을 이뤘다. 이때 신민당의 당세가 강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통합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공동대표제를 채택하고 주요 당직에 민주당계 인사들을 기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1997년 대선 때 DJP연합을 통해 보수 진영과의 연대를 이뤄,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한 가치연대이자 정치연대를 보여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역주의, 지역감정 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삼고 있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1971년 대선 이래 지역주의의 큰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수십 년 동안 차별받은 호남 지역이 다른 지역과 동등하게 대우받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어느 지역에도 특별한 특혜를 주지 않도록 해서 지역 간 반목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까지 그러한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기도 했습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나 국가수호를 위한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좌우 상관없이 공식적으로 포용한 정부도 김대중 정부가 최초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국민의 관점에서 통합했다. 제주 4·3, 민주화운동 희생자, 의문사 등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공개 서명식을 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독재 정권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재임 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국고를 지원했다. 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엄청난 고통을 받은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화해와 통합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원칙은 공정이었습니다. 공정성이 흔들리고 훼손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바로 반격이 들어오면서 개혁추진이 어려워집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통합의 정치는 국가부도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하루의 휴식도 없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회고한다. 달러를 확보하고 단기외채 상환기한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경제 구조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했다. 노동계를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압박하지 않고, 국내외적 여건을 설명하고 노동계의 숙원을 받아들이는 등 포괄적 협상에 성공했다. 또한 전 국민의 호응을 얻은 금 모으기 운동은 외채를 갚고 국제사회에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연합의 정치는 김대중 정치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었다.

“정치인은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해야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전 생애를 따라가보면 그는 “이상적 현실주의자”였다. 신념을 가지고 정치하면서도 국민들의 필요를 등한시하지 않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었다. 정치가 국민의 생활과 괴리되고 정치의 생산성이 낮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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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 전2권 |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은이)삼인201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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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의 온 생애를 기록한 '정본 자서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해 온 정본 자서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으로 돌아온 후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해 구술을 시작했고 2년여 동안 총 41회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대중은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정리된 자서전 원고를 읽으며 직접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구술해 반영토록 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원고를 최종 검토하고서 편지 형식으로 여는 글을 적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글을 보내와 앞머리에 실었다.

1권에는 출생에서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954년 민의원에 출마한 후 세 번 연거푸 낙선, 네 번째 당선되었으나 군사 쿠데타를 맞아 의정 활동을 못하게 된 과정, 1971년 40대 대선 주자로 나서 박정희와 겨룬 일, 그 후 독재 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상황, 귀국 후 대선 도전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2권에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가 담겨 있다. 대통령 재임기 동안의 이야기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최초의 국정 보고이자 '성공한 민주주의 정치가'의 전모가 담긴 회고록이다. 또한 책에는 한평생 민주주의, 정의, 평화, 민족을 위해 살아온 인물 김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전하는 마지막 당부가 담겨 있다.


목차


1권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희호)
추천의 글 (빌 클린턴, 미하일 고르바초프, 폰 바이츠제커)
생의 끄트머리에서

1부
섬마을 소년 (1924~1936)
나를 사랑한, 내가 사랑한 사람들 (1936~1945)
가슴은 뜨겁고 세상은 험했다 (1945~1950)
죽음이 곁에 있었다 (1950)

전쟁 속 성공과 좌절 그리고 도전 (1950~1953)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1954~1959)

2부
무너진 이승만 정권 (1959~1960. 4. 19)
선량한 총리 곁을 지킨 열정의 대변인 (1960. 4 ~ 1961. 5)
5?16, 어둠의 시간들 (1961. 5~1962. 5)
영원한 동지 ‘5월 신부’ (1962. 5~1963. 10)
호남이 당선시킨 박정희 대통령 (1963~1964)
독선, 무능, 거짓과 싸우다 (1964~1967)
목포의 전쟁 (1967)
40대 대통령 후보 (1968~1970)

3부
병영 국가의 금기를 깨다 (1970~1971)
민심의 반란, 선풍이 태풍으로 (1971)
“총통 시대가 온다” (1971)
유세 대장정 (1971)
언론에서 사라진 ‘김대중’ (1971)
나의 3단계 통일론 (1972)
10월 유신과 망명 (1972)

4부
예수님이 나타났다 (1973)
납치 사건 후 한일 결착 (1973~1974)
긴급조치 9호 (1974~1975)
다시 유신의 살기 속으로 (1975~1977)
특별한 병실은 특별한 감옥 (1977~1978)
유신의 비명을 듣다 (1978~1979)
궁정동의 총성 (1979)
서울의 봄 (1979. 12. 12~1980. 5)

5부
순결한 ‘5월 광주’ (1980)
“김대중, 사형” (1980)
세계의 외침, “김대중을 살려라” (1980~1982)
작지만 큰 대학, 감옥 (1981~1982, 옥중 생활)
격정의 2차 망명 (1982~1984)
폭풍의 귀국 (1984~1985)
55번의 연금, ‘동교동 교도소’ (1985~1986)

6부
6월 항쟁 (1986~1987)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지다 (1987~1988)
민심에 길을 물어 (1988)
공안 정국 망령 (1989)
민심에 대한 쿠데타, 3당 합당 (1990~1992)
지역감정과 편파 보도 (1990~1992)
다시 국민을 울렸다 (1992)
케임브리지의 추억 (1993)
통일과 평화의 둥지, 아태평화재단 (1993~1995)
민심의 바다 속으로 (1995~1997)
대통령 김대중 (1997)

화보


2권

1부
길고 무거운 겨울 (1997. 12. 17~1998. 1)
“각하라 부르지 마시오” (1998. 2. 25~5. 12)
나라 체질을 바꾼 4대 부문 개혁 (1998)
미국에서의 8박 9일 (1998. 3~1998. 6)

2부
소떼, 판문점을 넘다 (1998. 6~1998. 9)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 (1998. 9~1998. 10)
금강산 관광 (1998. 11~1999. 9)
21세기는 누구 것인가? (1998. 12~1999. 3)
4강 외교의 매듭 (1999. 2~1999. 6)
순진한, 유약한 정부가 아니다 (1999. 6~1999. 9)
“김 대통령 아니면 10만 명이 더 죽었다” (1999. 11~1999. 12)

3부
새 천 년 속으로 (2000. 1~2000. 3)
깊은 밤, 북으로 간 특사를 기다리다 (2000. 2~2000. 6)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2000. 6. 13~2000. 6. 14)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 (2000. 6. 14~2000. 6. 15)

4부
햇볕을 받아 피어난 것들 (2000. 6~2000. 9)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인권이다 (1998~2000. 10)
2000년 가을, 부신 날들 (2000. 10)
빌 클린턴과 부시, 그리고 한반도 (2000. 11~2000. 12)
첫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다 (2000. 12)

5부
국민의 정부 늦둥이, 여성부 탄생 (2000. 12~2001. 3)
인권 국가 새 등을 달다 (2001. 5~2001. 9)
지식 정보 강국, 꿈이 현실로 (2001. 9~2001. 11)
민주당 총재직을 내 놓다 (2001. 11~2002. 2)
봄날, 몸이 아팠다 (2002. 3~2002. 6)
붉은 악마와 촛불 (2002. 6~2002. 10)
청와대를 나오다 (2002. 10~2003. 2)

6부
혼자서 세상을 품다 (2003. 2~2005. 12)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 가야 (2006. 1~2008. 5)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2008. 5~2009. 6)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

『김대중 자서전』이 나오기까지
김대중 연보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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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7 나는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서 일체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고, 나 또한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화해하셨을 것이다.
― 1권 1부 <섬마을 소년> 접기
P. 312-313 ‘물속에서 쇳덩이를 벗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바닷속이니 몇 분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고통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내 고단한 삶도 끝이 날 거야. 어떤가, 이 정도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팔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양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기도드릴 엄두도 못 내고 죽음 앞에 떨고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옆에 서 계셨다. 아, 예수님!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고, 표정도 그대로였다. 옷도 똑같았다. 나는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살려 주십시오. 아직 제게는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를 구해 주십시오.”
― 1권 4부 <예수님이 나타났다> 접기
P. 385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 1권 4부 <궁정동의 총성> 접기
P. 536 선거가 끝나자 국민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민심은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다.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고, 특히 민주 진영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어찌됐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많은 민주 인사들의 희생과 6?10 항쟁으로 어렵게 얻은 선거에서, 그것도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졌다.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물론 단일화했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저들의 선거 부정을 당시로서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
― 1권 6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지다> 접기
P. 596-597 나는 내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번도 고향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차별받는 호남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늘 가슴이 아팠다. 그렇기에 호남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지역감정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나는 고향인 전라도를 찾는 데 많이 망설였고 가지 않았다. 가고 싶었지만, 진정 만나고 싶었지만 고향 땅을 일부러 밟지 않았다.
― 1권 6부 <지역감정과 편파 보도> 접기
P. 292-293 그러자 김 위원장이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과거 7?4 공동 성명도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 이런 식으로 한 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
“그때는 이후락 씨가 왔지만 지금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와서 정상 회담을 한 것입니다.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임동원 원장이 거들었다.
“선언문의 서두에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제 평양에서 상봉하고 정상 회담을 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는 표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 선언문의 말미에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로 표기하고 서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선언문은 우리 민족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문건입니다. 이것을 마련하신 두 분이 직접 서명하여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갑자기 튀어나온 김 위원장의 농이었다. 절박한 분위기를 단번에 깨뜨렸다. 나도 다시 그에게 농담을 날렸다.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 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그러자 비로소 김 위원장이 웃었다. 정상 회담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저녁 7시였다. 합의문은 ‘남북 공동 선언’으로 하기로 했다.
― 2권 3부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 접기
P. 565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 운영이 걱정됐다. 과거 건설 회사에 재직할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 통일부, 과기부, 정통부, 여성부 등이 폐지 및 축소되는 부처로 거론됐다. 내가 보기로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부처였다. 그 단견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선 핵 폐기 후 협력’이란 부시 대통령조차 폐기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 후보로 나를 찾아왔을 때는 햇볕 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가장 보편적인 길을 찾는 것이 실용일진대,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았다.
― 2권 6부 <국민보다 반걸음 앞서 가야> 접기
P. 580-581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 험하고 절망적인 고난의 세월을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도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 아내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때는 아내와 같이 종일 같이 지낼 때가 있다. 그래도 기쁘고 즐겁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접기
P. 581-582 이명박 정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너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밀어붙였다. …… 한국 외교 사상 가장 최악의 실패작을 다시 되풀이할 가능성이 컸다. …… 앞선 두 정부에서 이룩한 10년의 공든 탑이 무너지려는가. 그런 적대적인 정책으로 회귀하려면 통일부가 왜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접기
P. 586-587 나는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 왔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직선 대통령제를 쟁취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정?부통령제였다. 우리나라에도 부통령이 있어야 한다. …… 대통령에 집중된 의전 부담도 줄일 수 있고, 대통령 유고시에 국정 중단을 막을 수도 있다. 이렇듯 권력 상층부가 서로를 인정하면 망국적 이념 공세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 지금도 정?부통령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제 하에서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 후로도 독재자나 그 아류들이 출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5년 단임제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제 민의를 따르지 않는 독재자는 민의로 퇴출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이원 집정부제나 내각 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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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대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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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의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5월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었으나 5·16 쿠데타로 인해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1963년 목포에서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7·8·13·14대 국회의원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3단계 통일론과 4대국(미·일·중·소) 안전보장론, 대중경제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사회정책 등 획기적인 공약을 제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관권 부정선거로 패배했다. 1972년 10월유신 선포 이후 해외에 망명하여 일본과 미국에서 반유신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다. 1973년 8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당해 구사일생으로 생환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1978년까지 투옥되었다. 1980년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다 1982년 12월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1985년 2월 목숨을 건 귀국을 단행하여 2·12 총선에서 민주세력이 승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김대중은 5번의 죽을 고비, 6년여의 감옥생활, 3년여의 망명생활, 지속적인 감시 및 연금 등의 고난을 겪었다. 1987년과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후 1993년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전쟁위기 해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5년에 정계 복귀를 선언했고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교체였다.
대통령 김대중은 IMF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2000년 6월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제주 4·3특별법 제정 등 각종 개혁조치로 민주인권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 지식정보화 및 문화 강국이 되도록 했으며 생산적 복지정책으로 한국이 복지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국 외교의 전성기를 이뤄냈다. 김대중은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민주인권 지도자로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 2월 대통령 임기를 마쳤고,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로 서거했다. 접기

최근작 : <김대중 망명일기>,<길위에 김대중>,<생산적 복지로의 길> … 총 4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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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바칩니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온 생애를 기록한 ‘정본 자서전’

김대중은 1924년 남녘의 섬마을에서 태어나 2009년 8월 세계인의 애도 속에 고단한 몸을 누일 때까지, 파란으로 가득 찬 한반도 현대사를 헤쳐 왔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기를 보내고 전쟁의 참화를 거쳐 촉망 받는 청년 실업가로, 30여 년에 걸친 군사 정권의 통치기에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21세기로 건너오는 길목에서는 겨레의 새 길을 여는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그는 길고도 거대한 생애를 숨 가쁘게 살아 냈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해 온 정본 자서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으로 돌아온 후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해 구술을 시작했고 2년여 동안 총 41회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서전은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을 바탕으로 생전 기록물들을 참고로 하여 정리됐다. 김대중은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정리된 자서전 원고를 읽으며 직접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구술해 반영토록 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원고를 최종 검토하고서 편지 형식으로 여는 글을 적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글을 보내와 앞머리에 실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습니다.”

1권에는 출생에서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954년 민의원에 출마한 후 세 번 연거푸 낙선, 네 번째 당선되었으나 군사 쿠데타를 맞아 의정 활동을 못하게 된 과정, 그리고 1971년 40대 대선 주자로 나서 박정희와 겨룬 일, 그 후 독재 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상황, 귀국 후 대선 도전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섬마을 소년, 청년 실업가, 젊은 정치인, 그리고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정이 담긴 1권에는 1924년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199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리기까지 7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민중이 거쳐 온 굴곡진 삶과 위정자들의 폐단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리고 옥중에서, 망명지에서, 연금된 자택에서 구상한 여러 정책과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 화자인 김대중의 몸과 마음은 민주주의 달성을 위해 항거하는 민중의 곁에 있었고, 그의 시선은 힘 가진 위정자 쪽을 향해 매섭게 벼려져 있었다. 여기서 20세기 한국사의 빛과 어둠, 역사적 ‘사실’로 포장된 허울에 감춰진 ‘진실’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2권에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가 담겨 있다. 대통령 재임기 5년은 김대중에게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조국 통일, 민생 해결을 위해 70년 동안 온몸으로 부딪쳐 가며 생각해 낸 이상을 실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당선되자마자 불어 닥친 국가 부도 위기 극복, 1980년대 옥중에서부터 구상한 대한민국 IT 강국의 실현, ‘햇볕 정책’의 실천으로 남북 간 화해의 장인 6?15 남북 정상 회담 성사, 그리고 이어진 노벨평화상 수상,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 재임기 동안의 이야기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최초의 국정 보고이자 ‘성공한 민주주의 정치가’의 전모가 담긴 회고록이다.
퇴임 후 영면에 들기까지 김대중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내외 강연, 연설, 인터뷰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미얀마 등의 민주 회복, 세계 평화 달성에 혼신을 다했다. 2008년 새 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주의 역행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끝까지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믿었다. 이 책에는 한평생 민주주의, 정의, 평화, 민족을 위해 살아온 인물 김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전하는 마지막 당부가 담겨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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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희망은 사악한 것이다
그 때문에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것은

고통이란 것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 아닐까?

故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고초를 당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갔는가

그 고통의 시간을, 패배의 시간을 온전히 어떻게 견뎌왔을까?

세 번이나 자신을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였다면 삐져서라도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을텐데

故 김대중 대통령은 그렇지 않고 다시 한번 대중의 선택을 기다리고 결국은 선택을 받게된다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한게 아니라
우리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분은 너무 빨리 왔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故 김대중 대통령의 수난과 고통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나와같다면 2017-11-16 공감 (21) 댓글 (8)



자서전을 쓸 정도의 인물이라면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우여곡절을 이겨냈을 것이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이상의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책이 1,000 페이지가 넘는데도 여느 소설만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한국 현대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일제시대 서당 교육을 받은 ... 더보기
belazy 2015-11-30 공감 (7) 댓글 (0)



아들이 사달라고해서 선물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두께에 놀라 저걸 언제 읽나 싶었고 의심도 가더군요 진짜 읽기나 했나 한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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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존경했던, 인간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대통령을 더 알기위해
용팔이 2010-08-05 공감 (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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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을려고 샀고..내 아들들도 읽도록 하겠다. 역사에 길이남을 분
karl7118 2010-08-05 공감 (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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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긍정하는 그분의 삶의 자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런 2010-10-20 공감 (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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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읽고 간직해야 할 책. 우리는 너무 큰 빚을 그에게 졌습니다.
spiritualpower 2010-08-06 공감 (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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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정치사를 거시적으로 일별해 본 유익한 시간.. DJ, 당신이 많이 그립습니다
zikomo 2010-12-21 공감 (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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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엄숙하고 묵직한 느낌입니다.
양장본으로 두 권 모두 꽤 두툼합니다. 물론 무게도 상당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사진이 희미하게 보이는 흰색 바탕은 인쇄가 아닌 큰 `띠지`입니다.
아무래도 읽을땐 벗겨버리지 않으면 걸리적거려 다소 불편할 듯 하군요.



'운명이다`와 함께 찍어 보았습니다.
역시 분량에서는 `김대중 자서전`이 압도적입니다. (1권708p - 2권648p)
하지만 디자인은 역시 `운명이다`가 세련된 맛이 있는것 같습니다.



사이 사이 자료 사진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더군요.
기도하는 대통령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망명기의 서러움을 시로 달래셨다는군요.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제가 아는 어떤분도 힘이들땐 시에 의지하는듯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일지라도
`가족`앞에서는 그저 사랑하는 아버지이며, 남편일 뿐입니다.
대통령님도 다르지 않으셨겠죠.




젊은 시절 사업가로서의 다부진 모습을 엿볼수 있는 사진입니다.



예약 구매 사은품으로 동봉된 CD입니다.
유세,연설.강의,사진 등이 포함되어있습니다만....


자서전 발간에 맞춰 바쳐진 헌사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민주주의 수호와 대북 화해 정책을 추진하면서 보여 주셨던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를 통해

지금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우리가 더욱 평등하고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신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독재에 항거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중요하고도 독보적인 정치인이자 사상가로서 민주주의

원칙에 헌신했던 그야말로 특별한 운명을 가진 한 인간이었습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을 통해 위대한 인격을 지닌 가장 비범하고 감동적인 인물을 들여다봅니다.

이 책은 지칠줄 모르는 용기로 온갖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나아간 한 사람의 놀라운 인생 역정,

엄청난 좌절, 그리고 경이로운 성공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음...클린턴과 고르바초프는 책을 안읽은거 같은데?-_-;

어쨌거나 목을 길게빼고 기다리던 책인지라 밤세 읽어볼 참입니다.



광고 카피중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이 곧 대한민국의 현대사다.



이 글에 고개를 끄덕 끄덕 하신다면,

함께 읽고 서평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합니다 ^^



덧붙임...









어떻습니까?

이 책이 자기 자리를 잘찾은것 같습니까?^^

- 접기
마유 2010-08-03 공감(6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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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보다 놀라운



진실이 허구보다 더 드라마틱 하다는 말이 있어요.



아마도 고 김대중15대 대통령의 일대기가 그러할 것입니다.



제가 제일 실감하는 대목은 그처럼 많은 독서를 하셨다는 점입니다.



직접 가보면 그렇게 멀고 작은 섬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인물이 되셨다는 점입니다.



가정적인 불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가정과 나라와 인생을 경영하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정치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언가 깊은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나름 열심히 살아갑니다,ㅎㅎ
- 접기
승혜 2010-07-19 공감(3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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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이다...







눈물, 후회 없도록

#1. 나는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내 부모님은 부산에서 이십년 적을 두다 외동딸인 내 교육 문제로 1976년, 서울로 이사하셨다. 나는 강남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여대를 입학한 후 다시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했다. 경남 진해가 본적인 부모님을 둔 남자와 결혼 후 분당에 살림을 차리고 그곳에서 아이를 길렀다. 부모님은 분당과 용인에서 사셨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조선일보를 구독해왔다. 올해 41세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 여성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네 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고, 모두 투표를 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도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기회는 두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녀는 김대중을 찍을 수 있었을까.

많이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자주 훌쩍 거리곤 했다. 어떨 땐 눈두덩이 뜨거워져 얼굴에 열감으로 종일을 보내었고, 울컥하며 목이 메어 울분에 그만 눈을 감아 버리기도 했고, 어떨 땐 가슴이 저미는 설움으로 온 폐부가 돌덩이처럼 가라앉는 듯 했다. 또 어떨 땐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벅찬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곤 했다. 살면서 그동안 책이라는 존재를 대하며 이토록 여러 가지의 감정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김대중 자서전』은 내 눈물의 모든 것이었다. 이 가을, 나는 울고 있었다. 그것도 제대로 마음껏, 후회 없도록 이었다.

왜 울었는지 참참히 따져 물어야 했다. 내 눈물의 진정성을 밝히는 것이 곧 그를 알아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 과정과 의미를 정리정돈하고 싶어졌다. 감정을 정리하자 이성이 찾아왔고 이성은 다시 마음을 살찌웠다. 독서란 문학이란 그런 것일까. 책 한권 읽었다고 갑자기 가치관이 바뀔 나이는 지나온 지 오래지만 나는 지금 그동안의 내 무지와 무심, 무정함을 적절한 시기에 운좋게 보완했다는 충만감에 들떠있다. 이토록 달뜬 설레임은 나를 적잖이 애타게 만들며 연인들이 늘 '사랑'이라는 진부한 말 대신 그보다 더한 말을 찾아 헤매듯 '존경'이라는 말로는 영, 성이 차지 않는 심정이다. 부족하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종교인이나 학자, 혹은 기업인까지도 존경한다 말해 보았지만 정치인을 존경한다고 말해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한국의 정치인을.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존경할 수는 있겠지만 종교는 달라도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주변에 '정치적'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 '정치적'이라는 관용된 의미를 고운 시선으로 봐주기 힘들지 않았던가. 요즘 유행하는 TV드라마의 주연격인 국회의원도 '정치란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논리가 아니다. 49%의 악속에 피어나는 51%의 선의 꽃이 정치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란 심산유곡에 핀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라 비유했다. 좋은 말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유기적인 존재인 것이지 상황에 따라 늘 변수를 안고 있는 유동성 존재인 것이다. '정치적'인 사람은 곧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음모에 능한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사용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이처럼 변화와 변수, 변모를 정체성으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란 단어만 억울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한 인간으로서 정치인을 존경하기란 어렵기도 할뿐더러 또 우리 근현대사에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없었다는 현실을 보더라도, 평생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익히 존경받아 마땅한 정치인일지 모른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굳이 그래프를 그려보자면 비호감의 좌표에 가까웠다. 아니, 솔직하자. 나는 그를 거의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태생부터 뼛속부터 오랜기간 거부해왔노라, 고백하겠다. 그런데, 살면서 이렇게 그 사실에 대한 변명의 기회가 제대로 생길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이토록 처연하게 마음이 시퍼렇게 멍울지고 난 후 일지도 몰랐다.


나는 왜 !

#2. 내 아버지는 뚝심의 경상도 사나이였다. 어머니는 전라도 사람을 공산당과 버금 갈 정도로 싫어하셨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당시 부모님을 이해하거나 오해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나로서는 지겹도록 '전라도 사람과 결혼만은 안 된다'는 정언을 밥먹듯이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다니면서는 더 지겹도록 반공교육을 받았다. 그때 북한은 '괴뢰군' 혹은 '괴수'로 통일, 지칭되었으며 '박살내자', '때려잡자' 같은 단어로 표어를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네에서 고무줄 놀이를 할 때까지 무심코 불러대던 세 곡의 노래도 우렁찼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을 읊조리다 결국 마지막엔 ’무찌르자 공산당’으로 마무리했다. 어쩌다 삐라를 주워 온 친구가 있으면 그날은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공포에 떨었던 기억...내게 있어 공산당은 민방위 훈련날 귀를 찢으며 교실에 울려 퍼지던 싸이렌 소리만큼 가까웠음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TV에 자주 나오던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빨치산 출신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김대중은 내게 처음부터 확실히 결혼만은 안 된다던 '전라도' 사람이면서 괴수라 불리던 '공산당'이었던 것이다. 나는 달리 의심없이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두 가지를 믿고 살아왔다. 그 두 가지는 훗날 내가 나이들어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좀처럼 의식의 심연 저 밑바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잘못은 하지 않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따라야 했던 그 시절 우리가 아니던가. 그는 정부의 탄압보다 국민의 오해가 미치도록 무서웠다 고백했다. 나와 같이 경상도에서 자라 모범생이라는 역할을 맡아온 학생들이라면 그들의 가슴에 김대중 이름 석자는 역적의 낙인이 되고도 남았을 진대.

만만치 않았던 두 권의 책을 덮고 나서 실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역대 대통령들 중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거나 자서전으로 출간하면 가장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세속적인 예감은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인생이라는 원재료의 충실함도 있었겠지만 대통령들 중에서는 가장 문화, 예술에 근접한 분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중에서 특히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나는 흡사 오바마 대통령이나 반기문 UN 사무총장 정도의 자서전을 떠올리며 가볍지 않은 책의 무게를 나름대로 이겨보려 했었다, 처음부터.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정치적인 내 소견이었다. 무겁고 진중한 것은 그대로 진지하고 엄숙하게 받아 들여야 했다. 진실이란 그런 것일까. 머리로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가슴으로 진실을 느끼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한 인물의 자서전이라고만 하기에는 아쉽고 안타깝다. 나는 그것이 못내 미안하고 서운하다. 역사를 따라가는 서사를 기본으로 소설이나 시가 가지는 문학적 장악력과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진솔함, 인문학이 발산하는 교양의 향기, 종교나 고전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살아있는 문학 예술품'에 근접하다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진실을 확인하고 진심을 느끼고 진리를 깨달았다', 상투적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그가 마지막 까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역사속에 위치하던 국민의 한 사람임을 이제야 알겠다. 문학의 테두리 안에 이 모든 것이 앉혀져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고 그 안에 서 있는 내 인생을 돌아보고 마침내 오늘의 가슴에 뭉클한 심지를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목이 메인다. 나는 덜컹대며 내 목이 울렁거리던 이유를, 내 눈이 내 입술이 붉어짐에 그리하여 가슴마져 홧홧하게 뜨거워지던 마지막에 머리 숙인다. 나는 왜 !... 이것을 말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 어찌하면 성이 찰 것인가. 한없이 모자라기만 한 존경을 넘고 싶은 한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지금 알고나 계실지.


우리집 김대중

#3. 나는 학창시절엔 집에서 '우리집 김대중'으로 불리었다. 두 가지 생각이 세뇌처럼 박혀있던 나에게 그 말은 어떤 욕보다도 끔찍했다. 부모님의 이유인 즉슨 자신이 잘못을 해 놓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내는 적반하장 격의 논리를 고집스럽게 주장하여 사람을 무안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와 말싸움이 벌어질 때 '우리집 김대중인데 어련하겠어', 이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비난하셨다. 나는 학교에서도 반장선거에 나가 연설(까지는 아니지만)을 하면 선생님에게 김대중처럼 사람의 마음을 선동한다는 칭찬인지 질책인지 모를 야릇한 이야기를 곧잘 듣곤 했다. 그러고 보니 고2 때(내가 반장일 때), 우연히 학교앞 서점과의 고착된 비리와 함께 보충수업 교재의 성의없는 선정을 목격하곤 아이들과 함께 교재와 그 교재를 선정한 선생님을 바꾸어주지 않으면 수업을 받지 않겠다는 당돌한 항의를 한 적이 있긴 했다. 나는 국회의원을 아버지로 둔 반 친구를 설득해 위로부터의 압력을 뒤에서 조종하는 놀라운 정치적 술수를 발휘하며 결국 교재를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바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그러고 보니 사회생활하면서 나는 업체 공개 프리젠테이션을 담당한 경우가 많았는데 공모에서 누가보아도 대결구도가 불리한 국면에 오로지 열정과 마지막 심정적인 호소로 결과를 역전시키는 경우도 더럿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누군가 'PT 한'이 아니라 'DJ 한'이라고 놀리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김대중 같다는 말이 욕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 말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칭찬으로서 내심 저릿해 지기까지 결국 나는 내 온 생애가 걸린 것이 아닌가.

두 권의 자서전을 덮고 나는 마음을 깊게 쓸고 지나가던 단어들을 적어보았다. 용기, 평화, 화해, 존경...그리곤 그들 밑에 '설득'이라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돌이켜보니 자서전은 1권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2권에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의 시간 순 글들이었지만 결국 모두 한평생 설득하는 인생을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마지막까지 이렇게 책으로 그렇게 살아야 했던 자신과 나를 설득하는구나...사람들은 늘 그의 설득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뒤돌아 주저하였겠구나 싶었다. 그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늘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설득하고 있었다. 실은 그렇게 긴 세월 변함없이 세상과 자신을 설득하고 나서야 대통령이 된 것이었다. 그는 가정, 학교, 회사, 단체, 정치권, 해외 할 것 없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 시기와 대상마다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기상황일수록 그를 찾았고 그는 죽기직전까지 해외에 초청을 받아 세상을 향해 의견을 내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견은 또 늘 기존의 현실과 고정관념들을 깨우치는 새롭고 혁신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누구나 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남에게 펼쳐 보이기도 힘들며 내보였다고 해서 상대의 생각을 바꾸기는 더 어렵다. 그리고 의견이 매번 새롭게 느껴지기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는 늘 한결같이 새롭고 늘 자신이 옳다고 당당히 말하며 그런 자신과 그 앞에 선 역사와 그를 지켜보는 국민을 믿었다. 같은 말을 해도 한번에 귀담아 듣지 못했으니 매번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아 가슴을 치며 울부짖기도 했지만 그는 왜 한 번도 멈추지 않았을까. 어쩌면 멈추려는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버지의 목소리로

#4. 다시 선거철은 돌아와 1997년 그해 말, 아버지는 전에 없이 나를 불러 앉혀다 놓고 김대중만은 찍지 말라고 진지한 한 표를 호소하셨다. 나는 한창 직장생활로 삼일이 멀다하고 철야를 강행할 때였고, 투표에 대한 생각조차 없을 시기였다. 당시 보수세력의 유력한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는 것이 아버지 의견이셨다. 아버진 한국전쟁때 18살의 나이로 군대에 자원입대 하신 참전용사였다. 중학교 교육을 일본에서 받은 지라 일어에 유창하셨고 일본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분이셨다. 훗날 특유의 언변을 장기삼아 일본을 대상으로 수산무역업에 종사하셨다. 그날 아버지의 논리는 유려하면서도 아주 인상깊었기에 십년도 더 된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당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모두 'DJ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기 때문에 역대 그분들은 모두 그를 죽이려 했고 어떻게든 그의 정치인생을 매장하기 위해 온 전력을 다해왔다고 하셨다. 아버진 부산시절 대통령 선거에서 DJ의 명연설을 들은 일이 있다 하셨다. 누구라도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열광할 수 밖에 없다고 회상하셨다. DJ와 경쟁구도였던 역대 집권자들은 한마디로 그가 눈에 가시였기 때문에 끝에 가선 전라도 촌사람에다가 학력도 변변찮고 용공이라고 몰아 부치는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 하셨다. 너무 긴 세월 억눌려 있었기에 차라리 처음에 박정희를 이겼다면 몰라도 그의 지지기반인 호남세력이 갑자기 폭발 할 것이고 그동안 집권하였던 권력자 집단과의 충돌로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며, 그것은 곧 북한이 원하는 바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즉,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대통령감인 것은 확실하나 이 나라의 정권과 국민은 아직 그를 대통령으로 맞이할 수준이 안 된다는 것이 아버지 결론이었다. 아버지에게 있어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경험한 국민적 패배감은 같은 나라의 국민에 대한 뿌리깊은 실망감으로 자리잡은 듯했다. 아버지의 '국민수준론'은 충격이었다. 전쟁에 대한 상처가 자신의 피해와 동일했던 아버지 세대들은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한 기운을 동일시 하셨다. 오랜 기간 반공을 독재의 밑거름으로 활용해온 정부하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김대중을 '대통령을 할 만한' 인물로 인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해 DJ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그날 밤, 아버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시며 오래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국민들이 갑자기 수준이 높아 진 것일까. 사람들은 왜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두려워 하였을까. 왜 그를 겁내하였던 것일까.

자서전을 써내려간 문체를 기억한다. 책에는 재임시절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수많은 연설문이 구어체로 소개되어 있다. 담담하면서도 치우치지 않았고 진실을 전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첫 번째 아내를 잃었을 때, 재혼을 하게 되었을 때, 동생과 누이,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자식이 감옥에 갔을 때, 오랜 지인의 부음을 들었을 때 등 개인적인 슬픔을 술회할 땐 짧고 강하면서도 문학적인 표현으로 마음을 저 멀리 하의도 고향 앞바다에 띄워 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늘 시국의 현장 속에 있으면서도 중간 중간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토로할 땐 외로움의 진액이 유난히 오롯해 보였다. 그렇게 홀로된 고독에의 허기를 민중을 향한 열정으로 다시 삶의 윤기를 빚어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인지 그의 목소리는 때론 허기지고 때론 윤기가 났다. 나는 그 목소리의 울림에서 어떤 오래된 '진정성(眞正性)'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짓이 아닌 정성된 목소리. 이것은 그의 업적과 대통령으로서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한사람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가 내뿜는 음역(音域)은 높고 낮음을 초월한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 기쁨과 환희 모두를 끌어안는 무한대 주파수의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파가 가닿는 곳은 정확하게도 우리들 가슴 한 가운데 였던 것이다. 때론 난파되고 때론 침몰되면서 거친 生의 파도를 헤쳐 나온 독특한 그만의 음률이 전해주는 목소리였다. 정치인의 목소리가 아름답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 진실 자체는 고통스럽고 추할 수도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전하는 마음만큼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진정성의 선물이었다.

그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인격적으로 존경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더 밝은 귀를 가졌던 것일까. 그들이 우리보다 더 열린 마음이었던 것일까. 나는 그가 국내 국외의 장소 및 남녀노소, 사회계층을 불문하고 연설장에서 답이 곤란한 질문을 받거나 화가 날만한 항의를 받을 때 보여주었던 기지와 재치, 혜안이 그때마다 무릎을 탁 칠정도로 대단해 보였고 내심 짜릿하고 통쾌할 때가 많았다. 상대를 기분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분명히 하면서 감동까지 선사하기란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실정에서 누구나 본받을 만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세계 정상들은 하나같이 그의 연설에 감동하며 정상회담에서 그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물론 자서전에 다소 좋은 결과의 내용만 언급되었을 수도 있고 결국 제3자가 아닌 자신이 집필한다는 주관성의 한계가 있음을 모르지 않으나 많은 객관적인 자료들에서도 사람들은 그의 말에 결국 설득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늘 이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감성적인 공감과 인간적인 감동이 수반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상들이 화답한 문건과 그들과의 대화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한나라 정상끼리의 외교적인 대화가 아니라 지면과 사진을 통해서도 서로의 인격을 깊이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정책과 전략이 탁월할 만큼 우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정책을 피력하는 진심어린 진정성에 정상들은 먼저 마음이 동화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상대 정상과 국가에 존경을 표시할 때도 틀에 박힌 교과서적 인사가 아닌 자신 스스로가 공부해 발견한 깨우침을 역사적인 의미를 부각해 상대국에 자긍심을 세워주는 모습, 진심으로 상대에게 공을 돌리는 겸허한 자세, 상대의 무례나 오해까지도 포용하려던 성심, 한 번의 만남이라도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따스한 태도등이 비록 그의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마음에는 흠뻑 동감하도록 만드는 그만의 능력이었다. 부시대통령도 한참 연장자인 그를 처음엔 변방의 촌놈처럼 무시하는 결례를 범했다가 훗날 다시 여러 방법으로 사죄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무례하기로 유례없던 미국의 대통령도 그를 향한 존경과 진심은 있었구나 싶었다. 왜 사람들은 그의 연설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그와의 대화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진심에 마음으로 감동했을까.

그는 어떻게 '자기 진정성'(authenticity)을 구축해 온 것일까. 아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변함없이 진정할 수 있었을까. 어릴 적부터 막연히 임금님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어온 그이기에 타고난 기질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의 진정성을 이루는 몇 가지 가슴아픈 피와 눈물의 흔적을 책을 읽어가며 찾아내어야 했다. 그는 사람을 마주할 때 자신이 그때까지 이루어온 온몸을 다 쓰면서 상대를 설득해 온 것은 아닐까. 즉, 머리로는 스스로 깨우친 지식을 전달하고 몸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적용하고 가슴으로는 우러나온 태도를 전함으로써 그때그때 마다 상대를 최선으로 배려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난항이 예상되는 정상간의 회담이나 연설이 끝난 후엔 그야말로 '젖먹던 힘을 다해' 애를 썼고 쏟아 부었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실제로 그는 어머님의 젖을 풍부하게 먹고 자랐을까...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대통령이 어디 있을까마는, 유독 아주 힘들 때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짜내어 그가 다해마지 않은 사력은 늘 진실과 정성의 극대치였다는 점에서 더 애닯고 끈질겨 보인다.

자기진정성의 밑바탕에 분명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자기 철학이 있었다. 이 점은 정세에 따라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과정에서 또 시류에 휘말려 뒤집기를 반복하는 오늘날 철학이 없는 수많은 정치인을 떠올려 보면 그 중요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가 철학자가 아닌 정치인에게 세상을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철학을 행동에 옮겨야 하는 대통령이 철학자와는 달리 특정한 시기, 특정한 사회에서, 특정한 권한을 가지고,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자서전 1권을 덮으면서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한반도의 가장 특정한 시기에 최고 난이도의 특정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한 시기 동안 그 특정한 임무를 위해 철학과 종교와 사회와 인간을 끊임없이 준비하며 마침내 목표를 성취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앞엔 언제나 발전을 요구하는 국민이 있었다. 대통령의 자기 철학은 언제나 국민이 요구하는 바와 사회발전 방향과 부합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투쟁이라는 근현대사의 모든 상처를 직접 겪으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방향성과 통일정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가 자주 설득하던 '아시아인의 민주주의 자질'은 내 학창시절 이십년 동안 어떤 선생님도 제시하지 못했던 신선한 이론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을 겪고 일본인 교사로부터 배운 것들, 전쟁의 상황에서 겪은 부조리, 지도자의 선택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독재가 불러온 폐해등을 몸소 체험하며 현장에서 익힌 실물경제 감각을 더해 익혀진 자기진정성의 탄탄한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한사람의 정책을 모방했다거나 선진국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수용해 독창적으로 고안해 낸 것이었다. 자신 안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生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방식을 선택하는 근원적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가, 역사와 국민앞에 당당한가였기 때문에 그는 누구를 만나도 어디를 가든지 '자기진정성'을 최대의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그를 말할 때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수식을 하고는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그는 대인관계에 있어 그 어떤 대통령보다 대화술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출신의 고졸학력을 가진 그가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품위를 지키면서 소신을 펼 수 있었던 배경엔 지독할 정도로 쌓아올린 풍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6년간의 감옥이라는 학교에 있을 때에도 독서의 자유와 사색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 자신도 오십 줄에 영어를 독학으로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은 감옥에 간 덕분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감옥에서 만난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은 IT 강국이라는 자랑스런 결실로 돌아왔다. 선거 패배이후 망명길에 올랐을 때에도 휴식이나 단절등의 비교적 쉬운 삶을 택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준비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유명한 정치인에게 수여하는 형식적인 명예박사가 아니라 정식논문으로 인정받은 박사학위를 따고 마는 그의 정열을 그저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하기엔 사람된 죄스러움이 먼저 마음을 가로 막는다.


운명의 상련相憐으로

#5. 아버진 만성신부전증으로 15년을 고생하시다 2004년 폐렴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내 어머닌 동창회에서 여흥중 우연히 누군가에게 뒷 발목을 걷어차인 후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말년에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셨다. 아버진 일주일에 세 번 신장투석을 하셨는데 가장 힘든 것은 투석할 때마다 찔러대는 대바늘도 아니고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음식도 아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죽는 그날까지 투석을 해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라 말씀 하셨다. 투석이 있는 날엔 하루 종일 우울하고 예민하셨다. 어머닌 내 결혼식 때 곱게 차려입고도 실수로 넘어지게 될까봐 어머님이 입장하는 순서에 온 신경을 쏟으셨다.

언젠가 그가 퇴임 후 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받는 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병으로 고생하신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팍이 저며들던 기억이 있다. 서재 뒷켠에 간이 침대를 마련해 놓고 집에서 투석을 받았다하니 그 병의 징후를 너무나도 잘 아는 가족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이다. 또한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서 재임기간 중 지팡이를 짚고 다녔기에 화면을 통해서 그러한 신체적 불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고 기억된다. 어머닌 유난히도 그렇게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목격할 땐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게 뭐냐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곤 하셨는데 아마도 같은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인으로서 늘 타인의 시선이 야속하고 두려웠던 마음이 그를 향해 투사 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책에는 재임중 다리가 너무 아파 중요한 행사에 혹시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늘 온 신경을 쓰고는 했다는 고백도, 신장투석도 너무 두렵고 힘들었다는 투정도 있었다. 자신의 신체장애에 대한 솔직한 글을 접할 때 마다 나는 거짓말처럼 같은 병치례를 하셨던 부모님이 자꾸 불쑥 튀어나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자꾸 미안하고 더 없이 감사했다. 투석환자이면서도 퇴임 후에 그렇게 전 세계의 초청을 마다 않고 운명하기 두달 전까지 강행군을 해왔다는 것이 국민으로서 감사했고, 그의 불편한 걸음걸이를 국민으로서 창피해 한 마음이 고개들 수 없을 정도로 죄송했다. 어느 날인가 TV에 유난히도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며 심하게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의 건강을 걱정하기 보다는 우리는 언제쯤 외모도 말투도 남부끄럽지 않은 젊은 대통령을 맞이해보나, 하는 식의 하소연을 직장동료와 나눈 기억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감옥에선 다리가 아파 제대로 무릎을 펴기도 힘들어서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는 고백에 목이 메어 한참을 숨 넘기기 힘들 때도 있었다. 아마도 평생을 사악하고 불순한 것들만 남들보다 몇 백 배로 걸러 오느라 신장이 망가 진 것이고 이미 인격적으로 흠이 없었던 그가 전 세계를 누비며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될까봐 그러한 그의 발목을 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의 다리는 지팡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통령쯤이 되면 훌륭한 전담의사도 있고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일반 환자들보다 비교적 편하게 투병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실은 대외적으로 대통령이라는 위치와 역할때문에 마음놓고 자신의 고통을 어디다 호소하지도 못하였고 의지만으로는 불가한 신체적 장애까지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모든 의전행사를 치루어야 했던 심적인 고통과 고독이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는 얄궂게도 내 아버지와 똑같이 급작스런 폐렴과 이어지는 패혈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운명했기에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을 생각케 하며 나를 복받치게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더욱 앞서 운명을 선택한 노무현 대통령이 야속했다고 한다면 그가 서운해 할런가.


형님된 심정으로

#6.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을 때 나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운명이었다면 그것은 곧 대통령으로 죽을 운명이었다는 말인가. 그날 나는 가게 테라스에 노란 풍선과 검은 리본을 장식했다. 바로 건너편엔 호프집이 오픈을 해 행사도우미들이 반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태어나 처음으로 동사무소에 민원 신고를 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우리가게 손님들은 노무현이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들려주니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둘씩 울기 시작했다. 생전 목소리로 부르는 '상록수'가 울려 퍼지자 어떤 사람은 테이블에 엎드려 목을 놓아 통곡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날 가게 매상은 평소의 세배였다. 그의 장례식 때 한명의 노구가 휠체어를 탄 채로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살면서 나는 저 사람의 저 가식없는 울음을 몇 번이나 더 TV에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모두들 예감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이번이 마지막이길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 어떤 슬픔은 자신이 겪었어도 여전히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그때 사람들의 울음을 보면서 슬픈 건 그의 죽음이 아니라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도 자살하는 나라에서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슬플 것이라는 자신들의 현실이었다는 걸 느꼈다. 그날, 우리는 모처럼 같은 마음으로 슬퍼했고 아무도 서로를 질책하지 않았으며 서로 다른 의견이 없음에 기꺼이 안도하며 가게 문을 닫았다.

만약 그들이 아직 생존해 올 초 있었던 천안함 사건이나 얼마전 시행된 북한의 3대 세습과정, 연이어 터진 연평도 도발을 지켜보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밤새도록 자신의 가슴을 쥐어 뜯으며 세계적인 시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상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올들어 심심찮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의 글들을 접할 때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표적인 사설로는 햇볕정책으로 인해 김정일 정권의 수명이 연장되었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초래했다는 강도 높은 비난도 있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불신 역시 그가 남긴 친북주의에 기인한다는 결론도 많았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가 아니었기에 이러한 정치적인 주장들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당시 상황만 비일비재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아왔다. 그런데 이번 자서전을 읽고 그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 그것은 대화를 누가 하느냐, 즉 일생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가장 짧은 대화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과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그가 6.15 공동 선언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끌어나간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당시 2000년 TV에서 두 정상이 손을 붙들고 감격에 웃음짓던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장 통일이라도 눈앞에 다가온 듯했던 흥분에 나도 모르게 소름끼치던 순간...화면을 통해 전해지던 김정일의 화통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그해 여름을 앞두고 우린 분명 IMF 를 단기간에 극복했다는 자부심과 벤쳐기업들의 신화와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열정만은 최고치였던 멋진 추억이 있었다. 책에서는 그가 햇볕정책의 정통성과 철학적 배경,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전 세계 정상들을 만나며 자신 있게 그들을 설득하는 장면들이 잇달아 소개된다. 김정일 위원장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대중을 존경해 왔다고 마음 한켠으로부터 인간된 정리를 강하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꼭 연장자여서가 아니라 그때는 김정일도 한국이 아닌 외국인의 시각으로서 그의 인품과 인생에 동지적 연민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김정일이 대화중 왜 '우리'끼리 대화해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자주적인 통일을 훼방놓느냐는 말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국제적인 시각이 부족했던 그에게 세계정세와 흐름을 알려주고 가르친다는 우월감보다는 자존심 상하지 않게 호소하며 김정일의 입장에서 어려운 점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했던 그의 노력이 결국 그의 마음을 열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세계언론은 김정일이 '대화할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전까지는 전혀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김정일이 세계에 당당히 대화가 가능한 지도자로 인식된 것은 바로 그가 대화한 상대에서 연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김대중과 대화했기에 대화가능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이지 아버지나 큰 형된 심정으로 같은 민족을 염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라 믿는다. 나는 비록 지면이지만 다시보는 남북 정상회담의 일련과정을 지켜보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노력은 아무래도 정작 당사자였기에 객관적이기 힘든 우리가 아닌, 세계가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더 오래 이해했다는 생각이다.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의 행보가 단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한 무리한 전략이었다고는 그때도 지금도 전혀 느끼지 않음이다. 세계가 인정한 것은 그의 민주화투쟁, 통일정책과 세계평화에 드러난 공적으로서의 결과와 기여도가 아니라 바로 변함없이 '자기진정성'을 버리지 않은 끈질긴 고집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가 김정일 뿐 아니라 각국의 정상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도 새삼 '만남'과 '대화'라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통감하고는 했다. 그는 애정을 가지고 추진한 정상과의 회담이 결렬되거나 국제 정세에 밀려 취소되고 난 후 항시 가정법을 사용해 '만일 그때 김정일이 클린턴을 만났더라면', '야당총재가 김정일을 만났더라면' 하는 식으로 훗날 역사의 전환점에 방점을 찍지 못한 그 순간을 땅을 치며 애통해했다.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나라라도 그 하나의 절대성과 인연은 나라와 나라사이 역사를 전환하는 대단한 계기가 되는 것이었고 그러했기에 그 당사자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는 결국 사안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요인이라는 다소 운명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상들은 왜 그를 존경했을까.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그와 대화하고 싶어 했을까.


고통이 소통으로

#7. 얼마전 평소 호감을 가졌던 한 유명인사가 뜻밖에 자살을 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야 할 이유를 신체적 고통이라 유언했다. 연예인, 일반인, 청소년 할 것 없이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적 수치를 보면서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많은 것일까' 다시금 생각했다. 누가 보아도 죽을 만큼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한사람이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살을 선택했는데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그보다 죽을 이유가 적었던 것일까. 2010년 현재 어느 기관에서 우리시대 위대한 영웅을 조사하였더니 1위는 노무현, 2위는 김대중이었다. 만약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노무현이 1위가 되었을까. 나는 다분히 자살 프리미엄 효과의 수혜를 받은 1위라 생각하기에 어쩐지 순위가 뒤바뀌었으면 싶었다. 죽고싶어도 살아낸 사람이 영웅이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싶었다. 죽어야 마땅할 이유로 친다면 그보다 더 한 사람도 얼마든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죽을 만큼의 고통으로 견주어 본다면 마찬가지로 삶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유나 고통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 때문에 살거나 죽는 것이 아닐까.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도 나름대로 공통의 의지는 함의하고 있었음이다. 문제는 의지의 향방이었던 것이다. 죽도록 죽고 싶은 의지가 죽도록 살고 싶은 의지로 선회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이상적 롤 모델이나 유명스타에 대해선 유독 절대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조그만 실수나 잘못, 약점과 단점을 발견하면 굉장히 너그럽지 못한 국민적 성향이 있다. 최근 연예인과 유명인사들의 잇다른 자살을 겪으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교과서적 얘기지만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롤 모델일 경우 스스로 ‘내적 힘’(Self-Strength)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힘은 절대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성공’의 경험을 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결과물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공감을 획득한 그들이기에 바로 그들의 입장에서 고통을 들어주는 ‘지지그룹’의 형성이라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보다 '내적 힘'이 강했던 그는 '지지그룹'이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정치인의 태생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 돌이켜보면 국민들 중에서도 오랜 세월 그의 정책이나 정치노선은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인격에 대한 지지만은 중단된 적이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것은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가 끝까지 국민을 믿었기 때문에 역으로 얻어낸 고귀한 '지지'였다는 점에서 결국 그 지지의 모태 역시 그것을 끌어낸 당사자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본보기라 할 것이다. 그에게 표면적인 '지지그룹'도 노동자에서부터 지도자까지 속 깊었을 뿐 아니라 안으로는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에서부터 여성, 지역사회, 인권단체,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까지 폭넓었기에 수직수평의 꽤 탄탄한 스펙트럼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는 납치, 망명, 연금등의 수차례 억압과 연이은 선거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심리적 소통장치가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또한 지지그룹에게 정치활동 외에도 학업이 되었건 연구가 되었건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내보임으로써 어쩌면 자신의 두려움, 나약함을 더욱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했기에 마땅히 죽고 싶었을 많은 순간에도 죽음을 향한 의지를 선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용기를 최대의 미덕으로 알고 진실에 근거한 웅변을 무기로 삼아 항상 설득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가 실패할수록 그를 지지하는 그룹은 증가했고 그룹이 증가할수록 그는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그도 92년 선거 패배후엔 용공조작에 좌우되는 국민을 원망하며 한없이 실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에게는 병실이라는 위선적 감옥과 독방이라는 고독의 감옥과 함께 국민이라는 양심의 감옥이 있었다. 그는 끝내 국민을 버리지 않았고 훗날 대통력 수칙엔 '국민의 양심과 애국심을 믿자'고 적을 수 있었다. 그가 빛을 발한 자기 진정성은 혼자만의 종교적 수행이 아닌 국민이라는 양심과 역사라는 진실을 향해 있었고 포기하지 않게 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새삼 더 크고 위대해 보였던 것은 아닐지.


국민의 이름으로

그는 '역사를 신앙으로 섬기고 정의를 믿었으며 진실이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추운 겨울동안에도 죽지 않는 인동(忍冬)의 세월을 이기고 꽃을 피웠다. 한참 유세중에 케네디의 피격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억울하다 했던가. 나는 무엇을 견디었던가. 돌이켜보니 나는 김대중이라는 역사를 견디기는 커녕 늘 외면하려고만 하였던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뜻과 같았으니, 그것은 제대로 된 국민이 아니었음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없음이 억울하고 원통한 내게도 어제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러했기에 대통령과 국민으로 헤어지고 이렇게 저자와 독자로 만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나자 헤어지는 내 오늘에 이제라도 뒤늦은 국민의 이름을 갖고 싶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아직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고 그곳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그가 믿었던 국민이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를 떠나서도 내 삶의 '자기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대답을 떠올리게 하는 장중한 독서였다. 역사와 국민앞에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하고자 했던 그는 내게 붉은 진정의 꽃을 선사했다. 우리네 삶이 진실을 우선가치로 삼기는 쉬워도 생활에서조차 우선순위로 두기는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가. 어쩌면 정치인으로서 유일하게 사회나 역사가 아닌 도덕교과서에 등장할지 모를 일이며 그 또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더불어 이제와 생각하니 누가 보면 창피 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낸 그 마음은 그동안의 내 인생에 대한 위로와 격려였던 것 같다. 나는 김대중이라는 한국의 제 15대 대통령의 인생과 업적을 돌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손에 이끌려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간과 공간속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촘촘히 들여다 본 것이었다.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이야기에 내 인생과 내 가족이 거기 있었다. 그 시간과 공간은 한국의 역사이었고 결국 우리들 인생과 가족의 이야기가 모여 국민이라는 역사가 되는 것이었다.

이제, 책상위 문신처럼 걸려있는 내 부모님의 사진을 올려다 본다. 그들도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신 애국자이었다. 반공과 독재와 지역감정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였던 그들, 나는 이제야 국민이었던 그들에게 인사한다. 부모님의 빈자리 만큼이나 그의 빈자리가 그리웁다. 무엇을 해도 무조건 내편이었던 부모님처럼 어떤 나랏일도 가장 뜨거울 그가 보고 싶다. 잠 못드는 그 새벽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큰일 앞둔 그의 한마디를 듣고 싶다. 넘어지고 그 다음이 더 두려운 절망의 아침에도 우리는 너를 믿어왔다 그 눈빛이 부시고 시리웁다. 가을 코스모스 벌판을 뒤로 그의 웃는 얼굴이 사무친다. 그래도 눈물이 난다. 어디선가 캠브리지의 짝사랑 로빈이 날아든다. 로빈은 내게 말한다. 가슴에 새긴 붉은 털이 우리 모두의 진정이라고. 당신의 가슴에도 뜨거운 깃털 하나 오롯이 자라나 그 붉은 이름으로 국민이라 새겨졌다고.

나는 국민이다. 역사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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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0-11-25 공감(26)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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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심판만을두려워한거인의삶



전라남도 땅끝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의 청년 실업가

그리고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운동가로 변신한

그의 노정한 삶의 이야기..

내가 살았던 1980년 기억이 없어, 유복했던 그 시절

하지만 시대는 그렇게 어두울 수 없었다.

두번의 대통령 선거를 기억하는 나에게 김대중 선생님은

그저 호남 지역 지도자일뿐 '우리가 남이가?'라는

경상도 방언에 휩슬려 그의 사람됨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오늘에야 읽은 그의 생애..

삼일 앞으로 닥친 시험에도 불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라면,

100페이지, 200페이지를 탐독하며, 그를 읽어갔다.

숱한 감시와 고독의 순간에도 자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채우려고 노력했던 '거인의 人生'


삶은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법이지만, 그것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끝없는 장정은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그가 꿈꾸었던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상, 그리고 지역주의가

없는 대한민국...그 가시밭길을 이제 바꾸어야 할 사람은

남은 우리들 그리고 남은 대한민국민이라는 걸 새삼 읽어낼 수

있었다. 영면의 삶으로 건너가신 그분의 궤적을 다시 짚으며,

깊은 감동에 대한 감사, 그리고 용기를 얻은 고마움을 이 글로

대신한다. 행동하는 양심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의 재림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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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어부 2010-08-25 공감(2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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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속에 살아온 우리를 깨우치는



과거 특히 경상도에서는 이글을 쓰는 나도 부산사람이다.

김대중컴플렉스가 있었다.

그의 출현으로 잔뜩 겁먹은 박정희진영의 용공논란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으로 이어지는 대통령선거의 단골메뉴였고, 특히 광주민주화 항쟁의 주도인물로 매도되어 사형을 선고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대중의 논란에서 내가 비교적 자유로워질수 있었던것은 개마고원에서 발간된 강준만의 김대중죽이기라는 책을 처음 통해서 였다.

그후로 비교적 균형적시각을 접했다고 자부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무거운 짐같은 것이 나를 짓눌렀다.

정말 왜곡시킨이미지가 무엇을 논하는지, 심지어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수상 당시에 축하하기보다는 로비를 통해 받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과 괴소문을 퍼트리는 이들을 직접보며 할말을 잃었다.

그의 자서전서두에 책의 집필목적이 분명히 나와있는데 진실된 역사를 우리후손에게 널리 알리고져 함이다.

현대사에 해방,전쟁,그리고 재건, 아이엠에프사태등 격동의 시간을 겪으며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고져 했던 대통령.

우리는 노무현,김대중대통령을 연달아 보내면서 참으로 운없는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든다.

그의 솔직한 가족사 예를 들어 그당시에는 흔했던 그의 모친이 아버지의 둘째부인이 었다는 사실등이 비교적 담담히 그의 일생을 풀어 놓는다.

1,400여페이지의 이두권의 책장을 마지막으로 덮으며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덜어놓은 듯한 느낌이며 잘못된 역사속에 살아온 우리를 깨우치는 일갈의 외침이기도 하다.

행동하는 양심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그분의 말씀을 깊이새기며 아이들에게 이책을 꼭 읽게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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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hn22 2010-08-24 공감(2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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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는 대통령.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게속 존경해왔던 대통령 바로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쪼금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읽으면서 그런생각이 사라지더군요.
Rui 2010-08-09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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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정치사의 큰 별 김대중



사실 이 책을 예약판매한다길래 살까 말까 고민을 했다. 사고는 싶은데 가격이 약간 있었기에.

그러다 주말에 구매하면 DVD를 주기로 하길래 구매하기로 결심하고 신청해서 받아보았다.

나는 20대 중반이기에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김정일과 만나

악수를 하던 남북정상회담의 순간은 선명히 기억한다. 분단 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냈고 대한민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던 한국 정치계의 자랑이었던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그를 친북좌파, 용공분자, 빨갱이로

몰아세웠지만 그의 행적과 자서전을 돌아볼 때 그는 결코 빨갱이가 아니었다. 그저 북한을 우리의

적이 아닌 동포며 우리가 돌봐야할 대상으로 보았던 민족애를 지닌 따뜻한 지도자였으며,

남북평화통일을 주장했던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서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자신을 포장하는 경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검토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수차례의 생사의 고비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인간 김대중이 살아온 길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듯이 이 책은

그냥 단순한 김대중 개인의 자서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서슬퍼런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군부독재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힘썼던 그의 정치 투쟁을 보며 한국 정치사의 발전과정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책을 읽다 감명스러운 부분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의 진심을 몰라주던 언론과 국민들이

야속하게 느껴졌고 아직까지 지역주의가 남아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보수가 득세한 이 나라 대한민국의 앞날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는

있으려나? 영호남의 지역 대립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등등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우리 정치의 문제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도 꿈꾸던 남북통일은

어떻게, 언제 이뤄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명박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는 적어도

40년은 퇴보했다. 어린아이가 먹는 사탕을 달라고 할 때 좋은 말로 설득해서 그걸 받아야되는데

이명박 정부는 어린아이의 손에서 사탕을 그냥 빼앗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니 남북관계가 발전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에서도 주장하는 남북평화통일에 대한 3단계

방법론은 현실적으로도 가장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다. 평화통일을 이룩해 남과 북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함께 잘사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책의 분량이 두 권 합치면 약 1200쪽정되 되기에 솔직히 읽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몰입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그 동안 모르던 김대중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고

걱정했던 훌륭한 지도자, 물론 그가 한 점의 과오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남북평화를 위해 또한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점은 그가 그렇게도

원했듯이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남아있다.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 후세의 역사가 언젠가는 당신의 노력과 역할에 대해

올바로 평가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당신께서 강조하셨듯이 무엇이 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며 살겠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무엇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끝까지 국민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 국민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의 정신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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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oh78 2010-09-07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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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결말의 소설을 읽고싶은가?



장편의 길지만 짧은, 소설을, 몇시간을 약간의 미동도 없이 소설에 빠지고 싶은가?

이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외국인도 물론 김대중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행여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소설로써 받아들일만큼 흥미로운 책이기때문이다.

너무 한번에 많은것들을 상상하며 분노와 좌절, 희망과 안도 등.. 을 느꼇기에 글로 표현하자니 너무 막연해진다.

5만 5천원.. 할일되서 5만원가량으로 책을사기에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훗날 내 자식들에게 이 책을 가르쳐 줌으로써 김대중을 가르치는게 아닌,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신념, 인생관등을 가르치기에 너무 좋은 책인것 같다.

훗날 내 자식들이 이책을 읽고 나에게 막연히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까 한다.

이책의 장르는 소설인가요?

그때가 되면 시대에 굴복하지않은 민주주의 영웅들이 근현대사에 낱낱이 기록되있을 때일텐데, 그날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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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2010-08-13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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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삶과 불굴의 의지..



자서전을 쓸 정도의 인물이라면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우여곡절을 이겨냈을 것이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이상의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책이 1,000 페이지가 넘는데도 여느 소설만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한국 현대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일제시대 서당 교육을 받은 그는 징병에 끌려나갈 뻔 했고, 6.25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민주화에 투신해서도 투옥, 망명과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긴다.

타협하면 쉽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는 신념을 지키며 끝까지 싸웠다. 서문에서 그는 무수히 흔들렸음을 고백한다. 책은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그는 그 말을 무겁게 실천했다.

그가 뛰어난 점 중에 하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했다는 점이다. 정권을 비판은 쉽다. 그러나 집권해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은 더 어렵다. 그는 감옥에서, 망명지에서도 끊임없이 독서를 하고 지식인들에게서 배웠다.

'준비된 대통령'이 그가 대통령이 될 때 선거 프레이즈로 기억한다. 정말로 그랬다. 위급한 경제위기 속에서 노사정 위원회를 만들었고, 강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며 빠르게 경제를 안정시켜갔다. 뜨거운 감자였던 의약분업이나 국민연금 통합, 기초생활보장 등의 정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 강대국 속에서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했다. 통찰력, 설득력과 끈기로 미국과 일본, 중국의 지도자를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다.

서문과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삶의 황혼에서 담담하게 인생을 반추하는 서문은 참 명문이다. 마지막 장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이다. 정치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후회없이 잘 살아낸 것으로 보인다. 역시 위대한 삶이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쉽게 타협하고 사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가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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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azy 2015-11-3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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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의 30대는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지독했구나!



오랜 기다림과 설레임 끝에 구입하게 되었고 이제야 다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 김대중대통령님의 자서전을 읽어보니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니 인생을 의미와 내용을 갖고 채워나가는 일은 결코 그리 만만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20대 초반에 해운업과 신문사를 경영하며 초년출세를 한 것에서, 그리고 30대에 들어서자마자 그 동안 쌓은 부와 성공, 사랑하는 아내, 여동생의 죽음, 걸출한 이름 등 목숨을 제외하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조리 잃는 것을 보며 참으로 독특하고 별나고 그리고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님께서 대통령에 당선이 되는 여정이나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 각 분야에서 큰 일을 해 내셨는지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님의 30대 삶이 가장 감명이 깊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의 부족이나 운이 없거나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시의 한국의 힘이면 무조건 옳은 것도 다 뒤집어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를 승자로 둔갑시켜버리는 눈물나는 현실에서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도 실업의 고통, 경제적 고충, 사회적 오해나 비난을 감수하지 못하고 귀한 생명을 끊습니까! 하루에도 몇 차례씩 터지는 유명인들의 자살소식에 평범한 사람들의 목마른 삶은 더 초라해지고 이렇게 해도 살아야되나를 몇 번씩 생각하게 만드는데 저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자서전을 펼쳐서 대통령님께서 그 비참하고 암담하며 통곡이 나오는 30대를 어떻게 견뎌오셨는지를 읽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님은 그래서,

이런 시대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 이 책을 기꺼이 남겨주신 것 같아 많이 울었고 깊이 생각했고 눈을 감으면 간단히 외면하는 현실이 아니라 내 발로, 내 손으로 이 무거운 책임을 조금이라도 감당하기 위해 마음을 강하게 단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 번 더.

소중한 생명을 버리기 전에 지금의 현실보다 몇 십배나 더 무시무시하고 지독한 세상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끝내 승리의 삶을 사신 대통령님의 인생을 만나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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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맨 2011-06-10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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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신간서적

나도 10대였던 때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기에 공부와는 다소 담을 싸놓고 지났는데,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니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좋은 충고를 해주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중이다. 굳이 책가방을 메고 대학에 다니지 않더라도,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사이버강좌를 들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많아졌으니, 나와같은 나이 많은 학생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공부는 때가 있는 것 같다는... + 더보기
명진짱 2010-08-03 공감 (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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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 마저도

자서전이나 전기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두께의 압박을 이겨내려면 ‘위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수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자서전 같은 경우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날 밤, 내가 미국의 누구누구를 만나 간곡하게 설득했다. 이런 설득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이러저러한 위기를 내가 막아냈다. 그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좀 뜨악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 안다. 자서전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분의 성격이 그런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애정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니까, 굵직... + 더보기
단발머리 2021-03-04 공감 (3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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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넷, 사르트르, 지마, 체 게바라, 김대중



도박장에 가보질 않아서 '잭팟'의 느낌이 어떤 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번주 신간들을 보며 '이건 잭팟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렸다(분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최근 신간 제목을 빌려 조금 점잖게 말하면 '버스트'. 뭔가 터졌다는 것. 하루키의 <1Q84> 얘기가 아니다(물론 그건 하루키의 '잭팟'이다). 이번주 언론 리뷰에서는 다뤄지지 않을 듯싶은데, 일단 리처드 세넷의 <장인>(21세기북스, 2010)이 번역돼 나왔다(그러고 보면 나 혼자 느끼는 '손맛'일 수도 있겠다).



작년에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 나왔을 때부터 눈여겨본 타이틀인데, 예기찮게도 번역본이 빨리 나왔다. 전작들에서 그가 강조하던 '장인정신'이란 게 어떤 것인지 세계적 석학의 솜씨로 확실하게 보여줄 듯싶다. 맛보기 소개는 이렇다.
저자는 장인의 모습을 단지 목공이 하는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이름 없는 벽돌공, 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리눅스 프로그래머, 건축가,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장인 분석을 통해 장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장인의 신(新)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결국 저자의 목표는 별다른 보상 없이도 일 자체에서 깊은 보람을 느끼고 세심하고 까다롭게 일하는 인간, 즉 우리 안에 잊힌 장인의 원초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아, 그리고 사르트르의 <사르트르의 상상계>(기파랑, 2010). 번역서 제목이 그렇게 돼 있으니 사르트르를 두 번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책과 짝이 되는 <상상력>도 <사르트르의 상상력>(기파랑, 2008)으로 나왔었다. <변증법적 이성비판>(나남, 2009)이 완역된 마당이어서 더 바랄 게 없다 싶었는데, 그의 상상력 연구를 집대성한 책까지 번역돼 나오니 감지덕지다. 일단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2007)을 읽을 수 있겠다는 것. 전에 책을 좀 읽다가 사르트르의 상상력론과 대결하는 대목에서, 공정하게 읽자면 사르트르의 책을 먼저 봐야겠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는데, 마침내 때가 온 셈이다(빨리 다른 핑계를 찾아야겠다).



혹 상상력이란 주제에 더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뒤랑의 제자이자 '전도사'이기도 한 진형준 교수의 <상상력혁명>(살림, 2010)과 <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살림,2009)를 참조해도 좋겠다. 아무래도 번역서보다는 읽기가 편하니까. 역시나 뒤랑의 제자인 서정기 교수의 평론집 <신화와 상상력>(살림, 2010)도 소위 '신화비평'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문예학자 페터 지마의 신간 <모던/포스트모던>(문학과지성사, 2010). 책은 어제 신촌 홍익문고에서 사들었는데(다른 책들은 들어오질 않았었다), 지마의 책은 하도 오랜만이어서 '감회'까지 느껴진다. 번역은 그간에 지마를 거의 전담해서 번역해온 김태환 교수. 나는 가장 먼저 소개됐던 <문학 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87)를 비롯하여 지마의 책을 거의 대부분 읽은 듯싶다(오래전 읽이지만 그의 방한 강연도 들었다). <문예미학>(을유문화사, 1993) 같은 책은 대학원의 필독 세미나 교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데리다와 예일학파>(문학동네, 2001) 이후 거의 10년 만에야 번역서가 나온 셈이니 격세지감이 있다. 한때 서점을 '주름잡던' 그의 책들도 상당수가 절판되거나 품절된 상태이고. <모던/포스트모던>은 그런 가운데 나온 것인데, 원저는 1997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1년에 2판이 나왔다. '생명력'이 있는 이론서라고 봐야겠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 총결산'이 비록 요즘 유행과 맞는 건 아니지만 시류를 거슬러서 일독해봄직하다.



그밖에도 네그리의 <예술과 다중>(갈무리, 2010), 캘리니코스의 <무너지는 환상>(책갈피, 2010),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문화과학사, 2010) 등 쟁쟁한 명망가의 책들이 이번주 신간이고 모두 보관함에 들어가 있다.



체 게바라 평전의 결정판이라는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플래닛, 2010)도 이번주에 나온 책이고(무려 1176쪽 분량이다),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김대중 평전>(시대의창, 2010)도 이번주 신간이다, 라고 적고 보니 오류다. <김대중 자서전>(삼인, 2008)과 혼동했다. <평전>과 <자서전>이 동시에 나오는 바람에 같은 책으로 착각했다(<자서전>을 고른다면서 <평전>을 클릭했다).



하여간에 이 정도면 '잭팟'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물론 '옆에서' 그런 게 터졌다는 얘기일 뿐이고, 그게 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라 '나의 횡재'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투자가 좀 필요하다. 대다수 직장인들의 휴가가 시작된다는 내주에 한두 권 정도 챙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사르트르나 지마 같은 경우야 아무래도 전공자들 손에서나 대접받을 터이지만, 나머지 책들은 충분히 유혹적이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일이 흔치 않다...

10.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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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0-07-30 공감 (50)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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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 목포에 오면 마음이 아파 나는..

니체가 ‘희망은 사악한 것이다
그 때문에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것은

고통이란 것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 아닐까?

故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고초를 당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갔는가

그 고통의 시간을, 패배의 시간을 온전히 어떻게 견뎌왔을까?

세 번이나 자신을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였다면 삐져서라도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을텐데

故 김대중 대통령은 그렇지 않고 다시 한번 대중의 선택을 기다리고 결국은 선택을 받게된다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한게 아니라
우리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분은 너무 빨리 왔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故 김대중 대통령의 수난과 고통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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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1-16 공감 (2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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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정치를 정말 싫어한다. 관심도 별로 없다. 투표도 잘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날마다 승질나서 참기가 힘들다. 나라꼴이 말도 아니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 자존심도 없는 윤씨를 보고 있으니 너무 화가 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 모르나 이 분은 꼭 알고 싶다. 단 한 번도 깊이 들여다 보지 않았던 분이다. 삼김시대의 주역이자 대통령까지 오른 분이다. 다른 어떤 지식도 없다. 단지 예전에 교도소에 들어가 영어 공부를 해서 서툴긴 하지만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 중고로 구입했다. 저렴하게 구입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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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22-10-28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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