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국민연금, 이스라엘 ‘전쟁 국채’ 400억 원 매입했다 2026.08.12

참세상

[단독] 국민연금, 이스라엘 ‘전쟁 국채’ 400억 원 매입했다

이스라엘 주식·채권 7,698억 원 보유

국민연금공단이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불어난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대거 매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해외채권 종목별 투자 현황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국민연금은 이스라엘 정부 국채 약 404억 4300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재개된 2023년 10월 7일 이후 발행된 국채는 약 327억 5300만 원어치다.


국민연금이 2025년 말 보유한 이스라엘 국채 현황. 원자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스라엘 국채는 ‘집단학살 국채’

이스라엘 정부는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늘어난 자금 조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왔다. 이스라엘 재무부 정부부채관리단은 2024년 3월 80억 달러(당시 약 10조 5000억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 것에 대해 “전쟁으로 커진 자금 조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공공기금을 상대로 이스라엘 국채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어져왔다. 영국 공공연금 공동운용기관 보더투코스트는 위탁운용사 핌코가 2920만 달러 상당의 이스라엘 국채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의 항의를 받은 끝에 이를 전량 매각했다. 아일랜드 전략투자기금도 2025년 7월 이스라엘 국채를 모두 처분했고,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인권침해를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와 국영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활동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1967년 이래 군사 점령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국제사법재판소가 결정했고, 이어 2024년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에만 불법 군사 점령을 끝낼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불법점령을 유지하는 것을 원조·지원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며, 국민연금의 이스라엘 국채 투자에 대해 “정부에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은성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또한 “국민연금의 주식·채권 투자는 ESG 원칙과 수탁자 책임 원칙을 함께 지켜야 한다”며 “환경·사회·지배구조에 악영향을 미치는 곳에 투자하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2주기 집회. 참세상 박도형 기자.

이스라엘 국채 매입, 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국채는 위탁운용사에서 매입했으며, “글로벌 운용사에 돈을 맡기면서 특정 투자를 ‘하지 말라’고 강제하기에는 그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스라엘 국채를 매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벤치마크 안에 이스라엘이 들어와 있으면 저희는 사고, 빠지면 파는 것”이라며 “특별한 의사결정 때문에 이스라엘에 투자했다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것(벤치마크)을 꾸준히 따라가는 형태”라고 했다.

벤치마크는 운용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미리 정해둔 기준지수다. 운용사는 이 지수의 구성과 수익률을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냈는지 평가받는다. 국민연금 해외 국채·정부 관련 채권의 벤치마크는 세계 각국의 국채 등을 묶은 ‘블룸버그 글로벌 종합지수(Bloomberg Global Aggregate ex-Corporate)’다.

다만 벤치마크는 구성 채권을 반드시 모두 사야 하는 의무 매입 목록이 아니다. 게다가 국민연금 규정상 해외채권은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방식으로 운용된다. 실제 투자 종목과 비중은 국민연금이나 위탁운용사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저희는 실행 부서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벤치마크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 대표들이 모인 기금운용위원회”라며 “위원회가 벤치마크를 부여하면 이를 잘 따라가면서 그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저희 목표”라고 했다.

국채뿐 아니라 이스라엘 기업 채권·주식도 매수

국민연금은 약 167억 6700만 원에 달하는 이스라엘 회사채도 보유하고 있었다. 2025년 말 기준 보유 현황에는 테바 계열사 회사채 151억 8100만 원, 뱅크레우미 8억 7100만 원, 뱅크하포알림 7억 1500만 원 등이 공시됐다.

이스라엘 기업 주식 보유액은 더 컸다. 2025년 말 공시에서 확인된 이스라엘 기업 주식 보유액은 약 7125억 8400만 원으로, 1년 전보다 17.7% 늘었다. 이 중 테바 1842억 9300만 원, 뱅크레우미 1890억 3200만 원, 뱅크하포알림 1325억 900만 원 등 세 기업의 주식만 5058억 3400만 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의 2025년 말 해외주식 보유 종목 중 이스라엘 소재 법인 주식 추출. 참세상 박도형 기자.

국민연금의 이스라엘 소재 법인 주식 평가액 변화. 참세상 박도형 기자.

KPMG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테바는 이스라엘군에 의약품과 장비를 기부하거나, 군 의약품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등 이스라엘군(IDF)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기업이다. 이스라엘 은행인 뱅크레우미와 뱅크하포알림은 불법 정착촌과 관련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으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있다. 국민연금의 이스라엘 기업 주식 상위 3개 투자처가 모두 군 지원 또는 불법 정착촌 사업과 연결된 셈이다.

ESG 한다는데…성과평가는 ‘해당 사항 없음’

국민연금은 2025년 말 해외채권 위탁운용액 45조 5000억 원을 ‘책임투자 적용’ 자산으로 분류했다.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책임투자 정책·지침 보유 여부와 관련 보고서 발간 여부 등에 가점을 준다는 이유다. 기금운용본부 해외채권실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된 ESG 정책을 수탁자책임실이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 전사적으로 내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공시한 ‘책임투자 관련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 및 현황, 성과평가 기준’을 보면, 2025년 말 ‘책임투자 관련 해외채권 위탁운용사 성과평가 기준’은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돼 있었다.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는 ESG 정책 보유 여부에 가점을 주면서도, 선정 이후에는 이스라엘 국채 매입 등의 투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공시한 2025년 해외채권 ‘책임투자 관련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 및 현황, 성과평가 기준’ 중 일부

국민연금은 한국 시민들의 노후자금을 재원으로 한다. 따라서 위탁운용사나 벤치마크에 따른 투자였다는 설명만으로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특히 해외채권 위탁운용액을 책임투자 적용 자산으로 분류하고도 위탁운용사 성과평가 기준 자체가 없었다면, 책임투자 원칙이 실제 운용 과정에서 작동했는지도 쟁점이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한국 시민들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중동 전쟁에 연루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은성진 사무국장은 “아무리 위탁운용사가 채권을 매입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원칙과 ESG 원칙에 따라 매입이 이뤄졌어야 한다”며 “위탁운용사의 주식·채권 투자를 평가할 때 해외에서 전쟁범죄에 쓰이는지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 “투자 과정이 ESG 요소와 책임 원칙을 준수했는지 살펴보고, 그렇지 않다면 필요할 경우 투자자금을 빼야 한다”며 “단순히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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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한국노동운동사,김윤환,김낙중, 1970

노동자의 책 - 한국노동운동사,김윤환,김낙중,일조각

한국노동운동사
김윤환,김낙중 지음
출판사 일조각
초판일 1970


출판일
페이지수
ISBN
조회수 3,195
목차


제1장 한국노동운동사서설
제1절 한국노동운동사연구의 의의 = 1
제2절 한국노동운동사연구의 대상과 방법 = 4
제3절 한국노동운동사의 시대구분 = 6


제2장 임금노동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대두 발전
제1절 임금노동의 창출과 노동운동의 발생 = 8
제2절 일본자본의 진출과 노동쟁의의 앙양
1. 임금노동자계급의 성장 = 16
2. 식민지하의 노동조건 = 19
3. 노동쟁의의 앙양 = 21
제3절 일제식민지하 조직적 노동운동의 대두 발전
1. 조선노동공제회와 노동대회 = 34
2. 조선노동연맹회 = 39
3. 조선노농총동맹 및 조선노동총동맹 = 43
4. 조선공산당과 신간회 = 53


제3장 일본제국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의 심화잠복
제1절 일본제국주의의 위기와 노동자상태 = 61
제2절 일제의 탄압강화와 노동운동의 심화
1. 노동쟁의의 폭력화 = 69
2. 노동운동의 비합법 적색노조운동화 = 82
제3절 일제의 군사팟쇼화와 노동운동의 잠복 = 103


제4장 민족해방과 노동운동의 폭발적 등장
제1절 해방직후의 정치경제적 혼란과 노동자상태 = 111
제2절 노동운동의 좌경화와 전평 = 116
제3절 대한노총과 노동운동에 있어서의 우익의 형성 = 125


제5장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노동운동의 정돈
제1절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노동운동의 방향모색
1. 대한노총철도연맹의 대교통부 투쟁 = 135
2. 조선전업노조의 조합결성을 위한 투쟁 = 138
3. 대한노총의 내부분열 = 143
제2절 6·25 전란과 노동운동의 진통
1. 조선방직쟁의 = 148
2. 대한노총의 정치도구화 = 154
제3절 노동법의 제정과 민주노동운동의 기초 = 159


제6장 민주노동운동을 위한 과도적 준비
제1절 전후복구건설과 노동자상태 = 165
제2절 노동조합의 성장과 노동쟁의의 격화 = 171
1. 1953, 4년의 주요 노동쟁의 = 174
2. 1955년의 주요 노동쟁의 = 176
3. 1956년의 주요 노동쟁의 = 177
4. 1957년의 주요 노동쟁의 = 182
5. 1958년의 주요 노동쟁의 = 184
6. 1959년의 주요 노동쟁의 = 185
제3절 대한노총의 파쟁과 민주노동운동의 대두
1. 대한노총의 어용화와 파벌투쟁 = 190
2. 전국노협의 결성과 민주노동운동의 대두 = 200


제7장 한국노동운동의 전망
제1절 한국노동운동의 기본성격 = 213
제2절 한국노동운동의 전망 = 217

주요참고문헌 = 221
기본 책소개

책소개 (노동자의 책 입력)

일제하로부터 70년도까지의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분석 정리하여 체계적인 노동운동 통사를 서술한 책. 특히 미지의 일제하의 노동운동을 소상히 밝힌 책.미군정하 대한민국수립후의 노동운동에 관해서는 김낙중이, 제1장,제7장 일제하 노동운동에 관해서는 김윤환이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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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 요약 및 평론: 김낙중의 해방 후 노동운동사를 중심으로

<1. 도서 개요 및 저술 배경>

1970년 일조각에서 출간된 《한국노동운동사》는 대한민국 노동운동 연구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을 정리한 김윤환의 전반부와 해방 이후의 노동운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김낙중의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대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의 실증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집필된 이 책은, 해방 이후 반공주의와 국가 주도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은폐되었던 노동운동의 궤적을 학술적으로 복원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2. 김낙중 저술 영역 요약: 해방 후 한국 노동운동의 전개>

김낙중은 해방 직후 혼란기부터 1950년대 이승만 정권기, 4·19 혁명기, 그리고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조기 산업화 국면에 이르는 한국 노동운동의 굴곡을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정밀하게 해부한다.

첫째, 해방 직후 좌우 대립과 노선 갈등(1945~1948년)이다.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자주 관리 운동과 정치 파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전평이 정치투쟁 중심의 급진적 노선을 걷고 미군정과 대립하면서 미군정과 우익 진영의 탄압을 받았다. 이에 대항해 우익 청년단과 결탁한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조직되었다. 김낙중은 이 시기를 노동조합이 자주적 경제투쟁의 기반을 확립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적 정치투쟁의 도구로 전락한 비극적 출발점으로 규정한다.

둘째, 1950년대 대한노총의 관영화와 민주화 투쟁(1948~1960년)이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노총은 자유당 정권의 하부 정치 조직으로 변질되어 정권 안보와 선거 동원에 이용되었다. 이러한 어용화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 노력은 이어졌다. 1950년대 후반 대구 섬유노동자 투쟁, 광산노조 투쟁 등을 거치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국노협)’가 결성되어 어용 집행부에 맞선 노동운동 민주화 투쟁이 전개되었다.

셋째, 4·19 혁명과 노동운동의 분출(1960~1961년)이다. 4·19 혁명은 억눌렸던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움직임과 함께 교원노조, 언론노조 등 전문·사무직 노동조합 결성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불과 1년 만에 5·16 군사정변을 맞이하며 강제 해산 및 재편의 길을 걷게 된다.

넷째, 1960년대 산업화와 국가 개입적 노동체제(1961~1960년대 후반)이다. 군사정권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산별 체제로 강제 개편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령과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권 행사를 엄격히 통제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정책 하에서 국가는 노동운동을 산업화의 동원 수단으로 묶어두려 했다. 이에 따라 현장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익 대변 기능은 극도로 제약되었다.

<3. 비판적 평론>

<장점 및 학술사적 의의> 김낙중의 서술은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 나열을 넘어 노동운동을 한국 현대 정치사 및 경제구조의 변천과 직결시켜 분석한 구조적 통찰을 보여준다. 당시 팽배했던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해방 직후 전평의 활동과 1950년대 전국노협 운동 등을 방대한 1차 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노력했다. 또한 노동조합이 관제화·정치 도구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해부함으로써,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역설했다.

<한계 및 시대적 제약> 유신체제 이전인 1970년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법과 당시 정치적 검열의 제약 속에서 전평 및 좌파 진영의 노동운동에 대한 본격적 평가나 내재적 한계 분석에는 일정 부분 제약이 따랐다. 아울러 주로 상층 조직의 변천과 제도적 법률 변화, 노정 관계에 분석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장 현장 내부의 비공식적 저항이나 여성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노동 현실에 대한 미시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결론> 《한국노동운동사》의 김낙중 서술 부분은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의 통제에 맞서 노동자 주체성을 모색하려 했던 과정을 체계화한 고전이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민주노동운동의 역사를 이해하고 오늘날의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본질을 되돌아보는 데 필수적인 이론적·사료적 나침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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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 김윤환·김낙중, 일조각, 1970

— 1,000단어 요약·평론: 특히 김낙중이 담당한 해방 이후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먼저 자료상의 한계를 밝혀둘 필요가 있다. 이번에 첨부된 PDF는 책 전체가 아니라 <표지·목차·책소개> 3쪽이다. 따라서 아래 평론은 본문에 없는 구체적인 주장이나 문장을 만들어내지 않고, 목차가 보여주는 논리구조와 책소개에서 확인되는 김낙중의 집필 범위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책소개는 김낙중이 <미군정하 및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노동운동>을 집필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1. 이 책의 성격

『한국노동운동사』는 김윤환과 김낙중이 공저하여 1970년 일조각에서 출판한 약 220쪽의 노동운동 통사이다. 범위는 일제강점기의 임금노동자 형성에서 시작하여 해방,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이승만 정부 아래의 노동조합 운동을 거쳐 196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목차를 보면 단순한 노동조합 연대기가 아니다. 전체의 기본 틀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식민지 자본주의의 형성 → 노동자계급의 성장 → 노동운동의 조직화와 탄압 → 해방과 폭발적 노동운동 → 좌우 대립 → 국가에 의한 노동운동의 통제 → 민주노동운동 재건의 가능성>

이라는 역사적 서사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1970년에 출판된 책이면서도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해방공간과 1950년대 노동운동>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221쪽 가운데 제4장이 111쪽, 제5장이 135쪽, 제6장이 165쪽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약 90쪽 가까이가 해방 이후를 다룬다. 이 부분이 바로 김낙중의 문제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영역으로 보인다.


2. 김낙중 부분의 출발점: 해방은 노동운동의 해방이었는가

김낙중이 담당한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제4장 제목이다.

<민족해방과 노동운동의 폭발적 등장>

그 아래에는

  • 해방직후의 정치경제적 혼란과 노동자 상태
  • 노동운동의 좌경화와 전평
  • 대한노총과 노동운동에서의 우익의 형성

이라는 세 절이 놓여 있다.

이 목차만 보아도 김낙중이 1945년 해방을 단순한 민족적 경사로 서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해방과 동시에 식민통치는 끝났지만 경제질서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일본인 기업가와 관리자가 떠나고 산업 생산과 유통질서가 붕괴하면서 노동자들은 실업·인플레이션·식량난 등에 직면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폭발하고,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이 급속하게 등장한다.

김낙중에게 중요한 것은 이 순간부터 노동문제가 <민족문제와 정치문제>로 변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노동자와 일본 자본·식민권력의 대립이 비교적 분명했지만, 해방 후에는 문제가 복잡해졌다.

<누가 새로운 한국의 국가를 장악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노동운동 내부로 들어온 것이다.


3. 전평과 대한노총: 노동운동이 좌우 정치의 대리전이 되다

제4장에서 가장 중요한 대립은 <전평 대 대한노총>이다.

김낙중은 먼저 <노동운동의 좌경화와 전평>을 배치하고, 다음에 <대한노총과 노동운동에 있어서의 우익의 형성>을 다룬다.

이 배열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해방 직후 노동조합운동은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적 노조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임금과 노동조건뿐 아니라 국가건설, 친일청산, 미군정에 대한 태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문제까지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빠르게 좌우 정치투쟁에 편입된다.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즉 전평은 좌익계 노동운동을 대표하게 되었고, 이에 대항하여 우익계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즉 대한노총이 등장한다.

이 구조는 김낙중의 이후 사상과 연결해서 보면 특히 흥미롭다.

김낙중은 훗날 남북의 이념적 적대를 넘어 민족의 공존과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인물이 된다. 그런데 그의 초기 노동운동사 연구에서도 이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좌익의 존재 자체>나 <우익의 존재 자체>보다 <좌우 대립이 사회운동을 압도한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나타난다.


4. 제5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노동운동의 정치적 종속

김낙중 부분에서 가장 비판적인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 제5장이다.

제목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노동운동의 정도>

이며 세부 항목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1. 대한노총철도연맹의 대교통부 투쟁
  2. 조선전업노조의 조합결성을 위한 투쟁
  3. 대한노총의 내부분열
  4. 6·25 전란과 노동운동의 진통
  5. 조선방직쟁의
  6. 대한노총의 정치도구화
  7. 노동법의 제정과 민주노동운동의 기초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표현은

<대한노총의 정치도구화>

이다.

이 말은 초기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이 단순히 자유로운 노동조합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국가권력과 집권 정치세력의 정치적 필요에 이용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것은 좌익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읽어야 한다.

즉 김낙중의 서술구조에서는 한편으로 전평이 정치적으로 좌경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우익 노동운동인 대한노총 역시 독립적 노동운동으로 성장하기보다는 국가와 정치권력의 도구가 된다.

이렇게 보면 김낙중의 판단은 단순한 좌익 노동운동사관과는 조금 다르다.

<좌익 노동운동의 정치화도 문제였지만, 반공국가 아래의 우익 노동운동 역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는 양면적 구조가 나타난다.


5. 한국전쟁은 노동운동의 역사에도 결정적 단절이었다

제5장에 <6·25 전란과 노동운동의 진통>이 별도의 절로 들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 현대사를 정치사 중심으로 보면 한국전쟁은 남북의 전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사에서 보면 전쟁은 노동운동의 조직과 인적 기반 자체를 파괴한 사건이었다.

특히 해방 직후의 노동운동은 좌우 정치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단순한 산업 생산의 중단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전쟁과 극단적인 반공체제의 형성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가능성 자체를 크게 축소>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전평 계열이 제거된 이후 남한에서 허용되는 노동운동은 반공국가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김낙중이 이후 한국의 분단구조를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왜곡하는 근본 원인으로 바라보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이 부분은 그의 지적 형성과도 상당히 중요한 관계를 가진다.


6. 제6장: 이승만 시대의 노동운동과 어용화

김낙중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은 제6장 <민주노동운동을 위한 과도적 준비>이다.

여기에는 1953년부터 1959년까지 거의 매년의 주요 노동쟁의가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두 항목은

<대한노총의 어용화와 파벌투쟁>
<전국노협의 결성과 민주노동운동의 대두>

이다.

여기서 김낙중의 역사평가는 아주 분명해진다.

그가 이상적으로 보는 노동운동은 <좌익 노동운동>도 아니고 <국가가 관리하는 반공 노동조합>도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핵심어는 <민주노동운동>이다.

즉 노동조합은 정당이나 국가권력의 부속물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자율적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을 단순한 사회주의 노동운동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김낙중에게 노동운동의 핵심 문제는 <자주성>이다.


7. 김낙중의 후일 사상과 연결해서 보면

이 책은 김낙중의 훗날 저술과 함께 읽을 때 더 흥미롭다.

그가 나중에 강조한 평화·민족·통일·자주성의 문제와 『한국노동운동사』 사이에는 일정한 연속성이 보인다.

그 구조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 <식민지 지배 → 노동자의 종속>
  • <해방 후 좌우 대립 → 노동운동의 분열>
  • <분단과 전쟁 → 정치적 선택 공간의 축소>
  • <권위주의 국가 → 노동운동의 어용화>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사람과 사회조직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 점에서 훗날 김낙중의 통일론과 초기 노동운동 연구는 전혀 별개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통일사상에서 남북한 어느 한 국가의 승리가 아니라 민중이 전쟁과 국가대립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처럼, 노동운동사에서도 노동조합의 핵심은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느냐보다는 <정치권력에서 독립하여 노동자가 자기 문제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였다.

이것은 제가 목차와 김낙중의 후일 사상을 연결해서 내리는 해석이며, 첨부된 세 쪽에 김낙중 자신이 이렇게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8. 이 책의 강점

첫째, 노동운동을 한국 현대정치사의 주변사가 아니라 중심적인 역사로 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둘째, 해방 이후 좌익 노동운동만을 이상화하지 않고 전평의 <좌경화>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대한노총의 <정치도구화·어용화>도 비판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셋째, 1953~1959년 노동쟁의를 해마다 추적한 것은 1950년대를 단순히 <전쟁·이승만·반공>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적 저항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구성이다.

넷째, 이런 역사적 과정 끝에 <민주노동운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에 김낙중 노동운동사관의 규범적 지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9. 그러나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1970년에 나온 책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좌경화>, <어용화>, <민주노동운동> 같은 용어 자체가 강한 평가적 성격을 지닌다. 노동자들의 실제 생활세계, 여성노동자, 지역별 산업 차이, 노동자 개인의 경험보다 조직과 정치노선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노동운동을 <진정한 민주노동운동을 향한 발전과정>으로 해석하면 결과적으로 역사를 목적론적으로 읽을 위험도 있다.

오늘날의 노동사라면 국가·정당·노조 지도부뿐 아니라 공장 안의 일상, 가족생활, 여성과 청년노동자, 비정규·일용노동, 노동문화까지 훨씬 폭넓게 살펴볼 것이다.


10. 김낙중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중요한 이유

제가 보기에는 『한국노동운동사』는 김낙중의 많은 저작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초기 지적 자화상>으로 읽을 수 있다.

후기의 김낙중은 흔히 <남북통일운동가>, <평화운동가>, 혹은 논쟁적으로는 <북한과 접촉한 인물>이라는 정치적 범주 안에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 앞선 김낙중의 출발점이 <노동자와 민중의 자율성>이라는 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다음 세 표현이다.

  • <전평의 좌경화>→ 노동운동이 좌익정치에 종속되는 문제
  • <대한노총의 정치도구화·어용화>→ 노동운동이 우익국가권력에 종속되는 문제
  • <민주노동운동의 대두>→ 어느 쪽 정치권력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 사회운동의 모색

이 세 가지를 한데 놓으면, 김낙중의 사상에는 상당히 일찍부터 <좌와 우 어느 국가권력에도 인간과 민중을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의식이 훗날 <남한도 북한도 아닌, 민족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는 평화적 통일>

이라는 그의 독특한 통일사상으로 발전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노동운동사』는 단순한 옛 노동사 책으로 읽기보다는, <김낙중이라는 사람이 왜 훗날 분단체제와 국가권력을 넘는 평화·통일론에 도달했는가>를 보여주는 초기 자료로 읽을 가치가 상당히 크다.

다만 이 결론을 확실하게 입증하려면 현재의 3쪽짜리 자료가 아니라 <제4~6장 본문 전체>를 읽어야 한다. 이번 PDF에는 목차만 있어 김낙중이 각각의 사건을 실제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북한·공산주의·미군정·이승만 정권을 어떤 언어로 기술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제4~6장 본문>을 구할 수 있다면,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 및 김낙중의 자전적 기록과 대조하여 <1970년의 김낙중에서 후기의 평화통일론자 김낙중으로 사상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가장 흥미롭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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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회 - YouTube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회
법률방송
7,330 views  Aug 12, 2026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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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말기, 일본의 역사를 뒤흔든 새로운 젊은 세력 ‘지사(志士·시시)’가 등장합니다.
존왕양이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도전한 이들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며 격변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사카모토 료마 등 훗날 메이지유신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인물들도 이 흐름 속에서 성장합니다.
개국과 쇄국, 막부와 천황 사이에서 갈라진 일본은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번 《한국인의 탄생》에서는 메이지유신을 움직인 ‘지사’들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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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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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예를 들어서 철학, 또 예술, [음악] 어, 과학, 기술 이런 말을 그
단어들을 이제 영어의 어, 필소피, 테로지, science스, 아art스
이런 거를 번역을 했는데 그 번역을 한게 일본 사람들이었다고 [음악] 말씀을 드렸죠. 후쿠사이키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쓰는 단어 중에 어 또 하나 있는게 뭐냐면 지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애국 지사 할 때 많이 쓰는 그 열혈 지사라고 했을
때 그 지사라는 말 자체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인데 이거는 외국어를
번역하려서 그런게 아니라 막부 말기
메이주신을이 일어날 때에 그 당시에 나왔던 굉장히 특이한 계층의 젊은
그야말로 지사들을 일컬어서 처음으로 지사 일본말로 CC시라고 읽컫기 시작한
겁니다. 그니까 굉장히 특정의 인간형이고 그 인간형이 바로 어
메이지 유신을 [음악]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우선 그
[음악] 시시 지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를 지지라고 읽컫는지
지사를 하고 읽컫는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서 같이 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이인우스케가 막부 말기에 이제 그 다이로 대로 임명이 되고 그리고
강력하게 전왕위 파들을 억누르고 그을 숙청하고
어 그러면서 계국을 밀어붙이죠. 미국하구의 조약을 밀어붙입니다. 그
요시다 쇼인 같은 요시다 쇼인이 길렀던 소과 손주구에서 길렀던 그런 제자들 그다음에 사스마에 있는 어
여러 젊은 어 사무라이들 이런 사람들이 격렬하게
계국에 반대하죠. 서양 오랑캐들하고 어 교류를 하기 시작하는 거를 그
국교를 맺고 나라를 열고 하는 거에 격렬히 반대합니다. 그러니까는 어
페리즈독이 도착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서양의 무력 앞에서 맞설 수가 없으니까 독구가와 막부는 열기로가
결정을 하고 근데 여는 것이 너무나 큰 변화기 때문에 다이어들한테도 다
알리고 교도의 조종한테도 아 이런 거가 있는데 이런 요구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제 여론 수렴을 하죠. 그러니까 이제 여론 수렴을 하니까 그전까지는 절대로
막부가 남의 여론 다른 나이묘들의 여론 천왕의 여론 이런 거 의견 이런
거에 전혀 신경을 안 썼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든 결정을 해야 되니까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한번 다이어들 하고 천왕부에 의견을 물었는데 이게 이제
벌집을 수어 놓는 거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막부의 말이라면 꼼짝없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고 따라만 했던 사람들이 어
자기한테 의견을 물어보니까 이제 그때부터 의견 개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국론이 완전히 양분이
됩니다. 계곡을 하자라는 사람들과 절대 계곡을 하지 않으면 하면 안 된다라는 이제
조항 양입파들이 나오는 거죠. 그렇게 되니까 바구 후에는 박구 후에서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이인 아우스케라는
다이어를 데려다가 다이로라는 일본 역사상 세 명밖에 나온 적이
없는 정말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정권을 주는 그런 자리를 이인하우스케라는 사람한테 이제 주는
거죠. 그래서 이인하우스케는 그 권력을 이어받자마자 전권을 받자마자
어떡합니까? 이거는 계곡을 해야 된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밀어붙여서 그때
이제 요시다 쇼인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있는 존황양이 즉 즉 계국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하고 조약을 맺어서 안 된다라고 하는 그 세력들을
완전히 숙청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안세이 대옥이라는
엄청난 숙청 사건을 일으켜 갖고는 전국의 전왕양입파들 숙청을 합니다.
그래서 마크후가 역시 예전에 그 힘을 권력을 다시 잡고 총 통치를 제대로
하는가보다 했는데 밑도번에 있는이 조항양이파 사월이들이
에도에서 만나고 퇴청하는 이인 아우스케를 급습을 해서 암사를 해
버립니다. 엄청난 사건이 터짐으로써 다시 한번 바꾸는 강력한 지도자를
잃고 다시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정정은 극도의 혼란에
다시 빠지게 됩니다. 이인이나우스케 같은 높은 사람도 죽였으니이
젊은 조항양이파 사무라이들은 그다음에 이제 눈에 보이는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자기네가 봤을 때
천황을 모욕한다라든가 자기네가 생각하는 그러한 전왕위 정책에
어긋나서 뭐 왜곡하고 교류를 하자라든가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은 전부 다 다니면서 암살를
하고 하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애도 교도 이런 데가 완전히 그냥 암살의
천주로 변합니다. 우리가 가끔다가 사무라 영화들 보면은 거의 사무라 영화들은 대개가 바로 지금
말씀드리는이 막부 말기의 그 혼란기 그러니까 계국을 해야 되냐라는 것과
외국을 유지를 해야 된다라는 그 세력들 간의 다툼 속에서 그 낭인들이
론인들이 젊은 사무라이들이 상대편을 죽이고 암살하고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랬던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애도 곁도 이런 데는 공포 휩싸이고 밤에 다니면
안 되는 그런 거리가 되고 그럽니다. 칼찬 사무라이들도 무서워서 어 다니길
거리고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치한 부제의 상황으로 빠지기
시작합니다.이 일을 버리는 사람들. 그러니까는
나라에 공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번에 다이며 자기한테 공직을 내려 준
것도 인무를 부여해 준 것도 아닌데 자기네 생각에 이것이 천왕한테 충성한
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위해 옳은 길이라고 자기네가 생각해서
행동에 옮기는 그래서
굉장히 과격한 사상을 갖고 아무런 책임은 없이
자기네 생각에 따라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젊은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그 사람들을 일컬어서 지사 일본말로 시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이 주로 젊고 아무런 공직도 없고
그러니까는 자기 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애도로 갈 수도 있고 교도로 가서 거기에
가서 다른 번에서 온 자기랑 비슷한 그런 젊은 사무라이들하고 교류를 하기
시작하고 연대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 우리가 공유하는 사상이
있구나. 그 공유하는 사상이 전황이. 그러니까 천왕을 모시고 막 막부이
외국하고 서양오랑캐들하고 교하는이 막부를 타도하자라는 그 뜻을 모으는
그 집단이 지금 지사라는 집단들입니다.이 지사들은요. 당연히 국정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히 불만이었죠. 자기네가 전고 우리가 제대로 아는 거 같은데 아이 저 절 나이 맞는 대신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막부에 있는 이런 사람들은 전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나라를 위해서
좋은게 뭔지 모른다. 언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항상
박후의이 정책 그다음에 자기네가 속했던 번의
다이며들의 정책 소극적일 이때가 이제 혼란스러우니까 어느 쪽으로 나라가 가야 될지 모르니까
다들 높은 사람들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죠. 서로 눈치를 보고 이게 어느
쪽으로 갈 건지 대국 쪽으로 갈 건지 계속 외국을 유지하는 쪽으로 갈 건지
그리고 바크후의 관력이 유지될 건지 아니면 갑자기 부상하기 시작한 교도의 천왕한테 천왕부의 세력이 쏠릴 건지
어느 편을 들어야 될지 그런 계산하고 있는데이 젊은 지지들은 시시들은 절대 그런 계산 안 하고
자기네가 생각하는 전왕이 예 사상으로 모든 것을 행동해 오기 시작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부가 깊었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어떤 특정
뭐 철학이나 이걸 공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사회고 다까머리 그렇죠. 결국은 나중에 유신을 메이지
유신을 일정적인 역할을 하는 삼걸 유신 삼걸의 하나인
사이고 다감리 같은 사람은 왕 왕양명 양명하게
심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지행합일
생각하는 거하고 행동이 같아야 된다라는 그 왕영의 사상을 깊이
받아들이고 그래서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어 지사의
상징이 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시시들은 맹자를
중시하고 충, 효, 정, 성 이런 거를
철저하게 따르는 또 그러한 그 지사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거는이
사람들은 이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사유가 중요했던 것도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서 모든 거를 빨리빨리 행동으로 옮겨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은 그것을 곧바로 생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들입니다. 알아서 방향이 어떻게 됐든지간에
완전히 서로가 어느 쪽으로 갈지 몰라서 바꾸고 천왕 보고 다이며드리고
아무도 결정을 내리고 과감하게 어느 한쪽으로 가지 못할 때에 나라의
나라를 한쪽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과격한 행동을함으로써 실제를 실제로
나라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바로 또이 지사들입니다. 그리고 이제이 지사들은
젊은 사람들은 어 구왕위파들이 다 그랬듯이 이거는
세국을 유지하려 그러면 어떡합니까? 미국하고 결전을 불사해야 되는 거죠. 미국이 됐든 이제 뭐 영국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프랑스도 나타나는데 서양 오랑캐들하고 일전을 버려야 된다라는
이제 그 의식이 완전히 투해지고 그러면서 어떡합니까? 야, 우리가
천왕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되니까 무수를 갈고 닦아야 된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일본 전국의 도장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죠. 우리가 이제
그 사무라 영화들에서 많이 보는 그 수많은 도장이 생기고 하는게 이때 생깁니다. 왜냐면에도 에도가에도
280년 동안 평화의 시기에는요. 임진회란 끝나고 그리고 새끼가 하라
전투 끝나고 도구가와가 딱 권력을 잡은다고부터는 전쟁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술을 연마하고 한 거는 커녕 사무라이들이 점점 점점 무술을
무술의 특기마저도 없어지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가난한 사무라이들은 어떡합니까?
자기 칼을 팔아서 농사 농부가 돼 버리는 경우들도 허다했고 그죠. 몰락하는 사무라이들이
생기고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전까지는 굉장히 여러 번에 다양한 번뇌 있었고 그 번에서 맨
말단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사실 별 역할도 없었고
다른 번에 갈 일도 없었고 그랬는데 지금 막부 말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서 막부가 전국적으로 여론을 수렴하기 시작하고 서로가 교류가
시작되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계국이냐 세국이냐 냐 전왕이냐이
문제를 가지고 뭉칠 수가 있는 이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이념으로 뭉치는 사람들이에도 아니면 교도로 가면서 같은 지리적 조건 속에서
같은 이념을 가지고 같은 지향점을 갖는 그런 젊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으로 나눠져 있고 박가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다 같은 일본이다. 이게 우리가 한 나라다. 한 운명
공동체다. 그리고 그 운명 공동체의 수장. 그 운명 공동체의 우두머리
상징은 도구와 막부가 아니라 뭡니까? 천왕이다."
라면서 일본이 하나로 엮어질 수 있는 270개 번호로 나눠져 있었던 그
일본이 하나의 국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뭉치기 시작하는 그런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조항위파
지사, 조항양입파 시들의 등장입니다. 대표적인지지 지지사이
도사의 지사들입니다. 도사번이라는게 바로 사건모토도 료마의 그 번입니다.
자, 그러면이 도사의 지지들이 지사들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이 이 사람들이 1861년 10월에 처음으로 도사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우리가 이제 지사라고 부르게 되는 그 사무라이들이 모여서
맹약을 서약을 하는 당당한 신주가 신주라는게 신의 땅 하늘이 내 우리
신성한 황토가 오랑케의 모욕을 받아 예로부터 전에
내려온 대화혼 야마토다마시도 이제는 이미 끊어지려고 한다.
천왕께서는이를 깊이 한탄하시거늘 오랜 평화로운 천왕의 치세에 인순과 위타의
풍석에 젖어서 누구 한 명도이 마음을 분발해서 황국의 화를 제거하려는
사람이 없다. 왜람때에도 우리 노송이
도사의 어 다이며입니다. 야마오치요도 당시에
이제 다이며죠. 우리의 노손께서는이를 근심하시어 관리들 즉 박후와 언쟁을
하셨는데 오히려이 때문에 죄를 얻게 되셨다. 이처럼 고귀한 생각을 가지신
분을 어째서 그런 죄에 빠뜨리시는 것인가?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황국이 머지하나 좌임 즉 오랑케
풍속을 따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저 대화혼을 분발해서 이성 형제 모든
형제들 서로가 다른 형제들을 결합시키고 한 점에 사심 없이 서로
협력해서 국가의 부흥에 만분의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어떻게
올바른 말씀을 하신 우리의 다녀를 저렇게 대할 수가 있느냐. 이거는
뭔가 정신이 썩었다. 너무 오랜 평화를 유지해오면서 지금 우리의 야마도 정신이 썩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를 지킬 수 없고 이렇게 해서는 천왕을 제대로 보필할 수 없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이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근기 즉 태양을 그린 천왕 군대의 깃발입니다. 나중에 이제 그 실제로
그 보신 전쟁이 났을 때 도크가와 천왕군이 어 싸울 때 그때 사이고닷까머리가
천왕군을 이끌면서 천왕군의 깃발로 내세기했는데 그게 이제 금기입니다.
금기가 한번 나붙기면 단결에서 물불 가리고 뛰어들 것이다. 이에 신명께
맹세하노니 위로는 황제의 성의를 바들고 우리 노송의 뜻을 이으며
아래로는 만민의 근심을 제거할 것이다. 만약이 가운데 사심을 갖고
다투는 자 있으면 신의 분노가 벌을 내릴 것은 물론 동지들을 모아놓고 할복할 것이다. 각자가 이름을 적어서
넣어둔다. 그러면서 혈서를 씁니다. 이런 지지의
운동이 벌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사들의 운동이 각 번마다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계국을 옹호하고 도구가 막부를 지지하는 다이어 밑에 있었던 젊은
사물아들은 어떡합니까? 자기의 번주가 잘못됐다. 그러면서 다이며들이 잘못했다라면서 자기의 번을
탈출을 해서 애도로 가고 교도로 가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다른 번에서 온 조왕양이들 지지들하고
교류를 하면서 그러면서 자기네가 천왕의 호위병 천왕의 근위병
그러면서이 조항양이 파 대신들을 자기네가
보호한다라든가 이런 역할을 자하면서 애도하고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애도하고 교도가 공포의 도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사들은요
굉장히 대부분은 아주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월급도 없는 거고 아무것도 없는 거고 젊은이들이 그냥 뜻만
있어서 뜻으로 와서 무작정 상경을 해서 에도나 교도에 가서 그냥
여기저기 빌붙어서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렇죠. 그러면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대표적인 성공한 이런 지사들이 사고닷가머리 기도가 여시 오쿠보도시미치 뭐 이런 사람들이지만은
대부분은 실패하고 일찍 죽고
그러면서 굉장히 비극적인 어 종말을 맞이합니다.
또 많은이 지사들한테는 젊은이들한테는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대의명분 정말 나라를 위해서 자기내가 직접 뭐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국가의 방향을 틀 수 있는 그런 역할 할 수 있다라는 그러한 자부심과 그
흥분 이런 것이 이제 그 섞이면서 어
진짜 그야말로 삶을 만끽을 입니다.대 도사의 대표적인
지사 사까모토리오마 그 유명한 어 그 시 시 시바리오다라고 쓴 료마가
간다라는 그 소설의 주인공 어 그리고 그 연속국 유명한 일본 연속국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 사과머또 료마는 그 당시에 아직이 지사로 본인도 이제
그 에도에 갔다가 교도에 갔다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그 다른 번에서 온 지사들하고
교류를 하기 시작하고 살고 닷가머리하고 만나고 기도 다과요씨 조요씨 기도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고
교류하고 이제 그러면서 뭔가를 도모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 들어갔을 때 그 살고 있을 때 자기 노의한테
편지를 쓰는게 남아 있습니다. 그 편지 이렇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소위 황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의리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천황폐학께 권력을 다시
돌려드리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같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천황 폐악께서
마음을 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천왕폐하의 조종을 자신의 한이나 부모들보다 앞세우 있다. 자신의
친척들과 자신의 한을 번을 우선시하지 않고 어머니와 부인 아이들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채물을 져버린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처에 있는
시대상에 비춰볼 때 바보 같은 관려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 현혹된 부모들은 우리의 한 우리
가문 우는하면서 아들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만들고 있다.
가족이고 부모고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라다. 그러면서 무조건 자기같이
신분이 낫더라도 천왕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그 역할은
사실 오히려 우리가 우리만이 할 수 일이다라고 지금
자기 누이한테 어 자기의 뜻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뭐 구체적인 방향성 있는 것도 아닌데
전왕위는 그냥 구호입니다. 그러니까는 사실 생각해 보면 나중에 우리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이런 지사들이 토대를 이루어서 근대 국가를 근대
개혁을 해서 근대 국가를 만들었게 메이주신의 역사지만이 당시만 하더라도이
실제로 명치신을 일으킨 메주 의신을 일으키는이 지사라는 젊은이들한테는
자기네가 그대 국가를 만든다라든가 뭐 그래서 결국은 사무라이 계급도
폐지되고 신분 계급이 폐지돼서 사무라이 자체가 없어지는 어떠한 그런 근대 국가를 만든가 이런 생각은
추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네 같은 사무라이들이
다만 천왕한테 충성을 해서 천왕을 받들어서 천왕이 막불을 쫓아내 버리고 막불을
해임시키고 천왕께서 직접 나라를 통치하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당연히 뭐 이제 천왕이 직접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하면 자기네가 거기서 밑에서 보필를 하겠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그 전왕의 운동에 에
뛰어는 것이 이제이 지사들이었습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음악]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 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메이지 신이 가져온 그러한 변역 그러한 그것 메이지신을 통해서
만들어진 일본의 그 근대 국가는 지사들이 원하던 것도 아니고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만일에 알았다라면 알았더라면 이런 나라를 만든 것이다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콧방귀] 그렇게 열심히 조항양의 운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전통적인
다만 막부가 아닌 천왕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나중에 나중에 또
하나 대표적인 사건모드려오마 말고 또 이제 정말로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던 사이고 다까머리라는 그 지사는 실제로 자기가
사스마의 사무라이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켜서 그 사람들을 그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천황의 군대가 돼서 도덕구가 막부의 군대와 싸워서 보신 전쟁에서
결국 이겨서 천왕의 왕정 천왕이 친정을 할 수 있는 왕정복고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제 그다음의 문제가 뭡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기내가 세웠던 그 메이지 정부가 뭐를
합니까? 신분 철패를 해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일 신분 철패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게 누굽니까? 사월이들이죠. 특권이 없어져 버린 거죠. 그러니까는
자기네가 왕정복고를 하고 그리고 천왕 밑에서
천왕군이 돼서 그러면서 천왕을 보필해서 그러면서 이제 살아가려고
그렇게 거사를 했던 건데 웬걸 그 천왕이 명령을 내려서 사무라이를 없애
버리는 거죠. 그랬을 때에 그 고민을 끌어앉는게 사고 닦까머리고 결국은
자기도 정부직을 사임을 하고 사스마로 내려가서 그때에 그 지사들 그
사무라이들이 사회고한테 와서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무슨 근대 국가는 무슨 근대 국가입니까? 왜
우리 사무라이들을 없니까? 하면서 사스마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세인
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다들 높은 사람들은 흐릿한 상황에서 우왕장하고 있을 때 어쨌든
본인들의 생각에 맞는다라는 조항양이의 인념을 끝까지 관철시키면서 결국은
실제로 왕종복가 이루어지게 만들면서 가장 큰 희생타가 되는 것이 바로이
지사들 사무라이들입니다. 아예 그 계층은 사라집니다. 근데 살아이지기
전에 막부 시대에서 메이지우신 시대로 넘어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사과 머토리오마는 실제로 메이저신을 보지 못하고 암사를 당하고 사회거 닷가머리는 메이저신을
주도했는데도 결국은 자기가 세세운 정부와 싸우다가
자결을 할 수밖에 없는 그 비극이 바로이 지사들의
비극입니다. 자, 그럼 이제 지사들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젊은이들은
막부의 힘이 약해지니까 인하우스케가 암살이 되고 막부의 강력한 지도자가 상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막부도 이제
어떻게 해올지 잘 모르겠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막부 시대 내내
내침을 받았던 가장 바깥에서 중앙정치에 전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던
대표적인 도자마변인 번 도자마 번인 조수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전에 말씀드렸듯이 조수는 사스마도 그렇지만 사실은 굉장히 탄압을
받으면서 독구가와 막부 시절 내내 탄압을 받으면서도 여러 경제적인 이유
그다음에 또 사무라이 숫자가 유난히 많았던 이유 등등으로 인해서 굉장히 역동적이고 경제력이 강하고 그리고
군사력까지도 갖추고 있었고 개항의 계국의 시대가 오니까 굉장히 먼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지금 정치적인 공백까지
생기니까 조수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특히 조수도 그렇고
사스마도 그렇고 원래 오랜 전부터 천왕부랑
천왕가랑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혼도 이어지고 있었고
그랬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는 막부의 힘이 약해지니까이
조주 같은 경우는 사스마도 그렇고 교도의 천왕부랑 손을 잡기 시작을
합니다. 내통을 하기 시작하고 긴밀하게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요수가
궁극적으로는 조왕양이 파의 근거지가 되지만
먼저 움직였을 때는 이때 제일 먼저 움직였을 때는 사실은 공무합체론 그러니까
막부하고 천왕이 협력을 하는 고부가타이라는 그 이론을 먼저 들고
나오는게 사실은 조슈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어떻게 보면 온 온권
정책으로 나오는 거였죠. 조수의 사무라이 중에 나가이 우타라는 젊은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이 사람이 1861년에 자기 조수의 다이며한테 자기
다이며한테 상소를 옵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요. 우리 조슈는 황가하고 굉장히 특별한 관계를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대나이묘다. 근데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박후하고 막부하고
천왕이 교도의 조종이 이렇게 서로 다 가지고는 어떻게이 나라가 국란을
극복할 수 있느냐. 300년에 가까운 독구가와 의화에도 시대가 이어져 왔고
그래서 그 박구후가 그래서 무기력해진 것이고 어떻게서든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그래서 정말로 속된 마음을 품고서
외세와 구력적인 조약을 맺는 것이 맺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이제
애국자들이 분노하고 있고 지지들이 분노하고 있고 존항이 바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렇다 그러면서 그렇게 돼 갖고
최고을 할 거냐 개곡을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갖고 지금 허송 세월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지 않느냐 나라가
우왕저항하고 있지 않느냐 자 그런데 존황양파들은 무슨 뭐 천왕한테 다시
권력을 주자 그래서 왕종 복고를 하자 이런 얘기도 하지만은 자기가 봤을 때는 지난 300년간 천왕이 박구
마코프한테 모든 거를 맡겼지 않느냐. 국사를 맡겼던 거 아니냐. 그러니까는 외세가 외세 관련된 모든 것도 사실은
마크후프가 다뤄왔던 것이고 여태까지. 그리고 실제 외국 사람들은 천왕이 있는지도 모르고 바쿠후가 일본의
왕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정도인데 그거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냐.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제 와서 양이들하고
맺은 헤르스 조약 조약들이 다 있는데 이거를 일방적으로 파괴하자라는
전항양입들의 얘기는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 그러느냐?
1번이 우선 항해수를 익히고 바다로 나가야 된다.이 사무라이들이
육지에서만 싸우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바다로 나가야 된다. 항해수를 익히고
군대를 기른 다음에 무역을 통해서 나라를 부흥시키고
그리고 황국의 군사력을 전 세계에 그런 식으로 육군과 해군과 이런
힘을 과시해야 된다. 즉 부국 강병을 제대로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종이 천왕이 바쿠보고 이러한
전략을 추진할 것을 명하고 박후프는 그것을 실행해 옮기면은 그러면 양의와
조약을 맺었던 것이 오히려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돼 버리고 전화혹이 돼 버리는 것이고
그리고 바구후는 오랑캐를 무찔러야 된다는 그 본업 원래 그래서 대장군
아닙니까? 쇼근이라는 것이 천왕이 오랑캐드를 무찔르라고 임명하는
장군이지 않습니까? 그 본연의 임무를 완수할 수가 있게 되고 천왕의 권위를
만방에 떨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면은 즉 천왕하고 마크후가 힘을 합쳐서 천왕의 명령을
내리고 마크후가 그것을 옮기는데 뭐냐면 나라를 열어서
해군을 기르고 육군을 기르고 무역을 증대시켜서 국부를 일으키고 그때 가서
박국한테 외스를 쫓아내라 그러면 그러면 이건 진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천왕부 좋고 박부 좋고 일본
전체한테 좋은 일이 아니냐라는 의견을 올린 얘기입니다. 천왕하고
박후가 손을 잡아야 된다라는 그래서 국란을 극복해야 된다는이
나가의 우타의 이론이 소위 공무합체 이론이 되는 겁니다. 고부가타이라는
이름이 여기에 이제 그 고부가타의 이론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게
바로 나가의 우타의이 상소에서 나오는 겁니다. 어 조에다면 머리는
그래 좋다. 그러면 너 한번 교도로 가서이 제한을
네가 상소에서 얘기했던이 제안을 공부 합체론을 한번 교도에 교도의 조종에
가서 상진해 봐라. 뭐라 그런지 봐라. 그래서 나가이가 실제로 교도로
갑니다. 교도에 가서는 귀족 산조를 만납니다. 그때에
천왕부와이 조수하고의 연락을 맺는 그 연락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산조는 나가이의
그 안을 보고서는 어 이거 괜찮다. 그래 갖고 천왕한테 물립니다. 그래서 천왕도 아 좋다
그러면서 1861년 6월 2일 아예 나가이로 하여금 그러면
네가 이거를 가지고이 안을 지금 우리한테 얘기했던이 안 너희 다이묘한테 얘기를 했고 이제 우리
천왕한테 얘기를 했으니까 이거를 그러면 막부에 가서 얘기를 해 봐라.
그래 갖고 나가이가 에도를 향합니다.
그리고 에도로 가서 박구후한테 막부한테 올렸더니 막부도 이건 너무
좋다. 이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 근데 문제는 뭐냐면
천왕도 좋다 그랬고 아니 우 조의 다묘도 좋다. 좋다 그랬고 천왕도
좋다 그랬고 막부도 좋다 그랬습니다.이 공부 합체 이론. 그래서 다 합의를 했습니다. 문제가
어디서 터지는지 아세요? 조수 내부에서 터집니다. 조수 내부에서 어디서 터지냐면 조수 내부의
조항양입파에서 터집니다. 그 조항양입파. 그러니까 아니 왜 저
서양 오랑캐하고 국교를 튼 [목을 가다듬음] 그 막불을 쫓아낼 생각을 하지 않고
쫓아내고 천왕한테 신정을 하시라고 왕종 복구를 시켜 드릴 생각을 안 하고 무슨 둘이 협력을 하도록 하자는
거를 하자 그런다라고 하는게 그게 조항 양위파들입니다. 근데 그 조항 양위파 조수의 조항 양위파의 대표가
누구냐면 바로 기도다카요입니다. 즉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세
명 유신 삼걸이라고 하는 그 삼걸 중에 조슈를 대표하는 기도
다카요입니다. 나머지 둘은 이제 사이고 다가 머리하고 오쿠보도시미치 사스마 사람들이죠. 근데 거기에
이제이 사 조주의 기도가 이때 부상을 하는 겁니다. 스승 요시다 쇼인네
속과 손주구를 그죠. 그 조그만 마을에 있는 자기네가 태어난 하기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그 조그만 학교를 지금 여시다 쇼인이
미랑을 하려고 갔다가 결국은 실패를 해서 잡혀와 갖고 유배를 향해서 위리한치같이 고향에 가서 있으라 그래
갖고 거기에 있으면서 그래도 허가를 받고서는 자기 작은 아버지가 하는 조그만 학교를 인수를 해서 거기서
이제 동네 어린애들을 가리키기 시작하는 거죠. 가르킨 것 2년 반, 3년을 최 못 가르키는데 그때
80명을 가리키고 그중에 60명이 나중에 매주신 이후에 대신을
여임한다라는 바로 그 속과 전주권인데 거기에 나온 대표적인 학생이 바로이
기도죠. 그러니까 기도는 어려서부터 매 조왕양이의 사상을 요시타
시인으로부터 받았고 조수의 조왕양의 팔을 이끌고 나가오다가 하는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왜 조번이 이런 일을 합니까라면서 그때에 들고
일어나면서 이거 우리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 나가고 있습니다라면서 조주 내부에서 발론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이제 속가주구를 나와서 어 요지다시한테 거기서 배우고 그리고
1852년에 이제 에도로 갑니다. 에도로 가서 검술도 배우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지사들이 하는 전형적인 일을 하는 거죠. 가서 무도 무도장에 다니면서 검수를 배우고 다른 번에서
온 그런 지사들을 만나서 교류를 하면서 왕정복고 조항양이 사상 이런
거에 대해서 이제 논의를 하고 그러면서 같이 뜻을 이제 키워 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가 있다가이 공부 합체론을 들고서
자기 다이묘의 허락을 받고 천왕에 허락을 받고 그리고 에도에 왔을 때
에도에 와서이 공부합체론을 막부한테 전달했을 때 그때에 기도는
자기네 번에 조수 번에 관리로 애도에 파견되어 와
있었습니다. 조항양이파로 애더에 파견되 와 있었는데 바로 자기 같은
번에서 나가오다가 공부 합체론이라는 걸 들고서 온 겁니다. 그러니까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 기도는 에이나우스케를 암살했던 그 미토번의 그 그런
사무라이들 그렇죠. 그런 지사들 그리고 다른 조항의 지사들 이런
사람들과 교를 하면서 결국은 이때에 여섯 명의 사무라이들이 지사들이
모여서 천왕한테 충성하는 혈서를 씁니다. 이것이
존황양이파의 구체적인 시작입니다. 그 태동을 시킨 것은 기도
다카요습니다. 그 사람을 유신 삼걸로 치는 삼걸의 하나로 치는 이유도 바로 이만큼
근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이
조항양이파들이 메주신을 일으키는 겁니다. 지금
나가이구타의 공부 합체로는이 조주의
기도닷가요씨 같은 번에 출신의 기도에가 주동하는 조항양위파의 반대만
부딪친 것이 아니라 히마즈
히사미스 그러니까 사스마 번의 번주의
에도의 개입으로 인해서 결정타를 맞습니다. 입니다. 히사미스는
조슈가 먼저 움직여서 공부합체론을 들고서 와서
중앙 정치를 정치 틀을 조가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수의 안에 따라서 천왕이 합의를 했고 막부가 합의를 했고 나가
오다가 실제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아 다 좋다 그럼 이대로 하자라고 하고 있었는데
비록 조주 내부에서 기도의 반대는 있었지만 갈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조주가 주도하는 전국이 형성이 될 것 같았었는데
시마즈 그러니까 사스마번의 번주로서는 같은 도자마번 같이
쫓겨나 외방에 쫓겨나 있었던 번이었는데 조주가 그렇게 되는 정권을 잡는 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마즈가 오히려 군대를 끌고서 그리고는 에도로 갑니다. 에도로 가서 안 된다. 지금
공부합체로는 말이 안 된다. 왜? 아니 지금 공부 합체론을 하자고
그러지 않아도 천왕의 여동생이 이복 여동생이 소근은하고 결혼까지 시키고
그랬는데도 도대체 무 이거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쇼근이
감히 천왕에 여동생을 부인으로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이 황가를
전혀 존중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고 너무 북선하게 곤다. 이런 이유를
들고서 와서는 자기가 오히려 막부 대신에
사스마가 와서 천왕하고 천왕가하고 협력을 하면서 권력을 잡으려고 그러는
시도를 합니다. 그래서 심마스는
안세이 대혹 때가 경 사람들 다 풀어주고 조항양이 파들 바크후에
요직에 안치고 그죠. 그때에 이인나우스키한테 수청당했던 사람들을
앉칩니다. 다시 권자 권력의 핵심에 다시 배치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과격한 조랑 양이파들 요시다 쇼인의 제자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무력으로 다 제압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에도에 와 있었던 그 많은 조항양이파들를
젊은 지사들을 시마즈가 다 제압을 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말하자면 온권 조항 양입하죠.
온권 조항양이 파로해서 박수후수후는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천왕보하고
손을 잡고 그러면서 전국을 주도해 나가려는 그런 시도를
하면서 그러기 때문에 조주에서 왔던 극렬한 기도닷가요씨 같이 조항양이를
위해서 혈소를 쓰고 했던 그런 극급진 조항양이 파들을 숙청을 합니다.
에도에서 박구후를 타도하려는 그러한 그 조항 양이파들 교도의 조항
양이파들이 에도에 와서 박쿠후를 타도하려고 하는 거사를 일으킨다라는
그러한 정보를 입수하고는 이때에 히자미스가 군대를 보내 가지고이
교도의 론인들한테 지사들한테 거사를 포기하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이때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리고이 전투로
전왕향이 파들 론인들 지사들이 수없이 죽습니다. 사스마의 론인들은 조항
받으는 사스마로 강제 호송이 돼 버리고 이때에 조슈에 구사카 겐세이
같은 그 역시 일찍 죽게 되는 초기의 전왕위파의 핵심이었고 조슈의
사스마 조수의 지사들의 핵심이었던 쿠사카 겐세이 같은 이런 사람들이 다
조항양인파에 그때 있었는데 그때 도저히 사스마의 시마즈가
워낙 강하게 나오고 그리고 같은 사스마 출신 조항양이파
아리마라는 유명한 조항 양이파 사스마 출신데도 사스마의 다이메가 죽여 버립니다. 그러니까 전투를 피해서
달아납니다. 그래서 조슈로 가니까 히사미스가 조주 번에 대고서
너희 너희 번으로 도망친 조항양이파이 루인들 젊은 놈들 이거 내놔. 그런데
조주보는 못 내놓겠다고 그때 그럽니다. 이때부터 사스하고 조슈가 완전히
반목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궁극적으로는
협력을 해서 조수아가 사스마가 협력을 해서 그래서 메이지를 일으키지만
지금 막부가 약해지고 흔들리고 있을 때에
그때는 서로가 경쟁적으로 전국을 주도하기 위해서 조수가 먼저 고부가타의 공부 합체론을 들고서
움직였다가 사스마의 시마즈 가 와서 그거를 축출을 시켜 버리고
강 그리고 자기가 전국을 주도하려고 하는 와중에
완전히 조수하고 샀으면은 라이벌이 돼 버린 겁니다.이
라이벌이 된 거를 나중에 풀어서 화해를 시켜서 서로가 힘을 합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게 바로 도사의
지사였던 사과모도 료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까모도리오마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는 거죠. 이렇게 반목을 하기 시작한 계국을 통해서 혼란에 빠진
그리고 권력의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 애도의 권력 공백을 메우려고 서로
경쟁적으로 나선게 그 두 도자마 다이묘어였던 조슈하고 사스마였던 것이죠. 이렇게 되니까
시마즈가 사스마의 다이묘가 에도에 와서
꽉 잡고 그리고 군대를 보내서 교도에서
론인들이 일어나 갖고 또 전왕이 파여서 애도 막부를 타도하겠다라는 그
거사를 무력으로 진압을 해 버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메이 천왕같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의존향이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냥 독구가 막보가 계속 잘
가면서 자기한테 자기가 쓰기 쓰는데 필요한 돈 체면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 주고
이러면 그냥 같이 가는 걸로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어차피 극렬한 조항양파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랬기 때문에 나가 우타가 공부 합체론을 가지고
오니까 어유 하자 그랬던 거고 자기 여동생도 소근하고 결혼을 시켰던 거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그 조항 양이파를 시마즈가 와서 다
평정을 해 준 거죠. 그러니까 전부 다 천왕이 됐든 막부가 됐든 오히려
시마즈한테 고마워하면서 시마즈의 대안을 받아들이는 거죠.
시마즈의 그 권력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중앙 권력이 완전히 사스마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슈는 어떻게 됩니까? 조우주의 [콧방귀] 지도층은
나가이 우타의 공부 합체론이 실패했다라는 거를 깨닫고
어떻게 합니까? 나가이한테 자결을 명합니다. 명합니다.
할복 자살를 명합니다. 그래서 1862년
11월 15일 나가 있는 조종과 조수에 저지른 죄
때문에 할복 자살을 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그 당시에 지사들의 젊은
사무라이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지행합일 그야말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서 전왕 양이파도 있었고 나가고타 같이
공부 합체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오히려 하급 사무라이로서 자기
다이며나 누구한테나 상소를 올리고 의견 개진을 해서 그래서 그걸
관철시키는 놀라운 행동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이 엄청난
권력 싸움에서 권력 투쟁에서 참 억울하게
많은 경우에 억울하게 어처근이 없이
암살를 당하고 할복 자살를 명받고
할복 회복할 수 없게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운명의 처합니다. 이런 일들이
부지 기술로 일어납니다. 저는이 당시에 그 젊은 이들의 그 정신 비록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많은 경우에는 극히 일부만 나중에 메이신이 유신이
성공을 해서 유신삼걸에다가 뭐 야마가다리 또 뭐 이또 이러 이런 사람들이 엄청난
국가의 대신이 되고 나름대로 영화를 누리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기까지 갈 때까지 일본이이 격동기를 넘어가는 하 있어서 막부 시대에서
매지유신 시대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의이
강직하고 불같고 자기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김
옮기고 그래서 희생되는이 지사들의 희생이라는 것이 그 정신이라는 것이이
놀라운 본건제도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큰 정신적
밑받침, 밑걸음이 됐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네. 오늘은 어
우리말로 지사 일본말로 CC시라는이 젊은 하급 사무라이 낭인이기도 하고이
사람들이 어떻게 막부 말기에 만들어 그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이 누였으며 그 사람들이 결국은 메이지으로 넘어가는 밑걸음 역할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지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전국이 극하면서 그러는 와중에 조슈하고 사스마가
대립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결국은 결국은 그 대립의
와중에서이 조왕리 사상 때문에 결국은 조수하고 사스마가
외세하고 영국하고 프랑스하고 네덜란드하고 미국하고 전쟁까지 [음악]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음악] 정체성을 담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4 가쓰 가이슈에서 조슈 파이브까지 근대 일본의 설계자들

가쓰 가이슈에서 조슈 파이브까지 근대 일본의 설계자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4회 - YouTube

가쓰 가이슈에서 조슈 파이브까지 근대 일본의 설계자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4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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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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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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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어 오늘은 독구가와 막부가 천왕부하고
[음악] 손을 잡으면서 공무합책 고부가의 정책을 통해서 손을 잡고 노자마다이며
[음악] 조수나 사스마 같은 전에는 적대 세력으로 간주했던 그 번들하고도 손을
잡고 번들의 손발을 묶었던 참근 교대 이런 제도도 [음악] 풀어주고 인질
제도 같은 것도 풀어주고 그럼으로써 자유롭게 각자가 국방을 을 강화시키고
그리고 국론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이제 그런 장치를 마련을 합니다.
그런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는 가운데
오늘은 이러한 엄청난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도 그리고 [음악] 계국을
반대하는 강력한 전왕위 세력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에도
막부는 강력한 개방 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합니다. 조건가 막부에 맞서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존왕이 파무라이들의 온상이었던 조슈하고 샀으마도
경쟁적으로 외국의 [음악] 유학생을 보내고 하면서 개방 정책을 펼치기 시작을
합니다. 오늘은 막부와 조수 사스마가 어떻게
경쟁적으로 개방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지 [음악]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1854년에 네덜랜드는 좀빙호라는 자기네 군남한 척을
독구와 막부에 기증을 합니다. 원래 독구가 막부는
처음부터 계곡을 하면서부터 서양의 첨단이 해군역 이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고서 당연히 알았겠죠.이 이 폐리의 흑선이 오고 이런 거를 거대한 전함들이 오고 하는 걸 봤기 때문에
어떻게서든지 그 기술을 그 서양 해군역을 자기도 좀 갖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어 네덜랜드에 우선 네덜랜드에 이제 얘기를 했죠.
뭐예요? 왜냐면 돼지마섬을 통해서 도구와 막부 내내 280년 동안 가장
그래도 거의 유일하게 막보하고
협력을 헤어오둔 나라가 바로 네덜랜드 아닙니까? 네덜랜드 동인도 회사의 상관장이 나가사기 돼지마에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을 통해서 뭐 어 그 풍설도 받고 이러면서 깊은 어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기 때문에 자 그러면 이제 개항을 했고 미국 때문에
개항은 했지만 그래도 가장 익숙하고 가장 의지할 만한 외세는 역시 네덜랜드였죠. 그래서 네덜랜드 보고
군남주 건조해서 우리가 사겠다고 군함을 달라 그럽니다. 그런데 1853년에는 바로 뭡니까? 크림
전쟁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네덜랜드는 따라서 그 전쟁에 참여하느라고 전혀 전혀 무슨 군함을
또 따로 뭐 일본에 팔고 이럴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참 처음에
이제 그 독구가 막부가 요청을 했을 때는 들어 주지 못하다가 미안하니까
1854년에 작은 배지만 그래도 배 하나를 전빙호를 보내서
성의를 표시합니다.이 전빙호가 왔을 때 그 배를 끌 몰고 온 사람이
파비우스 대령이라는 네덜랜드의 어 장교였습니다. 해군 장교였습니다.이
이 사람은 배를 끌고 와서 거의 반년 동안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사람들
수병들이죠. 200명을 훈련을 시키면서 조선 기술, 항해술 이런 거를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돌아갔다가
다시 좀를 이끌고 와서 이번에는 아예 네덜랜드 수병까지 20명을 대동하고
와서 또 일본 사람들한테 배를 어떻게 운영하고 군함을 서양식으로 군함을 어떻게 운영하고 이런 거를 이제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거죠. 사실 한때 최고의 그 해군역을 갖고 있었던
네덜랜드의 장교들이 와서 수병들이 와서 어 일본 어 수병들을 이제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왔을 때는 아예이 강꼬마루를
기증을 하고 갑니다. 그래서 강마루는 어 정 최초의 전기선이고 외륜선
이렇게 큰 그 미국의 미시피 강에 보면은 이렇게 큰
그 물레방아 바퀴 같이 돌아가는 거를 통해서 그 동력을 그러니까 움직이는 그런 배를
그 이제 외륜선이라 그러는데 최초의 외륜선 증기 외륜선입니다. 그
범선이기도 하고 도담배도 있고 같이 그 동력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배인데이
배를 1857년 3월에 일본 사람들이 처음으로 서양 사람들의
도움을 안 받고 나가사기에서 애도까지 처녀 항해를 합니다. 해군을 어떻게
운영 군함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서양식 근대 배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일본이 터를 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후로 1859년까지
네덜은 여러 척의 군함을 일본에다 팔고 일본 해군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이 이 강꼬마루가 왔을 때 처음부터 강마루를
인수받고 거기서 일본 사람들이 훈련을 이제 네덜랜드 장교와 수병들한테
훈련을 받을 때 그때의 일본측 책임자가 바로 가스갈이슈라는
인물입니다.이 가스갈이슈라는 사람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이 이이 사람은 요시다 쇼인과
같이 사쿠마 쇼잔이라는 그 당대에 진짜 앞서가던 그 사람의 제자입니다.
역시 사쿠마 쇼단의 제자입니다. 그 왜 그 서양 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그러고 서양식 말한 장만 타고 다니다가 결국은 전왕위파들한테 암살당하는 그렇지만은
요시사 쇼인한테 편지를 해서 배를 타고 미국을 가라고 미랑을 적극 권장했었던 바로 그 샤쿠마 소단의 또
다른 제자는 바로 가스 가이슈입니다. 가스가이슈는 쇼근 에도에서 쇼근의
하다모또 하다모또라는게 이제 그 무장들입니다. 그 쇼은 다이묘들의 가장 높은 무장을
하다모토라 그러는데 그 하다모토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애도에서 자라면서 난가구를
배우고 서양의 군사을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사쿠마 쇼잔한테 사사를 하고요. 그리고 1850년에는
사설학교를 세워서 서양의 군사학을 자기가 가르킵니다.
그리고 1855년에 네덜랜드의 도움으로 드디어 일본이
그렇죠. 이제 간꼬마루 같은 거를 받고 그러면서 훈련을 받고 그러면서
결국은 자기네가 나가사기 해군 전습라는 거를 엽니다.에도 막부가
그때에 거기 전습에 오는 전습생 그 훈련받으러 오는 일본
미래 수병들의 감독관이 됩니다. 가스가이슈는 나중에 사카모토료마
그죠. 메이주신의 결정적인 역할을 조슈와 사스마번의
화해를 이끌어내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선중 팔책이라는 거를 써서
일본의 헌법에 어 효시가 되는 그런 거를 써내고 하는 바로 그 유명한 어
사과모또 료마도 바로 나중에이 가스 가이슈한테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이 이
가스가 이슈가 또 하나 나중에 역할을 하게 되는 거는 사회고 다까모리가 사스마의 군대를 이끌고 도구가와
막부와 마지막 결전을 보신 전쟁 때 결전을 이루면서 그때 에도성을
둘러싸고 에도성을 막는 거는 가스가이었고 그걸 공격하는 것이 살고
다가머리였습니다. 그래서이 그게 마지막 전쟁이었 전투였을 수가 있는데
그 보신 전쟁에 그러니까 막보와 천왕군하고 사이에 그 메이지신군하고
사이에 마지막 전쟁일 수가 있었는 전투였었는데 만약에 그 전투가 일어났었으면은
에도성이 완전히 파괴가 되고 엄청난 살상이 일어날 수 있었는데 그때에
가스가이슈하고 사이고가 화해를 해서 사 가스가이슈가에도
성문을 열어줌으로써 마지막 피흘림 없이 자연스럽 럽게 평화롭게 정권
이향이 일어나면서 메주위신이 일어납니다.이 가스가이슈가 사이거와 그런 합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가스가이슈하고 사이고가 그 전에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만났을 때 서로 한쪽은 개화 개국파고 그렇죠. 가스는 당연히
개국파고 도구가와 막부 밑에서 큰 역할을 해군을 길러내고 있고 그런 서양식
해군을 길러내고 있는 그런 역할 하는 사람이고 사회고는 지금 사스마의 군대를 끌고 와서 조항 양육파를
대표하는 사람인데 그때에 서로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인품과 그 큰 인물의 감복을 서로가 합니다.
그때 그래서 이미 그때에 서로가 한번 완전히 서로 이념이 다르고 나라의
미래를 구상하는 방 그 방향도 저 전혀 달랐지만 서로 인품에 완전히
매료된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에도송을 놔두고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그때 둘이서 가스가 이슈하고 사이고가 화해를함으로써에도
성문을 열어 줌으로써 평화롭게 정광 교체가 일어나는 길을 틀린게 바로 가스가이슈입니다.
박호 정부에서 서행의 군사학, 천체학, 지리, 과학 이런 거를 하는 학교를
또 설립을 하자고 그렇게 강력하게 권 권유를 해서 1857년에에도
막부는 반쇼시라베쇼라는 즉 야만인 교육, 야만인의 학문을
가르키는 학교라고 이름을 해서 최초의
일본의 최초의 서양학문 문을 전문적으로 가르키는 학교를 엽니다. 이것도 가스가 이슈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쿠마 쇼산 같은 선생의 영향을 받고 그렇죠. 그리고 요시다
쇼인 같이 같은 스승 밑에서 사사했던
여시다 쇼인 같은 사람 의고 그런 거를 다 이어받은이
어 가스가이쇼는 일본의 해군도 기르고
그리고 일본 최초의 서양 학문을 가르키는 전문학교를 세우도록 합니다.
1860년이 되면은 박후가
어 독구가 막부가 미국의 사절단을 파결하려 그럽니다. 그래서
1858년에 해리스약을 맺었기 때문에 사실은 그때부터 처음부터 처음부터
처음부터 사절단을 파견하려고 그럽니다. 그니까 미국에선 해리스가 와서 아예 영사로 상주를 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일본은 워싱턴에 상주할 수 있는 영사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뭐 영어를
그렇게 잘하거나 무슨 그 근대식 외교를 알아 가지고 거기에 가서
제대로 영사 역할을 외교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던 없었고 뭐
거기 가서 집을 사 가지고 뭐 이런 제대로 된 어 그 공관을 유지할 수
있는 영향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는 못 보냅니다. 근데 일단 사절단이라도 보겠다 그래 갖고 그때에
그 해리스 조약을 타결하자마자 사실 일본 협상단측에서는 그럼 우리가
대사는 영사는 못 보내더라도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물어봅니다.
그러면서 그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미국은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세차례나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제
조약이 체결되었으니이 조약의 비준을 위하여 이번에는 우리가 워싱턴의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은 어떻겠는가라고
해리스한테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페리제독이 두 번 오고 그다음에
계속해서 사절단이 와서 조약을 맺으러고 헤리스가 또 와서 상주하면서 또 제약을 조약을 갖다가 또 협상을
하고 그러고 보면은 일본 입장에서선 그랬던 거죠. 아니 이거는 양국이
교육 저 교류를 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가 본 적이 없고 미국 사람들만 계속 해서 하니까 우리도 한번
보내는게 어떻겠냐 그랬더니 아주 해리스가 너무 좋아하죠. 그래서
해리스가 이렇게 그날 그때를 기록합니다.
일본측은 만일 내가 원한다면 자신들의 증기선에 타절단을 태워서 캘리포니아를
경유하여 워싱턴에 보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나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이
최초로 조약을 체결한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첫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런데이
파견은 일본 내 전국의 혼란놀이라서 계속 미뤄지고 결국은 2년 후인
1860년이 돼서야 그 사절단 파견이
성사가 됩니다. 그래서 1859년 9월에 박쿠후는 견미사절단을
꾸리고 거기에 뭐 어 정사에는 신미사오키 부사에 모라기 놀이마사
그다음에 감독관의 이제 오그리 다마사라는 사람들을 임명을 합니다. 그때에 그때에 부사에 임명됐던
무라가키 견미 사절단이라고 처음 견미 미국을 보러 가는 사절단이죠.
견미사절단의 부사에 명됐던 물학기는 자신의 일기에다가 이렇게 써
놓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당나라로 사절단을 파견하였지만 그 이웃 나라는
좁은 바다만 건면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황국으로부터 수많리
떨어져 있으며 그쪽이 낮을 때 여기는 밤이다. 나는 내 딸들에게 남자는
이처럼 막중하고 전례가 없는 책임을 짐으로써의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 수 없다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외국에 가는 최초의 사절단에 임명되다니 내가 만일 쇼근의 영을
올바로 집행하지 못한다면 우리 황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구력을 당할 것이다라는 걱정이 들었다. 바로 그때
달빛이 너무 청명하여 나는 쇼근의 신임에 감사하며 엄숙히 술잔을
들었다. 제가 이거를 읽는 이유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서 처음으로 조선하고 일본이 교류를 맺고 그렇죠. 수결을
하고 그때 김기수가 최초의 수신사로 일본에 갑니다.
그때에 1차 수신사로 갔을 때 갈 때에 그때의 김기수는 일기에다가
내가 도대체 여기를 왜 가냐?이 이 서양 이상한 놈들을 만나 갖고 내가
뭐를 할 수 있고 나는 안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가라 그러니까 나는 갈 수밖에 없다라면서
그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때 박규수가 옆에서 있으면서 내가
나이만 적었더라도 나는 내가 갔으면은 참 난 정말 너무나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알고 싶고 하는데 나는 못
가는게 한스럽다고 박규수는 또 자기 일했었습니다. 근데 저는이 두 가지를
김기수의 일기와 지금 문화기의 일기를 보면서
어떻게 거의 똑같은 일을 맞이할 때 처음으로 외국과 수교를 해서 거 그
수교한 나라에 자기가 사신으로 파견이 됐을 때에 그거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저렇게 김기수는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하기 싫은 거를 억지로 해야 되는 거 야만인의 나라의 지금 내가 왜 가야 되는지 모르겠다라는 거하고이
부산은 어 정말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이 5대을 누리는 내가 이런
엄청난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고 이런 기회를 하기 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이런 믿음을 주고 나를 이런 자리에 임명을 해 준 추억군한테 정말
감사를 드리면서 내가 혼자 앉아서 술잔을 달밤네
술잔을 올리는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계국의 양상이 이렇게 달랐었습니다.
1860년 2월 9일 이른일곱명 규모의 견미 사절단이 신나가와 항해서
미군이 제공한 퍼탄호에 승선을 합니다.이 이 퍼탄호라는게
미국하고 일본에 끊임없이 등장을 합니다. 기억하시죠? 요시자 효인이
배를 타고 오밤중에 몰래 승선을 하려고 가는 그 유명한 웃기에 나오는
그 그 배도 그것도 파워하탄고 그 올 그 승선하려다 결국은 미국 수병한테
잡혀서 뜻은 못 이루지만 그다음에 간나거저액을 맺은 것도 퍼탄호
선상에서 맺었던 거고 이번에 이제 또 그러면 그러면
미국의 최초의 1번 사절단이 이
일본 최초의 공식적인 외교 사절단이죠.
그 사람들이 미국을 갈 때에 아직 태평양을 건너갈 만한 배가
일본에는 없기 때문에 미국이 또 군남인 퍼탄호를 제공을 하고 일본의
사절단이 그 퍼하호를 타고서 이제 갑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때에 카스가이슈 밑에서 훈련을 받았던 일본 수병들이 다 있을
거 아닙니까?이 이 사람들이 뭐라 그러냐면 우리가 지금 아직은 실력이
안 돼서 우리의 정사, 대사들은 미국 군함을 안전상 미국 군함을 타고 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명세기 몇 년 동안 훈련을 받았고 우리도 어쨌든 서양 배를이 근대식 배를
움직이는 방식을 우리가 알았으니까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그리고 한번 우리도 해 봐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서 네덜랜드로부터 산 갓린마루라는 배에
배에 타서 일부 사절단은 그 배를 타고
파워탄호를 따라가기로 합니다. 그래서 일부는
네덜랜드로부터 산 최초의 그 스크루식 그 전기선입니다.
갓린마루에 타서 따라가기로 합니다.이 이 갓님마루는 1853년에
바쿠가 네덜랜드에 주문을 해서 1857년 9월 1일 날 인도받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스큐루를 장착한 군함이었습니다. 그래서이 갓닌마루가
퍼우해탄호를 뒤따라갑니다. 무려 4개월 동안 항해를 해서
태평양을 건너니다. 그러니까 그 작은 배에
올라타서 거기에 일본 사람들만 일본인들만 타서
갑니다.이 사진은 지금 그 갓님마루에 탔던 그 선원들입니다.
그 선원 중에 그 사진에 보시면 맨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냐면 그게 후쿠사와 유키치입니다.
후쿠사와 유키치는 나가스본이란 조그만 번에 정말 학급 무사로 태어나서
아들로 태어나서 그렇지만 똑똑해서 란가구를 배웠고 란가구를 배워 가지고
아주 네덜랜드 말을 유창하게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간학가와 조약을 통해서 처음으로 간학가와 개항을 하고
거기에 외국 사람들이 왔을 때 후쿠사와는요. 어, 자기가 내가 여태까지 배웠던 네덜는 말을 좀 가서
과실을 해 봐야지 하고는 간나카 항에가 갖고 말을 거는데
거기서 네덜랜드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전부 다 영어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어, 이게
영어를 배워야 되는 거구나. 영어가 중요한 말이구나. 네덜랜드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러서 그때부터
그렇게 영어를 공부하려고 무지를 쓰는데 사실 방법이 없었겠죠.
그러니까는 미국에 처음으로 미국의 견미 사절단이 간다고 발표가 났을 때
그러면 그리고 갓마루라는 거가 따라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때에
후크사와는 갓마루 선장을 찾아가 가지고 사정사정을 해서 저 제발이 배
좀 타서 미국 좀 한번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배 탑니다.
그래서 같이 4개월 동안 항해를 해서 물론 중간에 사절단과 같이 하와이에
들려서 거기 어 하와이의 국광 카메아하메아 4세 어를 만나고 그리고
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뭐 이제 크게 선대한 대접을 받고 거기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주최하는 만찬에도 가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다시 내려와서 동해안으로가 갖고 5월 15일
워싱턴에 도착해서 뮤캐논 대통령을 만나서 그 비준서를
일미 화친 조약의 비준서를 전달을 하고 그럽니다.
그리고이 사절단은 어 25일 동안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뭐 스미소니안도
가보고 미국 국회의상도 가보고 박물관 이런 거를 다 보고 미국의 곳곳에
있는 조선소 이런 거를 다 견악을 합니다. 6월 6일에서 16일까지 필라델피아도 가보고 그리고 16일 날
오후에 뉴욕에 도착을 합니다. 당시 뉴욕에서는요.이
일본 사절단을 환영을 하기 위해서 대규모 [목을 가다듬음] 퍼레이드를 준비를 합니다. 그
퍼레이드를 가기 위해서 무려 50만 인파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최초의
아시아 국가의 사절단이 왔다 그래 갖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 갖고 그 열렬히 환영을하고요. 그때에 그때에
미국의 대문호 미국을 미국 사람들의 정신을 가장 잘 대표한다는 미국의
대시인 월트위트만이 그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월트위트만의 여러 시 중에 제일 유명한 시 중에 하나가 브러드웨이 패전트인데 그 브러드웨이 뉴욕의
브러드웨이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거에 대한 그런데 그게 바로 일본 사절단을
환영하는 그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거를 기념해서 쓴 시가 미국의 월트웨
위트만의 대표적인 시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이 사절단은 6월 29일 날 뉴욕을 출발을 해서
대서양을 횡단해서 희망봉을 돌아서 마타비아 자카르타죠. 그러니까
네덜랜드 동인동 회사에 아시아 본부가 있는 자카르타 옛날 이름 바타비아인데 거기를 들러서
홍콩을 경유해서 11월 9일 날 신하와에 도착합니다. 떠난지 7개월
만에 귀국을 하는 겁니다.
법률 방송이 출관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음악]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후크사와 유키치는이 갓린마루를 타고 갔지 않습니까?
갓마루를 타고 간 선원들은 워싱턴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갓님마루까지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해서 샌프란시스코에 한 달만 머물다가 다시 간마루를 타고서 다시 태평경을 건너서
돌아와야 했었던 거고 사절단하고 다른 사람들만 이제 미국이 제공하는 군함을 타고 뉴욕을 해 갖고 이제 대서
건너가고 이렇게 돌아오는 거죠. 그런데 그때에 그때에 후크사유키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자기가 있는 돈을 다 긁어 먹고 남들의 돈도
빌려 가지고 영어로 된 교과서들을 책들을 살 수
있는 대로 다 삽니다. 지리, 역사, 교과서, 미국의 고등학교 교과서 이런
것들을 전부 다 그때 삽니다. 그리고 그때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진관에
가서 그 사진관에서 그 사진관의 딸 13사짜리
딸하고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 그래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이
지금 남아 있는 그 유명한 후크사와는 김모노 사무라이 김모노를 입고 앉아 있고 옆에 앨리스 그 사진관 딸이서
있는 그 유명한 사진이 이때 만들어지는 겁니다. 후크사회의이
탐구력,이 호기심 이거를 영어를 배워야 되겠다라고 해서
어떻게서든지 일본에서는 그 당시 너무나 구하기 힘들 힘들었던 거의
불가능했던 그 영어로 영어 공부할 수 있는 교재들을 이때 다 사옵니다.
바크후는요. 이렇게 해서 사절단을 보내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1862년 11월 달에는 네덜랜드에 11명의 유학생을 보냅니다. 그니까
역시 네덜랜드죠. 제일 친했던 네덜랜드 쉽게 그 갈 수 있었던
네덜랜드였습니다. 그래서 네덜랜드에 보내서 법 항해술 의학 이런 거를
배우도록 합니다. 그중에는 니시 아마네라는 유명 후쿠사유키치와
일본의 근대화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여를 했던 지식인 니시아마네가
있는데이 니시아마네도 이때에 바크후가 막부가 보낸 유학생 중에 하나에
포함이 돼서 네덜랜드로 갑니다. 그래서 네덜랜드의 그 유명한 레이던 대학에가 갖고 레던대학 교수한테가
갖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데카르트, 로크, 해겔, 칸트와 같은
인물들이 대표하는 철학 또는 과학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법에는
금지되어 있는 종교와는 별개인 이러한 분야를 탐고해 보고 싶습니다.이
주제는 매우 어려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선생님한테 가서 교수한테가 갖고 내가
왜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문장은 얘기
아닙니까? 뭐냐면 도대체 철학이라는 건 뭔지 모르겠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종교는 아니고 그러니까 종교는 지금 서양 종교를 일본에서 포교하는 거는 당연히 금지가 돼 있는 거고 저
카톨릭이 뭐가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일본에서는 기리스타는 철저하게 박해를 하는데 그러면 종교는 아닌데 그렇다고
그러면이 데카르트 칸트이 사람들이 하는 건 이건 또 뭔지 이거를 당신들이 철학이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는데 너무 어렵다라는 거예요. 문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그죠. 무슨 도덕도 아니고 그까
사서삼경 같은 것도 아니고 한악에서 배우는 전혀 그런게 아닌 아주 이상한 분야라는 거죠. 근데
이거는 내가 배워야 될 것 같다. 왜? 이게 우리 문명에 도움이 될 거 같다. 그래서 나한테 그거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라고 도전을 합니다.이 사람이 여기서 철학이라는 걸
배웁니다. 철학이라는 걸 배우고 돌아와서 그래서 후크사와 유기치하고
같이 학회를 만들어서 같이 공부를 하면서 서양의 용어들을 전부 다 1번 말로
번역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로 그중에는 대표적으로 니시아마네하고 후쿠사와
같이 번역을 한 말이 뭐냐면 필러소피를 철학이라고 번역하는게 바로 닌시
아마네하고 946키입니다. 우리가 지금 철학이라고 하는 거 일본이 일본말로 데스가구라는 그
철학이라는 개념은 니시아마네하고 후쿠사유키 제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그 니시아 아마네는 레이든 대학에가
갖고 철학을 공부하고 옵니다. 니시는 칸트 철학 국제법
경제학 이런 거를 다 공부를 해서 1865년에 귀고를 합니다. 독구가와
요신노부 일본의 마지막 쇼근 그죠? 미도 가문의 출미도 번
출신 마지막 어 그 쇼근이었던 어 독구가와 요시노브의 자은 역할을 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다음에는 1868년이 이후에는 병부송에서 그때
일하고 있던 후쿠사우키씨랑 같이 서양 철학을 일본에 소개하는데 일생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니시가 번역한 말들이
영어의 그거를 예술이라고 번역하고
reason을 이성이라고 번역을 하고 사언스를 과학이라고 번역을 하고
테크놀로지를 기술이라고 번역한 거 이건 전부 다 니시아마네가 만들어낸
신조어들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필로소피를 철학이라고 번역한 것도 니시
아마네하고 후쿠크사의 기칩니다.이 도표은요 1862년부터
1867년까지 그러니까 1868년이면은 독구가 막부가 완전히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서 메이지 정권으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5년 동안 독구가 막부가 마지막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수의 유학생들을 전
세계로 보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도표입니다.
도크가와 막부도 이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이러한 수준 이러한 차원에 이러하게 거창한 차원에 이러한 규모의 외국인
유학생 보내는 이런 일은 나중에 중국에서 이홍장이 시도를
해보고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조선에서도 뒤늦게 갑옷 경장 끝난
다음에 계속해서 [목을 가다듬음] 보내려고 애를 쓰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나
깊이 있어서 전혀 필척할 수 못됐습니다. 얼마나
요소 요소의 적제 족소의 그리고 분야마다 인재가 필요하고 그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서양의 최첨단 지식을 습득을 해오도록 해야 된다라는
것을 알고서 독구가 막부가 이런 놀라운
유학생 파견 사업을 망하는 순간까지
지속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모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러면 서양을
배워야 된다라는 건 독고가 막 그런게 아닙니다. 조수에서도 그럽니다.
조왕양이 파의 온상인 조수에서도 서양문명을 배워야 된다라는 것을 깨
깨닫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조수 사스마도 그렇고 경쟁적으로 유학생을
보냅니다. 그런데 조슈는 1863년 처음으로 다섯 명의 청년들을
[목을 가다듬음] 영국으로 미랑을 시킵니다. 근데 미랑을 시키는 방법이 나가사키에 있는 영국 상인 토마스
글로버라는 사람한테 맡깁니다. 그 사람한테
부탁을 해서 자기네 청년들을 그 사람이 운영하는 배에 몰래 식구
미랑을 시킵니다. 사실 1854년
간학가와 조약을 통해서 일본이 공식적으로 세국 정책은 포기를 했지만
아직 각 번에서 자기가 독자적으로 알아서 외국의 유학생을 파결할 수
그럴 수는 없었던 거죠. 다 에도의 독구가 막부에 허락을 받아야 됐던
거죠. 그러니까는 그리고 사실 조주가 하겠다 그러면은 그거 토락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러니까 몰래 해서 영국 상인 글로버한테 부탁을
합니다.이 이 토마스 글로버라는 사람은 나중에 일본의
미스비C 상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지금도
어 나가사키에 여행하신 분들은 한번 꼭가 보시면 나가사키 그 언덕에 글로버 저택이라고 지금도 그 사람들이
살 살살던 그 저택이 있습니다.이 글로벌을 통해서 조주번이 부탁을 해서
미랑을 시킵니다. 그때 미랑을 시킬 때 조슈번의
중신이었던 스후마사노스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이
사람이 우겨서 이후 학생들을 영국에 보냅니다.
수후 마사노스케는 나중에 조슈가 다시 극렬한 조왕양의 파권력을
잡으면서 그때에 유학생들을 외국에 파견하고 그랬다는
이유 때문에 할복 자살을 하도록 명을 받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이 사람은 그 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조수번의 젊은이들을 미랑을 시킵니다.
그때 미랑을 시키면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조슈는 도구가 필요하다. 도구란 인간
도구 말이다. 오늘 우리나라를 보면 많은 한들이 조항양의 운동을
지지한다. 그러나이는 일본인들의 허세에 불과하다. 언젠가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서로 교류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왔을 때 우리가 아직도 서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우리 나라는 매우 불리해질 것이다. 그때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나는 노무라야키치와
야마오 요조를 영국에 보내고자 한다. 이때 선발되는 인재들이 노무라야키치
그다음에 야마오 요조 그리고 앤도킨스케이 세 사람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또이로 구매하고 이노의 가오루를
보냅니다. 매주신 이후에 결정적인 역할을 매주신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리고 매지우신 이후에는 일본의 헌법을 만들고 총 최초
총리되신 내가 총리되심 여임하고 등등등 했던 바로 그 이도 히로부이
그리고 일본의 외무 대신을 여임하고 조선의 계국을 그렇게 종영을 하면서
김기술을 만나고 김몽집을 만나고 그러면서 조선이 빨리 계곡을 해야 된다. 우리 같이 해야 된다라는
그러면서 결국 나중에 갑경장 때 와서 조선의 개혁을 이끌려고 했던 바로 그
인노의 가오루 그때 20대 초반에 젊은 청년들로서 이때 미랑을 해서
영국에 건너갑니다. 1863년 6월 27일 날 이도하고 인노의 가오로는
먼저 간 세 사람을 뒤따라서 뒤늦게 배를 타고 미랑선을 타고 이제
건너가기 시작합니다. 이돌은 아시다시피 조슈의 하건무사 출신이었었고
그리고 요시다시인의 수가 선주에서 공부를 했었던 학생이 학생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떠나면서이는 아버지한테
편지를 남깁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국의 모든 것을 배워 와야만 하고 해군 기술을 배워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망이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품고 저의 임무를
다하려고 3년간만 다녀오겠습니다. 이또와 인노에는 4개월에 걸친 항해
끝에 11월 4일 런던에 도착해서 먼저 도착해던 노무라 앤도 야마과
해우를 합니다.이 이 다섯 명의 젊은이를 조주가 미랑을 시켜서 영국에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에 보내서 유학을 시킨이 다섯 명을 일컬어서
장주 오골, 조슈 오골 아니면 영어로 조슈파라 그럽니다.이
이 조슈 5파는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슈
조왕양이 파의 온상 외국주의자들이 온상인 번조차도
어떻게 해서든지 해외에서 지식을 습득을 하려고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무릎 쓰고 파견한 젊은 일입니다.이
이 사람들은 이또히로부와 이노의 가오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나머지 세 사람도 일본의 발전에 근대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야마이오조는요 유니버시티 컬레지에서 과학과 산업을
2년간 연구를 합니다. 공부합니다. 그다음 그다음에 스커틀랜드의 글래스고에 가서 거기에서 살면서
스커틀랜드의 가장 큰 네이얼스 조선소에서 일을 합니다.
야간으로는 앤드슨 컬레지라는 대학을 또 다닙니다. 그리고 귀국을 합니다. 귀국에서는
어떡합니까? 요코하마의 조선서를 세우고 운영을 하고 공부 장관을 여임하고 도쿄 공학부의
전신인 공부대학교 고부다이구를 설립을 합니다. 고부다이구는
공부대학교는 1874년에서 85년 사이에 47명의 외국 교수들을
초청해서 일본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합니다. 그리고 야마오는 또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에도 헌신을 합니다. 노무라이야키치는 2년간 런던 대학에서 역시 공부를
하고 토목공학과 광산학을학을 전공을 합니다. 그리고 1868년에 귀국을
해서 대장성에 들어가서 일본 철도 건설를 추정합니다. 그래서
노무라이야키치는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앤도스케은 1866년에 귀국해서 1881년부터
1883년에 일본 조폐국에서 근무하면서 1881년에
조폐 국장이 됩니다. 조폐 개혁을 통해서 일본의 화폐를 통일하고 하는
일을 만들어 내으로써 일본 조폐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요 5파가 가장 극명하게
일본 역사의 흔적을 남기지만
두고와 박구 후가 보내는 보낸 그 유학생들 닌시아만네 그다음에 또
서단을 보내서 후쿠사유키지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고 하는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일본은 철저하게 존항이 그러니까 한쪽으로는 는
나라를 지키겠다. 서양을 이겨야겠다.라는
라는 그 생각과 그 결기와 그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그 젊은이들을 외국에 보내서 외국에서 가장 첨단
가장 서양의 첨단 과학과 기술과 학문과 지식을 습득을
해서 돌아와서 그것을 그대로 일본에 심도록
하는 어떻게 보면 폭설 아닙니까? 자기 거를 지키기 위해서 외국거를
마음껏 받아들인다라는 거. 우리 걸 지키려면 외국 거를 막아야
되는 거, 거절해야 되는 거라고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데 일본이 메이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렇게 흔히 생각하는 외국거를 외국을 이기려면 외국을 거부해야
된다라는게 아니라 외국을 이기려면은 그 외국의 가장 앞선 지식을 기술을 과학을
우리도 가져야 되겠다라는 그 놀라운 해안이죠.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려갖고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가장 애국적이고 가장 자기 정체성 강하고
가장 우리나라를 지켜야겠다라는 젊은이들을
선발한 또이 젊은이들이 다친 사고를 하는게 아니라 완전히 열린 사고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서양 사람들한테
가서 학자들한테 가서 에거를 하면서 나한테 이런 것 좀 가르쳐 주세요. 저런 것 좀 가르쳐 주세요. 우리나라에 이런 거 없는데 내가 배워
가야지. 우리 문명이 삽니다. 라면서 배워 오게 해서 또 그 사람들을
사장시켜 버리거나 배척하거나 차별하는게 아니라 어떡하는 겁니까?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그거 배웠어.
그럼 너 조폐국 맡아서 해 봐. 너 광상국 맡아서 해 봐. 철도 지어 봐.
외교해 봐. 조선소 만들어 봐. 이런 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이 불같이 일어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정말로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그리고 특히 조선말에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조선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상한 혼합입니다. 조합입니다. 우리 거 지키고 우리
거에 대한 자랑스러움 그리고 외국 외세가 우리를 침탈하는 거에 대한 분노
우리 거를 못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그 분노 이런 거를 어떻게 수환을
시키냐면 외국거를 많이 배워서 더 강해지자. 그래서 우리 거를
지키자라고 하는 이상한 사상적 조합이 만들어진게 그게 메이지 유신네
사상입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나라에서도
그 이상한 사상의 혼합은 나오기 힘듭니다.
근데 일본이 그거를 만들어 낸 순간
해외 유학생들을 보낼뿐만 아니라 돌아와서 철저하게 그
사람들을 활용을함으로써 1번이 단숨의
근대화를 달성을 하고
한 세대만의 선진국으로 발도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네.
오늘은 어 덕구가 막부하고 조수번이 어떻게 경쟁적으로
해외 유학들을 보내면서 인재를 양성을 했는가를 한번 [음악] 살펴보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이제 사스마번문을 포함한 다른 번에서도 어떻게 유학생들을 보내 가지고 해외의 지식을
빨아들이려고 했는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이어서
정말로 조왕양이를 주장하는 그 사무라이들하고
해외 유학을 갔다 온 사무라이들이 사무라이들이 어떻게 서로가 그러면
만나서 어떻게 협력을 하면서 독구와 막보를 타도를 하고 메이지소의
왕정복고를 이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음악]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음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음악]
[음악]
[음악]
[음악]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회 - YouTube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회
법률방송
9,518 views  Jul 29, 2026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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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이어서이
독구가와 막부 말기에 도구가와 애써서
구축해 놓은 [음악] 그 정치적 균형 체제. 어 그 체제가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음악]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도구가와 어
창근 교대라는 인질 [음악] 제도를 통해서 또 자기한테 도전했던 번들을 어 영 영
영영 영지를 [음악] 뺏고 세력을 약화시키고 어 자기한테 충성하는 번으로 에워싸게
하고 그리고 이제 외세와의 모든 관계를 끊도록 하죠. 특히 외라는
[음악] 것이 외국으로부터 서양으로부터 대포가 들어오고 총이 들어오고 이런 거를 알기 때문에
[음악] 어떤 특정 번이 특히 자기에 반대하는 번이 어 외세랑 서양
열강이랑 손을 잡으면 큰일 나니까 이제 철전국 정책을 하는 거죠. [음악] 이렇게 해서 280년간의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그 평화가 깨지는 것이 결국은 외세의 도래 때문이죠. 회리제독에 미국 함대가
오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이국을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그리고 풀면서 [음악] 풀으로 해서 일어나는 정치적 불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음악] 특히 도구가와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이런 것을 가지고 독구가 막부에서 굉장히 고민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결국은 어
그 외세의 [음악] 도래로 인해서 독꼬가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그
대안으로 부상하는 것이 [음악] 천왕이 부상을 하고 그리고 천왕을 미는 존양이파
쇠국주의자들 [음악] 젊은 사무라이들 그리고 옛날부터 독구어를 반대했던
번들이 [음악] 부상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력 균형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핵심 부분에서 어 그
막부가 도구가와 막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천왕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어떻게서든지 어 동시에 다른 강한 번들을 견제를
하려고 하는 그 부분을 오늘 함께 [음악]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에도 안에 나타나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어떻게서든지 쇼근한테 전달하겠다 했을 때에 처음에는
일본에서 막부가 그걸 거절을 하려고 애를 썼죠. 그렇지만 결국은 거절을
못 하고 그 친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1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약속을
그 원포를 놓고 페리가 가고 나니까 그럼 이제 페리가 돌아오기 전까지
정확히 국가의 정책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열어야 될 건지 계국을 해야 되는 건지 쇠국을 유지할 건지
이제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때에 마침 도크가와의
그 당시의 쇼그는 굉장히 병약하고 국정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즈라는 어 높은 대신을 하나 임명을 해서 그 로즈한테 모든 거를
맡기고 있었죠. 그래서 그 로즈가이 당시에 호타라는 사람이었었는데
호타 입장에서는 이렇게 큰 일이 벌어졌고 그리고 지금
도구가와 막부 자체가 굉장히 약화돼 있는 상태고
그러니까는이 큰 일을 처리하데 있어서 도저히
옛날 같이 독구가와 막구가 강했을 때 같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독구가 막부가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다른 심지어는 조슈와 사스마 같이
자기네한테 처음부터 맞었던 따라서 어
그 다이묘들을 3등급으로 나눠서 제일 낮은 등급은 조시와 사스마 같은 그
번들은 아예 국정에 참여를 못 할뿐만 아니라
아무런 그런 중앙 정부가 그니까 독구가 막부가 상의도 하지 않는
그러면서 독단적으로 결정을 한 그런 구조였던 거를 깨고 조수하고 사스마를
비롯한 모든 번에 그
해리 저 페리가 가져온 친서를 복사를 해서 다
돌려주고 그러면서 어떡하면 좋겠냐고 처음으로 질문을 합니다. 상의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심지어는 천왕한테까지도 그때까지는 완전히 독국어가 막고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었던 교도의 천왕부에도 그걸 보내서 천왕부의
의견도 물어봅니다. 사실은 이게 독가가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였지만은
바로 이것 때문에 조슈하고 사스마가 부상을 하기 시작하고 특히 천왕부와 손을 잡고 부상을 하고 그것이 이제
궁극적으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거죠. 자, 그러면
그래서 호다가 이런 편지를 다 보내고 그래서 의견을 청취를 하는데 그런데
참 역설적인게 뭐냐면은 독구가와는
막보에서는 토론을 다 해 보고 결국은 열어야 된다. 열 수밖에 없겠다.
그러고 했는데 정작 처음으로 한번 상의를 국사를
같이 노네보자고 상의를 했던 조주나 사스마버는 물론이고 천왕이
당시 천왕은 고메이 천왕입니다. 나중에 메이지 천왕의 아버지죠.
고메이 천왕은 철저하게 반대를 합니다. 즉 천왕이 독구가 막부보다도
더 쇠국주의자들입니다. 더 쇠국주의자입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쇠국을 하는데 동의를 못 해 주겠다. 천왕이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제 호다 로즈 호다 입장에서 독고감 막부의 최고 책임자 입장에서는
기껏 상의를 하려고 여러 의견을 물었는데 그중에서도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천왕의 입장은 절대로 안 된다. 이래
버리니까는 계곡을 하지도 못하고 못 하지도 못하고 아주 중간에 끼인
상태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호탄은 결국은 자기는 도저히이 문제를 해결 못
하겠고 더 이상 국정을 이끌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 사임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또 도크가와의 당시 수군이었던
도크가와 이해 사단은 결국 병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죽은 또이
쇼구는 후사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어느 방
번에 방계 도구가와 가문에 누가 이거를 그러면
승계할 것인가 속은 자리를 승계하신할 것인가를 가지고 또 독구가와가와 감은
내에서 엄청난 내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독구가 막부는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있고 내분까지도 일어나고 있고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그런
상황에 빠져 버립니다. 죽기 4개월 전에 이나오스케는
임무를 다이로에 임명을 합니다. 아이로라는 것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인나오스케가 나온 그 이문에서만
임명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도구가와 역사상이 다이로라는 자리는
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나라가 위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이 감은 자기네가 항상 가장
나라가 어려울 때 의지했던이 가문을 찾아서 그이 가문에
나오스케를 다이로에 임명을 합니다. 그런데이이
나오스는 임명된지 3개월 만에
안사의 대옥이라는 걸 일으킵니다. 즉 무슨 말씀이냐면
강경론자였습니다.이 이 사람은이 사람은 이인하우스케은
독구가와 막부가 도대체 왜 조슈하고 사스마 같은 번들하고 상의를 하며
국정을 논하며 왜 그 사람들한테 국정에 참여할 수 있 왜 목소리를 주며 도대체 천왕부에다가 왜 그런
편지를 보내 가지고 천왕부한테 의견을 물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절대로
그건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 그러면서 대수 숙청을 합니다. 즉 계국을
반대하고 개항을 반대했던 세력들을 대거청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같은 도구가와의
가문이 통차든 그 미토버낸 미토의 날리아키
그런 사람들도 외국을 주장했지 않습니까? 자기한테 300명의 그 저 론인들하고 농부의
아이들만 주면 자기가 미국에 가서 옥세를 하겠다 이럴 정도로
세국주의자였고 계국을 반대했던 그 믿도의 날이 아끼 그다음에
도대체 처음부터 이런 다이어들한테 의견을 물었던 호다
전 로주였던 호다 마사요씨 그다음에 도사번에
야마 마우치 요도 이런 사람들을 전부 다 연금 상태 그러니까 가택 연금
시켜 버리고 후구 이번에 다이며나 이런 사람들은 아예 다이며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도구가와 막부가 다시 한번 옛날에 그
권세를 되찾는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완전히 그 강경책을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그책의 목표는 뭡니까? 개항을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 그러니까
독가와 막은 개항을 하자는 거였고 그리고 지금 조슈나 사스마번이나 또
천왕은 계국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역사를 알지만 뭡니까?
계국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천왕하고 천왕가하고 조수하고 사스마가 힘을
합쳐서 나중에 메이신을 일으켜서 완전히 계곡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참 역설입니다. 처음의 시작은 분명히 도크가와 개 계곡을
하려고 심지어는 이인우스케 같은 인물까지 나와 가지고 계곡을 반대한
사람을 대숙청을 하면서까지 계곡을 밀어붙였는데 처음에는 계곡을 했다라는 것 때문에
독구가 상대로 들고 일어났던 사람들이 도구가를 무너뜨리고 나서는
자기네가 도구가를 한 거랑 똑같은 거를 하는 겁니다. 그게 메이지 유신입니다. 하도 숙청이
심해 심해지니까 사스마번의 시마스나리아키
아주 그 그 사스마번의 큰 개혁을 주도했었고 했던 막강한 다이묘였는데이
사람은 아예인하우스케를 상대로
거병까지 계획을 합니다. 그런데 거하기 직전에 출하기 직전에 병사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인하우스케는 이때에 전국에 그동안에
자기가 봤을 때 그동안의 나약한 소군과 나약한 로주들 때문에
계속해서이 많은 번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뭐 조왕양이 어쩌고 하면서 막부에 맞서고 있었던 이런 인물들을
내버려뒀었는데 자기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적으로
존황양이 파은 사무라이들까지 전부 다 숙청을 합니다. 이때에 바로 요시다
쇼인도 조슈의 요시다 쇼인도 이때에 원래는
자기네 고향 하스마의 감옥에 있었던 거를 에도로 불러올려서 에도에서 처형을 해
버리는게 바로 이때입니다.이가 가인나우스케가 안세의 대옥을 일으켜서이 대숙청을
버리면서까지 계곡을 밀어붙이는데 천왕은 더욱더 쇠국하자는 목소리를
높힙니다. 그래서 1858년 7월 27일에는 이세이신궁 뭐 이런 여러
신궁에다가 식사를 보냅니다. 그러고 조직을 내려갔고
여몽합군이 일본에 쳐들어올 때 가미카제가 와서
신풍이 와서 신이 내린 바람이 태풍이 불어 갖고 그 함대를 선멸시켰듯이 이번에도
어떻게서든지 가미가 신이 가미카제를 내려줘서
신풍을 내려줘 갖고이 오랑캐들 무찌르게 해 달라고 전국에 있는 중요
신 이런 데에다가
죄를 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고메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천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는데도 7월 29일 날 어떡합니까?
간학가와 해안에서 정박해 있던 미국 퍼우하텐호에서
해리스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일이 수호통상 조약이 체결이 돼
버립니다. 조약 내용은 심어다하고 학고다를 즉시 개방하고
5년 안에 다른 여러 한구들을 개양한다.
이런 거를 명시하는 조약이었습니다. 그런데이는
천왕의 제가를 받지도 않았고 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천왕을 무시하는 겁니다. 옛날에 원래 박구 후 독구가 바꾸가
아듯이 천왕은 알 필요도 없고 우리가 천왕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 박 막부가 그냥 하면 된다.
이렇게 했던 거죠. 그리고 그래서 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한 이틀
후 지나서야 교도에 있는 천왕부에
미국하고 어 조약을 맺었다. 사실 급해서 시간이 없어서 통보를 못 해
드려 죄송하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간신이 독과의 이에모치라는 사람을 세소군으로
임명을 했는데 그것도 사후에 그리고 미국과의 조약 체결 한 일주일
후에서야 천왕부에다가 알립니다. 그러니까이는
원래 독구가 막부가 갖고 있었던 그 권세를
다시 회복하고 그걸 그대로 누려야 된다고 하면서 천왕부와 조황향이 계국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철저한 숙청으로 잠재어 버립니다. 고메인은 당연히 천왕은 경로 하죠.
나한테 상의도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뭐 알린다 그랬는데 알 뒤늦게나 알리고 이제 이러면서
개곡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 퇴 퇴를 해 버리겠다. 나 퇴임한다 그랬는데도 어
옆에서들 이제 말려서 퇴인을 못 합니다. 이러고 있는데 또 마크는 아예 한
걸음 더 나가서 곧바로 미국과의 수상 조약만 맺은게 아니라 곧바로이어서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과도 통상 조약을 맺어 버립니다. 완전히 계곡을 하는 겁니다. 고메인는 조종 회의를
열어서 고매 천왕은 조종 회의를 열어서 미국과 조약을 맺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라는 걸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지만 자기의 영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책망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그게 뭐냐면은 이렇게 나라가 어려워졌으니까 그러면
천왕부하고 도구가와 막부하고
협조를 하자, 손을 잡자라는 제한을 합니다. 그 제한이 공무 협체
공이라는게 그
천왕이고 그죠. 우리가 어 공공성할 때이 공 그죠 공이고 그다음에 부는
당연히 이제 무사니까 막부를 말하는 뜻이고 합체 둘이 같이
하자 그래서 고부갓타에 1번 말로 고부가라는 거를 하자라는 거를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철왕은 그나마 그래도 좀 타협을 하려 그러고 그러는
입장을 했는데도 굉장히 구력적이었죠. 자기한테는 자기는 그래도 알려 달라
그러고 더군다나 반대한다라는 걸 했는데 완전히 무시하고
막부가 그냥 미국하고 뭐 네덜랜드하고 영국하고 다 조약을 체결해 버리니까
굉장히 경로를 하고 분노하면서 어 나 이러면 그만두겠다라는
어 그 퇴의하겠다라는 협박까지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이제 주위의
신하들의 이제 말을 듣고 그러면서 아 너무 그렇게 과격하게 하시 안 됩니다. 하는 얘기를 듣고서 자
그러면 어쨌든 내 칭령을 어긴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라가
어려우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자 이랬었지 않습니까? 막보하고 천왕의
힘을 합치자. 이렇게 천왕이 얘기를 했는데도 막상 막부에서는 당시에 로즈
마나베 아키카츠라는 유명한 로즈를 그니까 다이로이 밑에 있었던 로즈죠.
로즈를 보냅니다. 근데이 로즈가 처음에는
미국하고 맺은 조약을 설명하겠습니다. 이러고 왔는데 막상 와서는
어떡합니까? 막상 와서는 마베가 천왕 주변에서 외국을 주장하든
그러니까 막부의 정책에 방대하든
미국과의 조약을 맺는 거에 반대하든 천왕 주변에 있는 대신들 그리고 천왕
주변에는 전부 다 후계 귀족들이죠. 원래 귀족들이요. 일본의 귀족들.이
이 사람들을 대고 숙청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천왕주의에 있는 천왕의 가장
친한 천왕이 가장 믿든 그러한 대신들조차도
귀족들조차도 막부에서 사람을 보내 갖고 다
숙청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인물들은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삭발을 하고 아예 출가하도록 합니다. 막부에서
로즈가 와서 천왕의 측근들을 다 잘라 버리는데
천왕이 어려서부터 같이 잘한 사람들 친했고 의지하는 사람들 잘자 숙청을
해 버린데도 사실 천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즉 천왕은
말로만 군주이지 실권은 전혀 없었다라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인 아우스케는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만나를 보내서 천왕부에 아예 가서 그
주변의 인물들까지 숙청하면서 자기의 힘을 막부의 힘을 과실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이 이인나우스케의 안세의 대혹 때문에 바쿠마츠 어
도고가 막부가 끝나가는 그 시기에 새로운 정치적인
전선이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이이 나오스키가 이끄는 독구가 막부가
추진하고 있는 계국 계국 세력이 있는 거고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양의 세력 즉 쇠국 세력이 있는데 그 쇠국 세력이 가장 쇠국을 앞장서서
지지하기 시작한 고매의 천왕
하고 힘을 합칩니다. 그러니까 양이 서양 오랑캐들을 물리쳐야 되고
서국을 지키지 않는 그 세력과
천왕을 따라야 된다. 천왕을 존중해야 된다.
천왕이 진짜 우리의 죽은이다라는 그 밑도번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그
존왕 사상이 합칩니다. 그래서 존왕 양이 사상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황제를 천왕을 받드는 것은 곧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는 거라는 그 존왕양이
사상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이 존황파들은 곧파들이 [웃음]
되는 거고이 존왕파들은이
나오스케가 천왕의 제가도 없이
헤르스약을 맺어버렸다. 이게 천왕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이 존황 양이파들은 전부 다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천왕 주변에 천왕부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깐 미국
등의 외세와의 서양 세력들과의 조약을 맺고 그거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교도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국가 정책에 개입을 하기 시작하고
전국의 젊은 사무라이들 열혈분자 조황양입파 사무라이들이 다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제는 는 박후나 막부나에도 대신에 천왕과
교도가 나라를 대표하는 중심으로 자꾸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다른묘들도
이제 세력 중심이 두 개가 돼 버리는 거 아닙니까? 에도의
에도의 박구후가 있고 막부가 있는 거고 교도의 천왕부가 있는 거죠.
전에는 아예 비교할 수도 없이 애도가 강했고 천왕분이 있으나 많나 한
거였었는데 지금 계국을 통해서 완전히
교도의 천왕부가 관심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그리고 세력이 점점 점점 그쪽으로 쏠립니다.
그러니까 전국에 있는 다른 다이어들도 모든 다이여들도이 어느 쪽에 가서
있어야 되지 그러면서 누구 쪽에 붙는게 이게 맞는 거지 하면서 그
합종 연행 복잡하게이 서로가 이편 저편 들고
고민하고 하는 그 정치판
교도와에도 사이에서 천왕과 막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민하는 합종 연행하는 소위 말하는 바꾸마츠 막부 말기의 정치가
시작이 됩니다. 이인 아우스케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정치 지형이
만들어집니다.
법률 방송이 출관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음악]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요를 중심으로 한 천왕을 중심으로 한이 전왕 양위파
세력이 얼마나 강해지기 시작했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뭐냐면은
1860년 3월 24일 일어나는 사꾸라다몽
사건입니다. 사꾸라다몽문은 에도송 지금의 그 고교죠. 저
도쿄에는 천왕의 거 그 거소인데 그게
그 당시에는 이제 독구가와 그 막부에 어 독구가 가문의
성이었죠. 거기에 가서 쇼근을 만나서 국사를 논하고 퇴청하는이
나오스케을 밑도한의 존양입파
론인들이 암사를 합니다.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참 끊임없는 아이런이지만 미터번은 도구가 번의 형제번입니다. 가장
가까운 번입니다. 근데 그 미토번에서 전왕이 사상이
나왔던 거고 그러니까 그 미토번에 사무라이들이
자기 그러니까 도구가와의 영을 어기고 도구가와의
다이로를 죽이는 거죠. 왜? 존왕
천왕을 모욕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서양오랑캐들과 조약을 맺어서 나라를
열으로서 천왕을 모욕했다. 따라서 그 이인
아우스케를 암사를 합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바코는 너무나도 충격고 놀랍 충격이고
놀랍기 때문에 몇 달 동안이가 죽었다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강력한 지도자였고 강력한 계국주의자였던이가
죽음으로써 박푸는 막부는 다시 한번 표류하기 시작을 합니다.이가 가 죽고
나니까 막부의 힘이 약해지는 거고 요때에
고메이 천왕이 다시 한번 우리 천왕부하고
막부하고 같이 가자라는 공무합체 론 고부가를
제시를 합니다. 그리고 막부의 입장에서도
천왕부하고 손을 잡는 것이 자기네
힘을 유지하는 방편이다. 유일한 방편이다 생각을 해 갖고 그래서 천왕하고 손을 잡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자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이 뭐냐면은 그러면 고매의 천왕을
고매의 천왕이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전왕이 파들이
거를 떠바들고 그리고이
천왕한테 천왕의 영을 어기고 오랑캐드를 조약을 맺은 막부를 타도해야 된다라는
그 조항양이파들 때문에 다시 천왕이 힘을 얻게 되는 건데
그런데 고메이의 천왕 본인은요 도구가 막보를 타도하고 자기가 뭐
왕정복고를 통해서 자기가 다시 친정을 하겠다. 친히 정치를 하겠다. 나라를
다스리겠다. 이런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바꾸에서 돈 주는 돈과 모든
잘해 주는 걸 갖고 그냥 자기는 편하게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고 생각을 했었지. 자기가 국정을 도모해
갖고 어떻게 하겠다 이런 생각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는 그를 추정하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거하고
고매의 본인이 생각했던 건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고메가 사실은 독구가 막부를 타도하자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라는 것은 어디서 나타냐면 바로 그 공무합체 고부가에서 론에서 나오는 거죠. 그래서
1860년 6월 3일 날 바로 그 고부갓타이를 그럼 한번 우리가 실행에
옮겨 보자라는 취지에서 그래서이 그러면 공공무합체론
고부가를 실행에 옮기자고 해서 1860년
6월 3일 날 가노미아 치카코 내친 왕 고메이의 이복 여동생입니다.
도매하고 가장 친했고 가장 서로가 믿고 의지했던 여동생입니다. 하고
시억군하고 결혼을 하자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제안이 나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죠. 그러니까 도구가 280년 역사상 항상
천왕부를 억누르고 가서 천왕을 갈아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독구가의 가문에서 이제는
혼인 관계를 맺서이 고부가타이가
실체를 갖게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박구 후측에서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이 혼인을 성사시키자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천왕이 자기가 가장 믿는 쿠게 그 귀족 출신 중에 이와꾸라
도모미한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 어떻게
생각하나 의견서를 제출하라 그럽니다. 이와꾸라 도무미는 나중에 이와꾸라
사절단이라는 꾸려서 전 메지우신 직후에 성공을 시킨 직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 2년 동안 어 외국을 보고 오는 그 유명한 이꾸라사절단의
그 그 수장이기도 합니다. 일본 근세사의 메이지신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데 이때에 이제라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임무가 뭐냐면은 과연 천왕의
여동생하고 도크가 이예모치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건가 했더니 그
가즈노미아 혼인에 관한 상신서라는 거를 제출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와꾸라는요. 조종하고 박후가 하나님을 대회에 과시하는 것 이거는 필요하다.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만일이 혼인을 통해서 정말 고부가타의
공무 합체가 일어나면은 천왕부는 이제 점점 점점 국사에
참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조정 조종이라는게 이제 천왕구죠.
조종의 권위는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면서 적극 찬성합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대신에이 결혼을 성사시킨다.
그 대신에 도구가와 막부가
외국 오랑캐들과 맺은 그 모든 조약들은 모든 조약들은
결국은 취화할 것을 맹세해야 된다. 그러니까
막부로 하여금 모든 외곡과의 조약들을 추할 것을 맹세하도록 약속을 하면은 결혼을
시켜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천왕이 친서를 보냅니다. 독구한테 막부에 보내고 막부는 그걸
받아들이고 100% 동의 찬성한다. 그리고 어 이렇게 되면은
나라가 이제 천왕보하고 막부하고 손을 잡으면 나라가 이제 통합된 군사력도 갖게 되고 강렬하게 강력하게 대회의
그 외세의 개입에 저항을 할 수 있게 된다. 맞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군사력을 통해서든 아니면 조약의
재협상을 통해서든 앞으로 7년에서 10년 안에
서양하구의 서양 양이 그 서양 오랑캐들과의 모든 조약을 7년에서 10년 안에 다
취화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니까는
존왕이 파들은 천왕주에 모여들면서 교도에 모여들면서 천왕 보고 저
당신한테 모욕을 준 오랑캐들하고 조약을 맺은 그 도구가
막부를 타도하고 천왕께서 직접 친정을 하십시오라고
하는 그런 와중에 천왕은 정작 고부가타이를
통해서 지금 독구가 막부랑 손을 잡는 겁니다. 근데 아무리 아무리 천왕이
독구가와 손을 잡고 본인은 친정을 할 생각은 곰의 천왕은 추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력의 중심은 권력의 중심 추는 교도로 옮겨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면서 박쿠는 이제 고부 갓때를 통해서 천왕부하고도 관계를
설정을하고 특히 혼인 관계를 통해서 그렇죠. 천왕의 여동생이
초군하고 결혼을함으로써 그 관계가 탄탄해지니까 그다음에는
다른 번들하고도
특히 자기네한테 저항하던 번들하고도 관계를 다시 재설정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이때 하는 것이 뭐냐면은 참근 교대 산긴따이 그 인질제도
그죠? 2년마다 한 번씩 그러니까 그 각 다이여들이 본인들은 2년마다 한
번씩 교 도쿄에 와서 살 애도에 와서 살아야 되는 것이고 그 정실 부인하고
그 후계자들을 무조건 에도에 늘 살아야 되고 했던 그 산킹고따의 제도
자체를 7년간 유회를 한다 이래 버립니다.
그래서 그 유회를 하는 이유는 그런 거를 참근 교대 할하는데 돈이 너무
돌아 들어가고 그걸 유지하는데 각 번이 재정을 너무 많이 쓰고 경제력이
약화되 됐었는데 그리고 사실 그런 목적으로 창근 교대 시스템을 제도를
만들어 놨었던 건데 이제는 나라를 지키려고 국방을 강화시키고 공동의적인
서양 오랑캐들 하고 맞싸우려 그러면은 그 번들이 들이 참근 교대 같은 데다
모든 재력, 경제력을 다 써 버리면은 안 되고 오히려 각 번마다 군사력을
길러서 국방을 강화시켜야지 된다 해서
산긴다이를 7년간 유예를 해 버린다. 사실 이렇게함으로써 참근 교대 제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니까
사츠마와 조슈 같은 대표적인 도자마 다이묘 그죠. 또
그거한테 맞었던 그 다이묘들은 이제는
막간 경제력과 모든 거를 동원해서 자체의 국방력을 강화시키고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도구가와 그렇게 애써서 구축했던 세력 균형
280년 동안 에도의 평화를 가능케 했던 그 세력 균형은 이렇게 무너지게
됩니다.이 박쿠마스의 정치 막말 막부 말기의
정치는 정치 진술를 보여줍니다. 그러깐
정치라는 건요. 그 참여자들의 의도,
이념 이런 것과는 사실은 별 상관없이 흘러가는게 정치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 나오더라도 대혼란계에 나오면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간 옳게 뜻대로 한 사람의 뜻대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런 것은 없습니다. 각자가 다 그 당시 그 순간순간에
나름대로 이런 결정을 내려야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고 이게 나의 번을 위하는 것이고
하는 그 모든 그렇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열심으로 그걸
위해서 노력을 하더라도 결국은 그 모든 의도와 노력이 합쳐지면서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지금
도구가와는 결국은 자기네가 힘이 약해지고 외세의 도래를 통해서 아
우리가 생각보다 너무 모든 것을 상황을 통제할 수 있 힘이 없구나. 외세를 막을 힘은 더운다는 없구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동안에 우리가 갈라져 있고 서로
분열 통치를 하던 이런 다이여들 그다음에 억누르고 있던 천왕부 이런
세력까지 그래도 국론을 통일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 다시 끌어들려야 되겠다라는 굉장히 좋은 의도에서 국론
통일을 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국가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시키는 방법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천왕부나 다이어들한테 그야말로 정책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한 건데 그것 때문에 결국은 도덕가 막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반면에 천왕부라는데는 천왕은 특히 당시 고메이의 천왕이라는
사람은 그냥 쇠곡주의자였고 기존 체제 도구가 막불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체제가 그냥 유지되는 것만 바랬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최국을 해서 최국을 하라는게 독국어의 막부의 정책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반대하는게 됐지만이 사람은 뭐를 하고 싶었냐면 독가와 막부가 미워서 반대를 한게 아니라
독구와 막부가 좀 계속 그대로 가라 좀. 그래서 나 같은 우리 천왕한테는
그냥 그때그때 연금 주고 돈 주고 편하게 살게 내버려두고
국정 같은 거 우리 참여하도록 괜히 골치 아프게 그런 거 안 하도록 하자고
그런 의미에서 독구가 막부하고도 손을 잡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천왕을 미는 존황이파들은
천왕을 모욕을 준 도구가와를 타도하고
그리고 천왕께서 직접 나라를 다시 다스리는 친정 체제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서 외세를 몰아내야 됩니다.라는 세력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럼이 세력이 서로가 전혀 다른 꿈을 갖고 있고 미래를 전혀 다르게
보는 겁니다.이 이 세력이 어떻게 서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삽종 연행을 하면서 그러면서 결과적으로는
고메이 천왕이 죽고 새 천왕 메이지가 나오면서 그 메이지 천왕부가
조슈하고 사스마하고 손을 완전히 잡으면서 결국은
도크가와 막부를 타도를 하지만 그 타도를 하는 과정에서 존황양이 파들의
양이 즉 서양을 물리치고 세곡으로 돌아가자라는 그 원칙은 사라져 버리고
천왕이 친정을 하는 왕종 복가 이루어지는 거는 맞지만
그 메이지의 새 정부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수입된 새 정부는 적극적인 개방 정책
독구가와 막부보다도 더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독구가 막보는 굉장히 억울하죠. 자기네는 계곡을 하겠다고 그렇게
설득을 하고 그래서 전국을 설득하려 그러고 천왕을 설득하려 그러고 도자마이며들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전부
다 그 계곡했다고 반대 벌대같이 일어나서 자기네를 다 타도해 갖고 무너뜨리고 나서는 결국 하는게
뭡니까? 자기네가 했던 정책을 그대로 오히려 더 심화시켜서 더 개방 개혁
정책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지만이 과정에서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변하는 거죠. 특히 전왕 양이파가
존황은 맞는데 양이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주신을
일으키는 기도 오크보도시미치 사이고 다까머리이 또
뭐 야마가이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전부 다 전왕 양입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음 시간에도 계속 살펴보겠지만 외국
유학을 가고 사신으로 외국을 가보고 그러면서이 사람들이 전차
양의가 아니라 계국주의자들로 아주 친서방주의자들로
변해 나가면서 [목을 가다듬음] 결국은 메이주의신이라는 그 이상한
이상한 집합체가 생깁니다. 자들이 계국주의자들이 되고 계국
세국주의자들이 계국주의자들을 무너뜨리고 나서는 본인들이 계국주의자가 돼 버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메이주의신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혁명이 일본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 이제
막부하고 초왕부하고 손을 잡고 공무 합체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사스마 조슈 같은 도자마 다이여들도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참근 교대도
없어지면서 자유롭게 되기 시작하면서 그다음부터는
막부는 물론이고이 번들이 경쟁적으로 개방정책을 하고
특히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유학생들을
외국에 파견하면서 일본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음악]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음악]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2 일본은 어떻게 단숨에 강대국이 되었나? [

일본은 어떻게 단숨에 강대국이 되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2회 - YouTube

일본은 어떻게 단숨에 강대국이 되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2회
법률방송
14,607 views  Jul 22, 2026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Transcript
===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어 지난 시간에이어서이
[음악]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의
도래로 인해서 일본에 200년에 걸쳐서
구축되었던에도 시대의 그 [음악] 평화의 그 체제 그 세력 균형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어 것을 살펴봤습니다. 외교관들이 일본에
처음으로 상주를 하게 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 하의
거래가 일상화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거기에 [음악] 어떻게 적응을 하고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 것지 좀 구체적으로 재밌는 예들을 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해리 제독은 1853년 7월에 왔다가
1년 후에 온다 그랬습니다. 근데 훨씬 일찍 옵니다. 1854년
2월 달에 원래 예정했던 거보다 한 3개월 일찍 들어옵니다. 왜 그랬냐면은 그 사이에
지난 시간에 마지막에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러시아 함대가 그 사이에 옵니다. 러시아의 퓨차네라는 제독이
와서 어우 미국하고 지금 뭐가 벌어지는 거 같은데 우리랑 합시다
하고 제안을 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니까는 그 얘기를 또 이제 미국 측이 듣는
거죠. 그래서 어 이거 우리가 늦게 가면은 그 사이에 러시아가 먼저 먼저
일본을 열 수도 있다. 일본과 먼저 조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우리가
빨리 가야 됐다. 그래서 원래 나 1년 후에 돌아올 거야. 그러면서
엄포를 놓고서 통보를 하고 돌아갔었는데 예장보다 훨씬 일찍 페리가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23일간 그러니까 그 사이에 사실
이제 로주 아베가 어 전국의 나이들한테 또 교도의 천왕 한
천왕부에 그 휠모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다 보내고 어떻게 할까 이제 뭐 그 온갖
여론을 수렴해 보고 근데 결국은 여론 수렴이 안 되니까는
어떻게 좋을지 사실 갈팡지 질팡하는 상황에서 일단 협상을 하면서 23일간
협상을 합니다. 그리고 1854년 3월 31일
소위 간나가와 조약이라고도 하는 공식명층 일이 화친 조약입니다.
그것을 조인합니다. 간나가와 조약으로 일본은 에도만 어유에 있는 시모다.
항 [음악] 그다음에 학고다 저 북회도 포카이도에 있는
학고다함을 개항하는데 합별합니다. 나중에 이제 일본이 운용호 사건을 일으키고
조선하고 협상을 해서 강화도 조약을 할 때 그때 부산을 [음악] 먼저 개항을 하고 그다음에 두 개항을 더
추가로 하기로 합의를 해서 나중에 이제 재물포와 원산을 열게 되는 거죠. 미국이 밀어붙였죠. 그래서
결국은 시모당 뭐 재물포 같은 거죠. 수 한양의
바로 앞에 있는 시모당을 열고 학고다항을 열도록 합니다. 그리고
미국 배들이이 두 항구에서 항상 가서 석탄 공급을 받을 수가 있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뭐 이제 미국 선원들이 조환당하거나 그랬을 경우에는 역시
일본에서 잘 구조를 해서 보호해 주고 미국 축에 임기하겠다. 이제 이런
약속을 하는 것이 그 조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은
시모다의 외교관을 상주시킬 수 있게 됩니다. 다만이 조약에서 빠진 것이
뭐냐면 통상 조약에 빠집니다. 그니까 통상을 하자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끝까지 일본이 거절을 해서 결국은 통상 조약은 안 하고 그냥 열어서이
두 한구를 열어서 미국 배들이 왔을 때 석탄 보급받고 물자 보급받고 뭐
조난을 당하면 구해 주고 이제 그리고 미국 외계관이 와서 상조하는 거는 되는데
통상에 대한 합의는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어떻게 보면은 바크후의
입장에서는 더다한국 절대 이걸 쇠국을 지켜야 된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었는데 어느 정도 체면은 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통상 조약을 안 맺었으면 꽤 큰 꽤나 23일간 엄청난 협상력을
일본이 발휘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통상만큼은 안 내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다이며들 그리고 박후
내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이거는 구력이다. 어떻게이
한구를이 두구를 추가로 열 수 있고 어떻게음 미국 외교관이 우리이 땅의 황토에
와서 살게 하느냐라면서 엄청난 반대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 미도의 그 날리앗기
당대 가장 존경받고 있고 도독구가와 같은 도구가 가문이었던 그 미도
미도번 미토학파 존왕 사상을 배태시킨 그 미도번의
다임이었던 미도나리학기는 여전히 미국 그 조 미국과 조약에
반대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한테
론인하고 농부의 아들들로 된 구성된 군대 300명만 아니면 3,
400명 정도만 특공대를 나한테 주면은 내가이 특공대를 이끌고 미국에가 갖고 미국에
가서 싸우겠다. 그래서 미국에서 싸우면은 미국에 가서
우리가 싸우면은 다 전사해 버릴 건 다 우리가 옥세를 할 거다. 다 죽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도 야 일본을 개앙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라는 걸 미국 사람들도 깨닫고 그리고 일본의 무사도 정신도 좀
되살아날 것입니까? 그 나한테 그거를 그 특공대를 만들어 달라고
심각하게 조종에다가 상소를 올립니다. 그런데이 특공대는 3, 400명인데
전부 다 론인이나 농부의 막내 아들이어야 된다 그럽니다. 왜? 막내
아들이어야지만이 특공대는 가면은 무조건 전원
죽습니다. 전원 옥수야 합니다. 근데 그렇게 되더라도
그 집안에 대가 끊기지 않으려면 여러 아들들이 있는데 막내들만 내서 우리가
가서 다 죽을테니까 그래야지 일본이 정신 차린다. 그래야지 미국이 우리가
얼마나 무섭다는 거 안다라고 지금 도꼬가 날리학기라는 이런 얘기까지도
합니다. 자, 이러고 있는 와중에 디아나호가 다시 돌아. 그러니까
러시아의 퓨타틴 제독이 몇 달 전에 왔다가 왔었기 때문에 이제 페리도 그
부랴부랴 다시 와서 간나가와 조약을 맺은 건데 이제 그 소식을 듣고 푸티아틴이 이번에는 디아나호라는
배를 이끌고 이제 옵니다. 근데 오사만에 이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사카에 나타나서 러시아는 뭐라 그러냐면 우리는 미국같이 감히 그렇게
불경스럽게 애도 수도로 가지 않고 일본에 열려 있는 나가사기로 우리는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을 더
자이하고 일본의 뜻을 더 존중하고 일본하고 제대로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 우리랑 맺어라 이런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오사감한 쪽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제 지난번에 처음에 왔을 때는 팔라다라는 범선을
타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디아나라는 그 정기신 아주 신식 정기선을 이제 타고
옵니다. 디아나가 오사만의 정박에 있으니까 오사가가 이제 교도 바로
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2주 동안 정복 정박했는 동안 이제 교도가
난리가 나는 거죠. 지금 시모다의 회리가 오는 거는 이제 에도가 난리가
나는 건데 이푸티아티는 가지 않고 오사카 쪽으로 왔기 때문에
이제 거기에 정박을 러시아 군남이 정박을 하 있으니까 이제
교도에서 난리가 나죠. 그래서 이때 고메이 천왕이
나라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일곱 개의 신도 사원과 일곱 개의 불교 사찰에
봉양을 하고 금식을 합니다. 푸테티는 나가사기에서 시모다로 가서 12월
22일 날 막보하고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협상을 하고 있을 때 이때 안세의 독화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엄청난 지진이었습니다. 때 그
지진이 혼슈를 일본의 본섬민 혼슈를 강탈을 합니다. 그리고 그
강진 때문에 쓰나미가 일어납니다. 그 쓰나미가 몰려와서 시모다를 덮칩니다.
그래서 거기에 푸아틴의 디아나호가 거기에 정박해
있는 있었는데 쓰나미가 닥치니까 그 배가 4세번인가를
회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금료에 휩쓸려서 하다가 결국은 좌처합니다. 이때부터
연호를 그 당시 일본의 연호를 안세의 이름 안정
좀 안정된 거를 원한다는 안세로 이제 연어도 이때부터 안세로 바뀝니다.
결국은 지진 때문에 협상은 10일간 또 지연이 됩니다. 그래서 그러고 나서도 또 아주 지리하게 협상이
이어집니다. 일본 사람들의 협상력 대단합니다. 이때도. 근대 조약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하여튼 대단한 협상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1855년 2월에 돼서야 2월 7일 날 일본과 러시아가 일로 화친 조약
일명 심모다 조약을 체결합니다. 푸티아틴하고 러시아 해군들은
미국 배하고 독일 상선들을 임대하고 떠나고 일부는 러시아 목수들의
지휘하래 일본 사람들하고 같이 일본인들이 건조한
배를 만들어서 그걸 타고 귀국을 합니다. 마지막 러시아인들이 시모다를 떠난 것은 1855년
여름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이요. 일본 사람들의 놀라운이 당시 일본 사람들 놀라웠던게 뭐냐면이 디아나호가
좌초된 것을 300명의 일본 목수들이 러시아 목수들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거기서 그 배를 건져내서 그 설계도를 찾아내서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러시아
선원들하고 일본 목수들이 300명이 같이 배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선 단
두 달 만에 서양식 배를 [목을 가다듬음]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이 배가 결국은
100톤, 길이 24m, 그리고 두 개의 도대를 갖 갖춘 서양식 스쿠너입니다.이
배를 건조하는 거를 지원했던 그 마을 목수들이 살고 했던 그 마을이
해다라는 마을이었답니다. 그래서 배 이름을 해다라고 명을 합니다. 그
배를 타고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 돌아가는 거고 1번 정부는 우리도
이때 배웠던이 기술을 이용해서 강한 해군을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곧바로 해다랑 똑같은 배를 여섯 척을 더
건절을 하라고 해서 그 목수들이 여섯 척의 배를 서양식 스쿠너를 이때에
벌써 1855년에 만들어냅니다. 소적을 만들어내서 그것이 일본 근대
해군의 시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면은
그 동네에 시모다 저 항 앞에 거기 푸아틴
동상도 있고 그리고 디아나호의 닭 격 저 침몰했던 그 배의 답도
지금 공원에 갔다가 놓고 있습니다. 무슨 상황이 됐든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그렇죠. 자기네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은 자기네를 강제로 개곡시키려고
왔던 배에 배가 격심됐으면 아 그거 참 꼬소하다 그러지 않고 그거를
끄집어내 가지고 거기에서 설계도를 찾아 가지고 러시아 지금 협상하고
있던 러시아 사람들도 야 이거 우리 만들자. 우리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줘. 그래서 같이 배를 만들어서 그
기술을 습득을 합니다. 그래서 한 척 만들어서 보내고 그 기술을 가지고
남척을 더 만들어서 자기네 해군으로 키우는 겁니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메지유신이 가능했고 일본이 급속한 속도로 근대 국가로 부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학과 조약으로 합의한 것이 미국하고 일본이 합의한
것이 미국 외교관이 일본에 상조한다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1856년 8월 21일 날 미국의 초대 주일
영사 타운샌드 해리스가 미국 저남산자신토라는
배를 타고 시모다에 도착을 합니다. 4일 후에 시모다의 부교 시모다의
그니까 봉행 시모다의 관리를 만나 가지고 나는 앞으로 시모다에 상주할
거다. 이렇게 통보를 합니다. 그랬더니 심어다 봉행이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건 불법이다. 우리 안 된다라고
거절하니까 해리스가가 간학가와 조약에 따라서 나는 분명히 일본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만일에 그리고 나한테 영사에 준하는 대접을 제대로 안 해 주면은 나는
애도로 가서 난치 얘기를 할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막부가 박후가 한 달을 니다. 한 달을 끌다가 헬스가
포기를 안 하니까 결국은 알았다 그러면 살아라. 그래서
시모다의 해리스가 거주한 것에 동의를 합니다. 페리스는
에더에서 거주해도 좋다는 그 동의가 나올 때까지 그 사이에 기다리는 사이 한
달 기다리는 사이 이미 시모다이는 교구센지 옥천사라는
절을 사서 거기에 그걸 영사관으로 개조를 하고 거기에 성적기를 이미 내다 겁니다.
그 교구센지 지금도 그대로 있고 거기에 가면은 그 앞에 팬말과 모든
것이 설명하는 것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해리슨은이 교구센지에 2년 10개월간 머물니다. 체류 기간
동안에 해리스가 미국 식으로 미국 사람이니까 나
우유하고 소고기 좀 스테이크 좀 먹겠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때까지
소를 먹지 않았습니다. 소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우유는 물론이고 소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구에 가면요. 거기에 탑이 하나인 기념비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은 거기에 소의 형상이 앞에 이렇게 부조가 떠 있고 그런데 뭐냐면이 여기가 일본에서 사람이 먹기
[음악] 위해서 처음으로 소를 도축한 장소라는 그걸 기념하는 장소라고 설명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비의 영어에는 이렇게 이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이 이 기념비는 1931년 도쿄의 정역업자들이 세운
것으로 일본에서 사람이 먹기 위해 최초로 소가 도축된 장소를 기념한다.
해리스와 헨리 휴스켄이이를 먹었다. 이렇게 이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일본 낭농의 발상지라는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 뭐 우리도 사실 1960년대에
그 한국에서 우리 초등학교 이런 데서 처음으로 우유가 공급되기 시작해서
우유를 먹으면 뭐 배탈이 나고 뭐 이래 이런 얘기를 했었 그런 얘기가 많하셨습니까? 그래서 아 우리가
우유를 안 먹었었다고 굉장히 늦게 먹기 시작한 건는 알겠지만 그래도 소고기는 분명히 먹었을 텐데
우리는 불불불고기도 있고 여러 근데 일본에서는 아예 소를 먹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먹은게
타운앤 해리스 미국 영사가 와서 처음으로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까 아마 날생선
스시만 먹고는 안 되겠다 싶어 갖고는 소를 먹어야겠다. 그래 갖고는 도축을
해서 그리고 이제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고 한 것이 일본에서
소잡고 우유마시기 시작한 최초의 장소가 바로 미국 영사관이었습니다.
그 해리스는이 2년 10개월 동안 코크센지에 교구센지에 머물다가 그다음에
1859년 7월 19일 날 소위 해리스 조약 그러니깐 일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사관을 센후지 어 선복사라는 대로
옮깁니다. 그것도 그대로 지금 그 절도 남아 있는데요. 그러니까
1854년에 간학가와 조약을 체결을 해서 처음으로 두 개 한구를 심호도
하고 학고다 두 한구를 개항을 시키고 그렇죠. 그리고 영사관 영사가 와서
상주를 하게끔 해 놓고 그러고 나서는 어떡합니까? 그러고 나서는 해리스가 와서
수호 통상 조약을 협상을 하는 거고 그 수호 통상 조약을 59년에 가서 체결을 하는
거. 그래서 그게 이제 일수호 통상 조약이고 우리가 그니 해리스 조약이라고 하는 거죠. 간나 조약하고
달리 해리스 조약이 되는 거고 그게 이제 통상 조약을 통해서 미국하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교육을 하기
시작하는 거고 그러면서 이제 센 후구지로 어 그 해리스도 옮겨갑니다.
이런 유적들이 일본에 그대로 지금 남아 있습니다.
법률 방송이 출관하는 [음악]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음악]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리스가 시모다에 도착을 해서 나 여기서 이제 살겠다라고 요구를
하는 것을 알고서 그때에 나가사기에
있었던 돼지마섬에 네덜랜드 상관장이 있 있었지겠습니까?
계속 있었던 거 200년 동안 있었던 거니까 그 상관장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 돈큐티우스라는
네덜랜드 사람입니다.이 사람이 아 결국은
일본이 미국하고 저액을 체결을 하고 미국 영사가 외교관이 상주하기에
이르렀구나. 그러니까 일본이 이제 바뀌기 시작하는구나.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되는가? 이거를 편지를 써서 나가사기 봉행을 통해서
에도의 박 후에 막부에 전달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간학가와
조약을 맺고서 외국과 통 그 교육을 시작하고 계국을 하니까이 사람은
재빨리 일본하고 협상을 해서 우리 네덜랜드도
이제는 동인도 회사가 아니라 네덜랜드의 네덜랜드와 일본의
국격을 협상을 해서 최초의 주일본 네덜랜드
영사가 되는 겁니다. 니다. 그 동인도 회사장에서 그냥 영사로 넘어가는 거죠. 그러면서이 사람이
에도의 상소를 올려서 하나하나 집습니다. 1번이 쇠국
정책을 고집하면은 이거는 구미 열광들하고 전쟁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때이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뭐냐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기리스, 그리스도, 크리스천들에 대한 철저한 포교 금지령이 내 내려
있었고 특히 일본에서는 그때까지도 그
가장 지독한 기독교 박해, 크리스천 기리스탄 크리스천 박해 가장 지독했던
점가 뭐냐면은 후미에라 라는게 있습니다. 발판이라 그러는데요.
후미에가 뭐냐면이 사진에서도 보시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을 저렇게 주조를 해서 동물판으로 만들어서 기독교인으로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한테 저거를 밟고 지나가라 그럽니다. 그래서 그거를
차마 못 밟으면은 저거는 신자라 그래서 처형을 하는 거고 고문하라고
처형을 하는 거고 그걸 밟고 지나가면은 괜찮은 겁니다. 그니까 참 그
잔혹하하고 이제 이런 것들이 그 엔도 슈구의 침묵이란 영화에서도 나오는
거고 그 소설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나오는 이제 그런 그 그
참 아픈 장면들인데 그 관습이 그때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관습을 폐제하라. 그러니까 기독교 포교를 받아들여라. 네덜랜드
상관장으로서 가장 일본을 잘하는 당시 외국인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충고를 해 주는 것이 세곡 정책 포기하고 기리스탄 탄압하는
거 빨리 금지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왜 왜곡하고 교육을 해야 되는지 왜 그게 유익한지
일본이 수입품을 할 때는 수입품에 대해서 관세를 부과해라.
그리고 수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빨리 개발을 해. 수출 품목을 빨리 개발을
하라요. 참 놀라운 중요한 충겁니다. 왜? 조선은요.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일본하고 맺었을 때 관세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관세를 안 매깁입니다. 1876년에 강화도학을 통해서 부산이 열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본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관세를 안 매깁니다.
그래서 그냥 일본 물건들이 그냥 들어오는 거죠.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장사 잘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이거 도저히 안 되겠 나 뒤늦게 깨달니다. 그래서 1880년에
김홍집을 2차 수신사로 1번에 보내는 이유가 뭐냐면 야 우리 잘못했는데이
관세 좀 협상 좀 다시 하자. 강화도에서 우리 이거 빠뜨렸는데 4년
전에 조약 체결할 때 빠뜨렸는데 우리 다시 하자. 그래 갖고 1번에 가서 일본에가 갖고 거기에 어 인호에
가오르한테가 갖고 아 우리 다시 좀 하게 달려고 그랬더니 일본 측에서 그럼 가져왔어. 협상한 새로운
체결 그 조약 가져왔어. 거기에 이제 뭐 관세는 어떡한다? 아니, 그런 거 안 가져왔는데 당신들 알아서 좀
만들어 달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런게 가능합니까?
네덜랜드 상관장 했던 사람이 얘기를 해 주는 거죠. 빨리 교육을
세국 포기하고 교육을 해라. 그게 나라가 잘되는 길이다. 그런데
수입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라는게 있는데 그 관세를 꼭 먹겨라. 그리고 수출 품목들 많이 개발을 해라.
이렇게 얘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일본과 교육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전부
다 외교관이 됐든 상인 됐든지 무조건 부인과 아이들까지도 데려와서 일본에
살게 해라. 그리고 일본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줘라.
수도인에도 그렇죠. 바크후가 있는 초근 있는에도 마대로 가도록 해라.
이런 중요한 추고들을 다 해줍니다. 사실 네덜랜드 상관장을 통해서
네덜랜드 구광 필름 2세는 1800 1844년에도
개양을 하라고 종영하는 편지를 쇼군한테 보냈었습니다. 근데 그때는
일본이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불과 12년 후인 1856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로즈 회의에서
모든 회의 참석자들이 이제는 하루 빨리 계국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막부 박구후에서는에도 박구후 내부에서는
계국으로가 버립니다. 그니까 이게 참 에도부는 계국으로 가고 그래서 개항을
하고 외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거를 반대하는게 조주하고
사스마 사가 그렇죠. 도자마다 다이며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조왕 양이 그러면서 도구가와 막불를 상대로 기치를 들고서
깃발을 들고서 저항을 하기 시작하는 이유가 뭡니까? 저네들은 개항을 해 갖고 양이들을
들였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게이 투쟁이 시작되는 거고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는 거고 결국은 존황양이 세국주의자에서
출발했던 조수하고 사슴하고 도사가 개항을 처음부터 하자고 이미
1856년부터 적극적으로 자기네 로즈회를 통해서 개앙을 하자고 하는 그 도구가 막에도
막부를 상대로 해서 그걸 거꾸로는 것이 메주신입니다. 입니다. 그런데
그 메이지신을 하고 나서 어떡합니까? 적극적으로 조왕양이 파였던 조슈아 사스마의이
하급 사무라이들이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계곡으로 향해
나갑니다.에도 막분내에서는 완전히 개항으로 갑니다.
오히려 로주인 아베마사이로만 본인이 이게 너무 극단적으로 세국을 반대한
세력이 아직도 많은데 이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냐 그러면서 완전한 계곡 시기상조라 그럽니다. 그런데
아무도 쇠곡 지속할 수 없다. 지속을 주장한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1857년
2월 28일 날 don't캐큐리티비스 그 마지막 상관장이고 초대 네덜랜드
영사 그 사람은 나가사크 병한테 또 편지를 보내서 중국이 지금 제2차
아편 전쟁을 하고 있고 그 아편 전쟁에서도 패하고 있는데
조약에 따라서 여러 한구를 다 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청은
자발적으로 역 개항을 한 건 아니지 않느냐. 앞편 전장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온갖
구력적인 일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열었지만 그렇게 열어서
서양 국가들하고 열강들하고 교육을 시작하니까이 교육을 통해서
청애인 백성들이 너무나 번성을 하고 있다. 광동에서만
괜히 영국 국기를 끌어내리는 일이 있어서 괜히 그 그것 때문에 괜히
광동은 구력만 당했고 그리고 중국은 아직도 그것 때문에 서방의 우승거리가 되고 있는데 1번 당신들도 그럴
거냐? 그러지 말고 그 단계를 다 건너 뛰어라. 빨리 개항을 해라.
교육은 일본 일반 백성들한테도 다 도움이 되고 나라가 번창하는 길이라는
그러니깐 교육 국제 무역 왜 개방을 해야 되고 왜 무역을 해야 된다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지금 중국 광동에서 일어난 일들은
일본군 직접 성관은 없다. 그렇지만 한 번
왜곡하고 조약을 체결함 그 조약을 지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니까이 강화도 조약 이후에 우리가 맺는 조선이 맺는 모든 조약들도 그렇고
조약을 맺은 거에 대해서 그거를 좋은 지키지를 않습니다. 아무렇게 마음대로 그냥 그때 그때만
하는 걸로 생각하지. 아, 조약이라는 걸 한번 맺으면 그거는 끝까지 계속해서 지켜야 된다라는 거.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한국에서는 한번 조약 맺은 거에 대해서 딴 정부가 맺은 거는 또 번복하고이 정부가 맺은 거
또 번복하고 이러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럼 이제 국제적 신뢰 체면 완전히
깎이는 겁니다. 지금 중국에서 그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는 앞편 전쟁 1차했다가 또 말을 안
듣고 번복을 하고 그니까 또 2차 변쟁 또 일어나는 거고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고 뭐 그래서
북경까지 러시 영국하고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가고 이제 이런 구력적인 일을 계속해서 다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하지 말고 한번 조약을 체결했다는 거, 한번 계약을
맺는다라는 것은 그건 그 계약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내용을 그대로 안 보더라도 아무도 안 보고 있더라도 그거를 지켜야 된다라는 그
원칙 그 원칙을 일본 사람들한테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큐리티브스는 이렇게 얘기를 미국 관리들한테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은 협상을 한없이 지연시키고 작은
사안들을 갖고 불필요한 흥정을 하는가 하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만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외국과 신뢰관계를 수립할 수 없습니다. 또 일본은 외국을 대하는데
너무 거만하며 마치 아랫 사람에게 명령하는 투의 말투를 [음악] 씁니다.이는 외국인들이 모두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가장 중요한 나라들은 영국, 미국,
러시아와 프랑스입니다. 이제 귀국은이 열강들과 통상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국은 과거의 관행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여 이득을 보면서 세계사의 흐름에서 나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네덜랜드의 외교관이 얘기를 해 주는 거죠.
강대국은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다.이 나라들하고 잘해라.라고
충고를 해 주는 겁니다. 결국 1858년 7월 29일 시모다의 봉행과 해리스는
미국 저남 퍼우해탄호에 선상에서 일 수호 통상조약 일명 헤리스 조약을
체결합니다. 여러분이 포탄 후 기억나세요?
이 포와 탄해가 무슨 배입니까? 요시다 쇼인이
내가 어떻게 쓴지 미국에 가서 미국을 배워야 되겠다. 스승인 사꾸하셔다니
나한테 그렇게 종영을 했던 거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폐리 제독이 다시 돌아왔을 때 해안가에 숨어 있다가
혼자 배를 타고 경 파도를 해치면서
가든 향에 가던 배가 바로 퍼탄 옵니다. 그리고 그 폐화 패턴에 도착을 해 갖고서
올라가려고 했을 때 결국은 어떻 합니까? 미국 병사들한테 수병들한테
잡혀서 그래서 잡혀 가지고는 박에 넘겨져 막부에 넘겨져서 그래서 감옥에
갔다가 고향에 또 보내줘서 고향에서 감옥에 있다가 거기서 잠깐 나와
가지고 속가 죽구라는 걸 만들어서 거기에서 기도닷가요씨 또 야마가 따다리 또
이런 제자들을 길르면서 미래의 일본 저걸 양성하죠. 그렇지만 결국은
요시다 쇼인이 처형을 당하죠. 파워탄호에
승선을 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결국은 요시다 시현이 잡히는 거고 그 계국의
열정 때문에 결국은 처형을 당하는 겁니다. 나라 보고 바꾸고 열어라
열어라. 제발 나라 열어라. 아니면 나 같은 사람 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
그렇게 외치다가 결국은 참수 당합니다. 희생 당합니다. 7,
8년 만에 그 배에서 바로
일 수호 통상 조약, 헤르스 조약이 체결이 됩니다. 글쎄요. 요시다
쇼인이 그때 올랐을 때 그 배에 오르고자 했을 때 요시다 쇼인을
미국에 데려갔었고 그리고 뭐 역사의 가정은 없겠지만 없지만 일본하고
미국이 그때에 참 개을 했었더라면은 또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번
상상을 해 볼 수가 있는 그런 참 어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고 어 한
대목입니다. 해리스 조약에서 그 해리스는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미국인들은 미국 총용사나
미국 영사에 재판을 받고 미국법에 따라서 처벌될 것이라는 조항을
습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이게 치외법권 조항이죠. 우리가 불평등
조약의 가장 핵심이 뭡니까? 그게 치외법권 조약이죠. 왜냐면 조약을
체결하면서 서로 국교를 수립하지만
상대방 나라의 법을 법체계를 믿지를 않는 거죠. 그 법칙에는 원시적이고
전혀 개인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를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만일에 우리나라
사람이 너희 나라에 가서 가서 무슨 일을 하다가 범죄를 저질 수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너희 나라 원래대로라면 너희
나라 법에 따라서 재판을 하고 처벌을 받아야 되지만 지금 너희 나라의 법은 너무 수준이
본건적이고 원시적이고 그죠 전혀 인권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너희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도 그거는 우리나라 판사들이 우리의 영사나 총용사가 판사
역할을 대신해서 또는 우리 법정에서 우리 법에 따라서 처벌을 하겠다라는
겁니다. 이게 가장 구력적인 치외법권 조항입니다.
근데이 조항을 해리스가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게 뭔지 모르는 거죠. 이게 얼마나 구력적이라는 사실. 이게 바로이
해리스 조약을 불평등 조약으로 만든다는 사실조차도에도 바크후 사람들은 몰랐던 겁니다.이
협상에 임했던 일본의 대표단이 몰랐던 거죠. 일본은 바로 메이주신이
일어나고 나서 곧바로이 불평등 조약들을 재협상을 하려는 그
엄청난 노력에 돌입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전에 초반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던 적이 있지만은 이와꼬라 사절단이라는 거를 1871년에
메이 주신 한지 3년 만에 꾸려서 일본 최고의 지도자들이 2년 동안
해외 유학을 떠나는 놀라운 일을 버리는데 그때에 가는 이유가
1871년에 나갈 때 그때가 뭐냐면 이제 곧
해리스 조약이나이 조약들을 20년이 지나서 재협상을 해야 될 때입니다.
그래서 재협상을 해야 되니까 그 이때에는 우리가 그때 있었던이 치회복권 조항 같은 것들을 빼야
되겠다.라고 해서 재합상도 할 겸 외국의 문물도
배울 겸 해서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끊임없이 불평등 조약을 재협상을
하려는 노력을 버리면서 결국은 치복권 조항을 빼는 영국과의 평등 조약을
체결을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열강한테 휘둘리는 약소
국가가 아니라 대등한 차원에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기네 법 체계를 서양 법체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하라는 거죠. 법학과를 만들어서 서양식 법관들 양성을 하고
판사들 양성을 하고 검사들 양성하고 그러면서 그 체 체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법 집행하는 과정이 서양의 소위 선진국들과 같은 수준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한다라는 걸
보이기 시작을 한 거죠. 그렇게 완전히 평등 조약을 맺는 소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를 하고 나서
청일 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때는 그렇지만 아직
일본 사람들이 이게 뭐가 불평등 죄약인지도 몰랐던 거죠. 한편
로즈 아베는 본격적으로 국론 통일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도자마다며
심판 다이며들을 전부 다 국정에 [음악] 참여시키기로 합니다. 수백년 동안
정권의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했고 절대로 국정에 참여시키고 세력을
키우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던 그 세력들을
나라가 국란에 처하면서 외세 앞에서 나라가 무너진 거를
걱정하기 시작했을 땐 어떡합니까? 그 사람들까지도 원 철천지 원수였지 않습니까? 새끼가
하라 전투의 기념날이 되면은 뭐 조슈의 무장들은 다 무장을 하고
다묘한테 가서 때가 됐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뒤엎을 도구가를 뒤엎을 때가
됐습니까? 봉기할 때가 됐습니까? 막 때가 아직 아니다. 뭐 이러는 거고 새끼가라 군기 새끼가라의 전투 기록을
다 하루 종일 같이 공부를 하고 1년에 한 번씩 꼭 그러는 거고 뭐 조수의 어머니들은 아이들한테 동쪽으로
발을 뻗고 자기 해 갖고는 그 어 그 독구가를 밟으라는 그런 뜻을 그런
식으로 애들 가르쳤다라고 하면서 서로가 그렇게 참근 교대를 시키고 뭐
별짓을 다하면서 견제를 하던 사람들이 나라가 국란에 처하니까 어떡합니까?
다 같이 의견을 모으자. 중지를 모아야 된다. 지혜를 모아야 된다.
힘을 모아야 된다. 그러면서 그동안에 철천지 원수, 불구 대천의
원수, 서로 복수를 갈고 복수를 꿈꾸고 있었던
그런 세력들을 품어 안고 끌어앉고 같이 국정을 논하자. 같이이 나라를 지키자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가나가와조에게 끝까지 반대하면서
조랑양이를 주창하고 나한테 론인하고 농부 아이들 막내 아들들 300명만
주면은 내가 미국에 가서 옥세를 하겠다라고 하던 그 믿도의 그 독구가 나리아끼한테 일본 전체 해양 방위의
책임을 맞도록 합니다. 심판다이며 뭐 대표적인 뭐 심판다이면 원래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때 후구 이번에 마스다이라 ាន 같고 마스다이라는 성과 도구가는 같은 성입니다. 원래
도구가와 이스가 마스다이라 이아수였습니다. 근데 같은 집안입니다. 그러니까 마스다이라
순각구 그 당시에 제일 똑똑했던 별칭이라고 했었던 굉장히 똑똑하고
훌륭했던 지도자기네 라이벌이 될 수 있겠지만 불러드립니다. 그리고 도자마 대표적인
도자마인 어 사스마의 시마스나리아끼라를 적극적으로 불러드리면서 에도에서
같이 국정을 논하고 방어를 방위를 어떻게 하는 거고
외국과 어떤 교육을 해야 되고 이런 것을 같이 논하기 시작하면서
에도와 천왕부와 도자마다의 묘들이 하나가 화되면서
외세가 불러온 국란을 같이 극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앞에 이런 정책은 당연히 도자마다 자묘들은 너무 좋아하죠. 조주하고 사스마 도사 이런 데서는 그동안에
완전히 280년 동안 열되고 있었는데 불러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가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국정에 참여를 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뭡니까? 후다이 다이며들이었죠. 원래 자기네만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후다이 다이어들은 완전히 이제 이게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자, 조주하고 사스하는 강한 번이었습니다.이 번들은 원래도
컸었고에도 시대 내내에도 엄청난 소출량과 경제적인 번영과
그리고 강한 군대, 강한 많은 사무라이들을 계속해서 양성하면서
강력한 태세를 유지를 해 왔습니다. 안면에 도구가와의의
친척 그리고 도구가와를 도았던 세력들은 여러 가지 새로 번도 얻고
특히 조주하고 사스마를 에워 싸서이 사람들이 독 그 조수나 사스마가
애도로 향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하는 데에 번들을 새로 만들어
주고 다이며 만들어 준이 사람들이 후다이 다녀들렸는데
그런데 그렇다면 무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구가와 자신들만 곧
원래 도구가와 영지 빼놓고 그 번만 빼놓고 나머지 후다의 번들은
상대적으로 역사도 짧고 원래 자기네 힘으로 그런 영지를 오랫동안 갖고서
습득해서 싸워서 얻어서 유지를 해왔던 데가 아니라 급조된 번을 순전히
도구가와 제공해 줌으로써 조시와 사스마를 막으라고 했었던
겁니다. 따라서 대게 굉장히 역사가 더 짧고 전통도 없고 규모도 작았던
것이 후다의 번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에는 옛날 일 때문에 절대로
중앙정치에 참여를 할 수 없었던 조수사스마 같은 거대한 번들이
도자마다 다이며들이 이제 아베로주의 적극적인 정책에 의해서 중앙 정치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은 기존의 후다이 다녀들은 아예 상대가 안 됩니다. 워낙 큰 번들이고 워낙
강했던 번들이기 때문에 조주하고 사스마가 후다이 다이며 우리가
말이 좋아서 후다이 다이며 거기가 갖고 똑같이 그 사람들하고 같이 국정을 돈나라 그럼 우리 목소리는
전혀 안 먹힌다. 상대가 안 된다라고 하면서 절대적으로 아베의이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를 합니다. 독구가 막부 내부로부터
로주의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계국이냐 세국이냐이 문제에 있어서도 도자마다 다이며와
후다이 다이며 그러니까 그동안엔 국정에 참여 못 했던 다이며들과 신판
다이며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아베가 결국은 포용 정책을 써서 끌어들렸던
도자마다 다이며인 조슈와 사스마는 세국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러니까는 지금 로주 아베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호다이 다이머로서
중앙정 정치에 참여를 하고 진짜 로즈로서 가장 강력한 소은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들르면서 나라의 정책을 다 결정을 하고 국정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이 아베터가 아는 거죠.
막상 와서 국정을 책임을지면서에도 마크후 막부의 국정을 책임지면서
보니까 뭡니까? 마크후가 막부가 얼마나 허약하다는 거. 얼마나 사실은
아 내실이 없다는 거. 외세가 오면서 거기에 이렇게 저항을 하려고 대응을
하려고 여러 가지를 움직여 보고 그러는데 후다이 다이머들만 데리고 바크후 내 원래의 그 핵심 세력들만
데리고는 아무것도 안 될 거. 에게 너무 허약하구나라는 거를 깨닫게 되는 거죠. 아베는.
그래서 결국은이 조슈나 사스마 같은 도자마 다묘들을
상대로 도구가와 박후가 막부가 버텨 나가려 그러면 어떡합니까? 빨리
계국을 해서 빨리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서 막부가 강해져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일단은 일단은 국론 통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주하고 사스마 같은
데를 사과 같은데 오고 중앙정치의 국정에 참여하도록
유도를 하지만 진정한 것은 뭡니까? 지금 빨리 계국을 해서
외세 문물을 받아 빨리 받아들여서 그래서 박구후가 막부가 도구가와
막부가 다시 강해져야지 서양 문물을 이용해서 서양 무기들을 이용해서
그래야지 조수가 사스마를 누를 수 있다. 그래서 빨리 계곡을 해야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박후를 강하게 하려고 나름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바로 그
박후의 막부의 핵심 세력인 후다이 다이며들이 거세게 조주나 사스마 같은
데를 끌어들이는 중앙 정책 끌어들이는 것에 거세게 정을 하니까 결국은
아베가 1857년 8월 6일 날 루주 자리를 사임하고
물러납니다. 외세의 도래로 인해서 일본 국내 정치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고 그 요동을 치는 과정에서 천왕부 중심으로 세력이 기울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계국을 하면서
독구가 막부에 실력을 키우려고 하는 아베의
시도는 결국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아베의 후임으로
로주에 임명되는 호따마사요시라는 로즈가이 어려운 막부와 점점 힘이 강해지는
교도의 천왕부 그리고 점점 힘이 강해지는 조슈와 사스마를 제어를
하면서이 일본이란 배가 한쪽으로 좌초되지 않도록 끌어가는 놀라운 줄타기를
하기 시작을 을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막구마츠 막부 말기 시대의 그 격렬한 정치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