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의 정치학 Scrapbook
문화, 의식, 운동의 면을 분석
2026-08-10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 한국의 개항 1875-1885 by Martina Deuchler
-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교수의 초기 명저
- <Confucian 1875–1885 Barbarian Envoys: Gentlemen Korea, Opening and of>
- (국역명: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 한국의 개항 1875-1885>)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1. 서론: 전통적 조공 질서와 서구적 국제법의 충돌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1977년 저작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은 1875년 운요호 사건부터 1885년 거문도 사건 및 한성조약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은둔의 왕국에서 벗어나 세계 자본주의 체제 및 근대적 외교 질서로 편입되는 가파른 10년을 다룬 고전적 연구다.
도이힐러는 이 시기를 단순한 <외세의 침략과 조선의 수동적 동요>라는 단순 프레임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유교적 조공 체제(Tributary System)와 서구의 근대 국제법 체제(Westphalian System)가 정면으로 충돌할 때, 조선의 위정자와 지배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세계관과 제도적 틀 안에서 이 미증유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2. 요약: 개항 10년의 구조적 변용 (1875–1885)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1876): 유교적 명분과 근대적 조약의 균열
1875년 일본의 운요호 사건 이후 체결된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은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이었다. 도이힐러는 이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보여준 논리를 정밀히 분석한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일본을 근대화된 국가라기보다는 여전히 유교적 조공 질서 내의 <교린(交隣) 대상>으로 인식하려 애썼다. 강화도 조약 제1조에 명시된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라는 구절에 대해, 일본은 청나라와의 조공 관계를 단절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던 반면, 조선 조정은 전통적 조공 관계와 근대적 자주권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는 향후 외교적 혼란의 씨앗이 되었다.
청국의 개입과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조공 체제의 근대적 변용
조선이 서구 열강 중 최초로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이었다. 청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 <이이체이(以夷制夷)> 전략을 강요했다.
도이힐러는 청국이 조선을 서구 열강과 조약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종주국으로서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던 패러독스를 지적한다. 청국은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맺은 조약 부유문서에 <조선은 청국의 속국>임을 명시하려 시도하는 등, 전통적 조공 관계를 서구적 Imperialism(제국主义)의 틀을 빌려 재해석하고 고착화하려 했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개화파의 분열과 유교적 보수성의 벽
1880년대 초 조선 내부에서는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도이힐러는 개화파 내부의 균열에 주목한다.
온건개화파(동도서기론): 유교적 질서와 도덕(東道)을 유지한 채 서구의 기술과 무기(西器)만을 수용하려 했다.
급진개화파(갑신정변 주역):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삼아 유교적 지배 구조와 청국과의 조공 관계를 뿌리부터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는 급진개화파가 조선 사회의 깊은 유교적 전통과 사대부층의 보수적 기반을 경시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1885년 톈진 조약과 거문도 사건에 이르러 조선은 청·일 양국의 강대국 정치의 담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3. 평론: 외교사와 사상사의 결합, 그리고 그 의의
성과: 전통의 관성(Inertia)을 통해 읽어낸 외교사
이 책의 가장 큰 학술적 공헌은 조선의 개항을 외부의 충격에 의한 일방적 수동성으로 다루지 않고, 조선 지배층의 사상적·제도적 맥락(유교적 정치문화)에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 서구의 동아시아 외교사 연구는 주로 청국이나 일본, 혹은 서구 열강의 기록에 의존한 Imperial History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도이힐러는 <승정원일기>, <고종실록>, 문집 등 조선 측 1차 사료를 대량으로 구사하여, 조선의 위정자들이 결코 무지하거나 무기력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자원이었던 성리학적 명분론과 조공 외교의 관례를 동원하여 근대 서구 질서라는 폭풍을 막아내려 했던 <유교적 군자(Confucian Gentlemen)>들이었다.
비판적 논점 및 제한점
첫째, 지배 엘리트 중심의 정치외교사에 편중되어 있다. 책의 제목처럼 연구의 초점이 조정의 관료, 학자, 그리고 외국 사절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개항이 농민과 상인 등 기층 민중의 삶과 경제 구조에 미친 심대한 영향이나, 1890년대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하게 되는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유교적 전통의 구조적 중력에 대한 과도한 강조다. 도이힐러는 조선이 근대화와 외교적 자율성 확보에 실패한 주요 원인으로 사대부들의 유교적 세계관이 가진 강고한 보수성을 꼽는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잘 반영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자발적 개혁 시도나 변용 가능성을 다소 저평가하고 조선을 <변화 불가능한 유교적 틀에 갇힌 국가>로 고착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4. 결론: 유교적 세계관의 비극적 종말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은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훗날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환>(1992)이라는 사회사적 대작으로 나아가기 전, 19세기 말 조선의 정치·외교적 파국을 정밀하게 해부한 명저다.
이 책은 전통적 세계관을 고수하려 했던 조선의 <유교적 군자들>이 어떻게 근대적 힘의 논리로 무장한 <야만인 사절들>과의 외교전에서 몰락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비극의 기록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사이에 놓인 한국의 외교적 현실을 되돌아볼 때, 도이힐러가 제시한 150년 전의 충돌과 기획의 실패는 여전히 생생하고 서늘한 역사적 교훈을 던져준다.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의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는 1977년에 출간된 책으로, 훗날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보다 15년 앞선 연구입니다.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을 다루지만, 단순한 외교사가 아니라 <성리학적 세계질서가 새로운 국제질서와 충돌하는 과정>을 분석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초판은 워싱턴대학교 출판부와 주한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가 함께 냈고 310쪽 분량입니다.
1. 책의 핵심 문제
도이힐러가 다루는 시기는 1875년부터 1885년까지입니다.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 시작해
1876년 강화도조약,
1880년대 조선의 대외개방,
미국 등 서양 국가와의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을 거쳐가는 약 10년입니다.
일반적인 개항사라면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켰는가?>
그런데 도이힐러의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던 세계와 전혀 다른 국제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여기에 제목의 의미가 있습니다.
<Confucian Gentlemen>은 조선의 유교적 관료·사대부이고, <Barbarian Envoys>는 그들이 처음에는 기존 화이론적 범주 속에서 이해했던 일본 및 서양의 외교사절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 책은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조선 엘리트가 근대 국제질서와 처음 본격적으로 조우한 역사>
입니다.
2. 개항 이전 조선의 세계관
도이힐러의 출발점은 조선의 고립성 그 자체가 아닙니다.
조선에는 이미 매우 완성된 국제질서관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습니다.
중국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질서 안에서 조선은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법적 주권국가 관계와는 전혀 다른 질서였습니다.
조선의 사대부에게 세계는 대체로
중화 문명
→ 조선
→ 문명 바깥의 오랑캐
라는 문화적 위계 안에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양 국가가
“우리는 조선과 동등한 국가로서 외교관계를 맺겠다”
고 들어왔을 때 문제는 단순히 외국인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인이 알고 있던 <세계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문제였습니다.
3. 1875년 운요호 사건과 1876년 강화도조약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식 국제질서를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일본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합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은 따라서 조선에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중국과 독립된 국가라고 규정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청의 종주권을 약화시키고 일본이 조선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길을 여는 데 있었습니다.
조선에게는 매우 낯선 상황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사대관계에서는 조선이 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구식 국제법에서는 모든 ‘주권국가’가 형식적으로 동등하다고 전제했기 때문입니다.
도이힐러는 이 충돌을 중요하게 봅니다.
조선은 개항과 동시에
<중국 중심 천하질서>
와
<서구식 국가체제>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 조선이 단순히 ‘쇄국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조선의 관료들을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쇄국주의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선 내부에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했습니다.
위정척사파는 서양문명과 일본의 개항 요구를 성리학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일부 관료들은 국제환경이 이미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외교기술과 군사기술을 배울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즉 조선의 대응은
<쇄국 대 개항>
이라는 단순한 양분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였습니다.
군사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서양사상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본은 문명국인가 오랑캐인가?
서양과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중국과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조선 정치의 중심문제가 됩니다.
5. 김홍집과 <조선책략>
1880년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합니다.
이 과정에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받아옵니다.
이 문서는 당시 국제정세를
러시아의 남하를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친중국·결일본·연미국>
을 조선의 외교전략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외교는 도덕과 명분의 문제였는데 이제는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사이의 세력균형을 계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의리의 외교>에서 <국익의 외교>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이 변화가 쉽게 이루어질 리 없었습니다.
<조선책략>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외교정책 논쟁이 아니라
<조선이 앞으로 어떤 세계에 속할 것인가>
라는 문명론적 논쟁이었습니다.
6. 미국과의 조약
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이것도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조선이 서구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습니다.
이제 조선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과 차례로 조약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 지도부가 서양 국제질서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조선은 미국과의 조약에 포함된 우호적 표현을 실제 군사적·외교적 지원 약속에 가까운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이를 훨씬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도이힐러가 보여주는 것은 이런 <국제질서의 언어 차이>입니다.
조선은 기존의 도덕적 관계관을 가지고 새로운 조약을 이해하려 했고, 서양국가는 국제법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행동했습니다.
7. 청나라의 위치는 특히 복잡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강점은 조선-일본 관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청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입니다.
조선은 개항 이후에도 청과의 전통적 관계를 쉽게 버릴 수 없었습니다.
청 역시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내버려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청의 조선 내 영향력은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이중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서양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조선은 독립국가인데,
동아시아 전통질서에서는 여전히 청과 종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모순이 1880년대 조선 외교의 핵심 문제였습니다.
조선은
<독립국인가?>
<청의 속국인가?>
라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8.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은 단순한 국내정치 사건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개화정책과 신식 군대의 도입은 기존 군인들의 불만을 초래했고, 임오군란 이후 청의 군사적 개입이 강화됩니다.
갑신정변에서는 김옥균·박영효 등의 급진개화파가 일본의 도움을 받아 빠른 개혁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정변은 사흘 만에 실패합니다.
이 사건은 조선이 단지 ‘근대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조선의 개혁은
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따라서 국내개혁과 국제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9. 도이힐러가 말하는 ‘유교’의 의미
이 책을 앞서 이야기한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연결해서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1977년의 이 책에서 이미 도이힐러는 유교를 단순한 철학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교는
국가관,
외교관,
문명관,
도덕관,
정치적 판단
을 결정하는 <세계인식의 틀>입니다.
조선 사대부들이 국제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정교한 국제질서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19세기 후반 세계에서 그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입니다.
<무지해서 실패했다>
라기보다
<기존의 매우 정교한 세계관이 급격히 변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10. 책의 강점
첫 번째 강점은 조선의 개항을 일본의 침략사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군사적 압력은 분명하지만, 도이힐러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조선 내부의 지적·정치적 대응입니다.
두 번째는 개항을 <문명관의 충돌>로 본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단순한 외교기술 문제가 아니라
<중국 중심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
에 직면했습니다.
세 번째는 청·일본·조선·서양을 하나의 국제체제 안에서 본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 한국사 연구로서는 상당히 선구적이었습니다. 실제로 1979년 <Journal of Asian Studies>의 서평에서도 이 책이 조선 초기 근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한다고 평가했습니다.
11. 한계
하지만 지금 읽으면 한계도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이 거의 철저하게 <엘리트 정치사와 외교사>라는 점입니다.
농민,
상인,
여성,
천주교 신자,
동학 세력,
일반 백성
에게 개항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거의 중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한 ‘Confucian gentlemen’이라는 틀이 때때로 조선 관료사회를 너무 하나의 유교적 집단처럼 보이게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정척사파, 온건개화파, 급진개화파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후의 연구에서는 조선의 개항을 단순히 ‘전통적 유교 대 근대적 서양’이라는 대립으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조선 내부에서도 이미 새로운 정치·경제적 사고가 형성되고 있었고, 중국과 일본 역시 단순한 ‘전통’과 ‘근대’라는 두 범주로 나누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2.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비교하면 더 흥미롭다
도이힐러의 연구경력을 보면 두 책이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1977)
15세기 이후 확립된 성리학적 세계관이
→ 19세기 서양 국제질서를 만나
→ 어떻게 흔들리고 붕괴하는가
를 다룹니다.
반대로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1992)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 고려의 기존 사회질서에 들어와
→ 어떻게 가족과 사회를 재편하는가
를 다룹니다.
즉 두 책을 합치면 도이힐러의 연구 전체에는 아주 아름다운 대칭이 있습니다.
<15~17세기: 유교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
↓
<18~19세기: 유교질서의 완성>
↓
<1875년 이후: 그 질서가 근대 국제체제와 충돌하는 과정>
입니다.
도이힐러는 1967~69년 규장각에서 자료를 연구했고, 그 결과가 이 첫 번째 저서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그의 관심은 19세기 외교사에서 조선 사회를 만들어낸 성리학의 사회적 힘 자체로 더 깊이 이동했습니다.
종합평가
이 책은 오늘날의 개항사 연구를 모두 포괄하는 최신 종합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977년의 연구이고 이후 한국·미국·일본에서 방대한 개항기 연구가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이힐러가 개항을 단순히
<일본이 문을 열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500년 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의 세계관이 새로운 국제질서와 만나면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는가>라는 훨씬 큰 질문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앞서 논의했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연속해서 읽으면 도이힐러의 한국사관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그녀에게 성리학은 책 속의 철학이 아닙니다.
15~17세기에는 <가족과 사회를 실제로 만들어낸 힘>이었고,
19세기에는 <조선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규정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876년 이후 그 세계관이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개항은 항구 몇 곳을 외국에 개방한 사건이 아니라, 성리학적 천하관 속에 살던 조선 지식인들이 근대적 주권국가체제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강제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저는 도이힐러의 두 책을 함께 놓고 보면,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보다 먼저 쓴 이 책이 오히려 그의 훗날 연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고 봅니다. 그는 처음에는 <왜 조선이 19세기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어려웠는가>를 연구했고,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 즉 <그렇게 강력했던 유교적 사회와 세계관은 애초에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로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Patricia Buckley Ebrey - Wikipedia
Patricia Buckley Ebrey
Patricia Buckley Ebrey | |
|---|---|
| Born | March 7, 1947 (age 79) New Jersey,[1] U.S. |
| Alma mater | University of Chicago (BA) Columbia University (MA, PhD) |
| Spouse | Thomas G. Ebrey |
| Scientific career | |
| Fields | Sinology (Song dynasty), Art history, Women's studies |
| Institutions |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University of Washington |
Patricia Buckley Ebrey (born March 7, 1947) is an American art historian and sinologist specializing in cultural and gender issues during the Chinese Song Dynasty. Ebrey obtained her Bachelor of Arts from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1968 and her Masters and PhD from Columbia University in 1970 and 1975, respectively. Upon receiving her PhD, Ebrey was hired as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at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She became an associate professor in 1982 and a full professor three years later.[1] Subsequently, in 1997, she accepted a Professor of History position at the University of Washington, from which she retired in July 2020. She's now Professor Emerita of History at that institution.[2]
Honors
Ebrey has received a number of awards for her work, including fellowships from 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the John Simon Guggenheim Memorial Foundation, the Woodrow Wilson Foundation, and the Chiang Ching-kuo Foundation.[1][3] Ebrey's The Inner Quarters: Marriage and the Lives of Chinese Women in the Sung Period received the 1995 Joseph Levenson Book Prize from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Her 2008 work, Accumulating Culture: The Collections of Emperor Huizong, received the Smithsonian Institution's 2010 Shimada Prize for Outstanding Work of East Asian Art History.[3][4] She received the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s Award for Scholarly distinction in 2013. In 2020 she received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highest honor, the Distinguished Contributions to Asian Studies award.
Selected bibliography
- Aristocratic Families of Early Imperial China: A Case Study of the Po-ling Ts’ui Family (1978)
- Kinship Organization in Late Imperial China, 1000-1940 (1986)
- Confucianism and Family Rituals in Imperial China: A Social History of Writing About Rites (1991)
- Marriage and Inequality in Chinese Society (1991)
- Inner Quarters: Marriage and the Lives of Chinese Women in the Sung Period (1993)
- Chinese Civilization: A Sourcebook (1993)
- 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1996)
- A History of World Societies (1999)
- Women and the Family in Chinese History (2002)
- Accumulating Culture: The Collections of Emperor Huizong (2008)
- 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second edition (2010)
- Emperor Huizong (2014)
References
- Scanlon, Jennifer; Cosner, Shaaron (1996). American Women Historians, 1700s–1990s: A Biographical Dictionary (PDF). Westport, CT: Greenwood Press. pp. 66–68. ISBN 0313296642.[permanent dead link]
- "Patricia Ebrey". University of Washington. Retrieved 27 March 2012.
- "Patricia Buckley Ebrey to Receive 2010 Shimada Prize for Outstanding Work of East Asian Art History". Smithsonian Institution. 2 February 2011.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6 June 2011. Retrieved 19 October 2011.
- "AAS CIAC Levenson Book Prize Winner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4 November 2011. Retrieved 19 Octobe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