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전문]‘노인과 바다’에서 ‘윤석열과 증오정치’까지···권명아 인터뷰 - 경향신문

[전문]‘노인과 바다’에서 ‘윤석열과 증오정치’까지···권명아 인터뷰 - 경향신문

[전문]‘노인과 바다’에서 ‘윤석열과 증오정치’까지···권명아 인터뷰
수정 2026.03.03 


권명아(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인터뷰 때 예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2030여성의 남태령 연대 의미’에 관한 질문에 “농민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당사자’, ‘소수자’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건·사태의 근원·근본 문제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대남 논쟁, 윤석열의 국체 투쟁과 파시즘, 지방과 대학, 미투와 페미니즘, 차별금지법에 관한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가 글쓰기”라고 여기는 그는 쓰고, 읽고, 또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또 만나는 사람이었다. 소수자의 투쟁 현장, 또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권명아 교수. 김종목 기자


지난 1월 22일 부산 동아대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겸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갈무리, 개정증보판) 출간 의미와 함께 여러 이슈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는 3시간 가량 진행했다. 다음은 목차와 일문일답이다.
①‘이브의 범죄’자가 정치적 주체로 ②“연구자들이 다 죽지는 않았잖아요” ③‘부산=노인과 바다’라는 차별 표현 ④파시즘은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있다 ⑤‘환단고기’와 ‘제국의 위안부’,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⑥윤석열과 증오정치, 파시즘 ⑦‘내 아들을 구해왔다’는 상층 계급 ‘이대남’과 지방 살며 알바하는 ‘이대남’ ⑧증오정치? 그래도 되지 ⑨‘국가’와 ‘개인’ 사이 아무것도 없는 ⑩미국 페미니스트 중 독학자가 있는가 ⑪‘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니즘 차별선동’과 리박스쿨 ⑫“그것도 못 하는데 무슨 실용 정부입니까?” ⑬“농민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는가” ⑭‘진보진영’이라는 밀착의 네트워크 바깥에서 ⑮최소한의 공통성도 없는 국가와 사회는 (16)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는 글쓰기

*지면용 축약본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차별금지법 그것도 못하면 실용정부인가”···권명아 “차별 대응 제도는 국가·개인 간 완충지대”

권명아(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인터뷰 때 예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2030 여성의 남태령 연대 의미’에 관한 질문에 “농민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당사자’ ‘소수자’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건·사태의 근원·근본 문제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지난 1월22일 부산 동아대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겸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만...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031755001




①‘이브의 범죄’자가 정치적 주체로

-노동자문화예술 연구소 산하 문학예술연구소에서 공부하실 때인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 비평부문에 ‘박완서 문학 연구 - 억척 모성의 이중성과 딸의 세계의 문학적 의미’가 뽑혀 등단하셨는데, 30년이 지났네요.

“아프꼼(어펙트·affect+꼬뮨·commune) 래인커머(來人commer)를 제일 오래 한 친구가, 그 친구도 <작가세계>로 등단했는데, 늘 저한테 30년 되면 문단에서 원로 공로상 같은 거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맨날 저를 놀리거든요(웃음). 너무 오래된 사람이라고요. 오래됐죠.”


-아프꼼 구성원들끼리는 왜 ‘래인커머’로 부르는지요.

“대안 공간들에선 이름의 위계가 발생하잖아요. 누구는 운영자 누구는 소장 하는 식으로요. 게다가 저는 교수이기도 하다 보니까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여기서 다른 몸을 만들려면 동등한 의미의 이름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프꼼 멤버가 아닌 사람들을 초대하면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생기고 하니까, 똑같이 활동하지 않아도 뜻이 맞거나 원하면 래인커머가 되는 거죠. 그냥 다 래인커머예요.”

-‘삶-연구-글쓰기의 인터페이스’를 추구하는 대안연구모임 아프꼼’을 2011년 만드셨는데요.

“부산에 오기 전에도 ‘문예연’이나 ‘수유+너머’ 같은 대안 인문학 운동 단체에 있었기 때문에 인문학 운동의 연장에서 대안 단체를 만들려고 한 거죠. 꼭 대학이 아니어도, 평생 계속 공부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대안을 만들고, 살아가는 기반을 다지려고 했어요. 아프꼼을 하면서 느낀 건, 부산의 경우 당시에도 인문학 단체들은 많지만, 다들 각자가 소수고, 각자가 고립됐어요. 네트워킹하기 어려운 구조였죠. 아프꼼도 그랬는데, 제가 부산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도 크지만 부산에서는 특히 대학 사회에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대안 운동을 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운동 단체를 전유하려는 교수들에게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은 내부적으로 폐쇄적이고, 대학 바깥은 그 나름으로 폐쇄적이 되다 보니, 대안 인문학 단체도 소수의 뜻 맞는 사람들끼리 계속 추진하는 식으로 되다 보니까 모든 단체가 힘들게 운영을 하더라고요. 대학의 안과 바깥의 경계를 너무 견고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의미로 대학 안에서도 안정적이고, 대안적인 제도로서의 연구소를 만들어 보자고 해서 대학 바깥에서 진행하던 연구모임 아프콤을 대학 연구소와 결합해서 운영했습니다. 이전 운영하던 연구소가 없어져서 2018년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다시 만들었어요.”

권명아 교수 연구실은 젠더·어펙트 연구소 공간을 겸한다. 권명아는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를 6년간 했는데, 지원 조건이 학교 내 반드시 별도 연구 공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30일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공간을 바로 반납해야 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과 연구소 학생들이 함께 쓴다. 흔히 교수 책상을 두는 창가 쪽 공간에 공용 리클라이너가 놓였다.


-교수님의 대표 학술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동’ 연구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책 이야기부터 할게요.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은 근대에서 최근까지 거의 200년을 다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무작정 상경해 종로 3가에서 일 찾다가 못 찾아서 범죄를 저지르고, 또 굶어서 죽었다는 여성들이 ‘이브의 범죄’라고 해서 신문에 나요. 그런 식으로 비슷하게 계속 등장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어느 날 정치적 주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날이 온단 말이죠.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도 원래 일본 영화지만, 사람을 죽이고 신분을 도용해 살아가는 하층 계급 여성 이야기죠. 노동자랑은 또 다른 의미에서 200년이 지나서야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게 되는 거죠. 조직화하지 않은 부랑자들 같은 경우도 비슷해요. 용산 참사 전인 1990년대 만 해도 전국 철거인연합회 같은 조직은 민주노총에서 쫓겨나기도 했거든요. 말하자면 노동자성을 인정받거나 정치적인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죠. 1990년대 논쟁도 있었어요. 실제로 당시 민중 집회 때 참여한 분들 중 조직에 속하지 않던 일부 사람들을 집회의 정치성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자들’로 간주했어요. 집회 때 술을 먹고 참여하거나 소란을 피웠다는 게 이유였죠. 그분들을 쫓아냈고, 이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집회 주최 측을 비판한 사람들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비난을 당했어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그때 그렇게 ‘부적절한 자들’이라고 집회에서 쫓아낸 방식은 잘못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는 ‘정치적 주체’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지금은 정치적 주체로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이 행위자들의 정치적 힘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 어떤 시점에도 분명하게 존재했고, 또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정치적 행위자성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이 정치적 행위자성과 앎의 관계는 단지 의식의 변증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무엇보다 200년 사이를 오가며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 잠재된 힘들을 어떻게 지식의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다가 정동 연구를 만났어요. 역사 속의 그 힘들, 뭔가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저변의 사라지지 않는 힘, 기존의 지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힘이 들뢰즈나 스피노자가 얘기하는 어펙트와 맞닿아 있었어요. 이 연구를 하다 보니, 이게 보편적인 게 아니라 젠더화 되어 있더라고요. 성별, 계급, 인종, 연령도 마찬가지고요. 소년과 여성 사이에도 달라지는 차이가 있는데, 스피노자나 들뢰즈 이론으로 해결을 못 해주더라고요. 그러다 어펙트를 소수자 이론과 결합한 연구를 찾아가게 된 거죠. 사회에서 지적으로 다룰 수 없는 집단들 예를 들어 소수자의 힘들을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젠더·어펙트 이론이 된 것이죠.”


‘이브들의 범죄’ 조선일보 1963년 8월6일자 보도.


②“연구자들이 다 죽지는 않았잖아요”

- 지난 1월 11일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갈무리 강연 때 “연구자들이 다 죽지는 않았잖아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학술과 담론의 위기 또는 소멸 속에서 계속 연구와 대안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말씀하신 듯한데요.

“지방대 교수로 살면서 갖게 된 감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대학교수고, 지방대 교수 중에는 학과가 없어진 경험을 하는 분들도 있기에 엄살을 부리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서울에 있다가 지방대에 와서 양쪽을 다 경험하면서 서로 다른 차이를 감각하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어요. 대학 내부에 서울과 비수도권 대학 사이에 낙차가 너무 커지고 있고, 특히 규모의 경제가 비교가 안되게 되어서, 같은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경험치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연구재단 지원 역시 규모의 경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대형 프로젝트도 지방 사립대에는 오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는 그런 규모의 경제를 감당할 수도 없거든요. 대학원생이 몇백 명 되는 데라야 가능한 거죠. 국립 사립을 가리지 않고 지방대는 전업 연구자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희는 겨우 전업 연구자를 매년 배출하고 있지만, 정말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단지 부정적인 결핍으로 간주하지 않고, 지방대 혹은 지방 사립대가 처한 조건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조건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그 조건에서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그 존재 방식 자체가 가치를 지니도록, 다른 길을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요. 이런 생각을 정리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애초에 그런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어요.

- 지방대 상황이 계속 나빠진 듯합니다. 동아대에 오신 지 19년째인데요.

“저도 서울에서 학교를 나와 2007년 동아대 취직을 하면서 부산에 이주한 사례거든요. 부산에 연고도 없었어요. <역사적 파시즘> 처음 낼 때도 지역적 차이를 계속 고민했죠. 서울에만 거주해 왔기 때문에 지역적 차이나 지역을 개념, 지식으로만 알았어요. 소수자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한계라고 항상 생각해 왔어요. 지역에 와서 현장 연구 기회를 얻게 돼서 기뻐했고, 또 열심히 작업들을 했고요. 부산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지방이나 지방대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죠. 지금 같이 지방소멸론 같은 게 있지도 않았고요. 부산을 포함해 영남지역들은 프라이드도 강했고요. 부임 직후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되어서 이른바 지방대학의 좋았던 시절을 저는 별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매일 혁신안 내고, ‘상시적 구조조정’ 같은 말을 듣고, 눈앞에서 다른 여러 학과가 처참한 방식으로 폐과되고, 학생 모집 중단되는 거를 계속 보아왔지요. 모든 상황이 급변했죠. 같은 학교라도 구조조정을 겪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학교 안에서도 과에 따라서 안정감이나 학생들 상황이 다 달라지거든요. 특히 인문사회 계열들이 집중적으로 공략을 받으면서 학교 자체가 전반적으로 좀 이상해지게 된 거죠. 그리고 이게 참 역설적인데 부산은 매우 큰 도시잖아요. 부산이 힘들다고 하면 (서울, 수도권 외) 다른 지역에서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할 텐데, 대학 구조조정이 유독 심각했던 것은 부산이 처한 상황과 관련됩니다. 우선 산업적 기반이 붕괴했어요. 그다음 부산에 대학이 15개가 넘거든요. 많은 대학이 있다 보니까 지방대 구조조정 여파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죠. 진보정권에서도 균형 발전을 위한 지원이나 지역불균형을 억제하는 일련의 정책이나 지침을 중앙정부에서 없애버렸습니다.”


-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학생들이 대학 들어갈 때도 수도권과 지역에 어느 정도 인재를 안배하는 제도가 없어졌죠. 수도권 대학은 몇 명 이상 받지 못하게 한다거나, 학교 선택 때 서울에 한 개를 하면 지역 대학도 선택하게끔 하는 제도들이 없어졌죠. 성적 우수 학생이 지역 대학 지원하면 장학금을 주거나 학교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유인책들이요. 다 없애버리니 서울로 일단 다 지원한 다음에 거기 떨어지면 지역으로 돌아오는 입시 구조를 만들어 버렸어요. 이것도 최근이고요. 유학생들도 수도권에 집중되지 못하게 일정 숫자 이상 못 뽑게 하는 제도도 있었는데, 그것도 풀어버린 거죠. 부산도 위기에 몰렸어요. 구조조정이 일상화된다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사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 정규직 교수인데요.

“제가 정규직 교수라 불안정하지 않다라고 해도 일상화된 구조조정 속에서는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야 되는 거죠. 한겨레 칼럼 처음([야! 한국사회] 무상급식과 유턴 정치, 2014년 11월20일자) 쓸 때 지방을 서울로 유턴하기 위한 반환점 정도로 생각하는, 책임감도 없는 교수와 정치인 집단을 비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공적 책임감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교수들이 공적인 의미에서 존중도 받으니, 연봉 더 많이 준다고 대학 옮기는 건 안 되지 하는, 표면적인 합의는 있었죠. 이제 지방대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니까 사람들이 꼭 연봉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당연히 옮겨야 하는 구조가 됐고요. 되돌이킬 수 없게 된 거죠.”


③‘부산=노인과 바다’라는 차별 표현

-여러 참사도 연구하셨는데, 제주 항공 참사는 정동의 결이 조금 다른 듯도 한데요. 참사가 지방에서 발생한 점도 영향을 끼쳤을 듯하고요.

“지역 공항들이 희화화가 많이 되죠. 그런데 강원도 같은 곳도 수요가 없는 공항들이 있지만 무안 공항같은 공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고 것도 한 정치인이 말하면서 퍼진 거죠. 저 역시 참사 초기에 이 사태를 무안 공항 참사가 아니라 제주항공 참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비상계엄 여파로 (상대적으로 더 묻힌 것도 있고요). 지역 이슈는 그래요. 가장 먼저 휘발됩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사람들의 죽음에 크게 반응하지 않아요. 이게 구조적인 거죠. 이렇게 (인터뷰하러) 와주셔서 감사한 게 서울 매체가 부산에 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서울에서 일하기도 바쁘니까요. 그런데 지역 미디어가 너무 약해졌잖아요. 파급력도 없고요. 지역 신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방송도 매체 파워가 세지가 않아요. 요즘 너무 쇠락했어요. 지역방송 지원도 깎이고요. 지역 이슈를 계속 지속하는 미디어 환경이 안 되니까, 빠르게 사라지는 거죠.”

- 여성신문 기고([새정부에 바란다]성평등 정책, ‘여가부 업무’나 ‘여성문제 해결’ 아니다, 2025년 6월5일)에서 “지방소멸 정책의 성차별, 연령 차별, 지역 차별을 시정해 ‘성장 비전’과 ‘행복 비전’의 내적 충돌과 모순을 막으려면 국가 비전 전체의 기조를 평등 기조에 따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지방 소멸 지수(소멸 위험 지수)에 대해서는 논문에서도 쓰고 했는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문제적인 겁니다. 지방 소멸 지수(소멸 위험 지수)가 만 20~39세 가임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잖아요. 문제가 되니까 여러 개를 넣었지만 기본은 그렇죠. 그렇게 되면 특정 연령 이상 인구는 비생산 인구, 잉여 인구, 쓸모없는 인구가 되어 버려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맨날 ‘내가 죽어야지, 젊은 사람들한테 짐이 되고 있다’거나 부산에 대해서 ‘노인과 바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잖아요. 고령화 지표가 부산이 진짜 높기 때문에 이런 차별적인 표현이 미디어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영남 지방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새로 생긴 거죠. 호남이랑 성격이 다르죠. 영남은 이전에는 기득권 집단이었으니까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 문제 논쟁 때 영남이랑 비교하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영남에는 그래도 유관 산업의 산단 인프라가 있지만 호남은 없다가 그중 하나죠, 거꾸로 얘기해 보면 호남에 왜 산단 같은 인프라가 없는지를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호남 차별의 결과잖아요. 박정희가 호남엔 아무것도 안 만들었고요. 2014년 처음 나온 헤이트스피치 관련 논문에서 교통 인프라를 비교해서 지도로 보여드렸거든요. 호남에는 교통 인프라가 거의 없습니다. 박근혜 때도 강원도 통일 대박 하면서, 부산에서부터 강원도까지만 철도 예산을 증액시켰어요. 철도를 엄청 많이 만들어요. 그 지도에 호남은 하얗습니다. 박정희의 호남 차별을 그대로 이어간 것이지요. 박근혜 때까지도 이어졌기 때문에 인프라가 없는 거예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나흘째이자 2025년 새해 첫날인 1일 전남 무안공항 사고 현장 위로 해가 뜨고 있다. 이준헌 기자

권명아는 ‘노인과 바다’라는 표현을 두고 “노인도 이제 국립국어원에서는 차별 표현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방 소멸에 관한 정책에 ‘행복’ ‘노인 돌봄’ 같은 표현이 나와요. 쓸모없는 인구로 치부해 놓고 어떻게 존중하는 돌봄이 되겠습니까. 국가 정책에서 지역소멸 정책과 고령 대책은 이른바 고령 인구를 지역 사회와 가족에 짐이 되는 인구로 배치하면서, 더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돌봄만 하는 거예요.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까? 그 정책에서 말하는 행복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어요, 성장과 행복도 모순되는 정책이죠. 일자리도 맞지 않아요. 일자리가 없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죠.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가 또하나의 정책이 된 것도 오래입니다. 즉 지역에 있는 일자리와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미스매치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것이지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없고, 지역 기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하고, 그래서 청년들이 지역 기업에 가면 어드벤티지를 주겠다 같은 내용이에요. 청년 취업 정책도 1년 단위 통계치를 높이는 데 치중되어서, 실질적으로 일자리가 아닌, 취업 통계를 만드는 정책일 뿐입니다. 그러니 일자리에 행복 같은 걸 고민하지 않는 정책입니다. 일자리 정책. 청년 실업 정책, 교육 정책이 다 그래요. 취업해야 인간 취급하고, ‘쉼 청년’은 사회의 짐으로 취급하면서 무슨 행복이 가능한가요.”

-지난해 10월28일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2차 합동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을 피하다가 숨진 유학생 뚜안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셨던데요. 과에도 유학생이 많은지요.

“글로컬 사업이 유학생을 받아야지만 점수를 받아요. 예산이랑 대응되는 거예요. 동아대나 부산대는 학생 정원 미달은 아닌데, 입학생들이 줄어들다 보니, 학령인구 감소의 미달 공포 같은 걸 느껴요. 그래서 대학들이 유학생을 더 많이 받으려고들 하죠. 동아대는 이전에는 중국 유학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베트남 유학생이에요. 뚜안의 죽음은 남 일이 아니죠. 제 수업 듣는 인원 50명인데, 반이 베트남 학생이에요. 과 특성이긴 할 텐데 여학생이 또 많아요. 이 학생들은 한국의 되게 복잡다단한 상황을 알지만, 여성으로서는 베트남에 돌아가기보다 한국에 있고 싶어들 해요. 그 친구들 처지에서는 한국은 페미니즘도 그렇고 뭔가 빨리 변화하는데, 베트남은 느리다고 여겨요. 그런데 한국에 살다 보면 이주 여성이라서 차별들을 겪잖아요. 그런데도 베트남 학생들은 아직까지는 한국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을 선망해서 오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진짜 좋아해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한국어문학과 특성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한국도 잘 알고, 한국어도 정말 잘해요. 한국어 능력시험 점수도 높거든요. 학기가 지날수록, 처음 입학할 때의 그 밝고 기뻐하던 얼굴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옛날에는 많은 선생님이 유학생을 그림자 취급했어요. 유학생들이 공부를 못 따라온다 이런 얘기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유학생들이 훨씬 더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명확해요. 우리 과를 오려고 공부한 학생들이라 진로 준비도 명확하죠. 그래서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요. 이 친구들이 한국어 능력도 뛰어나요. 한국어로 훌륭하게 발표도 하고 강의도 해요. 한국 전문가가 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저희가 K문화 수업도 하는데, 요즘은 한국에만 한국학이 있는 게 아니에요. 베트남의 한국학이 있고 중국의 한국학이 있어요. 각자 그 지역에 맞는 한국학 전문가를 키워야 하고, 우리가 무슨 종주국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들을 해요. 베트남 학생들이 자신들이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국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모습을 수업시간에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고 해요. 진로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는 얘기들 해요. 그래서 보람이 있어요.”



고 뚜안씨의 유족이 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주최로 2025년 11월 30일 열린 ‘더 이상 죽이지 말라 강제단속 중단하라’ 오체투지에서 정부서울청사로 향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④파시즘은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있다

- 동남아시아에서 온 학생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혐오 문제가 있는데요.

“이번 출간된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정치: 젠더사로 보는 전시동원 체제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파시즘은 지금 우리의 현재와 멀지 않고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내재화돼 있다’고 썼어요. 제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동남아시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자기도 모르는 채 내면화된 차별 의식입니다. 중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슷하고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나 문화, 언어 상황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고 잘 모르는데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왜 배울 기회가 없을까를 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그 당시 ‘남방’이라고 부르는 동남아시아에 가본 사람이 거의 한 명도 없을 정도였어요. 일본도 마찬가지였고요, 아프리카 선주민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상태에서 동남아시아 선주민을 아프리카 토인과 동일하게 생각했고, 동남아시아 사람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인식 구조와 감수성도 만들어졌죠. 해방되고 나서도 교정될 기회가 없었죠. 냉전기 동남아 많은 국가가 공산화되면서 또 만나지를 못했으니깐요. 냉전기에 동남아는 어떤 회로로 한국에 유통되었나는 오래 유행한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하신 누굽니다’라는 식의 멘트에 잘 담겨있습니다. 이 표현은 냉전기 외부와 차단된 채 미군의 주둔지를 따라서, 미군에 딸린 부차적 존재로 동남아시아를 순회하고 만나고, 그렇게 돌아와서 한국에서 환영받는, 냉전 문화와 동남아시아와의 조우 장면을 잘 보여줍니다. 냉전기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군의 회로를 따라 미군 시선으로 동남아를 만나는 것밖에 없죠.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것처럼 ‘팝송을 부르는 키 작고 까만 사람들’이라는 식으로요. 냉전 문화를 통해서 구축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미군의 지배 지역에서 짝퉁 영어를 쓰고, 짝퉁 팝을 부르는 작고 까만 원주민들’인 거죠. 공산화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접촉이 어려워지고, 터부화되기도 해요.”

권명아는 “위안부 문제랑도 결부되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배봉기씨(1914~1991)도 오키나와에서 뒤늦게 발견되는데, 위안부 대부분이 남방전선에 동원된 것이잖아요. 일본 패전 뒤 한국은 위안부만 안 데려온 게 아니라 학병들이나 군속들도 안 데려왔죠. 국가가 버린 것이죠. 일본은 지금까지도 BC급 전범을 다 교섭해서 데려왔고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수기도 남기고 경험담도 출간했어요. 보상도 해주고 한 거죠. BC급 전범 중에 조선인이 있는 것도 일본에서 연구한 거지, 한국에서는 연구 자체를 못 했거든요. 국가가 구조적으로 구식민지 조선인들을 버린 거죠. 데려와 달라는 논의 자체도 막았죠. 이승만 때인데, 조선에 돌아온 학병들이 남방전선 국가에 남은 학병들을 계속 데려와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남은 곳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의) 공산 진영이기 때문에 그걸 얘기하는 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치부되면서 잔류한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하는 것 자체를 언급할 수가 없게 됐어요. 국가가 국민을 버린 무책임주의의 원점에 놓여 있는 거죠. 그걸 계속 망각한 겁니다. 이승만 정부의 출발점인 거죠. 국민을 버리는 거 한국전쟁 때 한강 다리 자른 것만 생각하지만 이미 그전에 남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버린 거죠. 데려오는 것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계속 국민을 버리는 것에 자기 정당성을 만들어 온 겁니다. 이런 한국 사회의 원점에 놓인 게 남방 전선, 동남아시아이고, 그걸 정당화해 온 게 인종주의에요. 사실과도 맞지 않는 그런 식의 인식, 우리를 우월한 자인 것처럼 만들어 놓은 그런 인식들이 해방 이후 냉전기에 교정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베트남 전쟁을 만난 거죠.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한 짓은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 정부 시기의 일들을 빼고는 설명될 수 없는 겁니다. 역사라는 게 한편으로는 무의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겪지 않았는데, 내가 속한 사회의 무의식으로 남는 거죠. 지금 사람들이 1940년대 남방을 경험한 것도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남아시아를 만난 적도 없는데 1990년대 이후에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오니까 1940년대 조선인들이 남방에 대해서 생각했던 인식, 감정, 표상이 그대로 반복되는 거예요. 진짜 연구자로서 깜짝 놀라거든요. 이게 역사가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게 발현되지 않더라도 무의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나 마주치면 촉발되죠.”


2016년 3월 13일 서울 보신각앞에서 열린 ‘인종차별 철폐의 날’ 행사에 참석한 한 이주노동자가 ‘인종차별 금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있다. 그해 3월 21일은 UN이 제정한 ‘인종차별 철폐의 날’ 50주년이다. 서성일 기자

- 갈무리 강연 때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혐오, 차별과 ‘민족주의’ 관련해 잠깐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른바 ‘국뽕’이나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 보수 다 아우르는 문제 같은데요.

“민족주의는 모호한 것인데, 관련 이슈가 굉장히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민족주의를 뭔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면서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이미 민족주의가 꽉 차서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되는가라고 했을 때, 그 꽉 찬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어 <환단고기>를 따져보면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가주의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주의가 전유한 민족주의 같은 거죠. 우리가 흔히 주권의 상징으로 논의했던 민족주의도 있죠. 통일 같은 경우도 ‘통일되면 북한에 못 사는 사람들이 내려와서 엄청 골치 아파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명백하게 일제 강점기까지는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며 한반도를 점유하고 함께 주권을 향유한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람도 있죠. 위안부 문제를 두고도 많은 사람이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과도한 민족주의는 무엇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요.”


⑤‘환단고기’와 ‘제국의 위안부’,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과도한 민족주의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해방 후 국가를 건설하면서 위안부를 민족의 더럽혀짐의 표상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건 ‘운동’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방식을 한국 국가주의의 여성수난사 서사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이런 표상이나 재현의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운동이 ‘과도한 민족주의’라고 하는 비판은 사실 다른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 논리로 모든 것을 정당화했지요. 여기서 대표 사례로 거론된 정대협에 대한 비판은 기존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의 논리와 경계가 매우 모호합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 지원단체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학술의 형태로 격상했습니다.”

- ‘논리와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을 더 풀어주신다면요..

“정대협은 기독교 관련 단체거든요. 기독교 여성 지식인들이 시작했어요. 기독교계 통일 운동과도 관련이 있죠. 그 통일 운동의 민족주의는 예를 들면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을 더럽혀진 민족의 표상으로 수치스럽게 여긴 반공 국가주의가 전유한 민족주의와 공유하는 지점이 없어요. 물론 기독교계 통일운동에 내재한 민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 단체가 ‘과도한 민족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건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역사 수정주의 공격의 레퍼토리 즉 헤이트 피치 레퍼토리예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주로, 오랫동안 일본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진상 규명 단체에 의해 진행됐어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지원하던 분들이 대체로 자이니치 분들이십니다. 오키나와의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씨도 오키나와 총련에서 지원을 받았어요. 즉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지원 단체에 대한 헤이트스피치가 겨냥하는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종북 세력이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재특회의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헤이트스피치의 레퍼토리인 ‘자이니치는 북한에 연결돼 있다, 북한의 스파이다’ 같은 것들인데, 그들이 말하는 ‘과도한 민족주의’는 사실 이 뜻이에요. 북한과의 연루 혹은 공산주의적 지향이라는 점 때문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 헤이트스피치가 말하는 ‘과도한 민족주의’란 레드 퍼지(Red Purge), 즉 공산주의에 대한 학살을 민족주의 비판이라고 얘기하는 거고 그 레퍼토리가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헤이트 스피치 레퍼토리죠. 이게 한국으로 역수입되었고요.”

-자이니치 운동은 민족주의 운동 아닌가요.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자이니치에게 ‘민족’은 한국과 다르다는 점이 간과됩니다. 이들에게 민족은 빼앗긴 주권, 투쟁을 통해서 구축되고 만들어가야 하는 주권의 상응물이라면 한국은 그렇지 않은 거죠. 예를 들어 자이니치 조선학교가 한복 교복 입는 걸 가지고 한국 사람들이 민족주의라고 얘기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명절날 한복 입는 거랑 자이니치들이 한복을 입는 의미는 똑같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한국이나 북한이랑 일체화되는 게 아니에요. 이분들은 주권으로서의 국가가 없는 상태잖아요. 그래서 1세, 2세, 3세가 되는 거잖아요. 빼앗긴 주권의 이름이 조선이고, 민족인 거죠. 한복은 빼앗긴 주권의 이름이지 한국 옷이 아니라는 거죠. 이분들이 지향하는 운동을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나라의 이름 혹은 빼앗긴 언어를 조선/조선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의미의 식민성의 등가물로서의 ‘민족’, 회복할 주권의 등가물로서 ‘민족’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없는 나라, 빼앗긴 주권, 식민지의 등가물로서의 조선과 조선어, 민족이라는 것이죠. 이때 민족이라는 이름도 또 과연 오늘날 ‘국뽕’이라고 부르는 그런 민족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둘은 너무나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주권의 상징적 등가물로서의 민족은 너무 다른 얘기죠. 이런 맥락에서 뭐가 민족주의라고 할 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죠. 국뽕이라고 부르는 민족주의,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이 일본이랑 축구 경기를 하면 반드시 이겨야 된다라고 하는 건 국가주의죠. 자이니치들이 빼앗긴 주권의 등가물로 생각하는 민족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진보와 보수 아우르는 건 국가주의 성격이 더 강하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대한 차별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돈 많은 나라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잖아요. 이런 계보의 차별도 복잡하지만, 이게 다 민족주의로 환원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역사적 경험이 되게 중요한 거죠.”

- 갈무리 강연 때 말씀하신 “‘제국의 위안부사태’ 전후 형성된 여성 대 민족이라는 대립 구도”를 풀어주신다면요.

.“기존 운동 단체를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의식이 확산하고, 다른 방식으로도 강화됐어요. 위안부 문제를 기존의 ‘민족주의’ 주도 세력이 과도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반대로 여성학계에서 이를 다뤄야 한다는 내부적인 갈등도 발생했고요. 민족주의가 다 똑같지 않듯이, 이른바 ‘여성’ 연구자도 다 같지 않죠. 여성연구 혹은 페미니즘, 여성학 지향도 내적으로 이질적이죠. 교차성의 문제 제기기도 하지만, 이미 젠더 연구에서 젠더는 성차뿐 아니라 계급, 인종, 지역, 문화적 배경 등의 교차를 통해 구성하고 서로가 서로의 규정 인자로 작동하는 걸로 구축됐습니다.”


⑥윤석열과 증오정치, 파시즘

- 중국(인)에 대한 혐오, 혐중 국가주의 분위기도 퍼졌는데요.

“예를 들면, 윤석열은 왜 중국을 혐오하는가를 보면, 증오 정치와 혐오는 좀 달라요. 혐오는 주관적인 거니까요. 일단은 윤석열 정부가 뚜렷하게 ‘이승만주의’화한 거죠. 이승만이 중국을 진짜로 엄청나게 증오했거든요. 우리가 인해 전술이라고 많이 알고 있는, 장진호 전투에서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1·4 후퇴를 하잖아요. 장진호 전투가 분단의 가장 큰 요인이 됐지요. 장진호 전투 기념식을 군에서 계속했는데, 이른바 민주화 이후로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은 취임 후 장진호 전투 기념식에 참석하고, 윤 정권에서 대대적인 선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만큼 윤정권의 시계는 한국전쟁 시기로 되돌아간 거죠. 그러니까 중국이 한국의 외교 파트너나 경제적 파트너가 아니라 서로 전쟁 중인 상태의 적대자, 침략자의 자리로 상징과 표상과 의미를 강제로 바꾼 것이죠. 그렇게 의미 변화가 되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적이 우리 안에도 침투해있다는 공포와 적개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게 선거 개입론, 스파이담론입니다. 우리 안에 말하자면 적들이 침투해 있다는 거잖아요. 이런 걸 흔히 국체 투쟁이라고 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의 신체를 1948년 이후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 즉 건국절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국체 투쟁입니다. 친일 잔재나 통일, 주권 등을 삭제하고요. 국체 투쟁은 파시즘 정치의 대표적인 양태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우 국체라는 말 자체가 파시즘을 환기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맥락을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체라는 말을 안 쓸 뿐 건국절 논쟁이라든가 중국 선거 개입론 등이 전부 다 국체 투쟁이에요. 윤석열은 지금도 극렬하게 국체 투쟁을 하는 거잖아요. ‘중국이 침투했다’라는 건 국가를 하나의 유기적 신체로 보면서 이 신체 안에 적대적인 요소가 침입해서 이 신체가 무너지고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무너지기 쉽고 침투당하기 쉬운 존재를 여성 신체로 상상한 표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2025년 4월20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 지하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 ‘중국 유학생은 잠재적 간첩’이라는 중국인 혐오 현수막 내걸려 있다. 강윤중 기자

- 혐중 진영과 여성혐오 진영이 동일 집단이거나 같은 메커니즘을 공유하는 문제와도 이어지는 듯한데요.

“여성을 왜 침투당하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했는가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여성 혐오의 역사와도 관련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고 하는 것들이 여성의 신체를 적에 의해서 침투당할 수 있는 신체라고 보는 거죠. 임신도 다른 신체가 몸에 들어가잖아요. 여성의 신체가 ‘바디 더블’처럼 몸 안에 여러 가지가 되는 건, 한국 영화 <쉬리>에도 나오잖아요. 쉬리라는 물고기 안에다가 폭탄을 넣잖아요. 영화 <에일리언>도 마찬가지고요. 몸 안에 다른 적대의 신체를 숨기고 있다는 거죠. 이게 냉전기 서사에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품는 것만이 아니라 적도 품는 다는 식으로 국체가 여성화됐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성의 신체는 바디 더블이 못 되잖아요. 안에 다른 신체를 품을 수가 없으니까요. 고전적인 레드 퍼지 서사가 여자 스파이로 나타나는 것처럼 중국에 대한 공포와 차별, 혐오도 국체의 여성화라는 젠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거죠. 국체 투쟁에서 중국인이 우리에게 침투돼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국체의 여성화이고, 이 과정에서 국체에 침투한 중국이 절멸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여성화 자체가 부정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여성화와 인종화는 분리불가능하게 연결됩니다. 그래서 여성이나 젠더 이슈를 생물학적인 여성에 관한 문제에 국한해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생물학적 여성으로 보지 않는 게 파시스트들 생각이에요. 윤석열은 김건희를 사랑하잖아요. 그런 여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정리하면 윤석열 등 한국의 파시스트들은 ‘국체가 무너진다, 사회가 무너진다’라는 식으로 침투되기 좋은 신체로 ‘국체’를 상상하도록 하는 서사를 작동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침투되는 신체로 오래 상상된 ‘여성의 신체성’이 동반됐고요. 국체가 여성화되었으니, 다시 남성화해야겠죠. ‘여가부 폐지’처럼 과도한 여성화 상태를 정화해야 하고, ‘이대남 전략’처럼 신체를 남성화하며, ‘침투한 중국인, 전쟁 상태인 적성 국가 중국’ 같은 내부의 적을 정화해야 하는 거죠. 이렇게 국체의 여성화라는 담론은 사회정화와 젠더적, 인종적 절멸이라는 실질적인 구체적 절멸로 이어집니다.”

-이재명 정부가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었는데요.

“남성 역차별 대응 기관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답답하죠.”


⑦‘내 아들을 구해왔다’는 상층 계급 ‘이대남’과 지방 살며 알바하는 ‘이대남’

-‘이대남 전략’을 말씀하셨는데, 이대남 논쟁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이대남 논의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논의 자체가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들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20대라고 하는 세대 동질성이나 또 남성이라는 동질성을 본질화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얘기잖아요. 설문 문항도 악랄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같은 설문 문항이에요. 이런 문항이야말로 본질주의의 가장 큰 문제를 보여주는 거죠. 이대남을 본질화하고 마찬가지로 여성도 본질화하는 문제가 생겨요. 이들(이대남)도 여성 전체가 차별받는 건 아니고 어떤 여성에 비해 내가 더 차별받는 위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복잡한 면이 있는 거죠. 이렇게 교차성으로 생각하는데 질문은 본질화된 방식으로 제시되어서 여성 일반이 남성 일반에 비해서 차별받고 있냐라고 물으니까, 답변자는 아니냐라고 대답하게 되겠죠. 설문은 대체로 의도한 답안을 내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설계를 그렇게 하죠. 이런 여론조사는 증거가 필요해서 한 거죠.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요.”

-어떤 여론 조사인지요.

“시사인에서 20대 남자 관련 설문 조사와 그 연장에 있던 2025년 12월 ‘남성 차별 의식에 관한 7년 만의 새로운 대답’(2025 세대·젠더 국민통합 조사,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2025년 11월)인데, 2025년 조사는 나름대로 정교화했다고 했지만 설문도, 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사인의 경우 사람들 시선을 끌려고 ‘20대 남성이 이렇게나 반페미니스트다’라는 지표를 제시했지요. 인구의 몇 %가 반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죠. 이대남 논쟁이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30대가 되었죠. 또 이런 여론조사를 만드는 사람들 거의 100%가 40대 이상의 남성 지식인이잖아요. 남성 지식인들이 20대 남성을 계몽시키는 주체이자 정책 행위자의 헤게모니를 얻고 강화하려는 투쟁의 산물이자 알리바이가 되는 겁니다. ‘봐라 남자들이 다 그런 게 아니라 20대들이 문제야’ 같은 거죠. ‘얘들은 여성에 대해서 적대적이니까 여가부 같은 거 없애고, 여가부 때문에 젠더 갈등이 생기니까, 이들의 역차별 감정이나 이런 걸 잘 아는 우리가 이들을 이끌어야 하니까 우리가 일의 주도권을 잡는 게 젠더 갈등을 피하는 길이다’는 식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같이 계급 차이, 학력 차이, 지역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남성과 세대라는 두 개만을 가지고 동질화할 수 있는 그런 이대남이 정말 한국에 존재하나요. 말도 안 되는 얘기거든요. 부모가 막 어렸을 때부터 돈으로 처발라서 학원 보내고, 서포트하는 사람까지 붙여서 잘 되면 유학 가고 못 되면 서울대 가는 계급, 즉 그런 집안의 20대 남성들 말이죠. 예를 들면 ‘내 아들을 내가 구해왔다’고 말하는 상층 계급 집안의 20대 남성과 자기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으며, 똑같은 알바를 해도 훨씬 더 안정적이고 보험도 잘해주니까, 대기업 알바를 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정규직 매니저를 너무 하고 싶어하는 20대 남성들을 어떻게 20대 남성이라는 동질성으로 본질화하고 하나로 엮을 수 있냐는 거죠. 너무 억울한 일이죠.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데서는 이런 점이 드러나지 않고 적대를 향한 에너지로 동질화돼서 갈 수 있긴 해요. 하지만 이들 누구도 자기들이 같은 공동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죠. 어머니가 구해오신 상류층의 20대 남성은 미국의 유튜버와 자신을 동일시할지언정 지방에 사는 하층 계급 20대와 자신을 동질화하지 않습니다. 이대남 담론은 그런 (20대 남성 동질화라는) 환상을 만드는 거라고 저는 비판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 내부의 지역, 계급, 특히 학벌에 따른 위계와 차이를 은폐하는 거죠.”

- 이전에도 프레시안 이대남을 표적화하는 게 왜 문제인가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때 제시한 논점을 조금 말씀드리고 싶네요. 먼저 담론 프레임 문제입니다. ‘청년 취업 문제’를 오래 논해오고 있는데, 저는 이게 하나의 담론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는데요. 대기업 중심의 한국 고용 구조에서, 특히나 대졸 신입 사원을 거의 신규 채용하고 있지 않은 대기업의 고용유연화와 이로 인한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문제를 은폐하고 청년 문제로 전도시켜버린 것입니다. 그 연장에서 대학 문제로 전도해서 이른바 취업 안되는 학과 구조조정이라거나, 산업수요맞춤형 인재 양성 교육처럼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방식입니다. 대기업의 고용유연화에 대해 청년 신규 채용을 정부가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결과 공기업 청년 채용에 집중하게 된 것이 문재인 정부 시기 일입니다. 그렇게 공공부문 청년 채용할당제가 만들어지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하게 되었지만, 이도 정책 실행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대기업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고용을 유연화하고 청년을 고용 안 하니까 생기는 문제인 것이지요. 이게 어떻게 20대의 문제가 될 수 있나요. 이게 왜 요즘 애들의 문제인가요. 이런 구조를 만들고 손 놓고 있는 기성세대는 다 책임을 면하고, 또 재벌은 이 논의에서 보이지도 않지요. 매우 성공한 담론 프레임입니다. 대기업과 재벌의 고용 유연화에 대해 미디어도 정부도 한마디 못하면서 청년만 탓하는 구조죠.”

- 정동 연구 차원에서는 어떻게 이어지는지요.

“정동 연구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성에 관한 판단 문제입니다. 정동 연구자 브라이언 마수미도 지적하듯이 정동 연구는 기존 좌파 지식인이 밀레니얼 세대를 정치적 열정이 사라진 세대로 보는 환멸에 대해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싸웠는데, 얘네는 정치적인 열정이 사그라들고 무감각해졌다는 거죠. 정동이 쇠잔해서 문제라고 하는 거죠. 한국어로도 번역된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조성훈 옮김, 갈무리)에서도 좌파 지식인들의 시각과 해석이 오히려 보수 반동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사례로 보여줍니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이론에 대해 저도 비판적인 지점은 있지만, 실제로 정동 연구는 사례 연구이기도 해서 마수미의 사례 연구가 지니는 가치는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마수미 비판도 사례에 대한 비판이 아닌 원론적 비판뿐인 것도 징후적이라고 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20대를 겨냥해서 ‘우리가 어떻게 만든 세상인데, 얘네들은 공정, 스펙, 생존밖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바꾸는 열정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잖아요. 정동 이론의 관점에서 정동이 쇠잔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도 합니다. 즉 살아있는 존재는 언제나 변화, 생성 중입니다. 그러니 어떤 집단이 무감각하다라고 보는 것 자체가 특유의 정치적 해석인 것이지요. 모든 존재는 끝없이 이행 중이라는 거죠. 20대 남성들을 반페미니스트라고 고정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그런 상태에 못 박히는 것인데요. 그런 상태는 해석의 산물일 뿐, 존재 상태가 아닙니다. 이대남으로 불리는 어떤 존재들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에 이런 고정화가 오히려 반동화를 촉발하게 됩니다.”


이대남 담론를 통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에 반대하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2022년 2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이대남 여론조사 한계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의 한계이기도 한데요.

“여론조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사회 조사 방법입니다. 구닥다리죠. 요즘 세계적으로 이런 방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데는 거의 없어요. 대중적인 쓸모나 제한적인 쓸모만 있는 거죠. 이런 여론 조사는 옛날식 통계 연구의 산물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옛날에 사회과학이 주로 통계 기반 사회조사에 치우쳐있었지요. 그 산물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한국이 미국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 나오는 어펙트 연구의 많은 부분이 사회과학에서 나옵니다. 일본도 이런 사회조사 방법이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엄청 강했기 때문에 사회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굉장한 자기비판이 있습니다.”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무엇인지요.

“이런 식의 사회조사 자체가 인구를 위계화해 식민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사회조사로 정책을 한다거나, 어떤 집단이 이렇다고 하면 난리 나는 거죠. 최근 인문과학도 디지털 전환이라고 하지만, 다시 자료 실증주의로 돌아가고 있고, 디지털이라기보다 양적 연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론조사로 정책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학계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20대 문제 이전에. 지식생산 행위자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지식 제도에 이를 비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지식 생산 자체가 너무 희소하고 거의 몇몇 개 학과 정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⑧증오정치? 그래도 되지

- 2014년부터 헤이트스피치 소수자 연구 오래 하셨는데요. 소수자와 혐오 문제를 다시 정리해주신다면요.

“혐오는 주관적인 거죠. 마음속에 있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걸 밖으로 내뱉거나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행동이 됩니다. 증오 정치는 마음의 문제라기보다 행위, 수행의 문제이지요. 한국은 이 증오 정치 대응을 하지 않아 한계를 넘어섰어요. 한국 사회 전반에 증오 정치를 두고 ‘뭐 그래도 되지’라고 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주변에서도 느끼는 건데요, 고학력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도 중국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거든요. 이른바 ‘무지몽매한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일상이 된 거죠.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되고요.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증오 정치를 용납해요. 윤석열 비상계엄이 법적으로는 마무리되겠지만, 비상계엄 자체가 증오 정치를 해도 된다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거라는 점을 봐야 해요. 한국 사회는 지금도 증오 정치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어요. 대안도 만들지 못했고요, 진지하게 또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입니다. 헤이트스피치나 차별 대응 제도를 만드는 것은 특정한 소수자 집단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페미니스트라든가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권 문제니 남 일이 아니라 내 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헤이트스피치나 증오 정치의 문제는 타자, 소수자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공통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이 기본 전제, 한국 사회 정치 집단이 좋아하는 사회적 합의의 기초가 되어야 마땅한 지점이에요. 이런 점들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가 있는데요.

“파시즘의 목표, 그들(극우)의 목표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 아무것도 없게 만드는 거예요. 천황이 (5호 담당제의) 세포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거처럼요. 보통 파시즘화를 국가와 ‘개인’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폭력의 직접성을 사회를 대신하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의 가장 큰 목표는 시민사회를 없애는 겁니다. 차별금지법이라거나 이른바 차별 대응 제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시민사회를 구축해서 국가가 개인을 향해 무매개적으로, 아무런 제지없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개인을 향해 직접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최인훈은 광장이 없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최인훈의 소설을 들자면 ‘국가 권력이 방문을 걷어 차고 내 방에 군홧발로 들어오는 세상’ 그게 ‘광장이 없는 세상’입니다. 헤이트스피치에 대응하는 제도를 만들고 차별에 대응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 차별금지법을 만들자는 것은 어떤 특정한 소수자 집단을 위한 특별한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광장 없는 세상, 국가가 내 공간에 군홧발로 쳐들어올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사회란 국가와 개별 존재 사이의 완충 지대에요. 개별 존재가 홀로 내버려 지지 않도록 하는 연결망을 구축해야 하죠. 파시즘의 목표 중 또하나는 인간을 ‘무사회적 고립자’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차별 대응 제도에 반대하는 건 그러니까 인간을 무사회적 고립자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2025년 6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1만인의 목소리 - 이재명 정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합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⑨‘국가’와 ‘개인’ 사이 아무것도 없는

권명아는 “차별에 대해 제도적으로 대응이 안 된다는 건 사회가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내가 차별을 당했을 때 사회가 있다면 기관에 가고 상담도 받고, ‘이런 안전망이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직장에서 게이라고 찍히면 바로 잘린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너무 이상한 거죠. 예를 들어 성폭력 상담소 예산도 축소되고, 괴롭힘 대책(고용노동부)도 줄었어요. 성폭력 부정주의자들은 미투가 인민재판이라고 느껴진다고도 하는데요, 이건 페미니스트들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제도가 없기 때문에, 당신들이 성폭력에 대한 제도화를 반대하고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히려 제도를 만들어서 절차와 매뉴얼에 따라, 지은 잘못을 판단받고 벌 받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도록 해야죠. 그러면 사람들(피해자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잖아요. 제도와 절차가 없으니까 그때마다 여론몰이에 모든 게 맡겨지는 겁니다. 어디 가서 얘기할 데가 아무 데도 없으니까 바로 신문고에 올리거나 SNS에 폭로하는 거죠. 이건 폭로전이 아니에요. 제도를 안 만들어 놓고 인민 재판한다고들 해요. 잘못한 사람, 가해자 입장에서도 (폭로가) 일파만파 커지면 처벌받기 전에 죽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어도 절차에 맞게 이 정도의 처벌을 받겠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사회와 제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사회통념’을 판단 기준으로 해 이슈 강도에 크게 의존하는 법적 문제도 제도적 개정을 통해서 보완해야죠. ‘혐오’가 아니라 헤이트 스피치와 차별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속 혐오를 국가나 법이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외화되고 세력화되고 행동이 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건 국가의 역할입니다. 사회적인 것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서 차별과 헤이트스피치 대응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정부가 차별 대응 제도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역차별을 운운하는 것도 시그널이 될 수 있어요. 고등교육을 받은 고학력자들이 헤이트스피치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야 하죠.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야죠.”


⑩미국 페미니스트 중 독학자가 있는가

- 증오 정치를 말씀하셨는데,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증오정치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성차별의 경우 남녀라는 성별 이분법에 기초해서 남성을 우대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식의 방식도 지속하지만, 성별 이분법과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도덕화한 차별도 존재합니다. 즉 여성답지 않음, 남성답지 않음, 모호한 성(퀴어함)을 공격하는 거죠. 페미니즘을 겨냥한 증오정치의 원인으로는 그간 주로 온라인,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한 페미니즘의 세력화, 미투 운동의 물결, 정치적 세력화에 대한 공포, 반동 심리 등이 주되게 논의되었습니다. 증오정치는 여성혐오, 성차별을 동반하지만, 구체적인 힘으로 외화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죠. 일베가 폭식 투쟁을 한 게 전환점이었죠. 단지 혐오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온라인에 유동하는 ‘여성혐오’와 대통령이 여가부를 없애라는 밈을 창조하는 것과는 매우 결정적인 힘 관계의 차이가 있죠. 증오정치가 실질적인 힘 관계의 문제라는 점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또 단지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젊은 세대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기존의 기득권 집단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페미니즘 대상 증오정치가 페미니즘을 적대시하고 절멸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민주당 내부에서도 계속해서 페미니즘을 겨냥한 공격, 젠더 갈등론, 역차별론 등이 부상한 것도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해방 후 페미니즘은 1990년대와 2010년대 후반 두 차례 걸쳐 대거 부상했어요. 두 시기 다 글로벌한 페미니즘의 시대와 맞물렸죠. 국지적 힘도 중요하지만 실은 글로벌한 동력에 기대어 부상한 겁니다. 글로벌 힘 관계가 변하면 국지적 힘과 기반이 원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사그라들게 됩니다. 그러니 제도적 기반(교육, 기관, 단체의 구성)이 중요합니다.”

- 문단 미투 전후로 해서 페미니즘이 두드러졌는데요. 여성 작가들의 분투나, 책 주제 등도 그렇고요.

“‘페미니즘 리부트’를 두고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 독학자라는 얘기도 나오잖아요. 그 의미가 ‘독학이 대단해’라는 게 아닙니다. 배울 데가 없어서 독학하는 거지요.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독학자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젠더, 인종을 배워요. 대학에 들어가면 페미니즘 과목에서 그걸 배우는 게 아니에요. 모든 과목에서 젠더, 인종, 계급에 관한 얘기가 있어요. 이거 없이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공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죠. 하다못해 과학기술이나 정치 경제학을 공부할 때도 젠더, 인종, 계급을 다 배우는 건데요. 특별한 페미니스트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는 아마도 ‘그걸 왜 혼자 공부해야 해? 왜 독서 모임을 하는 거야’ 같은 의문이 나오죠. 한국은 ‘학교에서 안 배워’라고 하겠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을뿐더러 제도적으로 공부할 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혼자 알음알음 공부하거나, 혼자 공부하기 어려우니까 같이 공부하죠. 내가 겪은 일이 어떤 일인지 내가 판단을 못 하겠으니까 서로 모여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요. 먼저 경험한 사람이 더 앞서 해석한 걸 듣고요. 내가 성폭력을 당해서 엄청 트라우마를 겪는데 상담하고, 의료 혜택이나 돌봄을 받고, ‘네가 겪은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이런 일이야’라고 할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이 있다면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가지고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이 책이 도움이 돼’라고 하지 않겠죠. 슬프게도 한국은 이런 일을 할 교육, 제도나 기관이 없기 때문에, 책을 보고, 책 모임을 하면서 독학으로 페미니스트가 됩니다. 공부할 수 있는 게 책밖에 없는 거예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책 모임이 학교, 사회, 정부, 기관이 할 일을 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한국 작가들, 문단이 잘해서가 아니라 공부할 데가 없어 공부하는 페미니즘이 두드러지는 거죠.”

- 세계 여러 곳이 ‘전시 상태’이거 ‘(준)전시 동원 체제’입니다. 각 지역 상황이 다르지만, 여성들이 더 희생되곤 하는데요. 전시는 아니더라도 미국에선 여성이 ICE 총에 맞아 죽기도 했고요. 이란에선 여성들이 더 탄압받습니다. 또 저항의 주체로 나서기도 하고요.”

“이란 여성과 미국 백인 여성이 놓인 위치 자체가 되게 다른데 한편으로는 이란과 미국이란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조건 속, 가장 극단적인 폭력의 상황에서 여성이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항의 행위자가 되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봐요. 1960, 1970년대 68혁명 같은 게 벌어질 때나 지금이랑 차이가 있죠. 이전엔 예를 들면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곤 했죠. 지금은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조직화된 투쟁 경험을 가진 대표적인 집단이 여성이나 소수자들인 거죠. 한국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 투쟁의 맨 앞에 조직화된 투쟁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이 서는 거잖아요. 그런 조직의 핵심들이 지금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 시위에 여성들이 많이 오죠.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이 조직화된 투쟁의 경험이 축적된 거죠. 대규모로 집회를 하는 힘들과 시위를 하려면 필요한 노하우 같은 것들이요,. 예를 들면 ICE에 살해당한 여성 르네 굿도 즉흥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에요. ICE 요원에게 조목조목 얘기하고 화를 내거나 하지도 않았잖아요. 오히려 그쪽에서 말로 당할 수가 없으니까 쌍욕을 하면서 격분해 가지고 총을 쏴버린 거죠. 이같은 폭력적 상황이 뭐가 문제이고, 여기에 대해 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왜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경험치가 축적된 사람들이 지금은 소수자 투쟁에 앞장섰던 여성을 비롯한 퀴어 운동이라든가 인종차별 비판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⑪‘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니즘 차별선동’과 리박스쿨


댓글 조작팀을 만들어 여론 조작에 나선 정황이 포착된 극우 성향 역사 교육단체 ‘리박스쿨’의 서울 종로구 사무실. 2025년 6월 1일 촬영했다. 정효진 기자

- 윤석열 집권과 계엄, 탄핵, 선고(예정) 과정에서 무엇을 생각하셨는지요. ‘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니즘 차별선동’이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는데요. 여성과 젠더 중심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윤석열에게 여성가족부 폐지란 무엇이었을까, 그때 여성가족부의 여성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김건희랑 동일화되지 않거든요. 자기 부인도 여성이잖아요. 자기 부인은 차별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의미의 여성을 혐오하거나 차별해서 여가부를 없앤 게 아니죠. 여성가족부 해체에서 말하는 그 여성은 자기 부인에게 해당하지 않는 거죠. 명확하게 정치적 헤게모니 문제에요. 윤석열에게 여가부는 예를 들면 인권위, 한중연, 과거사 같은 식의 의미 사슬로 동질화되는 거죠.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가족부’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윤석열과 그 지지자 집단은 여가부-페미니즘-민주주의-민주당-진보로 이어지는 계열을 만들잖아요. 여성가족부는 곧 민주당, 진보 아젠다(민주주의 대표 아젠다), 주권, 정치적 몫 등을 의미하는 거죠. 실질적으로 민주당이 그러하냐는 다른 문제이고요. 여하튼 이들에게는 이게 하나의 연쇄사슬인 거죠. 그래서 다 장악해야 되는 것이고요.”

-연쇄사슬은 무엇인지요.

“마찬가지로 리박스쿨, 늘봄학교, 여가부, 인구 문제, 지방 소멸도 같은 의미의 사슬인 거예요. 이 모두 재생산과 사회의 이른바 ‘세포조직’의 문제로 같은 의미 사슬에 있는 겁니다. 사회를 세포 단위로 분할해서 통치하고, 사회 자체를 세포들의 유기적 연결로 생각하는 것이 파시즘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천황제 파시즘은 가족 국가주의였고, 사회의 세포로 애국반 같은 조직을 만들었고, 이게 아주 오래 반상회 같은 세포 조직으로 남아서 유지되었지요. 5호 담당제도 원래 북한에서 만든 게 아니고, 일본이 파시즘을 하면서 가구를 5개를 묶어서 반을 만들고, 그 위로 쭉 묶어서 맨 위에 ‘천황’을 둔 게 ‘이에(家)’ 제도거든요. 천황제가 국가의 세포까지 직접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를 세포 조직으로 만드는 겁니다. 파시스트들의 관점에서는 사회가 유기적인 세포들의 총체입니다. 윤석열과 한국의 극우들에게는 그런 의식이 여전히 있거든요. 이들에게 사회 세포 조직을 장악하는 게 왜 중요하냐면, 누가 차지하느냐 같은 정치적 헤게모니도 있지만, 재정이나 인력과 같은 정치적 지원 조직의 물적, 인적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대중의 자발성에만 의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환상이에요. 실질적으로 대중의 자발성을 업고 가지만 실제로는 위로부터 이 세포 조직을 엄청 집요하게 조직화하는 것이거든요. (윤석열 등 수사, 재판 과정에서) 지금도 교회를 동원하고 하는 게 나오잖아요. 그들은 그 세포를 장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그걸 해오는 겁니다. 그들은 (윤석열 정권 때) 한중연, 한국연구재단 다 점령했거든요. 한국의 극우파들은 오랫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어요. 그들은 이게 관건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학생인권조례, 청소년 인권조례, 노동인권조례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관심도 별로 없어요. 차별금지법도 그렇고요. 장애인 이동권도 그렇게 난리 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문제가 불거진 건 반대 세력의 집요함 때문인 거죠. 이들의 집요함을 사실은 잘 이해 못 한다고 봅니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절대로 놓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된 거잖아요. 그들(극우)은 왜 저렇게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가를 봐야 해요. 이길 수가 없을 정도로 결사적이거든요. 이 문제를 엄청 공격하면서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희귀한 일이거나 대단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일처럼, 그래서 죽기살기로 막아야 하는 엄청난 사안처럼 만들었어요. 이런 방식이 증오의 에너지를 모으고, 강도를 높이는 증오정치의 방식입니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지요. 여가부 자체가 거대한 조직도 아닌데 마치 엄청난 괴력을 지닌 존재처럼 각인된 것이지요. 이런 증오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증오정치가 괴물화시킨 존재들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지금 워낙 혼란하니까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 하지는 못하는 거예요. 예전만큼 집요하지 못해요. 그들의 메커니즘 자체가 세포까지 침투해서 조직을 장악하는 일을 해온 것인데, 우리 앞에 놓인 엄청난 난제이죠. 그들을 어떻게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어디까지는 절대 용납해선 안 되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논의가 필요한 때에요. 그런데도 지금 대부분의 빅이슈는 코스피 지수 5000이죠.”


⑫“그것도 못 하는데 무슨 실용 정부입니까?”

-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고 차별금지법 등 남태령 의제는 사라지다시피 했는데요.

“차별금지법도 크게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소수자 운동하는 데서 목매달고 있는 게 아니에요. ‘최고의 목표’가 아닌데도, 진보 정권이 계속 ‘나중에’로 미루고, 개신교의 압력이 가시화되고, 민주당이 타협하고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상징 투쟁의 거점이 된 겁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개신교 일부의 반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필요하다고 해요. 차별금지법 제정 그리 어려운 일 아닙니다.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아무도 꺼릴 게 없는 일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어투를 패러디하자면 그것도 못 합니까? 네? 그것도 못 하는데 무슨 실용 정부입니까?”

- 남태령에 모인 ‘2030여성’에 많이들 주목했는데요.

“관련 질문이 여러 차원에 많이 걸려 있는데, 일단 예를 들면, 본질화되는 이대남이 없는 것과도 같죠. 여성도 그 안에 교차적으로 위치들이 다 다르잖아요. 20대, 30대 여성도 일반화하는 것도 큰 의미는 없다고 봐요. 몇몇 대표성을 중심으로 논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얘기하는 남태령의 2030 여성은 서울, 수도권 사는 사람들이죠. 어떤 조사에 따르면 남태령 참가자 중에 지방 출신자가 꽤 있다고 하지만, 지방 출신 수도권 거주자인 것이지요. 이 차이는 너무 큽니다. 대표성이라는 게 결국은 수도권 중심이고 지방도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한 사람들이 당연하게 대표성을 갖지요. 지금은 다 해산됐지만 제가 부산에서 2015년 이후로 했던 캠퍼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라고 있어요. 그 친구들을 오랫동안 만나고 졸업하고도 교류하고 있지만 정말 한 줌이에요. 그런데 관심은 많아요. 학생들도 많이 변했거든요. 부산에 사는 여성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가시화하는 거에 (서울, 수도권보다) 더 엄청난 두려움을 느껴요. 그 이전에도 그랬어요. 소수이기 때문이에요. 더 소수라 더 공격에 노출돼요. 지역에선 집회를 해도 양적인 규모가 서울과 너무 차이가 나죠. 예전 ‘끝장 집회’라고 해서 서면에서 오랫동안 열린 페미니스트 집회에 같이 오래 참여했는데 서울 집회와 실감이 너무 달랐습니다. 서울에는 광화문 광장 같은 데 엄청 많이 모이잖아요. 부산이 그다음 인구 규모인데도, 많이 모여야 20~30명이에요. 민주노총에서 지원 집회를 나와줘야 겨우 ‘사고 없이’ 시위를 진행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어요. 주위에서 집회하는 여성들한테 컵 던지고 막 사진 찍고 그래요. 규모가 적기 때문에 훨씬 더 표적화가 되는 거죠.”

-윤석열 탄핵 집회 때 부산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인원이 모였는데요.

“비상계엄 집회 역시 퀴어, 페미니스트, 소수자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이어졌습니다. 적어도 이런 흐름이 가능했던 것은 2018년부터 혹독한 증오행동주의, 즉 반대 집회의 공격에도 이어져온 페미니스트 집회와 부산 퀴어 퍼레이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방에서 페미니즘과 소수자 운동을 위해 20대를 헌신했던 여성들과 퀴어들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쉽지요. 20대 여성 논의도 모두 서울을 대상으로 하기에 지방의 20대 여성의 역사는 계속 망각되어 기록도 흔적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윤석열 탄핵 집회 때 부산 서면에서 소수자들이 연설했는데 이곳 퀴어 모임들이 조직화해서 나왔던 겁니다.”

- ‘술집 여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의 집회 발언이 화제가 됐는데요.

“그분도 부산 이주해서 퀴어 모임에 참여해서 서면 시위에 같이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퀴어 조직이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했죠. ‘내가 경상도의 딸내미’다 같은 발언도 나왔는데, 수도권과 연대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지역화하면서 차이를 가시화한 건 윤석열 비상계엄 집회의 큰 특징이었어요. 그전에는 계속 서울로 원정 집회를 가는 식이 너무 당연한 식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죠. 또는 중계를 보는 거죠. 뉴스에도 맨날 광화문 집회를 보여주잖아요. 당시에도 지역은 잘 안 보여주거나 보여줘도 부록처럼 다루는 거죠. 규모가 큰 집회를 중심으로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런 방식이 바로 서울중심성과 지방 차별이 정당화되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 2030여성들이 남태령 농민과 연대한 건 어떻게 보셨는지요.

“2030 여성들이 보여준 연대는 바로 전농의 투쟁을 ‘노동자성’이나, NL/PD 같은 오래된 ‘운동권 논의’로 보지 않는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페미니즘, 기후위기, 지역 운동에 대한 관심과 같은 것이겠지요. 기후 위기에 관한 패러다임이 변화해서 농촌이나 지역 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요. 젊은 세대 중심으로 관심도 늘고 확산력이 많이 생긴 거죠. 이렇게 확산한 게 중요하죠. 2015년 민중총궐기 때와 비교도 해보면, 첫 번째 바뀐 거는 여성 농민이 가시화된 겁니다. 이분들이 남태령을 계기로 전면적으로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가시화했어요. SNS 같은 걸 통해서 연대 세력, 정치 세력으로서의 여성 농민이란 점을 어필하며 연대를 촉구하셨지요. 이전과는 좀 다른 지점들이 생긴 거죠. 그럼에도 연대를 하는 쪽의 변화에만 중심이 기울어진 것도 좀 문제라고 봅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들이 2024년 12월 22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⑬“농민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는가”

-어떤 문제인지요.

“그러니까 트랙터 시위가 시작된 2015~16년에는 왜 2025년과 같은 연대가 되지 못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이 주제는 앞서 제가 논의했던 정치적 주체나 정치적 행위자성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2015년 민중 총궐기 때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일본에 있으면서 민중 총궐기를 SNS 생중계를 보면서 아카이빙을 했어요, 물대포 맞으시는 것도 라이브로 본 거죠. 그 당시에는 민주노총은 민중총궐기 주최측으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도 농민들을 약간 골칫덩어리처럼 생각했어요. 노동자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죠. 농민분들이 2015년에도 ‘밥쌀용 쌀 수입 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거든요. 2015년 민중총궐기는 전농이 주축이었고 민주노총 등은 처음에는 참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의 투쟁에 대해 관심이나 사회적 의미부여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농민 시위대는 삼베옷을 입고 상여를 들고 진행되었습니다. 그때 일각에선 이런 상징과 의례가 남성 가부장적이라고 봤어요. 이른바 전근대, 농촌 공동체에 대해 이런 판단도 가능하겠지만 실은 일면적입니다. 이런 시각이 꼭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즉 서구 근대 자유주의 측면에서 비서구의 전통이나 공동체성을 가부장적이거나 낡은 것으로 보는 시각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식민주의나 제국주의 페미니즘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당시 경찰이 물대포로 상여를 해체하려고도 했어요. 와중에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 반향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후에 적극적인 연대가 촉발된 것은 이분이 중앙대 운동권 출신이고 귀농한 즉 하방한 농민이시라는 게 알려지면서였습니다. 중앙대 이내창 열사 기념회에서 백남기 농민 대책위를 만든 거죠.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박근혜 하야 시위를 전후로 전봉준 투쟁단이 만들어지면서 트랙터 시위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도 남태령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왔고 박근혜 하야 시위에 여의도 국회 앞에 10대의 트랙터가 참여했습니다. 2024년의 남태령 집회에 비해 거의 기억되거나 논의되지 않는 것은 당시에는 이른바 연대가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농의 투쟁 방식 변화와 연대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2024년의 남태령 시위와 연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왜 2024년과 같은 연대가 구축되지 못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농의 투쟁은 계속되었는데 연대의 방식이 변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전농의 투쟁과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적 주체’나 ‘정치적 행위자성’에 주목하셨다고 했는데요.

“이 연구 주제와도 관련이 있어 개인적으로 이 사례에 관심을 갖고 추적했어요. 농민은 대공장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주체로서 노동자에 대한 관념과 관련하여 항상 미달하는 존재로 여겨졌어요. 2015년 사례도 거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1930년대에도 그랬거든요. 사회주의자들이 소농들을 두고 땅에 대한 소유욕을 가진 이들로 여기고, 쁘띠 부르주아 근성을 못 버렸다고 본 것과 같아요. 노동자성과는 다르다고 봤죠. 그때를 비교해 보면 남태령 때는 분명히 무언가 바뀐 거잖아요. 그 부분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2015년이나 2025년이나 농민들이 왜 상여를 메고 와서 밥쌀 수입을 금지해달라고 하는지는 아젠다가 되지 않은 점도 봐야 해요. 그만큼 농촌 문제에 관심도 없던 것이죠. 농민들이 왜 트랙터를 타고 왔는지, 그 아젠다는 거의 얘기하지 않죠. 연대한 사람들이 2030 여성이다라는 얘기는 많이 하지만, 이분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나요. 남태령 아젠다가 사라졌다라고 할 때도 페미니즘이나 차별금지법 얘기를 하지만 농민들이 왜 지난 10여년간 트랙터 타고 상경 투쟁하는지는 모르죠. 지금 농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관심이 없고 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도요. 일본이 쌀 문제로 심각하다는데,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쌀 자급률이 훨씬 더 높거든요. 일본은 자국 농산물에 대한 보호 대책이 강해요. 왜 한국 쌀을 수입하냐 하면, 일본 쌀이 너무 비싸서 그래요. 한국 쌀이 너무 싼 건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지방에서 무슨 일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깐요. 남태령 의제로서 투쟁 연대 이상으로 나아가 지방 특히 대도시가 아닌 농업 어업 축산업 등 일차 산업 기반 지역에 대해서 가시화된 의제가 형성되어야 하는 즉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 패러다임이 구축될 필요가 있는 거죠. 일단 미디어의 절대 부족 때문이지만 지방 전체에 대한 무관심, 무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도 고민해야 하고요.”

- 윤석열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을 두고, ‘멍청하다, 비겁하다’ 식의 희화화 하는 반응도 꽤 많았는데요.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그런 ‘멍청이들’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당대에는 그들이 동성애자리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성불구자라서 성적인 불만족을 이런 식(권력)으로 해소한다고요. 히틀러 성기가 기형적으로 작았다는 이야기나 주장이 되게 많거든요. 이런 주장 자체가 문제적인데, 마찬가지로 윤석열을 멍청한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극우에 대한 어떤 이해의 방식일 뿐입니다. 진보를 되게 똑똑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낳은 파급이 있잖아요. 거꾸로 윤석열은 멍청하고 비겁하다고 보는 것도 문제적입니다.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이었고,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요. 윤석열을 희화하하는 건 정신 승리일 뿐이에요.”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2005년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2025년 개정증보판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를 내셨는데, 집필 과정에서 각각 같고도 다른 것이 있을 듯한데요.


“2005년 책 나올 때는 사람들이 파시즘이란 말 자체를 두려워했다고 할까요. 너무 강하다고 여긴 듯해요. 반대로 파시즘을 미시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방식도 문제적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당시 임지현 선생의 ‘우리 안의 파시즘’ 같은 논의는 좀 비판했던 입장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예를 들어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홀로코스트나 인종 학살 같은 건 독일이나 이탈리아 문제일 뿐이라 여겼고, 일본이 파시즘 삼국동맹이었다는 것도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파시즘은 유럽 문제라고 많이 생각하던 때라 파시즘으로 한국 사회를 논의하는 게 강도가 높다고 생각들 한 듯해요. 1990년대 신나치도 부상하고 인종 청소 같은 말이 나왔어요. 소련 붕괴 뒤에 그런 현상이 생긴 거죠.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한국에 무슨 나치 청년 같은 게 있냐고들 했죠. 1987 민주화 이후라 많은 이들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던 때가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이죠. 월드컵 같은 것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지점 예를 들면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던 시대는 얼마 안 됐거든요. 2014년 헤이트 스피치 비교 연구를 하면서 일본에서 발표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의 일베의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폭식 투쟁 같은 걸 다루었어요. 그때 참석한 학자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헤이트 스피치는 일본 문제죠.’ 일본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 저한테 막 화들을 내셨어요.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 정치, 파시즘은 일본 문제인데 한국 문제라고 얘기하는 건 일본 사람들, 일본 지식인들을 현혹할 수가 있다’고요. 한국은 민주화가 엄청나게 잘 됐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들 했어요. 또 최근 윤석열 계엄 뒤에 타이완에 간 적이 있어요. 타이완은 1963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최장 계엄령이 지속된 곳이에요. 다들 계엄은 타이완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한국의 계엄을 타이완 사람이 걱정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는 말들을 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타이완을 불쌍하게 생각했잖아요. 중국이 언제 침략할지 모른다는 둥, 계엄 하에서 어떻게 사냐는 둥 하면서요.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계엄 뒤 한국의 키워드는 불안정성인 거죠.”


2002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광장에 모인 길거리응원단. 경향신문 자료사진

권명아는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2012)에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딱 10년이라고 썼다.

“바로 극우들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이죠. 2002년 대한민국을 외친 것도 IMF를 극복했다는 의식에서 가능한 건데, 한국 민주주의의 이른바 찬란한 역사는 10년도 안 되는 거죠.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을 이번 비상계엄이 모두 보여준 겁니다. 우리가 온몸으로 막아서 비상계엄을 저지했다고 해도 저는 방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윤석열이나 국민의힘을 우습게 생각해도 그들은 절대 죽지 않았잖아요. 그 난리를 쳐놓고 계속 살아났잖아요. 국민의힘을 계속 살려준 게 민주당이기도 하지만요. 지금도 (지지율이) 30~50%로 살아나잖아요. 이런 위기를 민주당이 장기 집권을 위해 전유하다 보니까, 이 위기를 과장하는 것에 대해 자제하려고 해도, 사실 방심할 수가 없어요. 이제 새로운 대안 세력이 나와야 하는 거죠. 그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운동이 대안 세력이 돼야 하는데, 그러는 데 필요한, 구조적으로 축적된 제도적 인프라가 전혀 없잖아요. 페미니즘 공부할 데도, 조직도, 기관도 없고, 있는 것도 없애잖아요. 이 한 줌의 대안 세력을 더 구체화하지 않는 한 계엄 같은 사태의 반복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거죠. 그만큼 위기 상황인데 위기의식이 없는 거죠. 위기의식 없이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는 소수들을 증오하고 왕따시키고 배제하면서 나눠먹기 하는 방식을 반복할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잖아요. 지금은 정말 페미니즘 하나 남은 겁니다. 특히 한국은 비판적 인종주의 투쟁 세력화가 없고 패러다임도 없죠. 다른 지역은 이게 인종주의 투쟁과 페미니즘 투쟁이 같이 가는데, 한국은 소수의 페미니즘 세력만 남아 있어요. 이 소수를 대안 세력을 만들어 가는 게 관건이에요. 페미니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위해서요.”


⑭‘진보진영’이라는 밀착의 네트워크 바깥에서

- 민주당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지식 사회도 이 ‘진영’에 포섭된 듯한데요.

“같이 학술운동 하던 사람들이 앞뒤 안가리고 조국 대표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많은 감상이 교차했습니다. 이전에 반정부, 반국가 학술 운동을 할 때의 위치와 격앙된 정의감으로 조국 대표를 지지하고 방어하는 것을 보면서, 이에 대한 자기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정의감에 대해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저도 386 세대의 일원으로 이 세대는 너무 네트워크가 좁고, 그 바깥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른바 진보적 진영 자체가 너무 좁고, 뻔한 네트워크라서, 386세대일수록, 그런 좁은 네트워크 바깥에 서기가 더 어렵고, 그 바깥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대는 단결력이 강하고 그만큼 집단주의적입니다. 보수도 진보도. 어떤 점에서는 진보적 진영의 집단적 단결력과 응집력이 더 강해서, 그 바깥, 즉 기성의 진보 진영 네트워크 바깥에서 대안의 자리를 만드는 건, 그냥 왕따가 되는 것 말고는 현실적으로 답이 없는 것이지요. 민주당과의 밀착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밀착 관계 바깥에 있으면 한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 운신의 폭이 엄청나게 줄어듭니다. 이 밀착의 네트워크 바깥에 서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 저도 (바깥에 머물지, 안으로 들어갈지 하는) 선택을 두고 고민할 때가 많았거든요. 운신의 폭을 어렵게 하기로 하는 걸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외로운 길입니다.”


⑮최소한의 공통성도 없는 국가와 사회는

-2012년 경향신문 인터뷰 때 “1980년대 한국 사회가 정치적인 것에 대한 파토스(열정)로 충만한 시대였다면 2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아파시(무관심)가 지배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후 10여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지배적이거나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요.

“이제 오늘날에는 ‘지배적인 것’으로 사회를 분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기도 했고, 이질적인 차이들이 더 분산적으로 구축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공통성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긍정적 의미의 차이화도 있지만 통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통의 토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어쩌면 이건 제가 20년전과 달리, 지금은 지방에서 한국 사회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과 비서울 지역은 이제 하나의 공통된 토대가 없고, 한 국가 내에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로 나뉘어 있는 것만 같은, 상이한 권역(region)에 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면에서. 이런 상황에서 현재 급속도로 추진중이 지방 광역화는 그나마 존재하던 지역의 공통 기반을 완벽하게 파괴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 초토화 위에, 어떤 공통성을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의 공통성이 없는 상황에서 사회나 국가는 지속가능한 것인가? 다소 비관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 2023년 인문학 콘서트 때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가 여기에, 인간 너머의 비/인간학 젠더·어펙트 연구’라는 제목의 강연도 하셨는데요. 이후 2년 동안 인공지능(AI)이 더 급속하게 발전했는데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감정이랑 어펙트를 꼭 구별해야 되냐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개념을 구별하는 것에 대한 찬반 문제를 넘어서 개념의 규정성이 좀 다른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감정은 아무래도 인간 중심으로 개념화가 된 거니까요. 예를 들면 우리가 AI도 감정이 있냐라고 묻잖아요. 또 옛날에 피규어랑 같이 사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피규어라는 대상과 애착 관계를 맺고 애착의 감정을 갖는 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라는 범주 자체가 주체든 대상이든 인간이나 생명 유기체를 대상으로 하잖아요. 어펙트를 인간이나 생명체를 중심으로 봐야 된다는 연구도 있지만 어펙트 자체는 훨씬 더 확장되거든요. 예를 들면 정동적 사물이라는 개념의 사례가 고흐의 신발 같은 거죠. 그림 속 신발이지만 사람들이 보면서 그 안에 뭔가가 부글거리고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어펙트는 꼭 인간과 인간이나 생명 작용을 하는 존재들끼리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AI가 언젠가는 인간의 감정 반응도 배울 것이라고 하지만 이론으로 보면 그것은 어펙트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논의는 일본에서는 감성과학연구 분야에서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정 반응 로봇 페퍼라고 일본에서 상용화됐거든요. 감정이 반응하도록 설계했는데, 그게 실패했어요. 제가 히로시마에 갔을 때 숙소 호텔에서도 페퍼가 접객했거든요. 사람들이 인간 노동자한테도 나쁜 말 하고 욕하고 하잖아요. 페퍼는 감정에 반응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그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일종의 알 수 없는 오작동을 일으켰어요. 스스로 멈추거나, 알 수 없는 상태로 스스로 고장 내버린다고 해서 로봇 자살이라고까지 불렀어요. 그래서 폐기됐어요. 상용화가 중단됐죠. 최근 본 일본 학자 한 논문에서 페퍼는 왜 실패했나를 다루어요. 로봇 자살이 감정 반응인가를 연구하다가 감정은 아니지만 무언가로 촉발되는 게 있다, 그 상태를 어펙트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에요. 페퍼의 실패 사례로 어펙트 연구를 로봇 과학이랑 급속도로 접목할 수가 있었다는 연구 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로봇 개발에 관해서 관심을 가졌어요. 일본은 감성과학이라고 해서 로봇 공학 안에서 감정 그다음에 정동 연구가 활발합니다. 한국에서는 AI만 맨날 얘기하면서 인문학에 대해선 없는 학문 취급하잖아요. (문화콘텐츠처럼) 기술적인 발전도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건 일본의 사례를 봐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 2023년 논문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도 내셨는데, 최근 대중문화. 문학 트렌드 중에 주목하는 게 있다면요.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때 문화 기반 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더라고요. 전체적인 패러다임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화 연구자들은 대형 자본 때문에 케이 컬처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라는 얘기는 하거든요. 콘텐츠의 질적인 차원이나 미학적인 차원이 스테레오 타입화 돼서 사람들이 식상하는 단계가 된 거죠. 최근 한국에서 오히려 타이완 콘텐츠가 트렌드가 되고 있는 현상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십여년 전에 나온 타이완 작품이 여러 편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어서 크게 히트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2025)가 개봉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영화가 아니라 원작인 십년 전 작품 <먼 훗날 우리>(2018)가 엄청나게 화제가 되어서, 다시보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사실 타이완은 원래 한류에 대한 열망이 크고, 타이완 드라마를 보면 따라잡고 싶어 하는 문화 콘텐츠 모델을 한국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해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한국에서 타이완 문화에 대한 호응이 크게 일어났죠. 지난해 서울 국제도서전 주빈이었고요, ‘타이완 감성’이 국제도서전 토픽이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몇몇 한국 영화들도 타이완 영화 리메이크한 겁니다. 지난해 12월 타이완 국립 정치대학과 동아대 젠더·어펙트 연구소가 공동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그때도 한국에서 왜 타이완 붐이 일고 있는지 궁금해하더라고요. ‘타이완 감성이 뭐냐’고요. 타이완에서도 알 수 없는 ‘타이완 감성’이 한국에서 만들어져서 유행인 거죠. 넷플릭스에서 성공한 한국 작품들은 <오징어 게임>이나 <글로리>도 그렇고 폭력적이잖아요. 넷플릭스 콘텐츠 자체가 폭력의 수위가 높은데, 성공하니까 계속 그런 작품을 만들다가 이제 지친 거죠. 피바다 같은 게 동어반복되니 안 보게 되죠. 타이완 콘텐츠도 호러나 공포 장르가 많지만, 주류는 비현실적인 사랑이나 순정 같은 것들이에요. 한국 문화콘텐츠는 스토리텔링 즉 서사력이 고갈됐어요. 우리는 모두 문화 콘텐츠 얘기하면서 문화를, 서사를 쓸 수 있는 학과는 다 구조조정을 해버렸잖아요. 경남 지역에 국문과, 문창과 있는 데가 동아대를 비롯해 몇 개 없어요. 그러니까 재생산이 안 되는 거죠. 요즘 극장 위기를 얘기하는데 그건 꼭 OTT 때문이 아니라 한국 콘텐츠가 너무 지겨운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충성도가 높잖아요. 한국 영화를 본다는 게 전통이 길거든요. 일제강점기에도 그랬어요. 일제 시기 조선영화를 ‘고멘나 에가’(못 만들어 죄송합니다)라고도 불렀지만 그런데도 조선 관객들은 조선 영화를 봐줬어요. 이제 지친 거죠. 일본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일본에도 막 잔인한 게 많지만, 공익적인 것도 많아요. 일본 드라마는 과도하게 건전하다할 정도죠. 일본 드라마가 포기하지 않는, 그러니까 미디어가 포기하지 않는 공익성이 한국에 없다고 보거든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일본 드라마 중 하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동성 커플이 결혼은 못 해도 생활 동반자로 법적 등록을 해서 똑같은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다뤄요. 그 제도를 이 드라마를 보면 다 알 수가 있어요. 한국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죠.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있게 즐기면서 정보를 얻고 하는 거죠. 노동 조건을 다루는 드라마도 많잖아요. 근무시간 초과하면 왜 야근하면 안 되고 하는 내용을 다루고요. 일본은 텔레비전 예능 같은 데도 아날로그로 종이에다 적어서 알려주잖아요. 그 공익성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그게 장기적인 경쟁력이 됐잖아요.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녀 노릇이나 하지 공익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아요. 일본은 노동 조건이 나쁘다고 해도 그 노동 관리에 대한 드라마도 되게 많습니다.”

- 비정규직일 때 트럭 여러 대 분량의 책을 버렸다는 글을 봤는데요.

“개인적인 고난을 강조하려고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비정규직 문제나 정규직 채용 과정 등에 대해서 이야기의 단초가 되면 좋겠다 싶어서 거론한 사례였습니다. ‘책을 버린다’는 상징적 결단이어서 실제로 공부를 그만두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하실 터라, 제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정규직 채용과정이 그다지 투명하지 않고, 제가 정규직 채용에 도전하던 때는 그런 인식조차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제적으로 학계가 운영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도제 시스템 내부가 될 수 없었기에, 채용공고가 나온 대학에 다 지원했는데, 그게 아마 학계 시스템을 부정하는 태도로 누군가에게는 보인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이제 ‘한국에서는 취직 못 한다’고 여러 형태로 걱정 어린 압박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더 이상 지원할 대학도 없었구요. 대학원 과정 내내 주로 외부 학술운동 단체에서 연구를 해서, 대학 제도에 큰 기대를 안했지만, 막상 제도와 부대낀 결과 막다른 골목에서 더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갈무리, 2012) 저자 소개 중 “실험은 실패로 귀결된다. 그게 현실이다. 다만 그 현실에 지지 않을 힘을 잃지 않기를 스스로 바랄 뿐이다. 그런 바람으로 연구모임을 지속하고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아프콤이 참 어려울 때였습니다. 당시 대학 내에서 몸 담고 있던 학과도 구조조정 되던 상황이었구요. 서울에 있을 때는,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만, (대안 인문학 운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과 네트워킹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은 안 해 봤거든요. 부산에 와서 대안 인문학 운동을 하는데, 부산에 아무 연고도 없고, 교수이다 보니까, 확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 자체가 한계에 봉착한 듯했어요. 여러 어려움 속에서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 일과 관련해 불이익을 받기도 하고요. 우리 스스로 답을 찾기 좀 어려웠고요. 부산에서 같이 하는 멤버들이 굉장히 힘들고 지쳐 했거든요. 돈을 막 모아서 1년에 두 번 방학 때마다 일본에 가서 조금 힘을 얻고는 했어요. 일본의 대안 인문학 운동 단체들은 어떻게 난관을 헤치고 나가는지 사례를 보러 간 거죠. 여러 단체를 많이 만나러 다녔어요. 우리 어려움을 들여다보는 걸 잠시 멈추고, 바깥에서 우리 방향을 찾으려고 한 거죠. 일본이든 어디든 그렇게 잘 되는 데는 없어요. 실패해서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막 깨지기도 하고요. 젠트리피케이션도 생겨 공간이 없어지기도 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요. 실패로 달라지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더라고요. 실패하면서 막 진짜 아등바등하고, 몸이 변할 정도로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게요. 다른 것이 되는 열정이 생기는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했어요.”


(16)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는 글쓰기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공부에 시간을 쏟으시는 듯한데요.

“제가 비정규직 때 미래가 막연해서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 그냥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하자고 했죠. 내가 공부에 여한이 없게 하려면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공부에 쏟으려고 했어요. 제 연구 분야 특성상 자료를 읽어야 되고 그다음 외국어 공부, 이론 공부도 해야 되잖아요. 하루에 일정 시간을 꼭 자료 읽기, 외국어 공부, 이론 공부를 시간을 정해서 하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오래 해왔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비정규직의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한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취업 투쟁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한국에선 안 된다는 말만 듣고, 해외 가는 것도 마음처럼 쉽게 되지가 않고요. 해외에서 취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이러다 진짜 무슨 일 나겠다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어요. 그때 내가 딱 10년간은 더 공부해서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제가 그때 집에 항상 쌀이랑 김치를 쟁여놓고 있었어요.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게요. 최고은씨 같은 일도 있었잖아요. 10년을 굶어 죽지 않고, 내가 버틴다고 각오했죠. 단행본 세 권 쓰는 계획을 세웠어요. 10년에 책 3권을 쓰기 위한 계획을 일년, 한달, 한주, 하루로 나눠 계획을 세운 뒤 그냥 매일 매일 열심히 해나갔습니다.”

- 친구들은요.

“친구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이제 흔히 우리 어디 온천 여행 가자 일본에 어디 식도랑 여행 가자 이런 친구는 없어요. 또 그런 즐거움을 추구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주말에도 자는 거 빼고는 오로지 공부했죠. 제가 비정규직 때 별명이 ‘여고괴담’이었어요. 24시간 365일 밤에 학교에 출몰한다고요. 지금 오후에도 학교에 사람이 없잖아요. 토요일, 일요일엔 아무도 없어요. 지금도 저녁에 연구실로 배달시키면, ‘배달기사님이 ‘이 건물에 아무도 없는데, 안 무서우세요?‘라고 묻곤 했어요.(웃음)”

-준비 중인 논문이나 책은 무엇인지요.

“헤이트 스피치 비교 연구를 2014년부터 했는데 단행본을 아직 내지를 못했어요. 관심 보인 출판사가 있어 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부락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부락차별과 부락 해방운동, 그리고 부락해방 페미니즘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 페미니즘은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 말고는 거의 잘 모르시거든요. 이 번역을 하게 된 건 우리가 젠더·어펙트 연구하면서 정착민 식민주의라든가 지정학적 친밀성 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동이 내면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지정학적인 대륙 간 권력관계의 산물이라고 하는 연구로 방향을 이어가면서, 지정학적인 역학 관계 속에서 페미니즘 이론 틀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지방 소멸론이 정착민 식민주의의 하나이자 인종 차별주의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의 지방뿐만이 아니라 이 지정학적인 역학관계 속에서의 대안 지역 커뮤니티를 정립하려고 하는데, 그 비교 사례가 ‘부락 페미니즘’에 잘 나와 있습니다.”

- 일어까지 하시면, 영어, 불어, 중국어 4개 외국어를 하시나요.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외국어 공부를 상대적으로 재미있고 관심 있게 했죠 일어나 중국어는 연구 때문에 열심히 배운 거죠.”

- 사전 질문지에만 6장가량의 답변을 써서 주셨어요. 지금도 추가로 메모를 해오셨는데요.

“글 쓰는 게 결국은 되게 지루한 노동이잖아요.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하니까요. 지속적인 노동을 견디도록 단련하는 거죠. 운동이랑 똑같아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하니까요. 운동도 매일 1시간 달리면 그다음 1시간 반 달리면서 운동량을 높이듯 글쓰기나 책 읽기 역량을 더 키우려면 점점 더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도 결국은 글쓰기니깐요. 나름대로 단련해 온 특화된 것이죠.”


권명아 교수. 김종목 기자

- 오늘 여러 차례 예상과 다른 답변을 들었습니다. 근원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고드시는 듯합니다.


“연구자들이라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다 문제다’라는 건 비판이 아니고, ‘도토리 키재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들을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연구의 몫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안을 미디어가 다루거나, 대중적인 논의에서는 뭉뚱그려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것과 연구는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게 바로 인문학이나 학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선명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하는 거라면 학문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 건 챗gpt가 더 잘하겠죠.”




김종목 기자
==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 젠더사로 보는 전시 동원 체제 | 카이로스총서 119
권명아 (지은이)갈무리2025-11-28
공유하기












이전
다음




























미리보기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권명아 저자 강연

Play






책소개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살펴보면 표면적으로는 집단주의의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지만 그 집단이란 적대와 분열에 의해 사회구성원을 각각의 게토에 배치하는 증오 정치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증오의 수위는 일부 박탈된 집단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집단에서 높아진다.

이 책은 만주사변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일제 말기의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주요 대상으로 하면서 이 체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 시대의 경험이 법이나 제도, ‘사회통념’이나 집단 무의식, 재현의 정치와 감정과 정동 등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변용되는 과정을 살핀다.


목차


개정증보판 서문 8

1부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 젠더 정치 ― 논쟁과 논점들

1장 역사상을 둘러싼 투쟁 ― 젠더사의 시각과 파시즘 이론 22
1. 일제 말기, 파시즘, 젠더 정치와 인종차별주의 비판을 둘러싼 논란들 22
2. 파시즘의 정치학과 젠더 ― 1930년대 이후 논의의 역사적 전개 26
3. 한국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문제제기 ― 젠더사의 시각과 질문 45

2장 파시즘 경험과 유산을 둘러싼 논쟁 비판 57
1. ‘일상’은 동의의 공간인가 57
2. 사회의 준내전 체제화 ― 일제 말기와 해방 후의 연속성 71
3. 파시즘의 유산과 ‘골칫덩어리들’ ― 난센스의 의미 75
4 .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 ― 파시즘의 마지노선, 자본주의와 근대적 규율화 96
5. 대중은 누구인가 ― 주체 개념의 한계와 파시즘적 주체화의 문제 98

3장 이론적 실천과 소비의 경계 ― ‘문학 속의 파시즘’ 연구와 대중독재론의 문제 100
1. 임지현은 누구와 싸우는가 ― 탈신화화와 이론의 경계 100
2. 이론의 소비와 알리바이들 103
(1) 이론의 소비와 제도화 103
(2) 돌림병, 유행병, 제도화된 주체들의 자기방어 기제들 106
3. 제도화된 민중주의의 담론적 무능력과 자기 정당화 112
4 . 다문화주의, 차이의 정치학과 차이의 마케팅의 경계에서 115
5. 탈신화화의 모호함과 제도화의 명확함 119

2부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경험과 유산

1장 총후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 ― 황민화와 여성 정체성 집단 간의 위계적 차이화의 과정 122
1. 한국 사회의 젠더 정치의 기원을 고찰하기 위해 122
2. 전선과 가정, 그리고 ‘국민’의 안과 밖 124
3. 총력전 체제와 모성 이데올로기 134
4. 가족국가주의의 확대와 정치 단위로서의 가정의 구성 142
5. 총후부인과 스파이 ― 무능력자와 ‘정치적 주체’ 사이의 균열 146

2장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 인종주의와 젠더 공포 154
1. ‘좋은 일본인 되기’의 엔진으로서의 스파이 담론 154
2.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 ― ‘대동아’의 신체와 여성 157
3. 국민방첩과 스파이 담론 ― 잠재된 적과 현실의 가상화 164
4. 스파이 담론과 ‘좋은 일본인 되기’ ― 가상의 현실화 170
5. 좋은 일본인 되기 ― 좋은 일본인으로 죽거나 나쁜 일본인으로 죽거나 180

3장 황민화와 여성 정체성 집단 간의 지역적·계급적 차이화의 역사 ― 엘리트 여성과 비엘리트 여성의 파시즘 체제 경험의 차이 183
1. 파시즘 체제와 문학, 여성, 국가 183
2. 파시즘적 주체화와 젠더 정치 ― 조직, 교육, 경험과 여성 정체성 189
3. 식민지 경험과 여성 정체성 209

3부 모던보이 비판과 애국 청년의 구성 ― 전위와 퇴폐 분자 사이에서

1장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 220
1. 청년 담론의 역사화와 파시즘적 주체화의 문제 220
2.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에서 222
3. 청년이 되는 것과 ‘일본인’이 되는 것
― 선택과 신분, 황민화 기획과 자발성의 문제 230

2장 남성 정체성 집단 간의 적대적 위계화 ― 모던보이 비판과 ‘애국 청년’의 구성 234
1. 혁신의 이념과 전위로서의 청년 234
2. 청년의 정체성과 모던보이 비판 241

3장 참가의 환상은 측정 가능한가 263
1. 전시 동원 체제와 언어 공간의 재편 263
(1) 국책의 이념과 언어 공간의 현실 사이의 간극 263
(2) 언어 공간의 재편 ― 연설 공간, 문자 미디어, 라디오 269
2. 균열로서의 내선일체와 ‘언어’ 275
3. 전시 동원 체제와 미디어의 독본화 ― 입신출세주의와 ‘대중’의 황민화 286
4. 전시 독본 미디어와 언어 공간 292
5. ‘참가의 환상’은 측정 가능한가? 299

4부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 경쟁, 살아남기라는 ‘도덕’으로 남겨진 파시즘의 유산

1장 ‘네이티브’의 위치와 대역본의 세계 ― 제국들의 사이에서, 식민지들의 사이에서 304
1. 영일 대역본을 보는 조선인 학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304
2. 재현의 권력, 재현의 정치 309
3. “깜둥이 나의 여인아” ― 인종주의의 시학화와 제국의 판타지 313
4. 확장되는 영토, 포섭·배제되는 주민들 ― 남방의 자원과 원주민, 그리고 ‘화교 경제’ 327
5. 남방 관심의 개관 ― 관심의 복합성, 제국의 판타지에서 일상적 이해관계까지 332
6. ‘땅의 아들’로서의 ‘원주민’과 피식민 주체성의 문제 333

2장 ‘남방’, 중국, 화교와의 경쟁, 식민지 ‘사이’의 경쟁이 남긴 것 338
1. 대동아공영의 이념과 가족국가주의 ― 인종과 젠더, 그리고 민족 338
2. 신생 식민지의 출현과 피식민 주체의 불안 ― 제국의 시선과 식민지의 시선 사이에서 346
(1) 대동아 기획과 아시아의 위치 변화 346
(2) ‘전선’과 ‘시장’으로서의 남방과 개척자로서의 조선 351
(3) 식민지 토인으로서의 남방과 문명 기획자로서의 조선 359
3. 피식민 주체의 불안과 인종 공포 371

3장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 다시 ‘최소한의 도덕’을 위하여 373
1. 재현의 스펙터클, 관객과 연기자 ― 파시즘과 ‘최소한의 도덕’ 373
2. 잉여로서의 남방 담론과 과잉된 응답의 역설 381
3. 남방이 주는 실감의 두 차원 387
4. 남방 선전의 특성과 식민 지로서의 종족지 398
5.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409
6. 독일 파시즘의 유태인과 일본 파시즘의 남방 원주민 ― 기술적·행정적 조치의 대상으로 변용된 적군과 증오 없는 전쟁 417

5부 중국적인 것의 정동화와 조선적인 것의 인종화 ― 전시 동원 체제 연구와 전파매개적 신체 연구

1장 중국 정동과 전파매개적 신체 연구 422
1. 중국적인 것과 정동 422
2. 전시 동원 체제와 중국적인 것의 변화 423
3. 전파매개적 신체와 중국적인 것 429

2장 조선적인 것의 중국 지향성과 중국의 정동화 ― 배일적 태도와 폐풍의 통제 432
1. 감정과 정서의 체계로서의 조선적인 것과 중국 지향성 432
2. 배일적 태도와 중국적인 것 436

3장 조선의 기운과 공기로서의 중국 ― 분발심 없는 종족집단과 중국적인 것의 전파매개성 440
1. 전시 동원 체제의 인종주의와 조선의 소중화 의식 440
2. 실체성을 상실한 전파매개물로서의 중국과 그 파생물로서의 조선 448
3. 하위지각적 힘 혹은 잠재성으로서의 중국적인 것 449

4장 역사적 파시즘 체제와 젠더·어펙트 연구의 과제들 ― 정동 연구를 통한 정보 이론, 인종 과학 연구를 위하여 454
1. 중국 정동과 ‘반중 정서’ 454
2. 소수자 연구의 국가 감상주의 프로젝트 비판과 중국 정동 연구 459

참고문헌 463
찾아보기 492
접기


책속에서


P. 10 한국에서 파시즘은 집단주의의 일환으로만 논의되는 경향이 과도하다. 그러나 파시즘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집단주의적 경향보다는 경쟁 체제, 증오심, 박탈된 자의 원한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특정한 면모와 더 관련이 깊다. 일제 말기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파시즘 체제에 합류하게 되는 내적 요인들은 매우 복잡하고 이질적이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남을 딛고 위로 올라서려는 욕망의 문제이기도 했다.
― 개정증보판 서문 접기
P. 41 파시즘의 정치학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른바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의 수호를 주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가족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집단의 모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질적인 것의 뒤섞임, 이질성과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이상적인 국가란 바로 이러한 전통적 가족의 모델 위에서 성립된다. 역으로 파시즘의 정치학에서 ‘가족’은 언제나 몰락에 직면해 있고, 가족을 재구축하는 것만이 지금껏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근본적 혁명’의 꿈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 1부 1장 역사상을 둘러싼 투쟁 접기
P. 76 전시 동원 체제에 이르면 조선에서는 여가와 취미의 공간이 파시즘 통제를 통해서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그 결과 ‘술, 담배, 마작’으로 상징되는 최소한의 식도락 문화 외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존재하던 기존의 문화 공간조차 사라져 문화의 황폐화와 협소화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느낌 역시 개별 집단에 따라서 이전 시대에 어떤 문화를 향유했는지가 다르고 상실감의 대상과 성격도 판이했다.
― 1부 2장 파시즘 경험과 유산을 둘러싼 논쟁 비판 접기
P. 116 홍콩과 타이완에서 다문화주의가 급진적 민주주의와 결합되는 중요한 요인은 이 지역의 정치적, 인종적 상황이다. 이 지역에서 급진적 민주주의는 중국과의 갈등적 관계의 정치적 반영이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맑스주의는 중국 공산당과 분리 불가능하며, 신좌파의 모색 역시 홍콩의 노동자 계급과, 타이완의 분리 독립파 및 소수 인종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소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 1부 3장 이론적 실천과 소비의 경계 접기
P. 147 총후부인 담론에서 ‘가정’의 이념 쇄신, 생활 개선 운동, 생활 예절 등이 강조되는 것은 정치의 기초 단위로 가정이 재구성되고 ‘부인’이 조직화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전시 체제에서의 생활 개선이나 부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들은 <애국부인회>의 총후 활동 내용을 반영한다. 생활 예절에 대한 강조는 내지와 생활을 일체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 2부 1장 총후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 접기
P. 163 여자 스파이단에 대한 신화 역시 파시즘이 스스로 여성화하면서 사회의 오염, 침투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강건한 사회를 구축하는 남성성에 대해 강조함과 더불어 스스로 약자/여성의 위치와 동일화함으로써 이러한 절멸의 기획을 정당화하는 모순된 정치 이념의 산물이다.
― 2부 2장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접기
P. 227 청년 담론은 ‘청년 일본’에서 ‘청년 조선’, 식민지 파시즘화를 수행하는 최전선에 배치되는 황군과 청년단에 이르기까지 ‘청년’을 사회의 최선두에 위치시킴으로써 대중을 새롭게 배치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청년 담론에서 청년이 ‘사회의 선두’로 배치되지만 그 선두의 자리는 ‘제국’의 지휘와 통합에 의해서만 보증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대중 장악, 혹은 ‘민중’에 대한 ‘엘리트’의 계몽이라는 근대주의의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파시즘적으로 전유한 전형적인 형식이다.
― 3부 1장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 접기
P. 341 이른바 대동아의 구상이란 표면에 놓인 동화의 수사학에도 불구하고(물론 이 동화는 ‘문명화의 수준’에 따른 위계화와 같이 배타적인 적대와 차별화의 다른 이름이다) 기본적으로 일본과 아시아 여러 국가들 사이의 배타적인 적대와 서열화에 의해 지탱된다. 이는 일본을 동아시아 가족들의 수장으로 위치 짓고 아시아 각국을 ‘제국의 아이들’로 서열화하는 가족국가주의적 담론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 4부 2장 ‘남방’, 중국, 화교와의 경쟁, 식민지 ‘사이’의 경쟁이 남긴 것 접기
P. 451 일본은 조선을 중국의 영향에서 떼어내고 아시아에서 중국이 지녔던 영도적 지위를 일본이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선전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중국이 맡았던 아시아의 지도적 지위를 이제는 일본이 맡게 되었다는 논의는 전형적이다.
― 5부 3장 조선의 기운과 공기로서의 중국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2025년 12월 12일자 '책과 생각'



저자 및 역자소개
권명아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대학 연구소를 대안 제도로 정립하고자 하는 실험으로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2018년 설립, 현재 소장을 맡고 있다. 2011년 대안연구모임 <아프꼼>을 만들었고, 갈무리 출판사와의 협업으로 공동번역서 『정동 연구 지도제작』(2025) 등 지금까지 총 여섯 종의 책을 출간했다. 역사적 파시즘 연구에서 시작하여 헤이트스피치 비교 연구를 지속해 왔고, 소수자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펙트 이론을 재구성한 젠더·어펙트 이론을 제안하여 젠더·어펙트 총서 6권 『대안적 연결체의 테크놀로지』(산지니, 2025) 등 지난 6년간 총서를 발행했다. 또 지방소멸론에 대해 다각도로 비판적인 연구 방법을 모색하고 제안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일본, 타이완, 중국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지방소멸론이 어떻게 정착민 식민주의를 재구성하는 담론적, 정책적, 정동적 기반이 되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젠더·어펙트 연구회>를 구성, 함께 세미나와 번역, 출간 등을 지속하면서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00), 『맞장뜨는 여자들』(2001), 『문학의 광기』(2002), 『탕아들의 자서전 ― 가족 로망스의 안과 밖』(2008),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 ― 탈식민화와 재식민화의 경계』(2009),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2012),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2013),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2019),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 젠더사로 보는 전시 동원 체제』(2025) 등이 있으며 여러 권의 공저서, 편저서가 있다. 접기

수상 : 2001년 젊은평론가상
최근작 :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총 25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갈무리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비인간 권력>,<급진적 환대>,<홀란트 단체초상화>등 총 308종
대표분야 : 여성학/젠더 10위 (브랜드 지수 39,81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주요 대상으로 하면서 이 시대의 경험이 체제가 사라진 이후에 법이나 제도, ‘사회통념’이나 집단 무의식, 재현의 정치와 감정과 정동 등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변용되는 과정을 살핀다. 식민지 조선에서 파시즘의 시대는 젠더, 인종, 지역과 학력, 문맹의 정도, 연령과 세대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게 경험된다. 총후부인이라는 파시즘적 정체성은 신여성과 구여성을 적대하고 부정함으로써 구성되었다. 조선의 애국부인과 일본의 애국부인은 ‘자매’라는 ‘여성적 연대’의 어휘를 전유하여 일본 여성의 우위를 구축한다. 조선은 식민지로서 ‘아우’인 대만과 막 새로 진입한 만주 및 남방의 각 지역과 죽을힘을 다해 경쟁해야만 식민지로서의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파시즘 통치에서 ‘중국’은 제거해야 할 ‘암종’, 바이러스, 조선을 병들고 타락하게 하는 온상으로 여겨졌다. 적대의 반복적 수행만이 강요되는 체제에서도 빈틈과 파열의 공간들 역시 생성되었다. 이런 파열은 단지 주체의 의도나 의지의 산물만은 아니었고, 그런 점에서 정동적이고 물질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역사적 파시즘의 시대는 적대와 증오의 내면화 경험만 남긴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이탈하는 대안적 정동 생성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이 책에 따르면 파시즘은 젠더, 인종, 계급, 지역, 세대의 차이를 적대로 전유하는 감정 및 정동의 정치이며, 전시 동원 체제에서 조선은 일본, 중국, 남방, 다른 식민지와의 다층적 위계 속에서 파시즘화를 경험했다. 이 경험은 강제와 자발의 경계, 가족국가주의, 여성화 공포, 청년 주체화, 식민지 간 경쟁, 중국에 대한 정동적 적대 등으로 분기되며, 그 유산은 오늘 한국 사회에도 깊이 남아 있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 전시 동원 체제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 일제 말기, 암흑기 등으로 표현되는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역사적 파시즘 체제였다. 전 세계가 파시즘 3국 동맹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반파시즘 연합국으로 나뉘어져 파시즘과 반파시즘이 세계 체제를 구축하고 재구축하는 근간이 되었던 시대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이 시대를 파시즘 연구에서는 역사적 파시즘(Historical Fascism) 시대로 규정한다.
일제 말기의 전시 동원 체제는 일본 제국이 미국, 영국에 대항한 장기전과 총력전에 대비하여 일본, 조선, 대만에 대한 체제 전환을 강제하는 과정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만주나 남방 열도 등 새로운 식민지들은 ‘일본 제국’의 ‘지도’ 속에 새롭게 편입되었다. 이는 국가가 주민의 노동, 재생산, 이동, 감정까지 통제하며 전장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이었고, 청년, 여성, 아동을 각각 ‘황민’으로 재규정해 전쟁 기계의 부속으로 배치하는 총체적 동원 체제였다.
이 책에 따르면 젠더, 인종, 세대, 지역, 계급의 차이를 적대의 기준으로 바꾸는 것이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핵심이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이 적대 구조는 일상 깊숙이 스며든다. 전쟁은 일본 제국의 적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조선인들 내부에서 수행되어야만 했다. 젠더와 세대, 계급과 인종, 지역과 연령에 따라 촘촘하게 구획된 강제적인 정체성 수행은 이러한 적대를 현실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적대는 ‘안과 바깥’ 모두를 향해 고조되었다.
저자는 201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아래 온라인 환경 속에서 증오정치가 강화되면서, 인종, 젠더, 세대의 차이가 적대로 번역되는 구조가 다시 나타났다고 본다. 이 책은 과거 파시즘 체제가 만든 감정 구조가 오늘의 혐오정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내며, 역사적 파시즘 연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보여 준다.

파시즘 체제에 대한 지지와 동의라는 환상
파시즘 체제나 폭력에 대한 대중의 ‘지지’, ‘동의’ 문제는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파시즘 체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회 내부를 촘촘하게 분할하여 적대적으로 재배치하고, 위로부터 부과된 정체성 역할을 강제로 수행하도록 하는 과정은 이른바 강제와 자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은 일종의 강제된 자발성이자, 개별 주체의 일상적 수행이 자율이나 자발로 설명할 수 없는 포획된 상태로 변형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전시 동원 체제에서 식민지 조선은, 위로부터 부과된 정체성 정치가 일상화된 준(準)내전적 공간으로 재편되었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친일협력 영화 <지원병>(1941)의 서사는 중년층인 조선인 부르주아와 청년세대 조선인을 갈등과 적대의 구도로 두고 계급 투쟁과 세대 투쟁의 서사를 전유한다. 그러면서 지원병을 조선 청년의 유일한 희망 직종이자 타락한 조선에서의 탈출구로 그린다. 계급 투쟁과 세대 투쟁의 외관을 띤 이 ‘혁신’의 각본은 자발성을 포획하고, 강제를 자발성으로 전도하며, 식민주의적 노예화를 위험성이 크지만 미래를 걸어볼 만한 ‘선택’으로 만든다. 저자는 이 영화에 대해 분석하면서 인물들의 무표정과 무감정이 남기는 해석 불가능한 잉여에 주목한다.

파시즘의 젠더 정치
조선을 전시 동원 체제로 재편성하려는 일본 제국과 총독부의 정책은 천황제 파시즘에 근거한 가족국가주의의 틀을 따라 진행되었다. 조선인은 ‘황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청년, 총후 부인, 소국민이라는 새로운 주체 위치로 배치되었다. 이때 총후 부인은 ‘여성’에 관한 담론이지만 본질적으로 후방이라는 총력전하 사회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과 관련되었다. 즉 남성들이 전장에 나간 상태에서 후방의 노동력, 재생산, 방첩, 방공, 물자 동원 등과 관련되었다.

신여성의 몰락
최근 전 세계 극우정치의 리더 자리에 여성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면서 파시즘과 여성에 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우선 여성 그 자체가 서로 다른 차이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이 젠더사 연구의 출발점이다. 일제시기 ‘여성’ 역시 마찬가지여서 당대 여성은 신여성, 구여성이라는 다른 명명 체계로 구별되었고 인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여성은 사회주의 여성/부르주아 여성 등으로 다시 구분되었다. 이처럼 여성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는 파시즘의 젠더 정치에서 적대의 준거로 전유되었다.
여기서 신여성의 몰락이라는 인식, 감각, 선동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윤규섭은 체호프의 「붉은 양말」을 원용한 글(「현대여성의 위치」, 『여성』, 1940년 10월)에서 신여성을 “반(半) 남자”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는 여성적 정체성의 대명사로 명명했다. 파시즘의 젠더 정치는 약자의 정치학을 표방하면서 약자의 상실감과 권력 박탈에 대한 공포를 주로 자극하고 ‘약자’를 새로운 주체로 구성한다. 조선에서 신여성은 ‘그간 많은 것을 얻은’ 집단으로, 구여성은 ‘그간 얻은 게 없는’ 여성 집단으로 위계화되었다. 즉 구여성은 여성 내부의 ‘약자’로 배치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 내부를 위계화하고 적대시키면서 신여성을 ‘기득권자’로 설정하고 신여성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공격이 진행된다. 반대로 ‘약자’인 구여성에게는 새로운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렇게 정체성 집단 내부에 위계를 재설정하고 적대를 강화하는 방식은 ‘총후 부인’의 정책과 담론,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총후부인과 스파이
총후부인은 이 위계 구조 위에서 탄생한 파시즘적 여성상이다. 일본 부인의 ‘명랑성’과 조선 구여성의 검소함을 결합한 이상적인 후방 주체로, 가정과 마을, 배급과 저축, 방공과 방첩까지 책임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조선 여성의 법적 지위는 일본과 동등하지 않았고, 더구나 처(妻)는 법적 무능력자에 해당했다. 그러나 총후부인 담론에서는 이런 법적 행위무능력자인 조선의 처(妻)가 공적 행위 능력을 부여받는 것처럼 선전된다. 이런 ‘참가의 환상’은 여성들에게 참여와 주체성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국가의 전쟁 기계에 편입되는 것이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1937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스파이 담론에서 스파이는 여성의 특정한 정체성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1935년 2월 29일 나치스는 두 명의 여성을 스파이 혐의로 단두대로 보내고 그 머리를 광장에 걸어놓았다. 1937년 이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는 글은 이 여성들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방탕한 생활로 인해 적에게 포섭되었다고 기술한다. 이처럼 특정한 여성 정체성이 적의 침투에 노출될 수 있는 약점으로 간주되면서 여성의 사회생활과 ‘사교’는 부정적인 의미로 폄하된다.
사회의 ‘문란’에 대한 공포는 사회의 ‘여성화’에 대한 공포와 맞물렸다. 1930년대 후반 조선에서 총후부인 담론이 ‘국가에 헌신하는 이상적 여성’을 만들었다면, 스파이 담론은 ‘통제되지 않은 위험한 여성’을 만들어내어 여성 내부의 위계와 적대를 강화했고, 두 담론은 함께 파시즘적 사회체를 재조직하는 핵심 장치가 되었다.

놀이로서의 증오
증오정치(파시즘)는 무시무시한 폭력만이 아니라, 쾌락 특히 즐거움과 재미를 동반한다. 나치와 일본 파시즘은 이런 즐거운 선전을 가장 핵심적인 ‘대중선동’ 논리로 내세웠다. 전시 동원 체제 조선에서 여자스파이단의 신화는 바로 이런 놀이로서의 증오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파이란 유행어이자 흥미로운 읽을거리이기도 했지만, 가상의 ‘소비’를 통해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를 현실화했다. 국제 스파이단이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스파이가 유행어로 등록된 그 시점에 이미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는 현실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일례로 이미 1932년 “괴상스러운 중국 미인”이라고 묘사된 여자 스파이에 대한 검거 소식이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데 이는 중일 전쟁 이후 본격화된 스파이 담론의 예고편이라 할 만하다. 오히려 전시 동원 체제 국민 방법 정책에서 스파이 담론은 흥미유발을 통해 적대적인 경계심을 내면화시켰고, 이는 적대와 공격성을 특징으로 하는 파시즘 정치가 ‘흥미’나 ‘재미’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유튜브 사이버 렉카들의 흥행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기 식민지 지식인의 남방을 향한 시선
‘암흑기’로 표상되는 전시 동원 체제에도 모범생들은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저자에 따르면 전시 동원 체제 조선의 청년 학생들은 ‘공부’의 자리를 지정받게 된다. 저자는 당시 연희전문 학생의 메모를 사례로 삼아 논의를 확장한다. 세계대전의 와중인 1942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영일 대역본에 남긴 자필 메모는 당대 청년 학생의 어떤 내면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저자는 “태평양 전쟁기의 조선 지식인의 심리는 영어와 일어가 상호 번역되는 세계, 그 세계를 학습하고 상호 번역의 원리를 학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자기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영어와 일어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바깥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의무와 열망이야말로,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내면이었고,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남방(오늘날의 동남아시아를 말한다)에 관한 관심이라고 분석한다.
남방 담론은 1938년을 전후로 급증하여, 1941년에서 1943년 사이에는 관련 담론이 조선의 매체를 장악할 정도로 넘쳐나게 된다. 남방 담론은 향후의 전쟁의 승패를 예상하고 전망하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지만, 주된 형식은 종족지와 시였다. 조선에서 생산된 남방 종족지는 오래된 식민지로서의 조선의 위기감과 불안감,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남방에 대한 기대와 선망이 복잡하게 뒤얽혀 만들어졌다.
총독부는 남방에 대한 관심을 주로 일본의 대동아 성전의 혁혁한 전과를 조선인들이 인지하는 정도의 선으로 제한했고 남방 자원이나 남방 건설에 대한 조선의 관심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의 남방에 대한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남방 점령은 중국,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 집단, 서구의 제국주의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뿐 아니라, 기존의 일제의 식민지였던 타이완과 조선, 만주국 등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충돌하는 이해관계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조선의 담론 공간을 들끓게 만들었다. 동시에 남방이라는 새로운 점령지가 부상하면서 조선이 맡을 수도 있을 미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담론 곳곳에서 확인되며 이는 남방을 매개로 아시아에서의 조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이 고양되는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중국은 ‘공기’이자 ‘위험’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 일본 제국에게 중국적인 것은 도처에 편재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제국을 안으로부터 오염시키는 미지의 병균과 같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단지 비유가 아니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일본 제국에게 중국적인 것은 외부의 적이지만 온전히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잠재된 것이다. 중국적인 것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인지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모든 경계를 구성하는 인자가 되었다.
중국적인 것은 조선적인 것에 병균처럼 들러붙어 있고, 일본 제국에 대한 반감을 독처럼 퍼트리고, 일본 제국이라는 성스러운 신체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중국적인 것은 박멸하려 해도 다시 살아나는 병균이고 숨만 쉬어도 감염되는 바이러스이며, 공기 그 자체이기도 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전파매개적 신체성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날 정동이라고 부르는 개념과 가장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전파매개적 신체성을 이런 식으로 규정하고 박멸할 대상으로 보는 방식은 2025년 현재에도 법적 개념으로 한국 사회에 현존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전시 동원 체제 아래에서는 조선을 중국의 파생물이나 혼종물로 보는 담론이 늘어난다. 조선적인 것은 중국적인 것을 향한 지향성의 운동으로 고유성이나 원본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은 “지나적 조선 문화”로 규정되기도 했다. 중국적인 것은 상해 조계, 스파이, 폐풍의 온상으로 표상되며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분열된 신체로 그려진다. 그러나 중국을 단지 병리적 전파매개물로만 호명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중국적인 것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하위지각적 힘’으로 조선의 감각과 상상력을 감싼다. 일본 제국은 조선을 중국의 영향에서 떼놓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사상 통제와 풍속 통제를 통해 ‘정보’와 ‘비정보’를 가르는 검열 체제는 결국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정동의 정치였으며, 그 속에서 중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함께 인종화되고 분할되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접기


==


==


==

'권명아' 검색 결과 총 27
1.
2.
3.
4.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5.
6.
  • [국내도서]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  Choice
  • 권명아 (지은이) | 책세상 | 2013년 5월
  • 23,000원 → 20,700원 (10%할인), 마일리지 1,150
  • 8.0 (2) | 세일즈포인트 : 366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7.
  • [국내도서]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 권명아 (지은이) | 책세상 | 2005년 8월
  • 25,000원 → 22,500원 (10%할인), 마일리지 1,250
  • 8.0 (2) | 세일즈포인트 : 325
8.
9.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0.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1.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2.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13.
14.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5.
16.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17.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6일 출고 
18.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9.
20.
21.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2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9일 출고 
23.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24.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25.
  • 통상 48시간 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