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金子文子 何が私をこうさせたか>, 하마노 사치(浜野佐知) 감독, 2025
이 영화는 2026년 2월 일본에서 개봉한 121분짜리 전기영화다. 주인공은 일본의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였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이며, 특히 박열과 함께 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죽기까지의 마지막 121일을 중심으로 한다. 감독 하마노 사치는 가네코를 단순히 <박열의 일본인 연인>으로 다루지 않고, 독립된 사상가이자 국가권력에 맞선 여성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 줄거리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어린 시절에는 법적 호적도 없는 <무적자(無籍者)> 상태였다. 가정에서도 안정된 보호를 받지 못했고, 9세 무렵 조선에 살던 친척 집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친척 집에서 심한 차별과 학대를 받았으며, 동시에 일본 식민지배 아래 조선인들이 겪는 차별을 직접 목격한다. 특히 1919년 3·1운동은 후미코에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자신을 학대한 일본인 가족과 식민지배를 당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함께 보면서, 개인적인 억압과 국가적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도쿄에서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여러 사상을 접한다. 기독교에서 사회주의로, 사회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 이동하고 궁극적으로는 허무주의적 사상에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박열을 만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는 동시에 사상적 동지가 된다.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해 활동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한다.
지진 직후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대규모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다. 이 혼란 속에서 박열과 가네코도 체포된다.
당국은 이들을 황태자 암살을 계획한 폭탄 음모 사건과 연결시키고 결국 <대역죄>를 적용한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단순히 자신들은 무죄라고 항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본 천황제와 국가권력 자체를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 재판을 일종의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바꾸었다.
1926년 3월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얼마 뒤 천황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가네코는 이 은사장을 찢어버린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판결한 국가로부터 다시 목숨을 <선물받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네코는 도치기 여자형무소에 수감된다. 국가권력은 그녀에게 천황의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의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거부한다.
영화는 이 마지막 121일 동안 가네코의 외부 행동보다 내적인 투쟁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1926년 7월 23일, 23세의 가네코 후미코는 독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공식 기록은 자살이다.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 이 기록을 따른다.
2.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 <박열의 여자>가 아닌 가네코 후미코
한국에서는 가네코 후미코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2017)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마노 사치는 바로 그 관점을 뒤집으려 한다.
『박열』에서는 자연스럽게 박열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가네코는 매우 강렬한 인물이지만 결국 박열과의 관계 속에서 등장한다.
반면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의 질문은 다르다.
<박열은 가네코에게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가네코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가?>
를 묻는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박열은 중요한 사람이지만 중심은 아니다. 영화의 진정한 상대역은 박열이 아니라 <국가>다.
가네코 대 일본제국.
여기에 이 영화의 독특한 힘이 있다.
3. 제목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제목은 단순히 불행한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이런 반역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하나가 아니다.
가족의 학대, 여성차별, 가난, 무적자라는 사회적 배제, 일본 사회의 계급질서, 식민지 조선에서 목격한 민족차별, 천황제 국가의 폭력 등이 겹겹이 쌓인다.
따라서 가네코의 반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삶 전체가 그녀를 국가와 사회질서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밀어붙였다>는 것이 영화의 해석이다.
하마노 감독 역시 가네코가 일본 사회의 여러 차별에 맞섰다는 점을 자신의 여성 영화감독으로서의 경험과 연결해 설명했다.
4. 가네코의 사상은 단순한 조선 독립운동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네코를 기억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녀가 조선 독립운동에 깊은 공감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일본인 친한파 독립운동가>로 이해하면 사상의 상당 부분을 놓친다.
가네코는 일본 제국주의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문제는 훨씬 근본적이었다.
국가, 천황, 권위, 가족제도, 남성 지배, 자본주의적 착취 등 인간 위에 군림하는 거의 모든 제도적 권위를 의심했다.
그래서 박열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두 사람의 사랑은 민족을 초월한 낭만적인 한일 연애라기보다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는 공동의 정치적·윤리적 신념에서 나온 동지관계였다.
이 때문에 가네코에게 조선의 해방은 일본과 조선이라는 두 민족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당하는 인간 사이의 문제>였다.
5. 영화가 마지막 121일에 집중하는 이유
영화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선택이다.
가네코의 어린 시절이나 박열과의 격렬한 활동기가 훨씬 드라마틱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를 선택한다.
사형판결도 났고 조직도 해체됐으며 박열과도 떨어져 있다.
남은 것은 한 명의 여성과 국가기관뿐이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 갈등은 행동이 아니라 <복종 여부>다.
국가는 말한다.
<네 생명을 살려주었으니 감사하라.>
가네코는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내 생명을 맡긴 적이 없다.>
그래서 은사장을 찢는 행동은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상징이 된다.
6. 죽음은 패배인가
여기서 영화는 매우 어려운 문제에 도달한다.
가네코가 결국 자살했다면 국가권력이 승리한 것인가?
영화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는 국가가 그녀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마지막까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라는 권리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죽음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비판적 거리가 필요하다.
자살을 지나치게 <최후의 자유>나 <완전한 저항>으로 미화하면 실제 인간 가네코가 경험했을 절망과 고통을 낭만화할 위험이 있다.
더구나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121일에 대해서는 사료가 매우 제한적이다. 한 일본 관객의 평가에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주로 가네코의 단가(短歌) 등 제한적인 기록이어서, 감옥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당 부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영화의 감옥 장면 상당 부분은 역사적 재구성이면서 동시에 감독의 상상이다.
이 점은 영화를 역사적 기록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
7. 일본 영화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 작품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일본 감독이 일본 국가권력에 반역한 일본 여성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라는 사실이다.
가네코의 존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조금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인이라고 모두 제국의 지배자였던 것은 아니었고, 조선인이라고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식민지를 경험했던 것도 아니다.
가네코는 일본인이면서 일본 제국의 질서에서 철저하게 주변화된 여성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조선에서 또 다른 피억압자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그녀의 조선에 대한 연대는 단순한 동정과 다르다.
<당신이 당하는 억압과 내가 당하는 억압의 근원에는 같은 지배 논리가 있다>
는 인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8. 『박열』과 비교하면
두 영화는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상당히 좋은 짝을 이룬다.
『박열』이
<박열과 가네코가 일본 국가권력을 조롱하며 벌이는 정치적 법정극>
이라면,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는
<모든 동료와 분리된 뒤 한 인간이 국가권력 앞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내면극>
에 가깝다.
전자가 두 사람의 <공동투쟁>이라면 후자는 한 사람의 <고독한 투쟁>이다.
그래서 이미 『박열』을 본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상당히 다른 가네코를 보여준다.
9. 평론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가네코 후미코를 민족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는 그녀를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 여성>로 기념하고 싶은 유혹이 있고, 일본에서는 <특이한 여성 아나키스트> 정도로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가네코는 어느 쪽에도 편안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가 제기한 질문은 훨씬 위험하다.
<국가는 인간에게 왜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천황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가?>
<가족·민족·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가네코 후미코가 100년 뒤에도 불편한 인물로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스터의 문구가 이 영화를 매우 정확하게 압축한다.
<現に在るものをぶち壊すのが私の職業です>
즉,
<지금 존재하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이 나의 직업입니다.>
그녀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남긴 정치가는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사상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을 파괴할 것인지는 명확하지만, 그 뒤 무엇을 만들 것인지는 훨씬 흐릿하다.
그럼에도 가네코의 역사적 가치는 다른 데 있다.
그녀는 2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민족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는 사람이 다른 억압받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박열의 연인 이야기>도, 일본 아나키스트의 전기도 아니다.
<식민주의·가부장제·국가주의의 여러 층위에서 주변부에 놓였던 한 여성이 끝까지 자기 삶의 주권을 주장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100년 전의 가네코 후미코는 여전히 상당히 현대적인 인물이다.




Stop genocid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