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 | 김상규 | 알라딘오경석 - 김옥균을 깨우치고 대원군에 맞선 사내
김상규 (지은이)
목선재2024-07-30

























미리보기
책소개
기미독립선언 지도자 오세창의 부친으로 알려진, 조선 역관 오경석. 실은 그가 추사(김정희)와 환경(박규수)의 아끼는 동지이자 제자였으며 혁명가 김옥균을 눈 뜨게 하고, 대원군의 쇄국에 저항한 인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식의 넓이가 곧 세계의 크기임을 일찍 알아차린 역관 오경석은 청나라의 멸망, 서양의 침범, 천주교의 좌절, 일본의 대두를 목격하며 장차 조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확인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른다.
목차
산 자와 죽은 자
파헤쳐진 무덤 7 | 문정관 14
시대
출항 29 | 중인 36 | 영길리 45 |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 50
중인의 꿈
일행 61 | 새남터 65 | 역관 75 | 추사의 제자들 83
연경과 서화 97 | 스승의 지인들 103 | 천죽재도天竹齋圖 113
서양
선상 쟁론 119 | 화란인의 후예 127 | 해국도지海國圖志 134
상하이의 조선인 크리스천 147 | 황제의 가원 156 | 아씨 162
각성
이와다의 여인들 169 | 불타는 원명원 173 | 열하문안사熱河問安使 179
연암의 손자 184 | 북경의 봄 195 | 왜관 201
교난
파리에서 온 조선인 213 | 운현의 사람들 220 | 아라사 228
위험한 시도 235 | 사학죄인 245 | 천주의 뜻 248 | 폭풍 전야 257
실기
숨겨진 기억 265 | 씁쓸한 승전보 274 | 엘리베이터를 탄
청국인 280 | 두 문도 289 | 실기失機 294 | 만국공법 301
서계 310 | 신미년 321 | 원정 329
전운
개화파의 탄생 339 | 천진기기국 352 | 부산에 온 군함 360
삼산무 371 | 기묘한 희망 381 | 대원군의 실각 392 | 전운 398
급진
암살자 409 | 투쟁과 공방 415 | 노대신의 간청 424
결렬 427 | 줄탁동시啐啄同時 443
병자년
인력거 안의 대화 449 | 이양선 458 | 강화도 467
회선포 493 | 암약 509 | 술을 따르거나 침을 뱉거나 550
처단, 세 발의 총성 559
외전 外傳
작가의 말 581
사실과 허구 593
접기

책속에서
◼ 편집자의 말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
무너진 몸을 끌고 고군분투했던 조선역관 오경석.
조정의 뜻에만 따랐다면 애국했다 기록됐겠지만,
뻔히 보이는 백성의 고통과 나라의 멸망은 어찌하는가.
백성을 위해 방도를 구하는 일이 과연 매국인가.
차라리 우리에게 대포를 쏴라.
조선역관 오경석 선생은 묫자리가 명확하지 않다. 김상규 작가는 몇 줄 근거를 들고 묘지 인근을 여러 차례 찾았지만, 분명한 자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강화도조약 관련해서 매국노로 몰려 파헤쳐졌거나 해주 오씨 문중의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는 오세창과 오경석의 이름과 사연 사이에 묘한 일이 있다는 것을 어느날 발견했다. 특히, 오경석이 일본 배에 올라 차라리 대포를 쏘라는 대목에 이르러 눈이 번쩍 뜨였다. 당시 조선의 상황이 답답했고 청의 몰락이 놀라웠으며 서계 문제로 다투던 일본과의 관계가 긴장으로 팽팽했는데, 문정역관이라는 조선의 관료가 대포를 쏘라니,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작가는 놀라움과 설렘으로 조사에 열을 기울였다.
작가는 말한다. 오경석 선생은 여타의 단순 역관이 아니었다고.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하나같이 조선 말의 마루지로서 부족하지 않았다. 고종, 대원군, 박규수, 김정희, 김옥균, 유대치 등과 청의 관리들과 일본 외교관들 그리고 사랑하는 스승들까지. 당시의 신분으로 있을 수 없는 인맥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었다. 특히 서화에 대한 식견은 아들 오세창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간송 전형필로 건너가는 역사적인 작업으로 마무리될 정도였다. 작가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선생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거대한 산봉우리 두 개를 마주했다. 하나는 역관이자 선각자 오경석의 삶이었고, 하나는 상하이로 향하는 망명자 김옥균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사제가 된 사이였으니 어쩌면 둘이면서 하나같고 하나인 듯 둘인 느낌이었다. 문정관으로 일본 배에 올라 차라리 대포를 쏴달라고 했던 오경석 선생이나 나라를 뒤집어 통교와 개화를 실현하려던 김옥균이나 어쩌면 도달해야 할 지점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주제와 흔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애를 끓이던 지식인으로서의 고심과 분투가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접기

P. 7 남자는 장대를 돌며 죄인의 머리를 살폈다. 총탄이 오른 턱뼈를 부수며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얼굴을 움켜쥐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옥균의 모습이 보였다. 뒷머리에도 정통으로 뚫린 총탄 구멍이 있었다. 저 일발이 숨통을 끊어놓은 게 틀림없었다. 뒤통수를 저토록 정확히 맞출 정도면 몸이 포박되어 있었거나, 가까스로 꿈틀대는 정도였을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뒤통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곤두박질치는 머리. 이 모든 광경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접기

P. 28 “귀국의 대신은 강화에 도착하면 가능한 한 위엄을 과시하시오. …… 최대한 국위를 펼치시오.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이해하길 바라오.”
P. 125 “선생께서 알고 계신 오역매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모리야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홀로 무언가를 본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뭔가 그만의 특별한 사명을 짊어진.”
P. 167 “남자 세상에서 아녀자는 종처럼 살아왔고 양반 세상에서 상놈들은 소처럼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남자들과 양반들이 지식을 독점해왔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여자들과 상놈들이 무식해서지요. 여자들도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종처럼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연희는 대치의 말에 가슴이 뛰고 눈앞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접기

P. 242 “다묵 형제님, 대원위 대감께서 주교님을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님은 빨리 두 주교님을 서울로 모셔 오세요.”
“아! 이제 조선에도 천주님의 은총이 내리게 되었군요. 요한约翰(남종삼) 형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교님들이 지방에 비밀 순회를 하고 계시니 연락이 닿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이런 일은 지체되면 안 됩니다. 형제님, 서두르십시오.” 접기

P. 279 그날 경석의 꿈에 멀리 석양을 등진 대원군이 나타났다. 분명 대원군의 모습이었는데 윤곽일 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붓 같기도 했고 칼 같기도 했다. 그를 부르는 것 같았으나 대원군이 맞는지 모호해서 다가가지 않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저자의 칼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감해서 버둥거리다가 잠에서 깼다. 접기

P. 310 “우리나라의 개혁을 이루려면 뭘 해야 하는가?”
경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경석의 얼굴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시종 진지했다.
“먼저 동지를 구해 혁신의 기운을 일으켜야 하네. 우리끼리 떠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혁신의 기운……. 조선인들은 여태껏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가의 경전에서도 보지 못했고 부처의 말에서도 듣지 못했다. 인仁의義예禮지智충忠으로 풀이되는 조선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던 말이었다. 접기

P. 350 “서양인들은 이렇게 인사를 한다네. 양인들 말로 ‘셰이크 핸’이라 하지.”
그러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셰이크…… 핸……?”
“그렇다네, 셰이크핸. 셰이크핸에는 양반도 상놈도 다 똑같다네.”
그의 왼손이 맞잡은 옥균의 손등을 덮었고 옥균도 그 위에 왼손을 올려놓아 그들은 두 손을 포갠 채 맞잡고 흔들... 더보기

P. 412 인력거의 위대함은 그 기술에 있지 않다고 역매는 말했다. 그것은 양반이나 상놈이나 심지어 기생도 돈만 주면 탈 수 있으며, 그 값도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었다. 개화는 서양의 교묘한 물건을 들여오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서양과 통교하느냐의 싸움도 아니었다. 개화는 스스로의 손으로 봉건과 구제를 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였다. 역매는 평생 차마 입에 담지 못했지만, 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다는 걸 이와다는 언제부턴가 알 수 있었다. 접기

더보기
추천글
간송 전형필에게 국보 환수를 깨우친 이가 오세창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오세창이 서화에 눈을 뜨고 가치를 매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친 오경석 덕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애국자인가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심지어 오경석의 묘는 묘비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폄하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매국노인가 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알만한 유명인이 모두 등장한다. 대원군, 김정희, 박규수, 유대치, 김옥균, 고종까지. 당시 조선의 수구세력과 세계 정세에 밝은 통교 세력을 아우르는 사람들이다. 놀랍게도 그 중심에 오경석이 있다. 오경석은 역관이었다는 사실만 기록되었을 뿐 내면까지 들여다본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선생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애국의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의 상황에서 애국인가 실용인가의 문제도 고심하게 만든다. 역사서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니므로 물론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롭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고 나만 몰래 읽고싶은 책이다. 그럼에도 적극 읽으시기를 추천드린다.
- 원동우 (시인)

저자 및 역자소개
김상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72년 서울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 대외경제무역대학교(베이징 소재) 한중 통번역 석사과정을 수료. 회사에 다니고 자영업을 했다. 대학원 논문을 위해 중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추사의 제자인 이상적과 광복 후 《세한도》를 감정한 오세창 사이에 교집합으로 존재했던 한 개화 역관에게 주목했다. 사료의 행간을 상상으로 채워 넣어 쇄국의 광풍 속에서 선각했던 역관의 고뇌와 열망,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소설로 구현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러 4년의 조사와 답사 끝에 이 책의 집필을 마쳤다. 15년 동안 중국에 거주했다.
저서로는 중국 개혁 통사 시리즈인 『중국을 움직인 시간 Ⅰ, Ⅱ, Ⅲ』, 아편전쟁을 다룬 『미몽 속의 제국』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오경석>,
<미몽 속의 제국>,
<중국을 움직인 시간 3> … 총 9종
(모두보기)출판사 제공 책소개

기미독립선언 지도자 오세창의 부친으로 알려진, 조선 역관 오경석.
실은 그가 추사(김정희)와 환경(박규수)의 아끼는 동지이자 제자였으며 혁명가 김옥균을 눈 뜨게 하고, 대원군의 쇄국에 저항한 인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식의 넓이가 곧 세계의 크기임을 일찍 알아차린 역관 오경석은 청나라의 멸망, 서양의 침범, 천주교의 좌절, 일본의 대두를 목격하며 장차 조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확인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른다.
대대로 역관을 이어 온 집안 내력을 따라 역관이 된 오경석은 13차례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오갔다. 그 과정에서 중인 기술직 신분으로 오그라들었던 그의 인식과 시야가 비로소 개화할 수 있었다.
사대의 눈이 아니더라도 오경석에게 청의 예술과 지식, 서책은 광대하고 심오했다. 유명 인사들과의 교류 역시 그를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위대하고 강력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산으로 가득한 조선의 상국 청.
그런 청이 아편전쟁을 거치며 멸망에 이른다. 서양의 검은 배들이 몰려와 대포를 쏘고, 황제의 궁궐 원명원을 불태웠다. 내부로는 태평천국의 난을 비롯한 민란이 들끓어 관아로 향하는 세금 마차가 습격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경석은 궁금했다. 도대체 위대한 청국을 무너뜨린 서양은 어떤 곳인가. 그들이 몰고 온 배며 쏴대는 무기들은 또 무엇인가. 십자가를 앞세운 서양 천주교와 선교사, 신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오경석은 청이 저 지경이라면 조선이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알아야 한다, 준비해야 한다, 서양과 통교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무력을 만나 조선 역시 멸망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환경 박규수를 사행길에 만난 것은 그런 오경석에게 빛줄기와도 같았다. 담백한 인상과 합리적인 생각의 박규수를 오경석은 단번에 존경하게 되었다. 박규수 역시. 침착하면서도 날카로운 젊은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경석이 중인 친구 유대치와 함께 북촌의 박규수 자택 사랑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김옥균과 이후 충의계라 불리는 이들을 만나 세계 정세를 풀어놓았다. 새로운 문물과 청의 상황도 깨우쳐 주었다. 양반인 자신들이 중인들에게 배울 것이 있으랴 싶었으나 그들은 모두 단번에 오경석과 유대치를 스승으로 모셨다.
오경석은 병들고 있었다. 조선의 현실과 세계 정세의 괴리가 그를 파고들었다. 뇌경색이 발발했고 걸을 때 조금씩 절게 되었다. 그 몸으로 일본 화륜선에 올라 문정(조선 관리가 정황을 파악하는 일)에 나섰다. 그 배에서 오경석은 차라리 한강을 타고 들어와 무력시위(포탄발사)를 원한다고 말해 좌중을 놀래켰다. 외국과의 통교에 도무지 관심조차 없는 조정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오경석의 간절함은 그렇게 드러났다.
강화도조약이 논의 되기 시작했을 때 이쪽이든 저쪽이든 오경석은 문제없는 인사로 인정되었다. 다만, 한 사람 대원군만은 적의를 드러냈다. 자신에게 들렀다 가라는 대원군의 명을 거부하고 오경석은 혼자 조약문을 품고 한성과 강화를 오가며 분투했다. 박규수가 대원군의 위해를 걱정해 경호원을 붙여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대원군으로부터 의심스러운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일본에 망명했던 김옥균이 상하이로 가는 배에 오른다. 동행한 사람들과 스승 오경석의 과거를 회상한다. 강화도조약과 스승의 가르침과 그리고 스승의 죽음. 상하이에 도착하면 새로운 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이와다, 아니 김옥균이 배에서 내린다. 그의 등 뒤에 권총을 든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접기

과거 우리 민족의 실기를 냉정히 반성해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라 좋았다.
역사가 깊이 주목하지않았던 오경석의 처절한 고군분투에 경의를 보내며 벽돌책임에도 빠져서 읽었으리만큼 좋은 독서경험이었다!!
eli1228 2024-08-06 공감 (2)
댓글 (0)Thanks to
공감
이제껏의 역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주제와 짜임새 있는 전개. 오랜만에 훌륭한 역사소설을 읽었네요.
정란지 2024-08-08 공감 (2)
댓글 (0)Thanks to
공감
원래 책을 볼시간이 없어 잘안보는데
지인분이 추천해줘서 받자마자 후딱 읽어봤습니다
강화도 조약의 전말을 이렇게 디테일하고 박진감 넘치게 다룬 소설은 이제껏 보지 못한것 같네요
우리 역사를 다시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인것 같아요
지훈아빠 2024-08-07 공감 (2)
댓글 (0)Thanks to
공감
뻔한 영웅적 서사의 역사소설에 식상했었는데, 간만에 신선한 작품이 하나 나왔네요. 스케일이 크면서도 속도감 있고 짜임새도 훌륭합니다. 무엇보더도 책을 읽은 후의 짙은 여운으로 시대를 성찰하도록 하는 작품입니다. 이 분 다음 작이 기대됩니다.
loner77 2024-08-07 공감 (2)
댓글 (0)Thanks to
공감
높은 몰입감과 속도감, 신선한 플롯, 역사적 디테일...., 간만에 좋은 역사소설을 만났네요.
paulhyejin 2024-08-06 공감 (2)
댓글 (0)Thanks to
공감
더보기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10)
리뷰쓰기
공감순

오경석


우리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했던 시기로 볼 수 있는 조선후기 및 개화기, 이 시기를 잘못된 선택으로 보내면서 나라를 일제에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고충과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도 해당 시기의 인물사의 경우 매우 예민한 주제이자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이 책도 이런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입각한 형태로 소개되는 인물사 관련 소설책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로 볼 수 있는 오경석에 대해 소개하며 관련한 인물들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 분위기 등을 입체적으로 알아 볼 수 있어서 괜찮게 다가오는 책일 것이다.
<오경석> 조선이라는 나라가 갖는 상징성도 대단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망국의 늪에 빠졌고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권력 다툼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도 해당 시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의 경우 부정적인 평가와 반응도 많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경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볼 경우 이에 대한 냉정한 가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며 책을 통해 우리는 어떤 형태로 가치 판단을 해볼 것인지도 함께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당시 우리 조선의 경우 폐쇄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세계는 급변하며 빠르게 근대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에 역관이라는 직업이 갖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며 어떤 형태로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인지, 또한 교육 분야에서도 어떤 영향력을 통해 다양한 인재와 소통하거나 직접적인 발굴 등을 주도하였는지도 책에서는 자세히 표현되고 있다. 이는 국난의 위기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등장했다는 점은 그나마의 희망이 있다는 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오경석> 책을 통해 해당 인물에 대해 자세히 배우는 것도 좋지만 종합적인 관점에서 관계된 주변인이나 당시의 상황, 사회적 분위기 등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도 이런 취지를 통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사에 대해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계속해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일정한 울림과 교훈적 메시지를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있는 행위일 것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역사 소설의 기법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고 해당 시기와 주요 사건, 그리고 인물과 배경 등에 대해서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괜찮은 책일 것이다. 책에서 표현되는 <오경석> 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함께 접하며 판단해 보자.

- 접기
djkidol 2024-08-24 공감(1)
댓글(0)Thanks to
공감
오경석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 우리는 조선 후기, 말기의 쇄국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낸다.
조선의 변화는 기존 정권의 추락이라는 절대적 의식을 가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은 아직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계제는 아닌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변화가 늦춰진 점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쇄국이 변화를 앞당기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역매(亦梅) 오경석은 학자이자 역관으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개화사상의 비조라 말할 수 있다.
그의 역관으로서의 행보가 중국의 서양 열강 세력에 의한 붕괴를 보면서 조선의 미래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 개화사상을 구축하고 세력을 키우는데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
오경석에 의해 영향을 받은 개화파로의 박규수, 유홍기 등의 역할 역시 우리 역사에 있어 매우 귀중한 부분임을 잊을 수 없다.
개화파 형성은 쇄국의 기조를 뛰어 넘어 새로운 변화로의 시도를 도입하려는 의도로 조선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염려 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오경석" 은 개혁, 혁신을 위한 개화사상의 비조로 개화파 형성에 영향을 미친 오경석의 이야기를 담아 오늘날 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변화의 핵심을 올바르게 읽어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도전을 독려하려는 의미를 염탐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김옥균을 깨우친 오경석, 대원군과 맞선 사내로 오경석을 지칭한다.
그럴만도 한것이 중국으로부터 개화의 필요성을 실질적으로 보고 느낀 오경석이 자신의 개화사상에 대한 내용을 친우 유홍기와 박규수를 통해 전파하고 개화파 형성으로 뭉친 그들은 그 당시 양반 자제들을 가르친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우리나라 근대 개혁운동의 대표적 인사들이라는 박영교, 김윤식,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서광범 등의 다양한 인물들에게 개화사상을 교육했고 후일 그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당파로의 개화파가 형성되는데 공헌을 세운 인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역시 서양 열강 세력의 개화에 맞닥트린 점은 중국과 다를바 없는 일이지만 그 대응 방식은 완연히 달랐고 오경석은 대원군에게 개화를 주장했지만 거절당하고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강화 앞바다에 무력 침공해 최초의 한일회담이 이뤄지게 되지만 거세게 몰아치는 개국의 기회는 난공불락이 되어간다.
반상의 구분이 없는 세상, 귀천에 상관 없이 능력에 의해 기용되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꾼 김옥균에게 오경석은 조선만이 엄격한 신분제를 수 천년 당연시 해 온 이 나라 사람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민중들에게 새로운 의식의 주입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주고 개화의 물꼬만이 유일한 길임을 천명했다.
안과 밖에서 힘을 합쳐 알에서 깨어 나야 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만이 지속가능한 조선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음을 일갈한 오경석의 선견지명이 좀 더 일찍 쇄국의 문을 열고 개항과 개국이 되었다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결과적으로 개화사상을 펼친 개화파의 시도는 성공이 아닌 실패작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왜 성공이 아닌 실패였을까? 하는 궁금증에 쌓인 의문들이 생긴다.
그 의문의 꼭지를 잡고 조선말의 근대시대를 여는 시대상을 파헤쳐 보는 시간은 역사적 진실 위에 놓인 이야기들이 힘을 얻고 오늘날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글로벌화에 대한 나, 우리의 대응에 대한 자세를 염려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의 나, 우리의 삶이 이뤄지는 대한민국 역시 변화 앞에는 망설임이 고착화된 듯 한 느낌들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대로 기존을 사수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근대를 살아내었던 조선 말기의 백성들의 선택과 다르지 않을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조선의 지속가능한 미래,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 나,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일은 어쩌면 모두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을것 같다.
그 고뇌와 믿음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역사에서 반면교사로 배워봄이 유익하리라 판단해 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접기
newkorea21 2024-08-24 공감(1)
댓글(0)Thanks to
공감
『 오경석 』 김옥균을 깨우치고 대원권에 맞선 사내


김상규 장편소설/ 목선재 펴냄)
역사에 가려지고 삭제된 혹은 잊힌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 바로 역사소설을 읽는 이유다. 개화사상의 박규수, 그가 중국으로 갈 때 역관 자격으로 동행했단 오경석. 서양의 신식 무기에 이렇다 할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지는 청나라를 제대로 보았다. 조선의 개혁을 논하던 백탑파를 검색해 보다가 유대치, 박규수, 오경석, 개화승 이동인 등 북촌 5걸을 만나게 되었다. 뜻깊은 우연이다^^
소설은 1876 병자년을 배경으로 서술된다.
김옥균이 개화사상에 눈을 뜨는 과정에서 위 세 분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한의원 출신 유대치, 박규수, 중인 출신 역관이었던 오경석.. 그러나 그들은 신분을 넘어 당대 선각자였다.
특히, 오경석이 중국에서 들여온 선진 문물, 개혁적인 책 《해국도지》 《지구설략》 등의 서적을 만나는 것은 청년 김옥균의 삶에 큰 자극이 되었을 것 이다.
오경석 (1831~1879) 책을 읽기 전에 이름만 알고 있었던 분이다^^ 개화사상 가이기도 하지만, 금석학자이자 안목이 뛰어나서 서화 등을 수집하기도 했다. 대를 이은 역관 집안 출신으로 33인의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아버지이다. 부강한 근대 국가를 만들지 않으면 자주적 대개혁을 하려면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명을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1875년 운요호 사건 이후 조선은 복잡한 외교 문제를 눈앞에 두게 되지만, 철종의 무능함, 조선의 개방을 가로막는 500년 사직의 관료들... 그 중심에서 1853년 이상적의 제자로 처음 청나라를 다녀온 이후 무려 12차례나 중국을 오간 오경석, 그때 사귄 청나라의 청년들과 꾸준히 서신을 주고 수백여 종의 금석류를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구입했다.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금석학 분야에서 남긴 책들도 많다.
학창 시절 한국사 책을 떠올려보면 갑신정변의 과정과 주요인물, 그 실패의 원인에 대해 암기하는 방식으로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역사의 한 부분을 암기로 만나는 과정에서 그 빈 행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준 역사소설!!! 역사저널 그날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인물이다.
이들의 개화사상은 끝나지 않았다. 김옥균을 비롯한 김윤식, 김홍집, 홍영식, 서광범, 박영효, 유길준, 어윤중 등을 통해 이어진다. 소설은 어디까지 허구이고 어디까지 사실인지 경계가 모호한데 책의 마지막에 저자의 글을 통해 구분이 확실해지니 참고하시길!!!
- 접기
sailor_moon 2024-08-24 공감(1)
댓글(0)Thanks to
공감
구한말 조선시대 개화사상가

선각, 먼저 깨우친 예지력, 역매 오경석
오경석은 개항기 강화도조약 문정관으로 <삼한방비록>,<천죽재차록>, <양요기록> 등을 저술한 역관. 서화가, 금석학자. 그는 김옥균등의 청년들에게 개화사상을 전파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옥균과 그들 중심으로 일으킨 개화파의 정변은 삼일천하, 그는 당대 외척세력의 중심이었던 장동 김 씨(안동김씨 중 세력의 중심에 섰던 일가를 부르는 말인 듯)였다. 결국, 고종이 보낸 암살단에 죽는데. “이와타”라는 일본 이름으로 조선의 칼끝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다, 상하이에서 죽는다. 김옥균에게 새로운 세계의 희망을 일깨워준 이는 오경석이었으며, 그의 스승이었고 3.1만세 운동의 33인 중 한 명이었던 오세창의 아버지였다. 오세창은 독립운동가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그의 나이 40 무렵에는 친일파로 몰려 일본으로 망명을 했던 적도 있었다.
오경석, 그의 평가를 두고 작가는 강화도조약을 인식하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고, 일본의 조선 침략의 교두보라는 시각만이 유일한 건 아니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저질렀던 오판 또한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고, 이른바 이데올로기보다는 당대의 정세를 열린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맹목적 애국과는 또 다른 무엇을 봐야 한다고, 오경석이 가졌던 유일한 소망 “조선이 화륜선을 보유하는 것”, 화륜선이란 침략의 상징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오경석, 역관이라는 직업을 통해서 중국의 현실을 봤다. 개방과 문명, 진취와 발전의 상징으로 “화륜선”을 바라봤다.
강화도조약의 뒷이야기
일본과의 협의를 위해 조선 조정에서는 문정관(問情官=조사관), 별정역관으로 사역원 당상 오경석을, 통역관으로 왜학운도 현석운을 보내는데, 강화도조약 체결 23일 전, 제물진에 들어온 닛신함에서 일본 외무성의 모리야마 시게루에게 한 말,
오경석은 “신미년 미국 함선이 내도했을 때 대원군이 마침 전권을 잡고 있었소. 당시 나는 대원군께 도저히 외교를 열지 않을 수 없음을 설득하려 했소. 그런데 미국 선박은 겨우 몇 차례 발포하더니 물러가 버렸소.” “그러니 형세로 볼 진데, 귀국 대신이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곧장 상륙해서 힘을 과시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오. .... 이번 일로 차질이 생기면 실로 만민이 도탄에 빠지는 고통을 초래할 것이니, 내 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렇게 내부사정을 폭로하는 것이오.”라고 외교상식을 넘어선 발언을 한다.
오경석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중국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서구열강과 교류한 일본, 우리는 일본을 통해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소설 첫 대목에 나오는 오경석의 상상 초월의 폭탄 발언, 김옥균이 그를 스승이라 불렀고, 승려 출신의 일본 유학생 이동인도 함께했던 개화파….
소설은 오경석의 연대기다. 49살에 괴질로 죽을 때까지…. 작가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고, 개항과 열린 외교만이 조선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오경석은 쇄국정책을 밀고 나가는 대원군과 대척하면서, 개화파에 합류했는데….
오경석은 개화사상가?
이상적의 문하에서 한어(漢語)와 서화를 공부하였다. 집안의 분위기로 박제가의 실학을 공부했다. 1853년 북경행 사신의 역관으로 청나라의 수도 북경에 가서 이듬해 3월까지 머무르며 서양 열강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중국을 관찰, 그 뒤 13차례나 역관으로 중국을 내왕하면서<해국도지> <영환지략> <박물신편> 등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사들여 연구, 1853∼1859년경에 최초로 개화사상을 형성하였다.
1860년 영불연합군의 북경점령 사건 때, 서양 열강의 근대적 무력과 경제력 앞에 붕괴하는 중국의 참상을 보았다. 조선에도 곧 서양 열강의 침입에 의한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절감한 오경석은 중국에서 사 온 책을 친구 대치 유홍기에게 주어 읽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개화사상을 개진하여 유홍기의 개화사상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규수가 영불연합군의 북경점령 사건에 대한 조선 조정의 위문사절의 부사로 중국에 갔다가 큰 충격과 위기의식을 안고 돌아왔다. 이때 박규수의 개화사상 형성에도 오경석은 큰 도움을 주었는데, 소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때 석파 이하응(대원군)이 친 "난"을 중국의 문화계 인사에게 가져다 의견을 묻는 등, 이하응과도 가까이 지냈던 사이였지만 조선의 미래를 보는 눈은 전혀 달랐다. 직접 눈 앞에 펼쳐진 중국의 현실이 미래의 조선의 모습일 것이라는 오경석의 혜안은...
우리 역사 속에서 일본의 역할을 두고, 조선을 합병한 식민지로 만든 일본 제국주의자의 침략행위와 지속해서 일본의 이익을 얻기 위해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했던 것이지, 조선,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국운이 다해가는 조선의 위태로운 순간에 오경석의 생각은 옳았던 틀렸던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반일종족주의라는 폄훼, 친일파청산을 방해한 이승만을 독립운동가라고 말하는 것과 조선의 근대화와 오늘날의 경제발전에 일본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나 시각은 (이영훈을 비롯한 이른바 낙성대 무리), 단순히 친일파 논쟁으로 그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구한말, 조선말, 개화사상을 가졌던 이들은 어떤 논리로 조선의 개화와 문명, 진취를 고민했던 것일까, 아마도 이 소설은 이런 궁금함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주는 게 아닐까 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접기
moonbh 2024-08-25 공감(1)
댓글(0)Thanks to
공감
소설 오경석

조선말 역사를 떠올려 개인적으로 오경석의 이름은 상당히 낮선 것이였다. 그러나 이 (소설)책을 통해 바라본 인물의 행적은 그 나름대로 전통적 근세국가에서 탈피한 근대국가의 틀을 추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 개혁파의 선구자로서, 결국 내용을 마주하는 독자들에게 '어째서 조선은 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에 대한 감상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생각이 된다.
특히 조선의 신분 계급에 있어 '중인'에 해당하는 오경석에게 나라의 변화를 꿈꾸게 한 책(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은 크게 북학의와 해국도지로 나눌 수 있다. 더욱이 그가 역관의 직을 수행하며, 청나라가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을 통해 나라가 분열될뿐 만이 아니라, 서양세력에게 패배하여 수도(베이징)까지 함락당하는 현실을 목격함으로서, 이에 단순히 오랜 중화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동시에 더욱이 정체되고 낙후된 '조선은 과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질문을 품고 또 그에 대한 강한 해답을 갈구하는 인물이 되어가는 (이야기의) 흐름 등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인상깊은 것이였다.
(...) 외부와의 교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자각할 것이네. (...) 자각은 변화의 요구를 불러 일으킬 것이고, 변화의 요구는 새로운 세상을 창출하는 동력 될 걸세.
309쪽
결과적으로 그는 (소설의 이야기에 비추어) 조선의 변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화'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새롭게 대원군이 실세로 떠오르자, 나름 정통이 아닌 방계로서 부조리함을 경험한 그에게 큰 기대감을 품었으나, 안타깝게도 역사를 돌아보았을때, 대원군 이하응의 국정은 이후 쇄국으로 나아가기에, 결국 오경석은 그 스스로가 개화를 위해 오늘날 보기에 상당히 무모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실제로 비교적 세계정세를 파악했던 오경석이 개화를 주장했던 때는 1871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을때와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의 (협상의) 실무자로서 활약했을 때이다. 이때 대원군은 협상을 뒤집고 일본과의 결전을 지시하였으나, 정작 오경석은 조약을 통해 (다시)조선 개국의 문을 열었다. 물론 이후 벌어지는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사실을 이유로 이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 역사에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일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의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라는 믿음을 가진 당시의 인물에게 있어서, 큰 마찰을 피하고 최대한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화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사상적 믿음'과 행동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 정의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조선의 변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 이후 그의 사상적 계승자에 해당하는 김옥균의 갑신정변과 같이 급진 개화파가 행동하게 된 이유와 실패 등을 떠올려보게 되면... 결국 조선은 비록 느리고 낙후되었지만, 그 내부적 조직만큼은 강인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10년에 이 나라의 명운이 걸렸네. 일본과 통교하자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잖나. (...) 저들 나라에 유학생을 보내서 기술을 배워오는거야. 우리도 광산을 개발하여 산업을 일으키고 저들의 기차와 회륜선 전신도 도입해야지(...)
553쪽
그러나 이후 조선의 변화는 개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많은 '개화의 가치를 인식한 인물들'에 의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진행되어갔다. 덕분에 역사 속에서 보여지듯 조선은 분명 개화를 통해 많은 것을 도입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오경석이 꿈꾸었던 자주적인 강국을 이룬다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하여 한반도의 역사는 수 많은 상처와 비극이 되풀이 되고, 심지어 그 상처는 오늘날에도 분열과 왜곡을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한계 때문일까?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경석을 포함하여 당시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을 인식한 개화의 위인들은 비교적 다른 위인들과 비교해 후대의 인식이 저조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끔 개화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인물과 함께, 당연하게 저항과 독립으로 이어지는 수 많은 위인들의 가치를 통틀어, 더욱 확고한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준점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날 보여지는 대한민국의 대중적 역사인식과 사실조차도 위협당하고 분열되는 세상 속에서, 단순히 내가 공부하고 알아가는 당연한 역사가 당연히 후대에도 보존되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진 지금... 결국 앞으로 보다 바른 역사의 사실이 이어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부터 스스로의 중심을 삼을 역사의 기준을 세우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생각해보아도 오경석은 분명 남들보다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역사에 비추어 나라의 위기를 깨달았으며, 그에 따른 해결점을 제시하며 행동한 점에 있어서 적어도 스스로의 삶보다 나라를 위해 행동한 인물이 틀림 없다고 생각이된다.
- 접기
루츠 2024-08-23 공감(1)
댓글(0)Thanks to
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