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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3

공자전 | 시라카와 시즈카 | 알라딘 요약+평론+비교

공자전 | 시라카와 시즈카 | 알라딘


공자전 - 반체제 인사의 리더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공자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지은이),장원철,정영실 (옮긴이)펄북스2016-04-05

원제 : 孔子傳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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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6,000원

Sales Point : 412

8.8 100자평(3)리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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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22-04-05

책소개
한자학 권위자인 시라카와 시즈카가 공자에 대해 쓴 가장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고 성의 있는 평전이다. 저자는 공자의 생김새와 출생지의 지명과 관습, 성장과정, 무축 사회에 대한 배경 지식 등을 찾아내어 모두 담았다. 그리하여 공자가 추구했던 이상이나 그를 따르던 이들이 어떻게 성장해나갔는지, 그것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공자는 무녀에게서 난 사생아'라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펼치며, 그의 이러한 출생 배경이 그가 체계화시킨 유가 사상의 바탕이 되었음을 논리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당시의 '무巫 집단'은 고대 농경사회에서 성직자와 제사자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동양의 질서 속에서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인.의.예' 사상을 창시한 사람이었지만, 당대 위정자의 시각에는 반체제를 선동하고 다닌 위험인물일 뿐이었다. 철저한 이상주의자였던 공자는 그 덕택에 숱한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반체제 인사의 우두머리에서 마침내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공자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그러한 공자의 일생과 그가 제창했던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도 살펴보게 한다.


목차


1장 동서남북을 떠도는 사람
: : 공자, 그는 우리에게 누구이며 무엇인가
: : 공자, 성인의 후예인가 무녀의 아들인가
: : 첫 번째 망명, 양호와 대립하다
: : 두 번째 망명, 동쪽의 주나라를 만들겠다
: : 14년 동안 헤맨 정처 없는 망명길
: : 평생을 함께한 꿈과 그림자

2장 유교의 원류
: : 옛것을 조술하다
: : 군자의 유와 소인의 유
: : 성직자와 제사자 그리고 지식인
: : 하늘이 바뀌다
: : 주공으로 회귀하다
: : 유교의 성립

3장 공자의 자리
: : 체제 밖의 인간
: : 불평분자의 무리
: : 공자, 노예해방의 지도자인가
: : 공자의 제자들
: : 도가 행해지지 않는구나

4장 유교의 비판자
: : 묵가, 동일한 차원의 경쟁자
: : 상동과 겸애의 결사 집단
: : 묵자와 맹자의 시대
: : 공자야말로 큰 도둑이다
: : 공자는 노자에게 예를 물었는가
: : 직하의 학문을 통해 교류하다

5장 논어에 담긴 뜻
: : 문장의 형식은 내용을 반영한다
: : 공자 이후 유가의 여덟 유파
: : 다양한 제자들의 모습
: : 『논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 위대하구나! 공자는

옮긴이 주
지은이 후기
옮긴이 후기
접기


책속에서


P. 16~17 공자는 특히 비천한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일도 분명치 않아, 나는 그가 무녀巫女의 사생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년에는 당연히 한 시대의 사표師表로서 존경을 받았겠지만 망명 중의 어떤 시기에는 “선생을 죽이려던 자에게 죄를 주지 않았고, 선생을 욕보인 자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장자』 「양왕讓王」)고 할 만큼 받아줄 이 없는 망명자, 요컨대 외부에서 온 도적인 외도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사기』는 공자의 전기를 제후의 전기를 다루는 세가世家 안에 넣었지만, 이것은 사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아마도 공자의 뜻을 관철하는 방법도 아닐 것이다. 접기
P. 36 공자가 제나라로 망명한 것은 아마도 양호가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을 일삼았을 때(기원전 505)의 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노나라의 정치 상황을 일단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노나라 임금의 권력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역대에 걸쳐 어리석은 임금이 많았고, 환공桓公(기원전 711~694)에게서 비롯된 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의 삼환三桓씨가 오래도록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국토와 병마兵馬의 대부분은 그들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가신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하극상의 풍조가 뚜렷해지면서 정국은 끊임없이 위기에 휩싸였다. 접기
P. 55~56 이리하여 14년에 걸친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공자는 벌써 쉰여섯 살, 자로는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마흔일곱 살, 안연 이하로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들이었다. 망명생활은 그들 사이에 깊은 운명 공동체 의식을 심어놓았고, 그와 동시에 운명 문제, 천天의 문제, 인간성 문제, 현실 정치 문제 등에 대해서 사색을 심화한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도들을 데리고 방황을 계속한 나사렛 예수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나 방황의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유감이다. 어째서 우리 동양인은 이 중요한 시기에 대해서조차 과묵했던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 빈약한 자료에서부터라도 이들의 모습을 추적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접기
P. 71 공자의 죽음은 평온하고 평범했다. 『예기』 「단궁상」 편에 공자가 죽기 7일 전 아침 일찍이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어가는구나”라고 노래부르며 죽음을 예언했다는 것은 물론 꾸며낸 이야기다.
소크라테스나 그리스도에게 죽음이란 곧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공자에게는 죽음에 관한 기록이 없다. 물론 『춘추』의 경문經文에는 애공哀公 “16년 여름 4월 기축己丑일에 공구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애공에게서 죽은 사람을 조문해 제사 지내는 애도사인 뇌誄가 하사되었다. 접기
P. 71 공자의 죽음은 평온하고 평범했다. 『예기』 「단궁상」 편에 공자가 죽기 7일 전 아침 일찍이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어가는구나”라고 노래부르며 죽음을 예언했다는 것은 물론 꾸며낸 이야기다.
소크라테스나 그리스도에게 죽음이란 곧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공자에게는 죽음에 관한 기록이 없다. 물론 『춘추』의 경문經文에는 애공哀公 “16년 여름 4월 기축己丑일에 공구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애공에게서 죽은 사람을 조문해 제사 지내는 애도사인 뇌가 하사되었다. 접기
P. 86 과연 전통의 수립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통이 과거의 계승인 이상, 거기에는 전통이 발생하는 장소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민족으로서 하나의 정신적 양식을 이루는, 기원적인 선행 형태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교의 기원을 논하는 경우, 흔히 『시』와 『서』1) 등의 고전 학문이 거론된다. 그러한 고전은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전통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민족의 정신적 양식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생활방식에 작용하면서 이를 통해 정신적 정형定型이라고 해야 할 어떤 것을 형성?발전시켜가는 것이 전통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다원적이고 포섭적이면서도 더욱이 체계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전통이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으로 이룩해낸 이가 공자였다. 접기
P. 156~157 공자가 망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정도 양호의 경우와 비슷한 데가 있다. 계씨의 재宰였던 공산불요가 계씨의 사읍인 비 땅을 근거지로 모반을 꾀했을 때, 공자는 그의 초빙에 응하려 했지만 자로의 반대에 부딪쳤다. 아마도 반란은 실행되지 않았던 것 같으나 공자가 이에 가담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공산불요는 한때 양호에게 협력했던 인물이다. 후에 자로가 계씨의 재宰가 되자 공자는 삼가의 사읍을 무장해제시키려는 대담한 정책을 자로에게 강행케 한다. 그런데 그 계책이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그로 말미암아 계씨와 불화가 생기자, 공자는 기나긴 망명길에 오른 것이다. 공자도 무사巫史의 학문에서 출발하여 인仁을 설파했다. 그의 학문의 연원과 행동거지는 양호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양호가 공자에게 협력을 구했던 것도 공자가 자기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도 반체제 인사였던 것이다. 접기
P. 179 공자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仁인데,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안연」) 것이고, “백성에게 은덕을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옹야」) 일이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목숨을 바쳐서 인을 이루는’(「위령공」)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人이란 인민 대중이다. 인도仁道란 대중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접기
P. 217 공자 교단의 성격은 그와 같은 출발로 미루어보면 당연히 반체제적이었다. 공자가 지도하는 교단은 처음에 현실의 장에서 정치를 다투었다. 그러나 현실의 장에서 다툰다는 것은 대립자와 동일한 차원에 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망명은 교단이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공자의 위대한 인격, 그의 사... 더보기
P. 289 송견은 송나라 사람이다. 도연명陶淵明이 편찬했다는 『집성현군보록集聖賢群補錄』에 따르면, 3묵三墨의 하나로 되어 있는데, 그 학설은 묵자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맹자』에는 송경宋?이라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맹자보다 선배였다. 제자의 학문은 직하에서 일어났지만, 묵자?송견과 노장의 학문은 모두 송나라 땅에서 생겨났다. 멸망한 은나라 후... 더보기
P. 324 공자의 생애는 제자들과의 강한 연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공자가 아마도 미천한 무축의 신분에서 입신하여 박식한 사유師儒로 명성을 얻었을 무렵 그 문하에 (반항적으로) 마음대로 행동하며 무협의 기상을 지닌 한 남자가 입문했다. 공자보다 아홉 살 연하의 자로였다. 자로는 본래 무뢰배였다. 수탉 깃털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돼지가죽으로... 더보기
P. 357 『논어』라는 명칭은 『예기』 「방기坊記」 편에 처음 나타난다. 「방기」는 『자사자子思子』 23편 가운데 한 편으로 되어 있는데, 『주역』 따위도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한秦漢시대 이후의 문헌으로 보인다. 또한 『예기』 「증자문曾子問」 편은 증자와 공자 사이의 문답 형식을 취하는데, 이 두 편에 모두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더보기
P. 373~374 사실 유가만큼 국가체제, 또는 정치지배에 적합한 사상체계를 지닌 경우도 없을 것이다. 유가가 경전인 『시』·『서』를 교과목으로 삼는 한편, 국가나 정치에 관한 학문으로서 고전적 근거를 독점했던 것이 그러한 사실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시』·『서』·『역』·『예』·『춘추』로 불리는 오경五經의 성립 과정에 공자는 실제로 거의 관... 더보기
P. 21 체제의 이론이 된 유교도 출발점에서는 역시 반체제 이론이었다. 공자의 행동이 이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반체제 이론은 그것이 목적한 사회가 실현되면, 곧바로 체제 이론으로 전환한다 -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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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16년 4월 21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시라카와 시즈카 (白川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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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이(福井)현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소학교 졸업 이후 오사카(大阪)의 의원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상업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에 의원이 소장한 『국역한문대성』(國譯漢文大成) 등의 한적(漢籍)을 접하고 당시(唐詩)를 암송하는 등 독학했다. 상업학교에서 장기 결석으로 제적된 이후, 1928년 오사카 게이한(京阪) 상업학교 야간부에 편입해 1930년에 졸업했다. 1933년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전문부 국한학과(國漢學科)에 입학했으며, 이 무렵 고대 문자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5년에 리쓰메이칸 중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이 무렵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와 궈모뤄(郭沫若)의 『복사통찬』(卜辭通纂), 『양주금문사대계고석』(兩周金文辭大系考釋)의 색인을 만들면서 읽기 시작했다. 1941년 리쓰메이칸 대학 법문학부 한문학과에 입학했으며, 이 무렵부터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등의 고증 문헌을 섭렵했다. 1943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같은 대학 예과 교수가 되었으며, 1944년에는 전문부 교수로, 1948년에는 문학부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해에 논문 「복사(卜辭)의 본질」 등을 발표했으며, 1954년에 같은 대학 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이 당시 타이완의 둥쭤빈(董作賓), 중국의 후허우쉬안(胡厚宣) 등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1955년 민간 동호회 ‘박사’(樸社)에서 월 1회 서주금문(西周金文) 독회를 시작했으며, 『갑골금문학논총』(甲骨金文學論叢)이 유인물로 나왔다. 1960년에는 『고본시경연구』(稿本詩經硏究)가 유인물로 출판되었다. 1962년 『흥(興)의 연구』를 박사 논문으로 교토 대학에 제출해 학위를 취득했으며, 「금문통석」(金文通釋)을 『백학미술관관지』(白鶴美術館館志)에 발표하기 시작해 1984년 56집으로 완간했다. 1969년 『설문신의』(說文新義)를 박사(樸社)에서 계간으로 간행하기 시작해 1974년 전 16권으로 완간했다. 1970년에 『한자』(漢字, 岩波新書)와 『시경』(中公新書)을, 1971년에는 『금문(金文)의 세계: 은주(殷周)사회사』(平凡社)를 출간했다. 1972년 타이완의 고궁박물원을 견학한 바 있으며, 이해에 『공자전』(孔子傳)과 『갑골문(甲骨文)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이 외에 저서로 『중국의 신화』(1975), 『중국의 고대문학』(1976), 『한자백화』(1978), 『초기 만엽론』(初期萬葉論, 1979), 『중국 고대의 문화』(1979), 『중국 고대의 민속』(1980), 『후기 만엽론』(後期萬葉論, 1995), 『시경아송』(詩經雅頌, 1998), 『상용자해』(常用字解, 2003)를 비롯해 유명한 한자 3부작인 『자통』(字統, 1984), 『자훈』(字訓, 1987), 『자통』(字通, 2003) 등을 출간했다. 1976년 교수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연구 활동을 계속했으며,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 ‘문자강화’(文字講話)를 펼치기도 했다. 90세가 되던 2000년 『시라카와 시즈카 전집』(白川靜全集, 전 12권)이 출간되었으며, 2002년부터 5년간 다섯 권으로 『시라카와 시즈카 문자강화(文字講話)』를 펴내기도 했다. 2004년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고, 2005년에는 모교 리쓰메이칸 대학에 ‘시리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白川靜記念東洋文字文化硏究所)가 설립되었다. 2006년 10월 30일 타계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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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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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및 역사 번역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고려대학교에서 한문학으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일본 도쿄대학과 간사이대학의 외국인연구원을 지냈고,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편역서로 『논어고의』, 『노자와 도교』,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아함의 탄생』, 『중국출판문화사』, 『도교사상』, 『스포츠로 보는 동아시아사』, 『동남아시아사』, 『한 무제』, 『공자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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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간사이 대학에서 문화교섭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조선통신사와 일본 지식인의 상호 인식 연구>, <조선 후기 지식인이 본 아메노모리 호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