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최명길 평전 1586-1647 | 한명기 | 2019

최명길 평전 | 보리 인문학 1 | 한명기 | 알라딘


최명길 평전  |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은이)보리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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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보리 인문학 시리즈 1권. 전작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깊이 있게 풀어 낸 저자 한명기가 7년 만에 그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올바른 이상주의자였던 문제적 인물, 최명길.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저자는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고는 한다”며 그 까닭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들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하여 2018년, 2019년을 지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처럼 대하는 일본에,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명길은 바로 비슷한 혼돈의 시기에 “망국의 위기로 내몰렸던 조선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보여 준 용기와 유연함, 책임감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더 나아가 새로운 해법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속, 이 위기의 시대에 최명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5


1장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다
문제적 인물 최명길 21
약골, 과거에 합격하다 29
병약에 발목 잡힌 벼슬살이 39
주역에 통달하고 양명학을 접하다 47


2장 최명길에게 큰 영향을 남긴 사람들
아버지 최기남 65
장인 장만 77
절친 장유 91


3장 인조반정에 가담하다
짧았던 광해군 시절의 벼슬살이 105
재기의 기회가 찾아오다 112
인조반정에 참여하다 119


4장 반정 직후의 활약
최명길을 인정한 김장생의 편지 129
득의의 시절 137
박엽을 구명하려 애쓰다 146


5장 이괄의 난과 최명길의 분투
배금을 표방하되 실천은 유보하다 161
반란을 진압하려 고투하다 168
노출된 정권의 취약성, 높아진 최명길의 존재감 176


6장 개혁과 왕권 강화를 위한 노심초사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 187
사회 경제 개혁을 주도하다 196
원종 추숭에 앞장서다 208


7장 정묘호란과 최명길
‘시한폭탄’ 모문룡, 후금의 침략을 유발하다 225
돌격하는 후금군, 지리멸렬한 조선군 237
최명길, 화친을 주도하다 244


8장 전쟁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다
제국이 된 후금, 흔들리는 형제 관계 255
홍타이지의 칭제와 강화 파탄 267
홀로 황손무의 충고를 이해하다 279
척화신들과 격렬한 논전을 벌이다 292
최후까지 화친을 위해 부심하다 306


9장 병자호란과 최명길의 고투
목숨을 걸고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들여보내다 319
춥고 배고픈 산성, 참수 대상자로 지목된 최명길 328
최명길은 항복 국서를 쓰고, 김상헌은 그것을 찢다 336
성하의 맹을 주도하여 종사를 지켜 내다 350


10장 전란의 상처를 치유하다
백성들의 고통, 인조의 사과 성명 367
인조를 위로하고 조정을 이끌다 375
‘소년 가장’ 최명길 383
다시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 392
약소국의 신하, 대청 외교의 일선에 서다 403
일본과 우호를 유지하려 부심하다 416


11장 피로인과 속환 여성을 보듬다
피로인의 참상과 속환 원칙 433
귀환 여성들을 보듬으려 했던 최명길 441


12장 명과의 밀통을 책임지다
명에 대한 부담감, 삼학사에 대한 미안함 453
독보를 보내 명과 밀통하다 460
밀통이 발각되어 청으로 소환되다 467
인조의 의심에도 인조를 보호하려 애쓰다 474


13장 김상헌과 화해하다
김상헌을 양주학이라 비판했으나 487
심양에서 김상헌과 화해하다 498


14장 귀환, 냉랭해진 인조, 그리고 죽음
청에서 귀환하다 517
인조와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다 523
죽음 534


15장 최명길 평가의 우여곡절
진회의 죄인, 또는 매국노 543
‘정강의 변’과 진회 555
남송의 강화와 조선의 강화 차이 561
최명길의 재발견 567


책을 마치며 580


부록
최명길 연보 596
주석 610
참고 문헌 647
찾아보기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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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명기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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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 더보기

최근작 : <원치 않은 오랑캐와의 만남과 전쟁>,<최명길 평전>,<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총 40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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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2026.8>,<채봉감별곡, 장화홍련전>,<똥깨비 도니와 반짝반짝 마을 잔치>등 총 733종
대표분야 : 교육학 13위 (브랜드 지수 111,677점), 청소년 인문/사회 27위 (브랜드 지수 36,51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모두가 그가 연 문을 통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모두가 그를 비난했다.”

세상 사람 모두를 살렸지만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의 비난을 받았던 사람.
하지만 꺾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
그 한 사람의 이야기, 《최명길 평전》.

사느냐 죽느냐 ― 명분과 실리, 또는 화친과 척화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명분일까, 실리일까?
병자호란은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에게 재앙이었다.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넘어 단숨에 서울로 내달렸고, 놀라 달아난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다. 산성 밖에서는 날마다 백성이 죽어 나갔다. 화친 말고는 살길이 없는데 죽어도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척화파들 속에서 최명길은 홀로 화친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나라를 구했고 백성을 살렸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최명길은 끝내 화친의 문을 연다. 그리고 모두가 그 문을 통해 살아남았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 역사의 문을 열었을까?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그랬다. 최명길은 종사의 문이 닫히고 백성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온몸을 던져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였으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에 역사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변변찮은 능력을 지닌 필자가 용감하게도 최명길 평전을 쓰겠다고 덤비게 된 동기다. (‘책을 내면서’에서)

최명길, 나라를 구한 외교관이자 백성을 살린 정치가
화친으로 나라를 구한 조선의 정치가 최명길. 그 삶을 오롯이 평전으로 엮었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청과 화친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두가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외칠 때 홀로 화친을 이끌어 나라를 구했지만, 그 때문에 척화파 김상헌과 내내 비교되면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 진회보다 더한 간신, 삼한을 오랑캐로 만든 자, 소인, 매국노…….
이 책은 그런 통념 너머 진짜 최명길의 모습을 되살린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뛰어난 정치가요, 개혁가요, 외교관인 최명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죽음을 외칠 때 찢겨진 삶을 묵묵히 주워 맞추는 올곧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하지만 꼭 알아야 할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이야기, 《최명길 평전》.

김상헌이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 최명길은 그것을 주워 다시 맞추며 말했다.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대 조정에서 시종일관 ‘찢어진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이었다. 종이에 쓴 국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흩어져 버린 종이 쪼가리를 다시 맞추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문에서)

저자 한명기, 전쟁 속의 사람을 말한다!
전작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깊이 있게 풀어 낸 저자 한명기가 7년 만에 그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저자는 최명길과 관련된 숱한 사료와 논저, 중국과 일본 자료들까지 훑으며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길어 냈다. 최명길 집안에 내려오는 문헌들을 구해 읽고, 직접 최명길의 후손을 만나 선대의 이야기를 듣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바탕 위에서 저자는 최명길의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받았던 스승과 벗, 유연한 사상의 바탕이 된 양명학과의 인연, 인조반정의 공신이 되어 개혁 의지를 다지던 시절을 거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 앞에서 꿋꿋하게 나라와 백성을 지켰던 한 사람의 삶과 고뇌를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체로 적어 나간다.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최명길은 버려라. 그 모습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주화파를 넘어서 용기와 유연함,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지녔던 최명길은 가장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정치가이자, 헛된 명분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외교관이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최선의 대안을 찾던 경세가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올바른 이상주의자였던 문제적 인물, 최명길.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다시 읽는 해법
저자 한명기는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고는 한다”며 그 까닭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들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하여 2018년, 2019년을 지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처럼 대하는 일본에,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명길은 바로 비슷한 혼돈의 시기에 “망국의 위기로 내몰렸던 조선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보여 준 용기와 유연함, 책임감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더 나아가 새로운 해법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속, 이 위기의 시대에 최명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바야흐로 다시 시작된 미일과 중러 사이 패권 경쟁의 여파가 한반도로 마구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이 격랑을 어떻게, 무엇으로 넘어설 것인가? 오늘 우리는 또다시 최명길을 호출해서 그의 고민과 지혜를 반추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현실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하지만 17세기 초반,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청 사이의 대결에 휘말려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투했던 최명길의 생각과 행적들은 여전히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돌아보고 반추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책을 마치며’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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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병자호란에는 최명길이 있었다. 최명길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 나아가 우리 민족의 진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명길에 관한 책이 드문 상황에서 학자로서 저자는 학계와 국민들에게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필독을 권한다.
삶의_지혜 2021-04-27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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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의 최명길은 지금 이 시대에도 간절히 요구되는 정치인이다. 냉철한 사리판단에 의거하여 인생을 걸고 행동하는 이가 100명 중 1명이나 될까. 지금이나마 위대한 인물 촤명길을 알아보게 되어 기쁘고, 이렇게 훌륭한 책을 내준 저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2022-07-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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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쓰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중국인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최명길이 잘나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의 실천에 노력하였는지 이해가 조금이나마 깊어졌습니다.
흑마늘 2022-07-1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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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와 주화 - 오늘에의 교훈



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외친다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균형감, 전략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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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3-28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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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은 어떤 인물인가?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그랬다. 최명길은 종사의 문이 닫히고 백성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온몸을 던져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였으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에 역사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변변찮은 능력을 지닌 필자가 용감하게도 최명길 평전을 쓰겠다고 덤비게 된 동기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인간 최명길을 새롭게 조명하다





책의 저자 한명기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곤 한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이다. 열강의 입김과 외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이른바 복배수적腹背受敵의 조건 때문이다. '복배수적'이란 배(腹, 정명)와 등(背, 배후) 양쪽에서 적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엔 정면의 중국과 배후의 일본이 조선을 위협하는 강국이자 강적이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당시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1636년 2월 16일, 중국 심양에서 홍타이지皇太極가 청靑의 황제위에 오르자, 청은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 '아우의 나라' 조선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고자 했다. 용골대를 중심으로 한 사신단은 조선 땅 의주에 도착했다. 그동안 명을 숭상했던 조선의 성균관 유생들은 당연히 반대의 기치를 들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을 오랑캐, 홍타이지를 '오랑캐 추장'이라 불렀고, 심지어 '붉고 큰 돼지'란 뜻을 지닌 '홍타시洪(紅)打豕'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사신단 일행의 목을 치라는 살벌한 분위기를 느낀 용골대龍骨大는 '추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한 채 심양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 후환을 불러왔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의 기마군 선봉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해왔다. 이들은 약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단 5일 만에 주파, 곧 한양성으로 들어올 조짐을 보인다.



이에 화들짝 놀란 인조는 12월 14일 강화도로 피신길에 나서지만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다는 급보가 날아들고, 청군의 선봉이 현재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일대를 지나 무악재 방면으로 접근 중이라는 보고였다. 제대로 된 접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조만간 한양 도성 한복판에 청군의 선봉이 들이닥칠 상황이 되자 인조와 신료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간 청과 일전을 벌이자던 척화파斥和派들도 아연실색이었다. 이때 "청과 화친하지 않으면 조사와 백성을 보전할 수 없다"는 말을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이조판서 최명길이 무악재로 나아가 청과 화친을 제안해보겠다고 나섰다. 물론 이는 꼼수였다. 인조가 피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참이었다. 당시는 전시 상황인지라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곧 죽음이었다. 때문에 인조가 특별히 붙여준 경호원 스무 명도 모두 숭례문 밖을 나서자 도주해버리고 말았다. 최명길은 단독으로 무악재를 향했다. 결과적으로 최명길의 책임감과 용기있는 행동으로 인해 인조와 주요 신하들이 남하산성으로 도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최명길(1586~1647년)의 바람과는 달리,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정사를 보면서 척화파들과 함께 청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김상헌(1570~1652년)을 중심으로 한 척화파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나라가 패망할지라도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햇다. 당시 남한산성의 상황은 처참햇다. 청나라의 군대에 포위되어 1개월 여 지난 1637년 1월 중순 매서운 추위로 병사들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졌고, 군량미는 하루하루 줄어들고 잇엇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외부 구원병이 완전 끊겨 버렸다는 점이다. 홍타이지는 남한산성의 함락은 시간 문제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안다. 그렇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항복함으로써 조선의 국은은 이어갈 수 있엇다.



김상헌의 주장과는 반대로 최명길은 인조가 명과의 의리 대문에 종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며, 도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인조를 계속 설득했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당시 조선의 관료 사회에서 "청은 오랑캐"라는 인식이 확고했던 때라 최명길의 행보는 외로운 분투였다. 이때 인조가 최명길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최명길의 공적을 조선 중기 문신 이시백(1581~1660년)은 8가지를 꼽았다. 인조반정의 참여, 인조의 부친 정원군을 국왕으로 추숭, 단신으로 무악재에서 협상, 병자호란 때 화의 주도로 나라 보전, 청의 조선군 징발을 막음, 당파에 물들지 않음, 타인의 혈육을 따뜻하게 대함, 명과 밀통한 뒤 책임을 지기 위해 다시 목숨을 걸었던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거나, 엄청난 비난과 매도를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이 끝난 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최명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명분을 내팽개친 소인小人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심지어, '진회秦檜보다 더한 간신'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참고로, 진회는 남송 시절 여진족인 금나라와 화친을 주도, 명장 악비까지 살해했던 악명 높은 간신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은 이정도로 최명길을 폄하했던 것이다. 반면에 항복한 인조를 버리고 낙향했던 김상헌은 '조선의 정사正士이자 영원한 사표'가 되었다. 이 얼마나 웃기는 대비인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인 듯 싶다.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 일방적으로 북핵을 옹호하는 듯한 중국은 한반도를 놓고 미국과 무역 및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과거 일제 식민지 치하의 피해보상 문제를 놓고 대치하던 일본은 수출 규제라는 경제 보복에 뛰어들었고, 러시아는 안보 공백을 테스트하듯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북핵이라는 리스크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 병자호란 때나 지금은 비슷한 위기 상황이다. 과거 조선이 직면했던 혼돈의 시기에 최명길은 패망의 위기로 내몰렸던 나라를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당시에 보여 주었던 용기와 책임감, 희생정신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값진 가치가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더 진일보한 해법을 우리들에게 던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김상헌이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 최명길은 그것을 주워 다시 맞추며 말했다.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대 조정에서 시종일관 '찢어진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이었다. 종이에 쓴 국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흩어져 버린 종이 쪼가리를 다시 맞추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전도의 굴욕 https://youtu.be/eWupsi0tFlM



남한산성에 갇혀 청과의 화친을 주도하는 최명길을 믿고 의지하던 인조는 당시 성밖으로 나가 청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청의 인질로 잡혀가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했을 것이다. 인조의 출성出城은 사실 민감한 부분으로, 오직 인조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마침내 인조가 출성을 결심, 이후 최명길에게 부여된 임무는 홍타이지로부터 인조의 안전을 확약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명길은 혹 심양으로 연행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인조가 자결할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마침내 홍타이지는 답서로서 최명길의 요청을 수락했다.





삼전도비



사실 청의 전신인 후금後金은 누르하치가 이끌면서 명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을 키워나갔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국정을 다스리면서 강성해진 후금과 화친이라는 실리 외교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후금과의 외교책에 다소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이자 후금은 인조5년(1627년) 광해군의 폐위 문제를 구실 삼아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이때 호란은 '형제지국'을 맺으면서 수습될 수 있었다.



한편,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최명길은 반정이후 호패법과 군적법을 시행하는 업무를 주도하면서, 조선의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과 취약한 국방력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후금, 즉 청에 맞서기보다는 화친을 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도 당시 조선의 현실과 후금의 군사력을 견주어볼 때 화친만이 해결책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정묘호란에 참전했던 도원수 장만과 장수 정충신의 증언을 들어봐도 당시 후금의 조선 침략 목적은 명확했다. 즉 그들은 조선의 정복이 아닌 화친 강화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그릇된 판단은 나라와 국민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미리 잘 대응했다면 병자호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여전히 '끼여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갈수록 엄혹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볼 때 만약 최명길이 지금 시대에 재림한다면 과연 그는 어떤 처방을 내릴까? 이 책의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그토록 척화론 앞장 섰던 김상헌도 나중에 최명길의 충정을 높이 평가했음을 전하며 이런 말로 책을 마친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현실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하지만 17세기 초반,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청 사이의 대결에 휘말려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투했던 최명길의 생각과 행적들은 여전히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돌아보고 반추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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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0-01-02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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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한찬남이다. 한찬남은 과거 합격 이후 광해군 정권에서 출세 가도를 달려 도승지,대사헌 , 형조판서 같은 관직을 역임했고, 대북파의 핵심 인물로 권력의 정점에 섰다.권신 이이첨 (1560~1623) 의 심복이었던 그는 1613년 (광해군 5) 계축옥사ㅅ가 발생하자 영창대군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한찬남은 이아 '폐모론'까지 주도하면서 조정에서 남인과 서인들을 몰아내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36-)


반정 성공 이후 공신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질 것을 예측했던 것일까? 당시 충청도 연산에 머물던 서인의 원로 김장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수신인은 이귀, 김류, 장유, 최명길처럼 모두 반정공신들이었다.김장생은 이들 네 명 모두의 스승뻘로 거사가 성공할 경우 반정공신들이 조정으로 가장 먼저 모셔 오려 했던 인물이다. (-131-)


'안민'과 '토적'을 위한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나라 전체의 인민과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그를 위해 최명길 뿐 아니라 당시 관인들이 강조했던 것이 바로 호패법,군적법, 양전을 실시하는 것이었다.호패법과 군적은 모두 백성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정책이었다.임진왜란과 광해군 정권의 실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거주지에서 도망한 자들, 또는 죽은 자들로 말미암아 생긴 군대의 부족 인원을 보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폑단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201-)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사 기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전에 강화도에 있을 때 대감이 야간에 습격하는 일을 가지고 논계까지 했으니 정말 가소롭습니다.오늘의 일은 전하께서 심복대신과 더불어 은밀히 의논하여 결정하시되 승지와 내관도 듣지 못하게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300-)


연소한 척화신들이 천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병화를 촉진시킨 잘못은 있지만 청론을 통해 원칙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최명길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오랫동안 유배지에 둘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역시 환도 이후 심하게 분열되었던 조정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조처였다. (-390-)


2020년이 밝았다.경자년 새해에는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다.국회의원이 되려면 그들은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정치적인 협상조건도 분명 필요하다. 법을 만들기 때문에 법과 정치를 함께 알아야 하며, 여기에 덧붙여야 하는 거이 역사에 대한 이해와 통섭이다.남들보다 더 멀리 보되, 먼저 앞서 나아가지 않는 것, 그 과정에서 함께 아우르면서 나아가야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인 그릇을 갖춰 나갈 수 있다.물론 그 과정에서 정적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이들을 가감하게 쳐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그건 지금이나 과거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인조 임금때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역사속의 주요한 사건, 인조임금과 삼전도 굴욕 하면 떠오르는 인물, 최명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작금의 현실로 비추어 볼 때 상당히 고무적인 부분이다.


이 책은 인조의 반정공신 최명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시대에 병약하고, 허약했햇던 최명길은 정치에 입문하여 임금의 곁을 보필하는 것보다는 학자로서 은둔하면서 공무하는 것이 체질상 맞았다.하지만 최명길은 예기치 낞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척화파와 주화파 사이에 끼여서 자신이 해야 할,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는 외교적인 역할을 간과할 수 없었던 거였다.이 책을 읽으면서, 최명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의 현실로 비추어 볼 때 병자호란과 같은 큰 전쟁에 일아날 거라고 생각할 때, 미국이 아닌 일본의 손을 잡는다면, 어떤 사단이 벌어질 지 뻔한 시나리오가 보여지게 된다.즉 인조 임금 때 지금의 미국이 명나라였고, 지금의 일본이 청나라였다.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청나라를 오랑캐라 지칭하고 있다. 임금 밑에 있었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청나라를 오랑캐라 생각하였고, 명나라의 힘을 믿고 있었다.하지만 시대는 명나라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고, 최명길은 청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그건 20명의 신하중 19명이 명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할 때 최명길 혼자만 청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허공에 외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나라와 손을 잡고 명분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청나라와 손을 잡고 나라를 살릴 것인가 갈림길에서 최명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청나라와 화친을 맺게 되었고, 삼전도 굴욕이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소멸되지 않았고, 인조 임금은 더 큰 치욕을 감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만약'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늘어 놓는다. 최명길이 바라보는 역사적인 안목이 틀리고, 명나라가 청나라를 이겼다는 가정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최명길의 역사적인 사실은 소멸될 수 있고, 그들 ,즉 척화파의 말은 정답이 되는 거이다. 주화파에 서서,양명학을 공부했던 최명길의 남다른 안목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최명길의 생각과 외교적인 성과가 맞았고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 나머지 사람들, 즉 주화파가 아닌 척화파의 신하들 척화신이 최명길의 업적을 지우려 했던 것이다. 최명길에 대한 역사적인 편견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만 척화파 자신들의 과오는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는 반복되며,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판 최명길은 또 나타난다는 것이다.그럴 때 최명길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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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20-01-0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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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이 책의 저자 한명기 교수는 직접 강연을 들은 적도 있고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도 접한 바 있어 친근한 느낌이 있다.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세와 전쟁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활동하는 분으로 알고있다.

사드사태에 이은 미중 무역갈증 속에서 우리나라의 처지나 향후 택하여야할 입장의 선택을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병자호란이나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많이 언급되면서 이분의 연구결과나 강연이 무척 인기가 높아지는 것 같다.




영화로도 소개되었지만, 병자호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최명길이다.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중요한 인물이지만 유성룡이나 이순신장군에 비해 잘 알려지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승전하고 침략군을 격퇴한 임진왜란의 경우보다 패전 속에서 나라를 관리한 최명길의 노력이 더 중요하고 연구가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안타운 면이 많았는데,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한명기 교수의 평전이 출간되어 무척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한명기 교수가 상당히 유머스러운 분이고 강연도 재미있지만 최명길 평전은 무척 담담하게 쓰여져 있다. 국난 속에서 홀로 나라를 무너지지 않게 노력한 인물이라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갈 여지도 없지만, 무척이나 외롭고 쓸쓰하면서도 고달픈 한 평생을 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무척 강하다.




영화 남한산성 등으로 척사와 화의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했는가에 대한 논쟁이나 두 방식이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각기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이야기 많이 오갔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척사파의 생각은 국제 역학관계나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몽상적인 사고일 뿐이며,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한 사람은 최명길 한 사람뿐이었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욱 굳건해 졌다.




이 책을 통해 접한 국제정세 및 나라의 현실에 무지하면서 대의명분에 대해 고집하는 척사파의 모습은 2020년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대의명부이라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의가 아니라 사대주의와 개개인의 이기심의 발로라는 점까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이 척사파들이 오히려 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국가와 백성을 위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오늘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무지하여 그릇된 판단을 한다기 보다는 빈약한 자신의 지식만을 믿고 꾸준히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고 시야가 좁은 전문가나 지식인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울나라는 역사로 부터 교훈을 아직까지 얻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스스로 대안이나 방향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최명길의 생각이나 국정운영 등에 비판만을 한 위치에 섰다는 점도 오늘날 전혀 바뀌지 않은 점이다. 그 시대의 최명길만큼 현재 국정 운영도 무척 힘들고 외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은 황손무라는 명나라 사람이다. 결국은 명나라의 이익을 위해 조선이 자주적인 외교를 하고 좁은 시각에서 나온 명나라의 전술에 휘둘리지 말 것을 충고하였는데, 자기 나라만의 이익만이 아닌 국제정세 속 각 나라의 상황을 꿰뚫어 본 날카로운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최명길의 생각이 이와 동일하였다는 점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시 명나라는 이미 국운을 다하고 청나라가 강성하여 대의명분이 아닌 실리만 생각하였다면 판단은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세는 판단하기 무척 어려워 보다 많은 정보와 연구, 냉철한 판단이 모두 필요할 것이며, 최명길이 먼저 걸었던 그의 생각과 외교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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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2020-01-27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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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파 최명길 이야기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읽기 힘들까 걱정했는데 최명길의 일대기를 그린 일종의 이야기책이라 하루만에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평전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것 같다.

너무 세세하게 주인공의 일대기를 사료에 맞춰 기술하고 또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당시 정세를 판단하기 때문인지 냉정한 비판이 결여되어 찬사 일색이 되고 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이 재밌으면서도 김정희가 동아시아 최고의 예인이 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전작 <병자호란>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최명길의 일생을 평가할 때 병자호란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일텐데, 그래서 약간은 지루했다.

얼마 전에 읽은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는 최명길을 비롯한 조선 측의 주화 노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선을 굴복시키러 온 청 태종이 급하게 강화를 맺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사정 곧 천연두의 위협을 중요하게 언급해서 대조가 된다.

구범진 교수는 저자가 인용한 나만갑 등의 책이 당시 전쟁 상황을 정확히 기록했다기 보다 과장과 전해 들은 말이 많다고 평가절하했는데 아무래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점은 명분론은 한국인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 심성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패권국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한반도 사정을 걱정하면서 최명길처럼 현실적인 외교적 판단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명분론이 우세한 듯해서 안타깝다.

역사책에서 대명의리론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조선 사대부들은 마치 명나라를 우리와 같은 한 나라로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는 점이다.

책에도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신들의 당시 발언들이 많이 등장한다.

명나라는 부모의 나라이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줬으니, 지금 오랑캐의 침략에 결사항전 하여 안 되면 모두 옥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과연 자신들의 옥쇄까지도 염두에 둔 주장이었을까?

삼학사들이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하긴 했지만 그 외 몇이나 죽었나 모르겠다.

기개로 봐서는 인조가 출성한 이후 전부 자결을 하던지 아니면 명나라로 망명해서 청과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인물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상헌마저 위선적으로 자결하는 제스처만 취한 후 의리를 지키지 못한 군주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빠져 나간다.

물론 김상헌을 비롯한 안동 김문이 노론의 중심축이 되는 과정은 단순히 비아냥 거릴 수준이 아니라 당대의 성리학 관념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조선 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지 다른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최명길의 후손은 소론이 되어 그 손자가 숙종 때 영의정까지 역임했으나 결국 주화파라는 비난을 받고 김상헌처럼 받들어지지 못했다.

그 역시 주자학을 익히며 대명의리론을 온 몸으로 받드는 성리학자였음에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제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화합하고 협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항복하는 국서를 찢기만 하면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되니 붙이는 굴욕적이면서도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약한 나라가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맞다.

아마도 당시 조선인들로서는 청이 금나라처럼 일시적으로 흥기하다가 곧 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 후 중국 전역을 통일할 뿐더러 중앙 아시아와 티벳까지 점령해 최고의 판도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문화 강대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너무 강력한 상대를 만난 게 불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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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20-04-2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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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최명길 평전

인문교양일반 / 한명기 / 보리출판사















역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역사팩션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는 하는데 이번엔 팩션소설이 아니라 인문책을 읽어보게 되었네요, 사실 처음에 최명길 했을때 잉? 누구지 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책 소개글을 읽게 되었고, 2017년 영화 < 남한산성 >에서 이병헌이 연기했던 그 최명길이였더라구요. 사실 저는 역사속에서 가장 싫어하는 찌질이 두 왕이 있는데 바로 선조와 인조 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하지만 그 두 왕과 얽힌 이야기는 일부러 많이 읽지를 않아서 처음에 최명길이 누군지 몰랐더랬죠.

예전에 보았던 < 남한산성 >영화를 떠올려보면서 그때 영화를 보면서 최명길역의 이병헌의 주장에 공감을 했었는지, 김상헌역의 김윤석의 주장에 공감을 했었는지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저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이병헌의 주장에 힘을 실었던것 같습니다

자!~~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외교관이였던 최명길이 왜 매국노 간신이라고 불리워졌는지 궁금하시다면 고고 ~~










망국의 벼랑 끝에서 나라를 구한 외교관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린 정치가

최명길의 진면목이 되살아난다

- 책 표지 문구











최명길( 1586 ~ 1647 )​은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가장 암흑기 시기에 활동한 정치가(외교관)이자 학자입니다.

​1636년 12월 인조 14년 . 청 태종이 16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오자 인조는 강화로 피신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청나라의 군대의 진격에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발이 묶이게 되는데요, 이때 최명길은 자신이 무악재로 나아가 청군을 만나 화친을 제의하면서 진격을 늦춰보겠다고 지원합니다. 적진으로 홀로 들어가 진격을 멈춰 놓음으로써 인조가 그 사이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버는데 성공한 것도 다 최명길의 외교술덕분이였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에서 청군에게 포위된 지 한 달여 지난 남한산성의 상황은 처첨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고 얼마나 가슴아프고 막막하던지.. 군량은 바닥을 드러내는데 추위에 병사들은 얼어죽거나 동상에 쓰러지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장병들 사이에서는 항복하자는 시위까지 벌어지는 이때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이 계속되고, 그 중심에 김상헌과 최명길이 있습니다,

바로 척화론의 대표주자인 김상헌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라가 망하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주화론을 이끈 최명길은 조선의 임금이 명을 위해 종사를 포기할 수 없으며 무고한 생명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명예 따위는 개의치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인조를 설득합니다.

















명분과 의리의 김상헌이냐, 현실과 변통의 최명길이냐






<남한산성> 영화속에서 끝없이 대립하며 논쟁을 펼치는 두 신하의 대립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둘다 맞는 것 같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러나 역사는 그때 최명길의 선택이 옮았음을 말해줍니다, 만약 그때 명분과 의리로 끝까지 저항을 했더라면은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조는 결국 최명길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그로인해 ' 삼전도의 굴욕'이 후세에 남았지만 말입니다, 홍타이지( 붉고 큰 돼지)에게 세번 큰 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던 치욕의 역사로 인해 최명길은 병자호란을 계기로 '진회보다 더한 간신"이라는 오명을 쓰게 됩니다, 명분과 의리를 내팽개친 소인이라는 오명도 뒤집어 쓰게 되는데 모두가 그가 연 문을 통해서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모두가 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항복 직후 인조를 버리고 낙향했던 김상헌은 ' 조선의 정사이자 영원한 사표'로 기록하고 추앙받는데요. 정말 최명길이 진회보다 더한 간신일까요? 사상 최악의 간신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요? 세월이 흘러 역사를 다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 원칙과 현실이 나라가 무너지기 일보직전에서 부딪혔을 때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지 이제 우리는 압니다,

예전에는 잘 몰랐었던 척화론과 주화론, 김상헌과 최명길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서 바로 알게 되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라서 선뜻 도전하기 어렵게 다가오지만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 같습니다,

그때 그 위기의 순간이 현재 우리나라의 온갖 난제가 뒤엉킨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위기상태에서 과연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최명길 같은 뛰어난 정치가자 외교관이 있다면은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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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2020-01-3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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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서평 :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기 위해







Ⅰ. 『최명길 평전』을 읽고 :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책






역사를 연구하고 배워야 하는 까닭을 물으면 아마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역사라는 학문의 존재 의의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의미 있고 구체적인 교훈을 찾기란 어렵다. 그 이유는 역사 속 사건이 현재 우리가 부닥뜨리는 장애물이나 사건들과 유사할 수는 있어도,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황이 현재와 비슷해 보이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과거의 사건은 현재와의 공통점을 상실한다. 그럴 것이 과거의 가치관, 사상, 대외관계, 군사, 기술 등 모든 요소들은 현재와 다르기 때문이다. 기반이 다르니 사건 역시 같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며 대중들에게 자신이 찾은 역사 속 교훈을 전파하려는 사람들은 그 사건을 매우 추상적이고 단순하게 만든다. 누구는 선이 되고 그 반대편은 악이 되고 어떠한 행동은 현명한 행동이, 다른 행동은 무지의 소산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학자들이 그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도, 악도, 유능함도 무지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훈을 주겠다는 미명 아래에 세세한 역사적 사실은 희생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세세함이 사라질 때 우리는 별 특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




병자호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광해군을 선으로, 인조를 악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생각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유능함으로 인조 대의 외교 정책을 무지 속에 서 나온 행동으로 이어졌다. 실상을 살펴보면 광해군도 선이 아니고, 인조가 악인 것도 아니며 인조 대의 외교 정책이 광해군 대의 외교 정책과 별반 차이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인조 대에 친명배금 정책을 폈다고 생각해 대청관계가 원만하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나, 대청관계가 안 좋게 흘러간 것은 맞지만 인조 대에도 조선은 후금과 청에게 계속해서 저자세로 나섰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군신 관계는 거절했으나, 정묘호란 이후 청과 맺은 형제 관계를 계속해서 강조했다. 물론 인조의 선전 교서가 청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전쟁은 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선전 교서’ 역시 청이 의도적으로 전쟁의 명분으로 활용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이러한 세세한 뒷사정이 사라진 병자호란에 남아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외교나 대외관계는 중립적으로 펼쳐야 한다?” “국가는 국가의 정책에 알맞은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도 수준의 교훈을 얻으려고 굳이 병자호란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가? 그러한 교훈은 굳이 역사를 들추어보지 않더라도 주위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교훈이거나 사색을 통해서도 유추 가능하지 않은가? 인간이 이제껏 역사를 학습해 온 이유가 이 정도의 교훈을 얻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한명기 교수의 『최명길 평전』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교훈을 찾아야 하는지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명기 교수는 평전의 주인공인 최명길의 일생, 행보와 사상, 그러한 사상의 토대가 되어준 뒷배경을 세세히 분석해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최명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인조반정의 1등공신인 줄 알았었을까. 그리고 그가 양명학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보이며, 또 동시에 선대 개혁가들을 보면서 민생을 위해 여러 개혁책을 내놓았던 경세가인 줄을 알았을까. 한명기 교수는 최명길의 이러한 다각적인 면모들을 차례차례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에 좋은 교훈들을 전해주고 있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보았을 때, 우리는 더 수준 높은 교훈들을 얻어갈 수 있다. 병자호란을 통해 교훈을 얻고 싶다면, 병자호란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병자호란을 겪었던 인물들의 삶과 사고, 행동을 알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감이 오지 않아 추상적으로 그려내는 사건보다는 나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질 좋은 교훈을 얻어내는 방법일 것이다. 최명길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최명길이 이러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어떠한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지, 왜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는지 등을 말이다. 인물들과 나를 비교하고 그에 대해 생각한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교훈을 더 많이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명기 교수의 『최명길 평전』은 그러한 면에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Ⅱ. 『최명길 평전』을 읽고 : ‘평전’이라는 틀이 아쉬운 책






그러나 한편으로 『최명길 평전』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도 드는 생각은 ‘최명길’이라는 인물의 위치를 너무 부각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조정 대부분이 청과의 화친을 거부하는 척화파였고, 거의 그만이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고 이를 주도했다는 주화파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책 중의 묘사를 보면 저자가 최명길을 띄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17세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각 인물들이 어떠한 행보를 보엿는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고 있는 필자이지만, 책 속에서는 ‘최명길 대 척화파’라는 구도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최명길의 주장은 옳으나 다수의 반발로 인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명기 교수는 최명길의 주장이 조정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로 몇 가지 이유를 평전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는 조정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척화파, 둘째는 ‘반정’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해 왕위에 오른 인조의 ‘정통성’ 콤플렉스(Complex)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는 작년에 배운 병자호란의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매우 의문이었다. 첫째 부분은 꽤 길어질 듯 해 우선 둘째 부분부터 다루려고 한다. 과연 인조는 ‘정통성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확실히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과정이 반정을 통한 전 왕의 폐출이라는 점에서 그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고, 그가 이 때문에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생각을 강하게 지니는,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반정을 ‘전근대식 쿠데타’라는 생각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인조는 자신이 반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이는 정사 속의 신화들과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나는 점이다. 한 신하가 인목대비의 명을 받아 인조가 반정을 일으킨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인조는 자신이 직접 반정을 일으킨 것이라고 이에 답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자체가 후대 왕들에게 ‘선양’이 아닌 ‘추대’, ‘정복’ 논리로 해석되었던 것을 보면, 반정이 비정상적인 즉위 방법이라는 말에는 조금 의문이 생긴다.




척화파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척화파 중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삼학사들은 조정 내에서 그다지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3사의 언관직에 머무른 하급 관리들이었다. 물론 3사의 언관이기에 이들의 발언력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만을 가지고 그것을 조정의 전체 분위기라 하기에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최명길의 행보를 중점적으로 서술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최명길 대 나머지’ 구도를 설정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최명길이 조정 내에서 소수파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조선에 닥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벌인 여러 행보들을 서술하더라도 독자들이 최명길을 높이 평가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까는 그런 아쉬움이 많이 든다.






Ⅲ. 생각을 정리하며...






병자호란은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에 사람들은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병자호란을 끌어다가 대중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사람, 자신의 입지나 주장을 강화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이득에 맞게 병자호란을 해석하고 구체화하려는 경우가 많다. 광해군 대의 중립 외교 정책은 유능했으며 인조 대의 친명배금 정책이 무능했다는 식으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프레임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으로부터 하나의 교훈만이 도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시하게 생각해왔던 프레임을 조정하고 고쳐보고 종국에는 부수어가면서 새로운 교훈을 얻어나가야 할 것이다. 애초에 ‘프레임’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지도 모른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현대 사회에는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에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서는 안 된다.











한명기 교수의 『최명길 평전』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교훈을 찾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 유익한 책이었다. 몇 가지 아쉬운 법이 보이지만, 그것은 다른 분들의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알고, 자신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명길’의 평전뿐만이 아닌, ‘김상헌’이나 ‘인조’, ‘홍타이지’와 같은 다른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평전도 읽어보고 싶다는 사족을 덧붙이고 싶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삶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그것은 역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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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민 2020-01-0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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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 비견될 인물

임진왜란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병자호란에는 최명길이 있었다. 최명길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 나아가 우리 민족의 진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명길에 관한 책이 드문 상황에서 학자로서 저자는 학계와 국민들에게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조건은 조선시대나 현대나 여전하다. 최명길의 현실에 바탕을 둔 외교는 정치를 보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상과 현실에서 개인은 이상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가치를 위해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위정자들이 의리와 명분을 내세운다면 국민은 괴로움을 당하고 국가의 존망마저 위태롭게 된다. 국민들의 삶과 민족의 미래를 소수의 정치인들이 책임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정치외교는 철저히 현실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속에서 올바른 선택이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자세를 피하고, 실리보다 의리를 내세우는 정치인을 주의하여 그 결과를 평가하고, 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 차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최명길 평전은 제법 두껍다. 독서초보 혹은 중고등학생들이 선뜻 집어들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학문적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더 가벼운 책이 필요하다.

최명길의 외교정책이 오늘날에도 필요하다면, 최명길을 알리기 위해 명분 보다 실리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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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_지혜 2021-04-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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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나라로부터 위협을 받아왔다.



위급상황 때마다 충신들이 있어 다급한 불들이 꺼지고 유유히 대한민국이란 호칭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온 오늘날, 여전히 한반도는 그 특수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처럼 각 국의 이익이 얽히고설킨 시대는 더욱더 과거의 일들을 반추하면서 생각을 더듬어보게 한다.



남한 산성하면 책이나 영화를 연상하게도 하지만 일단 역사적으로도 잊으래야 잊을 수없는 한 부분 중에 하나다.

정치상황에서 명나라냐 청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인 이견이 첨예하게 벌어지면서 극한 상황까지 내몰렸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모든 대신들이 명나라와의 친분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할 때 오직 한 사람, 최명길은 주화파를 주장했다.

명분보다는 실리가 우선 이어야 함을 내세운 논리 앞에서 김상헌과 대척점을 이뤘지만 역사의 평가는 그 당시와 지금의 판단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최명길의 의견이 옳았음을 알게 된다.



그가 나라의 혼란한 시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감내했을 비난들은 남한산성에 갇혀 지냈던 그 모든 조정 대신을 비롯해 백성들, 임금까지 바람 앞에 촛불 신세가 된 그 고난에서 건져 올렸음에도 당시엔 김상헌이 지지를 더 받았다는 사실이 씁쓸한 감정을 일으킨다.



지금의 한반도 또한 과거의 그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드, 핵개발 문제도 있고 , 러시아, 중국, 북한에 둘러싸인 채 나라의 이익을 추구해야 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최선이 방법은 무엇인지를 놓고 연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최명길이 보인 결단과 행동들은 생각해볼 부분들이다.



모든 일에 '만약'은 없지만 특히 역사라는 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더욱 이러한 가능성은 없다.



그렇기에 최명길이란 인물이 보인 최선의 결단력과 행동들은 비록 과거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분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임금과 백성 모두를 살렸다는 점, 한순간의 결정이 나라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에 대해서, 작금의 우리들은 조상들이 해결해 온 결정들을 토대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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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노마드 2020-01-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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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최명길 평전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조선의 운명을 뒤흔든 침략사를 이야기하자면 왜란과 호란을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은 200년간 평화롭던 조선에 찾아온 조선의 명운을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결국 7년여의 전쟁으로 조선은 지도층의 무능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 뼈아픈 역사였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겪었음에도 조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인과 예, 그리고 효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어도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참혹함과 절망감을 몸소 느낀, 외교정책만큼은 중립외교를 펼쳐 격변하는 국외적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했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가 즉위하면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조선은 왜란의 슬픔도 다 극복하지 못한채 정묘호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력이 커진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면서 역사상 가장 치옥스러운 전쟁인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조선의 임금이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시절 태어나 인조반정을 이끌고 후 병자호란 때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에 들어가 결국 청나라에 항복할 것을 왜쳤던 최명길. 망국의 벼랑 끝에서 나라를 구하고자했으며 백성을 구하고자했던 그였지만 결국 역사서엔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라고 기록된 그의 생애를 후대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요.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과 끝까지 맞서 싸워야한다는 척화파와 청에 항복해야한다는 주화파 중 후자에 선두에 섰던 인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청과의 화친을 주장했으며 결국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음에도 끝내 매국노라는 오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렇게 알려진 최명길이기에 솔직히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기 전까지는 나역시도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고 과연 최명길이란 어떤 인물일까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최명길은 1568년부터 1647년의 격변의 시기를 살다간 인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청과의 전쟁인 병자호란에서 주화파를 대표한다는 것으로 청과의 화친을 중용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박대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명길의 삶은 시작부터 전란의 역사를 함께 끼고 살아왔습니다. 최명길이 태어나 세상에 발을 딛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의 화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조선 국토 대부분이 유린되었고 그 전후 복구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북에서는 누르하치가 주변 부족을 복속하면서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후 복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북에서는 이미 여진의 후금이 명의 북방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광해군은 명과 청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속에서 명은 청을 정벌하기 위한 징발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광해군은 강홍립으로 전장에서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말고 적당한 시기를 봐서 항복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분위기상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고 비열한 행위였고 재조지은의 은혜를 입은 조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큰 불충을 저지른 왕으로 인식되기에 이릅니다. 게다가 인목대비를 유폐하고(폐모) 영창대군을 주살하여(살제)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의 순리에 역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던 최명길이었습니다.

결국 최명길은 인조를 옹립하는 인조반정의 반열에 오르게됩니다. 그리고 김류, 이귀 등과 더불어 인조를 옹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을 성공시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조선은 불행의 연속을 걷게 됩니다. 전 정부와는 다르게 후금(청)에 노골적으로 적대행위를 하는 조선을 마냥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음해인 1624년 서북방비를 책임지던 부원수 이괄의 반란이 있었습니다. 이괄의 반란으로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기에 이르고 한양을 점령한 이괄은 더더욱 인조정부를 밀어붙이기에 이릅니다만 도원수 장만 등의 반격으로 반란은 진압됩니다. 하지만 인조 정부의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괄의 난으로 남은 잔당은 청으로 유입되어 청이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청은 조선을 정벌할 목적보다는 명을 정벌할 때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형제의 맹약을 맺는 조건으로 철군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제대로 생각이 박혀있던 위정자라면 이 때부터 국방력을 강화하든 아니면 외교로 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든 일단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며 결전을 치를 의사가 있었다면 그에 맞는 용병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당했던 조선은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나봅니다. 입으로는 와신상담과 결전을 외치지만 실상을 보면 사실 국가를 유지할 근간인 방어군조차 미비하던 때였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가장 기본 중 기본인 병참을 확보하여야하나 전국에서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군량미는 가장 형편이 좋은 곳이 3개월가량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 화전을 운운하는 자는 그 누구보다 군략과 병법 그리고 무예에 앞장서서 습득을 하여야하나 그저 ˝말˝뿐인 사대부는 계속해서 소위 말하는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명길은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북방의 이치에 밝은 자를 중용할 것을 조언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 정부의 패악질이었던 청과의 중립외교를 단지 본인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파기하는 순서를 밟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북방에 밝은 자를 중용하기 보다 박엽을 처형함으로써 오히려 기용하지 않고 단지 ˝명분˝만 위해서 그 누구보다 큰 실책을 저지르게 이릅니다. 또한 청을 정벌하기 위한 원병을 요구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감군 황손무는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의 실정을 온몸으로 체감한 뒤 조선은 본토를 방비할 병력조차 미비한 사실을 알고 괜한 도발을 하기보다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대책부터 세울 것을 조언하였으나 당시 집권층은 그 말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을 천시하였던 당시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200년 전 문종 기에 만든 화차로 임진왜란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교훈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잊어버리고 국방력 강화에는 전혀 관심없이 본인들의 안위에만 신경쓰는 정도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국방력을 보면 청과의 결전에서 군의 사기만 있다면 남한산성에서 유린 당할 만큼의 약체는 아니였습니다. 사실 병자호란에서도 청군과의 결전에서 일부 승리한 전투도 존재하였습니다.

결국 조선은 청의 심기만 계속하여 도발하여 병자호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략을 강구할 시간을 허비하고 사소한 문제에 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이도 저도 못하면서 결국은 가장 최악의 수를 두게 됩니다. 명분만 중시하는 성리학의 가장 큰 폐악이 아닐까라는 안타까움으로 계속해서 이 책을 봤었습니다. 가장 쓸모없는 학문이자 백성의 근간마저 뿌리뽑았던 최악의 적폐였던 성리학과 유교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사실이 사실 정말 안타깝습니다만 이 내용과 관련성이 없어서 여기에서 약간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병자호란에서 청군은 조선을 정벌할 수 있는 전략을 충분히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방어전술이 산성에 집중되어있음을 파악하고 산성을 우회하여 한양으로 바로 공격하는 전격전을 수립하였으며 조선 왕실이 유사시 도성을 버리고 바로 강화도로 파천하는 전략을 미리간파하고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함과 동시에 일부가 강화도로 피난에 성공할 시 보강된 수군전력을 이용하여 강화도를 공략하는 전략까지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무능한 정부는 정묘호란과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맙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한산성의 군량과 산세가 험한 것만 믿고 무작정 들어갔던 정부는 굶주림과 물자부족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군병은 추위에서 제대로 결전조차 하지 못한 채 얼어죽기에 이르렀으며 설사 전투를 수행한다고 해도 화약이 부족하였고 훈련이 부족하여 태반이 무의미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실제로 북문전투에서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조총수의 실수로 전군이 패닉상태에 빠졌고 청군의 기병대는 그대로 살육을 하였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위정자는 본인은 스스로 나서지 않고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전투를 운운하면 어찌 학문을 하는 자가라는 핑계로 회피에 이르렀으나 유일하게 한명인 최명길은 그 적진을 뚫고 회담의 여지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일말의 희망불씨를 최명길 홀로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최명길은 당대의 박대한 평과는 달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매국노라는 오명을 쓴 신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두께 만큼이나, 최명길의 생애와 그에 평가들을 통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최명길 그는 누구였고 그가 바라본 지키고자했던 조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모습이 그 당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변하는 중국과 미국의 국외적 상황과 여당과 야당의 끊임없는 적폐논란과 당파싸움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가져야할 냉철한 현실인식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의 책임감과 포용성과 유연함을 깨닫게되길 바랍니다. 병자호란의 배척당한 노련한 정치가 최명길의 진면목을 알게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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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2020-02-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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