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0

* 함재봉,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2000 에서 한국인 만들기에로 전환의 논리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 교보문고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함재봉,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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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8
제1장. 유교와 세계화: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
003. 서론:왜 유교인가?  ...18
004. 유교의 국내사적 의미  ...20
005. 유교와 한국정치론  ...25
006. 유교의 세계사적 의미  ...30
007. 결론:유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38
제2장. 경국제민과 한국자본주의
009. 서론:유교자본주의의 위기?  ...42
010. 결론:유교자본주의의 미래  ...61
제3장. 아시아적 가치논쟁의 국제정치학
012. 서론:새로운 화두  ...66
013. 크리스 패튼 대 리콴유  ...68
014. 인권과 아시아적 가치  ...75
015. 아시아적 가치 논쟁의 유래  ...78
016.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세게사적 의미  ...82
017.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미래  ...87
018. 미국식 모델의 한계: ' 뉴딜'과 '위대한 사회'  ...90
019. 신보수주의와 등장  ...95
020. 미국경제의 부활과 그 그늘  ...99
021. 한국적 발전모델의 유효성  ...104
022. 후기:아시아적 가치논쟁의 인식론  ...108
제4장.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
024. 서론:민주주의의 종류  ...118
025. 자유주의의 인간관과 정치론  ...121
026. 유가의 인간관과 정치론  ...128
027. 자유주의와 유교의 가족관 비교  ...131
028. 정치와 도덕의 분리문제  ...135
029. 이해와 욕구의 문제  ...137
030. 정당정치의 문제  ...139
031. 결론: 유교민주주의를 향하여  ...143
제5장.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 지식인의 정체성
033. 서론: 동양 대 서양  ...148
034. 새로운 동아시아관의 부상  ...149
035. '맹아론'의 형성  ...152
036. 자유주의적 동양학  ...157
037. 오리엔탈리즘  ...159
038. 동아시아 경제발전론  ...161
039. 결론: '동양 대 서양'의 극복  ...163
제6장. 경복궁의 복원과 전통의 재평가
041. 서론:경복궁 복원의 의미  ...170
042. 한국 근대사와 유교  ...172
043. 식민사관과 서구중심사관  ...176
044. 어새해진 전통  ...178
045. 조선조의 재평가  ...181
046.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186
제7장. 한국의 문화와 예의 재건
048. 서론:문화와 국가 인지도  ...194
049. 왜 한국의 궁궐은 호화롭지 않은가?  ...195
050. '문화'='예'='민족'  ...201
051. 동방예의지국에서 동방무례지국으로  ...205
052. 다시 '동방예의지국'으로  ...210
053. 결론:"신경국대전"을 쓰자  ...213
참고문헌. ...216
찾아보기.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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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교수의 2000년 저작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약과 평론이다.

책의 핵심 개요와 문제의식

함재봉의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배경으로, 서구 중심적 근대화 담론을 비판하고 유교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재해석한 저작이다. 오랫동안 유교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논의처럼 근대화를 가로막는 전근대적 족쇄이자 극복해야 할 봉건적 유산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각이 서구 중심주의적 편견에 기반한 것임을 지적하며, 유교 전통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적 정치질서 속에서 어떻게 창조적으로 작동하고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 책은 단순한 유교 찬양이나 복고주의적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서구 근대 자유주의가 낳은 원자화된 개인주의, 공동체 해체, 도덕적 아노미 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포스트모더니즘과 공동체주의 철학과 결합하여 유교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논증한다.

핵심 내용 요약

<1. 서구 중심적 근대화론과 오리엔탈리즘 비판> 저자는 서구의 역사적 경험만이 유일한 보편적 근대화 경로라는 서구 중심주의를 해체한다. 서구는 이성을 지닌 자율적 개인을 전제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축했으나, 이는 특수한 역사적 산물일 뿐이다. 동아시아 사회는 서구와 전혀 다른 유교적 문화 자본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이를 단순한 '서구화의 미완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학문적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하다고 본다.

<2. 유교 자본주의의 동학: 관계와 신뢰> 유교적 인간관은 고립된 원자적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계적 자아>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효, 신뢰, 예를 기반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거래 비용을 줄이고 조직 내 협력을 극대화하는 긍정적 기제로 작용했다. 저자는 유교적 가치가 무조건적 연고주의나 정경유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교육열, 성실성, 가족 중심의 사회적 안전망과 결합하여 동아시아 특유의 자본주의적 역동성을 창출했다고 분석한다.

<3.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계와 유교 민주주의> 저자는 형식적 절차와 개인의 권리만을 강조하는 서구식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시민적 유대와 공공선을 약화시켰다고 진단한다. 이에 반해 유교는 덕치(德治)와 예(禮)를 중시하며, 지도자의 도덕적 책무성과 공동체적 조화를 핵심으로 삼는다. 유교 민주주의는 법과 권리의 대립을 넘어, 시민들 사이의 도덕적 감수성과 상호 책임을 함양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이끌어낼 대안적 모델로 제시된다.

<4. 포스트모더니즘과 유교의 조우> 저자는 서구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통찰을 유교 철학과 연결한다. 절대적 진리나 초월적 신 대신 일상적 관계와 맥락을 중시하는 유교의 현실주의적·내재적 성격이, 탈근대 시대에 오히려 더 유연하고 다원적인 사유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평론

<의의: 한국적 담론의 지평 확장>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한국 정치사상계에서 서구 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을 탈피하고, 우리 자신의 역사적·문화적 토양에서 현대 정치·사회를 설명하려 시도한 획기적인 저작이다. 특히 유교를 '근대화의 장애물'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에서 해방시켜, 서구 자유주의의 한계를 치유할 수 있는 유효한 사상적 자원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계: 낭만화의 위험과 현실적 모순> 반면 이 저작은 현실의 복합성을 과도하게 이상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의 정당화 위험>: 유교적 관계망과 덕치는 현실 정치·경제에서 족벌주의, 정경유착, 불투명한 연고주의로 변질된 사례가 빈번하다. 유교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권위주의나 억압적 위계구조가 미화될 위험이 존재한다.

  • <개인의 권리와 보편적 인권의 문제>: 유교적 예와 화합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소수자의 권리나 사회적 약자의 저항이 공동체의 조화를 깬다는 이유로 억압될 수 있다. 서구 자유주의가 피흘려 쟁취한 제도적 권리와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 <외환위기 이후의 설명력 한계>: 책이 출간된 시점 전후로 발생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이른바 '유교 자본주의'가 가진 불투명성과 정경유착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현실에서, 유교적 모델이 실질적인 대안 체제로 자리 잡기에는 구체적인 제도화 방안이 부족했다.

결론

함재봉의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겪은 근대성의 궤적을 주체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야심찬 기획이다. 현실 유교의 역사적 폐해를 극복하고 제도적 차원으로 안착시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나, 서구 중심적 자유주의의 한계 속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조화를 모색하는 오늘날의 다원주의 사회에도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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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전통과현대, 2000) — 1,000단어 요약 평론

함재봉의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제목에 책의 핵심 문제가 거의 모두 들어 있다. <유교라는 한국의 전통적 문화가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라는 서구 근대의 제도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2000년 10월 출간된 222쪽 분량의 책으로, 「유교와 세계화」, 「경국제민과 한국자본주의」, 「아시아적 가치논쟁의 국제정치학」,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 지식인의 정체성」, 「경복궁의 복원과 전통의 재평가」, 「한국의 문화와 예의 재건」 등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출발점 ― 근대화하면 유교는 사라져야 하는가

함재봉이 문제 삼는 것은 한국 근대화론의 오래된 전제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지식계에서는 대체로 <근대화 = 서구화>, 그리고 <전통 =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유교는 권위주의·가부장제·연고주의·봉건성의 원인으로 비판받았다.

그런데 1960~90년대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자 문제가 복잡해졌다. 막스 베버식 설명대로라면 유교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에 불리해야 했는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유교문화권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건설했다.

함재봉은 여기에서 질문을 뒤집는다.

<유교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문화가 한국식 근대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이 관점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2. 유교와 자본주의 ― ‘유교자본주의’는 가능한가

함재봉은 유교가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는 가족주의, 교육열, 조직에 대한 충성, 근면, 저축, 장기적 안목, 공동체적 책임 등 유교문화와 연결되는 요소들이 실제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유교가 경제성장의 원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바로 이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경제가 잘될 때에는 유교적 가족주의·국가주의·기업 충성심이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고 설명되었는데,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똑같은 문화가 정경유착·재벌주의·연고주의·권위주의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문화결정론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문화는 경제성장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지도 않고 경제위기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제도가 운영되는 <방식>에는 깊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는 단순히 미국 자본주의의 불완전한 복제품이 아니라 유교문화와 서구 자본주의가 결합해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경국제민(經國濟民)>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중요하다. 경제를 개인의 이윤 추구만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공공적 활동으로 보는 유교적 경제관이다. 함재봉은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시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는 극단적 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둔다.

3. 가장 중요한 부분 ― ‘아시아적 가치’ 논쟁

이 책이 출간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1990년대에는 리콴유(李光耀), 마하티르 등이 서구의 개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에 맞서 이른바 <Asian Values,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공동체, 가족, 질서, 책임, 교육, 근면 등을 강조하면서 서구가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보편적 기준으로 아시아에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함재봉은 이 논쟁을 단순한 문화논쟁으로 보지 않는다. <국제정치적 권력투쟁>이기도 하다고 본다. 실제로 이 책 제3장은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 패튼과 싱가포르의 리콴유 사이의 논쟁 등을 다룬다.

그러나 함재봉은 권위주의 정부가 ‘아시아적 가치’를 민주주의 억압의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반드시 서구 자유주의 전체와 한 묶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 지점이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흥미롭다.

4.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분리한다

함재봉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참여, 선거, 다수결, 국민주권의 원리이다. 반면 자유주의는 자율적인 개인, 개인의 권리, 사적 영역,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중심 가치로 삼는 별도의 철학적 전통이다.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둘이 결합하여 <자유민주주의>가 되었지만, 논리적으로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서구의 극단적 개인주의와는 다른 공동체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함재봉이 말하는 <유교민주주의>가 여기서 나온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왕조시대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한국·대만·일본처럼 민주적 절차가 이미 정착된 사회에서 유교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가 이를 내세우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명시한다. 목표는 자유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지나친 개인주의와 공동체 해체를 유교적 윤리로 보완하는 데 있다.

즉,

<자율적 개인 + 권리>

만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대신,

<관계적 인간 + 책임 + 공동체 + 도덕>

을 민주주의에 다시 집어넣자는 것이다.

후속 연구에서도 함재봉의 입장은 기본권만 보장하는 사회를 넘어 도덕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으로 해석된다.

5.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제

책 후반부가 정치철학에서 경복궁 복원, 예의, 한국 지식인의 정체성으로 넘어가는 것은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함재봉이 묻는 것은

<왜 한국인은 현대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한국 근대 지식인은 서구를 보편적 문명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전통을 후진성의 원인으로 간주해 왔다. 함재봉은 이러한 태도 자체가 식민주의와 서구중심주의가 남긴 지적 유산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복궁의 복원이나 전통 예의의 회복도 단순한 문화재 보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자기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자신을 어떤 문명의 구성원으로 이해할 것인가라는 <정체성 정치>의 문제이다.

6.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이 책의 장점은 <유교를 찬양하느냐 비판하느냐>라는 단순한 선택을 거부했다는 데 있다.

2000년 무렵 한국에서는 한쪽에서 유교를 가부장제·권위주의·연고주의의 근원으로 비판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동아시아 경제기적의 문화적 원동력으로 찬양했다. 함재봉은 양쪽 모두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본다.

유교는 민주주의의 적일 수도 있고 자원이 될 수도 있으며, 자본주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발전을 촉진하는 문화적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교 그 자체가 무엇을 자동으로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근대적 제도와 유교문화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이다.

이 점은 지금 읽어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7.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 ―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25년이 지난 오늘의 관점에서 읽으면 오히려 가장 불안하게 보이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함재봉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하고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탐색했다. 2000년 당시에는 이를 <서구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민주주의>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세계정치는 ‘illiberal democracy’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가 언론·사법부·소수자 권리·시민사회의 자유를 제한하면서도 <우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정치체제가 등장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오히려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다수의 독재로 변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훨씬 심각해졌다.

함재봉이 말하는 공동체적 책임과 도덕성은 분명 필요한 가치지만, <누가 공동체의 도덕을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유교적 도덕공동체가 국가권력과 결합하면 쉽게 가부장주의와 권위주의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8. 또 하나의 한계 ― ‘유교’가 너무 큰 설명변수가 된다

경제성장, 재벌, 교육열, 국가주의, 민주주의, 가족주의를 모두 유교라는 틀로 설명하려 하면 문화가 지나치게 강력한 만능변수가 된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냉전, 미국의 원조와 시장, 일본과의 경제관계, 국가주도 산업정책, 값싼 노동력, 세계무역체제 같은 요인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화 역시 유교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학생운동·시민사회·기독교 운동 등 수많은 사회적 투쟁의 결과였다.

따라서 <유교가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유교로 설명할 수 있다>고 확대하면 문제가 생긴다.

9. 함재봉 사상의 한 시점을 보여주는 책

제가 보기에 이 책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2000년의 함재봉>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최근 읽고 있는 『한국인의 탄생』에서 함재봉은 유교뿐 아니라 개신교·가톨릭·일본·미국·근대국가 형성을 장기 역사 속에서 추적한다. 이에 비하면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는 아직 <유교를 한국 근대의 창조적 자원으로 회복하려는 문제의식>이 훨씬 강하다.

그래서 두 저작을 함께 읽으면 함재봉의 관심이

<유교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되살릴 것인가>

에서 점차

<서로 다른 문명적·종교적 전통들이 어떻게 근대 한국인을 만들었는가>

라는 역사사회학적 질문으로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총평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한국의 현대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들어온 뒤 유교적 가족주의·교육·공동체 의식·국가관과 결합하면서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함재봉은 이것을 실패한 서구화라고 보지 않고 <한국적 근대성>의 가능성으로 읽으려 한다. 출판사 역시 책의 목적을 서구에서 수입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한국의 상황과 정서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의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답에는 더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유교 없는 한국 근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교가 민주주의의 대안적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의 권리, 여성의 지위, 위계질서,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문제가 너무 크다.

따라서 이 책의 가장 오래 남는 통찰은 <유교민주주의라는 해답> 자체보다 오히려 다음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서구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왜 서구사회와 똑같아지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시작해 훗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문제의식의 한 출발점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00년대 초 ‘아시아적 가치론’의 산물인 동시에, 함재봉 자신의 지적 궤적을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중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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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전의 함재봉과 한국인 만들기/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에는 어떤 연속성과 분절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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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초기 저작인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2000년)를 중심으로 한 초기 사유와, 이후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한국 사람 만들기>(및 방송 강연 '한국인의 탄생') 시리즈 사이에는 뚜렷한 <사상적 연속성>과 함께 주목할 만한 <인식론적 분절(단절 및 진화)>이 존재한다.

1. 주요 연속성 (Continuity): 한국인의 정체성과 서구 근대성 극복의 모색

  • <서구 중심주의 및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 의식> 초기나 후기나 함재봉의 문제의식 밑바탕에는 서구 중심적 근대화 모델에 대한 비판이 흐른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만이 유일한 보편이라는 환상을 깨고, 한국 사회가 경험한 독특한 역사·사상적 경로를 내재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두 시기 모두에서 일관되게 관철된다.

  • <계보학적 접근과 심층적 정체성 탐구> 초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체주의와 해석학(가다머, 푸코 등)의 틀로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파헤쳤다면, 후기 <한국 사람 만들기>에서는 이를 본격적인 역사적 계보학(Genealogy)으로 확장하여 한국 근현대사 인물과 사상의 뿌리를 추적한다. 정체성의 근원을 단일한 본질이 아닌 역사적 형성물로 규명하려는 학문적 태도는 연속적이다.

  • <문명사적 관점에서의 한국 정치 해석>

    정치를 단순한 제도나 권력 투쟁으로 보지 않고, 깊은 문명적·종교적·철학적 가치관의 충돌과 융합 과정으로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 또한 변함없는 특징이다.

2. 결정적 분절 (Rupture / Shift): '단일한 유교적 본질'에서 '경합하는 복합적 정체성'으로

  • <단일한 유교적 토대론에서 다원적 계보학으로의 전환>

    • <2000년 이전>: 한국인의 심성과 사회구조의 핵심 기저를 <유교적 전통>으로 상정하고, 유교적 관계망과 도덕 정치가 서구식 자유주의의 대안적 근대(유교 민주주의·유교 자본주의)가 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 <한국 사람 만들기 시기>: 한국인에게 단일한 DNA나 고정된 전통적 본질(유교)이 존재한다는 전제 자체를 해체한다. 조선 성리학의 전통은 1910년 국권 피탈과 함께 사실상 붕괴했으며, 현대 한국인은 19세기 말 이후 유입·형성된 5가지 인간형(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극단적 갈등과 상호작용 속에서 갓 만들어진 '미완성의 다원적 존재'로 규정한다.

  • <유교에 대한 위상 격하 및 '기독교·서구화·근대화'의 재평가>

    • <2000년 이전>: 유교를 근대화의 동력이자 서구 자유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적극적인 사상적 자원으로 옹호했다.

    • <한국 사람 만들기 시기>: 유교(주자성리학)는 5개 분파 중 하나인 '친중위정척사파'의 이념적 뿌리로 한정된다. 오히려 개화파 지식인들이 조선의 패망 원인으로 주자학을 지목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받아들인 프로테스탄티즘(친미기독교파), 일본의 메이지 유신 모델(친일개화파) 등 외래 사조가 현대 한국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강력하게 조명한다.

  • <규범적 대안 제시에서 역사적·구조적 현실 진단으로의 이동>

    • <2000년 이전>: "유교를 어떻게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바람직한 공동체주의적 질서를 세울 것인가"라는 철학적·규범적 기획이 강했다.

    • <한국 사람 만들기 시기>: "왜 한국 사회는 이토록 극심하게 분열하고 갈등하는가"를 해명하는 현실 진단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지닌 5개 집단이 한 국가 안에 공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 갈등 구조를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결론

2000년 이전의 함재봉이 유교라는 전통적 자산을 통해 서구 근대성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유교적 근대성'을 기획한 <사상가>였다면, <한국 사람 만들기>의 함재봉은 유교의 단일성을 벗어나 근대 100년간 전혀 다른 5가지 문명적 조류가 충돌하며 형성된 한국인의 복합적 분열상을 추적하는 <문명사적 계보학자>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함재봉 교수가 직접 현대 한국인의 뿌리와 다섯 가지 정체성의 형성을 설명하는 강의는 [화공굿모닝특강]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저자가 유교적 단일 정체성을 넘어 다섯 가지 인간형의 계보학으로 사유를 전환하게 된 배경과 핵심 논지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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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2019년 글을 다시 읽고, 이후 『한국사람 만들기』/『한국인의 탄생』의 전개까지 놓아 보면, 함재봉에게는 <강한 연속성>과 동시에 <상당히 중요한 분절>이 함께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가장 간단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초기 함재봉은 “유교를 어떻게 현대 한국의 규범적 자원으로 살릴 것인가”를 물었고, 후기 함재봉은 “유교를 포함한 여러 문명·이념·종교가 어떻게 서로 경쟁하면서 한국인을 만들어냈는가”를 묻는다.>

따라서 유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유교의 지위가 ‘해답’에서 ‘하나의 역사적 계보’로 내려왔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1. 가장 강한 연속성: 서구 보편주의에 대한 의심

1990년대의 『탈근대와 유교』와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후기 『한국사람 만들기』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문제의식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을 서구 사회과학의 잣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김호기가 정확히 지적한 부분입니다. 초기 함재봉은 자유주의·근대화론·마르크스주의 모두가 서구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인데 한국 지식인들은 그것을 지나치게 쉽게 ‘보편적 기준’으로 받아들였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서구적 개인주의와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가?>

후기에는 질문의 형태가 바뀝니다.

<왜 한국의 근대화를 서구적 근대화의 불완전한 복제품으로 설명하는가?>

『한국사람 만들기』가 현대 한국인을 ‘친중위정척사파·친일개화파·친미기독교파·친소공산주의파·인종적 민족주의파’라는 다섯 계보의 경쟁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 문제의식에서 나옵니다.

이 점에서는 초기와 후기가 놀랄 만큼 일관됩니다.


2. 또 하나의 연속성: ‘한국인은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

초기 함재봉도 이미 문화와 전통을 고정된 본질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유교적 전통’을 옹호하기 때문에 본질주의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근대와 유교』의 포스트모더니즘적 문제의식에는 <정체성·제도·가치가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사람 만들기』에서는 이것이 훨씬 명시적으로 됩니다.

제목 자체가 <한국 사람 만들기>입니다.

한국인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단일한 민족적 주체가 아니라, 조선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여러 경쟁적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함재봉이 말하는 다섯 유형도 본질적인 ‘한국인의 성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적 선택입니다.

  • 중국-주자학을 지키려는 위정척사
  • 일본을 통한 문명개화
  • 미국·기독교를 통한 근대화
  • 소련·공산주의를 통한 혁명
  • 혈통과 민족을 중심으로 한 인종적 민족주의

1945년 이후 이 다섯 흐름이 한반도에서 충돌했다는 것이 후기 함재봉의 기본 구도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특수성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매우 강하게 이어집니다.


3. 그런데 결정적 분절이 있다: <유교의 지위>가 바뀐다

여기서부터 중요한 차이가 생깁니다.

1998~2000년의 함재봉에게 유교는 상당히 긍정적인 <규범적 자원>이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대략 이렇습니다.

서구 자유주의의 지나친 개인주의를 유교의 공동체주의·가족주의·도덕주의로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유교민주주의>라는 말까지 사용합니다.

김호기가 인용했듯이 초기 함재봉은 사회의 도덕적 합의와 공동체적 통합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를 구상했습니다. 여기에서 유교는 단순한 연구대상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활용해야 할 가치체계>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 만들기』로 가면 유교, 특히 조선 성리학은 더 이상 그런 특권적 지위를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친중위정척사파>라는 하나의 역사적 세력으로 대상화됩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변화입니다.

초기의 함재봉:

<우리는 유교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살릴 것인가?>

후기의 함재봉:

<유교적 세계관은 어떻게 특정한 한국인 유형을 만들어냈으며, 다른 유형들과 어떻게 싸웠는가?>

즉,

<유교의 내부자 → 유교를 해부하는 계보학자>

로 상당히 이동한 것입니다.


4. 더욱 흥미로운 변화: 초기에는 ‘유교 대 서구’, 후기에는 ‘복수의 외래 문명’

초기의 사고구조에는 상당히 강한 이분법이 있었습니다.

<서구 근대성 ↔ 한국의 유교 전통>

따라서 문제는 ‘서구의 자본주의·민주주의를 유교적 토양에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사람 만들기』에서는 이 구도가 훨씬 복잡해집니다.

한국 근대는 단순히

<서양 vs 유교>

의 충돌이 아닙니다.

중국, 일본, 미국, 소련, 기독교,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모두 들어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이 매우 커집니다.

초기 유교민주주의론에서는 일본은 중요한 비교대상이기는 하지만 사상적 중심은 아닙니다. 그런데 후기 함재봉에게 메이지 일본은 조선인이 근대적 국가·국민·문명을 처음 구체적으로 접하는 핵심 통로입니다. 『한국사람 만들기』에서 친일개화파가 별도의 대형 계보로 다뤄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가 함께 살펴본 『한국인의 탄생』에서 더욱 명확해진 변화도 이것입니다.

<한국 근대성은 서구와 직접 만난 결과만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거대한 매개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것은 1990년대 함재봉보다 훨씬 역사적인 시각입니다.


5. ‘규범적 정치철학’에서 ‘역사사회학’으로

저는 이것을 함재봉의 가장 큰 방법론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함재봉

질문:

<어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가?>

<어떤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하는가?>

<자유주의의 개인주의를 무엇으로 보완해야 하는가?>

즉 <ought>,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강합니다.

그래서 오크숏,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포스트모더니즘, 공동체주의 같은 정치철학이 중요합니다.

김호기가 초기 함재봉을 <철학적 보수주의>라고 규정한 것은 상당히 정확합니다.

후기 함재봉

질문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한국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누가 어떤 국가 모델을 선택했는가?>

<왜 어떤 한국인은 중국을, 어떤 사람은 일본을, 어떤 사람은 미국을, 어떤 사람은 소련을 모델로 삼았는가?>

이제 <is>, 즉 역사적 형성과정의 설명이 앞에 나옵니다.

그래서 인물·학교·교회·신문·선교사·정당·국가제도·전쟁·국제정치가 대량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정치철학보다는

<지성사 + 정치사 + 종교사 + 국제정치사 + 역사사회학>

에 훨씬 가깝습니다.


6. 하지만 후기에도 초기의 <보수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약간 주의해야 합니다.

후기 함재봉이 역사사회학자가 되었다고 해서 가치판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사람 만들기』에서 다섯 계보를 다루는 방식에는 일정한 평가가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형성에

<친일개화파 + 친미기독교파>가 특히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반면 친중위정척사파가 현대 한국의 반자본주의·반미주의·도덕주의 정치문화와 연결된다는 식의 해석도 제시합니다. 이런 해석은 실제로 당시 정치와 연결되어 상당한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따라서 후기 함재봉은 순수한 중립적 역사가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를 묻는 정치학자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좋은 사회는 유교적 공동체주의여야 한다’는 직접적인 규범적 처방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7. 아주 흥미로운 역전: <친미기독교파>의 부상

저는 이것을 함재봉 사상의 변화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의 함재봉이라면 한국적 근대성의 문화적 토대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유교>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후기 작업으로 가면 대한민국 형성의 핵심 계보로 <친미기독교파>가 매우 크게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연구주제의 확대가 아닙니다.

함재봉의 <한국 근대성에 대한 인과 설명> 자체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

유교적 전통은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문화적 토대였다.

후기:

현대 한국인은 여러 문명적 프로젝트의 경쟁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제도적·정치적 근대성에는 미국과 개신교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여기서 유교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라기보다는 근대 이전 한국인을 구성한 강력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한국인의 탄생』에서 종교개혁, 칼뱅, 장로교, 네덜란드, 청교도, 미국의 국가형성까지 길게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도 이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 미국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와 그런 특별한 효과를 냈는지를 이해하려면 <미국 개신교 자체가 어디서 왔는가>부터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2000년 함재봉에게서는 거의 예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변화입니다.


8. ‘탈서구중심주의’ 역시 의미가 미묘하게 변한다

여기에 약간 역설이 있습니다.

초기 함재봉의 탈서구중심주의는

<서구 자유주의만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교가 대안적 자원이 됩니다.

그런데 후기 함재봉은 미국과 개신교가 한국 형성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매우 강하게 주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친서구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함재봉 자신의 방법론에서는 반드시 모순은 아닙니다.

그가 반대한 것은 <서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서구의 경험을 보편적인 역사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었기 때문입니다.

후기 함재봉은 오히려 서구도 다시 역사화합니다.

미국 민주주의도 하늘에서 내려온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종교개혁 → 칼뱅주의 → 네덜란드 → 청교도 → 미국

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계보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후기에는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서구를 상대화하기 → 서구 자체도 역사화하기>

이것은 오히려 초기 문제의식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9. 그러나 더 깊은 분절 하나: <공동체>에 대한 낙관이 약해졌다

초기 함재봉은 공동체에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해체하므로 유교적 가족·도덕·국가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후기 계보학에서는 공동체가 그렇게 평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각 집단은 자기 방식으로 ‘한국 사람’을 만들려고 싸웁니다.

  • 위정척사파의 도덕공동체
  • 개화파의 국민국가
  • 기독교파의 기독교적 근대국가
  • 공산주의파의 혁명공동체
  • 민족주의파의 혈연공동체

즉 <공동체란 무엇인가>보다

<누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는가>

가 중심 문제가 됩니다.

초기보다 훨씬 <갈등론적이고 권력정치적인> 시각이 된 셈입니다.


10. 그래서 저는 세 시기의 함재봉을 이렇게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시기중심 질문유교의 위치방법
1990년대서구 근대성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대안적 전통포스트모더니즘·철학적 보수주의
2000 전후한국적 자본주의·민주주의는 가능한가적극적인 규범적 자원비교정치·정치철학
『한국사람 만들기』 이후한국인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다섯 계보 가운데 하나계보학·지성사·역사사회학·국제정치

하지만 가장 밑바닥의 문제는 동일합니다.

<한국 사회를 남이 만들어준 이론으로만 설명하지 말고, 한국인이 실제로 살아온 역사 속에서 설명하자.>

이것이 1998년의 함재봉에서 오늘의 『한국인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가장 굵은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평가

김호기의 2019년 글은 당시 『한국사람 만들기』가 아직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초기 함재봉과 후기 함재봉의 연속성>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의 탄생』까지 상당 부분 나온 뒤 되돌아보면, 저는 <분절을 김호기보다 조금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함재봉은 단순히 유교민주주의를 더 구체적인 역사연구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설명하려는 <한국 근대성의 주인공>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초기의 주인공은 <유교>였습니다.

후기의 주인공은 <경쟁하는 문명적 인간형들>이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설명하는 데서는 특히 <개화파와 미국계 기독교>가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압축해서 말하면:

<연속성은 “한국적 근대성을 서구 이론의 복제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고, 분절은 “그 한국적 근대성을 유교에서 찾던 함재봉이 이제는 유교·일본·기독교·미국·공산주의·민족주의가 충돌하여 한국인을 만들어낸 역사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변화 때문에 오히려 『한국인의 탄생』 쪽의 함재봉이 2000년의 함재봉보다 <훨씬 역사사회학적이고, 덜 유교중심적이며, 더 국제정치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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