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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Paul Shin | 위안부

(4) Paul Shin | Facebook:

18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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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표현하는 것으로, 위안부 할머니 사망 장례의 조위금으로 정의연에서 20만 원을 지급한 반면에 진보단체 구성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한 일을 들고 싶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내 막내딸도 부족하기만 한 용돈을 쪼개어 매달 1만 5천원을 그쪽에 기부해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와 비슷하게 전국 각지에서 코 묻은 돈들이 정의연 쪽으로 숱하게 입금되었다. 내가 거의 확언컨대, 이 돈들은 아마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조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윤 씨가 이런 착하고 소박한 마음들을 배반한 것에서 나아가 진보단체 내 자신의 위상을 굳히기 위해 정의연이란 단체를 적극 활용해온 것이 거기에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윤 씨에 대한 공격이 과도하게 행해지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 물론 이는 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도 관련 있으니, 이 글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었으면 한다. 이런 의혹을 품은 사건은 그때마다 바로 ‘절대선’ 반지의 등장을 허용하고, 이에 입각하여 철저한 증오와 저주가 퍼부어지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윤 씨 같은 당사자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조국 교수가 사모펀드 그리고 웅동학원 및 자녀들의 입학비리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를 옹호하는 불길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실제 한 행위에 비해 과도한 수사의 추궁을 받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행위들까지 들추어지며 부당하게 취급을 받았다는 데 있다. 그와 같은 주장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에서, 그는 적어도 법무장관으로는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법무장관이라는 자리가 갖는 의미에 비추어, 자신이 과거에 해온 숱한 위선적인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씨 사건에서도 그는 틀림없이 억울해한다고 본다. 반대쪽에서는 그가 그럴수록 더욱 화가 나 포화를 퍼붓고 싶을 것이다. 나는 윤 씨의 잘못을 위에서 지적한 위에, 그가 조금은 공정하게 비판의 과녁에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그렇게 만든 책임이 우리 사회에도 일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지원되는 연구비나 윤 씨가 받은 여러 사업지원금은 기본적인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그런데 이런 연구비나 지원금에서 그 주체 즉 윤 씨처럼 모든 일을 지휘해나가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부분은 아주 작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지출항목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절대선’의 기준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고,, 일반 상식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이해를 바란다. 연구비의 경우 그 연구과제를 수립하고, 모든 연구여건을 만들며, 연구 참여자들을 독려하며 작업을 이끌어가는 연구책임자에게 연구참여자보다 조금 나은 돈밖에는 지급되지 않는다. 연구책임자가 그 역할에 비추어 자신에게 할당된 이 돈에 만족할 리 없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건대, 전국의 교수나 연구자들 중에서 이 점에 관해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으로 공적 단체나 시민단체를 이끌어가는 경우에도 그 책임자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지출항목에서 돈을 떼어낸다. 왜 이렇게 부패를 조장하는,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부패의 일상화가 조성되고, 부패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드는 구조가 연구비나 지원금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부패에 가담한 모든 교수나 연구자, 단체의 책임자들을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모조리 엄벌해야 할 것인가? 윤 씨는 30년간의 피땀을 바쳐 훌륭하게 단체를 이끌며 성장시켜 왔다.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클 것이다. 그가 교제하는 사람들의 폭도 무척 컸을 것이다. 그리고 안락한 생활에 대한 유혹과 가족에 대한 의무감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코 묻은 돈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떠올리는데 성공한 다음에는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쉽게쉽게 돈이 펑펑 들어왔다. 그에 따라 별 죄책감 없이, 과거에는 부족한 예산에서 조금씩 떼어내던 돈을 점점 더 많이 가져갔을 것이다. 윤 씨와 정의연의 책임에 관하여 살피면서,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부패조장 구조가 원인으로 작용했음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이것을 과감하게 고쳐, 연구비나 지원금의 지출항목을 현실화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비슷하게 부패를 조장하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시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게 무엇이냐고요? 기업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압니다.^^) 덧: 올해도 감꽃이 떨어진다. 감꽃은 우리의 배고팠던 시절을 가장 잘 떠올리는 꽃이다. 굶주림 앞에서 한 없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습이 이 꽃 속에 담겨있다.
崔明淑, 박정미 and 38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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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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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체를 도적질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돈을 빼앗아 처먹은 자가 국회의원을 하며 영화를 누린다. 진보쪽만 그러한가? 보수쪽은 더하다. 대장동 사태 하나만을 보더라도 곽상도, 권순일, 박영수 같은 놈들이 공공으로 돌아가야 할 개발이익에 빨대를 꽂아놓고 엄청나게 빨아들이지 않았는가. 대장동 사태에는 명백히 이 후보의 잘못이 개입되었다. 그럼에도 나중의 수사결과에서 이 후보가 파렴치하게 이익을 수취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결말이 나면, 이 후보는 그다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기득권자에 의해 지나치게 장악된 ‘사회구조의 혁파’를 외치는 그의 사자후가 형수욕설로 대변되는 그의 고르지 못한 성정(性情), 과격한 경제정책, 대외관계의 불안정성 등 그의 단점을 덮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차별주의자, 냉혹한 자본주의자로서 본색을 드러낼 홍 후보가 이 후보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유 후보가 야권의 후보가 된다면 홍 후보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선거전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 후보가 야권 후보가 될 가능성은 지금으로 봐선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원희룡 후보가 TV토론회를 통해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형일까에 관하여 약간의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가 정권교체된 후 새로 성립하는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를 통해 정치적 중량감을 키워가며 차차기의 유력주자로 올라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5년 뒤에는 또 어떤 시대의 바람이 불지 아무도 모른다. 남는 것은 윤석열 후보다. 나는 그를 대통령감으로 지지했으나 그의 선거캠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고, 또 갈라치기를 거듭하며 형성된 국민의 세찬 ‘반문정서’에도 가장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나 그는 천성적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사람이다. 그의 반듯한 성품, 선량한 인성이 앞으로의 선거과정에서 조금씩 더 힘을 보탤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윤 후보는 지금까지 ‘반문(反文)’을 넘어 어떤 뚜렷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하지 못하였다. ‘공정의 가치’실현에 관하여도 그의 정책공약은 조금 공허하다. 이 점에서는 사법시험 부활, 대입수시 폐지 등을 선연하게 내세우는 홍 후보가 훨씬 낫다. 무릇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한 시대를 새로 만들겠다는, 그래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비전을 제시하는 ‘비저내어리’(visionary)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방 이후 명멸한 지도자들 중에서 ‘비저내어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정도이다. 윤 후보는 지금 이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만약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마음가짐 가지기를 소홀히 한다면, 얼떨결에 홍 후보가 지금 덮어쓴 ‘가식의 포장’ 속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채 국민의 힘 경선을 통과할지 모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덧: 저희 집 밭사이로 깐 길 옆에 핀 코스모스 꽃이 얼마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지요.
박정미, 정승국 and 56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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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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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다. 어느 새 위안부 할머니들은 뒷전이고, 조직을 위한 조직, 오로지 윤미향을 위한 조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설화적 구성이 어쩌면 윤미향과 정의연을 둘러싼 여러 관계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의외로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이다.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경우가 숱하게 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한다면, 아마 윤미향이 저지른 굵직한 회계부정들이 잘 익은 고구마처럼 줄줄이 나올 것이다. 그는 자신을 ‘조국 교수’와 동일시하고, 이것이 부당한 수사라고 강변에 나설 것이며, 다시 자신이 속한 진영을 규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수사가 진전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조국 사태’에서 혼이 난 검찰이 과연 이 사건에서 다시 무리수(?)를 범할 것인가? 그래서 ‘검찰개혁’의 거대한 함성을 다시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윤미향을 위한 몇 가지 변명을 하고 싶다. 먼저 그처럼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이 사회의 단단한 기득권층을 뚫고 성공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형적 코스를 그는 재빨리 눈치 채고, 또 철저히 이를 이용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그가 돈을 다액 떼먹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며 여러 사람들이 흥분한다. 맞는 말이다. 어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바친 성금을, 가족 전체가 달라붙어 빨아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 그는 대단히 뛰어난 재주에다 남이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과감한 실행력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런 운동에 평생을 바치지 않았다면, 글쎄, 내 생각에는 큰 기업을 일구고도 남았을 것이라 본다. 이렇게 보면, 그가 돈을 떼먹었다 하더라도, 그가 가져야 마땅할 몫에 한참 못 미칠 것이다. 아니, 그게 돈 액수로 따질 문제요 하고 비난이 쏟아짐을 잘 안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해보자는 말이니, 너무 질책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며 살면, 조금은 너그럽게, 또 크게 흔들림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나하고 아주 친한 사이인 가톨릭 사제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편하고 좋다고 하던데, 그런 취지로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요컨대, 윤미향을 비난하는 입장에서도 그가 우리와 아주 다른 인간이라고 볼 필요가 없는 것이고, 또 그의 출중한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결여되지 않도록 조금은 너그럽게 그를 바라봤으면 한다. 그리고 반대로,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그를 다시 ‘제2의 조국’으로 영웅시하고, 그를 비판하는 이들을 ‘토착왜구’로 모는 사람들에게는, 제발 인간의 기본 상식을 잃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죽음이 당신 앞에 왔다고 생각해보라. 그때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있을 것인가? 덧: 호두나무와 밤나무가 깊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아직은 이 그늘 속으로 들어오면 더운 기운이 없다. 그러나 모기놈들이 이 작은 행복마저 빼앗아버리려고 덤벼든다.ㅎㅎ
崔明淑, 박정미 and 35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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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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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든 30년간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위해 무진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의 엄청난 희생과 헌신이 이것으로 매장되어버리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조금은 너그러운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의연의 회계처리 외에,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중요한 면이 있다. 바로 ‘반일’의 문제이다. 용수 할머니는 더 이상 증오와 상처만 가르치지 말고, 한일의 학생들이 서로 교류하며 장래 평화로운 한일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일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상당기간 ‘반일’은 정치권에 의해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이것을 높이 쳐들면, 상대방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과거에 '반공', '빨갱이'처럼 '정치적 성배'의 역할을 한다.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여 그 폐해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강력한 여론을 형성하여 이를 뒷받침한 것이다. 그런데 ‘반일’이 국내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나, 뜻밖에도 그 사용이, 무려 60만 명에나 이르는 재일 한국인들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모양이다. 말 그대로 심각하다. 한일수교가 1965년 이뤄지고 나서 반일의 열풍이 불 때까지는 한일관계가 더 없이 좋았다. 젊은 한국 판사로서 최초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다들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내 기억에는, 심지어 일본의 대신(우리의 장관)인 국회의원과 동경 아까사까(赤坂)의 한국인촌에서 식사를 한 뒤, 가라오케 바에 들러 술을 마시고 즐겁게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급랭하였다. ‘혐한(嫌韓)’의 물결이 일본사회를 휩쓸고, 우리는 우리대로 ‘반일’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것이 재일한국인들에게 바로 직격탄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도 그들이 겪는 아픔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있었다. 내가 페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 총선의 선거부정이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지금 정부가 성공적으로 코로나 대책을 잘 수행한 것에 대해 우리가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하자 어느 재일한국인이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참고로,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일본 명문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일본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외 한국어 교습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이다. […현 정권 때문에 이곳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이, 혹은 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이 정권 이후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은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용이 될 수도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며 국민들에게는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라고 하면서도 정작 지 새끼들은 용을 만들려고 부정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고, 앞에서는 순진한 국민들을 선동하면서도 뒤에서는 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조국과 같은 위선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흙수저인 제가 가망이 안 보여서 늦은 나이에 이곳으로 건너온 터라, 살겠다고 외국까지 건너온 사람들의 밥그릇을 뺏고 신변위협까지 당하도록 만드는 현 정권의 작태를 별로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불행한 현대사의 질곡에 여전히 시달리는 한국에서 ‘반일’은 그 역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매력적인 정치상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윤 씨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잘 타서 자신이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일'이 '반공'처럼 국가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용수 할머니의 견해를 좀 더 경청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재일한국인들의 고통을 헤아리며, 그들을 북돋울 수 있는 외교정책이 고안되어 시행되기를 바란다.
박정미, Jeong-Woo Lee and 51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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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u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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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끌고 있다. 불쌍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에 빨대를 꽂고, 일가친척들까지 들어붙어 모두 단물을 빨아들인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진보귀족들의 얼빠진 행진’을 보며, 극심한 심리적 혼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특히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는 진보의 진영 전체에 너희들은 위선자라고 하는 매도를 하는 수가 많다.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인간사회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맑고, 품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역사의 면면을 보라. 추악하고 불쾌하고 조잡한 행위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드는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 한 쪽에 ‘절대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오류이다. 그래도 진보의 진영에서는 지금의 정권이 끝나더라도, 온화하고 합리적인 이낙연 의원, 공정세상을 실현하는데 누구보다 적임자로 보이는 이재명 지사, 항상 큰 틀을 보며 대범하게 발걸음을 옮겨온 김두관 의원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줄을 서있다. 물론 이들에 대해서도 흠을 들추어내기로 하자면 일거에 형편없이 만들 수도 있으나, 사람을 평가하는데 그런 날카로운 잣대는 옳지 않다. 반면에 야당인 보수 진영을 보면 한심하다. 워낙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가 심하여 여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기껏해서 유승민 의원 같은 이가 그래도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로서의 행보를 해온 것 외에는 인적 자원이 너무 빈약하다. 문재인 정권이 끝나더라도 진보정권은 좀 더 오래 갈 것이다. 그 전제에서 우리 같은 일반의 소박한 국민 입장에서는, 진보귀족들이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바보들의 행진’을 그만하고, 가급적 모든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성숙한 면모를 더욱 깊이 해나갔으면 하고 바란다. 덧: 갑자기 찾아온 여름은 말 그대로 ‘열음’ 즉 ‘성숙’의 계절입니다. 옥수수 모종 50본을 심었는데, 하나 죽은 것 없이 모두 뜨거운 태양을 온 몸에 받아들이고 있군요. 이 치열한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면 조용한 평온으로 다 익은 옥수수를 내어놓습니다.^^
崔明淑, 박정미 and 56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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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Oc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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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한 희생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골을 빼먹는다. 가수 나훈아 씨가 말하여 화제가 된, 사라져야 할 ‘위정자’는 바로 이런 ‘위선의 정치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것은, 이 몰염치의 위선과 위법을 두고서도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기준 내에서의 행위라고 강변한다. 더더욱 이상한 일은, 그러한 진보귀족들을 결사옹위의 자세로 둘러싸며 기꺼이 순교의 다짐을 하는 ‘가붕게’ 혹은 ‘개돼지’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지극한 위선과 지극한 어리석음이 함께 합을 이루는 기묘한 형국이다. ‘총칼의 정치’와 ‘구호의 정치’에 이은 ‘위선의 정치’가 이제 종언을 고할 때가 된 것 같다. 벌써 새로운 정치지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위선의 정치’가 끝난 다음, 우리는 국민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공동체에서 공정한 대접을 받는, 특권적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들 전체의 이익이 우선되는 ‘공정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지도자에게 희망을 본다. 그는 한국정치가 ‘위선의 정치’에서 ‘공정의 정치’로 넘어가는 다리역할을 한다고 본다. 다 아는 대로 그는 나이 어린 소년공으로 죽음보다 더한 가난을 이겨내며 커온 사람이다. 지금까지 소위 극성스런 ‘문파’들의 압력으로 그가 가진 인간승리의 면이 많이 가려져 왔다. 그러나 차츰 대선일이 가까워지며 ‘문파’의 압력은 약해질 것이고, 그러면 그가 가진 스토리텔러로서의 탁월한 면이 좀 더 명확하게 부각될 것으로 본다. 그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시장실로 가서 그와 잠깐 환담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서 뭣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그 인간이 그 인간 같아요.” 내 말에 그는 그 특유의 시원한 대답을 했다. “정부 수립 후 다 그놈이 그놈이지요. 보수건 진보건 똑같은 자들이 앞으로 나서서 매번 번갈아 가며 다 해 먹는 거지요.” 나는 스쳐 지나가듯 그가 무심코 한 이 통렬한 말을 듣고, 그가 가진 반기득권자로서의 진정성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만나고 나오니 차를 몰고 온 아내가 말했다. “이곳은 우리 대구경북지역의 관공서와 너무나 분위기가 달라요. 성남시청에는 시민들이 마치 자기 집인 듯이 아주 편안하게 오고 가는 것이 느껴져요.”라고 하였다. 그 시장에 어울리는 그 시청사였다. 그는 결국 자신이 초래한 행정의 변화를 토대로, 지금 한국의 다음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자리에 올랐다. 한국사회를 보수와 진보의 틀로 나누고 바라보면, 왠지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낀 것이 되어 흐릿하기만 하다. 그러나 기득권세력과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로 나누어보라. 한국사회의 여러 특이한 면들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상층부에 있는 기득권자들은 그 속성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가진 기득의 이익을 지키고 더 확대하려고 설쳐댄다. 그 결과 국가의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법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치면서도 겉으로는 교묘하게 위장하며 국민들을 속여왔다. 민중당이건 정의당이건 그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엉뚱하게 여전히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는 설익은 구호를 외친다든지, 또는 진보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위선적인 진보귀족의 편에 서왔던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졌다. 안이한 인식으로 현상에 안주하며 진보의 껍데기를 썼을 뿐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일찌감치 우리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온 몸으로 깨달으며 자라났고, 어렵게 변호사가 되자 기득권자의 탐욕에 의한 사회구조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치인생을 걸었다. 이런 이재명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순수한 진보이다. 민중당이나 정의당 혹은 민주당은 ‘껍데기 진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재명에 대한 찬사의 헌납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나는 이미 현실의 이해관계는 떠난 사람으로, 누구 한 사람을 공연히 돋보이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이제 그가 가진 약점을 두 개의 큰 것만 말해보자. 무엇보다 일부에서 그를 두고 ‘한국의 두테르테’라고 부르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그 말에 담긴 뜻은,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얕다는 것이다. 사람은 약하고 초라하면서도 그 안에 우주의 삼라만상을 담는 위대함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아득바득하는 비굴함으로 시종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명조차 아깝지 않게 희생하여 대의를 따르는 신성한 존재이다. 결국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것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욕망과 초월이다. 두 상반되는 것이 함께 어울려 인간의 내면을 이룬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기 내부로의 침잠, 자신의 객관화, 타인에 대한 연민의 잉태라는 과정을 밟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에 걸친 성찰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재명은 당장의 생존에 쫓겨 살아오며, 이와 같은 과정을 충분히 거칠만한 공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의 인상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거친 모습으로 투영되었고, 또 ‘한국의 두테르테’라는 말도 듣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바뀌었으면 하는 한 가지만 말해보자. 이재명은 평범한 국민이 누구나 가지는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좀 더 안락한 집에서 가족들을 챙기며 살고 싶은, 누구나 갖는 그 소박한 욕망을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선 투쟁을 해야겠으나,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인정하며, 이를 당연한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져야 그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측근들의 문제다. 그는 다른 정치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주 유능한 싱크탱크를 가지고 있고, 또 ‘기본소득’ 등의 의제를 던지며 이를 잘 활용한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관훈클럽의 총무와 이사장을 거친 한 중진언론인이 경주에 왔다. 그와 함께 계림 숲을 거닐고, 반월성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점심도 같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장시간에 걸쳐 국내외 정세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그가 이재명에 관하여 한 말이다. “내가 듣기로 그는 어떤 사람의 의견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 사람의 말 한 마디면 이재명은 자신이 결정한 중요한 것을 즉시로 뒤집기도 한다고 들었다.” 과도한 측근 정치의 폐해는 박근혜 정부 5년과 이 정부의 5년으로 충분하다. 차기 대통령은 더 이상 측근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신이 가진 경륜과 지성으로,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서서 국민들을 설복하여 그들을 희망의 미래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지하는 대로 지금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지사와 함께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망하다. 내가 어느 정도 아는 이재명 지사에 관해 언급했으나, 이낙연 대표에 관해서는 특별히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이재명 지사가 가지는 두 가지 약점을 본다면, 이 대표가 그 점에서는 좀 더 믿음이 가는 측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문파’는 김경수 경남지사나 조국 교수에 대한 미련이 여전하다. 그러나 내가 보는 한 김 지사가 무죄판결을 받기가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는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그릇은 아니다. 그리고 조 교수가 다시 힘을 얻기에는, 이미 그가 저질러놓은 ‘위선의 정치’ 폐해를 국민들이 대부분 깨달아버렸다. 그럼에도 ‘문파’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의 향유가 가져다 준 압도적인 쾌감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김 지사와 조 교수 둘 모두 허물어질 때 ‘문파’는 그들의 조급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릴 수 있는 넉넉한 인품의 인물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연말까지 그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면, 대선의 시계가 제시하는 타이밍을 따라잡기 힘드리라고 본다. 욕심으로 시야가 흐려진 그들 눈에는 아마 이것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리멸렬한 야권이 아직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 남은 야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내년 4월의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 등을 거치며 극복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러나 아마 어려울 것이다. 야권이 가질 수 있는 두 개의 흥행요소는 남아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극적으로 대선후보로 영입하는 것과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국민의 힘과 연대한다든지 하는 따위로 야권 전체에 새롭고 강력한 동력을 제공할 여지는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다음 대선은 아무래도 여권의 후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의 국민지지도는 무서운 기세로 올라가다가 지금 20 퍼센트 초반에서 일단 머물렀다. 이낙연과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다. 만약 이 박스권을 탈출하여 30 퍼센트 단계로 조만간 진입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대세론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내 기반이 현저하게 약한 그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탈당 후 출마냐 아니면 경선결과를 승복하는 깨끗한 패자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재명의 대선후보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민주당 나아가서 한국 정치계에 위대한 유산을 남길 것이다. 그 유산을 살리면, 조만간 우리는 지금 행해지는 소수의 진보귀족들에 의한 ‘위선의 정치’를 넘어선다. 그래서 기득권세력의 발호를 억제하고 국정 전반에서 국민 전체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공정의 정치’로 이행을 할 수 있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진정한 진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시골에 사는 촌부가 쓰잘 데 없는 소리를 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시를 한 편 써보았다. ■ 반성 마늘 농사 지으려고 풀을 쳐 나가다가 호박넝쿨 건드렸네 길게 뻗어 아직 노란 꽃 피우고 뒤늦게 새끼까지 두었는데 내 한 번 낫질이 이리 모질게 네 모든 것 끊어놓았구나 애절토다 애절토다 하고 소리치지만 여지껏 내가 뿌린 오욕의 검댕들 온 세상 이곳저곳 퍼지지 않은 곳 없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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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의 ‘풀피리’⑩] ‘이재명’이라는 뜨거운 감자
박정미 and 35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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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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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대] . 지금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많이 있겠지요.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이 가진 입장과 어긋나는 사람을 사냥을 하듯 추격하여 잔인한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적 양분화가 극심해지며, 서로가 반대편을 절대 용납하지 않게 되었어요. 상대 쪽에 사소한 실수라도 발견되면 그냥 놔두는 법이 없어요. 이것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었어요. 가히 ‘사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시지요?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지 못하여 안달이 나있어요. 덩달아 사회 전체가 험악한 사냥판이 되다보니 이로 인해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난 규모에 달하고 있어요. 그것뿐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개인적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품성을 스스로 피폐하게 합니다. 이 고약한 현상이 가족을 지나 작은 공동체에서 큰 공동체로 번져나갈 때, 도대체 그 피해가 얼마나 엄청날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논쟁의 소지가 있는 말이지만, 며칠 전 이낙연 전 총리가 이천화재현장 희생자를 조문하러 갔다가 일어난 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요? 다소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는 말, 그리고 그 말들이 조문의 현장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것 외에 그나마 시간을 내어 찾아간 그의 성의를 ‘섬뜩하다’는 등의 적대감으로 돌릴만한 무엇이 있었나요? 얼마 전에 교내 시험문제를 유출한 일로 숙명여고 교무부장인 교사와 그의 쌍둥이 딸들이 모두 기소되었어요. 그 교사는 그 일로 무려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나아가 앞길이 구만리 같은 두 딸마저 범죄인으로 재판정에 섰습니다. 이 사건에서 잘못은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한 것이지요. 어린 두 딸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른 것뿐입니다. 꼭 미성년의 두 딸아이까지 잔인하게 처벌해야 합니까? 온정주의에 치우치지 마라고요? 그런 감상적 태도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처럼 너저분하게 되었다고요? 일벌백계의 철퇴를 내려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공정한 사회가 이룩된다고요? 어떻든 저는 그 사건에 관한 잦은 언론보도를 애써 외면해버렸습니다. 저는 두 눈을 바로 뜨고는 차마 그 사건을 볼 수 없었어요. 재판까지 받게 된 두 딸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 것인지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라도 그 아이들을 찾아가서, 난폭한 사냥의 보복으로 입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어요. 왜 우리가 이처럼 각박하고 잔인하게 되었나요? 아니, 이런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조차 모르게 되었나요? 어제 이용수 할머니가 한 기자회견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은 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치는 일을 이제 그만 두고,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새로운 한일평화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대구 중구에 있는 한 선술집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그를 만난 일이 있어요. 활달한 여장부라는 인상을 받았지요. 그에게 참으로 미안한 감정을 가지면서도, 깊은 대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를 만나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고귀한 인간성의 저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전한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에 너무나 뚜렷이 생긴 증오와 불신, 그리고 보복의 벽을 넘어서자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 새 봄이 찾아온지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신록이 제법 그늘을 만들었고, 그늘 밑에 들어서니 진해진 햇볕을 가릴 수 있군요. 여름이 저기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봄이건만 그 역시 유한하지요. 더 있어달라고 염치없게 말할 수가 없어요. ■ 오월 새가 앉으니 자두나무 가지 휘청거린다 저 새와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 지나가는 바람과 나는 나무 아래 풀꽃들과 나는 땅밑 지렁이는 오월의 따뜻함 어떻게 느낄까 ■ 감꽃 보릿고개 가파른 길 마지막 넘어갈 때 배고파 아, 배가 고파 노란 감꽃 새벽에 일어나 주워 먹었소 주렁주렁 실에 꿰어 방 벽에 걸어두었소 역사는 언제나 갈 길이 바쁘다고 시간을 싹둑싹둑 잘라버리니 먼 옛날 창고에 방치된 감꽃의 기억들 올해도 떨어지는 감꽃 한 움큼 모아 돌아갈 수 없는 길 쳐다보며 바닥에 흩뿌리오
崔明淑, 박정미 and 37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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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Oc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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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 오래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보았던 장면이다. 어느 일본 노인이 젊었을 적 지나(支那) 전선에 병사로 투입되었다. 한 마을을 소탕한 후, 얼굴 반반한 한 여인만 성노예로 써먹을 욕심으로 살려준 뒤 데려가고 있었다. 젖먹이 아이가 하나 딸린 여인이었다. 행군에서 자꾸 뒤처졌다. 누가 아이를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그러자 그 여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절벽에서 투신하였다. 노인은 흐느끼며 고백했다. 고미가와쥼뻬이(五味川純平)는 ‘인간의 조건’이란 책에서 일본군이 2차대전시에 저지른, 이러한 만행으로 점철된 엄청난 예를 폭로한 적이 있다. 수년 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병사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현장들을 순례한 일이 있다. 우리는 일본군의 잔학함에 치를 떨지만, 우리가 비슷하게 저지른 야만에 대하여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인간의 조건’과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시간은 흐른다.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나고, 5·18의 비극이 끼이긴 했어도 평화는 차츰 정착되었다. 그러면 그동안 우리는 모두 평화롭게 살아왔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조금씩 나아지긴 했어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서 생겨나는 어둠들은 걷히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전쟁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으나,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는 여전히 이어져 왔다. 그 착취의 중심역할을 한 것이 ‘룸살롱’이다. 한국인은 국내뿐만 아니고 세계 각지에 룸살롱을 만들어 성착취를 조장했다. 한국이 서울올림픽 준비로 들떠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생계가 곤란한 처자들이 찬란한 꿈을 안고 서울역에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맞은 것은 인신매매단이었다. 그때 강남은 서울의 유흥가로 번창하고 있었고, 이 강남의 어느 룸살롱은 서울역에서 갓 포획된 어린 여성들을 제일 먼저 데려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강남지역을 관할하던 법원에 친구를 찾아갔다가 그가 이끄는 대로 이 룸살롱에 들른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유흥가 출입 경험들이 한 번씩 머리에 떠오른다. 여성은 돈 몇 푼으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소비의 대상인 물건이었다. 내키는 대로 그들을 잔인하게 유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참상이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은 조금 유난히 논 사람이다. 무리를 벗어나서 아주 특수한 짓거리를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판검사만 이런 것이 아니다. 대학교수들도 이에 못잖다. 교수들은 학회참석 등의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한다. 적잖은 교수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가면 한국식 룸살롱을 찾는다. 말 그대로 혈안이 되어 기회를 노린다. 그 성행위를 그들은 ‘태극기를 꽂는다’로 표현한다. 그리고 교수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에서 조금 돈깨나 만지는 남성들은 룸살롱 가는 것을 마치 자신의 고양된 신분확인처럼 생각했다. 이런 흐름에 나름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적어도 몇 십년간 자의로 룸살롱에 간 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나는 내 인생의 상당부분을 그치들과 공범으로 엮여 있는데. 전 일본군 병사처럼 나도 눈물로 통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잦다. 죽을 때가 다 되니 별 짓을 다한다고 비난해도 좋다. 여하튼 한 번씩 처절한 참회의 시간들을 갖는다. 내가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면서… 최근 나는 우연히 ‘조국 사태’를 언급하며 내 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나는 이를 이용하고 싶다. ‘조국 사태’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성을 착취해온 축축하고 어두운 터널에서 함께 손을 잡고 벗어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조그마한 역할을 함으로써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소망한다.
박정미, Jeong-Woo Lee and 49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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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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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청(黃靑)동의 추억] . 대구 촌 아이가 대학교에 합격하여 필요한 서류를 접수시키려 줄을 섰다. 직원이 본적을 확인하는데, “황천동이 아니라 황청동입니데이!‘하고 힘을 주어 강조하는데도, 무심한 직원은 황천동이라고 적어버렸다. ’황청(黃靑)‘을 흔히 저승을 의미하는 ’황천(黃泉)‘으로 알아듣는 것은 너무나 잦았고, 차츰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그것은 고향에 대한 열등감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황청’은 아마 누런 황토와 퍼런 솔밭밖에 없으니 지어진 지명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대구에서도 구석이었다. 여기서 더 구석으로 들어가면, 범물동이 있다. 물(勿)은 영어로 ‘No'의 의미인데, 범이 수시로 출몰하니 주민들의 범에 대한 공포감이 지명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생 무렵 황청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계획이 성립된 김에 동명을 바꾸자는 청원이 일어났다. 그 결과 바뀐 이름이 지금의 ‘황금동(黃金洞)’이다. 하필이면 동 이름을 그렇게 바꾸었을까 하며, 또 다른 부끄러움으로 연결되었다. 임진왜란 무렵부터 내 조상들은 이곳에서 살아왔다. 평산 신가라는 양반이었음에도 차츰 한미한 집안이 되고, 전형적인 잔반(殘班)의 가문으로 떨어졌다. 망국민(亡國民)이 된 조부는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소장사를 하며 각지를 유랑하였다. 조모는 김일성의 며느리이자 김정일의 처인 성혜림과 같은 '창녕 성부자' 집안이었다.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시집을 왔다. 한때 조모와 성혜림과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해보았으나, 정확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나라는 망했고, 집안은 몰락했다. 더욱이 부모님은 처음부터 가혹한 소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모두 나쁜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집안이 이렇다 보니, 왜정 때 공부 많이 한 사람이나 출세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친일파도 없고, 동족상잔의 와중에 좌우 어느 한 쪽에 서서 피해를 당한 사람도, 가해를 한 사람도 없다. 기껏해서 4촌 장형이 6.25때 부역(附逆)을 조금 한 모양인데, 내가 1981년 서울대학에 조교로 사회 첫발을 디딜 때 신원조회에 걸려 몇 달간 조교임용이 지연되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사상적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주로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양자를 중심으로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된다. 운 좋게도 나는 조상들 때문에 어느 한 쪽에 채무의식 혹은 증오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지금 한 쪽의 극단에 서서 일체의 타협도 거부하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필시 그런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본다. 어떤 진보성향의 페친이 이용수 할머니에게 동정적인 포스팅을 하나 했는데, 그에 달린 댓글들이 가관이었다. 용수 할머니의 행동 뒤에는 필시 숨은 그림이 있고, 이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어조로 말한다. 그런 댓글을 쓴 사람 중에는 이 사회의 주역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꽤 유명한 사람도 보였다. 글쎄, 그들은 평생 이런 음모론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피를 타고 내려오는 피해의식에 젖은 몸을 말릴 기회가 없는 듯하다. 물론 그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맨날 생각하는 게 그런 시시껄렁한 잡소리뿐이고, 그에 맞는 유투브를 시청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니, 그 삶이 어찌 황폐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실제 국정에 반영된다고 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집안이 쇠락한 탓에 역사의 굴레에 매이지 않은 채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 역설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 쪽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런 무의미하고 소모적이기만 한 논쟁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자신의 내적 평안을 유지할 수 있으니 다행코도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 보신의 차원에서 나아가 꼭 한 가지 바란다면, 역사의 엄청난 피해자면서도 화해와 평화를 설파하는 용수 할머니에게 생의 마지막 평안이 꼭 찾아들었으면 한다. 덧: 지금 쥐똥나무 향기가 온 세상에 진동합니다. 아름다운 향기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주어진 이 나무는 좀 억울할 것입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기품이 고맙습니다.
崔明淑, 박정미 and 40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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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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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통령 선거와 '친문'의 몰락] . 4월 7일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이는 전초전이다. 내년 3월 9일의 대통령선거가 메인 이벤트이다. 만약에 여권이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서 모두 진다면, 그것은 여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거꾸로 두 자리를 모두 얻는다면, 여권 그중에서도 친문세력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에 이어 다시 한번 탄력을 받으며 대통령 선거를 자신들의 의중대로 이끌어나갈 힘을 얻는다. 이 때문에 여권은 4월 7일의 선거에 마치 목숨을 걸고라도 해치우려는 듯이 덤벼들었다. 선거법 위반이고 뭐고 없다. 무모하고도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우선은 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4월 7일 시장보선은 예선에 불과하다. 본선은 어디까지나 내년의 대통령 선거이다. 이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워낙 변수가 많아 1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전망의 정확성은 보잘것없을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월 5일 퇴임함으로써 큰 불확실성의 하나가 제거되었다. 그는 유력한 대선주자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듭 확인되었음에도 공직에 있었다. 또 그의 출마를 막으려고 하거나 그를 음해하는 여권의 공작이 워낙 집요하게 추진되어 와서 그라는 유력한 변수를 대선결과의 예측 산술에 제대로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보다 큰 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이 그림 속에서 우리는 대선의 전망을 조금은 뚜렷하게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나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아주 비슷하다.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거의 ‘혼밥’을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두 사람의 성향이 어쩌면 대단히 닮았을지 모른다. 그것은 가까운 측근에 휘둘리고, 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외에는 믿지 못하는 폐쇄적 스타일이라 인사를 아주 좁은 영역 내에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더 강한 팬덤을 갖고 있고, 그 팬덤을 적절히 이용하며, 감성정치의 달인이라고 평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박근혜 씨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나 아무래도 문 대통령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런 성향은 정치의 실종을 낳았다. 무엇인가 제대로 국정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강한 불만이 제기되어왔다. 현실의 문제를 과감하게 정확히 분석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즉각 대처하지 못한 채 국정의 동력이 무척 약하였다. 그 결과 생겨난 유약하고 무능한 리더십이 낳는 여러 부작용이 군데군데 생겨났고, 이런 속에서 국민들은 ‘10년간의 리더십 위기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강한 지도자를 희구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일찌감치 예측하였다. 윤석열 총장은 조만간 정계에 진출할 것이고 그와 이재명 지사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투 톱을 이루어 각축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내 예측이 맞았던 셈이다. 그러나 권력에 흠뻑 취한 친문세력이 절대, 호락호락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여권의 강경파가 중수청의 설립 등으로 ‘검찰의 폐지’를 추진해온 것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실체가 조금 더 뚜렷해진다. 더욱이 이번 4월 보선에서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서 모두 이긴다면 그들은 막판 뒤집기를 강력하게 시도할 것이다. 그 반전의 시도는 내년 대선을 결정지을 국민의 의사를 왜곡, 변개하여 권력의 장악을 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처럼 총칼에 의한 것이 아니란 의미에서 현대판 ‘연성쿠데타’라고 할 수 있고, 집권세력 내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친위쿠데타’라고 부를 수도 있다. 과연 친문세력이 마지막 벌일 정치투쟁은 성공할 것인가? 친문세력에서 내세울 수 있는 사람 중 이재명이나 윤석열에 필적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필사적인 쿠데타 시도는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또 최근 생긴 ‘LH사태’가 그들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는 물귀신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와 사회의 앞날을 위해서 친문세력은 시급히 몰락해야 한다. 일찍이 한국 헌정사에서 이처럼 ‘감성정치’에 치중하여 국민들을 거대한 착각 속에 몰아넣으며 자신들의 무능을 가려온 정치집단은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 백신확보에서 나타난다. 백신을 국내에서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국뽕’을 퍼뜨리며 정부는 백신확보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필리핀 같은 국가재정이 빈약한 나라도 일정 수량 확보한 백신을 작년 11월 30일까지 단 1회분도 확보하지 못하였다. 뒤늦게 부랴부랴 나섰으나 이미 시간이 늦었다. 그럼에도 없는 백신을 탈취당할지 모른다고 테러리스트 세력을 상정하여 대대적인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도대체 왜 이런 유치한 놀음에 치중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놀음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까? 이 정부가 그나마 백신을 확보하게 된 비결이 밝혀졌다. 그것은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국민이 낸 세금을 이런 식으로 장난치며 낭비해버린 것이다. 코로나 백신확보의 실패는 지난 정부가 저지른 세월호 참상의 비극을 능가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국민의 생명권’을 경시한 것으로, 다음 정부에서 꼭 그 책임이 물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재명이나 윤석열이건 혹은 달리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할지 모르는 이건, 지금의 친문세력에 포함된 인사들보다는 훨씬 낫다. 이들이 벌일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낼 분위기와 활력이 문재인 정부의 썩은 냄새나는 값싼 감성정치를 몰아낼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래서 좋다. 아무리 정부가 궤를 벗어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국민의 냉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대선의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덧: 땅에 누워 바라보는 봄 하늘이 싱그럽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으나 올해도 고맙게 봄이 찾아와주었다. 봄 하늘을 향하여 자두나무가 무수한 꽃망울들을 자랑하며 가지를 내뻗는다.
Park Yuha, 박정미 and 70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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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Nov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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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본인 스승들] . 연말이 다가온다. 쓸쓸하다. 낮은 기온이 몸속으로 파고들며 허전함의 공간을 키운다. 연말이 되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연하장을 쓰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종이 연하장이 거의 없어졌다. 정치인의 것이나 어떤 의도를 갖고 보내는 인쇄된 연하장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다. 옛날식으로 한 해를 정리하며 그쪽과의 살뜰한 인연을 이야기하는 연하장은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구식 연하장에 대한 고집이 좀 남아있는 사회다. 그래서 일본에 유학하며 모시게 된 두 분의 스승들께는 꼭 연하장을 보내드린다. 나는 1989년 한국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로 파견되는 판사 수가 적어서 경합이 치열했다. 무려 열 네 명의 판사가 지원했는데, 서열이 제일 밑인 내가 선발되었다. 조금 이상한 일이나, 지원자들이 미리 일본어 시험을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치렀다. 시험관인 교수가 법원행정처를 일부러 찾아와 내 일본어 실력을 칭찬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이것이 내 선발로 연결되었다. 그해는 지금 퇴임한 ‘헤-세-(平成)’ 천황이 즉위한 해였다. 일본 어디에서나 ‘평성원년(平成元年)’의 밝은 소리가 울렸다. 당시 일본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계경제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일본의 경제력이 세계 전체 GNP의 30 내지 40%를 점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래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에 버금가는 ‘팍스 자포니카(Pax Japonica: 일본의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까지 운위되었다. 그런 탓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구름같이 일본을 배우러 몰려왔다.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권위주의 정권에다 사회 모든 부분에 어두운 그늘이 져있었다. 88올림픽을 성공시키긴 했어도, 그것은 작은 성공이었다. 일본에 체류 중 일본의 대학에서 자리를 받아 연구실을 배정받은 외에, 일본 최고재판소의 외국재판관연수원으로서 동경지방재판소 판사실에서 직접 일본 판사들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해서 ‘일본 땅 일본 바람’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적은, 일본과 비교한 한국 사법부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은 사법부 내에서 격분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곧 이어 닥칠 1993년 내가 법관재임명에서 탈락하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일본에서 나는 두 분의 귀중한 스승과 인연을 맺었다. 그 중 한 분은 히토쯔바시(一橋)대학의 스기하라 야스오(衫原泰雄) 선생으로, 일본 진보헌법학의 태두(泰斗)라고 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는 평생을 통하여, 전쟁포기를 선언한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려는 우익의 거대한 흐름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세 나라가 평화로이 함께 공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했다. 그리하여 3국의 학자들 간에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며, 스스로 빈번하게 한국과 중국에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2007년에 한국헌법학회장으로서 한중일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헌법학자들을 널리 규합, 한국 국회에서 ‘아시아헌법포럼’의 성대한 창설대회를 열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은 그 분이 뿌린 씨를 수확한 것에 불과했다. 그분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은 화창한 얼굴로 조근조근히 설명하시나, 말씀의 내용은 뼈대가 있고 힘이 들어있었다. 어느 날 그분의 연구실에서 뵈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동경은 습도가 높아 겨울에는 추위가 뼛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그분은 옛날 제국대학 시절에 지어진 낡은 연구실에서 그나마 나오는 난방을 끄고 있었다. 오직 뜨거운 물을 끓여 만든 차를 한 번씩 마실 뿐이었다. 이런 극도의 내핍과 절제의 생활을 하는 일본인들을 드문드문 보며 일본사회의 저력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날도 선생은 한중일 3국의 평화로운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역설하였다. 근대 이후 일본의 국시가 되다시피 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의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대화가 끝날 무렵 일부러 나와 같이 서가의 책을 보는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것이 그분과 나의 유일한 사진이 되었다. 스기하라 선생이 그 무렵 일본에 오신 내 한국인 스승 김철수 선생을 만나, “신(申)상은 일본에 있으면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사람인데, 굳이 귀국한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 인생의 여러 어두운 골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선생의 그 말씀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분 소노베 이쯔오(園部逸夫) 선생은 1929년 서울에서 당시 서울법대의 전신인 서울법률전문학교의 교수로 있던 부친에게서 태어났다. 우리말로 ‘진고개’로 불리던 지금의 퇴계로 부근이 그 출생지다. 교수와 판사를 번갈아하다 나중에 최고법원의 판사(우리의 대법관)로 발탁되었고, 최고법원의 부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퇴임 후에는 황실전범(典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는데, 그 주된 의제는 여성이 천황위에 오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잠이 오지 않아 캄캄한 새벽에 일어났다. 마침 배달된 요미우리 신문에 ‘서울출생’의 선생이 최고재판소 판사로 발탁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조금 기다려 전화를 드리니, 놀랍게 본인도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동경지방재판소에서 판사들에게 농담조로 이 일화를 얘기했더니, 어떤 부장판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혹시 내가 사무총국(우리의 법원행정처)에 안테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수직적인 일본사회는 차별이 일상화되어있지만, 일단 자신들이 속한 ‘나와바리’(영역)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전혀 차별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 부장판사는 나를 자기들과 똑같은 일본의 판사로 착각하고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선생은 특별히 ‘서울출생’이라는 사실에 매여 있었다. 사모님이 “저이는 대륙의 사람이에요.”라고 자주 말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한국과의 인연을 무척 중히 여겼다. 마침 한국의 판사로서 처음 내가 일본에 파견되자 무엇이든지 베풀어주려고 애썼다. 선생이 내게 일본 체류 중 어려운 사정을 돌봐주는, ‘오세와닌’(お世話人)이라는 소문이 퍼져 지내기가 무척 편했다. 두 분은 정성을 다해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었다. 나는 그분들의 인격을 흠모하였고,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많이 배웠다. 기꺼이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셨다. 귀국 후 그분들이 한 번씩 한국에 오시거나, 내가 학회나 책 출판 등의 문제로 일본에 가기도 하여 뵈며 사제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2006년 10월에 부산대, 경북대, 사법연수원, 헌법재판소에서의 소노베 선생 초청강연을 계획하여 내가 모시고 다녔다. 서울의 한강변 88도로 위를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중이었다. 내가 한국에서는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라면 도장 하나만을 찍어주고서 몇 천만 원의 수임료를 챙기는 현실을 개탄하는 말씀을 드렸다. 선생은 그 말을 듣고 바로 “그것은 뇌물이지요!”라고 잘라 말했다. 선생도 일본의 대법관 출신이지만,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강연 투어 중간에 법률신문과의 대담이 잡혔는데 그때 선생이 한 말이다. 일본에서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문물과 제도를 급속히 도입하였는데, 법관직을 맡길 자원이라곤 전무하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무라이들을 응급으로 교육시켜 법관으로 앉혔다고 하였다. 우스운 말인데, 그래도 사무라이들은 명예를 생명으로 아는 것이니 그로써 일본 법관의 염결성 전통이 잡힌 셈이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두 분 다 이제 구순을 넘겼고 기력은 몹시 쇠하였다. 거기에다 스기하라 선생은 평생을 통한 과도한 집필활동으로 어깨를 잘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분이 속한 작은 지역공동체 마을 주민들의 올바른 헌법의식고양을 위하여 헌법교육에 성의를 아끼지 않았다. 소노베 선생은 카랑카랑한 음성, 고위 공직자 출신다운 품위와 분명한 태도, 의연한 몸가짐의 점에서 남달랐으나, 작년에 받은 연하장에 적힌 글씨가 몹시 구불구불하였다. 이제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을 피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토착왜구’니 뭐니 하여 일본에 호감을 가지는 인사들에게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이상한 풍조가 퍼졌다. 심지어 어느 유명 작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150만 정도의 사람을 모두 토착왜구라고 하며, 이들은 새로운 반민특위에서 단죄하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중국이나 미국에 대하여도 비슷하게 배척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공공연하게 나서지는 못한다. ‘배일’과 ‘반일’은 ‘반공’처럼 국가의 권력을 쥔 쪽에서 외치는 구호에 따라 속 편하게 동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편입된 것 같은 즐거운 착각을 할 수 있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요즘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또 일본과 거래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토착왜구’라고 하며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는 이들의 심정은, 미국에서 주로 흑인을 공격하는 하층 일부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racism)와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기 발밑에 다른 인간을 깔고 앉음으로써 저열한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보다 약한 자를 비겁하게 괴롭히는 전형적인 ‘불리잉’(bulling)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니클로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유니클로 개돼지’라고 마구 욕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민족주의 혹은 친일청산이라는 거창한 외관을 취했으나, 사실은 이와 별 관계가 없다. 앞에서 말한 그 작가는 지독한 반미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친미파’를 공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무슨 후폭풍을 겪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친일파’나 ‘토착왜구’는 우리 사회에서 힘을 못 쓰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 프레임에 넣어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잡한 행동을 하는 이들은 그것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안겨주는지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 당국은 이 몹쓸 행동을 어쩌면 조장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본보기로, 나에게 보내온 어떤 이메일을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간장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스런 절규가 글에 넘쳐난다. “빨갱이로 낙인찍거나 토착왜구로 낙인찍거나 그 찍기 수법과 폭력논리는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집사람이 일본인이고 올해 3월 다니고 있던 회사의 일본지사에서 약 2년 근무하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너무나도 변한 대한민국의 현실 어디에다 눈높이를 맞추어야 할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총칼만 안 들었지 유사계급혁명이 진행 중인 내전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문 586집단이 근래 보여주는 패악질은 무너져 가는 자신들의 허구와 모순을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력은 유한하나 진실은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청산은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시급한 역사청산은 ‘대미종속관계의 청산’이다. 우리는 이것을 떳떳한 자주독립국가의 실현을 위해 조만간 반드시 일궈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과는,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점을 잊지 말고 향후 친선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 미국인들과도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상호신뢰와 상호부조의 틀을 더욱 탄탄히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바라봐야 한다. 단순히 유학을 갔다 왔다고 해서, 생업을 위해 일본과 접촉을 했다고 해서 어찌 모두 매국의 ‘토착왜구’인가?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 이렇게 하루하루 성실하고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죄, 나아가서 그 사람의 마음에 원한을 품게까지 하는 죄가 결코 작지 않다. 더욱이 영문도 모르는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꼬드겨 ‘반일’, ‘반미’의 비열하고 잔인한 공격의 대열에 가담시키는 이의 죄는 한량없이 크다.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아마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자손에까지 넘어갈 흉측한 업보가 될 것이다. 다행히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 이후 정부의 반일정책에 수정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로 복귀하여 세계 지도자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고 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3국의 동맹을 전략적으로 최우선과제에 넣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여기에 추종하는 것이 타당하냐 여부를 떠나서, 과도한 반일 프레임으로 피해를 입은 억울한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산자수명한 한국을 지옥의 도가니로 몰고 가며 ‘토착왜구’의 소탕을 부르짖던 모습들이 조만간 완전히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 하늘과 바람과 별 일상이 내 생명의 꽃을 짓이기고 눈앞 풍경이 죄다 낡은 회색으로 비치던 어느날 그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깨달았다 내 입김이 살아 숨 쉬며 꿈틀거리고 풍경의 내면이 출렁거리며 튀어나왔다 하늘이 눈 깜빡이며 속삭인다 이제 너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어 바람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지나간다 좀 늦긴 했어도 다행이야 그런데 정수리 바로 위 별 하나가 어깃장을 놓는다 고마움의 울타리를 쳐야 네가 얻은 것이 그대로 남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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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가면 토착왜구? 저열한 약자 괴롭히기
Park Yuha, 박정미 and 38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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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ep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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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와 ‘토착왜구’] . 오래된 샘에서 길어 올리는 유년기의 추억이다.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아기이던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울고 있었다. 옆에 있던 누가 대구 앞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산에 빨갱이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 빨리 뚝 하지 못하겠니?” 나는 숨이 막힐 듯하며 울음을 멈추었다. 1950년대의 일이다. 빨갱이의 트라우마는 우리 민족의 뇌리에 깊게 파였다. 해방 후의 좌우대립, 6·25동란을 전후하여 벌어진 무자비한 양민학살, 휴전 후 계속된 남북대립의 모진 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빨갱이는 마치 흉악한 도깨비였다. 사람 잡아먹은 흔적으로 입에서 뻘건 피를 질질 흘리는 괴물이 바로 빨갱이였다.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이러한 상처를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정치적 반대자 누구라도 빨갱이로 낙인찍으면 그의 삶은 종쳤다. 그것은 정당성은 희박하면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이 가진 힘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빨갱이’는 과거 집권층이 판 가장 효과적인 정치상품이었다. 민주화되었다고 하는 지금, 세상에서 이제 더 이상 ‘빨갱이’로 낙인찍는 일은 없다. 그렇게 지목되어봤자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그친다. 그런데 그 대신에 ‘토착왜구’의 낙인이 횡행한다. 야당 정치인이건 혹은 여권에 대한 비판자이건 가리지 않고 그 낙인을 찍는다. 이제 ‘토착왜구’는 지금의 집권세력이 파는, ‘빨갱이’를 대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상품이다. 얼마 전 아베 일본수상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때 어느 국회의원인가가 낸 논평의 내용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아베 수상이 사임한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토착왜구들은 얼마나 슬프겠느냐 하는 코멘트를 했다. 이런 도착된 인식에 빠져, 기분 내키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토착왜구로 매도해버리는 것이다. 아주 고약한 정치선동이다. 끝없는 갈라치기, 상대를 오직 박멸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하시라도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공격적 성향, 이런 불결한 관념들이 그런 사람들의 머릿속에 꽉 들어찬 모양이다. ‘토착왜구’는 그들의 용어사용에 따르면 ‘친일파’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친일파를 좀 더 모욕적으로 부르려고 하는 의도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본다. 해방 후 친일파를 제대로 숙청하지 못하여 민족정기가 흐려졌고, 이것이 길게 여운을 끌며 우리의 성숙된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논의가 피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는 다양한 면을 꼭 살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아주 한정된 것이긴 해도 내가 아는 몇 가지 내용을 첨가해보자. 일본 식민지 당국은 한일합방 후의 시점에서도 조선의 친일파에 대하여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불안하게 바라본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의 한구석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친일파들은 조선반도 통치의 정당성은 이씨 왕조가 아니라 천황가에 있다고 믿는다. 신라와 고려에 이은 이씨조선이 아니라, 부여, 고구려, 백제 왕실을 이은 천황가가 바로 반도의 적통 지배세력이라는 것이다.” 친일파들이 그 나름으로 이렇게 명분을 세우며 친일을 한 셈인데,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죄상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1910년 아니 사실상 일본의 통치체제로의 복속을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서 시작한 것으로 본다면 1945년 해방까지 40년이 된다. 이것은 거의 두 세대에 걸친 너무나 긴 기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하여 점령된 프랑스의 경우는 불과 몇 년이었다. 일제의 장기에 걸친 통치기간에 이에 항거하여 백이숙제처럼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 식민지 당국이 하던 많은 일은 조선왕조의 정부에서 하던 일이었다. 조선 백성들의 일상적 삶에 관계된 일이었다는 뜻이다. 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별 죄의식 없이 총독부의 관료로 임관되기를 희망하였고, 테크노크라트로 활동하였다. 이들과 광주항쟁을 잔인하게 진압한 전두환 정권 밑에서 관료로 지낸 사람들과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바로 찾을 수 있을까? 추미애 법무장관은 전두환 정권에 반발하여 법관임용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는데, 좀 믿기 어려운 말이다. 그럼 왜 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는가? 일제의 테크노크라트로 일하였으면서도 민족의식을 가진 이들에 관한 적지 않은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그들을 ‘반민족행위자’, 혹은 ‘민족반역자’로 매도하기에는 일제의 강점기간은 너무나 길었고, 또 당시 조선반도의 사회분위기를 고려해도 그 매도는 어색할 수가 있다. 얼마 전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를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외국 것이다. 잘 알다시피 가미가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궁지에 빠진 일본제국의 대본영이 고안해낸 자살특공대이다.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에 ‘천황하사품’으로 건네받는 일본 ‘오사케’(お酒) 한 잔을 마신 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적인 미국의 항공모함 쪽으로 비행한다. 연료는 그쪽으로 가는 분량만 허용된다. 오직 항공모함을 발견하여 자신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거기에 충돌시키는 것이 임무다. 당연히 그는 죽는다. 아마 지금 토착왜구 낙인을 남발하는 사람들의 인식으로 판단하면, 가미가제에 자원하여 죽은 조선인은 당연히 악질의 ‘민족반역자’일 것이다. 천황폐하를 위하여 장렬히 전사(戰死)의 길로 걸어간 그들이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서 조선인 박 모가 출정을 앞둔 마지막 밤에 일본 출신 동료들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흐느꼈다는 일화를 전해줄 때 가슴이 서늘했다. 과연 그는 민족반역자였을까? 일본 식민당국에 협조하여 조선의 민중에게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한 자들도 물론 많다. 가장 흔한 것은 경찰의 말단 순사 혹은 순사보조들이다. 특히 일제 당국에 숱하게 고용된 순사보조들이 가장 악랄하였다. 그들은 조선 민중의 목숨을 개 목숨보다도 하찮게 여기고, 독립의 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잔인하기 그지 없는 고문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조선인들이었다. 만주에서까지 이들의 행패가 우심했다. 종전 후 만주 거주 중국인들이 일본인은 가도록 보낼 수 있어도 조선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외친 것도 그들의 탓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식민경찰에 소속되었으면서도 남몰래 동족의 조선인을 도우려고 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말단순사나 순사보조 중 악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판사나 검사, 군수 등 총독부의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들 중에서는 동족에 대한 연민의식으로 업무를 처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 일제 식민당국에서 일정 직위나 계급 이상의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전부 반민족행위자로 분류한 것이 타당할 것인가에 관하여 깊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해방이 된 지 벌써 75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토착왜구를 박멸하자!”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들은 가만히 기회를 엿보다가 눈에 거슬리는 상대편의 약점을 잡고선, “저 놈은 토착왜구요!”하고 외친다. 그것은 저질의 비겁한 정치선동이다. 그 목적은 단 하나다. 민족정기의 선양 같은 것은 그들의 심중에 없다고 본다.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보호하려고, 또 앞으로도 더 유지하려고 반대쪽에 선 이들을 탄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독립지사들이 만주벌판, 연해주, 미국, 유럽에서 자주독립의 꿈을 안고 풍찬노숙하였다. 심지어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바친 분도 있다.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독립자금을 바친 많은 우국지사들도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민족정기가 훼손되지 않은 채 살아남았고, 또 우리가 지금 떳떳하게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견주며 살고 있다. 현재의 한국은 작지만 강한 경제력으로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제는 일본에 대한 더 이상의 필요 없는 적개심을 묻어야 할 시점이다.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지사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고 선양하며,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외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일본과도 이제 구원(舊怨)의 감정을 풀며 공동번영의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정치상품’으로서의 반일 혹은 토착왜구 덮어씌우기는 이제 그만 팔도록 하자. 이것을 계속 팔려고 하는 것은 결국 선량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기득권 보호와 유지의 속셈을 숨긴 속임수다. 아무리 그러해도, 민주나 진보를 내건 세력은 ‘빨갱이’를 정치상품으로 팔아 재미를 봤던 세력과 비교하여 현저한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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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의 ‘풀피리’⑥] “저 놈은 토착왜구요!” 집권세력의 비겁한 ‘저질 선동’
Park Yuha, 박정미 and 41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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