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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대한민국사. 4 < 한홍구 - 4부에서는 정년을 맞은 신영복 교수의 감옥생활

대한민국사. 4 < 전자책 < Stanford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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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대한민국사. 4

저자 : 한홍구
출판사 : 한겨레출판사
출간일 : 2006-12-04
· 페이지 303 page· 공급사 한겨레엔(주)
· 서비스형태 PDF / EPUB· 파일크기 9.8 MB / 16.1 MB
· 웹뷰어 지원 지원· 부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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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출판사 서평
독자리뷰

콘텐츠소개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관통하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는 <대한민국史> 시리즈. 저자가 '한겨레21'에 연재했던「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보는 올바른 관점과 기준을 강조하며, 편향을 거부하는 폭넓은 시각으로 역사의 주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들의 역사적 뿌리를 근현대사에서 찾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제4권에서는 386세대의 이야기에서부터 현재도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한미FTA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대한민국사가 일제의 강점, 분단, 전쟁 그리고 독재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절망의 역사가 아닌 희망의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한국의 자주적이고 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2부에서는 1948년 12월에 태어나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의 과거와 고백하는 자의 고통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본다. 4부에서는 신영복, 김형률, 철들지 않는 386의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5부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왜곡된 역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자소개
저자 : 한홍구
한홍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상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史』 1, 2, 3권, 「상처 받은 민족주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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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

목차
머리말_ 대한민국史는 희망의 역사다

1부 주권은 아직도 불온한 꿈인가 ―노근리 폭격에서 FTA 공세까지
주미대사도 외면한, 아아, 노근리 : AP통신의 취재로 세상에 알려진 그날의 끔찍한 학살
광주가 김세진과 이재호를 낳았다 : 미 문화원을 불지른 극적인 전환과 반미운동
대원군이 노무현보다 나은 이유 : 한미FTA 추진파의 ‘쇄국망국론’에 답한다
광해군을 죽인 그들이 돌아왔다 : 뛰어난 외교적 안목과 실용외교를 사대주의로 짓밟은 조선의 사대부들

2부 국가보안법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들자마자 12만 명을 삼킨 국가보안법 : 고양이가 호랑이로 거듭난 변천사
내 학생은 과제물로 잡혀갔소 : 국보법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작두로 잘라 불태운 시집 : 해직기자와 교수 그리고 운동권이 출판에 뛰어들다
현대사 공부하지 마, 다쳐! : 1970, 80년대 ‘한국사 연구’의 추억
황우석과 인혁당, 조작의 재생산 :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폭력, 국가보안법의 본질

3부 기억하지 않는 자와 고백하는 자
‘돌대가리’로 박정희를 들이받다 : 독재자의 단순·무식·과격한 분신, 김형욱
그는 언론이 탐나서 몸부림쳤다 :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사 강탈
조국이 일본에 남긴 38선 : 철저히 이용당한 재일조선인의 역사
나는 지금 ‘고백’을 기다린다 : 국가폭력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 유일한 길
국립묘지를 보면 숨이 막힌다 : 계급별로 차별받으며 묻히는 사람들

4부 그때 그 사람들 ― 신영복, 김형률, 유시민 그리고 386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 : 한국 현대사와 통혁당 사건의 내막을 듣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자기 개조 : 신영복 교수의 20년 감옥생활과 ‘대학시절’

김형률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피해자 2세의 죽음이 우리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
철들지 않고 사는 즐거움 :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형님들에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가고 있는 사람들 : ‘전사’의 시대를 살다 일찍 시들어버린 세대

5부 왜곡된 역사의 고리를 끊고
민주화돼서 행복하십니까 : 도청사건을 통해 본 시민들과 기득권 세력의 팽팽한 ‘힘겨루기’
자유당의 저주는 풀리지 않는가 : 왜곡된 역사를 끊을 줄 알았던 열린우리당의 생일에
박정희가 때린 사학, 딸이 달래나 : 사학의 기형적 성장과 족벌사학
최일병, 김일병, 그 다음은? : 병역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
18만 감군, 낯간지럽다 : 소극적인 감군과 예산 증액은 문제


한홍구 교수,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하다

한홍구 교수,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하다



한홍구 교수,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하다
[한겨레21]
민족주의자 교사 아들로 태어나 4·19의 충격을 맛보고 무기수가 되기까지…
올해 교수 정년을 맞는 그에게 한국 현대사와 통혁당 사건의 내막을 듣는다

등록 2016-01-16 11:02
* 이 기사는 2006년 5월11일 <한겨레21> 제609호에 실렸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입니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 어느새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될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온 세월, 사색이니 성찰이니 하는 것은 모두 사치스러운 장식물이었는지 모른다. 군사독재 정권이 앞을 내다보고 역할분담을 시켜놓은 것이라고나 해둘까? 밖에서 쫓기듯이 바쁘게 사는 동안 바깥사람들이 꿈꾸지 못할 차분한 사색과 깊은 성찰을 바깥사람 몫까지 대신해야 했던 분이 있다. 1988년 세상이 조금 좋아진 뒤, <평화신문>에 그의 사색의 편린이 실리기 시작했다.

신영복 교수가 2006년 정년을 맞을 당시 사진. 20대의 청년 시절에 감옥에 들어가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리고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징역은 나오는 맛에 산다는 말을 위로로 건네기에는 너무 긴 20년 세월을 뒤로하고서. 20대의 청년 시절인 1968년 생일에 잡혀간 그는 꼭 20년 세월을 보내고 1988년 생일날 석방됐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또 흘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신영복 교수가 올해 정년을 맞는다.장래 희망은 조선인 총독?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동료 교수들과 더불어 조그만 기념문집을 만들기로 했는데, 거기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선생님의 삶을 정리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자주 뵙는 사이에 정색하고 마주 앉아 인터뷰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자리를 마련했다. 선생님께서 기억하기 싫어하는 부분도 캐물어야 하는 곤란한 순간도 있었지만, 선생님께서 살아내신 한국 현대사를 가까이서 듣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최근 한명숙 총리의 지명을 계기로 그의 부군인 박성준 교수의 전력을 놓고 말이 많았는데,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 사건에서 박성준 교수의 ‘상부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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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은 1941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밀양이지만, 출생지는 의령이었다. 아버지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상북도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일본인 교장의 조선 학생 차별에 항의하다가 파면됐다. 몇 년 지난 뒤에 같은 경상북도는 안 되고 도를 달리해 경상남도에 정식 ‘훈도’가 아니라 ‘촉탁’으로 복직시켜주더란다. 아버지께서 교사 한 명뿐인 간이학교의 ‘교장’으로 의령에서 근무하실 때 신영복은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부산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어린 신영복은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밀양 등지의 사택에서 자라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에는 유열, 이극로 등 저명한 한글학자들- 모두 월북했다- 도 드나드셨는데, 어느 분인지 모르지만, 아버지 친구들은 꼬마 신영복에게 장래희망을 물으셨다. 처음에야 이럴 때 아이들은 자기 희망을 솔직하게 얘기하지만, 조금 지나면 어른들이 바라는 ‘정답’을 말하게 되는 법. 일제 말기의 암울한 시절, 그가 가진 희망은 일본 총독이 되어 일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일본 총독이 뭐냐고? 조선이 독립되고 일본을 식민지로 삼게 된다면 일본을 다스리는 조선인 총독이 된다는 얘기다. 해직교사였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민족주의자 친구들의 장난기 어린 조기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신영복은 세상과 만나기 시작했다.

다섯 살 꼬마 신영복의 머리에도 해방의 그날은 기억이 또렷하다. 비가 엄청나게 온 그날, 동네 청년들은 어린 신영복을 집에서 조금 떨어진 교장 사택으로 데려가 그곳을 지키게 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교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집 안은 책상 서랍도 다 열려 있는 등 급히 떠난 흔적이 역력했다. 동네 청년들이 다섯 살 난 어린 신영복에게 왜 일본인 교장의 텅 빈 사택을 지키게 했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적산의 접수와 보호라는 중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쟁은 그가 열 살 때 터졌다. 그러나 밀양은 인민군 수중에 들어가지 않아 ‘인공’ 치하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전쟁의 기억은 끔찍했다. 어느 날 서북청년단원들은 좌익으로 몰린 청년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벤 뒤 철사로 귀를 꿰어 영남루 부근의 다리 양쪽으로 가로등마다 묶어놓았다는 것이다. 20여 개의 머리가 걸려 있다 보니, 여학생들은 겁에 질려 다리를 못 건너고 우는데, 어린 남학생들은 그래도 다리를 건너갔다고 한다. 신영복은 무서움 속에서도 머리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폈다. 실제로 자세히 바라보니, 피가 다 빠져 백지장처럼 하얘진 얼굴은 생각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광고“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

신영복이 베어진 머리를 유심히 살핀 까닭은 거기에 누군가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해방 직후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신영복 집에 모였던 수많은 청년들, 그중에 특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다. 동네 토박이는 아니고, 떠돌이로 다니다 동네로 흘러들어와 궂은일 해주고 밥 얻어먹던 청년이었다. 토끼도 잘 잡고 팽이도 잘 만들어주던 청년, 그러나 늘 천대받던 그가 기세등등해진 모습을 보고 세상이 바뀐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군이 들어오고 사라졌던 친일파들이 다시 나타난 뒤로, 신영복은 그 청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앞장서서 친일파 집을 때려부수고, 달아난 친일파가 미군을 앞세워 돌아오면서 사라졌던 청년, 어린 마음에 사라졌던 그가 꼭 거기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너무 어려 해방과 전쟁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기억만큼은 또렷이 그의 잠재의식 속에 각인돼버렸다.

밀양군 교육감이 되신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그는 자형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부산상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시인으로 5·16 군사반란 뒤 교원노조 운동으로 구속된 살뫼 김태홍 선생이 당시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의 권유로 한국은행 면접시험 대신 서울상대에 시험을 쳐 합격한 것이 1959년이었다.

1968년 11월28일 열린 통혁당 사건 공판. 당시 군 장교였던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의 주요 간부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꼭 1년 만에 4·19가 일어났다. 그것은 엄청난 감동이자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선거 다시 해라’ ‘자유당 정권 물러가라’ 정도에 약간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가미된 정도였지만, 세상이 바뀐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큰 감동이었다. 4·19에서 5·16까지 비록 1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푸른 하늘을 보았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지금까지 그를 지탱시켜준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4·19는 그야말로 “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이었다. 비록 독일어 원어를 교재로 썼지만, <자본론> 강독이 정식 과목으로 개설되기도 했고, 학생들은 ‘공산당 선언’ 같은 문건을 번역해서 세미나를 시작했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지식 사회에 새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5·16이 왔다. 처음에는 지주 아들 윤보선과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박정희를 대비시키기도 하고,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이야기하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혁명재판소 만들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등을 사형시키는 등 사태 진전을 보니 박정희는 영락없이 “권총 찬 이승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배후에는 미국이라는 외세가 있었다. 그 거대한 힘이 4·19를 누르고 있었다. 4·19의 감동 속에 총알은 우리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고 진보적 청년들은 생각했지만, 5·16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깨달았다. 총알은 모자만 뚫고 지나갔다고! 5·16이 무너뜨린 것은 무능한 장면 정권만이 아니었다. 5·16이 진정 짓밟은 것은 4·19 이후 돋아나기 시작한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 각 부문 운동의 새싹이었다. 해방 정국에서 변혁적 운동의 복원이라는 의미의 4·19가 군부세력에 의해 짓밟힌 것이 5·16이었던 것이다.

1·2학년 때까지 가정교사 하느라 학교 공부만 따라가기 바빴던 신영복은 5·16이 일어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세미나 지도를 시작하는 등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군사정권이 들어선 현실에서 장기적인 학생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서울 상대에 본격적인 독서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이나 ‘신민주주의론’ 같은 논문도 번역해서 대학노트에 베껴적어 (복사기와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 돌려읽고,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도 영문판을 구해 대학노트 4권에 깨알같이 번역해서 돌려읽곤 했는데, 나중에 통혁당 사건이 터지면서 모두 중앙정보부에 압수됐다.통혁당 간부들은 만난 적도 없었는데…

3학년 이후, 거의 매일같이 세미나의 연속이었다. 상대 학생들로 조직된 경우회, CCC란 종교단체 산하의 경제복지회, 정읍 출신들이 모인 동학연구회 등 나중에 통혁당 사건 때 연루된 동아리들 외에도, 고려대·연세대의 학생 동아리 세미나에도 자주 가서 지도했는데, 이런 모임이 예닐곱 개가 되다 보니, 각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있어도 매일 불려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주로 다른 대학이나 연합 동아리 지도에 주력했다. 당시 경제과는 150명이나 되었지만, 대학원에는 지금과 달라서 3명만이 진학했다. 그런데 같이 입학한 동기들 중 1명은 ROTC로, 다른 1명은 해군장교로 입대해버려 대학원에는 혼자만 남았다. 경제과 대학원의 한 해 위에는 안병직과 사회학과를 졸업한 신용하가 있어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 뉴라이트의 깃발을 내세운 안병직은 그때는 아주 좌파적인 입장이었다.

1998년 석방된 신영복 교수.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다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대학원을 마치고 숙명여대에 강사로 나가던 시절, 아마 1965년 2학기나 1966년 초에 <청맥>이라는 잡지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안병직 등 선배들을 따라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김질락은 신영복보다는 67년 선배였다. <청맥>은 통혁당 핵심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인데, 반미적인 논설이 종종 실렸다. 당시 신영복은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강사이다 보니 잡지의 필자 풀(Pool) 성격인 새문화연구회에서는 막내인지라, 적극적인 역할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김질락과 그의 후배 이진영 등은 신영복이 학생운동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접근했고, 어느 날 김질락이 정색하고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물어왔고, 신영복이 그렇다고 하자 그날부터 김질락, 이진영과는 따로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이 사형됐으니,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살아 있는 사건 관련자 중에서 가장 핵심 인물이 된다. 그런데 나도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알았지만, 신영복은 최고 책임자로 발표된 김종태나 조국해방전선 책임자로 발표된 이문규 등 핵심 간부들은 사건이 날 때까지 만나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문규야 학생운동 선배라서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지만, 김종태에 대해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영복이 김질락과 만난 횟수는 <청맥> 잡지사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모인 것까지 합쳐 전부 10번 안팎일 것이고, 김질락의 집에서 이진영과 함께 따로 만난 것은 5번 정도라 하니 참으로 비싼 징역을 산 셈이다.자술서 자체가 고문이었다

그런데도 공안당국의 기록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에서 나온 통혁당 관련 일부 서적에는 신영복이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과 함께 통혁당의 강령을 정하는 등 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신영복은 민족해방전선이 조직한 산하단체라 발표된 경제복지회나 경우회, 동학혁명회 등은 각각 역사가 오랜 자생적인 단체로서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었을 뿐이고, 김질락 등과의 모임에서 학생운동 동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건에 연루돼 고생하게 되었다면서 미안해했다. 중앙정보부가 엄청나게 부풀린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도 분명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질락 등이 북에 산하단체라 보고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과 북 관료집단의 성과주의와 자기 활동을 과장해서 보고한 통혁당 지도부의 합작으로 사건이 확대됐다고나 할까? 북과의 관련성을 부풀리려는 공안당국이나, 통혁당을 북의 지도성이 관철된 조직으로 그리려는 진보 진영 일각이 각각 다른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통혁당 사건에서 핵심은 북과의 관련 문제이다. 신영복은 통혁당에 대해서는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고 중앙정보부에 가서야 들었다고 했다. 또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조직의 명칭은 명시적으로 합의한 적은 없지만, 분단된 베트남을 보면서 그런 성격의 조직이어야 한다는 논의는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민족해방전선의 지도부라고 발표된 김질락, 이진영과의 논의 과정에서 이미 남과 북이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일국일당주의를 취해 북이 중앙이 되고 남에 지역당을 건설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남쪽에 자생적인 운동의 구심이 서야 한다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질락이 김종태나 이문규 등과는, 또는 북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민족해방전선 모임에서는 북의 직·간접적인 지도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의한 바도 없으며, 북과의 관계는 대등한 혁명의 구심 정도로 이야기됐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의 수사는 혹독했다. 이미 김질락이 다 불은 터라, 저들은 신영복이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었다. 현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신영복이 북에 갔다올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저들은 북에 갔다온 날짜를 대라고 구타와 전기고문을 하여 까무러치기도 했다. 고문도 힘들었지만, 조사 자체가 고문이기도 했다. 청년기의 고민과 방황이 어린 수많은 만남과 토론, 그리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보았던 수많은 책들은 몇십 장의 자술서와 몇십 장의 조서와 몇 줄의 법률용어에 의해 온통 조직적인 관계로 규정됐다. 지난 수년간 자신이 행한 활동을 담은 것이건만 수사 기록은 외국어보다도 낯설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복잡한 사상과 의식이 규정되고 단죄되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원숭이 똥구멍’ 노래가 생각났다고 한다. 신영복이 수사를 받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도 친구들과 많이 외우며 놀았던 노래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빨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수사기관의 논리학을 지배하는 것은 흑백논리도 삼단논법도 아니었다. 무엇이든 갖다붙이면 척 붙어버리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사기관의 연상법 놀이여!사형 구형하면서도 “걱정 하지 말라”

당시 육사교관으로 현역 장교 신분이었던 신영복은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김형욱의 중앙정보부는 이문규를 구출하러 북이 파견한 공작선의 암호를 해독해 격침시키면서 2명을 생포했는데, 이들도 통혁당 관련자로 사형을 언도하는 등 이 사건의 크기를 부풀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직접 북에 내왕한 것은 아니지만, 민족해방전선의 지도부 격으로 위치지은 신영복에게도 사형을 선고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시에는 주로 불고지죄, 즉 김질락이 북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죄가 중심이었던 것이 기소 단계에서는 반국가단체 구성 예비음모가 중심이 되었고, 1심과 2심에서는 반국가단체 구성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재미있는 것은 최고형이 징역 2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인 반국가단체 구성 예비음모죄로 기소된 사람에게 군사재판에서 기소 죄목이 아닌 반국가단체 구성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기에 대법원에서는 당연히 파기환송. 군 법무사들이 사형을 구형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사형을 구형하며 걱정하지 말라는 놀라운 인도주의와 여유!-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파기환송심에서 군검찰은 죄목을 구성죄로 바꾸는 공소장 변경 조치를 취했고. 재판부는 정상을 참작해 최고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학생 동아리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나쁜 대법원 판례를 남기는 것이 좋지 않다는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상고는 포기했다. 통혁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실제 통혁당은 그가 투옥된 이후에 조직된 것으로 북에서 발표됐다- 김질락 이외에는 통혁당 지도부인 김종태나 이문규를 만난 적도 없으면서 대표적인 통혁당 지도간부로 인식되는 무기수 신영복은 이렇게 탄생했다. 상고포기를 하여 무기징역이 확정된 것은 1970년 5월5일 어린이날이었다. 재판을 죽 지켜본 호송 헌병의 호의로 남산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무기징역의 기나긴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사형수일 때는 무기만 되어도 원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무기징역은 어떤 의미에서 사형보다 더 암담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신영복 대해부 ①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상황이다” 뉴데일리 2016

"맞다, 신영복은 본디 붉은 사람이다" | Save Internet 뉴데일리


신영복 대해부 ①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상황이다”
"맞다, 신영복은 본디 붉은 사람이다"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부교수
입력 2016-01-26 10:53수정 2016-01-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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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의 대담한 도발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에 대해



▲ 얼마 전 작고한 故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신영복 개인 홈페이지 캡쳐




얼마전 작고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우상화 광풍이 넘쳐나고 있다.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좌파 전체주의 추종 언론들이 깃발을 들고 북을 두드리며 앞장서고 있다.
다음카카오 같은 포털은 이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과대포장해 배포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광풍 속에서도 여론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게 메이저 언론이다.
그러나 조중동 KBS MBC는 얼이 빠진듯하다.
곁가지로 전락한채 부채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
하기야 신영복을 인문학자로 띄우는데 팔걷어 올리고 나선게 <중앙일보>이니 무슨 기대를 할 것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 <처음처럼> 소주병에 붙어있는 글씨를 쓴 서예가, 김제동 등 연예인을 제자로 거느린 진보경제학자.
신영복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은 대강 이 정도선에서 머무른다.

신영복은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68년 평양의 직접 지휘를 받는 간첩단인 <통일혁명당> 핵심간부인 것이 들통나 무기징역형을 받은 인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동서해빙 분위기 아래서 특별가석방되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김질락에 의해 포섭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의 박성준(한명숙 전국무총리 남편) 등과 함께 <통혁당>의 학생운동조직을 만들고 지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런 신영복의 본질과 본색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사라지고, 인문학자로서의 포장지만 부풀려진 셈이다.
그가 마치 [시대의 스승이자 사표]인양 왜곡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진면목은 무엇인가?

<뉴데일리>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국정교과서 문제의 핵심에 대해 비수처럼 날카로운 글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킨 김철홍 장로회신학대교수가 이 문제에 대해 참지 못하고 먼저 외과수술용 칼을 들고 나섰다. [편집자 주]





2016년 1월 22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오승훈 기자의 글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매우 의미심장한 기사다.
그 이유는 <한겨레>라는 신문이 대한민국에서 의미심장한 신문이기 때문도 아니고, 신영복이라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인물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 기사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 글을 통해 사실상 대한민국이 [내전](內戰) 상태에 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가식이 없는 [솔직함]에 있다.
그 기사는 신영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오승훈 기자는 자신이 직접 신영복에게 [붉은 딱지]를 붙여버림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붉은 딱지]를 붙일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우리 진보진영을 공산주의로 몰아가려는 신(新)메카시즘을 중단하랏.”
“멀쩡한 사람을 종북(從北)으로 몰아가는 마녀 사냥(빨갱이 사냥) 중단하랏.”


소위 [진보진영]과 공산주의 이념 사이의 연결 고리를 지금까지 위와 같은 논리로 부정해온 좌파들이 앞으로 가면을 벗고 떳떳하게 붉은 맨얼굴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 기사는 신영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감옥 안에서 작성했다는 [전향서]는 어떻게 된 것인가?




▲ 故신영복 교수가 검거된 이유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대남혁명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핵심인물로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뉴데일리 DB




그 기사에 따르면 신영복 본인이 “지금 다시 그때가 되더라도 전향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전향서는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이며, 자신은 전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88년 가석방이 되어 출소된 뒤, 그리고 1989년에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뒤, 죽을 때까지 줄곧 “그의 반(反)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는 글에서, 기자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전향서 썼다고 전향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희들이 너무 순진한 거야.”그렇다.


신영복은 자유민주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붉었고, 차가운 감옥에서 썩기엔 그의 [붉은 열정]은 너무 뜨거웠다.


<통혁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신영복과 함께 재판을 받고 처형된 김질락이 처형되기 전에 남긴 옥중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 (원제; 주암산)에 기록되어 있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나눈 긴 대화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신영복:
“(중략) 외견상으로 볼 때 누가 봐도 저는 순수한 자유주의자죠.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재미나는 말로 계급의식을 주입시키지요.
예컨대 원시사회에는 인간이 뛰어다니며 자연을 착취하며 살았고, 좀 더 편하게 살자니 농사를 지었다.
농사짓는 것보다는 남이 지어 놓은 농사나 재물을 빼앗는 게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부족 간에 싸움이 생기고, 이긴 자는 지배자가 되고 진 자는 노예가 되었다.
그리스 문화만 하더라도 노예의 희생 위에 성립된 것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자연을 착취하는 데서 인간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지능이 발달했다.
이런 식으로 인류역사가 계급투쟁사임을 인식시키는 거죠.
이런 방법이 훨씬 안전하고 사회주의를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잘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중략)



김질락:
“미스터 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의 한국경제는 미국의 신식민주의 정책에 의해 완전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레닌의 말과 같이 금융적으로 완전히 예속된 나라는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독립성을 상실한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나는 결코 인혁당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혁명의 방법론을 갖고 있습니다.
미스터 신은 나하고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으시오?”


신영복: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인혁당에 관련됐던 사람들을 몇 사람 알고 있는데, 그들은 도무지 돼먹지 못했더군요.
너무 교조주의적이라고 할까.
요즘 세상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곧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단기간의 훈련만 마치면 육사교관으로 임명됩니다.
제가 훈련받고 와서 육사교관으로 임명되고 난 뒤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김질락은 신영복과 처음 만난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결합되었다.”

신영복은 그 때부터 숙명여대의 [붉은 강사]였고, 육군 중위 계급장이 달린 초록색 군복을 입은 [붉은 군인]이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서 가르친 [붉은 교수]로 살다가 죽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1월 18일.
1천명의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지만, 흰 눈도, 심지어 검정색 옷도 그의 [붉은 사상]보다 더 진하지 않았다.




▲ 신영복 교수의 빈소를 찾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성공회대 초대총장이었고, 盧정권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를 <성공회대학> 교수로 초빙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성공회대 초대 총장)이 조사에서 한 말.



“불의한 재판으로 선생님의 몸은 가둘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지성은 가둘 수 없었다”이런 그의 말은, 징역 20년의 형벌 정도는 [본디 붉은] 사람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신영복의 죽음 이후 좌파들이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남조선에서의 인민해방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사람을 향한 그들 나름대로의 [예의]이므로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한겨레> 기사는 도를 넘어도 한 참 넘었다.
이것은 단순히 애국진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간보는] 게 아니다.




필자 주
물론 안철수 의원만 간을 보라는 법이 없으므로 [간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보기] 치고는 너무 간이 부었다.

그 기사는 좌파들이 내부적으로 읽는 내부문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들을 향한 선언문에 더 가깝다.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주장은, “한겨레, 우리는 본디 붉은 신문이다”라는 선언이다.
“진보진영, 우리는 본디 붉은 집단이다”라는 자기 고백적 선언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안에 붉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이며, 그들의 본진(本陣)이 내어놓은 공식적 선전포고라고 보아 손색이 없다.


나는 모든 애국시민들과 더불어 <한겨레>의 이 선언을 두 손을 들고 환영한다.
왜냐하면 이 기사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용기를 내어] [붉은 것]을 ‘붉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중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애국시민들에게 이 기사보다 더 좋은 교육 자료는 없다.


"요즘 세상에 공산주의자가 어디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기사를 읽고 입을 다물기 바란다.
평균적 지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글을 읽고 “신영복이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공회대학> 안에 [붉은 학자]들이 어찌 신영복 한 사람뿐이겠는가?
[붉은 학자]들이 어찌 <성공회대학> 안에만 있겠는가?
또 [붉은 사람]들이 다 학자이겠는가?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붉은 사람]들은 실존하며, 오늘도 그들은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신기루가 아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허구가 아니다.
[붉은 사상]에 물든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시장 경제제도를 허물어뜨리려고 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도, 소설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에 내전(內戰)의 상황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좌우(左右) 대립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전후로 한 시기의 좌우 대립을 이미 넘어섰다.
내가 보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거의 6.25 직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공화국에 핵무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겨레>와 범좌파가 더욱 더 노골적으로 [그래 우리 붉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뭐 어쩔래?]하며 눈꼬리를 치켜뜨는 이유다.


<통진당>이 해산되고 이석기가 유죄판결 받았다고, 지금 잔치를 벌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2의 이석기, 제3의 이석기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판결되었다고, 지금 샴페인을 터뜨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중고등학교 교실은 여전히 붉은 교사들의 작업장이고, 사회주의에 친화적인 세대가 계속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 지난 6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것이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YTN 당시 北조선중앙TV 인용보도 화면캡쳐





대한민국은 휴전선 너머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지금 휴전 상태이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은 한 번도 우리에게 휴전회담을 제의해 온 적이 없다.
그들은 지금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완(未完)의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다.



이미 내전은 시작되었다.
아직은 총이 아닌 펜을 들고 싸운다.
부디 불가피하게 총을 집어 들어야 하는 상황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남과 북이 총을 들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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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형수 김질락이 본 신영복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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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2016.01.26 15:13



조만간 미친돼지 김정은 룡해가 내리친도끼에 가고
김일성이가 만든 사교집단 종말을 고하면
남한내 좌빨들 모두 밝혀지면 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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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민
2016.01.26 17:59 · 공유됨(1)



@진도 빨갱이들이 입만열면 내세우는 북풍 혹은 민주니 진보니 국민이니 민족이니 입만열면 구라만 치는진보팔이 민주팔이 들이 창피하지도 않는가봐 에라이 빨갱이들아...입으로는 천하의 도덕군자처럼굴지만 실상은 양아치보다 못한 민주팔이 사이비 진보들 ..하기사 빨갱이들 한테 뭘바라냐 그냥 죽창이나들고 사회를 혼란케하는 테러분자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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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mysincerity
2016.01.26 15:40 · 공유됨(1)



@진도 모든 부정과 비리를 북풍이나 안보논리로 진보에게 떠넘기던
그 수구세력들이 줄줄이 새끼줄에 굴비엮듯 엮기어 심판받을
날이 된다는 것은 왜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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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luc****
2019.06.25 23:32



오백만이 넘는 인간을 죽게 만든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의 후손앞에 환심사기위해 환장한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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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luc****
2019.06.25 23:28



문재인이 추앙하는 신영복은
백제,고구려의 후손인 전라도와 북한이 손을잡고
신라의후손 경북도민을 궤멸시키기위해
신라의 핍박을받은 가야의후손 문재인을 이용하자는
사상이다
박근혜는 삼국통일한 선덕여왕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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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i-Tack Jeong
2016.01.27 14:19 · 공유됨(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읽을만한 책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니 인문학자로서는 존경할만 하다고 생각되고, 그리고 통일혁명당? 그건 잘모르겠지만, 조작된것이라는 글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판단유보. 그리고, 정부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면서 북한이나 가라고 하는건 새누리당 역대전략인데 좀 깨질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한심스럽다. 친일 세뇌하려는 데일리신문이니 좀 걸러서 볼건 걸러서 봐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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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oonk
2016.01.27 14:03 · 공유됨(1)



종북자들의 공통적인 점은 김일성의 3대세습을 억지로 합리화 미장하여 대한민국을 좀먹게하여 북한처럼 같이 못살게하려는 반역자들이다. 또한 진작 이북에는 가서 살지않는다, 이야말로 이율배밤적인 가증된 꺽때기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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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맨
2016.01.27 11:32



이런 빨갱이를 교수랍시고 배운제자들과 김제동을 정신병자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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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16.01.27 11:03



혼용에 위록지마일세 ..한심한신문 한심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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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hgdj
2016.01.26 23:53



좌파10년에 사회곳곳에 종북좌파들심어놨으니,,,,,발갱이가수가북한사회찬양하는글이
우량도서로선정된것이좋은예다,,,,,사회불만분자들이 설쳐댈수록 경제는어렵고 미래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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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2016.01.26 23:20 · 공유됨(1)



더일찍가야될세ㅐ끼구만 진보를앞세우고위선을한디런빨갱ㅇ;새끼들 잡아내서다직여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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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hbh0905
2016.01.26 23:04 · 공유됨(1)



이미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이나라는 내전 상태가 된 것입니다. 좌빨들이 국개에 입성하기 시작했고 10년간 좌빨이 대통령을 했으니. 그나마 나라를 붙들고 북에 흡수 통일이 안된 것은 국민들의 각성때문이었지요. 이제 이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습니다. 박근혜라는 탁월한 대통령 밑에서 자유민주 공화파 국민들이 단결하여 선거 혁명을 일으켜 종북 박멸을 하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 내전에서 승리 해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자유민주 공화국을 넘겨 주어야지요. 화이팅 자공파 국민들 단결하여 종북 떨거지들을 때려 잡읍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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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
2016.01.26 21:44



역시성공회대는 발강이 양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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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uman
2016.01.26 21:15



빨갱이 새끼들 전부 북으로 가야 되는데 안가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더 좋기 때문이다.
빨갱이 짓 그만하고 북으로 가라. 북에 가서 눈이나 치워 줘라. 그리고 남한으로 오지마라. 대한민국 절반이상이 빨갱이들 아이가. 걸레 같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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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규
2016.01.26 20:33



독재에 핍박받고 억울한옥살이로 주홍글씨를 새겨놓고 독재에항겋한 민주주의를 갈망 저항한 민초들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투표장가서 우리손으로 국회의원을뽑고 대통령을뽑는것이다 체육관에서 미리 정해논 하수인들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말잘못해 고문과옥살이또는 죽어나가고 그시절이그리우면 아프리카나 남미가서 살든가하지 목숨을바쳐 일구어논 민주주의제도하에 혜택을누리며 동네강아지 달보고짓어대듣이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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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2016.01.26 23:22 · 공유됨(1)



@이천규 이십새이도빨간색이구만 정은이뭐라도빨아라 디런새끼야디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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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z****
2016.01.26 21:33 · 공유됨(1)



@이천규 나는 그시대를 살았는데 핍박받은거 없거든...
빨갱이는 핍박을 받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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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2016.01.26 19:23



호치민은 베트남 통일 후 월맹군을 도운 지식은 가장 먼저 처단했다. 왜 한번 변절한 놈은 또다시 변절 한다는 이유다. 자유민주주의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없다. 한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사상은 글과 말에 고스란이 담긴다.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삶은 현실이고 이념으로는 절대 넘기 어렵고 넘더라도 곧 무너진다. 헛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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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struggle
2016.01.26 18:01



원래 사이비 언론은 도둑놈도 영웅으로 만드는 법이다.
살아있을 때 YS그렇게 욕하다가 영웅 간단히 만드는 것 봐라. 5% 가 50% 되더라.
한걸레는 걸레도 행주로 만드는 기믹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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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준
2016.01.26 17:26 · 공유됨(1)



이건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서 논리가 걍 산을 넘어가는구만
어떻게 교수한테서 이런 글이 나오는 건지
우리 아들이 이렇게 글써도 욕나오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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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mysincerity
2016.01.26 15:31 · 공유됨(1)



신영복교수 작고에 즈음하여 그의 진면목이 언론매체를 통해 많이
다뤄진것을 신영복띄우기라고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뉴데일리, 우선 fact부터 잘못된 것을 모르느냐?
통일혁명당의 간부로 날조해 무기징혁을 선고하고
또 전향서를 쓴것으로 꾸며서 가석방시킨것을 모르느냐?
신학과 교수가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이런 당치 않은 기사
나부랭이나 써대고 있으니 이 시대에 기독교가 지탄을 받고 있지 않는가.
당신같은 인간들이 신학과 교수랍시고 앉아서 이나라를 좀먹고 있으니
나날이 교회는 이 사회에서 점점 그 설 자리를 잃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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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2016.01.26 23:25 · 공유됨(1)



@allmysincerity 야이개뭐겉은넘아 진짜욕나오네 이나라에왜사냐 이시 버 ㄹ 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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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2016.01.26 21:45



@allmysincerity 자신이 신실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의로운 척하는 이 빨갱이 도둑놈이 네가 나라를 좀먹고 있는 종붖공산당이구나
어서 너네 나라도 올라가라 거기서 공산주의 외치다가 굶어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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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nka Casa
2016.01.26 20:37



@allmysincerity 이십새끼 빨갱이구먼...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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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민
2016.01.26 17:53 · 공유됨(1)



@allmysincerity 신영복은 뼛속까지 빨간데 더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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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mysincerity
2016.01.26 16:31 · 공유됨(1)



@allmysincerity yyhgdj, 그 시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yyhgdj, id로 봐서도 최대한 익명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비겁하게 한줄 짜리 댓글 쓰지말고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자네가 좋아하는 익명이니 몇줄이라도 자네가 생각하는 생각을 써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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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hgdj
2016.01.26 16:01



@allmysincerity 그시대사람들은 알고있지,,,,신영복이가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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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2016.01.26 15:13



조만간 미친돼지 김정은 룡해가 내리친도끼에 가고
김일성이가 만든 사교집단 종말을 고하면
남한내 좌빨들 모두 밝혀지면 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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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민
2016.01.26 17:59 · 공유됨(1)



@진도 빨갱이들이 입만열면 내세우는 북풍 혹은 민주니 진보니 국민이니 민족이니 입만열면 구라만 치는진보팔이 민주팔이 들이 창피하지도 않는가봐 에라이 빨갱이들아...입으로는 천하의 도덕군자처럼굴지만 실상은 양아치보다 못한 민주팔이 사이비 진보들 ..하기사 빨갱이들 한테 뭘바라냐 그냥 죽창이나들고 사회를 혼란케하는 테러분자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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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
allmysincerity
2016.01.26 15:40 · 공유됨(1)



@진도 모든 부정과 비리를 북풍이나 안보논리로 진보에게 떠넘기던
그 수구세력들이 줄줄이 새끼줄에 굴비엮듯 엮기어 심판받을
날이 된다는 것은 왜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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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대해부 ②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남긴게 뭐 있나?" 뉴데일리 2016

"신영복은 학자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 | Save Internet 뉴데일리


신영복 대해부 ②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남긴게 뭐 있나?"
"신영복은 학자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저술가
입력 2016-01-26 14:03수정 2016-01-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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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손으로 온갖 세련된 것들 쏟아냈지만 대동강 하구 바닷물 들이킨 탓"



▲ 2007년 강의 중인 故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얼마전 작고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우상화 광풍이 넘쳐나고 있다.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좌파 전체주의 추종 언론들이 깃발을 들고 북을 두드리며 앞장서고 있다.
다음카카오 같은 포털은 이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과대포장해 배포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광풍 속에서도 여론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게 메이저 언론이다.
그러나 조중동 KBS MBC는 얼이 빠진듯하다.
곁가지로 전락한채 부채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
하기야 신영복을 인문학자로 띄우는데 팔걷어 올리고 나선게 <중앙일보>이니 무슨 기대를 할 것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 <처음처럼> 소주병에 붙어있는 글씨를 쓴 서예가, 김제동 등 연예인을 제자로 거느린 진보경제학자.
신영복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은 대강 이 정도선에서 머무른다.

신영복은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68년 평양의 직접 지휘를 받는 간첩단인 <통일혁명당> 핵심간부인 것이 들통나 무기징역형을 받은 인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동서해빙 분위기를 틈타 [전향서](?)를 쓰고 특별가석방되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김질락에 의해 포섭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의 박성준(한명숙 전국무총리 남편) 등과 함께 <통혁당>의 학생운동조직을 만들고 지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런 신영복의 본질과 본색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사라지고, 인문학자로서의 포장지만 부풀려진 셈이다.
그가 마치 [시대의 스승이자 사표]인양 왜곡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진면목은 무엇인가?

<뉴데일리>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김철홍 장로회신학대 교수에 이어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이 신영복 해부용 칼을 들었다.

[편집자 주]

“애비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그 아들 놈이더라”

니체가 폭도-졸부-위선자에 대해 한 말이다.
애비는 평생 자기자신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산다.
그러나 그 아들놈의 입이 방정맞아서 애비의 정체를 까발긴다.
그게 세상 이치이다.

신영복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감옥에 있다 나와서 붓글씨와 인문학의 대가인 양 처신하며 살다 숨졌다.
소주 <처음처럼>에 [휘호를 내리신 존재]도 신영복이다.


편집자 주
<처음처럼> 이란 소주이름을 만든 작명가가 바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문재인 대표 부인의 절친)이다.
처음처럼이란 이름도 그가 신영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며, 붓글씨 청탁도 그가 한것으로 알려졌다.



신영복이 숨지자 배웠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우리시대의 스승]이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순진한 보통사람들은 “아, 훌륭한 분이 돌아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신영복을 ‘스승’으로 떠받드는 작업이 기막히게 성공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2016년 1월 23일 <한겨레>의 오승훈 기자는 신영복을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학 사상으로 무장한 지식인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한국말로 바꾸면 [원단 빨갱이]다.
<한겨레> 신문이 신영복에 대해 (자못) 존경스러운 [원단 빨갱이]로 인증해 준 셈이다.



“거 봐! 그 사람 빨갱이잖아.
그런 빨간 빨갱이더러 [지금 시대의 스승]이라고 칭송한 너희 지식인이라는 놈들은 도대체 뭐야?
너희! 빨갱이의 새빨간 XXX을 못 빨아서 환장한 XX들이냐?”

이렇게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왜?


너희 자칭 진보적, 혹은 중도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와 지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놈한테 공격받으려면, 나름 근수가 좀 나가야 한다.
너희는 내게 공격받을 자격이 없다.
그냥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내려 주마.
귓구멍 파고 잘 들어라.

너희는 신영복이 무슨 대단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가였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신영복은 이론을 버리고 신앙을 택한 사람이다.



“교리(이론)를 버리고 신앙을 택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종북 공산주의자들의 핵심 멘탈이다.
<통혁당>은 이 멘탈을 증명한 조직이다.


평양것들은 이미 1950년대말에 월북 남노당을 개처럼 잡아죽이고 숙청했다.
이 무렵, 보위부 차량이 남한 출신 남노당 지식인들의 집을 돌면서 마르크스-레닌-스탈린 책을 걷어 들였다.
금서로 만든 것이다.


지금 북한은 공산체제가 아니다.
[공산계 신정(theocratic) 전체주의] 체제이다.

뿌리는 스탈린 공산체제에서 출발했지만, 그 결과물은 끔직한 [현대판 마야-아즈텍 체제]이다.
흑요석 칼로 사람 가슴을 갈라 심장을 빼내는 종교 의식이, 돌로 쳐죽이고 기관총으로 갈기고 박격포로 쏘는 공개처형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따라서 평양것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모두 땅에 묻어야 한다.
대신에 오직 하나의 신앙—“계급투쟁 피바다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부수면 이승에서 천국을 만들 수 있다”라는 신앙만 받들어야 한다.




▲ 1965년 통일혁명당 사건 1차 공판 당시 신영복(왼쪽). ⓒ월간조선 보도화면 캡쳐




신영복의 <통혁당>은 바로 “이론을 버리고 신앙을 택한다”라는 종북-공산주의자들의 멘탈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그러니 “신영복은 순수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가였다”라는 소리는 무식한 소리이거나 혹은 사악한 거짓말이다.
신영복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휘황찬란한 이론을 버리고 그 요체인 [피바다 신앙]만 따로 뽑아내어 믿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본질은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있다.


그런데 잠깐!
누구라고?


월북 남노당!
그게 누굴까?
남쪽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입장에서는 자기 형-삼촌-이모-아버지-큰아버지-작은아버지-선배-동지다.


그들에게는 평양것들이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오직 대한민국을 피바다로 만들겠다”라는 신앙을 위해 평양을 섬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이미 보통사람의 윤리감각을 초월한 경지의 사람 내지 종자 내지, 존재 내지, 유인원이다.

이 같은 특이한 윤리감각 혹은 무-윤리 감각은, 북한에 밀입북 했다가 비참하게 숙청당한 동지 이OO에 대해 신영복이 입도 벙긋하지 않았던 사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8년인가 <통혁당>은 간부 이OO을 평양으로 밀입북시켰다.
김일성에게 남쪽의 혁명운동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직후에 통혁당이 검거됐다.
평양에 있던 이OO은 평양에 주저앉아서 통일전선부에서 대남 공작 업무에 종사했다.
그러다 이OO은 80년대에 비참하게 숙청당했다.
죄목은?
김일성 사진을 보고 “저 양반 정말 잘 생기셨단 말이야!”라고 말함으로써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동무를 모욕했다”는 죄목이었다.


이OO을 숙청할 때 평양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뭐래?
이 종간나새끼 (= 종파주의 개새끼)!
위대한 민족의 태양 수령님을 양반이라 부르는 거 보라우!
위대한 민족의 태양 수령님께서 썩어빠진 친일파 지주 매판 부르주와 계급이간?
이 새끼, 위대한 민족의 태양 수령님 유일사상 체제를 부정하는 CIA 간첩 간나새끼 아니가써!”


신영복의 입장에서는 [동지] 이OO 이 억울하게 개죽음당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신영복은 이 사건을 파헤쳤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동지애]라는 일반적 윤리 기준을 [초월]했다.
요약해 보자.




▲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모자이크 벽화 완성도 주요 뉴스다. 김씨 일가는 神이기 때문이다. ⓒ北조선중앙TV 유튜브 채널 캡쳐





1.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버렸다.

2. 선배 및 집안 어른과 관련된 원한과 복수심도 버렸다.

3. 동지에 대한 사랑도 버렸다.

4. 오직 “계급투쟁 피바다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부순다”라는 원독만 남겼다.

이게 대한민국 종북 공산주의자들의 일반적 멘탈이다.

신영복은 이런 멘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멘탈은 무엇인가?
악마적 비극성이요 비극적 악마성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한다?



“신영복은 착하고 순수한 이론가였다.
그가 만든 서클 청구회는 따듯한 마음으로 돌아가던 곳이었다.
분단 현실이 그를 통혁당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대한민국 종북 공산운동에서 이제 [악마적 비극성], 혹은 [비극적 악마성]마저 표백시킬 참인가?
그것마저 없다면 그냥 바보스럽고 코믹한 존재—웃기는 생양아치가 되는 판인데?
혹은 바퀴벌레나 노래기 같은 버러지가 될 뿐인데?


신영복을 미화시키다 못 해서 이젠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학자”라고 찬양하겠다고?


이것이야말로 신영복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다.
바퀴벌레 같은 바보스런 코믹한 존재보다는, 악마적 비극성, 혹은 비극적 악마성을 가진 존재가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피바다 처벌여서 수십만 수백만 잡아 죽인 놈을 잡고 보니까, 이놈이 이런 소리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저~~그냥 심심해서 피크닉 삼아 일 좀 벌인 건데용~~
근데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어용~~
죽는게 아니라 쇼라고 생각했어용~~
그래서 더 열심히 픽, 픽 자빠지게 했을 뿐이에용~”


이건 악마적 비극성, 혹은 비극적 악마성에 대한 공포, 경외심을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너무나 어이없는 황당 시츄에이션 아닌가!
<한겨레> 칼럼은 <통혁당>과 신영복을 바로 이 같은 황당 시츄에이션의 개콘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에게 합당한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게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렇게!



“그들은 종북 공산주의자였다.
평양것들을 섬기기 위해 첫째,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버렸고, 둘째, 선배세대 남노당 공산주의자와 관련된 원한과 복수심을 버렸으며, 셋째 동지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
그리고 오직 [계급투쟁 피바다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박살낸다]라는 원독만 남겼다.
북쪽에서는 김일성 혈통을 [신의 가문]으로 떠받드는 공산계 신정(theocratic) 전체주의가 만들어졌고, 남쪽에서는 악마적 비극성 혹은 비극적 악마성이 궁극에까지 완성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본질이 “계급투쟁 피바다를 통해 세상을 부순다”라는 원독이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순수 경제학 이론으로 성립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채언(전남대)과 이병천(강원대)이 세계적 수준의 마르크스주의 순수 경제학 이론가들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순수 경제학 이론의 기초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애초 과학이 아니라 [피바다 신앙]—즉 혁명 공학이기 때문이다.


▲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를 담은 공산주의자들의 포스터.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반면 마르크스주의가 순수 경제학 이론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까닭은, [피바다 신앙]과 경제학 사이의 관계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피바다 신앙] 없이도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만을 탐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워낙 휘황찬란하게 경제학 이론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휘황찬란한 개념 세계에 발을 깊게 들이면 평생 갇히는 수가 있다.


이같이 마르크스주의에서 경제학만 따로 뽑아서 탐구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대가를 치른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순수 이론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즉 공산혁명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져서 휩쓸려 가는 수가 있다.
<한겨레> 칼럼은 신영복이 이런 경우였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웃기는 이야기다.
신영복은 열심히 포섭 조직활동을 했던 사람이지 이론가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순수 이론 경제학에 대해 어떤 기여도 남기지 못 했다.
반면 전남대 이채언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고질적 약점—그들이 말하는 [가치]가 시장에서 [가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설명하지 못 한다는 약점—에 대해 세계적 수준의 탐구를 한 사람이다.
이 분야를 [전환이론](transformation theory)이라 부른다.

둘째, 마르크스주의 안 에 이미 [계급투쟁 피바다] 신앙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평생 마르크스주의의 껍데기만 핥다가 죽는다.
<공산당 선언>(1848), <루이 보나빠르뜨의 웃기는 쿠데타>(원래 제목은 <부르메르 18일>, 1852) 같은 글들을 보면 마르크스 본인이 세상에 대한 원독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애초 “인간의 얼굴을 한 따듯하고 합리적 계몽주의 사상가” 마르크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끔직한 피바다 욕망 위에 온갖 휘황찬란한 이론과 교양으로 덕지덕지 분칠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니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겨냥해서 이런 취지로 말했다.



“너희는 세상을 부숴버리겠다는 욕망에 불타는 불개 같은 새끼들이야.
그런데 바닷물을 많이 마셨구나.
입에서 온갖 세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까 바닷물을 많이 마신 걸 알겠어…”

이때 [바닷물]은 지중해의 교양, 그리스-로마-르네상스에서 축적된 교양을 가리킨다.
마르크스주의 순수 이론 경제학자들이란, 이 교양에 취해 마르크스주의를 순수 이론으로 들이킨 사람들이다.
게으르규 루카치나 리오넬 트릴링 같은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이란, 이 현란한 교양에 취해 평생 이를 더 근사하게 포장해서 팔았던 가련한 소매상들이었다.


신영복은 지중해 바닷물이 아니라 대동강변 하구 바닷물을 많이 마신 듯하다.




[관련기사] ☞ http://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98851




[신영복 대해부 ①]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상황이다”




"맞다, 신영복은 본디 붉은 사람이다"




한겨레신문의 대담한 도발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에 대해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공산주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저술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



관련기사“속칭 진보가 오염시킨 사회과학 용어들, 이젠 바로잡아야”
문재인 지지 안경환, 조선 칼럼서 박근혜 맹공
조선일보 논설고문의 무지를 비판한다
"맞다, 신영복은 본디 붉은 사람이다"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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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돼지우리로 프로필베스트 댓글naver 대표계정 입니다.국회를 돼지우리로2016.01.27 15:22
한국인들이 얼간이들이지뭐 저런 허수아비 공산주의자를 제대로 된 학자로 봤으니 말이다 레닌공산주의 이론 자체가 허구이며, 모순이며 정권찬탈을 위한 것임은 이미 다 밝혀진 일

답글공감128반대22
달뎅이 프로필naver 대표계정 입니다.달뎅이2016.02.11 01:55
붉은색은 새누리당 상징색!! 통혁당은 신선생님이 체포되신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성인이면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저 같은 무지한 사람은 통혁당활동으로 체포되셨다고 믿습니다.)

답글공감4반대3
jk38699 프로필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jk386992016.01.28 20:51 · 공유됨(1)
이렇게 씨리즈로 거창하게 설명 할 필요가 있을까? 학지는 뭔 얼어죽을... 걍 뻘짓하던 뒤비진 두넘이 아니였으면 별볼일 없는 뻘짓하는 광대 시키였을 것을.

답글공감5반대11
작가김 프로필google 대표계정 입니다.작가김2016.01.28 13:29
분명하고 명쾌한 컬럼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미개한지 저런 자를 영웅치급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 못해 공포감까지 느낀다. 언제나 이 좌파들에게 볼모가 되어 암울한 대한민국이 행복하고 안전한 나라가 될지...걱정이 앞서면서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올거라 기대해보며 간곡히 기도해본다.

답글1공감18반대9
- 프로필naver 대표계정 입니다.-2020.02.14 06:09 · 공유됨(1)
@작가김 한마디로 당신같은 무식한사람이 뭘 알겟냐마는 신교수님 책 독하엿는가? 이시대의 최고의 시식인을 오직 이데오르기 사고 폄하 비하 참으로 한심하도다 신교수님게서 민주주의를 부정한적 있는가? 공산주의를 찬양한적있는가? 동대학선후배들 자연스런 모임으로 누구나 실행 하는것 교수님은 통혁당존재자체를 모르고 모임에참석 중앙정보부 구속되어 서야 통역당 존재를 알앗다는사실 간첩 김질락 옥중서에서도 드러낫다 이사건이 현시점이라면 구속사유도 안되는것이다 한마디로 독재권력의 희생 된것이다

답글공감0반대1
sawoo65 프로필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sawoo652016.01.28 11:14 · 공유됨(1)
여기 찌라시는 좀 이름있다 싶으면 씹어대는 게 취미군 나원참

답글공감13반대45
평북운산 프로필naver 대표계정 입니다.평북운산2016.01.28 10:50
유독 성공회 대학 교수중에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도통 이해가 안간다 언젠가 소주를 마시는데 처음처럼을 시키니 그거 상표값으로 얼마가 누구한테 지불된다며 다른 것으로....나는 어이없었다

답글공감31반대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