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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4

전두환 회고록 3 | 알라딘 요약+평론

[전자책] 전두환 회고록 3 (1988-현재) | 전두환 | 알라딘


[eBook] 전두환 회고록 3 (1988-현재) - 황야에 서다 | 전두환 회고록 3
전두환 (지은이)자작나무숲2017-



종이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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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전자책 미리 읽기




목차


3권 _ 황야에 서다

제1장. 회상
* 서재에 찾아든 어린 시절 * 운명 같은 선택, 군인의 길
제2장. 너무 짧게 끝난 퇴임의 기쁨
* 퇴임과 동시에 시작된 ‘5공 청산’ * 망명을 거부한 결말, 유폐幽閉
제3장. 백담사百潭寺에서의 769일
* 가장 외진 절, 백담사 * 험난했던 연희동으로의 귀환
제4장. 6년 만에 이뤄진 노태우 대통령과의 만남
* 더욱 멀어진 연희동과 청와대 * 나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정치권
제5장. 역사를 농락한 ‘역사바로세우기’
* 김영삼의 대선자금 의혹과 ‘역사바로세우기’ * 정권에 봉사한 검찰, 국회, 헌법재판소
제6장. 정치재판의 민낯
* 파행으로 끝난 1심 재판
제7장. 치욕으로 남은 법원 판결
*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영합한 사법부 * 최규하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검찰 * 교도소 담장의 안과 밖
제8장. 항소심 법정에서 전개된 법리 논쟁
* 5.18재판 안팎에서 전개된 법리 다툼
제9장. 천형天刑아닌 천형, 추징금
* 정치자금과 뇌물 * 죽어도 완납完納은 불가능한 추징금 더보기



책속에서


이임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박정희 의장이 나를 부르시더니

군으로 돌아갈 것 없이 예편해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저는 정치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조직도 없고, 자금도 없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며 고사했다 그러자 박 의장은 “그런 것들은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알아서 다 도와줄 테니 출마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다시 “저는 군이 좋습니다. 훌륭한 군인이 되려고 사관학교에 들어왔으니 군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박 의장은 “군인으로 있어야만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정치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고 국회의원 출마를 계속 강한 어조로 권유하시는 것이었다.
-3권. 황야에 서다 / 제1장. <회상> 중에서 접기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랫목에 놓아둔 양재기 물에 수건을 적셔 몸을 닦고 법당에 나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참석하는 새벽예불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영하 20도 추위에 꽁꽁 얼어 있는 법당에 들어가 앉았다. 아무리 내의를 껴입어도 냉기가 사정없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새벽예불 내내 뼛속까지 얼어붙는 고통이 스며들었다. 목탁소리도, 염불소리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법당에서 절을 하다 보면 추위에 무릎이 시리다가 나중에는 신경이 마비되는 듯했다. 백담사 생활이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새벽예불을 마친 후 일어나질 못했다. 주위의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난 나는 손발 끝은 물론 내장까지 얼어버린 것 같았다.
- 3권. 황야에 서다 / 제3장. <백담사에서의 769일> 중에서 접기
검찰로부터 받은 소송기록은 600여 명의 대상자를 조사한 총 155권 17만 장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정치재판이라고 해도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재판을 받기 전에 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할 수 있어야 하고 수사기록을 최소 한 번은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5차 공판 때까지 자료를 일절 건네받지 못해 무슨 근거로 기소가 되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재판에 임해야 했다. 아무리 결론을 내려놓고 하는 정치재판이라고 하지만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모양새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 3권. 황야에 서다 / 제6장. <정치재판의 민낯> 중에서 접기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발포 명령자를 찾아야 했다. 발포가 이뤄졌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은 것이 사실이니 발포를 명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발포 명령자는 피고인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가정하에 수사력을 집중했을 터였다. 그러나 발포 명령자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발포 명령‘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위권보유 천명‘이라는 포괄적 개념 자체를 발포 명령으로 간주했다. 그리고는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발표한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를 발포 명령으로 몰아갔다 나아가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와 나를 연결하려 했다. 접기 - 피라미
10.26 사건이 터지고 내가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그 어른의 죽음에 얽힌 배신과 역모의 진상을 파헤치고 단죄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속으로 ˝아, 이 어른이 당신의 최후와 그 뒷수습을 나에게 맡기려고 그렇게 일찍 보안사령관에 임명하신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연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당시에는 그 어른이 가급적 나를 가까이에 두려고 하신다는 느낌만을 갖고 있었다. 사실 1사단장으로 나간 지 1년 만에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관례에 따르면 나는 아직 계급과 경력이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다. 접기 - 피라미
사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에는 어떤 기대가 없지 않았다
˝물론 나를 ˝잘 모시겠다.˝는 말에 마음이 끌린 것이 아니고,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생각할 때 이제는 민간 정치인이 대통령직을맡아 군 출신 대통령들 때와는 다른 국정을 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그의 삶의 내력에 비추어볼 때, 그동안 현나라를 다스릴만한 경륜이 쌓였을 것으로 믿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사람이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니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게 되면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또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접기 - 피라미
정치권력과 검찰, 법원 그리고 언론에 의해 오도되고 있는 여론 등 사면가 속에 불공정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변호인들의 악전고투를 지켜보자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내 처지를 잊은 채 그들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를 타고 법원 구내를 빠져나올 때 차창을 가린 방석방사이로,
될 왔던 나의 비서관들이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한순간 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참 고생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내 처지보다 더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안양교도소의 작은 독방에 들어서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사형‘이라는 단어는 그즈음의 나에게는 미세한 감정의 파동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지나온 재판 진행 과정을 되돌아볼 때 그동안 괜한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허허로웠다. 접기 - 피라미
기소독점권을 행사하는 검찰의 일방적 횡포와 군림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국가소추기관에 의한 권력남용과 오용 그 자체였고, 법원도 검찰의 시녀를 자칭이나 한 듯이 권력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 피라미
더 오래 정상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 내겐 못내 아쉬웠지서둘러 하산을 결정했다. 내려오는 길도 올라갈 때 못지않게 어렵다는사실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백담사로 돌아오는 귀로 내내 나는 많은 생각들을 했다. 설악산 정상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 그만큼 큰 의미로 다가온 까닭이다. 나는아내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 우리 부부가 겪었던 인고의 세월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 권력의 정상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접기 - 피라미



저자 및 역자소개
전두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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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

최근작 : <전두환 회고록 1 (수정본)>,<전두환 회고록 3>,<전두환 회고록 2>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의 허물은 덮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국민의 채찍도 피할 생각이 없다. 나의 허물마저 후대를 위한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침묵을 지켜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땅을 지키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느라 피와 땀을 바쳐온 모든 분들에게 넓은 이해와 관용을 구하고자 한다. 나로 인해 생겨난 증오와 분노가 한때의 증오와 분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용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오직 역사적 진실이 빛나는 태양 아래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다.”
_ <글을 마치며> 중에서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공개되는 최초의 회고록!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 전환, 88서울올림픽 유치, 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 등을 일궈낸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대통령.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5.18광주사태로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학살자. 이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전두환 前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으며 수많은 굴곡과 험난한 인생 여정을 거쳐 온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삶과 아직도 논쟁 중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년의 준비기간, 방대한 기록과 수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펴낸 이 회고록에는 미처 말할 수 없었던,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담담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회고록의 출간은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관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담아낸 당대의 역사서!
『전두환 회고록』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혼돈의 시대(1979~1980)』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부터, 12.12사태, 5.17, 5.18광주사태 등 긴박했던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범 김재규와 공모한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으로 빚어진 일부 장군들의 반란과 진압, 3김 씨와 학원소요로 상징되는 혼돈의 1980년도의 국내 상황과 5.18광주사태에 얽힌 논란과 진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의 고뇌에 찬 사임과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2권 『청와대 시절(1980~1988)』에는 1980년대를 이끌어간 5공화국의 국정 수행 기록이 담겨 있다.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시대 진입, 한국형 원자력 기술 개발의 성공, 중산층 확대를 위한 다양한 경제 시책들부터 다양한 규제 해제(연좌제 금지, 통행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등)를 통환 열린사회의 시작을 돌아볼 수 있다. 한편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로 인한 아웅산 테러 사건, KAl기 폭파 사건 등 무수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공조를 통해 안보를 공고히 하며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을 일궈내기까지 혼신을 다해 수행한 국정의 기록을 정리했다. 3권 『황야에 서다』는 어려운 유년시절부터 육사생도 시절을 거쳐 한 가정을 일구기까지의 평화로움 삶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인들에 의해 시작된 역사 뒤집기에서 비롯된 백담사 유폐와 재판, 재산 몰수 등 거듭된 역경과 고난의 행로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가 불러냈던 한 인물의 존재와 삶은 어느 순간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회고록은 한 개인 전두환의 삶의 궤적을 적어놓은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다. 역사는 신화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더라도 제대로 바라보고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역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이 책은 또 다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전달해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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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힌 책 전3권을 구매하여 밤새워 읽고 있습니다. 어려운시기 잘 마무리 하여 이 나라가 지금껏 있게한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이 하신 진짜 용기있고 사나이에사나이다운사람 입니다. 역사는 압니다.
왕눈 2017-04-28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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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구해보기 힘들다 힘들어~
100년 뒤면 후손들이 대통령회고록 한권에 별짓을 다했구나 하며 한심해 할듯...아니지 나라돌아가는 꼬라지보니 100년뒤가 있을지도 의문인...
김현우 2022-05-09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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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가 김신조 일당을 처치하고, 제 3땅굴을 발견한 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 GNP를 10배로 성장시킨 분이라는 것은? 그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끝까지 비난받다가 돌아가셨다. ㅠ 국민들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
bestofall 2024-07-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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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독후감



전두환,

항상 살인마로 불리던 518의 책임자.

그의 회고록이 나왔다.




회고록 내용은 범벅이었다.

선이냐 악이냐를 떠나 국가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당대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그런 면에서 건질 것이 있나 뒤젹뒤젹 넘겨 보았다.




책이 무려 3권이나 되는데 구성이 오락가락이다.

이런 저런 내용을 보면서 저자의 의도가 좀 가늠되기도 한다.

일단 살아 있는 두 명의 전직대통령이다.

YS,DJ,최규하 등 까지 다 떠난 마당이라.. 노무현도..

참 노태우는 중병이라 논외.




그런데 가장 사람 대접 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이 짙게 깔려있다.

당장 박근혜 집권 하자마자 채동욱 시켜서 전두환을 털어내었다. 터니 꽤 많은 돈이 나오던데 그 전에는 뭐들 했는지.. 혹자는 청와대에서 허겁지겁 쫓겨났듯했던 박근혜의 억울한 마음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니 전두환이 내가 한일도 많은데 하는 심정이 든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 생사를 떠나 다수의 전직대통령들과 전두환은 편한 관계가 아니었다. 친구 노태우게는 56공 권력이양기의 서운함. YS는 역사바로세우기로 감방 보낸 것. 박근혜는 또 그렇고 등

DJ 또한 자신에게 탄원하던 사형수 아니던가.

그런데 머 이런 인간들에 비해 훨씬 절대권력 누렸던 본인의 업적이 과소평가되는 건 참을 수 없나 보다.




그런 논리가 이 책에서 여기저기 격하게 나온다.

가령 YS 비판에서는 IMF이후 자살자가 2-3배가 급증했다는 통계를 적시한다.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는 자살자를 보면서 YS는 적어도 할말이 없다는 논리다. 간접적으로는 광주에서 총칼로 죽인 사람 숫자보다 훨씬 많다는 뉘앙스로 들려온다.




전두환 시절을 좋게 보는 이들이 드는 논리는 경제다. 그래서 특히 경제에 대해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 뒤처리를 해나가는 과정의 고심 등이 나온다.

그 시기 실권을 많이 휘두른 김재익 경제수석에 대해서도 아웅산에서 희생된 고인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한계에 대해 꼭 짚고 간다. 당시는 과잉투자된 중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필수였는데 김수석의 경우 비교우위론에 의해 자동차 산업을 해외에 넘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 정주영 회장이 목숨(?)을 내놓고 완강히 거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쪽이 맞았다고 한다. 책에서 드문 칭찬이다. 자화자찬하면서 나온 이야기겠지만

다시 반대로 보면 김재익 등 관료들의 이론적 머리가 실제 국가 운영에 맞지 않고, 특히 서구의 비교우위론을 한국에 들이대는 건 상식적으로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후일 IMF 체제에서 대우차를 GM에 헐값에 넘긴 이헌재 등 기술관료들의 논리와 유사해서 인상 깊었다.




저자가 또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인물은 이병철 회장이다. 이회장의 언행록과 자신의 의사결정 과정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어떤 부분은 이회장이 잘못생각한 걸 자신이 바로 잡아주는 내용들이다. 오늘날 한국의 무역흑자 상당부분을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고 이 사업의 결단을 이병철 회장이 한 것이기에 그가 받는 추앙이 크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자신과 국가가 관여한 폭이 크다는 점을 무척 강조한다. 더해서 이회장의 오류를 보완해준 부분도 크다는 걸 여러각도로 강조한다.




이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외교비사도 이것저것 있는데 편한것만 갖다 붙였다는 느낌도 든다. 가령 읿몬에서 40억불 차관 들여오는 대목은 당시 한국이 거의 부도 갈 뻔한 위기상황이었다는 건 강조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경제대통령 이미지와 불일치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축소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 이 때 상황은 심각했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박정희가 떠받들여지고 딸까지 욹어 먹는 건 경제위업의 공적이 크다는 셈인데 자신 또한 경제에 기여가 크기에 그걸 알아달라는 종합적 논조가 크다.




하지만 약점은 여전하다. 박정희는 약간 억울한 면을 남기고 죽었다. 한국인은 죽은자에게 관대하다.

반면 전두환은 백담사 일화를 들고 있을 때 절간에서 용서의 기도를 하니 마음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노태우 측의 화해 시도에 대해서 피해자는 고스란히 있는데 일방적 화해시도는 의미 없다고 일갈한다.

똑 같은 논리를 광주시민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전도시켜보면 안되나?

여전히 죄는 없는 것이고 공은 왜 안알아주냐는 투덜댐이 보인다.

약간만 틀어보면 이렇게 비논리적인데 말이다. 회고록이라면 일생을 결산하면서 과에 대해서 시인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얼마간이라도 공을 인정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균형감각은 잘 보이지 않았다.
- 접기
사마천 2017-05-26 공감(15)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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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두려운가?

헛소리도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그것이 악서인지 양서인지는 시민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어떤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운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아예 입을 틀어막아 이론 조차 언급하지 못하는 성역을 꿈꾸는가? 거짓이고 악서이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모택동어록과 공산당선언도 출간되는 시대에 군대에서의 불온도서 단속이 떠오른다. 마치 21세기판 문자의 옥을 보는 것만 같다.
airhawk1 2017-08-21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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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가 바라는 건 섞어찌개가 아니라 팩트!

나도 한땐 보수의 얼굴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서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중도의 표까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지금 국민들이 박정희, 전두환보다 김영삼, 이명박을 높게 칠까? 실버 세대는 다들 박정희, 전두환 때가 살기 좋았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전두환 때가 제일 살기 좋았다고 얘기하는 실버 세대가 아주 많다. 선민의식에 빠져 있는 진보는 실버 세대가 학력이 낮고 무식해서 독재 세력에게 세뇌당한 거라고 얘기한다. 근데 실버 세대라고 다 학력이... + 더보기
박준병 2021-10-23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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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833 전두환 시대 3

숲노래 어제책 2023.9.9.숨은책 833《전두환 시대 3》 岩波 편집부 엮음 황인 옮김 중원문화 1988.6.30. 2007년 7월 17일에, 서울 용산 〈뿌리서점〉에 들러서 한창 책을 읽는데, 어느 책손이 책집지기하고 실랑이하는 소리가 납니다. 좀 어이없어서 받아적었습니다. 그때 《전두환 시대 3》이라는 책을 쥐었습니다. “교과서가 무슨 천 원이에요?” “아뇨, 교과서는 천 원이에요.” “아뇨, 무슨 천 원이나 해요. 애 숙제 때문에 사러 왔는데, 학교에 놓고 와서.” 아무리 20... + 더보기
파란놀 2023-09-09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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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581 국민학교 국민교육 헌장 풀이 5·6학년

숲노래 어제책 2021.11.27.숨은책 581《국민학교 국민교육 헌장 풀이 5·6학년》 문교부 엮음 동아교과서주식회사 1970.6.1.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에 배움칸마다 ‘나라지기(대통령) 얼굴·태극기·배움터 어른(교장) 얼굴’을 칠판 위쪽에 나란히 붙였습니다. 나라지기가 인천에 온다고 하면 어린이는 경인고속도로 앞으로 나가 우르르 줄을 서서 한나절(4시간)을 태극기를 흔들며 기다렸어요. 날마다 길잡이(교사)는 아무나 몇씩 찍어서 ‘애국가 외우기·국민교육헌장 외우기’를 시키고, 한 마디라도 어... + 더보기
파란놀 2021-11-27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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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 요약

<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는 저자가 1988년 백담사 은거를 시작으로 1995년 문재인 정부 이전인 김영삼 정부 시절의 구속과 사법 심판, 그리고 석방 이후의 삶까지를 다룬다. 1, 2권이 권력의 팽창과 정점에 대한 기록이었다면, 3권은 권력에서 물러난 독재자가 맞이한 정치적 몰락과 사회적 지탄에 대한 격렬한 항변이자, 자신을 향한 역사의 단죄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는 방어적 서사로 가득 차 있다.

책의 전반부는 퇴임 직후 직면한 백담사 유배 시기를 다룬다. 제5공화국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 책임론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저자는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정치적 궁지에 몰린 노태우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하여 청와대를 떠나 강원도 백담사로 은거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국가적 안정을 위해 모든 수모를 감내한 <자발적 희생>으로 묘사한다. 한때 자신을 대부로 모시던 노태우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을 배신하고 몰아세운 것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서운함이 행간 곳곳에 묻어난다. 백담사에서의 고독한 수행 생활을 종교적 성찰의 시간으로 포장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여론의 비난을 군중 심리에 휩쓸린 마녀사냥으로 치부한다.

중반부의 핵심은 김영삼 정부 시절 감행된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와 그에 따른 사법 단죄 과정이다. 1995년 12·12 및 5·18 특별법 제정으로 구속 수감된 저자는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저자의 시각에서 김영삼 정권의 사법 조치는 역사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태생 한계를 극복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기획된 <정치적 숙청>에 불과하다. 저자는 사형 선고와 대법원의 무기징역 판결에 대해, 법리적 판단이 아닌 승자가 패자를 처벌하는 정치적 재판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통치 행위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조성된 정치 자금이었으며, 개인의 축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호한다.

후반부는 1997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이후의 삶과 자신의 생애에 대한 총평으로 채워진다. 저자는 석방 이후에도 지속된 추징금 환수 조치와 여론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집권한 제5공화국이 대한민국을 혼란에서 구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공로가 언젠가는 올바르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피력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의 죄인이라는 세상의 판결을 정면으로 거부한 채, 자신은 오직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살다 황야에 홀로 남겨진 비장한 애국자라는 자기 최면적 독백으로 긴 회고록의 막을 내린다.

평론: 성찰 없는 내면의 고착과 헌정 파괴자의 사법 불복 서사

<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는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독재자가 겪은 몰락의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반면교사의 텍스트로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사법적 단죄와 역사의 평가 앞에서 최소한의 도덕적 성찰이나 과오에 대한 인정을 거부한 채,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둔갑시키려는 <망상적 자기 변호의 결정판>이다.

본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서사적 왜곡은 김영삼 정부의 사법 심판을 순수한 정치 보복으로 폄하하는 태도이다. 1996년부터 진행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단순히 정권의 필요에 의해 급조된 쇼가 아니었다. 이는 군사 반란을 자행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과거 청산이라는 국민적 열망과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었다. 이를 통치 행위에 대한 불법적인 처벌이자 정치적 숙청으로 몰아가는 저자의 서사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권위와 헌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오만한 권력자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법치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역사의 법정에 선 비장한 주인공으로 상정하는 태도는 실소를 자아낸다.

특히 퇴임 후 불거진 막대한 비자금과 추징금 문제에 대한 구차한 변명은 도덕적 파산을 증명한다. 만성적인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갈취하고 이를 사적으로 운용한 혐의는 대법원에 의해 명백히 유죄로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이를 <국가 경영을 위한 정치 자금>으로 미화하고 추징금 환수 조치를 가혹한 탄압으로 묘사하는 것은 범죄적 행위를 통치권이라는 절대적 장막 뒤로 숨기려는 파렴치한 시도이다. 이는 당시 정권의 부패 구조가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었는지, 그리고 수장이었던 인물이 공공의 재산을 대하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3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피해자 의식>과 <원망>이다. 권력을 함께 쥐었던 노태우에 대한 원망, 자신을 단죄한 김영삼 정권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을 독재자로 기억하는 대중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원망의 서사 속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나 제5공화국 시절 공권력의 폭력에 신음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책임감은 완전히 소거되어 있다. 타인의 고통에는 철저히 눈감으면서 권력을 잃은 자신의 처지만을 연민하는 태도는, 독재 정권의 핵심 세력들이 공유하는 고질적인 공감 능력의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전두환 회고록 3>은 역사의 심판을 받은 패배자가 남긴 <오만과 독선의 영수증>이다. 저자는 끝내 황야에 선 고독한 애국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했으나, 이 책이 증명하는 것은 스스로 구축한 거짓의 성벽 갇혀 나오지 못한 한 노인의 초라한 집착일 뿐이다. 이 회고록은 독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읽어야 하는 비판적 시민 의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반성 없는 권력의 종말이 얼마나 황량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반면교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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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는 전두환의 유년기와 군인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 그리고 1988년 대통령 퇴임 이후 백담사 생활·5공 청문회·구속과 재판·사면·추징금 문제를 다룬다. 646쪽 분량으로, 전체 회고록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가장 강한 피해자 의식을 드러내는 권력자의 자기변론이다.

《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 요약+평론

전두환 회고록 제3권의 부제는 <황야에 서다>이다. 제1권이 권력 장악 과정을 변호하고, 제2권이 대통령 재임기의 정책적 업적을 내세운다면, 제3권은 퇴임 후 자신이 정치적 보복과 역사 왜곡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책은 어린 시절과 군인으로 성장한 과정을 회상한 뒤, 퇴임 직후 시작된 ‘5공 청산’, 백담사 은둔, 노태우·김영삼 정부와의 갈등, 12·12와 5·18 재판, 수감생활, 사면과 재산 추징 문제로 이어진다. 목차에는 <백담사에서의 769일>, <역사를 농락한 역사바로세우기>, <정치재판의 민낯>, <치욕으로 남은 법원 판결> 같은 제목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장 제목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시각에서 자신의 생애를 재구성하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1. 가난한 소년에서 군인으로

책의 첫 부분에서 전두환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자존심 강한 집안으로 묘사한다. 어린 전두환은 생활력이 강하고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소년으로 그려진다.

육군사관학교 입학은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군은 가난한 청년에게 교육과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했고, 국가와 조직에 충성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 그는 군인으로서 결단력, 의리, 실천력을 익혔다고 회고한다. 육사 동기들과 맺은 관계 역시 평생 이어진 동지적 유대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군 내부의 사적 인맥과 하나회 문제는 거의 비판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전두환에게 육사 동기와 후배들의 결속은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들의 우정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하나회는 공식 지휘체계와 별도로 작동한 군내 사조직이었고, 12·12 군사반란과 권력 장악의 인적 기반이 되었다. 회고록은 조직적 권력 형성의 문제를 개인적 의리와 인간관계로 바꾸어 설명한다.

2. 퇴임과 동시에 시작된 ‘5공 청산’

전두환은 1988년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넘긴 뒤 평범한 전직 대통령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고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했으므로, 퇴임 후에는 일정한 존중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13대 국회에서 여소야대가 형성되고 5공 비리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두환은 이를 과거 청산이나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야당과 언론이 벌인 정치적 보복으로 해석한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 일해재단 모금, 언론통폐합, 삼청교육대, 광주 진압 등은 객관적 진상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소재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은 자신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지도자로 묘사한다. 그런데 그가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12·12에 참여했던 신군부의 핵심 인물이었고, 권력 이양은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같은 정치·군사집단 내부의 후계 과정이었다. 회고록은 이 연속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3. 백담사 생활과 ‘유폐된 전직 대통령’

1988년 11월 전두환 부부는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원도 백담사로 떠났다. 그는 백담사 생활을 사실상의 유배이자 정치적 유폐로 묘사한다. 외진 산사에서 추위와 고립을 견디며 769일을 보냈고, 정치권과 언론의 감시 속에서 인간적 고통을 겪었다고 회고한다.

책에서 백담사는 전두환이 권력자에서 희생자로 변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퇴임 후에는 정치적 보복을 당하면서 다시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부인 이순자와 가족이 겪은 수모도 반복해서 언급된다.

백담사 생활이 전직 대통령 개인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회고록은 자신이 왜 그곳에 가야 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대중적 증오나 야당의 선동만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 고문과 언론통제, 삼청교육대 피해, 권력형 비리 등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전두환은 백담사에서 자신이 겪은 불편과 모욕은 상세히 기록하지만, 자신의 통치로 인해 감옥·고문실·군부대·삼청교육대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경험은 거의 돌아보지 않는다. 이 비대칭이 제3권의 윤리적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4. 노태우와의 갈등

전두환은 자신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정치적 기반과 조직을 넘겨주었지만, 노태우가 집권 후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는 노태우 정부가 야당의 5공 청산 요구에 굴복하고 자신을 백담사로 보내는 데 사실상 동의했다고 비판한다.

노태우와의 관계는 군 동료와 후계자에 대한 배신감의 이야기로 서술된다. 전두환은 자신이 노태우에게 권력을 양보했으나 노태우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전임자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6년 만에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도 화해라기보다는 이미 깨진 관계를 확인하는 사건처럼 그려진다.

이 부분은 권위주의 체제 내부의 권력관계를 이해하는 자료로서 흥미롭다. 군사정권의 결속은 제도적 책임보다 개인적 충성과 의리에 크게 의존했다. 전두환은 국가적 책임보다 동료가 자신을 지켜주었는가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그의 정치관이 법과 제도보다는 충성·의리·조직적 결속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5.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비판

제3권의 중심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공격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노태우를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했다. 전두환은 이를 법치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과거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소급적 정치재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검찰이 처음에는 12·12와 5·18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지시에 따라 입장을 바꾸었다고 비판한다.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정치권력에 영합했다고 주장한다. 자신에 대한 재판은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김영삼 정부가 대중적 인기를 회복하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전두환의 주장은 당시 재판의 정치적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한 측면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과거사 청산은 언제나 현실정치의 이해관계와 연결된다.

그러나 정치적 동기가 개입했다고 해서 범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2·12를 군사반란으로, 5·17 비상계엄 확대와 광주 진압에 이르는 행위를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으로 판단했다.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이 확정되었다. 이는 단순히 후임 대통령의 감정이나 검찰의 정치적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법적 판단이었다.

6. 재판과 수감생활

전두환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한 뒤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 아니라 부당한 정치재판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설명한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12·12가 군사반란이 아니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위한 정당한 수사행위였으며, 5·17 계엄 확대는 국가적 혼란을 막기 위한 합법적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광주 진압에 대해서도 자신은 작전지휘권이 없었으며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이러한 판결을 ‘치욕’으로 규정한다. 재판부가 법리를 따르지 않고 정치권력과 여론에 굴복했으며, 자신이 국가를 구한 행위가 반란과 내란으로 뒤집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변론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의 경제발전과 올림픽 유치에 대해서는 최고권력자로서 모든 공을 자신의 지도력에 돌린다. 반면 12·12의 병력 동원, 5·17 계엄 확대, 광주 진압에 대해서는 공식 지휘계통이나 구체적인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인한다. 성과에는 실질적 권력자로 등장하고, 폭력과 불법에는 형식적 권한이 없었던 주변 인물로 물러나는 것이다.

7. 사면과 추징금

전두환은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는 사면을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유죄가 법적으로 정당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비자금과 추징금 문제에서도 자신이 개인적 탐욕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정치와 국가운영 과정에서 형성된 자금을 관리했을 뿐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가족 재산까지 부정한 재산으로 취급하며 몰수하려 한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해 2,205억 원의 추징금을 확정했다. 전두환은 이후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추징금 납부를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6년까지 약 1,282억 원이 환수되었으나, 전두환 사망 후 남은 약 867억 원은 사실상 환수가 어려워졌다.

이 문제에서도 회고록은 법적 판결과 사회적 책임보다 가족이 받은 압박과 자신의 억울함을 중심에 놓는다. 막대한 정치자금이 어떻게 조성되고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투명한 설명은 부족하다.

8. 종합평가

《황야에 서다》는 전두환 회고록 세 권 가운데 그의 내면적 세계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여기서 전두환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군사독재자가 아니라 가난한 환경을 극복한 군인, 국가의 위기에서 책임을 맡은 지도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 정치적 보복을 당한 희생자로 자신을 형상화한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성공한 권력자의 몰락>이 아니라 <국가를 구한 인물이 배은망덕한 정치와 왜곡된 역사에 의해 박해받은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백담사, 법정, 감옥은 그에게 반성과 참회의 장소가 아니라 억울함과 명예를 확인하는 장소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집는다는 데 있다. 전두환은 자신의 통치 아래 희생된 시민들의 고통보다 퇴임 후 자신과 가족이 받은 모욕을 훨씬 생생하게 기록한다. 광주 희생자는 숫자나 정치적 논쟁으로 처리되지만, 자신이 백담사에서 겪은 추위와 불편, 가족이 언론에 시달린 일은 인간적 고통으로 상세하게 묘사된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정치심리 자료다. 전두환의 사고에서 국가는 국민이 참여하여 구성하는 민주적 공동체라기보다 군인과 행정가가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을 제공하는 조직에 가깝다. 국민은 지도자가 보호하고 훈육해야 할 대상이며, 민주적 저항은 질서를 흔드는 혼란으로 이해된다.

그의 기억 속에는 반성보다 명예가, 법적 책임보다 의리가, 시민의 권리보다 국가의 안정이 우선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왜 비판받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기준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을 시민의 동의와 법적 절차에서 찾지만, 전두환은 경제성장·안보·행정능력에서 찾는다.

제3권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회고록이라기보다, 사법적·사회적 평가에 맞서 자신의 명예를 되찾으려는 최후변론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12·12와 5·18 관련 범죄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고, 2026년에는 회고록의 일부 5·18 관련 서술이 허위이며 관련 단체와 증언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민사판결도 확정되었다.

결국 《황야에 서다》의 비극은 한때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인물이 끝까지 자신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는 황야에 홀로 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기억의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는 퇴임 후 박해받은 지도자의 기록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자신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며 사법적·역사적 판단에 맞선 장문의 최후변론이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에게 내란·내란목적살인·뇌물수수 등의 책임을 물어 무기징역과 추징금을 확정했다. 2026년 2월 대법원은 회고록의 일부 5·18 서술이 허위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확정했고, 문제 표현을 삭제하지 않은 판본의 출판·배포 금지와 7천만 원 배상책임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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