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0

역정 : 나의 청년시대 | 리영희 1988, 2012

역정 : 나의 청년시대 | 리영희 | 알라딘


역정 : 나의 청년시대 - 리영희 자전적 에세이
리영희 (지은이)창비2012-11-30초판출간 1988년









































미리보기


목차


책을 내는 변명의 말

제1부 식민지하의 조선 소년
1. 북국(北國)의 소년
나의 고향 삭주 대관|일본말 일본인 교육|자연의 품속에서|전쟁의 그림자|눈물바다의 졸업식
2. 아버지와 어머니
초산 양반과 천석꾼 딸|머슴 문학빈과 외삼촌
3. 일제 말기의 중학시절
경성 유학길|'나이찌진'과 '한또오진'|잊혀지지 않는 두분 선생님|배고픈 공부벌레|우정 담은 강냉이|해방을 알리는 전령 B29|싹트는 민족의식|고향에서 맞은 해방|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서울로|혼란기 사회

제2부 굴절 많은 궤적
4. 대학이라고는 갔지만
굴절 많은 궤적의 변|국립 한국해양대학 입학|부모와 동생, 이남으로 내려와|상해행 실습선의 회항|목격한 여수ㆍ순천 반란사건|김구 선생에 대한 경도
5. 안동중학교 영어선생이 되어
새로운 선택|10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

제3부 민족상잔 속에서 열리는 의식의 눈
6. 전쟁의 회오리 속으로
1950년 6월 25일|일가이산(一家離散)의 피난행|'지식인'의 참모습|국군-통역장교-미국 군사고문
7. 전장과 인간
지리산에서의 개안|인명은 재천, 만사가 새옹지마인 것을!|어느 진주 기생의 교훈|거창 양민학살 사건: 719명의 원혼|38도선을 넘으면서|신흥사와 낙산사|마등령 계곡의 녹슨 철모|건봉사의 스님|어느 미국인 장교와의 일|전쟁으로 죽는 자와 출세하는 자|전선에서 동생 사망전보를 받고
8. 7년간의 군대생활을 마감하며
휴전, 그리고 전선을 떠나는 마음|미국을 알게 될수록|윤영자와의 결혼|전화(戰火) 속에 흘러간 7년 세월

제4부 역사의 격류 속에 뛰어들어
9. 권총을 펜으로 바꾸어
고달픈 기자수업|수재들의 틈바구니에서|첫아들 희주의 탄생과 죽음|선친이 절망한 아들로서|미국과의 첫 대면|이승만을 증오하는 일념으로
10. 4ㆍ19와 나
워싱턴 포스트와 관계를 맺어|4ㆍ19 전야|혁명의 파도 속에 뛰어들어|이승만정권 타도에 바친 한몫|워싱턴 언론계의 일각에|민주정치를 염원하는 까닭에
11. 군부독재의 치하에서
다시 만나는 군인|박정희를 따라 워싱턴에|기자의 멍예: 특종기사의 댓가|하늘이 주는 것은 받아야 하는 법

발문 한국 현대사가 ?어낸 지성 리영희_권태선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2년 12월 8일 교양 새 책



저자 및 역자소개
리영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으며,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고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었고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도쿄대학교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 한 학기씩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1987년에는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정식 부교수로 초빙되어 ‘평화와 갈등’ 특별 강좌를 맡아 강의했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 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로 재임했다.
2000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하다 회복했고, 이후 저술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지속적인 사회 참여와 진보적 발언을 계속했고, 불편한 몸으로 대담 형식의 자서전 ≪대화≫를 완성했다.
2010년 12월 5일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그는 휴머니즘과 자유 사상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의 야합을 질타하고 언론 자유 쟁취의 중요성을 계몽했다. 그의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 활동은 한국 사회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확대, 실천으로서의 저널리즘 정신 확산, 대안 언론과 참여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늦봄통일상, 만해상, 심산상, 단재언론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80년대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 ≪베트남 전쟁≫, ≪역설의 변증≫, ≪역정≫, ≪자유인, 자유인≫, ≪인간만사 새옹지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및 일본어로 번역된 ≪分斷民族の苦惱≫,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8억 인과의 대화≫, ≪중국 백서≫, ≪10억 인의 나라≫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와 미발표 글들을 모은 ≪리영희 저작집≫(전 12권)을 펴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씨책] 리영희 수필선집 >,<리영희 수필선집>,<역정 : 나의 청년시대> … 총 30종 (모두보기)


===

역정 : 나의 청년시대 | 리영희 1988, 2012 --- 1,000 단어 요약 평론

세진님, 요청하신 리영희 선생의 저작 <역정 : 나의 청년시대> (1988, 2012 개정)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역정 : 나의 청년시대> 요약 및 평론

1. 책의 요약: 혼돈의 시대, 한 지식인의 형성사

<역정 : 나의 청년시대>는 언론인이자 비판적 지성인인 리영희(1929~2010)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던 시기까지의 삶을 담아낸 자전적 기록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사적인 일대기에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해방, 6·25전쟁, 그리고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가혹한 폭풍우 속에서 한 청년이 어떻게 현실을 목도하고 의식을 형성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작품은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난 유년기부터 시작한다. 일제 군국주의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1940년대, 그는 경성공립공업학교에 입학하며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체감한다. 1945년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을 뿐, 남북 분단과 좌우 대립의 혼란 속에서 그의 가족은 월남한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학비가 면제되던 국립해양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마쳤으나, 1950년 졸업과 동시에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전쟁이 터지자 리영희는 유엔군 통역장교로 입대하여 7년간 군 복무를 한다. 이 통역장교 시절은 그의 삶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그는 전장의 최전선과 후방을 넘나들며 전쟁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미군의 인종차별적 태도, 한국군 내부의 부패와 비위, 그리고 이념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실제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눈으로 확인한 그는 무비판적인 반공주의나 국가주의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제대 후 1957년 합동통신사에 입사하여 외신부 기자가 되면서 그의 본격적인 언론인 삶이 시작된다. 외신을 다루며 세계 정세의 흐름과 냉전 체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그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 그리고 이를 덮기 위한 이념적 선동에 정면으로 회의를 품는다. 책은 4·19 혁명 전후의 폭풍 같은 시기까지를 다루며, 거짓과 우상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그 단단한 결의의 형성 과정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2. 평론: 우상의 시대를 부수는 이성의 서사

<역정 : 나의 청년시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사상의 은사'라 불렸던 리영희의 비판적 지성이 어디에서 싹텄는지를 추적하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다. 1970~80년대 청년들에게 폭탄 같은 지적 충격을 주었던 <전환시대의 논리>나 <8억인과의 대화>가 이론적·분석적 기치였다면, <역정>은 그 엄정한 이론과 의식 뒤에 숨은 인간 리영희의 체험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 자서전의 가장 큰 가치는 '경험에 기반한 회의와 이성'에 있다. 리영희의 비판 의식은 관념적인 이념 교육이나 서구 이론의 이식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터의 피비린내, 군대 내부의 비리와 부패, 미군이 보여준 강자의 오만함, 그리고 이념의 이름으로 이웃을 살육하던 산천의 비극을 직접 목도하면서 얻은 생생한 경험의 산물이다. 그는 자신이 본 현실과 국가가 강요하는 '상식'이 충돌할 때, 타성을 버리고 질의를 던지는 길을 택했다.

또한 이 책은 20세기 한반도를 관통한 '분단과 냉전'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율적 주체로 서 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광신적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우상'에 맞서, 그는 객관적 사실과 진실이라는 '이성'의 횃불을 들었다. 군부 독재와 관제 언론이 만든 거짓의 성벽을 허물기 위해 그가 바친 청춘의 기록은, 한 개인이 시대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 '자유인'으로 남아있고자 했던 결렬한 투쟁사이다.

결국 <역정 : 나의 청년시대>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수필이 아니다. 거짓과 성역이 넘쳐나던 시대에 진실을 직시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처절한 고백이자, 오늘날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영원한 시대를 향한 경종이다.

===

리영희, <역정: 나의 청년시대> — 1,000단어 요약·평론

리영희(李泳禧, 1929~2010)의 <역정: 나의 청년시대>은 일반적인 의미의 회고록이라기보다, 한 지식인이 어떤 경험을 거쳐 자신의 사상과 윤리적 자세를 형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신적 성장기’에 가깝다. 책은 식민지 조선의 소년기에서 출발해 해방, 여순사건, 한국전쟁, 미군 통역장교 생활, 기자 생활,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이후까지를 다룬다. 1982년 겨울 집필되었으며 1988년 처음 출간되었고, 2012년 리영희 2주기에 맞추어 창비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12년판은 리영희가 직접 쓴 유일한 본격적 자전적 에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1. 식민지 조선에서 자란 소년

책의 첫 부분은 평안북도 삭주 일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다룬다. 리영희의 소년기는 자연과 가족에 대한 따뜻한 기억과 식민지 교육의 억압이 묘하게 겹쳐 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식 가치관을 배워야 했다. 그는 처음부터 강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 교육 체제 안에서 성장하면서 차츰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서울 유학 시절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을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면서 식민지 체제의 실상을 깨닫는다.

이 대목이 중요한 까닭은 리영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후대의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자신이 당시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몰랐는지를 솔직하게 기록한다. 해방 역시 처음부터 명확한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고 맞이한 사건이라기보다, 세계가 갑자기 뒤집히는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실제 책의 제1부는 ‘일본말 일본인 교육’, ‘전쟁의 그림자’, ‘싹트는 민족의식’, ‘고향에서 맞은 해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 해방은 곧바로 자유를 가져오지 않았다

해방 후의 사회는 그에게 이상적인 민족국가의 탄생이 아니라 혼란과 갈등의 세계였다.

그는 국립해양대학에 들어가고 실습선을 타기도 하지만, 삶의 진로는 계속해서 예기치 않게 바뀐다. 특히 여수·순천사건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이후 그의 국가권력관과 이데올로기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의 그는 김구에게 강하게 경도되기도 한다.

<역정>의 흥미로운 점은 리영희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처음부터 완성된 ‘진보적 지식인’으로 구성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순진하고, 판단을 잘못하고,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청년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따라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리영희’라기보다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전쟁 — 리영희 사상의 결정적 학교

책의 중심은 한국전쟁이다.

안동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던 그는 전쟁 발발 뒤 국군에 입대해 통역장교가 되고 미국 군사고문들과 함께 생활한다. 이후 약 7년에 걸친 군생활은 그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책에는 지리산 전투지역, 38선, 동부전선 등에서 겪은 경험과 함께 거창 양민학살 사건, 동생의 전사 소식, 미군 장교들과의 관계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젊은 리영희에게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북한과 대한민국, 미국과 소련이라는 구분은 처음에는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전쟁의 현장에서는 그런 거대한 명분과 실제 인간의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반공을 외치는 쪽에서도 민간인을 죽였고, 애국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전쟁을 이용하여 출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대로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 가운데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점차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국가가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진실인가?>

이 질문이 훗날 리영희 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그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이념에 대한 충성보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4. 미국을 가까이에서 보다

또 하나의 결정적 경험은 미국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장기간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그는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인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미국을 단순한 ‘해방자’ 또는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미국 사회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인 개인의 합리성과 자유로운 태도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였다.

개인의 도덕성과 국가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실제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 경험은 훗날 <전환시대의 논리> 등에서 나타나는 그의 미국 비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반미 감정에서 미국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국인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끝에 미국의 국가정책과 미국 사회의 이상 사이의 모순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역정>의 제3부 마지막 장 제목 자체가 ‘미국을 알게 될수록’이며, 이후 기자 시절에는 다시 ‘미국과의 첫 대면’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5. 권총을 펜으로 바꾸다

군을 떠난 리영희는 기자가 된다.

이 전환을 그는 상징적으로 ‘권총을 펜으로 바꾸어’라고 표현한다. 외신기자가 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선택이었다. 외신기자는 국내 언론만 읽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영어 자료와 해외 통신을 직접 읽으면서 그는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하는 국제정세와 실제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훗날 리영희를 상징하게 되는 태도가 만들어진다.

<권위보다 사실을 믿는다.>

이것이 그의 ‘우상 파괴’ 정신이다.

따라서 리영희의 출발점은 엄밀하게 말하면 좌파 이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자의 직업윤리였다.

<사실인가 아닌가?>

그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정부의 반공 선전, 미국에 대한 신화, 냉전적 국제관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6. 4·19 — 기자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1960년 4·19혁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치적 행동으로 변화시킨 사건이다.

리영희는 4·19를 단순히 취재하는 기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독재에 분명하게 반대하며 혁명의 과정에 참여한다. 책에서도 ‘4·19 전야’, ‘혁명의 파도 속에 뛰어들어’, ‘이승만 정권 타도에 바친 한몫’이라는 장 제목을 사용한다.

이때부터 그의 지식인관이 분명해진다.

지식인은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아니다.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이후 박정희 시대의 리영희를 설명하는 핵심이 된다.

7. 5·16과 다시 만난 군인

그러나 4·19가 열어놓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된다.

7년간 군대에서 생활했던 리영희에게 군인의 정치개입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군대가 무엇인지 내부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박정희의 미국 방문에도 기자로 동행하고 군사정권과 미국의 관계를 가까이에서 관찰한다. 결국 언론인으로서 권력과 충돌하게 되고, ‘특종기사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이 군부독재 초기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역정>은 리영희의 생애 전체를 다룬 자서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리영희’가 완성되는 지점에서 책이 끝난다.


평론

<역정>의 가장 큰 가치는 <리영희의 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흔히 리영희를 1970~80년대 한국 진보 지식인의 대표자로 보고 그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제3세계론, 중국혁명에 대한 관심 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역정>을 읽으면 그보다 앞선 층위가 보인다.

리영희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이념보다 <경험적 회의주의>에서 출발한다.

식민지 교육을 받아보니 국가가 가르치는 진실이 무너졌다.

해방을 경험해보니 민족국가가 곧 정의로운 국가는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참여해보니 아군과 적군이라는 구분만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었다.

미군과 생활해보니 ‘미국’이라는 추상적 이미지와 실제 미국인은 달랐다.

기자가 되어 해외 자료를 읽어보니 정부가 말하는 국제정세와 실제 세계가 달랐다.

이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인식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심하라. 확인하라.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라.>

바로 이것이 리영희라는 지식인의 핵심이다.

그러나 <역정>은 동시에 자기신화화의 위험도 있다

자서전은 언제나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역정>도 예외가 아니다. 20대의 리영희가 경험했던 사건들을 50대의 리영희가 회고하여 썼다. 더구나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당국으로부터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았고, 이후 다시 글을 쓰지 못할 가능성까지 생각하던 상황에서 1982년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책 속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순진한 소년 → 전쟁 체험 → 권력에 대한 회의 →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 → 독재와 맞서는 지식인>

실제 인간의 삶은 이보다 훨씬 우연적이고 모순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설득력을 잃지 않는 것은 리영희가 자신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 실패, 잘못된 판단, 두려움, 개인적 상실을 상당히 솔직하게 기록한다. 그래서 한 평자는 <역정>을 통해 리영희를 거창한 ‘사상의 은사’라기보다 방황하는 청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까운 인간으로 느꼈다고 평가한다.

<전환시대의 논리>보다 먼저 읽어볼 만한 책

리영희를 이해하려면 나는 오히려 <전환시대의 논리>보다 <역정>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전환시대의 논리>에는 이미 완성된 리영희가 나타난다.

반면 <역정>에서는 <그 리영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반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급진적 지식인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군 장교였고, 미국 군사고문들과 일했으며, 영어와 미국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경험이 기존의 반공·친미적 세계관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영희의 사상적 출발점은 ‘좌파’라기보다 오히려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과 이성을 통해 권위와 신화를 검증한다.

그리고 사실이 자신의 기존 신념과 충돌하면 기존 신념을 수정한다.

이것이 그에게 ‘우상과 이성’이라는 평생의 주제로 발전했다.

종합 평가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사건을 한 개인의 눈으로 통과해 보는 책이다.

1929년생 리영희의 세대는 식민지, 해방, 분단,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 4·19, 5·16을 불과 30여 년 사이에 모두 경험했다. 그래서 그의 개인사는 곧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정치적이지 않다.

<한 인간은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영희의 대답은 일관되어 있다.

새로운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정>은 ‘진보 지식인 리영희의 자서전’보다 더 넓은 책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시대의 상식을 의심하는 인간이 되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1980년대의 정치적 맥락이 크게 달라진 오늘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 2012년 개정판 소개가 이 책을 오늘의 독자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를 묻게 하는 기록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평가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정>은 리영희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왜 그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리영희의 다른 어떤 저작보다 그의 사상적 뿌리를 잘 보여준다.

===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