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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4

전두환 회고록 1 | 알라딘 요약+평론

전두환 회고록 1 (수정본) | 전두환 회고록 | 전두환 | 알라딘
전두환 회고록 1 (수정본) - 혼돈의 시대 | 전두환 회고록
전두환 (지은이)자작나무숲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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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두환 회고록 1 (수정본) - 혼돈의 시대
전두환 회고록 3 - 황야에 서다
전두환 회고록 2 - 청와대 시절
[품절] [세트] 전두환 회고록 - 전3권





목차


1권 _ 혼돈의 시대

글을 시작하며
서문

제1장· 10·26_박정희 시대의 종언
*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성 * 비상사태를 맞은 국가지도부 *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 체포 작전
* 계엄령 선포와 합동수사본부 설치
제2장· 12·12_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 승자의 12·12와 패자의 12·12 * 정승화 총장의 드러나는 공모 혐의 * 10·26사건 전모 발표와 남겨진 의문들 * 10·26사건을 왜곡시키려는 움직임 * 정승화를 연행하기로 결심하다 * 정승화 연행 작전 * 정승화 추종세력의 반란 * 보안사의 반란 진압
제3장· 5·17_위기 수습을 위한 최 대통령의 결단
* 혼돈 속의 대한민국 * 혼란을 틈탄 북한의 움직임 * 5·17시국수습방안과 관련한 논란들
제4장· 5·18_신화神話의 자리를 차지한 역사
* 5·18광주사태와 나 * 광주사태, 그 비극의 시작 *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들 * 정부와 계엄사의 수습 노력 * 광주사태 수습 후에 던져진 질문들 * 5·18사태의 실체에 관한 논란 * 진실 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5장·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 위기수습에서 사회개혁으로 * 최규하 대통령의 소임과 성취 * 역사의 부름



저자 및 역자소개
전두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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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

최근작 : <전두환 회고록 1 (수정본)>,<전두환 회고록 3>,<전두환 회고록 2>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광주 지방법원의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결정(2017.8.4)에 따른 내용 수정본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에 선 전두환 前 대통령
마침내 30년의 침묵을 깨고 출간한 회고록!

“나의 허물은 덮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국민의 채찍도 피할 생각이 없다. 나의 허물마저 후대를 위한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침묵을 지켜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땅을 지키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느라 피와 땀을 바쳐온 모든 분들에게 넓은 이해와 관용을 구하고자 한다. 나로 인해 생겨난 증오와 분노가 한때의 증오와 분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용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오직 역사적 진실이 빛나는 태양 아래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다.”
_ [글을 마치며] 중에서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공개되는 최초의 회고록!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 전환, 88서울올림픽 유치, 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 등을 일궈낸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대통령.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5·18광주사태로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학살자. 이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전두환 前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으며 수많은 굴곡과 험난한 인생 여정을 거쳐 온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삶과 아직도 논쟁 중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년의 준비기간, 방대한 기록과 수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펴낸 이 회고록에는 미처 말할 수 없었던,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담담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회고록의 출간은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관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담아낸 당대의 역사서!

『전두환 회고록』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혼돈의 시대(1979~1980)』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부터, 12·12사태, 5·17, 5·18광주사태 등 긴박했던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범 김재규와 공모한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으로 빚어진 일부 장군들의 반란과 진압, 3김 씨와 학원소요로 상징되는 혼돈의 1980년도의 국내 상황과 5·18광주사태에 얽힌 논란과 진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의 고뇌에 찬 사임과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2권 『청와대 시절(1980~1988)』에는 1980년대를 이끌어간 5공화국의 국정 수행 기록이 담겨 있다.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시대 진입, 한국형 원자력 기술 개발의 성공, 중산층 확대를 위한 다양한 경제 시책들부터 다양한 규제 해제(연좌제 금지, 통행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등)를 통환 열린사회의 시작을 돌아볼 수 있다. 한편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로 인한 아웅산 테러 사건, KAl기 폭파 사건 등 무수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공조를 통해 안보를 공고히 하며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을 일궈내기까지 혼신을 다해 수행한 국정의 기록을 정리했다. 3권 『황야에 서다』는 어려운 유년시절부터 육사생도 시절을 거쳐 한 가정을 일구기까지의 평화로움 삶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인들에 의해 시작된 역사 뒤집기에서 비롯된 백담사 유폐와 재판, 재산 몰수 등 거듭된 역경과 고난의 행로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가 불러냈던 한 인물의 존재와 삶은 어느 순간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회고록은 한 개인 전두환의 삶의 궤적을 적어놓은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다. 역사는 신화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더라도 제대로 바라보고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역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이 책은 또 다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전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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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역사를 재평가 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전체주의적 사고이다. 역사는 계속적으로 재평가되고 연구되어야한다.
마술사 2017-04-04 공감 (10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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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3권을 구입하여 밤새워 읽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시기 그 누구도 마다한 일을 감내한 사나이 다운 사나이 전두환대통령 미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진실은 밝혀집니다. 후회하지 않게 앎을 주는 책입니다
왕눈 2017-04-28 공감 (7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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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금지 먹었네? 이게 나라냐? 우덜식 민주주의 내로남불 지겹다ㅋㅋ 다행히 미리 구입함 ^폭^
AyCaramba 2017-08-04 공감 (7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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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 전두환만큼 욕많이 먹고 있는사람이 또있을까?
이게국민수준인가?나라수준인가?제대로알기나하고 떠벌리는건가?
악플단사람중에 제대로 읽어본사람이 단한사람이라도있을까?
출판금지?티브이개그하냐?

거꾸로 2017-08-07 공감 (5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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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올바른 기록이라 말하고 싶다. 그 시절을 살았던 국민들이 가장 안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매일 매일 발전하는 나라를 꿈꾸었던 시간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와이코나커피 2018-05-28 공감 (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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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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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이야 말로 구국의 영웅이다. 이상하게도 왜곡되어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열사가되고 나라를 지키려 애쓰다 희생된 이 땅의 젊은 군인들은 제대로 평가도 못받고 있다.전두환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나라는 벌써 북한의 수중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츠필드 2017-04-03 공감(10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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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산당선언도 출간되는 시대다.

헛소리도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그것이 악서인지 양서인지는 시민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어떤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운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아예 입을 틀어막아 이론 조차 언급하지 못하는 성역을 꿈꾸는가? 거짓이고 악서이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모택동어록과 공산당선언도 출간되는 시대에 군대에서의 불온도서 단속이 떠오른다. 마치 21세기판 문자의 옥을 보는 것만 같다.
airhawk1 2017-08-21 공감(5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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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거짓말로 포장한 늙은 살인마의 초라한 유언장

.
tower402 2017-04-04 공감(25)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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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미안해

이게 대한민국 헬조선 현실이구나
hxfhgh 2017-04-20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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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는 살목마가 되어...

광주 민중항쟁(1980.05.18.~05.27.) 때 희생된 영령들이 2,000여 位.그 살인마가 쓴 회고록이 2,000여 쪽.이 살인마는 사람으로는 모자라나무까지 학살을 하는구나!아, 우리의 힘과 눈이 미치지 못해어쩌지 못한 이 살인마를 역사여, 길이길이 기억하라.
slfflfl 2017-04-05 공감(16)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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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사건 당사자가 쓴 이 회고록을 가지고 역사의 재평가 운운하는 것이 너무 우습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가지고 나치 재평가하자고 할 기세다. 양쪽말 다 들어보아야 한다는 것도 재판 과정에서나 하는 말이지 이미 판결 다 끝난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할 말은 아니다. 아무 말이나 막 갖다 붙이지 말자. 만일 전두환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운좋게 사면받고 나와서 이런 책을 쓴다면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백하다. 그리고 서재관리자가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100자평이 상품란에 노출되는 것을 계속 차단하는 것... + 더보기
vearnim 2017-04-19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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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최악입니다
김민선 2017-06-13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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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두환 회고록 1

북한군 그런거 없다.
NamGiKim 2017-04-3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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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쓰고 출판하다니...

역사왜곡..출판한다는거 자체가 답이없다.
just_smile 2017-05-1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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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log.naver.com/hog3143/221854300335

어느 사회에나 소위 '문제적 개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문제적 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대한민국 역사는 건국 70년이 조금 넘었지만, 법 중의 법인 헌법을 여러 번 개정하
여 벌써 제6공화국을 지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공화국이 출범할 때마다 문제적 개인이 등장하였고, 그중 제5공화국
의 중심에는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개인이 있었습니다.
2017년 그는 드디어 회고록을 출판하게 됩니다. 우리 시대 최악의 아이콘 전두환,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
고 그가 집권 전후와 집권 중의 혼란한 역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는 저의 관심을 자극하였습니다.
현재 원본은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라 구할 수 없지만, 저는 이렇게 어떤 수정 요구와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질
거라 미리 예상하고 첫 원본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두었습니다 - 후술하겠지만,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기에...
전두환 회고록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1권은 10 26사건, 1212 사건, 5 18 사태, 그리고 본인이 제11대
대통령에 오르기 직전까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요즘 '남산의 부장' 영화로 시끌시끌한 10 26 사건에 대해서는 전두환은 그 당시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와
그의 움직임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의 반란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은
그 당시 10 26 합동수사본부장이었는데, 당시 수사 기록을 이 책에서 소상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
에 당시 수사기록을 살펴보면 김재규가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서 박정희를 죽였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원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향유하고 있었고, 10 26 사태 직전
에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계엄령 강화 건의 등을 박정희에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들을 살펴보면 평소 차지철
과 그를 감싸는 박정희에게 화가 많이 나있던 김재규는 분노의 나날을 보내던 중 - 암살 계획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으나 - 10월 26일에 즉흥적으로 일을 감행하게 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즉흥 감행이라 그런지 사후 처리
가 치밀하지 못하여 결국 수 시간 만에 체포되게 됩니다. 그리고 정승화 총장은 본인이 이 일에 동의를 했건 안 했건
김재규가 정승화를 박정희 암살 시에 바로 옆 건물에서 기다리게 한 점,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그의 이름을 거론하
게 되면서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둘째로, 12 12 사건은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있던 소장 전두환이 계엄사령관 대장 정승화를 체포하면서 발생하게
된 사건으로 하극상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체포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였습니다. 전두환은 이
책에서 본인은 김재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계엄사령관과 박정희 시해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어 정
당한 과정 (최규하 당시 권한대행과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재가)을 통해서 정승화를 체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
다. 보통은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을 다른 장성들과 함께 압박하여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두환은
이 책에서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전두환은 12 12 사건을 신군부에 대한 불만이 쌓인 기존의 군
부 세력들의 저항이라는 진단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예로 그는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을 상당히 책에서 비난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정승화를 합법적으로 체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승화 라인의 사람이었던 장태완과 특
전 사령관 정병주가 이성을 잃고 군대를 출동시켜 일이 커진 것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자기주장을 뒷받
침하기 위해서 그 후에 상세한 재판 과정에서의 진술들을 책에 실어놓고 있습니다. 12 12 사건을 평가하기는 저 개
인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를 살아온 분들의 진술을 살펴봐도 이 사건은 의견이 크게 나눠지는 사건입
니다. 전두환의 회고록을 반박할만한 책이 빨리 나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셋째, 5 18 사건은 광주에서 계엄령에 반발하였던 시민 시위대와 군인들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일반적
으로 우리는 전두환이 이 5 18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고 알고 있지만, 전두환은 이 책에서 그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당시 보안 사령관과 중앙정보부 서리를 겸직하고 있었는데, 군의 지휘와 자신은 상관없는
보직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자신은 5 18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 18 사건이 이
토록 비극적으로 사건이 전개된 것은 군대의 초기 진압 실패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당시 지휘관들이 매뉴얼
대로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고 무조건 체포하게 함으로써 군과 시민들 간의 분노가 더욱 커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기고를 지키지 못해서 유혈사태가 크게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훈련받은 군인도
쉽게 할 수 없는 무기고 탈취와 조직적인 선동을 말하면서 하나의 음모론인 북한군 관련설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
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리한 소문들을 5 18 특별 재판의 기록을 통해서 반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11대 대통령에 오른 것은 알려 전처럼 자신이 실권을 장악해서 오른 게 아니라, 그 당시 자기를 잇
는 대통령이 되어줄 것을 최규하 대통령이 부탁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최규하 대통령이 자신을 불러서 나라를
맡아달라고 본인을 단독 후보로 추천하였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규하 대통령은 본인의 대통령 시절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그리고 기록에도 남기지도 않아,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
니다.
전두환 회고록이 판매 금지 처분이 된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판결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이 나오면 저 같은 사람
은 즉각 읽어보기 나름인데, 역사 전문가가 아닌 저는 -또한 다른 분야에서 학자인 저는- 당연히 이 책에 대한 반론
을 찾아서 읽어보고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판매 금지 처분이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논의 자체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 수년 전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 역시 법원으로부터 수정
지시를 받는 안타까운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이 이렇게 개입하여 어떤 학자, 또는 사건의 당사자가 쓴 책을 수정
또는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정화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고 사회 스스로가 하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예로, 최근 반일 종족주의 출판에 따른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반박을 들 수 있습니다. 법관은 우리의
생각을 알 수도 없고 대변할 수도 없습니다. 최근 독일 친구에게 물어보니 독일은 히틀러의 자서전을 자유롭게 읽게
놔두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더 이상 독재 시절에 나 있을 법한 금서가 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전 한 어르신과 골프를 치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전두환 어떻게 생각하세요?","아 완전 박정희의 양아들
이었지. 사랑받았어~, 근데 전두환이는 구라가 너무 심해"
https://hog3143.blog.me/222001201405

==
https://blog.naver.com/initial6/221292308507

전두환 회고록 1권
프로파일
 차차웅 ・ 2018. 6. 5.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타났을 때는 2017년 5월이었지만 내가 들어 알게 된 때는 1년이 지난 2018년 5월에서였다. 해마다 5월만 되면 5.18 기념식이 열리고 언론들은 들썩인다.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서로를 비판을 넘어서 헐뜯기도 한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사실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애매모호할 때가 있다. 보수가 맞다고 생각이 되면 혹시 대구라는 배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민하게 되고, 진보편을 들게 되면 괜한 반항심리가 이렇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반성이 되기도 한다.

  5.18은 사실 항상 깊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끊임없는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무자비한 탄압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들고 일어선 광주시민들의 행동이라는 관점과, 혼란을 틈타 반정부 세력들이 광주로 집결해 무기고를 털어 무장한 폭력 사태라는 상반된 생각들이 번갈아가며 출몰하는 그런 사건이기도 했다. 5.18을 묘사한 기록들은 상당히 많은데,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수’같은 영화나 ‘제5공화국’같은 드라마를 상당히 열심히 감상했고 관련되는 언론기사도 쉽게 넘기지 않고 읽어보기도 했었다.

 2018년 5월에 김현정의 라디오 토론에서 전두환 회고록에 관한 주제가 나와 이를 직접 쓴 전두환의 입이라고 일컫는 저자와 반대쪽 인사가 번갈아 가며 나와 자신의 주장을 펼친 기사를 보았다. 나 역시도 전두환에 대해서는 크게 호감을 가지지 않았고, 5.18 유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틀림없이 있었기에, 그 기사를 읽기 전에도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읽었는데, 뜻밖에도 전두환 측 입장이 더 설득력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자인 김현정 역시도 노골적인 반 전두환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느껴졌는데, 그래서 더욱 반감이 들었을까? 그 기사의 내용은 전두환 회고록을 아예 출판을 금지시켜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할까 라는 주제이기도 했는데, 이미 광주지법에서 잘못된 내용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받아 그대로 이행했는데도 출판을 금지시키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주장과, 어떻게 전두환이라는 양반이 출판금지를 당하는 것에 대해 감히 부당하다는 표현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는 희롱섞인 주장들이었다. 그때는 그랬다하더라도, 지금도 그래야한다는 논리는 사실 맞지 않는데 말이다.

 전두환 회고록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쯤, 5.18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틀림없이 들었다.
참 두껍고 많은 내용이 있는 책들이었다. 한권에 600페이지씩이나 되는 분량이 세권이나 되었으니, 우선 1권만 주문해서 읽어나갔다.

 전두환이라는 인물은 사실 참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들어왔던 농담 중에 ‘전두환 바보멍청이’라고 말해서 잡혀간 사람의 죄목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국가원수모독죄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기밀누설죄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MBC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전두환을 묘사할 때 유머에 능하고 많은 충성스런 부하들을 거느린 의리의 남자라는 내용도 나온다.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하려고 하니 너무 길다고 그때 되어서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냐는 심복의 항의에 ‘그때 가서 내가 또 하려고 하면 날 권총으로 쏴 죽이면 되잖아’ 이런 대사도 기억난다. 그런 그가 직접 쓴 엄청난 분량의 회고록이다. 12.12는 반란죄에 해당되었고, 간접투표로 대통령이 되어 7년간 박정희 못지않은 독재를 휘두른 신군부, 그가 하려는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한마디로 충격이기도 했다. 책은 철저하게 전두환 본인의 입장과 그 근거자료를 제시하고 있었다. 주장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그 근거들을 공신력있는 외부기관에서 인터뷰한 제3자의 입을 통해 나열하고 있었다. 최소한 10.26사태로 전두환은 이를 철저히 수사하기 위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 연행하는 과정은 참 매끄럽다. 이를 하극상이라고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쿠데타라고도 하는데, 사실 정승화를 죽인 것도 아니고, 10.26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사실도 설득이 된다.

5.18의 내용은 상당히 놀랍다. 모든 일은 사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니 항상 양쪽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5.18에 대해 내가 듣거나 아는 모든 내용들은 시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 일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5.18자료들을 보고 읽었지만 마치 당연한 듯이 시민들은 피해자이고 억울한 약자라는 내용이었는데, 시민들의 시위를 막는 군인들의 입장은 처음 읽어보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5.18때 죽은 시민들의 숫자는 160여명이다. 물론 부상자는 훨씬 많아 항상 수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이렇게 묘사한 내용은 많이 봤지만 정확한 사망자수는 170명이 되지 않았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5.18을 제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들의 사망자는 얼마였을까? 이 숫자를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이 책에서 30명대라고 되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민들의 사망자가 160명인데, 정식으로 훈련받은 공수부대원들이 30명이나 사망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데,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당시 광주시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무기고를 털어 무장해서 같은 나라의 군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그렇게 살상까지 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반정부 시위는 그야말로 수도없이 많이 발생했지만, 시민들이 지역의 38군데나 되는 무기고를 거의 동시에 털어 총뿐 아니라 화약과 탄약까지 가져간 것은 과연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동이 나왔고 그 행동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엄청난 일들을 벌렸는지 정말 궁금하다.

 전두환 회고록에 나오는 5.18의 내용은 광주지법에서 삭제명령으로 가려진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니까 내가 본 내용은 광주지법에서 봐도 판매해도 괜찮을 내용만 본 셈이다. 그렇게 한면 검열을 마친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박정희가 죽고 최규하 대통령시절,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터져나온 반정부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5.17때 김대중을 탄압하니 이에 반발한 광주시민들이 시위가 더더욱 심해져 갔고, 초기 지휘관의 미숙한 대응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못하고 철저하게 폭력적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었다고 쓰여져있다. 그런데, 이런 혼란을 틈타 전국에서 모여든 정체모를 세력들이 광주로 집결해 광주교도소를 무력으로 개방하여 죄수들을 해방시키고, 언론사를 방화하고, 무기고를 털어 무장까지 하고 각종 유언비어로 거짓선동하는 그 과정은 틀림없이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과는 무관한 대한민국의 전복을 노리는 반정부 세력이 활동했음에 틀림없다고 되어 있다.

 사실 공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언제 무기고를 털어 역시 같은 국민인 군인들에게 총을 쏘고 화약을 터뜨려 모조리 자폭하겠다고 협박했을까? 그게 사실 일반인들이 충동적으로 저질 수 있는 일이기는 할까?
 


 1권만 사서 읽었기에,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의 일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전두환은 잘못한 일도 많지만 전두환이 잘한 일도 분명 있다. 8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물가안정은 틀림없이 그의 업적이기도 하다. 단군이래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라는 1987년과 3저 호황을 틈탄 3년간의 경상수지 흑자는 해외여행자유화라는 국민들의 자유의 길을 크게 만들어줬다. 88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잘 치러낸 경험도 틀림없이 긍정적이다. 심복들이 쏴죽일까봐 걱정이어서 대통령을 한번만 하고 내려왔는지, 그야말로 바보멍청이여서 연임을 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그는 약속대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6.29선언이라는 대통령 직선제도 만들어 훗날 이후의 어느 대통령도 단임하는 전통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업적이 아니라 운좋게 실력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기에 가능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역시도 리더의 업적인 것도 틀림없다.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전두환이 국민들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욕먹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기 위해서라면 뭘 어떻게 했어야할까?

 5.18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런데 5.18 역시도 전두환이 한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당시 전두환은 일개 보안사령관이었을뿐, 5.18과 관련된 부대에 명령을 내리는 체계와는 먼 관계였으니까 말이다.

혹시....그 책 한권에 내가 세뇌당한 걸까? 휴.
[출처] 전두환 회고록 1권|작성자 차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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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 요약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는 저자가 자신의 출생부터 1980년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까지의 유년 시절, 군 생활, 그리고 10·26 사태와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자신의 시각에서 기술한 책이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자신에게 씌워진 역사적 오명과 법적 판결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당시의 선택이 국익과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변한다.

책의 전반부는 저자의 성장 과정과 군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을 다룬다. 경남 합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구공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하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저자는 육사 시절을 통해 철저한 애국심과 군인정신을 체화했다고 주장하며, 월남전 참전과 전방 사단장 근무 시절의 일화들을 소개하며 자신이 오직 국가 안위만을 생각하는 청렴하고 유능한 군인이었음을 강조한다.

중반부의 핵심은 1979년 10·26 사태와 이어진 12·12 사건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저자는 자신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막중한 책임 아래 있었다고 서술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12·12 사건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김재규의 시해 음모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취한 <정당한 수사권의 발동>이었다. 그는 이를 권력 찬탈을 위한 군사반란이 아니라, 군 내부의 불순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한 <우발적이고 불가피한 자구책>으로 규정한다.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과정에서 발생한 지연 역시 군의 행정적 절차와 혼란 때문이었을 뿐,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후반부는 1980년의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다. 저자는 당시 시국을 북한의 남침 위협과 국내 좌파 세력의 선동으로 인해 국가 존립이 위태로웠던 극도의 혼란기로 묘사한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는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인정하기보다는, 불순분자와 고정간첩, 그리고 북한 특수군의 개입에 의해 폭동으로 변질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계엄군의 발포 명령 역시 자신은 지휘 계통에 없었으므로 무관하며, 현장 부대의 자위권 발동에 불과했다고 강변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신이 권력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주공산이 된 권력의 공백기에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역사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회고를 마무리한다.

평론: 자기합리화의 서사와 왜곡된 역사의 기록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 권력자가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 본질은 역사적 실증과 사법적 판단을 전면 부인하는 <극단적 자기합리화의 서사>에 불과하다. 이 책은 기록 문학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객관성이나 성찰적 태도를 결여하고 있으며, 오직 자신과 신군부 세력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결함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조작>이다. 저자는 12·12 사건을 정당한 수사 과정으로 포장하지만, 이는 이미 1997년 대법원에 의해 '군사반란'으로 명백히 판결 난 사안이다. 합법적인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동원해 상관을 체포한 행위를 자구책으로 묘사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군의 기강을 뒤흔든 범죄 행위를 궤변으로 덮으려는 시도이다. 권력 찬탈의 치밀한 기획 과정을 모두 우발적인 사건으로 돌리는 서사 방식은 역사의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단절시키는 왜곡에 가깝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술은 평론의 가치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악의적이다. 북한군 개입설이나 불순분자의 선동설은 이미 수많은 조사와 청문회, 재판을 통해 허위로 밝혀진 음모론이다. 이를 회고록에 당당히 기술한 것은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대중의 기억을 조작하려는 시도이다. 실제로 이 책은 출간 직후 5·18 왜곡 심의를 거쳐 법원으로부터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법원이 특정 구절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팔 수 없도록 명령한 사실 자체가 이 회고록이 가진 반역사성과 허위성을 증명한다.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사용하는 서사 전략은 <구국(救國)의 프레임>이다. 저자는 자신을 권력욕에 가득 찬 찬탈자가 아니라, 혼돈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진 비장한 군인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자 코스프레와 영웅주의적 묘사는 책 전체에 흐르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모순된다.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과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부채의식이나 인간적인 고뇌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국가의 안위라는 거대 담론 뒤로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고록이 가진 역설적인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독재자의 내면 논리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권력을 찬탈한 세력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하고, 어떤 언어를 동원해 범죄를 애국으로 둔갑시키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반면교사적 자료가 된다. 권력의 정점에 서서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인물이 종국에는 역사와 법정 앞의 패배자가 되어 처절하게 변명하는 모습을 담은 서류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결론적으로 <전두환 회고록 1>은 승자의 기록이 아닌, 역사의 심판을 받은 자의 < 뒤늦은 방어전 >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시민들의 역사 의식을 시험하는 텍스트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자의 것임을 이 책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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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 요약+평론

전두환의 회고록 제1권 《혼돈의 시대》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부터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까지를 다룬다. 주요 사건은 10·26, 12·12 군사반란, 1980년의 정치적 혼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출판사는 이 책을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라고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장악한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성한 자기변론서에 가깝다.

1. 박정희 피살과 권력의 공백

책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이 시기를 국가 지도력이 갑자기 사라지고 군과 정부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비상상황으로 묘사한다.

전두환의 서술에서 자신은 권력을 탐한 정치군인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부름받은 실무 책임자로 등장한다. 그는 김재규의 범행 동기와 공모 가능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정승화가 김재규와 사건 당일 함께 있었고, 수사에 비협조적이었으며, 군 지휘체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사를 위해서는 정승화를 연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후의 12·12는 쿠데타가 아니라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방해하는 군 수뇌부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처럼 보인다. 책의 가장 중요한 서술 전략이 여기서 나타난다. 전두환은 자신이 먼저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국가 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행동했다고 말한다.

2. 12·12 군사반란의 재구성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정승화를 강제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의 군부대가 동원되고 군 지휘관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이후 사법적·역사적 판단에서는 이 사건이 군 지휘계통을 무력으로 장악한 군사반란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회고록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뒤집는다. 전두환은 정승화 연행에 반대하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측이 먼저 병력을 움직였으며, 자신과 동료 장교들은 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대응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신군부의 병력 동원은 반란이 아니라 반란적 저항을 진압한 행위라는 논리다.

이 서술에서는 전두환과 가까운 육군사관학교 11기 중심의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장기간 형성된 인맥과 조직을 통해 군부대를 움직였다는 권력구조도 축소된다. 개인적 야심, 조직적 준비, 군 내부의 파벌정치 대신 수사상 필요와 우발적 충돌이 강조된다.

전두환은 12·12 이후에도 자신이 즉시 정권을 장악하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최규하 정부의 권위를 존중했으며, 정치에 참여할 계획도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전개를 보면 신군부는 12·12를 통해 군 통수체계를 사실상 장악했고, 전두환은 1980년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군사·정보 권력을 한 손에 집중시켰다. 회고록은 이러한 권력 집중을 국가 안정에 필요한 책임 확대라고 표현한다.

3. 1980년의 ‘혼돈’과 정치세력

책의 제목인 ‘혼돈의 시대’는 단순한 시대 묘사가 아니다. 전두환의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1980년의 한국을 정치인들의 권력투쟁, 학생운동의 과격화, 노동쟁의, 북한의 위협이 결합된 국가적 위기로 묘사한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이른바 3김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이끌 지도자라기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구정치인으로 그려진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정치적 이상보다는 좌경세력의 선동이나 사회혼란으로 해석된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와 시민들의 유신체제 청산 요구도 국가질서를 위협하는 집단행동으로 환원된다.

이러한 서술은 당시 국민이 요구했던 민주주의의 내용을 지워버린다. 박정희 사후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 계엄 해제, 정치활동 자유,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를 민주주의의 회복 과정이 아니라 국가 붕괴 직전의 혼란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질서’와 ‘안정’은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기존 군사국가의 지배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행동은 혼란이 되고, 군부의 강압적 개입은 질서 회복이 된다. 책 전체가 이 언어적 대립 위에 서 있다.

4. 5·17과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봉쇄했으며,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고 대학을 폐쇄했다. 전두환은 이를 북한의 남침 가능성과 국내 소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활동과 학생 시위를 국가안보의 위기와 연결하고, 군의 개입을 예방적 조치로 설명한다.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서도 그는 계엄군의 과잉진압보다는 시위대의 폭력성과 무장화를 강조한다. 계엄군은 먼저 공격하지 않았고,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하고 군경을 공격하면서 사태가 확대되었다는 논리다. 발포 역시 시민군의 공격에 대응한 자위권 행사였다는 방향으로 서술된다.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 진압작전의 구체적 명령이나 지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자신에게 계엄군 작전지휘권이 없었으며, 광주 진압은 계엄사령부와 군 지휘계통이 담당했다는 것이다. 형식적 지휘계통만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은 특정한 발포명령 문서 한 장의 존재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이미 12·12로 군의 실권을 장악했고, 5·17 계엄 확대와 정치인 체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주도했다. 광주 진압은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발생한 핵심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회고록은 전두환을 사건의 중심에서 분리해 단순한 정보보고자 또는 사후 수습자로 배치한다.

특히 회고록은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이를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모욕적인 표현으로 비난했다. 또한 북한군 개입설, 계엄군의 자위권 차원 발포 등 근거가 인정되지 않은 주장을 실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회고록의 일부 표현이 허위사실에 해당하며 5·18단체와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2026년 2월 대법원은 관련 표현을 삭제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판·배포 금지와 7천만 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5. 최규하 사임과 대통령 취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이후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이 되어 정부의 주요 정책을 사실상 통제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8월 사임했고,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이 되었다.

회고록은 이 과정 역시 권력 찬탈이 아니라 역사적 소명으로 묘사한다. 최규하는 국정 운영의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물러났으며, 군과 국민이 국가의 안정을 이룰 지도자로 전두환을 원했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자신의 대통령 취임이 사전에 계획된 결과가 아니라 국가적 혼란 속에서 책임을 떠맡은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2·12로 군권을 장악하고,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며, 5·17로 정치활동을 봉쇄하고, 국보위를 통해 행정부를 통제한 다음 대통령이 된 일련의 과정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보기 어렵다. 회고록은 각 사건을 개별적인 위기 대응으로 설명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군사력·정보기관·행정기구·정치제도를 단계적으로 장악한 권력 획득 과정이었다.

최규하의 사임 역시 단순한 자발적 결단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최규하는 형식상 대통령이었으나, 12·12 이후 군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고 신군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5·17 계엄 확대와 국보위 설치 이후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축소되었다. 따라서 그의 사임은 국정 운영의 개인적 한계를 인정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신군부가 조성한 정치적 압력과 권력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퇴진이었다.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유신헌법이 만든 간접선거기구였으며, 국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직접선거가 아니었다. 전두환은 사실상 단독후보로 출마했다. 이 선거는 이미 군과 정부를 장악한 인물이 기존 권위주의적 제도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법적 형식으로 승인받는 절차였다.

회고록은 이 과정을 ‘군과 국민의 추대’로 설명하지만, 국민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정치적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요 정치인은 체포되거나 정치활동을 금지당했고, 국회는 폐쇄되었으며, 언론은 통제되고 대학은 휴교 상태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취임을 국민적 선택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6. 회고록의 서술방식

《전두환 회고록 1》에서 반복되는 서술방식은 <불가피성>이다. 전두환은 자신이 먼저 권력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모든 행동이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12·12는 정승화 수사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고, 5·17은 사회혼란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불가피한 계엄 확대였으며, 광주 진압은 무장시민의 공격에 대한 불가피한 자위조치였고, 대통령 취임은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책임을 떠맡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는 개별 사건만 떼어 놓고 보면 일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건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결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12·12를 통해 군 지휘권을 장악했고,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를 통해 정보권력을 통제했으며, 5·17을 통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봉쇄하고, 국보위를 통해 행정부를 장악한 뒤 대통령직에 올랐다.

따라서 각 사건은 단절된 위기 대응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된 권력 집중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회고록의 핵심 전략은 이 연결고리를 끊는 데 있다. 전두환은 각 사건을 그때그때 발생한 우발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서술함으로써, 전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계획성과 권력 의지를 흐린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형식적 권한과 실질적 권력의 선택적 사용>이다. 전두환은 경제발전이나 국가 안정에 대해서는 자신이 결단하고 지도한 성과라고 주장한다. 반면 12·12의 병력 동원이나 광주 진압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작전지휘권이 없었다거나 구체적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인한다.

성과를 말할 때는 실질적 최고권력자로 등장하고, 국가폭력의 책임을 말할 때는 제한된 직책을 가진 군인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회고록 전체의 중요한 모순이다.

7. 책의 역사적 가치

이 책을 단순한 거짓말의 집합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회고록은 전두환 자신이 당시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1차 자료다.

특히 군 내부의 인간관계, 사건 당일의 긴박한 분위기, 신군부 인사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전두환이 정치인·학생·언론·시민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회고록은 권위주의적 지배자의 정치의식을 연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전두환의 국가관은 군대식 질서관에 기초한다. 국가는 국민이 정치적 토론과 선거를 통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체제라기보다, 지휘부가 통제하고 국민이 따라야 하는 조직에 가깝다. 갈등과 시위는 민주주의의 정상적 과정이 아니라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혼란으로 이해된다.

그에게 지도자의 정당성은 절차나 시민의 동의보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능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를 파괴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질서를 회복했다면 자신의 행동은 정당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두환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군사권위주의를 떠받쳤던 보다 넓은 정치문화의 일부였다. 반공주의, 국가안보, 경제발전, 질서유지라는 가치가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보다 우선한다는 사고다.

8. 책의 한계

이 회고록의 가장 큰 한계는 피해자의 시선이 없다는 점이다. 광주시민, 고문 피해자, 해직 언론인, 강제 해산된 노동조합원,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사람들은 거의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대부분 폭도, 선동당한 군중, 좌경세력, 혼란을 일으키는 정치인으로 묘사된다.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왜 발생했는지, 계엄군의 폭력으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가족들이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갔는지는 회고록의 관심 밖에 있다.

특히 광주에 대한 서술에서 전두환은 자신의 직접 명령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은 한 개인이 구체적인 발포명령을 문서로 내렸는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권력구조를 만들고, 계엄을 확대하고, 군대를 투입하며, 이후 진상규명을 막은 정치적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

회고록은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의도적으로 분리한다. 공식 명령문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군과 정보기관의 실질적 중심에 있던 인물에게 이러한 변명은 충분하지 않다.

또한 전두환은 국가안보와 북한의 위협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당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국내 정치활동을 봉쇄하고 민주화운동을 군사적으로 진압한 일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9. 종합평가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는 1979년 10·26부터 1980년 대통령 취임까지의 권력 이동을 전두환의 관점에서 기록한 책이다. 그는 자신을 군사반란과 내란의 주역이 아니라,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해 책임을 떠맡은 군인으로 그린다.

책의 서사에서 전두환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이 그를 찾아온다. 정승화 연행도, 계엄 확대도, 광주 진압도, 대통령 취임도 개인의 야심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따른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의 연결을 따라가면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12·12로 군권을 장악하고, 중앙정보부를 통제하고, 5·17로 정치권을 제거하고, 국보위를 통해 정부를 장악한 뒤 대통령이 된 과정은 우연한 사태 수습이라기보다 단계적 권력 장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안정과 질서를 민주주의보다 상위에 놓는다는 데 있다. 전두환은 당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보지 않고 혼란과 선동으로 규정한다. 반면 군의 병력 동원과 정치개입은 질서 회복을 위한 책임 있는 행동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집힌다. 민주주의를 요구한 시민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 세력이 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군인은 국가를 구한 지도자가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그것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핵심 지도자였다는 자부심은 포기하지 않는다.

성과에는 자신의 지도력을 강조하고, 폭력에는 자신의 권한이 없었다고 말하는 이중적 태도가 회고록 전체를 관통한다.

결국 《혼돈의 시대》는 혼돈을 기록한 책이라기보다, 혼돈이라는 이름으로 권력 장악을 정당화한 책이다. 전두환에게 당시의 혼돈은 군의 정치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배경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 혼돈의 상당 부분은 군부의 권력투쟁과 민주화 억압이 더욱 확대시킨 것이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는 국가적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을 떠맡았다는 서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12·12에서 대통령 취임에 이르는 단계적 권력 장악을 우연과 역사적 소명으로 재구성한 장문의 자기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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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은 출판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고, 
그런 한국의 상황에 대해 커멘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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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1권> 출판 금지의 구체적 이유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가 법원으로부터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출판 금지 및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핵심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역사 왜곡과 이로 인한 당사자 및 관련 단체의 명예훼손(인격권 침해)>이다.

법원이 적시한 구체적인 출판 금지 사유는 다음과 같은 허위 사실 유포에 집중되어 있다.

  • 북한군 개입설 주장: 저자는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군 600명의 개입과 선동에 의해 발생한 폭동이라는 주장을 회고록에 담았으나, 법원은 이를 법리적·역사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명백한 허위 사실>로 판단했다.

  • 헬기 사격 및 계엄군 발포 부정: 고(故) 조비오 신부 등 수많은 목격자가 증언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전면 부인하고, 목격자들을 가리켜 '가면을 쓴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여 사망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 시민군에 의한 피해 조작: 시위대 장갑차에 의해 시민이 사망한 사건 등 인과관계를 왜곡하여 군의 잔혹한 진압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려 했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일지라도,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여 타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법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지적된 5·18 왜곡 표현들을 삭제하지 않고는 도서를 출판, 인쇄, 복제, 판매, 배포할 수 없도록 강제 조치했다.

한국의 사법적·사회적 상황에 대한 커멘트

<전두환 회고록 1권>에 대한 한국 법원의 출판 금지 조치는 국가 권력에 의한 사상 검열이나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민주적 헌정 질서 수호와 역사적 정의 확립을 위한 사법적 통제 메커니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첫째,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한 사례다.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지만, 공적 기록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사법적 판결과 역사적 실증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왜곡된 사실을 유포할 때,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해악에 주목했다. 법원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를 방어하는 것이 독재자의 왜곡된 저술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가치 기준을 재확인한 것이다.

둘째, 역사적 진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헌법적 가치로 자리 잡은 사건이다. 이를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에 대해 사법부가 단호한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은, 국가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진실을 흔드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셋째, 출판산업과 기록 문학에 미치는 경종이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저술일수록 철저한 사실 검증과 편집자적 책임이 수반되어야 함을 엄중히 경고했다. 단순한 주장이나 허위 서술을 '개인의 기억'이라는 방패 뒤에 숨겨 무책임하게 유포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음으로써, 향후 현대사 서술의 객관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이 책이 금지된 상황은, 과거 청산과 역사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민주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시킨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어 기제라고 평가할 수 있다.

YTN 뉴스 - 전두환 회고록 1권 출판 금지 판결

이 영상은 당시 법원이 회고록 1권에 대해 출판 금지 결정을 내린 구체적인 법적 근거와 5·18 단체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어, 한국 사회의 법적 대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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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제1권 전체가 어떤 사상 때문에 영구적으로 금서가 된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회고록에 실린 특정한 5·18 관련 표현들을 삭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판·배포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1. 출판·배포가 금지된 직접적인 이유

전두환은 제1권 《혼돈의 시대》에서 5·18에 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 북한군 또는 북한 측 세력이 광주 사태에 개입했다.
  •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없었다.
  • 계엄군의 발포는 시민군의 공격에 대응한 자위권 행사였다.
  •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공격한 목적은 수감된 간첩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 장갑차가 계엄군 병사를 치어 사망하게 한 뒤 시위가 격화되었다.
  •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이며 “가면을 쓴 사탄”과 같은 인물이었다.

법원은 확정판결, 관련자 진술, 과거사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하여 이러한 표현들 가운데 다수가 객관적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조비오 신부에 대한 표현은 단순한 역사적 의견이 아니라 특정인의 명예와 유족의 추모감정을 침해한 모욕적 공격으로 보았다.

2017년 광주지방법원은 처음으로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을 내리면서,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출판·판매·배포·광고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에는 33개 표현이 문제가 되었고, 이후 수정판과 본안소송을 거치면서 법원이 허위로 판단한 표현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2026년 2월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두환의 유족과 출판 책임자인 아들 전재국 측은 5·18 관련 단체와 조비오 신부 측에 모두 7천만 원을 배상해야 하며, 법원이 허위 또는 명예훼손으로 판단한 표현을 삭제하지 않은 판본은 출판·배포할 수 없게 되었다.

2. 단순히 ‘역사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른 평가를 제시했다고 해서 책을 금지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은 가치판단이나 정치적 의견의 영역에 속할 수 있다.

  • “당시 계엄 확대는 국가안정을 위해 필요했다.”
  • “전두환 정부에는 경제적 성과도 있었다.”
  • “5공 청산에는 정치적 보복의 성격도 있었다.”

이러한 평가는 강하게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만으로 법적 금지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문제가 된 것은 검증 가능한 구체적 사실을 허위로 적시하고, 그 허위사실을 이용하여 피해자와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이다. 즉 법원은 전두환의 정치적 견해를 금지했다기보다, 사실로 단정한 특정 표현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따라서 “전두환의 관점에서 썼기 때문에 금서가 되었다”거나 “정부가 불편한 역사를 탄압했다”고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다. 법원이 내린 조치는 전면적인 사전검열이 아니라,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이 특정 표현의 허위성과 인격권 침해를 판단한 결과였다.

3.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의 권리

그럼에도 책의 출판금지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출판·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은 비록 왜곡되고 편향되었더라도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전두환이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허위사실을 통해 특정인의 명예를 무제한으로 훼손할 권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이 경우 글을 쓴 사람은 보통의 관찰자가 아니라 당시 국가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국가기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고, 사건의 진상을 밝힐 특별한 책임을 가진 당사자였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조사와 재판을 거쳐 반박된 주장을 사실처럼 반복하고, 학살을 증언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공격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기억을 넘어선다.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피해자와 증언자의 신뢰성을 다시 파괴하는 <2차 가해>의 성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사이의 충돌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명예와 역사적 사실성을 더 중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 한국 사회가 보인 특수성

한국의 상황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의 권력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사법적으로 내란과 군사반란의 책임을 인정받았고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지만, 생전까지 공개적인 사과나 충분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회고록은 오히려 자신을 국가를 구한 인물, 정치적 보복의 희생자로 묘사했다.

둘째, 국가가 충분히 일찍 진실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직접 소송을 해야 했다. 회고록은 2017년에 출간되었고 최종 대법원 판결은 2026년에 나왔다. 피해자와 유족이 거의 9년간 법정투쟁을 한 셈이다.

셋째, 5·18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일부 정치세력과 온라인 매체는 북한군 개입설이나 폭동설을 반복하면서 5·18의 역사적 성격을 흔들어 왔다. 그래서 회고록의 허위 주장은 한 개인의 잘못된 기억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역사부정 담론에 권위를 부여할 위험이 있었다.

넷째,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처벌과 사면, 진상규명과 정치적 타협이 뒤섞여 진행되었다. 전두환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곧 특별사면되었고, 추징금도 완전히 환수되지 않았다. 그 결과 법적 판결은 있었지만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청산은 불완전하게 남았다. 회고록 논쟁은 바로 그 미완의 과거사가 다시 나타난 사건이다.

5. 출판금지에 대한 비판적 우려도 가능하다

출판금지 판결에 동의하더라도 몇 가지 우려는 남는다.

책을 시장에서 제거하면 전두환의 왜곡된 논리가 보이지 않게 되는 대신, 일부 지지자들은 그를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탄압받은 인물”로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출판금지 이후에도 유튜브 등을 통해 회고록을 낭독하거나 판결을 “분서갱유”라고 비난하는 콘텐츠가 유통되었다.

또한 역사 논쟁을 법원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미래에는 다른 역사적 쟁점을 둘러싸고도 출판금지 요구가 남용될 수 있다. 법원은 명백한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을 판단할 수 있지만, 복잡한 역사 해석 전체를 결정하는 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책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다음과 같은 방식일 수 있다.

문제가 된 허위 표현을 표시하고, 법원 판결과 조사보고서를 함께 수록한 비판적 주석판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독자는 원문의 왜곡을 직접 확인하면서, 왜 그것이 사실과 다른지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대학·도서관·연구기관에서는 연구용 열람을 허용하되 일반적인 상업적 유통에는 엄격한 조건을 붙이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6. 나의 평가

나는 이 출판금지를 단순한 언론탄압이나 역사검열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전두환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발표했다는 데 있지 않고, 국가폭력의 책임 당사자가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이용해 피해자와 증언자의 명예를 다시 훼손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판결만으로 역사부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판금지가 확정된 뒤에도 온라인에서는 왜곡된 내용이 계속 유통되고 있다. 법적 금지는 필요한 최소한의 방어일 수 있지만, 충분한 해결책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금지 그 자체보다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국가기록과 조사자료의 공개.
둘째, 학교와 시민사회의 역사교육.
셋째, 가해자의 회고록을 피해자의 증언과 나란히 읽는 비판적 공론장.>

전두환 회고록을 전혀 읽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그것이 어떻게 사실을 선택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로 만드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더 강력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도 1980년의 기억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은 군사독재를 제도적으로는 극복했지만, 그 시대를 해석하는 언어와 책임의 문제까지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두환 회고록 1》의 출판·배포 금지는 반대 의견을 억압한 조치라기보다,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허위사실로 피해자의 명예를 다시 훼손하는 것을 제한한 판결이지만, 한국 사회는 금지를 넘어 그 왜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공개적으로 읽고 비판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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