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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04 조동일 -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

04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pdf
동아시아 소설이 보여준 가부장(家父長)의 종말 1)

국제 • 지역연구 10권2호 2001 여름 PP. 81-102
조동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음 동아시아 소설 세 편은 가부장의 종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었다. (A) 일본 시마사키도손(島崎藤卞寸)의『이에(家)』(1912)
(B) 중국 바진(巴金)의『지아(家)』(1931) (C) 한국 염상섭의『삼대(三代)』(1931) 이들 소설은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역사적인 전환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양상은 나라에 따라서, 작가의 사 고방식에 따라서 달랐다. 비교연구를 통해 그 양면을 해명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동아시아 특유의 현상인지 보편적인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 비교의 범위를 넓혀 가부장의 죽음의 주제를 함께 다룬 서양소설도 함께 다루었다.
(D) 프랑스 로제 마르탱 뒤 가르(Martin du Garcl)의『티보가의 사람들
(Les Thibault)』(1922-1936) 네 작품은 가부장의 죽음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권위주의 가치관 에서 민주적 가치관으로 전환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므로 멈추지도 지연시킬 수도 없다고 하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면서 가부장의 구체적인 성 격은 서로 달랐다. (A)농민의 지도자, (B)과거를 보아 특권을 얻은 '신사(糸申 삐,' (C)금전으로 양반의 지위를 얻은 사람, (D)부유한 시민이 각기 그 사회 의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라고 했다.
가부장의 뒤를 잇는 후계자에는 순종형과 항거형이 있다. 가부장의 죽음 을 순종형은 아쉬워하고, 항거형은 환영했다. (A)의 후계자는 순종형이다. (B)의 후계자는 항거형이다. (C)와 (D)에는 순종형 후계자와 항거형 후계자 가 둘 다 있다.
(A)의 순종형 후계자는 서양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라져가는 일본 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B)의 항거형 후계자는 가부장의 전제에서 벗어 나기 위해 서양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C)에서는 다양한 후계자들이 빚 어내는 서양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보수주의 사이의 복잡한 갈등을 그렸다. (D)는 순종형 후계자의 우파 노선과 항거형 후계자의 좌파 노선 사이의 대 립을 보여주었다.

I . 서 론

중세사회는 가부장이 지배했다. 가족의 서열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2000년 국제지역연구 지원사업 연구비에 의하여 지원되었음.
 
남성 연장자가 재산권과 도덕적 권위를 함께 가지고 가족을 다스렸다. 가부장과 다른 가족의 관계는 기본양상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와 같으면서, 존중의 순위가 앞선다고 했다. 충효C볎孝)를 함께 소중하게 여기면서, 충보다 효를 앞세워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한 것이 그런 뜻이었다.
중세사회가 근대사회로 바뀌면서 가부장이 권위를 잃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 의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아버지와 아들, 남성과 여성, 연장자와 연소자 사 이의 차등을 전제로 한 질서를 거부하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주장이 대 두해 인간관계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변화가 아직 진행중에 있으며, 많은 논란과 진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학문에서 전담해서 다를 수 없고, 다각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사회학이나 역사학에서 그 나름대로 소중한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문학연구가 깊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 문학작품, 특히 소설은 변화의 양상을 아 주 잘 나타내고 있어, 자세하게 살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소설의 사회사 에 대한 깊은 이해는 시대변화를 총괄해서 파악하는 최상의 방안일 수 있다.
여기서 고찰하고자 하는 자료는 가부장의 종말을 다룬 동아시아소설이다. 중 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끝나고 근대가 시작된 시기인 20세기초에 일본 • 중국 • 한국에서 모두 가부장의 죽음을 그리면서 한 시대가 끝나는 양상을 문제삼는 소 설을 내놓았다. 일본에서는 시마사키도손의『이에(家)』(1912)가, 중국에서는 바 진의『지아(家)』(1931)가, 한국에서는 염상섭의『삼대』(1931)가 그런 주제를 다루었다 이들 작품은 프랑스소설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과 흡 사해 비교고찰의 범위를 거기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네 작품은 각기 자기 나라 현실을 반영했다. 가부장이 누구이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네 작품은 한 가족 내에 서 일어난 일을 사회 전반의 동향과 관련시켜 다루면서, 가부장의 종말이 지니 는 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한다. 네 작품은 신구 세대의 교체를 평가하는 기본관 점이 서로 일치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려고 하는 구세대에 대한 신세대 의 반론을 심각하게 문제삼았다.
이 네 작품을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해 고찰하면, 사회변화에 관한 새로운 이 해에 기여하는 소중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아직 없었다. 네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나, 비교연구는 프랑스의 것을 중국 것이나 한국 것과 들씩 짝을 지어 견주어 살피는 데 그쳤 다고) 동아시아 작품들 상호간의 비교연구는 아직 없었다. 여기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을 마련한다.
 
1) 마르k행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를 Yi-Ling Ru(1992)에서는 바진((巴金)의 『지아』와 Park In-Jea(1995)에서는 염상섭의『삼대』와 비교해 고찰했다.
Ⅱ. 시口卜사키도손의『이에(家)』
시마사키도손의『이에』는 세 집안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2) 고이즈미 (/]\泉)가(家), 하시모토(橋本)가, 나구라(名倉)가는 인척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생 활방식과 기풍이 달라 서로 대조가 되었다. 원래 같은 처지였는데, 시대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운명이 달라졌다.
세 집안 모두 신분은 농민이다. 도시민인 귀족이나 시민이 아니고 대대로 농 촌에 거주해온 농민이며, 서로 혼인을 한 것을 보면 지체가 같다. 그러면서 농민 가운데 상층농민이다. 땅을 많이 가져 지주 노릇을 하면서 돈벌이도 해서 생활 이 넉넉한 편이다. 어느 정도 학식이 있으며, 마을의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촌장 의 지위를 세습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이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겪 은 바를 작품화했다. 그래서 고향과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가라고 일컬어 진다(노영희, 1990: 13, 14).
작품에서 특히 고이즈미가와 하시모토가는 '구가(舊家)'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했다. 여러 대에 걸쳐서 농촌의 지배자 노릇을 한 상층농민 '본백성(本百姓)', 그 가운데서 마을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 '장옥(庄屋)'집안이다.3) 그 점을 자랑스 럽게 여기고 오랜 전통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다가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몰 락하거나 위축되었다. 그러면서 그 양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가문을 서로 대조가 되게 설정했다. 나구라가는 새 시대에 맞게 변신해서 번 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구가'의 과거를 청산했다. 세 가문의 상관관계에다 시대변화의 전폭을 집 약해서 나타냈다.
마을의 지배자인 '장옥'은 지주이고 권력자이면서, 현금 수입이 보장되는 숙 박업소, 상점 같은 영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무사(武士)'가 아니므로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지만, 지주이고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귀족과 상응하  위치에 있었다. 도시에서 '조닌(町人)'노릇을 하는 신분이 아니므로 농민으로 취급되었지만, 화폐경제 활동에 종사한 점에서 다른 시민과 상통했다.
1868년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자, 그런 구가'는 커다란 변화를 겪 이야 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을 관장하자 마을 촌장의 지위는 세습할 수 없게 되 있고,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산업체의 발달로 지방의 소규모 재래식 영업체가 타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분상의 제약이 풀려, 도시로 나가 시민으로 활동할 수도 있고,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이즈미(小泉)가는 시대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다가 크나큰 시련을 겪었다. 조상 대대로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기풍을 훌륭하게 이어 널리
 
2)『島村全集』6(1922) 소재 원문과 노영호] 역(1990)을 함께 이용한다.
3) 그 성격을 Harumi Befu(1968: 301-314);石井良助(1981: 77-80)에서 이해할 수 있
다.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룩한 고이즈미 타다히로(小泉忠實)가 미쳐서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 아들 고이즈미 산키치(小泉三吉)는 동경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개 척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한 가 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것은 어쩔 수 없으나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고 했다.
작가는 그런 집안이 일본 전통의 수호자라고 평가했다. 전통사회의 공식적인 지배자인 도시의 '무사는 시대변화와 더불어 쉽사리 변신했지만, 농촌의 “구가' 는 그렇지 못해 오랜 전통을 지키려다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 서 회고했다. 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내는 가부장의 죽음을 함께 그리면서, 가부 장의 신분을 시마사키도손은 농촌의 지배자로 설정한 것이 바진은 작품에서는 귀족으로 염상섭은 귀족의 신분을 얻은 시민으로 설정한 것과 주목할 만한 차 이가 있다 또한, 사라지는 시대에 대해서 시마사키도손은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 다른 두 사람은 심각한 비관을 한 것과 달랐다.
정식 귀족이든 사이비 귀족이든 귀족은 물러나야 하지만 신분적 특권을 지니 지 않고 농촌을 개척하고 수호하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은 옹 호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종말을 고하는 가부장의 신분을 “무사' 로 하지 않고 농촌 '구가'의 주인으로 해서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논거를 마련했 다. 바진과 염상섭은 할아버지 대의 가부장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 때 문에 손자대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시마사키도손은 아버지가 죽은 내력을 아들이 찾도록 했다.
작품이 시작될 때, 고이즈미 타다히로는 이미 죽고 없었다. 아들 고이즈미 •산 키지가 어릴 때의 기억을 살리고,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모 습을 찾고,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사유를 밝히는 작업이 작품의 진행과 더불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이 한 시대가 끝나는 당연한 과정 이라고 할 때에는 죽는 과정을 길게 서술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은 아버지를 추념하면서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고자 했다.
아버지는 신도(神道)를 독실하게 믿고 국학(國學)에 •심취했다. 아들이 하시모 토가에 가서 서재를 구경하면서 아버지를 회고한 대목에서 그 점이 처음으로 나 타났다. 두 집안 장서의 차이가 정신적 배경의 차이를 말해준다.
아버지가 심취했던 것과 같은 본거파(本居派)학설에 관한 저술이나, 만엽(萬葉)과 고사기(古事言己)에 관한 연구, 일본과 한(漢)의 사류(史類), 시가집 같은 것 은 적었지만, 그 대신 하시모토가 특유의 무술과 무도 등을 쓴 사본이 많이 일! 었다. 경서(經書)나 자류(字類) 등도 있었다. 누가 수집한 것인지 한역의 구약성 서도 있었다(노영희, 1995: 27) 
 
4) 원문은: “三吉㈆阿爺力:心\醉U%:수5 갓本居!辰㈆學說l:關수乙著述之㈆,萬葉수古事言己
고이즈미 산키치의 아버지가 일본의 국수주의 학문을 깊이 탐구하고 크게 승 상한 것과 달리, 하시모토가의 사람들은 무술, 유학, 기독교 등을 두루 이해하고 자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완고했던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심지가 굳으면서 또한 다정한 사람이었다. 오타네(種)라고 한 딸이 아버지를 회고한 대목에서는 아버지 의 인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는 딸이 배우는 습자교본에까지 신경을 쓰셨다. 정조가 아름답고,  신이 여인의 덕이라는 것,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푸는 것과 근면, 극기, 검약, 성실 독행(篤行) 등의 교훈을 쓰셔서 그것을 오타네에게 연습시켰던 것이 었다(노영희, 1990: 34).5)
그런 훌륭한 분이 미쳐서 죽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은 그 의문 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애쓰다가, 흑선(黑船)이라는 가상의 적과 싸운 탓임이 나 중에 밝혀졌다. 흑선이란 다름이 아니라 서양의 배이다. 직접 그린 그림이 남아 있어 추리의 증거가 되었다. 작품이 거의 끝날 때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그 그림을 찾아내서 오랜 의문을 풀었다. 그 대목을 들어본다.
그을련 오동나무 상자를 찾아왔다. 선조께서 죽음에 임박해서 자식에게 남 긴 편지, 옛 사람들이 베낀 듯한 무기,馬具그림, 출병 준비를 자세하게 쓴 서 류, 그밖에 여러 가지 옛 물건들이 남아 있는 것이 나왔다.
•산키치는 그 속에서 '흑선' 그림을 발견했다. 신기한 듯이 몇 번이나 들이 보 았다. 반지(/半紙) 정도의 크기의 종이에 옛날 사람의 눈에 비친 환상이 아주 거 친 목판본으로 찍혀 있었다. “마시 이 배는 유령이야." 하면서 산키치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이 네덜란드 배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미치신 것도 이 유령 때문이에요(노영희, 1990: 343).6)
 
㉦硏究之㈆和漢㉦史類之㉦詩歌㉦集之㉦,左樣v결J• 7) :호少%了-o力밓其力올 0橋本㈆家l:”特有캇武術,武道尹了는 춘書VÄ之寫本i)§澤山才, .經書子類.誰수集力危수漢譯㉦舊約全書  건%易石(『島村全集』6, 1922: 30). 
5) 원문은: “71」歠女良力§手習㈆手本:二象″C^,貞操㈆美U :  는 수, 隣㉦人象愛世次弓勤勉克己,儉約,誠實,篤行%了건수㈆訓言每書v결 ,3c 札춘惢種:二習世之危(『島村全集』6, 1922: 44)." 6)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의煤桐㈆箱搜出C毛來危.先祖i)§死際子供^遺C危手紙,先代수寫U武器, 馬具㉦圖出兵㉦用意춘細〈書w之書類,其f也種種尹了古v결殘o危物力s出毛來心三吉隊-c中Ic'黑船'㉦圖춘見o(才之.ho% 5 :二何度邕何度邕取上4平毛見危.半紙程㈆ 大푷 ㉦紙I:,昔㉦人㉦眼I:映o危幻影力§極〈粗v결木卞反(“刷o毛b .
 
서양의 배가 일본을 침공하지 못하게 자기가 막아 물리쳐야 한다고 하다가 정신이상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서양의 침공과 맞서다가 수난 을 당한 전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노영희, 1990: 53). 아들이 그 내력을 알 고 아버지를 동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작가의 생각이고, 독자 또한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시모토가는 산중의 숙박촌에서 대대로 약품 도매업을 경영하는 집안이다. 창업주의 화상을 족자에다 그려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창업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외지에서 간 사람이 보기에는 기이했다. 고이즈미가는 일본의 전통을 온통 지키려고 하면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힘겨운 과업을 맡아 감당하지 못하고 파멸한 것과 달리, 이 집안은 작은 것을 착실하게 지켜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평가할 것은 못된다.
나구라가의 사람들은 북해도(北海道)에 가서 장사를 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 다. 아이누민족에게서 삐]앗은 땅 북해도는 일본인 이주민에게 신천지였다. 미국 인이 서부를 개척하듯이 일본인은 북해도로 건너가 한 밑천 잡을 기회를 얻고자 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진취적이고 실질적인 사고방식을 가져, 그 기회를 잘 이용해 신흥일본의 발전적인 기풍을 보여주었다. 오랜 가문은 시대변화에 적 응하지 못해 몰락하거나 활기를 잃고 개척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하는 가문이 일어나 번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세 가문의 대조적인 특징을 통해서 시대변화를 보여준 것이 이 작품의 특징 이다. 다음에 다루는 중국과 한국의 작품에서는 한 가문의 여러 세대가 달라진 과정을 그린 것과 크게 다르다. 그런 차이는 '이에'라는 일본의 집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데서 유래했다. 일본의 집안은 다른 집안과 구별되는 생업과 가 풍을 대대로 이어가는 독립체이다. 반드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위로 발탁되어 계승을 하기도 하다. 혈통보다는 가풍의 동질성이 더욱 긴요하다.
계승자가 대대로 하던 일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 다. 시대가 변하면 어느 집안은 망하고 어느 집안은 흥한다. 가문이 인격체인 것 처럼 시대변화 때문에 밀려나기도 하고 시대변화에 앞서기도 한다. 망하는 집안 을 새로운 방법으로 일으키는 아들이 나와 가풍을 혁신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이 상례이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는 없었던 변화가 나타났다.
나라 전체의 오랜 전통을 지키려는 집안은 망하고, 자기 집안의 가풍만 착실 하게 이은 집안은 그 나름대로 견디고, 전에 없던 사업으로 집안을 일으킨 쪽은 크게 번성했다. 오랜 가문에서 선조를 숭앙하고 가부장을 대단하게 여기는 풍조 가 새로운 가문에서는 사라졌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
 
'宛伏-斯㉦船隊幽靈之  三吉;才f可力`思` 쑤付v) 7)和蘭陀船7)繪춘見危言o詹:.
'僕等㉦卜可爺力§狂I:成o%:邕7)邕,斯7)幽靈㈆御蔭간寸ia...(『島卞寸全集」6, 1922: 616)."
면서 작자는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가부장이 없어진 것을 아쉽게 여겼다.
작품 속의 고이즈미가는 집안이고, 산키치(三吉)는 작가의 모습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산키치의 추억 같은 것을 간직하고, 일본전통사회의 붕괴를 아쉬워하면서도 세상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한 가지 일을 누구든지 전문적으로 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일본 특 유의 시민의식을 가져, 자기는 소설가가 되었다. 과거에 대한 회고로 세상을 바 꾸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아 세태를 그리는 임무에 충실했으므로, 자연 주의 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산키치처럼 실패하지 않았다.

Ⅲ. 바진의『지아(家)』
바진의『지아(家)』는『춘(春)』(1938),『치우(秋)』(1940)와 함께 격류 Al- u丁그(激流三部曲)'을 고 이루었다. 그 셋을 다 다루지 않고『지아』만 들어 다른 두 작품과 비교해도 주목할 만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시대배경은 1919 년의 5• 4운동기이다. 그 때의 사회변화 때문에 오랜 내력을 가진 가문이 몰락 하고, 지배자인 가부장이 세상을 떠나게 된 사건을 서술했다. 구시대에 크게 행 세하는 위치에 있어 위세를 자랑하던 가문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점이 일본의 경우와 같다. 작가 자신이 그런 집안 출신이어서 자기가 겪은 바를 작품화하는 일을 시마사키도손과 바진이 함께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쥐에후에이(覺慧)라 는 인물이 바로 바진 자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진은 자기 집안과 같은 구시대 가문의 몰락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 는 가부장이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시마사키도손의『이에』와는 다르  염상섭의『삼대』나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과는 일치하는 2`니 정을 했다 죽고 없는 선조는 숭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고할 수 있다. 그러나 죽어야 할 노인이 죽음을 연장시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추태이다. 그 때문에 시 달리는 자손들은 공연한 고생을 한다. 그것은 한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 고, 역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진통이다.
이 작품에는 할아비지대, 아비지대, 그리고 주인공대의 세 세대의 인물이 등 장하는 점이 염상섭의 삼대』와 같다. 시마사키도손이 세 집안을 대조해 보인 것은, 집안 안에서는 세대에 따른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일본 사정 때문이고 중국과 한국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들이, 아들과 손자가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다. 염상섭은 삼대의 인물을 각기 하나씩으로 했는데, 바진은 제2대와 제3대의 인물을 복수로 등장시켰다.
“청대조복(淸代朝服)"을 입은 “역대선조(歷代先祖)”의 “화상(畵像)"을 모시고
(巴金, 1982: 107), 지위와 부를 함께 자랑하는 '신사' 가문의 지배자가 제1대의
 
까오(高)노인이다. 청나라 과거에 급제하 벼슬한 사람인 '신사가 중국의 지배신  이다.7) 그 집안의 남성 최연장자 까오노인이 다른 가족구성원을 지배했다. '까 로라는 성은 고고하다는 뜻을 간직하고 있어 노인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이름 은 있어도 가족들은 부를 수 없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노인이나 할아버지라고 지칭하면 된다.
까오노인은 구시대 귀족이고 지주이며, 전통적 가치관의 수호자이다. 가부장 이 당연하게 지니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집안을 엄격하게 다스렸다. 자손들  이나 하인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어떤 횡포라도 자행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 했다. 가세가 기울고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청산의 대 상이 되어야 할 시대의 모습을 작가는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제2대는 '커(克)'를 돌림자로 한 커밍(克明), 커안(克安), 커띵(克定) 삼형제이 다. '게라는 돌림자는 앞 세대의 완고한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지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밍(明)'• '안(安)'• 띵(定)'이 라는 이름은 밝고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 세 사람은 과거를 보아 급제하지 않았으니 '신사'의 신분을 잇지 못하고, 구시대의 가치관을 고집할 만한 학식도 없었다. 가세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알 고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커안과 커띵은 무위도식을 하는 방탕아이고, 인 륜도덕을 저버린 무리에 속해, 귀족 후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었다.
그런 위기를 타개하려고 커팅이 홀로 애썼다. 새 시대에 행세하는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어서는 논을 사는 대신에 증권을 구입했다. 귀족이 시민 이 되는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서 새로운 길을 적극 개척했다. 그 과업은 아직 첫 단계의 시도여서, 다음 세대가 이어서 맡아야 제대로 추진될 수 있었다. 제3대는 '쥐에(覺)'를 돌림자로 한 쥐에신(覺新), 쥐에민(覺民), 쥐에후에이(覺慧), 쥐에췬(覺群), 쥐에스(覺世) 등의 손자들로 이루어졌다. 한자 이름의 상징적 인 의미가 이 경우에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깨어난다는 뜻의 '쥐에를 들림자 로 하고, 깨어나서 얻을 수 있는 결과를 나타내는 '신(新)'• '민(民)'• 후에이 (慧)'• '췬(群)'• '스(世)'라는 말이 각자의 이름에 들어 있다. 5•4운동을 겪고 의식에서나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작자의 생각이 그렇 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름과 실제는 이긋날 수 있다. 망해야 하는 집안에 새 인물이 난다 는 보장이 없다.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구습이 일거에 혁신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손자 세대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그래서 대조가 되거나 대립을 일으키는 관계를 가졌다.
 
7) Ho Ping-Ti(1962); 하병체 • 조영록 외(1987)에서 '신사'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다각 적인 고찰을 했다 
쥐에친과 쥐에스는 어린 나이이지만 위의 두 대가 보인 추태를 그대로 이어, 하녀 희롱하기를 일삼는 악동 노릇을 했다.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서려면 무 슨 짓이든지 못할 것이 없었다. 쥐에신은 신구 중간에 선 인물이다. 쥐에후에이 는 자기 집안의 구습을 거부하고 새 시대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낡은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역사적인 과업을 맡아나서는 역군이 되어 야 한다고 했다.
“니도 장차 신사가 되는 간니 아냐 기' 
“우리 할아비지도 신사있고, 우리 아버지도 신사였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들 도 마땅히 신사가 되어야 한단 말이지 기'
“신사 가문 속에 꽉 들어찬 공기를 감당할 수 없다....분명히 한 집안 사 람 인데도 방마다 딴 나라처럼 되어 하루도 겉으로 다투고 속으로 싸우지 않는 날 이 없단 말야.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재산 싸움에 지나지 않아!"8)
쥐에민과 쥐에후에이가 이런 대화를 나눈 부분에 구시대를 거부하는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선조 대대로 과거에 급제해서 신사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 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신사란 탐욕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기나 한다고 비관 하고, 자기네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새 시대의 사조를 받아들이고, 신교육을 받았다. 5• 4운동 의 이념을 확산하는 잡지『신청년(新靑年)』을 탐독하고, 신사가 되는 데 필요 한古文은 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영어를 공부한다. 외국어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영국인 교사에게서 영어를 배웠다. 스티븐슨의『보물섬』을 무대에 올리는 영어연극을 연습하면서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새 시대로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벌이 득세하 교 육비를 군사비로 전용하는 세상이었다. 학생들의 연극 공연을 군인이 방해해서, 충돌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항의집회를 열어도 대답이 없자, 동맹휴학을 했다. 쥐에후에이는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 일이 알려지자 할아버지는 쥐에후에이를 불러 잘못을 꾸짖고, 외출금지령 을 내렸다 쥐에신이 감독을 맡도록 했다. 그 대목에서 신구의 충돌이 아주 잘 나타난다.
너희들 학생은 하루 종일 독서는 하지 않고 시끄러운 일만 좋아한다. 요즘
 
8)巴金(1982: 18), 최보섭(1985)의 도움을 얻어 원문을 이해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f尔將來不也昰1;申士|喁?" 
“我們的,祖父是紳士,我們的父親是紳士,所以我們也應該是紳士다馬?" “受不了這種糸申士家庭中間的閉氣日馬?...明明是-家人,然而沒有-天不在明爭暗[鬪. 其實不過是爭點家로 !"
 
학교는 아주 몹쓸 곳이야. 난폭한 인간만을 만들어내고 있다.9)
이 1그畢-0- 근 근- .드느그 T二1- 亡자는 -%` 커다란 거리를 느꼈다. “앞에 가로누워 있는 사람은 그 의 할아버지가 아니고, 다만 한 시대의 대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아버 지와 손자라는 두 세대는 영원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10)고 했다.
할아버지 까오노인은 인륜도덕을 역설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향락을 취하면 서 살아왔다. 기생들을 가까이하는 풍류를 일삼았다. 주씨(周氏)를 첩으로 맞아 들여 만년을 즐기면서 수발을 들게 했다. 그러나 자기 아들이나 손자는 정해진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집안에 거느리고 있는 하인이나 하녀에게 도 각자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집안의 하녀 가운데 밍펭(鳴鳳)이라는 17세의 소녀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쥐에후에이를 사모했으며, 쥐에후에이도 그 쪽으로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어느 날 주씨가 부르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엄정한 통고를 했다. 핑러산(馮樂山)이라는 이에게 첩으로 주기로 했다는 까오노인의 결정을 전했다. 그 사람은 나이 60이고 처첩(妻妾)이 이미 여럿 있으나 부자이므로, 가서 잘 섬기면 고생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밍펭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쥐에후에이 도련님”하고 부르면서 호수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쥐에후에이는  펭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꿈속에서 재회했으나,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까오노인에게는 그런 사건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집안을 자기 마음 대로 다스리는 폭군 노릇을 계속해서 피해를 확대했다. 손자들의 혼사에 대해서 자기가 독점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당사자의 생각은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집안에 불만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큰손자 쥐에신은 그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체념했다. 이종누이를 사랑했지만, 궁합이 좋지 않고, 어미니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하는 따위의, 자기는   이유 때문에 해어지라는 조처가 내려, 할아버지가 정하준 아내를 맞이하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했다. 이종 누이가 불행한 결혼을 하고 이내 과부가 된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둘째 손자 쥐에민은 형의 전례를 따르지 않았다. 고종누이를 사랑하 장래를 약속하고,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혼처를 정해 장가들이려고 하자, 쥐에 민은 집에서 끄다. 집을 나가면서 큰형 쥐에신에게 남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 원문은: “14〈們學生整天不讀書,只愛I吊]事.現在I的學堂眞壞極了,只制造出來-些才島i싀l 人物(巴金, 1982: 67). 
10) 원문은 “f也覺得軀在f也面前的開不是f也的祖父, f也只是整整-代人的-個代表.知道f也們,祖孫孫兩代永遠不能竪互相了解的(巴金, 1982: 68)."
 
나는 우리 집안에서 일찍이 아무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결혼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행동을 실행했습니다... 나는 의연하게 이 길을 가렵 니다. 나는 구시대의 세력과 싸우겠습니다. 만약 어르신네들이 혼인에 관한 일을 취소하지 않으면, 나는 결단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11)
쥐에신이 귀가를 권유하자, 쥐에민은 거절하는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은 말했다.
내가 지금 작은 방안에 들어앉아 있는 꼴이 탈옥한 죄수 같습니다. 움직이 려 고 해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다시 잡혀 사형수의 감옥에 들어 갈까 두렵습니다. 사형수의 감옥이란 우리 집입니다.12)
그러나 할아버지의 태도는 완강했다. 손자의 반항을 보고 격노했다. 어른이 기 0 -하 1- 이 근으 자식이 함부로 그르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태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 절망했다. 손자 쥐에민의 항거, 그리고 아들 커띵의 방탕 때문에 상심하 병석에 누웠다. 쥐에민을 만나기 를 원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인 건을 취소한다고 하자 쥐에민이 비로소 할아 비지의 병석에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자 마음의 안정을 얻어 숨을 거 두었다. 그렇게 해서 너무나도 오래 계속된 낡은 시대가 끝났다.

Ⅳ. 염상섭의『삼대』

염상섭의『삼대』에13) 등장하는 제1대인 할아버지 조의관은 전통적인 가치 관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한 점에서 까오노인과 같다. 그러나 바진이 그린 까오 노인은 귀족이어서 귀족의 위업을 지키려고 했는데, 조의관은 귀족의 지위를 사 서 가진 사람이다. 그 경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을사조약 한참 동안에 돈 이만당 지금 돈으로 사백원을 내놓고 사십여세 에 옥관자를 붙인 것이다. 차함은 차함이로되 오늘날의 조의관이란 택호가 아주 터 무니 없는 것은 아니요(『한국문학전집』3, 1959: 72).
 
11) 원문은. “我做了我門家裏從來沒有人敢做的剚靑,我實行逃婚了...我要和舊勢力奮鬪到
底.如果f尔們不打消那件親事我臨死也不回來(巴金, 1982: 315)."
12) 원문은: “我這時候座在-個小房間裏好象是-個逃獄的犯人,連動也不敢動,恐1`白動就會被捉回到死囚牢中去.死囚牢是我底家庭(巴金, 1982: 321). '  13)『한국문학전집』3 (1959) 수록본을 이용한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위협해 국권을 장악한 을사조약을 체결할 무렵에 돈을 내 고 벼슬을 샀으니, 매국내각의 일원 중 한 사람이 돈을 챙겼다. 벼슬이란 다름이 아니라 실직은 아니고 명예직인 중추원 의관(議官)이다. 그 때문에 생기는六1-기 으 없지만 조의관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근래에는 편입해 들 어간 집안에서 선조를 위하고 족보를 다시 만드는 일에 돈을 내놓아야 할 형편 인데 마다하지 않았다.
돈을 내놓게 된 일을 설명하면서, “양자로 들어가면 재산 상속을 받을 권리 도 있지만 없는 양부모면야 벌어서 봉양할 의무도 지는 것이다(『한국문학전 집』3, 1959: 73)”라고 하는 말을 앞세웠다. 족보상 누구니0 丁소 그-01라고 하면서 족보에 편입했는데, 그 누구라는 위인이 없는 사람이다. 없는 사람은 더 위해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편입하 들어간 집안에서 선조를 위하는 사업을 벌이고보니 돈이 만당은 든다 하고, 일을 맡은 사람들이 오천냥은 자기들이 모을 터이니 오천냥은 조의관이 마련하라고 했다. 자기네가 돈을 모은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조의관의 돈을 오천 냥이나 뜯어먹자고 해서 벌인 일이다. 조의관도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돈을 깎자고 하고 지불기일을 늦추고 하는 등의 술책을 쓰기는 하면서도, 선조를 위 하는 일이 소용없다고 거절하지는 못하고 끌려들었다.
조의관은 이처럼 시민의 능력으로 벼슬을 얻이 귀족이 되고서는 시민임을 부 인하고 귀족 가문의 일을 열심히 했다. 이미 널리 개방되어 있는 변신에 과도한 대가를 지불하고 뒤늦게 참가하고서 귀족의 수호자 노릇을 하는 성스러운 사명 을 수행하겠다고 하니 가관이다. 조의관이 시대 변화를 멈추거나 되돌리려고 한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일이었다.
조의관의 죽음은高노인의 죽음보다 더 길게 서술되어 한 시대가 종말을 고 하는 진통을 한층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통한 일이 아니다.高 노인이 되돌아온 손자를 보고 안도하고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위안도 허용하지 않았다. 조의관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장엄한 의미도 지니지 못 했다. 한 시대의 종말이 아니고 시대착으의 종말이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한국에서 사회사의 진행이 다르게 이루이져 그런 차이가 생겼다. 중 국에서는 과거에 급제해야 '신사가 되므로 가짜 귀족이 있을 수 없어 진가의 는 란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돈을 내면 '양변이 되는 한국에는 가짜 귀족이 얼마든 지 있어 진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가짜이면서 진짜보다 더욱 진짜로 행세 하려고 한 조의관의 죽음은 진가를 구분하려고 한 무리한 시도의 종말이다.
조의관의 죽음에는 또한 돈 가진 사람의 비극이 집약되이 있다. 조의관은 아 내를 잃고 수원집이라는 첩을 들어앉힌 것이, 벼슬을 사고 족보를 하면서 돈을 쓴 것과 함께 손꼽을 수 있는 하나의 오입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수원집은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노인 수발을 잘 들어 투자한 보람을 찾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병이 심해지자 노인과 수원집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는 사라지고 적대적 인 관계가 확대되었다. 그래서 일생을 편안하게 마칠 수 없었다.
노인은 자기가 죽으면 수원집이 재산을 차지할 것을 염려했다. 아 지 믿을 수 없어 손자를 불렀다. 일본 경도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손자 덕기에 게 연락하 빨리 돌아오라고 했다. 노인이 사태를 바로 판단해 마땅한 공세를 취 했다. 다행히 노인이 운명하기 전에 손자가 도착했다. 유가증권과 함께 유언장이 들어 있는 금고 열쇠를 손자에게 전하고 재산을 대부분 손자에게 상속해, 노인 이 승리했다. 그러나 수원집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으니 패배했다고 해 야 한다.
노인이 운명하기 전에 대학병원에 입원했더니 의사들이 비소중독이라는 진단 을 내렸다 시신을 해부해 진상을 알아보자고 하자 아들 상훈은 찬성했는데, 손 자 덕기는 반대했다. 덕기는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덮어두기로 했다. 할아버지 가 병석에 누운 동안 계속 먹은 한약을 수원집이 관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한약에 비소를 넣어 노인이 일찍 죽게 했을 수 있다. 덕기가 도착하기 전에 노인이 죽어 자기가 승리를 거두려고 했을 수 있다.
노인은 그런 줄 모르고 죽었다. 아들 상훈은 아무 것도 모르고 다만 의혹을 풀기 위해 아버지의 시신을 해부하자고 했다. 손자 덕기는 짐작하는 바가 있으 나 드러내서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 시신 해부에 반대했다. 비소중독이 라고 진단한 의사를 후하게 사례하고 일을 일단락 냈다. 그러나 독자의 의심은 지위지지 않아 추리를 계속하게 한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 노인은 돈이 있기 때 문에 독살되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하수인 노릇은 누가 맡았든 그 배후는 돈이다.
조의관은 시대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 사람이다. 과거의 위계 질서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돈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돈이 자기를 공격하는 작 용을 멈추지 못해 수명이 단축되었다. 돈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횡포를 자행해 사람 잡는 새로운 시대의 희생자가 되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은 이 루지 못하고, 시대변화의 희생자가 되었다.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구시대의 종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 지 않고, 새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돈의 횡포를 고발하고 위험을 경고한 것은 시마사키도손이나 바진은 하지 않은 일이다. 시마사키도손은 돈의 지배가 바람 직하지 않지만 받아들여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바진은 돈벌이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살아가는 희망 찬 시대가 도래한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염상섭은 돈 은 가진 쪽이든 가지지 못한 쪽이든 함께 불행하게 만든 사실을 들어 새 시대를 비판했다.
제2대의 조상훈은 아버지를 따라 귀족이 되기를 거부했다. 양반 노릇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반발했다. 자기 돈을 들여 남의 조상을 위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했다. 자기는 그런 허세를 배격하고 실리를 숭상하는 시민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것은 어디서나 있는 당연한 일이므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
다.
그런데 유럽에서와는 달리, 시민이 되기 위해서 문명권의 소속도 바꾸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동아시아의 전통을 버리고 유럽문명권의 가치관을 적극 받아  이려고 했다. 미국유학을 하고, 예수를 믿어 구습을 타파하자고 했다. 그것은 빗나간 길이었다. 그 점을 납득할 수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그- 1- 브畢으 ℃죠 = -1- 1- 그으 기울였다.
시마사키도손은 이미 과거가 된 첫째 세대에 특별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바진은 셋째 세대의 항거를 그리는 데 힘쓴 것과 대조가 되게, 염상섭은 둘째 세대의 선택이 그릇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을 긴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삼십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비리고 나서려고 허 비 적거릴 때 누구나 그리 하였던 것과 같이 그도 젊은 지사로 나섰던 것이요, 또 그러느라면 정치적으로는 길이 막힌 그들이 모여드는 교단 아래 밀려가서는 무 릎을 꿇었던 것이 오늘날의 종교생활의 첫 발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만일 요 새 말로 자기청산을 하고 어떤 시기에 거기서 발을 빼냈더라면 그가 사상으로도 더 새로운 시대를 나오게 되었을 것이요,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성격대로 순조로운 길을 나아가는 동시에 그러한 위선적 이중생활 속에서 헤매지-1- 1- 0} 1-죠0畢 을 것이다(『한국문학전집』3, 1959: 29-30).
구세대와 결별하는 신세대의 출발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시대를 발로 차버리기만 해도 지사(志士)가 된다고 한 것은 지나쳤다. 정치에는 뜻을 두지 못해 종교계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 문제였다. 자기청산은 하지 않고 세상만 나무란 데 잘못이 있어, 우월감을 버리지 않고 더 키워 위선 적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구시대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해 양반을 사고, 남의 조상을 위 하는 데 거액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고 반발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 지가 부당하기 때문에 자기의 반발은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꾸중 이 잘못되었다는 이유에서 모든 도덕적 책임을 무시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 다. 그래서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패륜아가 되었다. 돌보아주어야 할 친구의 딸을 유린해서 타락시키는 짓을 서슴지 않고 했다.
기독교와 미국유학은 구시대를 매도하는 데는 큰 효력을 발휘했으나, 새 시 대를 이끌어나갈 지침이 되지 못했다. 이 땅에서 역사와 더불어 가꾸어온 모든 가치관, 사람이 살아가는 마땅한 도리까지도 타기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자기 는 거룩한 정신을 가진 우월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정신적인 진주군처럼 군 림했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유린하고 희생시켜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 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유럽문명권 추종을 근대화라고 여길 때 반드시 나타나는 공통적인 폐단이다.
시마사키도손이 서양의 흑선과 싸우다가 미쳐서 죽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막연하게 제시한 공포를 염상섭은 구체화해서 보여주었다. 전통에 반발하기 위 해 서양 추종자가 된 조상훈은 삶의 중심을 잃었다. 흑선과 싸우는 방법을 제대 로 알지 못해 미친 것처럼, 서양에서 가져온 잣대를 내세워 모든 기존의 가치를 부인하다가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다. 서양의 도전에 대한 대 응이 빗나가서 생긴 두 가지 파탄을 두 작가가 각기 보여준 것을 한 데 합쳐 이 해해야 전후의 맥락이 드러난다. 방향은 반대이지만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한 미 친 짓이라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을 두고 시마사키도손은 동정하 면서 이해하려고 하고, 염상섭은 비판하면서 배격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봉건시대에서 지금의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간에 선 것 같다고 생각했다(『한국문학전집』3, 1959: 30)”고 말했다. 건너오 기는 했지만 그 길은 외나무다리이므로 위태롭다. 아들은 안전하고 튼튼한 행로 를 다시 찾아야 했다. 완고한 사상을 버리고 개화를 한 것만 자랑일 수 없다. 무 스 1- 지 2`으 하든지 돈 벌고 행세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제3대의 아들은 귀족의 삶과 시민의 삶을 다 거부하고, 무산계급과 함께 투 쟁하는 새 시대의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병화는 쥐에민처럼 집을 뛰쳐나 가서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자기 집안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항거했다. 그런 인물인 김병화는 주인공 조덕기의 친구로 설정했다. 정통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
조의관의 손자이고, 조상훈의 아들인 조덕기는 위험인물이 아니며 나서서 행 동하지 않은 온건파 지식인이다. 과격파와 온건파 가운데 온건파를 정통으로 설 정하고, 투쟁을 격화시키는 것보다 화합을 이룩하는 데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그런 위치에 있는 덕기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온건파가 살기 에는 너무 험악한 세상이고,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독살설이 피져, 약을 지이준 한의사, 한의사를 소 개해준 사람 등의 관련자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같은 시기에 좌익운동에 대한 일제 탄압이 자행되어 김병화와 그 배후의 인물, 그밖의 여러 가담자가 잡혀7갔
다. 조덕기는 그 두 가지 일에 함께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찾자 자수해 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조덕기가 조부를 독살하고 유서를 위조해 재산을 가로챘다고 의심하 고, 그렇게 한 이유는 김병화의 사주를 받고 좌익운동에 자금을 대주려고 한 데 있다고 추리했다. 일제 경찰이 자랑하는 새 시대 범죄 수사의 논리는 그 나름대 로 완벽해서 무리를 하지 않고서도 죄인을 만들어내는 것을 장기로 삼았음을 알 아차릴 수 있다. 경찰과 싸워 협의를 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거에는 증거로 논리에는 논리로 맞서야 했다.
독살건을 두고서는 의사에게 지나친 사례를 한 것이 문제되었으나, 한약제 중에 중독소가 있는가를 연구하라고 부탁”한 것이고, “지위와 명예를 보아 과분
한 액수는 아니”라고 했다. 조부가 살아 있을 때 금고 열쇠를 전하는 것을 현장 에서 보았다고 수원집이 증언하지 않을 수 없어 도움을 얻었다(같은 책, 354면)  김병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께 자라난 죽마고우가 집을 뛰어나와 굶고 다니 는 것을 구제할 겸 전향시키려고 가까이 했다고 했다(『한국문학전집』3, 1959  30).
다른 피의자들은 계속 조사를 받는데, 조덕기는 석방되었다. 그래서 자기 문 제는 일단 해결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계속 어렵고 복잡하게 읽혔다. 서 로 대립되어 싸우는 진영 가운데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그 중간에서 조정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조덕기의 위치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 다. 화해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싸움의 당사자들보다 더욱 힘든 노력을 해야 했
다.
조덕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면서도 동조하는 양면의 식을 가지고 김병화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했다. 전통적 가치를 가진 귀족 유럽문명권 취향의 시민, 무산계급 운동가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 고 벌여놓은 노선 차이를 줄이고 화합을 시도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 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어서 아무 해결책이 없었다.
좌익운동을 하다가 비참하게 된 사람의 딸 필순이를 동정하다가 애정을 느끼 면서 가까이 하는 자기를 발견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외도를 되풀이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의문긘 가지는 대목에서 작품이 끝났다. 할아버지와도 다르고, 아버지와도 다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재산은 그대로 이어 가진 사람의 우월감이 없는 사람에 대한 횡포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청산되지 않고 남 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마사키도손과 바진은 작품에서 그린 것과 같은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며, 자기가 겪은 바를 작품화했다. 그래서 가부장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으며 비판 을 하면서도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염상섭은 중인이었다.14) 중인의 신분을 가진 시민이다 중인이기에 그 나름대로 주체성이나 자부심이 있었다. 조의관처럼 양 반 행세를 하지도 않았으며, 조상훈처럼 일거에 외래사조에 경도되지도 않았다. 구시대 가부장의 죽음에 대해서 다른 두 작가보다 더욱 냉철하게 비판하는 자서] 를 보인 것이 그 때문이다. 당연히 물러갈 것이 물러7갔다고 했을 따름이고, 안타 깝게 여기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염상섭은 조덕기와-1- 1- 1그~畢으- 1•죠1- (0 -고 -토 7<1 1二1 ㉦-근- 가졌다. 일본에 유학한 새 시대의 지식 인이고, 좌우익의 사회운동을 들 다 이해하면서 그 절충점을 찾고자 했다. 그러 나 조덕기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그 집안을 이어나가는 위치에 일! 었지만, 염상섭에게는 그런 유산이 없었다. 그런 차이점 때문에 조덕기에게 대해 서도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하므로 김병화를 따로 등장시켰다. 사상적
 
 0 0회 00(1998)에서 염상섭을 중인작가의 하나로 다루었다.
인 입장에서는 조덕기가, 과거와의 단절을 확실하게 한 점에서는 김병화가 새 시대의 주역이라고 하는 이중의 견해를 제시했다.
\/. 마르탱 뒤 가르의『티보가의 사람들(Les Th/bau/t) 
마르탱 뒤 가로의『티보가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아버지 티보 영감은 보수 화된 시민의 전형이다. 재산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으른 것을 자랑 스럽게 여기고 자기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가톨릭 신앙이 돈독해 가 지관을 분명하게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경박하고 퇴폐적인 풍조를 준엄하게 나무랐다 자기 생각은 무엇이든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확신하고 가족 0 마음대 로 지배하는 전제적인 아버지의 전형이다.
시민이 사회를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서자 그렇게까지 타락했다. 귀족과 맞서 싸울 때 지녔던 자유주의자의 기풍을 다 버리고, 귀족의 특징을 온통 물려받았 다. 그러면서 지위를 유지하고 위신을 찾는 데 귀족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귀족의 신분은 국가에서 공인하고 당연히 상속되지만, 시민의 지위는 누가 보장해주지 않아 당대에 얻고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위 유지를 격정해 안달하는 보수주의자는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게 마련이 다. 그 때문에 희생되는 일차적인 피해자가 가족이다. 티보 영감은 아-= 근 긘 0 드 근 보가가 았다. 아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재산을 늘리고 위신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허사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자기가 계획한 대로 강하게 키우려고 엄히 다스렸다.
티보 영감에게는 아들이 들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달랐다. 큰아들 앙트안느(Antoine)는 계승형이어서 아버지가 기대하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실행했다. 작은아들 자크(Jacques)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항거형이었다.
큰아들은 자랑스러운 가문의 명예는 소중하게 여겨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도 위선이나 허세는 버리려고 했다. 아버지가 크게 내세우는 신앙은 받아들이 지 않고, 의사를 직업으로 택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 었다. 재산보다 전문지식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남들과의 관계를 군림에서 봉사로 바꾸었다.
큰아들이 그렇게 달라진 것은 부유한 시민이 기능적인 소시민으로 바뀌는 시 대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금융자산으로 살아가던 시민의 아들0 2`l-소 세 때문에 재산이 줄어들자, 재산보다 능력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직장인이 되어 봉급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이 되는 변화를 이러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닥치 기 전에 앞질러 보여주었다. 그것이 작가가 희망하는 사회안정의 방법이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에게 의지해 살다가, 열 다섯 살 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가출한 적이 있다. 그런 철부지 짓을 해서 가문의 명예 를 손상시켰다고 하는 꾸중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서 더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 다.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가까워질 수 없었다. 양쪽의 생각을 확인해보자.
자크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의 자부심을 조금이라도 만 족 시킬 수 있게 자크가 해주기만 한다면,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크는 어긋난 짓이나 하면서 제 멋대로 놀아 자기 자존심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
다.15)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들은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다. 자존심을 만족시키려면 아들은 자기가 미리 정해놓은 들에 따라서 살아야 했다. 아들이 아들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 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이 자기의 재산과 다름없다는 사고방식이다.
소년 시절에 생각이 미치면, 보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아주 어릴  부터, 형체를 갖추어 발동하는 본능은 무엇이든지 아버지를 상대로 한 싸움을 벌였다. 모든 것을.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무질서, 무례, 게으름 같은 것들을 일! 는 대로 드러냈다. 열등생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나 강요 된 율법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16)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에 택한 일탈행위가 나날이 확대되었다.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해방을 열렬하게 회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 시민이 면서 시민이기를 거부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버리고, 시민이 지배하 는 사회를 뒤집어엎는 길로 나아가는 반역자들이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시민사회의 내부적인 파탄이다. 시민이 사회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바로 나타난 위선과 횡포가 내부의 분열
 
15) 원문은: “N011 qu il füt incapable de d'aimer Jacques: il eüt suffi que le petit Illi procuråt quelque satisfaction d'orgueil, pour éveiller sa tendresse; mais les extravagan ces les écarts de Jacques l'atteignaient toujours au point le plus sensible dans S011 amour-propre (Roger Martin du Gard 1955.• 588)."
16) 원문은: "S'il pense sa Jeunesse, un goüt de vengence lui monte. DOS la prim e enfance, tous ses instincts, mesure Clifils prennent forme, entrent en lutte c℃ntre 1 e pore. Tous. Désordre, ilTespect, paresse, €111'il affie, par réaction. Un cancre et honte ux de I'étre. Mais crest ainsi Clifil s'insurge le mieux contre le code exécré (Roger M artin du Gard, 1955:1177) 
 초래해서 그 일부의 구성원이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길로 나아7갔다. 그 가운 데 단순한 허무주의자도 있고, 무정부주의자도 있고, 공산주의자도 있었다. 작자 는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반역이 정 당하다고 옹호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큰아들 쪽에서 중심을 잡고 작은아들의口  스 0 거리를 두고 다루었다.
작은아들은 허무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공산주의자가 되 어 무산계급의 혁명에 가담할 생각도 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일탈행위를 일삼는 철부지가 무산계급의 투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기 신념대로 살기 위해서 분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 에 반대하는 전단을 독• 불 양국의 군대에 뿌리려고 비행기에 올랐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큰아들은 안정과 행복을 누린 것은 아니다. 큰아들은 군의가 되어 전쟁에 나7갔다가 독가스에 상해 죽었다. 누구에게도 파멸을 가져올 수 있` 는 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시민사회는 진보와 번영을 약속하고 있다는 기대는 무너졌다. 보수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는 논거가 무엇인가 의문이
다.
Ⅵ 초 고P大卜
 
위의 네 작품에 나타난 가부장은 모두 질서와 서열을 존중했다. 사회전체에 서든 자기네 가문에서든 질서가 가치의 으뜸이라고 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는 서열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고 했다. 자기네 가문이 지체를 가리는 서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가문 내부에서는 자기 가 최고의 지위에 있으므로 다른 구성원을 통제하 동요를 막을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자식이나 손자는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하지 않고 일탈하거나 반발하 충돌이 일어났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부장은 거부하고 자손 을 받아들였다. 그 충돌에서 가부장은 패배했다.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키기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 사건을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 구체 화한 것이 네 작품의 공통점인 설정이다. 가부장의 죽음을 통해서 시대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 서로 같다.
네 작품에서 모두 자손에 대한 가부장의 지배를 거부하고, 서열에 의한 질서 를 무너뜨리면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변화가 일어난 시기가 20세기초이 다. 경제사나 정치사의 변화에서는 유럽이 앞서고 동아시아는 뒤떨어지고, 동아 시아 각국에서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만, 가치관의 전환은 동시 대에 함께 일어났다. 그 점을 문제삼는 문학창작에서도 선후의 격차가 인정되지
그러면서 가부장의 성격에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마르텡 뒤 가르가 그 린 가부장은 시민이다. 프랑스에서는 귀족 0 대신하 시민이 주도세력이 되는 변 화를 먼저 겪은 다음, 시민의 사고방식이 과거의 귀족철검 보수화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세 작가의 가부장은 전통적인 지배세력이다. 시민사회로 들 어서기 전에 전통적인 지배세력이 지닌 문제점을 장차 전개될 시민사회의 관점 에서 시비했다.
마진은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취임하던 최고의 지배신분인 신사를 가부장 으로 등장시켰다. 그렇게 해서 중국 전통사회의 종말을 정면에서 그렸다. 시마사 키도손이 내세운 일본의 가부장은 귀족에 속하지 않은 상층농민이다. 귀족에 해 당하는 무사는 시대변화에 적응하는데 상층농민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고자 했던 사정을 다루었다. 염상섭이 문제로 삼은 가부장은 한국의 지배신분인 양반 의 지위를 대가를 지불하고 산 사람이다. 사이비 양반이 새로 획득한 지위에 더 욱 애착을 가지는 지나친 거동을 보여주면서, 돈이 화근이 되어 그런 꼴을 당한 다고 했다.
다른 세 작가는 작품을 진행하면서 가부장의 죽이가느1- -目근- 그렸다. 그 장 면을 길게 늘여 한 시대의 종말이 힘들지만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었 다. 임종을 맞는 자손들은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다 반발의 과정이 끝 나고 자기네가 다음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느끼게 했다. 시마사키도손은 가부장의 죽음이 작품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있었던 과거의 일로 하고, 아들이 그 내막을 찾아 나서게 했다. 반발의 과정은 없고 추모가 앞서게 했다.
 가부장에 대한 자손의 태도에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다고 했다. 마진과 마 르텡 뒤 가르는 형제가 서로 달라 형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하려고 하고 아우는 반발을 누르지 못해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우의 과감한 자세에 0口  하면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점이 대체로 서로 같으면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자 기 나라의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견주어보면, 마르탱 뒤 가르는 보수노선에, 바 진은 진보노선에 섰다. 염상섭은 반발이 우파와 좌파 두 노선으로 나누이진 것 을 보여주면서, 그 들의 일탈을 한꺼번에 넘어서는 조화의 방도를 찾고자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가부장에 대한 반발이 전통적 가치관에서 이탈하 밖에서 전 해진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구체화되므로 유럽에는 없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시마사키도손은 죽고 없는 가부장에 대한 추모를 내세운 것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서구화가 주체성의 상실이라고 염려하는 데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바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서구화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가졌다. 염상섭은 기독교를 앞세운 우파의 서구화와 마르크스주의를 따 르는 좌파의 서구화에 각기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길을 찾기 위해서 서구화가 아닌 대안이 있는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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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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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ing RI]. 1992. The Family Novel, toward a Generic Definition. New York: Peter Lang.
The Death of Patriarchs in East Asian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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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ll Cho
Professor of Korean litera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Three East Asian novels deal with a similar theme, the death of patriarchs:
(A) Simasaki Doson's le (Family, 1912) in Japan,
(B) Ba Jin's Jia (Family, 1931) in China,
(C) Yöm Sangsopöp's Samdae (Three Generations, 1931) in Korea.
By the death of patriarchs, they showed a same historical change from traditional to modern societies. But its specific features are different according to each country's situation and author's way of thinking. I compared them to identify both sides. To know whether results of such study are peculiar to East Asian situation or have more general meaning, the scope of comparition was widen, including a Western novel which deals the same t h eme of the death of patriarch:
(D) Roger Martin du Gard's Les Thibaut (1922-1936) in France
Four novels agree that the death of patriarchs can not stopped or delayed as it is an inevitable process of the historical change from traditional to modem societies, from authoritarian to democratic values.
But the concrete characters of the patriarch are different. (A) the leader of peasants, (B) Chinese gentry who got privileged status through civil examination, (C) one who obtained Korean gentry, the yangban's position by money, (D) the rich bourgeois were regarded as main keepers of traditional society value in each society.
There are two types of successor. Moderate successor regrets the death of patriarch. Revolting successor welcomes it. (A)'s successor is moderate. (B) 's successor is revolting. In (C) and (D) there are both successors moderate and revolting.
Moderate successor in (A) wants to inherit fading Japanese tradition to overcome Western impact. Revolting successor in (B) adopts Western liberalism to be free from the patriarchal despotism. (C) depicts complicated dispute of Western liberalism, communism, and conservatism among various successors. (D) shows a competition between the right way of moderate successor and the left way of revolting succ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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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교수가 만난 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 서울신문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6)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 서울신문

[21세기 한국을 읽는다] 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6)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200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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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옛날 원효는 중국으로 가려다 중도에 돌아왔으되 당대 불교철학의 첨단에 서 있었다.오늘날에도 해외에 유학하지 않고 세계적인 학문을 이룩하는 사람이 있다.그가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선생이다

.“유럽 문명권의 독주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일제히 노력하는데 동아시아도 다른 여러 문명권과 함께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고,한국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나는 내 나름대로 그 임무의 일단을 수행하면서,주위의 다른 사람,이웃나라 학자,다른 문명권 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 중에서)

말복을 앞두고 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 뜨겁던 날,선생의 연구실 바깥에서는 매미 소리가 따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선생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뭔가 혼자만의 담대한 구상에 빠져 있다 불청객을 맞은 듯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지 손수 녹차를 타주시는 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내 자신이 도둑맞은 건 아니었지만,선생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도둑맞은 나는 뭐라 변명 드릴말씀이 없었다.빨리 본론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시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어 보아야겠어요.”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책을 썼어요.이제 교정을 다 봐서 책이 곧 나올 단계입니다.그리고 ‘국문학통사’도 한 번 더 고쳐서 제4판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이 작업은 오래 걸려서 2005년 초에나 나올 예정입니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사를 연구해 오셨는데요.우리의 문학은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문학과 어떤 점에서 구별될 수 있을까요?”

“한국문학사가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점이 뭐가 있느냐.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어요.

첫째,구비서사시의 전통입니다.우리 문학을 보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사시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어느 한 시대에 구비서사시의 풍부한 유산을 가진 나라는 여럿 있지만 이렇게 시대에서 시대로 이어지면서 면면히 새롭게 창조되는 구비서사시를 볼 수 있는 것은 한국문학이 특별한 경우입니다.시대에 따른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죠.

둘째,한국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간에 위치해있습니다.중국이 중심부이고 일본이 주변부라면 한국은 중간부인데 중간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중심부가 발전시킨 공동 문어문학과 주변부에서 일찍부터 발전시킨 자국어 민족문학이 비슷한 비중으로 발전하면서 그 양자가 밀접한 관련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한국문학의 이런 특징은 다른 문명권의 중간부에서도 발견됩니다.산스크리스트어 문명권의 타밀,아랍 문명권의 페르시아,유럽 문명권의 프랑스나 독일 등이 그렇지요.

셋째,한국은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근대문학을 일으켰는데 식민지 경험을 가진 다른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 훌륭한 근대민족 문학을 이룩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앞 시대의 축적의 대가입니다.일본 식민지 통치는 언론과 정치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고 이것이 문학에서는 고도의 암시와 상징,비유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근대문학은 문학적 창조의 방법을 보이면서도 민족이 요망한 것을 깊이 집약하는 양면성을 갖추었습니다.이것은 우리 문학이 가진 한 특성이면서 제3세계 근대문학이 가진 보편적 특징을 잘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중세,근대에 걸쳐 한국문학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전통과 가치를 구비하고 있는 셈이군요.문명권을 중심부,중간부,주변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경우 중국은 공동 문어문학,즉 한문학의 중심부이고 그 규범을 보인 성과가 높은 반면에 중국의 백화문학은 근대에 들어서야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일본은 공동 문어문학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 수준도 별로 높지 못한 데 반해 자국어문학은 일찍 성립된 편입니다.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한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명권의 주변부가 가지는 일반적 특성일 뿐 민족성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못합니다.일찍 자국어문학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유럽 문명권에서 주변부 중의 주변부인 아이슬란드보다 못합니다.중세에는 공동 문어문학을 잘한 중간부,즉 한국이 아주 위세가 높았고,근대에 와서는 주변부였던 탓에 자국어 문학이 일찍 개화한 일본이 조금 나은 형편에 놓여 있는 거지요.그러나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와 중세의 유산을 함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공동 문어문학에 함유된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중간부인 한국의 중요성이 커집니다.유럽처럼 동아시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중세적 보편성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한국이 두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구실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한국문학 연구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주체적,독자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오신 것 같은데요.”

“학문하는 데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조류가 있어요.하나는 서양 학문을 가져와서 우리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토착화하자는 수입학이죠.그런데 이 수입학은 아무리 잘해도 원산지보다 잘 할 수는 없어요.원산지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죠.또 수입학으로 대안을 만들 수는 없는 거죠.

다른 하나는 국학,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자립학이라고 했어요.수입학이 범람하는 와중에 자립을 하자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에 매달리면서 그것의 의의를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설정하고,우리 것이 가지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결여돼 일반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자립학입니다.이러한 자립학으로도 우리 학문은 학문이 크게 나갈 수는 없어요.

수입학의 폐단과 자립학의 폐쇄성을 함께 넘어가는 바람직한 학문의 방법이 필요한데,나는 이것을 창조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창조학이란 뭐냐면,우리 것,우리 민족,우리 유산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제3세계로,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죠.동아시아로 확대한다는 것은 중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제3세계로 확대한다는 것은 근대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유럽문명권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거죠.그렇게 해서 근대를 합리화하는 그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유럽 문명권 중심주의를 세계 전체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것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하고 대안이 되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 같습니다.그런데 학문을 함에 있어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예컨대 영어를 잘 알아야 한다든가,말입니다.”

“국제비교문학회 같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면,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됩니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세계가 다 마찬가집니다.말할 수 있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영문학,혹은 국문학 전공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영어는 빠지지 않게 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할 말도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그것을 외국어로 표현할 줄도 아는,그러니까 양쪽을 갖춘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영문학자나 국문학자가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워요.국문학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비교연구의 관점도 다 갖추고 세상에 통용되는 말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제3세계 국가들도 모두 비슷합니다.그런 공통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경쟁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견해는 만만치 않은데요.복거일씨가 그런 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영어는 일종의 교통어입니다.모국어가 다른 사람끼리 통용하기 위한 말인데,교통어로서의 영어가 갖는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할 말은 점점 더 없어져요.할 말이 있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해서라도 내놓을 수 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말할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선생은 어조가 한결 높아진다.

“지난번에 그런 주장이 횡행하길래 3개월 만에 급한 대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관심이 있어 자료는 모으고 있었지만 내 분야가 아니었기에 바로 쓸 계획은 없었어요.그러나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몇 달 만에 책을 썼고 원고 넘기고 한 달여 만에 책이 나왔어요.그 책의핵심 중 하나는,영어 공용어 국가는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거나,자기 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뿐이라는 것이에요.우리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한국어를 못 쓰게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법으로도 불가능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를 떠드는 것은 사람의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예요.영어를 공용화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까지 부응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그것은 경쟁력도 못키우고 학문을 발전시키지도 못합니다.”

선생은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국문학자 가운데 한 분이고 학문을 하려면 5개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영어 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여간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평생 학문을 학문답게 해온 사람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닐는지. 나는 선생께,선생님도 생활이라는 개념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그렇단다.매년 8월 아무 날에는 제자들과 속리산에함께 오르신단다.이 글을 정리하느라 선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매주 일요일 오후 1시5분쯤이면 도봉산역에 도착해 등산을 하신단다.참으로 놀라운 생활이 아니냐.그 규칙성,그 성실함이라니.

■방교수가 본 국문학자 조동일

옛날에 신림 4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큼직한 가방을 멘 사람이 혼자 쑥 들어오더니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호프 500cc를 한 잔 시켜 마시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그가 바로 조동일 선생이었다.그 무렵 나는 그가 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마냥 큼직한 커리어백을 끌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그는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땅만 보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생각은 하늘에 두고.

●도전과 의지의 삶… 저서 50여권

이번에 조동일 선생과 인터뷰를 치르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녹취 테이프 푸는 일을 맡은 작가 김신우씨 집에 도둑님이 들어 테이프를 잃어버린 것.생각다 못해 선생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어렵게 말씀 드렸더니 쾌히 그러자신다.천재지변 같은 일을 어떻게하겠느냐고.

나는 선생 연구실의 낮은 문턱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높고 낮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었다.

1939년 경상북도 영양 사람으로 예천 출생이다.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다시 입학,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 도전과 의지의 삶을 살아왔다.1982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여 모두 다섯 권으로 낸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쓴 저서가 모두 50여권. 그의 관심은 한국문학에서 출발하여 한국문학으로 끝나되 그 단일 주제는 끊임없이 확장,심화되어 왔다.

●평생 한국학의 세계성 탐구

‘우리 학문의 길’(1993) 등이 보여주듯,그는 한국 지식사회가 주체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길을 고민해 왔으며 나아가 그러면서도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머무르지 않는 학문의 창조성을 고창해 왔다.최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처럼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갈무리하는 저서를 내는 한편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2001) 같은 저서로 사회 일각의 천박한 서양 동화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언어와 학문의 가치 옹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2003-08-22 7면

담론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조동일 을 만나다 - 오마이뉴스

담론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다 - 오마이뉴스:

담론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다
02.07.19

한국 고전문학 연구로 이름 높은 조동일 선생(1939-현재)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대개 내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더 고명하신 분들을 취재하게 마련인 만큼 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해도 다소 성가신 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 인터뷰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 잡지로부터 조동일 선생을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망설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쌓아놓은 업적이 많은 만큼 인터뷰를 준비하는 일도 간단치만은 않았으나 그럭저럭 몇 개 질문을 만들어 며칠 전 오후를 빌어 서울대학교로 찾아갔다.

물음은 즉석에서 만든 것이 아니로되 답은 즉답이다. 그런데도 선생의 말씀은 막힘이 없고 빠르다. 나는 말씀을 이어가는 선생의 얼굴이 연세에 비해 훨씬 젊어보임을 깨닫는다. 내가 만들어간 네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비평계에서는 이른바 동아시아 문학론이라는 것이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는 한국문학을 동아시아문명이라는 공통적 특질 속에서 새롭게 재발견하자는 것으로 서양문학사 중심의 세계문학사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가진 시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담론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m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으로 이어지는 서양문학사상의 비평적 조류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학과 지성사> 등에서 동아시아를 주제로 삼은 인문학, 문학 서적을 잇따라 내고 있고 많은 비평가들이 동아시아문학론 등에 관련하여 활발한 논의를 펴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문학 연구분야에서도 개화기 문학을 새로운 문제인식틀 속에서 재발견하려는 흐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질 면에서 이러한 논의는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1999),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1999),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1999) 등으로 이어지는 조동일 선생님의 연구에 견주어 그 구체성과 쌓은 성과에서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에서 선생님께서 펼치고 계신 동아시아문학론의 내용을 간략히 특징화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앞에서 열거한 선생님의 노작들에 '중세문학의 재인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서 볼 수도 있듯 선생님의 시각은 중세중심적이라거나 지나치게 공시적이라는 비판을 수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황한 질문에 대한 선생의 대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는 담론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담론은 많이 내고 문제 제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이를 실행에 옮겨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는 이는 적습니다……."

본래 대답이란 질문자와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질문자의 질문 자체를 타파하는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조동일 선생의 답은 후자의 것에 가까웠다. 선생의 자부심은 남들이 말로만 한 일을 실제로 행한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어떤 태도와 시각을 밝히는 것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지만 태도와 시각의 표명을 넘어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훨씬 과중한, 평생을 필요로 하는 노동일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실제로는 여전히, 세상은 그런 노력가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선생의 대답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선생의 입을 바라보다 아랫니 가운데 새로 해 넣은 금속쪽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비록 연세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지만 선생은 이미 60세가 넘은 사람이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늙어 육체가 손상되기 시작하면 그때 그 사람은 무엇으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주장할 것인가?

알라딘:동아시아학의 이해 김수미 (지은이)

알라딘: [전자책] 동아시아학의 이해:

[eBook] 동아시아학의 이해 
김수미 (지은이)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2021-05-31 

종이책 페이지수 : 335쪽

책소개

동아시아론을 넘어 '동아시아학'이 자신의 존립을 보증할 수 있는지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한편으로 현실 정치에서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을 마주한 자리에서 '유라시아 공동체'를 호기롭게 주창한 바 있으나,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비교적 적은 수의 국가가 포함될 '동아시아 공동체'라도 먼저 출범할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가?

또한 동아시아뿐만 아닌 아시아 일반과 관련된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어쩌면 동아시아학 논의의 처음과 끝을 장식할 가능성이 많으며, 그보다도 더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 범주 생성의 정치적 문맥이다. 이 책의 모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동아시아 개념의 탄생은 2차 대전 후 미국의 세계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조건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한국에서 다시 촉발된 동아시아론은 그 어떤 안정된 논의의 틀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이를 모색해 보기 위해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의 학자들은 학제적이며 학문융합적인 문제의식 하에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언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이 책을 펴냈다.


조동일 동아시아인이 되자

동아시아인이 되자

동아시아인이 되자기획/특집
조동일 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2016-07-01


조동일 교수 강연 원고와 한문 논문을 연재하며


조동일 교수가 울산에 와서 ‘동아시아인이 되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주최하는 쪽의 정성에 부응하여 강연 원고를 바로 보내주면서 ‘말로만 하면 전달이 어려울까 염려해 글로 써, 일찍 깨달으면 효력이 더 크기 때문에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하고 먼 장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동일 교수의 자신감과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중세 동아시아는 특별히 학문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근대 동아시아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그쪽의 여러 언어를 연마하고 각 문명권의 공동문어를 익혀 포괄적인 학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닦았다.


중세의 우수한 원천과 근대 극복의 치열한 탐구정신으로 유럽 주도 근대 학문의 편중과 차별을 넘어서고자 투쟁한다. 거대이론 ‘생극론’을 마련하여 다음 시대 준비를 착실히 하며 동조자들을 구하고 있다.


강연 원고에 이어 다음 호부터 조동일 교수가 1998년 10월 10일 중국 북경대학에서 개최된 제3차 동아비교문화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 발표한 한문 논문 '東亞文學史上‘華ㆍ夷’與‘詩ㆍ歌’之相關'(동아문학사상 '화.이'와 '시.가'의 상관)을 연재한다. 중세시대 우리 선조들이 늘 해온 한문 글쓰기를 오늘날 우리가 하기 어렵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한문 논문은 미래에서 온 학자가 학문 후속세대를 위해 마련한 이정표이다.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이고 지역 후견인인 우리 독자들은 그 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한문 논문을 보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논문 강독을 7월 6일부터 매주 수요일 3회에 걸쳐 울산저널 사옥에서 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세요. 교재는 <동아시아문명론>, 조동일, 지식산업사) -백태명 명덕초 교사








2023-07-10

박정미 - 조동일, [동아시아문명론>을 읽고

박정미 - 조선조 선비의 세상을 보는 감각 -조동일, <동아시아문명론>을 읽고 조동일 교수의... | Facebook

박정미
  · 
조선조 선비의 세상을 보는 감각
        -조동일, <동아시아문명론>을 읽고


 조동일 교수의 <동아시아 문명론>을 읽다가 뜻하지 않게 조선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양반선비들에 대한 내 오랜 의문이 풀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어둡고 깊은 의문은 국사에 서술된 우리 조상들의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역사적 행태에서 나왔다. 그 의문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근본시각을 결정하는 것이어서 학창시절 국사교과를 공부하기가 괴로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약소국이라지만 사건들의 편린으로만 이해한 우리역사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특히 그 중  조선시대는 제대로 밥맛이었다. 
제 나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일도 없이 큰 나라 중국에 절대적으로 굴종했다. 태조 때부터 임금의 첫번째 과제는 중국의 책봉을 받는 것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집현전 학자들마저 세종이 창제한 자랑스러운 한글을 배척하고 다른 나라의 글자 한문에 끝까지 매달렸다.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내세워 병자호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모자라 나라가 망해갈 때까지 숭명반청을 읊어댔다. 수입한 중국의 신유학을 중국 지식인들보다 더 독실한 믿음으로 모시고 섬겼다.
 이런 껍데기 지식인들이 주역으로 설쳐대는 역사, 그런 매력 없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조선시대의 국제정세와 문화감각과 생활감정을 가지고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근대인의 상식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못할 행동양식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을 인정하고 바라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세계사에서 특출나게 못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잘난 유럽인들도 그랬고, 아랍인들도, 인도인들도 큰 틀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을 인류사 보편의 발전과정 단계에 있는 필연적 산물로 이해하게 되었다.
 조동일교수는 세계역사를 대략 네개의 거대문명권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고대의 반짝이는 지혜가 중세에 들어와 보편화되면서 다수의 집단 또는 민족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다.  
“고대문명에서 이룩한 유산을 내용이나 지역에서 대폭 확대해 참여자는 누구나 대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보편주의 가치관을 이룩한 것이 중세문명의 특징이다. 보편주의 가치관이 공동문어로 표현되고 세계종교로 구현되었다.”
한국과 일본, 월남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지역에서는 공자의 유학이 널리 전해진 5세기 무렵에 중세화가 시작되어 중세문명의 시대에 들어섰다. 
동아시아의 공동문어는 한문(漢文)이고 동아시아아의 세계종교는 유교와 불교이다.
 동아시아문명은 산스크리트어 힌두교-불교문명, 아랍어 이슬람문명, 유럽의 라틴어 기독교문명과 나란히 형성되고 비슷한 변천을 겪었다. 
이러한 문화적지표로 결합된 시대가 세계사의 진정한 중세라고 조교수는 본다. 사회과학에서 상식으로 전해지는 ‘중세 봉건사회’라는 개념설정은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한 채 중세를 관통한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여지가 거의 없어 보편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에서 마련한 유산이 중국의 범위를 벗어나고 다른 여러 민족의 동참으로 보편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게 발전해 동아시아문명이 이루어졌다. 
중국문명이라는 말은 고대문명을 일컬을 때 쓸 수 있지만, 중세문명은 동아시아문명이라고 해야 한다. 국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중세문명의 본질에 배치된다.
외래문화를 멀리하고 민족고유의 문화를 온전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주장은 중세의 힘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한문과 유교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동아시아 각국은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주권을 수호할 수 있었다. 고대의 힘으로는 진일보한 중세의 힘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두개의 소속을 가진다. 하나는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또 하나는 자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중세는 그 두개의 소속감이 상호모순되지 않고 조화롭게 합치되는 시대였다.
한문은 동아시아의 공동문어로서 문명인으로서 반드시 습득해야할 기본이었다. 왜 세종대에 창제된 한글이 한문을 밀쳐내지 못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공동문어와 세계종교를 문명의 지표로 삼는 중세보편주의 세상의 감각을 나는 다른 데서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의 유럽은 지금의 유럽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든 일단 기독교도라면 모든 나라가 그의 조국이었다. 어디로 가나 그가 속한 유일무이한 교회가 있었으며 그는 그 교회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라틴어로 말했는데, 이 라틴어는 모든 교회의 언어이면서, 어느 정도 지체가 있는 유럽인의 언어이기도 했다. ----그(이탈리아 학생으로 도보여행자)는 콘스탄츠 호 근처의 성 갈 수도원으로 가서 문지기에게 인사를 했다. 누구도 그가 영국사람인지 아일랜드사람인지 독일사람인지 또는 이탈리아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그는 수도사들에게 라틴어로 말을 걸었고, 그러면 즉시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 D.H.로렌스 <유럽사이야기> 중에서
 유럽에서도 자국어로 시를 쓰는 것은 근대의 여명이 밝아온 후의 이야기였고 중세의 지식인이라면 라틴어는 기본이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한문으로만 통문했다고 욕하는 것은 토마스아퀴나스가 라틴어로만 글을 썼다고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세의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시대의 문화와 정치와 지식인들을 평가해야 한다.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중국은 중심부, 일본은 주변부이고, 한국과 월남은 중간부를 차지한다. 중심부는 문명권의 공유재산이 많고 사유재산이 적으며, 주변부는 공유재산이 적으며 사유재산이 많다. 중간부는 공유재산과 사유재산이 균등한 비중을 가졌다.
일본이 오래 전부터 자국의 독자적문화를 발전해온 것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문명권 주변부의 고유한 특성이다. 
동아시아에서 과거제를 시행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공용문어인 한문을 사용하는데 가장 뒤쳐졌고 반면에 자국어로 글을 쓰는 데는 가장 앞서간 것일 뿐이다. 대신 그 반작용으로 일본은 동아시아문명권 일반의 심도깊은 철학적 사유를 공유할 수 없었다.
 근대인에게는 부끄러운 책봉체제도 동아시아문명권의 필수적 요소임을 이해한다면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중세에는 다른 여러 문명권에서도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책봉체제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정상적 논의가 가능해진다.
동아시아의 중세에는 중국에 있던 천자(天子)가 한국, 일본, 월남, 유구 등 여러나라의 국왕을 책봉했다.
산스크리트문명권에서는 중국의 천자에 대응한 전륜성왕(轉輪聖王, 차크라바르틴)이 존재했다. 부처의 대리자로 여겨진 전륜성왕은 조공은 요구하지만 각국의 왕에게 정통성을 부여할뿐 나라의 자주성을 침해하지는 않았다.
이슬람문명권에서는 예언자 무하메드의 대리인인 칼리파가 문명권 전체의 천자노릇을 해왔다.
 마찬가지로 중세유럽에서는 예수의 대리자로 인정되는 총대주교가 왕과 황제를 책봉하고 신권을 행사하여 정통성을 부여해왔다.
 책봉은 임명이 아니다. 국왕은 정복, 찬탈, 계승 등의 방식으로 스스로 권력을 장악했다. 국왕이 임명되는 경우는 없다. 임명되는 자는 국왕이 아니다. 국왕은 스스로 국왕이 되어 책봉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
 이렇듯 각 문명권마다 천자와 국왕사이의 정치권력의 배분관계는 조금씩 다르지만 책봉은 통치자가 이미 스스로 얻은 지위를 공인하는 행위였고, 이를 통해 중세문명권의 주권국가로 승인하는 행위였다.
 책봉체제는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는 근본제도였는데 근대가 되자 책봉체제가 무너지고 여러 민족국가로 나누어졌다. 책봉체제하  중세인은 이중의 소속관계를 가졌지만 근대로 들어서자 동아시아라는 공동의 영역은 없어지고 자국인만 남았다.
근대인은 책봉체제가 동아시아문명의 공유 영역이 아니고 불평등한 국제관계였다고 이해한다.
근대 중국은 책봉체제에 포함된 전 영역을 자기네가 지배했다고 여긴다. 근대 일본은 책봉체제에서 일찍 벗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여긴다. 근대 한국은 중국과의 책봉관계를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하지만 책봉은 문명권 전체의 공동문어를 사용하면서 이루어진 국제관계였다. 책봉체제가 무력의 강약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형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례는 당나라 말기와 북송시대 북방민족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또 15세기 명(明)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월남의 여조가 자청하여 책봉을 받은 사례도 특기할 만하다.
  조선은 중세인의 감각으로 이해해야 한다. 중세를 중세 그대로 바로 볼 수 있어야 아직 미완인 근대의 과제를 이해할 수 있고 근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중세인이 근대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나무라는 것은 부당하다.”
조동일교수의 이런 항변을 인정한다면 재조지은을 말하며 명(明)을 숭상한 조선중기 지식인들의 행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시대 민주당정권 고관대작들이 우루루 중국에 몰려가 만절필동(萬折必東)까지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묻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근 들어 586정치인들의 퇴행적 정치를 비판하며 조선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조선을 현대의 선비질, 중세의 잔재로 현실을 어지럽히는 지적미숙아들을 통해 평가해서는 안된다. 조선을 지금 북한에 남아있는 북조선의 행태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도 금물이다. 나쁜 후손들이 조상을 욕되게 하는 전형으로 보인다.
우리가 근대화에 뒤쳐져 나라를 빼앗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복기해야 하지만, 그것이 조선시대에 시대를 초월한 인식수준과 능력치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멈추고 살펴 볼 일이다. 이 또한 쓰잘데기 없는 역사적 망상이기 때문이다.
14 comments
Sejin Pak
중세의 유럽 국가들의 바티칸과의 관계가 책봉이라고 부른다해도 조선의 중국과의 관계처럼 조공을 바치는 것은 아닌 것 아니었나 생각되는데요. 영어로 tributary relation이라고 하는데, 유럽의 중세의 경우, 그런 이야기 들어본적이 없습니다만 제 전문이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Reply11 h
박정미
Sejin Pak 다른 문명권과는 달리 바티칸은 제국의 성질을 가지지 않은 점에서 특이성이 있지요.
즉 교황은 종교의 수장이기만 하고 자기 자신이 황제가 아닌 점에서 칼리파, 차크라바르틴, 천자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국가간 무역에 버금가는 조공무역이 성립될 수 없는 변칙이 있었지요.
조동일교수는 조공을 수탈체제가 아닌 동일문명권의 동질성을 다지는 상징적 교역관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책봉체제의 필수요소로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Reply10 hEdited


김정흠
그때는 중국이 선진문명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미국이 선진문명이고
선진문명을 받아들여서 우리의 문명으로 발전시킨게 한국이죠
Reply6 h
박정미
김정흠 그런 제대로 된 역사적 자긍심을 되살리는게 우리 역사학계의 과제인것같습니다. 말도 안되는 국뽕 말고요.
Reply3 h
김정흠
박정미 당연한 말씀입니다
Reply3 h


Paul Shin
지금 시대의 지적 미숙아들을 어떻게 계몽하거나 권력에서 배제하는 일이 역사적 과제가 되었군요.
Reply6 h
박정미
신평 지금의 심리적 내전상태는 중세와 근대의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Reply3 h


Kim Allen
한자와 책봉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만절필동과 근대화가 늦은 걸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도 중국왕조는 계속 바뀌고, 중시 철학도 바뀌고, 국가들은 중국과 싸웠습니다
Reply3 h
박정미
김정일 우암 송시열은 중세인이었습니다. 만절필동은 중세인의 신앙고백이었다고 이해합니다.
문명권의 중간부가 중심부보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더 깊이 문명의 핵심에빠져들어 헤어나오기 어려운 것도 세계사적 보편성 측면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는 중세인 채로 근대의 힘에 도전을 받았고 그 결과 중심부 중국은 반식민지, 중간부 월남과 조선은 식민지로전락한 반면 주변부 일본은 문화적 짐이 크지 않아 근대제국으로 재빨리 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조금은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흥선대원군과 그 아들을 비롯한 구한말 지배계층의 전혀 핀트를 못잡은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요.
Reply3 h


Hyuk Ch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공감이 있습니다. 제가 가진 틀과는 일부 차이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화(Sinification/중국화) 되었던 것을 부끄러워 하는데 저는 상반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위에서 중세라는 시대로 이해하자고 하는데, 역사라는 틀을 가진 분의 글이므로 동의는 할 수 있으나 저는 달리 사용합니다. 저는 문명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동아시아?의 문명어가 한자였던 것이고, 그래서 한자문명권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습니다. 반도는 2중 문명화 과정을 겪은 것입니다. 한자문명화와 근대 문명화. 한화에서 중국화를 부인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근대문명화 과정에서 서양화와 미국화를 부인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한화는 중세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한화의 혜택은 국가를 조직하는 영감과 방법을 배운데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들은 과거도 그 한 제도가 되겠지요. 루이14세 이전에 서양에 국가가 없었습니다. 왕과 왕실은 있었죠. 왕이 임명하는 관리가 생긴 것입니다. 왕의 침실 담당 관리, 수건 담당 관리...... 한화된 인족은 '조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조정을 운영하는 기초와 방법이 경과 서이며, 방법론이 주례와 같은 '예'였습니다. 당연히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했고, 그 수준을 측정해서 관리로 임용을 했습니다. 그 효용을 아직도 인정해서 '고시'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겠죠. 근대라는 시기도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적 단계나 시대가 두부모 썰듯이 나누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전근대 속에 근대가 자라듯이, 근대 속에 포스트모던이 공존합니다. 미래가 비정상이란 이름으로 숨겨져 있겠지요. 좋은 글로 제가 가진 관점을 가늠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Reply1 h
Hyuk Cho
중국에서 언어 대신에 어언이라고 하는데, 음미해 볼 만 합니다.
Reply55 m
박정미
Hyuk Cho 역시 선배님의 혜안에는 탄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배님과 조동일교수의 논지는 전혀 배치되지 않습니다. 선배님의 탁월한 인문학적 혜안과 역사의식에 언제나 놀랍니다.
다만 조교수는 제도적선진화뿐만 아니라 문명적 가치관의 확립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조교수는 유교 단독이 아니라 유불선이 합체해서 동아시아적인 내면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또한 저는 이 글에서 조교수가 과거를 해석한 것에 국한지어 거론했습니다만 근대 이후 포… See more
Reply25 mEdited


Chee-Kwan Kim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흥미로웠던 대목 중 하나는, 이민족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그 정도는 다르겠습니다만) 한족 문화에 흡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한족의 문화적 성취도는 뛰어났고, 그러한 기반 위에 동아시아의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근대민족국가로서의 정신적 물질적 정체성이 구한말까지도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과 조선의 시차는 상당했습니다.
Reply16 m
박정미
김치관 앞의 다른 댓글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조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그 또한 세계적 보편성으로 해명할 수 있습니다.
중세문명권 주변부는 문명의 짐이 그렇게 무겁지 않아서 독자적사고와 민족문화에 더 빨리 눈을 뜨고 다음의 근대시대로 가볍게 넘어갈 역량을 비축하게 됩니다.
유럽문명권의 영국과 동아시아문명권의 일본을 비교해보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알라딘: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 중세문학의 재인식 3 
조동일 (지은이)지식산업사1999-04-20
===
목차
001. 중세화의 의의에 대한 재인식 002.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의 기본 관계 003. 한문학과 민족어문학 004. 산스크리트문학과 민족어문학 005. 팔리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6. 아랍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7. 그리스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8. 라틴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1. 연구방향 전환을 위한 구상 002. 시조도래건국신화의 중세 인식 003. 대장경 주고 받기 004. 한시가 같고 다른 양상 005. 민족어시의 대응 방식 006. 번역으로 맺어진 관계

알라딘: 대등한 화합 -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조동일 2020

알라딘: 대등한 화합

대등한 화합 -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조동일 (지은이)지식산업사2020-03-01
===
책소개

경색된 한일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문학자 조동일 교수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동아시아문명권의 옛 글과 구비철학에 흩어져 있던 대등론의 유산을 화합의 새 담론으로 펼치는 것이다. 

문학과 철학, 수필과 논증, 여행기와 논설을 넘나드는 대가의 필치는 마침내 고요한 사색의 경지까지 도달한다. 
동아시아 문사철 전통의 화수분을 깊이 천착해 온 저자는 무명론無名論이라는 전대미문의 기획으로 동아시아문명론의 신기원을 이룬다.


목차
첫말 ………5

1
대등한 화합 서설 ………10
평등론에서 대등론으로 ………12
구전 층위의 철학 ………31

2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하여 ………44
일본인과 속 넓게 화합하자 ………66
이순신 이야기 새로 해야 ………90
패권주의와 결별하는 행복 ………99

3
그림에서 만나는 내면 ………110
산수화의 내력과 변천 ………118
경도와 항주 탐구 여행 ………128

4
처참한 시련의 현장 ………136
야율초재를 잊지 말아야 ………161
덕화비를 찾아서 멀리까지 ………182
월남사상사를 거울로 삼아 ………202

5
낮은 자리에서 ………232
이름이 없어야 ………247
부처가 아니어야 ………264

끝말 ………267


출판사 제공

한일 반목의 위기, 조동일 교수가 제안하는 화해의 건배이자 대동의 축제
역설과 기지 가득한 동아시아 전통에서 문명의 심층 다시 기획하다
무명론에 기초한 대등론으로 비로소 완성, 구축된 동아시아문명론의 결정판

경색된 한일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문학자 조동일 교수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동아시아문명권의 옛 글과 구비철학에 흩어져 있던 대등론의 유산을 화합의 새 담론으로 펼치는 것이다. 문학과 철학, 수필과 논증, 여행기와 논설을 넘나드는 대가의 필치는 마침내 고요한 사색의 경지까지 도달한다. 동아시아 문사철 전통의 화수분을 깊이 천착해 온 저자는 무명론無名論이라는 전대미문의 기획으로 동아시아문명론의 신기원을 이룬다.

동아시아 철학의 유산: 대등론

첫머리에서 저자는 차등론, 평등론, 대등론의 정의와 관계를 논한다. 유럽문명권이 주도한 평등론은 차등론을 부정하는 대전환을 이룩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이상론에 머무르기 쉽다. 이에 저자는 이규보, 최한기 등의 글과 유성룡 형 이야기 등 구비철학을 들어 유식有識이 무식無識, 무식이 유식이며, 미천이 존귀, 존귀가 미천인 대등론을 설파한다. 대등론의 기초를 이루는 생극론은 안도 쇼에키安藤昌益에서 보듯 동아시아문명의 철학적 공유재산인바, 동아시아 공동체 사이의 알력 해결과 평등론의 근대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시대 창출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 대등론은 말미에서 유명有名이 무명無名, 무명이 유명인 무명론으로 변주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뛰어 넘는 예술인 앞소리꾼의 상여소리는 낮아야, 이름이 없어야〔無名〕 포용할 수 있다는 저자의 뜻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일본 산수화에서 보는 동아시아 화풍의 혁신

일본과 화합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저자는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본보기로 한일 미술문화론을 전개한다. 동아시아 산중시山中詩 본령의 근대 변용, 유儒?불佛?도가道家의 사유 비교(《동아시아문명론》, 2010)라는 묵직한 주제가 아니라 예술론, 미술문화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특히 이케노 타이가池大雅 작품들을 들어 관념산수화에서 진경산수화로의 혁신이 동아시아철학(이학理學→기학氣學)의 변천과도 맞물린다는 지적은, 동아시아 문사철의 전통을 꿰뚫고 있는 거장의 안목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산수이화山水理畵에서 산수기화山水氣畵, 이원론에서 일원론 그림이라는 사고의 확장은 세계미술사, 철학사, 문학사가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여행기와 논설, 미술 감상의 혼효混淆는 새로운 글쓰기의 대안으로 제시한 옛 글 기언記言(《창조하는 학문의 길》, 2019)의 또 다른 예시라고 하겠다.

동아시아 다시 보기

중국과 베트남은 동아시아의 또 다른 파트너이고, 소수민족과 류쿠琉球 또한 동아시아문명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교토, 항주는 물론, 류쿠, 운남을 찾아가 알려지지 않은 유산까지 아우르며 다시 알린다. 요遼 출신 야율초재의 공생이나 남조南詔의 덕화비는 중국의 대국 모색에 시사하는 바가 크고, 류쿠의 만국진량종萬國津梁鐘은 동아시아문명의 교량을 자처하는 대심大心의 발로이며, 월남사상사는 남북 철학사 설계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동아시아문명의 발전은, 삼국만이 아니라 예부터 그 일원이었으면서도 배제되어 온 약자들의 목소리까지도 존중하는 데에서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다.

동아시아문명론 논의는 20세기 말 아시아적 가치가 회자되면서 서구 학자들(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 《동아시아문명》) 사이에서 시작된 이후 주로 유교 전통에 주목하여 진전되어 왔다. 중국의 뚜웨이밍 교수가 동아시아의 유학 인문주의가 생태적 전환을 모색함으로써 세계문명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문명들의 대화》), 다소 추상적이며, 윤리적 측면에 치우쳐 있다. 삼국의 놀이와 문화로 풀이한 문명론(《이어령의 가위바위보 文明論》)은 흥미롭지만 철학적 원형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유가(정명론正名論)에서 탈피, 동아시아 전통 속 무명유명론無名有名論의 사유를(《동아시아문명론》, 2010) 대등론(생극론)으로 심화시킨 이 책은 독보적이면서도 유연한 문명론의 개시를 알린다. 이제 새 시대 문명론의 돛을 올린다. 그 어느 누구라도 올라타 바람을 가르자. 접기

알라딘: 조동일,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알라딘: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 중세문학의 재인식 1 
조동일 (지은이)지식산업사1999-04-20

목차

  • 001. 연구방향 전환을 위한 구상
    002. 시조도래건국신화의 중세 인식
    003. 대장경 주고 받기
    004. 한시가 같고 다른 양상
    005. 민족어시의 대응 방식
    006. 번역으로 맺어진 관계

===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 중세문학의 재인식 3 
조동일 (지은이)지식산업사1999-04-20

양장본504쪽

목차
001. 중세화의 의의에 대한 재인식 
002.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의 기본 관계
 003. 한문학과 민족어문학 
004. 산스크리트문학과 민족어문학 
005. 팔리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6. 아랍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7. 그리스어문학과 민족어문학 
008. 라틴어문학과 민족어문학





알라딘: 의식 각성의 현장 - 한국인다움의 증거를 찾아가다 조동일

알라딘: 의식 각성의 현장

의식 각성의 현장 - 한국인다움의 증거를 찾아가다 
조동일 (지은이)학고재200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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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 Point : 138 
 9.3 100자평(0)리뷰(3)

책소개

<한국문학통사>등의 한국문학관련 서적과 탈춤에 관한 연구로 한국고유의 문화적 유산들을 체계화했다고 평가받는 조동일 교수의 답사기행문. 지은이가 직접 국내 30여곳의 땅과 바다를 답사하며 직절한 필치로 현장조사와 문헌연구를 연결한 보고문이기도 하다.

책 곳곳에서 한국학 연구에 매진해 온 노교수의 변함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으며, 기존의 많은 기행문과는 다르게 개인의 주관적 감상과 , 학자로서의 안목이 고른 균형을 이루고 있다. 1993년 출간되었던 <우리 학문의 길> 이후 지은이가 줄곧 견지해온 '창조적 한국학' 노선이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인다움'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기행문이라는 장르에서는 어떤 식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관심있는 독자들, 전국 각지에 남아있는 한국인들의 정신사적 유산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집어든다면 꽤나 값진 앎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저자의 말

1장 새벽빛 깨달음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가
- 최치원이 진감 선사를 기린 쌍계사

상생의 화음에 서린 뜨거운 뜻
- 육두품의 문장파 전설이 어우러진 성덕대왕신종

불상읠 세우며 도덕경을 읽은 유학자들
- 문학사의 걸작을 낳은 곳, 경주 감산사터

마음이 트이니 길이 열린다
- 무량수전 오르는 다섯 가지 방법, 부석사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물고기다
- 원효가 혜공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오어사

2장 창조와 발견

타고 남은 역사 모은 일연
- <삼국유사> 저술의 현장, 인각사

나그네 처지로 누대에 오르니 감탄이 많다
- 채홍철, 우탁, 권근이 시문을 남긴 안동 영호루

눈앞의 물결에서 천지만물의 이치로
- 이색이 노래한 우리 땅 우리 바다, 영덕 판어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산
- 김종직과 조식이 찾은 지리산

기행문, 변방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다
- 유의양의 <남해문견록>에 비친 남해

이천만 동포가 생겨나서
- 신재효가 민족의식을 노래한 곳, 고창

제3장 자아 발견의 터전
광대 탈에 나타난 각성의 표정
- 교성오광대 전승의 현장, 고성

시련을 이긴 여인, 운명을 개척하다
- 인파로 뒤덮인 <춘향전>의 고장, 남원

천하로 집을 삼고 백성으로 몸을 삼다
- 전우치의 도술 이야기 전하는 논산 개척리

뱃놀이 하는 전라감사 백성의 우너수로다
- 정약용의 분노와 '합강정가'의 무대, 적성강

슬기로운 기생이 어리석은 양반을 희롱하다
- 제주민들의 항변 담은 <배비장전>, 판덕정

제4장 비늘 잃은 영웅들

홍의장군 곽재우, 어디로 갔나
- 곽재우의 신출귀몰 설화가 전하는 곳, 의령 세간리

나라 구한 장군의 비참한 최후
- 김덕령의 고장에 남은 자취, 광주 충장사

수난의 영웅, 숭앙을 모으다
- 임경업의 전설이 흐르는 충주 달천

몸을 날려 시체가 쌓일 적에
- 임진왜란 첫 전투의 현장, 동래

용맹이 뛰어나도 되풀이된 패배
- 곳곳에 전하는 장수 이야기, 제주

5장 시대를 넘어선 발상

영원한 자유인 김시습, 방외인 문학의 세계를 열다
- <금오신화> 창작의 현장, 경주 남산 용장사

혁명아 허균, 율도국을 상상하다
- <홍길동전>이 씌어진 배경, 서울.강릉.상주

변산 도적과 허생의 국가 경영 방책
- 박지원이 제시한 이상향의 모습, 안성.변산

파격의 글쓰기로 국가의 법도와 맞서다
- 이옥이 그린 저잣거리 풍경, 합천 삼가

최제우가 득도한 뜻을 다시 새기다
- 동학 발상지에서 듣는 칼 노래, 경주 용담정

이 책에 등장하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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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종 소리를 드게 한다고 했다. 불교의 이치를 일러주었다 하고 말 것은 아니다. 보이고 들리는 세계에서는 설사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해도 그 이상의 질서는 온전하다고 하면서 국가적인 단합의 이상을 제시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p27중에...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동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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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문학·국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박사.
계명대학교·영남대학교·한국학대학원·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한국문학통사 제4판 1~6》(2005), 《동아시아문명론》(2010),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1~6》(2016),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2019), 《창조하는 학문의 길》(2019), 《대등한 화합》(2020), 《우리 옛글의 놀라움》(2021), 《국문학의 자각 확대》(2022) 등 저서 다수.
화집으로 《山山水水》(2014), 《老... 더보기
최근작 : <한일 학문의 역전>,<전남문화 찾아가기>,<국문학의 자각 확대> … 총 103종 (모두보기)
조동일(지은이)의 말
의식각성의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는 후손이고자 한다.
책에 묻혀 있지 않고 살아 있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 저변까지 뒤진다.
통설을 거부하는 이해와 평가로 발상의 전환을 이룩한다.
출판사 소개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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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독해기! 새창으로 보기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저 '한국문학통사'의 저자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가 우리 땅 곳곳에 있는 문화재 현장을 찾아 나섰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정년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한국학 연구에 몰두해온 조 교수가 우리 민초들과 참된 지식인들의 숨결이 스며 있는 현장을 답사하고 책을 펴낸 것이다.

그동안 조동일 교수는 명성에 비해 학자용, 전문가용 책은 많이 냈지만 일반인을 위한 책은 거의 내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 책은 문사철에 정통한 조교수가 우리 문화와 사상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현장감을 살려 간추린 것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출간하고 난 후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조 교수는 "문화답사와 관련된 책이 다수 출간됐지만 모두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며 "문화를 육안으로 보지 말고 심안으로 볼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전설에 귀를 기울이며, 문헌에 전하는 내력과 견주고, 현장에 담긴 의문을 자문해 깊이 생각한 후, 본 것과 보지않은 것을 합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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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go 2007-03-1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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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의 의미 새창으로 보기
  기행문은 처음 접한 듯 한데 맞나?       여행을 많이 하시니 얼마든지 좋은 글을 남길 듯 한데 안 쓰는 걸 보면 결국 기행문이란 게 그 나라, 그 고장 자랑이 되니 우리나라에 대한 기행문만 남기는 것도 당연한 듯 싶다.       <삼국유사>와 관련한 일연에 대한 해석은 탁견이다.
파고세운닥나무 2009-05-2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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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면서 말한다는 것 새창으로 보기
이렇게 까지 책을 읽으면서 쓴 소리를 들어보기는 아주 오랜만이다. 독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제목도 한 몫 한다. 바로『의식각성의 현장』이라고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현장을 누비며 삶의 흔적들을 속속들이 찾아 나선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속이 후련해진다. 그동안 손이 닿지 않아 가려운 곳을 구수한 입담으로 치료한다.


이 책은 한국인다움을 찾아나서는 우리 땅 인문학 답사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서이며 동시에 당대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교양서이다. 이로 인해 의식각성에 있어 가속도가 붙는다. 현장을 많이 다닐수록 한국인에 깨달음에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식각성과 여행과는 어떤 묘한 관계일까? 일찍이 니체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여행자의 5등급을 이야기했다. 1등급은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눈먼 자들이다. 2등급은 실제로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3등급은 관찰한 결과에서 그 무엇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4등급은 체험한 것을 자신 속에 가지고 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 5등급은 자신이 관찰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곧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기필코 다시 되살려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여행자의 등급이 높을수록 의식각성도 지적이며 강렬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부조화를 토해낸다. 가령 성덕대왕신종을 보자. 이 종의 아름다움이 아닌 새겨진 명문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 번영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종에 대한 깃든 전설은 사뭇 다르다. 민초들의 삶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이 종을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종을 만들면서 희생당한 딸이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서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임진왜란 때 동래부가 함락되었을 때 선조 실록은 부사 송상현이 죽었다. 첩도 죽었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일본군이 전즉전(戰則戰) 부전즉가도(不戰則假道)-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고 하자 송상현은 전사이(戰死易) 가도난(假道難)- 전사하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지는 어렵다- 고 하면서 필사적으로 항전하다 끝내는 전사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삶의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책의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역사적 현장을 두루 살펴야 한다. 또한 눈 앞에 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눈 앞의 형상의 이면에 가려진 글을 읽어야 한다. 더 나아가 형상에 깃든 옛사람의 숨결(口碑)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부석사에 가고 싶어졌다. 부석사에 있는 무량수전의 부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부처가 비로자니불이 아니고 아미타불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가 오른쪽으로 돌아 앉아 동쪽을 향하고 있다.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석사의 경치가 좋고 나쁨이 한 순간 멀어졌다. 내가 알고 있었던 앎의 허상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원효가 혜능에게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물고기다”라는 깨달음을 경계로 삼을 만하다. 모르면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의식각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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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07-04-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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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 문화일보 munhwa

<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 문화일보 munhwa

<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문화일보
입력 1999-05-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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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학자로 학문적 시야가 넓었던 사람 중의 한명으로 고(故) 동주(東洲)이용희(李用熙)가 꼽힌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자. ‘학문적 시야’란 용어를 구사한 이유는 그가 서울대 강단에 섰던 국제정치학자이자 한국미술사 연구자라는 두 개의 전문영역 때문이 아니다. 동주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대주의 문제를 ‘중세 동북아의 국제질서의 틀’속에서 거시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론을 생전에 갖고 있었다. 물론 가설에 불과한 지론에 불과했다. 이것의 검증을 위해 학제(學際)연구가 필수라고 보고, 대우재단이사장 시절 이를 공모주제로 내걸어 후학들의 연구를 부추긴 것도 그이다. 결국 만족스런 업적을 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것이 80년대의 일이다.

조동일교수의 ‘중세의 재인식’시리즈는 동주식의 문제의식을 포괄하는 학문적 시야가 특징이다. 또 그의 목표인 ‘세계문학의 일반이론 정립’이 허장성세가 아니라 높은 스칼라십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경이롭다. 국문학 연구서에서 사대주의 질서를 포함한 중세의 문화사 전체가 연구대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접근이다. 책을 접하면서 내내 ‘이것이 한 학자의 작업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세부 검증작업과 별도로 이번 그의 저술은 국내 인문학의 한 정점(頂點)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의 작업은 일반인과 상관없는 학계 내부의 업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그간 갑론을박해 온 한자-한글 혼용,사대주의 문제등 현안들에 새로운 통찰을 던진다. 저자는 ‘한반도 고대사회가 한자를 받아들인 것은 민족문학 발전에 역행한 것인가’고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중세에)거대 문명권의 공동언어 수용은 민족언어 발전에 축복이다. 민족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근대주의자들의 단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공동언어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중세의 문턱을 올라서거나 이를 기초로 근대의 국어 역시 발전시킨 사례가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창세서사시를 풍부하게 갖고 있으나 고대 단계에 머문 일본 아이누족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사대주의 문제 조명도 귀기울일 만하다. 제3권 첫장 ‘책봉체제’가 그렇다. “춘원 이광수는 사대주의를 지칭하며 ‘민족 근본정신을 버린 조선민족은 과연 정신생활의 능력이 있는가’고 물었다. 과연 그런가. 이를 위해서는 조선왕조·중국 사이만이 아니라,유럽의 기독교 문명권등에서 사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가 필수적이다. 여러 문명권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용어는 책봉(冊封)체제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예언자의 대리인 칼리파(천자)와 술탄(왕)사이의 관계,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신정(神政)의 대리인 교황과 왕 사이의 관계에서 보듯 책봉은 중세시기의 보편적인 국제 관계이다. 근대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구조이지만,그것은 실은 대등한 입장에서의 일반 외교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

결국 조교수의 작업은 넓은 시야를 담보로 한 구조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그가 ‘근대사의 주변부 문명권에서 근대를 넘어서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는 가능성’을 밝히는 작업이리라. 한가지,그의 이번 저술은 실은 ‘구멍’이 적지 않다. 검증이 필요한 무리한 가설,거친 일반화의 논리등이 적잖이 발견된다. 이런 한계를 본인도 시인한다. 단 구멍에 ‘벽돌과 철근’을 채우는 것은 후학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조교수는 30여권의 저술을 펴낸 인물. 지난 96년 강의 부담을 덜고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대를 떠날 용의가 있다면서 타 연구기관에 공개구직을 선언해 사회적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4.19세대에 해당한다. 성격과 외모는 ‘연구밖에 모르는 학구파 중의 학구파’이다. 생활반경 역시 극도로 단순하다. 취미는 산보가 유일하다. 뿔테 안경 너머 학문적 고집이 읽혀지는 이 연구자의 이번 신간은 그런 학문적 장인정신이 낳은 업적이다. 이번 작업으로 그는 본래 자기 학문목표의 8부 능선까지는 오른 셈이다. <조우석기자>

책봉 관계 … 중국과 한국 (3) - 조동일, 대학지성 In&Out

책봉 관계 … 중국과 한국 (3) - 대학지성 In&Out
책봉 관계 … 중국과 한국 (3)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
국문학 승인 2022.03.06


[조동일 칼럼]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중국은 중심부이고, 한국은 중간부이다. 월남은 한국과 함께 중간부이고, 일본은 주변부이다. 중국은 중심부여서 그 통치자가 천자(天子) 노릇을 하면서 중간부나 주변부의 통치자들을 국왕(國王)이라고 책봉했다. 이런 책봉체제는 중세문명권 어디에나 있었다. 중세인은 보편종교가 무엇이든 천상의 지배자가 지상의 지배자와 한 가닥으로 연결된다고 여기고, 연결의 임무를 대제사장이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천자, 칼리파, 교황 등으로 일컬어지는 대제사장의 종교적 임무는 기본적으로 동일했다. 정치적 실권은 그렇지 않아, 기독교의 천자인 교황에게는 없고, 이슬람의 천자인 칼리파에게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했는데, 유교의 천자는 계속 지녔던 것은 서로 달랐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동아시아 유교문명권의 책봉은 강대국의 정치적 지배로 이해될 수 있다. 한국의 국왕이 중국 천자의 책봉을 받은 것을 오늘날 사람들은 굴욕이라고 여긴다.    
 
중세인은 근대인과 달라, 책봉의 종교적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국왕이 책봉을 받아야 하늘의 도리인 천도(天道)를 지상에 실현하는 공식적인 자격을 가진다고 여겼다. 또한 책봉이 아닌 다른 외교 관계는 없었다. 책봉체제는 문명권의 기본 질서를 이루는 불가결한 구실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잘 유지된 것은 아니다.   

월남은 중국 명나라의 침략군을 괴멸시키는 승리를 거두고, 책봉 관계를 되찾았다. “封帝爲安南王”이라고 <대월사기>(大越史記)에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이 말은 “천자가 월남의 황제를 책봉해 안남왕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안남 즉 월남의 통치자는 나라 안에서 황제라고 일컬어도, 천자의 책봉을 받아 안남왕이라고 공인되어 대외적인 활동을 했다. 

자국의 통치자를 무어라고 하는가는 나라에 따라 달랐으나, 천자의 책봉이 필요한 것은 같았다. 칸(干)이라고 하는 북방 민족의 통치자는 이따금 무력으로 협박해 천자의 책봉을 받아냈다. 장군(將軍, 쇼군)이라고 하는 일본의 통치자도 천자의 책봉을 계속 받다가, 임진왜란 때의 잘못 때문에 거절당해, 일본국왕이라고 행세하지 못하고 국제관계에서 고립되었다. 

한국의 통치자는 아무 파탄 없이 책봉을 계속 받아 책봉체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모범이 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책봉을 하는 쪽이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렇게 하도록 만든 외교적인 노력 덕분이다. 한국은 문인이 하는 외교가 무인의 전투보다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한다고 입증해, 무인의 득세를 막고 수를 줄이는 다른 어디서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인구 비례 군인의 수가 가장 적어 농민은 자기 몫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었다. 관군이 약체인 덕분에 의병이 일어나는 것도 남달랐다.

중국이 문명권의 중심부여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그 반대였다. 하늘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다는 천자이기도 한 중국의 황제가 유교의 법도를 무시하고 지나친 횡포를 자행하는 추태가 이어졌다. 그런 권력을 황후도 나누어 가지고 엽기적인 만행을 저지르곤 했다. 황제나 황후와 가까운 관계를 가진 환관들도 월권을 일삼으면서 횡포를 자행했다. 권신들도 탐욕을 부려 국정 파탄을 일으키고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예사였다. 

유교의 대제사장 노릇을 하는 천자의 나라가 유교의 이상을 심하게 유린하는 자기모순을 보여주었다. 패권주의 전제정치의 결함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노출했다. 유교문명의 이상을 구현하는 책봉체제는 세계에 내놓을 동아시아의 자랑이지만, 그 중심에서 저지른 중국의 배신은 누구나 극력 나무라지 않을 수 없는 추태였다. 둘 사이에 심한 괴리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배신의 추태가 횡포를 자아내 왕조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막판에는 으레 민란이 일어나 전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민란의 주모자들이 황제라고 하는 나라가 난립하다가, 덜 무도한 쪽이 승세를 잡고 다음 왕조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백성은 처참하게 희생되었다. 중국 대륙 그 넓은 땅에 시체가 즐비하게 누운 광경이 자주 재현되었다. 내전 승리자가 권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한국에서는 왕조의 수명이 중국의 배 이상이고, 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어진 이에게 왕위를 넘긴다는 선양(禪讓)의 이상을 근접되게 실현했다. 중국에서 배신하고 손상시킨 유교를 한국에서 살려냈다. 국왕이 법도를 지켜 무리한 짓을 하지 않고, 신하들의 견제나 감시를 받았다. 왕후나 환관의 횡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은 후진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조심해 선진으로 나아갔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조선왕조에서는 국왕이 덕행의 모범을 보일 것을 더욱 철저하게 요구했다. 모든 동정을 기록에 올려 실록의 자료로 삼고, 후대 사가의 평가를 받도록 했다. 국왕이 잘못하면 대간의 규탄을 받고, 초야의 선비들도 상소를 올려 나무랐다. 

중국은 통치자의 권력이 너무 커서 차등이 극대화된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은 통치자와 백성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적고, 민본(民本)의 정치를 한다고 표방했다. 수탈이 심해 살 수 없다는 비판이나 항변이 많은 것은 더 불행했던 실상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대등을 지향하는 의식이 더 깨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통치자의 권력을 극대화해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힘이 커진다고 여기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밖으로 강성하게 보이는 것만큼 안이 멍들어 활력을 잃는다. 통치자가 자세를 낮추어 대등을 지향하면, 누구나 지닌 창조주권을 발현할 수 있어 선진적인 역량이 확대된다.  
 
중국을 나무라려고 무리한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국이 자랑으로 삼는 패권주의는 동서고금 어느 경우에든 같은 성향을 보인다. 밖으로는 분란을 일으키고, 안에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한다.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려고 무리한 짓을 한다. 알아야 한다고 지정한 것은 누구나 알도록 강요하고, 몰라야 한다고 금지한 것은 아무도 모르게 한다. 이것은 인력을 엄청나게 낭비해, 무기력을 자초하는 자충수이다. 그러다가 강자는 스스로 망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 내막을 알아차리면, 피해를 당하던 약자가 반격을 어렵지 않게 시작하고 슬기롭게 성사시킨다. 

선후나 강약은 그대로 지속되지 않고 무리하다가 역전된다. 중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이런 이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실행한다. 감사하다고 여기고, 보답해야 한다.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알라딘: 한국학의 진로 조동일 2014

알라딘: 한국학의 진로

한국학의 진로 
조동일 (지은이)
지식산업사2014-10-29

252쪽

책소개

전통과 혁신이 만나고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통합학문으로서 한국학의 진로를 제시한다. 
학문 사이를 가로막는 인식의 분절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지식인-선비로서, 
저자는 세계 학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한국학을 제시한다.
===

목차

머리말 5

한국학의 전통과 혁신 11

밑에서 시작하는 창조 41

문명 전환기에 해야 할 일 66

지식인과 선비, 두 학문을 하나로 97

대구경북학이 나아갈 길 120

세계에 공헌하는 한류 학문 170

한·일 전통극 비교론 194

Korean Studies in the Global Age 242

====

저자 및 역자소개
조동일 (지은이) 

서울대학교 불문학·국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박사.
계명대학교·영남대학교·한국학대학원·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한국문학통사 제4판 1~6》(2005), 《동아시아문명론》(2010),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1~6》(2016),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2019), 《창조하는 학문의 길》(2019), 《대등한 화합》(2020), 《우리 옛글의 놀라움》(2021), 《국문학의 자각 확대》(2022) 등 저서 다수.
화집으로 《山山水水》(2014), 《老... 더보기

최근작 : <한일 학문의 역전>,<전남문화 찾아가기>,<국문학의 자각 확대> … 총 10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학의 진로》는 수입 용어이자 개념인 ‘통섭’에 기대지 않고 
한국 전통의 ‘통합학문’으로서 한국학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학문의 길》, 《이 땅에서 학문하기》, 《학문론》에 이어 《한국학의 진로》에 이르기까지 한국학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고독한 주제에 매달려 줄기차게 고민하며 그 방안을 만들어온 학자이다.

이 책은 전통과 혁신이 만나고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통합학문으로서 한국학의 진로를 제시한다. 학문 사이를 가로막는 인식의 분절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지식인-선비로서, 저자는 세계 학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한국학을 제시한다.

알라딘: 한국문학강의 조동일 1998

알라딘: 한국문학강의
한국문학강의 
조동일 (지은이)길벗199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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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쪽

목차


1. <총선>
2. 한국문학의 범위와 영역
3. 한국문학사의 전개
4. 한국문학의 특질
5. 한국문학 연구의 경과
6. 이 책의 구성과 내용
7. <구비문학>
8. 설화,민요,무가,판소리,민속극
9. <한문학>
10. 서정시한,서사한시
11. 산문의 양상
12. 개화기의 한문학
13. <고전시가>
14. 상고시가 및 향가
15. 고려가요
16. 악장,시조,가사
17. <고전산문>
18. 국문소설의 형성과 발전
19. 판소리계 소설
20. 가문소설 더보기

알라딘: 한국문학강의 - 개정판 2015 ,조동일,오세영

알라딘: 한국문학강의

한국문학강의 - 개정판 
김대행,박희병,서대석,이혜순,조남현,조동일,오세영 (지은이)길벗2015-01-05초판출간 1994년

전자책 11,200원 

이 도서는 <한국문학강의>의 개정판입니다. 
552쪽

책소개

오랫동안 우리 문학의 입문서 개설서로 사랑받아온 <한국문학강의>의 힘은 바로 '시대별, 분야별로 전 영역을 포괄하는 균형 잡힌 서술'에 있다. 이는 이 책을 함께 지은 국어국문학, 국어교육학 분야의 오랜 권위자이자 원로 교수들이 1994년 초판을 저술할 당시부터 이 책의 특징이자 집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문 고전문학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문학까지 포함해 전 영역을 포괄하고', '이론을 먼저 들이밀기보다는 대표작품들의 소개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흥미를 돋우는' 것 등이 그 구체적인 기준이다.

<한국문학강의> 개정판은 1994년에 초판이 출간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간 해당 분야에서 이루어진 후속 연구 결과들을 보태고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야겠다는 데 공저자들이 뜻을 함께하면서 추진되었다. 또한 이번 개정판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편집 상태를 개선하고 문장을 좀 더 다듬어 독자들의 이해도와 가독성을 높이도록 했다.

목차
개정판 머리말 5

1부 총설 _ 조동일
1. 한국문학의 범위와 영역 10
2. 한국문학사의 전개 14
3. 한국문학의 특질 22
4. 한국문학 연구의 경과 26
5. 이 책의 구성과 내용 30

2부 구비문학 _ 서대석
1. 서론 34
2. 설화 38
3. 민요 71
4. 무가 88
5. 판소리 108
6. 민속극 118
7. 구비문학에 반영된 향유층의 의식세계 127

3부 한문학 _ 이혜순
1. 서론 134
2. 한시의 시대별 전개와 특성 137
3. 산문의 유형별 양상 163
4. 여성 한문학의 세계 190
5. 개화기 한문학 199
6. 결론 206

4부 고전시가 _ 김대행
1. 서론 212
2. 상고시가 217
3. 향가 221
4. 고려가요 230
5. 조선시대 시가 241
6. 결론 278

5부 고전산문 _ 박희병
1. 서론 286
2. 국문소설의 형성과 발전 292
3. 판소리계 소설 312
4. 가문소설 323
5. 소설 이외의 산문문학 333
6. 결론 342

6부 근대시가 _ 오세영
1. 근대시의 출발 350
2. 개화기의 시가 353
3. 1920년대의 시 361
4. 1930년대의 시 375
5. 광복과 한국전쟁 시기 391
6. 4·19혁명과 1960년대 406
7. 권위주의 정치하의 1970, 80년대 411
8. 권위주의 정치의 청산과 1990년대 435
근대시가 작가 소개 465

7부 근대산문 _ 조남현
1. 서론 488
2. 개화기 소설 491
3. 1920, 30년대의 소설 500
4. 광복 이후의 소설 518
5. 희곡 525
6. 비평과 수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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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대행 (지은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숭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저서로 《한국시가 구조 연구》, 《한국시의 전통연구》, 《시조유형론》, 《시가 시학 연구》, 《우리 시의 틀》, 《한국의 고전시가》, 《통일 이후의 문학교육》 등이 있음.
최근작 : <문학교육원론>,<시와 언어문화>,<한국문학강의> … 총 34종 (모두보기)

박희병 (지은이)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문학 연구의 외연을 사상사 연구와 예술사 연구로까지 확장함으로써 통합인문학으로서의 한국학 연구를 꾀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고전인물전연구』,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범애와 평등』,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통합인문학을 위하여』 등이 있다.
최근작 : <능호관 이인상 연보>,<[큰글자도서] 엄마의 마지막 말들 2 >,<[큰글자도서] 엄마의 마지막 말들 1 > … 총 70종 (모두보기)
서대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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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는 담촌(譚村),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원덕국민, 양평중을 거쳐 휘문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입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계명대학·이화여대·서울대 교수, 한국구비문학회 회장,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국문학회 평의원, 진단학회 평의원, 한국고전문학회 평의원, 한국구비문학회 평의원, 한국판소리학회 평의원, 한국무속학회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제21회 출판문화상 저작상(한국일보사), 국민훈장 홍조근정훈장, 제2회 ... 더보기
최근작 : <담촌 생애담>,<구비문학의 세계 (워크북 포함)>,<한국문학강의> … 총 33종 (모두보기)
이혜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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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국문학석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비교문학석사.
중국 대만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국문학박사.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저서로 《고려 전기 한문학사》, 《조선통신사의 문학》, 《조선조 후기 여성 지성사》, 《전통과 수용-한국 고전문학과 해외교류》 등이 있음.
최근작 : <한국문학강의>,<고려를 읽다>,<전통과 수용> … 총 30종 (모두보기)
조남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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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건국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저서로 <일제하의 지식인문학>, <소설원론>, <문학과 정신사적자취>, <한국지식인소설연구>, <한국현대문학의 자계>, <지성의 통풍을 위한 문학>, <한국현대소설연구>, <삶과 문학적 인식>, <한국소설과 갈등>, <우... 더보기
수상 : 2003년 현대불교문학상
최근작 : <6.25 대하소설 연구>,<소설의 본질>,<한국현대소설사 3> … 총 118종 (모두보기)
조동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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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문학·국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박사.
계명대학교·영남대학교·한국학대학원·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한국문학통사 제4판 1~6》(2005), 《동아시아문명론》(2010),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1~6》(2016),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2019), 《창조하는 학문의 길》(2019), 《대등한 화합》(2020), 《우리 옛글의 놀라움》(2021), 《국문학의 자각 확대》(2022) 등 저서 다수.
화집으로 《山山水水》(2014), 《老... 더보기
최근작 : <한일 학문의 역전>,<전남문화 찾아가기>,<국문학의 자각 확대> … 총 103종 (모두보기)
오세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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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장성, 광주, 전북 전주 등지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저서로는 학술서 『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 『20세기 한국 시 연구』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 23권, 시집 『무명연시』 『밤하늘의 바둑판』 『북양항로』 등 27권, 기타 산문집들이 있다.
수상 : 2017년 영랑시문학상
최근작 :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현대선시 11>,<수직의 꿈 (고급장정본)> … 총 122종 (모두보기)


조동일(지은이)의 말

이 책은 한국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입문서이고 개론서다. 지금까지 많이 나온 국문학개론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국문 고전문학만 취급하는 관례를 시정하고 전 영역을 포괄해 균형 잡힌 서술을 한 것이다. 총설을 제대로 갖춘 것도 획기적인 변화다.
개념 논의나 사실 설명을 난삽하고 산만하게 해서 처음부터 흥미를 잃게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아, 여기서는 우선 작품의 이해에 힘쓰면서 쉽고 절실한 논의를 간명하면서도 친절하게 펴기 위해 애쓴다. 더 나아가서 한국문학의 전 영역에 걸쳐 대표적인 작품을 두루 찾아 읽고 깊이 공감을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논의한다. 작품의 상호관련을 통해서 문학사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목표로 삼는다.
대학교재로서 적합한 내용이지만, 다각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고등학교 공부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거나 한국문학에 관해 전반적인 이해를 새롭게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도 충실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대학의 강의교재, 고등학교 참고서, 일반 독서인을 위한 교양서적 사이의 두터운 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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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20년간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한국문학 개설서의 개정판!
한국문학의 큰 흐름을 잡는다

구비문학.한문학.고전시가.고전산문.근대시가.근대산문
고전문학에서 근현대문학까지, 국문문학은 물론 구비문학, 한문학까지, 전 시대, 전 분야를 망라한다!

◆ 《한국문학강의》의 특징
오랫동안 우리 문학의 입문서.개설서로 사랑받아온 《한국문학강의》의 힘은 바로 ‘시대별, 분야별로 전 영역을 포괄하는 균형 잡힌 서술’에 있다. 이는 이 책을 함께 지은 국어국문학, 국어교육학 분야의 오랜 권위자이자 원로 교수들이 1994년 초판을 저술할 당시부터 이 책의 특징이자 집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문 고전문학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문학까지 포함해 전 영역을 포괄하고’, ‘이론을 먼저 들이밀기보다는 대표작품들의 소개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흥미를 돋우는’ 것 등이 그 구체적인 기준이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시대별, 분야별 대표작품의 이해를 중심으로 간명하고 친절하게 내용을 전개하여 이해가 쉽다.
둘째, 작품의 상호 관련을 통해서 문학사의 전개 양상을 조명한다.
셋째, 대학생들을 위한 교양 교재로 주로 읽혀왔지만, 심화학습을 원하는 고등학생이나 각종 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참고도서, 나아가 한국문학 전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으로도 적합하다.

◆ 개정판에서 달라진 점
《한국문학강의》 개정판은 1994년에 초판이 출간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간 해당 분야에서 이루어진 후속 연구 결과들을 보태고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야겠다는 데 공저자들이 뜻을 함께하면서 추진되었다. 또한 이번 개정판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편집 상태를 개선하고 문장을 좀 더 다듬어 독자들의 이해도와 가독성을 높이도록 했다. 접기

평점분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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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2016-04-0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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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과가 아닌 타학과였음에도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좋은 성적 받았습니다. 깔끔하고 내용도 여러 작품을 수록해 놓아 지루하지 않게 잘 되어있었습니다.다른학교 국문과 친구들도 하나쯤 가지고 있었습니다.이건 되팔지 않고 보관하려합니다.나중에 개인적으로 다시 읽어도 좋은 책.  구매
booklv 2015-11-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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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준비생 필독서  구매
jhi9104 2016-03-0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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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교재 였어용 새창으로 보기 구매
교재라서 알라딘에 적립금 주고 샀습니다내용은 전체적으로 괜찮았고 교수님 수업 안 듣고 책만봐도 이해 될 정도 였어요
okjm2047 2020-03-16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