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범의 한국에서의 일본의 신종교 두 책을 이어 읽으면 다음 주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왜 18개 일본계 운동 가운데 한국SGI는 크게 성장했고, 천리교는 살아남았으며, 야마기시회는 소규모 공동체로 남았는가?>입니다.
이 세 운동만 비교하면 한국사회에서 일본 종교·사상이 정착하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모델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세 운동을 함께 놓으면, 왜 같은 ‘일본계 종교운동’인데 한국에서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는지가 잘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SGI는 대중조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 <천리교는 가족과 지역을 통해 세대계승될 수 있는 구조>, <야마기시즘은 소수의 헌신자가 삶 전체를 바꾸어야 성립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각각의 결과를 <성공–중간–실패>로 보는 것보다 <대중운동형–전통계승형–의도적 공동체형>이라는 세 모델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1. 세 운동의 차이를 한눈에 보면
| 항목 | 한국SGI | 천리교 | 야마기시회 |
|---|---|---|---|
| 기본형태 | 도시형 재가 대중종교 | 교회·가족 중심 신종교 | 농업·생활공동체 운동 |
| 신자가 되기 위한 생활변화 | 비교적 작음 | 중간 | 매우 큼 |
| 핵심 조직단위 | 좌담회·지역조직·문화회관 | 교회·포교소·가족 | 실현지 공동생활 |
| 경제생활 | 기존 직업·재산 유지 | 기존 생활 유지 | 무소유·공동경제 지향 |
| 거주방식 | 일반사회 속 생활 | 일반사회 속 생활 | 공동체 거주가 핵심 |
| 포교방식 | 인간관계망을 통한 적극적 확산 | 가족계승+지역포교 | 체험·특강 후 공동체 참가 |
| 한국화 방식 | 매우 적극적 | 한국화와 일본본부 연결의 두 노선 | 농업·생태·공동체 운동으로 번역 |
| 결과 | 대규모 조직 | 중규모 장기존속 | 극소수 공동생활자 |
| 가장 큰 자산 | 조직 확장성 | 130년의 역사와 세대계승 | 강력한 생활실험과 사회적 영향 |
이 차이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2. 한국SGI — <신자가 되어도 기존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SGI의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종교참여와 현대 도시생활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원은 회사원으로, 주부는 주부로, 학생은 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개인재산을 내놓을 필요도 없고 직업을 바꿀 필요도 없으며 특정 지역으로 이주할 필요도 없다.
대신 일상생활 속에 몇 가지 종교행위를 덧붙인다.
기도하고, 좌담회에 참석하고, 다른 회원들과 교류하고, 문화회관에 가고, 가까운 사람에게 신앙을 권한다.
이 구조는 <복제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SGI는 큰 도시를 ‘방면’, 그 아래 지역을 ‘권’으로 세분하고 문화회관을 거점으로 삼았다. 2022년 조사에서는 46개 방면과 146개 권이라는 전국적 조직이 확인된다. 문화회관의 확충과 조직성장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여기서 SGI의 좌담회 방식이 중요하다.
10명이나 20명이 모인 작은 집단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다시 나눌 수 있다. 한 지역에서 성공한 조직형태를 다른 도시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
즉,
<한 명 → 소모임 → 지역조직 → 문화회관 → 더 많은 소모임>
이라는 자기증식 구조가 존재한다.
이것이 야마기시즘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3. SGI는 왜 신앙의 ‘밀도’도 높은가
단순히 조직이 커서만은 아니다.
2022년 한국SGI 회원 조사에서는 회원들이 개신교·천주교·불교 신자와 비교하여 종교집회 참여, 개인적 기원, 교리접촉 등의 빈도가 높았고 종교와 일상생활 사이의 결합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신 시기도 9세 이하와 20~30대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스스로 필요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권유로 종교를 갖게 된 사례가 많았다.
이것은 흥미로운 결합이다.
보통 강한 공동체는 구성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래서 규모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대중종교는 규모는 커도 참여밀도가 낮아질 수 있다.
SGI는 그 중간지점을 찾아냈다.
<일상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앙활동은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체제>다.
그래서 조직 확대와 신자 헌신도를 어느 정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4. 한국SGI의 두 번째 성공요인 — ‘일본 종교’에서 ‘한국의 종교단체’로
한국에서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창가학회는 초기부터 ‘왜색종교’라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SGI는 문화·교육·평화·사회공헌 활동을 강조하면서 한국사회 속 공공적 종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다. 학계에서도 한국SGI의 성장을 <왜색종교라는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면서 진행된 토착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리고 명칭 자체도 중요하다.
오늘날 신자에게 자신이 ‘일본 창가학회 한국지부’의 신자라는 느낌보다는 <한국SGI 회원>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은 탈일본화의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다.
일본과의 역사적·교리적 연결을 완전히 끊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의 종교>
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5. 천리교 — 왜 SGI만큼 커지지는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는가
천리교의 강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시간>이다.
천리교는 1893년 이미 부산에 들어왔다. 한국SGI보다 약 70년 앞선다. 해방 뒤 일본인 포교자들이 떠났음에도 한국인 신자들이 1948년 조직을 재건했다. 1960년대에는 상당히 큰 교세를 형성하기도 했다.
따라서 천리교는 이제 단순히 ‘일본에서 수입된 신종교’라고 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달했다.
실제 천리교 신자 생애사 연구에서는 초대 신자의 신앙이 자녀·손자에게 이어져 <3세, 심지어 4세 신자>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이 천리교의 생존비결이다.
SGI가 <포교하여 확장하는 종교>라면 천리교는 점차
<가족 안에서 물려받는 종교>
가 된 것이다.
6. 그러나 바로 그 오래됨이 천리교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천리교는 일본적 상징과 의례가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반일감정과 ‘왜색종교’라는 낙인이 SGI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2·3세 신자조차 청소년기에 한국사회의 반일정서와 ‘사이비·이단’이라는 시선 때문에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생애사 연구 결과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화 문제를 둘러싸고 교단 자체가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에 천리교는 신앙대상과 신도적 요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두 계열로 분열했다.
한쪽은 일본 신도적 요소를 제거하여 보다 한국화된 천리교를 지향했고, 다른 쪽은 일본 덴리의 교회본부와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SGI가 일본성을 조직적으로 희석하면서 대중화를 추진했다면, 천리교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교단 내부의 정체성 문제로 남았다.
그 결과 대규모 팽창보다는 <전통의 지속>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7. 그래서 천리교는 ‘성장한 종교’보다 ‘뿌리내린 종교’다
이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한국SGI의 질문은
“얼마나 많은 새 회원을 얻을 수 있는가?”
에 가깝다.
천리교의 오늘날 더 중요한 질문은
“할머니·부모의 천리교 신앙을 손자 세대가 계속 믿을 것인가?”
에 가깝다.
천리교를 연구한 이현경도 이미 2013년에 한국 천리교는 더 이상 <수용과 정착>보다 <신앙계승>의 문제를 연구해야 할 단계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천리교는 SGI와 경쟁에서 패배한 종교라기보다 <이민종교가 토착종교로 변해가는 것과 비슷한 단계>에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8. 야마기시즘 — 문제는 ‘믿음’이 아니라 ‘삶 전체’다
야마기시즘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SGI에 들어가려면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없다.
천리교를 믿어도 집을 팔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야마기시즘의 ‘실현지’에 본격 참가한다는 것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는 선택이다.
야마기시 실현지는
- 무소유
- 공동경제
- 공동노동
- 공동생활
- 농업·축산 중심 생산
- 연찬(研鑽)을 통한 합의
- 개인보다 공동체 전체를 우선하는 생활
을 지향한다. 한국신종교사전은 한국 산안마을 역시 개인수입을 배분하지 않고 공동체 법인에 귀속시키는 방식을 유지하며, 현재 공동생활자는 약 20~30명이라고 정리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나온다.
<SGI에서 신자 한 명을 늘리는 것>과
<야마기시에서 공동생활자 한 명을 늘리는 것>
은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9. ‘개종 비용’으로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사회학적으로 아주 단순화하면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한국SGI
신앙 가입비용
→ 낮음~중간
생활변경 요구
→ 낮음
참여빈도
→ 높음
조직 확장성
→ 매우 높음
천리교
가입비용
→ 중간
생활변경 요구
→ 낮음~중간
가족·지역계승
→ 매우 강함
조직 확장성
→ 중간
야마기시
가입비용
→ 매우 높음
생활변경 요구
→ 극도로 높음
공동체 결속
→ 매우 강함
조직 확장성
→ 매우 낮음
따라서 100명의 호감자가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SGI에서는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직업과 가족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회원이 될 수 있다.
천리교 역시 상당수가 기존 생활을 유지한 채 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야마기시의 이상을 철저히 살려면 집·직업·개인경제·가족생활 방식까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100명 가운데 몇 명이나 그런 결정을 하겠는가?
규모가 작은 것은 거의 구조적으로 예정되어 있다.
10. 그런데 야마기시즘을 ‘실패’라고 하면 큰 착각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
야마기시즘의 영향력을 <산안마을 주민 숫자>로 측정하면 안 된다.
한국 야마기시즘은 1960년대 이미 농업운동과 연결되었다. 1965년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를 방문한 안동준은 이를 한국 농촌에 적용할 모델로 보았고, 조한규 등과 연결되면서 협업농장과 자연농업 계열에 영향을 미쳤다. 관련 역사연구에서도 이 계보가 확인된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야마기시 실현지는 1984년 화성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사상은 실현지 주민 숫자보다 훨씬 넓게
<자연농법 → 유기농 → 생태운동 → 공동체운동 → 대안교육>
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야마기시즘은 <교인을 많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퍼뜨린 운동>
이라고 봐야 한다.
11. 세 운동은 사실 서로 다른 것을 ‘생산’한다
이렇게 보면 가장 선명하다.
한국SGI가 생산하는 것
<회원>
한 사람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좌담회를 만들면 새로운 조직단위가 생긴다.
따라서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곧 운동의 성장이다.
천리교가 생산하는 것
<신앙전통>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과 의례와 공동체관계를 전한다.
따라서 3대, 4대까지 이어지는 것이 성공이다.
야마기시즘이 생산하는 것
<대안적 삶의 모델>
공동소유, 생태농업, 연찬, 공동생활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장소를 유지한다.
따라서 주민이 1만 명일 필요가 없다.
수십 명이 실제로 살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운동의 목적 일부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12. 한국의 산업화가 세 운동에 미친 영향도 정반대였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급격히 도시화·산업화되었다.
이 변화는 SGI에는 오히려 유리했다.
익명화된 도시에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필요했고, 좌담회와 지역조직은 <소속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개인의 성공, 가족문제, 질병, 인간관계, 삶의 의미 같은 문제를 신앙과 연결하는 것도 산업화 사회에 잘 맞았다. 한국SGI 회원 조사에서도 종교와 생활의 밀착성이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천리교는 농촌·도시 어디에서도 존속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도시 대중조직화 능력은 SGI만큼 강하지 않았다.
야마기시는 산업화에 사실상 역방향으로 움직였다.
사회가
<도시화 → 개인화 → 임금노동 → 사유재산 → 소비사회>
로 갈 때 야마기시는
<농촌 → 공동체 → 공동노동 → 무소유 → 절제>
를 제안했다.
매우 급진적이다.
그만큼 대중적일 수 없었다.
13. ‘일본성’을 처리한 방법도 세 가지였다
이 점에서도 세 운동은 흥미롭게 갈라진다.
SGI: 일본성을 <한국적 조직 속으로 흡수>
일본 기원은 인정하지만 한국SGI라는 독자적 조직정체성과 사회공헌 이미지를 강화했다.
천리교: 일본성을 둘러싸고 <분열>
한국적 천리교와 일본 본부와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천리교가 공존하게 되었다.
야마기시: 일본성을 <생활철학으로 탈종교화>
야마기시즘을 처음 접하는 한국인이 반드시 ‘일본 종교’라고 인식할 필요가 없다.
자연농법, 무소유, 생태공동체, 공동양계, 연찬이라는 언어로 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야마기시즘이 사람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생명운동과 대안공동체 담론에 스며들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14. 결국 세 운동은 ‘성공의 정의’가 다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한국SGI의 성공은 규모의 성공이다.>
전국적 조직망을 만들어 대규모 회원을 조직했고, ‘일본 종교’라는 사회적 장벽을 상당 부분 넘어섰다. 다만 학술자료에서 말하는 ‘공칭 150만’ 같은 숫자는 교단 측 명목 신자수이므로 실제 적극적 신자 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천리교의 성공은 시간의 성공이다.>
1893년 이후 130년 넘게 존속하면서 일본인 선교사의 종교가 한국인 3·4세가 물려받는 종교로 변했다. 이것은 상당한 토착화다.
<야마기시즘의 성공은 실험의 지속과 사상의 확산이다.>
한국 실현지의 주민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1984년 시작된 산안마을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그 이전부터 자연농업·협동농업·생명운동에 사상적 자극을 주었다.
15. 제가 보기에는 <야마기시>가 오히려 가장 흥미로운 경우다
종교사회학적으로는 SGI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공동체, 생명운동>이라는 문제의식에서는 야마기시즘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야마기시즘의 한국 전파는 단순한
<일본 종교 → 한국 신자>
라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마기시 미요조의 농업·공동체 실험>
↓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
↓
<안동준의 일본 방문>
↓
<조한규 등 한국 농업인들의 수용>
↓
<협업농장·자연농업>
↓
<산안마을>
↓
<한국의 생명·유기농·공동체운동>
이라는 <사상의 번역과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세 운동을 가장 압축해서 표현하면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겠다.
<SGI는 한국인을 회원으로 만들었다.
천리교는 일본에서 온 신앙을 한국인의 가문 전통으로 만들었다.
야마기시즘은 한국인을 많이 야마기시 회원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 온 하나의 삶의 실험을 한국의 농업·생명·공동체 사상으로 번역했다.>
바로 이 세 번째 경로 때문에 야마기시즘은 교세 통계만 보면 가장 작은데, 한국 현대 공동체운동사의 맥락에서 보면 결코 가장 작은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안동준–조한규–야마기시즘–산안마을>의 관계를 추적하면, 일본계 ‘종교’ 연구에서 출발한 문제가 한국 생명운동사의 계보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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