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최재영.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최재영. Show all posts

2025-04-20

한동훈의 보통의하루, 영화 지옥의 묵시록, 세이코 시계, 오에 겐자부로, 박유하


보통의하루, Live

한동훈
57.2K subscriber
=== 
Transcript

되고 있는 건가요 아직 안 나오나 봐 딜레이 있어고 아직 안 나온다
보다.이 화면이 제가 실제 화면인 거죠 예 맞습니다 어.고
라이브 누르셨죠 예 그라이브 놨어요 진행 중입니다 어 진행 중 어 나왔어요 어 왜 여긴 안 나오죠 제가
다시 한번 켜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한동훈입니다 어 나온다 아 나왔어요 왜 여긴 안
나오지 안녕하세요 한동훈입니다 약간의 딜레이가 있구나 예 예 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 어떤 하루 하루셨나요?음
음 저는 정말 안 보통이었 보통인 하루였는데요 여러분 모두 정말 보통의
좋은 하루를 보내셨길 바랍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죠 보면서
할게요 어 많이 들어오셨는데요 어 아 그리고 저희가 유튜브이 채널이
이름이 잘 안 나 안 찾아진다고 해서 어 이름 공모를 받아서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어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어 많이 참여해 주시고요 음 그러면
선물로 뭐 우리 그때 제가 했던 몇 가지 손도장 같은 거 드린다고 하네요
그런 거 누가 그렇게 받고 싶을지 모르겠어요 예 예 저녁 많이 드셨네
아 아직 저녁은 못 먹었고요 오늘
뭐음 어제보다는 조금 덜 밥 아닌가 굉장히 바쁜 하루긴 했는데요 뭐
재밌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들 많이 와 주시기도 했고요 그리고 우리 같이
일하는 스텝들도 아유 그분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뭐라고 어 다 좋은 나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그런 마음만으로 가는 거예서
왜냐면요 제가 정치하면서 그냥 계속 공격받잖아요 그리고 제가 주변에 있다고 해서 뭐 떨어지는 것도 없어요
오히려 위험하기만 하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해 주는게 저는 좀 신기해요 고맙기도 한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근데 그게 다 선이고 자기 시간 쓰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저는 좀 피곤하고 그래도 아이씨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하고 진짜 그렇게 생각합니다 되고 있는 거 맞아요
예 고민형 말씀하시거든요 소개 한번 해 주시면 좋 요거 울산에서 요게
울산에서 제가 그 울산 가서 산 거예요
근데 우리 저 딸내이 어렸을 때 얼굴하고 좀
비슷하네요 오늘 일단 제가 배고파서 먹으면서 하겠는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이 새우깡 되게 좋아했어요
새우깡 좋아했는데 저는 새우깡을 어이 일반
새우깡하고 매운맛 새우깡하고를 이렇게 섞어 가지고 먹거든요 이렇게
넣어서요 이렇게 한
다음에 이게 적절하게 비율로 해서 먹으면
맛있어요
음 음 일단 오늘 제녁은
이겁니다 앞으로
가급적이면음 되는 시간 이동할 때마다 이렇게음 라이브 방송을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저번에 뭐 우리 저 중석 씨하랑 사진 찍다가 해 봤는데 뭐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냥 그래서 해 보려고 해요 음 음 여기는
지금 저희 캠프 사무실에서 나와서 어딘가로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몇 분 좀 만나뵐 분이 있어
가지고요 아 이거 안에 이렇게 안 해 보셨다고요 이거 운근이 괜찮아요 음
식사들은 다 하셨나요 지금 어 지금 7시 40분 저는 오늘
어 아침에 제가 보도 놨는데 서울
시청에서음 오세훈 시장님하고 한 배에서음 둘이서 한 한시간 정도음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고요 끝난 다음에는 11시
반에 오늘 최재영 전 감사원장님하고음 조경태 육선위원이시죠
의원님을 제가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는 발표 기자 회견을
했었고요 그리고 끝난 다음에 뭐 백불 같은 걸
했었고음 그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 뭐 했더라 어 아
가물가물하네요 그고 아 그러고 나서 바로 저기 갔구나 그러고 나서 오늘 발표하는 그 비전 발표에
있잖아요 어 그거를 하는데 사실 제가 항상음 어릴 때부터 버르시긴 한데
이게음 내일 할 일을 오늘 하지 말자 미룰 수 있으면 미루자 이게 제
신조예요 그러다 보니까 오늘 발표인데 사실 뭐 점심 먹을 때 지금까지
준비를 안 했어요 근데 이제 준비해 주신 분들은 너무 잘했죠 근데 대략 저랑 아 이런 말씀을 해 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제가 말로 전달한 거보다 훨씬 더 잘 만들어 놓으셨더라고요 근데 그래
한번은음 구분에 맞춰서 해야 되고 하니까 봐야 되는데 그거를 점심 먹기
직전에 한번 쭉 한번 읽어 봤고요 점 그래서 점심을 차에서 우리
저 우리 동화실장이 사다준 김밥 같은 거를 좀
먹고 어 아싸세가 아싸센터 그게 오늘 장소였는데요
거기에 갔죠 근데 제가 마지막 순서라서 어 끝까지 계속
기다리다가음 하고 왔습니다 근데음 그냥 막했어요.음
뭐 음 1분 많은 분들이 아
아 일분 그거요 사실 저는 그런 마음이 좀 들더라고요 그러니까음 우리 청년분들이라든가 우리 당에서 되게
재밌게 준비해 주신 거 너무 고맙고 좋은데 우리가 경선 처음 시작하는데 기본적으로 이건
개엄으로 시작된 선거잖아요 그리고 우리당 입장에서는 국민한테 조금
죄송한 마음 같은 거 많이 보여 드려야 되는데 아 좀 이거 좀 희화 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처음
했어요 제가 뭐 어제 보도는도 놨는데 옆에 홍준표 시장님 대화해 본 적이 처음이에요 사실 길게 대화해 본 적이
뭐 뭐 그분이 욕은 전 많이 했지만 뭐 대화해 본 건 처음이었는데음
둘이서 그런 얘기 했죠 아 이거 좀 너무 쉬워 보이지 않냐 그냥 담백하게 하지 뭐 이런 대화를 했었어요
그랬는데 뭐 일분 막 맞추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아유 이거는 그냥 진중하게
그냥 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잠깐 했어요 그래서 넘긴 거죠 뭐 뭐 그래도 아주
많이 넘기진 않지 않았나 1분은 30초 정도 했나요 근데 오늘은음
9분이었는데 오늘은 제가 그냥 아 맞추려고 했어요 실제로 저희가 준비했던 어이 페이지에 제가 한두
개는 뺐어요 그 구분 딱 맞추는게 좋겠다는 생각했고 제가 또 마지막이니까 보시는 분들 지루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넘어가면 또 뭐 좀 짜증나시고 그러실 것 같아 가지고 오늘은 그냥 9분
맞췄죠 음 뭐 할 얘기는 뻔하잖아요 제가 좋은 나라 만들고 싶고 잘하겠다
그리고 제가 가면 이길 거다 뭐이 얘기니까음 9분이 아니어도 뭐
5분이어도 사실 되죠
너무 빨리 넘어가다
음 그날 석천옷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날씨가음 너무 안 좋아져서 그 그 장소를 갑자기 잡은 건 우리 박정훈
의원님이 잡으신 거예요 박정훈 의원님하고 배현진 의원님이
송파시잖아요 그래서 거기 좋다고 가자라고 해서 잡은 건데 근데 저는 좀 그냥 아이 그냥가
추워도 갑시다라고 두꺼운 거 있고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박현 님도 그러시고 배현 님도
그러시고 아 오시는 분들은 좀 일찍 와서 기다리는데 이거 감기 걸려 감기 걸리실 거다 이분들도 다 이제 자주
오셔야 될 텐데 그런 얘기 들으니까 아이고 뭐 그 말이 맞더라고요 아쉽지만
취소했는데요 이미 석촌수에 이미 벚꽃은 진 거 같아요 언제 한번 가죠
뭐 음 요즘에 잘 안 먹어 가지고 저희 이거 자주 먹는데요
요즘에 한 일주일 동안 안 먹었어요 근데 간만에 먹으니까
맛있네요 섞어 먹으면 괜찮아요
응 시기 음
이거 쉽게 얘기하면 제가 약간 좀 너무 오다같이 보이긴 하는데 음 제가 오래된 물건
좋아한다는 말씀 한번 드린 적 있죠 음 오래된 시계를 좀 좋아해요
이거는 세이코 시계인데 세이코에 터틀이라고들 하죠 거북기처럼 생겼다고
업데드해서 근데 그냥 터틀이 아니라 캡틴 윌라드라고 하는 별명이 있는
모델이에요 이게 어 어떤 시계냐면음
이거는 73년 저랑 나이가 같죠 73년음 월남전 당시에 미군 PX에서
팔던 그런 시기예요 근데 제가이 이걸 되게 좋아해요.음 왜
좋아하냐면 여러분들 또래에서 못 보셨을지 모르지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요 아포칼립스 나우 그 우리말 원제가 뭐냐면 지옥의
묵시록
이라는 영화입니다 
음 되게 긴데 아주 재밌습니다 음 저는 여러 번 봤어요 프란시스 코플라의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뭐 취향이니까 뭐 취향 존중하겠습니다 
그런데음 그 영화를 그냥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어 마틴이라는 배우 아세요 찰리신이란 배우는 좀 아시는 분들
많죠 찰리신의 아버지가 마틴 신이에요 마틴 씨이음 최근에는 그 뭐 미국 그
대통령 나오는 영화 그 시리즈에 나와왔던 뿐이죠 나이 많았 지금
나이가 많겠죠 그런데 그 마틴이 말론 브란도 어를 대령 옆으로 나왔는데 미친
대령이거든요 그 월남전에서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영화예요 근데
마틴씨는음 마틴이 캡틴 윌라드라고 나와요 그 캡틴 윌라드가 마틴이 그 영화에서 찾던 시계가이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이 줄 어 이게 그래서이 시계가 캡틴 윌라드라고 해요 근데 이거는 어 그
당시에 했던 걸 제가음 2002 같은 데서 구한 건데요 이거 이걸 좋아해요
이렇게 깨끗한 모델이 잘 안 나오는데 그래도 잘 가고음 뭐이 자체를 그 영화들 좋아하게 하고
좋아해요 

그래서 어 그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영어 시계가
두 개가 나와요 하나는 마틴 그 윌라드 대위가 찾던이 모델 세이코의
어 터틀이라는 모델이에요 또 하나는 말론 브란더가 차고 있는
모델인데요 그거는 어떤 거냐면 롤렉스인데 롤렉스의 GNT 마스터라는
어 모델인데 거기서요 베젤이라고 하잖아요 요걸 떼어낸 모델이에요.


뭐 영화에서도 시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어 좀 관심을 갖고 있는 어
그런 모델이죠 

근데 그 영화가이 이런 거예요 어 월남전 후반부쯤에 어 대단한 전쟁 영웅이었던 말론 블란더 커크 대령이 사라져요 숲 정글 속으로 거기서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 둔거예요 
근데 그게 그 문제가 되고 하니까 어 미국에서음 유능한 장교지만 좀 문제가 많은 어 마틴 윌라드
대위를 팀으로 꾸려서 보내서 그 말론 블란도 쿼크 대령을 죽이러 보내는 거예요 
결국은 뭐 여러분들이 기니까 안 보실 것 같으니까 스포일러를 말씀드리면 결국 죽입니다 그런데
죽이는 걸 알고 봐도 재밌습니다 
어 그런 그 어 그 영화인데요 어 그 그 과정에서 이제 저는 시계를 이런 빈티 시계 좋아하니까 더 좋아하게 됐죠.
음 음 이거 들어 이거 이거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건 아실지 모르겠어요 거기 해변에서 어 원래 마을을
폭격하는 장면이 있어요 어 근데 그 장면에서 헬기를 타고
헬기에서 근데 이건 약간 반전 영화 그 전쟁에 반대하는 영화인데요 그러니까 비판적으로 나오는 거죠
그 헬기에서 음악을 틀어요 그 네이팜탄을
쏘는 헬기에서 아주 그 크게 그 주민들의 들리게요 그게 와그너의
발큐의 말타기에 나오는 영화 그 음악인데요 되게 유명한 장면
빠빠 뭐 이런 거예요 어 굉장히 유명한 장면이죠 어 그 시간 되시면
그거 한번 보셔도 저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뭐음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점도
많은데 저는 일단 영화는 재밌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 생각해야할 점도 많지만 어 재밌는
영화입니다 너무 쓸데없치 말도 듣겠나 그러겠네요 민트 초코.음
저는 민트 초코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음 근데
뭐음 근데 있으면 또 목말은 먹는데요 뭐 제가 근데 그런 면에서 취향에서
좀 둥글둥글한 편이어서 뭐 절대 이건 아니다 그런 건 잘 없어요 어릴 때는
절대 안 먹었는데 지금 뭐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 근데 굳이 찾아먹는다면 저는음 안 먹을 것 같은데요
굳이 찾아먹는다면 저는음 쿠앤크 뭐 이런 거 오늘 먹을 것 같아요 실어하시는 분수
음 주스 맛있어 토마토 주스
난 굳이 그거를 왜 돈 내고 먹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달달한 거 맞는 거
맞는데 기타 치는 모습이 제일 궁금하다고 아 근데 음
저는 오해하지 마셔야 될게 기타 친지 오래 됐는데 기타를 잘 못 쳐요 음
기타를 좋아하죠 그리고 역시 오래된 거 좋아하는 병이 발동해서 오래된 기타를 좋아해요 그것도 비싸거든요
우리 우리 저 제 천은 그게 아마 비싼 기타인지
모를 거예요 옛날 거에서 막 막 저 까져 있고
그런 건데 음 그런 거 아면 뭐 난리날 겁니다 근데 그렇게 기다를
넷플릭스 같은 것도 켜 놓고 이렇게 그냥
치는 치는 그냥 별로 제가 좀 느긋한 편이어서 말은
빠르지만 뭐 꼭 기타를 잘 쳐야 된다는 생각이 잘 없어요 뭐꼭 발전해야 마인가요 뭐 그런다고 내가
잘 잡봤지 얼마나 잘 치겠어요 근데음 그렇게 그냥 TV 보면서 이렇게 둥가
둥과 누가 이렇게 하는 걸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짜 발전이 없는 스타일이죠
옛날에는 이거 하기 전에는 트럼펫음 뭐 이런 플루 이런 거 좋아해
가지고 한 10년 전에는 아저씨들이 하는 그런 그 콤보 밴드를 이렇게
결성해서 한 적이 있어요 모르는 사람끼리 하잖아요 근데 역시 아저씨들의 문제는 그 한 두 세 번
하다 말았는데 사람들이 시간을 안 지켜요 시간은 안 지키고 다들
그러니까 어 그런 재즈 밴드나 이런 데서 트럼페 불고 이런 거를 앞다시라고 하거든요 뭐냐면 좀 그
솔로하고 앞해쓰는 거 이런 거잖아 이런 사람들은 많은데 그런 콤보패들 하다 보면 찾기 어려운게 드러머
베이스 이런 분들이에요 근데 그런 분들은 이제 되게 막 이쁨 받죠 그리고 그 트럼패지나 이런 거는 잘
못 풀어도 그냥 그래요 근데 오히려 드럼이나 베이스는 그이
리듬을 정확하게 탁탁 맞춰줘 줘야 되거든요 그래야지 다 같이 모두가 행복해요 근데 그런 분들은 이제 많지
않아서 여기도 뛰고 저기도 뛰고 하죠 그래 그런데 이제 서로 직장이다
보니까 한두 번 약속을 못 마치면 뭐 흐지부지
되고 그러죠 그러니까 저도 한두 번 그런다에 말았는데 그다음부터는 뭐 마음을 비우고 그냥 혼자 놀았죠 근데
요새는 트럼프에서는 안 불고 기타는 뭐 집에서 가끔 칩니다 근데 뭐
발전은 전혀 없어요 만약에 SNL에서
출연 의사가 있냐고 연락이 왔어 출연 뭐
뭐라도 제가 어서 어서 그러지 않았나요 이번 선거를 위해서 양제물이라도 먹겠다고
계신 어기에 뭐 있고 계신지음
그냥 반팔에다가 좀 벙벙한 청바지 같은 거
그러니까 제가 원래 반바지를 집에서 잘 안 입는 우리 이제 고양이 애들이
있는데 얘들이 좀 가끔 막 그 발톱을 제가 자주는 안 깎아 줘서 지들이
좋다고 하는데 막 상처가 가 나요 이렇게 좋다고 이렇게 다리를 잡아요 그
청바지를 입고 있는 편이죠
음 해봤죠 근데 음 당근도 좀 하는 했는데
저는음 중고 기타나 중고 앰프 같은 거 거래를 많이 했어요 율이라고
있어요 뮬 그게 그이 악기 주고 하는 중고 악기 서로
주고하는 그런 사이트거든요 되게 유명해 그러니까
뮤에서 저 같이 이렇게 막 물건 사고 파면서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뮤저씨라고 해요 음 저도 밀져서 많이 사고 팔았어요 근데 좀 얼굴이 알려진 다음부터는 만났는데
막 알아보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알아보기만 하는데 막 내고를 너무 심하게 요구해서 아이씨 나가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막 반을 깎아
달라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사실 그래서 지금은 나중에 제가이 일이 다 끝나면 다시 민저치 생활로
돌아갈까 생각 중입니다 아

2025-04-01

나는 윤 대통령을 거부한다! [박현 칼럼]

나는 윤 대통령을 거부한다! [박현 칼럼]

나는 윤 대통령을 거부한다! [박현 칼럼]
박현기자수정 2025-03-26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파면’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적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대응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임기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난 걸로 볼 때 거의 습관성에 가깝다. 그래서 개선의 여지는 전혀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크게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든다. 둘째, 문제가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셋째, 문제제기한 당사자를 공격하고 책임을 떠넘긴다. 넷째, 다른 사람의 조언은 듣지 않는다. 다섯째, 법적 소송이나 화풀이를 한다.


너무나 자주 반복된 패턴이라 더 설명하지 않아도 대다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리라 본다. 몇가지 사례만 들어보겠다. 우선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이다. 윤 대통령 주장처럼 당시 비속어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니라 국회라면, 우리나라 의원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다. 문화방송(MBC)이 한미동맹을 위협하려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몇달 뒤 문화방송 기자들을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다. 채상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엔 이른바 ‘VIP 격노설’이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이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사건 처리에 역정을 냈다는 증언들이 나왔지만,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되레 국방부는 박 단장을 항명죄로 징계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해선 명품백 수수, 대통령실 ‘김 여사 라인’, 그리고 국민의힘 공천개입 의혹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두루뭉실하게 사과한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품백 문제를 제기한 최재영 목사는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김 여사 문제 정리를 요구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나중에 ‘체포 명단’에 포함됐다.

12·3 내란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뻔뻔하면서도 능란하게 대응해왔다. 그는 헌법재판소 변론 내내 고의적인 거짓말로 일관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군의 국회·선관위 투입이 ‘계몽용’이라는 궤변을 늘어놨고,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에 대해 ‘달 그림자 쫓아가는 느낌’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는 야당·노동단체 등 반국가세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내란·탄핵 공작이라고 덮어씌웠다. 너무나도 태연하고 거짓말들을 그럴싸하게 해서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은 깜박 속아넘어갈 수준이다. 가히 ‘기만의 대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극우 유튜브 애독으로 생긴 듯한 확증편향과 음모론적 사고,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피해망상 증상까지 일부 보인다. 다만, 그가 아직 쓰지 않은 카드가 하나 남아있다.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화풀이다. 구치소에 있었거나 석방 이후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만에 하나 그가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복수 혈전’이 시작될 것이다. 구치소를 나오던 날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행동은 섬뜩했다. 그가 최후진술에서 어떤 약속을 했든 믿기 어렵다. 그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사람의 성격에는 ‘어둠의 3요소’가 있다고 한다. 심리학에 나오는 개념으로, 마키아벨리즘·나르시시즘·사이코패스 성향을 말한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으로, 거짓말·음모·타인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 등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나르시시즘은 오만·자아도취 등으로 나타난다. 사이코패스 성향은 공감 능력의 결여와 충동·무분별함·조작·공격성 등의 모습으로 발현된다. 분노 감정도 사이코패스 성향 사람에게서 높게 나타난다. 브라이언 클라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권력의 심리학’에서 “대부분 사람은 이런 특징이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씩만 가지고 있다. 한 사람에게 세 가지 요소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응축돼 있을 때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라면 사회가 대혼란에 빠진다. 대한민국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는 더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된다. 거짓 세력의 겁박에 굴복해서도 안된다. 혹여나 절차를 트집 잡으려는 법 기술자들의 요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국민을 믿고, 오직 진실과 정의에 입각해 신속히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헌재는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정치적 결과물인 현행 ‘87년 헌법 체제’에서 헌정질서 수호의 최종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 헌재가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생명이 끝날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 행위이기 때문이다.
광고

지금 대한민국은 독재 시대로의 퇴보냐,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의 전진이냐 기로에 섰다.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대통령 복귀를 단호히 거부한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관련기사

2025-02-07

북한교회를 가다㉚ 통일교(상) <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 < 통일문화 < 기사본문 - 통일뉴스

북한교회를 가다&#12890; 통일교(상) <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 < 통일문화 < 기사본문 - 통일뉴스

북한교회를 가다㉚ 통일교(상)
<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70회)
기자명 최재영
입력 2016.08.08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65회부터는 남측교회와 해외교회가 주도해 북측 영토에 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건축사업이 중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자 한다. 이중에는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 내에 마련될 30평 규모의 ‘병원교회’와 평양 대동강변 IT단지에 설립될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예장 합동측의 ‘평양장대현교회’ 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추진 중인 미국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주도로 지어질 ‘평양국제외국인교회’도 다룰 것이며 평양 조선영화촬영소 산속에 지어진 ‘형제산교회당’과 거기 딸린 목사관을 방문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며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통일교’가 평양보통강호텔 앞에 설립한 ‘국제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방문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필자 주




‘통일교’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간판을 바꾸다

필자는 통일교가 북에 진출 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며 포교와 선교를 하는지 직접 통일교 관련기관을 참관하며 알아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우선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기성 종교들로부터 줄곧 이단종교로 비판받아온 통일교는 그 공식명칭의 변천사도 굴곡이 많았다. 통일교가 태동된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공식명칭을 변경해 왔는지, 그것을 인지해야 북측에 세워진 통일교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어 우선 명칭 연혁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954년 문선명 총재에 의해 창설된 통일교는 교단명칭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출범해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1996년 7-8월에 들어서 문 총재가 미국 워싱톤 D.C에서 ‘세계평화가정연합’을 창설했는데 그 이듬해인 1997년 4월 8일 기존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와 ‘세계평화가정연합’을 하나로 통합해 그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으로 바꾸고 12년간 공식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 후 2009년 7월 17일부터는 공식적으로 ‘통일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다가 2013년 1월 7일 문 총재 사후 그의 부인 한학자 총재가 ‘통일교’라는 공식명칭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합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으로 또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서 국내외 모든 통일교 산하의 공식교회들과 교단 간판들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ㅇㅇ교회’ 혹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ㅇㅇ본부’로 교체되어 2016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명칭이 변경될 때마다 북측에 있는 통일교 기관도 동일하게 변경되었다.

이처럼 통일교가 교단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꾼 이유는 사회적 의미의 건전한 ‘참된 가정’이 아니라 설립자 문선명 총재와 관계성이 있는 가정을 모토로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통일교의 독특한 합동결혼식도 이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것이며 ‘통일교’란 옛 이름 대신 현재는 ‘가정교회’라는 간판으로 전부 바꿔 달은 것이다. 필자의 이번 방북기에는 북 전역에 500개 정도로 흩어져 있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소속의 공식교회인 ‘가정교회(처소교회)’의 명칭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 산하의 가정연합교회는 그냥 ‘통일교 교회’라고 지칭할 것이다.
▲ 통일교 교회가 입주한 ‘세계평화센터’의 웅장한 모습. 실제로 평화센터는 종교적 목적으로 건축됐다. [사진제공 - 최재영]


▲ 북 영토 내에 설립된 통일교 제1호 교회인 ‘평양가정연합교회’ 예배당 내부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와의 첫 만남 장면(1991.11.30.-12.7). [사진제공 - 최재영]


▲ 통일교 문선명 총재 내외와 기념 촬영하는 김일성 주석(1991.11.30.-12.7).[사진제공 - 최재영]


북에 진출한 통일교 포교현장을 가다

필자가 방북 중에 관료들을 통해 우연하게 들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북측에서는 통일교라는 종교를 진짜 정통 기독교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정통 기독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북측 인민들이나 관리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이후 북이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통일교 측에서 보건, 복지, 식량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통일교가 여러 가지 대북사업을 통해 북 경제에 큰 기여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통일교를 ‘참된 기독교’, ‘고마운 기독교’,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독교’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문선명 총재의 뜻에 따라 통일교가 운영하는 ‘평화자동차’ 회사마저 북측에 양도하는 바람에 통일교에 대해 더욱 호감도를 가지고 있으며 차후에는 문 총재의 유지에 따라 ‘보통강호텔’마저 북측에 양도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어 그 일이 성사되면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통일교가 북에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잘 알려진 대로 지금부터 25년 전인 지난 1991년 11-12월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첫 만남 이후 적극적으로 기업과 종교부분의 사업들이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결과 북측 당국도 통일교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에서의 각종 배려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필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북측과 통일교가 공생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기까지 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통일교가 북에서 운영하는 기업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종교기관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통일교가 직영 혹은 간접경영(합작경영) 등의 형식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이라고 해도 그 최종 목적이 결국은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또한 통일교의 대북기업들도 통일교 전체의 근간이 되는 문선명 총재의 ‘원리강론’을 통해 실현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에 있는 것이다. 북에서 운영되는 통일교 기업들은 결국 통일교 교세확장과 포교를 위한 지원세력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궁극적 최종목적은 북 인민들에게 ‘원리강론’ 교리를 가르쳐 신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 기업들과 종교를 결코 분리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북에서는 이미 통일교 포교의 전초기지가 굳건히 세워져 있는데 그 첫째가 바로 평양에 세워진 통일교 공식교회당인 ‘평양 가정연합교회’이다. 그뿐 아니라 그 예배당이 입주해 있는 초현대식 빌딩인 ‘평양세계평화센터(이하 평화센터)’가 있고 또한 평안북도 정주에 ‘문선명 총재 생가 코스’와 ‘세계평화공원’ 등이 있다. 이 전초기지들은 이미 북 영토 내에서 포교활동을 위한 중추적인 베이스 역할을 왕성하게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알려진 대로 평양 한복판에 세워진 평화센터는 그 규모가 엄청나며 준공식과 더불어 그 건물 3층에 입주한 통일교의 공식교회당이 현판식을 마치고 운영 중에 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문 총재 생가와 인근에 조성중인 ‘정주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 곳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우선 북에서 활동하는 통일교 종교기관들을 다룬 후에 통일교 관련 단체와 기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직접 방문한 곳들은 통일교가 직영하는 대표적인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과 1급호텔인 ‘안산관호텔’과 호텔부설 고급식당인 ‘안산관’ 그리고 남포의 ‘평화자동차공장’, 평양시내의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주유소’ 등이며 이 기업들이 현재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비록 통일교가 국내외 기성교회들로부터 이단종교로 비판받는 상황이지만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남북의 평화통일 조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될 경우에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올바로 평가할 것이다.
▲ 통일교 소유의 ‘보통강호텔’ 앞에서 바라본 ‘세계평화센터’ 후문 입구. [사진제공 - 최재영]


▲ 5. ‘보통강호텔’ 진입로에서 바라본 ‘세계평화센터’ 건물의 좌측 모습. 멀리 류경호텔이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 통일교 소유의 안산관 식당이 자리잡은 호수에서 ‘세계평화센터’와 ‘보통강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필자. 사진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통일교 소유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1. 북 포교의 전초기지, ‘평양세계평화센터’

통일교라는 조직은 설립자인 문선명 총재 내외가 어떤 목적을 두고 지시를 내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성사시키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특히 북 체제는 기본적으로 그 특성상 남한교회나 서방세계 교회들이 주도해서 교회를 지으려고 할 경우 그 동안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가 요구하는 부분들은 북측이 거의 다 수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돈과 권력과 유능한 인적자원들을 동원한 통일교의 협상 능력은 결국 뜻을 이루는 것을 결과를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다. 통일교는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을 확보하고, 인근에 고급 펜션 식의 안산관호텔과 안산관 식당 그리고 아름다운 호수를 기고 있는 엄청난 인근 부지를 확보해 사용 중에 있을 뿐 아니라 보통강호텔 바로 코앞에 통일교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평양세계평화센터(이하 평화센터)’를 10년에 걸쳐 건설한 것이다.

통일교 산하 ‘평화그룹’은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2007년 8월 5일, 행정구역상으로 ‘평양시 평촌구역 안산동’ 9,075평 부지에 건평 4659㎡(1,409평), 연건평 9062㎡(2,741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총 6층 규모의 평화센터를 준공했다. 1층에는 회의장과 연회장 겸용의 다목적 홀을 갖췄고 3층에는 대규모 통일교 예배당이 입주해 있다. 그 밖에도 강의실과 회의실, 숙박시설을 골고루 갖춘 복합문화 컨벤션센터의 형식을 띤 건물이지만, 결국 평화센터라는 이름의 통일교 교회당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준공식 행사를 기해 통일교 본부 측에서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평양 가정연합교회를 봉헌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다.

평화센터가 설립된 구체적인 과정을 보면 통일교 측이 북측의 ‘아태평화위원회’에 최초로 건축을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 후 1997년 7월에 착공을 시작해 10년만인 2007년 8월에 완공했다. 그러나 착공 이후에는 뜻하지 않게 김일성 주석 조문파동 여파와 남북관계의 경색,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사가 10년간 지연된 것이다. 나는 “남측의 건축기술로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인데 길게 걸려봐야 1년 내지 2년이면 완공할 텐데 무슨 이유로 10년이나 걸렸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당시 평화센터 박상권 이사장이 준공식 후 식사 자리에서 “세계평화센터는 10년을 맞이한 오늘을 고비로 본격적인 남북 간의 사회, 문화, 학술 교류시대를 여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라며 언급했듯이 공사가 진행되는 10년 동안 말 못할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평화센터가 완공되기까지는 당시 대북사업에 전력하고 있던 평화자동차그룹의 집념과 의지의 결실이다. 평화자동차그룹은 평양 인근 남포에서 자동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화자동차가 이 평화센터를 발주한 것으로 되어 있어 평화자동차 대표가 평화센터의 이사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평화센터를 완공하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보통강호텔-안산관호텔-안산관등을 하나로 연계해 운영하려던 계획이었고 실제로 현재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초현대식 국제 컨벤션센터로 건축된 평화센터의 건물 내부는 800석 규모의 대형 연회장을 두개나 갖추고 있으며 각종 회의실, 강의실, 연회장, 동시통역실, 숙박시설 등을 구비했다. 남북의 각 기관과 시민단체가 평양에서 문화. 학술, 종교 교류 행사를 개최할 때 누구든지 이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이며 아울러 통일교 측에서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또한 평화센터 내부의 각종 시설들은 이산가족 상봉시 북측 화상 상봉 장소로도 제공되며 세계적인 과학자 등을 초빙해 전문 인력도 양성하거나 평양시민들을 위한 외국어 교육이나 컴퓨터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건물 활용 계획 이면에는 통일교 원리강론을 전파하고 포교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평화센터를 보니 철골과 고급유리로만 지어진 매우 고급스러운 초현대식 건물이라서 도대체 이 멋진 건물을 어떤 회사에서 건축했는가를 알아보니 바로 통일교 계열 건설회사인 주식회사 ‘평화토건’이었다. 평화자동차 회사 계열의 대북 건설회사로서 2000년 1월 설립해서 주택, 토목, 플랜트, 공항, 항만 시설 등의 건설을 담당해왔는데 자신들의 순수 기술과 인력으로 평화센터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남측 기술자들이 평양에 가서 직접 건설한 최초의 복합건물이며 동시에 남측 법인이 북측 영토에서 건물을 완공한 후에도 운영권까지 맡게 된 것으로서 남북 교류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로 기록되었다.

10년 전 평화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인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남측 통일교에서 활약 중인 평신도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준공식 일정에 맞춰 2007년 8월 4-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방북했는데 참석자들의 분포도를 보면 경상도에서 원동주(세계평화대사협의회 및 세계일보 조사위원) 거제시협의회장이 참석했고, 전라도에서는 서성종 무안군 평화통일가정당 중앙위원 등이었다. 이처럼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통일교 산하 세계일보의 전국 조사위원들과 세계평화대사협의회 회장단, 통일교에서 창당한 ‘평화통일가정당’ 당원 등 총 100여명 이상이 함께 방북단을 꾸려 참석한 것이다.

한편 방북단이 평양에 도착한 4일은 준공식 전날이었는데 이날 밤 보통강호텔 대연회장에서 통일교 주최 환영만찬이 있었고 북측에서는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열린 준공식은 남측을 포함해 모두 150여명이 참석했으며 박상권 평화센터 이사장이 환영연설을 했고 북측에서는 전날 만찬에 참석했던 리종혁이 다시 와서 축하 연설을 했다.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남측 방문단 전원은 오후 시간을 이용해 왕복 다섯 시간 소요되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가 있는 평북 정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이날 준공식을 마치고 지하 1층부터 꼭대기 5층까지 건물 전체를 둘러보는 순서를 가졌는데 남측 대표단이 3층에 올라가보니 3층 전체가 대규모 예배당으로 꾸며져 있고 교회입구에는 ‘평양 가정연합교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제단에는 통일교 심볼 마크가 새겨진 설교 강대상이 놓여있는 등 기존 통일교 교회당 내부와 동일했다고 한다. 북에 상주하는 통일교 관련 신자들만이 알 수 있도록 제1호 통일교 교회당이 이곳에 은밀하게 세워진 것이다.

또한 건물 5층에 올라가보니 고급 주상복합형 펜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숙소들과 부속실 등이 호화롭게 구비되어있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건물의 겉모양은 전체적으로 종합문화센터의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교 교회당이었던 것이다. 특히 북측 당국은 건물명칭이야 무엇이든 사실상 통일교의 예배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건물을 허락하기까지 꽤나 많은 고심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 최고 지도자의 승인과 통일교의 전방위 로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1991년에 성사된 문 총재와 김 주석의 절묘한 외나무다리 만남이, ‘세계평화센터’ 준공을 통해 결실을 맺었고 결국 그 건물 3층에 통일교회당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대북 포교는 본격화된 것이다. 일평생 ‘반공(反共)’과 ‘승공(勝共)’으로 일관하며 통일교를 이끌던 문선명 총재가 1990년부터 갑자기 ‘친공(親共)’과 ‘연공(連共)’으로 급선회하는 걸 보니 ‘극과 극은 통하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 남측 평화토건에서 시공한 ‘세계평화센터’ 공사 당시 모습. 10년간 공사해서 완공했다(1997.7-2007.8). [사진제공 - 최재영]


▲ 남측 통일교 신도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계평화센터’ 준공식 장면(2007.8.5.). [사진제공 - 최재영]


▲ ‘세계평화센터’ 준공식에서 환영식 연설을 하는 박상권 이사장. [사진제공 - 최재영]


2. 통일교 신자들의 성지, 문선명 총재 생가와 ‘정주세계평화공원’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 이곳은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태어난 곳이다. 그 후 행정개편으로 지금은 ‘평안북도 정주시 덕언면 원봉리’로 주소가 바뀌었는데 북 당국과 통일교 측은 문 총재가 태어난 생가(生家)를 복원해 방문객을 맞이하는 프로젝트를 세워 이미 성지화(聖地化)했으며 생가 주변은 약 30만평 규모로 ‘세계평화공원(이하 평화공원)’을 조성 중이었다. 고향 마을에 거액을 투자해 평화공원을 조성한 목적은 문 총재를 홍보하고 국내외 신자들과 방문자들에게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이 생가를 거점으로 직접적으로 북 인민들에게 포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문 총재가 1991년 11월 30일~12월 7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남북교류 합의서에 서명한 후 통일교는 본격적으로 북에 진출하게 됐는데 당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의 방북은 김달현 부총리의 중간역할로 김정일 비서의 승인 하에 은밀하게 이뤄졌으며 문 총재의 방북 일정은 모두 김정일 비서의 특별 배려였다고 한다. 또한 김 주석은 문 총재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때부터 생가를 복원해 통일교 성지로 만들고 인근에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종합공원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회담을 마친 문 총재는 일행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평북 정주를 방문해 자신이 태어난 생가를 방문했고 생존해 있던 혈육들과 일가친척들을 무려 48년 만에 상봉할 수 있었다. 당시 만난 혈육은 73세의 친누나, 64세의 친여동생을 비롯해 69세의 형수와 49세의 조카 등이다. 문 총재 자신이 이산가족이다 보니 이때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도 통일교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정주에 평화공원을 조성키로 북측과 합의한 후 귀국한 문 총재는 평화공원 조성 부지 30만 평을 구입하기 위한 재원 마련 명목으로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 1인당 8만원씩의 헌금을 받아 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정주세계평화공원’은 명실상부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의 종교적, 사상적 성향이 깃든 곳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으며 평안북도 정주시는 생가복원과 평화공원 조성이 결정되면서부터 격동을 맞이하게 됐다. 시 당국 차원에서 생가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일과 평화공원 조성 사업에 앞장서면서 관광수입도 생기게 된 것이다. 마치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이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의 성지순례처가 되는 것처럼 문 총재의 고향 정주가 종교적 성지가 되는데 있어서 정주시가 앞장서게 된 것이다.

1998년에는 정주에 있는 생가 인근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발표되면서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이처럼 평화공원 성역화가 공식 선포되면서 통일교 본부 측에서는 여러 명목의 특별헌금 종류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공지했다. 통일교 측은 이듬해인 1999년 12월 1일, 국내외 통일교 교역자들에게 “새시대 새천년맞이 특별정성”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헌금납부를 강조했는데 이 공문에 제시된 헌금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총生祝(생축)헌금’은 한 가정당 1만 6천 달러 ‘천주승리 축하헌금’은 1인당 1개월분 수입 혹은 한 가정당 1만 달러, ‘구국헌금’은 1인당 160만원, ‘정주평화공원 조성기금’은 1인당 8만원, ‘건국기금’은 한 가정당 매월 17만원...” 등이다. 생각보다 헌금의 종류가 다양했고 그 액수도 컸다(이 헌금내용들은 2001년 1월 13일 청평수련원에서 거행된 “하나님 왕권 즉위식”에서 문 총재가 했던 말과 기도를 정리한 책에 수록된 내용들이다).

한편 평화공원 조성과는 별도로 이미 문 총재의 생가는 김일성-문선명 회담 직후 북측 당국에 의해 즉시 복원되었다. 문 총재가 방북한 이듬해인 1992년 8월에는 이미 2백 19명의 외국인으로 구성된 순례단이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당시 순례단에 참가한 일본인 ‘도쿠다 요시노리’ 씨가 세계일보에 기고한 방북기에 따르면 “생가 본채 마루 앞에는 김일성 주석이 당대 최고의 조각가에게 지시해 만든 대리석으로 제작한 헌금함이 놓여 있었는데 그 높이가 1m가 되는 헌금용 항아리였다”고 기록했다. 문 총재 방북 이듬해에 이미 정주시 차원에서 생가는 깨끗이 단장돼 있었고 진입도로도 새로 개설되었다. 최근까지 3차에 걸쳐 생가 주변이 정리됐는데 농경지 정리 작업과 진입로 확장공사를 하는 한편 생가 앞에는 관광객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임시 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2003년 4월에는 통일부에 승인을 받은 ‘평화항공여행사’에 의해 평양과 백두산 관광을 비롯해 기타 여러 관광코스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문 총재의 생가도 포함됐다. 그 후 9월 들어서 분단 이후 최초로 민간인들의 평양관광이 시작되면서 통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차원에서 대규모 참가했는데 북측 고려항공이 제공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한 최초 관광단 114명들은 모두 통일교 산하 세계일보 방계조직인 조사국에서 모집한 인원들이며 그 직책이 조사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해 통일교에 헌신하는 평신도들임이 확인됐다. 그 후 2005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4박 5일 일정의 평양관광이 진행됐고 2003년 이후, 약 5,000여 명의 관광객이 항공사를 통해 방북해 문 총재의 생가를 방문했으며 그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해외 신자들은 꾸준히 생가와 평화공원 조성터를 방문했다.

이처럼 북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통일교의 전략과 정교한 계획은 하나씩 실현되고 있으며 그들의 자금과 재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잠입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문 총재가 그처럼 자신의 생가를 성지화하고 인근지역을 성역화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유는 ‘재림주 메시야’로서 자신이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기업과 공장들을 설립했고 이를 발판으로 재원을 마련해 교세를 확장하려던 것이다. 그 결과 생가는 이미 성역화 작업을 완료했고 그 인근은 ‘세계평화공원’이라는 명칭이 붙어 국내외 통일교 성지순례단이 찾는 코스가 되었다.

통일교 간부들은 성지조성을 문 총재가 재림주로서 지상천국을 건설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문 총재는 1965년 세계 순회강연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통일교 성지들을 지정했고 이 장소들의 매입과 개발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세계 도처의 미개발지역에서 막대한 자금력과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부동산 매입을 했는데 이는 순수한 지역개발이 아닌 문 총재가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는 통일교왕국의 건설을 위한 과정이다. 그 동안 문 총재에 의해 직접 선택된 성지는 일본에 8개, 미국에 55개, 한국에 15개 그리고 기타 국가에 42개 등 모두 120여 개에 이르고 있는데 이곳 북측 땅 평북 정주에도 1991년 말부터 성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정주세계평화공원’ 조성 공사에 대한 진척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박상권 평화센터 이사장과 잠시 만나 확인해 보았으나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와 박 이사장은 2013년 평양에서 개최된 전승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전승기념관 정문 밖 입구에서 잠시 만날 기회가 생겨, 알아본 결과 30만평의 부지가 조성된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공사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며 공원 부지에 남녀 화장실만 각각 하나씩 세운 상태라고 답변해주었다.
▲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문선명 총재 생가의 가장 최근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2002년 가을 남측 통일교 신자들이 생가를 방문 후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남측 통일교 여신도가 생가 앞에서 당시 성영일 정주시 부시장과 기념촬영한 모습(재정비 이전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생가 방문객들을 위해 칸막이로 만든 간이식당 모습(재정비 이전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간이식당에서 남측 통일교 신자들에게 커피를 판매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간이식당에서 남측 통일교 신자들에게 미꾸라지를 넣은 단호박찜을 판매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생가 마루 위에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제작된 헌금항아리가 놓여 있다(재정비 이전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생가 뜰 안에서 바라본 평화공원 부지 모습(재정비 이전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3. 북에 설립된 최초의 통일교 공식교회당, ‘평양 가정연합교회’

통일교는 왜 북 영토 안에 자신들의 교회당을 세웠을까? 위에서 밝혔듯이 통일교의 첫 교회당은 이미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7년 8월에 보통강호텔 앞 평화센터 3층에 세워져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일교 교회가 평양에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문 총재가 김 주석과 단독회담을 하는 날 협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성사됐다. 평양에 통일교 목사의 파견을 요청한 문 총재의 요구를 김 주석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인 출신 통일교 목사가 형식적이나마 평양에 체류하며 통일교 선교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통일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북에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파송한 종교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으며 반면 북측도 분단 이후 최초로 해외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첫 사례가 됐다.

평화센터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게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통일교식 예배를 드린다. 몇 년 전까지도 평화자동차 사장을 지낸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사장은 일요일이 되면 평양 봉수교회나 칠골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세운 통일교 가정연합교회에 출석했으며 박 이사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경제인이며 경영자 신분이지만 종교에도 관여한다. 평화센터 건물을 공사하기 전해인 1996년 2월에는 나흘간 북경에서 개최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통일교 산하 기관인 ‘한국종교인협의회’는 종파와 종교를 초월한 초종교인들의 협의체 모임인데 박 이사장은 경영인이 아닌 통일교 종교인의 신분으로 종교 활동을 해왔는데 이처럼 통일교 조직은 기업과 종교의 경계선을 구분하기 힘들다.

통일교가 평양에 교회당을 세운 시기는 2007년 8월 5일이다. 이날은 ‘평양 세계평화센터’가 준공식을 치루며 정식 개관하는 날이었는데 이 건물 3층에 교회 간판을 달고 봉헌식을 거행한 것이다. 통일교 본부는 이날을 기념해 자체 홈페이지에 “지난 (2007년) 8월, 평양에 가정연합교회를 봉헌했다. 북한은 마지막 가인국(구약성경의 가인을 지칭)으로서 참부모님(문선명 총재 내외)의 세계 노정의 마지막 깃발을 꽂을 곳입니다”라는 공지사항을 알리며 평양에 교회가 세워진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 자신들의 교회를 세운 사실을 문선명 총재 내외와 통일교 수뇌부가 직접 언급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알라스카에서 거행된 일명 “천일국 7년 9월 1일, 천부주의 선포 18돌 기념식”이라는 통일교 행사에서 이 사실이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이 행사는 2007년 9월 1일 오전 5시부터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Kodiak Island)이라는 섬 지역에서 열렸는데 이날 행사 진행은 양창식 회장이 맡았고 황선조 회장, 임도순 회장, 유정옥 회장, 송광석 회장, 김형태 회장, 김명대 회장 등 통일교의 주요 지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모두 통일교 ‘국제지도자회의 및 피스킹 컵 낚시대회’에 참석한 주요 간부들이었는데 당시 참석인원이 120여명이었다. 이날 행사가 진행되던 저녁 6시경에 황선조 회장의 보고 순서가 있었는데 전날 문 총재의 특별 지시로 마련된 특별보고였다. 이 자리에서 황 회장은 평양에 설립한 자신들의 교회에 관해 아래와 같이 자세히 언급했다. 보고내용 원본을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평양교회 봉헌, 가정당 창당, 200개국 신문명 개벽선포 등이 8월 달의 중요한 섭리였다. 참부모님(문선명 총재 내외)의 그 승리적 기반이 3대권에 안착이 되고, 그 후 각 단계로 선포되었고, 그 후 신문명이 창설되었고, 그들이 유엔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9월 달 평화왕권 출발의 기준이다. 또한 마지막 가야 할 곳이 평양이었고, 마지막 분야가 정치 분야인데 8월에 이것을 성취한 것이다. 과거는 미래 역사를 창조하시는 것인데, 북한 땅은 필연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야 하는 땅이었다.

참부모님께서 과거 신령운동이 원산과 철산에서 일어나게 되자, 북한에 가셔서 1946년 6월부터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 역사가 준비하셨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흥남, 평양, 남하노정, 부산. 1950년도 12월 4일, 38선을 넘으실 때,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올 것이다. 내가 못 오면 내 자식이, 아니면 제자가 올 것이다!' 라는 기도를 드린 후에 남으로 오시게 된다. 남으로 시작된 섭리가 전 세계로 퍼져갔는데 마지막 가야 할 곳이 북한인 것이다.

북한은 가인형 인생관의 마지막 땅이다. 하나님주의로 통일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김일성을 자연굴복 시킨 기준이 되었다. 하나님주의의 씨를 심고 많은 교류사업을 이루어왔고, 2007년 8월에 우리 교회를 세운 것이다. 교회는 부모님의 몸이다. 북한 정부가 공인을 하고 정식 간판을 걸고 평양교회 헌당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 의자와 존영을 놓고(문선명 총재 내외가 착석하는 왕좌와 사진을 지칭) 부모님 몸된 삶의 결정체, 즉 부모님 삶의 전승기록인 말씀의 씨를 심고, 경배를 드리고 가정맹세를 하고 첫 평양교회 예배를 드렸다.

평양에서 40일 동안 머무시는 때에(문선명 총재 내외를 지칭) 모란봉에 올라가셔서 지은 성가가 2개가 있는데 성가 2장과 3장이다. 3장이 바로 그 때 지었던 가사였다. 천일국 국가가 된 그 성가를 그 땅에 가서 부른 것은 감개무량하였다. 북한에 교회를 지은 것은 놀라운 것이다. 평양교회를 세운 것은 교류가 아니고, 영적인 기반을 가진 하나님 사상의 정복이라고 볼 수 있다. 땅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말씀의 씨가 16년 동안 성장을 하여 교회로 안착을 하였다. 말씀, 축복, 심정문화가 있는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

통일교 측은 세계평화센터가 남북의 평화통일을 선도하는데 활용될 건물이라고 선전을 해왔으나 결국 그 건물 3층에는 은밀하게 통일교 예배당을 세우고 포교전략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평화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결국 그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교 교회당이다. 북측 당국도 타 기독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그런지 통일교 교회당 존재여부를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꺼려하는 눈치였으며 북측에서 활동하는 통일교의 가장 핵심 인물인 박상권 이사장 역시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 통일교 교회가 입주한 평화센터를 담장 너머에서 본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준공식 당시 ‘세계평화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사진전. 김일성 주석이 문선명 총재를 반갑게 영접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세계평화센터’ 각층 내부 휴게실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세계평화센터’ 3층에 입주한 통일교 ‘평양가정연합교회’의 예배당 내부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현재 ‘세계평화센터’ 박상권 이사장이 20년 전 남북 종교인협의회에 참석한 모습. 우측은 당시 장재언 북측 종교인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 최재영]


통일교 교세확장과 남북통일의 상관관계

북 당국은 지금도 남측이나 해외의 기업이나 교회 혹은 선교단체에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북측 영토에 교회당을 짓는 것을 거부한다. 북측은 교회당 건립 비용으로 차라리 문화센터나 사회복지센터 쪽으로 건축해 줄 것을 요청한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외국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중국영토에서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건축을 하기 위해 협상할 때는 사전에 계약조항을 통해 건물 용도를 분명히 명시해야한다. 일반건물이나 사회복지센터로 짓는다고 계약했으면서도 완공 후에는 계약내용과 달리 예배를 드리거나 종교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애초부터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이었다면 계약할 때부터 종교 시설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통일교 측은 중국에서의 포교를 위해 일반 건물로 건축 승인을 받은 후에 완공을 마치고 실제로 종교 활동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은 사례가 있었다. 편법을 사용한 결과 중국 당국으로부터 거액을 압수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통일교는 중국에서의 실패를 발판삼아 북에서는 치밀하게 전략을 짠 결과 실제로 교회당이 세워진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통일교의 모든 사회활동과 기업운영 등은 철저하게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언론, 학술, 스포츠 등 통일교의 다양한 활동 목적은 단 한 가지, 바로 문선명 총재가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는 통일교 왕국의 건설에 있다. 그 동안 한반도에서 통일교 왕국을 건설하려는 문 총재의 꿈은 단 한 차례도 포기된 적이 없다. 그가 통일교 왕국을 한반도에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통일교의 핵심 교리서인 ‘원리강론’에 잘 기록돼 있다.

통일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외곽 조직들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조직 활동에도 불구하고, 문 총재의 핵심적인 교리가 담긴 원리강론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여러 조직들을 통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통일교 간부들의 대북사업은 아래와 같이 초지일관하며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참부모님(문선명 총재 내외를 지칭)의 섭리적 측면에서 본 통일논리 때문에 대북사업을 펼친다. 공산주의는 역사를 지배와 피지배 계급 간의 갈등으로 보지만 우리는 선과 악의 갈등으로 본다. 북한을 변증법적 철학에 기초한 유물사관과 주체사관으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선한 방향으로 돌려세우는 것이 역사 속에 구원을 실현하는 한 방법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대북사업을 통한 통일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다뤘던 통일교의 기관들은 대북 포교 차원에서 설립된 종교적인 기관들이며 문 총재의 원리강론을 충실히 수행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세계평화운동과 남북통일운동, 가정회복운동 등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수십억의 자금을 투자해 건축한 평화센터는 매 층이 1000평 남짓 되는 매우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준공 이후로 지금까지 공익을 위해 크게 활용되지 못한 채 통일교만의 행사 전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또한 현재 평양에 상주하는 통일교 직원들과 신자들 위주의 모임과 행사 집회를 치르는 건물 용도 위주로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평양은 물론 북측 지역에 사는 인민들이 처음 접하는 기독교에 대한 첫 인상이 통일교에 의해 다분히 왜곡될 수 있다는데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북측 관리들과 인민들은 마치 통일교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종교처럼 오인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통일교가 다른 기존 기독교를 거짓 종교라로 매도할 때 북측 주민들은 그 사실을 그대로 믿게 될 수 있다. 통일교는 25년 전 김일성 주석과 문 총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신들의 노선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리강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아직도 신자들은 “남북 분단은 가인의 세력과 아벨의 세력의 만남이고 악의 세력과 선의 세력과의 만남”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아직도 이 교리를 신봉하고 있다.

통일교의 막강한 북 진출 사업들은 통일교의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이며, 교리내용의 변화가 아닌 포교형식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나 해외 한인교회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북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과 오류투성이의 대북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선교정책을 세우고 있다. 고도로 압축된 통일교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대북사역 전략과 비교해 볼 때,기존 한국교회의 대북사역 전략과 노력은 매우 낭만적이고 고비용 저효율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도 허상을 잡고 있는 듯하다. (계속)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재영 9191jj@hanmail.net


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


prev
[北상식] 야채나 과일의 색깔에 따른 영양소는?
북, 최근 채택한 '전자상업법' 살펴보니...'의료품'도 거래
북,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대표단 출발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野猫盜雛]-3화
조천현 작가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 사진전...3월 4일까지
[北상식] 야채나 과일의 색깔에 따른 영양소는?
북, 최근 채택한 '전자상업법' 살펴보니...'의료품'도 거래
북,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대표단 출발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野猫盜雛]-3화
조천현 작가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 사진전...3월 4일까지
next





기사 댓글 1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댓글 내용입력
0 / 400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굽은소나무 2016-08-09 12:28:20
더보기소식 감사드립니다

2024-08-23

[최지은의 뉴스호로록] “식민지 시대 우리는 일본인”?... 누가 진짜, 반국가 세력인가? (2024.08.21 오후)

李昇燁

시도 때도 없이 '무식', '무식'하는 말뽄... 아니 말씀뽄새는 그렇다 치고. 요즘 (의미 없이) 한국 내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식민지통치시기 조선인의 국적' 문제에 대해 나름 역사학적 입장에서 말씀을 해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자잘하게 의의(疑義)를 느낀 것은 적지 않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말'로 표현하다 보니 몇가지가 섞여서 이야기가 이상해진 것도 있으테고, 어떤 부분은 관점의 차이 같은 것도 있으니, 이런 사소한 것은 일단 제외합시다.
말씀하신 중에서 '역사적 사실'과 크게 어긋난 설명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1) 첫번째는 "만주국이 건립되었을 때, 일본인(내지인)은 국적법에 의해 이중국적을 가졌지만, 국적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선인은 이중국적이 부여되지 않았다" 운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침 며칠 전, 다른 분 게시물에 답글을 달아 놓은 내용이 있기에, 전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충 어떤 프로세스였나 하면,
①애초에는 만주국에 재주하는 모든 사람(5족)을 만주국 국적을 부여하려 했다.
②그런데, 일본의 국적법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국적법을 개정해서 일본인에게 일본-만주 이중국적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국적법은 개정할 생각이 없었다.
③그렇다면 일본인(내지인)의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만주국 국민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또 일본인(내지인)들이 절대 받아 들일 수 없었다.
④그래 그럼. 내지인은 패스. 만주 국적을 강제하지 않기로 했다.
⑤그럼 조선인은 만주국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내선일체인데 왜 조선인만 일본국적을 뺏아 버리고 만주국적으로 삼으려 하는가!!! 꽥!!!"하는 반발에 조선인도 포기.
⑥결국 만주국 국적이라는 게 5족 중 '만계(満支蒙)'에게만 적용하는 불완전한 결말로.
(추기. 이렇게 우왕좌왕하던 중, 국적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나라가 망해 버린다)
==================
(2) 두번째가 좀 중요한 문제인데,
"일제강점기에 외국으로 많이들 나갔잖아요. 그런데 조선총독부에서 여권발급한 내용을 보면, 일년에 수십명 밖에 안돼요.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여권도 안 내 주려 한 거예요" 대충 이런 논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건 완전히 무지에서 비롯한 오해입니다. 
일년에도 수만에서 수십만명씩 해외로 나가는데 여권이 없다? 다들 밀항자였단 말인가?
(조선총독부의 여권 발급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인의 여권문제에 관한 세계제일의 전문가 Donghee Kim 선생의 교시를 기다리도록 하자)
일본은 일단 '같은 나라'니까 여권이 필요없었다고 치고(사실, 여권이나 비자보다도 더 까다로운 '도항증명서'라는 걸 받아야 했지만), 
그렇다면 중국은?
당시의 중국이 아무리 핫바지라도 육로로 꾸역꾸역 국경을 넘어 오는 조선인 밀입국자를 그대로 놔 두고 있었을까?
정답은, "중국에 갈 때는 여권이 필요 없었다"입니다. 
아무리 일본이 중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었다고는 해도, 엄연히 외국인 만큼, 도항시에는 여권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본 영토에서 (일본영토에 준하는) 관동주 조차지, 거류지, 만철부속지 등으로 이동한다'는 식으로  해서 여권 없이 도항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결국 일중간의 담판을 통해, 이걸 제도화합니다. 
곧 '일본인의 중국 도항시에는 여권을 휴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괴상한, 좀 말도 안되는 협의가 이루어져 버립니다. 
이어 1918년에는 일본인의 중국도항과 중국인의 일본도항시, 양쪽 다 여권휴대의무가 없다는 협의가 이루어지고, 이를 공문으로 확인합니다. 
「外国人本邦入国規則ノ除外ニ関スル交換公文」
www.jacar.archives.go.jp/das/meta/B13090832700
결국, 조선인이 무여권으로 해외, 특히 중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조선인을 국민으로 보지 않아 여권을 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측이 조선인도 일본인이라 인정하여(랄까, 조선인도 일본국민에 속한다고 보고) 여권 휴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김학철 선생의 소설 『격정시대』를 보면, 
상해의 윤봉길의거를 계기로 민족의식이 각성된 중학생(고등보통학교 생도) 서선장이가, 집에는 "유도부 합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와, 그날 밤으로 경성에서 중국(봉천) 가는 기차를 잡아타고 국경을 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권 같은 건 준비할 겨를도 없이 유도복이 든 짐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나온 교복차림의 중학생이 이리도 수월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 이것도 당시의 조선인이, 적어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일본인'으로서 취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일본인'으로서 여권 없이 국경을 넘어간 이들이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역사학자님께서 "조선인이 일본국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역설한 사례가, 사실은 완전히 그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니 이 참 滑稽랄까요.
Wooyong Chun

  ·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일본국적'이었던 건 사실 아니냐는 '쿨'한 사람이 많기에 오마이TV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올립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본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국적 없는 천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일본국적이었다면, 재일동포는 일본에 '귀화'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지은의 뉴스호로록] “식민지 시대 우리는 일본인”?... 누가 진짜, 반국가 세력인가? (2024.08.21 오후)

오마이TV
2M subscribers

Join

Subscribed

372


Share

Download

Thanks

Save

4K views  Streamed 1 day ago  #반국가세력 #오마이TV #윤석열
ⓒ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재가공 이용 금지 

[최지은의 뉴스호로록] “식민지 시대 우리는 일본인”?... 누가 진짜, 반국가 세력인가? (2024.08.21 오후) …

===
Transcript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슈톡톡 뉴스 호로록 최지은 있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욕에 대해 검찰이 오늘 무혐의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줬죠
이에 한동훈 국민의 임 당대표는 사법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검찰이 엉터리 면제부를 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결코이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을 했는데요 국민들이 어
검찰이 내놓은이 무혐의 결과에 과연 납득을 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영석 독립기념관 관장 임명에 반발해 별도의
광복절 기념식을 연 광복회에 대해서 국가 보험부 감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죠 지금까지의 친일 편향의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기를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후손들과 국민 모두가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십시오 기념식에서 나온 김갑년 전 독립기념관
이사의이 발언이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 위반했을 수 있다라고
본 건데요 광복회 입장에서는 단체 정체성을 부정하는 국정 기조에 대해서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하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발언을 빌미로 감사를 하고 수사기관의
고발을 하고 그러면 광복회 반발 누구로 질까요 되래 국민들의 분노만
커질 것 같습니다 자 8월 21일 수요일 뉴스 호로록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분은 통찰과 함께하도록 하죠 전우용 역사학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뭐 안녕하진 못하지만 뭐 인사는 하죠네 예 아 오늘도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어 모시기 전에 제가 잠깐 그런 말씀을 드리긴 했어요 역사를 갖고
이렇게 막말을 일삼고 말도 안 되는 논쟁거리를 삼고 하는 일이 과거에도
있었느냐고 여쭤봤었는데 과거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긴 있었다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어 90년대 후반에 음 어
김한석이 사람이 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냈었어요 그때 지금 나온 얘기들이 다 나왔죠 어 독립운동가는 테러리스트가
친일파가 실제로 우리 역사에 기여한 사람들이고 한국인들은 일본에 감사해야
된다 그때는 이제 뉴스에서 좀 도배가 되고 근데 그
사람은 이제 그 최근 국내에서는 판매금지가 됐어요 어 어 그 당시에는
네 근데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죠음 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뭐 이게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고 뭐 기억을 좀 더듬어 보시면 이미 뉴라이트 출연 이전부터
뉴라이트란 이름이 출연하기 전부터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것들 지적하고
넘어가죠음 과거에도 있긴 있었지만 그럼 지금과 비교를 해 본다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차이는
느껴집니까 당연히 차이는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죠 테 김구라는 책이 그
당시에는 이제 그렇게 주장한 책이 국내에서 판매금지가 됐는데 법원에서 그렇게 결정을 했어요 국민의 아 역사
인식 보편적인 역사 인식과 어긋난다고 해서 근데이 테러리스트 김구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현재 경보
문구에서 정치 사회분야 추간 1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전체 10 웨딩과
그렇고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책이죠 예 그만큼 이제 우리 사회가 친일 주장을
받아들이는음 친 친일이 옳았다 라고 하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음 이게 더 암울할 수 있다 과거와 비 아무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아무 하죠 이게 어떻게 그 을할 수
있는 정도겠지 뭐 역사 전공자로서 이런 현상을 보면서 아 정말 끔찍합니다
한국인들의이이 지속한 기회주의와 이기주의 물질주의가 어 지난 20년간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는 사실에 좀 어 암담할 따름입니다음 아주 호되게 얘기해
주셨어요 기회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섞이는 바람에 진짜 더 암울하다라는 얘기를 줄곧
이제 해 주고 계시잖아 처음에 말씀드렸죠 뉴라이트 역사 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의
문제라고 인간관은 어 이제 경제학에서
시장에서의 인간 행동 양식을 분석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설정한 인간관을 기분으로 하고 있어요
몇 번씩 반복합니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 다른 말로 하면 이게 이제 기회주의 기중의 물질 주의예요 근데
이게 여기에 이제 동조하고 편 그 이제 그 주장에 빨려드는 사람이 지난
20년간 엄청나게 늘어난 거예요 그래서 어 이제 좀 충격적이죠 사실은
뭐이 정부에서 그렇다고 하는데 정부만 그런게 아니에요 예 3일짜리 일장기 가는 사람 무슨 집회 때 일장기 들고
나오는 사람 자동차에 우일기 새기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 나오고 했잖아요
그리고이 현상들은 지금이 상태로 이제 계속 진전이 된다면 어 계속 늘어날 거예요 그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부만 그런게 아니라 그런 기조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라는 얘기 해 주셨잖아요 늘어나고 있다가 더 정확한 표현네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다
그냥 그것을 아무렇 도 않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부끄러운지도 모 그 됐다고 생각을 해요 그 사람들은
예 그럼이 부분은 어떻습니까 이게 오늘자 기사인데요 어 KBS 기미가요를 틀고 태극기가 거꾸로
나오는 상황이 발생했었죠아요 그것을 두고 조선일보에서 이런 보도를 했습니다
21일자 신문 1면에서 3년까지 무려 세면을 하려해요 한국과 일본의 협력
사례를 중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일단 1면 기사는 정치권에 못난 반일
편에서는 한국에서의 팝 그리고 일본에서의 팝 인기 한국과 일본
스타트업들 간의 파트너십 이런 것들을 언급하면서 민간에서 문화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 연구개발 등 일본과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양국의 협력이
강화되는 현실이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또 다른 면에서는 일본과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정치권에서 낡은 공방을 버리고 있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라는 주장에 글을 실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일본 내에서의 반응에 대해서 야기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니까 일본에서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이렇게 주장을 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일본 관리들이
주장을 했을 때 분기하기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구 액션을 취하면 대사를 불러서 항해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그게 심각한 문 제가 이제는 안 돼요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나오는 반 발언들이 것이죠 자 우리가 저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협력과 경제 교류가 굉장히 늘어났는데 그리고 한국의 경제 어 이른바 이제
경제 의존도 대외 무역 의존도의 중국의 압도적인 이유예요 중국 시장이 다치면 한국 경제는 망해요 근데 이런
상태에서 반중을 그 선동하면 되겠는가 이런 얘기를 하면 뭐라고 어요음 그죠
이런 상태에서 예 근데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대만 편에 서겠다고 확실하게 선언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런 것도 똑같은 얘기잖아요 첫 번째 문제는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사실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내부의 문제예요 한국 내부에서 대놓고 이런 바 친일 저 친일을 넘어서서 과거사
자체를 왜곡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는 우리가 함께 겪은 역사아카이브
대한 분노를 마치 한일간의 문제처럼 뒤집어 버린 거죠 이건 이제 어
사기죠음 우리가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제가 아니에요 친일 반일 논쟁도 아니에요음 이건 일본과 사기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일본 가자 가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잖아요 한국 내에서 우리가
겪은 일제 강정의 역사를 왜곡하는 이런 집단이 나오는 거에 대한 한국 내부의 불만을 마치 친일과 반일의
논쟁인 것처럼 치환했다 것이 하나고요 두 번째 문제는 두 번째 문제는
어 이제 그런 얘기를 하죠 이제 이번에 이제 교도 국제고이습니다 제일동포 학교였어요
처음으로 이제 고시했다 결승에 올라갔죠 이제 올라갈 그 학교 교과가 올려 퍼질 거예요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학교 교과가 올려 퍼지는 데서 우리가 뭐라고 그러지 않아요 그럴 상황은 아니죠 근데 문제는 그런 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아직도 혐한 시위가 빈발해 기도나 도쿄에 가면 곳곳에서 일본 국구 단체들이 조생
물러 가라고 시위를 하고 있고 대형 서점에는 혐한서적 코너가 버저시 자리 잡고 있어요 한국을 이제 경멸하고
무시하는 그런 내용들의 책들이 그게 이제 대중적 상황이거든요 한국에서 일본이 물러가라고 대모하는 거
보셨어요음 없죠 예 친일파를 규탄하기 하더라도지 매국 뭐 정권을 규탄한다
이런 식의 9월을 내걸고 시위 집회는 벌어지더라도 일분 물러가라 이런 시위 안 해요 소녀상에서 집회를 하더라도이
일본 물러가라 아니에 반성하라는 거죠음 그런데 데도 이걸 마치 현재 일본과의 관계를 끊는 얘기인 것처럼
이렇게 날조 왜곡하는 것들 이제 하던 방식인데 그게 문제인 거죠음 문제
본지를 호도하고 있다 예 지금 이제 추가 설명을 드리면 조선일보에서 지금
전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부분은 이겁니다 어 일본 공영방송
NHK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으로 시작하는 제일 한국계 교토 국제교
국제고 교과가 나왔지만 일본 사회에서 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이를
광복절에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김미 가요가 등장하는 오페라를 방송한
KBS 관련된 거센 비판 이걸 이제 좀 비교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왜
이렇게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취지에 이제 글이 실 한마디 더 하죠
그거 전에 했던 걸 재방송한 거예요 처음에 방송했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어요 왜 하필 광복절이였던 것이죠
왜 필 광복절이 그건 딱 빼고 가요가 나왔다고 마이 한국인들이 흥분하는
것처럼 역시 왜곡한 거죠 그래서 역시 문제 본질을 어
호도하는 측면에서 조선 일부가 비겨 가고 있다라는 취지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 오늘 이제 얘기해 주실 부분이 어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이 무엇이냐라고 후보 면접에서 어
일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김영석 독립기념관 관장이 그때 당시에 일본은
조선인에 대해서 국적법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저는 알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이제 역사 학자 이시니까 조금
더 자세하게 그 이제 그전에
예 저는 그 대답을 한 사람보다 그 대답을 듣고 1등 준 사람들이 더
한심해요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질문을 한 사람들 그 질문에 한 사람들 예
아 이걸 보면서 이제 늘 이제 이런 이제 독재 정권이나 이념 지향적인
정권이 나오면 흔히 나타나는 문제인데 아 무식이
심사하고 무식이 임명되고 그래서 무식이 세상을 지배하는음 사회 전체가
반지성주의 위한 무식으로 가득차는 이런 상황이 벌어져요 적어도 심사위원이 심사위원도
몰랐으니까 그 그 사람을
했겠죠 예 제가 볼 때는 거기에 독립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이 없었어요 기념관
심사 위원회 그리고이 기념관정이 된 사람도 독립운동사 전공자가 아니고요네
예 그러니깐 터이 없는 이제 황당한 질문을 하고 황당한 대답을 하고
그래서 무식한 사람이 무식한 질문을 하고 무식한 사람이 무식한 대답을 했는데 그까 독립기념관 연구 관장이
된 거죠 그러 이런 이게 간 단지 독립 기념 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어요음 모든 영역에서
그 전문성이나 지식보다는 충성심 하나가음 이제 판단 기준이 준거가
되면서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면 사회 전체의 수준이 급전 직하에 지금
우리나라가 처 문제의 핵심은 이념도 이념이지만이 좀 그 그리스 인도
이념이지만 전체적으로 무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보세요 의료
붕괴 상황이에요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는데 35만 명고 경제도
지금 뭐 어떻게 어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 자영업자들 계속 문닫고 인구 문제도
그렇고요 모든 문제에서 사람들이 그 그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나마 합리적인 좀 정책을 펴고 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영역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 이게 이제 한국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그런 하나의 좀 증표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해서 그런 대답을 했는데 합격시킬 수가 있나 결국은
이제 심사위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음 근데 그걸 그걸 일단 좀 전제로 하고 말씀을
드리죠 일단 뭐 시청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한번 들어 볼게요 영국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고 맞습니다 예 그럼 인도인은 식민지 시대 인도인은 영국인이
있을까요 식민지 시대 영국은인 영국인이 아니죠
당시 영국 여왕의 공식 코칭은 영국 여왕이자 잉글랜드 여왕이자 대인도 제국의
황제였다 식민지로서 이런 바 주권 국가 대접을 벗지 못했어요 주권이 영국 영화에 있었으니까 그 영국을
인도에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아 인도를 영국에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인도 인체로 놔두고 그리고 그 황제
자리만 영국 여왕이 가져간 거예요 예 주권만 이제 영국 영왕이 행사하고
별개의 영토로 이제 남겨둔 거죠 이게 식민지 를 유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패턴이에요 그니까 1910년 것도이 뭐 좀 말씀을
드릴게요 우 지금 일제 강점으로 전 정리를 했어요 일제 강점이요 한일
합방이이란 병합이 이걸 가지고 헷갈리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 처음에 한국인들이 한국이
아주 좀 어 일종에 좀 매수된 친일파 이것들도 이제 이자들도 이제 가장
대표적인 기회주의와 물질주의 이기주의자들이 이들로 조직된 단 친일 단체가
일진회는 단체가 있었어요이 단체가 1909년에 예진 합방 청원서를 내요
일본과 한국을 합방해 달 한나라로 묶어 달라고음 대표적인 친일 단체네
한나라로 묶는 것을 합방이 그래요 근데 일본인들은이 합방 그러면은 대등한 이미지를 줄을 수가 있다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다고 해서 그래서 고심 끝에 만들어 찾아낸 단어가 병합이 병합 예 그러니까 이제 아울로
합친다 라는 뜻인데 그래서 이게 주체가 일본이고 어 당시 대한제국이 객체라고 하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용어다 해서 원래 있던 단어가 아니에요 그때 병합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서 여기다 적용을 했어요 그래서
그 물봐 이제 일한 병합 기념 뭐 이런 행사들을 했던 것이죠 나중에
이제 해방되고 나서 우리가 이제 병합이란 말이 기분 나쁘니까 한일합방이 하는 것을 말들 쓰는
상황에서 일본의 한국 병탄 집어삼켰다 이런 말을 쓰기도 했었 요 그러다가
을산 약도 그렇고 이제 이른바 병합 조약도 그렇고 이거 자체가 불법이다
이건 이제 일본이 합법적으로 조약을 통해서 한국의 국권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예 사실상 군사적 강점으로 국권을 강탈한 것이기 때문에
강점으로 하자 해서 지금은 이제 일제강점기로 통용되고 있죠 어
유감스럽지만 어이 뉴라이트는 일제 강명이 표현도 바꾸려고 그래요 어떻게
바꾸려고 하죠 그냥 뭐 식민 지식이든 이한 병합이 옛날 쓰던 용어 그대로는 이렇게 쓰려고 하는 거죠 지금 뭐
그런 상황이고요 이렇게 병합을 조약을 맺고 나서 그니까 이제 당시 1910년 8월 29일에 이제 일본
천왕의 조직이 연달아 발표 돼요 첫째가 병합에 관한 조칙 있고요 세
번째가 굉장히 흥미로운 조직인데 어떻게 돼 있냐면 한국의 국호를 고쳐 조선으로 함 아주 짧아요
짧아요 한국의 국호를 고쳐 조선으로 함 뭐냐면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그 나라의 통치권을 일본 천왕이 갖는다는
뜻이에요음 그니까 병합을 하면서 한국에는 일본인이 된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일본인이 안 됐다고 하는 징표들을 이제 몇 가지를 말씀을 드릴게요 첫 번째 지금
말씀하신 국적법이 예 어 일본 국적법은 1899년에 처음 제정돼 그리고 국적법의 내용은
일본에서 출생해서 일본 호적에 등재된 자가 일본 국민이다 하는 거였어요
조선에서 출생해서 저선 호적에 등제된 자는 일본 국민이 될 수가 없죠 일본 국적법상네 그렇다가 삼일운동 이듬에
1920년에 일본 국적법이 개정돼 이때 개정의 요지는 귀화 문제였어요
귀화네 외국인이라도 일본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귀화 신청을 할 수 있고 이제 관계 단국의 심사를 거쳐서
귀화를 허용할 수 있다 단이 문제 는 조선인에게 적용이 안 돼요 아 자
1919년 3일 운동이 나고 나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창식 계명 이런 것들이 정부 1940년대 시행이
되는데 아주 극단적인 친일분자 친일 민족 반역자들이 이제 일본에 청원한게
뭐냐면네 조선인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꿀 수 있게 해달라 창시 계명 청원을 해요 허용하지 않아요 일본에서
일본에서 허용하지 않아요음 대등하게 보지 않는 거군요 조선인이 일본식 이름을 가지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조선인은 본 본식 이름을 가질 수 없다라고 이제 모습을 막아놓는 거죠 그다음에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 땅에서
뭐 그전부터 이제 어 1876년에 개양이 됐으니까 일본에 건너간 사람이
많잖아요 또 1900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 일본의 이래저래 뭐 노동화 갔든 학생으로
갔든 5년 이상 거주한 사람 많아요이 사람들은 조선적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애매한 위치가 되는 거죠 조선인은 일본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그런 위치로 만들어 놔요 음 그래서
국적법상 조선인은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아니다라고 하는 이런 좀 아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 일본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다 조선인은 일본 조선인은 일본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본 제국 판도 내에 일본 천왕의 신민이 이제만 일본인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법적인 이제 지위였기 또 문제가 되는 것이 1931년
만주사변이 후였어요 예 만주 사변이 나고 이제 괴 괴의 만주국이 보통 부르죠 일본이 만들어 놓은 이제
허수아비 국가 만주국이 만들어지면서 그때도 또 이제 국적법 개정 문제가 논의가 돼요 만주에 있는
일본인과 이게 이제 쉽게 말하면 일본의 식민지 국 반식민지 국가인데
형식상의 독립 국가이면서 사실상 일본의 이제 식민지 국가인데 일 만주에 있는 일본인이
만주 국민이 되어야 하느냐 일본 국민인가 이제 이런 것들 만주국이
일본 관동군이 사실상 지배하는데 거기 일본인이 만주 국민이 되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문제들이 나오는 거죠음
그때 이제 일본인의 만주국 취득 문제가 이제 논의가 되고 그래서 그때 이제
일본에서 어 결정 원칙은 이중국적으로 한다 아 이때는 또 이중국적으로
허용하 일본인은 일본인 동시에 만주 국인이 될 수가 있다음 근데 조선인은 또 그것도 안 돼요 아 여기에도
조선인은 해당이 만주에 있는 조선인이 중국 국적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주 국적이 되든가 아니면
중국에서 사실은 러시아나 중국으로 귀한 한국인들도 꽤 많았어요네 그리고
그러고 나서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단 말이에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제 최재영
선생이라이라고 매바 최배 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분인데 러시아 군 장교에서 그 러시아
국적으로 있으면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직접 좀 참여했던 그런 분이 결국 일본에게 이제 살해 당하죠음
근데 어 중국에 있나 만중 외국에 있는 이제 외국 당에 있는 조선인이
그나라 귀화를 해버리고 그리고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면 누가 체포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체포할 수도 없고 자기네 법정에서 처벌할 수도 없어요네 그러니까이 귀화를 막아야
돼요 그래서 조선인에게는 외국에 거주해도 외국 국적으로 귀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와 그럼 뭐 손발을 다 잘라 놓는 거네 그러니까 아예 이제 극적이 없는 거예요 다만 이제
1930년대 말부터 이제 한국 시민화 정책을 하면서 한국 시민의 서사를 외우게 하고 그리고
그고 창식 계명을 시키고 그러면서 이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이
느끼지만 그래도 안 좋요 국적을 일본 국적을 안 줍니다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차고 나갔다고 일본 국민이라고 이제 얘기를 하는 좀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바보 같은 사람들이에요 조선희는 1932년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해요 중일전쟁
이후에 그때 가서 조금 일본의 태도가 바뀌어이 제기 어떻게 문제를 처리해야
되는데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은 거예요 그냥 일반적인 국적법을 적용해 버리면 조선인을 일본 국적으로 만들어
줘야 되는데 그러려면 조선인들에게 이런 바 국가로서의 국민으로서의
일반적인 좀 권리 의무를 규정해야 돼요 같은 국민인데 같은 권리를 줘야 되잖아요 근데 그렇게 주기가 줄 수가
없는 거죠 주기가 싫은 거예요 그러니까 외국에 나갈 때는 넷 근데
필요할 때에는 일본 국민으로 쓰고 보통 때에는 일본 국민 인정하지 않는 비국민 또는 이등 국민 정도로
대우하는 이런 정책을 일정 경제 말기까지 계속했어요 계속해서 컨데 이제 참정권도 없고
일본인들은 이제 선거권이 있는데 조선인들에게 선거권이 없고요 일본인들은 의무 교육을 실시하는데
조선 내에서는 의무 교육도 없어요 모든 이제 법적 제약들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어 첫 번째가 이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의 국민 그러면은 하나의 법에 일원적으로 지배를 받아야 되잖아요
근데이 1910년 바로 이런 조선의 국호를 없이이 국호를 고쳐 한국의
국호를 고쳐 일본으로 조선으로 함이 조직에 따라서 조선은 사실상의 별도
국가음 어 이제 2등 국가 하고 3등 국가 노예 국가 이렇게 취급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 법이 제정되면
똑 이제 일본 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똑같은 내용을 조선총독이 조선총독 부령 그래서
조선총독 명의로 별도로 재정에서 조선에게 적용을 시켜 조선인들에게 적용해요 대표적인 것이 또 어떤 거는
일본에서 시행되지 않은데 조선에서 시행되는 법이 있고 뭘까 예를 들면 안 좋은 거겠죠 주로 그렇죠 조선
태형령 같은게 그런 거예요 1911년에 어 과료 또는 이제 구류
정도의 가벼운 어 죄를 저지른 자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 헌병이 직 직결
처분할 수 있다 직결 처분하고 그것은 이제 구류 아니면 벌 이런 벌금을 못
낼 경우 또는 구류 하기 시설이 멀리 있거나 적합치 않을 경우에는 그걸 이제 매 가죽 채증 맞는 걸로 대신할
수 있다데이 가죽 채찍에 납을 매달아 놔서 그리 뭐 하루에 10열대 이상
때릴 수 없다음 그래서 이제 뭐 태 30대를 선거 받으면 사흘 연속 맞아야 돼요 근데 이게 박은식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얼마나
악질이었던게에 이제 에 헌병의 직결 처분으로 태형에 처해진 사람이 수천명에 달라고 이건 직결 처분이
때문에 예 예 근데 유관수 의사 유관선 열사 같은 경우에는 어 재판
기록이 있어요 그러니까 독립유공자가 되죠음 근데 재판도 못 받고 그냥 어
일본 헌병에 가죽 채찍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기록도 없이 기록도 없이 목숨을 잃은 거예요 그 수천 명에
달한다고 이제 기록해 놨는데 뭐 본인이 직접 왔다기 보다는 당시 돌아다니던 얘기들을 수합한 거겠죠
실제로 뭐 이게 어 한둘이 아니었고 어 다가 어 이게 이제 무슨 정말
독립 운동만 해서 그런 일을 당하는게 아니고데 일본 헌병이 어떤 처 녀한테 눈쪽을
들렸다 말을 안 듣죠 당연히 그럼 이제 그 아버지를 데려다가 생트집을
잡아서 태형에 처한다고 협박을 하고 이런 일들이 비비지 했어요 그러면
거기에서 뭐 이런 사법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거잖 전혀 없잖아요 헌
마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놓고 이제 그런 조선 태형령 같은 거를 이제 제정해 놓고 맨 뒤에다가 단 이법은
조선인의 하나여 시행함 이런 걸 단서로 달아요 그런 법이 있고요 뭐 조선 회사령 같은 경우도 조선에서
시행되는 법이고 반면에 이제 일본에서 일본에 없죠 그런 법이 근데 일본에
있는 법이 조선에 시행되지 않는 것 대표적인게 국적법 같은 거였죠 일본인들은 국적법에 대상이 되는데
의무교육법 이런 것들은 이제 조선에 적용되지 않는 이런 이제 방식으로 어
비국민 취급을 한 거죠 첫째 이제 증표는 국적 법이고 이렇게 국적법과 법체 계고 두 번째 화폐에 한 나라면
같은 화폐를 써야 되잖아요 예 일본은 일본 은행권을 썼어요 그 조선은 따로
일본 은행권을 담보로 해서 조선 은행권을 발행해서 썼어요 화폐가 달랐어요음 어떻게 이게 같은 국민
사이에서 이런 일이 나오겠어요 지금도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가 독도에서 우리나라 핸드폰이 터진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처럼 화폐가 이제 하나의 국가의 권역이네 국가의
권력인데 일본 은행권은 이제 조선에서 쓸려면 쓸 수 있었지만 조선 내에서는
조선 은행권을 쓰도록 되 있었어요음 이게 이제 기본 원칙이었던 거죠 화폐
법체계 이런 것들이 전부 이제 이뭐 그 당시에 조선인이라는 조선인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거죠 그 화폐 교환 비율도 우리나라의 그 불리하게 끔 막 설정도 있고 그 그런 건 아니
이제 어떻게 됐냐면 이제 1920년대에 근본 유제를 폐지할
때까지는 일본 화폐는 근본이 이제 근본 위제로 발행이 돼요음 그러니까
금을 가지고 있는만큼 금을 확보한만큼 화폐를 발행했어요 그리고 나서 조선 은행권은 금이 아니라 일본 화폐를
기준으로 발행 발행하는 거예요 그러면 더 약간 친일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겠 그거랑 뭐 친일은 관계가 없는데
이제 조선을 이제 일본과 가 완전히 통합하지 않는 그런 원칙에 따라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이제 화폐 가치가 더 불안정하지 일본
일본 은행권보다 조선 은행권은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좀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뭐 경제 위기가 나면 조선이
먼저 이제 타격을 받는 그런 구조 뭐 제국주의가 경제위기를 식민지에 전가하는 것이 이제 기본 목적이기
때문에 의도이기 때문에 뭐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이고요 그래서 일제강점
말기가 되면이 문제가 친일파들에게 굉장히 좀 난감한 문제가 돼요음
친일하지 친밀하고 주장을 하는데 우리가 친일 하자고는데 상장 일본은이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대접해 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편입시킬 생각이 없는 거죠 편입 시키려면 뭐하로
식민지로 가지고 있어요 그건 집단 노예처럼 부리기
부리려고 이제 가지고 있는 거서 창치 계명 허용하고 그러면서도 말로는 이제
일본인처럼 만들어 주겠다 이름 바꾸고 그다음에 국어 상용 일본말 쓰고 그럼
누가 알겠느냐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상 언어를 일본말로 하면
차별 없어지지 않겠느냐 예 근데도 호적 제도는 바꾸질 않아요음 그래서 이제 외지인이 그러죠 또는
반도인이라고 해서 허적 자체가 이미 이제 이거 행정국 명칭이 다르죠 예
일본은 아무리 무식해도 알아요 일본은 도도 무현이음 도교도 교토도 그다음에
무슨 뭐 섬도 자고요 그다음에 무슨 오사부 그다음에 무슨 뭐 미야자와 현
뭐 이런 식으로 그 조선은 이제 도가 있어요 충청도
전라도도 군 이런 식으로 가요음 그러니까 호정 man 보면은 그 글만
보면 조선인 아닌지이 사람 호적이 반도인 자기들은 이제 내지 그러고
일본 열도는 내지로 그러고 이제 대만과 조선 그리고 만주 이런 쪽은
외지라노시아 그 그 외지인인 아닌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로 조선인들에게는 마치 그 일본인이 된듯한 착각을 심어 주면서
실제로는 끝까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이제 흡수 통합하려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은음 그런 좀 정 정책을 취했던 거죠 그래야 이제 군대 끌고 갈 수가
있고음 징용 할 수 있고 징병 진용도 진용이지빌
징병음 [음악] 저 뭐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네 편하실 대로 뭐 오늘 이야기가 안 되면 또 다음 주에 해도 되니까요 예 일본의 이제 전쟁 태평양
전쟁 일으키고 나서 중일 전장 대평 전장을 일으키고 나서 이제 일본이 가장 좀 절박했던 문제가 군병력이 만
200만 명 넘게 이제 군인으로 끌고 갔는데 그러니까 젊고 좀 건강한
사람은 다 군대로 끌고 간 거죠 그죠 다 군대로 끌고가 는데도 다 계속 죽으니까 군인이 부족해요 결국은
식민지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린 거죠이
처음에는 이제 일본 젊은이들이 청장년의 군대로 가면 그 인자들 조선인 남성 노동력으로
메다가 그것도 부족해지니까 조선이 여성들까지 근로 정신대로 끌고 갔었던 말이에요 근데 이제 전쟁 말기가
되니까 그나마 이제 병력이다 부족한 거예요 어 좋겠으면 감미 까지라고 해가지고 자살 특공대까지 만들어서 막
했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을 지급했던 거죠 조선인들을 군인으로
끌고 가야 되는데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믿겠어요 한국인들이 당시 이제 우리
조선이라고 부릅시다 이제 편의상 그 당시 그렇게 불렀으니까 일일본 군대 가서 총을 독립군을 향해서 쓴 그
백인협 같 백선엽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일본인에게 또 총을 겨눌 수
뒤에서 일본군을 쓸 수도 있는 거예요 그죠 예 못 믿으면 그러니까 이제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마치 진짜 전쟁 끝나면 일본
국민으로 만들어 줄 것처럼 계속 속인 거예요 회유 그 회유가 국어 상용하고
자기들 따내는 그다음에 아
저 창시 계명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일본 말을 쓰면음 일본인인지 조선인인
어떻게 알겠느냐라는 거죠 근데 지휘관은 다 알죠이 출생지가 충청
인지 아니면 뭐 저쪽에 어 뭐가 가나가와
현인지향 이제 한국 군대 문화가 나와요 일본
군대에 한번 생각해 보죠 독립군 무대의 구타가 있었겠어요 독립군부대
구타는 제 생각에는 없었을 거 같은데요 그렇죠 예 정식 군대가 아니잖아요네 막 그 상관이 심하게
때리고 혹독하게 다르면 나가 버리 지금 주가 계속 있겠어요
독인데 근데 일본군은 그게 안 된 거예요 아 조선군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매로 완전히
이제좀 정신적인 좀 뭐랄까 노예 상태로 만드는 그런 작업들이 혹한 구타 이건
뭐 그 당시에 일본 군대 끌려갔다 온 사람들의 한결 같은 기록이에요 혹한
구타로 이제 그야말로 이제 어 저항할 능력을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그
상태였죠 그런 상태에서도 이제 뭐 장준아 선생이라 김준호 선생이라 상당히 많은 분이 일본 군대에
끌려갔다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서 광복군에 가담하고 이런 일이 있었던 거죠 그 그런 거였어 그니까
어 일제 말기까지 조선인은 일본 국적에 정확하게 편입이 안 됐어요
그게 편입이 됐다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해방되고 나서
제일동포 일본인이 돼 있어 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일본 땅에 살고
있는데네 조선인이 일본인이 돼 있어야죠데 안 된 거예요음 그래서
이제 자기가 원하면 국적을 대한민국 국적을 갔든 북한 국적을 갔든 선택할
수 있게 해 놓고 아니면 그 둘 다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럼 일본 국적으로 편입시켜 주느냐 아니요
조선적이라고 해서 무국적 상태로 이렇게 이름만 남겨두고 매년 지장을 찍게 하고 지문 채취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어 나중에 이제 그 제일 동포들도 원하면
일본으로 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정도의 개선이 됐 거죠 이건 어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자국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조선인의 충성은 필요한데 조선인을 국민으로 만들어 줄 생각은 없었던 그런 생각으로 계속 집해 왔던
거죠 그 장의이 발언은 무지해서 나온 건가요 그냥 본인의 신념을 그렇게
그냥 무식해서 나온 거죠 그냥 무식해서 나온 거고 무식해서 나온 거죠 아니면 본인이 일본 이거 이런
거에 대해서 공부해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음 그래서 다시 얘기로 돌 그리고 무식하다 보니까 예 아마도
그랬겠지 손기정이 일장기 들고 그 가슴에 달고 뛰었으니까 일본 이제
국적을 해서 한 가지만서 말씀드리면 예 여권이 있었어요음 여관이라고 하는
거는 이제이 사람은 우리 국민이니까 귀국에 외교 관계가 있는 나라에 귀국에 가서 잘 보호해 주십시오고
하는 것이 여건이네 여권 제도고 있었는데 1930년대
말까지도 실제로 조선인의 수만 명이 외국으로 나갔어요 매년 뭐 장사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다음에 아예 만명을 가는 사람도 있고 뭐 굉장히 수만 명이 외국에
나가는데 조선총독부 관보에 여권 발행 건수가 나와요 연간
연간 50건도 안 돼요 어 여권도 안 가지고 나가요 누가 일본 국민이 되는
걸 그렇게 좋아하겠어요 한국인으로서 예 그런 상태였는데 이제
터무니 없이 그렇게 얘기를 하면 실제로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좀
안타까워요음 당연하지 뭐 그 식민지 있는데 우리 일본 국적 조선이 일본 국적 아니냐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가
그렇게 허락 가질 않아요음 베트남인들이 프랑스인이 있겠어요
프랑스 식민 주였다고 아니죠 프랑스 국적을 주지도 않아요 예 다 그렇게 자국민들을
단결시키고 식민지인들이 것 그게 식민지 통치 방 기본 방침이고 식민지 주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도 권리는 주지 않는 것 그것도 식민지 통치의 방식이에요 식민지는 이렇게 좀 악랄한 좀 통치
방식이거든요 대단히 교활한 통치 방식이고 근데 마치 아 사실 뉴라이트 계열은
꽤 오래전부터 그런 주장을 해 왔어요 어떤 주장을 했냐면 일본의 조선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제국 유럽 제국주의 아시아 국가 식민지와
달리 그게서 좋은 거라고 사람들은 주장하는데 야 그것마저도 미화를 시키려고 달리 한국을 후가 이도나
오키나 와처 확실한 일본으로 바꾸는 거였다고 얘기를 해요 의 바람인 거죠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았는데 하면 좋은가요 아 당연히 그건 아니죠 하면
좋아서 한국 민족이 아예 사라져 버리고 국가를 잃어버리는 건데요
국가를 뭐 잃었다가 찾았으니까 그건 관계가 없어요 좋은 거냐고 묻는 거예요음 좋지 않죠 왜 안 좋을까요
그 사람은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그래서 이제 뉴라이트 역사관에 좀 매몰된 사람들은
어 1945년 8월 15 유감스러운
날이에요 일본인이 될 수 있었는데 될 기회였는데 진짜 일본인이 될 기회였는데 일본은 살짝 그런 생각도
없었는데 아 일본인 일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일부 일부 그니까 어떤
거냐면 이제 1930년대 쯤 되면 일본 내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냐면 경성 천도론이 나와요 경성 천도론
일본이 바닷속 섬 나라로서 도쿄가 섬에 있기 때문에 대륙으로 뻗어나가는데 한계가 있다 수도를
서울로 옮기자 한 반도에서 서울로 아예 옮기고 일본인들을 100만 명 정도 한 반도로 이주 시키죠 이주시켜
더 이주시키지 일본인 100만 명이 한반도로 이주 하려면 한반도에 있는 조선인은 한 200만 명 정도가 나가
줘야 돼요 그 사람들을 만주로 또 이주시키지음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한국인들을 비우고 그 자리를
일본인으로 채우자고 하는 얘기들을 일본 내에서 확인했어요 그렇게함으로써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다 없애 버리고
시간이 흐르면이 사람들은 지금의 오 오기 나와인 이나 후가 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 럼 일본 민족의 하등 민족
예 일본의 하등 민족으로 편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일본인들은 하긴 했어요 그런데이 하등 민족
편제에 대한 이제 전망을이 사람들은 마치 진짜 일본인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한 거죠 근데 어 제가 알기로는 참 유감스럽고 좀
답답한 것은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음 괜히
독립했다 그냥 우 민족이라 그 하등 민족도 일본인으로 돼서 살았으면 더
좋았을 걸 전쟁 공포 없이 이런 이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이제 공동 민족 공동체에 대한 뭐랄까요 연민 책임감
자부심 이런게 완전히 없고 완전히 사라지고 그저 어 이제 뭐랄까요 잘
산다고 하는 개념 자체가 좀 그런데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대단히 동물적인 기생하면 된다
동물적인 좀 인간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죠 아 참 오늘도 여전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 오늘
그래서 이제 일본 그니까 일제 강점기 시대 국적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눠
봤습니다 뭐 오늘 못다 나눈 얘기 또 다음 주에 나누면 되고 또 다 그니까 이게 이제 오실 때마다 저는
두려워지는게 또 역사와 관련해서 어떤 이슈가 어떻게 터질지 물론 누적된 것도 있고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들도 많아지는 거 같아서요 두렵습니다 사실 좋은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매번 안 좋은 얘기만 우리가 사실 역사 학자들 보고 좌파라고 그래요이
특히 이제 박근혜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니까 그때 김무성 씨가 뭔 얘기 했냐면 역사학계의 90% n
좌파다 얘기해 그래서 지금 역사 관련 기관 중에 이상하게 다 이제 그 한국사장 자들을
다 배제하고 대부분 배제하고 그런 좀 일이
벌어지거나 인간만 봐요 그고 역사 발전이 시장의 확대 발전이 역사 발전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역사학자들이 볼 때에 역사 발전은 인간의 발이에요 더 나은 인간이 돼야
되는데 더 나은 인간이 어떻게 어떤 것이 더 나은 인간인가 대한 생각은 없고 시장 발전만 보다 보면 사람이
물질화 해요 그 제가 물질 주의라고 한 거거든요 사람 스스로가 물질화 됐고
자기가 물질이 돼보니 돼 버리니까 다른 사람도 물질로 보여요 이게 하나의 시대 사자로 지금
풍미하고 있어서 제가 암담하다 암울하다고 말씀드린 건 이런 거예요음
우리 사회 내부에서 여기에 대한 좀 각성과 반성이 성찰이 진행되지 않으면
맞습니다 어 여기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워낙 커서 인간은 퇴보하고 물질만
늘어나는 이런 세상이 지금 진행 중이다 이런 좀 시대 변화가 그 속도
마저 굉장히 빠르고요 엄청나게 빠르죠 아 지금 이제 2024년
시점에서 이제 자 스스로 친일파가 됐다고 조선일보 럼 이제 그렇게
얘기하는 뭐 어 문무왕이 동해바다에 자기무덤 외고를 맡겠다고 자기 무덤을
쓴 이래로 일제강정기 보다도 지금이 친일파가 더 많은 시대라고 저는
봐요음 단언할 수가 있어요 일제강 정기보도 지금이 더 자발적 친일파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때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끝으로
우옥환 님이 저는 물론이고 지금 말씀 주신 내용들을 많은 시민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배우질 못했고요
대한민국의 교육의 현실이 왜 이런 것인지 참 참담합니다 댓글을 지금
실시간 댓글창에 남겨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제 오마이 TV를 통해서
뉴스 호로록이 시간에 지속적으로 같이 배워 가면서 같이 좀 깨우쳐
가야겠습니다 오늘도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우영 교수님 다음 시간에 또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고요 뉴스 호로록 예 저는
다음 주에 찾아뵙고 뉴스 호로록 그 다음 주지만 핫스팟 시간에 금요일 오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믿을 수 있다 더 착한
보험 우리 가족의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 여러분은 보험을 어떤 식으로
가입하셨나요 혹시 지인에게 묻지 마시고 가입하신 건 아닌가요 매월 나가는 보험료 어떻게
보장받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내가내는 보험료가 적정한지 제대로
준비가 돼 있는지 보험에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보험료내는 것도 부담스럽죠 보험료는 줄이고 보장은
넓게 건강 보험도 자동차 보험도 나에게 맞춤 보장 믿을 수 있는 보험
전문가들 믿을 수 있다 더 착한 보험 원하시면 전국 어디서나 방문 상담
가능합니다 더 착한 보험에 우리 가족의 미래를 점검받아 보세요 본 광고는 손해보험 광고심의 기준을 을
준수하였으며 유효 기간은 심의 결과 통보일로부터 1년입니다
믿을 수 있다 더 착





===
18 Comments


@kim-ip9cf
1 day ago
이게나라냐윤석렬이는퇴진하라

4


Reply


@user-mi1gc1df1y
1 day ago
교수님 고맙습니다.

3


Reply


@sen860
9 hours ago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


@user-xe7sd4fi3s
1 day ago
반국가세력 부패카르텔 반민족 반민주 반헌법 반통일 파시스트 윤석열 긴급체포해야...

1


Reply


@PeaceLoveWorld-om4zx

1 day ago
중꺽마, 최지은 화이팅!!!'*



Reply


@JReadingKoreanpoetry
1 day ago
나는 태극기 세력. 그래서 태극기 집회 참석하려고 갔는데 술을 못 먹어서.. 막걸리 먹고 모자돌리고 가래침 탁탁 벹고 그러길래. 아. 거긴 다시 못가겠다 싶더라구요.

1


Reply


@PeaceLoveWorld-om4zx

1 day ago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Reply


@user-jn6yc7ee3k
10 hours ago
지은이 쌀마니쪘어 ㅋㅋㅋ 최지은 파이팅!



Reply


@user-hu6op6wp5x
18 hours ago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구나!
이제 거의 다 왔다. 
무덤으로 들어 갈 날이~!@

2


Reply


@user-fz8gq6sd6g
11 hours ago
TBS 최장군께서 오마이뉴스로 가셨네요!
"4시상륙작전 최장군입니다" 방송이 퇴근시간과 딱 맞아 첫방부터 막방까지 평일 매일 청취했었는데, 우연치 않게 유튜브 방송을 찾았네요!!!
앞으로 열심히 시청할께요!!
힘내세요~~~



Reply


@Dignocracy
1 day ago
물질화..



Reply


@cliobooks
10 hours ago
21:34



Reply


@user-zd5vw3fd8w
11 hours ago (edited)
백성들은 지나간  식민지 사관같은것엔  전혀  관심도없다.무슨개소릴하느냐?
이런 이슈가 국민이 고민하는 눈 높이냐?
주고 싶은것은 쌍욕뿐이다.



Reply
====

2024-08-13

최재영 '남파간첩' 의심, 확신 단계에 이르렀다 [주말 몰아보기] Aug 10, 2024


펜앤드마이크TV
120,706 views  Aug 10, 2024
===
2:49 / 2:02:36
최재영 '남파간첩' 의심, 확신 단계에 이르렀다 [주말 몰아보기]

펜앤드마이크TV
1M subscribers
====
Transcript


예 2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지금 제목 저
스크린 좀 바꿔 주세요 자 스크린 바뀝니다 예 스크린
지금 바뀌었습니다 그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최재영 종북 마귀들의 거래 예
민경우 전 대표님 모시고 어 그간에 이제 재형과 관련된 알려진 일부 내용
있는데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내용들이 있습니다이 부분 어 좀 다뤄보겠습니다
예경 길 대표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오늘 최재용 문제 다루실
거죠 예예 예 우선 최재용 문제에 대해서 구서 여러 가지 이렇게 다루기 전에 최재형의 좀 어떤 문제를 다룰
건지 먼저 계략적으로 어 어떤 뭐 큰 주제별로 뭐뭐를
다룰거다 먼저 이야기를 해 주시고 분야별로 한번 좀 설명을 시작하도록 하죠 예 보통 이제 최재영 씨를 다룬
영상은 많은데 최재영 씨 어떤 측면을 다루냐면 북한에서의 행적이나
북한에서의 어떤 북한에 대한 어떤 평가 이런 것들을 주로 다뤘는데 제가
지금 다룰 내용은 북한 최재영 씨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 맹경일 씨를
만났는데 맹경일 씨는 북한의 최고 이급 관리입니다네 그래서 북한 최고급
관리를 만날 정도면 최재영 씨는 신분이 보통이 아닌 거죠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보통에 종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근데 종 최재영 씨의 활동은
대남 공작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음 세 번째는이 부분이 이제 이번 그 방송의
핵심적인 건데 남쪽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친북 좀 노골적인 주사파
인맥이 그러니까 남쪽에 와서 활동했던게 관광이나 뭐 친교 이런게
아니라 친북 세력의 관리 또는 뭐 통일 전선 뭐 이런게
아니었을까라는게 오늘 저의 조사 내용입니다네 자 그러면 이제 다뤄보겠습니다 오늘 과 관련된 부분에
부분적인 영상 그리고 몰카 공작과 관련된 부분은 알려졌는데 실제 재원과
관련된 좀 자세한 실체 대체 얼마나 국내외적으로 종북 세력들 구체적으로이
종북 마귀들과 거래가 있었는지 북한에서의 실제 방문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런 부분들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건
어떤 겁니까 최재이 만난 사람인데요 예 북한에서 만난 사람
먼저 북한에서 만난 사람 그러니까 북한의 인사들과 거래 예어 뭐 만남
이런 거 자 그면 그것 좀 뛰어 주시겠습니까 자 첫 번째 보면 최재영
씨가 만난 사람은 일단 그 북한에 가서 북한에 다섯 번 정도로 간 거로
추정되는데요네 최고 이급 인사를 만납니다 그러니까 그냥 북한에가 가지고 관광이나 뭐 이런 친교의
목적으로 갔다면 적당히 학 관리를 만나고 오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최고위급 간부를 만났는데
최고위급 간부는 통일전선부 부부장인 맹경일입니다 사진을 보여 드릴 텐데요
일단 먼저 통일전선부가 어느 정도의 위상이면 통일전선부는 두 가지 사업을
합니다 하나는 간첩 활동을 하거든요네 간첩을 내려보내고
간첩을 간첩을 조직하고 간첩을 관리하는 그런 활동도 하고 그다음에
남북 대와 같은 업무도 하고 그다음에 한민전 범민련 조청 등을 관리하는
조직입니다 북한으로 보면 엄청난 위상의 조직이고 그 아래 검게 돼
있는 거는 잘 안 보여서 검게 돼 있는 거는 나무 위키에서 제가 따 온 거고요 한 장만 넘겨
주시면음 그 조금만 키워 주시죠 좀 키워 주시죠 예 예 그래서 그 부분은
저 지금 있는 거 전면으로 예 그렇게 해서 좀 키워 주시죠 여기서 보기에는 글자가 좀 작으니까 조금 한장 넘겨
주세요 그러니까 지금 순서가 좀 엇갈려 예 키워 주십시오 자 지금 보시면 어 맨 왼쪽에 사진이 가운데
있는 사람이 최재영 목사고을 맹경일 있니다 맹경일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 있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우리나라랑 비교하긴 좀 어려워도
통일부 장관 또는 차관 차관보다 높고 장관보다 어떨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
정도 부장이 장관 급이라면 부부장이 한 차관급 정도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거는 이제 통일부 통일전선부
비교했을 때 통일전선부 위상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 어려운 아 그렇게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오른쪽에 사진은 저게 2018년도에 왜 그 평창 올림픽 끝나고 남북
대화가 열리잖아 그때 평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는 사진입니다음 2018년 1월 9일 날 남북 고위급
변함을 위해서 어 북한의 관리들이 내려 고 있는 장면인데 가운데 있는
사람이 경일이 오른쪽 하단에 있는 사람이 리선권 있니다 리선권 보다도
위에 있는 사람이죠음 어 그렇게 돼서 그러니까 얘기하고 싶은 거는 굉장히
최고 이급 관리입니다 그다음에 아래쪽 사진을 보시면 저거는 최고인민회의 사진인데요
최고 인민의 맨 왼쪽 하단에 보시면 최용해 시고요 예 용입니까 이게입니다
아 최는 명실공이 뭐 북한의 최고 권력자에 속하고 예 최고 인민이
의장도 했죠 예 그다음에 오른쪽에 오른쪽 상단에 보시면 상단에 있 사람이 좀 나이가든 맹경일 있니다 어
예 그러니까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에 앉을 정도의 사람이에요 예예 근데 그
사람을 어 그 사람을 최재영 씨가 가서 만나서
어깨를 이렇게 툭 걸치면서 만나는 거죠 근데 다섯 번이나 가서 만났는데
그냥 관 리나 친나 뭐 이런 걸 관광이나 친교를 통해 갔다고 보기 어려운 거죠음 어 저게 쉬운 일이
아닌 거죠 또 한 장만 남겨 주시면 그러니까 대남 공작의 사실은 가장
핵심 지부가 통일 전선부대 그 통일전선부 사실상 통일 선부 이끌어
가는 맹경일 만나서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거래를 지금 만나서 협착을
했다는 것이죠 예예 예 그러니까에 거래를 했다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니까 그 사진을 그 맹경일이랑 사진을 찍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나을 수 있는게 아니죠 예예 엄청난 사건이죠 예 상당한 그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앞에
보시면 순서가 약간 아 그다음에 좀 키워 주시면네 최재영의 두 번째는
대남 사업인데 사람들은 보통 종교인이 그 북한에 가서 종교 시설을 볼 수도
있고 그다음에 좀 있다 최재형이 뭐 별 사람을 다 만났 남에 와서 민가 어머님들도 만나고
통일 TV 관계자들도 만나고 뭐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니라 그
종교인의 신분으로 남북을 남북을 오고갈 수 있는 것이 북한의 대남
공작의 핵심입니다 예 그러니까 무슨 우리가 생각할 때 북한의 뭐 잠수정을
타고 내려와서 무전기를 치고 이건 옛날 일이고 최근에 신세대 간첩들은
신세대 대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 거죠음 조금만 이제 빨리 보면
80년대 이전에는 연고 전략이라 그래서 북한에 남한 연고자가 있으면이
사람을 고리로 해서 지하당 만드는 건데 이게 80년대를 기 기점으로
고령화 돼서 불가능해집니다음 그다음에 80년부터 95년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민혁당 중부지역 당은 전부 다 신세대 전략입니다 신세대 전략이라는 건
북한에서 신세대 공작원을 육성해서이 사람이의 파랑 연결을 해서 새롭게
조직을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해외 여행 자유와
인터넷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니까 이제 새로운 유형의 대남 공작이 진행되는데
조금만 위로 올려 주시면 조금만 올려주세요 올려 주세요 아 내려 지금
내리신 거고 한 장 넘기세요 아 빠졌는데 그니까 두 가지 로죠
그니까 하나는 어 그니까 인터 하고 남북 교리가 활성화되고 해외 여행이
자유화 되니까음 그 90년대 중반에 미국에 있었던 친북 인사들의 활용
가치가 아주 높아지는 거예요네이 사람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그다음에 남북 남북 주민들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으니까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북 활 그니까 대남 공작이 활성화되서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나온 사람들이 한호석 신은미 노길남 이런 사람이고 이 첫 번째
경로 얘기를 하는 거죠 예예 아 그러면 아까 저 다시 한번 띄어 주시겠습니까
자 그 그거 예 띄어 주시고요 그다음 장을 뛰어봐 주세요 그다음 장 어 그
사이에 한 장이 비어 비어 비어 있는 거죠 왜 비어 있지 여기는다는데
아 정상적으로 돼 있는데 그 부분이 빠져 있네 여기에 지금 요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
네네네 그거 설명을 해 주시 예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그 지금
어 해외 친북인사 그니까 핵심적으로 해외 침묵 인사라는게네 그니까
옛날에는 그니까 80년대 이전에는 북한의 입장에선 가장 귀한 사람들이
누구냐면 남한의 연구가 있는요 예 잠만 금방 그 장면 그 예 예 이걸
띄어 주세요 예 내 내리세요 위로 위로 올리세요 위로 위의 걸 보고
싶어 위의 걸 예예 그래서 해외 인사들이 90년대 중반이 되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되고이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활동합니다이 유형에 있었던
사람이 한호석 정기열 노길남 신은미 최재영 이런 사람이고이 사람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적극적인 메신저 역할을 하는 하고 각정 미션을
수행하는데이 중에서 제가 볼 때 최고의 급이 한호석고 최재 형입니다음
그 정도로 최재형은 중요한 인물입니다음 그러니까 이게 한호석 그
그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남북을 오가는 종교인 또는 목사가 어떤 활동을 했다
이게 아니고 한국 대남 공작의 중심 포스트에 있었던 어떤 사람이다 이렇게
볼 수 있고이 경로는 남한 간첩이 해외로 출국해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사람을 접촉하는데 이게 창원 제주 충북 민청 간첩단 사건이죠
그래서 그 90년대 후반에 대남공작 사업의
두 상징적인 사건 중에 하나라는 거예요 그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거고 예이 정기열 저기에 있는 한호석 시
다음에 있는 정기신 사실 재미교포이면서 목사라는 타이틀로 해서
미주 사회에서 가장 종북 세력의 중심축에 있던 인물 그 인물이죠
북한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실제 뭐 주한미군 철수라는 평화협정 이라든가
국가법 지라가 그니까 북한에서 어 주장 해왔던 아주 뭐 그런 어떤
노선뿐만 아니라 사실은 이제 주체 사상까지 상당히 미주 사이에 버티는데
중심적인 역할 했던게 정기 뭐게 목사 신분은 목사입니다 그 목사 신분을
이용해서 했던 그 인물인데 그게 지금 해외 친부 인사 중에 한호석 정기열
그게 핵심이었는데 예 예 한호석 정기열 그러니까 우리가 한호석 정기열
노길남이 집중하느라고 관심을 덜 가졌던 사람인데 예 최재영 씨는 그의
준하는 준하는 정황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한호석
그니까 90년대 중반에 북한의 대남 공작이 해외 친북 인사를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거 그다음에 재미 교포는 신분상의 문제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남북 사이에 매신저 역할을 했던 것 등등이 한호석 비슷하죠
노길남 그도 비슷하죠 어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포스트에 있었던 사람입니다음 그다음에 세 번째는
최재형이 남한과 접촉한 사람과 단체인데 먼저 전제로 할 거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해외 체류 친북인사 국내 친북 세력이 연결되어 있다 삼각
커넥션이 사실상의 그 커넥션이 보는 전제
위에서 이제 최재영 씨가 남한에 들어왔을 때 만난 사람을 추적하는
거예요음 근데 이게 뉴스에도 다 보도가 됐는데 뉴스는 그래도 제도권 뉴스라는게 잘
모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최재영 목사가 남쪽에 왔을 때 남한 친북
인사를 만난 경로 그 사람들의 신원에 대해서 얘기를 할 건데 먼저 맨 위
가운데 보시면 최재영 씨는 1962년 생이고 95년도에 북한에 가서 NK 비전
2020 200이라는 걸 만들었고요 어 전체적으로 보면
2012년부터 12년 13년 14년 16년 18년 북한을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음 그리고 이게 50세 때거든요 대충 50대부터 활동을 주로
하고 자 여기서 남쪽과 접촉한 사람들을 지금부터 하나하나 찾을 텐데
위에서 보면 민족 통신 편집 위원이라고 돼 있잖아요 여기 하나 있고요 통일 뉴스라고 있죠 그다음에
통일하고 있죠음 요것들을 이제 하나씩이 사람들이 누군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네 조금 더 내려
주시면 다음 장을 넘겨 주세요 자 이제 크게 좀
크게시면 최재영 씨가 낸 책인데요 북바로알기 백문 답이라고 돼 있죠
그다음에 북의 교회를 가다 북의 종교를 찾아가다 북바로알기 백문백답
이렇게 세권의 책이 있는데 북바로알기 백 을 소개할 텐데이 책은 427시대
연구원이라는 데서 책을 냈고 그다음에이 부분에 공저자로서 종교
부분의 공저자로서 최재영 씨가 이름을 올렸는데 여기서 보통은 이제이 사람이
국력의 종교에 대해서 쓴 글을 문제 삼는데 저는 그 인맥을 문제 삼
문제삼고 있습니다 뭐냐면 북로 기라는 책을 한 챕터를 최재 썼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42 7시대 연구원과 접촉을 했다는 거예요네 427시대
연구원이 누구냐 하면 자 보시죠 자 조금 내려 주시면 아이고 이게 제가
얘기하기가 지금부터 겁이 나는데 뭘 겁을 내요 그래요 너무 아는 사람이
많아 가지고 아이 아직도 겁을 내시네 너무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20명 정도 되는데 여기서 한 2분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맨 왼쪽에 있는 분이 이채원 선생이고 전남대
교수고 그다음에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한충목 선생이라고 아 예 예 이렇게
손을 이렇게 두순 하고 있고 가는 예 진보의 대표를 상임 대표나 봉동 별로
상징적인 인물이죠 군자산의 약속을 사실상 실무적으로 총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그렇죠 권낙기 선생이라고
비전향 장기수요 통역단 관련자이고 그다음에 어 한국
주사파에 상당히 신망이 있는 사람이죠 그다음에 맨 오른쪽에 보시면
심재환 선생인데 이정희 씨의 남편입니다 아 그러네요 누군가 어디서
얼굴이 읽다 했더니 심재환 변호사 예 성대 78학번이고 상당히 그 변호사인데 그
옛날에 대학 시절의 관성이 그대로 많이 남아 계신 분이고음 오른쪽에
계신 분이 김경 선생 인데 울산 민혁당 울산 라인입니다 아 여자
여성분이 예 쪽에네 쭉 하고 민혁당 울산
쪽이라서음 울산 민혁당 잔당이 그다음에 쭉 보시면 어 돌아가신
강병기 선생이 한충목 선생 뒤에 있고요음 한충목이라면 현재 저 가본
가운데 그러니까 왼쪽으로 보면 세 번째고 오른쪽에서 보면네 번째 있는 한충목 씨인데 그 뒤에 있는 분이
누구라고요 강병기 강병기 전동에 있었던 분이시고요 맨 왼쪽에 현직에
있는 어 민주노총 관련자들이 좀 계시고 그다음에 제가 특별히 소개할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하나는 강병기 선생의 뒤편에 약간 키가 작으신 분네
저분이 일심의 관련자 이정훈입니다 어 이정훈입니다 이심의 관련자 그요네
그러니까 427시대 연구원이라는게 두 세력의 연합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일시해고 하나 또 하나는 주사파 관련자들 주사파 관련자들이 연합을
해서 42 7이라는게 뭐냐면 2018년 4월 27일 날 판문점
선언이음 김정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에 427 선언이
통일의 문을 여는 획기적인 하나의 전기가 될거다 따라서 연구서를
만들어서 집권에 대비해야 된다 뭐 이런 기조에 그래서 그래서 이제
일심의 관련자들이 형을 살고 나와서 이제 대거 가세하는 겁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정훈 씨고 이정훈 씨는 좀 있다 자세히 다시 소개하고 예 그다음에 어 세 번 어 오른쪽으로 세
번 넘어가면 역시 키가 좀 작은네 그분이 이제 손정목 시입니다 역시
일심의 관련자음 아 일심의 관련자들은 형을 살고 나와서 막 대놓고 이렇게 얼굴을
밀고 이러기 때문에 좀 어 황당한데 어쨌든간에 그니까 제가 주목하는 거는
이거죠 그니까 책을 같이 4위 7시대 연구원이 있고 4위 7시대 연구원의
뒤에는 심해가 있는데 심에이 사람들이 책을 내는데 그중에
한 꼭지를 최재영 씨가 냈다 이게 아니고이 책을내는 과정에서이 사람이
남쪽에 와서 남쪽에 와서 들이랑 접촉한
거예요음 그러니까 대남 공작원이 수도 있는 최재영 씨가 내려와서 간첩단
조직 사건의 한 중요한 관단 사건이었던 일심의 조직원들과 지금 그
관련을 맺은 거거든요음 그 관련도 그냥 한번 찾아본게 아니라 책을 같이
냈으니까 그 과정에서 많은 접촉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음 그런게 놀라운
거죠음 그러니까 어 이제 최재영 씨를 일단
보겠지만 그냥 4방 팔방으로 이렇게 다니면서 그런 과거의 그니까 현재의
침묵 인사들을 이렇게 엮고 다닙니다 그게 대남 공작이 아니면 뭐가 대남 공작인 이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시면 427시대 연구원을
얘기했고 예 전제 화면을 다시 어 자 아니 화면을 다 다른 화면
다음 화면으로 넘겨 달라는 얘기죠 예 그다음에 손정목 씨 예 저거 제일
위에 있는 사진 정목 씨를 얘기할 텐데 예 예 예 제일 위에 있는 사진 저 컴퓨터 화면 있는 예 예 그걸워
끼워 주시겠습니까 4 7시대 연구원의 손정목 씨인데요 예이 양반은 최근에
각종 그 언론 활동을 언론 활동 유튜브 활동을 활 아주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기에요 일심의 관련자 그다음에 두 번째 보시면 일심의
사건인데 좀 안 보여서 좀 그렇긴 한데음 일심의 관련자의 총책은
잠깐만요 저 저 사진 어 좀 도표 형태로 돼 있는 그걸 조금 더 최대로
최대출 한번 예 예 대회 연락부 아는게 통일전선부고 뭐 비슷한 건데
대외연락부 지령 보고를 하는 관계고 장민호 장민호가 성대 8일 학번입니다
성대 81학번 일심의 총책으로 돼 있고 이따가 장민호 씨 사진은 크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다음에 손정목 씨는 어 손정목 씨는 연대 82 83
뭐이 정도로 보이고 학원 원장이었다 3년 6개월 실행을 받고
나와서 지금 대회 활동을 하고 있고 이진강 있고요 이정은 씨는 이정훈
씨도 역시 3년 6개월 살고 나와서 형을 활동을 하고 있고 어 한 번 더
구속됐던이 양반은음 또 또 접촉을 하다 또 구속됐고 그다음에 유명한
최기영 씨가 있습니다 최씨 는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2006년 당시에 민주노동당 사무 부총장으로
민주노동당의 아주 시시콜콜한 인적 자료들을 다 북한에 넘겨서 문제가
됐던 사람이죠음 그니까이 심해가 심해가 4위 7시대 연구원이라는 거를
만들었고 4위 7시대 연구원이 낸 책에 책에 그 최재영 씨가 공을
했고이 과정에서 북한의 대공 원일 수도 있는 사람이 심이랑
광범위하게 접촉하는 일이 벌어진 거죠 이게 참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넘겨 주시면 심해를 조금 더 소개하면 어 이정훈을 석방하라고 돼
있고요이 왜 석방 이거 일심의 때문에 석방하라는게 아니고 이정훈 씨가 427시대 연구원
위원을 하면서 또 연루된 거예요 북한 공원이랑 또 연로 돼서고 그다음에
민중의 소리고 그다음에 마이클장의 사진입니다 제가 전향을 하게 된
주요한 계기 중에 하나가이 이게 지금 민 플러스라는는데 영상이 있어요 예
영상이 있는데 이걸 보고 했는데 저는 그러니까 북한 그니까
일심의 총책인 그 한 15분짜리 영상에서 자기는 어 그니까 통일
사업을 했다 북한하고 아무 관계도 없다 북한하고 그냥 동포로서 만난거다
이런 식으로 도 인터뷰를 하더라고요음 그걸 보면서이 참 어 참
웃긴다 싶었습니다이 양반은 성대 8일이고 7년 감옥을 살고 나와서
다시 이제 한국에 와서 한국의 유튜브랑이 언론 인터뷰를 한
사진입니다 유튜브고 앞에 거로 다시 넘기시면네 앞으로 다시가 볼까요
어디로가 볼까요 예 그 사상 예이 책은 뭐냐면은 이정은 씨가 쓴
책이에요 예 이정은 씨가 이제 출소하고 나서 낸 책인데이 책은 어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제가 우연히이 책을 그니까 어떤 모 출판사랑 출판을 하는 과정에서 이정훈
씨를 만났어요 그니까 출판을 해 달라라고 아주 간곡하게 요구하는 거고
그다음에 그 과정에서 잠깐 얘기를 했는데 자기는 주체 사상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려고 한다 전파하려고 하기 때문에이 책을 반드시 내야 되겠다 뭐 이런 기조 그러니까 일심의 관련자들은
일심의 사건이 난 다음에 대놓고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지 주체
사상라고 하는게 어떤 아마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 서적은 아닌 거 같고 어
활동가들 그러니까 주사파 활동가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뭐기구 형태 뭐
자신 내세 형태를 기록한 것인가요 아니 논문을 좀 쉽게 쓴 건데요 논문 그러니까 자체 교육령 자료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예 주을 보급기 위해서 좀 쉽게 쓴 책입니다네음 좀 대중적으로
쓴 책인데 그만큼 조금 더 공격적인 거죠 자체 교육력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건 아예 그 대중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 책을 쓴 거니까 자 그다음에 두 번째로 넘기
시겠다는 쭉 설명을 해 줬는데 최재현과아이들
여기 책을 냈고 사실 시대 연구한 사진을 보니까 열 건기 같은 비전
정치부터 시작해서 일심의 출신들 뭐 이정은 손정모 그다음 민혁당 이런
출신의 김희경 한충목 같은 과거에 그 무슨 사건이었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었는데 딱 로지가 지금 왔네요 한충목 시도 법이죠 법인 예 국가보안법으로 지금 년 사건 됐나요
어 이게 이제 일종에 다주 자들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아예 이제이
비전향 장기수 권낙기 씨는 뭐 오랫동안 어 정치범으로 어 수용돼
있다가 어 비전향 수라 그래서 운동권들의 의해서는 아주 승상 이렇게
뭐가 추앙되는 인물 중에 하나죠 신형복 뭐 이런 사람 못지 않게
추앙되는 인물인데 이게 운동권들이 아는 겁니다 이제 비 일반 사회인들은이 권낙기는 사람이 누군지
이런 거 알기는 어려운데 운동권들은 이런 어 북한을 추종해서 뭐 20년
30년 동안 북한에서 비전 저 어 우리 교도소에서 이렇게 장기간
수용하고 비전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양심 수라 그러면서 추앙을
하죠 그 대표적 인물 중에 권낙기이 사칠 연구원과 그럼
최재현과아이들 북한의 최재영 씨는 50세가 되는 해에
2012년에을 경계로 해서 다섯 번 정도 북한을 갔죠 북한을 갔을 때
행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근데 맹경희 만났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 가서 관광을 한게 아니고 맹경일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남쪽의 정세나 뭔가에 대해서 얘기를
했겠죠 그리고 내려와서 누구를 만나냐면 일단 42 7시대 연구원과
4 7시대 연구원에 있는 심의 관련자들을 만난 거죠 그래서 근데 만났을 때 책을 내기 위해서 만났을
거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음 정세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다음에 각종 남한의
이후의 지하당 사업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그다음에 적극적으로 북한에서 가져온 메시지 메시지 메신저들
메시지들을 그 전달하고 어떤 미션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는 거죠
아 그러면 실제로 북한의 어떤 사실상 지령을 받고 대남 공작 원으로서의
대남 공작 활동 을 가성을 지금 얘기하시는 거구요 예 아니 그게 그 저 이게 그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정황 증거가 뚜렷해요 그니까 한 호석이 딱 저렇게 한 거거든요 그니까 내려 남쪽에 와
가지고 외형적으로는 다 뭐 토론에 참가하고 관광하고 이랬는데 뭐 뒤풀이
같은데 가서는 맨 그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군자산의 약속이 어떻고 뭘 어떻고 뭐 어떻고이 얘기를 했던 건데
그니까 그거 그거의 행적 너무 딱 들어맞아요 그니까
한석이 뭐 안경를 만난 거 이런 거하고 그다음에 최재영 씨가 경이를
만나서 그런 거 거의 들어맞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거죠 추정 의심할 수 있는
거죠음네 어 지금 앞서 자료의 기초에서 어 최재영
씨가 일심의 관계자들 그니까 이게 다 사실 조직 지하 혁명 조직들이 일심이
민혁당 이런 핵심 관계자들을 만났다 특히 일심의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대남 공작 활동의 차원에서 진행이 됐다 한옥 씨
같은 사례의 경우에도 그런 사례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최재용 씨도 사실상
그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이외 이제 수사로서 밝혀지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런 걸 추적해 보면 또는 기존에 사실은 간첩단이 지하조직 해보는 사람들은 금방 알죠 이
사람들이 어떤게 만나서 어떤 걸 사실은 공작 활동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걸 포착해서 지금 자료로 보여주면서 427 시대 연구원의 지금 이런 일세
관계자들과 최재 연과의 관계 그 만남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을 해 주셨고요 예 그다음 자료를 한번
볼까요 그러면 통일 뉴스로 넘어가나요 두 번째 자료 통일 뉴스인데요 이거는 이제 통일뉴스는 이제 연대 학생운동권
세력들이 만든 겁니다 통일뉴스는 각정 허보 역할을 한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통일뉴스의 사진 통일 뉴스에 들어가서 몇 가지 사진을 뽑아 왔는데요 첫 번째는 어 최재영
목사가 민가협 민가협 집회장에서 발언 격려하는 장면이고요 그래서 방안 중인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통일뉴스의 사고요 하나 더 넘기시면
이제 북한에 갑니다 남과 북을 으로 누비고 있는 건데 김동기 하고
있습니다 비대형 장기수이 사람을 만나서 어 격려하고 뭐 이런
사진이고요 그다음에 두 번 세 번째 사진은 이거는 통일 뉴스 사진인데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통일 통일 TV 사장인 진천규 시고요 그다음에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이것도 그니까 통일 통일 TV 아는 어떤
언론사에이 사람이 부사장이 됩니다음 고문이 고문이나 자문위원이 되는게
아니라 부사장이 돼요 그래서 통일의 진천규
씨랑 저기 그다음에 최재영 씨가 격려 서로 인사하는 장면이고 이게 어디에
실리냐 통일 뉴스에 실린 거죠음 그다음에 또 넘기시면 아래로 좀
내리시면 한 장 정도가 더 있을 텐데요 자 그러면 통일 뉴스에 성향을
좀 알아볼 텐데요 통일 뉴스에서는 어제 사진을 그냥 제가 가져왔는데 음
저기도 보면 오른쪽에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한충목 시가 있잖아요 아 한충목
시가 적혀 보니까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어 오른쪽에 다섯
번째니까 아 예 예 키가 조금 커버는 예예 저 양반이 남만의 어 남만의
주사파 또는 통일운동 세력을 총 막하는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다음에 최근에 1번 문제와 관련된 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통일
뉴스는 한편으로는 통일 운동 자주 통일 운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 해외 친북 인사들 뭐 이런 사람들의 허부 역할 주사파들의
허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 근데 그 최재영 씨가 통일 뉴스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 거냐면 통일뉴스 통일뉴스의 어떤 각정 기고를 한다거나
사진을 보낸다거나 이러면서 어 그런 통일 수를 활 하고 있다 뭐 이런 이런 주제입니다
요거는 예 그렇습니다 그다음에네 번째 사진을 보내시 자 통일 뉴스에서 이제
최재영 아고 통일뉴스의 어 이사장 대표하고 어
진천가는 씨앗들이 굉장히 많은가 봅니다이 통일뉴스의 대표하고 만나서
이렇게 교를 하는 장면들이 단순히 뭐 우리 누구한테 소개를 받았으니까
얼굴는 한번 봅시다 해서 만나지 않았겠죠 어 상당히 이제 이런데 깊숙이 통일뉴스는 상당히 친북 상향의
대표적인 그런 어 기관지 중에 하나죠 자 통일 뉴스까지 살펴봤고요 통일
TV 한번 볼까요 그 영상 자료 띄어 주시겠습니까 통일 TV 통일 TV
출범 기자 의견인데요 그 쭉 사진을 좀 키워보시면
왼쪽에 아래 하단에 왼쪽에 두 번째 있는 사람이 어 저입니다 어 최재용
목사입니다 보시면 아 그렇군요 예 최재용 목사요 예이 사람이 통일 TV
아는 거를 국내 사람 국내 인사들이 만드는데 저기 보면 어 권 권영길
선생도 있잖아요 권영길 이장이 목사도 있고 그래서 국내외 인사들이
오른쪽에서 둘 넷 여섯 일곱 번째 보시면 이장희 목사입니다음 이장이
교수 교 지금 한국 외대 교수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국내외 인사들이 망라돼 통일하는 걸
만들었는데 통일 TV 걸 만들었는데 거기에 최재영 목수가 관여를 했고
근데 관여를 했는데 부사장까지 올라갔다 근데 이게 그 좀 심상치
않은 거죠음 그리고 그다음에 아래 통일 TV 지금은 이제 볼 수가 없게
돼 있어 니다 근데 옛날에 제가 우연히 이걸 봤는데 아 이거 차단했습니
너무 친북 성향이 노해서 그니까 북한 방송을 그대로 틀어 줘음 이를테면
김정은의 어 무슨 뭐 727 정전협정 기념의 행사 같은 걸 그대로
틀어주는데 다시 한번 그 한 장만 넘기시면 어떤 사진들이 있냐면 쭉
보시죠 내리시면 력의 청년 그니까 맨 왼쪽 상단에 보면 력의 하루라 그래
서 이제 그 쭉 소개를 국력 북한의
대학생들을 소개하는 장면이죠 어 이렇게 그니까 지금 나 원래는 정치
행사 같은 거를 이제 본격적으로 틀어 주는데 제가 갖고 온 사진은 이제 일상 생활과 관련된 거라서
대학생들인데 아 제가 주목하는 건 저 앵커들입니다음 앵커 들인데이 왼쪽에
있는 사람이 김창현 씨입니다 그니까 민혁당 울산지역 쪽에 있는 핵심인
인사입니다 그다음에 오른쪽에 있 사람이 아마 진보당의 손설 씨입니다 어 오른쪽에
있는 하단에 있는 여자 분이요네음 그래서 아래쪽에도 보시면 통일 tvga 예 지금 금
막혀 있거든요 막혀 있는 거를 하는데 맨 왼쪽에 있는 분이 이제 김창현
시고요 김창현 씨는 김창현 울산 김창현 예 지금 그러면 지금 과거에는
통진당 지금은 진보당 예예 그래서 이것도 어 이것도 사실은 제가
볼 때 4위 7시대 연구원을 만나서 책을 내잖아요네 근데 427시대
연구원에 누가 있는 거냐면 누가 있는 거냐면 심해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이 대남 공작적 차원에서 보면
지금 최재 영이라는 사람이 남쪽에 내려와서 일심의 관련자들을 만난 거거든요 실제로 만난 거잖아요
그다음에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것도 결국 뭐냐면 민역 당이 깨진 다음에
음 당 당하고 북하고 연결이 된 거예요음 그니까 통일도
보면은 저게 저런 식으로 통일 TV 부사장이며 누구를 만난 거냐면 결국은
민혁당
울산파일럿 들이 다 종으로 연결돼 버리는 겁니다음 그리고 그 역할을
이제 해외 친북 인사가 들어와서 북하고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했다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음 저런 저는 저 사진 보고 보통은 제 그 보통 어떻게
저런 사진을 런 저런 방송을 내보낼 수 있냐라고 얘기하지만 저게 저게 좀
다르게 보이는 거죠 그니까 최재영 목사랑 김창이 만났다음 이거는 좀 범상치 않은 는거죠음 그러니까 지금
진보당은 우리가 경기동부 경기동부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사실상 경기동부와
울산파일럿 보입니다 마치 군자산의 약속을 할 때 한호석의 역할하고 거의
비슷해 보입니다 그 한호석이 그런 거거든요 민혁 당이 있었는데 민혁당이 깨졌죠 민역 당이 깨진 상황에서
누구와 누구를 엮는 거냐면 민혁당 잔당 잔당인 경기 동부와 울산을 엮고
새롭게 인천을 끌어들여서 군자산의 약속을 실행하는데 군자산의
약속이라는게 사 민혁당 이후에 끊겨진 대남 라인을 보고한 겁니다음 대남
라인을 복원하는 건데 지금 저 사람의 역할은 어 예를 들어서 어 북북
그니까 남쪽에 내려와서 그동안 이렇게 잠자고 있었던 또는 수면 아래 갈아져
있었던 대남 라인들을 하나씩 연결해서이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거죠
지금음 그러니까 이를테면 북한에 북경에 있는 어떤 호텔에 대남 공작원
하고 그다음에 남쪽에 있는 침묵 인사가 같이 들어 투숙을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투석을 했을 때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모를 뿐이지
근데 투석을 했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하는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음 그니까 북한에 국경에 있는
어떤 호텔에 어 북한에 있는 북한의 대남 공작원이 묵었고 그다음에 친부
인사가 묵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라는 거가 무관하죠 그 사실을 모를 뿐이지 근데 지금 최재영 씨의
행적은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게 좀 감각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저도 그니까 최재영 씨를 보면 거의 한호석 했던 역할하고 거의
비슷해 보이고 그다음에 모모씨가 있어요 한 모모 선생이 있는데이
양반이 저랑 이제 별 관계가 없는 조건에서 최재영 씨의 행적을 보더니
저사람 저 사람 행적은 간첩이라고 해도 아무 상관없다 그럴 정도로 어
너무 정황이 불투명하고 의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예 최재영 씨가 지금 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어떤 인물들을
만나오고 있는지 어 뭐 그 시기별로 쭉 하나하나 날짜별로 이렇게 시대별로
연대순 식으로 나누진 않았지만 주요 어떤 기관 인사 이런 걸 중심으로
나왔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에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관련되 있는 아까 경일
뭐 부원장 부부장 부원장이 공식 시은 통일장
먹고 아태 위 이런 건 부원장 있지만 아마 부부장 것 같은데 경일 씨하고
만나서 만일 대남 공작에 사실상 북한에 뭐 노동당이 가입을 했는지
이런 건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저런 정도로 깊게 관련돼 있다면 어 조당에 가입하고
충성맹세를 했을 가능성도 에 두고 그 단순한 그것을 떠나서 어 한국 사회에
와서 이런 과거의 지하 조직의 핵심 멤버들을 두루 만나고 조직을
결성하는데 참여하고 했다 그러면 실제로는 한국에 들어와서 대남 북한의
지령이 따는 대남 공작 활동 간첩 활동을 했다 뭐 조직 관련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어 관련해서 북한의 지령과 또 북과의 어떻게 연계하고
한국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최재영 씨가 그런 부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제 그런
부분에 관해서 그것을 이제 좀 이야기를 가능성을 이야기를 좀 하시는 건데 그러니까 최재형이 일심의
관련자들을 만났잖아요 만났을 걸로 추정되 아아 이것 자체가 그냥 대공 대공의 대공
혐의점이 있는 겁니다음 그게 무슨 우리가 추정하고 이런게 아니라이 사람들이 송일 TV 과정에서 울산
파랑 접촉을 했다 그냥 그냥 이건 대공 수사 라인이죠 수사 혐의가 있는 거죠 그 정도로 이분 이분은 단순한
어떤 우리가 몰라서가 아니라 정황상 증거가 너무 뚜렷한
상황이죠네 자 지금 얘기한 건 어 최재영 씨는 그간에 우리가 이제 몰카 공작 김건희 여사 몰카 공작 부분에
주로 집중을 해봤고 일부 알파 정도로 해서 최재형이 과거에 북한에 왔다
갔다 했다 뭐 이런 정도로 이야기를 했는데 최재이 한국 국사에 와서 어떤
활동을 추적을 해보니 대공 혐의점이 될 만한 실제로 대남 공작 활동을
했는 것으로 보이는 이런 행적들이 확인이 된다는 건데 어 이게 사실은
이제 대공 수사 기관에서 정밀하게 추적을 해야죠 짧은 시간에이 증거들을 확인하기는 어렵고 보통 한 간첩단
조직들도 뭐 짧게는 5년 많게는 10년까지 추적해서 어 기소하지
구체적 물증을 확보 기때문에 긴 기간 추적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이 최재형의 이런
최정이 남긴 스스로의 흔적들이 있으니까요 예 사실은 이건 배공 수사
기관이 최재형이 한국사회에 와서 그런 공작 활동을 했던 어 대공 혐의로
추적 등한 그것들을 상당 했다면 사실은 수사 단계를 지금 생각해볼 문제이기도 하네요 예 예 예 그 그게
없어서 그래요 아까 3단계 전략 을 얘기했잖아요 연고 전략 그다음에 신세대 전략 해외 전략으로 나눈다면음
그니까 결정적인 증거라는 건 지령 수수 든요 지령 수수 장면이 노출이
되어 되는데 과거에는 그게 스테가노 가로나이 암호를 통해서도 이게 주고
왔다 갔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포착하면 되는데 이건 해외 인사이
북한에 가서 뭐 하고 이런게 다게 은밀하게 이루어져요 그다음에 친교 활동으로 위장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증거 포이 어려운게 하나 있죠 그니까 증거에 너무 이렇게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거고 두 번째는 지금
사건은 그니까대 수사를 해도 아무 지장이 없는 상황입니다 어 그렇습니까 대공 수사를 해도 그니까 일단은 세미
관계자라는 이런 어 인물들고 접촉했다는 것만으로도 아 그게 엄밀한 거는 좀
따져봐야 되긴 하겠지만지 따져봐야 되겠죠 왜냐면 수사를 하려면 수사는 단순한 데려다 한번 묶고 그 게
아니라 사실은 혐의를 잡고 기소할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예 그러니까 추적하는 것과 데다가 수사를 하는 건
좀 차원이 다르죠 이제 제가 볼 때 탐문 그다음에 그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는 거죠 충분히 문 당연히 해야
되는 일 같습니다네 그렇군요 어 저 최재형의 관해서 일부 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아 오늘 좀 민경우 대표님이 아주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부분들을
좀 자세히 어 항 이런 간첩 다조진 관계자들 깊게 이렇게 만나고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지를 못 했네요 근데 세 번째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니까 김건희
여사 관계 문제인데요 결국 이거를 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니까 최재영의 어떤 그런 행적이 김건희
여사를 어떤 뭐 뭐 어떤 의분에 어떤 정의감에 휩싸여서 자꾸 이렇게
강변하고 그런 거냐 아니면 이제 대남 공작의 일환인 거냐에서 저는
객관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음 그니까 그 어떤 뭐 무슨 몰카를 하고 무슨 뭐 뭘 뭘 찍고
이런게 대남 공작원 수준에 상당히 치밀하고 강력한 동인이 없으면 그게
쉽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그 일반 일반 사회인이 종교인이 그냥
어떤 정의감에 넘쳐서 뭐 사진을 찍겠다 이게 좀 납득이 잘 안 되는 국이에요 그리고 그거를 뒷받침하기
이런기를 했던 거죠 아 자 최재형이 국회에 나왔었죠이 만일 대남
공작원이이 맞다면 최재형이 대남 공작원이 국회의 증인으로 나온 셈이
됐네요 어 대한민국 국회 안에서 대남공작원 사실상 간첩이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장을 펼쳐 놨네요 누가 민주당이 그런 꼴이
됐는데 최정이 이렇게 과거에 간당 관계자들 나 지하 조직원 관계자들을
계속 만나면서 무언가 이걸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사전에 파악이 됐으면 사실 국회에서이 몰카 공작이 어쩌나 어쨌나
이럴게 아니라 북한의 간 문제도 따져야 되겠지만 한국 사이에서 일심의 관계자 지금 아까 누가 있었습니까 저
이정훈 이정훈 뭐 이런 인물들 왜 만났냐 그 사실상 북한 종하는 간첩인
너희 대남공작 시공가 아니냐 일미 관계자들 왜 만났냐 또 민혁당 관계자들과 이렇게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그런 사람들과 무슨 관계냐 비전향 권나희 씨 비영 정기수 권나희
씨 만난 적 있느냐 대남공작 차원에서 접근해서 최재 형을 따져야 될
문제였군요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아 그러네요 예 시각을 좀 바꿔야
되겠네요 이제 몰카 공장뿐만 아니라 그거 이제 어 검찰에서 어차피 수사 단계로 있기 때문에 히려 위회
관심사는 그 못지 않게 대공 수사의 관점에서 어 한국사이 와서 간첩
활동을 했던게 아닌지 어떤 어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한국에 와서이
많은 그런 친북 인사들을 만났는지이 문제를 추적하고 대남 공작 차원에서
김건희 여사로 만난 건지 예 예 예 대남 공작 차원에서 지금 각까지 몰카
공장에 관련해서 언론에 인터뷰를 하는 건지 국회 증인으로 나가서도 그런 대남 공작차 에서 그런 걸 정치적으로
윤성 정권을 붕괴시키고 한국 사이의 자민 체제를 교란시키고 한 건지 그런
어 간첩과 또는 종북 인사들과 그것을 도모하고 있는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이제 파헤치고 따져봐야 되겠군요 예 예 그렇게 보입니다 어 민경우 대표가
중요한 문제를 제기를 해주셨네요 자 혹시나 이에 국회라
대공 기관이 본다면이 문제 좀 포인트를 잡아서 한번 연구를 해주 십 그리고 민경우 대표 한번 연락을 해서
제가 연 여기서 전화번호는 뭐 바로 알려주 없지만 팬앤 마이크나 저한테 연락 주시면 민경우 대표님 연락처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대공수사 기원에 지금 이런 자료들도 사실은
추적을 했기 때문에이 자료가 있 찾아진 거죠 통일 뉴스나 통일에 다
있던 자료이긴 하지만 어이 이런 자료들을 추적하지 않았다면이 행적을
밝혀낼 수가 쉽지 않았겠죠 근데 지금 그 민경우 대표께서 그걸 계속 추적하면서 어 이런 간첩 관련된
활동들을 여러 가지 지금 찾아낸 건데 어 오늘 소개하지 않은 것들도 혹시나
있으신가요 소개 어 조금 예 좀 있습니까 더 추적을 하실 생각인가요
어 동인이 있으면 동력이 있으면 그럼 동력은 이제 국회라고 대공수사 기관이
1차적 되겠네요 어 대통령 실에서 관계자가 이걸 본다면 어 이걸 김건
여사와 단순히 이거 몰카 공장 문제가 아니라 대남공작원 어 최재 형일 가능성
대남공작원 최재형이 간첩 활동 차원에서 버린 일이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이 부분을 어 어떤 문제로 지금 헤쳐 나갈 건지 방향을 좀 잡아
주시고 민경우 대표들을 포함해서대 어 이런 공작 사업의
관계자들 핵심적으로 어 전문적인 일 했던 사람들 해서이이 사건을
추적하도록 한번 개회를 줬으면 하네 국회 대공 수사 기관 대통령실 물론
국정원 관계자들이 본다면 더군다나 관심을 많이 가져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이 방송이 오늘 방송으로 끝나는게 아니라이 김건 여사 만남
최정 속에 어떤 은밀한 문제가 있었는지를 파헤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네요 예 마지막으로 좀 어 정리 말씀이나 뭐 해주실 야기가 있으면 예
그 하여튼 뭐 반복인데 김건희 여사 문제는 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거를 할만큼 충분히 정황 증거는 쌓여 있습니다음 그니까 저희가 이제
유튜브라고 해서 막 얘기하는게 지금은 아니라고 아니고 충분히 아 그럴
만하다 그렇게 추정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이게 저희가 느끼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서 그렇게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 어 오랜 기간 동안에 사실은이 어
한국 사회 내에서 주사파 핵심 어 그룹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논평이
가능하고 이런 분석이 가능하고 이런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겠죠 예 민경호
대표님 오늘어요 관련된 뭐 그간의 추적 회원 상당히 노력을 많이
기울였을 텐데 수고도 해 주셨고 여러 가지 포인트도 잘 잡아서 해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민경우 대표님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침묵하던 시절 벤앤 마이크는 앞장서 자유와 민주를
외쳤습니다 자유파 정권 탄생을 위해 싸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는 쉼없이 달려갑니다 주주의 최재수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외곡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를 응원해
[음악] 주십시오 민경우 시민 단체 길 대표님
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최재영 문제 여기에 오늘 이제 어
진행 하겠습니다만 이제 김삼석지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지난번에 어 했던 거이 방송을
지난번에 굉장히 많은 분들이 봤어요 수십만 명이 이렇게 받더라고요 그리고 주요 관계 기관에서 연락 또 왔어요
와서 굉장히 어이 관련된 어 최재영의 행적들 이런 걸 자세히 새롭게 알 수
있게 됐다 민경우 대표가 굉장히 많은 걸 조사를 했더라 뭐 이제 이런 평가도 받았는데 지난번 것 중에 좀
먼저 좀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게 있으면 하고요 어 국내 뭐 북한의
최고급 인사 만났다 맹경일 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 부분 간단하게 좀 어 먼저 예 간단한 정리 유학 정리도
해 주시고 그다음에 김삼성 문제로 한번 좀 넘어면 좋겠습니다 일단 최재형 씨은 두 갈래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나가 청나라 권제 세가 관련된 사기 행각 이거는 지금 힘이
이걸 받아서 성명서도 내고 뭐 TF 꾸리고 뭐 이런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고요 저희는 이걸 다루지는 않고 두
번째는 어 최재영 목 최재영의 어떤 친북 행각 특히 나아가서 대남
공작원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갖고 파헤치고 있는데 자 그면 공작원이라는
증거는 세 가지로 제가 제기를 했는데 정황 증거는 첫 번째는 너무 최고
입급 관리를 만났습니다 북한에 다섯 번 정도 가서 어 그중에 한 번에 한
번에 최재영 씨를 만나서 찍은 사진이 있죠 아 저기 맹경일 찍 만나서 찍은
사 맹경일 같은 사람을 아무나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저거는 뭐 심상치 않은거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나중에 이건 기회가 되면 차분하게 얘기하면 좋겠는데 북한의대
정책의 흐름이 지금 옛날처럼 무전기 뭐 난수표 뭐 이런 뭐 잠수정 이런게
아닙니다 해외 친북인사 인터넷 뭐 이런 방송 이런 거라서 지금의 추세와
잘 맞는다 이게 두 번째고 세 번째는 결국 무가를 해야 되는 건데 이양반이
남북을 오가면서 굉장히 많은 일을 했다 뭐 강연회도 하고 어디 뭐도
하고 사람도 만났는데 그중에 친북 인사들 과거 관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있다 지하 공작원 출신들도 있었죠 예
그거를 쭉 찾고 있는데 옛날과 달리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좀 이렇게 좀
부주의한 거 같아요 그냥 찾으면 찾겠더라고요 예 여러 곳에 지금
흘리는 증거들이 막 곳곳에서 있다는 거죠 예예 그렇게 어렵지 않게 노력했는데 그냥 쭉 찾았는데 오늘은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예 자료 한번 좀 뛰어 주시겠습니까 최재영 2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난번에는
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최재형이 만난 이후에 여러 가지 우리 국내
있었던 지하 조직원들 어떻게 접촉했는지 이런 걸 살펴봤어요 그
4위 7시대 연구원 관계자들 이라든가 이정운 어 과거에 그 무슨 사건이죠
이정훈이 아 일세의 사건 지하 조직 사건이었죠 세미 사건 이정은 이런
인물들 만난 것 그리고 통일 레스나 민족통일 이런 통신들은 관계돼 있던
관계자들도 권낙기 시 그니까 비전향 장기수가 함께하는 그런 모임에도 참여했던 이런
것들을 행적을 했는데 자 2탄에서는 누구를 접촉하고 누구와
밀착하고 있는지 그 부분을 살펴 보겠는데 자 띄워 주시죠 예 예 최재영 이탄 시작합니다 최재영
2탄입니다 그니까 최재영 씨가 그 일단 먼저 배경 설명을 하면 최재영
씨가 한국에 와서네 지금 북 바로
알기라도 알기에 책을 낸 데가 427시대 연구원입니다음데 42 7시대 연구원을
그러니까 책을 냈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책을 내면서 남 남한의 친북
인사들을 대거 접촉을 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지금 김삼석 씨입니다 그
증거를 된다면 저 위에 보시면 42 7시대 연구원 창립총회 및 기념식
있데 그림이 좀 작게 나왔더 한번 잠깐 좀 더 예 중심에 도와
주시고 한국 주사파 운동을 거의 이끄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고요 저
가운데 정 가운데 보시면 한충목 씨가 있고요 맨 오른쪽에 보면 김삼 김삼석
씨가 있죠음 그다음에 그 뒤편에 보면 한충목 씨 바로 뒤에 이정은 씨
일심의 관련자가 있고 그다음에 고기서 하나 둘 셋네 번째 오른쪽으로 가면
손정목 씨가 있습니다음 여기서 지난번에 다른 사진을 통해서 보여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김삼석 씨가 여기에 있다음 그러니까 다시 한번
얘기한다면 김삼석 씨가 제 있다이 김삼석 씨에 대해서 그러면 김삼석이
어떤 인물인지를 좀 소개를 해야 되겠는데요 김삼석 씨는 외대 파리 학번이 그요 외대 러시아과 파리
학번이 그다음에 93년 4년 경에 남매 간첩단 사건에 연로 돼서 징역을
한 4년 정도 꽤 장기형을 살았고음 음 그다음에 어 윤미 씨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 알려져 있는게 남편입니다 편이죠 알려졌다고 하니까 무슨 김일 동거하는 거 같잖아요
윤미의 남편이지 윤미의 남편이고 그 가족사가 좀 특이한데 그니까 윤미
김삼석 씨의 김삼석 씨의 여동생이 김은주 든요 남매 간첩단 사건인데
근데 김은주 씨가 일심의 관련자인 최영 씨와 부부
관계입니다음 삼석 윤미 씨가 부부 관계고 그다음에 김 김은주 그다음에
최영 씨가 부부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주사파 운동권들은 이렇게 얽힙니다 다 관계가 얽혀서 저런
관계가 있을 수 있는데 지하 조직원들끼리 그 사실은 친북 핵심 관계자들이 엮어져 있는 조직 내부의
성원들 아지끼리 사실은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네요 예예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래서 김삼석 씨가 그거 있고요
그다음에 유명한 사건은 유경 호텔 사건이죠 예 호텔 관련자들이 탈북을
했는데 이제 김삼 씨가 가서 그니까 제 그니까 다시 북한으로 가라 이런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다음에 저도 김삼석 씨를 좀 압니다 자주 봤 개인적으로 봤는데 굉장히
과격한 사람입니다 저도 주사파 있는데 제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아무데서나 아무데서나 북한을 찬양하는 얘기들을서 서슴치 않게 하더라고요 아
그니까 어 어떤 특정한 비밀의 회합 장소에서만 뭐 북한 김일성 뭐 수령
장어 이런게 아니라 사석에서도 뭐 술자리에서도 그런 정도로 이야기를 합니까 술자리에서 북한을 옹호하는 막
얘기 북한의 핵이 어떻다 뭐 이런 얘기를 한다거나 제가 같이 있을 때들은 거는 뭐 장군님 장군님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저건 그니까 이순신 장군님은 아니겠죠 예예
그래가지고 깜짝 놀랬었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중에 그런 유형의 한 사람입니다 그 김삼석 씨가
저기 사진 에 있다라는 것은음 그니까 이럴 테면 어 저건 뭐 그니까
최재형이 4일 7시대 연구원을 통해서 어 김삼석 씨와 연루돼 있었다라고
하는 간접적으로 정황 연루되었다는 정황 증 거죠 그다음에 김삼석 씨는
자료에 보니까 예 427시대 연구원 연구 위원으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어 상당히 저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옛날에는 그냥
에요음 지금이 국가 범법이 물러 터져서 그런데 옛날 같으면 저런 사진
한 장이 찍히면 그거 그거 그거가 대공 혐의점 생각되고 그다음에 그걸
수사를 하고 뭐 이런 상황이 정도죠음 정도의 중요한 사건 사진입니다 예 자
김삼석 씨 남매 간첩단 사건의 주범 어 당시에 사건으로 징역 4년 장역
정지 4년을 받았다가 나중에 물론 조금 일부 사항들 중에 무죄가
나오면서 형량은 좀 줄었습니다 당시에 이제 뭐 조총련 계열과 연결되 있는
한 통년 일본의 한 통년 조직과 연계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 이런 것들이 상당히 이제 남배 간첩단
사건에 주요한 문제 였었죠 그래서이 김삼석 씨는 그것뿐만 아니라 한국
외대 출신이어서 사실은 경기동부 연합과의 관련성도 이야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경기동부 직접 관련은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네 뭐 아나주 내밀라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 예 그니까 그런 넓은 의미의 주사파 그룹에 있지 경기동부 연합의 소속 원이다 이렇게
보기는 어렵다고서 봅니다 아 그래요 한때는 사실은 이제 경기 동부 연합 이석기가 읽는 경기 동부 연합의 어
주 근거지가 사실은 용인 성남 지역이었어요이 지역 위에 수원인 수원과 인천 쪽으로 조직을 확대해 갈
때 김삼석 그 이호 핵심 매개 고리를 통해서 수원 지역에 경기 동부여 핵심
관계자들이 어 김삼석
매했는데 경기동부 조직원이다 이렇게 하긴 어려운데 경기 동부가 경기
동부를 넘어서 경기 남부나 경기 지역으로
확장하거나 그거라면 그건 동의가 됩니다 예 이만 남미 남매 간첩단
사건이 간첩 전향을 한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북한을 사냥하고 어 김일성
김정일 뭐 김정은을 수령으로 모시는 김일성 주의자들이 저렇게 47 시대
연구원 저게 굉장히 고약한 조직인 거 같습니다 지금 한 명 한 명 한 명을 살펴보면 살수록 무슨 사상과 정책
이런 걸 연구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고 하죠 저들이 말하는 뭔 사상을 연구하고 뭔 정책을 연구하는 겁니까
주체 사상을 대놓고 연구한다고 볼 수 있죠 예예 그리고 실제로 그니까
옛날의 연구원 들은 북한 바로알기 한민족으로서의 북한 같은 동포의 어떤
동질성 이런 차원에 있었다면 지금 427시대 연구원은 주체 사상 북한의
어떤 체제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그런 측면이 강합니다음 그니까 정면 돌파를 해
보겠다 어떤 하나의 국면을 뛰어넘겠다 이런 생각이 강한 거 같아요음 자
그러면 다시 이제 최제 형으로 들어오면 자 47 시대 연구원이나 지난번 민족뉴스
어 통일뉴스 민족 통신을 쭉 지난번 살펴봤는데 당시에 주요 인물들이
최재현과아이들
부부장인 근데 이정훈 손정목 그다 한충목 그다음에 손 한충목 런 제
핵심적으로 한국사회의 에서 어 친북 세력을 이끌어가는 김일성 주의자로서
상당히 침묵을 이끌어 가는 이런 세력들과 어이 최재형이 접촉한 그
흔적들을 쭉 찾아 갖고 그걸 자료로 이제 지난번 브리핑을 해 줬습니다 그리고 오늘 47 시대 연구을 다시
한번 보니까 여기에 어 최재영 씨뿐만 아이라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지하
조직원들 어 핵심적으로 남 간첩단 관련된 연결돼 있는 이런 조직원들
류에도 어 김삼석 씨도 있더라 남매 간첩단 이들이 어떻게 밀착하고
있는지이 부분에 관해서는 물론 추가적인 증거와 자료가 확보해야 되겠지만 저 사실 시대 연구을 매개로
상당히 조직들이 인물들이 엮여 있다 사실이 부분이 좀 핵심 포인트라고
보이거든요 사치 시대 연구원 요게 사실은 좀 자꾸 관심이 많이 가네요
예 예 그렇습니다 예 자 김삼석 씨 관련된 부분을 좀 먼저 살펴봤고요 윤미 씨 남편 어
김삼석 주목 반 윤미도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반일운동
반미운동 특히 반일 운동의 핵심적인 활동과 친북 활동가였던 윤명 의원도
하고 위안부와 할머니 뭐 속여 가지고 어 보조금도 받는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죠 자 김삼석 씨와 관련된 어 최재영의 밀착 거 어떤 밀착이
있었는가 살펴봤고요 다음으로 한번 넘어가 볼까요 자 두 번째 예 지금은
최근에 아주 화제가 된 바 있는 권역 권역 씨인데요 촛불 승리 전환 행동의
사무처장이 공동대표입니다 마이크 촛불 촛불은 이제 매년 매주 토요일
날 행사를 하고 그다음에 거리 행진을 하잖아요 거리 행진할 때 마이크를
잡고 이제 거리 행진을 이끄는 장면이고 어 광운대 91학번 이고요
저랑 가옥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96년도에 서년 처장을 했 했다가
구속돼 어 했던 친구인데음 자 그다음에 또 한 장 넘겨
주시면 아야 좀 키워 주시죠 예 같이 소개를 드리고 싶은게 백자인데 아
본명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백자 백자 백자라고 하고요 윤성열 타도
아는데 노래 각정 노래를 많이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인데 특히
유명한 경기동부와 관련해서 유명한 노래인 혁명동지가 를 작곡한 걸로 알려져 있죠음 어 본인은 이제 예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쭉 좀 내려가시면 예 조금 내용을 한번
볼까요 예이 친구가 이제 아까 권호형이 광운대 91학번 저기 국가보안법으로 다섯 번
구속된 걸로 돼 있습니다음 다섯 번이라게 국가보안법 봄은 불가능합니다
전과 20범 뭐 이런 건 가능해도 국가 보법 5번은 왜 불가능하면 국가 보법이게 옛날에
형이어요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저도 이제 3년 6개월을 두 번 받았거든요
그니까 3년 6개월씩 사는 거예요음 그런데 이제 그리고 반면에 한번 이제
우연히 이렇게 해서 집행 위로 나오더라도 두 번째 들어가면 형량이
지거든요 그렇죠 재범 뭐 이런 경우는 훨씬 더 지죠 세지기 때문에 저렇게
국가법 5번이 되려면 그니까 국가법 량은 그렇게지 않으면서 재범의 의지가
뚜렷해야 합니다음 좀처럼 보기 드은 보기 드을거나 거의 없는 형 저기
케이스인데 다섯 번이나 그 국가 번법 위반으로 우석이 됐고 저 사 단체는
뭐냐면 실천 연대입니다 남북 공동선언 실천 년대 하는 건데 쭉 보시면
법원은 권씨가 대법원에서 이적 단체로 판결한 a 단체의 핵심 구성으로 a
단체가 남북 공동선언 7천년 대고요 음 제주 경기 광주 지역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을 미제국주의 식민지 반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미국을 분단을
조정하 고착시킨 주적으로 삼아 반미 투쟁을 전개했다 식민지 반자본주의 저거는 그야말로 주사 파임을 공인하는
단어입니다음 어 그 그다음에 구성원중 5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이다음
그러니까 남북 공동선언 실천 년대의 54명이 국가 본법 위반자네 그니까 그 그다음에 좀 내려
주시면 98년과 2000년에 저건 학생 때 구속이 된 거고요네 그래서
징역 2년에 집행위에 3년 징역 8개월을 선거를 됐고 어 그렇게 해서
그다음에 최근에 또 구속이 돼서 국가 범법 보이고 권시은 기자와의 통화해서
국가 범법 위반 전력과 윤대 대통령 탄핵 탄핵 청원은 별개다 이렇게 됐죠
일단 권호 역시를 소개하고 권호 역시가 최재현과아이들 소개하겠습니다 좀 넘겨
주시면네 자 아 두네 금 키워 주시죠 예 두 번째 거요 밑에 거요요 두
번째 사진 예 저게 최근에 있었던 탄핵 이죠 그렇죠 국회 탄핵 정원
얘기하시는 거죠 탄핵 윤성열 탄핵 청원이 됐고 그래서 청문회가 열린
거잖아요네 그다음에이 청문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데 가운데 있는게 강덕구
원이고 왼쪽에 사진엔 잘렸지만 김준혁 위원이 있었고 오른쪽에 맨 오른쪽에
권역 씨가 있죠 윤성을 탄핵하자 이렇게 피켓을 들고 있는게 지금 권호 이죠 예예 그리고이 사람은 단순한
그니까 저기서 저런 사진을 볼 때도 그니까 중요한 거는 강덕구 의원이나
김준혁 의원은 얼굴 마담 있니다 얼굴 마담이 실질적인 주역이 따로 있거든요
그 권역 씨가 한쪽 바깥에 그 물러서 있는 듯 보이지만 촛불행동
장이면서 공동대표로 실질적인 실세인 거죠이 사태를 모두 모두 기획하고
조종했던 사람인데음 이게 제 그 좀 맨 아래 보시면 북조선 중앙통신 노동 신문에서
이틀째 촛불 행동의 96차 집회와 윤대통령 탄핵 국회 청원 등 공양
등을 전하면서 했다 그 북한하고이 통 방송을 통해서 연계돼
있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돼 있 그니까 권 씨가 저런 인물이죠 그니까
국가보안법 범으로 여러 가지 사업의 연루 돼서 국가 보법을 살았고
그다음에 최근에는 촛불 행동의 사무처장 경 공동대표로 촛불 투쟁을 주도했다 이렇게 이런 사람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사람과 권호 어 최재형이 어떤 관련이 있는건데요 자 위로 위로
넘겨주시죠 위로 올려주시죠 사진 위의 사진 예 자 조 사진을 이건 영상으로
있습니다 아 저게 사진 그 중에 영상 중에 하나의 사진 커가요 예 한 5분짜리 영상에 한 컷이에요 컷 예
그 나중에 자주 15라는데 들어가면 최재 형을 검색하시면 한 5분짜리
영상이 있는데 제가 볼 때 저런 걸 왜 안 지웠는지 모르겠는데에 그냥 제가 제가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5분짜리 영상에이 2015년 영상입니다 최재영 씨하고
권 씨가 만났죠 2015년도 그 그다음에 이게 뭐냐면 적군 적군일
경우에도 시신을 수습에 안장하는 규정이 있어요 그니까 파주에음 뭐 잘 모르겠는데 적군 묘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니까 한국군 어 인민 중공군 중 있습니다 주에 아 그런게
있습니다 그 있나 봅니다 그거를 묘 매장한 곳인데 그거를 이제 기념하고
그다음에 명복을 빌고 뭐 이런 행 행사를 했 모양이에요 그 행사를 한 5분 정도 촬영을 했는데
2015년이 비교적 젊은 최재영 씨가 있고 그 옆에 권호 씨가 있는 거죠
저것도 이제 시점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그니까 2010년도 그
기억을 좀 회개 기억을 더듬으면 2010년부터 집중적으로 최재영 시의
방북이 시작되거든요음 그니까 미국에 간 다음에 40대 때는 행적이
묘연하고 예
중갑 다섯 번 정 가요 내려 그래서 집중적으로 남과 북을 오가면서 1년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만나는 사람 중에 민족 통신도 있고 통일수도 있고
4시대 연도 있고 심해도 있고 권역도 있고 김석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김석인 거죠 그리고 이게 지금 보면 어 그렇기 때문에 만났 상 그렇듯이
파주 적군을 적군을 뭐 행사를 한다 이건 별로 중요한 행사가 아니에요네
어 그 그 그것을 빌미로 해서 과거
실천 년대의 핵심 멤버음 그다음에 향후 촛불 촛불 투쟁을 이끌어갈 촛불
투쟁을 주도하는 권호 역시를 이리저리 엮었다 이게 중요한 거죠음이 중요한
사진으로 보입니다 저 자주시보 한번 영상 한번 잠깐 한번 번 지금 저
우리께서 찾으신 자료인데 한번 잠깐 그거 한번 틀어 줄 수
있나요 예 그거 한번 좀 소리를 크게 해서 한번 띄어 주시겠어요 무슨
이야기를 앞 소리가 들립니까 소리 아 소리는 안 들린다고 그는 거예요 그러면 그 부분만 한번 좀
좀 예 광북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해서 어 저희가 찾아와서 어 뭐고
얘기했네요 북한군 중국군 묘지 예 적군 묘지라고 불리죠 공식명칭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625 전쟁 기간 동안에 죽은 조선 인민군 그니까 북한 인민군이 조선
인민군 중국 인민지원군 인공 중공군이라고 그러죠
그 이제 사망자들 유해가 여기 저기에 지금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저거 이제 2014년도부터 2016년 그 사에는 들은 중국으로 송환을 했어요
저 묘역을 근데 북한 그래서 남아 있는 건 지금 중국군이 아니라 북한 군들 있습니다 한 인민군들 저 파주
지금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37번 국도로 지금 제가
찾아보게 나오는데 휴전선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어요 있어요 원래 저걸 왜
거기에 만들었냐면 자신들의 어 뭐 국가나 고향은 북한이 때문에
바로 휴 운 곳에 적군 묘지를 둔 거죠 저기를
찾아가서 지금 어 재영이가 저 묘지에 북한 인민군 중공군 인사를 하고 저희
깎듯이 애국 마치 애국 열사 묘역을 찾아간 것처럼 절합니다 저기에 보니까
최영과 권역이 두 사람이 있네요 지금 서로 대화를 나분 분인데 현원 우리
국립현 찾아가서 저인 사를 안 하겠죠 우리 국군이 있 데는 그러나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이 저렇게 있는 데는 저렇게 가서 어 인사를 하고 어
예의를 표하는 저 영상이 저 자주시보 있는데 저걸 지금 좀 내용을 보셨나
보죠 저 영상을 저 내용을 저 중에 이제 최재형이 뭐라고 하고 고이 뭐라고 합니까 소에 그니까
그 그 명보 명 권호형이 하는 얘기는 별로 없고 최재형이 주로 하는 얘기는
계속 그러니까 우리가 남북의 화해가 어떻고 뭐 그런 화해가 어떻고 뭐 그런 얘기예요 상투적인 얘기예요 저는
사실은 저 행사에서 최재형이 했던 얘기는 그냥 뱅기라 생각합니다 아
저거고 그다음에 저거를 빌미로 해서 권역을 만나는게 중요 있겠죠음 예
그리고 어쨌든 방송이니까 그니까 노골적으로 한쪽을 취하는 얘기는 좀
덜하는 편이에요음 자 최재형의 행적들은 곳곳에 워낙 많이 이곳저곳에 저런 북
인사들을 만나게 된 흔적이 남았는데 권노은 어 상당히 우리 국내 상황을
알고 있고 본인이 특정한 지하 조직에 관계돼 있다면 아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제한적으로 할 것은 보입니다 그런데 저런 데서 다 이제 그래도 증거가 확인이 되는데요 앞서 저거
이야기를 하시다가 조금 끊어졌는데 뭐 추가적으로 더 설명할 제가 여기서부터는 그까 조금 깊은 얘기일
수 있는데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대남 북한의 대남 공작은 세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민역 당이
있었잖아요 그니까 9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모든 관심은 민혁당의 있었어요
민혁당이 깨지니까 누가 등장하면 한호석이 등장을 하면서 한석이 남북을 오가면서
메신저 역할을 했고 누구를 묶어 세우면 민혁당의 잔당들 경기동부와
울산 하고 그다음에 비주 그니까 주사파이면서 북한과 연계돼 있지 않던
인천파 를 결속을 해서 이른바 민주노동당을 만들죠 이게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거고요 2013년 13년에 그게 깨집니다음 그러니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에 자기들의 파트너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새롭게
뭔가 대남 공작을 해야 되는데 여기서 저는 두 가지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가 뭐냐면 창원 제주 청주 그다음에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
이때 작동 하기 시작해요 아 예 이때 작동하면서 2016년 17년 집중적으로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캄보디아 이런 데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만나거든요 그서 지하당 재건하는
작업이 하나 있고요 예 이게 그니까 그다음에 2 저게 지금 파주 접근로가
2015년이 그든 그러니까 통 중요한 건 통진당 이석기 사건으로 북 남한의
파트너가 사라진 조건에서 아 2014년 통진당이 해산 이후에 바로
직후에요 예 그러니까 새롭게 그니까이 과거 군자산의 약속에서 한석이 한석이
했던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노길남은 이제 그러니까 이제
신은미 신은미 좀 그러니까 최재형 통해서 뭔가 역 뭔가 제 2의 분자
산의 약속 같은 걸 만들어 내보자 했을 가능성이 큰 거 같습니다음 어 그니까 그러죠 그러니까 2 2천 민역
당이 있었고 민역 당이 사라지니까 파트너가 사라졌고 음 그다음에 통진당이 깨지니까 통진당이 또
사라졌잖아 그다음에 대북 사업을 진행을 하는데 하나가 이제 그동안
알고 지내던 청주 창원 이런 사람들 다 캄보디아나 베트남으로 불러다가
지하당 하나 만들고 그다음에 제 2의 한 호석이 나타나서 최재 형을 고리로
해서 남북에 흩어져 있던 주사파들 하나로 결속해서 또 하나 남쪽의
파트너를 남쪽의 파트너를 만들려고 하는 거 이게 이 사업의 어떤 일환의 고리의 중심에
최재형이 있었다 이렇게 보는게 저는 타당해 보입니다 아 최재형이 그냥
단순한 친북 행위를 한게 아니라 큰 흐름으로 보면 어 민혁당 사건이
1999년도에 터졌죠 어 1999년 민영에 당시에 김영환 아 그다음에
그누 그죠 2인자로 알려져 있었 예 하영호 그다음에 뭐 이석기 어 이런
그리고 나중에 통진당의 주유 인물이 되는 서울 남부지역 위원장을 했던 이상규 뭐 이런 인물들이 민혁당
사건이 1999년 터지면서 발각이 다 됐죠 그리고 이제이 조직 자체가 다
발은 세권이 됐습니다 그리고 후에 통진당을 사실 공개적인 대중 뭐
이렇게 합법 정당 형식으로 만들었던 통진당을 중심으로 해서 세력들이 모의
결집을 하고 지하 조직은 비밀리에 물론 있었겠죠 근데 통진당이 해산되고
그 이후에 어 이런 북한 공작원들이 일부 지금 드러난 청주
창원 제주 민노총이 간첩단 사건을 대거 이제 북한 공장 위해 조직들을
하고이 과정에 최재형이 어 남북을 계속 오가면서 상당히 그런 대남
공작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요 부분이 핵심 포인트네요 예예
아 상당히 이런 어여 조직이나 단 사건 핵심 관계자들과 밀착하는 이유가
그런 관계에 좀 있구요 흐름상 그니까 저렇게 많이 만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쭉 열거한 것만
해도 너무 진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음 그니까 관광 그러니까 보통
이제 남쪽에 오면 관광도 하고 정부 관계자들도 좀 만나고 그다음에 적근
묘에 관심이 있다면 그거에 대한 학술 행사도 참여하고 이런데 집중적으로 친북 인사들을 만나고 그 친북인사
중에 도 어떤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행사들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설명이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음네 최재영 2탄 추가적으로
뭐 설명할 예 최재영 2탄에에 주로 이제 김삼석 남매간첩단
김상석 문 어 인물 접촉한 거 문제하고 촛불 승리 전환 인동 권호영
지난번에 윤성열 대통령 탄핵 국기 청원운동 그 올렸던 그 권역이 실제로이 최재연
어떻게 밀착해서 활동을 했는지 그 사진과 영상까지 중간에 살펴보고 그
후에 전체 맥락이 간첩단 지하 조직의 흐름 어 민혁당 해산 이후에 통진당
또 해산 아니 민혁당 체포된 거죠 발각된 거죠 통진당 그리고 간첩단
사건으로 이어지는 데서 대남 공자학 활동으로 보이는 최정의 활동이 활동이
201 201 년 이후에 두드러지게 많은 그런 어 국내 친북 인사들 또는
지하 공작 또는 지하 조직에 활동했던 지하당 활동했던 세력들을 만나서 그런
것을 한국 내에서 어 정치적 조직적으로 어떤 거래를 하는 밀착하는
관계를 맺고 대남 공작 활동으로 보이는 그런 활동을 최정을 하는 그런
최재형의 행적들을 쭉 소개를 했습니다 그중에 오늘 집중적으로 김삼석 권역을
중심으로 어 살펴봤습니다 다음에 또 추적을 하면 또 3탄이
나오나요 지금은 어 추적하면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예 이제 그렇게 뭐
자료를 숨겨 놓고 이렇지 않더라고요 아 그래요지 찾으면 찾을 것 같습니다 예 그러면 이제 뭐 다음 주가
아니라도 혹시나 자료가 좀 축적되고 준비가 되면 또이 최재 저 최재형의
그 행적들을 좀 추적해 가보겠습니다 그건 알려지지 않았던 최재형의이
행적들 있니다 일부에서만 알려졌죠 뭐 몰카 공작 플러스 북한에 왔다 갔다
한 행적 또 일부 이런 거 말지만 지금 국내에서 어떤 행적들을 가져왔는지 살펴봤고요 사실은 어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에 들어가서 무엇을 했는지 또 미국 미주를 중심으로 해서 어떤 공장 활동을
버렸는지 목사라는 타이틀을 들고 재미 교포란 타이틀을 가지고 어떤 걸 했는지 이걸 최재을 최정을 추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지금 사안이라 계속 그 부분을 우리 민경우 대표님 하실 것 같은데 준비되는 대로 또 3탄을
진행을 해 보겠습니다 예 그 부분은 좀 마치고요 자 이슈를 국내 이슈로 들어와서 한번 어 이슈 좀
다뤄보겠습니다 최근에 여론 지형을 좀 살펴보면서 전국의 현황을 좀
간단간단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어 자 필류 비해 어 그 관련 자료 한번
좀 띄워 주시겠습니까 예 예 그 먼저 좀 어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좀 해
주실 걸로 자료를 가지고 왔는데어요 관련된 거 좀 어 분석을 좀 해 주시죠 예 그 필요비 뛰어
주시죠 계속해 예 지금 강경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부정
지지율이 63% 정도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놀라운 여론 적인데 임기 단축 개헌 임기 단축 개헌이라는 사실상 탄핵과
같은 걸로 보이는데 그거에 찬성하는 여론이 57.1% 반대가 33.6% 그요
33.6% 대통령 긍정 평가와 유사한 지지율이 그요 조원
cni 7월 6일에서 8일 날 조사한 거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찬성에
찬성한다 57.1% 반대한다는 답변은
39.8% 그런데 문제는 57.1% 특히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이 거의 50.3% 우리나라 그 국민들 중
50% 정도가 대통령의 탄핵을 매우 찬성한다 이런 여론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강경한 반윤 여론이 상황을 압도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를 넘겨 주시면 그니까 첫 번째 핵심적으로는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서
부정 지지율이 여전히 강 과 그중에 어 임기 개헌 단축 임기 단축
개헌이나 탄핵과 관련 어 찬성 비율이 57% 이른다 그래서 상당히 강경한
반율 여론이 형성되 있다 그게 요론 지표로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게 첫 번째 이제 분석이네요 예 두 번째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 얘기하려는 건데 민주당의 미세한 균열은 확인되고 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이 것이 오늘 제가 준비한 얘기 핵심인데요네 민주당대 국민의 힘 여론
지형이 25대 36으로 민주당 지지율의 미세한 하락이 목도 되고
있습니다 자 이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인데 몇 가지 여론 지표를
소개하면 그러면 이제 민주당도 그렇고 국민 임도 그렇고 전당 대회를
치렀어요 그래서 새로이 당대표를 뽑았는데 그니까 누구를 더 기대하냐라고 물었더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기대한다 46.6% 대표의 국힘 기대한다 43.1% 해서 어 저런 거고요
그다음에 향후에 굉장히 민감한 조성된 정세에서 민감한 거는
종부세 아고 금투 같은 겁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 물었습니다 민주당이
중도 보수로 민주당이 종부세 완화 금세 효에 대해서 민주당이 중도
보수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찬성한다 37.6%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37% 저게 정말 강경한 여론 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종부세 완화 금세 문제는 여런 지형이 어 그 민주당 테
유리하지 않는 상황이거든요 유리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 37% 민주당의
정체성 민주당의 어떤 원칙 뭐 이런 거고 이거를 지금 대표한 사람이
진성준 정책 위원장으로 보이고요네 어 상당히 하여튼 민주당도 강경 코에서는
굉장히 강한 여론이 형성되 있다 이런 거고 그다음에 차기 대권 주자로
이명대 한동훈을 누구를 지지하느냐에서 이재명 22% 한동훈이 19% 이런
여론이고 그래서 그 뭐 나름 제가 설명을 좀 해봤는데 어 대통령 긍정
지지율이 35% 정도로 보고 대통령 부정 지지율 65% 정도로 보면
대통령 긍정 지지율 35% 처럼 흔들리지 않은 여론이고 대통령 부정
지율 65% 약간 둘로 쪼개져 있 둘로 쪼개져 있는데 어떻게 쪼개져
있느냐 첫째는 탄핵에 매우 찬성 한다가 50% 이재명 대권 지지가
22%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종부세 금수세탁소
상당히 강한 거 같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매우 찬성한다 50% 달하기
때문에 그다음에 종부세이나 뭐 이런 거에도 반 정체성 문제를 걸고 가는게
37% 때문에 어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음 그래서 저는 처음에 그이 여론 조사를 하게 된 계기가 민주당
지지세가 좀 의미 있게 갈라지지 않을까 의미 있게 좀 균열하는게 아닐까라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시작을 했는데 실제로 막상 판을 열어 보니까 어어 테면 65% 반윤 여론
중에서 어 좀 유연하고 좀 신축성 있는 여론이 질 양적으로 너무 작다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당 관련해서는 사실
이제 두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이재명의 어쨌든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큰 변동성이 생기는게에 가장 크고요 어 두 번째는 이제
한국의 정치지형의 변화에서 지금은 이제 이재명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이
권에 보이고 아직은 틈새가 어 없어 보이지만 이재명에 대한 피로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저는 있다고 보이거든요 현재 그리고 강경파들의 세들이 장기와
되면서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로 없는게 특별히 없다
아 이런 것들이 누적돼 간다면 정치적으로 이제 전체적으로 여론의 지지층 내부에서도 지지율도
상승국면다는 하락이나 정체 상태에 빠져 가정이 아주 높고요 이게 장기화
되면 그 안에서 어 지금은 이제 이재명 테 눌려 있었던 세력들이
분할을 시작할 것 이게 점점 어 이재명의 사범 리스크가 그래서 올해
10월이 내년 상반기는 중요한 변곡점을 하나를 맞거나 아니면 내년
어에 그런 두가 또 두 번째 복점이 올거다 이렇게 이제 일단은 보고 있죠
그래서 민주당이 상승 장기적으로 이재명 체제가 안정되고 세력이 단일화
되고 그 어떤 이런 것보다는 점점 세력이 어떤 균열 상태가 아 그런
어떤 요인 때문에 생 이렇게는 보죠 예예 어 지금은 일단 예 예 그렇게
보고 세 번째 지금 앵커가 얘기하셨던 거가 좀 크게 자 어 이게 이제
최근에 조선 중앙일보에서 나온 보도인데음 그니까 그래서 그 얘기처럼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피로 확산에 따른 의견 노출이 이견 노출이 있다
입법을 계속 강행을 했잖아요 뭐 무슨 뭐 최상명 특권 뭐뭐 25만 원
지원법 막 했는데 이걸 대부분 대통령이 거부권을 한 거부권을 하니까
거부권을 하거나 할 예정이니까 민주당으로선 되는 일이 없는 거죠 사실 그래서 그거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 최상병 특검 노란봉투 25만원 지원법 방송 사법 등 이렇고
그다음에 각종 청문회도 제가 볼 때는 약간 사람들의 피로감을 누적시켜
생각합니다음 그러니까 굉장히 뭐 말싸움이나 뭐 이런 걸 통해서 뭔가 한쪽이 한쪽을 제압하는 뭐 쾌감 어떤
그런 어떤 쇼맨십 같은 건 있었지만 저게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 청문회가
유지되도록 나타났다음 그래서 박홍근 의원이 7월 30일 날 이런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강경한 대응을 그동안 잘해 왔지만 지혜롭게 접근해서 실질적 성과를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박홍근 어 여당의 어떤 야당의 중진 의원들이
조금씩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이런 거고 그다음에 최상병
특검법이에 한동훈 3자 처리함과 연동이 돼서 쟁점이 될 수 있고 8월
달에 그러면 어 여야가 대체하는게 너무 정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그냥
민생 현안부터 처리하자음 전세사기 특별법 같은 거부터 먼저 처리하자 이런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어
이건데 이거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거냐 제가 볼 때 아까 얘기하 앵커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재명의 사법
처리 이런게 변곡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태풍 속에 약간
미세한 변화 같은 거 아니 어떤 숨막히는 찜통 더위 속에 잠깐 스콜이
온 거 뭐 그런 거로 볼 수 있고 그래서 지금 그런 유하 국면은 여야가
힘의 한계에 밀린 야권의 일시적인 유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했어 전체 어 예
그렇 어 그니까 지금 현재에 나타나는 여야의 유화 국면은 좀 아주
일시적이고 지역적인 거고 큰 변화는 변곡점이 될 큰 변화는 이재명의 사법
차리나 뭐 이런 것들이 있어야만 될거다 이런 정세 인식입니다 예 어
여론 조사 여론 지형을 보면서 전국의 상황을게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대통령 지지율과 탄핵 문제 민주당 내부의 지지세를 통해서
내부의 균열 상태가 어떻게 될 건지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국회를 중심으로한 여야 대치의 어떤 대결
국면 이게 이제 어떤 상황에 볼 건지 결국은 이재 명이 어 지금 수사
단계를 넘어서 재판 단계로 거의 다 넘어갔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성열 정부 초기에 수사후
과정이 이제는 재판으로 넘어갔습니다 수원중앙 서울 중앙직업 넘어 왔죠 아
그리고 당장에 10월에 이제 중요한 일심 선거이 예정되 있죠 이제 법원에
시계가 그것을 결정할 시간들이 다가오 있습니다 그래에 따라서 전체 정치
국민이나 우리 사유의 변곡점 생길 것이다이 문제까지 이야기를 해 주셨네요 뭐 혹시 추가적으로
마지막으로 하실 예 어 민경우 대표님 오늘 어 최재형 2탄 중요하게 좀
다뤄 봤고요 또 중요한 이슈들 또 중요한 우리 사회 필요한 냉철한 좀
분석할 부분들을 조사해서 또 어 분석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민경우 대표님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침묵하던
시절 팬앤 마이크는 앞장서 자유와 민주를 외쳤습니다 자유파 정권 탄생을
위해 싸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는 쉼없이
달려갑니다 주의 최재수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외곡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를 응원해
[음악] 주십시오 자 첫 번째 소식이 소식
먼저 전하겠습니다 최민이 과방위 위원장이 막말을 했네요
아 최민이 지금 이진숙 후보자 인사 청문이
진행됐고 이제 후보자 채택 여부에 관해서 어제 논의를 했었죠 어제
과방위 전체 위해서 박충권 의원 국민의인 박충 의원 탈북민 이죠
탈북자 출신이죠 어 국회 과방이 전체에서 이런 얘기했습니다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저질적인 민주당의 공를 좀 비판 비판하는 말을 했습니다 구에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이진숙 후보자를 공격을 했죠 누가요 최민 위원장이
그래서 그런 설명을 하면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남용한 한 인간에 대한
심각한 인격 인신 공격이 자 명예 훼손이 집단 인민 재판이다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그러자이를들은 최민희 의원이 발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박춘권
의원을 향해서 저기요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 하시다 보니 민주주의
원칙이 안 보이나 이렇게 강하게 되받아 쳤습니다 탈북민 향해서 막말을
한 것이죠 여당이 거세게 반발을 했죠 당시에 최영두 간사가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바로 항의를 했고 한동원 대표가 페이스북에 목숨을 걸고 탈북한
동료 수민에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차별과 막말이 일상화하는 것을 국민의
힘과 국민의 힘이 막아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요 란이 확산됐습니다
그러자 최민 위원장이 가방의 회의 도중에 박춘권 의원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대화 과정에서 전체주의 운한 부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박춘권 의원이 자유주의 국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오신 부분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사과드린다 자 최민 위원의 막말은 뭐 한두번이 아닙니다 어제 막말뿐만
아니라 이진숙 후보자에 관해서는 거의 인격 발언을 3일간 청문 위해서 그냥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이거 이제 국회의원의 사실 기본 자질 문제도 있죠 이건 정파
떠나서 기본 자질 문제를 다루는데 어제는 마침 박춘권 의원에 대한 막말
해 논란이 돼서 사과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자 정진 사님이 문제부터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변호사님 나오셨습니다네 안녕하세요 예 의원회 그 박충권 의원
탈북민 출신 의원에 대한 전체주의국가 출신이 뭐 와서 먼지 이야기하냐 이런
막말에 대해서 어제 참 논란이 됐었는데이 장면 어떻게 보셨어요
글쎄요 오히려 저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박의원이 북한에서 내려왔아요
그니까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을 북한에서 보냈기 때문에 우리랑은 완전히 다른 북한에 대한 실상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북한은 전체적 국가다 뭐 인민재판 횡행한다 이런 것들을 당장
저만 해도 그냥 머릿속으로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박중권 의원은 실질적으로
본인이 경험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생각에 박의원은 정말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 자기가
피해서 그런 것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 수가 없어서 우리 대한민국으로 내려왔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것이 자기가 본인이 어렸을 때 봤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 재판이란 말을 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훨씬 더
경각심을 갖고 아 우리나라가 진짜 이렇게까지 되어 있는가 진짜 굉장히
굉장히 놀랍고 두려워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다 하는데 오히려 최민이 위원장이 과방 위원장이
저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 도저히 납득이 되지가 않습니다 예과 과방에 있었던 어제 전체었던 한
장면을 먼저 소개를 해 드리고요 자 법사위에서 어제 논란이 있었던 어
장면들 어제는 아니죠 이제 그제인가요 논란 있었던 장면들을 좀
살펴보는데요 최재형 몰카 공작의 주범 최정에 관련된 과방위 저
법사위에 뭐 장동혁 의원과 조배숙 의원의 발언과 최재 최재영 씨의 발언
이런 걸 한번 묶어서 보겠습니다 먼저 국민의 장동역 의원이 어 증인
최저에 묻고 그에 대해서 질타하는 장면들이 있는데요 그 부분을 먼저 영상으로 보고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명의 한동훈 본무 장관 당시의 민정수석 씨를 겸하 역할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고의지 인사를 최종 조율할
때는 두 사람이 조율하는 거로 인지하고 있고요 주겠 영상 뒤에 좀 들리게 좀 해주시겠어요 영상이 안에
들리질 않으니까요 안쪽에 지금 영상이 들리지 않고 있
어 저희가 내용을 들어야 이거 설명이 가능하니까 어 여기 영상 영상을
조치를 좀 해 주시죠 잠깐 하는 동안에 어 자 준비가 됐으면 다시 이야기를
해 주시고요 예 장동혁 의원이 예 법사위에서 했던 최재 했던 발언 영상
살펴보겠습니다 명의 한동훈 법무장관 당시의 민정수석 씨를 경화 역할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고의지 인사를 최종
조율할 때는 두 사람이 조율하는 거로 인지하고 있고요 제보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JTBC 제보 돼 있다
이렇게 돼 있어서 장차관 아 인사에 대해서도 뭐 개입을 하고 뭐 조율한다
이렇게 지지로 답변을 하셨어요 그래서 확인하겠습니다네 장차관을 어떤
장차관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나요 본인이 알고 있기 제보받고 본인이들은 걸로 얘기하면 그런 말씀드릴 수 없고
JTBC 대용 라이브에 제보가 들어왔고 자 잠시만
그 이야기를 대형 라이브에서 그대로이기를 방송도 했습니다 자 잠시만요 방송 했다고요네 방송 이미
했습니다 아까 잠깐 분명 jtvc 제보 되어 있습니다 아직 보도가 안 된 것이고 곧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네
그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지금 제보가 들어와서 공거 중에
있다라고 말을 하는 그 방송에서 자 잠깐만 제가 제가 여쭤요 아까 발언한
거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JTBC 장차관 인사에 관해서 법무부 장관인 당시
한동훈 위원장과 최종 조율했다 그거에 대해서 아까
아니 본 답아 제가 답변했는데 믹스가 되 질문 자체가 믹스가 되고 본 자
본인 진술 그대로 할게요 저는 금융 금융 임명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부분을 많이 취재하고 관심을
가졌는데요 김건 사가 분명히 한동훈 법무장관 당시에는 민정수석 씨를 겸 역할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고위직
인사를 최종 조율할 때 두 사람이 조율하는 걸로 인지하고 있었고요 실제로 그런 제보도 받기도 했다 그런
거 있냐 그랬더니 JTBC 제보도 있다 아직 방송 안 됐다 곧 할거다 할 겁니까 그랬더니 그럴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했어 그리고 그 전에 장착한 자리 관련해서 장차관 인사에
개입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맞습니까고 질문하셨고 그거에 대한 답변이에요 자 다시 물을게요 저한테 명할 수 있는
기회를죠 그 제가 물을게요 다시 뭐 시간을 받으셔서 하시든 제 질문 시 짧으니까요 자
장관 인사에 입하고 법무부 장관과 당시 법무부 장관과 종 조율하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거를 가지고 계신가요 들어보십시오 근거 가지고 계신가요 자
증인 제가 했다 그러지 않습니까 잠깐만요 잠깐만요
신 답변을 안 예 지금 장관 인사와 관해서 은
당시의 법무부장 김건희 여사 간의 최종 주유를 해서 결정을 하는 것을
본인이인지를 했다 뭐 이런 발언이 오가고 어 관련된 보도가 있었나
없었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저 장면 변호사님 어떻게 예 보셨어요 글쎄요
뭐 장도경 의원이 그 제가 지난번에 제 유튜브에서 잠깐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진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존재예요 왜냐하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다 거친 사람이에요음 판사 출신이잖아요 판사 기 전에 행정고시 붙어 가지고 그 교육부에서
사무관 했었단 말이에요 행정부 있었죠 지금 국회 의원이니 입법부 아니겠습니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다
거친 사람 몇 명 안 되는데 그렇게 굉장히 이제 날카롭게 그 본인의 이제
능력에 걸맞게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근데
개인적으로 만약에 저 같았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먼저 저 최재
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최재영 씨가 목사란 말 하기가 싫어 가지고네 최재영 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야기를 물어본 다음에 당신이 저런 말을 했는지가 그 확실하냐 그거부터
물어볼 것 같아요 예 최재영 씨가 목사 맞아요 왜 목사 맞느냐 그은 플러 신학교 미국의 좋은 신학교
있거든요 거기서 선교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그랬고 뭐 미주의 장신대학교 대학원 총신대학교 대학원
뭐 이런 거에서 석사도 받았고 목사 안수 받은 거 같아 근데 최재형이 뭐라고 이야기했 북한은
정당한 나라다 이렇게 이야기했고 그다음에 북한이 정당한 나라인데 미국이이를 왜곡하고 있고 그다음에
친일 친미 4대 주의자들이 이걸 추종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더 중요한 건
목사아들 최재형이 뭐라고 이야기했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
있대요 그런데 북한의 종교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면 그다음에 북한의 교회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그 뭐야 나름대로 그 변명하고 있느냐
종교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으면서도 유동성 있게 융통성 있게
종교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니까 자유를 보장한다면 제안을 하는게 융통성 있게
유동성 있게 제한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 북한에 교 종교의 자유가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 있겠습니까
그다음에 최재형이 뭐라 그랬냐면 남 안에 있는 교회는 가짜 교회 그래요
남안에 있는 교회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성공지상주의 성공 제일주의의
가짜 교회다 그러면 진짜 교회는 어디 있다는 이야기했습니까 북한에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다음에 결정적으로
그 최재형이 진짜로 존경하는 사람은 뭐 김건희 여사 이런 사람이 아니고
누구냐 정이에요 최재이 김정은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했느냐 수령으로서 자질과 인품이 그 뭐야 풍부해 가지고 인민에 의해서
추대되고 김정일 수령에 의해서 낙점된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게 누구냐
최재 영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제가 만약에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저 자리에 있었다라고 하면 이런 이야기를 갖다
쭉 하 이런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에요 제가 다 읽지도 못했어요 제가 인터넷에서 구글링 해가지고 찾아
찾아본게 수백 페이지가 돼요 수백 페이지가 최재형이 북한가 가지고 북한
방문 기합시고 북한을 찬양하는 글이 인터넷에 출력하면 수백 페이지가
된다고요 제가 보다보다 그 읽다 읽다가 정리하다 정리하다 아 이제 그만할래 더 이상하기도 싫어 그랬던게
지금 제가 정리한게 이만큼 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만약에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그중에 몇 개 이제 또 그 뭐야
조 제일 상징적인 것들 제일 황당한 것들 몇 개 들어 가지고 최재 영한테
물어볼 거예요 당신 이런 이야기 한 것이 말이 맞느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느냐 부인 못 하겠죠 뭐 들이대면
그렇다라고 하면 목사가 다 목사니까 목사라고 다 목사 목사니까 목사 안수
받았다고 다 목사니까 그러니까 목사 중에도 이단도 많아요 제가 봤을 때
저는 최재 영이라고 하는 사람은 뭐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겠지만
하지만 저런 사람이야말로 이단이 아닌가 그다음에 저런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겉으로는 뭐 저 사람이 진짜 목회를 하고 있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뭐 강단에서 가지고 앞으로 오는 설교
랍시고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뒤로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그 김정은은 혈통에 의한 세습도 아니고 수령으로서
자질과 인품이 충분한 사람이고 북한에 있는 교회가 진짜 교회고 남한에 있는
교회 미국에 있는 교회들 다 가짜 교회고 이런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지금 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저 사람은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에요 그 저 사람은요 저기 1995년에 미국으로이
그 이민가 가지고 미국 시민권자 왜 미국 시민권을 땄으니까 북한 가려고 제가 봤을 때 그렇게 보여지거든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 국회에 와 가지고 저런 식으로 뻔뻔하게 증언을 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 영부인 하고 아무런 그런 제재가 없이 그냥 수시로 저렇게
이야기를 갖다가 할 수 있는지 저는 그게 참담하다 생각이 듭니다 최재영의
그 책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더군요 어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해서 또
김정일의 사망과 관련해서 과로사로 표현을 했더군요 네네 어 과로사 어
그래서 어 김일성과 김정일의 죽음이 과로사 그러니까 해명을 한답시고
하는게 네네 어 김일성의 경우에 당시에 김대통 통령과 정상회담을
준비하냐고 어 좀 과로해서 죽었다 이렇게 과로사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최재형이 2020년 11월 26일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4년쯤
됐죠 뭘 갖다가 했냐 통일 염원 75년 남북 평화 미술전이 하는 거를
개최를 했어요 그때 축사를 누가 했느냐 요즘 그 뉴스에 많이 나오죠
김두관 의원 당시 또 누가 했느냐 윤후덕 의원음 누가 했느냐 박정 의원
또 누가 했느냐 장영달 의원 이런 사람들이 그러니까 저는 굉장히 섬짓
섬칫한 생각이 드는게 최재형은 북한하고 완전히 한 라인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돼요 그런데 그
최재현과아이들 그 최재영 누가 또 이렇게 가까운가
김두관 윤덕 박정 장영달 완전히 민주당의 핵심들 아닙니까 민주당의
중진 의원들 아닙니까 이런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가지고 지금 축사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2020년에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거를 알아야 된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어쨌든지간에 어떻게 저런 사람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떠돌아다닐 수가 있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경각심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 어제
이야기했던 이제 제 장동의 의원이 장차관이 누구냐 당신이 말한 김건희
여사와 당시 어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인사 최종
인사 주유를 해서 장차관 인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 장차관이 누구냐 아니까 장차관을 대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제 말을 돌려서 JTBC 보도가 어떻고 이야기를 해서 이제 말을
돌려서 빠져 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이 문제는 그냥 정치적인 문제로
칩니까 아니면 법적으로이 문제가 만일 어 제 3자가 일 고발한다 든가
그러면 법적으로는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가능합니까 일단은 저기서는
이제 국회에서 만약에 저저 사람이 선설 했으면네 그러면 이제 위증죄가
될 수도 있고요 거짓말을 하면 그런데 그러려면 법사 위에서 고발을 해야 되는데 법사위에서 고발을 하진 않겠죠
왜냐하면은 지금 법사 위원장이 정청래 하지만 저걸 통해 가지고 뭐 그
직접적으로 김건희 여사가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 훼손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고발해도 되고요 그다음 이런저런 그 법적인 그 여러 가지 그
죄 그 제제가 충분히 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 장동역 의원 먼저 어 살펴봤고요 뒤에
조배숙 관련된 국민임 조배성 의원이 어 최재영게 어 묻고 따지는 장면 좀
한번 어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겠습니다 아까 계속 목회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네 그렇죠 목회 예 그 목회의 목적이
뭡니까 영혼 구원 아닌가요 그렇죠 포함되죠네 포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영혼 구원이 예 자 천주교에서 신부가고해 성사 받으면 그 비밀 죽을
때까지 지킵니다네 그럼 목사님이 뭡니까 그러면 이분이 이렇게 잘못
가면 그 자리에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잖아
왜 그런 얘기 못하셨어요 그리고 또 몰카 딱 계획을 해가지고 딱 여기
함정에 빠트린 거 아니에요 성경에 뭐라 했습니까 실족하게 하면 안
되잖아요 목사님이 그 짓을 했다고요 목사 맞아요 예 조배 구원이 목사 당신
목사를 맞느냐 신부의 고해성사 이런 얘기도 했는데 만일 잘못이 있다면
지적을 해서 고치도록 해야지 그을 몰카 스파이처럼 손목에 몰카 시계를
차고 불법 촬영을 하는 방식으로 하는게 맞냐 그게 목사로서 할 일이나
이렇게 질타를 했어요 목사와 연관해서 질타를 했네요 아니 그러니까 목사가
저런 이야기를 갖다 한 제가 지금 조배숙 의원의 말씀은 제가 조금 전에
드린 이야기와 말씀과 거의 뭐 그 맥을 같이 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저런 식의 목사가 저런 식의
이야기를 했다라고 하는 는 목사가 자기 양심에 반해 가지고 거짓말한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최재형의 말하는 거의 대부분은 입만 열면 다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그다음에 제가 제일 황당한 건 뭐냐면 제가 제일 속상한
건 뭐냐면 어제 오늘 계속 신문에 나오고 있는게 뭐냐면 우리나라가 안보가 구멍이 뻥뻥뻥 뚫렸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국가 기밀이 정보사 같은 데서 다른데도 아니고
정보 사면은 그니까 우리나라 국정원이 이만한 일을 한다라고 하면 군내에서는 그 일을 두 그 사령부가 나눠서 하고
있는데 하나가 어디냐면 기무사 그요 지금 방첩대 바뀌었고 또 하나가 정보사령부 그든 그런데 정보사령부
군무원들이 국가 기미를 그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요원들의 신상을 북한에
팔아넘겼다는 거 중국에다 팔아넘겼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가이 모양인데 그런데 최재영 제가
봤을 때 거의 준 간첩 아니겠습니까 음 그런데 어떻게 재라고 하는 사람을 영부인이 경호실이 아무런 그한 그
제재나 그런 스크린 없이 만나게 해줬을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게
영부인이 그 파우치 그 받았다고 지금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이 파우치를 언제
받았냐면 2022년 9월 13일 오후 2시에 받았어요 그 코바나 컨텐츠에서
받았어요 그때 그 대통령 관저 이사간 날이 11월
아직 서초동에서 대통령 출퇴근 하실 때였 말이죠 그런데 9월 13일이
무슨 날이지 해가지고 제 찾아봤어요 2022년 9월 13일 9월 13일이 무슨 날이냐 그은 추석 연휴 다음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부인 입장에서는 아 아버지 친구분
아버지랑 잘 안다라고 하는 고향의 어른이 찾아와 가지고 더군다나 목살에
그런데 아이 영부인 님 저기 명절이고 한데 빈손으로 오기가 손이 끄 가지고
그래가지고 내가 이거 그냥 간단한 거 파우치 요만한 이런게 파우치 아아 이런게 백이 아니고 이런 거 이런
파우치 하나 그냥 그 들고 왔으니까 그냥 그냥 마음껏 그냥 저기 그냥 편하게 쓰세요 이렇게 가지고 왔는데
그거를 갖다가 안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뭐 받은게 부적절하지만 어쨌든 명절
다음날이고 하니까 아 네네네 하다 보면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지금 파우치를 받았냐 안 받았느냐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기 하지만 저는 더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다라고 생각하는게 최재 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제가 파악한 것만 해도 제가 제가 뭐 뭐
정보가 있겠습니까 저한테 무슨 스텝이 있습니까 저 혼자 그냥 그 아침에 일어나 가지고 욕조에 물 받아 놓고
반신욕하면서 핸드폰으로 그냥 쭈루룩 이렇게 이렇게 보면서 구글링을 갖다 쭉 하다 보니까 어 최재형 최재형이
뭐 만들었지 NK 뭐 뭐 비전 뭐 비전 n 어쩌 저쩌고 그거 만들었지 구글에다 그거 딱 치니까 나온게 그냥
너무 너무너무 많이 나와 가지고 일다가 눈 빠질 것 같아 제가 그만뒀다 말이죠 이렇게 쉽게 쉽게
최재형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영부인에게 그냥 접근해 가지고 카톡을
갖다가 저렇게 하고 막 이렇게 와 가지고 그다음에 이런 뭐 시계에 다가 뭐 몰카 같은 거 장착하는 거 그것도
그게 그 뭐 도 안 되고 지금 이런 상황이 됐는가 정보사는 정보사 그렇고
대통령실은 대통령 실대로 그렇고 너무 지금 이렇게 그 뭐 나사가 나 빠진
것이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너무너무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 스파이처럼 몰카 카메라
들고 공작했다 거 그 공작 과정에서 이게 스크린이 또 안 됐다는 것까지도
지적을 해 주셨네요 그렇죠 사실은 이제 어 대통령 당신은 민간이었다면
뭐 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 영부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어 적어도 경호를 받고 있었고 스크린을 철저하게 보안
검증을 했어야 되는데 그걸 뚫고 들어갔다는 것이 여러모로 이제 사실은
우리 내부에서 문제가 지적될 수 있는 상황이죠 그 부분을도 짚어 주셨고요 그런데 최재형이 이번 청문회를
보니까요 서울의 수리 이명수 기자 있잖아요 네네 이명수 기자하고 사전에
같이 계획을 해서 이거 몰카 공자 공무원 거 아니냐 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서 아니다
자기 혼자 철저히 혼자 계획을 했다 그리고 단순히 이명수 기자는 뭐
카메라와 몰카 카메라와 선물만 그냥 사줬다 해서 자시가 자신이 그냥
계획해서 한거다 이러면서 이명수 서울소리 기자와 이렇게 조력 받은
정도뿐이다 이런식 해서 계속 분리하는 분리해서 발언을 하고 있거든요 그
의도는 어디에 있고 일부러 그런 것은 어떤 목적이라고 그거는 김의겸 효과죠
김의겸 김의겸이 학 그 협업했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래 가지고 그때
한동훈 하고 이렇게 말싸움을 하다가 한동훈이 뭐라고 뭐라고 그러니까 아니다 협업한 건 맞다 이렇게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아 그러니까 그래 가지고 아 그 김의겸 의원이
굉장히 뭐 이제 전 의원이 요번에 그 공천도 못 받았으니까 의겸 전의원이
낭패에 빠진 걸 딱 봤으니까 그러니까 나 혼자 했다 그게 본인한테도 더 유리하거든 이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혼자 했다라고 하는게 그게 더 유리한 거니까 하지만 이거야말로 협업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왜
명수가 왜 쓸데없이 남자용도 아니고 여자용 그 파우치를 명수가 왜 삽니까
그건 결국은 명수가 최재형의 그 목적을 알았다는 거고 그 이야기는
뭐냐면 둘이 서로 짜가지고 의도해 가지고 계획해 가지고 이러 이러 이러한 식으로 해서 그걸 갖다
그다음에 결국은 이게 2022년 9월 13일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랬잖아요 그런데이 영상이 공개가 된 건 언제입니까 만약에 그야말로 그
최재영 목사가 혼자 단독 범행이었다고 하면 9월 13일에 이걸 갖다 딱
받았어요 그럼 아싸 0분이 내거 받았네 여기 다 있네 해가지고 이거 딱 팔 만든 다음에 늦어도 한 달
이내에까지 않았겠습니까 안 깠어요 이걸 언제 깠냐 2023년 11월 27일에 갔어요
어디에서 갔습니까 서울의 소리에서 깠어요 그 이야기는 뭐냐면은 서울의 소리하고 그 이명 저기 최재영고 둘이
짜고 이걸 갖다 딱 갖고 있는 다음에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게 뭐랑 똑같냐 men
김만배 신앙 님이랑 똑같아요 김만배 아고 신학림 뭐 했습니까 둘이서 그냥 뭐 이렇게 녹취를 갖다가 뭐 그럴
듯하게 맞는 것처럼 한 다음에 언제 갔습니까 대선 직전에 갔잖아요 언제 이걸 갖다가 했었으니까 9월 달에
해놓고 3월 달에 깠어요 이거랑 그 9월 달에 해놓고 그다음에 11월
달에깐 거랑 왜 이렇게 타임 그 시차를 못 하아 둡니까 다 의도가 있고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 이명수
기자와 최재영 관의 관계이 부분에 관해서도 검찰 인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부분의 공모 관계에 대해서 좀 보다 구체적인 수사에서
진척된 수사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함께 포함해서 말씀을
드리고요 모두가 숨죽이고 침묵하던 시절 팬앤 마이크는 앞장서 자유와
민주를 외쳤습니다 자유파 정권 탄생을 위해 싸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는 쉼없이 달려갑니다 주의 제수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외곡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2024년에도 팬앤 마이크를 응원해 [음악]
주십시오 인터넷 검색창에 팬앤 마켓을 검색해 주세요 팬앤 마켓은 팬앤드
마이크 구독자분들을 위한 종합쇼핑몰로 좋은 상품으로 온라인 최저가를 목표로
하는 마켓입니다 많은 관심과 랑 부탁드립니다
[음악]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