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인남식.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인남식. Show all posts

2025-12-28

중동·아랍 전문가 인남식 교수 프로필

중동·아랍 전문가 인남식 교수 프로필│학력·고향·결혼│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의 나이는 1968년 8월 16일생이다. 고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 업한 것으로 보아 서울로 추정된다. 학력은 여의도고등학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사·석사, 더럼 대학교 중동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력은 연세대학교와 숙명여대 강사, 외교부 외교안보연구 원 조교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외교원 아중동연구부 부장을 맡고 있다.
인남식 교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중동·아랍지역 전문가다. 삼프로TV <중동학개론>을 통해 유명세 를 탔으며, 사실 그전부터 권위자로 불리던 명사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름이 더 알려졌고, 인남 식 교수의 강의를 통해 중동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국립외교원에서 여러 나라의 대사관에 파견 될 외교관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인남식 교 수는 중동지역 국제관계, 미국 및 유럽의 중동정책, 지정학, 테러리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는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 『지정학적 시각과 한국외교』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동의 정세와 역사, 정치·외교적 역학 관계를 연구하고 이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유의 차분한 말투와 쉬운 강의로 전공자는 물론 대중에게도 어필하고 있는 연 구자다.
▶ 미지의 지역 중동·아랍
인남식은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후 1987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학부 졸업 후대 학원에 진학해 1996년 「중동지역의 지배 전환 이데올로기에 관한 연구: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 비교 고찰」 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치학계에서 비주류였던 중동 정치를 전공했는데 당시 <김선일 사건>으로 외교부 내 중동전문가 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던 때였다. 2004년 무역업을 하던 김선일 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 되었고, 한국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석방하려 했다.
납치사건 발생 후 외교차관을 반장으로 해 긴급 대책반이 가동되었고, 국외테러대책본부가 설치됐 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한국군의 파병 철회를 요구했는데,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파병철회는 불가하다고 공표했다. 장재룡 외교부 본부대사, 반기문 외교장관 등이 김선일 씨의 석방을 위해 노 력했으나 22일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아랍지역 파병, 아랍 혀명,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 격화 등이 국제 분쟁화 되어 국내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많은 언론사에서 중동·아랍지역 전문가의 필요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중동·아랍 전문가 인남식 교수

==
인남식은 석사학위 취득 후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Authoritarianism in Egypt and South Korea: Praetorian Regimes of Gamal Abdul Nasser and Chung Hee Park」으로 이집트와 한국의 권위주의를 연구했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5군데나 다니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보냈다고 한다. 사실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연세대 지도교수님은 중동 전공을 만류했다. 비주류 지역이었기 때문에 제자가 먹고살 길이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중동·아랍 관련 교수 자리는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아랍어 전공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남식은 중동 연구를 고집했고, 이에 지도 교수님은 추천서를 써주면서도 돌아와서도 어 떻게 살지에 대해 한탄을 하셨다고 한다. 제자를 아끼던 스승의 한탄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인남식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중동·아랍지 역 전공자는 비선호 대상이었고,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4년 결혼해 아들이 둘이나 있던 인남식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힘든 시절을 겪었다.

그래서 가리지 않고 강의를 맡았다. 젊은 인남식 박사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시간강사로 학생들 을 가르쳤다. 정치학 분야를 가르쳤지만 정작 중동학계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아럽어과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학을 가르치긴 했지만 중동·아랍 정치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었다. 연세대와 한국외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게 떠돌다 모 재단의 정규직 사무국장으로 취업했다. 재단은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재단이었는 데, 전공을 바꾸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당시 모 교수님은 인남식에게 중동 연구자는 희귀하지만 한 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며, 동아시아로 전공을 바꾸라고 권유했다. 지금까지 연구한 성과는 이론 과 방법론을 적용하기에 충분하니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정치를 가르치라고 말씀을 주셨다.
당연히 인남식을 걱정해서 조언해 주신 것 이지만 중동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 정규직 자리를 얻었지만 중동을 가르치고 싶어 모교 학과목 편성 담당자에게 편지를 썼다. 중동 관련 강의가 왜 필 요한지 구구절절 적었고 이듬해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2학기, 연세대 학부에서 처음으로 <중동과 이슬람>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었다.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된 인남식은 시간강사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했다. 당시 만난 제자들은 엘 네피제라는 중동 연구모임을 만들었고, 아랍 전문 외교관, 해외기업 아랍 주재원, 중동 유학생 등을 배출했다.
이후 숙명여대에서도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정치론>을 강의했고 서울대에서는 <중동·아프 리카 지역연구> 수업을 맡았다. 2003년에는 외교안보연구원 제3세계 특수지역 정세 연구 용역 공 고에 응모해 250만 원의 용역비를 받기도 했다.

▶ 급변하는 국제정세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터졌고, 2004년 김선일 사건이 발생했다. 외교부에서는 중동 전문가의 필요 성이 제기되었고 2005년 중동 및 국제안보 분야 조교수를 뽑는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인남식 로 지원했고 4차례의 면접 끝에 채용됐다.
인남식, 2011, 「2011 아랍 정치변동의 성격과 함의』, 『국제정치학논집51-4』, 한국국제정치학회.
인남식, 2016, 「미국과 러시아의 대 중동정책 변화 고찰 : 오바마와 푸틴 정부의 지정학적 중동전략 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32-1』,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등의 학술지 논문을 비롯해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 매년 발행하는 주요국제문제분석 중동과 국제 정세에 관한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2005년 입사해 지금까지 국립외교원에 비 외교관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송에는 거의 출연을 안 했지만 언론사를 통한 기고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

==

==

==

2025-07-15

Nam-sik In - 2년전 10월 7일 무도한 공격으로 1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마스를 비판하고, 또 그에 대한... | Facebook

Nam-sik In - 2년전 10월 7일 무도한 공격으로 1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마스를 비판하고, 또 그에 대한... | Facebook


2년전 10월 7일 무도한 공격으로 1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마스를 비판하고, 또 그에 대한 응징 보복으로 5만 7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망을 초래한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양비론이라 비난받는다. 양비론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그러나 둘 다 잘못하고 있다는 말 외에는 내겐 어떤 논리적 정합성있는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마스 같은 나쁜 놈들을 왜 리더로 용인했느냐는 질문, 즉 가자 주민들이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번 양보해서 한통속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자 주민들이 책임 져야한다며 이스라엘을 응원하는 논리를 듣다보면 한숨도 나온다.
힘의 논리에 기반한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현실에서의 양비론을 이야기할 따름이지, 가자 주민들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역사를 짚어보면, 평범하게 살던 이집트 접경 팔레스타인 지역이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주변 도시에서 쫓겨난 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그게 지금의 가자다.
가자 북쪽 10킬로미터 위에 있는 아쉬켈론은 지금 이스라엘의 해변도시지만 77년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마즈달이라 불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마을이었다. 대부분 쫓겨나 남쪽으로 피난해 가자에 정착했다. 비워진 도시에는 아랍 미즈라히 유대인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냉전 붕괴후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들도 여기 정착했다. 마즈달의 모스크는 후일 Bar가 되었다. 텔아비브 아래 역사적 도시 야파 (욥바) 아랍 주민들도 다수가 가자로 피난했다. 거기서 강산이 7번 넘게 바뀌는 동안 난민으로 살아왔다.
가자가 하마스를 왜 받아들였느냐고? 그건 컬럼 본문에 쓴대로 부시 행정부의 중동민주화구상에 의한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마스를 여당으로 선출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을 소멸시키겠다는 정파를 뽑은 잘못 때문이라고까지 비판한다면, 가자 주민이 아닌 서안지구 주민들이 그 책임을 나눠 져야 했다. 서안지구에서도 하마스를 당선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미국은 서안지구의 파타와 손잡고 하마스를 실각시켰다. 두국가 해법으로 타협을 해야할 상대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무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총의라 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중동에서의 민주주의를 외치던 미국이 선거결과를 뒤집어야 하다보니 머쓱해지던 순간이었다. 이겼는데 쫓겨나 열받은 하마스는 총을 들었고... 준 내전 상태를 거치다가 결국 가자에 똬리를 틀고, 지난 20년동안 해방구를 삼았던거다. 그걸 가자지구 주민 탓을 하는 것은 과도하다. 물론 하마스의 폭력성과 배타성 그리고 테러를 호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걔들은 비난받아야 한다. 다수의 가자 주민이 피해자라는거다.
가자 주민들은 원래 살던 마을에 이스라엘이 들어오는 바람에 가자로 갔다. 1956년 수에즈 전쟁때 다시 이스라엘이 점령하는 바람에 이중 점령의 트라우마를 겪었고, 그 땐 한달만에 이스라엘이 철수했지만 1967년 다시 이스라엘이 들어와 점령지구로 만들자 3중 지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정착촌도 나가고 오슬로 협정으로 내 나라 갖게 되나 싶었다가 911,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중동 민주주의 구상의 이상한 계기에 지금 상황에 내몰린 것. 이 과정에서 가자 주민들은 거대한 수용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고... 미성년자들은 그 땅에 갇혀 하마스 통치만 경험한 기이한 세대가 되었다.
하마스 욕하고, 파타 욕하고, 네타냐후 욕할 수는 있어도...
가자주민들이 책임이 있고, 그러므로 5만7천명의 죽음, 1만 5천명 어린아이들의 죽음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다.
======
가자의 비극, 그 역사적 궤적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전략지역연구부장)
365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공간 안에 230만 주민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는 21세기 최대 비극의 현장이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발단이었다. 당시 1200명의 이스라엘 국민과 외국인이 하마스에게 피살당하고 251명이 인질로 억류되었다. 미증유의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궤멸시킨다는 명분으로 643일째 가자를 공격하고 있다. 5만 7천명의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 사망자만 1만 5천명을 상회한다. 가자지구 건물의 70%가 완파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무엇보다 상하수도 및 정수시설도 대부분 망가져 전염병 우려가 짙다. 학교 시설은 65%가, 병원은 절반 이상이 손상되어 사회 유지를 위한 기본 기능도 붕괴된 상태다. 국제사회는 가자 사태가 회복 불능의 인도주의적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 하마스간의 휴전은 아직 불확실하다.
가자의 비극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7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이 땅은 농경지 중심의 소규모 아랍 마을들이 산개한 지역이었다. 1917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위임 통치기에는 대략 8만명 내외의 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자신들의 고향 마을을 떠난 20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농경지가 난민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다. 유대국가 이스라엘 밑에 살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난 이들에게는 그나마 가까이에 이집트 관할 지역 가자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들이 두고 온 고향은 곧 이스라엘 도시로 변모했다.
가자지구 북쪽 10킬로미터 마즈달이 전형적인 예다. 그곳에 터잡고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밖으로 내몰리자, 이스라엘은 그 땅을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해 들어온 유대인들 (미즈라히)의 임시 수용소로 삼았다. 곧 마즈달은 유대인 이민 수용소를 넘어서서 아쉬켈론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중해변 야파 (욥바), 네게브 사막의 브엘셰바 등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고토를 떠나 가자로 몰려든 난민들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피해 가자로 몰려들었던 이들에게 두 번째 얄궂은 운명이 닥친다. 1956년 수에즈 전쟁이라 불리는 2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가자 마저 점령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싫어 고향을 떠났는데 또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는 비극을 경험했다. 비록 4개월간의 짧은 피점령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땅을 빼앗은 이스라엘 군을 마주했던 가자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 기간 천여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
다시 이집트의 통제하에 있던 가자지구를 1967년 6일전쟁 (제3차 중동전쟁)으로 또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당시 이스라엘군 남부사령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른바 ‘다섯손가락 전략’을 통해 가자지구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통제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1948년과 1956년의 쓰디쓴 경험에 이어 이제 다시 이스라엘에 의해 지배당하는 운명에 마주했다. 시온주의자들이 가자지구 안쪽까지 밀고 들어왔다. 자기들의 마을을 만들었다. 정착촌이었다. 야훼께서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쟁취하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의 신념은 정치를 넘어섰다. 충돌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냉전이 무너지면서 그나마 한줌의 희망이 생겨났다. 1993년과 1995년의 오슬로 협정에 의해 ‘두 국가 해법’이 제시되자 가자 주민들도 언젠가는 자기 나라를 갖게될 것과, 혹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의 주역 라빈 총리의 피살 이후 보수파 네타냐후 총리가 등장하면서 가자의 희망은 사그라졌다. 그리고 2001년 911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이라크 전쟁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당황한 당시 부시행정부의 네오콘들은 중동 민주화 구상을 선언했다. 이른바 ‘확대중동구상’ (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이다. 테러와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편만하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중동평화론’에 근거한 정책이었다. 중동 각국에 민주화 압박이 심해졌고, 여파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도 향했다. 주권국가로 독립하기 전이었음에도 팔레스타인은 2006년 총선을 실시했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미국, 이스라엘과 가까운 집권 정파 파타(Fatah) 대신 이스라엘 소멸을 주장하는 하마스가 132석 중 74석을 얻어 압승했다. 결과가 마뜩치 않았던 미국과 이스라엘은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총리직에 오른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한 정치과정을 통해 집권했다고 믿는 하마스는 결국 총을 들고 격렬히 저항했다. 이스라엘의 무력에 밀린 하마스는 가자지구로 들어가 똬리를 틀었다. 2007년부터 가자지구가 하마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이후 끊임없는 이스라엘과 국지 교전을 이어왔고, 결국 하마스는 10.7 이스라엘 도발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지옥도를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응징 공격으로 인해 가자주민들은 마치 피구 경기장 안의 선수들처럼 이리저리 폭격을 피하며 옮겨 다니는 중이다.
가자의 역사를 짚어보면 현지 주민들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땅을 빼앗기고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던 차에, 그나마 이주해 사는 땅도 이스라엘에 의해 두 번이나 다시 점령당한 아픔을 경험하는 중이다. 가자는 지금도 삼중의 고난을 겪고 있다.
첫 번째는 적대국이 시온주의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이다. 더 보탤 말이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봉쇄하며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총리와 전직 국방장관은 반인도주의적 범죄 및 전쟁범죄 (고의적 기아 유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가자는 지금까지 계속 공격받고 있다. 말 그대로 초토화되는 중이다. 이스라엘 보수 연정에 속한 극우파 각료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차제에 이스라엘 영토로 못박아 두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지도자를 잘못 만났다는 점이다. 가자를 장악한 하마스의 폭력 투쟁 노선으로 인해 주민들은 늘 이스라엘의 보복에 시달리고 있다. 하마스가 18년전 강제로 권력을 찬탈당했다는 억울함을 아무리 애써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 백성을 볼모로 하는 폭력 투쟁은 용납될 수 없다. 가자의 통치세력을 자임한다면 정강정책을 바꾸고 이스라엘과 적대적이나마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가자 주민들도 살고, 하마스도 산다.
세 번째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고, 비극적 파괴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국제사회는 실효적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랍 형제국들의 반응이 뜨뜻 미지근하다. 이집트는 튀르키예등에서 오는 가자 구호선단의 접안을 막는다. 사우디 등 걸프 왕국의 팔레스타인 지원도 여타 유럽과 아시아에 비해 결코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수교 즉 아브라함 협정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고약한 상대를 만났고, 지도자 복도 없고, 형제국도 나몰라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자지구 주민의 삶이 딱하다. 녹록지 않은 환경속에서 지금도 가자주민들은 쏟아지는 폭격을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그나마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공언처럼 가자에서 마저 쫓겨날지 모른다는 공포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세 번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고, 지금도 폭격에 노출된 가자의 비극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나라와 나라가 고립주의로 서로 격벽을 쌓는 정글같은 세상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속한 휴전 타결 소식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Sang-yon Lee
이스라엘에 원죄와 업보를 쌓는다는 느낌으로 그냥 원하는 대로 가자, 서안, 예루살렘을 전부 유태인들에게 줘버리면 차라리 어떨까요.
팔레스타인은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갚을지는 이제 하늘의 뜻이고 오직 신의 몫입니다.
분명 땅은 총과 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지요. 운명의 저울이 어느 쪽 손을 들지 결정하는건 이제 인간들의 몫이 아닌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무력 투쟁을 지원한 이란은 박살났고, 아랍은 방관만 했으니,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가 이제 아랍의 뜻 아닐까 생각합니다.
Joonghan Lee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긴 하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이번에 개봉한 영화 슈퍼맨 속 슈퍼맨과 저스티스 갱 같은 히어로가 없는 현실에선 그 누구도 통제불가능한 시온주의 극우 이스라엘 정부의 문제라고 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인간 이하의 동물 (Human Animals)과 싸워 척살헤야 한다”는 본능이 결합해 히틀러는 명함을 못 내밀 수준의 매우 다채로운 방식으로 양민을 학살하는 바로 그 집단말이죠.
팔레스타인 사회의 내부분열을 촉진시킨다는 명목으로 네타냐후의 카타르를 통한 하마스에 대한 2010년대 후반부터 수년간의 전폭적인 지원이 대규모 테러를 가능하게 했고, 당국은 사전에 테러 첩보를 입수하고도 방치한 것만으로 모자라 그 전에 끝났어야 할 노바 뮤직 페스티벌의 일정을 장소까지 변경해 연장한데다 (하마스도 이벤트가 없어야 할 장소에서 축제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침투하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되어 당황했다고 하죠), 이스라엘군의 자국민 무차별 사살로 초기 발표했던 사망자수 1400명 중 이스라엘군이 신원파악이 안될 정도로 무자비하게 사살한 300명 가까이 (테러리스트 하마스보다 자신들을 지켜줄 줄 알았던 이스라엘군이 더 무서웠다는 생존자의 증언들…)를 나중에 은근슬쩍 줄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하아레츠 등 이스라엘 언론에서 이미 보도한 바 있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훼되는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 (미국이 틱톡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근본 이유), 현재 이 시간에도 늘어나는 비공식 사망자수까지 포함한 약 50만명 (공식 발표는 어디까지나 당국에서 신원확인이 된 경우 한정) 중 절반 이상이 여자와 어린이라는 잔혹성까지…
75년 넘게 꾸준히 그래왔음에도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이스라엘이 불과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심지어 자국민이 이스라엘군과 정착민에게 살해되도 (지난 주말에도 서안지구의 가족을 방문했던 20세 청년이 정착민들의 집단구타로 사망했죠) 찍소리 못하는 미국에서조차 반이스라엘 정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정도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큰 전환점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hincheol Song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또 쫒겨날지 공포
국제사회 개입불가, 지도자부재 하마스 폭력투쟁, 자국민을 인질로
이스라엘이 봉쇄, 가자와 서안, 힘의논리로 폭격
원인은 집권당 파타대신 극좌파 하마스가 압승, 이스라엘 무효선언
인남식 칼럼 요약
Kyong H. Ra 
지난 수십년간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왜 유럽에서 육백만명이 학살당하는걸 지켜만 보고있었는지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똑같은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BG Lee
광복절 가까워져 그런가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자들 좀 있다는 내가 사는 도시서 그들의 이번 사태 보이는 저항표현 방식(ex. 불법 낙서나 Free Palestine! 모호하고 소극적 표현) 보면서 100년 넘은 일제 강점기 해외서 우리 교포와 그 독립단체 및 임시 정부가 보여준 독립 운동과 지원은 참 대단하단 생각도 하면서.. 차라리 하마스도 선량한 이스라엘 시민들보단 우리나라 순국지사들 처럼 주요 요인을 정밀 타겟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망상(?)도 했음.
May be an image of 1 person and text that says "Watch World Canada Local CANADA Politics Money Health Entertainment Palestine flag removed from 'sacred mountain' Stawamus Chief By ATy Judd Global News Posted July 7, 2025 10:29 am Updated July 7, 2025 1:11 pm 1 min read Global News at Noon Bc Palestine flag removed from rockface of Stawamus Chief in Squam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