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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김병구 원자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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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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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과학기술계 원로들 한목소리…탈원전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한국경제

과학기술계 원로들 한목소리…탈원전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한국경제

과학기술계 원로들 '한목소리'…"탈원전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이해성 기자
2019.12.19 
文대통령에 '탈원전 철회' 촉구

"원전 핵심인력 경쟁국으로 유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해야"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 장관 등을 지낸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19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간담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왼쪽부터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장, 박호군 전 과학기술부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이승구 전 과기부 차관, 권숙일 전 과학기술처 장관,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강창희 전 과기부 장관,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 채영복 전 과기부 장관,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 한영성 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 제공역대 정부부처에서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 장관 등을 지낸 원로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단법인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는 19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2019년 과학기술계 원로 간담회’를 열고 원로들이 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의문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건의에 참여한 원로는 모두 13명으로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강창희 박호군 서정욱 채영복 전 과학기술부 장관, 권숙일 김진현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한영성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이승구 전 과기부 차관이다.



“원자력 산업 국내 생태계 붕괴”


이들은 “원자력 발전은 글로벌 기후변화 위기 대응과 대한민국 에너지 문제 해결, 국가기간산업의 (원가 절감)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대한 전력원”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 국내 생태계가 붕괴하고 수출 경쟁력 쇠퇴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원자력 산업의 핵심인 고급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경쟁 국가로 유출되고 있다”고도 했다. 탈원전 정책 탓에 한국 원자력 기술의 산실인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는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올 하반기 전공 선택자가 ‘0명’이다.

원로들은 “(신재생에너지를 논하던) 유럽 등 선진국도 기후변화 위기를 해소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원전을 다시 채택하고 있고, 상당수 개발도상국도 원전 건설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세계 원자력시장이 러시아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미국 등 원천기술 보유국과 긴밀히 협력해 수출을 확대하도록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사업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건의했다. 신한울 3·4호기는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안전성을 인증받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모델 ‘APR-1400’이 적용됐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대책, 미래 원자력 연구개발, 안전규제기관의 위상 제고 등도 함께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온 국민이 엄청난 손해 보고 있어”

원자력 연구 및 원전 건설에 일생을 바친 원로 과학자들도 이날 “탈원전은 대한민국이 망하는 정책”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전재풍 전 한국전력 원자력건설처장, 박현수 전 원자력연구원 부원장, 김병구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술협력국장, 이재설 전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다섯 명은 올해 원자력 도입 60주년과 오는 27일 ‘원자력안전 및 진흥의 날’을 맞아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란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책에는 원전기술 자립화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 원전 수출 성과, 원자력 상식 등을 쉬운 문장으로 풀어 담았다. 장인순 전 원장은 “올해가 원자력연구원 설립 60주년인데 탈원전(정책)에 밀려 제대로 기념도 못 하고 있다”며 “원자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 세계에서 원전기술이 가장 뛰어난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벌이는) 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라고 했다.

이들은 원전기술 국산화에 크게 공헌한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타계 5주년인 내년 1월 저서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박현수 전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세계 최고 원전건설 기술을 버리는 탈원전 정책으로 온 국민이 엄청나게 손해를 보고 있다”며 “고 한필순 원장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어떤 마음을 가질까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

‘아톰 할배’ 5인, 脫원전 비판 책 내다
문화일보

입력 2019-12-20 
노성열




장인순·전재풍·김병구박사 등
원자력 연구 일생 바친 원로들
‘…원자력 60년 이야기’ 출간

“탈(脫)원전은 국가가 망하는 정책입니다.” 원자력 연구와 산업 발전에 일생을 바친 5명의 원로가 오는 27일 ‘원자력의 날’을 앞두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책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를 펴냈다. 원자력연구원 원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 한국전력 원자력건설처장을 지낸 전재풍 씨, 영광 원전 3·4호기 설계책임을 맡았던 김병구 박사,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박현수 박사,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의 이재설 박사 등이 주인공이다.

‘원자력의 날’은 지난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을 기념해 제정됐다. 공동저자인 장 박사는 “올해가 원자력연구원 설립 60주년인데, 탈원전에 밀려 제대로 기념하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원자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 박사는 원자력이 무너져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책이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5명이 모였다면서 “원자력을 가장 잘하는 대한민국이 탈원전을 하는 것은 21세기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원전 설계기술 국산화 연구의 총책임을 맡았던 김 박사는 “우리 원전기술이 의외로 국민의 사랑을 못 받는 것은 대국민 설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반핵하는 사람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 반대하더라도 알고 반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박사 역시 “최고의 원전 건설기술을 가지고 수출도 하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온 국민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2024-12-18

'원전 세계 최고수준인데..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 | 서울경제

'원전 세계 최고수준인데..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 | 서울경제

"원전 세계 최고수준인데..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
입력2019-12-20 


  •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등 5인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 펴내

  • "60년 넘게 쌓은 원자력 생태계..탈원전으로 무너뜨리면 안돼"

  • "원전이 국민의 사랑 못받는 것은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 자성


viewer‘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를 공저한 (왼쪽부터) 장인순 박사, 김병구 박사, 박현수 박사, 이재설 박사. /사진제공=이재설 박사




“대한민국이 원자력을 가장 잘 하는데 정부의 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입니다.”

최근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공저한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장은 20일 “올해가 1959년 원자력연구소 설립 60주년인데 탈원전에 밀려 제대로 기념도 못했다”며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60년은 신화를 창조한 기록”이라며 “원자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내놨다. 그러면서 1958년 워커 시슬러 미국 대통령 자문위원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권유했을 때 이 전 대통령이 원전 건설에 20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도 추진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실제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총 2,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우여곡절 끝에 20년이 지나 1978년에 완공됐다. 장 전 원장은 “2,000억원은 당시 우리 정부 1년 예산의 3분의 1 규모”라며 “이렇게 쌓은 원전 생태계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고 힘줘 말했다.

박현수 전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세계적으로 원전 붐이 일고 있고 미국조차 원전 건설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우리나라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고 “세계 최고의 원전 건설기술을 갖고 수출도 하는데 지금 탈원전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광 3,4호기 설계책임을 맡았던 김병구 박사는 “원자로 핵심 설계기술을 국산화해 영광 3,4호기에 패키지로 적용할 때 故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님이 988억원의 예산으로 국산화의 책임을 저에게 맡기며 바람막이를 해줬다”며 “그 덕분에 연구원들과 같이 열심히 기술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원전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의외로 국민의 사랑을 못 받는 것은 설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반핵하는 사람들도 알고 반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설 전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전재풍 전 한전 원자력건설처장도 “시중에 반핵 서적이 찬핵 서적보다 몇배 많은데 감정에 호소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며 “원자력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이 매우 부족한데 이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viewer(왼쪽부터) 김병구 박사,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박현수 박사, 이재설 박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재설 박사

한편 이들 5명의 원전 원로는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12월 27일)을 앞두고 책을 냈다고 소개했다. 이날은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을 계기로 2010년 제정됐다. 이 책에는 미국에서 원전건설 설계기술을 배우던 당시 뒷이야기, 故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에 관한 회상,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의 어려움, 탈원전 정책의 부당함, 원자력 상식, 원전수출, 기술자립의 뒤안길 등이 담겼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viewer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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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S5C7LNSC

"NASA서 위성 연구하다 아내 설득해 원자력연에 왔죠" < 인물 < 뉴스 < 기사본문 - 헬로디디



"NASA서 위성 연구하다 아내 설득해 원자력연에 왔죠" < 인물 < 뉴스 < 기사본문 - 헬로디디
"NASA서 위성 연구하다 아내 설득해 원자력연에 왔죠"
기자명 정리=길애경 기자
kilpaper@HelloDD.com
입력 2019.04.03

[원자력연 60주년 연구자의 회고①] 김병구 박사의 뒷이야기
"한국 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후 고국 발전상서 희망"
"지도교수, 고민말고 귀국하라 자네가 꼭 필요해" 조언
1959년 3월 1일 서울공대 4호관에서 개소식을 갖고 출범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 60달러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도입을 결정하며 최첨단 과학인 '원자력' 기술 연구에 나섰습니다. 1984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수로 핵연료를 월성1호기에 장전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본격화했고요. 이어 1995년 한국표준형원전(KSNP)으로 울진 3, 4호기가 건설되고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임계치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이정표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 50년만인 2009년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은 원자력 수출국으로 원자력 기술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원전 기술자립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열정, 노력이 함께 했습니다. 필자 김병구 박사는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자력 기술자립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참여했었고요. 은퇴 후에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UAE에서 자신이 배웠던 상용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必설계기술자립의 꿈'을 다시금 펼쳤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원자력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자력연 출범 60주년을 맞아 원자력 기술자립 이야기 부분을 정리해 본지에 연재키로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편집자 편지>

◆ 제1차 오일 쇼크, 재미 과학기술자로 모국 방문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지 몰랐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을 졸업하고 미우주항공국(NASA)에 취직할 때만 해도 계속 미국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의 직계가족이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극히 소소해 보이는 우연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1973년 10월에 일어난 제1차 오일쇼크다. 미국과 중동국가들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갈등은 급기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미국 석유 금수조치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력 생산의 거의 대부분을 화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정부는 뭔가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 모색의 일환으로 떠오른 것이 원자력이었다. 1973년 착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 원전 1호기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1974년 8월, 미국의 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Korean Scientists & Engineers in America)는 한국 정부 지원으로 제1차 '한국 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을 구성했다.

방문단의 구성 취지는 한국 근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재미 과학자들을 본국으로 초청해 우리나라의 산업시설을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미국에서 공부한 유능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을 국내로 스카우트해서 첨단 기술 분야에 활용하겠다는 데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시찰단을 모집했는데 총 300여명이 참여했다.

이 1차 방문단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나이가 30세, 방문단 가운데 최연소였다. 우리는 747 점보 전세 여객기를 타고 국내로 들어왔다.

국내에 들어와 산업시설들을 둘러보며 크게 놀란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산이었다.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11년만에 다시 고국의 산하를 보게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떠날 당시 한국의 산은 온통 벌거숭이였다. 전쟁과 지나친 남획으로 대부분의 산들이 나무 한그루 없는 황폐한 민둥산이었다. 그런데 11년 만에 되돌아와 보니 울창한 수목이 고국의 산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둘째는 고리 원자력 1호기 공사 현장이었다. 그때는 토목·기계공사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고리는 원래 부산 인근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푸르게 변한 고국의 강산과 역동적인 건설 현장의 활기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한국은 더 이상 내가 떠날 당시의 그 한국이 아니었다. 1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또 다른 한국이었던 것이다.



1959년 3월 1일 한국원자력연구소(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 개소식.<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50년사 중>◆ 지도교수 "고민 말고 귀국하라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해"

처음 모국 방문단에 지원했을 때 사실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우주항공국(NASA)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자력과 별로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고리 건설 현장에서 본 원자력 발전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자력 발전은 대단히 복합적인 시스템이었다. 직접적으로 우라늄 붕괴에 관여하는 핵물리는 전체 공정의 일부분이었고, 실제적으로 우라늄을 쪼개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을 이용해 증기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토목, 기계, 전기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이었다.

특히 우라늄 붕괴 과정에서 고온·고압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려면 기계의 부식, 진동 마모, 피로 파괴 등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기술력이 관건이었다. 즉, 핵물리를 바탕으로 한 기계공학분야가 제대로 뒷받침이 되어야만 안전한 원자력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다른 방문단원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 나는 태릉의 한국원자력연로부터 영구 귀국 초청장을 받았다. 고민이 되었다. 나는 NASA에서 화성으로 무인위성을 쏘아 보내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교인 캘리포니아 공대의 지도교수를 찾아가 상담했다. 기계과 Caughey 지도교수는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더니 "고민하지 말고 귀국하라"고 권했다. 우라늄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전기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기계공학적인 측면이 대단히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귀국을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를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1975년, 바로 베트남이 공산화 되던 시점이라 더욱 결심이 어려웠다. '내가 군대를 안 갔으니 2년만 국가를 위해 일하고 그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지는 당신이 결정하라'고 아내를 설득해 어렵사리 1975년 귀국길에 올랐다.




지금은 영구 정지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감도.<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50년사 중>◆ 원전 기술의 시작, 세 명의 거인(巨人)

뿌리 없는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원전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나라의 원자력이 있기까지는 지난 60여년 간 수많은 인재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그 중 시대를 초월해 원자력 강국의 초석을 다진 세 거인(巨人)이 있다면 나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과 한필순 한국원자력연구소(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을 꼽는다.

정치적인 평가는 관점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지만, 원자력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이 세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원자력 강국' 불가능했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 대통령은 80대 고령의 나이에도 "우리도 Atomic Machine(원전)을 쓰는 백성이 됩시다"며 원자력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는 한국전쟁 직후로 당장 하루 세끼 먹을 것을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그는 원자력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장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의 첫 불씨를 심어준 이승만의 혜안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 원자력을 상상하기 어렵다.

1959년 신설된 서울공대 원자력공학과는 서울대 학과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입학 커트라인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전국 최고의 수재들을 원자력 재원으로 발굴 양성할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어 원자력연를 설립하고 관련법과 정부조직도 정비했다. 당시에 원자력을 이 땅에 도입한 1세대 기술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이 원자력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1차 오일 쇼크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은 고리 1호기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전력개발정책을 석유 중심에서 원자력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당시의 한반도 정세 때문에 원자력을 오직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한다는 원칙을 세운 점이다. 70년대 중반까지도 해도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을 압도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국내외의 압력 속에서도 과감하게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을 포기했다.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인 목적, 즉 원자력의 연구와 이용을 에너지 생산기술 분야로만 국한시켰다.

오늘날 남북 간의 번영과 고립, 밝음과 어두움의 갈림도 당시 박 대통령과 김일성의 원자력 정책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자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추구한데 반해 후자는 군사적 목적에만 치중한 것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민주화와 경제개발, 외교력과 국민 생활수준에서 서로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3대 세습 정권인 북한은 2018년 자체 개발한 핵무기와 미사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비핵화'를 통한 핵무기의 완전 포기와 경제개발의 기로에 서서 미국과 벼랑 끝 협상을 벌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필순 소장이다. 1980년대 초 한필순과 원자력의 만남은 핵연료와 원자로 계통의 핵심 원전기술자립과 원전 국산화의 효시를 이루어낸다. 그 결과 오늘날 국내에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고 해외에 연구용 원자로와 발전용 원전의 수출까지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한필순 전 원자력연 소장은 국내 원전 핵연료와 원전 기술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사진=대덕넷 DB>인간적인 측면에서 한필순은 기술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여서 자신의 능력을 120퍼센트 발휘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1979년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제5공화국이 태동하면서 한국 원자력은 존폐의 위기로 내몰린다.


그 여파로 연구자들이 원자력연를 떠날 준비를 하던 시절, 그의 진솔함에 이끌려 마음을 고쳐먹은 연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연구원에 남은 연구자들과 함께 그는 작은 사업부터 큰 사업까지 많은 프로젝트들을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중수형 핵연료 국산화를 필두로 경수형 핵연료 설계·제작 사업, 경수형 원자로 계통설계 사업 등 그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프로젝트들은 별로 없었다.

한 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원자력은 나라의 통치자가 관심을 가져야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으로 누가 봐도 불가능했던 프로젝트들이 거짓말처럼 풀려 나갔다. 원자력 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상용원전 건설사업의 핵심기술에 깊이 참여하게 된 것도 그의 노력과 이를 인정한 최고 통수권자의 믿음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2년 동안 연구원이 핵연료와 원자로 계통설계사업을 주관했던 덕에 우수한 인재들이 확보되었고, 이들을 통한 기술의 축적으로 우리나라의 원전기술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외국의 원자로를 그대로 모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직접 신형 원자로를 설계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약하게 되었다. 90년대 말 연구원이 주관하던 원전 계통설계사업이 국영산업체로 이관됨으로써 산업체는 대형 원전의 상용화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룩할 수 있었고, 연구원은 국가연구개발기관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이렇게 원전의 핵심 기술인 원자로 계통설계기술과 핵연료 설계기술을 갖추었기에 새로운 신형 연구로나 차세대 첨단 발전로의 설계 건설 사업을 국내 주도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후 계속해서 10여기의 원전들을 국내 기술 주도로 주어진 공기와 예산에 맞춰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한전의 대형 사업 관리 능력과 원자력연의 기술력이 결합됨으로써 이루어낼 수 있었던 쾌거였다.

<다음 편에서는 '필(必)설계기술자립'과 윈저(Windsor)의 한인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김병구 박사.<사진=대덕넷 DB>◆ 김병구 박사는 해방 직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우주항공국(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화성 탐사선(Viking Project) 테스트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정부의 '재미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계기로 귀국해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영광(한빛)3·4호기 원자로설계 사업 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7년간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협력국장으로 일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로 신설된 아부다비 칼리파(Khalifa) 국립대학 원자력 공학과에 교수로 초빙돼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K.A.CARE)에서 원자력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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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딜레마, '에너지 전환'아닌 '정책 전환'이 해답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로, 경제적 안정을 이뤄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다. 2018년 현재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했고, 세계 7대 경제대국(30-50 클럽), 즉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이름을 올렸다.기적에 가까운 이런 고도성장의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 대규모 원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원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밑바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왔다.그러나 현 정부가인물 정리= 길애경 기자 2019.04.09 15:52

중동국에 원자로 수출 "우연? 굳건한 믿음"

◆사우디에 건설될 한국형 스마트 원전, 역발상의 작품2015년 9월 4일은 의미심장한 날이다. 이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자력원(K.A.CARE)과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향후 3년간 중소형 스마트(SMART) 원전의 사전설계(PPE, Pre-Project Engineering) 계약에 서명했다. 그해 봄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양국은 양해각서를 교환했고 이후 6개월여의 협상 끝에 스마트 사전설계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 계약에 따라 건설사업이 이어지면 머나 먼 중동의 땅 사우디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도 지어인물 정리= 길애경 기자 2019.04.08 10:20

'必설계기술자립' 23년만의 '기적'···UAE 원전 수출

2009년 12월 27일, 저녁 9시, 그날 나는 한 식당에 있었다.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우연히 고개를 돌린 나의 시야에 9시 뉴스의 자막이 들어왔다. 'UAE에 한국형 원전 수출!'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자신도 모르게 텔레비전 모니터 앞으로 달려갔다.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칼리파 국왕과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에미리트 전력사 사장과 한국전력 사장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4기의 한국형 원전 수출 계약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수출 계약이었고 계약 금액만 약 400억 달러에 달했다.정확히 23년인물 정리= 길애경 기자 2019.04.07 13:32

"연구진 44명, '必원전기술자립' 삼창 후 美 윈저로"

◆ '턴키' 방식 원전으로 방식 제각각, 기술 국산화 필요성 부각1970~80년대, 국내에는 고리 1호기부터 울진 1·2호기까지 모두 9기의 원전이 건설 또는 운전 중에 있었다. 원전사업은 급증하는 국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의 원전업체들에게 '턴키' 방식으로 맡겨졌다.턴키 방식은 건설과 운전을 모두 해당업체에 일임하는 것으로 기업의 기술력보다는 차관 등 유리한 조건을 우선해 지정했다. 업체에 따라 건설이나 운전방식이 제각각이었고 규제나 국산화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이런 상황으로 80년대 초부터 원인물 정리= 길애경 기자 2019.04.04 09:37

"NASA서 위성 연구하다 아내 설득해 원자력연에 왔죠"

◆ 제1차 오일 쇼크, 재미 과학기술자로 모국 방문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지 몰랐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을 졸업하고 미우주항공국(NASA)에 취직할 때만 해도 계속 미국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의 직계가족이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하지만 극히 소소해 보이는 우연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1973년 10월에 일어난 제1차 오일쇼크다. 미국과 중동국가들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갈등은 급기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미국인물 정리=길애경 기자 2019.04.03 11:55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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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 44명, '必원전기술자립' 삼창 후 美 윈저로"
기자명 정리= 길애경 기자
kilpaper@HelloDD.com
입력 2019.04.04 09:37
수정 2019.04.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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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 60주년 연구자의 회고②]김병구 박사의 뒷이야기
"설계기술 확보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죽겠다는 각오···지금도 눈시울 붉어져"
3년간 200여명 윈저로, 낙오자 없이 원전 기술 주역으로 역할
1959년 3월 1일 서울공대 4호관에서 개소식을 갖고 출범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 60달러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도입을 결정하며 최첨단 과학인 '원자력' 기술 연구에 나섰습니다. 1984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수로 핵연료를 월성1호기에 장전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본격화했고요. 이어 1995년 한국표준형원전(KSNP)으로 울진 3, 4호기가 건설되고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임계치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이정표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 50년만인 2009년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은 원자력 수출국으로 원자력 기술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원전 기술자립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열정, 노력이 함께 했습니다. 필자 김병구 박사는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자력 기술자립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참여했었고요. 은퇴 후에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UAE에서 자신이 배웠던 상용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必설계기술자립의 꿈'을 다시금 펼쳤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원자력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자력연 출범 60주년을 맞아 원자력 기술자립 이야기 부분을 정리해 본지에 연재키로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편집자 편지>

◆ '턴키' 방식 원전으로 방식 제각각, 기술 국산화 필요성 부각

1970~80년대, 국내에는 고리 1호기부터 울진 1·2호기까지 모두 9기의 원전이 건설 또는 운전 중에 있었다. 원전사업은 급증하는 국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의 원전업체들에게 '턴키' 방식으로 맡겨졌다.

턴키 방식은 건설과 운전을 모두 해당업체에 일임하는 것으로 기업의 기술력보다는 차관 등 유리한 조건을 우선해 지정했다. 업체에 따라 건설이나 운전방식이 제각각이었고 규제나 국산화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상황으로 80년대 초부터 원전 설계의 표준화 필요성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동시에 관련 국내 산업체들 사이에서는 일괄적 기술 전수 과정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의 주계약자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국내 산업체들도 우라늄 원광과 농축 기술을 제외한 원전의 라이프 사이클(life-cycle) 전반에 대한 기술자립의 주체로 서서히 그 모습을 갖춰 갔다.

이때 끝까지 주관기관 선정에 애를 먹었던 분야는 핵연료와 원자로 계통설계분야였는데, 산업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계약자로 선정됐다. 선정 이유는 가장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한 기관이 원자력연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자력연 기계부장을 맡고 있던 나는 핵연료와 원자로 계통설계 주계약자로 원자력연이 선정됨에 따라 졸지에 영광3, 4호기 원자로 계통설계 사업 책임자가 되었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떠맡기에는 너무도 막중한 임무였다.

해외 원자로 공급사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고, 준공 시점을 엄수하며 결과물 책임까지 져야 했다. 이 일은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영광3, 4호기 원자로 계통의 설계를 완수하여 최종 원자로 출력의 성능 보장까지 국내사가 책임지는 첫 사업이었다. 그 부담감이란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일단은 기술 도입선을 선정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였다. 당시 원자로 계통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의 4개국 기업뿐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원자로 계통기술은 첨단에 실증된 기술로, 이런 핵심기술을 이전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업체를 선정하는 게 관건이었다.

업체들 사이에서는 정상 외교를 포함해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졌는데, 1년 6개월여 간의 경쟁 입찰 평가 결과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 CE)이 주 기술 도입선으로 결정됐다. 이 회사는 상업적 실적은 부족했지만 기술의 우수성과, 무엇보다도 기술 전수 조건이 우리나라에 가장 유리했다.

총 공사비 3조4000억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건설사업 공사 계약이었다. 여기에는 기술도입 비용이 포함돼 있었다. 영광3·4호기 사업은 이렇게 1987년 계약이 체결되었다. 업체의 선정은 연구원 실무진들이 평가한 결과를 그대로 반영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연구원 기술진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때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지구촌의 모든 원자력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원전을 포기하던 시기였다. 세계 원전 시장은 급격하게 침체되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가장 유리한 기술 도입 조건을 확보하면서 기술자립정책을 고수했다. 선진국들이 장기간의 기술정지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한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가 낮잠을 자는 동안 거북이가 토끼를 추월한 것과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 '필(必)설계기술자립'과 윈저(Windsor)의 한인촌



원자력연 연구진 44명은 미국 윈저로 떠나기전 필(必)설계기술자립을 외치며 각오를 다졌다. 3년간 200여명의 연구진이 참여, 이후 국내에서 원전 기술 핵심 인력으로 역할을 했다.<사진=대덕넷 DB>
첫 발을 내딛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달걀'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누군가 길을 닦아놓으면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먼저 길을 개척하고 길을 여는 자의 노력은 때때로 상상을 초월한다.

1986년 12월 14일, 원자력연에서는 특별한 출정식이 있었다. 원자로 계통설계 요원 1진 44명을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의 설계센터가 있는 윈저(Windsor)로 파송하는 기념식이었다. 윈저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연구진은 그곳에서 3년간 파견 근무를 해야 했다.

이날 파견 연구진들은 한필순 소장의 제의로 '필(必)설계기술자립'을 삼창했다. '필(必)설계기술자립'을 외치던 연구진들의 마음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결연한 외침이었다. 설계기술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생면부지의 땅 미국에 뼈를 묻겠다는 결기가 연구진들의 음성에서 묻어났다.

실제로 연구진들은 설계기술자립에 성공하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가가 축축해진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연구진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만해도 훈련이나 연수 목적의 장기 해외여행은 규제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만큼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파견근무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3년간 연인원 200명의 한국 기술자들이 이렇게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배워온 원자로 계통설계 기술은 나중에 '원자력 한국'의 토대가 되었다. 이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제3세대 신형 원자로 APR1400이나 소형 SMART 원전이 태어났다.

미 동북부의 소도시 윈저는 한꺼번에 몰려온 200여 명의 한국 기술자 가족 덕분에 아파트 월세가 급등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들은 영광3, 4호기 설계사업 투입 인력 이외에도 다수가 당시 미국에서 진행 중이던 신형 차세대 원전(ALWR, Advanced Light Water Reactor) 연구 개발 업무에도 참여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득한 일이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때 우리가 원자로와 핵연료 계통설계 기술 요원으로 미국에 파견한 인력들은 3년 후 설계센터를 대전으로 옮길 때까지 단 한 명의 낙오자나 이탈자도 없이 전원 제때 귀국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귀국한 후 후속기 사업과 신형로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마침내 영광 3·4호기가 준공되었다. 우리는 약속된 공기를 준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초에 계획했던 대로 원전 기술자립 국산화 95%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때 세웠던 기념비가 지금도 원자력연 내에 그대로 있다.

'원전 기술자립 95퍼센트'라는 말의 의미는 미국에서 기술 전수 받고 배운 원전의 총체적 설계, 제작, 운전 기술의 국산화 수준이 동일형의 원전을 순 국내 기술로 95퍼센트까지 반복 건설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 해가 1996년이었다.


미국에서 기술을 전수받으니 자연스럽게 신형 원자로 창조기술도 길이 열렸다. 제3세대 가압경수로형(Pressurized Water Reactor, PWR) 상용원전의 효시인 APR1400과 후일 한국 고유의 기술로 인정받은 일체형 SMART 원전의 설계기술은 이렇게 확보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은 다시 UAE 원전 수주의 토대가 되었다. 원자력연 앞마당에서 '필(必)설계기술자립'을 외치던 청년 기술자들이 20여년 만에 배워온 기술로 새로운 원자로를 만들어 수출까지 하게 된 것이다. 20년의 세월에 담긴 눈물과 땀은 아마도 당사자들이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12월 27일 '원자력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필자는 그날의 외침과 그 청년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곤 한다.

김병구 박사.<사진=대덕넷DB>◆ 김병구 박사는 해방 직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우주항공국(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화성 탐사선(Viking Project) 테스트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정부의 '재미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계기로 귀국해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영광(한빛)3·4호기 원자로설계 사업 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7년간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협력국장으로 일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로 신설된 아부다비 칼리파(Khalifa) 국립대학 원자력 공학과에 교수로 초빙돼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K.A.CARE)에서 원자력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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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설계기술자립' 23년만의 '기적'···UAE 원전 수출
기자명 정리= 길애경 기자
kilpaper@HelloDD.com
입력 2019.04.07 13:32
수정 2019.04.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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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 60주년 연구자의 회고③] 김병구 박사의 뒷이야기
"8000번의 설계 변경, 한국이라 가능했던 일"
1959년 3월 1일 서울공대 4호관에서 개소식을 갖고 출범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 60달러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도입을 결정하며 최첨단 과학인 '원자력' 기술 연구에 나섰습니다. 1984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수로 핵연료를 월성1호기에 장전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본격화했고요. 이어 1995년 한국표준형원전(KSNP)으로 울진 3, 4호기가 건설되고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임계치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이정표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 50년만인 2009년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은 원자력 수출국으로 원자력 기술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원전 기술자립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열정, 노력이 함께 했습니다. 필자 김병구 박사는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자력 기술자립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참여했었고요. 은퇴 후에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UAE에서 자신이 배웠던 상용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必설계기술자립의 꿈'을 다시금 펼쳤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원자력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자력연 출범 60주년을 맞아 원자력 기술자립 이야기 부분을 정리해 본지에 연재키로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편집자 편지>

2009년 12월 27일, 저녁 9시, 그날 나는 한 식당에 있었다.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우연히 고개를 돌린 나의 시야에 9시 뉴스의 자막이 들어왔다. 'UAE에 한국형 원전 수출!'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자신도 모르게 텔레비전 모니터 앞으로 달려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칼리파 국왕과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에미리트 전력사 사장과 한국전력 사장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4기의 한국형 원전 수출 계약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수출 계약이었고 계약 금액만 약 400억 달러에 달했다.

정확히 23년 만의 일이었다. 미국 윈저로 원전 설계단이 떠나던 날이 1986년 12월 14일이었다. 이들은 떠나기 전 "실패하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고 외쳤다. 그것이 '필설계기술자립'에 담긴 의미였다.

그로부터 3년, 원전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설계단은 원전의 국산화·표준화 작업에 돌입했다. 이렇게 구축된 '한국형 원전 기술'을 토대로 영광 3·4호기, 울진 5·6호기 등 총 8기의 원전이 세워졌다. 그리고 다시 20여년, 우리 기술로 완성된 '한국형 원전'이 UAE로 수출됐던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의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9시 뉴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쇼킹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세계 원자력계에 충격을 줬다. 원전을 보유한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도 단 20년 만에 자체적인 원전 기술을 개발해 다른 나라에 수출한 나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원전 역사상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아마도 다른 원전 국가들에게는 이 일이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형 원전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나로서는 그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UAE원전과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출 후 열린 축하 기념식.<사진=대덕넷 DB>◆ 체르노빌 사고 후 CE사 한국측 요구 파격 수용

1980년대 활발하게 진행되던 한국 원전 건설은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중대한 계기를 맞는다. 1986년 구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때문이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의 가공할만한 후유증을 목격한 전 세계는 '원전 공포증'에 사로잡혔다. 원전을 건설하려고 했던 나라들이 모두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럽 지역의 바람이 체르노빌의 방사선 낙진을 서유럽과 대서양 쪽으로 날려 보내 동쪽 아시아는 후유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구미의 원자력 주도국들은 앞 다투어 원전의 축소 내지는 폐기 결정을 내리고 '탈원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세계 유수의 원자로 공급사들은 파산에 이르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 우리나라는 원전 기술 제공과 영광3·4호기 건설사업을 하나로 묶은 국제 경쟁 입찰과정에서 기술 공급사들과 힘겨운 협상 과정을 벌이고 있었다. 최종 낙찰 후보였던 2개사와 까다로운 기술 전수 조건들을 놓고 누가 더 한국에 유리할지 밀고 당기던 중이었다.

이 때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터진 체르노빌 사고로 국제 원전시장은 전면 붕궤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 CE)사는 과감하게 한국 측 기술 요구사항들을 파격적으로 수용하는 결정을 내려 최종 낙찰자가 된다.

사상 초유의 원전 기술 도입과 건설사업으로 원자력연구소를 비롯한 국내 주계약자들이 설계와 제작, 건설과 운전보수 등 원전 기술의 총체적인 국산화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었다. 초기에는 복사하는 기술부터 연마하고 나아가서 제3세대 원전인 APR1400과 SMART 소형 원전까지 창조하는 기술 강국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토대가 되었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2007년 아랍에미리트의 대형 원전 국제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일본 같은 원전 선진국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한국형 원전의 장점을 구매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꿈속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가 20년 전에 했던 일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이제 수출까지 하게 되었구나."

더욱이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은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따 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전 건설에는 최첨단 3세대 APR1400 원자로가 들어갔다. 이 원전의 용량은 1400메가와트이고 총 4기를 동시에 짓는 대공사였다. 한 기의 건설비용만 50억 달러에 달했다. 단일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고 규모였고 우리나라 원전 역사로는 사상 최대 수출 프로젝트였다. 이런 규모의 원전 수출을 수주했다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뉴스를 본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올라 온 온갖 상념과 감정의 파고들이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적셨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며 희미한 과거의 풍경 속을 떠다니다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의 미명이 창밖을 어슴푸레 물들이고 있었다. 날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UAE 원전과 요르단 원자로 수출 후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진들이 모인 가운데 축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사진은 2010년 1월 축하행사.<사진=대덕넷 DB>◆ UAE 원전, 설계 변경만 8000건

나는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한국형 원전의 효시였던 영광3· 4호기(한빛 3·4호기) 원자로 계통설계 사업 책임자였고, APR1400 개발에 일조해 온 나로서는 정말 특별한 감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방문 당시 나는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시공사 기술진들과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의 바라카 원전 총책임자와 환담하는 시간도 가졌다. 공사가 완료된 1호기의 원자로 건물, 터빈발전기 건물, 보조 건물에 들어가서 핵심 설비들이 갖춰진 모습을 직접 살펴보았는데, 잘 정돈된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근무하던 아부다비를 출발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통과해 4기의 웅장한 원자로 돔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나의 분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2012년 8월 착공된 바라카 원전은 2018년 5월 현재 1호기 건설공사가 완료되어 운영 허가와 핵연료 장전을 기다리고 있다. 2호기는 고온성능시험이 한창이다. 3호기는 본격 성능 시험을 위해 외부 전원이 연결되었고, 4호기도 주요 기기들의 설치와 원자로 건물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러한 순조로운 진행은 아마도 한국인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자력 인프라가 전혀 없는 사막 국가에 원전을 건설하면서 어떻게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UAE 환경을 반영한 설계 변경이 무려 8000건이나 이루어졌다. 이런 온갖 어려움을 잘 극복해 온 '팀 코리아'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전 건설과 관련해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세계 원자력계가 경탄하고 있다.



UAE 원전 수출 축하 행사후 기술자립시기 연구 중 순직한 故서경수 박사를 위한 헌화식을 가졌다.<사진=대덕넷DB>
김병구 박사.<사진=대덕넷DB>◆ 김병구 박사는 해방 직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우주항공국(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화성 탐사선(Viking Project) 테스트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정부의 '재미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계기로 귀국해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영광(한빛)3·4호기 원자로설계 사업 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7년간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협력국장으로 일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로 신설된 아부다비 칼리파(Khalifa) 국립대학 원자력 공학과에 교수로 초빙돼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K.A.CARE)에서 원자력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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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국에 원자로 수출 "우연? 굳건한 믿음"
기자명 정리= 길애경 기자
kilpaper@HelloDD.com
입력 2019.04.08 10:20
수정 2019.04.09 16:0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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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 60주년 연구자의 회고④] 김병구 박사의 뒷이야기
사우디의 스마트 원자로와 요르단의 연구용 원자로 역발상의 작품


1959년 3월 1일 서울공대 4호관에서 개소식을 갖고 출범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 60달러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도입을 결정하며 최첨단 과학인 '원자력' 기술 연구에 나섰습니다. 1984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수로 핵연료를 월성1호기에 장전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본격화했고요. 이어 1995년 한국표준형원전(KSNP)으로 울진 3, 4호기가 건설되고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임계치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이정표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 50년만인 2009년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은 원자력 수출국으로 원자력 기술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원전 기술자립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열정, 노력이 함께 했습니다. 필자 김병구 박사는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자력 기술자립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참여했었고요. 은퇴 후에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UAE에서 자신이 배웠던 상용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必설계기술자립의 꿈'을 다시금 펼쳤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원자력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자력연 출범 60주년을 맞아 원자력 기술자립 이야기 부분을 정리해 본지에 연재키로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편집자 편지>

◆사우디에 건설될 한국형 스마트 원전, 역발상의 작품

2015년 9월 4일은 의미심장한 날이다. 이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자력원(K.A.CARE)과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향후 3년간 중소형 스마트(SMART) 원전의 사전설계(PPE, Pre-Project Engineering) 계약에 서명했다. 그해 봄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양국은 양해각서를 교환했고 이후 6개월여의 협상 끝에 스마트 사전설계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 계약에 따라 건설사업이 이어지면 머나 먼 중동의 땅 사우디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도 지어 본 경험이 없는 스마트 원전이 탄생하게 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선진국에서 이미 실증된 기존의 원자로만을 고집하는데, 사우디에서는 어떻게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까? 우선은 사우디가 아직 어떤 나라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신형 원전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는 국가적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아울러 지난 4년간 아랍 사람들과 일하면서 내가 터득한 것은 바로는, 이들이 추구하는 원자력의 목표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석유 산업 위주의 국내 인프라를 원자력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의미다. 원전을 건설하며 확보된 설계, 기기제작, 시공, 운전 보수 등의 기술을 국산화 해 자국의 스마트 원전 사업은 물론 나아가 중동 전역의 스마트 수출 사업까지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80년대에 와서야 터득한 원전 기술자립과 수출산업 육성의 진수(眞粹)를 이들은 초장부터 하겠다고 야심차게 나선 셈이다.

스마트 기술은 한국이 지난 20여 년 간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유 설계로형에 2012년 세계 최초로 국내 원자력 규제기관의 표준설계 인허가를 획득한 모델이다. 90년대부터 대형 원전을 10여기 지으면서 터득한 기술에 우리만의 획기적인 창의성을 가미한 일종의 '작품'이다.

과거 원자력 발전소 하면 모두가 100만kw 이상의 초대형 발전소를 생각했다. 하지만 스마트 원전은 그런 생각을 뒤집은 역발상의 산물이다. 스마트 원전은 10만kw급 모듈화 된 일체형 소형 원전이다. 출력이 작아짐에 따라 원전의 안전성이 대폭 개량되고 작은 규모의 투자로 기존 화력 발전소를 대체하는 새로운 원전이다. 다양한 분야의 첨단 기술들이 고도로 'SFLDC(smaller, faster, lighter, denser, cheaper)' 하듯이 원전도 소형으로 '트렌드화' 한 것이다.

사실 이 원전은 개발 동기 자체가 해외 수출용이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시범로를 짓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사우디가 그것의 첫 건설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사우디 나름대로는 속내가 있다. 아직 아무도 지어보지 않은 신형로이기 때문에 유리한 조건으로 기술 소유권도 확보하고 한국과 함께 제3국 진출까지 노려보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사우디 원전 수출에 앞서 2013년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장과 마헤르 알 오단 KACARE 연구개발혁신실장이 기술 협력을 체결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대덕넷 DB>◆ 사우디가 원전 건설을 서두르는 이유

그런데 세계 제1의 산유국으로 매일 10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사우디가 무엇 때문에 원전 건설을 서두르는 것일까? 이 질문은 필자가 2013년 처음 사우디에 가면서 가졌던 의문이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현지에서 근무하며 비로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석유 에너지는 자원 소모적인 장치산업 에너지인데 반해, 원자력은 두뇌에서 캐내는 고급 기술 인력 위주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자력의 특성은 사우디가 추구하는 장기적인 국가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생산, 가공, 운송 체계를 갖춘 사우디의 아람코는 자국 내에 방대한 생산시설과 2차 기자재 공급망 기업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장치산업으로 고급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력 대부분이 임금이 싼 제3국 근로자들로 채워져 있다. 사우디 국왕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우디는 3300만 인구 가운데 30세 이하의 젊은 인구가 70%다.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사우디 정부 국비 장학생이 13만명에 달하고 대졸 이상 고학력 인구만 수백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젊은 층의 실업률은 30%를 육박한다. 그래서 이공계 고학력 실직자들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찾아낸 현실적 대안이 '원자력 산업의 사우디화(Saudization)'이다. 인접국 아랍에미리트와의 근본적 차이점이기도 하다.

자국민의 숫자가 80만 정도인 아랍에미리트는 원전을 건설하면서도 이를 통한 기술 인력의 취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원전의 기자재는 거의 전수 수입하고, 절대 다수의 기술 인력은 외국인 용병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자국인은 최고 관리 책임자나 보안 경비 정도를 전담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최고 경영층부터 중간 실무 기술직까지 모두 사우디 인력으로 충당되고 외국인 기술자는 자문역 정도로만 활용할 뿐이다. 원전의 안전규제에서부터 설계, 제작, 건설, 운영·보수 등 전 분야에서 사우디 인력의 고용 창출 기회를 만들어낸다.

원자력 기술 인력 수요를 예측한 전문 용역 보고서에 의하면, 사우디는 대규모 원전 도입 시 소요되는 원자력 분야 총 인력의 65% 정도를 자국민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럴 경우 약 4만5000명 정도의 사우디 인력이 필요해진다. 사우디 국왕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 내의 고급 기술 인력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데 원자력 산업만큼 매력적인 분야도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원자력 기술 분야만이 기여하는 국방·안보 차원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 사이에는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주국임을 과시하는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 이란의 핵 잠재력과 서방세계의 대 이란 경제제재를 놓고 벌인 선진 6개국 협상 합의안(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할 때 사우디가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우디도 자국 내 원자력 산업의 육성으로 대 이란 잠재력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 연구용 원자로 JRTR, 요르단에 쌓은 신뢰의 디딤돌



요르단 원자력위원회 관계자들이 양명승 전 원장 시기 한국을 방문,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대덕넷 DB>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70km 거리에 요르단 제2의 도시라 불리는 이르빗(Irbid)이 있다. 이르빗에는 요르단 최고의 공과대학 JUST(Jordan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우리나라 KAIST에 해당하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이 학교 구내에는 우리나라가 지어 준 요르단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JRTR(Jordanian Research & Training Reactor)이 2016년부터 가동 중이다.

어떻게 이런 연구용 원자로가 JUST에 지어질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연구용 원자로는 중동의 작은 왕국 요르단이 원전 확보의 첫 단추로 야심차게 착공한 시설이다. 나는 2012년과 2016년 사우디 근무시절 두 차례에 걸쳐 이 시설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원자력연구소 후배들이 설계하고 건설, 관리하는 연구로 사업이었기에 나름대로 찾아 볼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요르단이 원자력연과 대우건설 컨소시움에 이 연구로 사업을 발주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연구로 설계는 연구원이 맡았고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아 6년 만에 준공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수출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 상용 원전 수출, 2015년 사우디 스마트 소형 원전 설계 수출 등이다. 이 중 100% 우리 기술로 만든 원자로가 해외에서 건설, 가동되기는 JRTR이 단군 이래 처음이다.

이 연구로 건설은 총 2억 달러 규모로, UAE 원전 수출 그늘에 가려 국내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업의 참 뜻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TRIGA 연구로를 처음 수입한 것이 50여 년 전이다. 그리고 우리 자체 기술로 대덕연구단지에 '하나로'를 건설한 것이 벌써 20년 전이다. 이렇게 상용 원전의 핵심 기술들이 축적되며 25기의 원전이 국내에 건설되었고 이들 원전은 우리나라의 첨단 중화학산업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요르단의 JRTR사업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순수하게 우리 힘으로 이루어낸 해외 원자로 건설사업이다.

기존 모델을 반복해서 건설하는 상용 원전과 달리, 연구로 건설은 발주처의 필요에 따라 원자로의 용량이나 활용 기능이 달라진다. 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개념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하는 사업이다. 특히 JRTR은 요르단 최고의 공과대학 캠퍼스에 건설된 연구용 원자로이다. 때문에 의료용 및 산업용 동위원소 생산 기능뿐만 아니라 중성자를 이용하는 과학 연구 기능과 학생 훈련 기능을 다 만족시켜야 하는 다목적 연구로이다.


이처럼 참조 모델이 없는 연구용 원자로를 우리나라 기술진이 독자적으로 설계해서 건설하고, 더욱이 발주처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원전 설계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향후 JRTR의 활용 및 추가 연구 설비 설치를 위해 한국과 요르단은 장기간 원자력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쉽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기에는 사업의 수익성을 뛰어넘어 원자로의 건설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던 연구원과 대우건설 기술진의 피땀 어린 분투가 감춰져 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고, 그야말로 악착같은 집념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가 곳곳에 배어 있다.

이런 헌신이 있었기에 요르단 기술 경영진의 신뢰를 얻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중동인의 시각은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어떤 난공사도 돌파해 내는 한국인의 저력을 이들은 70년대부터 보아왔던 것이다. 거기에 원자로 건설에서 보여준 한국 기술진들의 집념과 헌신을 이들은 옆에서 충분히 지켜봤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한국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만들었다. 아랍에미리트가 바라카 원전 가동 후 60년 동안 한국 기술진에게 운영을 맡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내일은 마지막 편으로 '탈원전'을 보는 필자의 고견을 담을 예정입니다.

김병구 박사.<사진=대덕넷 DB>◆ 김병구 박사는 해방 직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우주항공국(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화성 탐사선(Viking Project) 테스트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정부의 '재미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계기로 귀국해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영광(한빛)3·4호기 원자로설계 사업 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7년간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협력국장으로 일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로 신설된 아부다비 칼리파(Khalifa) 국립대학 원자력 공학과에 교수로 초빙돼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K.A.CARE)에서 원자력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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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딜레마, '에너지 전환'아닌 '정책 전환'이 해답
기자명 정리= 길애경 기자
kilpaper@HelloDD.com
입력 2019.04.09 15:52
수정 2019.04.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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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 60주년 연구자의 회고⑤] 김병구 박사의 뒷이야기
현 정부의 원자력 안전성 우려, 심각한 오류
"탈원전 속도 필요, 내수없는 수출 어불성설"
1959년 3월 1일 서울공대 4호관에서 개소식을 갖고 출범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 60달러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도입을 결정하며 최첨단 과학인 '원자력' 기술 연구에 나섰습니다. 1984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수로 핵연료를 월성1호기에 장전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본격화했고요. 이어 1995년 한국표준형원전(KSNP)으로 울진 3, 4호기가 건설되고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임계치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이정표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 50년만인 2009년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은 원자력 수출국으로 원자력 기술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원전 기술자립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열정, 노력이 함께 했습니다. 필자 김병구 박사는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자력 기술자립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참여했었고요. 은퇴 후에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UAE에서 자신이 배웠던 상용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必설계기술자립의 꿈'을 다시금 펼쳤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원자력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자력연 출범 60주년을 맞아 원자력 기술자립 이야기 부분을 정리해 본지에 연재키로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편집자 편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로, 경제적 안정을 이뤄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다. 2018년 현재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했고, 세계 7대 경제대국(30-50 클럽), 즉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이름을 올렸다.

기적에 가까운 이런 고도성장의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 대규모 원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원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밑바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원전사업은 일종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대대적인 원전 건설과 개발사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25기 운전 가동에 9기 신규 건설을 추진하며 세계 첨단 산업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원전 관련 기업들은 졸지에 미래를 잃고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 공정 30% 가까이에서 중지됐전 '신고리5·6호기'는 건설 재개가 이뤄졌다. 하지만 나머지 ‘신한울3·4호기’, ‘천지1·2호기’, 대진1·2호기 등 후속 신규 사업들은 줄줄이 사업 정지의 운명을 기다리는 상태다. 오직 해외 건설 사업들만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속은 없어 보인다. 일자리 창출을 제1 목표로 출범한 정부가 어찌 이런 속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사진=대덕넷 DB>◆ 현 정부의 심각한 오류, 안전성 우려의 진실

'에너지전환정책'으로 포장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저변에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깔려 있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믿는 현 정부는 작금의 탈원전 정책을 출범 전부터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터였다.

하지만 이런 믿음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규모 9.0이라는 일본 사상 최대 지진의 여파로 파고 15m가 넘는 쓰나미 해일 때문에 일어난 천재지변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원전의 폭발로 이어졌다.

이것이 과연 원전의 안전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과연 원전의 안전성이 이 사고의 핵심이었을까? 이런 견해가 얼마나 허황되고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판단인지는 후쿠시마 사고의 피해 당사자인 일본의 최근 원전 복구 후 재가동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이던 54기의 원전을 전면 영구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2018년 현재, 일본 정부는 당초의 결정을 번복, 14기의 원전을 재가동키로 하고 나머지 원전도 영구 폐기할지 아니면 재가동할 지의 여부를 심사 중에 있다. 원전 없이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원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결정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원자탄과 후쿠시마의 방사선 피폭을 경험한 일본이다. 방사선의 안전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부정적인 일본인들이다. 그런 일본 사람들이 후쿠시마 사고의 진실을 이해하고 원전의 안전성을 재신임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원전들의 선별적인 안전심사를 바탕으로 원전의 재가동에 들어갔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쿠시마 일대에서 발생했던 1000여명의 사망자는 거의 대부분 지진과 해일의 피해자들이었다.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선 피폭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인들이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했다. 모든 원전은 기본 설계에서부터 최악의 천재지변 하에서도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도록 건설되어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일본에서 재가동이 승인된 원전들은 모두 가압식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 PWR) 타입으로, 우리나라의 원전과 동일한 로형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모두 비등식경수로(Boiling Water Reactor, BWR) 타입으로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규모 5급의 지진이 경주와 포항지역에 발생해 한반도도 지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나 국내 모든 원전은 기본 설계부터 규모 9급의 지진이 와도 안전하게 자동 운전 정지 모드로 가도록 돼 있다.

원전의 핵심부위를 둘러싼 격납용기는 두께 1m가 넘는 초강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지진을 위시한 어떤 충격에도 견디고 방사성 물질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25기의 우리나라 원전은 지난 40년간 무사고 운전 실적을 자랑한다. 근거 없는 막연한 공포가 과학적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사업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도 충분한 사실 파악과 대안을 검토한 결과 원전을 다시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핀란드, 체코 등도 비슷하다. 게다가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는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에 있다.

2018년 11월 대만에서 국민 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철회한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6년 대선에서 탈원전 공약을 내세워 집권한 대만 현 정부는 2년 만에 국민 투표 결과로 이 정책의 법적, 정치적 추진 동력을 모두 상실하기에 이른다. 우리보다 지진, 인구밀집 부지 등 원전 가동에 악조건인 대만에서 원전을 다시 살려내기로 한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탈원전은 올바른 선택일까?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원전 폐기라기보다는 60여년에 걸쳐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선진국들의 원전 정책 조기 수정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 지구 온난화와 미세먼지 대책, 그리고 경제성

기후 변화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인간이 불러온 예측된 재앙이고 지구 온난화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온난화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과 우려는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탄생시켰다.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C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195개국은 온실가스 방출을 의무적으로 줄인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37%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력 생산 방식은 원자력이다. 전기 에너지를 기저부하로 대량 생산하는데 최적화된 원전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발생이 제로인 첨단 발전소이다.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 않고 우라늄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로 전기를 생산하니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발생이 전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상 현재 30여개 선진국에서 440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다. 가장 값싸고 친환경적인 대규모 발전 수단으로서의 원전이 존재한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는다.

2018년 유엔 기구변화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특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지구온난화 1.5도' 제한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파리협정에서 '2도C 이하'로 정의한 온난화 온도를 '1.5도C'로 좀 더 강화한 것이다.

특별보고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안했는데, 석탄·석유·가스 감축과 더불어 신재생 에너지 증가, 그리고 원자력 에너지의 대폭 증가를 권유했다.

여기에 2018년 말 미국에서 반핵무기, 반원전 NGO 단체로 잘 알려진 '참여과학자 모임 (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에서 미국 전체에 가동 중인 99기의 원전 현황과 전망을 분석한 '원전의 딜레마(The Nuclear Power Dilemma)' 정책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는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강화하고 발전설비를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로 구축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였다. 여기서 원자력은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수명연장)과 신규 원전의 건설을 추천하였고 대규모 가스발전의 억제를 건의하였다. 값싸고 풍부한 셰일가스를 보유한 미국의 방향을 우리가 더욱 경청할 대목이다. 독일을 제외한 영국, 일본 등 여러 선진국들이 원전의 재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피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이들은 이미 깨닫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탈원전을 시도하려면 대체전력 공급에 따르는 전력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자연조건 하에서 태양광과 풍력만으로는 필요 에너지의 절대량을 충족시킬 수 없다.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대안은 천연가스밖에 없지만, 천연가스는 석탄이나 석유보다도 단가가 월등히 높다. 신재생 에너지는 에너지 자체의 간헐성과 저장의 한계 때문에 이용률이 20% 이하다. 당연히 전기요금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의 2018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한전과 한수원의 신용도 평가를 각각 한 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이는 최근 원자력 발전량 감소에 따른 재정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 독일의 탈원전 정책에서 배울 점

독일은 1990년 동서독의 통일 이후에도 경세성장을 유지해 유럽 제1의 경제 대국이자 유럽연합의 1인자 지위를 감당하고 있다.
원자력 산업도 최상의 기술 수준을 유지한 채 자국 내에서만 17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어서 명실공히 원자력 선진국의 위상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22년까지 기존 원전의 완전 폐쇄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선언한다.

탈원전 선언 이후 독일은 전국에 산재한 지표면의 석탄자원을 대규모로 태우고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개발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70년대 우리의 파독 광부들이 지하 깊이까지 내려가 파내던 석탄은 이미 고갈 상태지만, 지표면에 무진장한 저질의 자원인 갈탄을 활용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문제가 많은 정책이다. 가격이 싸긴 하지만 공해가 가장 심한 갈탄을 대규모로 태우는 것은 주변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과 심각한 공해 분쟁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대규모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에 비해 3~4배 비싼 가스 발전이나 풍력, 태양광 에너지로 바꾸면서 2000년 대비 약 2배 정도 인상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독일은 전력의 절대 부족은 피할 수 있다. 유럽은 서로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어 국가 간 전기 에너지의 수출입이 자유롭다. 그래서 피크 전력 부족 시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원활하게 전력 공급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5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고 자국 에너지의 75%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세계 제1의 원전 대국인 프랑스는 사용하고 남은 잉여 전력을 유럽 전체망에 공급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부 출범 직후 원전의 비중을 50%까지 낮추겠다던 정부 시책을 수정해 원자력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또한 원전의 경제성을 대체할만한 에너지원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우리나라가 독일과 유사한 정책을 강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비상시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다. 가령 전력의 절대 부족사태, 즉 '블랙아웃(blackout)'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 내수 없는 원전 수출? 탈원전 속도 필요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수출로 고도성장을 이룬 나라다. 지금은 세계 10대 교역국에 들만큼 모든 분야에서 수출로 약진을 거듭해왔다.

이 중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 체결한 원전 수출은 백미(白眉) 중 백미로 꼽힌다. 우리 기술이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국들과 당당히 경쟁해서 플랜트 수출의 최정상인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했으니 가히 역사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한전을 중심으로 '팀 코리아(Team Korea)'가 전력투구해 2018년 바라카 원전 1호기의 완공을 이루었고, 남은 3기도 예정대로 2020년까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로써 중동의 첨단국 아랍에미리트는 지구상에서 31번째의 신규 원자력 발전국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원전건설사업은 준비 기간이 평균 10년, 건설 기간이 10년에 운전 기간이 60년, 그리고 폐로 기간만도 10여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그러니 원전을 도입하는 나라는 앞으로 백년지교(百年之交)의 장기 거래를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


우리나라가 원전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국내에서 꾸준히 추진해온 원전사업 실적과 이에 동반된 기술력과 경제성이 인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랍에미리트와 더불어 사우디의 소형, 대형 원전사업 진출과 요르단의 연구용 원자로 건설 가동 등 우리나라의 원자력 수출이 모두 중동지역에 집약돼있다.

지난 세기 국내 건설업체들이 중동에서 인프라 건설사업을 하면서 보여준 성실성과 인내성이 현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도 원자력 수출에 큰 힘이 되었다.

향후 신규 원전사업을 구상 중인 나라들은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탈원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연 한국이 어디까지 원전을 축소하여 국내 원전 공급망 산업체에 영향을 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국내에는 700여개의 기업체에서 원전 기자재의 국산화와 관련 서비스 산업화를 이루고 있고 전문 인력만도 5만 여명에 달한다.

향후 사업 전망이 흐려져서 국내 산업체들의 기술 기반이 무너진다면 한국형 원전을 고려하고 있는 나라들로서는 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전의 특성 상 백년대계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탈원전’은 현 정부의 선거공약 사항이었던 만큼 원천 철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국의 에너지 정책을 하루 아침에 뒤집는 일은 가능한 일도,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정부는 2022년까지 가동 예정이던 월성1호기를 탈원전 정책에 따라 수명을 4년이나 앞당겨 2018년 폐쇄했다. 수명 연장의 법적, 기술적 당위성과 경제적 필요성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첨부할 사실은 지구상의 모든 원전 국가들이 필히 갖추고 있는 자국 내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의 실력과 권위를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40년 전 최초의 원전 도입시부터 국가에서 중점적으로 키워온 원자력안전규제 전문기관이 건재하다.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500여명의 전문 기술자 집단이 서울과 대덕연구단지 및 각 원전 현장에 존재한다. 안전성과 환경보전의 규제기준을 정하고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역할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대안은 앞으로 전개될 신규 원전 사업의 결정과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수명연장)으로 '탈원전의 속도 조절'에서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또 철저한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환경 보전성을 기반으로 현 에너지 믹스에서 점진적인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 분야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철저히 수렴하여 최종 결정을 국정 지도자가 할 일이다.

원자력은 1970년대 최초의 원전인 고리1호기부터 '국민 에너지'로 탄생했고, 지난 40년간 무사고 운전으로 인해 '안심 에너지'로 재인식되었다. 또한 중동에서의 '수출 에너지'로 국가 경제를 이끌었으며, 앞으로 남북이 경협단계에 이르면 '평화 에너지'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즉, 현재의 '에너지 전환정책'을 '에너지 정책전환'으로 탈바꿈시킬 때 '탈원전'의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다.

김병구 박사.<사진=대덕넷DB>◆ 김병구 박사는 해방 직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우주항공국(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화성 탐사선(Viking Project) 테스트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정부의 '재미과학기술자 모국 방문단' 참여 계기로 귀국해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영광(한빛)3·4호기 원자로설계 사업 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7년간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협력국장으로 일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로 신설된 아부다비 칼리파(Khalifa) 국립대학 원자력 공학과에 교수로 초빙돼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K.A.CARE)에서 원자력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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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은 국가가 망하는 정책” < 2019 - 데일리비즈온

“탈원전은 국가가 망하는 정책”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데일리비즈온

“탈원전은 국가가 망하는 정책”
심재율 기자
제보입력 2019.12.05 

일생 원자력 연구한 ‘아톰할배’ 5인 모여
‘원자력 60년 이야기’ 책 내
장인순-김병구-박현수-이재설 박사 등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2월 27일은 원자력의 날이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레이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을 계기로 2010년에 제정됐다. 좀더 정확히는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이다.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 든다. 원자력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9년에 원자력연구소를 출범시켰으므로, 우리나라에 원자력이 도입된 지 60해가 된다.

그러나 일생을 원자력 연구와 기술개발에 바친 ‘아톰할배’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세계 최고의 원자력발전소 설계기술을 확립하고,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능력을 갖췄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원자력산업을 내부에서 허물고 있다.

원자력 산업에 일생을 바친 5명의 아톰 할배들이 최근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원자력연구원 원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 한전 원자력건설처장을 지낸 전재풍, 영광 3,4호기 설계책임을 맡았던 김병구 박사,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박현수 박사,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의 이재설 박사 등이 썼다.


장인순 박사는 “올해가 원자력연구소 설립 60년인데 원자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크게 잘못됐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원자력이 무너져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몇 사람이 책이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5명이 모여 썼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원자력을 가장 잘 하는 대한민국의 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이 책은 설계기술을 배우기 위해 3년 동안 미국에 가서 기술을 배우던 일, 고 한필순 소장에 대한 회상,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의 어려움, 탈원전 정책의 부당함, 원자력 상식, 원전수출, 기술자립의 뒤안길 등을 담았다.

아톰할배들은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국산화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한 고 한필순(1933~2015) 원자력연구원 원장 서거 5주년인 내년 1월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공동저자인 장인순 박사, 김병구 박사, 박현수 박사, 이재설 박사 등을 만나 원자력 60주년을 맞은 감회와 고 한필순 소장에 대한 소회를 모았다.

▲장인순 박사 =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60년은 신화를 창조한 기록이다. 1958년 미국 대통령 자문위원인 워커 시슬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원자력을 하라고 권했다. 아무 것도 없는 한국에 원자력을 권한 시슬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여 연구소를 설립한 이승만 대통령이나 모두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장인순 박사.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 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을 때 20년이라고 시슬러는 답변했다. 실제로 고리 1호 원전은 20년 뒤인 1978년에 완공됐다. 고리 1호 원전 건설비가 당시 약 2000억원 이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분의 1 규모였다.

원자력 발전기술 국산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필순 박사의 머릿속에는 원자력 밖에 없었다. 한 박사는 3가지 부분에서 훌륭하다. 없는 것을 탓하지 않았고, 시대를 탓하지 않았고, 자기가 한 일의 공을 부하에게 돌렸다. 원자력발전에 관한 한 한필순 박사, 김성진 장관, 박정기 한전사장이 한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행운이었다.

▲ 김병구 박사 = 우리들은 우리가 개발한 원전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자부하는데 의외로 국민들의 사랑을 못 받는 것은 대국민 설득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만 했지 그런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 조차 몰랐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집행하는데 몰두했을 뿐이다.
김병구 박사

국민들이 보물단지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늦었지만, 아니 늦더라도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글을 썼다. 반핵 사람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 반핵하는 사람들이 봐도 알게 썼다. 반대하더라고 알고 반대하라고 쓴 것이다.

원자력 기술 중의 핵심이 설계기술이다. 원자로 핵심 설계기술을 국산화해서 영광 3,4호기에 패키지로 적용하겠다고 할 때 한필순 소장이 핵심드라이브 역할을 맡았다.

연구소 안에서 그 설계기술 국산화의 총책임을 나에게 맡기면서 988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단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한필순 소장이 바람막이를 해줬기 때문에 나와 연구원들은 열심히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 박현수 박사 =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가 세계 최고가 되어서 해외 수출도 했는데, 지금 정부가 반핵한 것은 너무나 엉터리이다. 온 국민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다. 요즘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붐이 일어나지만, 미국 조차 원전 건설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서 우리나라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박현수 박사

나는 한필순 박사와 거의 함께 국내외 출장을 다니면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한 박사의 스케줄을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한 박사님이 어떤 마음을 가질까 안타깝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재설 박사 = 원자력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이 매우 부족한 것을 많이 느꼈다. 시중에 나온 책을 조사해보니 반핵 서적이 찬핵 서적보다 너댓배가 많았다. 반핵서적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감정에 소개해서 왜곡한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적극 홍보와 소통에 힘써야 한다.
이재설 박사

한필순 박사는 인간적으로 연구원들을 대하고 사랑을 베풀어서 ‘한필순 사단’을 구성할 만큼 전설이 된 분이다. 우리는 운 좋게 한 박사와 함께 일한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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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는 이제 무용지물, 이미 애물단지가 됐다” < 충청 < 네트워크 < 기사본문 - 시사저널

“핵무기는 이제 무용지물, 이미 애물단지가 됐다” < 충청 < 네트워크 < 기사본문 - 시사저널

“핵무기는 이제 무용지물, 이미 애물단지가 됐다”
기자명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승인 2020.02.28

  • 前 원자력통제기술센터장 김병구 박사 인터뷰
  • 처리 곤란 핵탄두, 유지관리 비용 때문에 구소련 붕괴 주장
  • 국내 원전은 美 TMI 원전 사고 때 이미 안전 증명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1년이 지났음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의 관계는 껄끄러워졌고 유럽연합(EU)조차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북한의 핵실험, 핵무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은근슬쩍 함께 나오는 말이 한반도 핵무장론이다. 주로 보수진영에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핵에는 핵'이라는 원칙으로 맞서자는 주장을 내세운다. 방식도 전술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탑재 잠수함 순항 가동 등 다양하다.

이러한 핵무장론에 대해 우리나라 원자력계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75년부터 일평생을 원자력 발전을 위해 땀 흘린 원로 과학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김병구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초대 수장이던 윤용구 박사의 권유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영광 3·4호기 원자로 설계 사업책임자, 원자력통제기술센터(TCNC, 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초대 센터장, IAEA 유럽, 아시아/태평양 기술협력국장,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재생에너지청 원자력 고문관 등을 지냈다. 얼마 전에는 동료 원자력 원로들(장인순, 전재풍, 박현수, 이재설)과 함께 한국 원자력 발전 역사를 다룬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고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김병구 박사는 1975년부터 한국원자력발전을 위해 일해온 대표적 원자력계 원로 과학자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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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소유는 이제 쓸데없는 국력 낭비일 뿐이다

"지금 시대에 핵무기는 무용지물입니다. 각 나라에서 애물단지가 됐어요."

단호하다.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함께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사용하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국력 낭비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초반에는 핵무기 개발을 준비했다. 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대덕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애당초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설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서울 공릉 연구소에서는 원자력 발전 관련 연구를, 그리고 대덕 연구소에서는 핵무기 개발을 도모했다.



하지만 1970년 핵확산방지조약(NPT)가 발효되고 국제 사회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정부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결국 박 대통령은 1975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NPT 정식 비준국 등록을 결정한다. 대덕 연구소도 핵무기 연구를 포기하고 원자력 발전과 안전 등에 대한 연구로 돌아선다.

"사실 핵무기보다 원전을 만들고 돌리는 것이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술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핵무기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핵무기를 고집한 북한은 굶어 죽기 직전 아닙니까?"

구소련의 붕괴도 핵무기와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 김 박사의 시각이다. "1970년대, 냉전이 극에 달했을 때 핵탄두가 소련에 2만 개, 미국이 수천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라며 "단 한 개만 있어도 유지가 어려운 핵탄두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없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핵탄두는 해체가 어렵다. 버릴 곳도 없다. 만에 하나 테러나 사고로 국내에서 터지거나 탈취라도 당한다면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김 박사가 애물단지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러시아, 미국 모두 지금은 핵탄두를 줄여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적으로 핵무기를 범죄로 인식하고 있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 나가사키에 방문해 헌화한 것만 봐도 세계의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일본 나가사키 폭심지 공원을 직접 찾아 헌화하고 "핵무기가 없는 세계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자"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 박사는 "신사(神社)의 나라 일본에 교황이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이벤트인 만큼 비핵화에 대한 세계적인 요구가 강해진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는 이미 검증된 안전한 원자로 사용

하지만, 현 정권이 벌이고 있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큰 사고가 터지고 나니까 원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행운아들입니다. 왜냐면 이미 1980년대 원전 표준화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을 선택했으니까요."저서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김병수 박사. 이 책에는 우리나라 원자력 60년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1980년대 우리나라는 기술 축적과 관련 산업 부흥을 위해 국내 건설 원전을 표준화하기로 한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가압경수로(PWR)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자 세계 각국에 탈원전 기조가 일어났다. 때마침 영광 3·4호기 건설을 준비하는 우리나라는 해외 원전 업체들과 협상에 유리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당시 국가 기밀로 여기던 원자로 핵심 기술을 100% 이전받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다른 형식의 원자로를 건들지 않고 가압경수로만 건설했다. 김 박사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큰 행운이었다"라고 평가한다. 가압경수로가 현 시대 가장 안전한 원자로이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가압경수로의 안전을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TMI 원전 사고) 사례로 증명한다. 1979년 3월 미국 도핀 카운티의 서스쿼해나 강 가운데 있는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에서 노심 용해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아직도 미국 원자력산업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로 평가한다.

"그때 사고난 2호기가 가압경수로입니다. 사고 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방사성물질에 대한 피해 보고가 없습니다. 인명피해도 없습니다. 1m 두께의 격납 용기 덕분에 발전소 부근에서 받은 피폭선량이라고 해봐야 엑스레이 2~3번 찍은 정도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사용하는 가압경수로는 그보다 더 발전한 가압경수로 타입이다. 그럼에도 탈원전을 주장하는 정권 인사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원전은 설계부터 제작, 관리, 보수까지 함께하는 기업이 700여 개, 관련 종사자가 3만여 명입니다. 기술도 전부 국산화돼 있어서 수출까지 하고 있죠. 자연에너지라고 해도 태양광 패널 전부 중국산이고 LPG 가스는 전량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이건 국부가 달린 문제입니다."

김 박사는 현 상황에 대해 "선배로서 안타깝다"며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후배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이 어떻게 세계적 수준이 됐는지 제대로 알고 반대를 하더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함께 전했다.

키워드#북핵 #핵무장 #탈원전 #원자력 #트럼프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sisa411@sisajournal.com

IAEA 고위직 출신 김병구 박사가 본 CVID|신동아

IAEA 고위직 출신 김병구 박사가 본 CVID|신동아

IAEA 고위직 출신 김병구 박사가 본 CVID

“ 핵무기 은닉 시 검증 불가능… 완전한 비핵화 10년 넘게 소요”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6-24 09:00:01

  •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산증인’이자 ‘한국형 원전의 아버지’
  • 핵물질 제조공정 후진적이라 로스(loss) 많았다며 축소 신고할 것
  • 방사능 오염 심각한 플루토늄 북한 밖 반출 어려워
  • 내부자가 숨겨놓은 핵무기 자수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 머릿속 지울 수는 없다…核기술자 완벽 통제 필요
  • CVID 완벽 이행 시 北 신포 경수로 재건도 가능
  • ‘北원자폭탄’ 녹여 ‘南원전연료’ 사용 후 北에 송전하자
  • 한반도 비핵화 차원에서 탈원전 정책 再考해야



[지호영 기자]김병구(74) 박사는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산증인’이면서 ‘한국형 원전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 1975~2005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일했다. 서울대 입학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Caltech)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근무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1975년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로계통설계 사업책임자, 선임연구부장, 원자로개발단장, 원자력통제기술 센터장, 부소장 등을 거쳐 IAEA(국제원자력기구) 고위직인 기술협력국장을 지냈다. IAEA에는 2002~2008년 몸담았다. 2011~2013년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사업 일환으로 칼리파대(아부다비)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3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왕립 원자력청 기술고문으로 일해왔다. 최초의 국산 원전인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개발 주역 중 한 사람이다.


“核 문제 해소되려면 北 인식 변해야”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을 맞바꾸는 것에 포괄적(comprehensive)으로 합의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는 공동성명에 명시하지 않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절차와 한국 원자력 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6월 7일, 13일 그와 대담했다. 그는 “CVID를 전제로 한 ‘완전한 비핵화’란 10년 넘게 소요되는 어려운 과정”이라면서 “북한이 핵무기·핵물질 일부를 은닉한다면 완벽한 검증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후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인 후 선진국들처럼 북한 사람들이 ‘핵무기 필요 없다, 오히려 손해다’라는 인식을 가질 때 핵 문제가 비로소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미 합의로 비핵화 과정이 시작됐다.



“완전한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이행되는 것이지 2~3년 안에 완결되는 게 아니다. 북한이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갖췄으며 핵무기를 완성했기에 10년 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연료주기를 완성해 돌려봤고, 핵무기도 만들었고, 핵탄두를 터뜨려도 봤다. 북한처럼 노골적으로 핵무장을 선포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핵무장 완성을 공표한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한 것은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연료주기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중간에 생각이 바뀌면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북한 같은 규모의 핵 폐기는 전례 없는 일이다.

“CVID를 전제로 한 완전한 비핵화는 전대미문의 어마어마한 일이다. 비핵화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 단계로 농축·재처리·원자로를 불능화하고, 핵(核) 기술자를 통제하는 데만 최단 3년이 걸린다. 이 단계가 북·미 간 첨예하게 논의된 CVID의 골자다. 둘째 단계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줄 때 함경북도 신포에 짓다 만 경수로를 재사용할 경우 최단 5~6년이 걸린다. 셋째 단계는 오염된 북한 핵시설의 방사선 제염·해체 및 환경관리·복원 사업이다.”


“1975년 남북의 운명이 갈렸다…核으로 인해 다른 길 걸어”북한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원자력 평화적 이용협정’을 소련과 체결한 후 1950대 말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핵무기 개발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1980년대 말부터 가시적 성과를 내놓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 공동관리를 위해 IAEA가 1957년 설립됐다. 남북이 IAEA 창설 멤버로 가입했다. 이승만 정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세웠으며 김일성은 평안도 영변에 원자력 단지를 만들었다. 평양은 1970년대까지 전력 생산과 군사 목적 양쪽으로 접근했다. 1975년께 남북의 운명이 갈린다. 그때부터 북한은 평화적 이용이 아닌 핵무기 개발에 전념한다. IAEA 회원국이 자진 탈퇴한 것은 전례가 없다. NPT를 탈퇴한 것도 북한이 유일하다. 핵으로 인해 남북이 다른 길을 걸었다. 동시에 원자력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정반대다. 기구하고 특이한 한반도의 운명이 핵에 담겨 있다.”

북한은 1993년 IAEA와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1994년 영변 시험용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인출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차 북핵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위기가 봉합되는 듯했으나 2002년 우라늄 농축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나는 기계공학자로서 원자력엔 문외한이었다. 1975년 귀국했더니 고리 1호기 건설이 한창이었다. 원자력만이 가진 특수한 매력이 있다. 대전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정문 앞 큰 돌에 ‘E = mc²’ 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새겨져 있다. 우라늄이 핵분열하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E’ 다. 질량(m) 곱하기 ‘c²’ 에서 ‘c’ 는 광속이다. ‘c’ 가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인데 그것의 제곱이니 천문학적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안전하게 뽑으려면 기계공학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원자력에 매료됐다. NASA에서 일하려면 미국 국적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원자력 하면서 미국 국적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국적을 정리하고 우리나라 원전 사업에 말뚝을 박기로 했다.”

핵무기와 원전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E = mc² 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한꺼번에 터뜨리면 핵무기, 느린 속도로 정밀하면서도 안전하게 컨트롤하면 원전이다. 쉽게 말해 핵무기 개발에 비해 원전이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다.”


“영변에 엄청나게 큰 재처리 공장 터 잡아”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이 폐기하거나 해외로 이전해야 할 핵물질은 어떤 것인가.

“북한은 황해도 평산에 우라늄 광산이 있어 원료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 영변에는 초창기 영국식 가스로(Magnox type)가 도입됐다. ‘마그녹스’라고도 하는 발전 겸용 원자로를 지었다. 마그녹스는 핵무기와 플루토늄 생산엔 적합하지만 발전 능력은 좋지 않다. 마그녹스에서 타고 나온 핵연료는 부식이 발생해 부서지기에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다. 핵연료가 부서지면 방사능 오염이 발생한다. 한국 원전처럼 사용 후 핵연료를 수조(水槽)에 장기간 저장하지 못하므로 곧바로 재처리해야만 한다.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평화적 목적 사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그녹스를 포기한 이유다.”

2009년 11월 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영변 핵시설 내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영변의 영국식 가스로에 이웃한 곳에 엄청나게 큰 재처리 공장이 터 잡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자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것이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으면 앞서 말했듯 연료가 부서져 관리가 안 된다. 북한은 사용 후 연료봉을 재처리해 충분한 무기용 플루토늄을 얻었다. 이 무기용 플루토늄을 전량 북한 밖으로 반송(搬送)해야 한다.”

북한이 완성한 핵무기는 어떤 것인가.

“원자폭탄엔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이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게 우라늄탄, 나가사키에 떨어진 게 플루토늄탄이다. 북한은 마그녹스 원자로에서 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탄을 만들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져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함경남도 신포에 경수로 2개를 지어주기로 했다. 울진 3·4호기를 참조 발전소로 삼은 한국형 원전이 북한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중단 대가로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합의가 이행되는 듯하더니 2차 북핵위기가 터졌다. 우라늄 농축 문제가 불거졌다.”

KEDO는 북한이 마그녹스 원자로 2기를 동결하는 대가로 제공하기로 한 1000MW급 경수로 2기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컨소시엄이다.


우라늄 농축 기술 이란서 넘겨받았나?“2차 북핵위기가 터지면서 우라늄 농축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KEDO가 경수로를 짓는 상황에서 우라늄 농축이 탄로 났으니 북·미 협정을 엄중하게 위반한 것이다.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면서 KEDO 사업이 중단됐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란에서 넘겨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란에 넘기고 우라늄 농축 기술을 대가로 받았다는 것이다. 이란이 농축 기술을 엄청나게 축적해놓았기에 나온 추측이다. 천연우라늄을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이 우라늄탄 원료다. 국제적으로 20% 넘게 농축한 우라늄을 HEU라고 칭한다. 천연우라늄은 U-235가 0.7%가량 농축돼 있는데 무기용으로 사용하려면 98% 이상 농축해야 한다. 무기용 HEU는 초고농축 우라늄이라고 하겠다. 비핵화 과정에서 HEU도 모두 북한 밖으로 반송해야 한다.”

원전 원료로는 얼마나 농축된 우라늄을 쓰나

“경수로에서는 3~5%짜리 농축우라늄을 쓴다. 북한이 확보한 농축 기술이 원심분리식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란이 가진 기술이다. 원심분리기로 천연우라늄을 돌려 3~5% 농축됐을 때 꺼내 사용하면 원전 연료, 98%까지 계속 농축하면 핵무기 원료가 된다. 북한이 풍계리에서 6차례 핵실험하지 않았나. 플루토늄탄뿐 아니라 우라늄탄도 만든 게 확실하다.”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물질은 작고 북한은 넓다.

“핵무기 시설만 영변을 비롯해 수십 곳에 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땅 덩어리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7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核) 기술자 거의 전원이 무기 개발 요원인 것이다. 영국식 가스로를 사용했기에 방사능 오염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대조적이다. 평화적 이용을 통해 원전을 수출하는 단계까지 왔다. 1978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가동했다. 지난해 영구폐쇄가 결정된 고리 1호기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이 24기다. 원전에서 나온 전력이 국내 에너지의 30%가량을 차지한다. UAE에 수출한 한국형 APR1400은 최신형 3세대 원전으로 세계적으로도 몇 기가 되지 않는다. 상용 원전을 워낙 여러 개 짓다 보니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다만, 한미 간 협정으로 인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없기에 농축우라늄을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 원전을 돌린다.”


“핵무기는 원전에 비하면 원시적 기술”


NASA가 촬영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 위성사진. 불빛이 찬란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아 캄캄하다. [뉴시스]그가 인공위성이 한반도를 야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남북을 이렇듯 명료하게 비교해주는 사진이 없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남북이 양극화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수도권을 비롯한 남측의 불빛이 터질 듯한 반면 북측은 새까맣다. 평양이 작은 점 하나로 보일 뿐이다. 1975년 남북이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만 만들다가 암흑천지 꼴이 됐고, 한국은 원전을 주력으로 삼아 확대함으로써 번영을 이뤄냈다.”

북한이 ‘한국이 걸은 길’을 걸었다면 소련·중국 지원을 받아 원전을 건설했겠다.

“그렇다. 북한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전기가 급하니 제네바 합의 때 경수로 지어달라고 한 것 아닌가. 핵탄두·핵폭탄 만드는 것만 하다 보니 에너지난이 가중됐다. 앞서 말했듯 핵무기는 원전에 비하면 원시적(primitive) 기술이다. 컴퓨터도 없던 제2차 세계대전 때 E = mc²을 놓고 ‘이렇게 하면 터질 것’이라면서 만든 게 핵무기다. 북한뿐 아니라 기본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한 후 마음만 먹으면 개발할 수 있는데 북한은 국력을 그곳에 탕진해 민생이 굶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원자력 정책이 남북의 운명을 바꿨다.”

완전한 비핵화는 어떤 절차를 거쳐 이행되나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과거 핵은 완성한 핵무기와 뽑아놓은 핵물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핵물질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두 종류다. 마그녹스 원자로에서 나온 핵연료를 재처리한 플루토늄은 원자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약 8㎏이 필요하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무기 수십 개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재처리를 통해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을 뽑아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은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 추출 과정을 마스터했다. 문제는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무기용 외에 다른 용도로 쓰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HEU 희석하면 원전 연료로 쓸 수 있어”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원전 연료 등으로 전환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속로가 상용화하기 전까지는 쓸모가 별로 없다.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독성이 강해 어마어마한 차폐막(shield)으로 격리해야 한다. 방사능 독성이 심해 다른 나라로 반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 고농축 금속 우라늄(HEU)은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과 달리 취급이 쉬운데다 방사능 관리 또한 용이하다. 98%까지 농축한 HEU 약 25kg으로 핵탄두 1개를 만들 수 있는데, 98%로 농축된 것을 천연우라늄과 물리적으로 섞어 희석하면 4~5%로 농축도를 낮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료로 쓸 수 있는 우라늄 양이 20배가량 늘어난다.”

HEU는 북한 밖으로 반출해 처리하기가 용이하겠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후 HEU 500t을 미국에 돈을 받고 판매한 전례가 있다. ‘메가톤을 메가와트로(Megatons to Megawatts)’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이다. 20년간 지속됐는데 미국 원전에서 전력 생산에 활용했다. ‘파괴력을 희석해 전력으로 바꾼다’ 멋진 말 아닌가.”

핵물질·핵무기를 미국으로 옮겨 폐기하는 것과 북한에서 처리하는 것을 두고도 협상에서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봉인과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핵물질·핵무기는 북한 밖으로 반출해야 한다. 수송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물질은 북한 내에서 처리하는 게 더 안전하긴 하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재처리 공정 중의 플루토늄은 어떻게 하나.

“미국 등으로 수송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 핵연료가 부식돼 부스러졌으면 건져내기도 어렵다.”

기왕의 핵무기는 은닉한 것 없이 모두 외부로 반출해야 의혹이 남지 않는다.

“워싱턴은 전체 핵탄두와 무기급 핵물질을 통째로 미국으로 가져와 폐기하겠다고 주장할 것이나 북한이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내놓기가 어려운 것도 많을 것이다.”


“중동에서 北 기술자 스카우트하는 것도 核 확산”과거 핵에 대해 지금껏 설명했다. 현재 핵은 어떻게 폐기하나

“현재 핵은 대부분 시설과 관련된 것이다. 영변을 비롯해 100여 곳에 산재한 것으로 알려진 핵시설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농축 시설, 재처리 공장, 부속 및 부품 공급 시설, 원자폭탄 저장 시설, 비밀 동굴 등이 있을 텐데 그것을 다 찾아내 불능화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겠다.

“비핵화 첫 단계로 CVID 범주에서 대상 핵시설을 불가역적으로 폐쇄하거나 주요 기기를 제거해야 한다.”

과거 핵, 현재 핵을 폐기하더라도 미래 핵은 남는다. 과학자·기술은 남았으므로 재(再)핵무장이 가능하다.

“사람의 머릿속을 지울 수는 없다. 북한 핵기술자들은 평생 그 일만 했다. 다른 기술을 가르쳐 전직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위치에 도망 못 가게 묶어놓고 일감을 주고 먹고살게 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겠나. 이란, 시리아 같은 나라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혈안일 것이다. 북한 핵기술자가 700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고급 과학자와 1,2,3급을 나눴을 때 하위급 기술자는 젊고 경력도 적을 테니 전직이 이뤄질 수 있겠으나, 상위급으로 올라갈수록 다른 기술을 가르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란, 시리아 등에서 스카우트해가면 굉장히 위험하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1단계가 이뤄지려면 핵기술자까지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 CVID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핵기술자의 대부분을 방사선 오염 해결, 제염·해체, 폐기물 처리·처분 및 환경관리 분야에서 활동하게 해야 한다.

1990년 소련 붕괴 후 ISTC(Inter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enter)라는 조직이 모스크바에서 창설됐다. 소련 시절 핵무기 개발에 종사한 과학기술자가 수십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일하면서 외국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도록 일감을 줬다. ‘한반도판 ISTC’를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의 ISTC는 현재까지 진행된다. 북한에 원전이 건설된다면 그곳에서 일하게끔 직업 전환 교육을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핵물질 숨겨놓고 신고하지 않아도 찾아내긴 어려워”사람을 빼가는 것도 일종의 ‘핵 확산’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핵 확산이다.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보자. 비핵화는 어떻게 시작되나.

“첫 단계는 핵 프로그램 전체를 북한이 자진 신고하는 것이다.”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자신신고 목록 작성 단계에서 파탄 났다.

“북한이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을 샅샅이 신고해야 한다. 신고한 내용이 실제와 같으냐를 살피는 게 검증 단계다. IAEA가 사찰할 것이다. IAEA와 미국, 또한 한국의 사찰 전문가들이 (북한이) 핵물질을 어떻게 관리해 핵탄두까지 갔느냐는 히스토리를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데이터를 내놓으면 히스토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나.

“핵 시설 운전 실적부터 검증할 것이다. 원자로를 언제 얼마나 가동했고, 재처리 공장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동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핵물질이 얼마나 생산됐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 만들었으며 핵물질은 ○○○㎏이 남았다는 계산이 가능하다면 데이터를 넘겨받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겠다. 엉터리 데이터를 내놓을 가능성은 없나.

“데이터를 확보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나 북한은 공정이 후진적이어서 로스(loss·손실)가 많았다고 틀림없이 주장하리라고 예측한다. 며칠을 운전하면 얼마가 나와야 하는데 반밖에 안 나왔다, 로스로 다 사라졌다는 식으로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해석을 두고도 논란이 생기겠다.

“검증 단계에서 북한이 정직하게 신고했는지를 두고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IAEA가 검증을 끝낸 후 사찰 결과를 내놓는다. 완벽한 검증은 불가능하다. 숨겨놓고 신고하지 않아도 찾아내기 어렵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할 때 핵물질 상당량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나. 소련 과학자들이 나라가 해체돼 혼란스러울 때 핵물질뿐 아니라 핵탄두도 팔아먹었다는 얘기가 있다. 북한으로도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

북한에 소련 과학자들이 망명했다는 탈북 북한 관료 증언이 있다.


“北 ‘이게 다다, 더는 없다’ 주장할 것”핵무기와 핵물질 일부를 숨겨놓는다면 완벽하게 검증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인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은닉 가능성을 전제로 삼고 비핵화 단계를 밟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북한 내부에서 증언이 나오지 않는 한 은닉하더라도 찾아내기 어렵다. 참여한 이들이 자수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모호성을 가진 상태에서 각 단계를 밟아갈 공산이 크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게 다다, 더는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인 후 이웃 나라와 평화적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선진국처럼 북한 사람들이 ‘핵무기 필요 없다, 오히려 손해다’라는 인식을 가질 때 핵 문제가 비로소 해소될 것이다. 핵무기라는 게 숨겨놓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고 국력을 피폐하게 한다.”

핵물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나.

“핵물질은 일반 물질과 다르게 특이한 성질을 지녔다. 반감기를 거치면서 강도가 떨어진다. 오래 보관하면 터질 수 있는지 불투명해진다.”

업그레이드 없이 10년, 20년 지나면….

“저장·관리·보관하기도 위험하고 쓸모없는 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실험을 다시 할 수도 없지 않나.

“언젠가는 자수할 수밖에 없다. 유지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갖고 있는 것 자체도 엄청나게 부담이다. 플루토늄 계열이 특히 그렇다. 방사능이 세서 격리해놓아야 한다. 언젠가는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불능화 과정은?

“핵 시설을 하나하나 찾아내 폭파하거나 주요 장비를 떼어내 폐기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영변 핵시설의 방사능 오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방사능 덩어리를 폭파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방사능이 주변에 확 퍼질 수 있다. 핵심 장비를 뜯어내 공정이 돌아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방사능 오염 시설을 해체하고 오염된 환경을 복구하는 작업은 인력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에 IAEA나 미국이 진행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기술자들이 올라가 북측과 공동으로 관리·감독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방사능 오염 지역 및 시설의 제염과 해체, 환경 복원에 남측이 가진 선진 기술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북측의 핵기술자를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할 능력은?

“핵물질 관리나 환경 보존에 신경 쓰지 않고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터뜨리는 데만 집중했으므로 아무래도 안전성 관련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 유엔 대북 제재가 풀리면 한국 기술자가 할일이 많겠다.

“북한이 경제 발전에 나서려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력난부터 해결해야 한다. 1단계 비핵화로 CVID가 차질 없이 진전된 후 2단계 비핵화로 남북 간 경협 차원에서 에너지 분야에서 남측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에 송·배전선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다.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남북을 잇는 송·배전선도 필요하다. 남측 여유 전력을 북측에 송전해줄 수 있다. 한여름 극히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여유 전력이 충분하다”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도 전력 송전이 도움을 줄 수 있겠다.

“그렇다. 북측은 남측에서 보내주는 전기를 받아쓰는 게 불안할 것이다. 핵 폐기 보상으로 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신포에 KEDO가 짓다 만 경수로가 있다. 그것을 재활용할 수 있다. 토목 구조물을 거의 완공한 상태에서 공사를 언제 재개하더라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게끔 해놓고 철수한 것으로 안다. 바닷가다 보니 철근, 콘크리트가 소금기 탓에 부식될 수 있기에 철저하게 밀봉해놓고 철수했다고 들었다. 신포 경수로를 재건설하는 날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신포 원전은 2009년 15억 달러를 투입한 상태에서 공정 35%에서 중단됐다.

그가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야 2:3~4)’라는 구절이다. ‘메가톤을 메가와트로(Megatons to Megawatts)’를 성경 구절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그는 “북한 비핵화 지원이 침체된 국내 원자력계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고농축우라늄(HEU)을 희석(dawn-blending)하면 저농축우라늄(LEU)을 생산할 수 있다. 아주 쉬운 기술로 가능하다. 북한이 확보한 HEU가 대략 200㎏가량인 것으로 얘기된다. 98%를 4%로 희석하면 20배가량 양이 늘어난다. 북한이 200~500㎏을 갖고 있다면 그것의 20배에 해당하는 원전 연료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국내 기술로 HEU를 LEU로 희석할 수 있다. 무기용 HEU로 원전 원료를 만들어 한국이 사용하면 핵 폐기 대가로 북한에 지원한 돈을 돌려받는 셈이 된다. 구약성경에서 말한 대로 칼, 창(무기)을 보습, 낫(농기구)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그가 덧붙여 말했다.

“완벽한 국제적 신뢰와 검증을 전제로 비핵화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북한의 원자폭탄과 핵물질을 한국에서 국내 기술로 희석해 원전 연료로 만들어 사용한 뒤 생산된 전기를 북한에 송전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北이 만든 ‘무기용 핵물질’로 南 원전 돌려 北에 송전”핵탄두에 들어간 HEU도 꺼내 원전 연료로 쓸 수 있나.

“그렇다. 원자폭탄을 녹여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1990년대 옛 소련의 HEU를 미국이 사들여 경수로 핵연료로 연소한 실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극비리에 개발·완료한 우라늄 핵탄두를 자진 포기하면서 이를 녹여 상징적으로 농기구인 쟁기로 재가공해 IAEA 본부에 기증한 적도 있다. 북한이 만든 핵물질을 한국에서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소량이더라도 남북 간 아주 상징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구상에 주목하면 좋겠다.”

미국은 비핵화 과정에서 핵물질의 해외 반출을 바랄 것이다.

“물론 비핵화 첫 단계에서는 전량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미 간 비핵화의 신뢰가 충분히 쌓이면 일부 HEU 물질을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 핵연료로 재가공할 수 있다. 북한이 만든 무기용 핵물질로 한국 원전을 돌려 북측에 송전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실현된다면 기가 막힌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 사업이 될 것이다. 남측의 기술로 분명히 가능한 일이니 남·북·미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골칫거리다. 플루토늄을 원전 핵연료로 쓰는 나라는 프랑스밖에 없다. 그것도 소량이다. 방사능 덩어리인 터라 운반도 어렵다. 플루토늄을 고속증식로에서 태우면 재사용이 가능하긴 한데, 미국도 고속증식로 사업이 상업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접었다고 들었다. 운반을 쉽게 하면서 핵무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는 파이로 기술(pyro-processing)이 국내에서 개발 중인 것으로 안다.”

그는 끝으로 탈(脫)원전 정책의 모순을 지적했다.

“UAE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 등 해외 수출 전망이 아주 밝다. 원전 기술이 뛰어난 데다 한국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높고 가격도 경쟁력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경쟁력이 앞섰는데 국내에서 탈(脫)원전을 한다고 해 문제가 생겼다. 원전 사업에 종사하는 국내 전문 인력이 3만여 명에 달한다. 수만 가지 부품, 서비스가 들어가기에 유관 산업체가 700여 개다.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갖췄는데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원전도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할 일이 사라진다. 이 전문 인력이 흩어지면 국내 원전 기자재 공급망이 총체적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