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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0

Namgok Lee |서평 김상준 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2211

(4) Namgok Lee | Facebook

Namgok Lee
·
박석 교수가 강력 추천하여 김상준 저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주문했는데, 열흘이 되도록 책이 안온다.
(처음으로 온라인 주문에 성공했는데)
어제 전화했더니 자기들한테 책이 없어서 출판사에 주문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절판되었으면 주문 취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꼭 보고 싶은데.


그 동안 아들 통해서 책을 구입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이 11일만에 드디어 왔다.
박 석 교수의 추천도 있었지만, 평소 문명에 대한 그의 거대 담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김상준 교수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다.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중층 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주제로 쓴 책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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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교수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읽기 시작했다.
제1부 제1장 중층 근대성: 근대성 이론의 혁신을 읽었다.

몇 문장을 발췌 소개한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면서 읽으면 된다.


“근대성이란 인류문명의 합작품이었지 특정 문명이나 지역의 특산물, 독점재(獨占財)가 아니었다. 근대성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근대성의 발생과 전개라는 문제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요소의 발아 및 발전으로 축소될 수 없다.
반(反) 자본주의적 지향이든 자본주의 찬미론자든 ‘근대성=자본주의’등식은 성급하고 역사적 시야가 짧은 것이다. 반자본주의적 탈근대론이든, 친자본주의적 역사종언론이든 자본(시장)중심의 상품교환양식의 역사적 존재방식과 운명에 대해 우상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인류 역사가 크게 변화했던 굴곡점의 시발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속(聖俗)의 통섭 전도라는 계기였다. 자본주의 역사는 근대성 역사 내부의 소(小)역사일 뿐이다.“

“‘통섭Ⅰ’의 시기에 경화(硬化)된 성(聖)의 지배가 저항의 대상이 되었듯, 
‘통섭Ⅱ’의 시기에는 굳어가는 속(俗)의 지배가 이의 제기와 저항의 대상이 된다”

“ ‘통섭Ⅱ’의 시기가 ‘역사의 종말’일 수없다. 미래의 인류는 그 너머를 여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돌파를 반드시 거듭 이루어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것이 될 것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앞 선 역사가 그랬듯 여기서도 현존질서의 인과(因果)를 넘어서는 ‘시간 밖의 시간’ ‘공간 밖의 공간’ 차원의 스파크, 윤리적 계기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다. 그러한 ‘근본적인 돌파’ 이후의 인류는 새로운 인류일 것이다”

*이 장(章)을 읽으면서 저자가 그리는 거대담론의 모습과 그 지향점을 짐작케 한다.
인류의 미래와 문명의 전환(저자는 이 장(章)에서 ‘돌파’라는 말을 사용한다)에 대해 크게 보면 내가 바라보는 지점과 비슷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의 이론과 사상의 전개가 더욱 궁금해진다.
거대담론은 정치경제적 현실과 만나면서 비로소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를 비롯한 위기의 징후들이 문명 자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저자의 담론이 새로운 정치나 경제 질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靈感)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Namgok Lee

요즘 보고 있는 책이 김상준 저 ‘맹자의 땀, 성왕의 피’다.
김 교수는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를 구분하는 기준을 성속(聖俗)의 통섭 관계의 변화로 본다.
(전에 내가 페북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아시아 사회가 변화 발전 없이 정체(停滯)에 있었다는 편견은 충분히 기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아시아 정체(停滯)론의 뿌리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따른 사회단계론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씨족적 사회구성체를 바로 이은 단계로 규정하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보고, 가라타니 고진을 소개하면서 그가 사회구성체를 단계론에서 유형론으로 전환하는 적극적 의미를 긍정하면서도 즉 마르크스 사회구성체론에 일보 전진을 이루어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계적 단계론이나 서구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함으로써 중도반단(中道半斷)의 상태에 머문 것을 비판하고 있다.

김 교수가 가라타니 고진을 넘어서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지 여부는 학계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이론적인 시도가 대단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김 교수의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김 교수의 말처럼 모든 역사 인식과 역사 기술은 현재를 좀 더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361페이지)
한발 더 나아가면 결국은 누가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가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이지만 내가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가 ‘태조 왕건’이다.
무려 200회 짜리 대하드라마다.
매일 2회씩 100일을 보아야 한다.
틈틈이 빠지기도 하지만 지금 궁예로부터 왕건으로 권력이 이행하는 과정을 보고 있다.(오늘 114회째인가를 볼 예정)
내가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권력투쟁의 본질이 현재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北)은 거의 왕조 드라마와 같은 수준이고, 남(南)을 비롯한 이른바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조차 그 잔혹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권력 투쟁의 본질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시대 구분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정치가 이런 권력투쟁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루어질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들도 이 권력투쟁의 벽(壁)을 넘지 못한다면 같은 시대의 그물 안에 갇히는 것이다.
이제 그 벽(壁)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아마도 그 문명 이전과 이후로 시대가 구분되지 않을까?
무엇이라고 불리울지는 모르겠지만.
단절적 변화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그 치열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류의 존속 자체가 위협 받는 위기와 함께.
김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태조 왕건’이라는 대하 드라마를 동시에 보는 이 우연을 즐기고(?) 있다.

====
상전 벽해, 桑田碧海
/-벼캐/
명사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의 비유. 벽해상전. 
창상(滄桑). 창상지변(滄桑之變). 상전창해. [준말] 상벽·상해(桑海).
"∼라더니 몰라보게 달라진 고향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


Namgok Lee

김상준 교수의 책,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보면서 김 교수가 그 안목이나 논리 전개에서 천재적이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가 비판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가지는 정파성과 마찬가지로 김 교수 자신이 어떤 정파성을 가지고 단순화하고 있지는 않은지는 학계의 엄중한 검증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동아시아 유교소농체제’를 현대의 ‘중간경제(middle economy)’와 연결시키는 논리를 발췌 소개한다.

“중간 경제란 ‘국가경제와 (기업중심의) 시장경제 사이에 존재하면서 한편으로 양 경제를 보완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경제다. 
중간 경제는 ‘슈마허가 말하는 <중간기술>에 친화적인 경제로서, 국가경제 시장경제와 같은 거대 경제가 고에너지 소비-노동절감적 거대 기술에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친환경적 저에너지소비-고용유발적 중간기술이 잘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다‘

중간경제의 이러한 특징은 앞서 정리한 ‘동아시아 유교경제’의 특징과 상당히 중첩된다
중간경제의 근본은 정직한 소생산자의 경제다.

(중략)
발달한 소생산자의 압도적 다수는 도시에 거주한다. ‘현대소농사회’의 주요 거점은 압도적으로 도시다.
(중략)
주업이든 겸업이든 프리랜서는 모두 소생산자다. 자신만의 지식과 경험, 창조성을 생활근거로 하는 전문직 역시 소생산자다. 시민사회나 정치사회의 헌신적인 활동가들도 소생산자다.
(중략)
소농의 회귀는 발전한 자본주의, 또는 후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의외의 현상이다. 
이들 ‘돌아온 소농’은 과거의 소농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많다.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도시 공동체운동, 다양한 비영리 자발조직의 출현, 대안화폐 실험, 각종 생협활동,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 귀농을 통한 마을만들기 등의 움직임도 이들 ‘돌아온 소농’과 깊이 밀착되어 있다. 
이 속에서 작더라도 자신이 누구에겐가 줄 수 있는 도움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고 잇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농’이란 비유다. 그 압도적 다수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평범한 소생산자층의 미래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소농체제 성공의 비결은 소농의 항산(恒産)을 보장해 주엇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이 ‘소농항산(小農恒産)의 의미가 오히려 크게 새로워지는 바가 있다.

(중략)
‘현대의 소농사회’가 주는 시사점은 비단 경제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소생산자들간의 자유로운 연대 활동이 민주주의의 진화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활동성은 시민운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영역을 혁신하려는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사회를 환골탈태시킬 키플레이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강조해 온 ‘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들 세력의 정치적 상상력 및 활동성과 큰 연관을 가지고 있다.
(중략)
삶의 질의 제고를 위한 창조성이 격려받고 보상 받는 새로운 생산의 길, 나눔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하는데, 과거 장구한 역사를 통해 그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했던 ‘동아시아 소농체제’의 경험은 충분히 깊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 이 정도 글을 옮기는 것은 나와 같은 독수리 타법으로는 꽤 힘든 노동이다. 그러나 내가 기꺼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김 교수의 견해나 논리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격이 높아진 토론의 주제로 다뤄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찬반을 떠나 이런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영감(靈感)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저서라고 생각해서 일독(一讀)을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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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 이념• 체제•과학이론•문명 등의  창조성(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과의 단절(斷絶)을 강조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반(反)과학적이다. 실제로는 전통의 저수지에서 새로움이 싹트고, 전통의 어깨를 딛고 창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500년 전에 공자는 이를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표현했다.
대단히 보수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이런 바탕에서 공자는 ‘헌 부대에 새 술을 담는’ 방식으로 사상적 창조의 세계를 열었다.
 단절(斷絶)을 강조하는 것은 혁명적 열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과 맞지 않는 관념적 단절은 사회운동의 경우 실패로 귀결되기 싑다.
20세기의 세계적 실험이었던 사회주의의 실패가 그 생생한 경험이다.

‘맹자의 땀, 성왕의 피’ 독서가  거의 종착점에 왔다.
나는 요즘 독서 습관은 빠르게 천천히 보는 것이다.
속독이지만, 읽는 시간은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체력, 시력, 집중력 때문)
그래서 먼저 읽은 내용을 잊어버려 가면서 읽는다.  틈틈이 독후감을 써서 벗들과 공유하지만, 더 크게는 나 자신의 독서 습관(속독)을 보완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章)이 ‘동학(東學)-대중 유교와 인민주권’이다. 
책의 편제로 봐서 이 장(章)을 통해 저자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가 담길 것 같다.
 동학을 끝머리에 둠으로서 동학의 창조성이나 역사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나에게는 느껴진다.

그는 동학을 이렇게 말한다.
“ ‘유교를 벗어난 입장에서’ 유교를 자유자재로 변용했다기보다는, 거꾸로 유교적 맥락에서  무(巫) 도(道) 불(佛) 그리고 서학(西學)의 자원을 자유자재로 변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유교의 대중화 현상은 ‘유학을 벗어난 입장’에서 외삽(外揷)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유학•유교정치•유교 사회의 내적 전개의 필연적 산물이었던 것이다. 또 이렇게 보아야만, ‘요순치세’나 ‘국태민안’ ‘보국안민’과 같은 , 유교로부터 빌려온 것이 분명한 동학운동의 목표 역시, 유교적 문화 자원에 깊이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 의존을 통하여 ‘사회체제적 한계를 돌파’(신분질서를 극복)하는 계기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역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동학(東學)에 대해서 연구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요즘 문명전환 운동을 하는 분들과의 교류가 나에게 동학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는 동인이 되고 있다.
아마도 김 상준 교수와 다른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본다.
동학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우리 공동체의 뛰어난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동학이 위기에 처한 인류적 상황과 국내외적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관심이 더 크다.

아마도 한 번 더 독후감을 쓰는 것으로 이 책의 독서는 일단 마칠 것 같다.
 동학이 우리 공동체에  남긴 귀중한 유산과 교훈을 지금 여기에서 살리는 길이 무엇인가를 함께 모색하는 작은 공간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Namgok Lee
·
김상준 저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일단 다 읽었다.
초판이 2011년에 나왔으니까, 그 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기후 변화나 팬데믹 등이 인류라는 종(種)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강도를 심화시키고 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신(新) 냉전(冷戰)으로 불릴만한 대결이 심각한 안보 위기를 낳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한국에서는 몇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고, 특히 근래 두 차례의 정권교체는 극(極)에서 극(極)으로 이동하는 듯한 교체가 신 냉전 질서와 맞물려 대단히 복잡한 정세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한국의 변화된 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적인 편가름으로 사라져야할 과거를 다시 불러내는 듯한 상태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정치사상적 혼돈을 벗어나 한국이 동아시아와 세계문명을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섰을 때, 지금의 정치에 대해 긍정적 측면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차도절환(借刀切患; 남의 칼을 빌려서 자신의 환부를 수술한다)’의 시기였다고 평가하게 되기를 바란다.

김 상준의 이 책은 밝은 미래를 독창적이고 담대한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가 인용한 참고문헌을 소개한 것만 33페이지에 이를 만큼 학자로서의 최선을 다한 역작이다.
김 교수의 입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넘어서 일독을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김 교수와 전체적인 총론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일치점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름이 있다.
나는 이 다름을 어떤 류의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점에서는 필요한 다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김 교수와 직접 나눈 바가 있다)


에필로그 맨 끝에 나오는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친다.

“이제 한국이 세계 제2위의 부국이 되리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09년 골드만 삭스가 그린 2050년 통일 한국의 모습이다. 

한쪽으로는 미국을, 다른 한 쪽으로는 중국을 낀 통일 한국의 미래는 확실히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이러한 때야말로 기성의 것, 기지(旣知)의 것 너머를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익숙했던 것 안에 갇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이를 환대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중략)

이 시대에 우리는 물론 외부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면으로 향하는 문 역시 열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내면의 열림 없는 바깥 보기는 허황하다. 

이 책은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그곳에서 미지의 손님을 찾았다. 그가 유교였다
이미 알려진 유교가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교였다. 

이미 알려진 우리 자신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에서 움터오는 빛은 윤리의 빛을 담은 새 문명의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타자를 지우고 가두어 강해지는 지배의 문명이 아니라, 타자를 발견하고 환대하는 나눔의 문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18You, 이병철, Yuik Kim and 15 others




2022-02-12

노동자의 책 : 한국사회주의운동가

노동자의 책 : 한국사회주의운동가




마르크스주의 | 인물 | 정치경제학 | 미학 | 철학 | 한국현대사회운동 | 한국사회주의운동가
가(554) 나(24) 다(8)마(31) 바(199) 사(97) 아(526) 자(272) 차(94)타(2) 파(2) 하(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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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영 (姜達永, 1887〜1942) 黃山 紅爐
(조공 책임비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어려서 10년간 한학을 수학했고, 진주도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진주·합천에서 3·1운동...
강대창 (姜大昌, 생몰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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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구 (姜道求, 1902〜?)
(홍원농조 참가자) 함남 홍원 출신으로, 학천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서울 중동학교 재학중 북풍회계 학생운동단체인 서울학생구...
강동범 (姜東範, 1892〜?)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성진 출신으로 1929년 8월 북간도에서 혁명자 구원회 활동에 종사했다. 1930년 조선공산당 만주...
강동주 (姜東柱,1906〜?) 南天祐
(고려공청 책임비서) 함북 회령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친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 흑룡강성(黑龍江省) 목릉현(穆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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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운동 참가자) 제주도 출신으로, 1929 년 7월 전남공립사범학교 2학년 재학중 ‘독서회 중앙부’ 산하 사범학교 독서회에...
강문석 (姜文錫, 1906〜?) 金達三 姜文道 荒井 山下
(全協 화학노조 상임위원) 제주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 4월 토오꾜오(東京)로 건너가 조선인 사회주의자들과 ...
강문수 (姜文秀, 1904〜?) 姜武秀 姜武洙 趙基斗 金一松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니꼴리스끄에서 관립사범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1921년 ...
강민호 (姜玟鎬,1906~?)
(고려공청 회원)경남 진주 출신으로, 1924년 무렵 경남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검거되어 1925년 3월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
강백규 (姜伯奎, 1878~?)姜栢奎
(고려공산당원) 1908년 10월 용정(龍井) 후저동(厚底洞)에서 정동서숙(正東書塾)을 창립했다. 1914년 9월 화룡현(和龍縣) 호천포(湖...
강병도(姜炳度, 1908~?)
(조공 당원,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참가자) 경남 진주 출신으로, 강병창(姜炳昌)의 동생이며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28년 ...
강병창 (姜炳昌, 1898~?)姜徹
(조공 일본부 검사위원) 경남 진주 출신으로, 강병도(姜炳度)의 형이다. 서울 중동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가서 니혼대학(日本...
강상범(姜相範, 1902~?)
(고려공청 만주총국 회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1920년대 후반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화요파)에 가입하여 남태맹(南泰孟)야체...
강상욱(姜尙郁, 1901〜?) 姜柄植 姜學動
(조공재건설준비위 회원) 간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9년 9월경 귀국하여 1930년 7월경 조선질소비료주...
강상주 (姜尙柱,1894~?)
(코민테른 창립대회 조선인 대표) 연해주 블라디보스또끄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광산지대로 이주하여 어...
강상호 (姜尙鎬, 1915〜69)
(중공 훈춘縣委 서기) 함북 출신으로 1931년 가을 북간도 해란(海蘭)에서 추수투쟁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으나 현지 농민들의 투...
강상희 (姜相熙, 생몰년 미상)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1921년 3월 조선노동공제회 제2차 정기총회 예비총회에서 정기대회 대표로 선정되었다. 1923년 7월 신사상...
강석봉 (姜錫奉, 1898~1966) (號)野丁
(조공 중앙검사위원 후보)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공립농업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광주에...
강석산 (姜石山,1912〜?)
(노동당 중앙위원) 함남 갑산 출신으로, 1937년 2월 갑산에서 결성된 한인민족해방동맹에 참여했다. 6월 민족해방동맹 산하단체인...
강석준 (姜錫俊, 1905~?)
(조공 東滿道區域局 선전부장)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간도로 이주했다.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을 졸...
강석현 (姜錫鉉, 1901~?)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30년 2월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 소오도구(小五道溝) 혁명자후원회(모...
강소천 (姜小泉, 생몰년 미상)
(조공 일본총국 조직부 책임자) 1927년 초 조선 공산당 일본부 조직부원으로 동부 야체이까에 배속되어 후까가와(深川), 혼죠(本...
강수성 (康守盛, 1905〜?)
(고려공청 일본부 간부) 경기도 고양 출신으로, 경성 인쇄직공조합 집행위원을 맡았다. 1925년 12월 부산 인쇄공장 노동자파업을 ...
강승록 (姜承綠, 1909~?)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청진 출신으로, 1930년 6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여 흥신동(興新洞)지부에 배속되었다. ...
강승률 (姜承律, 1909〜?) 姜樓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청진 출신으로 1929년 7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에 가입하고, 흥신동(興新洞) 야체이까 책임...
강승벽 (姜承壁, 1904~?)姜世一 金龍範
(조공 敦化郡責, 중공 龍井區委 조직부장) 함북 부령 출신으로, 1926년 4월 연길현(延吉縣) 혁명자후원회(모쁠)에 가입했다. 1927년 ...
강영균 (姜英均, 1902~?) 姜永均
(조공 당원) 함남 안변 출신으로, 연희전문학교에서 2년간 수학했다. 1925년 12월 신고산청년회 상무집행위원, 1926년 1월 안변청년...
강영석 (姜永錫, 1906〜?)
(조공 광주야체이까 책임자)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25년 이래 광주청년회 위원장, 광주청년연맹 위원장, 전남청년연맹 지방순회...
강영순 (姜錢淳,1902〜?) 姜春淳
(조공 일본총국 북부야체이까 책임자) 경남 진주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일...
강용수 (姜龍壽, 1903~?)
(고려공청 회원)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25년 상주 연봉청년회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8년 3월 상주청년동맹 외서...
강용진 (姜龍振, 1907〜?) 姜鑛鎭
(고려공청 만주총국 平岗郡 간부) 함남 홍원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상의향(尙纖鄕) 세린하(細麟河) 와룡동(...
강위룡 (姜渭龍, 1914〜?)
(항일연군 참가자, 인민군 소장) 1933년 2월 화룡현(和龍縣) 문봉촌(文峰村)에서 항일유격대에 입대했다. 1935년 3월 민생단원 혐의...
강유홍 (康有鴻, ?~1932) 강우박
(全協 참가자) 평안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노동자생활을 하면서 조선인노동조합에 가입했다. 1929년 이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
강윤구 (姜潤求, 1907?)
(고려공청 회원) 함남 홍원 출신으로, 1929년 5월 보성전문학교 재학중 고려공산청년회(ML파)에 가입하여 학생야체이까에 소속되...
강일모 (姜一模, 1899〜?)
(조공 만주총국 汪淸縣委 간부)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25년경 북간도에서 조선인 소학교 교원으로 일하면서 청년운동에 참가했...
강정희 (姜貞熙, 1905~?) 姜貞姬 아끄니아 (여성)
(조공 당원,種友會 중앙집행위원) 러시아 흑룡주 출신으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9월 귀국하여 조선어를 배우면서 경성...
강종득 (姜宗得, 1902~?)
(고려공청 담양야체이까 책임자) 전남 담양 출신으로,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과 예비과를 중퇴했다. 1927년 담양청년동맹 집행...
강진 (姜進 1905~?) 姜나후렌치 權成萬 金龍七 金와시리 白仁錫 술리모프
(조공 당원, 고려공청 중앙위원) 본적은 함북 부령이며, 러시아 연해주 뽀셰뜨에서 태어났다. 1913년 이후 하바로프스끄 고등소학...
강진건 (姜鎭乾, 1885~1962)
(함북 농민운동 지도자, 노동당 중앙위원) 함남 출신으로, 1909년 고향에서 협성학교(協成學校) 분교를 설립했다. 1910년 3월 만주...
강창보 (姜昌輔, 1902~45)
(제주 공산주의자협의회 책임자) 제주도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한학을 수학했고 서울에서 청년학관, 중동학교를 다녔다. 1924년 ...
강태범 (姜泰範,1906〜45)
(조공 만주총국 당원, 일본 밀정)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장은평(藏恩坪)으로 ...
강택진 (姜宅鎭, 1892~1926) (號) 何然
(노농총 상무집행위원, 고려공산청년동맹 검사부 책임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경북 풍기로 이주했고 서당에서 한문...
강표환 (姜杓換, 1899〜?)
(서울 인쇄직공 청년동맹 집행위원, 조공 당원) 서울 출신으로, 1920년대 초 농민사(農民社) 인쇄직공으로 근무했다. 이 무렵 인...
강학병 (姜鶴秉, 1897~?) 姜祥龍 松溪
(조공 당원)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서 함북 경성에서 성장했다.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3·1운동에 참가해 징역 1년을 선고받...
강학제 (姜學梯, 1907〜30) 姜霜野
(‘간도 5·30봉기’ 龍井 폭동지휘부 성원) 함북 경성군 용성면에서 광복단 부단장 강수희(姜受禱)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
곽지산 (郭池山, 1904~44)
(인민혁명군 제2군 獨立師 제1단 부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팔도구(八道溝) 장재촌(長財村) 출신으로, 1931년 3월 농민...
구봉운(具逢雲, 1907〜?) 具鳳雲 具赤 金晶山
(중공 延吉縣委 위원) 함북 온성 출신으로, 서울파 공산주의자그룹의 일원으로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 온성청년동맹 ...
구성태 (具成泰, 1895~1933) 구보
(중공 和龍縣委 서기)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을 다녔으며,1910년부터 구둣방점원으로 일했다. 1916년 일본으로 건너...
구순암 (具順岩, ?~1932)
(全協 참가자) 1930년 초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에 가입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노동쟁의에 관여했다. 1932년 4월 이와떼현(...
구연흠(具然欽,1883~1937) 滄海 蒼崖 江載厚
(조공 중앙검사위원) 경기도 양주에서 철원군수를 지낸 전직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1901년 대한제국 궁내...
구재수 (具在洙, 생몰년 미상) 金剛一 金仁哲
(민혁당 중앙위원, 남조선신민당 비서처장) 경남 출신으로, 고향에서 신문지국을 경영하면서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1934년 5월 중...
구창회 (具昌會, 1897~?)
(조공 당원) 서울 출신으로, 충북 괴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3 · 1운동 당시 검거되어 7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복심법원에...
권경섭 (權景變, 1890〜?)
(봉화적농재건위 관련자)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한학을 배웠다. 1926년 경북 예천 하금노동친목회를 하금곡농민회로 ...
권대형 (權大衡,1901〜?)
(조공 일본총국 당원) 경남 하동 출신으로, 1924년 3월 서울에서 중동학교를 졸업했다.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고 7월 중퇴했...
권병희 (權炳熙,1904~?)
(영덕공작위 간부) 경북 영덕 출신으로, 1924년 3월 영해 태화학원 고등과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1928년 2월 신간회 영해지...
권석환 (權錫煥, 생몰년 미상)
(영주농조 쟁의부장) 1929년 3월 영주농민조합 쟁의부장으로 선출되었다. 4월 개최된 영주청년동맹 제2차 집행위원회에서 풍기(豊...
권숙범 (權肅範, 생몰년 미상)
(노총 중앙상무위원)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1925년 3월 천도교 계통의 인공청년동맹, 12월 한양청년연맹에 가입했다. 1926년 11월 ...
권영규 (權榮奎, 1899〜?)
(고려공청 홍원야체이까 책임자) 함남 홍원 출신으로, 권영태(權榮台)의 형이다. 1924년 4월 사상단체 이럿타회 집행위원이 된 후 ...
권영민 (權寧珉,1909〜?)
(민전 충남지부 조직부원)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27년 12월 논산 양촌면청년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32년 5월 양촌노동조합 창립...
권영벽 (權永壁, 1909〜45) (本)金沫南 金壽男 金昌滿 金昌郁 權昌郁
(중공 譍聲磖子區委 서기) 함북 경성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1920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 연길현(延吉縣) 팔도구(八道溝)로 이주...
권영태(權榮台, 1908~?) 李正南 朴在郁
(홍원노조 관련자) 함남 홍원 출신으로, 권영규(權榮奎)의 동생이다. 고향에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홍원청년동맹에 관여했...
권예윤(權藝潤, 1907~?)
(안동콤그룹 관계자)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7년 3월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군청 임시직원, 영양군청 임시직원으로 ...
권오상(權五尙, 1900~28) 權五敦
(조공 당원) 경북 안동에서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4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신흥청년동맹에 가입했다. 1925년 연...
권오상(權五相, 1913~?)
(경성재건그룹 참가자)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1927년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4월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3...
권오설(權五卨, 1899~1930) 洪一憲 權ᅳ 朴詰熙 金三沫 金亨善
(노농총 상무집행위원) 경북안동에서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권오직(權五稷)의 형이다. 대대로 사족(士族) 가문이었으...
권오직(觀五稷, 1906~?) 權善得 南秉喆 보스또꼬프(BoCTOKOB) 幸田五稷
(조공조직준비위 선전부 책임자) 경북 안동에서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권오설(權五卨)의 동생이다. 대대로 사족(士族) ...
권용대(權容大, 1899~?)
(공산대학 유학생) 함남 함흥 출신으로, 1930년 초경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의 추천으로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
권우섭(權宇燮, 1906~?) 權昌煥
(봉화적색농조 관계자)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5년 3월 대성학원을 졸업했다. 1926년 여름 봉화청년회, 영봉프로운동자동맹에 가...
권우성(權又成, 1915~?) 安哲沫 金英坤 權乙益 姜順明 李載哲
(경성콤그룹 마산 책임자) 경남 산청 출신으로, 1931년 3월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33년 2월 일제의 열하(熱河) 출병...
권원하(權元河, 1898~1936) (號)重山 (字)道壯 權世衡 權鋒
(예천농조 위원장)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한학을 배웠다. 1913년 왜관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7년 3월 서울 중앙고등보...
권익환(權益煥, 1912~?)
(봉화적농재건위 관계자)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수학했고 농업에 종사했다. 1933년 2월 봉화적색농민조합재건위원...
권인갑(觀麟甲, 1909~?) 觀五琰 權五動 楊昌谷
(조공재건강릉공작위 총책임자)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28년 5월 강릉청년동맹에 가입했다. 1929년 5월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를 ...
권일선(權ᅳ宣, 1902~30) 權一成
(재일조선노총 중앙위원) 경남 출신으로, 3 ․ 1운동에 참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6년경부터 니혼대학(日本大學), 메이지대...
권정필(權正弼, 1890~?) 權東三
(조공 만주총국 책임비서)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14년 강원도 일대에서 반일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3 ․ 1운동에 참가하...
권중택(權重澤, 1909~?)
(안동콤그룹 조직부 위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28년 3월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군청 임시직원, 안동군농회 임...
권차응(權次應, 1906~?) 權相昶
(신간회 봉학지회 상무간사)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4년 3월 대성학원을 수료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1927년 11월 봉화청년회, 12월 ...
권태동(權泰東, 1911~?)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 반제동맹조직 책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1926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 경성제이고등보...
권태산(權泰山, 1903~36) (本)權一治 李山 李慶山 李泰德 李淸福 金一致
(조공 만주총국 당원) 강원도 울진 출신으로, 1929년 9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했다. 1930년 3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그 ...
권태석(權泰錫, 1894~1948) 李東山
(조공 중앙위원, 신간회 서무부장)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19년 4월경 조선민족대동단에 참여하여 비용조달과 각종 문건의 인쇄 ...
권태섭(灌泰燮, 1911~49)
(맑스주의 경제학자, 남로당 기관지 副責)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6년 토오꾜오(東...
권평근(灌平根, 1902~?)
(인천 노동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인천에서 노동을 하면서 생활했다. 1931년경 이승엽(李承燁)의 지도 아래 노동운동에 참...
권학석(權鶴石, 1906~?) 權泰旭
(영주적색노조건설위 조직부 책임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5년 12월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했다. 1928년 4월 ...
권환(權煥, 1903~54) (本)權景完 權允煥 權燦
(시인, 카프 중앙집행위원) 경남 창원 출신으로, 일본에서 야마가따(山形)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3월 쿄오또제대(京都帝大) ...
기노춘(奇老春, 1897~?) 奇滿笑
(조공 당원) 전남 담양 출신으로, 3 ․ 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대학(中國大學) 2학년을 수료했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하...
길경섭(吉慶燮, 1907~?) 吉完秀
(서울청년회 집행위원) 전북 금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귀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서울청...
길양수(吉梁洙, 1913~?) 吉洋秀 吉亮根 吉樑根
(전남운동협의회 관련자) 전남 장흥 출신으로 장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선린상업학교에 다니다가 동맹휴교 사건...
길차교(吉且釗, 1912~?) 吉且逑
(東京 勞動階級社 참가자)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28년 11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중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퇴학당...
김가진(金嘉鎭, 1903~?)
(조공 당원)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평양의 양말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1926년 9월 평양노동청년회 결성에 참여...
김감년(金甘年, 1909~?)
(전남운동협의회 관련자, 남로당 장흥군당 위원장) 전남 강진 출신으로, 1927년 3월 강진군 병영면(兵營面)에서 공립보통학교 보...
김강(金剛, 1906~?) (本)김보리스 金東奎 김니꼴라이
(고려공청 중앙위원) 러시아 연해주 뽀셰뜨에서 어업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 러시아 니꼴라예프스끄에서 러시아공산...
김강(金剛, 1920~?)
(독립동맹 선전부 위원, 노동당 중앙위원) 고아로 자라나, 1934년 남경(南京)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했다. 1939년...
김격환(金激換, 1889~?)
(조공 당원) 전남 영광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했다. 1926년 4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준비위원...
김경봉(金京奉, 1907~?) 金京順
(제주도 노농연구회 책임자) 제주도 출신으로, 1923년 10월 제주공립보통학교 5학년을 다니다가 중퇴했다. 일본 오오사까(大阪)에...
김경서(金景瑞, 1902~?)
(新灣靑年會 집행위원) 평북 신의주 출신으로, 보통학교와 간이공업학교를 졸업했다. 미곡상인 삼흥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
김경식(金璟植, 1901~?) 金暻植
(조공 함남도책) 함남 북청에서 태어났다. 1927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고 1928년 3월 조선공산당 함남도책으...
김경식(金瓊植, 생몰년 미상)
(前進會 집행위원, 원산노련 집행위원장)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기호학교(幾湖學校)와 외국어학교를 나와 대한제국 탁지부(度支...
김경재(金環載, 1899~?) 金綽 赤星 陳榮喆 金世成 金ᅳ成 金致柱 朴君植 金俊模 金光錫 金光宇 方友淸
(『新韓公論』주필, 신한독립당 비서과장) 황해도 황주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황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수원고...
김경준(金京俊, 1910~?) 金正弼
(和龍縣 牛福洞 혁명위 간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지인향(志仁鄕)에서 함북 명천 출신의 조선인 이주민 가정에서 태...
김경천(金擎天, 1883~?) (本)金光瑞 金敬天 金擎千 金應天
(연해주 한인 빨치산연합부대 사령관) 서울 사직동 양반 가문 출신으로, 서울에서 중등학교를 마치고 일본 토오꾜오(東京) 육군...
김경태(金敬泰, 1904~?)
(조공 당원) 전북 출신으로, 1926년 11월 정우회(正友會)의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12월 조선공산당[春景園黨]에 입당...
김경한(金慶漢, 1903~?)
(조공 당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5년 8월 안동청년연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0월 사상단체 정광단(正光...
김계림(金桂林, 1904~?) 金昌吉
(조공 일본총국 당원, 남로당 중앙위원) 함북 명천 출신으로, 토오꾜오(東京)에 유학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했다. 재학...
김계영(金桂榮, 1901~?) 秋岡
(조공 경남도당 위원)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고, 김태영(金台榮), 김두영(金斗榮)의 형이다. 1924년 하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
김계진(金季鎭, 1907~?)
(영주적색농조 조합원)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한문을 배웠다. 1921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 2학년 때 퇴학하고 농업에 ...
김공망(金公望, 1911~?)
(안동콤그룹 참가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농업에 종사했다. 신간회 안동지회, 안동청년동맹 임하지부...
김관섭(金寬燮, 1901~?) 金官燮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으로 이주했다. 1930~31년 간도 반일농민운동에 가...
김광렬(金光烈, 생몰년 미상)
(조선혁명군 吉江省指揮部 군사부 책임자, 변절) 1921년 중국 광주(廣州)로 망명했다.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교도대에서 근...
김광묵(金光默, 1904~36) 金環 金活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화룡현(和龍縣) 이도구(二道溝) 명암촌(明岩村) 보진학교(普進學校) 교사로 재...
김광수(金光洙, 1903~?)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부) 전라도 대지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철수(金錣洙), 김창수(金昌洙)의 동생이다. 연희전문학교...
김광윤(金光允, 1907~?)
(안변적색농조건설위 참가자) 함남 안변 출신으로, 배화공립보통학교와 북경대학(北京大學)을 졸업했다. 1932년 2월 배화농민조...
김광협(金光俠, 1915~?)
(항일연군 참가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 함북 회령 출신으로,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여 반일무장투쟁에 참가했다. 1...
김광호(金光瑚, 생몰년 미상) 金光浩
(조공 만주총국 당원) 1927년 7월 동만(東滿) 청년총연맹 두도구(頭道溝)지방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8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
김교영(金敎英, 생몰년 미상)
(청총 중앙집행위원)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20년 3월 북청청년회 전무이사가 되었다. 1923년 3월 전조선청년당대회에 북청청년회 ...
김권일(金權ᅳ, 1901~33)
(중공 汪清縣委 서기) 길림성(吉林省) 왕청현 합마당(哈蟆塘) 출신으로 1930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33년 5월 중공 왕청현위원...
김귀남(金貴南, 1910~?) 羅貫 高昌善 李昌烈 金元哲 金北星
(함북노농협의회 조직부 책임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용정(龍井) 대성중학(大成中學)에 입...
김귀동(金貴東, 생몰년 미상)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후보)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24년 10월 마산노농동우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2월 마산기자단이 결성될 때『...
김귀영(金貴榮, 1912~?)
(일공 당원) 전남 출신으로, 소학교를 나와 1923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을 했다. 1933년 2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고 일본...
김규극(金奎極, 1884~1934) 弱人
(조공만주총국 東滿區域局 집행위원) 1927년 4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하여 동만구역국 집행위원을 지냈다. 이 무렵 북간...
김규면(金圭冕, 1881~1969) 金白秋
(新民團 단장) 함북 경흥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서울 배재학당을 졸업했다.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신교육운...
김규봉(金奎鳳, 1905~34)
(중공 琿春縣委 비서) 길림성(吉林省) 훈춘현 대황구(大荒溝) 출신으로, 1929년 용정(龍井) 은진중학(恩眞中學)을 졸업하고 대황구...
김규열(金圭烈, 1893~?) 金奎烈 金圭然 金遺烈 金萬圭 金晚圭 海友
(조공 만주총국 당원, 조공재건설준비위 중앙위원) 전남 구례 출신으로, 1919년 11월 대한청년단 명의로 된 격문을 고순흠(高順欽)...
김극수(金極洙, 1898~?)
(신간회 영동지회 창립준비위원) 충북 영동 출신으로, 김태수(金台沫)의 형이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923년...
김근(金根, 1903~37) (本)金光珍 金鉉
(고려공청 만주총국 조직부 책임자) 함북 경흥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1908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상천...
김근(金槿, 1902~?) (本)김한병 朴一勳 韓峰
(조공 東滿區域局 임시책임비서) 함북 경흥에서 태어나 어려서 가족과 함께 길림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로 이...
김금남(金今南, 1899~?) 金眞 金東烈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30년 약수동(藥水洞)에서 ‘간도 5 ․ 30 봉기’에 참가했다. 그 후 일본경찰에...
김기석(金基石, 1908~?) 金徹雲
(고려공청 만주총국 회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1928년 8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화요파)에 가입하여 동만주에서 활동했다. 193...
김기석(金己石, 1908~?)
(예천무명당 선전부 책임자)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24년 4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25년 11월 동맹휴교 사건...
김기수(金基洙, 1888~?)
(조공 전남도책) 전남 순천 출신으로,『조선일보』순천지국 기자로 재직했다. 1923년 이래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 남선농...
김기수(金基洙, 1911~?)
(흥남 좌익노조결성준비회 참가자) 함남 함주 출신으로 조선 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1931년 3월 좌익...
김기진(金基鎭, 1903~85) (號)八峰 東初 金村八峯 여덟뫼 具準儀
(3 ․ 1운동 참가자,『朝鮮之光』기자) 충북 청원에서 대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김복진(金復鎭)의 동생이다. 1907년부터 ...
김기진(金其鎭, 1904~?)
(고려공청 안동야체이까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5년 11월 풍서농민회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5월 소작권 이동문...
김기철(金基哲, 1906~?) 沈東煥 金萬善
(고려공청 만주총국 위원)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23년 3월 서울에서 열린 全조선청년당대회에 나일(羅一)청년회 대표로 참석했다...
김기태(金基泰, 1906~?)
(청총 중앙집행위원)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25년 11월 진주노동청년회 창립총회에서 회계부 겸 소년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
김기현(金箕炫, 생몰년 미상)
(삼천포농조 집행위원) 경남 사천 출신으로 1931년 5월 삼천포농민조합 서면대회(書面大會)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5년 ...
김기호(金琪鎬, 1894~?) 金點守
(조공 당원)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22년 12월 마산 예수교 면려청년회(勉勵靑年會) 사교부장이 되었다. 1923년 7월 마산무산소년단 ...
김기환(金紀煥, 1903~?)
(영흥농조재건위 간부) 함남 영흥 출신으로 1927년 영흥 덕흥면에서 압봉학원(鴨峰學院) 교사로 활동했다. 1932년 1월 영흥농민조...
김길우(金吉友, 1899~?) 金春植 金成春 金都成 金島城
(조공 당원)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곡물상을 운영했다. 그 후 간도에서 서점원 ․ 일용노동자 ․ 곡물상 ...
김낙천(金洛千, 1907~35) 金洛天
(인민혁명군 제1로군 제2단 정치위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으로 이주했다. 1...
김낙현(金洛鉉, 1901~?)
(고려혁명군 지휘관)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 얀치헤 끄라브 마을에서 태어나 1906년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끄로 ...
김남수(金南洙, 1899~?) 金鶴山
(조공 당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한문교육을 받았다. 1921년 7월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부 제2차 정기총회에서 간부로...
김남천(金南天, 1911~?) (本)金孝植
(카프 東京지회원) 평남 성천의 중농 집안 출신으로 1926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잡지『월역(月域)』발간에 참여했다. 1929년 3월...
김단야(金丹冶, 1899~1938) (本)金泰淵 金柱 秋星
(3 ․ 1운동 참가자) 경북 김천군 개령면 동부동에서 태어나 1906년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 1908년 4월 고향의 개진학교(開進學...
김달환(金達桓, 생몰년 미상)
(재일조선노총 간부)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 오오사까(大阪) 이마후꾸(今福) 조선노동조합, 오오사까 니시나리(西成) ...
김대봉(金黃大, 1901~?) 李柱完 金英瑞 黃綺龍
(조공 당원)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서울 중동학교 야학부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1922년 9월 양...
김대용(金大用, 1913~?) 金寧容
(李載裕그룹 관련자) 전북 고창 출신으로,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 2월 정태식(...
김대윤(金大允, 1911~?)
(문천좌익농조준비위 서기국 책임자) 함남 문천에서 태어나 문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이후『별나라』문천지국을 운...
김덕룡(金德龍, 1910~?) 金哲虎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간도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30년 12월 중국 관헌의 검...
김덕산(金德山, 1906~?) 金東一 金武甲
(고려공청 東滿道 조직부장) 함남 갑산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간도로 이주했다. 1925년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 ...
김덕선(金德善, 1904~?)
(고려공청 회원) 전남 광주 출신으로, 김호선(金好善)의 동생이다. 농업학교를 졸업했고, 1925년 이래 담양청년회 집행위원, 담양...
김덕순(金德順, 1913~?) (여성)
(조공 재건운동 관련자) 경남 마산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면서, 재경마산유학생회 ...
김덕언(金德彦, 1893~?)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남 갑산 출신으로 1930년 2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했고 8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2월 중공 연...
김덕연(金德淵, 1915~43)
(경성콤그룹 일본유학생부 책임자)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30년대에 경남도평의원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보통...
김덕영(金德泳汰, 1909~?)
(고려공청 회원)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무신 판매에 종사했다. 1925년 6월 해주신문배달친목회를 결...
김덕현(金德鉉, 1903~?)
(조공 당원) 함남 안변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3년 동안 공부했다. 1924년 2월 웅기 면려(勉勵)청년회 ...
김덕환(金德煥, 1909~?) 尹一均 鄭元變 鄭基錫
(주문진 산별노조 준비위원장, 전평 집행위원) 황해도 곡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4년 원산 광명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운...
김도엽(金度燁, 1900~?) 金道燁 金石然
(고려공청 회원) 경남 동래 출신으로 3 ․ 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19년 8월 대구지법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김동규(金東奎, 1912~84)
(항일연군 제3방면군 제14단장) 1930년 겨울 간도 반일농민운동에 참가했다가 개산둔(開山屯)에서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서...
김동기(金東起, 1902~?)
(양양농조 집행위원)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27년 12월 양양농민조합 결성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2월 양양농...
김동명(金東明, 1895~?) (本)金知宗 金晃 金光
(고려공청 중앙위원)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21년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고 귀국했다. 신흥청년...
김동부(金東富, 1899~?)
(조공 관련자) 함남 정평 출신으로, 신흥청년동맹에 참여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1926년 7월 종로경찰서...
김동수(金東守, 1911~?)
(고려공청 회원) 함남 원산 출신으로, 1926년 8월 문천청년동맹에 가입했다.『중외일보』 원산지국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1929년 5...
김동수(金東洙, 1899<1909>~?) 六尺
(고려공청 회원) 1927년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연길현(延吉縣) 노두구(老頭溝) 기양촌(岐陽村)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930년...
김동진(金東振, 1909~?)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출신으로, 1930년 12월 연길(延吉)에서 혁명호조회(革命互助會)에 가...
김동필(金東弼, 1884~?) 金鳳鎬
(경북사회운동자동맹 집행위원)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한학을 배운 후 농업에 종사했다. 1922년 조선노동공제회 영주지...
김동필(金東弼, 1908~36)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30년 10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다. 12월 간도 반일농민운동에 참가하...
김동한(金東漢, 1893~1937)
(고려공산당 군사부 위원, 친일단체 協和會 특별사업부장)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11년 하바로프스끄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했다. 1...
김동혁(金東爀, 1892~?) 金東赫 晩梧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연희일어학교에서 2년, 보성학교...
김동환(金東渙, 1884~?)
(조공 당원)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23년 물치(沕淄)노농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1927년 물치농민조합을 조직했고, 그해 3월 조선...
김동훈(金東訓, 1902~?)
(고려공청 일본부 東京區域局 책임) 1929년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토오꾜오(東京)구역국 책임 및 조직부 책임을 맡았다. 2월 신...
김두봉(金枓奉, 1889~1961) (號)白淵 帛連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서울로 올라와 기호학교(幾湖學校)와 배재...
김두수(金斗洙, 1903~?)
(조공 층남북도당 위원) 충북 영동 출신으로 김태수(金台洙)의 형이다. 영동보통학교,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20...
김두영(金斗榮, 1910~?)
(경남 적색교원노조 책임비서) 경남 하동 출신으로 김계영(金桂榮), 김태영(金台榮)의 동생이며 윤일(尹一)의 사위이다. 1929년 진...
김두용(金斗鎔, 1903~?)
(고려공청 일본부 회원, 재일조선노총 중앙집행위원장) 함남 함흥 출신으로 토오꾜오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미학과를 중퇴했...
김두원(金斗元, 1903~?) 金宇ᅳ 金一宰
(조국광복회 회원) 함남 단천 출신으로 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1936년 11월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하강구(下崗區) 도천...
김두익(金斗益, 1909~?) 金雪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30년 3월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7월 ...
김두정(金斗楨, 1906~?) 金斗禎 崔益善 馬ᅳ讓 金權涉 金鎚鎰 金子斗禎
(조공재건투쟁협의회 일본출판부 편집자) 함남 함주 출신으로 1928년 3월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4월 관비유학생으로 선...
김두진(金斗鎭, 1900~?)
(고려공청 일본총국 회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서울 고학당(苦學堂)에서 수학했고 고향에서 보통학교 선생으로 근무했다. 1926년 ...
김두환(金斗焕, 1908~?) 金鍾泰
(적색농조 참가자, 건준 장흥지부 총무) 전남 장흥 출신으로 『조선일보』 장흥지국을 운영했다. 1930년 3월 장흥청년동맹 위원장...
김득영(金得英, 1904~?)
(노총 중앙집행위원)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28년 1월 북청청년동맹을 창립하고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2월 북청청년동맹 신포(新浦...
김립(金立, ?~1922) 金翼容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上海 임정 비서장) 1911년 블라지보스또끄에서 권업회 결성에 참가했다. 1913년 북간도에서 간민회(懇民會)...
김만겸(金萬謙, 1886~?) 김세레브랴꼬프
(『靑丘新報』 편집인) 러시아 블라지보스또끄 근교의 농촌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뒤, 조선인 소학교에서 수학했다....
김만기(金萬基, 1906~?) 金重萬
(적색노조운동 관련자)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1925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오오사까(大阪)에서 노...
김만성(金萬聲, 1906~?)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함남 단천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형이 경영하는 곡물상에서 일했다. 간도로 이주하여 1930...
김만흥(金萬興, 1907~36) 朴鳳男 김동만 강철산 오만복
(조공 만주총국 집행위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1912년 북간도 평강(平崗) 보성촌(普成村)으로 이주했다. 1916년 길림성(吉林省) ...
김명규(金明奎, 1892~?)
(조공 경남도책) 경남 마산 출신으로, 보통학교 졸업 후 보통문관(普通文官) 시험에 합격하여 군속(軍屬)으로 재직하다가 3 ․ 1...
김명균(金明均, 1899~?)
(중공 汪淸縣委 군사부장)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양목정자(楊木頂子) 출신으로, 대랍자(大拉子)소학교, 연변(延邊)사범...
김명석(金明石, 1905~?)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경북 경산 출신으로 1925년 4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3월 중퇴했다. 8월 토오꾜오(東京...
김명시(金命時, 1907~?) 金喜元 金輝星 金輝然 스베찌로바 (여성)
(고려공청 회원, 중공 上海韓人支部 선전부 책임) 경남 마산 출신으로 김형선(金炳善)의 동생이다. 1924년 3월 마산공립보통학교...
김명식(金明植, 1892~1943) (號)松山 솔뫼
(고려공산당 국내부 위원)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하고 1908년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6년 토오꾜오(東京) 와세...
김명주(金明柱, 1912~69) 김경만 김경주 金明珠
(인민혁명군 제2군 간부)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어려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세린하(細麟河)로 이주했다. 1930년 5월 연...
김명진(金命鎭, 1909~?)
(영주 적농재건투쟁위 反帝部 위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7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영주청년동...
김명팔(金明八, 1910~38)
(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2단장)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1920년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의란구(依蘭溝) 계림동(桂林洞)으...
김명환(金明桓, 생몰년 미상)
(전북 고창농조 조합원) 전북 고창 출신으로, 고창농민조합과 고창 공산주의 비밀결사에서 활동했다. 1934년 1월 고창 농민들을 ...
김명희(金明熙, 1910~?)
(고려공청 함남道幹部기관 덕원군라이꼼 선전부 책임자) 함남 덕원 출신으로, 덕원소년연맹, 당우소년회(堂隅少年會) 간부로 활...
김무(金武, 1912~?)
(조선의용대 대원)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국내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1937년 12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
김문옥(金文玉, 1904~?)
(조공재건전주지구위 조직원) 전북 전주 출신으로, 1926년 6월 전주 ‘태극기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1928년 4월 전주청년동맹 대...
김문준(金文準, 1894~1936)
(재일조선노총 집행위원) 제주도 출신으로 1917년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3 ․ 1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제주...
김미하일(생몰년 미상)
(오르그뷰로 선전부원) 1920년 3월 블라지보스또끄에서 한인사회당 창당에 참여했다. 1924년 3월 오르그뷰로(고려공산당 창립대회...
김민산(金民山, 1917~?) 楊民山 金大陸 揚振崑 진산
(독립동맹 중앙위원, 북로당 중앙위원) 경북 선산 출신으로 의열단(義烈團)의 조선혁명간부 학교 모집 연락원인 김정묵(金正默)...
김백동(金百東, 1903~?) 權逢春
(전남노농협의회 조직부 책임자,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장) 전남 보성 출신으로,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3월 치안유지법 위...
김백만(金白萬, 1906~35) (本)金亨國 崔成浩 崔萬福 崔山東
(항일연군 제4군 제2단 호위중대장) 흑룡강성(黑龍江省) 목릉현(穆陵縣) 백초구(百草溝)에서 태어나 팔면통(八面通)소학교를 졸...
김범이(金凡伊, 1902~?) 崔石東
(全協 토건노조 神奈川支部 조직원) 전북 김제 출신으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토오꾜오(東京) 조선노동조합 북부지부원을 지...
김병건(金炳建, 1906~?)
(고려공청 북청군간부기관 선전부 책임) 함남 북청 출신으로, 신간회 북청지회와 북청청년동맹에서 활동했다. 1929년 12월 고려공...
김병구(金炳九, 1909~?) 金燦 金弘俊 朴成根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함남 정평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간도로 이주했다. 연길현(延吉縣) 공립제5고등소학교를 ...
김병국(金秉國, 1905~40?) 金且巖 全秉杰
(고려공청 일본부 회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사립강습소 4년을 마쳤다. 1928년 당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오오사까(大阪)지부 ...
김병극(金秉極, 생몰년 미상)
(조국광복회 회원) 1936년 11월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하강구(下崗區) 도천리(挑泉里)에서 재만한인조국광복회 지회를 결...
김병묵(金秉黙, 1910~?) 金光麗 金龍吉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가족을 따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으로 이주...
김병선(金秉善, 1907~?)
(조선좌익노조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 청년부 책임자) 함남 갑산 출신으로, 1925년 6월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 4학년 재학...
김병수(金柄洙, 1901~33)
(북간도 漁浪村 혁명위 위원장)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장인강(長仁江) 출신으로 야학에서 수학했다. 1924년 혁명자후원...
김병숙(金炳璹, 1893~?)
(조공 당원, 민전 중앙위원) 전북 김제 출신으로 1923년 김제청년회 회장을 맡았다.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에 가입했다. 1924년 1...
김병식(金炳植, 1911~?)
(항일연군 참가자) 함북 출신으로, 1932년경 간도 파기구(菠기溝) 용연동(龍淵洞)에 거주했다. 중국공산당 동만특위(東滿特委) 노...
김병식(金秉植, 생몰년 미상)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황해도 해주에서 3 ․ 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해주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25...
김병욱(金柄郁, 1899~?) 金範龍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 출신이다. 1930~31년 간도에서 반일농민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3년 12월...
김병일(金炳一, 1902~?)
(고려공산동맹 중앙위원, 조공 경기도당 위원) 전북 김제의 중류가정 출신이다. 보통학교를 마친 후 토오꾜오(東京)로 건너가 세...
김병직(金秉職, 1908~?)
(중공 延和縣委 龍湖坪지부 책임자) 함북 길주 출신으로, 1930년 중국공산당 연화현위원회 연길구(延吉區) 용호평지부 책임자가 ...
김병창(金秉昌, 1909~?)
(대구노동자협의회 관계자) 1930년 3월 대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4월 일본 쿄오또(京都)로 건너갔다. 1932년 4월 귀국하...
김병화(1905~?)
(북극성꼴호즈 대표) 연해주 수이푼 구역 차삐고우 마을의 빈농가정 출신으로, 1918~19년 우수리스끄 조선인학교에서 수학했다. 19...
김병환(金炳焕, 1891~?)
(양양군농조 집행위원장)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어업에 종사했다. 1925년 12월 영동기자단에 참여했다. 조...
김병후(金炳候, 1911~?)
(고려공청 회원) 함남 문천 출신으로, 운송점원으로 일했다. 1929년 4월 소야전(小野田)시멘트공장 내 노동자독서회에 가입했다 ...
김병훈(金烟薫, 1909~?)
(좌익노조결성준비회 교양부원) 함남 함주 출신으로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1930년 9월 이 공장의 ...
김보섭(金普變, 1911~42)
(광주학생운동 참가자)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28년 9월 광주고보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서회를 조직...
김복남(金福男, 1905~?) 金承寬
(좌익노조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성진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명천 소화탄광(昭和炭鑛)에서 광부로 일했다. 1...
김복만(金福萬, 1907~?) 金仁國 金秀松 金福突
(조공 만주총국 위원, 고려공청 책임비서) 연해주 니꼴라예프스끄 출신으로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에서 사상단체 문우회(文...
김복수(金福洙, 생몰년 미상)
(농총 중앙집행위원) 3 ․ 1운동에 참가하여 검거되었다. 1921년 9월 결성된 광주청년회에서 활동했고 1924년 3월 화호청년회(禾湖...
김복진(金復鎭, 1901~40) (號)井觀 金福鎭
(조각가, 카프 집행위원) 충북 청주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기진(金基鎭)의 형이다. 1915년 3월 영동공립보통학교를 졸...
김봉돌(金鳳乭, 1911~?)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30년 8월 간도에서 국치일기념 반일봉기에 참가했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
김봉빈(金鳳彬, 1899~?) 金均
(조공당원) 전북 전주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도기상(陶器商)에서 점원일을 했다. 3 ․ 1운동에 참가했다가 검거되었고,...
김봉수(金鳳洙, 1910~?)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지인향(志仁鄉) 출신으로, 1930년 10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
김봉익(金鳳翼, 1904~?) (本)金斗琯 金午山
(조공 만주총국 당원, 일본 밀정) 경남 남해 출신으로 일본 토오꾜오(東京)에서 유학했다. 1924년 11월 용정(龍井)에서 노동동맹을 ...
김봉한(金鳳翰, 생몰년 미상)
(부산청년동맹 집행위원장) 경남 부산 출신으로 1928년 4월 경남청년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7월 부산청년동맹 긴급집행위원회...
김부득(金富得, 1908~?) 金在千 金在燦
(전남노농협의회 재건운동 참가자)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28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교를 주도하다가 퇴학당하고 8...
김사국(金思國, 1892~1926) 金解光
(고려공산동맹책임비서) 충남 연산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 김사민(金思民)과 함께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김사민(金思民, 생몰년 미상)
(제3차 고려공청 중잉총국 책임비서) 충남 연산 출신으로 김사국(金思國)의 동생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금강산 유점사(楡...
김산륜(金山崙, 1917~42)
(조선의용대 대원) 가정이 극빈하여 유년시절부터 견습공 생활을 했다. 1939년 조선의용대에 가입했으며 팔로군(八路軍) 진서북...
김삼규(金三奎, 1908~?) 金三奉 李哲洙 淸水畿太郎 淸水淸吉
(無産者社 책임자, 변절)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영암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1920년 4월 토오꾜오(東京)의 카이죠오중학(海城...
김삼룡(金三龍, 1910~50) 김대원, 김성수, 김인업
(경성콤그룹 조직부 책임자) 충북 충주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8년 3월 용산리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
김삼손(金三孫, 생몰년 미상)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함남 원산 출신으로, 1929년 6월 만주에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1930년 국내에서 ...
김상기(金相起, 생몰년 미상)
(예천청년동맹 집행위원, 신간회 예천지회 집행위원장)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23년 예천청년회 상무간사가 되었다. 1924년 5월 예...
김상순(金尙順, 1906~?)
(영덕공작위 참가자) 경북 영덕 출신으로, 1922년 9월 사립 영해 태화학원 중등과에 입학해 1923년 말 자퇴했다. 농업과 어업에 종...
김상주(金尙珠, 1902~?) 金尙洙
(조공 당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교육을 받았다. 10대 중반부터 마산의 원동상회(元東商會), 원동물산무역회사에...
김상준(金尙俊, 1908~?) 金相俊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1928년 3월 화룡현(和龍縣) 이도구(二道溝) 명암촌(明岩村) 혁명자후원회(모쁠)에 가입...
김상혁(金相赫, 1902~?) (本)金琪善
(고려공청 일본부 책임비서) 전남 순천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1925년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4월 토오꾜오(東京) 와세다대...
김상호(金相鎬, 1913~?) 金尙昊
(일공 당원) 함남 영흥 출신으로, 일본공산당 및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932년 2월 노동자협의회에 참가...
김상화(金相和, 1900~31) 김재봉
(중공 汪清縣委 서기)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두텁골[厚洞]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중퇴했다. 1924년 가을 왕청...
김상환(金相奐, 1909~77)
(광주학생운동 참가자) 전남 광양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28년 9월 광주고보 학생을 규합하여 독서회를 조직했...
김석암(金石巖, 1913~39) 김석순 김선동
(일공 당원) 1930년 무렵 히로시마(廣島)에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고 재일조선인의 조직활동에 참가했다. 그 후 일본 적색구원회(...
김석종(金石鍾, 1904~?) 金石化
(조선공청 함북도부 조직연락부원) 함북 길주 출신으로,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을 졸업했다. 1927년 7월 신간회 길주지회 ...
김석준(金石駿, 1899~?) 金相鐸 金石順 金錫駿
(조공 검사부 위원)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1920년경 러시아로 건너갔다. 1925년 말경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졸업자들과 함...
김석천(金石泉, 1908~?) 金波 金基湧
(고려공청 회원, 중공 延和縣委 간부)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가족을 따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지인향(志仁鄉)...
김석천 (金錫天, 1904~?)
(조공 영천야체이까 책임자) 경북 영천 출신으로, 중학 4학년까지 수학했다.『중외일보』 영천지국 기자생활을 했다. 1925년 2월 ...
김섬(金暹, 1907~?) 金壽男
(경성콤그룹 함남 책임자) 서울 출신으로,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경성출판노동조합 집행위원, 조선노동총동맹 집행위원을 역임...
김성(金星, 1910~?) 김산
(중공 延和縣委 조직부장, 변절)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 출신으로, 1929년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
김성도(金成道, 1900~34) 金聖道 金景道
(조공 만주총국 간부, 중공 東滿特委 조직부장) 길림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대황구(大荒溝)에서 태어나 1923년 용정(龍井) 은진...
김성득(金聖得, 1893~?) 金白波
(조공 만주총국 책임비서, 중공 만주성위 순시원) 1927년 11월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에서 조선공산당...
김성범(金成範, 1924~47)
(조선의용군 제5지대 참가자) 1940년 중국 하북성(河北省)으로 이주하여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에서 일했다 1945년 5월 농장 청년 ...
김성숙(金星淑, 1898~1969) 金奎光 金忠昌
(創一黨 간부, 廣州蜂起 참가자) 평북 철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1908년 향리의 대한 립학교를 다녔다. 1916년부터 3년간 ...
김성순(金成順, 1900~?) 金必成
(조공 上海 연락책) 중국으로 유학하여 남경(南京) 금릉대학(金陵大學), 북경(北京) 평민대학(平民大學)을 다녔다. 김단야(金丹冶...
김성철(金星哲, 1900~?)
(조공 당원)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조선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신간회 옥구지회 간사로 활동했다. 1928년 일...
김성호(金成吴, 1902~?) 金造成 金成浩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25년 4월 용정(龍井)에서 동흥중학(東興中學) 교사로 재직중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
김세(金世, 1902~33) (本)金亨杰
(和龍縣 유격중대 중대장)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소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31년 화룡현 평강구(平...
김세광(金世光, 1910~?) 金世日 王英載
(조선의용대 제3지대장, 독립동맹 晉西北分盟 책임자) 평북 용천 출신으로, 1932년 10월 의열단(義烈團)의 조선혁명간부학교 제1기...
김세연(金世淵, 1899~?) (本)金聖鉉 朴石
(조공 책임비서)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오성중학(五中星學)에 입학했다. 만주로 망명한 후 참의부에서 ...
김세용(金世鎔, 1907~66)
(건국동맹 중앙간부) 경북 대구 출신으로, 대구 고등보통학교 재학중 3 ․ 1운동에 참가하여 퇴학 처분을 받고 1920년 경성의학전...
김소연(金素然, 1894~1929) (本)金種允 鄭瑀
(조공 東滿區域局 집행위원)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19년 토오꾜오(東京)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했다. 1923년 ...
김소익(金少翼, 1900~?) 金奉烈 金烋 吳少汀 朴正漢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충북 옥천 출신으로,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을 피해 토오꾜오(東京)에서 상해(上海)로 망...
김수정(金壽正, 1906~?)
(일본공청 회원)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황해 청년연맹에 참여했다. 제2차 개성공산당 선전부장을 담당했다. 일본경찰에 검거되...
김수준(金繡準, 생몰년 미상) (여성)
(槿友會 중앙검사위원) 1924년 5월 조선여성동우회 결성에 참여하고 간부가 되었으며, 12월 사회주의자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
김순구(金順九, 1899~?)
(東滿청년총연맹 상무집행위원) 경남 창원 출신으로,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 소학부 교사로 재직했다. 1925년 6월 용정에...
김순기(金舜基, 생몰년 미상) 金順基
(고려공청재건설준비위 만주부 중앙위원) 1929년 8월 고려공산청년회재건설준비위원회 만주부 건립에 참여하고 중앙위원이 되었...
김순덕(金順德, 1911~34)
(인민혁명군 제2군 獨立師 제1단장)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백초구(百草溝) 여성촌(麗成村)에서 태어나 연길현(延吉縣) ...
김순룡(金順龍, 1916~?)
(경성콤그룹 기관지 출판부원) 충북 충주 출신으로, 충주 용산리(龍山里)보통학교와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5년 4...
김순만(金順萬, 1909~?) 金海龍 李元相
(적색노조운동 관련자)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2학년을 수료한 후 철원노동야학교에서 공부했다. 1924년 무렵부터 철...
김순원(金順元, 1917~41)
(경성콤그룹 참가자) 평남 진남포에서 기독교 목사이자 민족주의자인 김성엽(金聖捧)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안창호(安昌浩)의 조...
김순진(金舜鎭, 1911~?) 金鐵雨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서울 출신으로, 1927년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정형편이 곤궁했다. 1933년 4월 이...
김승빈(金承彬, 1895~1984)
(新興武官學校 교관, 소련군 장교) 평안도 자동 출신으로 소학교를 마치고 농업에 종사했다. 1915년 왕실 호위부대에 징집되어 191...
김승훈(金承塤, 1901~?) 朴金石 金裕成
(고려공청 만주총국 頭道溝야체이까 책임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1908년 무렵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1911년 무렵 아...
김시용(金時容, 1902~45)
(고려공청 일본총국 기관지 편집위원) 제주도 출신으로, 조천면에서 신명화숙을 졸업했다. 이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중 ...
김신목(金信穆, 생몰년 미상)
(조공재건설준비위 관계자) 경기도 출신으로, 1930년 8월경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의 지시로 강문수(姜文秀), 석경덕(石景...
김아파나시 아르센찌예비치(1900~35) 김성우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 얀치힌스끄[煙秋] 수하노프까 마을에서 태어나 니꼴리스끄 ․ 우수리...
김알렉산드라 뻬뜨로브나 (1885~1918) (여성)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당원) 러시아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에 인접한 조선인 농촌 시넬리니꼬보 마을[秋風, 永安坪 ...
김약수(金若水, 1892~1964) (本)金枓佺 金料熙
(北星會 간부) 경남 동래군 기장면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마을 서당에서 5년간 한문을 수학한 후 향리...
김억주(金億周, 생몰년 미상)
(신간회 상주지회 간사, 청총 경북연맹위 검사위원) 1925년 상주청년회 간부, 상주청년연맹발기회 준비위원, 10월 상주청년연맹 ...
김연배(金連培, 1908~?)
(고려공청 후계간부조직회 책임비서) 서울 출신으로, 고물상을 경영했고 돈화청년회 회원이었다. 1920년대 중반 모스끄바 동방노...
김연한(金璉漢, 1905~?)
(고려공청 안동야체이까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8년 봄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안동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제3 ․ 4차...
김연희(金演羲, 1898~?)
(조공 당원)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1924년 봄 국내 공산주의단체 통일을 위해 열린 ‘13인회(十三人會)’에 참석했다. 8월 사회주...
김영권(金永權, 1908~?) (本)金亨斌 小人
(고려공청 회원) 함북 경흥 출신으로, 일찍이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29년 고려공...
김영규(金永奎, 생몰년 미상)
(영흥적색농조 조합원) 함남 영흥적색농민조합에 참여했다. 1932년 관련자들이 검거되자 일본으로 피신하여 토오꾜오(東京)에 체...
김영규(金泳圭, 생몰년 미상)
(조공 만주총국 후계조직 참가자) 1928년 5월 함남 갑산 혜산진청년동맹 결성 때 창립준비위원을 맡았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후...
김영균(金永均, 1898~?) 金永淳
(조공 만주총국 당원) 전북 정읍의 부농 집안 출신으로, 김영휘(金永輝)의 동생이다.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하고 1924년 ...
김영두(金榮斗, 생몰년 미상)
(하동노농연합회 상무집행위원) 경남 하동 출신으로, 1924년 7월 하동무산자상조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3월『사상운동(思想...
김영률(金榮律, 생몰년 미상)
(신간회 군산지회 집행위원 후보) 1925년 9월 군산노동청년회 임시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6년 1월 전북 익산의 사상단체...
김영만(金榮萬, 1899~?) 金億萬 秋鋒 秋峯 金昌基 田耕春 金福汝 金斤
(고려공산동맹 민족부 책임자)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20년 2월 조선노동대회 결성에 참여하고 간사가 되었다. 5월 조선노동대회...
김영만(金永萬, 1911~?)
(경주적색농조준비위 관계자) 1923년 4월 충남 연산공립보통학교를 중퇴했다. 1930년 8월 연극단에 가입하여 배우로 일했고 1934년 2...
김영배(金英培, 1904~?)
(조공 당원)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8월 경기도청년연합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7년 2월 ...
김영수(金榮秀, 1907~?) 聲波 觀世恩人
(조공 당원, 회령청년동맹 집행위원) 함북 회령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 3학년을 중퇴한 후 토오꾜오(東京) 세이소꾸(正則)...
김영숙(金英淑, 생몰년 미상) 金蘭英(여성)
(敵區工作班 조직과장) 중국으로 건너가 1939년 무렵 연안(延安)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에서 수학했다. 1941년 1월 태항산(太...
김영식(金泳植, 1899~1930)
(―月會 간부) 전남 목포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당시부터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23년 7월 조선인유학생...
김영우(金永右, 1911~?) 金永尙
(봉화적색농조 조합원)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7년 3월 봉화 내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 2월 봉화청년동맹 상우지부에 ...
김영재(金永才, 1902~?) 金永錫
(전남노농협의회 참가자, 남로당 중앙위원) 전남 보성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3년 서울로 올...
김영호(金英浩, 1907~?) 金英鎬 金永浩
(고려공청 만주총국 東滿道 위원)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26년 1월 동만청년총연맹 창립준비위원이 되었다. 1928년 1월 재동만조선...
김영휘(金永輝, ?~1927) 金榮輝
(전북민중운동자동맹 會務委員) 전북 정읍의 부농 집안 출신으로, 김영균(金永均)의 형이다. 3 ․ 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
김영희(金瑛禧, 1904~?) 金英熙 (여성)
(槿友會 중앙집행위원) 경기도 인천 출신으로, 1920년 각종 강연회에서 ‘부인문제에 대하여’ ‘기독교와 여자의 활동’ 등 여...
김영희(金永熙, ?~1946)
(예천농조 중앙위원)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25년 9월 예천청년회 임시총회에서 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 달 예천청년연맹 집행위...
김오성(金午星, 1908~?) (本)金亨俊 金亨隣 金亨傑 金東俊 金화사리 曉汀 黎曉 赤星天 赤心
(조선농민사 상임이사) 평북 용천 출신으로, 토오꾜오(東京)에서 니혼대학(日本大學) 철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대중지광(大衆...
김옥도(金玉道, 1908~?) 楓岳
(全協회원) 전남 완도 출신으로, 1928년 3월 완도 약산학교(藥山學校)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가서 토오꾜오(東京)에서 공장노동자...
김완근(金完根, 1875~?) 金明鐵
(조공 당원) 전남 광양의 지방판관 집안 출신으로, 한학을 수학하고 농업에 종사했다. 1922년 광양청년회, 1923년 광양군소작인상...
김완식(金完植, 1903~?) 金元植
(고려공청 회원) 서울 출신으로, 인쇄직공으로 일했고 경성출판노동조합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1923년 6월경 꼬르뷰로(조선공산...
김용걸(金容杰, 1905~?) 金鶴鳴 李海林
(東滿청년총연맹 중앙집행위원, 조공 일본총국 선전부원)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지향(...
김용교(金容敎, 1905~?) 金溶敎
(고려공청 회원)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29년 8월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으로서 신포(新浦)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그해 9월 일본경...
김용규(金龍奎, 1905~?)
(강서적색비밀결사 참가자) 안주청년회에 참여했고, 1928년 안주청년동맹에서 활동했다. 강서 적색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했다. 동...
김용범(金鎔範, 1902~?)
(조공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평남 안주 출신으로, 박정애(朴正愛)의 남편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921년까지 농업에 종사했...
김용섭(金容燮, 1915~?) 柳新 張維輔 全容燮
(華北조선청년연합회 위원, 인민군 사단참모장) 함경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용정(龍井) 은진중학(恩眞中學)을 졸업했다. 1...
김용원(金容轅, 생몰년 미상)
(김제노조 관련자) 1926년 3월 전북 정읍군 이평면(梨平面)에서 이평노동친목회 결성에 참여하고 총무가 되었다. 이 무렵 삼각노...
김용진(金容鎭, 1909~?)
(평양시인민위 위원장) 함북 출신으로, 적색농민조합운동에 참가했다.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에 참가하여, 몽...
김용진(金龍震, 1906~36) 金臺一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길주 출신으로, 1931년 6월 간도 반일농민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12월...
김용찬(金容贊, 1905~?) 金容瓚
(고려공청 경남도책)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23년 1월 동래청년회에 참여하고 운동부 간사로 선임되었다. 이후 북경(北京) 조양대...
김용찬(金容瓚, 1903~35)
(영동 赤友同盟 정치경제부 책임) 충북 영동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영동 계산학원 교사, 서울 영창서관 ...
김용천(金容泉, 1900~?)
(명천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31년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의 지도 아래 명천에서 적색노동조합운동...
김용표(金容杓, 1899~?)
(고려공청 회원)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무렵 『동아일보』 옥과(玉果)지국을 운영했다. 1927년경 고...
김용호(金容浩, 1903~?) 金龍浩 梁鍾漢
(고려공청 만주총국 東滿道 간부) 함북 회령 출신으로, 1926년 8월 조선공산당 당원으로서 동만구역국에 소속되었다. 이 무렵 고...
김우식(金宇植, 생몰년 미상)
(고려공청 北滿道 간부) 1925년 9월 만주 중동선(中東線) 오주현성(烏珠縣城)에서 개최된 중선청년연맹회(中鮮靑年聯盟會) 창립대...
김우현(金禹鉉, 생몰년 미상) 金一影
(왜관공산주의자협의회 간부) 일본에서 일본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 산하 조선예술좌(朝鮮藝術座)에 참여하고 1931년 귀국했다. 19...
김운기(金雲基, 1911~?)
(통천 적색농조운동 참가자)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1929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1년 7월 ‘만보산(萬寶山) 사건’이 일어...
김웅(金雄, 1912~?) 王信虎
(조선의용군 간부대대장) 경북 김천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김구(金九)의 추천으로 1934년 2월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김원묵(金元黙, 1908~?) 金海ᅳ 브라소프
(太勞지도자) 1924년 12월 고려공산청년회 간도총국 대회에 참가하여 선전부 담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9년 모스끄바 동방...
김원봉(金元鳳, 1898~1958) 金若山 陳國斌
(義烈團 단장) 경남 밀양 출신으로, 밀양 동화학교와 서울 중앙학교에서 수학했다. 그후 중국으로 건너가 천진(天津)의 덕화학당...
김원봉(金元鳳, 1915~?)
(함남 적색농조운동 참가자, 노동당 강원도당 위원장) 함북 온성 출신이다. 함남에서 적색농민조합운동에 종사하던 중 일본경찰...
김원석(金元錫, 1911~?)
(太勞운동 참가자) 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토오꾜오(東京)와 오오사까(大阪)에서 도금공으로 일했다. 1931년 3...
김월성(金越星, 1907~?) (本)金光恩 金明益 金꾸와노푸 金光銀
(고려공청 중앙위원, 조공 만주총국 東滿道 위원) 함남 원산 출신으로, 러시아공산청년동맹(꼼소몰)에 가입했다. 연해주에서 조...
김월옥(金月玉, 1914~?) (여성)
(적색노조운동 관련자) 함남 원산 출신으로, 원산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정신여학교, 용곡여학교에서 수학했다. 독서...
김위(金煒, 1918~?) 金威那 (여성)
(조선의용대 유동선전대 간사) 중국 만주 출신으로, 영화배우 김염(金焰)의 누이동생으로 잠시 영화배우 생활을 했다. 중일전쟁...
김유경(1900~29)
(소련군 장교) 1900년 연해주 수이푼 구역 차삐고우 마을 출신으로, 1921년 초 한인 빨치산 부대에 참가하여 일본간섭군과 백위군(...
김유삼(金有三, 1899~?)
(명천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21년 3월 평양 대동경찰서에 유치중 탈출했다. 1931년경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김유성(金有聲, 1894~?) 金庾成
(조공 광주군당 간부)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20년 광주노동공제회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4년 『시대일보』 광주...
김유인(金裕寅, 1894~?)
(고려공산동맹 교양부 책임자) 함남 북청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다녔다. 1919년 4월 서울에서 ‘임시정부 선포...
김유창(金裕昌, 생몰년 미상)
(노총 중앙집행위원, 신간회 평양지회 집행위원) 1922년 9월 평양노동동맹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
김윤덕(金潤德, 생몰년 미상) 金錫胤
(조선의용군 華中支隊 조직위원) 1943년 8월 화북(華北)조선독립동맹 화중분맹원으로 활동했다. 1944년 1월 화중의 신사군(新四軍)...
김윤봉(金允逢, 생몰년 미상)
(조공 만주총국 간부) 1925년 12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상의향(尙義鄕) 세린하(細麟河) 와룡동(臥龍洞) 농우청년회 결성...
김윤회(金潤會, 1913~?) 韓相勳 韓相哲 林澤洙 金落鍾 金載焕
(조공 재건운동 관련자)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32년 3월 공주 사립 영명학교(永明學校)를 나와 4월 서울 법정학교(法政學校)에 입...
김은식(金微直, 1908~32) 김광식
(汪淸縣 유격대 정치위원)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종사하던 아버지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왕청현 합마당(哈蟆塘) 대...
김은한(金殷漢, 1891~?) 金宗漢 陳墟 林水茂 韓一
(조공 만주총국 北滿道 책임비서) 경북 영천 출신으로, 보통학교 교사를 지냈다. 1920년 공산주의사상을 수용했다. 1926년 3월 만주...
김응기(金應基, 1900~?) 李定基 즈야멘스끼
(조공재조직준비위 참가자)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24년 신흥청년동맹에 가입하고 1925년 예천 신흥청년회, 오오회(五五會)에 가입...
김응빈(金應彬, 1914~?) (號)玄友 金澤應 彬
(경성콤그룹 섬유노조 책임자) 제주도 출신으로, 1930년 3월 공립보통학교를 나와 4월에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다. 1931년 3월 ...
김응섭(金應燮, 1878~?) (號)東田
(조공 만주총국 간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기 변호사 ․ 검사를 지내고 1919년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김응수(金應水, 1902~?)
(고려공청 거제도야체이까 책임) 경남 거제도 출신으로 1924년 11월 거제청년연맹 창립총회에 장승포 대표로 참석했다. 1925년 4월 ...
김응수(金應洙, 1902~36) 金基泉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부령 출신으로, 1930년 8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평강구(平崗區)위원회 강석(降石)지부 책임...
김응한(金應漢, 생몰년 미상) 金膺漢
(신간회 안동지회 대표위원)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5년 3월 경북의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참여했다. 8월 안동청년연맹 ...
김이룡(金利龍, 생몰년 미상) 金二龍
(고려공청 중앙위원) 1925년 2월 경북사회운동자동맹 경리부 담당 집행위원이 되었고 그해 말 고려공산청년동맹 경북 책임자가 ...
김이천(金二千, 1912~?) 金伊川
(중국공청단 延吉區委 책임) 서울 출신으로, 1929년 10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에 가입하고 의란구(依蘭溝) 남동야체이까에 배...
김이흥(金二興, 1909~?) 金興培 金東圭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경기도 고양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인쇄직공으로 일하면서 경성출판노동조합에 가입하여...
김익두(金益斗, 생몰년 미상)
(농총 중앙집행위원) 1925년 전남 순천에서 순천면농민공제회 임시의장을 지냈다. 1926년 4월 나주 영산포에서 자유노동조합을 조...
김익수(金益洙, 1891~?)
(조공재건설정리위 조직부원) 함남 이원 출신으로, 1921년 3월 평양 대동경찰서에 수감중 탈출했다. 1930년 11월 조선공산당재건설...
김인기(金仁基, 생몰년 미상)
(고려공청재건설준비위 만주부 중앙위원) 1929년 3월 조선혁명당 길흑(吉黑)특별위원회를 건립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8월 고려공...
김인수(金仁洙, 1906~?) 金寶慶
(청총 경북연맹 집행위원)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23년 1월 철육단(鐵育團)을 조직했고 같은 해 김천소년회에 가입했다. 1925년 김...
김인수(金寅洙, 1898~?)
(고려공청 회원)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장성청년회 서무부 위원, 효성단(曉星團) 서무부 위원을 지...
김일(金一,1910~84) 朴德山
(항일연군 제2방면군 제8단 정치위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31년 동만주에서 반제동맹에 참여한 후 항일유격대에 입대했다. 1934...
김일묵(金一默, 1901~33) 한별 韓別 韓星 朴一天
(조공 만주총국 東滿道 조직부장) 평북 강계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했다. 1927년 5월 조...
김일선(金日善, 1899~?)
(조공 당원) 평남 평양 출신으로, 1926년 말 신흥과학연구회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1927년 12월 조선공산당[春景園黨]에 입당했다. 1...
김일성(金日成, 1912~94) (本)金成柱
(汪淸유격대대 정치위원)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현재 만경대)에서 민족주의자 김형직(金亨稷)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부...
김일성(金一聲, 1898~1938) 김윤수 金田二郎
(재일조선노총 참가자) 경북 경주 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카나가와현(神奈川縣)에서 노동운동에 종사했다. 1928년 재일본조...
김일수(金一洙, 1896~?) (本)金秉澤 金秉祚 金昌錫 金允官 로동
(조공재건설준비위 책임비서) 함남 이원 출신으로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노동에 종사했다. 1921년 무렵 한인사회당에 입당했다. 192...
김일순(金日順, 1904~?)
(조공 당원) 평남 평양 출신으로, 1927년 12월 조선공산당[春景園黨]에 입당했다. 1928년 6월 평양경찰서에 검거되어 1929년 6월 징역 ...
김일식(金一植, 1911~?)
(적색노조건설대구협의회 의장) 1928년 9월 대구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중 동맹휴교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10월 서울 중동학교 3...
김일준(金曰準, 1910~?)
(제주도적색농조 창립준비위원) 제주도 출신으로, 1927년 3월 조천(朝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와 서울 중동...
김일현(金一鉉, 1902~32) 金甲辰
(조선공청 회원)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1928년 2월 성진청년동맹 학상북부지부 집행위원이 되었...
김일환(金日煥, 1902~34) (本)김용석 김성호
(중공 和龍縣委 서기)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1910년 가족을 따라 길림성(吉林省) 화룡현으로 이주했다. 화룡현 대랍자(大拉子)...
김장렬(金章烈, 1905~?)
(정평농조 상무집행위원) 함남 정평 출신으로,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사립학교 교사, 『조선일보』 정평지국 기자를 지...
김장환(金長煥, 1898~?)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27년 12월 신간회 진주지회 간사가 되었다. 1928년 2월 진주농민연맹 쟁의부 위원, 경...
김재갑(金載甲, 생몰년 미상)
(조공 평북 위원) 평북 신의주 출신으로, 김재병(金載丙)의 형이다. 1934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재학중 사회주의 ...
김재규(金在奎, 1905~?)
(신간회 단천지회 간사) 함남 단천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광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원리 농우청년회에서 운영하던 서...
김재동(金載棟, 1911~?)
(전남노농협의회 농민부원) 전남 함평 출신으로, 김한동(金漢東)의 형이다. 1927년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9년 11월 ...
김재룡(金在龍, 1907~37)
(전남노농협의회 관계자)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공립농업학교를 다녔고, 1927년 11월 학생공산당을 조직했다. 1928년 6월 동맹...
김재명(金在明, 1901~30) 金憲植 金麗水 음달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집행위원)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23년 1월 서울에서 북성회(北星會)계 사상단체 건설사(建設社) 창립에 참...
김재범(金在範, 생몰년 미상)
(항일연군 제2군 제6사 부대장, 변절) 1936년 7월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6사 제7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11월 항일민족통일전선운동...
김재병(金載丙, ?~1942) 高揚喜
(경성콤그룹 참가자) 평북 신의주 출신으로, 김재갑(金載甲)의 동생이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동화(東華)철공소, 경성...
김재봉(金在鳳, 1890~1944) 槿田
(조공 초대 책임비서) 경북 안동의 유생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1908년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를 졸업하고 1913...
김재선(金在善, 1916~?) (여성)
(경성콤그룹 참가자) 함남 홍원 출신으로, 1930년 3월 홍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 서울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34...
김재수(金在水, 1902~?)
(조공 당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시대일보』 성진지국 기자로 근무했다. 1924년 12월 성진에서 사상...
김재욱(金在旭, 1912~?)
(영주적색노조건설위 선전부 책임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8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2년간 한학을 배웠...
김재중(金載中, 1903~?)
(고려공청 회원)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26년 광주 신광청년회(新光靑年會)에 가입했다. 그해 4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광...
김재한(金在翰, 생몰년 미상)
(고려공산청년동맹원)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25년 4월 전조선노농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무렵 사상단체 무공회에 ...
김재홍(金在泓, 1886~?)
(조공 경남도당 집행위원) 경남 진주 출신으로, 3 ․ 1운동 때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6개월간 수감되었다. 1922년 5월...
김점권(金點權, 1907~?)
(조공 재건운동 관련자) 경기도 고양 출신으로, 1927년 3월 인천 영화학교(永化學校)를 졸업한 후 자유노동에 종사했다. 1928년경부...
김점봉(金点鳳, 1910~?)
(진주 노동운동가)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인쇄직공으로 일했다. 1930년 11월 진주청년동맹 집행...
김정구(金鼎九, 1909~?)
(조공재건설준비위 공청부원) 함남 함흥 출신으로, 1927년 7월 함흥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동맹휴교를 주도했다. 1928년 8월 함흥...
김정국(金正國, 1912~38) (本)김상주 김상규 김진국
(항일연군 제11군 정치부 주임)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16년 이래 요녕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 흑룡강성(黑龍江省) 학강동(鶴崗...
김정규(金正奎, 1899~1973) (號)포해, 金寒
(조공 일본부 책임비서)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24년 1월 대구노동공제회 제5차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3월 대구...
김정기(金正琪, 1891~?)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경기도 광주 출신으르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동아일보』 간도지국을 ...
김정로(金正魯, 1897~?)
(고려공청 회원, 건준 제주도지부 총무부장) 제주도 출신으로 경성중학 5학년을 수료하고 철공(鐵工)으로 일했다. 제주청년회 집...
김정숙(金貞淑, 1917~49) (여성)
(항일연군 참가자) 함북 회령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팔도구(八道溝)에 이주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
김정숙(金貞淑, 생몰년 미상) (여성)
(경성여자청년회 회원) 1921년 3월 천진(天津)에서 조직된 애국부인회 서무가 되었다. 1925년 1월 서울에서 여성해방운동회 창립준...
김정옥(金貞玉, 1906~?) 金化玉 金哲
(진남포상공학교 독서회 참가자) 『동아일보』 진남포지국 기자를 지냈다. 1930년 7월 진남포청년동맹 상무집행위원이 되었고, ...
김정하(金鼎夏, 생몰년 미상) 金政夏 金正夏 李成範
(조공조직준비위 위원) 함북 청진 출신으로 이동휘(李東輝)의 사위이다. 1923년 1월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에 고려...
김정홍(金正泓, 1903~?)
(고려공청 일본총국 회원) 함남 영흥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 및 북간도 방면...
김정환(金正煥, 1906~?)
(고려공청 南滿 제1도 집행위원) 함남 함흥 출신으로, 1926년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에 가입했다. 1927년 1월 고려공청 남만 제1...
김정환(金貞煥, 생몰년 미상)
(개성공산당 책임자)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했다. 1927년 11월 개성공산당을 조직하고 책임...
김정희(金正熙, 1909~?)
(조선의용대 제2구대 대원) 평북 정주 출신으로, 1933년 9월 의열단(義烈團) 산하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1934년 4월 제2기로 ...
김제봉(金濟鳳, 1899~?)
(조공재조직준비위 참가자) 함남 함흥 출신으로, 교사로 근무했고 신간회 함흥지회 검사위원이었다. 1929년 8월 함흥에서 열린 하...
김제혜(金濟惠, 1899~?) (여성)
(국제여성총회 조선인 대표, 러시아공산당원) 함남 원산에서 태어나 1914년 소학교를 졸업했다. 1916년 서울의 여자고둥보통학교...
김조이(金祚伊, 1904~?) 金隱谷 마야꼬바(여성)
(고려공청 회원, 민전 중앙위원) 경남 창원 출신으로, 조봉암(曹奉岩)의 부인이다. 1925년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 창립대회에서 전...
김종건(金鍾健, 1896~?)
(노총 중앙집행위원)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23년 진성회(進誠會, 1925년 12월 제4청년동맹으로 개칭)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1월 진...
김종렬(金鍾烈, 1910~?) 까나로프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소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12월 마산청년동맹 임시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
김종렬(金鍾烈, 1911~?)
(정평농조재건위 참가자) 함남 정평 출신으로, 광덕면 흥덕학교를 졸업했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정평농민조합에 가입했다. 1933...
김종문(金鍾文, 1906~?)
(고려공청 회원) 전북 정읍의 중류 가정 출신으로 1926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했다. 1927...
김종범(金鍾範, 1892~?) 秋山 川一 三民 川一平 凡祚
(부산청년회 총무부 간사, 北星會 회원) 경남 창원 출신으로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1919년 조선주조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192...
김종성(金鍾盛~생몰년 미상)
(정평적색농조 관련자) 1930년 이래 함남 정평에서 진행된 정평적색농민조합 조직운동에 참여했다. 1933년 12월 함흥지법에서 징역...
김종성(金鍾聲, 1902~?)
(중공 東滿特委 조선국내공작위 참가자) 평남 평양 출신으로, 평양에서 자유노동에 종사했다. 1928년 1월 평양노동청년회 활동과 ...
김종수(金淙洙, 생몰년 미상)
(고려공청 회원)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25년 11월 고려공산청년회의 추천으로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1930년 ...
김종신(金宗信,1904~78) (號)梅下 金鍾信
(마산공산당원, 자유당 경남도당 위원장) 경남 마산 출신으로, 토오꾜오전기학교(東京電氣學校) 예과를 졸업하고 쮸우오오대학(...
김종우(金鍾禹, 1903~?)
(고려공청 후계조직 관련자) 서울 출신으로, 1929년 5월 인왕청년회(仁旺靑年會) 조사연구부 책임자, 중앙청년동맹 조사연구부 책...
김종원(金鍾原, 1910~?) 金宗煥
(조선학생전위동맹 관련자, 조선혁명자동맹 조사부 책임) 서울 출신으로 고학당(苦學堂)에 다녔다. 중앙청년동맹 서구지부 집행...
김종익(金鍾益, 1906~?)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전남 장성 출신으로 구둣방을 경영했고 광주청년회에서 활동했다. 1931년 2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김종진(金鍾鎭, 1904~?)
(적농재건투쟁위 적농부 위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7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그후 영주청년동...
김종철(金鍾哲, 1906~?) 金鍾喆 金弼
(조선좌익노조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 중앙집행위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28년경 재동만(東滿)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
김주복(金周福, 1906~?) 金碩虎
(중공 瑟岩村지부 책임비서) 함북 명천 출신으로, 1930년 7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연길현(延吉縣)위원회 슬암촌지부 책임비서 ...
김주현(金周賢, 1904~38)
(항일연군 제2군 제6사 제7단장)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복동(福洞) 토성동(土城洞)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18년 복동 ...
김주훤(金周萱, 1903~?) 金容柱
(광양청년동맹 위원장)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1916년 광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12월 서울 중동학교를 중퇴한 후 광양...
김준걸(金俊傑, 1909~?) 金俊杰 金振山
(북간도 반일무장봉기 참가자) 함북 종성 출신으로, 1930년 12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다. 1931년 유격대에 입대하여 반일...
김준상(金俊相, 1910~?) 金禎相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 참가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7년 3월 풍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했다. 1928년 3월 영주...
김준섭(金俊燮, ?~1926) 강화일
(중공 당원) 3 ․ 1운동 후 조선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중국공산당 파견으로 소련에 가서 군관학교 기관총 전문과에 다녔다. 학...
김준연(金俊淵, 1895~1971) (號)朗山
(조공 책임비서) 전남 영암 출신으로, 영암보통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일본 오까야마(岡山) 제6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토...
김직성(金直成, 1902~?)
(조공 당원) 경남 사천 출신으로, 1923년 8월 마산공산청년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8월 마산공산당 결성에 참여했고, 1925년 조선...
김진(金震, 생몰년 미상)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1920년 3월 블라지보스또끄 한인사회당 창당대회에 참석하여 총회 의사회장이 되었다. 10월 치따에서 러시...
김진국(金振國, 생몰년 미상)
(함인농조 집행위원) 경남 함안 출신으로, 1930년 2월경 서울에서 신간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한 혐의...
김진국(金鎭國, 1897<1904>~?) 金一淳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회령에서 태어나 어려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으로 이주했다. 1927년 4월 조선공산당 만주총...
김진성(金晉成, 1913~?)
(적색노조운동 관련자) 전북 금산 출신으로, 1928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4월 일본 오오사까(大阪)에서 소학교 6학년에 편입...
김진세(金振世, 1901~?)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남 갑산 출신으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용정촌(龍井村) 제1야체이까에서 활동했다. 1929년 8월 조공재건...
김진호(金振浩, 1905~?) 金波 金浩哲 金化龍
(조공재건설준비위 관련자) 함남 갑산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7월부터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 노동자...
김찬(金燦, 1894~?) (本)金洛俊 鄭滿 權一秀 徐如林 黃起龍 水岩
(꼬르뷰로 국내부 공작원, 고려공청 중앙간부) 함북 명천 출신으로, 함북 경성소학교, 성진중학, 명천 진성중학에서 수학했다. 19...
김찬순(金讚淳, 1899~?) 金燦淳
(조공 황해도책)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동아일보』 신원지국을 운영했다. 해서청년연합(海西靑年聯合)과 황해청년연맹에서 ...
김창권(金昌權, 1885~?) 豆南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함북 청진 출신으로, 함북 경성의 보성학교(普成學校)를 졸업했다.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장, 청진차...
김창근(金昌根, 1907~35) 왕뚱보
(중공 磐石縣委 서기) 1925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반석현으로 이주했다. 1927년 호란진집창자(呼蘭鎭集廠子)에서 청년동맹...
김창덕(金昌德, 생몰년 미상) 이덕산
(조선의용군 간부) 1930년대 중반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간부로서 북만(北滿)에서 활동했다. 그후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1938년경 ...
김창만(金昌滿, 1913~?) 金昌濟 장춘산
(조선의용대 流動宣傳隊長) 함남 영흥 출신으로, 서울 중동학교를 중퇴한 후 중국 광동(廣東) 중산대학(中山大學)에 입학했다. ...
김창수(金昌洙, 1901~?) 金日冶
(전북 조공재건설준비위 참가자) 전북 정읍 출신으로, 김철수(金錣洙)의 동생, 김광수(金光洙)의 형이다. 1925년 10월 화호(禾湖)노...
김창식(金昌植, 생몰년 미상) 金昌湜
(조공 김천그룹재건협의회 관련자) 1927년 8월 재동경김천유학생학우회가 주최한 농촌순회강연단에 참가하여 순회강연을 했다. ...
김창욱(金昌旭, 1901~?) 金光濬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길주 출신으로, 1926년 12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상의향(尙義鄕) 세린하(細麟河) 이화...
김창원(金昌元, 1903~?)
(조공 함북도부 주을그룹 책임자)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점원으로 일했다. 1928년 경성(鏡城)청년동맹 검사...
김창일(金昌一, 1906~?) 金星
(조공 함북도당 위원) 함남 덕원에서 태어나 함북 경성에서 성장했으며,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1925년 11월 함북청년단연합회가 ...
김창준(金昌俊, 1900~?)
(조공 당원) 함북 온성 출신으로, 대동학원(大東學院) 교사를 지냈다. 신흥청년동맹, 화요회, 무산자동맹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김창흡(金昌洽, 생몰년 미상)
(함남 적색농조운동 지도자, 노동당 중앙위원) 함남 출신으로, 함남에서 적색농민조합운동에 참여했으며 함남반일동맹 결성에 ...
김창희(金昶熙, 1906~?)
(봉화적색농조 집행위원)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7년 3월 대성학원 3학년을 수료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10월 신간회 봉화지회, 192...
김채룡(金采龍, 1905~?)
(조공 당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간도의 배문의숙과 영신중학(永新中學)을 거쳐 동흥중학(東興中學)을 졸업한 후 귀향했다. 1926...
김채준(金采俊, 1909~?)
(조선공청 회원)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 3월 성진군소년연맹을 해체하고 성진소년동맹을 창립했으며...
김책(金策, 1903~51) (本)金洪啓
(항일연군 제3군 정치부 주임, 중공 北滿臨時省委 서기) 함북 성진(현재 김책시)의 빈농 가정 출신으로, 김홍선(金洪善)의 동생이...
김천해(金天海, 1898~?) (本)金鶴儀
(조공 일본총국 책임비서) 경남 울산에서 해산물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웠고 이후 불문(佛門)에 입문하여 191...
김철(金哲, 1899~?) (本)金華坤 秋光
(고려공청 책임비서) 전북 익산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고 토오꾜오(東京) 세이소꾸(正則)영어학교를 중퇴했다. 1921년 10월 ...
김철(金哲, 1907~32) 김철호
(汪淸縣 항일유격대장) 함북에서 태어나 어려서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현(東寧縣) 육참(六站) 석교촌(石橋村)으로 이주했다. 19...
김철(金喆, ?~1930) 金昌旻 金鐵
(‘간도 5 ․ 30봉기’ 지휘자) 1920년경 군정서(軍政署) 산하 사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4년 10월 길림(吉林)에서 정의부(正義府) ...
김철국(金哲國, 1897~?)
(고려공산당원) 함남 북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노동에 종사했다. 1919년 경원선 철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3 ․ 1운동에 ...
김철규(金澈奎, 1903~?)
(고려공청 만주총국 회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28년 5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화요파)에 가입했다. 1929년 5월 고려공청 연...
김철산(金鐵山, 1901~32)
(중공 延和縣委 서기)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왕우구(王隅溝) 출신으로, 1927년 중국 광주(廣州)에서 대학에 재학중 광주...
김철산(金鐵山, 1907~31) (本)金振鐸
(조공 東滿道 선전부장) 함북 무산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의 사회주의 교육기관 동양학원(東洋學...
김철수(金綴洙, 1893~1986) 銅再 初峰 金昌律 金昌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전북 부안 출신으로, 김창수(金昌洙), 김광수(金光洙)의 형이다.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뒤 1908년 군산...
김철우(金鐵宇, 1903~?)
(중공 汪淸區委 선전부장, 노동당 중앙후보위원)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으로 ...
김철원(金鐵遠, 1912~?) (本)金斗聲
(조선의용군 대원) 서울 출신으로, 아버지와 맏형이 의사였다. 1936년 중국으로 건너가 광동(廣東) 중산대학(中山大學)을 다녔다. ...
김철주(金鐵柱, 1908~?)
(전북공산주의자협의회 참가자) 전북 전주 출신으로, 1928년 4월 전주청년동맹 제1차 정기 총회에 참석하여 도연맹 출석대표위원...
김철진(金哲鎭, 1905~71)
(고려공청 목포야체이까 책임자, 전남 도의회 의원) 전남 목포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일본 쿠마모또(熊本)농업학교를 졸업하...
김철환(金鐵煥, 1900~?)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함남 단천 출신으로, 원산공립간이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3월 서울 경신학교에 편입하여 1917년 3월 ...
김철훈(金哲勳, 생몰년 미상)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함경도 출신으로, 1920년 2월 이르꾸쯔끄공산당 한족부 결성에 참여하고 위원이 되었다. 7월 이르꾸쯔끄에...
김추신(金秋信, 1908~?) (本)金京淑 (여성)
(재일조선노총 간부, 일공 당원) 함남 덕원 출신으로, 토오꾜오(東京) 조선노동조합 부인부장이면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간부...
김충진(金忠鎭, 1910~39)
(항일연군 제4사 간부) 함북 경성 출신으로, 어려서 지주집 머슴이 되었다. 1926년 봄 연길현(延吉縣) 소연집구(小煙集溝) 태암촌(...
김치곤(金致坤, 1903~?) 金泰善 이꼬찐
(적색노조운동 관련자) 평북 의주 출신으로, 신의주보통학교, 신의주공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목공소에서 일하다가 신의...
김치정(金致廷, 1907~?) 金致程 金鐵 金鐵秀 韓明洙 李明洙 李明濟 李在煥
(조공 上海야체이까원) 평북 박천 출신으로, 보통학교 2년을 중퇴했다. 1927년 1월 상해로 가서 1929년 1월 이후 국민정부 직할 상해...
김칠성(金七星, 1909~?) 金永浩
(智島농조건설위 책임자) 전남 무안 출신으로, 1928년 3월 지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내양학원을 개설하고 교사가 되었다. 193...
김탁(金鐸, 1912~?) 王通
(조선의용대 제3지대 정치지도원, 인민공화당 간부) 함북출신으로, 1935년 무렵 중국으로 건너가 4월 의열단(義烈團) 조선혁명간...
김태권(金泰權, 1910~?)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흥 출신으로, 1930년 화룡현(和龍縣) 약수동(藥水洞)에서 ‘간도 5 ․ 30봉기’에 참가했다. 이...
김태균(金泰均, 1904~?)
(조공 함북도당 위원)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주로 함북에서 활동했다. 신문기자를 지냈으며, 1924년 9월 무렵부터 서울파와 연계...
김태근(金泰根, 1915~?) 金成泰
(경남 양산농조 조합원)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했다. 1932년 1월 양산농민조합에 가입했다. 3월 조합 간부들이 양산경...
김태두(金泰斗, 1902~?)
(영주청년동맹 집행위원장)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7년 8월 신간회 영주지회 설립에 참여하고 대의원이 되었다. 그해 12월 영주청...
김태래(金泰來, 1907~?)
(조선학생전위동맹 책임비서) 충남 천안 출신으로, 1920년대 중반 고학당(苦學堂) 재학중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1927년 11월 ...
김태산(金泰山, 1908~?) 金英春 金鳳龍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1929년 11월 남만(南滿)청년총동맹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1930~31년 간도 반일농...
김태상(金台尙, 1915~?)
(예안노동행동대 선전부 책임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29년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12월 일본 토오꾜오(東京)로 ...
김태섭(金泰燮, 1900~?)
(간도 반일농민운동 참가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났다. 1930~31년 간도 반일농민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3년 12월...
김태수(金台洙, 1906~?)
(赤友同盟 책임비서, 민전 중앙위원) 충북 영동 출신으로, 영동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다녔다. 이후 용...
김태식(金泰植, 생몰년 미상)
(일공 당원) 1932년 7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했고, 1935년 2월 비합법 공산주의단체를 결성했다. 이때 합법 노동단체 내선친애회(內鮮...
김태영(金台榮, 1905~?) 金一龍 金斗鐵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조공 경남도당 간부) 경남 하동 출신으로, 김계영(金桂榮)의 동생, 김두영(金斗榮)의 형이다. 어렸을 때 4...
김태욱(金台郁, 1905~?) 一波 金一寅 金一 菊田一夫
(재일본 소비조합운동 지도자)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27년 8월 토오꾜오(東京) 조선노동조합이 주최한 ‘조선총독 폭압정치반대 ...
김태준(金台俊, 1905~50) (號)天台山人
(국문학자)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집안 분위기 아래서 서당교육을 받았다.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경성제국대...
김태희(金台熙, 1899~?) 金奇得 金永煥 白南斗 白永鎬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서울 출신으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고 신간회 오오사까(大阪)지회 상무집행위원을 지냈다. 1929년 9...
김택수(金澤銖, 1901~?)
(고려공청 회원) 제주도 출신으로,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주류판매업에 종사했다. 1922년 제주청...
김택원 (1899~?)
(자유시한인보병대대 부관) 러시아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 얀치헤 바라바시 마을의 빈농 집안 출신이다. 1920년 2월 한...
김판권(金判權, 1900~?) 紫明 棟尾次郞
(영암공산주의자협의회 책임자)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어려서 토오꾜오(東京)로 이주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을 다녔다. 1920년 1...
김필선(金弼善, 1901~?)
(고려공청 강원도 위원) 1927년 9월 강원도청년연맹 혁신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 강원도 위...
김필수(金必壽, 1904~?) 金弼壽 朴惠淑 따노바 (여성)
(고려공청 학생부 위원, 太勞 지도자)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27년 4월 근우회(槿友會)에 참여했다. 1928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 학생...
김필현(金弼鉉, 1905~?) 朴昌大 金弼鍊
(경성적색노조건설협의회 경제부 책임) 서울 출신으로, 3 ․ 1운동에 가담하여 한때 검속되었다. 서울에서 인쇄노동자로 생활했...
김하경(金河慶, 1908~?) 一山
(고려공청 회원) 경북 봉화 출신으로, 북청노동조합원이었다.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으며, 1930년 2월경 검거되었다.
김하경(金河景, 1907~?)
(경성콤그룹 관련자) 함남 함흥 출신으로, 함북 웅기보통학교,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6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
김하구(金河球, 1880~?) 金河龜
(신민회 회원, 『한인신보』 주필)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다. 1906년 애국계몽운동단체 한북학회에 참...
김하근(金河槿, 1908~?) 金河根 金春甲 金石峰
(고려공청 東滿道 局子街 위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1927년 7월 연길현(延吉縣) 국자가 지인향(志仁鄉)청년연맹 집행위원이 되었...
김하룡(金河龍, 1904~?) 金若泉 金活
(조선공청 함북도 선전부장) 함북 경성 출신으로,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다. 1924년 11월 혁청단(革淸團) 임시총회에서 ...
김하룡(金河龍, 1904~?) 딴일노 馬宗範 金大補 金得用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명천에서 태어나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상의향(尙義鄕) 세린하(細麟河)로 이주했다. 1920년 12...
김하석(金河錫, 1886~?) 低鼻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1910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다. 1912년 북간도 소영자(小營子)에 광성학교(光成學校)를 설립하고 교감이...
김하정(金夏鼎, 생몰년 미상)
(남선노농동맹 상무위원) 1897년 1월 교암동(敎岩同) 사숙(私塾)에 입학했고 1898년 대구 협성학교(協成學校)에 입학했다. 1912년 4월...
김학걸(金鶴傑, 1908~?)
(성진농조 중앙조직위원, 전농 중앙집행위원)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早稻田大學) 강의록으로 독...
김학룡(金學龍, 생몰년 미상)
(조선의용군 제3지대 제3대대장) 1939년 조선의용대에 입대했다. 그후 팔로군(八路軍)지역으로 들어가서 일제 말기 연안(延安) 조...
김학무(金學武, 1911~43) 金俊吉
(민혁당 중앙집행위원) 함북 온성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김구(金九)의 추천으로 1934년 2월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
김학천(金學天, 1902~42) (本)김석주
(항일연군 참가자) 함북 경원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이도구(二道溝)로 이주했다. 1929년 ...
김학철(金學鐵, 1915~ ) 홍성걸
(조선의용대 대원) 함남 원산 출신으로,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35년 상해(上海)에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다. 중...
김학호(金學灝, 1904~?) 金學浩 金鶴浩
(조공 황해도당 선전부 위원)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나왔고 『조선일보』 지국 기자로 근무했다. 1927년 5월 조선공...
김한(金翰, 1888~?) (號)霽觀 金子弘 金相燁
(임정 사법부장, 조공재조직준비위 위원) 서울 출신으로, 대한제국 통신원 주사, 탁지부(度支部) 주사, 세무주사를 지냈다. 1905년...
김한경(金漢卿, 1902~?) 金均 金本憲治
(조공 일본총국 책임비서) 충북 제천에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3년 2월 전조선청년당대회 후원회 발기인, 1924년 1월 조선...
김한동(金漢東, 1914~?)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전남 함평 출신으로, 김재동(金載東)의 동생이다. 1929년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1월 광주학...
김한성(金漢聲, 생몰년 미상)
(경성콤그룹 가두부원) 1936년 7월 서울에서 이재유(李載裕)그룹 후계활동에 참가했다. 1940년 경성콤그룹에 가담하여 가두부를 담...
김한정(金漢貞, 1896~?)
(조공 당원) 제주도 출신으로, 신문기자로 재직했다. 1925년 제주청년연합회에 참여하고 3월 제주도의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를...
김한중(金漢中, 1913~?) 陳漢中
(독립동맹 중앙위원) 중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1937년 12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 입학하여 이...
김행규(金杏奎, 1904~?)
(조공 당원) 전북 옥구 출신으로, 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10월 전북청년연맹에 참여하여 교양부를 담당했다. 1926년 1월 사상...
김현갑(金玄甲, 1904~?)
(조선공청 회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서울 중동학교를 중퇴했다. 1927년 12월 성진 학서면 북성농민조합 창립에 참여하고 규약초...
김현제(金顯濟, 1909~?) 金福童 金洙進 李鐵南
(원산 적색노조운동 지도자) 함남 원산 출신으로, 원산 배성학교와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
김형관(金衡寬, 1901~?) 金鶴 金鴻世 씨이뜨로프
(고려공청 회원, 함북 적색노조운동 지도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고학생갈돕회에서 활동했다. 1922년 10월 경성(京城)무...
김형두(金炯斗, 생몰년 미상)
(조선 모쁠 책임자) 경남 마산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923년 7월 마산무산소년단 고...
김형복(金衡復, 1902~?) 金亨福 金光海
(고려공청 東滿道 위원) 함북 명천 출신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하여 학교 교원으로 일했다. ...
김형선(金炯善, 1904~50) 金元植, 崔命煥
(조공 당원) 경남 마산 출신으로, 김형윤(金炯潤)의 형, 김명시(金命時)의 오빠이다. 1917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공...
김형윤(金炯潤, 생몰년 미상)
(경남 적색노조운동 참가자) 경남 마산 출신으로, 김형선(金炯善)의 동생이다. 1931년 8월 경남 창원군 내서면(內西面) 산호(山湖)...
김호반(金鎬盤, 1902~?) 金浩盤
(고려혁명군 참가자)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서 1911년 부모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1911~14년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보...
김호선(金好善, 1911~?)
(전남노농협의회 책임자) 전남 광주 출신으로, 김덕선(金德善)의 동생이다.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신간회 광주지...
김호영(金浩永, 생몰년 미상) 金重政 崔鐵 崔徹 紅鐵 林汪洋 林一 申均龍 申河龍 高津 林鐵
(재일조선노총 중앙위원, 전평 중앙위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3년경 일본으로 가서 1927년 ...
김호종(金好宗, 1904~?)
(조공재건설준비위 진주 책임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중퇴했다. 1929년 3월 진주청년동맹 집행위원, 4월 진주농민조...
김홍배(金洪培, 1909~?)
(전남적색농조건설준비위 편집책임자, 노동당 전남도당 조직부장) 전남 해남의 지주 집안 출신으로, 남창학원을 졸업한 후 목포...
김홍빈(金弘彬, 1904~?) 金秋松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연길현(延吉縣)에서 재동만(東滿)조선청년총동맹 상무를 맡았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
김홍빈(金洪斌, 1906~?)
(정평농조재건준비위 참가자) 함남 정평 출신으로, 1932년 12월 정평농민조합재건준비위원회 산하 정평농조 남부지역위원회의 결...
김홍선(金洪善, ?~1933) 金弘善 金洪憲 潘慶由
(조공 만주총국 선전부 책임, 중공 寧安縣委 서기) 함북 성진 출신으로, 김책(金策)의 맏형이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화룡현(和...
김홍작(金鴻爵, 1884~?)
(신사상연구회 회원)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장연(長淵)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해주...
김홍직(金洪直, 1898~?)
(적색노조대구협의회 참가자) 1920년 3월 김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8월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미국인이 경영하는 ...
김화(金華, 1910~?) 金一岡 金和 金化
(민혁당 군사부원, 조선의용군 제5지대원) 함남 출신으로, 1935년 9월 남경(南京)에서 특무대 예비훈련소에 입교했으나, 공산주의...
김화진(金華鎭, 1902~?) 茁浦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 관련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1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 4학년 때 중퇴했다. 1923년 5월 일본 토오꾜오(...
김효관(金孝寬, 1910~?)
(고려공청 회원) 평북 철산 출신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5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학생야체이까 결성에 참...
김효종(金孝宗, 1899~1927)
(조공 당원)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21년 6월 ‘독립군 군자금 모집사건’으로 검거되어 6개월간 투옥되었다. 1920년대 중반 신흥...
김효출(金孝出, 1911~?) 金洪璨
(경주적색농조준비위 간부) 1923년 경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주 산구병원에서 근무했다. 1929년 경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
김후식(金厚植, 1910~?)
(안동콤그룹 간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25년 4월 대구 교남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9월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했다. 신간회 안동...
김훈(金勳, 1904~33)
(북간도 大荒溝 노농유격대장, 중공 汪淸縣委 서기)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태어나 의란소학교(依蘭小學校)를 ...
김휘(金輝, 생몰년 미상)
(조선의용대 대원)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1937년 12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 입학하여 1938년 5...
김흠(金鑫, 1917~?)
(조선의용군 華北支隊 제2대 소대장) 중국 장학량(張學良)부대에 배속되어 있다가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
김흥선(金興善, 1898~?)
(고려공청 회원) 전남 광주 출신으로, 잠업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광주청년회 집행위원, 1926년 전남청년회연합회 총회준비위원,...
김흥섭(金興燮, 1905~?) 金友燮
(고려공청 일본부 회원) 경북 봉화 출신으로, 서울 중동학교 3학년을 수료했다. 1925년 5월 일본 오오사까(大阪)에서 노동을 하면...
김희국(金禧國, 1906~?)
(영흥농민폭동 참가자) 함남 영흥 출신으로, 1931년 영흥농민조합에 참여했다. 10월 일본경찰의 총격으로 농조원이 사망한 사건을...
김희성(金熙星, 1912~?)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변절) 1934년 서울에서 권영태(權榮台)그룹 관련자들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했다. 서울과 평양의...
김희진(金嘉鎭, 1914~?)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서울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나왔다. 1931년 3월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32년 3월 동맹휴학을 ...
김희창(金希昌, 생몰년 미상)
(재만주 上海派 고려공청 책임비서) 1921년경 상해파 고려공산당에 입당했다. 1923년 1월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적기단(赤旗團)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