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전후 일본 좌파의 몰락 - 사회의 전향 - ‘전향 없는 전향’이 일어났다

ChatGPT -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전후 일본 50-70년 사이에 비판적 좌파 지식인층이나 일본 사회당이 몰락한 것을 관계시켜 분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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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것을 앞서 이야기한 <좌파 지식인의 전향> 문제와 연결하면, 전후 일본은 아주 흥미로운 반례이자 확대판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1950~70년 사이에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개인적으로 우파로 “전향”했다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좌파가 제기하던 문제를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도 좌파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점점 필요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저는 이를 <개인의 전향보다 사회의 전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1. 1950년대 일본에서는 왜 좌파가 그렇게 강했는가

패전 직후 일본에서 좌파가 강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945년의 패전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전전 일본의 국가이념 전체의 붕괴였습니다.

천황제 국가주의
군국주의
대동아공영권
제국주의
국체론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신뢰를 잃었습니다.

반대로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평화주의·민주주의에는 엄청난 도덕적 정당성이 생겼습니다.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일본인은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

<왜 지식인들은 국가에 저항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서 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문화가 탄생합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대표적입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일본인이 전전의 권위주의적 정신구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1950년대에는

<진보적 지식인 + 노동운동 + 사회당 + 평화헌법>

이 느슨하지만 매우 강력한 하나의 정치문화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역설적으로 좌파의 최고점이 바로 쇠퇴의 시작이었다

그 결정적 사건이 1960년 <안보투쟁(安保闘争)>입니다.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해 학생·노동자·지식인·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당시만 보면 일본 보수체제가 무너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물러났지만,

<미일안보조약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이케다 하야토는 정치적 이념대결을 피하고 완전히 다른 전략을 선택합니다.

<소득배증계획>

입니다.

말하자면 일본 정치가 국민에게 이렇게 제안한 것입니다.

<안보와 이념을 가지고 계속 싸울 것인가, 아니면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

일본 국민의 상당수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혁명을 패배시킨 것은 반공주의보다 경제성장이었다

전후 일본 좌파의 몰락을 이해하려면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강력한 반공 탄압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 자본주의가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고도경제성장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임금 상승
가전제품 보급
주택 개선
교육 확대
사회보장 확대

가 진행됩니다.

흔히 말하는

<세 가지 신기(三種の神器)>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이 평범한 가정에 들어왔습니다.

뒤이어 자동차와 에어컨 등이 보급됩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예측에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어 노동계급이 더욱 급진화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는 점점

<혁명적 노동계급>

이라기보다

<회사원이며 소비자이며 중산층 가족의 가장>

이 되어갔습니다.

이 변화가 사회당에는 치명적이었습니다.


4. 여기에서 ‘전향 없는 전향’이 일어났다

이것을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개인의 전향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일본 국민 대다수가 어느 날 갑자기

<사회주의가 틀렸다.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겠다>

고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변했습니다.

1950년:

<사회체제를 바꿔야 한다.>

1960년:

<민주주의와 평화헌법은 지켜야 한다.>

1970년:

<집값, 임금, 교육, 환경, 의료가 더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정치사회학적으로는 <탈급진화>입니다.

그러나 명시적인 사상전향은 아닙니다.

따라서 일본 전후사에서는 일종의

<전향 없는 전향>

이 일어났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5. 사회당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가 변했는데 사회당의 사회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사회당의 결정적인 약점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회당이 기본적으로 상정했던 사회는

<자본가 대 노동자>

라는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러나 1960~70년대 일본인은 자신을 점점

농민
노동계급
빈민

보다는

<중류층>

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一億総中流, 1억 총중류> 의식이 등장합니다.

실제 불평등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느냐>입니다.

계급혁명을 이야기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을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나는 프롤레타리아다>

보다

<나는 평범한 중산층 일본인이다>

라는 정체성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사회당은 이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6. 일본 노동운동 자체의 특수성도 사회당을 약화시켰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합니다.

유럽에서는 노동조합이 산업별·계급별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별 노동조합>

이 강했습니다.

Toyota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노동자와의 계급연대>

이기도 하지만,

점점 더

<Toyota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

는 이해관계가 됩니다.

회사가 성장하면

임금이 오르고
보너스가 나오고
고용이 안정되고
복지가 좋아집니다.

그러면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순전히 적대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설명력이 약해집니다.

일본식 기업사회가 정치적 급진주의를 흡수하는 강력한 장치가 된 것입니다.


7. 자민당이 놀라울 정도로 영리했다

여기서 일본 좌파의 몰락을 단순히 <좌파가 잘못해서>라고 설명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자민당이 대단히 성공적인 정당이었습니다.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쳐져 자유민주당이 만들어지고, 사회당도 통합되면서 이른바 <55년 체제>가 성립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자민당 대 사회당

구도였습니다.

그러나 자민당은 단순한 자유시장 보수당이 아니었습니다.

농민에게는 보조금과 농업보호를 제공하고,

지방에는 공공사업을 제공하고,

기업에는 산업정책을 제공하고,

노동자에게는 성장과 고용을 제공하고,

중산층에는 주택과 교육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즉 좌파가 요구하던 사회적 안정의 상당 부분을 <보수정당이 공급>했습니다.

이것이 사회당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8. 이것을 ‘좌파의 패배’라고만 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이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전후 좌파가 주장했던 것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 사회의 기본 상식이 되었습니다.

평화헌법
의회민주주의
노동자의 권리
복지국가
교육 확대
군국주의 비판

등입니다.

특히 헌법 9조는 사회당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강력하게 옹호했고, 결과적으로 자민당조차 쉽게 없애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조금 역설적으로 말하면

<일본 좌파는 정치적으로 패배했지만 문화적으로 상당 부분 승리했다>

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성공 때문에 오히려 좌파 정당의 존재 이유가 약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9. 그런데 1960년 이후 지식인 세계에서는 또 다른 붕괴가 일어났다

여기서 마루야마 마사오 세대와 젊은 신좌파 사이의 갈등이 생깁니다.

1950년대의 진보적 지식인은 대체로

마르크스주의
평화주의
전후민주주의

라는 큰 틀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이 급진화하면서 젊은 세대는 오히려 <기성 좌파>를 공격합니다.

일본공산당도 싫고,

사회당도 싫고,

기성 노동조합도 싫고,

마루야마 같은 전후 민주주의 지식인도

<기성체제의 일부>

라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전공투(全共闘)가 상징적입니다.

따라서 좌파 내부에서 세대 단절이 발생합니다.

<구좌파 ↔ 신좌파>

입니다.


10. 1968~72년은 결정적인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전공투와 학생운동은 처음에는 상당한 도덕적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 권위주의, 베트남전쟁, 미일동맹 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운동은 점점 급진화했고 일부에서는 폭력이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72년 <연합적군(連合赤軍) 사건>이 일어납니다.

운동 내부에서 동료들을 ‘총괄’이라는 이름으로 폭행·살해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어 아사마 산장 사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해방시키겠다는 사람들이 자기 동료들을 죽이고 있다.>

여기서 앞서 Horowitz에게서 보았던 구조가 정확히 나타납니다.

<억압에 저항하는 운동>

으로 보이던 것이

<자체적으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집단>

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11. 이것이 Horowitz와 일본의 중요한 접점이다

Horowitz에게 Betty Van Patter 살해 사건과 Black Panther 경험이 있었다면,

일본 사회에는 <연합적군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규모와 맥락은 다릅니다.

그러나 심리적 효과는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전에는

<국가권력이 위험하다>

고 생각했던 사람이

<혁명운동도 위험하다>

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기존 사회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는 판단이 나옵니다.

이것이 좌→우 이동 또는 탈정치화를 촉진합니다.


12. 그러나 대부분은 우파가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960~70년대 일본에서 좌파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모두 보수주의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 자체에서 물러났습니다.>

혁명가 → 보수주의자

가 아니라

혁명가 → 회사원
학생운동가 → 교수
노동운동가 → 가정생활

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가장 큰 변화는

<좌파에서 우파로>

라기보다는

<정치적 인간에서 사적 인간으로>

의 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고도성장 사회의 가장 강력한 탈정치화 효과였습니다.


13. 사회당의 몰락과 지식인의 몰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두 현상을 연결하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1950년대에는

진보적 지식인

학생

노동운동

사회당·공산당

사이에 어느 정도 공통의 정치적 언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0~70년대를 지나면서 이것이 분해됩니다.

지식인은 전문화되고,

학생은 신좌파로 급진화했다가 붕괴하고,

노동자는 기업사회에 통합되고,

중산층은 소비사회로 이동하며,

사회당은 노동조합 중심의 기존 지지층에 머뭅니다.

즉 <좌파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묶어주던 사회적 생태계>가 붕괴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당의 약화보다 더 근본적인 현상입니다.


14. 특히 1969년 총선은 상징적이었다

일본사회당은 한때 정권교체 가능성을 가진 제1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1969년 총선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중대한 타격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사회당은 점차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대안정부>

라기보다

<자민당의 폭주를 견제하는 영구 야당>

처럼 보이게 됩니다.

정당정치에서는 이것이 치명적입니다.

유권자는 질문합니다.

<저 당이 실제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가?>

사회당은 점점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15. 외교·안보 문제도 사회당을 점점 곤란하게 만들었다

사회당은

비무장중립
미일안보조약 반대
사회주의권과의 우호

를 강조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와 전쟁의 기억이 매우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전이 장기화하면서 현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련과 중국은 정말 평화적인가?

북한은 어떤 체제인가?

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의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사회당은 이 질문에 현실적인 답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의 권위주의와 인권문제가 점점 알려지면서

<사회주의 = 진보>

라는 도덕적 등식도 약해졌습니다.


16. 그래서 일본의 전후 좌파 쇠퇴에는 다섯 개의 힘이 동시에 작용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경제성장>

혁명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자민당의 포섭>

좌파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

<중산층화>

계급정체성을 약화시켰다.

<신좌파의 폭력과 분열>

좌파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시켰다.

<사회당의 경직성>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습니다.


17.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 요인이 있다 — ‘성공한 전후민주주의’

이 부분을 빼놓으면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전후 지식인들이 원했던 것은 대체로

군국주의의 극복
민주주의
시민의 자율성
평화주의

였습니다.

그런데 1960~70년대에 일본사회는 불완전하지만 실제로 상당 부분 이것을 이루었습니다.

선거가 지속되었고,

군사쿠데타가 없었고,

언론자유가 유지되었으며,

시민사회가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면 역설적인 일이 생깁니다.

<전후민주주의를 외치던 지식인의 역할 자체가 덜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1950년대에는 마루야마 같은 지식인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1970년대 대학생에게는 그것이 이미 <기성 담론>처럼 들렸습니다.


18. 그래서 나는 이것을 ‘좌파의 실패’보다 ‘좌파 시대의 종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은 분명 많은 정치적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당이 조금 더 영리했다면 일본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장기적으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산업노동자 중심 사회>

에서

<중산층 소비사회>

로,

<계급정치>

에서

<생활정치>

로,

<이념의 시대>

에서

<관리와 성장의 시대>

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사회당은 이 역사적 이동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19. 이것을 앞서 이야기한 ‘전향’의 논리와 연결하면

아주 흥미로운 결론이 나옵니다.

1930년대 일본의 전향은

<개인이 국가에 굴복하여 사상을 바꾸는 전향>

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70년대에는 전혀 다른 형태가 나타납니다.

<국가가 사람을 강제로 전향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급진적 사상이 매력을 잃은 것>

입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이렇습니다.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 탄압
→ 천황제 국가주의

1960~70년대:

마르크스주의·진보주의
→ 경제성장·중산층화·운동의 환멸
→ 탈정치화·온건화

둘 다 좌파를 약화시켰지만 메커니즘은 완전히 다릅니다.


20. 그리고 이것이 일본의 장기 자민당 지배를 설명한다

자민당은 일본인을 적극적인 보수주의자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생활이 지금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러면 유권자는 굳이 체제를 바꿀 이유를 느끼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55년 체제의 가장 강력한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보수지배를 <일본인이 본래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면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더 정확하게는 <자민당 체제가 사회변화의 수혜를 흡수하면서 급진적 대안의 필요성을 약화시켰다>

고 해야 합니다.


결론 — 전후 일본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승리했는가?

겉으로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자민당이 사회당에게 승리했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면 훨씬 복잡합니다.

전전 일본의 국가주의는 패배했고,

전후 좌파가 주장했던 민주주의·평화·사회복지의 상당 부분은 제도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공한 전후 체제 속에서

<좌파 정당과 진보적 지식인의 정치적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아주 역설적으로 말하면,

<일본 좌파는 자신이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사회 속에서 정치적으로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68~72년 신좌파의 폭력과 붕괴는 마지막 결정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1950~70년 일본의 변화를 단순한 <우경화>라기보다 <전후 급진주의 → 전후민주주의 → 고도성장 중산층사회>라는 세 단계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살펴본 Horowitz식 개인적 전향보다 더 큰 규모의 현상입니다. Horowitz가 <개인이 혁명적 좌파에서 보수주의로 이동한 사례>라면, 일본은 <개인들이 반드시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아도 사회 전체가 혁명정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례>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아주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합니다. <왜 일본에서는 이런 변화가 자민당 장기집권으로 귀결됐는데,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오히려 진보적 시민사회가 다시 강력하게 부활했는가?>를 비교하면 한일 전후 정치문화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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