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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서경식의 ‘식민주의 저항’ 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조관자 2008

02 조관자.pdf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소개된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민족담론
서경식의 ‘식민주의 저항’ 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조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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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일조선인의 ‘저항서사’는 탄광의 카나리아? 

“옛날에 탄광의 갱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 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 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태어난 재일조 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비유컨대 나의 저술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다.”1

1951년생인 서경식은 스무 살 무렵부터 1989년까지 비전향 장기수인 두 형(서승, 서준식)의 구호활동을 펼친 후, 폭력과 저항이라는 근현대의 세계 사적 문제에 천착해온 미술평론가이자 저술가다. 일본의 식민지배 원죄와 일본인의 국민적 책임을 추궁하는 그의 논리는 일관되고 견고하며, 민족해 방의 과제를 일깨우는 그의 문체는 유려하면서도 감성적이다. 그의 일본어 저서는 여러 번역자들에 의해 한국어로 소개되었다. 그는 학살의 기억을 갖 는 유대인은 물론, 유대인에게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과도 공감하며, 백인 제국주의에 저항한 프란츠 파농(Frantz Fanon)과 중국 대륙을 계몽했던 루쉰 (魯迅)을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체험과 지식과 사유를 담아낸 그의 글은 독자를 압박하는 힘이 있다.2
2006년 번역 출판된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서경식은 자신을 ‘일본의 서사’와 ‘자본주의 근대라는 승자의 서사’와 싸우는 이야기꾼으로 소개한 다.3 자신의 저술에 대해서는 탄광의 붕괴 위기를 알리고 죽어가는 ‘카나리

왜 한국은 ‘무국적’ 재일조선인 입국을 거부하는가 | 민족문제연구소

왜 한국은 ‘무국적’ 재일조선인 입국을 거부하는가 | 민족문제연구소



왜 한국은 ‘무국적’ 재일조선인 입국을 거부하는가
By 민족문제연구소 -

200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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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5일 우리 연구소는 ‘식민지기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의 전개’을 주제로 한 한일공동심포지엄을 주최했다. 정영환 연구원은 당초 심포지엄의 제4주제인 ‘식민지시기 재일조선인의 사회운동과 민족운동’(발표 김인덕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의 토론자로 참여하기로 했으나 한국 외교통상부의 입국 불허로 결국 심포지엄에는 자신의 토론문만을 보내야했다. 이 같은 사실은『한겨레21』제764호(2009.6.15) “왜 이제 와서 남북 사이 선택을 강요하나”라는 기사로도 소개된 바 있는데, 최근에 정영환 연구원이 자신의 입장을 연구소로 보내와 전문을 게재한다. – 엮은이

정영환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



필자는 지난 6월 5일에 열렸던 국제학술대회 ‘식민지기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의 전개’에 토론자로 참석하기 위해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 이미 2006, 2007년에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을 한 일이 있었기에 당연히 발급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과는 ‘불허’였다. 결국 한국에 입국을 못하고 학술대회에도 참가 못했다.


▲ 지난 5일 열린 한일공동 심포지엄 “식민지기 재일조선인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의 전개”


이건 필자만의 사례가 아니다. 올해에 들어 ‘조선적’ 재일조선인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이 ‘불허’가 되어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하나둘이 아니다. 노무현정권 5년간을 통해서 외교통상부는 1만1819건의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여 불허사례는 4건에 불과했는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불허된 경우는-엮은이) 필자가 아는 사례만도 이미 4건을 넘고 있다. 지금 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 신청시에 이후 국적을 바꿀 의사가 있는지를 밝힐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이명박정권이 계획적으로 ‘조선적’ 입국불허 처치를 취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입국거부처치는 ‘조선적’ 재일조선인이란 존재에 대한 틀린 인식에 기초한 너무나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한다. 먼저 초보적인 사실을 확인하겠지만 ‘조선적’이란 이북국적을 의미하지는 않다. 일본과 이북사이에는 국교가 없고, 일본정부는 이북의 국적과 여권을 인정 안하고 있기에 일본의 국내법상 이북국적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일본법상은 재일동포 속에 이북 국적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조선적’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조선적’은 국적이 아니고 일본의 법률인 ‘외국인등록법’상의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 뿐이다. 일본 패망 직후의 1947년 5월 2일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 대만인 등의 단속과 등록을 위해 ‘외국인등록령’을 제정하였는데 당시 남북정권의 수립이전이었기 때문에 ‘국적’란에는 일괄적으로 ‘조선’이라고 표기되었다. 여기에서의 ‘조선’은 국가가 아니라 지역으로서의 ‘조선’을 의미한다. 이 상태가 해방부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어있는 것이다.



▲ 한일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그러기에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사실상 국적을 안가지고 있는 ‘무국적자’이다. 국적이 없기에 여권도 없고 외국에 여행 나갈 때는 일본 법무성이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증’ 하나만을 가지고 간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을 때에 ‘조선적’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도 없다. 즉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해방이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무국적자로서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일제시대, 재일조선인들은 그냥 일본의 ‘관리’대상이기만 했다. 한반도와의 왕래를 할 때에는 여행증명서나 도항증명서의 발급을 받아야 했고, 일제는 간단하게 이를 발급 안했다. 일본은 도항증명서 발급을 조선인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거기에는 한 줌의 ‘권리’도 없고 ‘관리’만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즉각 “왜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데 ‘조선적’을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이 날아 올 것 같다. 지나친 냉전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면 “이북을 지지하기에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아마도 입국 거부하는 외통부의 발상도 이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조선적’자들은 왜 아직도 ‘일제시대’와 마찬가지인 무국적 상태를 살고 있는가. 물론 그 사연은 각각 다르겠지만 그 중 큰 이유의 하나는 남북의 어느 정권을 골라 조국이 분단된 상황을 인정할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 선생님은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은 통일을 갈망하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도 김석범씨의 말에 동감한다.


또한 필자로서는 “왜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는가”는 질문을 던지는 분에 대해서는 “왜 한국국적 취득이 입국의 요건이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예컨데 현행의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이하 ’외국국적동포‘라 한다)’를 ‘재외동포’라고 규정하여 그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특별한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이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재외동포’가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지는 이미 현행법상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만 ‘조선적’자는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가 아니기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뿐이다.


오히려 외교통상부 자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무국적자에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 기초하여 ‘조선적’ 재일조선인에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여 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혹시 외통부가 ‘조선적’이 사실상 무국적자이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북제재로서 입국거부처치를 취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도 ‘조선적’자를 보호할 정부가 없는 것을 기화로 하여 ‘조선적’자를 대북제재의 희생양으로 모는 너무나 어리석고 비겁한 처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슨 ‘치안’상 우려될 사건이 있을 때에 조선인의 이동을 규제한다는 것은 조선총독부의 상투수단이었다. 외통부는 이제 총독부 모방을 그만하여 즉각 ‘조선적’ 재일조선인의 입국의 권리를 인정하여야 한다.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KBS 뉴스 2010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KBS 뉴스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입력 2010.08.29 (07:48)

i



재일동포 가운데는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국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조선적인데 이들은 사실상 무국적자 취급을 받고 있어, 국권 침탈 100년을 맞는 이 시점의 또 다른 현안입니다.
구경하 기자가 만났습니다.

===
재일동포 김양자 씨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해방을 맞은 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12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국적은 예 이름 '조선', 그 뜻을 이어 받아 김 씨의 가족들은 4대째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양자 (재일동포 2세/57세):"우리는 처음부터 조선 국적이니까 끝까지 조선 국적으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는 무국적자입니다.


한반도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 일본정부가 한반도 출신자에게 붙인 호칭이 국적이 돼버렸습니다.

조선적 동포들은 학교를 세워 우리 말과 역사를 가르쳐 왔습니다.

이들은 북한사람으로 오해 받아, 일본 교육당국에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일본정부는 고등학교 수업료를 전면 무상화했습니다. 하지만 조선학교만 유독 그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유엔도 차별이라며 일본 정부에 시정을 권고한 상태입니다.

조선적 동포는 한국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통역사 황자선 씨는 그동안 3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지난해부터 임시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자선:"조선 국적이라는 표시를 갖고 있는 것 때문에 한국에 못들어가고 있죠."

학술행사에 참석하려던 대학강사도, 대학원에 합격한 학생도 모두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인터뷰> 정영환:"고향에 돌아갈 수 있고 오고 갈 권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억제하는 게 아닌가."

조선적 동포의 98%는 경상도, 제주도 등 한국이 고향이거나 그 후손입니다.

KBS 뉴스 구경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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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ooks from Japan #5: 정영환『歴史のなかの朝鮮籍



New Books from Japan #5: Chong Young-hwan『歴史のなかの朝鮮籍』(Chosenseki: A History Koreans in Postwar Japan)


Modern Japan History Association261 subscribers

362 views Jan 16, 2024MJHA proudly presents "New Books from Japan" #5: 『歴史のなかの朝鮮籍』 "Chosenseki: A History of the Legal Marker of Koreans in Postwar Japan" Presenter: 鄭栄桓 (Chong Young-hwan, Meiji Gakuin University) 

Discussant: Sayaka Chatani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This presentation was originally given on December 12, 2023. 
Book abstract:

 On May 2, 1947, the concept of "Chosen nationality" appeared in the Japanese alien registration system for the first time, and has continued to exist until the present day. The history of this strange "nationality" given to Koreans who continued to live in Japan after liberation from colonial rule is elucidated through a close reading of primary source documents, including diplomatic correspondence between Japan and Korea; administrative documents of the Ministry of Justice and local governments; court records; and documents left behind by political parties and ethnic solidarity organizations. 1947年5月2日、日本の外国人法制に登場し、今日に至るまで存続している「朝鮮籍」。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後も日本で暮らし続けた朝鮮人たちに与えられたこの奇妙な「国籍」の歴史を、日韓の外交文書、法務省や地方自治体の行政文書、裁判記録、そして政党・民族団体の残した文書などの一次史料を精緻に読み解くことで明らかにする。 ***** The Modern Japan History Association (MJHA) is a professional association of scholars interested in modern Japan and Japanese history. Those interested in joining MJHA can become a member here: https://mjha.org/join 日本近現代史学協会(MJHA)は、近現代日本と日本史に興味関心を持つ研究者の専門家団体です。MJHAへの入会に興味のある方は、こちらから入会できます:https://mjha.org/j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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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では始めますgoodeven goodafterandGood everyone
ThankYouFor
joiningTheFifth sessionisthisfifth sessionofthisSeries
NewBOOKSfromJapan
My name isIamanasso ProfessorINTHE HISTORYdepartment nationaluniversity ofSingapore
theGOAL ofNewBOOKSfromJapan Seriesi s 
tointroduce recentlypublished japaneselanguage BOOKSontheHistoryof
modernJAPANtoWi Audiencebyhaving Englishlanguage commentariesThisisa
bilingualFORUMwhere presenters discussionand participantsMay speakinEnglishor
Japanesewhicheveris moreconvenientfor themWewouldliketo createAfriendlyand
SafeEnvironmentso pleasefeelFreetoask forclarificationor
partialTranslation WEARENOTtesting anyonefluencyin eitherofthe
languages

えっとそれではえ藤本 さんの方から本日のスピーカーの紹介をお願いします
はいえ本日の司会を務めさせて いただきます藤本ひしと言いますよろしく
お願いしますえ今回の著者のえまチ4フ
先生をお招きしてえお話をしていただき ます歴史の中の挑戦席という本がですね
最近出ましたのでえそれのブックトークと いうことでえ進めさせていただきたいと
思います簡単に長先生のえ紹介をさせて いただきますとえジョン先生は1橋大学
大学院社会学研究家でえ博士家庭を終了し ましてまその時社会学博士というのをえ
取られておりますでその後立立命官大学 コリア研究センターの選任研究員やえ明治
学院大学養教養教育センターの先任行使を へまてえ現在はえ明治学院大学共有教育
センターの教授を務められておりますえ 専門は朝鮮金元大使え及びえ在日士
という風になっておりますえ今回ブック トークで取り上げていただく歴史の中の
朝鮮席という本以外にもえたくさんの本を 既に出版されております例えばえ2013
年にはえ朝鮮独立へのアロえ在日の 解放5年始をえ出されましてえその本に
対してえイえジョグ省がえ与えられており ますその他にもえ2026年にはえ暴挙の
ための若え帝国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を 出版されておりえさらに同年にええ今え長
平和なき平和主義戦後日本の思想と運動と いう本もえ翻訳え日本語に翻訳されており
ますはいえ今回はえ特に最近出版された 歴史の中の朝鮮席というえ本をですねえ
まずえ長先生の方に30分ぐらい話して いただきましてえその後え茶谷さんの方
からえコメントをもらってえチ先生のえ 反応のいただきましてその後え皆さんから
質問しけ応答を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え 質問ななどはですねえ途中で右のえ
チャットボックスなのにえいつでも 書き込んでいただいて結構ですはいえと
いうことでえジョ先生よろしくお願いし ますはいご紹介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皆
さんこんばんはこんにちはおはようござい ますえちょんヨハンと申しますえ私今日本
におりますえ今日はあの招きいただきまし て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えこちらの
スライドに従ってまずはこの2022年に 出ました歴史の中の朝鮮席という本をま
書いた問題意識とまこの本の概要あとはえ 残された課題についてお話を30分ほどで
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で自己紹介ですが 今していただきましたのでこちらは省略を
したいと思い ますでその学問的な問題のその前にですね
そのこの本を書くに至ったまもう少し実存 的な背景というかそういうことについても
先に触れ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私自身は 日本で生まれた在日朝鮮人の3世なんです
がえまこの本で取り上げている朝鮮席の えなんですねそれであのまその朝鮮席っと
いうのは何を意味するのかということ自体 がこの本のテーマなんですけどもえその
場合韓国のパスポートが取れないのでえ 韓国に入国する際にはまその時ごとに許可
をえ得て入るということがあったんです けどもそのこれは南北関係に非常に大きく
左右されますえ許可が出るかどうかって いうのはだ南北関係がえっと非常に緊張
するとえ許可が出づらいということで 2008年2009年にはま許可が私の
場合出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ありましたで そのこれは一般的にそのビザが出なかった
ということとはちょっと違っ て一般的な外国人つま朝鮮席というのは
韓国政府にとって外国人ではないので そのどのようにこのえ人の入国を扱うのか
つまりこれは帰国の権利っていう問題と ちょっと関わってくるところなんですね それであの私自身はまあのビザの場合は
なかなかこれ裁判でえ訴えるって難しいん ですけども見にじた書類であるということ
でえ裁判をしてま入国させろというえ訴訟 しましたでその過程でま自分の挑戦席であ
るっていうことについてま色々考えること もありあとまあ1番多く質問されるのは
韓国の人にですね特にまその韓国国籍すれ ばいいじゃないかということをよく言われ
ましたで自分としてはまあそうではないと いう気持ちえそうではなくて入国したいと
いう気持ちがあったんですがそれがま モヤモヤしてたところがあって言語化し たいという気持ちからままさにこの本の
タイトルである歴史の中で人々はなぜ朝鮮 席にとまってきたんだろうかということに
ついて考えてみようという風にま思った わけですまあの今から振り返ってちょっと
こういう風に綺麗に整理をしていますがま 結果的にえまここに至るまでは色々と
ジグザグに え考えがあの変わっていったという過程で
もありましたこのこの辺りの経緯はこの本 の後書きで少し書きまし
たそれでこの朝鮮席っていうのは一体何な のかっていうことについて例えば今日本の
法務省は法務省のホームページに次のよう に説明しているんですね在留外国人統計に
おける朝鮮席は国石を示すものとして用い てい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とこういう風に
説明してますまつまりえ毎年ですねあの 法務省はえ在留外国人統計っていうのを
出すわけですでそれを発表する際に国籍別 統計っていうのを出してでアメリカである
とかまスペインであるとかイタリアである とか中国であるとかこういう国名に従って
こう整理するんですけど在日ま在日 とか朝鮮半島出身者の場合は韓国と朝鮮
っていうまラベルがあるわけですねでこの 韓国と朝鮮に分かれてるのでま朝鮮民主義
人民共和国の国籍の人かとま圧倒的多数の 日本の人は思ってるんですけども実際には
法務省はそう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よと いう風に言ってるんですでこれは一体何な
のかというあるいはこういう国の名前では ない国石っていうものがま今日に至るまで
なぜの残り続けたんだろうかということを ま考えてみた本でありますまそういう意味
でこの朝鮮席という存在はま歴史の産物で あってこの国籍欄に朝鮮と書かれている
この文字について人々はあその時々に様々 な意味を与えてきたんですねまそういう
意味では固定的な1つの揺らぎのない存在
としての朝鮮席の歴史ではなくて歴史の中 の朝鮮席という見方でこれを捉えてみる
必要があるかなと思ったわけ ですで一方先ほどのような法務省の解釈と
は違でこちらの本の表紙にこの朝鮮神法と
いう朝鮮総連というえ大日本総連合 会っていうあの朝鮮民主人民共和国を指示
する在日朝鮮人の団体の機関誌なんです けどこちらの新聞その妨害の新聞記事をま
許可を得て表紙に使わせてもらったんです ねでこれはさっきの法務省的な朝鮮席艦と
真光から対立する認識だったんですこれは 70年の妨害なんですけど朝鮮国籍を
取り戻したってこと喜んでいるっていう 新聞記事なんですでこの時に朝鮮国籍を
取り戻したっていうのは朝鮮民主義人民 共和国が在日朝鮮人の朝鮮民主義人民共和
国国籍を認めてくれたっていう意味では ないんですよそうではなくて市町村の役場
市町村役場に行って外国人登録という手帳 に書いてある韓国っていう字を朝鮮に
変えることが認められたっていう意味なん ですで日本の法務省はその朝鮮っていうの
は国の名前じゃないですよと言うんです けど少なくとも70年の段階では朝鮮総連
やまそれを支持する人たちは韓国から朝鮮 に変ることはそのま北朝鮮の国籍になる
ことなんだとこういう風にしかもかなり ポジティブに捉えてる人たちがいたわけ ですねでこれはますごい極端な例今2つ
上げましたけどこれ1つとってもこの 外国人登録の国籍の欄に書いてある挑戦
っていう意味を巡ってはこ会釈の戦いが あったんですねでそれをしかもこの2つ
だけではない戦いがあるそれをこう歴史の 中で見ていくということがこの本のテーマ
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でその際のキー ワードとしてえこの本の冒頭で設定したの
はまこうこのテーマに馴染んでない方は ちょうど今私がこれまで話してきたこと
自体もちょっとかなりあの理解をするのに 時間がかかるんじゃないかなと思うんです
ねそれでその混乱の背景には外国人登録と
いう日本の法律上の書類とその人が本国の
法律でどういう国籍と続けられているかが ずれちゃうのでここが感動されるとこう
この在日朝鮮の国籍の話っていうのは非常 に分かりづらいなのでこの本の中ではその
朝鮮人の本国法上の国籍まあるいはなんて 言うのかなこう
えあらゆる場面で通用する国籍っていうの を真実の国籍と呼びまし
たで一方で日本の書類である外国人登録の
国籍欄になんて書いてあるかっていうこと を該当上の国籍と呼びました
先ほどの朝鮮総連の妨害っていうのは該当 上の国籍を朝鮮に変えることは日本に真実
の国籍朝鮮民主人民共和国を認めさせる ことだって考えたわけですねだけども日本
の法務省は該当上の国籍朝鮮は真実の国籍 と何の関係もないですよって言い続けてき
たわけですここの真実の国籍と該当上の 国籍の一致不一致を巡る歴史っていうのが
実はずっとある わけですそれでこの本の対象からちょっと 離れる今日では該当上の国籍朝鮮を朝鮮
民主義人民共和国とリンクさせないような 見方も出てきてるんですねまそういう意味
でもこの2つの概念をしっかり分けてお くっていうのがすごく重要だと思いました
でえっとま詳しくこの課題次に2以下書き ましたがもう1つ重視した問いは朝鮮席
っていう該当上の国籍は当初はあくまで 臨時のものだったっていうことを強調し
たかったんですねあの結果的に今まで残っ てますけど日本政府が1番最初にこういう
国籍イランの表記を作った時はまあの いずれちゃんとした国籍を書くことになる
とつまりいずれ真実の国籍と該当上の国籍 が一致するっていうことを念頭において
とりあえず書いておいてくださいとした 臨時のものだったわけですとするとなんで
今まで残ったんだろうという問題を問う 必要が出てくるとまこれらについてはあの
在日朝鮮人の歴史研究において法的地位の 研究って実は非常に柱になる分野なんです
ねこうみんな大体1回法的地のことあの 勉強しないと在日調整の歴史って分から
ないのでえすごく重要な分野なんですけど もこの問題に関しては意外とですねあの
本格的な検討ってのなされこなかったと いう側面がありますのでま挑戦してみまし
たでえっと目次この本の目次はま今見て いただいている通りでえま最初植民地時代
から始めますが基本的にはえ日本の配線後 朝鮮の解放後のえ時期が対象ですそれで
本論は1971年までを扱ってい
ますでこの間はええ連合軍による占領から
え52年の4月28日の平和条約発行を 持ってまあ一応占領が終わりえそして日本
と韓国そして日本と朝鮮民主議人民共和国 の新しい関係が始まっていくそういう時期
ですでその際にま韓国とだけは65年に 国交が正常化するとこういう流れの中でえ
各省はこれらの時期を扱っていますで特に この中心に位置している非常に大きい
出来事というのがま朝鮮戦争ということに なり ますでま今日はあの研究者の方々が聞いて
おられるのでかなりえこうした部分につい ても関心が終わりなんじゃないかなと思っ たんですがいかにしたら朝鮮席の歴史ま
歴史の中の朝鮮席は明らかにできるのかと いうこの方法の部分ここに私は結構
こだわりがありますそれでえこのの国籍 問題っていうのは言うまでもなく外交問題
外交的に議論される問題の1つでしたなの で主としてこの在日の国籍を巡る
研究はGHQと日本の交渉や日本と韓国 政府の交渉の研究が中心に位置付けられて
きましたこれは先ほどの用語で言うと新実 の国籍を巡る交渉の研究なんですしかし
これだけでは当の国籍を巡る法の歴史が 分からないんですねなぜかというと該当上
の国籍っていうのは日本の外国人登録法上 の概念だからなんですで実はこの問題を
解き明かすには外交文助だけでは分から ない何を見なきゃいけないかという
と外国人登録のえ行政文助を見なきゃいけ ない具体的に言うと法務省とか日本の道府
県や市町村が役場でえ外国人登録事務を
するんですねここがポイントで在日朝鮮人 っていうのは戦前から引き続き日本に
暮らしてる人たちが多いわけですそうする と在留資格や国籍の付与の前提として
例えば港から入ってきてその港で何らかの 在留資格が付与されてそこで外国人登録が
さ準備が整うみたいな一般的な外国人の パターンと違うんですね植民地時代に既に
日本に入ってきていてそのまま暮らして いる人が多いその人たちがある日突然 外国人になるわけですでその手続きはその
人たちが暮らしている市町村のま役場で やるんですねでその時に私は国籍乱にこ
書きたいんだ韓国って書きたいんだとか 朝鮮で書きたいんだとかいろんな人出て くるわけですでそういう人に対してどう
いう風に対応すればいいのかっていうこと を各市町村が都道府県や法務省に質問する
わけですねでそれに対して法務省や都道府 県知事は毎回答えるなぜかというと外国人
登録の事務っていうのはその機関委任事務 と言って本来は国の事務なんですでも国
だけではえ手が足りないので自治体に委任 している事務なんですねつまり自治体は
自分で判断し え外国人登録の事務をしてはいけないこと になってるわけですだから何か分からない
ことがあったら国に聞かなきゃいけないで この記録が各地域の公文書館にまたくさん
残ってるわけですで私はこの研究のま実は 前の今ご紹介いただいたこの朝鮮独立の
アロを書く時に初めて京都の行政門上を 一応その総合的に検討してあのこの方法は
非常に有効だなと思ったんですね地方の公 文書を見るっていうのはあの従来の研究に
さらにえ新しいその貢献をできるんじゃ ないかなとでこの前の本では1950年
までしかやってないんですけど今回は71 年までまた行政文助もえ京都だけではなく
て可能な限りえ全国のものを見てえそして ま全体上を構成するということをやって
いきまし たま今のお話をこうずれ示すとこのように
なります例えば占領機だと日本政府を外 からGHQや地方の軍政部がこう指導する
という関係にあっ てでえここでえ国はさ都道府県や市町村に
対して指揮監督するとでここで決定されて いく運用方針をま外国人朝鮮人や境の団体
に対して交渉をするとで特に1番最初に 外国人登録をする時はこの外国人団体が
協力してくれないと実際にはできないん ですねなのでえ最初の段階では交渉して
朝鮮人や架橋の団体はこの外国人登録を 巡る交渉を最大限利用しようとするわけ
です他の問題をこの場で要求したりとか ですねなのでこのえ団体にとっては非常に
重要な場ということになり ますでこちらはまえっとま基本的なことな
のでちょっと省略してもいいんですけども 在日朝鮮人の人口の推移で解放前に千時期
には200万人近くに達した人たちが解放 後には60万ぐらいになっていきますで
この人たちが本省の対象時期に暮らしてい た在日朝鮮人
でこの図をご覧になっていただくと分かる ように1980年代まではこの朝鮮半島
出身者は日本の外国人の8割以上占めてい ましたえあとは過去中国大陸や台湾出身者
ですなのでえ日本の外国人政策というのは や過去を念頭において作られたと
言ってもいいと思いますま今はあの割合が ずっと減ってますけど
ねそれで在日朝鮮人の中には該当上の国籍
に韓国と書いてる人と朝鮮と書いてる人が いますで1番最初はみんな朝鮮と書いてい
ましたでこの赤いバーが増えていくこと から分かるようにどんどん韓国へと変える
人が増えていくわけですつまり韓国籍と 朝鮮席の数が変わっているのは韓国から人
がたくさん来て増えているんじゃなくて 戦前から日本に暮らしてる人たちが外国人
登録上の国籍を韓国に書き換えてるんです ねそのその人たちが増えているから韓国石
が増えているというのがま少なくとも70 年代まで言えること
ですじゃあこの朝鮮のままの人と韓国に 変えた人っていうこの22つのグループを
分けたのは一体何だったんだろうかとで 例えばこう日本の人たちは朝鮮って書い
てる人は北部朝鮮出身の人なのかもしれ ないなと考えています北朝鮮地域出身の人
でも現実にはこちらに書いてるように植民 地時代に日本へと渡ってきた朝鮮人の
96%がえ38度線イナ出身者ですつまり
北部朝鮮出身者というのは全体の5%もい ないことになりますだから生まれが北朝鮮
だから朝鮮席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いう ことです
ねはいじゃあなぜというところががこの本 の問いになってきますでスライドでは確証
ごとにえ詳しく概要を説明したんですがえ 時間的にこれは全部やっていくとえっと
足りないのでまポイントだけえ説明して いきたいと思いますでまず第1章ではその
そもそも朝鮮席っていう言葉がどういう風 に使われてきたのかていうことを植民地
から見ていきましたでその最初に紹介した のがこのマッカーサーに当てて小林哲と
いう人が送った手紙でこの人は1947年
に外国人登録例ができた直後にマッカさん にお願いの手紙を送るんですねそれは自分
は朝鮮人なんだけど日本人の女性と結婚し て3人の娘がいるので日本に残留したいえ
可能ならばきかしたいんだとこういう風に お願いするわけですでその時に朝鮮席って
言葉が出てくるんですその時の朝鮮席と いうのは朝鮮国籍じゃなくて朝鮮戸籍なん
ですね戸籍えでこの植民地時代っていうの は統計上も使われる用語ですけど朝鮮戸籍
という意味で朝鮮席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 いますこれがま朝鮮の国籍っていう言葉と
こスライドしていきますしその対象となる 人のカテゴリーまその範囲も大体同じ朝鮮
戸籍に乗っている人がえ外国人登録上の 該当上の国籍挑戦になっていくっていうま
そういうプロセスを追いかけまし たでこの朝鮮戸籍というのは植民地時代に
こ人をこう意民族支配をする際に人間の グループをまどこに本石地があるのかで
日本は分けていったわけですで朝鮮に本石 地がある人は朝鮮人であるということに
なって例えば戦末期までは兵役法の適を 対象外にするとかですね朝鮮人の男性の
場合こういう形で分けていくことになり ましたでこのように民族統治のツールだっ
たので原則として本石地を移すことはでき ませんでしたただ例外がありましてそれは
本因と陽子縁組です婚姻した場合と陽子 縁組の場合は共通法という法律によって
一方の家から他方の家に入るというま表現 が使われているんですけどもそのま本石と
家という概念に基づいてえ人が移動するっ ていうことになるわけですこのため先ほど
の小林哲市のパートナーの場合は朝鮮に 本石を持つ家小林という人の家にその女性
が入ることになったということになった わけですで娘がいるとだけどその自分は
日本に残りたいので非をさせてくれという こういうお話が手紙で書かれていたわけ
です ねでおそらく彼がこうその日本に残れなく
なるかもしれないなと思ったのがまこの本 のえ非常に柱となるテーマ法律である
外国人登録例というものが制定されたから だったわけですこの登録例では第11条で
台湾人のうち内務大臣の定めるもの及び は当分の間これを外国人と見出す
この直れの適用については当分の間これを 外国人とみなすとしましたでなんでこう
いう回りくどい表現が使われているのかと いうことはちょっと後にお話をし
ますでえこの際1番最後に外国人登録申請
書の裏面に国籍出身治覧には台湾人及び は台湾または朝鮮と記入することと
いう指示が書かれましたこうして台湾出身 者台湾朝鮮半島出身者は朝鮮ととりあえず
書くことになったわけ です例えばこれは1949年に京都市が
発行した外国人登録証明書ですが国籍朝鮮 かこ出身地と書いていますそれで実はあの
この時の外人登録例っていうのは非常に 暫定的なもので朝鮮大湾以外でも国の名前
以外の地名がかなり書かれてるんですねで 例えばインドシナ半島のアナとかこういう
えっと名前も書かれていたりま色々あり ますでもこれが49年の
で出身地っていう欄がなくなって大体 みんな国の名前になるんです朝鮮と台湾
以外まそういう流れになりますでその 例えば申請書なんかを見てもこの人はその
自分の国籍団に朝鮮全裸難道最終党って 書いててあの最終党っていうのは今韓国
ですけどまこの時は朝鮮として書いてる つまり全朝鮮半島というえ地域メ
でこの言葉をほとんどの人が当時は使って い ますこうして47年にま暫定的なえ国籍
表記として朝鮮席が登場するわけ ですしかし朝鮮半島には48年の夏に大韓
民国と朝鮮民主義人民共和国という政府が 充実されますこの時に韓国政府は中日代表
部を置きましたので朝鮮と書くのは おかしいと国とかせ欠かせてくれという風
にお願いしました日本政府はえ朝鮮とか
韓国と書くことに当初抵抗しました嫌だと 考えたわけですなぜかと言うとこれさっき
の該当連の周りくってくどい表現の理由な んですけど日本政府は平和条約発行まで
朝鮮人の真実の国籍は日本だと考えてたん ですねだから韓国政府に口出しされたく
なかったわけですその時までなので 国籍乱はあくまで出身地としての挑戦だと
まつまりここでの挑戦っていうのはいわば 植民地主義の論理の元で付与されてるん
ですねでこれに対して独立したんだからと してことで韓国が韓国と書かせてくれと
いうわけですが最終的にはその国務省の 調定があってえ国籍真実の国籍の判断は
公和条約後にするけど該当上の国籍では 自由に韓国って書いていいよともなった
わけですなのでこの時は国籍欄に韓国と 書くのも朝鮮と書くのも実は自由だったん
ですだから1回韓国と書いた人が朝鮮と 直すのも自分の申請だけできたんですね逆
もできるこどっちにもなったわけ ですこうして韓国籍が50年に登場し
ますこうした中で日本と韓国政府は 1952年の平和条約発行に向けて
のの国籍問題を解決しようとしますで基本 的にはまこれいろんな議論が過程ではあり
ますが全部大官民国の国籍にするっていう 方向で合意していきますだから真実の国籍
は韓国該当上の国籍も韓国というプランだ わけですしかし実際にはここで見ても
分かるように52年以降も朝鮮席は残り 続けましたその背景には朝鮮戦争家におけ
る大官民国を支持しない人たちこれは朝鮮 民主義人民共和国を積極的に支持する人と
ま消極的にま韓国を指示するわけではない 人とという人たちがその韓国という風に
一律国籍を付与されるのは嫌だということ でま抵抗したわけですねでこの時にま強制
相関反対運動とこれ結びついてま非常に ですね大きい運動になりましたえ特に
外国人登録に対しての反対運動とこれが 結びついていくことになったわけ
ですでしかもですねあの日本と韓国の 話合いは請求権問題で日本政府がいわゆる
逆請求権というものを提案する中で合意に 至りませんでしたこのためえ国籍問題に
ついては一定程度合意に向かっていたわけ ですが日韓協定を締結できませんでした
他方で日本政府は日本国籍を喪失させて 韓国国籍を回復するというプランを持って
たので日本国籍の喪失は予定通りさせるん ですねだけど韓国国籍を回復するっていう
根拠になる条文は結べないのでただ日本 国籍がなくなるっていうだけの事態が生じ
まし たしかも当事者たちの中ではみんな韓国石 になるってことをま全員が望んでるわけ
じゃないという状況がありましたこうして 何も決定できない状況が52年に訪れた
わけ です こうした中で韓国を支持しないグループは
国籍選択の自由っていうスローガンを掲げ てえとにかくえ全部韓国になるのは
おかしいということで法務省ま後の法務省 に対して強く抗議をしましたで実はこの時
のは過去も同じ状況にありました中華民国 か中華人民共和国かっていうことを選び
たくないとあるいはどちらかあ一方を 押し付けられたくないこのため日本政府と
してはま弁法っていう言葉を使いますが とりあえず外国人登録を乗り切るために
従来の国籍記載のまま登録しても良いとし ましたこうして該当上の国籍朝鮮は残った
わけです一方台湾はこの時なくなりました えこの時に最初実は中華民国っていう国籍
団にする予定だったんですが人民共和国 指示の人たちの抗議を恐れて中国という
表記で落ち着くんですねこれはま非常に 便利な表記だったわけです日本からすれば だけど朝鮮にはそれがないえ朝鮮と韓国
ってもう別れちゃってますのでそうその中 で結局朝鮮と韓国が残り続けるということ
になりましたしかし日本政府としては52 年6月段階での入国管理長長官通達にある
んですけども全在日はみんな韓国 国籍だという前提を崩しませんなぜかと
言うとこれは相関問題と関わっていたから です国籍の確定は強制の送り先の問題と
関わってきますなので入間当局は誰この人 の真実の国籍は何かっていうことに非常に
こだわるんですねなので53年までは該当 上の国籍は2つあるけど日本政府は真実の
国籍は1個だとこ考えたかったわけ ですこうして朝鮮席が継続するが日本政府
としてはみんな韓国国籍と見なしたいと いうそういう状況がえれることになった
わけですで今あの予定の30分になって しまったんですがま基本的に大事なのは
この52年段階まではちょっとあの大事な ポイントなので少し丁寧にお話ししました
問題はこのように日本政府は正式な国語は 韓国と結べないんだけども潜在的には色々
な要因まアメリカと韓国と日本との東 アジア反響体制化での協力という側面とえ
在日朝鮮人をどこに相関するかってことの 確定の中で韓国という風にしたいと思って
いましたしかしこれがあの成り立たなく なって しまう在日朝鮮時の中でもじゃあ韓国国籍
を選ばない人は何国籍になるのかという ことでそれこそ百貨正法というかですね
日本国籍なんだていう人とか共和国国籍な んだという人とかあるいは朝鮮国の国籍な
んだという人とかいろんな議論が出てそう いう人たちがばこう韓国籍から朝鮮に戻し
たりこの韓国国籍ではないっていうことの あの主張をすごい色々な形でしようとする
んですねでなんでその韓国国籍じゃないと 言おうとするかというとやはりそれは相関
問題がすごく大きいわけなん です国籍を確定するっていうのはその相関
先が決まるっていうことになってしまうの でそれを嫌がってそれを避けようとする つまり在留の権利を確保するための1つの
手段としての面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え 一方で共和国政府を積極的に指示する在日
たちは一旦韓国籍に変えた人をもう 1回朝鮮席に戻そうとするんですねそれに
よって朝鮮総連の嫌箱を指示者がを拡大 する自分たちの国民を増やすんだてまこう
いうことが真実の国籍ではなくて該当上の 国籍をどっちにするかで争われるように
なるだから日本政府は韓国該当上の国籍を 韓国から朝鮮に変えてはいけないという
こういう指示へと運用を変えちゃうわけ ですねさっきはどっちでも変えられたん ですけどこれは50年代に変わっていき
ますそうすると朝鮮総連の側はまあの手 この手でその韓国から朝鮮変えることを
認めさせようとするなので60年代って いうのは基本的にこの韓国から朝鮮に変え
させるっていうことを巡る戦いっていうの が生じるようになってくるわけ
です それでこの裁判で争われる朝鮮席というの は今お話ししたのは基本的にはまその朝鮮
を支持する総連側と韓国を指示する民団側 のこう争いっていう側面なんですが実は
その裁判とかではもっともっと色々な国籍 論っていうのが出てきていて例えば先ほど
の小林哲さんのパートナーになった日本人 女性っていうのは朝鮮席になるわけですね
あの人はでそういう人たちがえ公和条約 発行後に自分はなんで日本国籍をえ喪失し
なきゃいけないんだってことを訴えて裁判 を起こしますそういう中でその人の娘が
ですね自分のお母さんは日本人なんだけど 朝鮮席だけど朝鮮席っていうのは実は無
国籍なんだとで無国籍者の子供っていうの は日本の国籍法上は日本国籍なんだから
自分は日本国籍なんだとまこういう裁判を して裁判所は朝鮮席者であるその女性が
日本国籍あ無国籍なのかどうかを判断し なきゃいけなくなるその時に無国籍じゃな いっていうわけですねじゃ何国籍かと言う
と朝鮮国籍だという言い方をするでそれは 共和国籍ではなくて平和条約で独立した
朝鮮っていうまあるし核の国があるとだ から国がないんじゃなくてその朝鮮国の
国籍なんだというま言い方をしていくこと になるとまこのように実は65年に韓国と
の間で国交正常化するまでは非常にですね こう色々な韓国ま国籍論っていうのは出て
くるんですねでこの辺りが先行研究が1番 よく分かってな明らかにできなかった
ところで私としてもこの50年代のところ に1番力を注ぎましたで1965年には
これが落ち着いてえとりあえずみんなを 韓国国籍にするっていうプランはもう
やめるわけです日本も韓国も韓国国籍にし たい人は韓国にするという風になりそうで
はない側は朝鮮で残るだけどその朝鮮は あくまで記号ですよという形で日韓国交
正常化の枠組に従ってえ韓国は国籍朝鮮は 国籍じゃないという風に判断するで朝鮮
総連はこれに非常にこ抗議をして朝鮮は 国籍であると強く言うとでえこの朝鮮を
国籍として認めろという風に言うわけです が当然日本政府自民党政権は認めないだ
けどと当時は確信自治体が登場していて 実際に外国人登録の手続きをやる例えば市
の市長さんが社会等の市長だったりする わけですねその人が法務省を無視して朝鮮
にこ変えてあげようとするで実際に変える そうすると法務省は都道府県知事に訂正を
命じるでも逆らって言うこと聞かないそう すると法務省対市長のま知事と市長の間の
裁判の直前まで行くまこういう50年代に はなかった構図が65年以降に現れてき
ますでこうした中で結局裁判には行かずま こういう構図ですよね1番最初に見て
いただいた図ではこことここはもう完全に 上下関係なんですが60年代にはここが
革新系の市長が逆うっていう講座が出て くるとこうした中で法務省と革新系の市長
はひとまず裁判は避けて韓国のパスポート を取ってないならば朝鮮に戻してもいい
ですよという風に譲歩するわけですでだ けど別にその挑戦っていうのは国籍じゃ
ないですよだけど戻してもいいよとこう いう情報をしましたでそれによってえ朝鮮
に書き換えることが可能になるわけです それを受けて朝鮮総連は我々は朝鮮国籍を
取り戻したんだというま妨害を出すわけ ですねまこのようにして該当上を巡る該当
場の跡を巡る争いっていうのはひとまず 終焉を迎えるまだけどこれはま未解決の
問題を残したまま一種情報し合ってえ 終わるという状況になっていったわけです
これが1971年ことでし たまこのように結局ですねその該当上の
国籍をめくる変遷っていうものはこう60 年代まで続くんですが肝心の真実の国籍を
巡ってはま日長国交正常化っていうのは 未だになされていませんのでそれを前提に
結局国籍欄に挑戦って書いてある人が本当 は何の国籍なのかは日本政府的には分かり
ませんっていう状態が今でも続いています まこうして国籍未確認のえものとしての
朝鮮責者という存在がま未だに残り続ける ようになるだから逆に朝鮮席の当事者の側
が私たちは何人なんだとか私の アイデンティティはこうだとかこいつも 説明しなきゃいけない状態になるとまこう
いうことですねでその説明する内容って いうのは実は在日と朝鮮民主義人民
共和国の間の距離やまそれへの期待指示 失望そういったものとの関係で実は大きく
変わっていくだから今はあの70年の妨害
のようにあれは朝鮮民主人民共の国籍を 表すものだと自信を持って言うっていう人
が全員かっていうと全然そうではないわ わけですねまもちろんいるんですけども そういう人もでもそうじゃないえ無国籍な
んだという人もいたりえという状況へと 進んでいくことになったわけですまこうし
てまま実は結構こう私はこのディティール の部分まここの本の中にいろんな人が登場
するんですけどそういうディティールの 部分を本当は見ていただいたり読んで いただいたりしてもらうといいなと思うん
ですがまちょっとこう大枠を説明する時に はどうしても時間を取ってしまうので今日 は省略しまし
たでの中の挑戦席を考える際にここでまず やはり繰り返しをさえておかなきゃいけ
ないのは日本政府にとっての国籍問題って いうのは常に相関問題と絡んでいるという
ことなんですねつまり権利の束としての 国籍ではなくて一種のこう足かせというか
こう送り先にこう確実に受け取らせるそう いう記号としての側面を持っていてだから
こそ韓国国籍に対しての拒否感っていう ものが韓国の体制への運云々というだけで
はなくて出てきたとえはそういう 意味では自らの望む祖国の一員太郎とする
希望と相関の脅威からの防衛ま自分がこう 積極的にどこどこの日本国民じゃないん
だっていうことはまあるし相関の脅威に さらされるわけですねそういう側面があっ
たとでこうした中へ当初は植民地主義の 一種の記であった朝鮮という表示がある種
この共和国公民の証であったりあるいは 南北両方の分断を指示しないま未来の朝鮮
国のえ証しであったりこういうこう オルタナティブを示すものへと意味がこう 変わっていったわけですねそういう意味で
私はま最後の章のタイトルをまこれはあの 5っていう小説が朝鮮席を足かせとこう
表現してたことをまある種反転させる意味 でま怒りというかこう波にさらわれてどこ
か自分の望まないところへ流されないため に下ろしておく重りとしての怒りとしての
意味を持つようになったんじゃないかなと こういう風に考えましたでまただあのこれ
は怒りですからいずれはどっかに出行し なきゃいけないわけなんですけどもえ 先ほど言ったようにやはり南北が分裂して
いてまた日長の国交が存在しない中では 未だにこの問題っていうのは将来にえまだ
残されているという側面があります最後の スライドでこれを少し書きましたでここで
はま国籍や予見また日長国交生浄化になっ たらじゃあ外国人登録所の国籍どうなるの
かとかこういう問題が残されているわけ ですがまこれはこれでちょっと大きい問題 なのでまたもしご質問があればお答えし
たいと思いますえというわけでちょっと 時間をオーバしてしまって申し訳ません 以上私の方の
え解説とさせていただきますご清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 たはい先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え今回
ですねま本の内容からではあるんです けれどもま大きい部分ですね国籍我々がえ
朝鮮席韓国石と言った時になんというか あまり意識していなかった次元のあの違い
というのがま実はあったのだというのを ですねま最初に大枠で話していただいてま その変遷変わり移り変わりというのをえ
今回話にまとめていただいたのでま本を 今後読んでいくにあたってもま非常に参考
になると思いますしまたチン先生が おっしゃっていただいたようにまこの本と いうのはまそういった大枠の話もしつつも
えより個別具体的なエピソードを深掘りし てるというかまディテールも含めて書かれ ている部分であると思いますのでまそう
いった部分は今回あまりなかったとあの 話す時間はえ取れなかったと思うんです けどもまそれは実際本の本書の方ですね手
に取っていただいてえ皆さんもそういった エピソードとかもえ読んでいただければと
思いますはいえということでえっと次にえ 茶谷さや先生からえ質問というかコメント
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え簡単に自己紹 簡単に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とえ谷彩花
先生現在ま先ほどありましたが シンガポール国立大学歴史学部の準教示を 務められておりますえこれまでにえ帝国
日本と植民地の関係などについてですねえ 全体主義ファシズムやイデオロギー青年 若者といったものに注目されてえ注目して
研究されてきましたえまご存知のように 2018年にえコーナUnityPRから
NAEmpireideology andMATioninJapanand
coloniesという本が出されており ましてまいろんなところでえまた評価を 受けておりますで近年はですねま今回のお
話ジ先生のお話ともかなりオーバーラップ する重なる部分の研究されていましてえ
戦後日本の在日朝鮮人コミュニティについ てま国家やジェンダー記憶まそういった
様々な観点からえ研究されておりましてえ 最近でもあのえジャーナルof
studiesJournalof asanstudiesとかえcital aganstudiesとかにもえロムが 経れておりますはいということで先生の方
からコメント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swit
engishthan profasintrkindly
aboutmebeenWorking onin
Japaneseoftenask questionsaboutthe LEGALStatusOFZ koreansorpeopleanda
lotmorecomplicated thananyonewould IMAGINEandProfessor johBOOKgivesagreat
detailedaccountof therapidlychanging politics interpretationsand
theLEGALlanguage surroundingnotjust鮮 butalso韓国aswellI
hopethose WhoAH
and
andandMyselfandcple ofothersMaybe althoughan increasingnumberof
studentsphdstudents areinterestedmostof thestudieshavebeen donedoneby
anthropologist sociologistand politicalscienandin theirWorkandmywork
sometimesaswell
ofonjapanes governstatementsay
is SYBofentirekorePEN nationality韓国isa
nationalityprofor BOOKDEEP
HIS
asandalsoTheMWhen opposinginofparties
Delcreatedan ambiguousagreement SothisisaveryRich
HistorywithLOTSof surprisesandironies aHistorythat ProducedCRU
consequences
people
thereWsoparties involvediningmean ListupMA
onesjapanes GovernmentoffalWho forirelationwith
koreans andoperwith
neanwhichSawThe issueissueofkoreans inJapanquicklyin
termsofcommunist disturbances andtheJapaneseLOCAL officestheJapanese
policetheROKthe RepublicofKoreain SOUTHKoreawhichwas
consideredtheso legitimateKorean Governmentbythe JapaneseandAmerican Governmentbutalsoit
disagreedwiththe JapaneseGovernment OnThelegalityOf colonialrulesso
withjapanes govermentcasesand
dprkthreatenby JAPAN
normal
andjapanesProgress Whowasanationality
and韓国wasasymbol insteadandand
finally neutralkoreansas wellasthoseWhowish to
retaintheJapanese nationality there
manysandGROUPinthis BsowithineachGroup ofpeopleThey
contradict contradictedwith themselvesandalso havesmallerDescent groupsInsidesoand
alsoTheyEvolvedOver TimeAgainThisisa veryRich
HistoryIveryexcited thatMorescholarsAnd studentsareNow WorkingonZHistoryI
personallybelieve thatthisfieldwill PRODUCEsomething equivalentof CriticalRACETheory
AboutJapanbecause theLEGALissuesareat THEEofsuchinvestigI
stronglyencourage manypeopletolookat bothofthemonographs ofProfessorjon
workbothofhisWORKS boththe朝鮮独立のIDand
thisbookSHOWvery carefulreadingsof documentsandItisnot
thatthisisthefirst BOOKthatfocusedon朝鮮 席actuallyTherewere quiteafewBOOKSonthe
issueandquiteafew articlesontheissue butProfessorwork standsoutInThe
readingsOf stiesAndbasesHis
argumentsonDEEPDEEP empiricismsoONE exampleyouheardinin
thepresentationis howheidentifiedwhat theExpression外国人と
見なすmeantdifferently fromJust外国人soifyou
curiousofHowhe differentiatedthese TwoWordsgotoPage6of
the bookSoIhavetowarn youherethatreading
HISBOOKSwillrequire Fullattentionandnot goingtobegoingtobea leisurelyonebutI
guaranteeItwillbea veryrewarding experienceIliketo highlightsomeofthe
strikingironiesand askafewquestions ONEironythatwas
interestingtomeis thattheSOUTHKorean Governmentandmindan
insistedthatThey were foreignersbecause Theyarguedthat koreansneverbecame
Japanesebecauseof theJapaneseanation ofKoreawasillegalso
thewordingduringthe negotiationinthe normalizationtreaty wasleftveryvague
aboutkoreanslossof theJapanese nationality
Another IR Allneutralkoreans
notmeantosupport individualFREE choiceof nationalitybutorder
toFightofONE National韓国mostly Theyarguedfor
FreedomOf
nationality
asLittle Lsomeofthe correctionsandPBS
Youmakeaboutblames oncertain authoritarian movesSorryfor
thepuzzling wordinginthebook profJohnmakesa
Littleofcorreand PUSHandthere
EX ALwasimplementedon thedaybeforethenew
constitutioncame effect forscholarsthis
provesthatthe JapaneseGovernment toexcludekoreans fromthew
of offaloftheMinistry tryingtoSpeedUp
Koreanregistration torespondtothe requestoftheGHQthe occupationregimeI
FindAnotherpushback aboutsigmonREWhen thebookdiscussesTHE HISTORYofHowthe
trusteeshipIdeaof theKoreanPeninsula endedandSOUTHKorea conductedthefirst
electionin 1948thebookOnly explainsTheUN supportfortheIdeaof
theelectionbutbut THESTANDARD narrativeamong scholarsIthinkis
thatItwasREsneaky maneuveringthat pushedfortheforthe
electiononSouthern Halfsocurious whetherProfessoris
consciouslypushing BACKONsomeofthe assumptionsabout evilnessOfThese regimesbutatthesame
TimeIseethebook pointingOUTother examplesinregeseven
Sneakandbrutthan I
Orderhavejapanes schore schoClearlyState
thatthiswasbecause TheyhadtheJapanese nationalitywhichI thoughtwould
sayTheysaythatin ordertoavoidmaking koreanslooklike
subjectsofthenew consAllare
MAifProfessorchn coulddiscussabout whetheryouare
consciously correctingor challengingthe previousstudies interpretationsof
japaneseandSOUTH Koreanoppressionof zich koreansAnother
questionistheIdeaof bleiknowhowto translatethisWord
methodsforthetime beingormethodsof conveniencein1952as
youheardINTHE presentationTHE Japanese GovernmentKorean Statusbedetermined
byoneandonly legitimateKorean Governmentwhichwas theSOUTHKorean
Governmentbut becauseofthereality ofmany鮮peopleWho opposedtheIdeathe
Governmentstartedto usetheworddeoand allowed席peopleto remain席holdersSocan
youTalkalittlebit moreaboutWhatkindof historical significancethisuse
ofbmomighthavewas thisaTriumph
AntiKoreanpeopleor theLoftheRLofthe
Japanese Governmentandmy FINALquestionisthe Roleof
municipalities inmanyPagesofthe booktheactorsThat aredecidingand
implementing registrationare municipalitiesthe Sectiononthe MOVEMENTof
progressive municipalfasccan Disclittle
governs thanはいえチ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したえではチ先生えまちょっと時間もし ている部分もあるのでえま答えられる部分
あのま5分前後ぐらいでですねもしお話 いただけましたらま日本語でも英語でも
どちらでも結構ですのでよろしくお願いし ます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ちょっと 日本語で回答させていただきます時間か
ありませんので簡単に えっと今あご質問とあとコメント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非常に丁寧に読んで
くださって本当にあの嬉しく思いますえ 示していただいた論点は1つは日本国憲法
と外国人登録例の関係これはあの教育の 問題もちょっと関わっているので合わせて
お答えしますえさんもそうですし田中浩 さんもそうですし基本的には外国人登録例
をえ日本国憲法から除外するためえに制定 されたという風に解釈されていて大枠では
私もその点については異論はないんです ただその47年5月2日の法制定で日本国
憲法からの排除が決まったかというと実は 当事者の間ではえそのそれに対する抵抗も
あるわけです私はそのそのプロセスを 追いかけてみたかったということなんです ねえ日本日本政府としては1952年の4
月までは日本国籍を有しているという解釈 を一方で取っていて他方で外国人登録例に
関してだけは省外国人と見なすと言って いるとすれば該当例関連の条項以外は日本
国憲法上の権利を共有できるという解釈が 成り立つはずなんですねでこの部分につい
て団体と日本政府は一体どのような 論点でどのような交渉をしていたんだろう
かというプロセスを追いかけてみたかった というのが私のえ狙いでその点でま該当例
に関してえば居住移転の自由を巡る憲法 裁判が行われてえこれに対して合憲判決が
下されるということがまこの本の中で ちょっと説明をしているところですなので
ま私が先行研究に対してえっとなんていう かえ全面的に否定している批判的に捉え
てるというよりはそのある種直れの制定を 持って全てが決まってしまうかのような
呪術っていうのはこう在日朝鮮人の歴史の 著述ではないんじゃないかなと思ったん
ですその団体が当時該当例の制定 から彼ら交渉を始めるのでそこでえどの
ようにえっと変わっていくのかっていう ことを見たかったってことですねで イスンマンの問題についてはちょっとこれ
はあのえっとご指摘のような趣旨ではなく てえなんて言うのかなこう本論の
えここで書きたかった 内容とちょっとなんて言うのかなこう背景
の知識なのであまり詳しく書かなかったと いうことでイスマンの役割についてえま
警視してるっていうことではえないので この点はまあの他の機会があればちゃんと
書きたいと思いますで3点目の弁法です けどもこれについては
そのまあ一種のまやっぱり定戦というか そのつまりどちらかが勝つわけではなく
まさに朝鮮戦争の比喩で勝たれるような 定戦状態っていうものがこの弁法によって
え成し遂げられたとでもちろん民選にとっ てもそれは勝利ではないし日本政府にとっ
ても勝利ではないし誰にとっても勝利では ないという状態が作られたのかなとただえ
誰にとっても敗北でもないっていう状態 ですよねこの弁法っていうので
えという風にま捉えていますまだから50 年代後半以降がま大事なのかなと思います
で最後自治体ですが私もここはすごく 面白い重要なポイントだなと思って50年
代はやっぱ自治体ってやっぱとこう 非常に敵対するしますし日本のマス
メディア新聞報道も自治体の職員がいかに に脅されてるかっていうこう報道を
結するんですよねでだけどもやっぱりここ の60年代か70年代そのすごく大きい
変化があってで注目しましたなので非常に 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ると思いますしもし
その先行研究や既存の歴史のイメージに 対して何か新しいイメージを付け加え
られるとしたらこうした70年代までの 既存の民族団体を中心とした抵抗と80年
代以降の使ナ闘争っていうのはこう新しい 世代の個人を中心とした運動だという風に
こうが強調されるんですが下毛ナの場合も この国籍書き会の場合も自治体の職員や
組み合いが非常に強力的で連帯するわけ ですねでその自治体側その組み合いと共に
自治体側の組み合いや島民と共にこう中央 政府に対してある種意義もしてをする
みたいな動きとしては従来断絶として語ら れる780年代の連続面っていうのも考え
ていけるんじゃないかなと思いますはい 以上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す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あでは 残りのあの時間はえ質疑応答に移りたいと
思いますえっとリアクションボタンなどを 使ってです
ねあ エンデ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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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iscould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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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TheFirstand SECOND iswhetheryouhave
informationMayjust numerical DATAabout
membership correspondingornot correspondingto
thechen 人
登録はいえ先生いかがでしょうかもちろん 日本語でもはいじゃ
えっと外国人登録とその子供の扱いという ことだと思うんですけども外国人登録をる
義務があるえ年齢は14歳ということに なっていますそれでえ14歳に設定された
のはそのいわゆるその民法上の未成年以下 ではなくて警報上の責任能力を有する年齢
よりもえしたということになって定められ ましたなのでこの団体側は未成年の
年齢を18歳以上外国人登録1818歳 以上にするように要求していたわけです
けどもえ基本的に日本政府としてはその 14歳未満だけが免除されるという形で
外国人登録の対象にしていきましたまそう いう点でま非常に若い時期に登録しなけれ
ばいけないということがおそらくその子供 たちの経験の中でもその外国人生ってもの
を刻印される機会になりそれがまゆくゆく は1980年にまチソ平さんチェソネさん
姉妹が指紋オナに拒否する時にまその中学
生ですよねが拒否するというような動きに つが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ま 日本の場合は血闘主義ですからえ基本的に
は外地登録の義務が子供にまで継承されて いくとことになったと思いますでもう1つ
はその朝鮮席者と朝鮮総連の会員の関係な んですけどもえこれはその正確な統計が
あるわけでありませんが基本的には日韓 条約が締結されて国交正助化されるぐらい
まではえ国籍該当上の国籍と貴族っていう ものはほぼ一致していたと考えていいと
思いますえしかし今日においては例えばえ 朝鮮席者というのはま2万5000人
ぐらいしかいませんそれで朝鮮総連系の 朝鮮学校の生徒の6割ぐらいは韓国籍です
今でもでこうした傾向はこの20年間 どんどん進んできたものなんですねそう
いう意味でやっぱり80年代ぐらいまでは あ朝鮮総連で朝鮮席でえ朝鮮学校こういう
こうイコールのそのコミュニティっていう ものが存在していたと思うんですが80年 代に大きく変わっていったと具体的に
やっぱり韓国が民主化されていく中で本当 の故郷つまり祖父祖母の故郷である韓国に
訪問するために韓国国籍が取れるとかか あるいは就職でとかそういう点が
コミュニティの分解や解体と共にえ国籍と 組織への貴族っていうもののこう分離に
繋がっていったのではないかなと思います ちょっとお答えになっていますでしょうか 以上です
はいちゃん先生よろしいですねはいえあで は次のあえNEXTquestion
マクスさんお願いし ますはい
you BrilliantAtopicfasc
ischaniSensesaid alsoverychallenging
and soI applaudeffortstoto
untangleitandinthat contextIwantedtoask about
comparisons recn
onmentiontheIdea thatwemightkindof comeupusethisthis
casetoustrMaybemay toAboutaNewFormof CriticalRACETheory
Whichisveryexciting I think thinkingORIGIN
Americannetherland netherlandsyears
lookatRACEandRACE netherlandsWe Americanparad
AmericanofHowRACE WORKSRACEisinanda
ChallengeImany peopleare tryingunderstandR RACEthinkingand
racismLEGACYof colonialism
DYNAMIC
amanandhereinthe Koreancasealsoacold
WarparadigmOnTopOf Thepoalparadigmthis makesITvery
distinctivebut wonderingifyouhave Professor
you work
other andIknownetherlands frustONEThings
encounterHereisa ResistancetotheIdea thattheDutchhavea racismproblemfor
examplebecausetheir DYNAMICisdifferent fromtheAmericanOne andandIIguessIwould
liketoIwouldhope thatthatwecanbring this Koreanexperienceand
experienceinto conversationwith otherotherstudy
thanksomuchえっとチ先生 いかがでしょうかいやかなり難しい質問な
んですけども非常に興味深い私もこう考え たいと思っている論点ですでこの表面的に
は例えばまアメリカや イギリスこういったまフランスのような
地域の国籍法と違って日本の場合はま血闘 主義であるとかま出世主義ではないとか
ですねこういった表面的なこう違いとか 比較っていうのはあるんですが逆にそれを
超えたそのまつまり制度の違いを超えた こう対話の可能性というかこうあるいは
貢献というかこう人種批判的人種研究え 主義研究の光景の可能性っていうところで
ま1つのポイントは私はその戸籍制度って いうものがその日本の場合はあつまりこう
家っていうものを単位とししたあ人間の 管理っていうものがこう植民地的な期限を
持っているとここが こ基本的には在日朝鮮人士研究がずっと
注目してきたことだと思うんですねでこれ が戦後まさにそのポストコロニアルな状況
の中で あの日本におけるこう外国人カテゴリーへ とこう変わっていくえそしてその中でこの
さらに朝鮮半島がこう南北にえ分断されて いくっていうプロセスの中でこうじゃ
どちらの国民になるのかっていうことが 争われるという過程だという風に見てい
ますでその点でちょっと今は先行研究の 紹介をするしかできないんですけども
あ基本的にはその従来の大沼さんの研究 なんかではまフランスとアルジェリアの脱
直民地のプロセスと比較した時に日本の 場合はあ第1次世界大戦後の国籍処理の
方式つまり脱植民地下を念頭にするんじゃ なくてその領土の分離と国籍の変動という
方式で条約によって当事者の頭越しに しかも無告責者をできるだけ出さないと
いうルールを基本的にはこう踏みにって いくというそういうあのえ特徴があったと
でそそれがどのような植民知的期限を持っ てるかというとやはりその朝鮮との関係え
において基本的にはこう朝鮮人を こう植民地帝国の元ですらもこ分けている
というそのこう分ける力学っていうものが 非常に強い経路依存性というか戦後の国籍
政策に作用しているっていうところをあの ままつまり再を指摘していたと言えると
思いますちょっと あの非常に重要な問なんですけどもあ今お
答えできるのはこのぐらいでまちょっと また今後の課題にさせて くださ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ちなみに
なんというかま質問でもあったようにそう いう他の国との比較という観点を取る時に
ま現状長先生が何か誰かと コラボレーションされているとかそういっ たことはあるんですかねあそうですね今
共同研究をしているのはそのアルジェリア 市をやっている日本の研究者の人たちがい てそれでえフランスとマグレブの関係とえ
日本と朝鮮の関係っていうものを比較して いく時に例えばこう国籍とか二重国籍の
問題を巡っても日本では二重国籍っていう のは非常に実現すべきポジティブなものと
想定されてるんですけども現実にフランス アルジェリア関係の中ではアルジェリア 政府のこう思惑とかラこう現実のこうある
種国家の利害の中でこう作用していく みたいな側面とのこう対話っていうものを
今していて私自身はそこであの日普通の
比較研究を結構あるんですけどもこう植民 地にされた側からの比較研究っていうのが
あんまりなされてないのでそこをあの意識 しながら今後ちょっと研究まちょっと本が
必殺出たんですけども研究していきたいな と思ってますなるほど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す確かに英語まそれプラスで英語件の
研究とかもですねま色々ありそうですし あのま今回参加されてる方はもしかする
そういったことをやってくれる可能性も あるかもしれないでそれも楽しみにしたい と思いますはいえでは次の質問
soOf YouYouWRyour questionsintheChat
BO repeatknowADDFollow UPSオあヨハさんあ皆さんこんばんは
こんばんは今回はちょっと英語で質問させ てもらいます はいsodidsendmy
question
tojusttalkedabout Whichisthefamily registryorhousehold
registry Systemtherealotof researchabout Japanesesyst
knowandotherengaged thinkthisADDNewDI
think engl abouthousREG
inEspeciallyasit relatesto koreanssothe
Yeahthefirsttwo questionsTheymeant toConnectthe politicalLEGAL HistoryofPost
liberationKoreaand PostWarJapan andyouknowyoucan
answer themknow
SOUTH kore normJAPANkoreSOUTH
Koreain1965andHow thataffectedyouknow themajorityof
koreansAsYousaid morethan90%of koreansWho originallycamefrom
fromSouthernKorea andinNorthKoreaMy understandingIsthat
thehousehold registrySystemwas abolishedandifso
thenwhatwastheLEGAL BASISfornationality inthedprkandHowdid
thataffectyouknow howdidthatapplythen tokoreansin japansoASetof
questionsanotherone whichIIknowthiswas you knowwhatyougotinto
toomuchThatisa SocialHistoryof koreansbutYeahlike
toknowyouknowwhat aretheimplications ofofyour work
願いし ます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えっとまず その韓国の籍制度の中
でどのように位置付けられてどういう影響 を与えたのかっていうことですがその
えっと60年代まで韓国において日本の 戸籍制度の枠組が基本的には継承されてで
ま崩壊正後も戸籍制度残るわけですで現実 的にその例えば韓国国籍の人々でえ戸籍を
整理して韓国に戻った人たちはそこに搭載 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ただこれは朝鮮
戦争後のことですで問題は日本配線直後の 段階では
あ戸籍まつまり朝鮮に本石があるわけです が朝鮮にはもう相徳府もいませんしじゃあ
その戸籍の手続きをどうするのかっていう 問題が出てきたわけですでこの時に
ちょうど日本では外国人登録制度を 始めようというプロセスにあったんですが 団体が自分たちが戸籍を作るって
最初言い出してたんですねつまり新しい 戸籍をたち団体で作ってでそれを
持ってえの身分登録にするとこう いう風に提案をしてたんですがその時に
ちょうど外国人登録制度が始まる中でま いわばそれにこう置き換えられていくと
いう風なえ変化がありましたなので外国人 登録の運用の書類を見てる
と外国人登録すべき朝鮮人って誰かって 言うと朝鮮戸籍に乗ってる人じゃないん
ですよ朝鮮戸籍に乗るべき人なんです朝鮮 戸籍に現に本石士に乗ってる人じゃなくて
本来なら乗るべき人っていうえその表現が 作られてるそれは本当に乗ってるか確認
することが非常に難しいからなんですねで その状態のまま韓国での戸籍を整理し
なかった人っていうのはまいわば韓国戸籍 から切り離された状態になりますでそう いう状態は実は現在まで在日に
かなりまある種こう重いえ影となって暗い 影となって起っていていますなので
その朝鮮世から韓国政変えたいっていう 場合でも該当上の国籍を韓国に変えるのは
簡単なんですけどパスポートを取るまでに は戸籍を整理しなければいけない今だっ たら住民登録しなきゃいけないのでその
プロセスが非常にま難関となってつまり何 世代もに渡って登録してなかったのでえ
そこであの問題が生じています2つ目はえ 朝鮮民主人民共和国ではそのマシ
ガスティンさんおっしゃられたように戸籍 制度されるわけですねで公民証っていう ものが作られますが公民書はあくまでその
北部朝鮮の居住者を対象にしていますだ からこの本の中でちょっと触れたんですが
1947年の帰国戦でキドヨンという人が 朝鮮民主自民局に帰って彼が村人に到着し
た時に公民登録をしたというそういう新聞 記事が残っていますなのであの領域内に
入れば公民書をえ公民登録をするわけです がじゃあ在外公民はどう登録したのかと
いうとその法的手続きは長い間空白でした つまり理念的観念的にはあの日本にいる
朝鮮人は我が海外公民だって言うんですが じゃ何を持ってそれを証明するのかって いうものが50年代にはっきりしなかった
それをえ朝鮮総連はそれは朝鮮績なので あるという風にこう埋めようとするわけ ですねでその際にあの単に朝鮮席で
埋めようとするだけじゃなくて例えばその 民法のの適用例えば出世した時とか結婚し
た時にどの法律が適用されるのかっていう 時に韓国法じゃなくて朝鮮民主義人民共和
区の法律を適用しろという運動を50年代 末にこうやっていってそして共和国法に
従うといわゆる半治の規定があって日本に 暮らしているなら日本法に従いという風に こうま法が戻ってくるのであの実際には
あんまり大きい影響がないわけですねこう いう形でそのそういう意味でも該当上の
国籍をあ在外国公民であることに変える 制度にえスライドしていったという風に
思いますでまあ80年代以降になると予見 が発給されるんですがこれは基本的には やっぱ朝鮮総連が身分を証明するっていう
形であの朝鮮総連が代行するつまり朝鮮 総連はこう民間団体としての機能だけじゃ
なくて一種の代表部的機能を果たすように なったとまそういう意味では未だに在外
公民の登録手続き問題は空白だけどもそれ は国籍がないことを共側からして意味する
ものではないっていうまちょっと奇妙な 状態が今でも続いていますまなので予見が
発狂されるわけですで最後はこの問題の あの
がそうですねそのま基本的にやっぱ民族と かまエスニシティというところに注目した
カテゴリーの研究なわけですがそこでその ジェンダーの問題っていうのがこうどの ように問えるのかっていうことであるし
その階級の問題もそうなんですけども そこではま1つはですねこの法の中でま
やはり戸籍制度が軸になっているっていう 中でこの本の中ではその日本人女性でえ
朝鮮席になった人たちの経験っていうもの が実はその法解釈においては非常にこう
重要な意味を持っていたっていうことに ついてまもっともっとこうしあの光を当て
ていく必要があ光を当てることができると 思いますしまそのためのまちょっと きっかけの事実の紹介はできたのかなと
いう風に思っていますでそうした中でその
単にこう民族団体に代表されるような人々 以外の動向っていうところにま基本的には
目配りをして あこの時期の歴史をま一社会史としてです
ね民族運動士だけじゃなくて社会士として 追いかけていくっていうことをまちょっと これは今後の課題としてやっていきたいと
思います以上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まだけあのフォロー
アップで質問というか詳聞かせていただき たいのがやはりま最後の質問にあった
ジェンダーとクラスというのはやはり特に 英語件ではなんというかま関心も高い
トピックでありまその研究を進めたいと 思ってる方はたくさんいると思うんです けれども同時にやはり資料の難しさ資料の
見つける難しさという限定性というのがま 存在するんですがまち先生のご存知の範囲
でまそういったジェンダーとかまクラス 階級とかですねえ何か資料の可能性みたい
なヒントみたいなのがもしあったらま今後 の現在知ってる事件でも大丈夫です今後の
研究者に役に立つと思うんですがいかが でしょうかそうですねそのもちろんそう
いう中でまそれこ茶谷先生もなさってる ようなこうあの証言の聞き取りえそういっ
たことを積極的に進めていくということも そうですし文書資料も実はそういう観点
から読まれていないいう資料はたくさん あると思いますなのでま今回の本では裁判
資料を結構そういう観点でちょっとこう チャレンジしてみましたけども文章資料に
関してもあの朝鮮総連や民団の資料とうと
でもあの女性たちの声えあるいはそのあ
そうですねそういったこう声ってものない わけではなくてそれをこうどのようにこう 読んでいくのかっていう点ではまそヒント
となる資料っていうのはたくさんあると 思いますで先ほどのマッカさんの手紙にし てもまその小林哲というの文として
読むだけでなくてそあそこにはまこう4人 の女性が出てくるわけですねパートナーと 3人の娘という人たちは出てきてあの人
たちのこうその後の法的地位っていうもの はこうどうなっていくのかっていうところ
についても考えられるそのヒントがあると いう風にま思うんですよねなのでそのそ公
文章や民族体の文章をまあある種判的に 読んでいくっていうところがま基本かも
しれませんが重要なのかなと思い ます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あの
ちょっと時間になってしまったんですけど もあのアダムブロンソンさんは手をあげて いたので最後にあのちょっともう一方
チャットボックスで質問いただいてるん ですが時間的に厳しいかもしれない最後に
アダム [音楽]
ブロ Iwascuriousabout
relationandthe historyof statisticsyoushowed afewpopulation
statisticsandIwas just curiouswastheprimar
PrimaryBASISof studiesofthe RESIDENTKorean populationbased
upon OTHERSforexample Countingthis
populationor conductingstudies becauseitseemedtome thattheremightbe someveryprofound
implicationsofthis HistoryorSocial Scientificstudiesof ofdifferent
populationsINJAPAN AFTERTHEWARbutwas thechosprimarilya
kindofaLEGAL administrative categoryorwasitalso beingusedforexample toPRODUCEsamplesand
conductsociological RESEARCHonthese groupsAFTERTHEWAR
はいちょっと後半あの質問の内容ちょ うまく理解できなかったんですけどもその
朝鮮席に関す統計に関するご質問か と思うんですけどもそのすいませんが少し
補足をもししていただけるとありがたいん ですけどもあ
えっと挑戦席というカテゴリーが 法的な登録者のを数えるだけではなく席を
対象にしたこう社会学的なリサーチなどが されていたかっていうことでいいですかね
うんあすいません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すはいえっと朝鮮席者のみを対象とした
そうですねあの非常に多いという言い方も できますし
そのなぜかと言うと1950年代日本政府 が非常に関心を持ったのはの生活
保護の問題でしたえ朝鮮人のそのまそう いう意味では先ほどの階級の問題とも
つがるんですけども社会保障費を朝鮮人の 生活保護受給者が多いために非常に圧迫し
ていると彼らはこう考えるようになる そしてもう1つその生活保護のえ受給生活
保護費が朝鮮民主義人民教区に流れてるん じゃないかとこ彼らは考えるわけですね
つまりここでは単に社会保障が社会 保障を圧迫しているだけではなくてこれ
こう冷戦の問題とこう繋がっていくという ような認識がありますなので本当はですね
そのその外国人としてのいわゆる国籍とし て外国人として分ける統計っていうのは
52年以降にほ初めてその登場するはずな んですけど実は日本政府は1950年から
朝鮮人だけ分けて生活保護の調査をしてる んですよでそれは社会的調査というよりは
まさにそのレイシズムですよねレイシズム の観点からそのしかもそのま冷戦の観点
から朝鮮人のうちえ朝鮮席者っていうあ 朝鮮人のうちどのくらいの人間が北朝鮮
指示でかつ生活保護もらってるのかって いうことを調べようとしますで彼らは同時 に彼ら自身が言ってるように朝鮮席
イコールじゃあ北朝鮮指示なのかっていう ことも疑ってるわけですよその
朝鮮席者の中にどのくらい北朝選進者が いるのかってことについてもう別の調査表
を作って作ってるんですねだからこれは ちょっとご質問のその社会学的調査という
よりはあのに直接お答えするものじゃない んですけども一種のこう日本におけるこ
一緒人種的統計というかですねそういう ものとしてそ外国人統計だけではないもの
のま法がとして あの早期されるべきえものなんじゃないか
なとという風に思いますはいえそうですね このぐらいですちょっとすいませ
ん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ちょっと あの時間がもうえ終わってしまうのでえ
これ以上質問は難しいんですけども1つ 質問いただいてるあの質問に関してあの
この前の会話などからもですね少し答えが 分かっているいただけたかと思いますで
また我々のこのあのビデオですねえちょ 先生のとえチャトニーさんとの会話の部分
まではえ一応ZOOMあYouTube などでアップする予定ですのでまた見逃し た方はですねそちらもチェックして
くださいはいということでえ90分に渡り 皆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ち先生改め
まして素晴らしいご講演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したチタさんもえ素晴らしいコメント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し たはい


알라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알라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 
정영환 (지은이),임경화 (옮긴이)푸른역사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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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38,000원
===
Sales Point : 358

10.0 100자평(0)리뷰(1)

624쪽

책소개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 정영환이 2013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朝鮮独立への隘路: 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를 번역한 것으로, 1945년 해방의 날로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해방 5년의 역사를, 실로 방대한 자료를 구사하며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들이 이에 맞서 조련을 중심으로 거주권과 생활권 옹호를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그것은 중앙은 물론 지방, 심지어 도서지역인 쓰시마에까지 미쳤음을 밝혀낸다. 그들은 전국에 초중등교육기관 및 활동가 양성을 위한 고등학원, 청년학원을 설립하고 일본공산당을 포함한 일본의 진보진영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운동조직과 민중을 잇는 젊은 활동가(일꾼)들을 소개하며 운동을 입체화시켜간다.

또한 재일조선인들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조국에의 공헌과 외국인으로서의 권리획득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둘러싼 내부 논쟁도 이때부터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재일조선인 2세의 의식이나 젠더 문제 등도 다루어졌다. 또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도쿄재판’을 둘러싸고 재일조선인들이 전쟁책임론을 식민지 지배 책임론과 관련시키고자 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아시아의 동시대 식민지 해방의 움직임에 강한 관심을 표했다는 논의는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 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
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입력 : 2018.05.12
글 원희복 선임기자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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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는 기본사실조차 왜곡했다”



그는 2016년 <경향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저자’였다. 그는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대한민국 입국이 거부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외교부 장관과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에게 그의 입국을 요청했지만 불허됐다. 2016년 7월 1일 민변 정연순 변호사,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김창록 경북대 교수 등이 그의 입국 불허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재일교포로 역사학 특히 재일조선인사를 전공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 교수다. 그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썼다. 박근혜 정권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책을 쓴 것이 왜 ‘국가안보상 위협’이 됐을까. 그는 먼저 <경향신문>이 2016년 올해의 저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그런 대우를 받았고, 매우 감사하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는데 거부당했다. 사유는 ‘국가안보상의 위협’이었다. 민변에서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고등법원·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번 [2018?]에 민변에서 재일 조선적 문제로 강연하기 위해 입국했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들어왔다.”



2013년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이 선고됐다. 아직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큰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혹은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 논란이 컸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저자 정영환 주간경향인터뷰./우철훈 선임기자

‘가치판단’ 아닌 학자의 자격 문제 제기


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한창 논란이 될 때인 2016년 7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이라는 책을 냈다. 사실 일본문학 전공자가 일본에서 취재와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어판(최종판)으로 쓴 <제국의 위안부>를 국내 학자나 언론이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박 교수가 인용한 근거를 검증하기 위해선 일본 현대사와 전쟁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사실 국내 많은 학자나 언론인·작가들은 <제국의 위안부>는 일단 ‘사실’을 기록했고, 단지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라는 책에서 박 교수가 인용한 사실 상당 부분이 왜곡됐거나 선행연구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팩트’(사실)의 왜곡문제는 <제국의 위안부> 논란이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닌 
학자의 자격에 대한 문제임을 의미한다. 
이는 <제국의 위안부>가 표현·학문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아닌,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기본적인 팩트(사실) 왜곡은 어떤 대목인가.

“조선 위안부는 중국·대만 위안부 즉 ‘적국의 위안부’와 다른 일본 제국주의와 동지적인 ‘제국의 위안부’라는 관점을 만든 것이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일본 병사였던 후루야마(古山高麗雄)의 소설 <하얀 논밭>, <프레오 8시 새벽>을 들고 있다. 역사적 사실 기록이 아닌 소설을 인용했다. 그런데 인용 근거도 일본인 병사의 관점에서 ‘동지적’ 혹은 ‘자발적’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일본 병사의 관점에서 조선 여성의 내면을 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박 교수는 조선 위안부가 아닌, 일본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설 속 내용을 역사적 근거로 삼았다는 것인가. 실체적 증언이나 문헌적 근거가 없다는 것인가.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저널리스트 센다 가코오(千田夏光)가 쓴 <종군위안부>를 다시 읽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박 교수는 센다가 전쟁위안부를 ‘일본에 애국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센다의 책 어디에도 그런 주장이 없다. 센다는 원래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박 교수는 센다의 책에 나오는 일본 위안부 증언을 통해 조선 위안부도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해 ‘애국적 위안부’라는 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자신의 구도와 논리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추측·왜곡한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여러 학술논문도 인용되고 있다.

“박 교수는 한일회담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론됐고, 한국정부가 개인보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경북대 김창록 교수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것인데 이는 김 교수의 논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선행연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잘못된 비약이다.”(김 교수는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학문적 엄격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게 기본 사실에 문제가 있는 <제국의 위안부>가 어떻게 일본에서 높이 평가됐나. 특히 일본의 보수세력뿐 아니라 중도세력까지 이 책을 높게 평가했다. 일본의 지성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나.


“박 교수의 책에 대해 일본인 비판자들이 많았다. 특히 전쟁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용을 알기 때문에 즉각 비판했다. 아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상대를 안했다. 그러나 이 책이 다시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번역 출판됐고, 와세다대학에서 상을 받았다. 문제는 일본의 보수파가 아닌 중도 심지어 진보적 성향까지 <제국의 위안부>를 평가한 배경을 잘 봐야 한다.”


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소위 ‘뜨게’ 된 일본의 분위기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무라야마(村山富市) 전 총리는 1995년 아시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하는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추진했다. 일본 중도적인 인사들이 추진했던 이 사업은 한국에서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의 중도적 인사들은 ‘한국의 민족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의 책은 바로 이 ‘한국 민족주의가 문제’라는 담론을 한국인이 만들어 줘 좋아했다는 것이다.



정영환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서 호평 받은 이유


정 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은 2000년대 들어 일본 보수파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아 전쟁범죄에 대한 시각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 맥락을 이해하려면 일본에서 전쟁위안부에 대한 인식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80년대까지 일본에서 전쟁위안부는 일종의 전쟁 추억 혹은 에피소드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고발로 전쟁위안부 문제가 전쟁범죄로 옮아갔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으로선 당연히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정부 차원 사과와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등의 치유책이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전쟁위안부 문제를 보는 시각을 80년대 ‘추억’이나 ‘동지’로 보는 시각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은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이 책을 출판하고 일본 언론에서 호평 받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 내 호평은 “일본 우경화와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라고 힐난했다. 이러한 일본 분위기를 이해해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사법심사 대상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혹은 ‘학문의 자유’라는 이유로 그를 옹호했다. 일본은 물론 국내 유명 인사들도 적잖이 이에 동조했다. 그중 상당수는 박근혜 정권에서 뉴라이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명 작가도 있었다. 아마 그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확실한 증언과 객관적 인용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조총련계 민족학교 다녀


박근혜 정권은 친일 묘사가 가득한 교학사 교과서에 실패하자 아예 국정 역사교과서를 도입하려 했다. 특히 한·일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에 ‘불가역적’으로 재론 않겠다고 일본과 합의했다. 이 졸속협상은 국민을 분노케 했고, 결국 촛불혁명에서 적잖은 동인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간됐고, 
거꾸로 이를 비판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쓴 정 교수의 국내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그 입국 거부 사유를 ‘국가안보상 위협’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박 정권의 역사왜곡에 걸림돌’이라는 것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와 한·일 위안부 합의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베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 언론 모두 호평을 했다. 
이를 반대하는 한국인은 비이성적 태도라고 보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일본 시각과 구도에 딱 맞는 책이었던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음~. 어려운 질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책을 통해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형법상 명예훼손이 되는지는 내가 판단하기 어렵다. 역사학자의 견해와 실정법은 다르기 때문에 일단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문학 전공자로서 박유하의 일본에서의 학문적 평가는 어떤가.


“문학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높게 평가 받는다. 아마 박 교수는 일본 출판·언론계에서 한국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정 교수는 1980년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경남 고성이 고향으로 1930년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할아버지는 조선인 여성을 만나 8남매를 낳았다. 아버지 역시 조선인 여성과 결혼했다. 정 교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열렬한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조총련계 커뮤니티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 역시 고등학교까지 조총련의 민족학교를 다녔다. 1999년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히토쓰바시(一橋)대학원에서 재일조선인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재일교포는 60만명이다. 법적으로 외국인 등록 국적란에 조선으로 쓰면 조선적, 한국이라고 쓰면 한국국적이다. 이 중 조선적은 3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는 “재일 조선적은 외국인으로 차별을 받고, 여권이 없어 또 차별 받는 2중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자가 1994년 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을 읽고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쓴 평전은 재일교포 조용수의 1950년대 일본과 한국 관계에 대해 언급돼 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앞선 경제력으로 일본 교포사회에 학교와 직장을 제공했고, 심지어 집과 직장을 제공한다며 북한 이주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남한 재일공사 유태하는 귀국하려는 재일교포를 상대로 여권장사를 해 비난을 받았다. 이 유태하 공사는 5·16 쿠데타 후 처벌 받았지만 나중에 한·일 국교정상화에 역할을 했다. 
재일교포의 상당수가 남한 출신이었지만 조선적으로 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 교수는 기자의 이런 서술에 “정확한 사실이며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의 경제력이 역전돼 조총련이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는 형편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귀화하거나, 한국 국적을 얻기 싫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심경은 바로 ‘굴복하기 싫다’는 것”이라며 “특히 지금까지 삶과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싫고, 국적 취득은 허가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영환

통일을 말하자, 조선을 말하자 - 정영환 교수 인터뷰 > 동포소식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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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자, 조선을 말하자 - 정영환 교수 인터뷰
몽당연필
23-10-05 02:51 | 401 | 0




조선반도의 분단을 결정지은 6.25전쟁 정전으로부터 70년. 분단과 전쟁은 재일조선인의 삶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법적 처우를 통해 재일조선인 사회에 분단을 가져왔다. 그 시작과 이후 전망을 저서 『역사 속의 조선적』(이분샤, 2022/ 국내 미출간)을 집필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43)에게 들었다.



세상을 떠난 1세, 2세의 마음

― 재일조선인의 대다수는 조선반도 남쪽 출신이고, 조국이 해방되고 조선이 머잖아 통일되리라는 마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길어지는 분단 체제 아래, 생이별한 부모 형제와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세, 2세가 수없이 많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1921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7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남쪽에도 친척이 있었고, 공화국으로 귀국한 누나도 있어요. 할머니도 같은 고향인데, 해방 후에 고향에 간 적은 없었을 겁니다. 할머니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생전에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2 때,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 아버지는 일본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우리말을 하지 못했고, 고향에도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어요. 이런 1세나 2세가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왜 조선적을 고집했는지, 아버지가 ‘조국’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고향을 찾아가고 싶다, 모국에서 배우고 싶다는 소망과 신념을 꺾고, 존엄을 저버리면서까지 한국에 가야 하는지 고민과 갈등을 느꼈던 사람도 적지 않았겠지요. 통일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맹세를 가슴에 품고 ‘가지 않는’ 삶을 택한 1세가 많았을 겁니다.

해방 민족으로서 취급받지 못했다

―과거에 외국인등록증명서의 국적 표시란이 ‘조선’, ‘한국’으로 나뉘어버린 것이 재일 코리안 사회의 분단, 특히 ‘의식의 분단’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어느 쪽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본의 조선인 정책은 어떠한 것이었나요?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조선인을 ‘해방 민족’으로서 처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1947년 5월에 시행한 외국인등록령의 적용에 한해 ‘외국인’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조선인, 대만인은 국적(출신지)란에 ‘조선’, ‘대만’으로 기재하도록 지시합니다.


최초의 문제는 일본 정부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게 하면서도, 조선인을 일본국적으로 간주했던 점입니다. 당시 조선인은 ‘해방 민족’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외국인등록령을 만들고, 나아가 출신지로서의 ‘조선’이라는 기재만을 허용한 것이죠. 이것이 조선적의 기원입니다.

조선반도의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쳐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 ‘한국’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 정부는 당초 그것을 꺼렸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조선인에게 한국의 손이 닿을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식민지주의 대 반공주의의 싸움이었죠. 최종적으로는 GHQ의 의사대로 국적란에 ‘한국’으로 기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기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1950년에 ‘한국’ 표시를 인정했을 때는, 이것이 곧바로 한국 국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을 보이는데, 실제로 한국적과 조선적의 취급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1952년에는 한일회담 결과, 양 정부는 조선인의 국적을 ‘한국’으로 통일하기로 일단 합의합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반도의 분단과 전쟁에 관여하고, 또한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까지 분단을 끌어온 것입니다.


조선적 취득을 기뻐하는 동포들 (1970년 10월, 요코하마 / 사진집 『동포』(김유 지음)


평화통일을 염원한 동포들

국적 강요에 맞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공화국을 조국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물론, 중립 입장인 사람들 중에서도 반대가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인상공회연합본부는 1952년 1월 18일에 ‘재일조선인은 남북정부로부터 어느 쪽이든 국적을 강요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국의 분열을 고정화하고, 민족의 멸망에 일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청원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한일회담이 청구권 문제로 결렬되면서 결국 이 문제는 보류되었습니다. 조선적이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모든 조선인이 한국적이라는 해석을 유지했습니다. 전쟁 끝에 조선반도는 한국에 의해 통일되리라고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정이 성립하고, 일본 정부의 이러한 예상은 성립하지 않았지만, 한국적과 조선적의 처우 격차는 변하지 않았고 1965년 한일조약에 의해 굳어집니다. 그 결과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분단을 끌고 왔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폭력의 시초’였다고 생각합니다.

‘닻’으로서의 조선적

― 우리 재일조선인은 조선반도의 분단 체제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분단 체제는 재일조선인에게도 거대한 장벽입니다. 특히 조선적인 사람은 그것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을 보더라도, 한국에 입국이 허가되지 않기도 하고, 재외 연구로 영국에 체류했을 때는 공화국 여권으로 도항하기도 해서, 입국 시 형사에게 집요한 취조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비자 자체가 나오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 조선적이 ‘족쇄’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선적으로서 느끼는 경험이 조국을 분단시키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억압을 지속시키는 폭력의 실상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조선적은 식민지주의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조국이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과정에 있음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적, 일본적인 동포들도 모두 과거에는 조선적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조선인상공회연합본부가 일본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했음을 보도한 ‘통일민보’ 1952년 2월 22일 자 (필자 제공)


그러한 선택을 하게 했던 이들의 ‘폭력’을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 속에서 조선적은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고,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한 버팀목이 되어온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서 조선적을 ‘닻’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에 진지하게 마주하여 일본 정부는 분단에 가담하는 일을 멈추고, 조선인의 통일과 자결의 의사를 존중하고, 식민지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바탕에 둔 재일조선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남북 정부는 재일조선인과 협력하여 자유 왕래 등 현안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0대 무렵부터 역사를 연구했습니다만, 언제나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힘을 얻었습니다. 조선 민족의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발자취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희망의 자원’(E· 사이드)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배우고, 동포와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현대사를 되찾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포들은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왔으니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하고 널리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을 끝내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본국, 해외와 함께 조선인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은 달라질 것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분단’을 살아온 재일조선인이야말로 통일을 절실히 이야기하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정영환 : 1980년 치바현 출생. 치바조선초중급학교,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메이지가쿠인대학 법학부 졸업. 히토쯔바시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전공은 조선근현대사, 재일조선인사. 저서로는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푸른역사,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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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月刊イオ>(월간이어) 2023년 7월 호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몽당연필 번역팀

“냉전 시대 회귀하나”...통일부 '조선학교 교류 조사'에 재일동포사회 우려 | 한국일보

“냉전 시대 회귀하나”...통일부 '조선학교 교류 조사'에 재일동포사회 우려 | 한국일보

“냉전 시대 회귀하나”...통일부 '조선학교 교류 조사'에 재일동포사회 우려
최진주 기자
입력 2023.12.13
8 0

통일부, 일본 내 조선학교 접촉 문제 삼아
재일동포사회 "군사정권 시절 회귀" 우려
30년 된 낡은 남북교류법 개정 요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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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통일부의 일본 내 조선학교 접촉자 조사 사실이 알려지자 재일동포 사회에선 “냉전시대 사고에서 나온 조치”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재일동포의 한국 입국이나 일본 내 사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19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재일동포 어르신 간첩사건 떠올리며 '또 시작됐나' 불안"

조선학교를 졸업한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사업가는 12일 통화에서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어르신들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이 조작한 재일동포 간첩 사건 등을 떠올리며 ‘또 시작됐나’ 하고 불안해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학교에 한국 시민들이 지원하러 오면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나라, 내 고향분들이 우리를 같은 민족 아이들로 봐 주시는구나’ 하며 큰 감명을 받는다”면서 “이런 교류를 빼앗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 통일부는 일본 내 조선학교 구성원들과의 접촉을 문제 삼아 다큐멘터리 '차별' 등을 만든 김지운 영화감독 등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 주민과 접촉할 경우 통일부에 사전 신고 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기독교협의회(NCC) 총간사를 맡고 있는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김성제 목사는 “일본의 재일동포 탄압은 100년 전 간토대학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재외국민을 차별에서 보호해야 할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냉전적 시선으로만 보고 한국 시민과의 교류까지 막는다면 이는 정부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벌인 민족 교육 운동의 결과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조선학교에 장학금과 교과서 등을 보내며 지원한 반면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학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도 하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일본 내 한국 학교의 수는 도쿄 1곳 등 겨우 4곳으로, 조선학교(60여 곳)와 격차가 크다.

물론 이념 문제로 조선학교에 비판적인 재일동포도 적지 않다. 한 재일동포 기업가는 “나는 조선학교를 졸업했지만 딸은 한국 학교에 보냈다”며 “한국 학교는 공동체나 민족 교육이 약하고 입시 교육만 해 불만이지만, 그래도 조선학교가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3월 16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일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도쿄=서재훈 기자




"재일동포에도 적용되면 안 돼"


또 다른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사업가는 “한국 거주 국민에게만 한정된 조치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재일동포 한국 국적자에게도 적용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의 국적은 2차대전 패전 후 일본이 일본 국적을 빼앗고 부여한 조선적, 1965년 한일 수교 후 취득할 수 있게 된 한국 국적, 일본 귀화자 등 다양하다. 이 사업가는 “이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국적을 확인하고 신고해야 한다면 비즈니스는 물론 아예 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학교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와는 상극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측 인사마저 “한국 거주 국민에게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이 없다”면서도 “재외동포까지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 시장엔 한국 국적 할머니와 조선적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물건을 파는데 서로 외면하고 지낼 순 없다”는 것이다.

"30년 전 만들어진 남북교류법 손볼 필요"


재일동포 역사를 연구하는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이번 조치에 대해 “30년 전 법을 통해 지금까지도 남북교류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일”이라며 “한국 사회와 재일동포 사회도 30년 동안 많은 교류를 이어왔으니 교류협력법과 상위법인 국가보안법등 관련한 법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과거 조선적이란 이유로 학술 발표 목적의 입국이 불허된 적도 있다.

그는 또 “시민단체 몽당연필이나 김지운 감독 등은 남과 북, 재일이란 정체성을 모두 지닌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의 복잡한 정체성과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분들이었다”며 “한국 시민들의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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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9.09.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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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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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도가 개최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와 북한의 평양국제영화축전에 나란히 초청된 다큐 &#39;사이사-무지개의 기적&#39;.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이 일본정부의 조선학교 탄압 뿌리를 짚었다. [사진 박영이 감독]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 남은 조선 사람들이 우리말‧글을 잊지 않으려고 세운 조선학교를 일본 정부는 모질게 탄압했다. 수십 년 세월도 그 아픔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 2010년에도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자국 내 외국인 학교 중 유일하게 전국 10곳의 조선학교만 배제했다. 지난해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는 이런 조처가 ‘합법’이라 쐐기를 박았다. 아베 정권은 다음 달 실시되는 유치원 무상 정책에서도 조선유치원을 배제하는 방침을 밝혔다.

“우리말을 가르친다는 것만 빼면 일본학교와 (학습 내용이) 다를 것이 없는데…. 교육권은 평등한 것 아닙니까.” 지난해 어느 재일동포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다.

1954년에도 "세금 똑같이 내는데 교육은..." 

재일 조선학교 다큐 &#39;사이사-무지개의 기적&#39;을 남북한에 동시에 선보이게 된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 [사진 박영이]

 “일부 일본인들도 오해하고 있는데, 도쿄의 조선인만 해도 해마다 10억엔 이상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선인학교가 1년간의 경비 7000만엔의 교육비를 받는 것은 응당한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무려 1954년, 해방 직후 조선학교 모습을 기록한 흑백영화 ‘조선의 아이’에 담겼던 목소리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었다.
이런 뼈아픈 역사를 재일동포 3세 박영이(43) 감독은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이하 사이사)’에 오롯이 담았다. 조선학교 교사였던 김공철 감독이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렸다. 20일 경기도 고양‧파주에서 개막한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내한을 앞둔 박 감독을 e메일로 먼저 만났다.
한국 국적으로, 자신도 조선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민족차별이고 정치탄압”이라면서 “재일조선인의 근본 문제인 식민지배 역사의 청산 없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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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사', 재일동포 누구나 아는 말 
이번 영화는 지난해, 4‧24 한신교육투쟁 70주년을 맞아 제작을 시작했다. 1948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조선학교 폐쇄명령’에 재일동포들이 뭉쳐 일본 경찰‧헌병대에 피 흘리며 맞섰던 사건이다. 제목의 ‘사이사’는 이 날짜를 우리말로 읽은 것. 그는 “재일동포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라며 “지금 조선학교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차별과 탄압은 제2의 4‧24라 불리고 있다”고 했다.


다큐 &#39;사이사-무지개의 기적&#39;에서 조선학교 교사(가운데)와 학생들의 모습. [사진 박영이 감독]

재일동포 아이들의 우리말 수업풍경도 정겹지만 그간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에서 보지 못한 내용도 많이 담겼다. 특히 1948년 4‧24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짚었다. 박 감독은 “냉전구조 속에서의 4‧24 교육투쟁은 이번 다큐를 제작하며 저도 새로이 인식한 부분”이라면서 “제주 4‧3사건, 남한 5‧10 단독선거와의 연관성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조선학교 박해 배후엔 미국 연합군 
영화에서 그는 조선학교 폐쇄령 배후에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압박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재일조선인사를 전공한 메이지가쿠인대학 정영환 교수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해방 당시 제8군 사령관 로버트 아이첼버거 중장의 일기를 증거로 제시했다. 정 교수는 “일기를 보면 1948년 4월 시점에 ‘조선에서 일어난 폭동’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제주 4‧3사건을 말하는데 그는 일본의 조선인들이 ‘빨갱이’와 연대해 재일점령군(미국 극동군)을 곤란에 빠트릴 데모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큐 &#39;사이사-무지개의 기적&#39;에 등장한 미국 연합군 아이첼 버거 중장. 광복 직후 일본에 주둔하던 그의 일기장엔 연합군이 일본 정부에 조선학교를 폐쇄하도록 압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나있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또 “그해 5월 10일 실시되는 (북을 제외한) ‘한국’의 단독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일본 문부성에) 그전에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는 요구를 했던 것 같다”면서 “어디까지나 교육문제였던 조선학교 운동을 반미투쟁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군국주의 지배하에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려는 요구를 냉전이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60만에 지나지 않는 (재일동포)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억압이 닥쳐온 것”이라 설명했다.
효고조선학교 김석효 이사장에 따르면 일본 문부성은 이미 그에 2년 앞서 “소수민족을 사회적 분쟁의 요인으로 찍고 그런 집단을 육성하는 학교설립을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각서를 낸 바다. 결국 1948년 4월 24일, 전쟁 후 일본에서 유일한 비상사태선언이 발령됐다. 무수한 희생 속엔 일본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열여섯 살 김태일 군도 있었다.

교복 저고리 칼에 찢겨도 지켜낸다 
박 감독은 “지금도 우리 동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조선학교 차별에 맞선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함께해줄 분이 한 사람이라도 불어나길 소망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949년 모두 폐쇄됐던 조선학교는 50년대 이후 조총련과 북한에 지원금을 받아 하나둘씩 다시 일어났지만 일본 우익과의 갈등을 깊어져갔다. 교복인 치마저고리가 칼에 찢기곤 하는 위협도 잇따랐다.
여전히 북한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이제 조선학교엔 북한뿐 아니라 한국‧일본 등 다국적 학생들이 다닌다. 국적은 달라도 뿌리는 같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같은 동포임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조선학교의 과거와 오늘을 담은 다큐 &#39;사이사-무지개의 기적&#39;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24일과 27일 상영된다.[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북한 평양국제영화축전에도 초청받아 
이번 영화는 20일 북한에서 나란히 개막한 북한 유일 국제영화제인 제17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도 초청됐다. 한국을 찾는 박 감독 외에 다른 제작진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이승민 프로그래머는 “한국 국적 감독의 작품이 남북한 영화제에 동시기 상영되는 건 거의 최초”라고 귀띔했다.
“해외 동포는 북에서 비자를 발급해주기에 이미 2010‧2014년 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왔다”는 박 감독은 “이번 영화를 남북의 모든 겨레가 함께 봐주기를 소망했는데 이번 초청에 많은 동포가 기뻐해 줬다”면서 “남과 북의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북한 방문기를 담은 ‘하늘색 심포니’로 3년 전 미국 달라스아시안영화제 다큐상을 받는 등 20대 때 처음 카메라를 들고부터 재일동포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그다. 영화의 부제 ‘무지개의 기적’에 새긴 바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말로 ‘키세키(きせき)’엔 기적‧휘석(광물의 종류)‧궤적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무지개는 과거와 현재‧미래를 이어줄 다리이며, 우리 학교를 지켜낸 기적, 휘석과도 같은 아이의 밝은 웃음, 동포들이 걸어온 발자취로서 궤적의 모든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로 더 많은 분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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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581832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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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김용규, 서민정, 이재봉 (엮은이), 김석범, 서경식, 최덕효, 정영환 (인터뷰이) 소명출판 2024-02-29




9.3
100자평 1편
리뷰 2편
세일즈포인트 751
일본사 주간 32위
328쪽



한반도와


일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이 민족과 언어,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대담집이다. 이들의 경험은 개인사와 민족사, 민족사와 세계사, 미시사와 거시사의 교차점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

재일조선인 지식인들은 20세기 들어 국권의 상실과 민족 분단으로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이주하여 식민주의와 분단체제에 의한 억압과 차별을 감내하면서 이를 극복할 비판과 저항의 형식을 창조해온 지식인들이다. 즉, 이들은 ‘자기 민족이 사는 공간’을 떠나야 했던 박탈과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자기 민족이 아닌 민족이 사는 공간’에서도 차별과 억압을 겪어야 했던, 민족과 민족의 사이-경계를 살아온 존재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소중한 것은 이런 사이-경계의 사유를 토대로 민족 내의 다수자의 체제와 이념의 차별적 폭력성을 집요하게 탐문하면서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담을 통해 우리는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즉 민족 문제를 치열하게 사유하면서도,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국가주의와 탈국가주의의 이념적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지점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질문하고자 하였다.



목차


들어가며
제1장 | 김석범과의 대담 - 재일조선인과 준국적 그리고 일본어문학
제2장 | 서경식과의 대담 - 조국, 모국, 그리고 새로운 아이덴티티
제3장 | 최덕효와의 대담 - 초국적 역사 연구에서 마이너리티의 시각
제4장 | 정영환과의 대담 - 재일조선인 역사와 닻으로서의 조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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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엮은이: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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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인문학의 길찾기>,<번역과 횡단> … 총 26종 (모두보기)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영국문화연구, 세계문학론, 포스트식민주의 등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은 『문학에서 문화로』, 『혼종문화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멀리서 읽기-세계문학과 수량적 형식주의』, 『문화 연구 1983』 등이 있다.


엮은이: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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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번역과 횡단>,<경계에서 만나다 : 디아스포라와의 대화> … 총 6종 (모두보기)
부산대학교 언어정보학과 교수. 언어와 문화, 통사론 연구, 생태언어학 등의 분야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은 『토에 기초한 한국어문법』, 『민족의 언어와 이데올로기』(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제약에 기초한 통사론과 의미론』(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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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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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인문학의 길찾기>,<아름다운 우리 소설 34> … 총 9종 (모두보기)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 근대문학, 재일조선인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근대소설과 문화적 정체성』, 『한국 근대문학과 문화체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말이라는 환영-근대 일본의 언어 이데올로기』,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버젓한 아버지에게』 등이 있다.


인터뷰이: 김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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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뱃속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1925년 오사카 이카이노, 현재의 이쿠노(生野)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 중국의 충칭(重慶)으로 탈출하기 위해 서울로 건너와 선학원(禪學院)에 머물다 일본으로 되돌아갔지만 신생 조국을 건설하는 일에 참가하기 위해 11월 다시 선학원으로 돌아온다. 1946년 여름 학비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왔다가 그대로 일본에 머물게 된다. 1947년 간사이대학(西大) 전문부 경제과 3학년에 편입 후 1948년 3월에 졸업한다. 1948년 4월 교토대학(京都大) 문학부 미학부에 입학하여 1951년 3월 졸업한다. 일본공산당에 입당 및 탈당(1948년 4월~1952년 2월), 『조선평론(朝鮮評論)』 편집(1951년 12월~1952년 2월, 제3호까지), 『평화신문(平和新聞)』 편집부 및 재일조선인문학회 등에서 일한다. 1952년 12월 『문예수도』에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을 발표한 이후 제주4·3의 형상화가 필생의 작업이 된다. 1965년부터 1997년에 걸쳐 완성된 『화산도(火山島)』 1~7은 그 대표적이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외에도 『1945年夏』(筑摩書房, 1974), 『萬德幽靈奇譚』(筑摩書房, 1971), 『詐欺師』(講談社, 1974), 『海の底から, 地の底から』(講談社, 2000) 등의 작품집과 『ことばの呪縛』(筑摩書房, 1972), 『民族·ことば·文』(創樹社, 1976), 『在日の思想』(筑摩書房, 1981), 『境を越えるもの』(文藝春秋, 2004) 등 많은 저서를 남기며 지금까지도 문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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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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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나의 미국 인문 기행>,<디아스포라 기행>,<[큰글자도서] 내 서재 속 고전> … 총 54종 (모두보기)
1951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게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에서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권론과 예술론을 강의하고 도서관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정년퇴직했다. 『子どもの涙-ある在日朝鮮人の読書遍歴(소년의 눈물)』(柏書房, 1995)로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プリーモ・レーヴィへの旅(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朝日新聞社, 1999)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민주주의와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료와 후학들이 그의 퇴임을 기념하는 문집과 대담집인 『서경식 다시 읽기』 1(연립서가, 2022), 『서경식 다시 읽기』 2(연립서가, 2023)를 펴냈다. 그밖에 지은 책으로 『半難民の位置から 戦後責任論争と在日朝鮮人』(影書房, 2002, 국내 번역서로는 임성모 역, 『난민과 국민 사이』, 돌베개, 2006), 『ディアスポラ紀行-追放された者のまなざし』(岩波新書, 2005, 국내 번역서로는 김혜신 역,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2023), 『植民地主義の暴力-「ことばの檻」から』(高文研, 2010, 국내 번역서로는 권혁태 역, 『언어의 감옥에서』, 돌베개, 2011), 『나의 일본미술순례』 1(최재혁 역, 연립서가,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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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최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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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릿쿄대학을 졸업하고 코넬대학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포니정재단 펠로우십 프로그램으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영국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부 조교수로 있다. 해방 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룬 박사학위논문 “Crucible of the Post-Empire : Decolonization, Race and Cold War Politics in U.S.-Japan-Korea Relations, 1945~1952”으로 International Convention of Asia Scholars(ICAS) 최우수인문학박사논문상을 수상했다. 주요논문으로 “The Empire Strikes Back from Within : Colonial Liberation and the Korean Minority Question at the Birth of Postwar Japan, 1945~1947”(American Historical Review 126, no.2, 2021.6), 「배반당한 ‘해방’-미군 점령하 ‘재일조선인 문제’와 냉전, 1945~1948」, “Fighting the Korean War in Pacifist Japan : Korean and Japanese Leftist Solidarity and American Cold War Containment”(Critical Asian Studies,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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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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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아시아 속 2.8독립선언, 그 역사적 의의>,<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총 5종 (모두보기)
1980년 지바(千葉)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났다. 메이지가쿠인대학(明治学院大学) 법학부를 졸업하고 히토츠바시대학원(一橋大学院)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 코리아 연구센터 전임 연구원,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양교육센터 전임강사, 준교수를 거쳐 현재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전문 연구 분야는 조선근대사 및 재일조선인사이다. 주요 저서로는 『朝鮮独立への隘路-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法政大学出版局, 2013, 국내 번역본으로 임경화 역,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忘却のための‘和解’『帝国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 2016, 국내 번역본으로 임경화 역,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푸른역사, 2016), 『歴史のなかの朝鮮籍』(以文社,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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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경계적 사유와 재일디아스포라의 위치

이 책은 한반도와 일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이 민족과 언어,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대담집이다. 이들의 경험은 개인사와 민족사, 민족사와 세계사, 미시사와 거시사의 교차점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 재일조선인 지식인들은 20세기 들어 국권의 상실과 민족 분단으로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이주하여 식민주의와 분단체제에 의한 억압과 차별을 감내하면서 이를 극복할 비판과 저항의 형식을 창조해온 지식인들이다. 즉, 이들은 ‘자기 민족이 사는 공간’을 떠나야 했던 박탈과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자기 민족이 아닌 민족이 사는 공간’에서도 차별과 억압을 겪어야 했던, 민족과 민족의 사이-경계를 살아온 존재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소중한 것은 이런 사이-경계의 사유를 토대로 민족 내의 다수자의 체제와 이념의 차별적 폭력성을 집요하게 탐문하면서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담을 통해 우리는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즉 민족 문제를 치열하게 사유하면서도,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국가주의와 탈국가주의의 이념적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지점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질문하고자 하였다.

왜 세대별로 보고자 했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의 고민과 사유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대적으로 어떻게 변주해왔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세대별로 바라보고자 한 이유는 이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추상화하기보다는 이들이 각자가 처한 역사적 시대와 정치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간 차별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들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대담자로는 『화산도』라는 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김석범(1세대), 『디아스포라 기행』, 『나의 서양미술순례』, 『언어의 감옥에서』 등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위치를 디아스포라라는 보편적 시각으로 풀어낸 작가 故서경식(2세대),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시킨 역사학자 정영환과 『포스트 제국의 시련-1945년에서 1952년까지 미국과 일본의 관계 속에서 탈식민화, 인종, 냉전의 정치학』이라는 논문으로 국제아시아학회의 인문학 분야 최우수 박사논문상을 수상하고 한일 관계를 넘어선 초국적 시각으로 재일조선인 역사를 재조명하는 최덕효(3세대), 이렇게 네 분을 선정하였다. 이 책은 이 네 분을 세대별로 나누어 한반도와 일본 사회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고민을 들어보고, 그 속에서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특히 대담자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 즉 민족, 세대, 언어, 문화와 관련된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이들의 디아스포라적 문제의식의 공통점과 차이를 듣고, 이를 통해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세대적·역사적 변화를 짚어보고자 하였다.

디아스포라의 위치가 존재하는 한 디아스포라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의 시각에서 역사적 경험과 이해를 구분 짓고 그 차이를 분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대의 관점은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약화되거나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즉 은연중에 세대의 변화에 따라 애초의 디아스포라의 문제의식이 변질되고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목적론적인 시각이나 세대 간의 단절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대 개념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경계하면서 이 개념을 중립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였다. 재일조선인 지식인을 바라보는 데 세대의 개념은 한계 못지않게 장점도 있다. 세대 개념과 디아스포라의 위치를 잘 종합하여 살펴볼 경우, 세대의 시각은 일본 내의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변화하는 사고와 역사적 경험을 복잡한 변화의 과정으로 읽어내는 한편,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선후배 세대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계승, 발전하는지, 또 어떤 점에서 달라지는지를 드러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대담자와 질문자 모두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디아스포아의 ‘위치’와 ‘맥락’이 존재하는 한, 세대가 달라져도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문제의식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민주의적 유산이 남아있고 국가주의의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디아스포라의 위치와 맥락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위치와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디아스포라적 사고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디아스포라의 정치학을 제기하고자 하였다.


pink1208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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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한 책이 나온 줄도 모르고...! 기획하신 한국의 교수님들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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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본색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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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읽었다.최덕효, 정영환 선생의 대담에서는 오랜만에 정말로 큰 지적 도전을 느꼈다. 책에서 3세대로 분류한 이 역사학자들이 벌이는 ‘대담한 기획’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최덕효 선생의 박사 논문은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에 대한 일종의 카운터 내러티브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일본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꼈는데, 어쩌면 역사상 단 한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난 서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최덕효 선생의 논문 작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존 다우어의 책에 느낀 불편함의 이유를 알아챘다. 이 책에는 ‘재일조선인’이 빠져 있었다. 패배가 아니라, 패배의 패배를 껴안고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최덕효 선생의 기획은 한편으로 서준식의 ‘옥중서신’에 대한 카운터 내러티브기도 했다. 서준식은 옥중 소감에서 한반도가 본류, 자이니치는 지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최덕효는 자이니치 중심의 역사 서술을 기획한다. 실로 대담하고 놀라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정영환 선생의 논문에 대해서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사를 자이니치의 시각에서 새롭게 서술하고자 한다. E.P 톰슨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계승하며 제3세계와 재일조선인을 연결하고, 유럽중심주의자인 에릭 홉스봄과 대결하려 한다. 김용규 선생님의 잘 준비된 질문과 풍부한 사전 조사, 이재봉 선생님의 예리한 질문이 돋보였다. 특히 김용규 선생님의 질문은 두 학자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큰 얼개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서경식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3세대 학자들과의 대담보다는 훨씬 더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2023년에 있었던 두 번째 대담은 선생의 악화된 건강 탓인지 몰라도 다른 인터뷰나 강의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냉소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리고 인터뷰는 늘 그런 것이라 해도, 서경식의 답변은 질문을 조금씩 빗겨 가기도 하고, 질문의 의도를 되묻는 방식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질문과 답 사이의 묘한 어긋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하기 보다는 흥미로웠던 이유는, 인터뷰어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선생님의 사적 대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의미가 좀 더 다가왔는데, 다시 읽었을 때 선생님의 발언에 선생님의 억양과 말의 스타일이 비로소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또 다른 인터뷰어인 서민정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생님의 발언을 검토하시겠냐는 물음에 서경식 선생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즉 두 편의 대담에 대해서 다시 읽거나 고쳐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김상봉 선생님과 대담을 하셨던 <만남>에서 자신의 발언을 되짚고, 혹시나 실수를 하실까봐 나 같은 사람에게 녹취를 맡기자고 제안하셨던 것에 비하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선생님은 대담해지신 것일까, 아니면 조금은 지쳐계셨던 것일까.물론 그 때문에 가장 서경식의 목소리에 가까운, 그래서 책의 제목인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실현하고, 또 서경식의 목소리를 귀에서 재생시키는 그런 대담이 되었다. 단,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독해에 요구된다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다.그리고 122쪽 이후의 서경식 선생이 말하는 ‘조국’-론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론으로 읽힌다. 정말로 흥미롭다. 특히 144쪽.“그런데 그것만 보면 안 되죠. 이 사람이 서양을, 서양 르네상스를 우리와는 다른 어떤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의 독창성이라고 할까, 특징을 볼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앞으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연구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일 조선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양이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나로서는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서경식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다니며 인문기행과 미술관 다니며 음악회를 다닌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는 지점이자, 여러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가야 할지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구절이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2부 대담은 나로서는 너무나 값진 대화의 기록이었다.책을 읽으며 발견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남겨둔다. 아무래도 대화를 녹취로 풀다보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맥락상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내가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90쪽이다. ”아까 얘기했던 귀화 안 해서 반갑다든지 하는 그런 이야기라기보다, 저는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보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내가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나는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대화의 맥락상, 일본이라는 나라가 재일조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문제적인 발언을 예고했다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가 된다. 즉 일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거다. 논리적이지 않은 연결인데, 서경식 선생님이 이렇게 실제로 말씀하신 것이면 앞서 말했듯이 수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편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은 확인이 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못 독해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이외에도 271쪽, 김용규 선생님의 발언에도 모호한 점이 있었다.”디아스포라라든지 ‘제3의 길’, 이런 것은 서경식 선생님도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던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2세대, 3세대의 경우,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의 공통성 등도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특성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디아스포라를 서경식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녹취과정의 실수일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선생님은 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디아스포라 담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고, 이 개념을 해체해 서경식이 다시 재발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 공통성을 중심으로 연대를 추구했는데 그가 이를 싫어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살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책의 자잘한 실수들.사실 녹취를 풀어낸 책의 특성상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긴 한데, 몇 가지만.1) 262쪽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고나“->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거나“2) 263쪽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n"- > "Eric Hobsbawm'어마어마한 품이 들어간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록으로 실린 최덕효 선생의 ’월경하는 재일‘은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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