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
신복룡 (지은이)글을읽다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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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치학과 번역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저자의 인생 철학이 담겨있는 잠언집 성격의 수필집. 노학자(老學者)가 평생 보고 듣고 겪고 읽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짧은 단상에서 긴 수필까지, 연구 서적에 없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미, 애환, 미담, 후회, 실패에서 얻은 교훈, 진정한 덕성, 인간사회의 비정함과 교활함, 배덕과 패덕, 슬픔과 원망, 선악 등의 방대한 내용을 동서양 고전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목차
서문
1. 내가 살면서 겪은 이야기
아버지의 추억과 정지용의 <향수>(鄕愁) / 태어남·소년 시절 / 엄마의 추억 / 어머니에 대한 오해 / 가난과 허기 / 병약한 소년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켈로이드 증후군 / 내 생애의 10대 사건 / 이름짓기 / 호적(胡適)과 파금(巴金) / 왜 결혼했지? / 혼기 / 나쁜 남편, 나쁜 아내 / 처제와의 결혼은 가능한가? / 자식은 뜻대로 안 되더라 / 혼자 살지 마시라 / 들쥐의 모정/ 내 일생에 잘한 일 딱 세 가지 / 가까이 다가가기 / 잊을 것은 잊어야 하는데 / 니미츠(Chester Nimitz) 제독의 기도 / 나는 너무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 늙음, 그리고 그 준비 / 노인 건강 / 난청(難聽) / 낙엽은 세월이더라 / “많이 늙으셨군요”라기 보다는 / 삶의 여유 / 죽음과 수유(須臾) / 인생의 황혼 / 손주들 / 늙어가면서 조심하며 준비해야 할 일들 / 버버리 코트 / 만국어
2. 내 학문에 얽힌 이야기
“너는 『시』(詩)를 읽었느냐?” / 슬픈 역사를 갖지 않은 민족은 이 세상에 없다 / 역사가의 책무와 자질 / 문희수 교수에 대한 추모의 글 / 승자와 패자의 차이 / 역사의 국유화 시대 / 화양동 만동묘의 추억 / 꿩에게서 배운다 / 잔치의 문화인류학 / 민중과 함께 죽을 것인가? 그들의 손에 죽을 것인가? / 서울 북촌 사투리 / 세계의 3대 상권 / 크레타 청년 이야기 / 문화인류학의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건강 / 왜 한국의 엄마들은 모두 무릎이 아픈가? / 골다공증(骨多孔症) / 결핵(結核) / 내 학문의 등대 조재관(趙在瓘) 교수님 영전에 / 강단(講壇) 공포증 / 수줍음 / 다리 힘 / 호적(胡適)과 파금(巴金) / 엄복(嚴復)의 현학(衒學) / 글쓰기 / 친일 논쟁 / 애국과 반일을 혼동하는 나라 / 대롱 시각[管見] / 데카르트의 가르침 / 나의 유학 시절 / 유학생이 고독을 견디는 10가지 방법 / 교수라는 직업 / 장수하는 직업 / 내가 마키아벨리를 좋아하는 이유 / 민주주의는 경험이다 / 하버드 졸업식에서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명예박사 학위 기념 연설 / 하버드대학 도서관의 벽에 쓰인 글씨[壁書] / “그대는 조국을 사랑하는가?” / 독서와 고뇌 / 추운 서재, 따뜻한 서재 / 번역과 오역 / 노자의 조건 / 대학 교수는 골프 치기 좋은 직업? / 젊은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무식과 무능 / 번역과 오역 / 노작(勞作)의 조건 / 대학교수는 골프 치기 좋은 직업?
3.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광릉에서의 약속 / 안창일 박사에 대한 추억 / 인생길에 조금 짐을 지고 가자 / 망각이라는 축복 / 황희(黃喜) 정승의 이야기 / 신화가 된 충무공 / “그릇에 넘치게 물을 담을 수 없다” / 신부(神父)의 덕목은 무엇일까? / 마해송(馬海松) 선생과 장성환(張聖煥) 목사 / 베푼 은혜를 잊어야 하는데 / 써서는 안 될 사람 / 써야 할 사람 / 인연 / 타산적인 지식인 / 수수꽃다리 / 부부 그리고 사랑 / 부모와 자식, 그리고 친구 / 죽을 때와 헤어질 때 / 그리움 또는 회한(悔恨) / 첫 직장 / 행복과 불행을 저울에 재어 보면 / 인색과 근검의 차이 / 인간은 푼돈으로 인색하게 된다 / 오해의 무서움 / 군인의 길 / “나라를 지키는 것은 튼튼한 참호가 아니다” / 누가 진정한 전사(戰士)인가? / 자동차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 / 길 찾기 / 한국이 싫어지는 무지막지 시리즈 / 보수와 진보의 차이 / 해방정국의 지도자들 / 관상 / 한국인의 상술 / 요즘 아이들
4. 내 마음의 교훈이 된 이야기
우리는 왜 사는가? / “교만은 천천히 자살하는 것” / 울리는 희극 배우, 웃기는 비극 배우 / 검소함과 사치함의 차이 / 삶이 평탄했다면 / 살아남는 후각(嗅覺) / “그때가 더 아름다웠다” / 살면서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데 / 바둑 이야기 / 인디언들은 광야에서 왜 말을 멈추는가? / 쉼과 게으름의 차이 / “인생을 흘려보내지 말아요” / 다시 어머니를 생각한다 / 효자가 받아야 할 축복 / 아버지에 대한 오해 / 딸 셋을 둔 엄마 이야기 / 편작(扁鵲)의 충고 : 부부 금슬 / 아타미(熱海)의 추억 / 부부 싸움 / 남녀가 사랑하는 차이 / “한 사람이 원통해도 천지의 기운이 막힌다” / 용서와 망각 / 배려 /인간이 짐승보다 못할 때 / 악인들 / 화구(禍口) / 암(癌) 이야기 / 섬 출신의 정치인이 많다 / 입이 무거워야 한다 / 현자와의 싸움보다 소인과의 싸움이 더 어렵다 / 등소평(鄧小平)의 인물 보는 법 / 배신은 한 번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 / 법조인 / 복수심 / 천수(天壽) / 내가 본 세계 10대 여행지 / 장강의 밑물은 고요히 흐른다 / 극한 상황 / “부안(扶安)을 아세요?” / 남자의 삼대 불행 / 은메달보다 동메달이 더 기쁘다 / 도산(倒産) / 모자(冒子) / 때밀이 스승
5. 종교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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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타는 듯한 염천의 콩밭에서 천하장사인 아버지의 밑에 깔려 짓눌린 여덟 살짜리 소년은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적삼을 붙잡고 달달 떨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총소리와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버지가 나를 세워 앉히셨다. 아버지는 자신이 기관총을 맞더라도 아들을 보호하겠다는 심정에서 본능적으로 나를 덮치셨다. 이것이 내 기억 속의 부정(父情)이다. 접기
꿩은 장거리 철새가 아니라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넘어가는 정도의 비상 실력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데 강폭의 눈대중이 어려운 꿩은 70%의 거리까지 날아갔다가 힘이 빠지면 중도에 포기하고 되돌아오다가 지쳐 빠져 죽는다. 곧장 갔으면 저쪽까지 날아갈 수 있을 텐데 지레 포기하고 되돌아오다가 죽는다. 죽은 꿩을 보며 어른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도 저런 거란다.” 접기
한참을 내려오니 무슨 가옥이 있고, 대문이 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런데 뭐가 확 튀어나오더니 내 품에 안기며 소리쳤다.
“아빠!”
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한 예닐곱 살 된 아이가 나를 자기 아빠인 줄로 알고 안긴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 살펴보니 그곳은 민가가 아니고 광릉고아원이었다. 나는 울 것 같았다. 그리고 미칠 것 같았다. 접기
나는 재일 조선인 작가 이회성(李恢成)의 소설 『다듬이질하는 여인』을 좋아한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아쿠다가와상(芥川文學賞)을 받았다. 평생 속만 썩이던 남편 앞에서 여주인공은 눈을 감으며 이런 유언을 남긴다.
“인생을 흘려보내지 말아요.”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침상에 누워 내가 때밀이 청년에게 말했다.
“왼손을 다쳐 때가 많으니 왼손 좀 잘 닦아주세요.”
그랬더니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말했다.
“이곳은 경찰병원 부근이어서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이 옵니다. 오시는 분마다 왼손을 다쳤으니 왼손을 잘 밀어달라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실상 왼손을 다친 분들에게는 오른손에 때가 더 많거든요. 인생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요?”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때밀이가 아니라 문수보살이었다. 접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조국의 신세가 개처럼 되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애국자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는 끝까지 일본이나 일본인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제임스 게일의 『전환기의 조선』)
그런데 2012년 8월 30일 퇴직을 앞두고 흉흉한 소문이 돌더군요. 내가 더 있으려고 미적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막내인 젊은 교수가 내 방에 들어오더니 눈을 똑바로 뜨고, “더 있으려고 수 쓰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시죠.”하더군요. 그 사람이 채용될 때 제가 심사위원이었습니다. 저는 명치가 막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그 잘난 대학”의 학풍인지, 아니면 그 젊은이의 개성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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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중앙일보 2024년 4월 6일자 '책꽂이'
저자 및 역자소개
신복룡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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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정치학 박사), 건국대학교 교수/석좌교수,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보훈부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
저서/역서 : <한국정치사>,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 <한국정치사상사>, <잘못 배운 한국사>, <해방 정국의 풍경>, <入唐求法巡禮行記>(역), <갑신정변 회고록>, <한말 외국인 기록>(전23권, 역).
최근작 : <한국정치사상사 - 하>,<한국정치사상사 - 상>,<한국분단사 자료집 세트 - 전6권> … 총 1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요지> 노학자의 인생철학이 담긴 잠언집이자 수필집
정치학과 번역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저자의 인생 철학이 담겨있는 잠언집 성격의 수필집. 노학자(老學者)가 평생 보고 듣고 겪고 읽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짧은 단상에서 긴 수필까지, 연구 서적에 없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미, 애환, 미담, 후회, 실패에서 얻은 교훈, 진정한 덕성, 인간사회의 비정함과 교활함, 배덕과 패덕, 슬픔과 원망, 선악 등의 방대한 내용을 동서양 고전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짧은 문장 속에 삶의 통찰을 담은, 우리나라 수필가들의 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이런 글쓰기는 저자가 대학 시절 읽었던 라 로슈푸코의 『잠언』에서 받은 영향이다. 라 로슈푸코는 프랑스 궁정의 귀족으로 궁정의 부귀와 음모, 생사와 온갖 염문 등에 대해 촌철살인 같은 문장으로 인생의 의미를 꿰뚫는 글을 썼다. 그 덕분에 저자는 교수 시절에도 인생의 의미를 담는 강의를 하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가지고, 강의노트나 교재에 삶의 지혜를 담은 예화를 가득 채워 학생들에게 전했고 그 내용이 축적되면서 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내가 살면서 겪은 이야기, 2장 내 학문에 얽힌 이야기, 3장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4장 내 마음의 교훈이 된 이야기, 5장 종교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6장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등 총 6장에 245개에 달하는 글이 들어있다. 중간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시(詩)’를 넣어 읽을 맛을 더했다.
건국대를 나왔다는 사실에 치욕적인 홀대를 당한 사건, 석좌교수로 있는 저자를 모욕적인 발언으로 쫓아내는 젊은 교수의 비정함,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어머니에 대한 냉담함, 아내와의 사랑, 자녀들과의 기쁨과 회한에 이르기까지 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고백하고 있어 책을 덮으면 일평생 솔직하고 충실하게 살아온 저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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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어 내면서 옅은 한숨 같은 게 제 입에서 나왔는데 회한도 아니고 안도의 느낌도 아니고 어떻게 내 입에서 이런 한숨이 나왔지? 의아했습니다. 어쩌면 저자인 신 교수님을 존경하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woorinara 2024-03-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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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풍경, 전봉준평전을 읽고 이 에세이를 집어들었다. 잘 읽어 나가다 ‘한국이 싫어지는 무지막지 시리즈‘편에서 책을 덮었다. 이 작가 책은 이것으로 끝이다~ 꼰x,꼴x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빅라이트 2024-10-14 공감 (0) 댓글 (0)
신복룡, <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 요약 평론 1
신복룡, <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 요약 평론 2
<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는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번역가인 신복룡이 여든두 해의 삶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 에세이다. 그러나 출생부터 현재까지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정통 자서전은 아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모와 가족, 학문과 대학사회, 여행과 인간관계, 종교와 죽음에 관한 245편의 짧은 글을 모은 잠언집에 가깝다. 2024년 출간된 327쪽의 책으로, 6부 사이사이에 정지용·이육사·전봉준·황현 등의 시를 배치했다. 책의 구성과 목차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인생관을 압축한다. 인생은 찬란하기만 하지도 않고 슬프기만 하지도 않다. 성취 속에는 상처가 남고, 실패와 가난 속에서도 사랑과 아름다움이 빛난다. 저자는 슬픔을 제거해야 할 불행으로 보지 않는다. 슬픔을 통과하면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교만을 버리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생각한다.
1. 가난과 전쟁 속에서 형성된 인간
제1부 <내가 살면서 겪은 이야기>와 제6부 <내가 보고 들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는 저자의 자전적 체험이 가장 많이 담겨 있다. 그는 194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일제 말기와 해방, 한국전쟁, 전후의 극심한 빈곤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은 낭만적인 고향의 기억이 아니라 허기, 질병, 공포, 가족의 희생으로 채워져 있다.
전쟁 중 비행기의 기관총 사격을 피해 콩밭에 엎드렸을 때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몸으로 덮었다. 아버지가 총탄을 대신 맞더라도 아들을 살리려 했던 순간은 저자에게 부정(父情)의 원형으로 남는다. 당시에는 그 행동의 뜻을 몰랐지만, 늙어서야 부모의 사랑을 이해한다. 이 책에서 부모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다. 사람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그 마음을 오해하고, 자신이 부모의 나이가 된 뒤에야 그 사랑을 깨닫는다.
가난은 저자에게 단순히 극복한 역경이 아니다. 굶주림은 사람의 존엄과 도덕적 판단까지 흔들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는 상투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는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고, 가족을 해체하며, 때로는 죄를 짓도록 내모는 잔혹한 조건이다. 국가와 사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개인의 성실성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학자의 현실 감각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가난은 그에게 근검과 노동, 배움의 가치를 가르쳤다. 그는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소중히 여겼고, 공부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취를 가난 극복의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성공에는 노력뿐 아니라 부모의 희생, 스승의 도움, 배우자의 인내, 시대적 행운이 함께 작용했다고 인정한다.
2. 학문은 직업이 아니라 노동이다
제2부 <내 학문에 얽힌 이야기>는 신복룡의 학문관을 보여준다. 그는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한국정치사·정치사상사·동학농민혁명·분단사를 연구했고, <전봉준 평전>, <한국분단사연구>, <해방정국의 풍경> 등을 집필했다. 또한 <한말 외국인 기록>, <군주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 방대한 번역 작업을 수행했다. 이러한 이력 뒤에는 천재적 영감보다 오래 앉아 읽고 쓰는 육체적 노동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노작’은 빨리 생산하고 인정받으려는 학문과 반대된다. 하나의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의 출처를 밝히며, 현장을 답사하고, 번역문의 한 단어를 고치는 일을 수십 년 반복해야 비로소 오래 남는 책이 나온다. 이는 그가 <전봉준 평전>을 쓰기 위해 호남과 충청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생존자와 후손을 만났던 태도와도 연결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역사가의 첫째 덕목은 애국심보다 진실성이다. 역사는 국가나 정파의 소유물이 아니며, 승자를 찬양하거나 패자를 모욕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국유화”를 경계한다. 국가가 정답을 정하고 국민에게 하나의 역사 해석을 강요하면 역사학은 선전으로 변한다.
이러한 관점은 친일 문제와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애국과 반일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되, 일본과 일본인을 영구적인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역사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민족주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이방인이 본 조선>과 한말 외국인 기록을 번역하면서 조선을 내부와 외부의 시선으로 함께 바라본 그의 연구 태도와 일치한다.
그가 마키아벨리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키아벨리가 악을 권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권력의 실제 모습을 도덕적 수사로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또한 교과서의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반대 의견을 견디고, 타협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생활 경험이라고 말한다.
3. 사람에게 입은 상처와 사람에게 받은 은혜
제3부는 저자가 만난 스승·동료·학생·성직자·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인간관계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사람은 받은 은혜를 잊고 작은 돈 때문에 인색해지며, 권력을 얻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지식인이라고 특별히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식과 명성을 자신의 출세에 이용하는 “타산적인 지식인”은 일반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특히 대학사회에 대한 기억에는 씁쓸함이 짙다. 퇴직을 앞두고 자신이 더 남아 있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채용 과정에서 자신이 심사했던 젊은 교수가 찾아와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평생을 바친 대학도 노학자의 존엄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 경험은 제도에 대한 환멸과 인간적 배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배신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를 냉소하지 않는다. 스승의 격려, 이름 없는 사람의 배려, 고아원의 아이, 목욕탕의 때밀이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서 오히려 삶의 진리를 배운다. 교통사고로 왼손을 다친 그가 때밀이에게 왼손을 잘 닦아 달라고 부탁하자, 때밀이는 다친 손보다 사용하지 못한 반대편 손에 때가 더 많다고 알려준다. 인간은 아픈 곳만 바라보지만, 실제로 돌보아야 할 곳은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반대편일 수 있다. 저자는 그 순간 때밀이를 “문수보살”처럼 느낀다.
4. 종교—교리보다 몸으로 하는 사랑
제5부 <종교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는 천주교 신자인 저자의 신앙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종교 세계는 폐쇄적이지 않다. 성경과 가톨릭 성인뿐 아니라 원효·혜능·불교 사찰·탈무드의 지혜를 함께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종교를 진리의 경쟁자로 보기보다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는 여러 길로 이해한다.
그에게 전교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신앙인이 교리를 정확히 설명해도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국가적 불의에 침묵한다면 그의 신앙은 공허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기보다 무관심이다. 이 점에서 그의 종교관은 퀘이커의 증언과도 통한다. 신앙의 진실성은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가보다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불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로 증명된다.
그러나 그는 악인을 무조건 용서하라고 쉽게 권하지 않는다. 용서와 망각을 구별하고, 반복되는 배신 앞에서는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굽힐 것인가, 부러질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도 무조건적 순종보다 현실적 지혜를 강조한다. 그의 신앙은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사회의 잔혹함을 인정하면서도 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5. 늙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법
이 책의 가장 절실한 부분은 노년과 죽음에 관한 글들이다. 저자는 난청, 건강의 쇠퇴, 기억력 저하, 타인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 늙음은 정신의 성숙만이 아니라 육체의 소멸이며, 사회적으로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노년을 실패로 여기지는 않는다. 노년에는 젊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모의 사랑, 배우자의 인내, 자식의 독립성, 망각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노인은 자녀를 붙잡기보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장례 절차와 묘비명까지 직접 정한 <나의 유언장>으로 책을 끝맺는다. 장례는 단출하게 하고 부의금과 조화를 받지 말며,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묘비에는 조국과 학문과 자손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말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어찌 차마 눈을 감았우?”라고 새기기를 바란다. 책에 수록된 유언장
평론—따뜻한 지혜와 완고한 훈계 사이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학문적 저술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인간 신복룡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전봉준 평전>의 엄격한 사료 비판 뒤에는 가난과 전쟁을 경험하고 부모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온 한 인간이 있었다. 그가 민중의 고통과 패자의 역사를 중시한 이유도 개인적 생애와 분리되지 않는다. 역사가의 문제의식은 연구실에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허기와 억울함, 타인의 희생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라 로슈푸코의 <잠언>에서 영향을 받은 짧은 글은 읽기 쉽고 기억에 남는다. 다만 245편을 한데 묶었기 때문에 주제가 반복되고, 깊은 성찰과 가벼운 생활 상식이 같은 무게로 배열된다. 여성·젊은 세대·한국 사회에 대한 일부 평가는 전후 세대 남성 지식인의 경험을 보편적 인간성으로 확장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개인적 사례에서 민족성이나 사회 전체의 특성을 추론하는 대목도 역사학자의 엄밀한 저술에 비하면 다소 성급하다. 잠언은 선명한 대신 예외와 복잡성을 지우기 쉽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성공한 원로 교수의 자기찬양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가난과 질병, 나쁜 남편이었던 순간, 부모에 대한 불효, 인간관계의 실패와 퇴직 때 받은 모욕을 감추지 않는다. 다만 완전히 참회하는 고백이라기보다 자신의 생을 정리하여 후손과 제자에게 교훈을 남기려는 유교적 자전의 성격이 강하다.
결국 <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에서 ‘찬란함’은 명예나 성공이 아니다. 아버지가 총탄을 막으려고 아들을 덮었던 순간, 낯선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로 착각해 품에 안긴 순간, 배우자가 곁을 지키고 스승이 배움의 길을 열어준 순간이다. ‘슬픔’은 그러한 사랑을 대부분 지나간 뒤에야 이해한다는 데서 온다. 이 책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거창하지 않다. 인생을 흘려보내지 말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되 베푼 은혜는 잊으며, 떠날 때에는 감사와 용서를 남기라는 것이다. 신복룡에게 좋은 삶이란 슬픔 없는 삶이 아니라, 슬픔을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지혜로 바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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