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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한 북한 고조선 연구의 고전 - 오마이뉴스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한 북한 고조선 연구의 고전 - 오마이뉴스


18.10.24 14:56ㅣ최종 업데이트 18.10.24 14:56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한 북한 고조선 연구의 고전
신간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김수지(soom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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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자 리지린이 쓴 <고조선 연구>가 한가람역사문화 연구소장 이덕일 해역으로 출간되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이자 <영조와 사도> 저자이고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해설'을 강연하기도 한 나는, 이번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교열 작업에도 참여했다. 남쪽에서 이미 출간된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1995년 초판)와 제목이 같기 때문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북한에서는 1962년 출간되었고, 남한에서는 1989년에 영인본이 나왔는데,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용문이 번역문 없이 한문 사료 그대로 실려 있어서 일반 독자가 읽기 어려웠다.

이번에 이덕일 박사가 모든 한문 사료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인 후 해제까지 달았기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고조선 강역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인지라 때맞춰 나온 중요한 책이라 하겠다.

<고조선 연구> 발표 뒤 북에서 정설이 된 대륙고조선설


▲1961년 북경대 박사논문으로 통과된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리지린은 이 책에서 일제식민사학자는 물론 봉건사학자의 사관을 비판함은 물론 중국의 사가들도 대국주의, 중화주의라 비판하면서 주체적인 사관 아래 고조선 역사를 재구성했다. ⓒ 도서출판 말관련사진보기
이 책의 저자 리지린은 북한의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서 일하다 1958년 북경대 대학원에 들어간다. 지도교수인 고사변학파 고힐강(顧詰剛)과 학문적 견해가 달랐음에도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재요동설'을 토대로 연구를 계속해서 1961년 6월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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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도 해방 후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는데, 1962년 이 책 <고조선 연구>가 간행되면서 북한학계에서 '낙랑군=평양설'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이 주류의 견해가 되었다. 장장 15년에 걸친 논쟁의 결과였다. 현재 남한 학계 일각에서는 북한 학계가 리지린의 학설을 완전히 폐기시켰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조선전사>는 고조선의 서쪽 강역에 대해 리지린이 주장한 난하설 및 대릉하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또한 해방 후 평양에서 근 3천여 기에 달하는 고분을 발굴해 한사군 낙랑군의 무덤이 아니라 위만 조선 이후 등장한 낙랑국(최리의 낙랑국, 일반인들에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로 잘 알려진) 유적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3천여 기 중에 한사군 무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북한 학계의 견해다.

남한 학계는 일제 강점시기에 조선총독부가 정립한 '낙랑군=평양설'을 아직도 부동의 '정설'로 받들고,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신봉하면서,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 계속되어 왔는데, 남한의 대표적인 고조선 연구 전문가인 윤내현 교수의 경우를 살펴보자.

리지린 논문 영향 받은 윤내현 교수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는 신채호와 같은 민족사학자, 그리고 리지린과 같은 북한 사학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만권당관련사진보기
단국대 박물관장을 지낸 윤내현은 1980년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수학하던 시절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리지린의 저서를 발견하고 고조선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원래 윤내현의 전공은 중국 고대 상(商)나라였다.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서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한국 고대사인 고조선을 만났던 것이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러시아의 고조선 연구 학자인 유엠 부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서 러시아 학자로 하여금 대륙고조선설을 주장하는 <고조선 연구>를 출간하게 했다. 윤내현도 유엠 부찐과 마찬가지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윤내현은 주류 고대사학계 내부에서 리지린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윤내현이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를 읽은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이라고 하긴 어렵다. 두 학자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윤내현 역시 '대륙고조선' 과 '낙랑군재요동'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리지린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접근 방법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이 다르다.

리지린과 윤내현이 보는 고조선 서쪽 경계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에 실린 기원전 5~4세기 조선 고대 국가들의 위치 약도. ⓒ 도서출판 말관련사진보기
고조선 강역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조선의 서쪽 경계 지역이 어디였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리지린은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서기전 3세기까지는 하북성 난하였다가 서기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영토를 빼앗긴 후 요녕성 대릉하 동쪽으로 축소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오늘의 중국 요녕성 개평으로 보고 있다.

윤내현 역시 발해 북안 난하 유역을 고조선의 서쪽 경계지역으로 보고 있고, 중국에게 밀려서 한때 축소되었다고 보지만 진·한(秦漢) 때 다시 난하를 국경으로 삼았다고 보는 점이 다르다.

또한 윤내현은 단군, 기자, 위만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는 리지린의 논문이 통과된 뒤 30여 년이 지나서 나온 책이기에 새롭게 발굴된 유물과 자료를 참조할 수 있었고, 때문에 리지린이 놓친 부분을 보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윤내현에 의하면, 기자는 고조선 서쪽 강역에 살던 인물이다. 상(商)나라의 제후국인 '기(箕)국'의 제후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기자는 상나라가 망한 후에 이웃 나라였던 고조선으로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 망명한다. 기자가 망명한 곳은 고조선 제국의 서쪽 변방(난하 유역), 즉 고조선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서쪽 경계지역이었다. 당시 고조선은 단군이 고조선을 창업한 이래 여러 나라들을 제후국(거수국)으로 거느리고 있던 제국이었다.

기자 일족이 망명을 하자 단군은 서쪽 변방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고 당시 그 인근에 있던 도읍을 장단경으로 옮겼다. 단군이 기자일족의 거주를 허락한 지역이 바로 오늘날 발해 북안 난하 유역인데, 기자조선은 단군고조선의 제후국으로서 고조선의 서쪽 경계 지역을 확정하는 데 단초가 된다.

이후 기자조선의 정권을 찬탈한 망명자 위만은 왕검성에 도읍하고, 한나라의 외신(제후국)으로 입장을 정리한 뒤에 한나라의 지원을 받아 위만조선의 동쪽에 있는 단군(고조선)을 공격한다.

이 공격으로 위만조선의 강역은 현재의 요서 지역에 있는 대릉하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당연히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의 강역은 난하 유역에서 대릉하 유역으로 축소된다. 그 뒤 위만조선은 한나라 무제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위만조선에 한사군이 설치된다. 따라서 당연히 낙랑군은 오늘날 난하 유역에 설치된 것이다.

윤내현의 이 논지는 고조선의 통치자는 단군에서 기자, 기자에서 위만으로 바뀐 적이 없고, 기자에서 위만, 위만에서 한사군이 설치되는 과정은 단군이 계속 통치하던 중에 전체 고조선 제국 영역의 서쪽 변방 경계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쪽 변방 경계 지역이 오늘날 난하 유역이라는 말이다.

윤내현은 중국 고대 문헌들과 우리의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의 문헌과 갑골문자의 분석을 통해 단군과 기자의 실존, 기자의 조선 망명설, 단군고조선이 제후국을 거느린 제국이었다는 것을 역사적 기정사실로 확정하고 논지를 전개한다.

예족과 맥족에 대한 견해차

반면, 리지린은 윤내현 논지와는 다르다. 리지린은 고조선을 건국한 고조선족은 예족이라고 본다. 단군을 고조선을 건국한 왕을 일컫는 칭호라고 보며, 단군사화(신화)에 조선반도와 산동지방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란생 신화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원주민이었던 조이부족과 다른 계통이었던 예족이 고조선을 건국한 고조선 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리지린은 예족과 맥족이 고조선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중국 입장에서 동이족이라고 불리는 '족'이 우리의 고대 국가 형성의 바탕으로 여겨지는데, 리지린은 이 관점에서 예족과 맥족이 고조선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세밀하게 설명한다.

또한 기자라는 명칭은 '기(箕)'국 이라는 봉지를 받은 제후의 명칭일 뿐이고,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해 왔다는 것은 후대에 조작된 전설이라고 본다. 또 리지린은 왕검성을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봤지만 윤내현은 왕검성은 위만조선의 도읍이지 단군조선의 도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안은 윤내현의 논지와 크게 다른 면들이다.

윤내현과 리지린 저술의 다른 부분은 '3장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에 대한 고찰', '4장 숙신(肅愼)에 대한 고찰', '5장 부여(夫餘)에 대한 고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리지린은 동이족이 우리 고대 국가의 뿌리라고 볼 때 이들 종족들이 중국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졌던 흔적들을 찾아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와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인지 소상하게 추적하고 있다.

윤내현은 고조선은 제후국(거수국)을 거느린 제국이었다는 논리로 동이족들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제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에 비해 리지린은 각 부족들의 흔적을 면밀히 소개하고 있다.

리지린의 논지에는 윤내현의 주장처럼 고조선이 제후국(거수국)들을 거느렸던 제국이었다는 이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두 학자가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함께 주장하고 있지만 고조선의 나라 형태에 대한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리지린은 1960년대에 중국 북경대에서 수학할 때 고힐강이 인정한 것처럼 고조선 관련 자료의 95%를 보았다. 그 결과 1962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경탄할 정도의 저서인 <고조선 연구>를 출간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정리된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은 남한학계에 의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중국에서 하도 많은 고조선 유적, 유물들이 발굴되자 남한의 강단사학계도 고조선의 강역은 평안남도에서 슬그머니 지금의 요하까지 확장시켰지만 '대륙고조선설'과 일란성 쌍둥이인 '낙랑군=요동설'은 모른 체하면서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북한 리지린의 대륙고조선설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윤내현의 학문적 성과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런 남한 현실에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출간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공부하는 학자와 한국사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는 모두 읽기를 미뤄서는 안 되는 책이다.


고조선 연구 - 상 - 개정판

윤내현 지음, 만권당(2015)


이 책의 다른 기사"김정배·최몽룡의 연구, 동의하지 않지만"


고조선 연구 - 하 - 개정판

윤내현 지음, 만권당(2016)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리지린 지음, 이덕일 해역, 도서출판 말(2018)


#리지린#윤내현#고조선 연구#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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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angco.net/new0822/?doc=bbs/gnuboard.php&bo_table=2kor_0&page=1&wr_id=21

이덕일의 해역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운영자











일반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 알라딘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 알라딘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리지린 (지은이),이덕일 (해설)
도서출판 말2018-10-15




































Sales Point : 801

10.0 100자평(10)리뷰(1)


765쪽

책소개
북한 사학계는 광복 후 '반도고조선설'과 '한사군=한반도설' 즉,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고고학자들과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문헌사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61년 북경대에서 통과된 북한 사학자 리지린의 박사학위 논문 '고조선 연구'가 소개되면서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이 북쪽 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일제식민사학자, 조선봉건사학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학자들을 '대국주의', '중화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민족의 주체적인 사관을 펼친 리지린의 논문은 지금도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쪽 사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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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제 대륙 고조선사의 진실을 찾아낸 연구에 경탄 ___ 6
화보 고조선 유물 ___ 26
머리’말 ___ 41

제1장 고조선의 력사 지리
제1절 고대 문헌 자료상에서 본 고조선의 위치 ___ 60
제2절 고대 문헌상에서 본 고조선 령역의 변동 ___ 80
제3절 기원전 2세기 말(한4군의 설치 시기)까지의 료수의 위치(연, 진의 장성의
동단과 관련하여) ___ 123
제4절 고조선의 패수의 위치에 대하여 ___ 175
제5절 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 ___ 197

제2장 고조선 건국 전설 비판
제1절 단군 신화 비판 ___ 222
제2절 기자 조선 전설 비판 ___ 271

제3장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에 대한 고찰
제1절 예족과 맥족에 대하여 ___ 300
제2절 예, 맥과 고조선과의 관계 ___ 354
제3절 《삼국지》와 《후한서》의 《예전》과 《옥저전》에 기록된 《예》의 위치에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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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우리 옛날 고대 국가들에도 적지 않은 력사 서적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일찌기 인멸되어 유감스럽게도 오늘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이 단 한 권도 없다.


P. 44 필자는 지금까지의 일본 부르죠아 력사가들의 조선 고대사 연구 성과들을 남김없이 검토 비판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고조선을 조선 고대사로 인정하지 않았고 고조선 력사를 더욱 흐리게 하였다. 그들의 황당한 학설이 오늘도 외국 학계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그들의 부당한 견해들을 될수록 폭로하고 비판하는 립장을 취하였다.  접기
P. 54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필자는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걸쳐 있었고, 서변은 우북평 지역에까지 이르렀다가 기원전 3세기 초 연에게 패전한 후는 오늘의 대릉하(패수) 이동以東으로 축소되였다고 인정하며,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오늘의 중국 료녕성 개평蓋平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P. 204 오늘 고조선 력사 지리를 론함에 있어서 《사기·조선 렬전》과 《위략》의 기록을 무시할 권리가 없다. 국경선인 패수가 압록강이라면 압록강 이남 백여 리는 위만을 비롯한 수다한 중국의 피난민들이 거주한 지역으로 돼야 한다. 또 방향으로 보아도 《위략》에는 조선왕이 그 서부 지방 백여 리를 위만에게 봉하였다고 썼다. 오늘 평양에서 압록강 이남 지역을 서부 지방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는가? 어쨌든 압록강 이남에서 연, 진, 전한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이러한 유물들이 우리의 주목을 끌수 있도록 출토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접기
P. 402 우리가 한4군의 각 현의 소재지를 일일이 고증하지 않더라도 우선 이상의 간단한 자료들에 근거하여서도 전, 후한 및 3국 위魏의 락랑군이 모두 압록강 이북에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위의 락랑군을 현 평양 지방으로, 그리고 대방군을 황해도 지역으로 비정한다면 우리들은 위에 인용한 문헌 자료들을 모조리 말살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외의 이 사료들을 자의로 말살해 버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 시기 락랑군을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가들은 이 문헌 사료를 말살할 만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접기
P. 495 맑스의 아세아적 공동체의 규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토지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고 토지는 오직 공동체의 소유이며 매개 성원들은 공동체를 떠난 독립적 생존이 불가능하며 오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생존할 수 있다. 공동체의 소유도 실제는 세습적 점유이며 국가적 소유와의 이중적 소유로 되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부여에 이러한 특성을 가지는 아세아적 공동체가 존재하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접기
P. 671 동이가 한족보다 먼저 철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오늘 중국의 사가인 범문란范文瀾206) 동지도 인정하고 있다.(范文瀾, 《中國通史》上: 원저 주) 나는 도리이鳥居龍?의 설을 아직 부정할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상에 렬거한 고고학적 자료들에 근거하여 고조선의 철기 사용 시기를 중국의 철기 사용 시기보다 늦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조선과 맥국의 철기문화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라고 말할 근거가 전연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철기 문화보다 선행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접기
P. 736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존 문헌 자료 상의 고조선 사회 경제 구성은 아세아적 공동체가 파괴되였으나 여전히 총체적 노예제의 유제가 강인하게 잔존한 노예 제도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노예제 사회이였고, 위만 이후 점차적으로 봉건 사회에로 이행하였다고 인정한다.
P. 736 우리는 정사의 사료를 취급함에 있어서 그 필자들에 곡필曲筆 속에 숨어 있는 진리를 밝혀내여야 한다. 그와 함께 봉건 통치 계급들로부터 시작하여 부르죠아 사가들까지도 《믿을 수 없는 사료》라고 인정되여 온 문헌 사료들을 오늘 우리가 아무러한 고증도 없이 덮어놓고 믿을 수 없는 사료라고 인정해서는 안 된다.


저자 및 역자소개
리지린 (지은이)


1916년 평남 강동군에서 태어나 1935년 평양 광성보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41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귀국 후 평양 광성중학교, 선천중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해방 직후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 법대 전신)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6년부터는 평양고등사범학교에서 근무했다. 한국전쟁 이후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 근무하면서 1959년 〈 광개토대왕비의 발견 경위에 대하여《( 고력사과학》1959년 5월)〉를 발표했다. 1960년에는 〈 고조선국가형성에 관한 측면의 고찰(상·하:《력사과학》(1960년 2월, 4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고조선 연구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학계는 광복 후 ‘반도고조선설’과 ‘한사군=한반도설’ 즉, ‘낙랑군=평양설’ 을 주장하는 고고학자들과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문헌사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런 와중인 1958년 3월경부터 리지린은 북경대 대학원에 들어가 고사변학파의 고힐강(顧詰剛)을 지도교수로 고조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61년 6월 말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된 후 같은 해 8∼9월 평양에서 열린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했다.

〈고구려의 서변《(력사과학》 1964년 3월)〉,〈《삼국사기》를 통해 본 고조선의 위치《(력사과학》, 1966년 3월)〉,〈《삼국사기》와《 제왕운기》를 통해 본 고조선의 위치《(력사과학》, 1966년 5월)〉,〈고구려의 영주제《( 력사과학》, 1967년 5월)〉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1976년에는 강인숙과 공저로《고구려사연구(사회과학원 출판사)》를 발표했다. 이후의 행적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고조선연구>,<고조선에 관한 토론 논문집> … 총 4종 (모두보기)


이덕일 (해설)


역사학자. 식민주의 사관으로 훼손되어온 한국사의 원형을 꾸준히 복원해오고 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1997)를 시작으로, 방대한 사료를 고증하고 세심하게 연구하여 첨예한 문제의식과 세밀한 문체로 대중과 소통해가며, 한국사의 주요 장면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어 왔다. 강단의 권위에 기댄 주류 사학계의 낡은 역사 해석을 거부하며, 그간 외면받아온 진짜 우리의 역사를 대중 독자에게 소개해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활발한 기고와 강연을 통해 대중을 역사 현장으로 이끄는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이덕일의 한국통사』 『조선 왕 독살 사건』 『조선왕조실록 1~5』(10권까지 근간)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도둑맞은 한국사』 등을 펴냈다. 접기

최근작 : <이덕일의 킹메이커>,<도둑맞은 한국사>,<당쟁으로 읽는 조선 역사> … 총 168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