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한국을움직이는엘리트그들은누구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

인터파크 도서 - 한국을움직이는엘리트그들은누구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


크게보기
미리보기
판매지수 17
?
공유하기트위터페이스북

저 : 이규연 외 10인공저
출판사 : 황금나침반
발행 : 2006년 04월 12일
쪽수 : 421
ISBN : 9788991949652

정가

18,500원

책소개


한국사회 엘리트 구조의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른 사상 유례 없이 방대한 네트워크 보고서!

'파워엘리트'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그 조직사회의 각종 의사결정 및 집행을 담당하는 권력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C. W. 밀스가 자신의 저서 〈파워엘리트〉에서 현대 미국의 고도의 권력집중 사실에 주목하고, 이 권력담당자를 파워엘리트라고 부르게 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파워엘리트들의 연줄에 관한 방대한 보고서로 2005년 9월 〈중앙일보〉에 연재된 탐사기획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대해부' 시리즈를 토대로 하고 있다. 신문 지면상 싣지 못했던 다양한 데이터와 내용을 대폭 포함시켜,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한국 사회의 엘리트 구조를 파헤침으로써 지난 40년간 국내 권력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파워엘리트의 범위는 기존 연구에 비해 매우 넓다. 정치인뿐 아니라 재계`학계`법조계`의료계`언론계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엘리트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펼쳐보기


출판사 서평


한국사회 엘리트 구조의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른 사상 유례 없이 방대한 네트워크 보고서!

‘파워엘리트’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그 조직사회의 각종 의사결정 및 집행을 담당하는 권력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C. W. 밀스가 자신의 저서『파워엘리트The Power Elite』(1956)에서 현대 미국의 고도의 권력집중 사실에 주목하고, 이 권력담당자를 파워엘리트라고 부르게 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파워엘리트들의 연줄에 관한 방대한 보고서이다. 2005년 9월《중앙일보》에 연재된 탐사기획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대해부’ 시리즈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 기획 시리즈는 기사 분량만 5만 자가 넘는 초대형 보도물로서 중앙일보 탐사기획팀이 기획,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장덕진 교수와 사회 네트워크 분석업체인 ‘사이람’이 분석했다. ‘사회 네트워크 분석SNA(Social Network Analysis)’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3만 1,800명의 학연·지연·혈연·직연별 연결망을 최대한 객관적․실증적․심층적으로 파헤쳤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인터뷰와 취재에 박차를 가해 파워엘리트들의 생생한 육성도 담았다. 이번 기획은 제10회 삼성언론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 기획의 탁월함과 기획에 쏟은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파워엘리트』는 신문 지면상 싣지 못했던 다양한 데이터와 내용을 대폭 포함시켜, 학연-지연-직연-혈연으로 얽힌 한국 사회의 엘리트 구조를 파헤침으로써 지난 40년간 국내 권력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파워엘리트의 범위는 기존 연구에 비해 매우 넓다. 정치인뿐 아니라 재계·학계·법조계·의료계·언론계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엘리트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국내외를 통틀어 이만 한 규모의 엘리트 집단을 해부한 전례는 없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 구조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한국사회의 흐름과 전망을 내다볼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왜 지금 엘리트를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네트워크인가?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조국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정점에 엘리트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독점과 부패의 상징으로도 여겨져왔다. 지난 시절 파워엘리트들은 ‘대한민국의 빛과 그림자’ 그 자체였던 셈이다.
‘이 탈권위의 시대에 새삼스럽게 엘리트를 운운하는 것은 어떤 선민의식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힘든 하루하루를 묵묵히 헤쳐가는 보통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차라리 공감이 가지 않겠는가’, ‘한국에 엘리트가 있기는 한가.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고사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하고 자식의 병역 비리나 저지르는 것이 무슨 엘리트인가’ 하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1명의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 조용히 돋아나고 있는 희망의 싹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의 엘리트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21세기는 네트워크의 시대이다. 네트워크는 인터넷에만 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비롯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21세기의 핵심 경쟁력은 숨겨져 있는 네트워크의 발굴과 분석, 가시화, 최적화 역량에 달려 있다. 과거의 ‘연줄대기’식 네트워크는 사회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각 분야의 융합을 불러오는 네트워크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네트워크도 감추어두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올바른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열린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모습일 것이다.


한국 엘리트 구조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엘리트 사회가 갈수록 뭉치고 있다고 믿는다. 돈 있고, 힘 있고, 학벌 좋은 사람끼리 뭉치고, 그 ‘연줄’로 더 많은 것을 거머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파워엘리트』는 엘리트 집단의 해체 및 변화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일부 대학과 삼성·현대 등 재벌가의 영향력이 여전히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본 결과, 전체 엘리트 집단의 모습은 분명 집중형에서 분화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엘리트 코스가 지각 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을 방대한 실증적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학교와 집안과 지역 연줄과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성공을 구축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맥’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 엘리트가 된 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를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저자는 미래 엘리트의 모델로 벤처기업인을 꼽는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실력, 창의성, 대중성, 여성이라는 미래 엘리트가 되기 위한 4가지 키워드를 추출했다.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바로 실력이다. 타고난 연줄은 훌륭하나 본인은 무능한 파워엘리트는 이미 퇴물이 된 지 오래다. 탁월한 실력 없이는 유명한 대학의 졸업장도 소용없다.
‘창의성’도 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파워엘리트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자질이다. 개척되지 않은 블루오션을 발견할 수 있는 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더 높은 수준의 정보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창의성이다.
인터넷 네티즌들의 여론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대중문화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평판이 좌지우지될 만큼 대중권력의 파급력은 엄청나게 커졌다. ‘대중성’을 갖춘 인재들도 21세기형 파워엘리트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여성이 한국 경제에서 인재로 발돋움해왔다. 파워엘리트 전체에서 여성 엘리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5.4%에 불과하지만, 세대를 거쳐 오면서 그 비율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당당함과 배짱, 현명함과 뛰어난 판단력이 한국 여성이 가진 힘이다. 이미 여러 방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한국 여성 엘리트는 국가 전체 차원에서도 남성을 뛰어넘을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 분석과 철저한 검증으로 네트워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사회 네트워크 분석 기법은 수십 년의 연륜을 가진 과학적 방법론이다. 네트워크 분석은,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중요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알짜배기 정보가 개인의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 있다고 본다. 엘리트 간의 네트워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며, 이러한 네트워크의 정도와 양상을 공시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네트워크 분석 기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이 있기 전까지 한국은 상대적으로 엘리트 연구의 불모지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구체적인 실증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단순히 ‘혐의’를 사실‘로 바꾸어놓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강력한 분석 도구와 실증 자료에 근거해 한국의 파워엘리트가 ‘실제로’ 어떠한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 40년간 한국이 키워온 엘리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 그들은 서로 어떻게 얽혀 있으며, 그 양상이나 밀집력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가?
* 한국의 엘리트는 동질적인 집단 내에서 대물림되고 있는가, 이질적인 집단으로의 엘리트 교체가 나타나고 있는가?
* 일반인들은 파워엘리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 그들이 사는 곳과 문화생활, 종교, 자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존경하는 인물, 주로 찾는 병원과 단골 가게는?
* 우리 시대 최고의 인맥왕들은 자신이 가진 네트워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 정부부처, 기업, 대학 사회단체 등지에서 가장 많은 엘리트들이 거쳐간 직장은 어디인가?
* 엘리트들끼리의 친화력과 응집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에서 엘리트가 되기 위한 문은 굳게 닫혀 있는가, 비교적 폭넓게 열려 있는가?
* 한국의 네트워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미래의 진정한 엘리트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 이 책 속에 모두 들어 있다.접어보기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ㅣ한국 엘리트 사회, 집중이냐 분화냐

제1장 왜 지금 엘리트를 이야기하는가

파워엘리트 분석의 의미
파워엘리트 선정 및 분석 과정

제2장 전통 명문의 퇴조

바뀌는 고교 지도
뜨고 지는 명문대
학연 최고 마당발 6인에게 물어보니

제3장 파워엘리트의 고향과 집안

엘리트의 산실, 진주, 전주, 제주, 안동
명문가의 엘리트

제4장 공직 엘리트의 어제와 오늘

넓어지는 등용 창구
고나운 타고난 엘리트
출신 지역에 따른 공직 엘리트 배출 비율
공직 엘리트의 경력 관리

제5장 떠오르는 여성 엘리트여풍 시대, 여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거제시는 여성 기업인들의 파워

제6장 한국 CEO들의 모든 것

CEO 분석을 시작하면서
분석 대상 CEO 205명의 선정 과정과 분석 방법
여전히 남성들이 독보적
CEO들의 사회 네트워크
분석 대상 CEO들의 경력 데이터 분석
CEO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마치며

제7장 직장 연줄의 힘

직장 연결망
'물 좋은' 직장은 어딜까
출신 학교별 직장 인맥

제8장 미래 엘리트의 모델, 벤처기업인

나는 엘리트가 될 수 업다?
벤처기업인의 등장
노력이 가장 중요
미래 엘리트의 성공 키워드


에필로그ㅣ미래 엘리트 육성,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본문중에서


어느 조직이든 리더나 핵심 간부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살피고, 그들 사이에 얽힌 구조를 알게 되면 대개 그 조직의 실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재계-관계-정계-전문직별로 엘리트의 특성을 꼼꼼히 분석해 적어놓았다. 독자들은 '내가 속한 집단-기관-기업의 엘리트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어떤 특징이 있는지', '내 고향이나 학교에서 어떤 엘리트가, 몇 명이나 나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_12쪽)

이번 분석 결과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의 엘리트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변화에 끌려가기보다는 철저한 계획하에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다가오는 한국의 네트워크 사회를 더 좋은 것으로 만들기위해, 그리고 미래의 진정한 엘리트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_412쪽)


저자소개
이규연 외 10인공저 [저]신작알림 SMS신청



리뷰
8.0(총 1건)
리뷰쓰기
최근순
추천순대한민국 파워엘리트
neityzz*** 2009/10/21
한국은 연줄 사회라고 한다. 관공서에서 민원을 처리하려고 해도, 급하게 병원 진료를 받으려 해도,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해도, 송사에 휘말려도, 연줄이 있으면 쉽게 해결되고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면 연줄이 만들어지는 계기는 무엇일까? 우펼쳐보기댓글(0)
추천(0)

"친일파가 나라 쥐고 흔든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친일과 망각> 2020

"친일파가 나라 쥐고 흔든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 오마이뉴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 265화

"친일파가 나라 쥐고 흔든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64] <친일과 망각> 뉴스타파 제작진
15.08.20 
이영광(kwang3830)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감106 댓글32


▲ <친일과 망각> 1부 첫 장면
ⓒ 뉴스타파

관련사진보기

흔히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 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아래 뉴스타파)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알아 보기 위해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친일과 망각>은 참여정부 시절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1006명의 후손 1177명의 재산과 학력, 직업 등을 추적했다. 제작 기간만 8개월이 걸렸다. <친일과 망각>의 기획의도와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 다큐를 제작한 <뉴스타파>의 박중석, 심인보 기자를 지난 17일 만났다.



▲ <친일과 망각> 제작진(왼쪽부타 박중석, 심인보 기자)
ⓒ 이영광

관련사진보기

-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친일과 망각>이란 다큐멘터리 반응이 뜨거운 거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요?
심인보 기자 : "많은 분이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홈페이지 접속이 많이 늘었고 유튜브에서도 13만 정도 보신 거 같아요. SNS 통해서 많은 분이 응원과 감상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심인보 기자 : "광복 70주년을 맞아 정부가 우리 역사의 한쪽 면만을 부각하기 위해 공영방송이나 사기업들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관제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말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를 저희 다큐멘터리가 다루다 보니,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나요?
심인보 기자 : "10년 전인 광복 60주년으로 돌아가 보면, 그 당시 분위기는 반민특위 해체 이후 줄곧 미루어져 왔던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대단히 뜨거웠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가 그 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성과를 냈음에도 친일 청산을 원하지 않는 세력들로부터 반격을 당했습니다.

그에 응당한 2차 생산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치적 논란으로 들어가 버린 후 10년이 지난 거예요. 그래서 광복 70주년에는 10년 전 일군 1차적인 친일 청산 작업의 성과를 받아 그걸 해석하고 반추하고 음미하는 사회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시 선정된 1006명의 후손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박중석 기자 : "막연하게 친일파 후손들은 잘살고 있고 한국 사회를 친일파가 다 장악했다는 세간의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이 부분이 과연 사실인지 어느 정도 친일파의 후손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이를 통해 친일 청산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청산뿐만 아니라 친일 극복의 과제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던지고 싶었던 거죠."

- 말씀처럼 흔히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번 취재를 통해 이 말을 확인하셨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심인보 기자 : "저희가 한 작업은 그러한 예상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서부터 틀렸는지를 정확한 사실관계에 따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통념이 잘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어요. 예를 들면 친일 후손들의 서울대 졸업 비율이나 유학 비율은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 놀랐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친일 후손들 가운데 파워엘리트의 비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낮아지고 있었어요. '친일파가 우리 사회 전체를 쥐고 흔든다'라는 것이 다소 과장되었지만 우리가 그 문제에 지나치게 열패감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대체로 잘 먹고 잘 살면서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를 완전히 쥐고 흔드는 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찌 보면 영화 <암살>이 흥행한 것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친일 문제에 대해 가진 감정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힘이고, 그 힘이 친일 후손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들이 공적인 영역보다는 의사라든지 대학교수, 기업인 등 노른자위 같은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친일청산이 완전히 실패하고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서 친일 후손도 사회적인 압박을 받고 있어요. 또 한편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일파의 역사도 정리되고 있어 그 진상은 생각하는 것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이었죠."

- 후손 1177명을 찾아냈잖아요. 전체 친일파 후손의 몇 %인가요?
박중석 기자 : "저희가 (친일파의) 취재 대상으로 삼은 건 2005년도에 대통령 직속으로 활동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1006명의 후손이었어요. 이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발표한 4476명 중 4분의 1수준이에요. 논란을 피하고자 국가기구가 확정한 1006명의 후손을 찾은 거죠. 첫 번째로는 1949년도 반민특위 당시 50명 정도의 심문 조서에 나와 있는 가족사항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2000년대 들어와서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많이 냈어요. 그 가운데 소송 당사자로 참여한 202명의 소송자료나 판결문 등을 통해 이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했죠.

지난 2006년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 위원회가 친일재산으로 확정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릴 때 토지의 지번까지 신문에 공시했어요. 한 5천 필지 정도 되는데 5천 필지의 등기부 등본을 일일이 뗐어요.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주소를 확인하며 1006명의 친일파 후손들의 명단을 확인했는데, 최종적으로 1177명이죠. 이게 전체의 몇%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1006명만 해도 후손들이 수만 명일 텐데 그걸 다 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선대의 친일행적 사과한 사람은 3명뿐



▲ 뉴스타파의 <친일과 망각>의 한 장면.
ⓒ 뉴스타파

관련사진보기

- 그럼 1006명 중엔 우리가 아는 이광수나 서정주 등 문인, 그리고 현재 논란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이나 박정희 대통령 등은 포함 안 되었나요?
박중석 기자 : "네. 박정희 대통령은 1006명에 포함 안 되어 있어요.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어 있죠. 논란의 대상이 몇 명 있었는데 예를 들어 박정희, 김성수, 방응모, 홍진기였어요. 그중 박정희와 홍진기가 빠지게 돼요.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빠질 수밖에 없었죠.

저희가 1006명의 후손 중 집중적으로 찾았던 게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들과 당시 조선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정치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들의 가문이었어요. 대표적인 게 민영휘인데 그런 가문들을 중심으로 최고 엘리트 계층의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봤어요."

-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심인보 기자 : "하나 소개하자면 친일파 후손을 찾을 때 정확한 인물을 특정해야 하잖아요. 저희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A씨와 서울대 교수 A씨가 동일인물인지 생년월일로 판단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직접 본인에게 확인했는데 이름과 생년월일은 같지만 다른 사람인 경우가 3명 정도 있었어요. 당사자에게 저희가 사과했죠."

박중석 기자 : "1차적으로 확인된 사람을 대상으로는 확인 작업을 하기 위해 메일을 보냈어요. 그중에 이름과 생년월일은 물론 심지어 한자까지 같아요. 근데 동명이인인 경우가 있었던 거죠.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게 어려웠죠."

-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박중석 기자 : "저희가 이 작업을 한 데엔 두 가지가 목적이었는데 하나는 해방 후 70년 동안 친일 청산이 안 이뤄짐으로써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것들을 주소지, 학력, 직업을 통해 확인하는 거죠. 그건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그들을 통해서 선대의 친일 행적에 대해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친일 청산이 필요하다는 우리의 인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솔직히 듣고 싶었어요.

왜냐면 박태균 서울 국제대학원 교수가 말했듯이 이분들은 이미 사회 중추에 계시잖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의견과 의제를 설정하는 데 영향력이 큰 오피니언 리더예요. 그래서 친일 청산에 대한 이분들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못 들은 게 아쉬웠어요. 결과적으로 선대의 친일 행적에 대해 공개 사죄하는 사람이 굉장히 드물었어요.

물론 1177명 중 몇 분들이 이메일이나 익명으로 선대의 친일 행적을 사죄하는 발언을 했지만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은 단 3명 만이란 게 아쉬웠어요. 물론 3명은 극소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죠. 선대의 잘못을 훌훌 털어버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친일과 망각>에서 증조부의 친일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중추원 참의였던 문종구의 후손)
ⓒ 뉴스타파

관련사진보기

- 그래도 3명이지만, 사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심인보 기자 : "자문 받은 분 중에 한 교수님께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친일파의 후손들이 다 해먹는다'는 세간의 통념을 확인하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폭로하고 그 사안이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좋지만, 그 뒤에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을 자조하게 한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4부는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저희 제작진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부에서 3부까지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각성 시키고 분노하게 했다면 4부에서는, 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입니다.

친일 후손들 역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므로 이들을 친일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친일 후손도 힘을 보태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이들을 다시 끌어안을 수도 없고요. 그런 의미에서 선조의 친일행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된다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들을 저희 프로그램 보시는 분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 올해가 광복 70주년이고 100주년까지는 30년밖에 안 남았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100주년 때도 지금과 똑같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
심인보 기자: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이인호 KBS 이사장과 같은 사람이 지금처럼 제멋대로 발언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놓아둔다면 친일파라는 말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는 민족과 국가를 배신한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그 사회적 합의를 저들이 침식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과거를 기억하고 함께 얘기하고 그에 따르는 2차 생산물들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광복 100주년을 행복하게 맞겠죠."

박중석 기자 : "우리 사회에서 친일 후손과 화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뭔지를 고민했는데, 그것의 전제는 과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과거를 잊기 위해서라도 혹은 과거를 넘어서 화해를 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죠. 친일 문제가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면 이것을 공론화할 수 있는 사료관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축적된 친일의 문제들을 보여줘야 하는데 제대로 못 만들었어요.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주세요.
심인보 기자 : "많은 분이 본 거 같은데 훨씬 더 많은 분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후원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저희가 장기간에 걸친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진실의 수호자인 3만5천 후원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박중석 기자 : "1부부터 4부까지 다 보시면 좋겠지만, 특히 4부를 많이 보시길 바라죠. 친일파 후손 가운데서 사과한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하지만, 그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놓았는지 봐야죠. 용서를 구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잖아요. 저희 다큐멘터리 제목이 '친일과 망각'인데, 잊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제목을 잡았거든요. 제목을 생각하면서 1부와 4부를 보시면 제작했던 의미들이 좀 더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 편집ㅣ장지혜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친일과 망각, #뉴스타파, #박중석, #심인보
추천106 댓글32 스크랩 페이스북

**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2016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강양구의 親book] <친일과 망각>

이대희 기자/강양구 기자 | 기사입력 2016.09.21.

그간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한 책 팟캐스트 '독서통'이 지난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끝났습니다. 대신, 앞으로는 '강양구의 친북'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친북은 앞으로 매주 월요일 <시사통> 코너를 전담할 새 콘텐츠 '먼데이 프레시안'의 책 팟캐스트로, 그간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독서통을 공동 진행한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단독 진행합니다.
====

친북은 첫 번째 책으로 <친일과 망각>(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을 선정했습니다.

<친일과 망각>은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정리한 책입니다. <친일과 망각>은 일제 강점기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자로 활동한 이들의 후손 1177명을 조사, 이들의 직업과 재산, 학력, 사는 곳 등 전방위적인 정보를 정리한 탐사 보도의 중요한 모범 사례입니다.


우리는 그간 '친일파는 나쁜 사람'이라는 상식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이 실제로 지금 한국 사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이들 후손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친일과 망각>은 끈질긴 조사와 취재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인 이들 가운데 적잖은 친일파의 후손이 어떤 혜택을 입고 우리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그들이 과거사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어떻게 한국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지난 19일, 친북은 이 책의 대표 저자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와 함께 과거사 청산이 왜 중요한지, 친일파의 후손이 어떤 혜택을 입으며 살아왔는지에 관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이야기했습니다.


▲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친일파 후손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


강양구 : 그간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한 독서통이 강양구의 친북으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독서통이 시사 이슈 중심으로 책과 인터뷰이를 선정했다면, 친북은 보다 다양한 주제로 독서 공동체와 소통할 예정입니다. 친북이 처음 고른 책은 제목부터 묵직한 <친일과 망각>입니다.


이 책은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으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자리에 이 책의 대표 저자 세 분 가운데 심인보 기자를 모셨습니다.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 제작뿐만 아니라,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보도 등 굵직한 보도를 여럿 하셨죠. 안녕하세요.


심인보 : 안녕하세요.


강양구 : 한국방송(KBS)에서 뉴스타파로 옮기셨어요.


심인보 : 작년(2015년) 2월에 옮겼습니다. 육아 휴직 후 KBS에 복귀해서, 2014년 말에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을 동료들과 함께 했어요. 이후 3부작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강양구 : 햇수로는 퇴사하신 지 거의 2년 정도 되셨습니다. 사실 KBS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잖아요? 2005년 입사할 때 많이 기쁘셨을 텐데, 어떻습니까? 후회 안 되십니까?


심인보 : 후회는 전혀 안 합니다. 기자로서는, <뉴스타파> 기자로서 일하는 게 훨씬 보람 있습니다. 후회가 있다면, 두고 온 사람들에 관한 미안함이죠.


강양구 :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를 못 보신 청취자도 꽤 되실 겁니다.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입니까?


심인보 : 작년이 해방 70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친일파에 관한 극단적 인식이 있습니다. '친일파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 권력 핵심을 쥐고 다 해 먹는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이제 다 지나간 옛날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도 많습니다.


정확한 실체는 누구도 모르죠. <뉴스타파> 제작진은 바로 이 대목에 집중했습니다. 저희는 친일파의 후손을 찾아서, 그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강양구 : 친일파 후손 1177명을 조사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거쳤습니까? 제가 다큐멘터리도 보고 책도 읽었는데, 시쳇말로 '삽질'이라고 해야 하나요? 매우 어려운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심인보 : 예. 탐사 보도라는 게 그렇습니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면 그럴 듯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나올지 모르고 땅을 파는 거죠.


힘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술자리에서 받았는데, 저는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해 봤자 유의미한 결과가 안 나올 것 같았거든요.



강양구 : 샘플은 어떻게 뽑으셨습니까?


심인보 : 여러 원 자료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진술 조서 등을 참고로 해 후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친일진상규명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재산조사위(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두 위원회가 활동했습니다. 당시 위원회가 친일 행위자의 재산을 국고 환수키로 하니까, 많은 후손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송 자료를 보면, 그들의 신원 정보가 나오죠. 이런 자료도 모았습니다.


강양구 : 땅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신원을 드러냈군요. (웃음) 저는 <뉴스타파>가 이 기획을 한창 취재 중일 때,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조금 걱정되더라고요. 친일파 단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제기되는 문제인데, 일종의 연좌제 아니냐는 의견이 있거든요. 이런 반발이 나올까봐 걱정됐습니다.


책을 보니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인 김정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께서도 연좌제 때문에 큰 고초를 겪으셨더라고요. 김상덕 위원장께서 납북되셨다는 이유로요. 그간 한국 현대사에서 연좌제로 인해 고통 받은 분이 많은데,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고 한들 친일파 후손에게 연좌제를 들이대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인보 : 저희도 다큐멘터리 제작 때 고민한 부분입니다. 제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안 한다고 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자료를 조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프로그램이 후손을 사법적으로 단죄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누구인지를 밝히자는 거였습니다. 그것이 언론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할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저희의 고민은 후손의 신분을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건가, 이거였어요.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선출직 공직자와 차관급 이상 공무원, 대기업의 오너 일가 정도를 공개했습니다. 실명과 구체적 재산 내역을 공개했죠. 저는 서울대학교 교수 이상의 학계 관계자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강양구 : 저도 그 대목이 약간 아쉽더라고요. 서울대 교수뿐만 아니라, 흔히 '스카이(SKY)'로 말하는 대학의 영향력 있는 교수라면 이름이 공개되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인보 : 저희가 독단적으로 이 문제를 결정하자니 부담이 컸습니다. 많은 전문가를 모시고 자문위원회를 몇 차례 거쳐 공개 범위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습니다.


▲ 우리는 친일파가 남긴 상처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았다.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것으로 보이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과 친일파 고관들. 해쓱해진 이완용 옆으로 임선준(任善準), 이병무(李秉武), 송병준(宋秉畯)이 나란히 앉아 있다. ⓒ프레시안 자료 사진


친일 비판,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강양구 : 네. 그런 노력 덕분에 균형을 잘 잡았다고 보시는 분도 많으실 거예요.


이 아이템을 접하고서 들었던 걱정이 하나 더 있어요. <뉴스타파>가 너무 쉬운 길 가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어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 치고 대놓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아이템은 대중에게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뉴스타파>가 공론장에 화두를 던지는, 논란이 불가피한 아이템이 아니라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아이템을 선택한 것 아닌가, 의심했죠.



물론 이 생각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책을 읽고서 바꿨습니다. 제가 너무 짧게 생각했더라고요. 듣자 하니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을 했다면서요?


심인보 : 네. 친일 문제는 누구나 비판하고 반대하죠. 그런데, 비판하고 반대하려면 그 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막연히 '친일은 잘못'이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이상의 무엇을 한국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쉬운 길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쉬운 길을 여태 누구도 가지 않았거든요.


강양구 : 그런 시도가 번번이 좌절됐죠.


심인보 : 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 왔느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의 길을 여신 임종국 선생. 이런 분이 정말 외로운 길을 걸어오셨을 뿐이거든요. 이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친일파에 관해 아는 지식도 정말로 적었을 거예요.


강양구 : 임종국 선생의 <친일 문학론>(민족문제연구소 펴냄), 그리고 임종국 선생의 후학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우리의 친일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죠.


심인보 : 그렇습니다. 친일 문제가 대중적 이슈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일종의 착시입니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친일파의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어떤 연구도, 어떤 보도도 여태 없었습니다.


친일파 후손 "난 자수성가했다"


강양구 : 이제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힘들게 사신다는 이야기가 몇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반면 우리는 친일파 후손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심 기자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듯이, 정확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친일파 후손이 잘 삽니까?


심인보 : 맞습니다. 왜곡된 역사의 수혜자인 것 같아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요.


강양구 : 책을 보다 흥미로웠던 대목이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해 보니, 친일파 후손의 상당수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맞는데, 정작 후손 대부분은 조상 덕이 아니라고 답변했다면서요.


심인보 : 네. 저희가 이 취재를 진행하면서 후손에게 메일을 많이 보냈습니다. 공통 질문의 하나가 '당신의 현재 사회적 성취에 친일한 조상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미쳤다고 생각하느냐'는 거였습니다. 0점에서 100점 사이 점수 척도로 대답을 요청했는데, 대부분이 0점이었어요. 전혀 도움 받지 않았다는 거죠.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분이 30점을 매겼습니다. 이 분도 설명을 보면, 물질적 도움은 없었으나 학구열이 높은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이 누구냐면, 진성호 전 국회의원입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시죠.


강양구 : 이 대목이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 자본이 가진 힘이 엄청나잖아요. 이런 학력 자본을 쌓는 걸 가능케 한 집안 분위기와 물질적 여유야말로 친일파 후손이 한국 사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중요한 토대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심인보 : 그렇죠. 이인호 KBS 이사장이 대표적 인물이죠. 이 분이 이명세라는 친일파의 손녀이십니다.

이 분이 서울대에 입학하셨어요. 당시 시대상을 보자면, 여자를 대학에 보낸다는 건 보통 집안에서는 내리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이후 이 분은 한국전쟁 직후에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미국 보스턴의 명문 여자 대학인 웰즐리 대학교에 입학하셨죠.


강양구 : 힐러리 클린턴이 나온 대학이죠?


심인보 : 맞습니다. 그 대학의 당시 학비를 지금 통화 가치로 환산하면 1년에 수 억 원에 달합니다. 그 엄혹한 시기에 이런 지원을 받으신 거죠. 과연 이 분이 정말 머리가 뛰어나서 유학까지 갔겠느냐. 물론 공부를 잘 하셨겠죠. 그런데 집안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환경에서 자라셨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 사회의 최고급 지식인과 교우하셨겠죠.


당시에는 유학가신 분이 매우 적었어요. 인재가 적었죠. 이 분은 귀국 후 곧바로 고려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셨고, 이후 서울대로 옮기셨습니다. 특히 학문 분야의 경우, 초창기에 유학하신 분이 해당 전공 분야의 대부가 되신 사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라신 분께서 "나는 친일파 할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 ⓒ연합뉴스


친일파 후손 중 의사가 많다?


강양구 :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았습니다. 친일파 후손의 직업군을 조사했더니, 의사가 매우 많았다고요?

심인보 : 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기업인(대기업 임원 이상)이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단일 직군 가운데 의사가 많은 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친일파 후손 가운데 의사 비율이 10%가 넘었습니다. 놀랍죠. 그 이유가 뭘까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의사는 지금처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집안에 어차피 돈은 있으니,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정치적 부침은 심하지 않은 직업으로 친일파의 후손이 의사의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강양구 : 친일파 후손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심인보 : 네. 친일파 일부는 반민특위에 끌려가기도 했죠. 의사와 비슷한 사례로 친일파 후손 가운데 여성의 경우 음대 교수가 많습니다. 예체능계 교수가 많죠.


강양구 :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책에도 나오지만, 친일파 후손인 모 대학교 음대 교수는 피난 중 부산에서 피아노를 사셨다고요.


심인보 : 굉장하죠? 그것도 아버지를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겁니다. 당시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가 얼마나 됐을까요?


강양구 : 지금도 아버지를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아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죠.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장성할 때까지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었던 사람이 당시 얼마나 됐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분들이 유학도 가고, 나중에 대학에 자리 잡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도 친일파 후손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다는 우리의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친일과 망각>의 결론입니다.


친일 정신은 살아 있다


심인보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워 엘리트가 정치인, 법조인 그리고 일부 언론인이잖아요. 이런 이들 가운데 친일파의 후손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런 영역에 속한 분 가운데 친일파 후손이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정부에 이르기까지는 많아요. 하지만 이후로는 점차 줄어듭니다.


파워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화했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겠죠.


강양구 : 해방 70년이 됐지만, 여전히 친일파 후손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리라는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는 거군요.


심인보 : 네. 그런데, 저희가 취재할 때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와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교수께서 이런 지적을 하셨어요. 친일의 정신, 친일파가 만든 사회 구조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죠.


강양구 : 저도 인상 깊어서 메모했어요. 책에 소개된 대목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 기관에서 친일파가 만든 구조가 어떻게 전수되고 연결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한홍구)

"식민지 시기 외세의 통치에 종속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형태만 달리한 채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임경석)


심인보 : 한홍구 교수께서 직접 쓰신 <사법부>(돌베개 펴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앞서 소개하신 말씀의 자세한 내용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강양구 : 임경석 교수의 지적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사드(THAAD) 정국을 보면서도 새삼 느끼지만,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 보수 정치인, 지식인이 사실은 공공연한 친미파잖아요. 그들이 '국익'이라고 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 연상되는 국익은 사실 '미국의 이익'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죠.


심인보 : 약간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친일파와 그 후손의 삶은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에 관한 교재죠.


강양구 : 만일 국권을 외세에 빼앗기는 시기가 다시 온다면, 과연 지금 지배 엘리트가 과거 친일파의 모습과 다를까 생각해봄직 하네요.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심인보 : 네. 그 시절처럼 의병이나 독립운동하실 분이 많이 나올지도 의문입니다. 너무나 쓰라린 역사적 교훈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친일 청산 제대로 했다면...


강양구 : <뉴스타파> 제작진이 상당히 많은 친일파 후손과 접촉했는데, 공개 사과하신 분이 딱 세 분이더군요.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경근 목사,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다들 사연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심인보 : 네. 사실 인터뷰 성사가 쉽지 않았어요. 세 명도 저희 기대보단 많은 숫자였습니다. 아예 안 나오거나, 운 좋으면 한 명 정도를 기대했죠.


강양구 : 김경근 목사 사연 들으면서 한편으론 애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자제들이 "아빠, 우리 친일파 후손이야?"라고 얘기했다고요. (웃음)


심인보 : 김 목사의 경우, 집안 내력을 모르셨어요. 이런 분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강양구 : 그렇겠네요. 아버지가 자녀들 앉혀놓고 "너희 할아버지께서 친일파였다"라고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심인보 : 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죠. 국가가 보수적으로 결정한 친일파가 1006명(친일진상규명위 발표)인데, 이 정도면 정말 거물급만 추린 거죠. 그런데 그 자손이 조상의 내력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사회적 평가와 반성이 제대로 되었다면 알았을 겁니다.


강양구 : 친일파의 경우, 일정 기간 공민권 박탈 같은 제재가 가해졌어야 마땅했는데요.


심인보 : 그렇죠. 애초 반민특위에는 공민권 박탈 조항이 들어있었습니다. 임시정부 강령에도 공민권 박탈과 재산 몰수 조항이 있었습니다.


강양구 : 연좌제는 당연히 나쁩니다만, 친일 당사자에 관한 제재가 잘 되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상당한 재산이 사회로 환수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 후손은 다른 이들과 적어도 공정히 경쟁했겠죠.


어쨌든 세 분께서 사과하셨는데, 정말 큰 용기를 내신 겁니다. 홍영표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이셔서 더 부담이 되셨을 텐데요.


심인보 : 사실 저희가 제작 당시부터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이가 홍영표 의원이었어요. 정치인이시고, 그 전에도 그런 논란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려졌거든요.


다행히 기대대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본인께서 느낀 정신적 압박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점에 관해 홍영표 의원께 제작진이 고마움을 갖고 있습니다.


강양구 : 나중에 홍영표 의원은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인터뷰 후기도 남기셨죠. (웃음) 친일파 후손 논란이 일어난 분 가운데 대권 후보로도 꼽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있죠. 이 분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심인보 : 일단 김무성 전 대표는 친일 문제에 두 가지로 엮였어요. 자기 집안이 친일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조상께서 친일 행위자 1006명에는 들어가지 않았죠. 친일진상규명위가 친일파를 선정하던 2009년 당시까지는 김무성 씨 부친인 김용주 씨에 관한 자료가 덜 확보되었습니다. 만일 지금 발굴된 자료를 당시 확보했다면, 발표된 친일 행위자 수가 1007명이 됐겠죠.


강양구 : 그 사실도 <뉴스타파>에서 보도했죠?


심인보 : 네.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 사돈 집안 역시 친일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집안의 친일 내역을 송두리째 부인하시죠. 본인 조상에 관한 나름의 사실을 갖고 있다면, 그럴 수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 분은, 거기서 한발 나가서 친일 청산 노력 자체를 폄훼하시죠. 정치인으로서 공공연히 과거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표현이 조금 그렇습니다만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친일파 청산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연합뉴스


여전히 친일 부역자 조사는 필요하다


강양구 : 이 책 내용에 관한 큰 줄기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집요하고 꼼꼼하게 조사하셨더라고요. 후손들이 어디 사는지 등에 관한 자료도 전부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끝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후련하십니까? 뭔가 찝찝하시기도 할 것 같은데요? 책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심인보 :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탐사 보도하는 사람의 로망이 있습니다. 전수 조사죠. 기사를 쓸 때, 아무리 한 줄짜리, 두 줄짜리 기사라손 치더라도 '전수 조사'라는 단어를 집어넣을 수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요. 우리가 다 봤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친일 후손 작업의 경우, 전수 조사가 아니에요. 그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전수 조사는 언론으로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더라고요. 과거 1990년대는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미비해서) 주민등록번호만 알아도 그 사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이런 것이 전부 불법이 됐죠.


선배 얘기를 들어보면, 그 때는 기자가 동사무소만 가면 관련 명부를 그냥 내주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취재에서 저희가 운 좋게 후손 일부의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갖고 저희가 알 수 있는 정보가 더는 없더군요. 관련 도움을 받더라도 불법이죠. 그러니, 일개 언론사에서는 전수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저희가 조사한 친일 후손이 아무래도 우리 눈에 잘 띄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제가 앞서 말씀드렸는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니 눈에 잘 띄죠. 그 때문에 전수 조사하지 않아 나올 수 있는 통계적 편향 등에 관해 아쉬운 대목이 있죠.


강양구 : 당연히 성공하지 못한 분, 낙오한 분, 아예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가신 분도 많으실 텐데, 이런 분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겠죠.


심인보 : 네. 작업 과정에서 그런 분도 찾았습니다만, 그런데도 충분하지 못했을 거예요.


강양구 : <뉴스타파>의 이번 작업을 기초로, 공적인 기관이 만들어져 관련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심인보 : 그렇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강양구 : 책을 보니 외국의 과거사 정리 사례를 소개하셨더라고요. 폴란드의 관련 기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심인보 : 민족기억연구소라고 합니다. 해당 내용은 제가 취재하지 않아서 저도 책에 나온 이상은 모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공공 기관이 중심이 되어서 공적으로 기록과 기억을 계속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양구 : 나치 독일의 점령기 때 부역자의 만행, 가해자의 행적과 피해자 사례 등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더군요. 이런 작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공적 기관에서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사람들이 알아야 비슷한 상황에 닥쳐도 사회가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심인보 : 그렇죠. 나의 이런 짓을 역사가 잊지 않겠지,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가져야만 하죠.


"KBS는 되살아날 것"


강양구 : 이제 서서히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 듯합니다. 뉴스타파가 저희 <프레시안>으로서는 참 부러운데, 초기부터 든든한 후원 회원이 계셨죠? 지금 한 4만 명 정도 되나요?


심인보 : 4만 명 조금 안 됩니다. 정말 고맙죠. KBS도 수신료를 받는 회사였는데, 제가 거기 있을 당시는 수신료를 내주시는 시청자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뉴스타파>에 와서는 4만 명 후원 회원의 마음이 크게 느껴집니다. 저희가 종종 후원 회원과 행사도 해서, 이때마다 여러분을 뵙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강양구 : 이 대목에서 약간 삐딱한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최승호 PD나 심 기자와 같은 분이 KBS나 MBC를 박차고 나와 독립 언론의 길을 걷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그렇다면 KBS나 MBC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KBS와 MBC는 정말 영향력이 큰 언론이고 또 공공의 자산이잖아요? 요즘 언론계에 몸담은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상황이 좋아져 KBS나 MBC가 이른바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좋은 언론으로 거듭날 내부 동력이 남아있느냐는 데 관해 회의적인 분이 많더라고요.


심인보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뉴스타파에 KBS 출신 6명이 있고, MBC 출신으로 최승호 선배가 계십니다. KBS의 경우, 좋은 기자가 지금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분들이 지금은 취재 일선에서 떠났습니다만, 정치 환경이 개선된다면 이 분들이 분명 제 역할을 하실 겁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지금 만들어진 구조와 사고방식이 계속 이어져서 그런 분들이 역할을 하는 걸 막는 문제죠. 아무튼 저는 내부에 계신 좋은 분들이 좋은 언론을 만들리라 확신합니다.


"<친일 문학론>은 뛰어난 탐사 보도 서적"


강양구 : 저희 친북이 매번 출연자에게 숙제를 드릴 예정입니다. 심 기자에게도 미리 숙제를 드렸죠. 이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자극을 받았거나, 큰 도움을 받은 책 한 권을 골라주십시오.


심인보 : 단연코 임종국 선생의 <친일 문학론>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문학 비평이 아닙니다. 매우 뛰어난 탐사 보도 서적입니다. 치열한 기자 정신이 녹아든 책입니다. 한 권씩 사셔서 조금씩이라도 읽어 가신다면, 정말 좋으실 겁니다.


강양구 : 평소 책을 좋아하나요?


심인보 : 기자가 되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취재를 핑계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강양구 :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가 있나요?


심인보 : 제가 SF 소설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어슐러 K. 르 귄입니다.


강양구 : 르 귄의 작품은 저도 좋아합니다. 르 귄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죠. 어린이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또 어른은 어른대로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르 귄의 작품이 많은데, 좋아하는 작품 하나만 꼽는다면요?


▲ <친일과 망각>(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 ⓒ다람
심인보 : 저는 어스시 시리즈(황금가지 펴냄)를 좋아하고요. <빼앗긴 자들>(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도 아주 많은 통찰을 담은 책이라서 좋아합니다. 글 자체가 우아하고, 그리는 세계가 아름다워서 읽는 게 즐거운 작가입니다.


강양구 : 요즘 읽으시는 책도 궁금하군요.


심인보 : 제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보도를 했는데, 이게 <뉴스타파>의 재벌 개혁 시리즈 일부입니다. 저희가 내년까지 재벌 개혁 시리즈를 이어갈 건데, 이 시리즈를 하려고 관련 주제의 책을 많이 찾아 읽고 있어요. 그 가운데 김상봉 전남대학교 교수(철학과)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펴냄)가 매우 신선했습니다.


재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러 학자가 대부분 경제 성장과 같은 비교적 좁은 지평에서 이야기하시는데, 이 분은 아무래도 철학자이시다보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십니다. 최근 출퇴근하면서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 기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강양구 : 네, 저는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 참 좋았습니다. 미국의 명문대 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재직 중이던, 저나 심 기자랑 동갑내기 저자가 성공을 코앞에 두고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과 싸우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의사가 막상 자기와의 죽음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의 일들이 담담하게 기록된 책입니다.

심 기자님도 또 친북을 듣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정작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인보 : 꼭 읽어봐야겠네요.


강양구 : 제가 한 권 선물할게요. (웃음) 오늘은 <뉴스타파>의 동명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친일과 망각>을 두고, 대표 저자 가운데 한 분인 심인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또 <프레시안>과 저도 좀 더 분발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심인보 : 네, 감사합니다.

알라딘: 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2016

알라딘: 사법부

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은이)돌베개2016
-03-21


































Sales Point : 1,472

9.2 100자평(12)리뷰(11)
이 책 어때요?
전자책
12,600원

443쪽
편집장의 선택
"사법부에 던지는 역사학자의 공소장"
한국현대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를 직접 읽었다. 시국사건이라 불리는 한국현대사의 정치사법은 이미 숱하게 밝혀졌지만, 중정-안기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재판 개입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들의 실명을 밝히며 권력을 지키려 법을 고친 정권의 지배자들과 이에 동조했던 법관들을 법의 비적 ‘법비’로 지명하고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

다행히 정치사법은 과거의 일이(라 믿고 싶)다. 최근 여러 과거사 사건이 다시 판결을 받았거나 제대로 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무죄로 재심을 끝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죄를 밝히는 동시에 사법부 스스로가 유죄를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법비의 오명을 벗고 법의 수호자이자 정의의 최종 심급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법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오히려 계급사법이 문제로 제기되는 요즘, 사법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참여는 여전히 절실하다. 이 책이 비적의 잔당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2016.03.25)


출판사 제공 북트레일러

====
책소개
2016년 3월 2일, 결국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정원장이 영장 없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있다. 이번 사안을 두고 삼권분립이 무색해진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번 법 제정은 국회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며 월권을 행사한 것인데다 사법부는 제 역할을 포기한 채 국가의 조력자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이러한 대한민국 사법부에 죽비를 내리친다. 10명 중 7명은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가 버젓이 공개되는 사법불신 한국사회를 낱낱이 파헤치며 사법부에 직접 공소장을 던진 것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였던 '법'이 정권의 조력자를 넘어 권력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사법부의 숨겨진 슬픈 역사 70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부터 2000년 이후까지 시대 순으로 역사 현장을 따라가며 각 시기별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여기에 각 사건들이 어떻게 재판을 받고, 어떤 식으로 판결이 내려졌는지 그 과정이 상세히 서술된다. 안기부의 보고서를 비롯해 재판일지와 판결문, 그리고 한홍구가 직접 당시 재판에 공석했던 판사와 변호사, 피의자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까지 인용되어 있다.


목차


저자 서문/ 프롤로그

1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사법부(1945~1971)
1 미군정과 이승만 시절의 법관들
2 5 · 16 군사반란과 사법부
3 무장군인 법원난입 사건과 동백림 사건
4 1971년 봄과 여름, 사법부의 결정적 판결 두 가지
5 사법파동, 사표를 쓴 판사 37인

2부 유신, 겨울공화국의 사법부(1972~1979)
1 유신쿠데타와 재임명에서 탈락한 법관들
2 NCC 구호금 횡령 사건, 재판의 배후는 중앙정보부
3 긴급조치 1호 · 4호와 사법권 침해
4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인혁당 사건과 공안검사들의 항명파동
5 ‘긴급조치 9호’하의 재판
6 ‘사법부 독립’을 요구한 원주선언과 명동 사건

3부 군사정권, ‘회환과 오욕’의 사법부(1979~1995)
1 10.26 사건, 허술한 절차와 신속한 처형
2 비서관 뇌물 사건, 안기부의 검찰 길들이기
3 국가모독죄와 안기부의 보고서들
4 안기부의 학생시위 엄벌
*연세대생 내란음모 사건과 안보수사조정권
5 즉심판결 판사들에 대한 안기부의 내사
6 불륜의 파트너, 조정관과 형사수석부장
7 법정소란, 사법부를 믿지 못하는 피고인들
*탄압받는 변호인들
8 “돌출 판결”인가, “소신 판결”인가
9 암흑시대의 빛나는 판결들

4부 정보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조정당하는 사법부(1982~1986)
1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1)
2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2)
3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3)
4 김근태 고문 사건 (1)
5 김근태 고문 사건 (2)
6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두 공범

5부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 과거는 청산되었는가?(1988~1997)
1 ‘공안판사제’를 꿈꾼 안기부
2 법관들에게도 이념교육이 필요하다?
3 민주화와 제2차 사법파동
4 제 3차 사법파동과 ‘정치판사’ 논란
5 사법부의 과거청산
*민주화 이후 검찰개혁은 이루어졌는가?

에필로그/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80 사법파동 당시 계엄령까지 생각했던 박정희는 진짜 계엄령을 선포한 뒤 사법부를 손보았다. 박정희는 1973년 말 새 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했다. 법관 재임명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껄끄러운 법관들을 걸러내는 작업이었다. 대법원 판사 중 절반이 넘는 9명(사광욱, 양회경, 방순원, 나항윤, 손동욱, 김치걸, 홍... 더보기
P. 217 정권의 압력으로 제구실을 못하자 법원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1985년부터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피고인과 방청객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법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학생운동이 이념적으로 급진화한 것은 법정소란 사태를 불러오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민정당사 점거 사건이나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같은 대형 사건에서 수십 명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게 되자 학생들은 너나없이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재판을 거부했다. 접기
P. 256~257 1986년 4월 15일 유태흥이 역대 대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기만료로 퇴임했고, 다음 날 법원행정처장 김용철이 새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유태흥이 사법부 수장으로 있던 기간은 한국 사법부의 역사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사법부는 권력에 완전히 종속되었고 법정소란과 재판거부바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시위 학생들에게 가벼운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보복인사 파문은 급기야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 접기
P. 356 사람은 참 가지가지다. 문귀동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문귀동을 써먹어 출세하려던 자가 있고, 문귀동의 죄악을 덮어버려야 정권이 산다고 생각한 자가 있고, 문귀동을 잡아넣는 것이 오히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자도 있다. 검찰과 사법부가 성고문 은폐의 공범이 될 때 거기에 기꺼이 협력한 자도 있고, 부끄러워한 자도 있고, 분해서 눈물을 흘린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인숙의 고통에 아파하며 눈물을 흘린 자도 있다. 접기
P. 396~397 사법부의 독립성은 헌법기관인 법관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으면 지켜낼 방도가 없다. 2007년 1월 말 긴급조치 사건 판결문 공개를 둘러싸고 법관의 이름을 포함시킬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법관의 이름은 판결문의 일부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하지 않는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자신이 미처 걷어보라고 말하지 못했던 그 바짓가랑이의 무게가 수십 년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양심 위에 드리워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한홍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고,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와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한민국사』(전4권)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사법부』 『역사와 책임』 『유신』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와 함께 걷다』 『특강』 등이 있다.

최근작 : <절반의 한국사>,<민주주의 역사 공부 2 : 5.18민주화운동>,<민주주의 역사 공부 1 : 4.19혁명> … 총 8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돌베개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근대중국사상의 흥기 1~2 세트 - 전2권>,<근대중국사상의 흥기 2>,<근대중국사상의 흥기 1>등 총 591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868,854점), 음악이야기 4위 (브랜드 지수 26,037점), 한국사회비평/칼럼 9위 (브랜드 지수 57,58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

“이 책은 법비에 대한 역사학자의 공소장이자 판결문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의 법학도와 법률가는 물론, 한국 사회의 사법정의를 고민하는 모든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더 나은 역사로 남기기 위해 늘 분투하는 한홍구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 사법부에 죽비를 내리친다. 정의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악마적 진실과 피해자의 눈물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법관들이 염치도 책임감도 없는 ‘법비’로 전락한 역사를 아프게 전한다.
-최강욱(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대한민국에 법은 존재하는 겁니까?
역사학자 한홍구가 눈물로 써내려간 사법 비사 70년

2016년 3월 2일, 결국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정원장이 영장 없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있다. 누구나 언제든 감시당할 수 있고, 조작간첩도 손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보다 더 잔인한 법이자 ‘21세기판 긴급조치’라는 말도 나왔다. 당시 국회에서는 이를 저지하는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192시간 이어졌으나 결국 ‘법’이라는 이름 아래 테러방지법은 합법화됐고, 여당은 SNS나 포털 서버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추진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안을 두고 삼권분립이 무색해진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번 법 제정은 국회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며 월권을 행사한 것인데다 사법부는 제 역할을 포기한 채 국가의 조력자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이번에는 이러한 대한민국 사법부에 죽비를 내리친다. 10명 중 7명은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가 버젓이 공개되는 사법불신 한국사회를 낱낱이 파헤치며 사법부에 직접 공소장을 던진 것이다. 우선 『사법부』는 이승만 정권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겪은 고통의 순간을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법부가 당한 고통이 전부는 아니다. 사법부는 안기부나 중정을 비롯한 정권과의 관계에서 피해자였지만 시민들과의 관계에서는 살해공범자이자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였던 ‘법’이 정권의 조력자를 넘어 권력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사법부의 숨겨진 슬픈 역사 70년이 이 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 대공개
재판일지와 판결문으로 읽는 대한민국 현대사
한홍구가 『사법부』의 집필 시작을 마음먹은 건 2004년 10월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 활동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들을 직접 읽으며 그간 풍문으로 오가던 중정-안기부의 재판 개입 과정을 문서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참혹했고 슬펐다. 자료들을 바탕으로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2007)을 쓰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책이 나왔지만 그동안 의지가 흔들렸던 적은 없었다. 사장시키지 않은 국정원 기밀문서와 보고서 「사법편」에 기초해 『한겨레』에 연재를 했으며, 틈나는 대로 사법부에 관한 강의를 하러 다녔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일부 사건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럼에도 사법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거듭 절망했다. 직접 법을 위반한 자들을 기록하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사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여전히 ‘법’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누군가 계속 법을 둘러싼 범죄를 문제 삼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봤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운 시선과 현재적 시각으로 지금의 독자들을 일깨웠던 한홍구의 장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책의 큰 줄기는 이승만 정권부터 2000년 이후까지 시대 순으로 역사 현장을 따라가며 저자가 골라낸 각 시기별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데 있다. 여기에 각 사건들이 어떻게 재판을 받고, 어떤 식으로 판결이 내려졌는지 그 과정이 상세히 서술된다. 안기부의 보고서를 비롯해 재판일지와 판결문, 그리고 한홍구가 직접 당시 재판에 공석했던 판사와 변호사, 피의자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까지 인용되어 있어서 한국현대사의 증언록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꾼으로서의 한홍구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번 책을 통해 자료들을 버무려 또 한 권의 현대사를 만들어낸 역사학자 한홍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지배해온 ‘법비’들의 권력 투쟁사
‘법비’라는 말이 있다. 법을 자기 식으로 절대시하고 도구 삼아 비적 행위를 해왔던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한홍구에 의하면 법비는 비적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잔인하다. 저자는 『사법부』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면에 가려졌던 ‘법비’들을 한 명씩 호명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고치거나 추가했던 정권의 지배자들을 비롯해 그에 동조했던 법관들의 실명과 그들의 언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법을 이용하고 법을 지배해온’ 대한민국 법비들을 한자리에 모은 ‘법비 콜렉션’인 셈이다.
5.16 군사반란 이후 1963년 12월까지의 군정 기간은 법원이 완전히 군부의 통제하에 있었던 사법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해 사법부는 그야말로 제사에 대추 밤 놓듯이 구색을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에는 “사법부의 목을 죄는 여러 가지 독소조항을 심어놓았”(79쪽)고 “국가관이 없는 판사들이”라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서 대거 탈락시키기도 했다.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하”(101쪽)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권은 법관들을 협박하고 좌천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판결이 나도록 서슴지 않았다. 가령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군법회의에서 변론 중 자신은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호를 하고 있으나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싶은 심정”(226~227쪽)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휴정 중에 옆방으로 불려가 잔뜩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7월 15일 법정에서 한 변론을 문제 삼아 법정모욕죄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정식재판도 아닌 즉심에서 정권의 뜻을 거슬러 인사조치 된”(200쪽) 박시환 판사도 있었다. 그는 1985년 인천공단 가두시위 관련자들 11명에게 무죄를 내렸다는 이유로 안기부의 압력을 받고 결국 춘천지법으로 좌천됐다. 법을 수단 삼아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늘리려는 권력 투쟁이 사법부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법과 정의, 그리고 사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의 판결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노동문제와 관해서 약자에 가혹하고 정치권력에 편들기를 일삼는다는 그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역주행”을 한다는 가혹한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날선 불신의 눈초리가 어디 지금뿐이던가. 고문과 조작으로 쓰인 조사서를 근거 삼아 무기징역과 사형을 남발하는 동안 무고한 시민들이 세상을 떠났으니 작금의 사법불신의 씨앗은 사법부 안에 있는 셈이다. 한홍구는 사법부의 70년 역사를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겠다는 법관들의 다짐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시비를 가려 보자는 것이다.
물론 사법부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려다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했던 김병로 대법원장이 있었는가 하면, 사법부를 군대의 범무감실 정도로 여겼던 박정희 정권을 서슴지 않고 도우며 “유신체제는 가장 좋은 제도”(128쪽)라고 말했던 민복기 대법원장도 있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 선배들의 판결을 사죄하며 과거 청산을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취임사에서 발표했지만 충분히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대법원장 외에도 사법파동에 동참하거나 소수의견을 냈던 판사들을 비롯해 소신껏 피의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변호사들이 많았다. 화이트칼라에게 유독 엄격해 석 달 동안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를 30여 건이나 정식재판에 회부했던 박태범 판사, 제1세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시국사건을 도맡았던 조준희 변호사,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눈물 없이는 상기할 수 없는 ‘권 양의 투쟁’”을 눈물을 쏟아가며 변호했던 조영래 변호사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홍구는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안기부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적 판결을 내리고 변호했던 정의로운 법관들의 이야기로 채웠다. 이러한 분들은 사법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동시에 다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물으며 사법부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불을 밝히려는 한 역사학자의 실천적 작업물
오늘도 법원에는 수많은 과거사 사건, 특히 조작간첩 사건들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유죄를 내렸던 사법부에 다시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 인혁당 사건(2007), 오송회 사건(2008), 아람회 사건(2009), 김근태 고문 사건(2014) 등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뒤늦게나마 억울함을 벗었지만 고통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사법부』에는 사법살인으로 짓이겨진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한홍구는 독자들에게 이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 책을 “아프게”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모진 고문과 억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피의자들의 삶을 읽으며, 통곡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홍구는『사법부』가 박제된 역사를 다루는 책으로 머물길 원치 않는다. 이 책이 세상에 나가 과거를 흔들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실제로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경우, 저자의 노력으로 재심에 들어갔고 2009년 8월 28일 결국 무죄를 받았다. 책을 마무리하는 중에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썼던 한경희 씨의 아들 송기수 씨가 ‘한경희 통일평화상’을 제정해 억울하게 고통 받는 수많은 ‘한경희’들 명예회복 길을 열겠다고 했고, 지난 3월 16일 첫 수상자를 발표했다. 한홍구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 상의 제정 소식을 알렸다.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한 역사학자의 모습이 곳곳에 담긴 이 책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 법과 정의가 무너진 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영문도 모르게 법정에 설 수 있으니 말이다.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로마 제국 쇠퇴의 첫 번째 징후이자 원인으로 꼽히는 오만방자한 근위병의 수도 앞서 언급한 1만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근위대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창설되었는데, 이 영리한 황제는 자신이 찬탈한 통치권을 그럴듯하게 채색해 주는 것은 법률이지만, 그것을 유지해 주는 것은 군사력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고 원로원을 위협하고 ... 더보기
겨울호랑이 2022-04-15 공감 (40) 댓글 (6)



시민들은 법을 잘 지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처음부터 법률문제는 '포기가 곧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법률문제에 시달려본 구술자 중에는 판검사들이 변호사를 통해 돈을 받는다고 믿고 변호사에게 거액을 건넨 사람도 있습니... 더보기
겨울호랑이 2022-03-08 공감 (53) 댓글 (0)



법률을 전공한 사람들은 직업상 일정한 질서의 습관, 형식을 좋아하는 취향 및 조리정연한 사고를 좋아하는 일종의 본능적 성향을 얻는다. 이런 자세는 당연하게 그들을 대중의 혁명정신과 무사려한 감정에 적대적으로 만든다. 자신들의 전공에서 얻는 법률가들의 특별한 지식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회에서 특권적 지위가 부여된다. 그리고 그들은 지식의 측면에서 일종의 특권집... 더보기
겨울호랑이 2019-09-09 공감 (41) 댓글 (6)


더보기

마니아
읽고 싶어요 (61)
읽고 있어요 (5)
읽었어요 (71)
이 책 어때요?



구매자
분포



1.0% 10대

0.7%


8.4% 20대

5.2%


14.3% 30대

15.6%


13.2% 40대

20.1%


5.7% 50대

11.5%


0.4% 60대

3.8%
여성 남성

평점
분포

9.2





잘 읽겠습니다. 그리고 누누히 얘기하지만 별 내용도 없이 별점테러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서 구매한 회원에게만 서평을 쓸수 있게 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은하철도의밤 2016-03-29 공감 (25) 댓글 (1)
Thanks to
공감





2016-113_[관악도서관]
대한민국에 법은 존재하는 겁니까? 역사학자 한홍구가 눈물로 써내려간 사법 비사 70년. 누군가는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사람도 있는 반면, 대부분은 권력 앞에 법을 버린 역사의 기록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법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지키미 2016-05-09 공감 (12) 댓글 (0)
Thanks to
공감





우리 근현대사에서 사법부는 피해자였으며 동시에 가해자였다. 그 사례들을 방대한 자료 검토를 통해 꼼꼼하게 보여준다. 합리적 의심을 통해 공정하게 사실을 밝혀야 할 법원과 검찰의 책무가 그간 왜 실패해왔는지, 그 역사를 기록과 사실관계에 근거해 논증하는 것이 정말로 '편향적'인가?
goldfinch 2016-04-16 공감 (12) 댓글 (0)
Thanks to
공감





이 책의 원본이 되는 한겨레 연재를 몇년전 보고 또 보며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나오는군요
美 胤 郞 2016-03-26 공감 (9) 댓글 (0)
Thanks to
공감





참 많이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묵향 2016-06-27 공감 (8) 댓글 (0)
Thanks to
공감


더보기




마이리뷰
구매자 (2)
전체 (11)
리뷰쓰기
공감순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 이, 사법 살인마들!!



자다가도 인혁당 사건만 생각하면 벌떡 벌떡 일어난다. 무고한 국민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 판결을 받자마자 불과 18시간 만에 8명 전원 사형 당했다. 아무리 독재국가 라지만 이게 말이 되나? 이 날을 국제법학자 협회에서 뭐라 부르는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부른다. 2007년이 되어서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박근혜 대통령 각하께서 뭐라 하셨더라? “판결이 두 개 나오지 않았냐?” 이런 ㅁㅊㄴ을 봤나. 물고문, 전기고문, 온갖 구타에, 공판조서마저 변조되어 사형판결 18시간 만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과 유족들 앞에서 이게 인간으로서의 할 소리냐? 이런 ㄱ 같은 ㄴ을 일국의 대통령이라 뽑는 국민들은 제 정신이냐? (이 당시 대표적인 살인마들이 대법원장 민복기, 검찰총장 신직수, 이들에겐 부관참시도 관대하다. 신직수 손자인 신현성이 ‘티켓 몬스터’ 대표라니. 삼족을 멸해야 하거늘.)



<사법부>를 읽고 놀랐던 건 문민정부에 비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이른바 독재정권 시절에 오히려 빛나는 판결이 많았다. 친일파 이승만 밑에서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던 김병로 대법원장, 이승만은 국회가 통과시킨 서민호 의원 석방 결의안에 불복, 계엄령을 선포, 야당의원 버스를 크레인으로 견인했다. 이런 버러지를 국부라고?? 박정희 치하에서 대법원은 박정희가 밀어붙인 국가배상법 2조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박정희는 위헌 의견을 낸 손동욱, 김치걸, 사광욱, 양회경, 방순원, 나항윤, 홍남표, 유재방, 한봉세 등 대법원 판사 9명을 모두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이후 군대에서 죽는 국민은 개 값이 되고 만다.)



<다리>지 사건, 통혁당 사건 때 목요상 판사는 법원에 중앙정보부 조정관이 네 명이 상주하는 가운데서도 피고인들을 보석으로 풀어줬다.



이범렬, 홍성우, 김인중, 최영도, 장수길, 금병훈, 김공식 판사는 사법파동의 대표적인 법조인이었다. 물론 이후 ‘조정’당했다.



검찰 역시 지금처럼 개새끼들이 아니었다. 인혁당 사건 당시 이용훈, 여운상, 김병리, 장원창 검사는 도저히 기소가 불가능하다고 사표를 제출했다.



군인들이 법원 복도에 테이프로 중앙선을 그어놓고 좌측통행을 강행했을 때, 김인기 부장판사는 일부러 우측통행을 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절엔 경멸할만한 법률가보다는 오히려 존경할만한 법률가들이 훨씬 많았다. 전두환 시절엔 안기부가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법원에 있어야 할 변호사들은 안기부나 중정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감금당하기 일쑤였다. 강신옥 변호사, 이병린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등등. 강신옥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를 변호하던 태윤기 변호사는 안기부에 의해 제명당했다.



박태범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내리고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선 무거운 형량을 내려 ‘호랑이 판사’로 이름을 날렸다. 오송회 사건에서 이보환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사건임에도 여섯 명에게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간첩 조작 사건이기에 2008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문 중에 제발 죽여달라던 이광웅 씨는 1992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변호인>으로 알려진 부림 사건에서 서석구 판사는 이호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좌천됐다. 이후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이근안 ‘사장님’에게 고문당해 제발 죽여 달라던 김성학 피고인에 대해 장용국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통혁당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부림 사건 등등 이 모든 게 중정, 안기부에 의해 죄다 조작된 사건들이다. 수 백건의 간첩 조작 사건 중 (물론 이 모든 조작 사건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구타가 행해졌다. ) 가장 어이없는 사건은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 아닐까. 안기부는 송충건이라는 충북 출신 월북자 간첩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다. 안기부는 성은 ‘송’이고 충은 ‘충청도’, 건은 ‘지하당 건설’로 해석, 충북출신 월북자 중 송창섭을 송충건으로 지목, 그의 가족 28명을 간첩이라 체포한다.



어처구니없는 간첩 조작사건임에도 안기부에 의해 조정당한 김경한과 임휘윤 검사는 안기부의 ‘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일규 대법원 판사는 무죄 취지 파기 환송을 내린다. 이후의 과정은 실로 경이롭다.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은 ‘사법사상 최악의 판결’로 불린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하급심인 고등법원에서 두 번이나 치받았다. 지방법원 (유죄) - 고등법원(유죄) - 대법원 (무죄 치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 (유죄) -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 (유죄) - 대법원 (유죄 인정 상고 기각) (이 당시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김석수 부장 판사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법관, 김대중 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근태 고문 사건에서 안기부 방침에 따른 건 서성 판사다. 이후 김영삼 때 대법관을 해쳐 먹는다.



부천서 성고문 권인숙 사건, 전두환, 전기환, 장세동, 박철언, 서동권 등의 압박에 의해 김경회 검사장은 원칙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대성통곡했다. 이후 김경회 검사는 “가장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사건”이라 회고했으며 당시의 검찰 조직을 “거대한 정신병원”이라 말했다. 권인숙의 유죄판결에 대해 당시 조영래 변호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사법부의 몰락을 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한 그릇의 죽을 얻는 대가로 장자 상속권을 팔아넘긴 에서처럼, 사법부는 한갓 구구한 안일을 구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막중한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용기가 없는 사법부, 스스로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린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사태의 위험성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모든 법관들이 깊이 통찰하고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건곤일척의 몸부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 도래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 사법부는 군사 독재시절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장 악랄한 개새끼가 되고 만다. <PD 수첩>의 무리한 수사를 반대하고 사표를 낸 임수빈 부장검사와도 같은 의인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검사들은 재벌들의 떡찰이요 개새끼가 돼버렸다.



군사독재시절엔 중정이나 안기부의 외압 때문에 그랬다고 하자.

오늘날 사법부는 아예 스스로 개새끼를 자처한다. 양승태, 삼성 에버랜드 전환 사채 때 이건희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용산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하더니 결국 이명박근혜 때 대법원장이 되었다.



양승태 체제 대법원 판결들을 회고해 볼까.



2014년 6월 대법원 ; 콜트 – 콜텍 대전공장 해고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



2014년 11월, 25명이 목숨을 잃은 쌍용자동차 해고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리해고 유효하다며 원심 파기 판결.



2015년, KTX 여승무원들, 대법원에서 원심을 파기, 1인당 1억 원 가량의 가지급된 임금과 소송 비용을 물어야 했다. (30대 여승무원은 자살했다.)



민주노총 사업장 10여곳 1,691억원 손해배상 판결



2015년 1월 29일, 대법원은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 축소 발표해 대선에 영향을 끼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관 무죄 확정






2015년 7월 16일 대선 개입 선거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세훈에 대해 대법원 원심 파기.

(소수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파기환송)

권순일, 김소영, 김창석, 박보영, 이상훈, 민일영, 양승태(대법원장), 이인복, 김용덕, 고영한, 김신,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 (이 사법 살인마들. 니들은 내 눈에 띄지 마라. 서로가 인생 쫑이다.)








2013년 5월 16일, 대법원,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며, 과거사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 파기.



2011년 11월 대법원,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금의 지연 이자가 과대 계산되었다며 이미 지급된 금액을 삭감. 박근혜 정권이후 국정원은 인혁당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 제기, 법원은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 특히 박정희 시대에 일어난 과거사 사건에 대해 뒤집기를 시도한다.



대법원은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에 대해, 2013년 5월 긴급조치 4호에 대해, 2013년 4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각각 위헌이고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5년 3월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해괴한 판결을 내렸다.











한홍구 선생님의 <유신>을 읽을 때만큼 분노를 태워가며 읽었다. 백번이든 천 번이든 읽겠다. 양승태 같은 것들을 살려둬야 하나. 이런 버러지보다 못한 것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 할까. 백 조각으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재벌과 기득권의 개새끼가 되어서 역사를 뒤집고 국민들의 피고름을 짜내? 소수의견도 내지 못하고 기득권에 들러붙는 너희 사법 살인마들이 감히 정의를 말해?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는 것들은 저런 기생충보다 못한 걸 대법원장으로 두고 있어? 법을 빙자해 도대체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인 걸까? 한국의 모든 연쇄살인범을 합쳐도 양승태와 그 똘마니 살인마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보다 많을까. 이, 뼈를 갈아 마실 것들.



책 블로그를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한홍구 선생님의 <유신>이었다. 이제 <사법부>로 다시 각성한다. 원래의 계획대로 역사, 특히 현대사로 돌아가야겠다. 고작 죽 한 그릇 더 먹겠다고 재벌과 권력에 빌붙어 국민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너희 법률가들. 대대손손 저주 받아라. 인간으로서, 법률가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버러지가 된 너희 법률가들은 이미 저주 받았다.




죽어도 잊지 않겠다.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 접기
시이소오 2016-06-03 공감(59) 댓글(20)
Thanks to
공감



우리에게 사법부가 독립적이었던 시기는 있었는가?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은 자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권이 집행권과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제 될 것이다.'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문예출판사, 2015, p133)-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는 재판권이 권력(집행권, 행정권)과 결합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한국 현대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법부>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1945년 해방 이후 1997년까지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미군정,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권과 군사정권 시기에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중심으로 주요 사건과 판결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사법부>는 시대를 거치면서 사법부가 신뢰받지 못하는 과정을 국정원 자료를 기초로 그리고 있다. <사법부> 전반에 흐르는 질문은 저자의 프롤로그에 잘 나타난다.




' 1981년 4월 15일 열린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사에서 "취임 초에는 포부와 이상이 컸으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라고 술회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사법부를 司法府라고 쓰지 않고 司法部라고 적어 사법부의 위상이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p19)'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사법부의 역사가 독립기관이 아닌 행정부의 수하로 전락하는 굴욕의 역사라고 요약한다. 그렇다면, 사법부에는 어떤 위해가 가해졌기에 이토록 권력에 순종을 해야했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법부에 대한 "중정(중앙정보부)-안기부"의 부당한 압력과 개입 문제를 조사하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중정- 안기부가 그 험한 시절에도 시국 사건과 관련해 현직 법관을 잡아가거나 고문을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차라리 중정-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는 덜 슬펐을 것이다.(p21)'




'사법부의 불행했던 과거는 결코 외압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p382)'




<사법부>에는 사법부의 자발적인 굴종의 역사와 함께 법과 양심에 따라 저항한 판사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어진다. 다만, 이러한 저항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점차 줄어들게 된다.




'회한과 오욕의 암흑시대에도 아주 드물게 좋은 판결이 여럿 있었다. 유신과 5공 시절 사법부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법부에서 가끔씩은 정말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p245)'




그리고, 지금 사법부는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듯이 분명히 무너지게 되었다. 왜 사법부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까? <사법부>에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다만, 개별 사건의 전말을 보여줄 뿐이다. 이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를 쓰는 2016년 12월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사건은 현행 6공화국 헌법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명목 속에서 대통령이 위법을 했을 때,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은 '개헌'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은 개헌을 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듯 보이지만,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異見)이 많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 기준이 필요한 때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 보인다. <사법부>는 지금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판단기준과 관련한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의의 또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부>에서는 마지막으로 개혁 대상으로서의 검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시녀"였던 검찰은 민주화 이후에는 시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로 등장했다. 민주화로 안기부와 군이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청와대의 군력은 임기라는 덫에 걸려 힘이 약해진 반면, 검찰은 '삼성'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으로 부상했다.... 과거 안기부가 기세등등하던 시절에 아무리 검찰이 보기 흉하게 찌그러졌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썩은 것은 아니었다. 외부의 견제와 감시가 일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로 큰 권한을 누리게 된 뒤 검찰은 자정기능을 수립하지 못했고, 민주정권은 검찰개혁에도 문민통제에도 모두 실패했다.(p398)'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권력의 주인이 된 것은 국민이 아니라 검찰이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검찰의 개혁은 필수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시킨다.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하면서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만, 그의 열매는 대은행가와 대상인을 중심으로한 거대 자본에게 주어졌다. 그 뒤 프랑스는 빈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커다란 혁명(1848년 2월 혁명)을 겪어야 했다. 시대의 모순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극복되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2016년 촛불집회까지 약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모순을 극복하고 올바른 질서(사법질서 뿐만 아니라)가 바로서기를 <사법부>를 덮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하게 된다.
- 접기
겨울호랑이 2016-12-26 공감(48) 댓글(15)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사법부

대한민국 사법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자유는 우리 선배들이 목숨바쳐 이루어낸 귀한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를거꾸로 돌리려는 작금의 사태의 책임은 우리 세대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징가 2016-11-11 공감(15)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지막으로 기댄 사람들을 처낸 사법부의 흑역사



기록을 통해 남겨야 할 이유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기록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기록이 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도 안 좋은 역사만.



사법부.



이곳은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사법고시를 통해서 선발된 인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법에 의해 판단해야 하며, (이를 이들은 판결을 통해서 말한다고 하는데) 어떤 외적인 압력도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의 생각이나 개인의 이익, 선호도 있어서는 안 되고, 외부의 압력도 있어서는 안되는 오로지 법에 의해 사실 확인, 그리고 공정한 판결이 있어야 하는 곳, 이곳이 바로 사법부다.



어쩌면 외국의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도 눈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본다는 행위 자체는 이미 그 봄으로 인해 자신의 관점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볍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뜨고 법전(책)을 들고 있다고 하니... 책이란 엘리트들의 결과물 아니던가.



이런 사법부가 '오욕과 회한의 시절'을 지내왔다고 전두환에 의해 쫓겨난 이영섭 대법원장이 퇴임사에서 말했다는데...



그런데... 과연 사법부가 오욕과 회한의 시절을 겪었을까? 이들이 말하는 오욕과 회한이란 자신들이 좀더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고 외부의 눈치를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절대 권력을 휘둘러야 하는데, 절대권력에 제동이 걸리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안기부(예전에는 중앙정보부, 다음에는 국가안전기획부, 다음에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그들이 실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 책을 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무소불위의 정보력을 통해 사법부까지도 휘둘렀으니 말이다. 최근에 벌어진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보라. 사법부가 과연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는지...)의 통제를 받아 꼭두각시처럼 지냈던 시절이 있었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고, 고문을 받았음에도 고문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고, 누가 봐도 엉터리라고 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었으니...



그렇다. 그들은 판결로 말했다. 우리는 권력의 시녀라고. 나도 권력의 중심부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야겠다고.



이게 한 나라 독립기관인,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억울한 사람들이 기대야 하는 사법부의 현실이었다.



읽을수록 화가 나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 그들은 판결로 말한다고 했으므로, 그 판결에는 반드시 자기의 이름을 남겨야 하고, 그것이 바로 기록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생각.



진정한 엘리트라면 역사의 심판을 잊어서는 안될텐데... 자기의 출세가 아니라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권력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법에 의해 그 사람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사법부에 있는 사람들일텐데...



참담한 사법부의 역사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법부는 판사들을 말한다. 검찰은 여기에서 간간히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사법부에서는 제외된다. 그러니... 판사들도 이 따위였는데...(이런 거친 표현을 용서하시라.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만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검사야 뭐...



자기들은 물라면 무는 개라고 스스로도 얘기했으니, 이 사법부라는 책을 읽다보면 검찰에 대해서 이런 책이 나온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검찰과 사법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바라며 기대어야 할 곳인데, 지금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 여기에 제4부라고 하는 언론까지도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이래저래 힘없는 사람 기댈 곳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권력집단으로 남을 수는 없다. 이런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 이들의 허상을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춘추전국시대를 보자.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법가의 사상이 필요했지만, 이미 통일된 국가에서는 법가가 아니라 유가가 통치의 이념이 되었다는 사실.



법으로만 다스려지는 사회, 법에만 호소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법은 마지막에 동원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난무하는 수많은 소송들, 건강하지 않은 사회라는 증거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회. 그 사회를 만드는데... 사법부도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이들은 엘리트 의식을 내려놓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정의를 실현하는데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에 이름이 나오는 판사들처럼, 안 좋은 예로 계속 역사 속에 살아남을 것이다. 중국의 사마천이 "사기"를 쓴 이유. "사기"에서도 그 유명한 "열전"을 쓴 이유.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경계하기 위해서이지 않겠는가.



이 책. 사법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도 사법부의 실상을 파헤쳐주는 역할을 해서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법부에 관련된 사람들, 그 사람들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 사법부 개혁은 일어날 수 없으므로.



우리 역시 두 눈 똑바로 뜨고 사법부가, 검찰이, 국정원이, 정부가, 국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더 느끼게 되었다.
- 접기
kinye91 2016-05-10 공감(14) 댓글(0)
Thanks to
공감



사법, 그 오욕의 역사



汚 더러울 오, 辱 욕될 욕...

더럽고 욕된 발자취들로 가득한 책이다.





독재 아래서 사법부는 탄압받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꼬리 흔드는 개가 되었고,

점점 거대해져서 상대를 보고 힘없으면 무는 개가 되어버렸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기본 사명을 내팽개쳤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법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고문당했다고 절절히 호소하건만

이를 묵살한 사법 엘리트 개개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15)



제1차 2차 인혁당 사건 같은 것을 보면서,

독재가 변화시킨 사법부를 읽는다.



1964년만 해도 용기와 자존심을 갖춘 검사들이 있었으나,

10년 세월은 국가관이니 충성심이니 하는 것들이

검사들의 용기와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몰아낸 기간이요,

정보부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출세하는 검사들이 나올수록

검찰이라는 조직은 망가져갔다.(125)



아, 고문을 당하면서 땅바닥을 기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하는 장면들을 읽으면서는

분노를 넘어 눈물이 났다.



대법원은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조작된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살인으로 박정희의 배려에 화답했다.

사법부의 회한과 오욕의 역사는 제작과 감독은 박정희가 맡았지만,

그 시나리오는 사법부의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104)



이 책은 2008년 정도,

수십 년 전 사법살인에 대하여

후배 판사들이 '미안하다'고 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전임 대통령을 치욕스럽게 만들어 죽이고,

용산과 세월호의 눈물의 기록들은 감추고,

이제 권력의 정점에 선 사법의 권력자들에게 세상은 개돼지들의 진흙탕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 고문에 눈감고 판결문을 낭독하던 피동적 자세를 넘어,

능동적으로 사회를 접수해가는 사법부,

만능 휠체어를 타신 분들에게는 헌법이 없고,

사소한 잘못들 앞에서는 엄정한 칼날을 휘두르는 정의의 여신은 이제 권력의 편이다.



이런 것이 역사라면,

차라리 모르고 싶다.

차라리 가르치지 않고 싶다.



대통령 선거 직전 부정선거 수사 발표도 무죄,

국정원의 선거 개입도 모두 무죄로 만들지만,

한명숙 전 총리는 증거 없이도 유죄로 만드는 '최종 폭탄 처리반'이 되고만 권력의 하녀.

그들에게 너무 큰 권력이 가버렸다.

무섭다.

희망이 없어보인다.



이 두꺼운 책이, 너무도 캄캄한 시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어서...
- 접기
글샘 2016-08-12 공감(8) 댓글(2)
Thanks to
공감


더보기




마이페이퍼
전체 (12)
페이퍼 쓰기
좋아요순



5월 읽은 책 : 44권 (26개월 총 778권)

서른 권을 읽으면 '자기 자랑'이란 어느 이웃님의 말도 있고, 날씨도 좋고해서 5월엔 산으로 들로 나돌아다녔건만허걱, 마흔 네 권을 읽었을 줄이야. 왜 이렇게 많이 읽은 걸까? 첫 번째 추측, 리뷰 쓰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대개 리뷰 쓰는 책은 사실 두 번 읽는다. 그런데 문장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거나, 이해가 잘 안 가는 책들은 필사를 하게 되는데 이런 책들은 대개 리뷰 전에 세 번 읽는다. 지난 달 같은 경우 <똑똑한 사람들의 선택>과 <도덕적 불감증>, 일주일 내내 이... + 더보기
시이소오 2016-06-01 공감 (61) 댓글 (35)
Thanks to
공감
찜하기


아직 풀지 못한 남겨진 과제, 사법부 문제

시민들은 법을 잘 지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처음부터 법률문제는 '포기가 곧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법률문제에 시달려본 구술자 중에는 판검사들이 변호사를 통해 돈을 받는다고 믿고 변호사에게 거액을 건넨 사람도 있습니다.(p233)... 시민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 동안 법조인들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실비, 휴가비, 전별금 등이 관행이었던 ... + 더보기
겨울호랑이 2022-03-08 공감 (53)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한승헌-한홍구-그람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대한민국의 변호사와 역사학자, 그리고 이탈리아의 사상가, 3인이다. 먼저 대표적 인권변호사 한승헌의 당대사로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창비, 2016)가 출간되었다. "50여 년 동안 시국사건.양심수를 변호한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이자 전 감사원장 한승헌이 한국현대사의 맥락에서 17건의 정치재판을 실황중계한다. 독재정권에 맞서 흔들림 없는 변론을 펼치고, 때론 시국사범으로 몰려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한 변호사는 '사법의 민낯'을 제대로 알리고, 우리 국민의 '망각 방지'에 일조하고자 펜을 들었다.... + 더보기
로쟈 2016-03-27 공감 (51)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우리에게 주어진 사법부 개혁 과제

법률을 전공한 사람들은 직업상 일정한 질서의 습관, 형식을 좋아하는 취향 및 조리정연한 사고를 좋아하는 일종의 본능적 성향을 얻는다. 이런 자세는 당연하게 그들을 대중의 혁명정신과 무사려한 감정에 적대적으로 만든다. 자신들의 전공에서 얻는 법률가들의 특별한 지식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회에서 특권적 지위가 부여된다. 그리고 그들은 지식의 측면에서 일종의 특권집단을 형성한다. 이와 같은 그들의 특권의식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법률가들의 성격에는 귀족들의 습관과... + 더보기
겨울호랑이 2019-09-09 공감 (41) 댓글 (6)
Thanks to
공감
찜하기


군인 황제 시대와 검찰공화국

로마 제국 쇠퇴의 첫 번째 징후이자 원인으로 꼽히는 오만방자한 근위병의 수도 앞서 언급한 1만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근위대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창설되었는데, 이 영리한 황제는 자신이 찬탈한 통치권을 그럴듯하게 채색해 주는 것은 법률이지만, 그것을 유지해 주는 것은 군사력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고 원로원을 위협하고 반란을 방지하거나 초기에 진압할 목적으로 강력한 근위대를 주도면밀하게 형성해 나갔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18 약 ... + 더보기
겨울호랑이 2022-04-15 공감 (40) 댓글 (6)
Thanks to
공감
찜하기


서민 코스프레

기자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호떡 먹었다고 서민 삶 이해할까. 그래, 그러니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며 서민들의 음식을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데, 정말 그런다고 그들이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까. 뒤집어 생각해봐라. 내가 하루동안 최고급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최상류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먹지 않던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배탈만 난다. 아, 근데 너무 졸립고 정신없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조용하던 거리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선거철이지만 동네가 조용하다.... + 더보기
chika 2016-04-12 공감 (22) 댓글 (1)
Thanks to
공감
찜하기


하야와 탄핵의 차이

불현듯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내가 법을 공부한들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뜩이나 바쁘고 정신 없지만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뉴스기사를 훑어 읽고 있다. 청문회를 하루종일 볼 수는 없으니. 신간 알림을 해 놓았더니 신간이 나올때마다 알라딘 앱에 신간 소식을 알려 준다. 책을 두루 살피는 나에게 더할나이 없이 좋다. 특히 관심 분야의 책들은 신간란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알림을 해 놓으면 좋다... + 더보기
낭만인생 2016-12-16 공감 (22)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사법부와 한국현대사

'법'과 '현대사'를 묶은 재미있는 교양 역사서가 출간됐다. 그것도 두 권이나. 첫 번째는 한홍구 교수가 쓴 <사법부>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출간했다. 두 번째는 한승헌 변호사가 쓴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다. 목차를 보면 두 책이 다루는 주제가 겹치는 것이 꽤 있다. 어느 출판사가 더 부랴부랴 준비했는지는 모르겠... + 더보기
VANITAS 2016-03-22 공감 (18)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한홍구] <사법부> 中에서...

(61)1971년 6월과 7월, 대법원의 국가배상법 위헌판결과 서울형사지법에서 행한 시국 사건에 대한 연이은 무죄판결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만천하에 고취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독립성은 사실 평지돌출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무장군인 법원난입 사건이나 동백림 사건 당시의 괴벽보 사건은, 그때만 해도 법원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권력이 법원을 몹시 불편해했음을 보여준 사례다. 사법파동의 주역이었던 홍성우 변호사나 최영도 변호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사법 파동 이전까지 법관들은 권력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 + 더보기
bookholic 2016-06-21 공감 (7) 댓글 (2)
Thanks to
공감
찜하기


3월의 인문/사회도서

<중소사업장의 근로자와 사용자를 위한 단 한 권의 노동법>노동. (사실 '근로'나 '근로자'라는 말은 '노동'과 '노동자'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좋지 않은 사례라 생각한다) 이 노동을 하는 노동자, 노동의 시간과 조건, 임금 등, 노동과 노동자에 관련한 법을 다룬 책.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가 아니던가?)<사법부>현 한국의 사법제도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사법부>는 그 법에 관한 이야기를 시대 순으로 훑으며 한국 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술의 세계사>... + 더보기
아잇 2016-04-03 공감 (5)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