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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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페허에 눈이 내릴까"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오는 10일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1월 4일 '금투세 시행 유예'와 '금투세 예정대로 시행'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던 기존 당론을 뒤엎고, 아예 금투세 자체를 폐지하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이재명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항상 진보와 정의를 숭상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그 실체는 국민의 힘과 함께 늘 강자의 논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유예'도 아니고 '폐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인기만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는 절박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이재명은,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주식시장이 어려워서 자본소득자 힘드니 세금 빼주고 노동자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사니 군소리하지 말고 세금 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근본적으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는 왜 도입해야 할까? 간단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메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즉 일해서 돈을 번 근로소득에 세금이 붙는다면 돈을 굴려서 돈을 번 자본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하는 것이 무슨 반사회적 행동이라서 세금을 부과하고,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것은 얼마나 신성한 것이라서 면세를 해야 하는 것인가? 얼마나 돈의 힘이 강해서 시행하기로 예정된 제도를 뒤엎어버릴 정도인가 말이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이 어떤 정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늘 약소자들, 을대에게만 대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자신은 어떤 확고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대중적(중상층 이상의 사람들)인기에만 영합하는 기회주의 정치를 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문재인 때와 같이 소위 '나는 진보적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이재명의 이런 기회주의적 행보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대신, 먼저 윤석열- 국힘의 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통일해야 하고, 여기서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비판은 차후의 일이니 포기되거나 지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알아야 한다. 결코 그 포기되고 지연된 시간이 약소자들, 을들을 몫을 위한 정치의 시간으로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 5년과 이재명의 지금 정치 행보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성향이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압도적인 여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야만적인 말은 이제 하지마라.
또 "봐라 윤석열 욕 해봤자 다른 놈이 온다"는 말도 이 댓글에 쓰지 마라. 완전히 다른 범주의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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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이재명의 정치를 보자는 것이다.
이재명을 지지하든, 이재명을 비판하든 그 목소리가 각자에게 명예롭기를 바란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수용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 그리도 이상한가.
이재명 보다 그를 변호하며 나오는 발언들이 너무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다. 정치인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불러온 주장이라 해도 너무 딱한 일이다.
이재명이 나쁜 놈이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진보라고 떠들며 정의를 외쳤던 정치세력이 약속한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보자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1월 4일 '금투세 시행 유예'와 '금투세 예정대로 시행'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던 기존 당론을 뒤엎고, 아예 금투세 자체를 폐지하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이재명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항상 진보와 정의를 숭상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그 실체는 국민의 힘과 함께 늘 강자의 논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유예'도 아니고 '폐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인기만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는 절박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이재명은,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주식시장이 어려워서 자본소득자 힘드니 세금 빼주고 노동자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사니 군소리하지 말고 세금 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근본적으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는 왜 도입해야 할까? 간단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메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즉 일해서 돈을 번 근로소득에 세금이 붙는다면 돈을 굴려서 돈을 번 자본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하는 것이 무슨 반사회적 행동이라서 세금을 부과하고,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것은 얼마나 신성한 것이라서 면세를 해야 하는 것인가? 얼마나 돈의 힘이 강해서 시행하기로 예정된 제도를 뒤엎어버릴 정도인가 말이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이 어떤 정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늘 약소자들, 을대에게만 대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자신은 어떤 확고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대중적(중상층 이상의 사람들)인기에만 영합하는 기회주의 정치를 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문재인 때와 같이 소위 '나는 진보적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이재명의 이런 기회주의적 행보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대신, 먼저 윤석열- 국힘의 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통일해야 하고, 여기서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비판은 차후의 일이니 포기되거나 지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알아야 한다. 결코 그 포기되고 지연된 시간이 약소자들, 을들을 몫을 위한 정치의 시간으로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 5년과 이재명의 지금 정치 행보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성향이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압도적인 여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야만적인 말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무엇보다 당신들이 그리 애절하게 짝사랑하는 민주당(이재명)은 적폐의 피해자라기보다, 그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힘세력과 환상의 콤비를 이뤄 지금의 정치구조를 재생산시켜온 주체라는 점에서 극복의 대상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과 맞서기 위해 이재명 같은 기존의 판을 갈아엎을 사람이 필요하며, 그래서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한다는 식. 일종의 파시즘 논리와 유사하다. 또 이재명의 혐의는 무조건 검찰의 날조라는 식. 문제는 이러한 논리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이라는 비정상적인 권력을 경험한 대중들이 특수한 감성이 작동한 측면도 있겠다.
허나, 이것만은 꼭 말하고 싶다.
"저 사람의 부당함이 나의 부당함을 정당화 시켜 주지 않는다"
이 말은 옛날 1번들이 유례없이 비도덕적이고 상식을 벗어난 집단이라고 하여 똑같이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장기적으로 가면 이재명 내부에서도 어느 부분은 곪아터지게 되어 있다.
정치인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이름도 명예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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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정치를 보자는 것이다.
이재명을 지지하든, 이재명을 비판하든 그 목소리가 각자에게 명예롭기를 바란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수용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 그리도 이상한가.
이재명 보다 그를 변호하며 나오는 발언들이 너무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다. 정치인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불러온 주장이라 해도 너무 딱한 일이다.
이재명이 나쁜 놈이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진보라고 떠들며 정의를 외쳤던 정치세력이 약속한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보자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1월 4일 '금투세 시행 유예'와 '금투세 예정대로 시행'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던 기존 당론을 뒤엎고, 아예 금투세 자체를 폐지하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이재명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항상 진보와 정의를 숭상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그 실체는 국민의 힘과 함께 늘 강자의 논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유예'도 아니고 '폐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인기만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는 절박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이재명은,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주식시장이 어려워서 자본소득자 힘드니 세금 빼주고 노동자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사니 군소리하지 말고 세금 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근본적으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는 왜 도입해야 할까? 간단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메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즉 일해서 돈을 번 근로소득에 세금이 붙는다면 돈을 굴려서 돈을 번 자본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하는 것이 무슨 반사회적 행동이라서 세금을 부과하고,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것은 얼마나 신성한 것이라서 면세를 해야 하는 것인가? 얼마나 돈의 힘이 강해서 시행하기로 예정된 제도를 뒤엎어버릴 정도인가 말이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이 어떤 정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늘 약소자들, 을대에게만 대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자신은 어떤 확고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대중적(중상층 이상의 사람들)인기에만 영합하는 기회주의 정치를 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문재인 때와 같이 소위 '나는 진보적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이재명의 이런 기회주의적 행보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대신, 먼저 윤석열- 국힘의 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통일해야 하고, 여기서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비판은 차후의 일이니 포기되거나 지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알아야 한다. 결코 그 포기되고 지연된 시간이 약소자들, 을들을 몫을 위한 정치의 시간으로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 5년과 이재명의 지금 정치 행보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성향이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압도적인 여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야만적인 말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무엇보다 당신들이 그리 애절하게 짝사랑하는 민주당(이재명)은 적폐의 피해자라기보다, 그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힘세력과 환상의 콤비를 이뤄 지금의 정치구조를 재생산시켜온 주체라는 점에서 극복의 대상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과 맞서기 위해 이재명 같은 기존의 판을 갈아엎을 사람이 필요하며, 그래서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한다는 식. 일종의 파시즘 논리와 유사하다. 또 이재명의 혐의는 무조건 검찰의 날조라는 식. 문제는 이러한 논리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이라는 비정상적인 권력을 경험한 대중들이 특수한 감성이 작동한 측면도 있겠다.
허나, 이것만은 꼭 말하고 싶다.
"저 사람의 부당함이 나의 부당함을 정당화 시켜 주지 않는다"
이 말은 옛날 1번들이 유례없이 비도덕적이고 상식을 벗어난 집단이라고 하여 똑같이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장기적으로 가면 이재명 내부에서도 어느 부분은 곪아터지게 되어 있다.
정치인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이름도 명예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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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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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는 작가들을 보면서...
- 지금 한국 문학이 디디고 선 곳(왜소함)은, 낱낱이 스스로 지은 '터'임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누구를 지지하든 내가 시비를 걸 일을 아니지만 명색이 시인이나 소설가라는 명함을 자신 이름 앞에 놓으려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집권 기간 동안 보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반노동 친자본 행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책임 추궁이 아닌 '그래도 민주당'을 외치는 것이 말이 돠는가! 지금 한국 문학이 디디고 선 이 초라함은, 낱낱이 그들 스스로 지은 '터'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독재자도 재갈을 물릴 수가 없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톨스토이는 생애 마지막 20년을 러시아 정부의 정책에 완강하고 철저하게 반대했음에도, 권력은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대부분 체포를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당했다. 많은 종교적 불만 세력들도 시베리아의 광산에서 소금을 캐거나 검열 당국에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을 지닌 톨스토이만이 군대의 잔혹성이나 - 전쟁의 실질적 부당성 - 계급 제도의 차별성, 도시 빈민층의 지저분한 환경과 그들에 대한 억압, 굶주린 사람들의 영양실조, 검열 당국의 위법성에 대한 신랄한 비난을 퍼붓었다. 물론 그도 검열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집필을 계속해나갔다. 톨스토이는 자신과 같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글을 썼다.
그럼 이런 톨스토이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을까?
톨스토이는 그의 존재감이나 그의 사상보다도 훨씬 큰 어떤 것을 표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가 그를 건들릴 수 없었던 까닭은 러시아인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는 경외감에 있었다. 실제로 톨스토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러시아 전역에서 수많은 시위가 일어났고, 수천의 사람들이 그의 관을 따라 행진했다. 이런 문학에(글)에 대한 민중의 경외감에 러시아 정부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글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 위력은 글을 쓰는 작가들 하나 하나가 그 '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러시아에서 위대한 문필가들은 당대의 사회 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굴하지 않고 글로 사회 부조리를 썼고 대부분 투외되거나 유배지에서 죽음을 당했다. 이렇게 세운 문학의 위상은 그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러시아 짜르체제도 허물어버릴 수 없었다. 만약 이 위상을 허물었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났지 알았기 때문이다.
당대의 현실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문학은 그 존재 의의가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집권 내내 한 것이라고는 노동법. 제도 개악, 부동산 폭등, 의료민영화, 삼성을 위한 법 개정뿐이었다. 그래놓고도 진정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언제나, '우리만 옳다'는 독선과 '내노남불'의 선택적 정의로 평범한 민중의 삶을 파괴했다. 이런 정권에 대해 그 누구보다 신랄한 비판과 책임 추궁을 해야 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선거가 다가오니 슬그머니 그래도 '근마들은 찍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고 이재명 지지선언을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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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가장 답하기 곤란한 댓글!
윤석열 비판하면,
- 그럼 이재명 찍어야 하냐?
이재명 비판하면
- 그럼 윤석열 찍어야 하냐?
두 정치세력이 다 망해야 된다는 것이 지금껏 내가 올린 글이다. 우리 솔직해지자. 실질적인 대안이 그 두 세력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을 믿지 않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들은 그들의 짓거리를 묵인하고 동의하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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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문학에서 계급성이란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욕이, 문학도 계급성으로만 말하는 무식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는 감정이 담겨져 있다. 이 감정은 사람들이 살아온 물질적(경제)토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계급성을 띠기 마련이다. 허나 이 말을 문학은 '계급성'만이 전부라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 무지한 해석이다.
내 말은 "모든 것이 계급성을 띠는 것이지, 계급성만을 띠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문학은 계급성만을 지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현실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상투쟁의 문학이 인성을 말살하지도 않는다. 문학의 생명은 당대의 현실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하는 진정성이며 이 진정성이 없는 문학은 모든 의미를 상실한 '오락'에 불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 내가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문학을 어떠한 숭고한 행위(예술)로 만드는 상아탑적인 문학행위에 관한 것이다. 문학은 고상한 분류에 속한 것이 아니라, 가장 하찮은 자들에 속한 것이다. 하찮은 자들이 내지르는 분노의 포효이고, 하찮은 자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복수가 문학이다. 즉 문학에서의 계급성이란 종이에 인쇄된 활자가 아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인간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뚜렷한 결심 없이, 특히 내가 개인적으로 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눈이 먼 상태에서 나를 가졌으며 내가 태어난 직후에는 병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쇼파에 앉아 지내야 했던 아버지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격렬하고 무의식적인 증오로 바뀌었다.
그때 나는 가장 끔찍한 것으로 알려진 매독의 급격한 고통 때문에 계속해서 그가 질러대는 비명소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완전한 불구였기 때문에 그가 빈번히 처하게 되었던 더러움과 악취의 상태(예를 들면 바지에다 똥을 싸기도 했다)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 바타유 자전적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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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작가회의의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작가회의의 작가 일천 명이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을 했다고 한다. 이 놈의 작가회의는 민주당의 호위부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때는 1276명의 작가들이 교수로, 문재인 정권 관료로 승승장구했던 조국을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성명을 발표 했고(2019년10월7일) 2020년 12월에는 윤석열 몰아내고 검찰개혁 하자고 654명이 모여 성명을 냈다. 이젠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이재명을 위해 이름 잘난 작가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조국사태'나 '이재명 지키기'에는 단일한 대오로 성명 발표를 하는 사람들이 정작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목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문학계가 이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내가 알기로는 없다.
왜 윤석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전무하고 고작 윤석열 따위를 몰아내고자 성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이런 작가회의의 행태는 전형적인 진형논리에 빠진 도착증이다. 애초에 이 사회가 뭐때문에 편이 나뉘었는지는 잊어버리고 편가르기에 집착하는 것이 '정의'인냥 비장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문학계는 자신들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제발 거울에 비춰보기를 바란다.
당신들의 선택적 분노와 정의는 주류(민주당) 지향의 다른 이름이었음이 보일 것이다. 민주당 최민희가 자당의 의원들을 향해 '비명계가 움직이면 다 죽인다'라는 극악한 발언이 그냥 나온 아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힘과 윤석열만 눈에 불을 켜고 비난하면 이 사회가 바뀌는가? 윤석열만 퇴진하면 이 구조가 바뀌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질서를 설계를 구축하는 게 누구인가? 즉 지금의 '죽거나 나쁘거나'의 삶의 구조를 설계한 이들은 국힘과 윤석열들만이 아니다.
짧게 잡아 1997년 IMF 관리 이후 지금의 이 사회를 만든 것은 당의 이름을 수시로 바꾸면서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환상의 듀엣'으로 춤추어온 민주당과 국힘 계열의 지배적인 두 정치 세력, 그리고 그 둘을 오가며 생존해온 비루한 정치 낭인들이다. 여기에 이것을 비판하며 이런 '틀'에 균열을 만들어야 할 지식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도리어 민주당에 완전히 포섭되어 전위부대가 된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중이 일어나 기존의 틀을 깨부시면 여기에 올라타 권력을 잡고는 그 수 많은 '을'들과의 약속을 버리고도 그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민주당이 이런 구조를 만드는데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핵심이 아닌가. 이런 정당을 위해 민중을 선동하여 그들의 팍팍하고 생기 없는 감정마저 쥐어짜 민주당의 살과 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회의라는 문인들의 단체. 이보다 노회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단체가 또 어디 있는가.
어떻게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문제들을 만든 이들에게 해결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민주당이 외친 자유, 정당 등 결사의 활동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옹호한다는 기본 가치들을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행동한 적이 있는가? 통합진보당의 지지기반은 정말 미미했다. 그런 정당을 수구세력이 해산시키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 자격을 뺏앗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으로 동조했던 민주당이다. 또 권력의 주체가 되고서는 제도권에 들어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소수정당의 염원을 담은 선거법 개정을 '위성정당'을 만들어 부셔버린 것이 민주당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보수자유주의(민주당)과 수구정치세력(국힘)들이 '진보'와 보수로 신분 세탁하고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대중이 수구세력을 끌어내리면 민주당이 그 자리로 들어가 다시 이들을 살려냈다. 이건 희극에 가까운 정치사다.
수구세력의 횡포에 민중이 일어나 그들을 끌어내리면 민주당이 그 자리로 들어가 다시 그들을 살려내는 구조를 우리는 '민주화'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우리 정치사는 한 번도 수구/ 보수세력의 탐욕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민중이 고통스러운 삶과 자본과 권력의 탐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 시간들은 항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이제 이따위 시국선언이 아니라 민주당을 향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목이 터져라 외치는 민주당의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사람 사는 사회', '정상국가'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물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 옆에서 노동자들이 고공에 위태롭게 나붙겨도, 스물의 청년의 몸이 기계에 부셔져 죽어도,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법 판결이 나도 공권력의 폭력에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도 시나브로 옆에 다가와 "그래도 수구세력이 지배하는 것보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라는 말로 은근히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괴물을 질타하기 전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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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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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회의의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작가회의의 작가 일천 명이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을 했다고 한다. 이 놈의 작가회의는 민주당의 호위부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때는 1276명의 작가들이 교수로, 문재인 정권 관료로 승승장구했던 조국을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성명을 발표 했고(2019년10월7일) 2020년 12월에는 윤석열 몰아내고 검찰개혁 하자고 654명이 모여 성명을 냈다. 이젠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이재명을 위해 이름 잘난 작가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조국사태'나 '이재명 지키기'에는 단일한 대오로 성명 발표를 하는 사람들이 정작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목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문학계가 이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내가 알기로는 없다.
왜 윤석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전무하고 고작 윤석열 따위를 몰아내고자 성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이런 작가회의의 행태는 전형적인 진형논리에 빠진 도착증이다. 애초에 이 사회가 뭐때문에 편이 나뉘었는지는 잊어버리고 편가르기에 집착하는 것이 '정의'인냥 비장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문학계는 자신들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제발 거울에 비춰보기를 바란다.
당신들의 선택적 분노와 정의는 주류(민주당) 지향의 다른 이름이었음이 보일 것이다. 민주당 최민희가 자당의 의원들을 향해 '비명계가 움직이면 다 죽인다'라는 극악한 발언이 그냥 나온 아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힘과 윤석열만 눈에 불을 켜고 비난하면 이 사회가 바뀌는가? 윤석열만 퇴진하면 이 구조가 바뀌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질서를 설계를 구축하는 게 누구인가? 즉 지금의 '죽거나 나쁘거나'의 삶의 구조를 설계한 이들은 국힘과 윤석열들만이 아니다.
짧게 잡아 1997년 IMF 관리 이후 지금의 이 사회를 만든 것은 당의 이름을 수시로 바꾸면서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환상의 듀엣'으로 춤추어온 민주당과 국힘 계열의 지배적인 두 정치 세력, 그리고 그 둘을 오가며 생존해온 비루한 정치 낭인들이다. 여기에 이것을 비판하며 이런 '틀'에 균열을 만들어야 할 지식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도리어 민주당에 완전히 포섭되어 전위부대가 된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중이 일어나 기존의 틀을 깨부시면 여기에 올라타 권력을 잡고는 그 수 많은 '을'들과의 약속을 버리고도 그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민주당이 이런 구조를 만드는데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핵심이 아닌가. 이런 정당을 위해 민중을 선동하여 그들의 팍팍하고 생기 없는 감정마저 쥐어짜 민주당의 살과 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회의라는 문인들의 단체. 이보다 노회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단체가 또 어디 있는가.
어떻게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문제들을 만든 이들에게 해결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민주당이 외친 자유, 정당 등 결사의 활동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옹호한다는 기본 가치들을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행동한 적이 있는가? 통합진보당의 지지기반은 정말 미미했다. 그런 정당을 수구세력이 해산시키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 자격을 뺏앗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으로 동조했던 민주당이다. 또 권력의 주체가 되고서는 제도권에 들어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소수정당의 염원을 담은 선거법 개정을 '위성정당'을 만들어 부셔버린 것이 민주당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보수자유주의(민주당)과 수구정치세력(국힘)들이 '진보'와 보수로 신분 세탁하고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대중이 수구세력을 끌어내리면 민주당이 그 자리로 들어가 다시 이들을 살려냈다. 이건 희극에 가까운 정치사다.
수구세력의 횡포에 민중이 일어나 그들을 끌어내리면 민주당이 그 자리로 들어가 다시 그들을 살려내는 구조를 우리는 '민주화'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우리 정치사는 한 번도 수구/ 보수세력의 탐욕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민중이 고통스러운 삶과 자본과 권력의 탐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 시간들은 항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이제 이따위 시국선언이 아니라 민주당을 향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목이 터져라 외치는 민주당의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사람 사는 사회', '정상국가'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물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 옆에서 노동자들이 고공에 위태롭게 나붙겨도, 스물의 청년의 몸이 기계에 부셔져 죽어도,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법 판결이 나도 공권력의 폭력에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도 시나브로 옆에 다가와 "그래도 수구세력이 지배하는 것보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라는 말로 은근히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괴물을 질타하기 전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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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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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국힘을 지지했던 인물들 중에 '윤석열'이 잘못했다는 것은 알지만, '이재명'이나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하며, '탄핵'은 답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대통령이 질서있게 퇴진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이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선전포고였다. 반헌법적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침탈해서 비상계엄 해제를 방해하려 했으며 국민 누구라도 이에 대항할 시에는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구금 체포하겠다는 협박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국회를 침탈하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돌린 내란범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국힘 의원이 무려 105명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윤석열뿐만 아니라 이것들도 반헌법적 행위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즉 국힘의 105명은 자신들도 국민을 속여 권력을 잡으면 윤석열과 똑같은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러니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윤석열을 걱정하고 민주당에게 퇴로를 열어 주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대를 동원해 국회을 해산하고 반민주적인 방법으로 국민들을 구속 체포하려 했던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의 자리에 있고, 이런 반헌법적인 일에 동조하는 세력이 여당인 '국힘'이라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윤석열과 국힘 소속 국회의원 105명은 이미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정치 집단도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이들을 비호하고 윤석열에 대한 탄핵이 불가하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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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보면서
: 비극에서 희극으로
2020년 노혜경이라는 분이(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홍보비서실 국정홍보비서관) 페북에 '검찰의 숨통을 끊기 바란다'라는 글을 올렸었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희극이 되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권 때도 검찰개혁은 이미 많은 국민이 동의하는 사안이었다. 그렇게 명분과 대의가 확실했었는데 왜 문재인 정권 내내 그런 소모적인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막장으로 갔는가?
사태가 그렇게 된 책임은 민주당과 그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언론이나 검찰, 또는 야당도 아닌, 문재인과 민주당에 있었다. 검찰개혁을 원칙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하지 않고 처음에는 윤석열이라는 '우리편 검찰수장'을 앉혀서 단박에 진행하려 했고, 이것이 안되자, 똑같은 방식의 조국 추미애를 시켜 진행하려고 하는 판단착오와 비민주적인 발상이 그런 막장 정치판을 만든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른가?
그런 막장에서도 문재인은 박근혜와 함께 국정 농단의 공범으로 재판에서 그 죄의 정도를 다투고 있었던 이재용을 9번씩 만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언론에 노출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화 요청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죽은 김용균도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그러나 김용균은 문재인을 만나지 못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채 발견됐다. 어떤 정권도 이런 '재벌 사랑'의 정점을 찍는 행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노동존중'이라는 말을 그렇게 농락한 정권은 더더욱 없었다.
정치를 떠나 이렇게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코로나19에 생계의 막막함에 고투하고 있는 사람들과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다 쓰러진 사람 앞에서 최소한의 해명과 사과는 있어야 했었다.
수구 정권도 자신들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고개 숙이고 사과 할 줄은 알았다. 헌데 대중의 촛불에 터하여 등장한, 아니 스스로 그 적자임을 역설한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벌어졌던 모습들이 그야말로 비정상적이었다.
교수들과 예술인들이 윤석열을 죽이겠다고 너나 없이 자랑스럽게 시국선언을 하기 전에, 왜, 어떻게 촛불로 집권한 민주당과 문재인이 윤석열이라는 검찰 출신 정치 신인에게 권력을 빼앗겨서, 이런 비정상적인 국가권력을 탄생시키게 했는지에 대한 성찰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지금 비장하게 하는 '선언'에 명분이 생긴다. 국힘의 비정상은 타도의 대상이고 민주당의 비정상은 지식인으서 눈 감아도 되는 것이라면, 이런 시국선언이야 말로 진영논리다.
이런 원인에 대한 성찰도 없고, 이재명 하나를 지키겠다는 정치를 버리고 시민들의 광장에 다시 기웃거리는 거대 야당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지식인들의 행태는 그 어떤 미사어구를 동원해도 시국선언이 아니라 편가르기일 뿐이며, 이 모든 몰상식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떠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양당체제의 사회적 폐단을 막으려면 지금 당장 정치적 특권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해서 이 사회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당신도 나도 알고 있지 않나. 윤석열 따위 끌어 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축소하고 국회의원의 특권과 혜택을 대폭 축소해서 그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사면권'은 하루 빨리 빼앗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런 개혁을 하기 위해 윤석열을 끌어 내려야 한다'고 말할테지만, 박근혜 끌어 내려서 문재인이 한 일이 뭐냐 말이다.
교수들은 이제 정말 정치선언이 아닌 시국선언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당면한 문제는 정치가 풀어야 할 문제이고 이 정치를 바르게 추동할 '선언'이 나와야 한다. 지금 보다 나은 현실을 가져오도록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대해 숙고하며 미래의 부작용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시국선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수들이나 문예인들의 '선언'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나 성찰이 전혀 없다.
반성과 성찰이 빠진 '진보'는 되려 빠른 퇴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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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장정일은 여전히 머리를 깎고 있구나
(장정일 칼럼을 읽고...)
소설가 장정일은 2016년 시사인의 칼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숫자가 정확히 확정된 자료가 없는데 조정래 감독이나 기자가 끌려간 사람이 수십만명이고 살아 돌아온 것은 200명 뿐' 이라는 거짓말로 세계를 돌아 다니면 일본 우익의 좋은 먹이감이 된다며 짐짓 진실을 옹호하는 포즈로 정대협과 피해 국민을 비아냥 거렸다. 적반하장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부대 안에 위안소를 설치하여 대규모 성노예를 군수품으로 확보한 군대는 인류사회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피해자가 도대체 얼마인지를 신빙성 있게 확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정대협이나 피해 국민이 비난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책임이다. 그에 대한 자료를 제시할 의무는 가해 권력자인 일본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피해국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현 일본정부가 과거 수탈과 침략의 제국주의 일본을 자기 부정하지 못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의 비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장정일은 가해 당사국에게 물어야 책임을 피해국 민중에게 돌리고, 나아가 민족주의에 빠진 집단 정신분열증으로 몰았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따른 자국 민중의 과거 피해를 묻는 것이 민족주의라면 난 민족주의자다. 왜냐면 일본이 아직 제국주의 일본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맞서서 약소민족이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 민족주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원과 강제성을 말하는 정대협과, 언론, 대중을 민족의 집단 정신분열증으로 비하했던 장정일....
2018년 이재명을 보는 시각도 여전하구나...
장정일 작가, 머리를 깎을 게 아니라, 마음을 깎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말이 아니라, 혀가 아니라, 생각이 터지지 않겠나. 아니 마음이 터지지 않겠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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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스캔들의 유일한 진실은 김부선의 '사적 복수'다
hankookilbo.com
이재명 스캔들의 유일한 진실은 김부선의 '사적 복수'다
[장정일 칼럼] 연인들의 천부 인권
장정일 칼럼
[장정일 칼럼] 연인들의 천부 인권
입력 2018.06.27 11:19 0 0
지난 회 칼럼의 마감 하루 전인 6월12일, 내게는 두 개의 화제가 있었다. 하나는 싱가포르에서 성사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 회담. 다른 하나는 6ㆍ13 지방선거를 통째 집어 삼켰던 여배우의 폭로 스캔들. 전자는 정보가 넘쳐 날대로 넘쳐난 상태라는 판단 끝에, 후자는 한 사람이라도 입을 닫는 것이 공명선거를 돕는 것이라는 뜻에서 선뜻 쓰기를 포기했다. 이제 마음 편히 후자를 화제로 삼기 전에, ‘한국일보’ 6월25일자에 난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존 에버라드는 북한이 핵무기를 영영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싱가포르의 북미회담을 국면 전환과 시간을 벌기 위해 김정은이 연출한 ‘쇼’일 수 있다는 암시를 내비쳤다. 권력자와 정치가들이 쇼에 달통해 있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이들이 손해가 뻔히 보이는 쇼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오로지 미국이라는 절대악과 일전을 치른다는 종말론적인 신앙 하나로 버틴 나라다. 그런 나라의 지도자가 적성국의 수괴와 악수를 하고 나면,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희생은 물론 세습마저 정당화했던 통치 원리가 해체되고 만다. 막걸리만 마시는 줄 알았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안가에서는 시바스 리갈을 마셨다는 것을 알게 된 술꾼들이 너도 나도 시바스 리갈을 욕망하게 된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국민에게 종말론과는 다른 욕망을 심어 주었다. 이런 자해 행위가 쇼일 수는 없다.
방송토론에 나온 김영환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의 폭로로 재점화된 한 여배우와 공직자의 스캔들은 ‘김부선 스캔들’이 바른 이름이지, 절대 ‘이재명ㆍ김부선 스캔들’이 아니다. 김부선이 ‘인격살해’를 당하고 ‘허언증 환자’로 몰리게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스캔들의 실체는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훗날 공직자가 된 어느 유부남과 15개월간 밀회를 나눈 적이 있느냐 마느냐에 있지 않다. 이 스캔들은 그녀가 과거의 연인이었다고 지목한 남자에게 ‘자신과 사귄 적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실토하라는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저런 압박에 불응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헤어진 연인 모두에게 보장된 ‘천부 인권’이다. 사실 저런 공개적 협박이나 뒷소문(‘나 저 사람 하고 잤어’)은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인데, 이 경우엔 성별이 바뀌었다.
여배우는 문제의 남자가 총각이라고 사기치고, 공짜로 즐기고, 헤어질 때 협박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증언은 나에게 ‘진실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청하지만, 아무런 진실도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제3자’다. 유부남인 줄 알고서도 15개월간 계속해서 만났다면 거기엔 둘만이 아는 비밀이 생긴다. 대개 이런 경우엔 여자가 남자에게 “언제 이혼해요”라고 채근한다. 또 협박을 당했다는데, 협박을 당한 사람이 먼저 ‘침묵의 대가’를 제시한 건 아니었을까. 이 모두는 제3자의 소설일 뿐,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니다.
유일한 진실은 김부선이 선거 국면을 이용해 사적 복수를 꾀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선거가 끝난 후가 아니라, 김영환이 6월5일 방송 토론에서 처음 이 스캔들을 꺼냈을 때 곧바로 “나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질책했어야 했다. 유권자들이 유부남과 연애하다가 뒤틀어진 ‘부도덕’한 연사의 주인공을 위해 표심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니체의 인간학’(다산북스,2016)에서 약함을 무기 삼아 “나는 약해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람은 절대 스스로 반성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강자 때문에 영원한 피해자가 된 척한다. 강자에게 끊임없이 농락당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계속 그리는 것이다. 이 이상의 둔감함, 태만함, 비열함, 교활함, 다시 말해 해악이 또 있을까!”
김부선 스캔들에 뛰어든 공지영은 자신을 진실의 증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밀회를 나누었다고 가정하는 두 사람의 내밀한 갈등이나 거래에 대해서는 그 또한 아는 게 없는 제3자다. 소설가는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사적 복수의 도구로 허비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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