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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1톤의 독서
스가 아쓰코 (지은이),김아름 (옮긴이)에쎄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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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쪽
책소개
많은 문학가, 평론가, 편집자가 '아름다운 문장가'로 기억하는 스가 아쓰코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손꼽히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가 아쓰코의 글은 선선한 거리를 두며 달관하는 듯하지만 뜨겁고 날카롭게 파고들며, 건조하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촉촉한 감성이 묻어난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스가 아쓰코의 글을 좋아한다고 밝히면서 "섬세한 정서인데 심란하지 않다"고 그 이유를 덧붙이기도 했다.
<소금 1톤의 독서>는 스가 아쓰코가 읽은 책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중에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도 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정보, 대강의 줄거리, 그에 대한 감상이라는 서평적 요소에 스가 아쓰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철학이라는 에세이적 요소가 중첩되어 있다. 책과 관련된 그녀의 추억에서 우리는 특정 장면을 함께 떠올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유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방에 틀어박혀 책을 놓지 않았고,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엄혹한 전쟁 시기에도 그녀는 항상 책과 함께했다. 이탈리아와 일본, 두 공간을 살아내며 그녀는 타인과 함께하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에 홀로 서서 고독의 시간과 마주했다. 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곁에는 책이 있었고, 이제 그녀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목차
작가의 말
Ⅰ.
유르스나르의 작고 하얀 집
미도리 씨의 책
이치요의 참을성
『인도 야상곡』과 분신
세 가지 지구적 감성의 교착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키냐르의 작품
매혹적인 ‘외국어’ 문학
사진의 예감에 이끌려
북쪽의 깊이, 남쪽의 상냥함
독서 일기
우리 마음이 사랑하는 어떤 것
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꽃
우리는 타인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 걸까
Ⅱ.
소설 속의 가족
작품 속의 ‘모노가타리’와 ‘소설’?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
Ⅲ.
『번역사의 프롬나드』, 쓰지 유미
『이탈리아 기행』, 괴테
『뉴욕 산책 - 길을 걷다 39』, 시바 료타로
『조르주 상드의 편지』, 조르주 상드
『교수형의 언덕』, 에사 드케이로스
『기구氣球의 꿈 - 하늘의 유토피아』, 기타오 미치후유
『어제의 깨달음 - 재난 연도의 기록』, 나카이 히사오
『제라르 필리프 전기』, 제라르 보나르
『토머스 쿡의 여행』, 혼조 노부히사
『제임스 조이스 전기』, 리처드 엘먼
『여름 소녀·들어라, 바다의 소리를』, 하야사카 아키라
『이집트로부터』, 장 그르니에
『작가살이』, 애니 딜러드
『모래처럼 잠들다 - 예전에 ‘전후’라고 하는 시대가 있었다』, 세키가와 나쓰오
『프라토의 중세 상인』, 이리스 오리고
『뼈』, 페멘응
『전쟁의 슬픔』, 바오닌
해설_ 모든 것은 옛날 옛적 이야기, 아오야기 유미코
문고판 해설_ 깊고 넓은 독서, 마쓰나가 미호
옮긴이의 말
출처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현대 유럽이 우리에게 남겨준, 잊지 못할 작가 중 한명인 마르게리트 유르스나스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요 몇 년 사이의 일이다.
P. 27 ‘섬‘이라는 장이 그렇다. 작가는 ˝섬들이 저마다 고유한 역할과 얼굴을 갖고 있다˝라는 글머리로 시작해 무라노는 까마귀 섬, 부라노는 화려한 색채의 민가와 인종의 섬이라는 식으로 차례차례 정의 내린 후 다음과 같은 내적 성찰이 넘쳐나는 문장을 건넨다.
˝섬은 또한 고독과 정숙의 장소, 적어도 그런 느낌을 기대받는 장소다. ... 더보기 - 로커스
P. 166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답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각자 믿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로지 자신에게 충실한 그런 일들을 근본적으로 잊은 게 아닐까. - 로커스
P. 177 직선적 시간이나 장소조차 잊어버리는 것은 선생님의 이야기 방식이 디테일로 가득 찬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디테일로 인해, 살아온 시대나 보아온 풍경, 더 나아가 교양의 수준이 확연히 다른 나조차 뒤처지지 않고 선생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로커스
P. 14 밀라노에서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지인에 관해 남편과 별다른 악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시어머니는 불쑥 내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자, 시어머니는 당신도 젊었을 때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소금 1톤을 함께 핥아 먹는다는 건,... 더보기 - shashashak
P. 71 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불현듯 깜짝 놀란 이유는 아이보리가 연출한 영화의 러브신이 전개된 곳과 같은 곳, 즉 한 면이 온통 덮인 보리밭 언덕임에도 양귀비꽃이 단 한 송이도 피어 있지 않아서였다.
˝황금빛 보리밭에 빨간 양귀비가 피어 있어요˝라고 어딘가에서 본 풍경을 시어머니께 이야기한 적이 있다. ˝꿈을 꾸는 듯 아름다... 더보기 - shashas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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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조선일보 2019년 11월 2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스가 아쓰코 (須賀敦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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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필가, 번역가. 1929년 일본 효고 현에서 태어났다. 세이신 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게이오 대학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NHK 국제국 프랑스어반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1958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1960년 밀라노에서 동료들과 함께 코르시아 서점을 운영하던 주세페 리카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밀라노에 정착해 근대 일본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옮기는 일에 주력했으나 1967년 남편이 급작스레 병사하자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1971년 일본으로 돌... 더보기
최근작 :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유르스나르의 구두>,<소금 1톤의 독서> … 총 50종 (모두보기)
김아름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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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 학제정보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자를 거쳐 현재 홋카이도대에 출강하고 있다. 개념사, 미디어사, 문화사, 여성사의 접합을 통해 한국 근대와 여성이 관계 맺음에 관해 연구 중이다. 옮긴 책으로 스즈무라 가즈나리의 문학평론집 『하루키, 고양이는 운명이다』가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는,
적어도 1톤의 소금을 함께 핥아 먹어야 한단다
유럽과 일본, 두 공간을 살아낸 1세대 코즈모폴리턴,
등장하자마자 ‘이미 완성된 작가’로 평가받고,
일본 최고 에세이스트로 손꼽히는 스가 아쓰코가 핥아낸 책들
많은 문학가, 평론가, 편집자가 ‘아름다운 문장가’로 기억하는 스가 아쓰코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손꼽히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가 아쓰코의 글은 선선한 거리를 두며 달관하는 듯하지만 뜨겁고 날카롭게 파고들며, 건조하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촉촉한 감성이 묻어난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스가 아쓰코의 글을 좋아한다고 밝히면서 “섬세한 정서인데 심란하지 않다”고 그 이유를 덧붙이기도 했다.
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괴되는 것들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 전해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
『소금 1톤의 독서』는 스가 아쓰코가 읽은 책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중에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도 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정보, 대강의 줄거리, 그에 대한 감상이라는 서평적 요소에 스가 아쓰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철학이라는 에세이적 요소가 중첩되어 있다. 책과 관련된 그녀의 추억에서 우리는 특정 장면을 함께 떠올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유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방에 틀어박혀 책을 놓지 않았고,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엄혹한 전쟁 시기에도 그녀는 항상 책과 함께했다. 이탈리아와 일본, 두 공간을 살아내며 그녀는 타인과 함께하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에 홀로 서서 고독의 시간과 마주했다. 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곁에는 책이 있었고, 이제 그녀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서점의 안주인이 되면 집안 곳곳에 책이 넘쳐나니 눈앞에 놓여 있을 때 읽지 않으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몰라요. _스가 아쓰코의 편지 중) 오랫동안 번역을 하며 언어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간 그녀의 인생사와 맞닿아 있다. 그녀의 글 곳곳에는 언어 사이를 오가는 번역이라는 일의 모순과 한계, 그럼에도 옮겨 전해져야 하는 언어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넘어서 시가 전해진다. _「사진의 예감에 이끌려」) 이탈리아 문학 번역가로서, 모국어권 바깥의 체류자로서 그녀는 전해지지 못한 언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문화적 생산물에 관심을 보였고, 국경을 넘나드는 언어와 문화의 교차점에서 발현되는 자기완성의 기회와 새로운 고전의 탄생에 주목했다.
종주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이 이야기를 잃어버린 듯한 지금, 이 작가들이 오래된 언어로 된 이야기를 새로운 수법으로 부단히 이야기해나가는 현상은 (…) 이 또한 하나의 위대한 문화가 다음 문화에 자리를 양보한 시기의 상징적인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 (_「매혹적인 ‘외국어’ 문학」)
쓸쓸하지만 담담하게, 모노가타리적 글쓰기
스가 아쓰코 특유의 문학성
“황금빛 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가 꿈같이 아름다웠어요.” 시어머니께 어딘가에서 본 풍경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농촌 출신의 시어머니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망측해라, 양귀비가 피어 있는 보리밭이 아름답다니. 우리에게는 수치야. 그건 잡초에 지나지 않으니까.”
「로렌초의 밤」에 나오는 보리밭을 보면서 나는 시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농민이 들인 노고의 보람찬 결실인 보리밭에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 있으면 영 체면이 서질 않는 법이다. 이 주변 땅에서 자란 타비아니 형제라면 당연히 그걸 알고도 남았을 터. 그래서, 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양귀비꽃 대신에 자신들의 손으로 자유를 고수하려던 사람들의 빨간 피로 보리밭을 물들인다. (_「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꽃」)
스가 아쓰코는 황금빛 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가 남이탈리아인들에게는 망측하고 수치스러운 잡초에 불과하다는 시어머니의 말과 나치에 협력하는 무솔리니에 대항해 서투른 총격전을 펼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배치시킨다. ‘빨강’은 양귀비꽃과 흩뿌려진 피의 연결고리가 되고, 마치 직접 장면을 보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느낀 전쟁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역사성과 깊은 상흔을 모노가타리적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한 문예평론가는 스가 아쓰코의 글쓰기를 두고 모노가타리적 방식이라 규정했다. 이는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특유의 담백한 언어로 절제된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어딘지 모를 쓸쓸함에 함몰되지 않고 행간에 스며 있는 삶의 아이러니와 그것을 비집고 나오는 단단함 같은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끔 하는 것은 그녀의 문체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침략 전쟁의 기억을 담담한 회한이나
다정한 진혼가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스가 아쓰코의 글이 유려한 수사로 가득 찬 에세이와 결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통찰력과 비판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전후戰後의 개인사뿐 아니라 근대사까지 아울러 성찰적 지식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 십대 무렵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1960년대 격동하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좌파 인사들과 어울렸던 스가 아쓰코는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뼈로 이뤄진 이 대지 위를’ 딛고 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 문학작품을 읽고 쓴 것이 그 방증이다.
‘야마토는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배운 대로 굳게 믿고 있는 소녀에게 ‘가라앉지 않는 배는 배가 아니란다’라고 진실을 알려주며 소녀의 밀선을 묵인했던 장교가 그 나름대로의 진심으로 군부를 비판하고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설정이다. 비판의 강도가 약해서(그것이 현실 속 일본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저항의 한계였다고 하더라도) 불만이 남긴 하지만, ‘속았던’ 오키나와 소녀를 개입시킴으로써 명쾌하고 깊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다. (…) 침략 전쟁의 기억을 담담한 회한이나 다정한 진혼가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현재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내면에 그 당시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체주의나 배타주의와 매일매일 싸우고 있기는 한 건가. (_「『여름 소녀 · 들어라, 바다의 소리를』 하야사카 아키라」
과연 선택과 의지에 따라 인생이 흘러가는 걸까
: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와 슬픔
독립적인 삶을 꿈꾸며 바다 건너 유럽으로 향했고, 외국인과 결혼한 스가 아쓰코의 삶은 1960년대라는 배경에서 보면 ‘파격적’이었다. 대학을 나와도 결혼하지 않으면 수도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쟁 직후 일본 여성들의 삶은 제한적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회고와 함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여로가 녹아난다. 그녀는 ‘섬세하지만 심란하지 않게’ 인생에서의 상실과 선택의 무용성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스가 아쓰코의 씩씩한 문장 배후에는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와 슬픔이 고요히 깔려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선택이 인생의 갈림길을 결정해나간다고 믿었다. (…) 하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타인에게, 그 자신에게조차 설명하지 않게 된다. 설명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도 불합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진저리 날 정도로 깨닫기 때문이다. (_「소설 속의 가족」)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금 1톤의 이야기’는 스가 아쓰코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이따금 말해준 것이다. 보통 소금은 요리할 때 조금만 쓰기에 소금 1톤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소금 1톤을 핥는 것만큼 오랜 시간만큼 함께 보내야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스가 아쓰코에게로 와서 책들과의 관계로 변주된다. 그녀는 좋은 책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독자와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성장한다고 믿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고전이라는 이야기처럼 독자의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하고, 독자의 경험에 따라 이해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스가 아쓰코는 소금 맛이 잘 배어든, 세월에도 녹슬지 않은 언어로 수많은 책을 논했다. 그녀가 한 권 한 권의 책들을 매개로 전한 이야기는 우리 마음과 현실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독서는 소금을 집어먹듯 때로는 괴롭지만, 우리 인생의 진정한 맛을 위해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 일본 독자의 평
“5년마다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싶어지는 명저.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우울할 때나 외로울 때 항상 스가 아쓰코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녀가 가버리고 이제 친절하지만 슬픈 그리고 따뜻한 문장을 새로이 읽을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아직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말은 그대로 넘어가지만 낭만적인 장면이 우리 가슴을 부풀리는가 하면 마음을 조이는 듯한 슬픔을 맛볼 수 있다.” 접기
책이야기를 읽으면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진리를 종종 체험한다. 다행스럽게도 구할 수 없는 책이 대부분이었기에, 하지만 그래도 스무 권 넘게 새로운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으니. 에세이는 소설보다 수준이 낮은 장르로 인식했음을 반성 중
transient-guest 2022-02-18 공감 (12) 댓글 (4)
스가 아쓰코, 혹은 문학적 고원
고원. 평지나 분지도 아니고 봉우리도 아닌, 이탈리아 중세도시 오르비에토에서나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지형을 우선 떠올려보자. 말하자면, 스가 아쓰코는 자신의 에세이로 그 누구도 쉽게 이르거나 침범할 수 없는 요새 같은 문학의 장소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영문학과 사회학을 거쳐 번역가, 연구자, 문장가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십여 년 간의 유럽 체류가 만들어놓은 자장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펼쳐진다. 이 에세이 역시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 생활을 꾸렸던 이탈리아 서점을 중심으로 맺었던 인연들,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먼 아침의 책들>(한뼘책방, 2019)이 책을 중심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 특유의 자전적 에세이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책은 일종의 소품으로 좀 더 직접적인 서평에 가까운 형태의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뒤로 갈수록 책 그 자체에 몰입해들어가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스가 아쓰코라는 '문장가'의 진면목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랜 독서 생활과 문장에 대한 특유의 감식안을 바탕으로 갖게 된 유려한 문체는 읽는 이를 지그시 응시하는 느낌을 선사할 만큼 편안하게 느껴지고, 유럽문화에 대한 관심과 십여 년의 이탈리아 생활은 유럽과 일본을 넘나들며 책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 해외 여행 전면 자유화가 되었지만,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에서 보여지는 코스모폴리턴 특유의 해박함과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에세이는 흔치 않다. 자신이 다룰 수 있을 시기가 도래했을 때 에세이를 통해 문학의 세계로 들어선 사람이기에 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독서가 스가 아쓰코의 문학적 고원으로 통하는 길을 터줄 수 있다면, 번역된 다른 책들은 분명 독자를 그녀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중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 역시 송태욱 선생이 번역한 <먼 아침의 책들>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섬‘이라는 장이 그렇다. 작가는 "섬들이 저마다 고유한 역할과 얼굴을 갖고 있다"라는 글머리로 시작해 무라노는 까마귀 섬, 부라노는 화려한 색채의 민가와 인종의 섬이라는 식으로 차례차례 정의 내린 후 다음과 같은 내적 성찰이 넘쳐나는 문장을 건넨다.
"섬은 또한 고독과 정숙의 장소, 적어도 그런 느낌을 기대받는 장소다. 스스로 나아가거나 혹은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모습을 감춰야 하는 인간은 같은 부류끼리 모여 특정 섬으로 향한다. 죽은 자는 산 미켈레로 향한다. (...) 죽은 자 옆에서 자기 몸의 격리를 요구하거나 요구받는다. 여기서 인종이란 수도사와 병자, 병사다." - P27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답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각자 믿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로지 자신에게 충실한 그런 일들을 근본적으로 잊은 게 아닐까. - P166
직선적 시간이나 장소조차 잊어버리는 것은 선생님의 이야기 방식이 디테일로 가득 찬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디테일로 인해, 살아온 시대나 보아온 풍경, 더 나아가 교양의 수준이 확연히 다른 나조차 뒤처지지 않고 선생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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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스 2021-01-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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