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a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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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밤 남태령에 있었던 누구나 그랬듯, 저 역시 여러 복잡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대중교통이 끊긴 후 여기 모인 수많은 시민들의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열기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였습니다. 경찰과의 긴장된 대치상황도 우려됐지만, 체감기온 영하 12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 저체온증 등으로 건강상의 불상사가 생길 위험도 충분했습니다.
엿새 넘게 트랙터를 끌고 상경한 농민들은 경찰 차벽 따위에 쉽사리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고, 곧 막차가 끊긴다고 안내를 해도 꿈쩍도 않고 쉼 없이 “차빼라!”를 외치는 시민들(대부분이 2030여성)을 강제로 귀가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유발언에서 시민들은 계엄령이 선포됐던 밤에 국회 앞으로 달려오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을 고백하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다짐했습니다. 그야말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기가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사정없이 매운 바람에 사지를 덜덜 떨면서 앉아있을 때, 어느 시민이 전해주고 가셨다는 미니초코바 몇 봉지가 종이봉투에 담긴 채 시위대열에 전달돼 왔습니다. 자그마한 초코바 한조각이라도 입에 넣으면 추위가 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집어들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긴 밤을 지새우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다들 밤새울 준비(방한, 식량, 이불 등)는 없는 상황이었고, 내 앞을 지나는 자그마한 간식은 누구에게나 요긴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생각하며 초코바를 그대로 옆으로 넘겼는데, 내 옆사람도, 그 옆사람도, 그 뒷사람도 다들 종이봉투 안을 쳐다만 볼 뿐 내용물을 꺼내들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내 마음이 소중한 만큼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도 소중히 지켜주고 싶구나, 이들은 오늘밤 남태령의 아스팔트 위에서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겠구나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차벽 앞에서 “차빼라” 외치는 시민들 곁에서 확성기를 꺼내들고 목이 터져라 몇시간을 함께 외쳤습니다. 남태령 도로 위에서 20여시간 동안 울려퍼진 “차빼라”는 경찰을 향한 분노섞인 요구이기도 하지만, 곁에 있는 서로에게 전하는 “힘내라”, “싸우자”, “이기자”와 같은 격려와 다짐의 외침이었습니다. 내 목소리에 힘이 빠지면 옆 사람이 지칠까, 끊임없이 힘을 끌어올리며 서로에게 의지해 밤을 지새운 겁니다.
이들은 밤새 이어지는 자유발언에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 누구든 귀를 기울여주었고, 어떤 말에도 성의있게 반응해주었으며, 용기와 결심을 내비치는 사람에겐 아낌없이 응원을 표현해주었습니다. 사회자의 요구에도 즉각 호응하고, 스피커에서 어떤 노래가 흘러나와도(농민가, 농민이 최고야, 민중가요, 트롯가요 등까지도) 흥 넘치게 따라 불러주었습니다.
새벽이 깊어지자 남태령역사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쉬는 이들은 저마다 친절하게 인사 건네며 도움을 주고 받았고, 여자화장실 등에 산처럼 쌓인 구호물품(?)들은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정돈되고, 채워지고, 적절히 나누어졌습니다. 생리대(사이즈별), 핫팩, 담요, 장갑, 마스크, 가글, 보조배터리, 의약품, 각종 음료와 간식, 김밥, 국밥, 죽, 심지어 집에서 해온 밥과 반찬까지... 교통편이 끊긴 새벽시간,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공수되었습니다.
세상천지 어디서 이렇게 열정적이고, 따뜻하고, 배려심있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포용력있고, 용감하고, 단호하고, 결기있고, 정의롭고, 체력까지 좋은(!) 사람들을 하룻밤에 수천명이나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요.
남태령의 밤, 그날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사실은 제 인생에 크나큰 행운입니다. 그 뜨거운 눈빛과 맑은 음성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덧) 한남동 윤석열 관저 집회가 끝나고 LED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집회대오는 자리를 뜨지 않고 버텼습니다. 음향팀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대여섯곡의 노래를 더 부를 수 있었고 ‘다시만난세계’가 나왔을 때 이게 마지막 곡이겠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에 진짜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고 모두가 떼창하는 순간이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마지막곡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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