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김윤덕.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김윤덕. Show all posts

2023-11-09

김윤덕 선임기자 -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 조선일보

전체기사1457건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일본 저널리스트 도이 도시쿠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의 일생을 추적한 책 ‘기억과 살다’에는 매우 논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도야마의 군수 공장을 탈출한 자신을 붙잡아 강간한 뒤 군 위안소로 끌고 간 고바야시 헌병에 대한 강덕경의 증언이다. 고바야시는 15세 소녀를 지옥 구덩이로 던져 넣은 악마지만, “가끔 주먹밥과 건빵을 갖다주고 뱃놀이도 데려가 ...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기업은 나라 것’이라던 할아버지가 준 최고의 선물? 내가 나로 살게 한 자유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柳一韓·1895~1971)이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 건 그가 남긴 유언장에서 비롯됐다. 손녀의 대학 학자금 1만달러를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내용의 유언장이 공개되자 한국 사회가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정치 비자금, 탈세, 세습 경영을 당연시하던 1970년대였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1만달러 ‘상속’의...
‘기업은 나라 것’이라던 할아버지가 준 최고의 선물? 내가 나로 살게 한 자유
01:52
‘전세 폭등’ 시한폭탄… 대비 안하면 2027년은 ‘부동산 大選’
‘20% 집값 대폭락’을 예측해 부동산 족집게란 별명을 얻은 김경민 서울대 교수는 내년도 전망을 묻자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 부동산 위기, 5%에 근접한 미국 국고채 금리, 가계 부채, 총선 등 너무도 많은 변수가 맞물린 불확실성의 해”인 탓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져 더더욱 안갯속. 다만 김 교수는 “서울의 경우 바닥은 확인됐다. 문제는 202...
‘전세 폭등’ 시한폭탄… 대비 안하면 2027년은 ‘부동산 大選’
02:24
‘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날, 이용수 할머니는 “저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윤 의원 수사는 3년 전 이 할머니 기자회견으로 시작됐다. 지난 4일 대구 자택에서 만난 할머니는 “기자회견 후 (쏟아진 비난에) 죽어버릴까도 했지만, 내가 죽으면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없지 않나”라며 눈시울을...
‘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02:39
[김윤덕 칼럼] 국민의 마음을 얻는 법? 이 夫婦처럼 하면 이긴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폐쇄된 공장을 인수한 중국 기업 푸야오(福耀)가 2000명의 미국 노동자들과 원팀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2020년 아카데미 수상작인데, 기업주는 악(惡), 노동자는 선(善)으로 그리길 좋아하는 한국 영화 풍토에선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노사 어느 편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
[김윤덕 칼럼] 국민의 마음을 얻는 법? 이 夫婦처럼 하면 이긴다
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바이오 라이더’라는 매연 저감 장치를 생산해내던 70평 작업실은 2020년 9월 21일 낮 1시 35분에 멈춰섰다.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와 배를 타고, 수산고 졸업 후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빈 이래진은 각종 공구로 뒤덮인 작업실에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생 이대준의 실종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누구도 믿어서는...
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02:34
[김윤덕 칼럼] 다시 불붙은 ‘검찰 악마화’, 이재명과 민주당 살릴까
간첩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던 골수 주사파 민경우는 86세대 무용담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며 웃었다. 특히 고문·폭행담은 열 배, 스무 배쯤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시기 군대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고, ‘박종철 사건’ 이후 고문이 급속도로 사라졌는데도, 86세대 신화화를 위해 공권력의 악마성을 끊임없이 재생시킨다고 했다. 운동권이 제도...
[김윤덕 칼럼] 다시 불붙은 ‘검찰 악마화’, 이재명과 민주당 살릴까
獨지식인들이 ‘쓰레기’ 취급한 K팝의 힘… “학생들, 북핵서 윤석열까지 훤히 뀁니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 박사과정에 있는 궨돌린 덤닝은 원래 이 학교 의대생이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동방신기 팬이었던 그는 의대를 다니다 한국학으로 전과(轉科)했다.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 남자랑 사귀냐?”였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지식인의 대다수는 K팝을 ‘쓰레기’라 여겼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K팝에서 한국 정치, 역사로 폭을 넓힌...
獨지식인들이 ‘쓰레기’ 취급한 K팝의 힘… “학생들, 북핵서 윤석열까지 훤히 뀁니다”
02:00
박민식 “이승만이야말로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보훈 가치, 미래에 있어”
박민식 장관을 보고 세 번 놀랐다. 왕방울만 한 눈에 한 번, 곱상한 입에서 튀어나오는 “치아라” “마, 됐다” 류의 사투리에 두 번, 그리고 휴대폰 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힌 명함에 세 번! 명함에 관한한 보좌진은 극구 만류했으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장관이라고 개인 번호를 명함에 넣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의원 시절에도 지역구민들 목소리를 (휴대폰으로) 직...
박민식 “이승만이야말로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보훈 가치, 미래에 있어”
02:19
“후쿠시마 선동한 이재명과 86그룹,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 가장 떨어져”
“여기가 보수의 심장이군요”라고 민경우는 말했다. 골수 주사파였던 그는 조선일보가 신기한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젊을 때 형성된 생각의 원형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새로운 지식, 경험을 통해 사람이 변한다고요? 개뿔입니다.” 한미 FTA 반대와 광우병 시위 주동자로 후쿠시마 괴담의 허구를 설파해 온 그이지만, 여전히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고 했다. “조선일...

2023-11-08

[김윤덕]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김윤덕이 만난 사람] ‘서해일기’ 펴낸 이래진 씨


‘바이오 라이더’라는 매연 저감 장치를 생산해내던 70평 작업실은 2020년 9월 21일 낮 1시 35분에 멈춰섰다.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와 배를 타고, 수산고 졸업 후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빈 이래진은 각종 공구로 뒤덮인 작업실에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생 이대준의 실종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누구도 믿어서는...
이래진 씨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문 前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문 前대통령이 "얘기했던 '공정'과 '정의'"에 비해 "이 사건에 관련해서는 모든 것들이 불합리했었고 언행불일치했다"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김윤덕] 다시 불붙은 ‘검찰 악마화’, 이재명과 민주당 살릴까

[김윤덕] 다시 불붙은 ‘검찰 악마화’, 이재명과 민주당 살릴까



[김윤덕 칼럼] 다시 불붙은 ‘검찰 악마화’, 이재명과 민주당 살릴까

‘신檢부’’대한檢국’ 선동하며
조국 유시민 최강욱 의기투합
검찰·독재에 대한 국민 반감
총선 이용할 ‘약한 고리’로
‘후쿠시마’ 안 먹힌 反日감정
민주당 혐오만 깊어질 것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09.26. 




유시민(왼쪽)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9월 15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서 신간 '디케의 눈물'을 출간한 조국 전 법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를 '신검부' '대한검국'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
간첩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던 골수 주사파 민경우는 86세대 무용담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며 웃었다. 특히 고문·폭행담은 열 배, 스무 배쯤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시기 군대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고, ‘박종철 사건’ 이후 고문이 급속도로 사라졌는데도, 86세대 신화화를 위해 공권력의 악마성을 끊임없이 재생시킨다고 했다.

운동권이 제도권에 대거 입성한 문재인 정권 들어 86세대 신화 만들기는 절정에 올랐다. 문 정부 출범 직후 개봉된 영화 ‘1987′이 대표적이다. 학생운동을 절대선으로 띄우기 위해 치안본부 대공처장(김윤식)을 빨갱이 척결에 광적인 사명감을 가진 악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형사들이 아무 때나 교회, 신문사에 난입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87년 내내 거리에서 살았다는 민경우는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의 대한민국이 무법 천지였겠냐”며 “문 정권의 86세대는 70년대 유신 투쟁을 한 선배들의 고초를 자신도 똑같이 겪었다는 과대망상으로 스스로를 영웅화하고 보수 진영을 악마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적폐 청산이 진행됐다. 강준만 교수는 이를 ‘퇴마 정치’라 명명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는 퇴치해야 할 또 하나의 ‘악마’가 탄생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반기를 든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정권 초기 특수부를 앞세운 적폐몰이에 무려 4명이 자살했을 땐 침묵했던 이들이, 조국 사태가 터지자 ‘검찰 개혁’을 외치며 서초동으로 몰려간 이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검찰 악마화는 더욱 격화하고 있다. 그 선두에 대깨문이 ‘검찰 개혁의 희생양’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라 추앙했던 조국 전 장관이 있다. 딸 조민이 기소됐을 때 “차라리 나를 남산으로 끌고 가 고문하라”는 과대망상성 발언을 했던 조 전 장관은, 이달 초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라는 부제를 단 책을 출간한 뒤 최강욱 전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의기투합해 대통령 탄핵 분위기를 띄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언 수위가 북한의 ‘정치적 미숙아’ ‘외교 백치’ 수준을 능가한다. 최강욱은 “전두환의 하나회에 버금가는 윤석열의 ‘신검부’가 법치주의를 완전히 도륙하고 있다”고 했다. 조국은 “용산이 전체주의에 장악됐다. 검찰권이라는 무력을 가진 윤 정권과 국민의 충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며 제2의 촛불을 암시했다. 유시민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전쟁’을 선포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상대를 말살하려는 전쟁”이라고 규정한 그는 “기싸움에서 밀리면 진영은 무너진다. 당대표직 내려놓지 말고 옥중 출마, 옥중 결재하라”고 선동했다.



조국의 허언대로 “깨어나 보니 일제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 걸까. 이들의 황당한 폭주엔 믿고 의지하는 광신도 팬덤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조폭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배신자 색출 광풍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민경우는 “주사파는 합리와 이성을 배제한 사이비 종교였고, 한 사람이라도 내 편으로 전취(戰取)하기 위한 선전·선동 기술은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대 야당의 퇴마 정치는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 조국은 검찰이 국민들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했지만, 검찰이 무서워 못 살겠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공포로 치자면, 검찰보다 백주 대낮의 묻지 마 폭행범과 스토킹 살해범들이 훨씬 무섭다. 이들을 한 방에 퇴치하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과 나약함에 혀를 차는 중이다.

압수 수색을 백 번 했든 말든 그건 죄 지은 사람들 사정이다. 혐의가 너무 많아 ‘직업이 피의자냐’는 말까지 듣는 이재명 대표 아니던가. 신검부, 대한검국이라는 얄팍한 조어 선동에도 더는 속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 협력을 깨기 위해 반일 감정이란 약한 고리를 흔들어 후쿠시마 오염수를 선동했던 것처럼, 당대표 구속을 막고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검찰, 반독재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걸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혁신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백전백패 한다”는 친노 중에 친노 조기숙 교수의 말은 옳다. 지금이 그 절호의 기회다. 검찰을 비난하기 전에 수많은 민주화 동지들이 왜 눈물을 삼키며 민주당을 떠나갔는지 이제라도 귀 기울여야 한다. 65년생 투사 조국은 “정의의 여신 디케가 검찰 폭정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지만, 65년생 투사 민경우는 “친구야, 이제 좀 솔직해지자. 정의란 사실 앞에 정직한 것”이라며 웃었다.


[김윤덕]‘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김윤덕이 만난 사람]
‘윤미향 2심’ 선고 후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위안부 기부금을 횡령해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윤미향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과) 같이 위안부 문제 해결하자고 했는데 돈에 눈이 어두워서 돈 벌려고 그랬나"라고 말하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신현종 기자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10.23. 


200살까지 살아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겠다던 이용수 할머니는 “기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위안부 문제는 진척이 없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신현종 기자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날, 이용수 할머니는 “저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윤 의원 수사는 3년 전 이 할머니 기자회견으로 시작됐다. 지난 4일 대구 자택에서 만난 할머니는 “기자회견 후 (쏟아진 비난에) 죽어버릴까도 했지만, 내가 죽으면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없지 않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90세가 넘어 기억이 왜곡돼 있다는 정의연의 말은 거짓이었다. 95세의 이용수는 날짜, 시간, 사람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해 내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죽은 손영미 생각하면 가슴 아파

-윤미향 의원이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저한테는 다 비밀로 했으니 (윤미향이) 뭘 속이고 뭘 했는지 제가 알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하자 약속했던 윤미향이가 돈에 눈이 어두워 그랬나, 돌변해 가지고 (국회로) 나간 게 괘씸했을 뿐이지요.”

-1심에선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나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부터 윤 의원에게 사과를 했지요.

“만나는 사람마다 욕했지만 나는 예사로 봤어요. 설령 의원직을 상실해도 좋은 건 다 누리지 않았습니까. 윤미향이가 죄를 살든 말든 관심 없어요. 그저 죽기 전에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 진척 없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윤 의원은 선고 후 자신의 30년 위안부 운동을 폄훼하지 말라고 했던데요.

“그럴 자격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기자회견 당시 윤미향은 할머니 기억이 왜곡됐다고 반박했지요.

“1992년 6월 25일, 내 위안부 피해 신고를 받은 사람이 정대협 간사였던 윤미향이에요. 일본에 끌려갔다 온 걸 밝히는 게 무서워서 처음엔 이용수가 내 친구라고 했지요. 기자회견에서 흠을 잡을 수 없으니, 그때 얘길 꺼내 날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몰고 가데요.”

-윤미향은 애초 기자회견을 말리지 않았나요?

“(국회의원 출마를) 다시 생각해라. 나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하겠다 약속하지 않았나. 그러면 기자회견 하겠다 하니 당당하게 ‘마음대로 하세요’ 하더군요.”

-국회로 가면 위안부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미향이 의원 돼서 뭘 했습니까?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사람이 독해도 그렇지. 할머니들 뒷수발해 주던 그이만 안타깝게 죽었어요.”

-자살한 정의연 마포 쉼터 손영미 소장 얘기인가요?

“그 사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경희대 후문의 또 다른 쉼터에서 일할 때 내가 윤미향이한테 여기 벽시계라도 하나 걸어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 이거 다 공금이에요’ 하는 거라. 그래서 내가 사다 줬어요. 손영미가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윤 의원이 용서를 빌러 대구로 왔었지요?

“나도 사람입니다. 무릎 꿇고 용서를 빌더니 돌아서 나가다 말고 날더러 안아 달라고 해요. 늙은 마음에 눈물이 콸콸 나데요. 너하고는 이게 마지막이다 싶고. 그러나 용서한 적 없습니다.”

정의기억연대와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4일 오전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원로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의 조형물 '대지의 눈' 앞에서 서울시의 철거 방침을 규탄하고 있다./뉴스1
◇'기억의 터’ 철거, 왜 반대하나

-임옥상 작가의 ‘기억의 터’가 철거됐습니다.

“난 철거하라고 했어요. 서울시에서 새로운 기념물 만들어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정의연은 서울시가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 한다며 반대 시위를 했습니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지요. 다른 것도 아니고 끔찍한 성범죄를 당한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곳에 그런 작품을 두면 죄가 되지 않겠어요.”

-정의연에 이어 경기도 ‘나눔의 집’도 수사를 받았지요?

“둘 다 우릴 참 많이 속였어요. 내가 외국 나가서 증언할 때 한국에 오면 수요 집회나 나눔의 집에 꼭 오시라 말하는데, 정작 그들이 오면 우릴 못 만나고 돌아가요.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서 내겐 연락을 안 하는 거라. 외국 다니며 쌓인 내 비행기 마일리지도 자기들 맘대로 사용해서 내가 막 퍼부은 적도 있어요. 소녀상 세운다고 모금을 해도, 할머니들 데리고 영화를 찍어도, 그 수익금이 다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의혹 폭로 후 김어준의 배후설을 비롯해 비난을 많이 받으셨죠? ‘낮은 목소리’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그 할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라고 했더군요.

“이토 다카시라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증언 현장을 따라다니며 사진 찍는 일본 작가가 있는데 변영주가 그이 사진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고 고소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할머니들 사진은 네 멋대로 찍어놓고 그걸 왜 못 쓰게 하노, 하면서 이토 다카시를 꾸짖었지요. 그렇게 해결해 줬는데 날 모욕하데요.”

-할머니들만 고통받는군요.

“박옥선이는 누워서 코로 밥을 먹는 게 10년이 넘었어요. 강일출은 치매에 코로나까지 걸려서 후유증이 심해요. 난리 통에 간호사도 떠나고, 봉사자도, 후원금도 다 끊겼지요.”

-기자회견한 걸 후회하십니까?

“후회는 안 해요. 그런 결단을 어떻게 했나 싶고.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죽어야 하는데 나이는 먹고 기력은 떨어지니 안타까워서 내가 많이 울어요. 먼저 간 할머니들 볼 낯이 없어서.”
◇대통령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30년 걸친 싸움이 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도 있습니다.

“일본을 그만 용서해 주라고 하더군요. 그게 이기는 거라고. 내 생각은 다릅니다. 일본은 지금도 강제 동원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해요. 정치인들의 망언을 보세요. 위안부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고, 한국엔 기생집이 많아 위안부가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무엇을 용서하란 말입니까. 돈을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일본이 강제 동원을 깨끗이 인정하고 총리가 사과한 뒤 양국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제 소원이에요.”



-일본은 국가의 강제 동원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맞섭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예요. 우리의 기억, 우리의 증언이. 이제 9명 남았어요. 우리가 죽으면 다 사라집니다.”

-일본은 사과도 여러 차례 했다고 주장합니다만.

“사과는 피해자에게 하는 건데 나는 일본에서 어떤 사과도 받은 적 없습니다. 아베는 부시 앞에서 사과 했다는데, 왜 미국에다 사과를 합니까. 한일 청구권 협정(196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2015년) 모두 피해자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엉터리예요.”

-’아시아 여성 기금’ 등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 중심으로 보상 노력이 있었습니다.

“보상과 배상은 달라요. 보상은 그냥 미안해서 주는 눈물 값이고, 배상은 죄에 대한 법적 처벌이에요. 그래서 보상을 거부하고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겁니다. 그것도 안 되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판결을 받으려고 해요. 그건 일본도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인정할 겁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으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되던 날 가장 기쁘셨겠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우리 얘기를 만천하에 알려야 하니 구심에 청심환까지 먹고 연단에 섰지요.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긴장이 풀려 휘청거리자 마이크 혼다 의원이 부축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지요?

“날 만나러 대구 위안부 역사관에 오셨어요. ‘대통령이 안 돼도 이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 하셔서 깜짝 놀랐지요. 세계 정상들과 외교를 잘하시니 위안부 문제도 잘 해결해 주실 거라 믿어요. 대통령을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때인 2021년 9월 11일 대구 중구 서문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이 있나요?

“학생들이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하니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마련했는데 적산 집이라 비가 오면 물을 퍼내야 할 정도로 열악해요. 사진 하나 붙여 놓을 데 없이 비좁고요. 정부가 도와주면 좋은데 말도 못 하고 있지요.”
◇다음 생에는 女軍으로

-64세에 위안부 피해 신고를 하셨지요.

“91년 김학순씨가 최초로 증언한 뒤 피해자 신고를 하라는 소식이 동네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어요. 처음엔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다 알게 될까 봐. 그러다 바로 밑 남동생이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그때 45년간 숨겨온 이야기를 털어놨어요. 동생이 ‘누님, 얘기하이소, 꼭 하이소’ 하고 죽었어요.”
관련 기사
이래진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던 文, 다시 나와선 안 될 통치자”
獨지식인들이 ‘쓰레기’ 취급한 K팝의 힘… “학생들, 북핵서 윤석열까지 훤히 뀁니다”

-악몽을 꿉니까.

“한동안 낮에는 밖에 못 나갔어요. 누가 잡으러 올까 봐. 위안소에서 전기 고문 당한 후유증에 가만 있다가도 살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땀이 줄줄 흘러요. 자다가도 흐느끼고.”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나요?

“왜 없을까요. 근데 우리 민족은 순결이 중요하니까.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이 몸으로 결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젊어서 미인이셨다던데.

“눈이 요래 작은데 미인은 무슨. 피부 하나는 끝내줬지요(웃음). 구청장이 웨딩드레스 입는 추억을 만들어줬는데, 혼자 드레스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세상에 이렇게 가여운 신부가 없어요.”

-위안부 누드집 파문으로 배우 이승연씨가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사죄할 때 꼭 안아주시더군요.

“모르고 했지, 알고는 그리했겠나 싶어서. 수요 시위 하면서 내가 성질이 나빠져서 그렇지 온순하고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웃음).”

-추석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가만히 있으니까 지나가데요.”

-연휴 직전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다녀갔더군요.

“따뜻한 분이에요. 필요하신 게 뭐냐고 해서 화장품이랬더니 사다 주고, 편지도 주시고. 그만둔다니 섭섭해서 ‘가지 마세요’ 했어요.”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9월 19일 대구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자택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여가부 제공

-경북대에서 국제법을 공부하셨다고요.

“일본과 싸우려면 단디 알고 싸워야 하니 사회교육원에서 역사도 배우고, 국제법도 공부했지요. 국제법은 너무 어려워서 내 머리로는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어릴 때부터 제대로 공부 했으면 한자리 하셨을 텐데요.

“아홉 식구에 남동생 넷 업어 키우느라 달성보통학교를 다니다 말았어요. 풍금에 맞춰 노래하는 음악 시간이 제일 좋았지요. 지금도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다시 태어나신다면….

“여군이 될 거예요.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게 우리나라를 지킬 거예요. 얼마나 멋집니까(웃음).”

2023년 10월 4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자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국화꽃이 심겨진 화분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신현종 기자

☞이용수

1928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남의 집 유모였던 어머니 대신 동생 넷을 돌보며 면사 공장에 다니다 16세이던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갔다가 1946년에 돌아왔다. 1992년 6월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한 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증언했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됐다.

[김윤덕]“후쿠시마 선동한 이재명과 86그룹,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 가장 떨어져”

“후쿠시마 선동한 이재명과 86그룹,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 가장 떨어져”:


“후쿠시마 선동한 이재명과 86그룹,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 가장 떨어져”

[김윤덕이 만난 사람] ‘민주화운동 동지회’ 민경우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09.11.



2023년 9월 5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에서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전향 후 '일심회' 등 주사파 조직원들에게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지방엔 여전히 주사파가 건재하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여기가 보수의 심장이군요”라고 민경우는 말했다. 골수 주사파였던 그는 조선일보가 신기한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젊을 때 형성된 생각의 원형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새로운 지식, 경험을 통해 사람이 변한다고요? 개뿔입니다.” 한미 FTA 반대와 광우병 시위 주동자로 후쿠시마 괴담의 허구를 설파해 온 그이지만, 여전히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나쁘다, 검찰은 악이다처럼 무의식 중에 학습된 판타지를 깨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아직도 ‘전대협 진군가’를 들으면 울컥하니까요.” 그는 지난 8월 15일 주대환, 함운경과 함께 ‘586 설거지론’을 주창하며 ‘민주화 운동 동지회’를 출범시켰다.
◇후쿠시마 괴담… 反윤석열 위한 미끼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사실 검증은 없었다고 폭로한 것이 후쿠시마 괴담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했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한·미·일 군사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민주당과 시민 단체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약한 고리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한·미·일 군사 협력 기조가 옳다고 판단하면서 선동에 휩쓸리지 않았다. 여기에 광우병 학습 효과로 국민이 민주당이 아닌 과학자들의 말을 신뢰한 결과다.”

-광우병 시위대의 관심은 오로지 이명박 퇴진이었다고 했다.

“후쿠시마도 마찬가지다. 오염 처리수의 과학적 진실 여부는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오로지 윤석열을 반대하고 이재명의 사법 처리를 막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광우병의 진실에 조금도 의구심을 갖지 않았나?

“여러 명의 전문가에게 광우병의 존재를 물어봤다.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당연히 토론도 없었다. 술자리에서 방송사 PD와 교수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을 뿐이다. 소들이 픽픽 쓰러지는 영상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거라고. 광우병은 그저 미끼에 불과했다.”

-그때는 국민들이 왜 휩쓸렸을까?

“광우병을 아는 과학자가 별로 없었고, 안다고 해도 시민사회가 거세게 압박하니 발언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괴담은 원자력 싸움의 경험이 있는 과학자들이 적극 나서줘 막을 수 있었다.”

광우병 해군기지 반대 해상시위
◇주사파 최대 프로젝트 ‘이승만 죽이기’

-FTA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운동권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 식민지로 전락하는 줄 알았다. 오로지 반미(反美)가 목적인 주사파는 상대가 미국이라서 투쟁한 것뿐이었다. 그즈음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일본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 전부를 합친 것보다 크다는 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삼성은 매판자본이 아니었다.”

-21세기에 한국이 식민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건가?

“의심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서태지와 룰라가 나왔을 때부터다(웃음). 그러나 인정하지 않았다. 식민지를 부정하는 순간 주사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니까.”

-’진보의 재구성’이란 책이 그 무렵 나왔다.

“내가 20년 활동해 온 주사파가 틀렸다는 첫 선언이었다.

-주사파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나를 비롯한 80년대 학생운동가들은 독립운동처럼 혁명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던 노래가 독립군가다. 조국이 ‘죽창가’ 운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설은 또 얼마나 장엄하고 비장한가. ‘영원한~’ ‘인간 해방’ ‘끝장내자’ 같은 감성적이고도 격렬한 단어들. 그땐 혁명 이외의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사파를 우습게 보는 건 기독교를 우습게 보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 같은 사상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 책이 아니고 노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일체감을 조성한다. 지식인의 합리주의는 무력하다. 몇 글자 책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보는 건 운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얼마나 위력적인가. 주사파는 대중의 가슴을 자극하는 판타지를 심는다.”

-주사파는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썼더라.

“한국 사회 모든 악의 근원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해전사’의 핵심이다. 이를 토대로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이승만을 깎아내리기 위한 대항마로 김구를 띄우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는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김구를 대안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구의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는 안 된다’고 한 말을 이용했다. 주사파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1987년 한국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개헌에 앞서 민주화 과정을 조명한 영화 ‘1987’ 스틸 컷


◇86세대의 신화 만들기

-’86세대의 민주주의’란 책에서 87년 6월 항쟁이 많은 부분 과장되었다고 했다.

“영화 ‘1987′은 학생운동을 신화로 만들기 위해 선악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순수한 학생운동이란 없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인문대·사회대·자연대 학생회장이 다 주사파였다. 87년 배경의 드라마 ‘설강화’가 북에서 지령을 받는 대학생이란 설정으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는데, 내가 웃었다. 당시 주사파 운동권은 ‘한민전’이라는 북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시위의 방향을 정하고 조직했다.”

-6월 항쟁의 진짜 주역은 김영삼의 민추협이지 학생운동이 아니라고도 썼다.



“학생운동이 직선제와 호헌 철폐를 외친 건 87년 4월~6월 두 달 정도다. 그 전엔 줄곧 반미(反美)를 외쳤는데 이게 안 먹히자 구호를 바꾼 거다. 오히려 김영삼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판세를 좌우했다. 6월 24일 김영삼이 전두환과 마지막 담판을 하면서 직선제가 아니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 6·29의 기폭제였다.”

-김영삼이 저평가됐다는 뜻인가.

“86세대가 스스로를 신화로 만들기 위해 김영삼을 희화화했다.”

-신영복도 터무니없이 우상화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통혁당 사건의 주모자들은 60년대 초반 서울대 상대에 있었던 몽상가들이다. 그런데 80년대 주사파들이 마치 그가 운동의 적자인 것처럼 신화를 썼고,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신영복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또 한번 판타지를 만든다. 그러나 신영복에겐 이렇다 할 사상이 없었다. 문익환, 백기완처럼 운동의 한복판에 있지도 않았다. 고상한 인문학적 글쓰기로 포장된 사람일 뿐이다.”

-학생운동이 아니어도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라는 인구 집단과 경제 성장이 맞물리면서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가 작동했다는 뜻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이를 부풀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이 역사를 퇴행시켰다.”

-문재인 정치 그룹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더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엔 그래도 엘리트 집단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80년대 몽상에 사로잡힌 운동권이 장악했다.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민족 자주’ ‘남쪽 대통령’ 같은 80년대 운동권 용어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세계는 AI 혁명으로 가는데 문 정권은 검찰 독재, 역사 청산으로 퇴행했다. ‘짱깨주의의 탄생’ 등 70~80년대 사고의 원형에 갇혀 있는 그가 추천하는 황당무계한 책들을 보라.”

-86세대는 시위만 했지 공부는 안 했다는 지적에 동감하나.

“나는 문재인에 이어 현재 이재명 주위에 있는 그룹이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미지를 팔아먹으며, 과격한 발언들로 존재감을 과시할 뿐이다. 민주당은 처럼회, 개딸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지난 8월15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서 민주화 운동 동지회 발족식이 열렸다./이태경기자


김윤덕 선임기자 -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 조선일보
전체기사1457건

김윤덕] ‘백년전쟁’ 왜곡 맞서 ‘이승만 바로세우기’… 하와이 이 女人의 집념이었다

‘백년전쟁’ 왜곡 맞서 ‘이승만 바로세우기’… 하와이 이 女人의 집념이었다

‘백년전쟁’ 왜곡 맞서 ‘이승만 바로세우기’… 하와이 이 女人의 집념이었다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책과 다큐로 만든 이덕희 소장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다큐멘터리의 편집본.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와이 30년은 대한민국 건국을 준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06.26.  




141



하와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에서 만난 이덕희 소장이 미국 이민 9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한인이민 사진집 '그들의 발자취'를 펼쳐놓고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교육사, 여성사에 이어 교회사로서의 한인이민 연구가 자신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찬송가 ‘부름받아 나선 이몸’을 작곡한 이유선 장로의 딸이다. /호놀룰루=김윤덕 기자

와이키키 해변은 눈부셨으나, 쿨라 콜레아(Kula Kolea) 거리가 주는 감흥엔 미치지 못했다. ‘한국 학교’라는 뜻의 쿨라 콜레아는, 1913년부터 25년간 하와이를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펼친 이승만과 한인 동포들의 자취가 서린 곳. 교육이 독립의 근본이라고 믿은 이승만이 사탕수수밭 한인 노동자들의 자녀를 세계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 세운 한인기독학원이 여기 있었다. 이덕희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은 “한성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미국 교육제도에 관한 책을 섭렵한 이승만 박사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고, 하와이에 오자마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공학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호놀룰루시 도시계획과 공무원을 시작으로 도시·환경계획 분야에서 30여 년 일하며 이승만과 하와이 이민자들의 독립운동 연구에 매진해온 인물. 최근 TV조선이 방영한 다큐 ‘이승만의 하와이 30년’이 그의 동명(同名)의 저서를 토대로 제작됐다. ‘미스터 션샤인’의 모델로 알려진 황기환 지사의 하와이 이주 사실도 이 소장이 호놀룰루 항구 입항자 명부를 통해 확인했다.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2023-11-07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23.11.07. 박유하 반론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제국의 위안부’는 無罪였지만
박유하 주장이 옳다는 건 아냐
‘동지애’ ‘매춘적 강간’ 주장
피해자에 대한 혐오 불러
정부는 ‘정의연 독주’ 방관만
진정한 사과 이끌 외교 절실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11.07.
------
85
박유하 교수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 무죄 판견을 받은 뒤 심정을 밝히고 있다./남강호 기자

일본 저널리스트 도이 도시쿠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의 일생을 추적한 책 ‘기억과 살다’에는 매우 논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도야마의 군수 공장을 탈출한 자신을 붙잡아 강간한 뒤 군 위안소로 끌고 간 고바야시 헌병에 대한 강덕경의 증언이다. 고바야시는 15세 소녀를 지옥 구덩이로 던져 넣은 악마지만, “가끔 주먹밥과 건빵을 갖다주고 뱃놀이도 데려가 준 사람이었다”고 강덕경은 회고한다. “고바야시에게서만 그런 일을 당했다면 위안부로 신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가해자를 향한 증오와 애착의 공존에 저자는 범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다. 매 맞는 아내가 남편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듯, 물리적·심리적 감금 상태에 있던 위안부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일본군이 사소한 자비를 베풀 때 과도한 애착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강덕경 같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 또는 ‘동지애’일 수 있다고 해서 논란을 불렀다. 황국신민으로 애국자 역할도 담당해야 했던 조선인 위안부에겐 일본군과의 동지적 관계가 긍지가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었고, 일본군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웃던 기억을 은폐하는 건 그들을 또 한번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박유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사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책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루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성들에게 ‘동지애’란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이는 여성 폭력에 대한 무지이자, 피해자가 아닌 ‘제국의 시각’에서 위안부를 바라본 ‘인간에 대한 몰이해’다.

일본의 국가적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두 요소 ‘강제 연행’과 ‘위안소의 매춘적 성격’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여성을 직접 끌고 간 주체는 포주나 업자이지 일본군이었던 경우는 적어 국가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매춘적 강간’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통해 매춘을 목적으로 한 조선인 위안부도 적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군 위안부 제도는 그것이 강제 연행이든 사기든, 성폭력이든 성매매든, 일본군과 사랑을 했든 안 했든, 국가 조직인 군대가 여성에게 가한 명백한 폭력이다. 군 당국과 행정기관의 비호와 묵인 없이 위안부 동원이 불가능했다는 건 일본 학자들도 동의하는 바다. 박유하가 주요 근거로 삼은 센다 가코의 책 ‘종군 위안부’조차 ‘군의 명령에 의해 전장으로 끌려가 제1선 장병들의 성욕 처리 용구로 이용됐던 여성’으로 위안부를 정의한다. ‘제국의 위안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윤명숙의 일본 박사 학위 저술 ‘조선인 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와 증언이 빼곡하다.

물론 ‘제국의 위안부’는 과도한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위안부 담론을 독점한 채 일본 정부에 강경 일변도로 대응해 온 정대협(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가 왜 그토록 법적 배상 책임을 거부하는지도 소상히 밝힌다.

문제는 박 교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썼다”는 이 책이 아베 정권과 일본 극우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조차 “매춘이 자랑이냐” “가짜 위안부 색출하라”는 모욕과 멸시가 쏟아졌고, 좌파와 정의연은 이를 반일 선동에 이용했다. 박 교수는 “좌우 모두 내 책을 오독했다”고 했지만, 누구를 위한 화해인지 오독하게끔 글을 쓴 건 저자의 책임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30년이 흘렀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일차적 책임은 정의연의 독주를 수수방관한 정부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권과 우여곡절 끝에 타결한 합의마저 
문재인 정부가 휴지 조각으로 만든 뒤로는 단 한 걸음의 진전도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겼다”는 이용수의 분노처럼 
한일 양국 간 협상에서도, 정의연과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할머니들은 언제고 소외됐다.

이제라도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는 주장에 분노해 위안부 피해 신고를 했던 강덕경은 “일본 정부가 진상을 밝혀준다면 배상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대구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죽기 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결국 외교로 풀어야 한다. 일본 총리가 고개 숙여 할머니들 손을 잡아드리는 일이 그 첫걸음이다. 그건 대통령과 정부만 할 수 있다.

김윤덕 선임기자
====


관련 기사
‘노망’ ‘배신’ 비난에 죽을 생각도… 다시 태어나면 女軍 돼 나라 지킬 것
“의심해 미안” 윤미향에 사과했던 野의원들, 뒤집힌 항소심엔 침묵
====
조선일보 김윤덕기자가
문맥 빼고 단어에만 주목한 비난 칼럼을 썼기에 반론을 쓰겠다고 했다.
이미 글이 나갔다면서 저어하는 기색이었지만,
음해에 가까운 글을 게재했으니 바라건대 공정하기를.
앞서 쓴 건 ’판결‘소회일 뿐이니 글의 성격이 다르다.
나로선 10년 가까이 들어왔던 얘기고
이미 5년전에 반론도 다 쓴 얘기다(<‘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2018. 뿌리와이파리).
학자와 운동가들의 비난에 대한 답과 비판을, 눈에 띈 글에 대해선 당시 다 했지만, 이후 이들의 재반론은 듣지 못했다.
내 반론책 같은 건 보지 않았을 이들이
곧바로 공유하며 비난하는 글들이 보이는데
그런 글조차(당연히?) 내가 한 얘기를 반대로 옮긴다.
배상법을 만들라고 일본에 요구한 건 내가 아니라
정대협이다. 나는 일본 국회에서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뭔지 설명했을 뿐이다.
심지어 김기자는 무죄판결은 긍정하면서도
독자들 오독이 내 책임이라는데,
내가 패소한 형사2심 판결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남은 재판이 다 잘 끝난다 해도 공격은 거세질 듯.
여전히, 편안한 시간은 요원해 보인다.
All reactions:
You, 정승국, Okjin Park and 116 others
21 comments
1 share
Like
Comment
Share

21 comments

  • Park Yuha
    <법적책임관련 언급 부분> 붙여 둡니다.
    “지원단체 주장이 법적책임“ 이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이하 부분은 왜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
    그럼에도 업자 얘기를 쓴 건 정대협 등 지원단체의 주장이 '법적 책임'의 요구였고, 그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다
    (중략)
    프레시안 : 그렇다면 국가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가.
    박유하 : 법적 책임이란, 일본 국회를 통해 법을 만들어서 보상하는 것이다. 그게 과거 20년 동안 안 됐다. 안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보상이 1965년에 끝났다는 것, 또 하나는 강제 연행을 안 했다는 것이다. 과거 여러 번 국회에 발의됐으나 계속 폐기됐던 건 '강제 연행을 안 했는데, 그게 국가의 죄가 되느냐' 때문이었다. 우린 일본이 책임지기 싫어서라고만 알고 있지 않느냐. 저는 이점을 알리고 싶었다.
    4
    • Like
    • Reply
    • Edited
  • 박혜범
    비난은 물론 앞으로도 특정 세력의 공격은 집요하게 이어질 겁니다 모르긴 해도 교수님 사후에도 공격할 겁니다 편하지는 않겠지만 대비는 잘 하셔야 할 겁니다 특히 어떠한 경우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________()_
    3
    • Park Yuha
      박혜범 네, 그래야겠지요. 잠시나마 반성과 올바른 이해를 기대했는데 접어야 하나 봅니다.
      3
  •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CHOSUN.COM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Seong Hwan Park replied
     
    7 replies
    1 h
  • 김 헌
    네, 어이없는 일입니다. 책은 커녕 대법원 판결문 조차 독해를 못하는 칼럼이라니..더구나 김윤덕 기자가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ㅜㅜ
    2
    Active
    Park Yuha replied
     
    1 reply
    58 m
  • Moodies An animated yellow left hand with thumb up. sticker
  • Jong Hyun Kim
    오늘 조선일보 김윤덕 칼럼
    댓글을 읽어보면 김윤덕 기자 댓글에서 욕을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저도 분해서 댓글을 달았었습니다.
  • Michihiko Fujii
    이게 바로 한국 언론의 한계인것 같습니다.특히 보수
    언론 같은 경우에는 정의연 활동을 열심히 비판하
    는데 제국주의의 진짜 두려움과 잔인함을 지적하셨던 교수님의논지를 이해못하는지 일부러 그런지.
    • Park Yuha
      Michihiko Fujii 조선일보는 고발직후 인터넷 신문에서 저에 대한 비난을 하루에 열개씩 쏟아냈었어요.
      그리고 정의연 비판 시작된 건 얼마 안 되고, 사실 전 정대협 대표가 조선일보 간부 부인이어서였는지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논조는 오래도록 똑같았어요.
  • Kibum Sung
    독자들 오독이 교수님 책임이라면 교수님이 오독을 의욕(?!)하였거나 최소한 세심히 배려 하지 못한 결과여야 합니다만 ㅎㅎ
    저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 할 수 있을런지요
    칼럼에 쓰인 단어는 이미 인터넷 기사에 차고 넘칩니다
    읽어보고도 저렇게 쓰셨다몀면 인식과 사유 과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셈이지요

====
조선일보 댓글
====
100자평85
도움말삭제기준
로그인 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동방삭
2023.11.07 04:49:13
학술저서 문제점은 학술반박 하면되나 // 할머니들 등쳐먹고 출세의 도구삼은 // 정대협 윤미향이는 엄중처벌 해야해

답글
5
369
2
해결사
2023.11.07 06:08:52
정의연은 윤미향 지갑을 하기위한 도구 였다

답글
1
323
2
밥좀도
2023.11.07 04:48:12
한국은 지도자의 부패나 무능으로 혹은 미약한 국력으로 숱한 외침과 시련을 겪었다. 다시는 그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부국강병과 경제 발전, 동맹 강화, 국민 화합에 매진해야 한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통해서 제발 교훈을 얻자.

답글
1
253
2
참고인
2023.11.07 06:20:28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이득보려는 악마들이 문제다. 박 교수야 역사학자로서 여러 사실을 기록했을 뿐 특별히 매춘적 강간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고 사회 혼란을 야기한 사람들은 악마라 불릴 만하다.

답글
1
87
1
김정산
2023.11.07 06:36:59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호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일제'에 대해 정의연과 여가부는 '일본군'이라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일본군에 의해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에 의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가 곧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윤덕에게 묻는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40명의 소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중에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여자가 누구인지 말해보라. 위안부는 포주와 계약을 맺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돈을 번 성매매여성이자 직업인이며, 일본군은 그들의 고객일 뿐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고, 성적 학대를 하고, 위안부 생활을 강요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확정된 판결이다. 김윤덕은 범죄의 증거, 즉 확정된 판결을 제시할 수 있는가?

답글
1
80
5
chan chan
2023.11.07 06:24:53
진정한 사과이끌 외교절실? 또 공자말씀하네. 이제 그들의 눈물은 우리정부와 우리가 나서서 닦아줍시다. 우리가 못나서 당했던 일 입니다.

답글작성
69
2
김정산
2023.11.07 06:52:10
1966년 대법원 판례(66다1635, 1636)에 '일상생활에 있어서 위안부라 함은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직업인, 즉 매춘부를 말한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지역에 설치되어 일본군의 관리/감독을 받는 위안소에서 일한 여성을 일컫는다. 그런데, 일본에는 일본군위안소가 설치되지 않았은 지역이니, 강덕경이 성매매 생활을 했다면 일본군 위안소가 아닌 일반 성매매업소에서 일한 위안부다. 더구나 강덕경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라면 일본군에게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본군에게 성적학대를 받으며,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했어야 한다. 김윤덕은 강덕경이 '일본군위안부'인 동시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보라!

답글작성
56
0
jk11
2023.11.07 06:57:06
그래도 박유하는 정의연처럼 남의 등을 쳐먹지는 않았다. 이 칼럼을 읽고나면 어딘가 박유하의 말로써 정의연의 악행을 변명해주는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

답글작성
51
0
김정산
2023.11.07 07:28:37
정대협에서 발간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에는 강덕경의 증언이 실려있다. 강덕경은 헌병과 운전병에게 납치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바야시가 천막으로 끌고가서 '당분간 여기 있으라'고 명령하고, 상등병인 고바야시가 수시로 와서 자고 가고(일본군 위안소에서 숙박은 장교만 가능), 강덕경에게 '하루에'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고바야시가 군대에서 옷이랑 주먹밥, 건빵을 갖다 주었고, 군인들이 이름을 부르면 담요를 들고 따라나갔으며, 진찰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강덕경은 '일본군위안부'와 거리가 먼데다 고바야시는 영락없는 포주 모습이다. 김윤덕은 아직도 고바야시가 상등병 계급장을 단 일본군 헌병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 알렉시스더든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 교수는 "만약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면, 그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고했다.

답글
2
45
0
terra
2023.11.07 07:05:02
끝없는 사과와 끝없는 위로를 요구하는것 또한 자가당착이다. 언론의 각설이타령일뿐, 우리가 위안부들을 어떻게 해주면 속이 시원해지겠는가? 그만 좀 하자...제발!

답글작성
40
0
사실과자유
2023.11.07 07:05:00
김윤덕의 주장도 옳다는 건 아니다.. 언급한 일본군 위안부라는 김학순,이용수 등의 증언집 내용을 읽어 보기라도 했나? 강덕경의 주장은 사실과 얼마나 부합한가? 어디에 일본이 제도적으로 군이 강제로 끌고 가서 위안부 삼았다는 말이 나오는가. 군인 개인의 일탈과는 구분 되어야 한다. 일본인들이 쓴 위안부에 대한 책은 다양하다..니시오카의 ' 위안부 문제의 진실' , 하타 이쿠히코의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한국인이 쓴 '반일 종족주의'와 '빨간수요일'도 읽어 보기 바란다. 여가부 등록 240명의 실태와 정의연의 날조와 왜곡을 정밀 취재해서 구체적으로 글을 쓰라.

답글
4
39
0
알라딘4U
2023.11.07 06:58:32
남한에 있는 좌익들과 공산당에 묻고 싶다. 지금 이 시간 미국 내에는 6만명의 한국인 매춘부들과 일본 내에도 20만명의 젊은 한국인 매춘부들이 매일 밤낮으로 성노리개가 되고 있고 한국내에는 100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우리의 어머니 누님들을 지켜 드리지 못한 아픔과 고통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종북좌익빵 갱ㅇㅣ들이 정말 싫다.??

답글작성
35
0
여기서
2023.11.07 07:23:50
글의 중심은 주장이 근거있는 사실이냐 아니야 있지 않고 저자가 누구 편인가에 있다. 인격체가 아닌 국가가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어떤 정치인이 가장 감동적인 모습으로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득에 따른 정치적인 행위이다. 진정성을 들먹이는 순간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며 그냥 영구적으로 싸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의 칼럼에 대한 반론.
여전히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를 매춘부라 한 책“
이라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께 가 닿기를 바라며
써 봤다.
링크는 댓글에.
——————————
7일 자 조선일보에서 김윤덕 기자가 “대법원 판결은 무죄지만 박유하 주장이 옳다는 건 아니다”라면서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했다. 골자는 동지애, 매춘적 강간을 주장했고,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다름 아닌 소송의 주장이기도 했던 그런 인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김 기자는 판결문을 읽지 않고 판결에 대해 쓴 듯 하다.
무엇보다 나는 ‘동지애’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동지적 관계’ ‘동지적 측면’ ‘동지성’ 등의 단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 단어를 통해 환기시키려 했던 건 당시 조선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중국이나 네덜란드처럼 적이 아니라 식민지였다는 사실이었다. 기존 운동이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 아닌 전쟁 상대로 프레임화한 탓에 위안부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90년대에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부족간 강간케이스와 다르지 않은 ‘납치/강간=전쟁범죄’로 규정해 법적 책임을 물어 온 기존 학문과 운동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립 중이던 양극단을 비판하며 제3의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한 책이었다. 부제목을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으로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책에서의 ‘동지적 관계’란 그저 조선인 여성들이 적이 아니라 피식민지인으로서 ‘(제국)국가에 동원’당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제국의 일원으로 동원되었으니 표면적으로 ‘동지적 관계’였지만 견고한 ‘차별감정’또한 존재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소제목중 하나가 ‘군수품으로서의 동지’인 이유다. ‘동지적 관계’의 직시는 제국의 책임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준다.
군수품으로서 동원돼 내일이면 죽을 지 모르는 이국땅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군과의 심리적 연대는 존재했다. 나는 그 사실을 다름아닌 지원단체(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가 만든 증언집들을 통해 알았다. 행간에 살아 쉼쉬는 당사자들의 삶과 기억을 그저 ‘피범죄인의 심리’로 치부하며 ‘과도한 애착’이라는 차가운 진단을 내리도록 만드는 건, 역사에 이상을 투영하려는 욕망이자 엘리트 여성의 오만이다. “위안부는 일본군을 보살피는 존재(일본군 위안부, 또하나의 목소리)”라고 말했던 배춘희 할머니의 말을 김 기자는 아마 그저 세뇌된 이의 헛소리로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복잡성에 대한 무지가 낳은 그런 ‘인간에 대한 몰이해’(同칼럼 인용)쪽이, 당사자들에겐 더 잔인할 것이다.
매춘부라 주장하는 이들과 오직 강제연행이라 주장하는 양측에서 나는 같은 매춘혐오를 읽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에선 이른바 매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비난대상이 된 ‘자발적 매춘’은 인용이었고, ‘매춘적 강간’도 나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맥락속에서 사용했다. 그러니 “매춘을 목적으로 한 조선인 위안부도 적지 않았다고 (박유하가)강조”했다는 김 기자의 주장은 단순오독을 넘어 왜곡이고 음해다.
나는 그저 정대협이 만든 위안부증언집이 보여주는대로, 식민지로서의 구조적 강제성은 있었지만 이른바 강제연행은 일본군의 ‘공적’방침이 아니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간행이후 고발직전까지의 10개월동안 대부분의 언론이 호의적으로 받아주었던 건 나의 집필동기와 글의 함의를 있는 그대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이상 세월이 흐른 후 대법원판결 역시 ‘제국의 위안부’의 취지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 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기자가 극우논리를 뒷받침하는 책으로 읽은 건 책의 취지와 맥락을 무시한 결과다. 김 기자와 똑같이 받아들인 지원단체가 책의 또 하나의 중심이었던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은폐하고 똑같은 말로 소송을 건 탓에 ‘제국의 위안부’는 무려 9년 4개월이나 법정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나 자신과 국가가 함께 그렇게 소모됐다.
나는 “국가책임을 묻기 어렵다”가 아니라 “국가책임을 ‘법적’으로 묻기 어렵다”고 썼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법의 바깥에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근대국가의 여성차별의 결과라고 일본을 비판했다. 나는 그저 국가책임을, 기존 주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물었을 뿐이다.
‘업자’의 존재를 강조한 이유는 위안부문제가 중간계급에 의한 하층계급의 착취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지적이 일본의 국가책임을 희석하는건 아니라는 건, 과거에 반성적인 아사히신문이나 마이니치신문이 ‘제국의 위안부’를 ‘제국의 책임’을 물은 책으로서 높이 평가해준 사실이 증명한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책을 왜곡해서 할머니들에게 전달한 사람들이다. 나의 책이 아베정권과 일본극우의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고 10년가까이 주장해 온 지원단체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김 기자의 칼럼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에게 모욕과 멸시가 쏟아진다면 그건 ‘제국의 위안부’탓이 아니다. 자신들의 기존주장을 지키기 위해 나의 책을 멋대로 해석/비난/전파한 ‘오독하는 독자’들 탓이다. 그런 독자의 오독이 저자의 책임일 수는 없다.
학문이란 기존 정설을 비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따라서 30년이상 주류였다는 사실이 곧 기존 운동가나 학자들의 주장의 옳음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으로 기존 연구를 비판하는 연구도 최근엔 나오고 있다. 전 정대협 대표였던 정진성 교수조차 강제 연행과는 다른 인식을 반영한 보고서를 일찌기 발간한 바 있다. 김 기자가 그 사실을 몰랐던 건 그들이 그 사실을 대외적으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강제연행이고 불법이라면서 법적책임에만 집착해 왔던 정대협 운동가와 주류학자들은 한일합의를 ‘제국의 위안부’가 이끌었다면서 비난한 바 있다. 누구를 위한 화해였는지는 거기서 답을 찾아주기 바란다. 고발 직후 고발자 주변인들이 일본어판도 절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All reactions:
Chee-Kwan Kim, 노정태 and 49 others
14 comments
1 share
Like
Comment
Share

14 comments

  •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CHOSUN.COM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 [기고] “군수품으로서의 동지”… 나는 일본의 책임을 명료하게 물었다
      CHOSUN.COM
      [기고] “군수품으로서의 동지”… 나는 일본의 책임을 명료하게 물었다
      [기고] “군수품으로서의 동지”… 나는 일본의 책임을 명료하게 물었다
      5
      • Seong Hwan Park
        분명히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과 함께 위안부는 군수품처럼 관리되는 대상이었다고도 썼죠. 또한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의 다면성, 다양성을 말씀하실 때 일본군에 의한 폭력과 학대도 다루었고, 반대로 일부 전장의 사랑 같은 우호적인 관계도 보여줬구요. 그걸 그냥 다양한 사실의 적시로 보지 않고 자신이 킹 받은 것만 부각하거나 자신이 꽂힌 것만 부각하는 사람들이 책을 왜곡해서 보고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세상에 중계하니 참 괴로우실 것 같습니다.
        • Like
        • Reply
        • Edited
      • Park Yuha
        박성환 네. 분명 양측면을 썼는데도 보고 싶지 않은 건 부정을 넘어 비난하고 싶어했죠. 그 이유도 이제는 거의 보여서 예전에 비하면 괜찮습니다. ^^
      • Seong Hwan Park
        박유하 댓글 중 하나인데 극우적인 과격한 의견이지만 서글프게도 앞부분의 말은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유하교수의 가장큰 오류는 그가 정상적인 인간들과 정당한 학문적 토론을 한다고 생각(착각)하는 것이다." ㅎㅎㅎ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백수혈통 2023.11.1412:08:51 박유하교수의 가장큰 오류는 그가 정상적인 인간들과 정당한 학문적 토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좌익의 세계에서 있을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가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려면 오직 좌익 의 박멸 뿐이란걸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의 항변은 한날 호수의 파문에 불과할 것이다."
      • Seong Hwan Park
        군을 경험한 남자들은 의외로 쉽게 이해할지도 모르겠어요. 의무감과 긍지도 있었더라도 대체로 강제로 병영에 끌려갔고, 정말 싫은 경험도 했겠으나 그 안에서 또 서로 의존하고 도움 받지 않으면 그 기간동안 살아남아 돌아올 수도 없었을 시간이고, 때로는 그 안에서 전우애나 인간애도 느끼기도 한 것이 군생활일테니까요. 군생활과 비교할 때 훨씬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경험이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이 전선에서 경험한 것도 그런 것들이 서로 마구 섞여 있었겠죠. 그걸 다면적으로,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어찌보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만 해도 한국 드라마는 특히 악역의 인격이 입체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거의 없죠. 성웅이나 애국지사의 인격도 마찬가지기도 하구요. 아마 제처럼 연기 전혀 못하는 사람도 다른 연기라면 몰라도 이순신이나 안중근 역 연기는 중간은 간다고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표정으로 근엄한 연기만 하면 되니까요. 말하는 건 더빙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