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jin Pak
11 Augus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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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리우는 김낙중의 회고록 <굽이치는 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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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읽기 스케줄은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분야에 관해 읽고 있으니 기분나는 대로 이걸 읽었다가, 저걸 읽었다가 한다. 한가지 토픽에 대하여 연구비를 받아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마감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년중 어떤 기념일이나, 어떤 인물의 죽음이 화제가 되면, 그 토픽에 대하여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읽게 된다. 백선엽의 회고록이 그런 경우였던 것 처럼, 이번에는 김낙중의 회고록이다.
- 내가 김낙중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것은 3-4년 전에 읽은 그에 관한 어느 기사에서 였는데, 그것을 읽고 그의 책 3권과, 그의 딸의 아버지의 생에 관한 책을 구했다. 전부 새 책으로는 없어서 구한 중고판 책들이었다. 1-2년을 걸처 네권이나 구했으니,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이 컸던 것은 틀림없었겠으나, 몇년이 지나자 그것이 무었이었나는 잊어먹고, 그가 통일운동하다고 사형수가 되었다는 는 사람이라는 정도였던 것 같다. 언제인가 구입한 책들을 읽을 것이겠지만, 이번에 그의 죽엄이 나에게 지난 주에 그의 회고록 <굽이치는 임진강>을 읽게 만들었다.
- 이 책은 1985년에 출판되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책의 서문이 김지하에 의해 쓰여저 있고, 그 글이 써진 때가 1973년이라고 되어있다. 책을 다 읽고서, 김낙중이 쓴 후기에서 알게 된 것이, 이 책은 본래 1973년에 출판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사정에 의해서 1985년으로 되었다는 것 같다. 아마도 감옥에 들락 날락 하느라고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중고판 만이 있는 것을 보면, 김낙중의 회고록도 그렇지만, 회고록이 아닌 책들은 누가 돈을 주고 사서 읽으려고 하는 종류의 책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구한 중고판 <사회과학원론>이나,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 이 두 책은 저자가 누구에게 기증한 것으로 책의 겉장을 들치면 누구에게 드린다는 저자의 글이 쓰여저 있는데, 책의 컨디션으로 보면 전혀 읽지 않고 팔아버린 것 같다. 그걸로 미루어 보아, 나도 책을 구하고 나서 조금 훌터 본 후로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별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 그러나 회고록 <굽이치는 임진강>을 읽고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저서, 그의 책을 가능한 한 전부 구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김낙중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젔다. 나에게 이 책은 나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간디의 자서전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책, 이런 인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중요한 해프닝이다. 일년에 한번, 아니 십년에 한번이라도 이런 책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통일운동을 했다거나, 감옥살이를 했다거나, 간첩죄로 사형수였다는 것 만으로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는 못할 것이다.
- 이 책에서 알게 되는 김낙중은 어려서 죽을 병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의 말로서 그는 1945년 14살 때 <구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해프닝이었을 것 같다. 그의 일생에 그 후로 일어나는 일들은 모든 것이 다 그가 구도자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열을 내어 하고 있는 일 (투쟁)들이 충분한 좋은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더 고통을 가저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해방 후에 이념 투쟁, 6.25 전쟁, 한국에 온 미군들의 행동, 휴전반대운동, 등등. 결국 그는 남북의 대립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막기위해, 1955년 24살 때, 일종의 평화통일 호소문을 만들어 남쪽의 대통령에게도 보내면서, 또 북쪽의 리더에게 전달하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임진강을 해엄처 북으로 가기까지 한다. 남쪽에서는 미친놈 취급을 받더니, 북쪽에서는 스파이로 취급당해 감옥살이를 하다가, 결국 북한에 해가 되는 인간이 아니라고 취급받아 일년 후에 남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남에서도 당연히 스파이로 취급받아 감옥살이를 한다. 그 후의 삶도 그런 비슷한 일의 되풀이 이다. 이 회고록의 이야기는 70년대 초기 김낙중이 40세가 되는 정도에서 끝이 나는데, 그중 중요한 부분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돌아온 25-6세까지의 일이다.
- 죽엄을 두려워하지 않는, 보통 상식으로 보면 "바보같은", 또는 "미친" 삶은 그의 구도자 정신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 20전에 형성이 된 것이었다. 김낙중보다 11살 많은 백선엽의 6.25 회고록은 나이 30때 부터 시작하는데, 김낙중의 회고록은 나이 30이전의 삶에 대한 것이다. 김낙중의 회고록에서 보면, 나이 30이후의 삶은 30이전의 삶에 의해 거의 결정이 된 것이 보이니, 백선엽의 회고록으로서는 백선엽이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으나, 김낙중은 백선엽과는 거의 반대의 사람이라고 보인다. 백섭엽이 보통 사람인 것이다. 김낙중은 싸우기 전에, 소위 "적"이라는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우선 좋은 이유를 보아야겠다는 사람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 보아도 사람을 죽일 좋은 이유를 볼 수가 없었다는 사람이다.
- 보통 통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독립군을 존경하는데, 김낙중이라면 독립군으로서 싸우는 것도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익 측에서는 간첩이라고 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만 전혀 그런 사람일 수가 없다. 김낙중이 보면 북진통일을 원하는 이승만 같은 반공주의자들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을 좋아하는 민족통일론자들을 좋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이념의 진영 밖에, 위에 있다. 김낙중은 남쪽 사람으로 북에 가서 일년을 살아 본 사람이다. 그냥 살은 것이 아니라 최대한 북의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이 회고록에는 그의 북한에서의 사회관찰이 담겨있다. 아주 객관적이고 통찰력있는 관찰이다. 예를 들자면, 노동당원이 된다는 것의 의미, 농업협동조합의 원리, 등 왜 북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가, 그러나 그런 시스텀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 등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것도 1955년의 관찰이다. 나는 통일운동을 한다는 사람에 의한 이런 비판적인 관찰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관찰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김낙중이 보통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에 지배되지 않고, 사람이나 인간세상을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데서 나온다고 보인다.
-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아내와 같이 산보하며 듣던 리영희의 회고록도 끝이 났는데, 리영희는 1929년 생이고, 김낙중은 1931년 생이니, 거의 같은 시대를 살은 샘이라서 비교가 된다. 리령희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따로 써야 하겠지만, 인물이나 삶에서 비교를 한다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리영희도 백낙중과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리영희보다는 김낙중 쪽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김낙중은 리영희보다는 더 스피리추얼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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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낙중의 회고록을 읽은 다음에 인터넷에서 그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는 중에 놀랍게 발견 한 것이 그가 2004년에 퀘이커의 <아시아 서태평양 모임>에서 영어로,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신앙고백>같은 것을 발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퀘이커 서울모임의 게시판에서도 그 글을 찾을 수 있다. 퀘이커가 아닌 사람이 퀘이커 모임에서 발표를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김낙중은 퀘이커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적어도 그가 퀘이커와 접했고, 퀘이커 모임에서 발표를 하게 되기 까지는 퀘이커가 뭐를 추구하는가는 알았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함석헌이 그 연결고리일지도 모르겠다. 김낙중이 함석헌의 강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17세 때 였다고 회고록에 나온다. 함석헌을 생각하고 김낙중을 다시 생각하면 뭔가 큰 흐름이 보인다. 그걸 퀘이커 사상과 연결시킬 수 있다. 1948년에는 함석헌이 퀘이커를 만나기 전이었으나, 김낙중은 함석헌이 퀘이커가 되어간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혹시 대전의 퀴이커 모임을 이끄시는 Cho-nyon Kim 김조년 선생님은 아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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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로 책의 일부분을 복사해서 올린다. 나를 위한 것이지 만 나눈다. 김낙중이 북한에 가려고 하기 전 까지의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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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5년 14살 때 병의 경험에서 구도자가 되다.
2] 1945년 14살 때 병의 경험에서 구도자가 되다.
3] 1947, 서울중학교, 죄우대립의 사상투쟁을 경험
4] 1947, 16세, 서울중학교, 학교공부는 안하고
5] 1947, 16세, 근본적인 질문을 하다, 회의
6] 1947, 16세, 근본적인 질문을 하다, 회의
7] 1951년, 19세,징병은 피하고,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는데...
8] 1951년, 19세,징병은 피하고,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는데...
9] 1951년, 19세,징병은 피하고,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는데...
10] 1951년, 19세,징병은 피하고,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는데...
11] 1954년, 전쟁은 끝났는데 남한에서는 북진통일을 하자고 하니
12] 1954년, 전쟁은 끝났는데 남한에서는 북진통일을 하자고 하니
13] 1954년, 전쟁은 끝났는데 남한에서는 북진통일을 하자고 하니
14] 불복종의 호소
15] 불복종의 호소
16] 불복종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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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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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나에게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바르게 필력이었습니 다. 나는 공학교 2학년 피던 해에 경석실 제품과션내하는 진 단을 받았습니다. 8-15 해당 직후인 당시만 하더라도 결책은 오직 죽음에 인도하 주괴를 벌이었습니다. 학교를 유학하고 서울을 떠나는 소년에는 죽음이란 것 이 그 예문에 한 김지한 것이 의식 속에 하겠습니다. 비밀이 나기 때문에 나른한 공을 들여 있는 날도를 사 의 소지) 판다 위에 찾아서 나도 머지않아 이렇게 말 죽은 들어가 늘는 것이다. 그릴 것어린 나는 및 제품에 이 세상에 해
사랑하는 곳, 아마 말 말마시며 우리에게 유해가 것 같은 수있겠읍니까 로 들어있는 지식도 없는 조그만 미러를 약물 이미 굴리고 저리 굴리다 지치면 아무것도 자지가 김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집니다.
손 하나 하나
하기가 싶도록 유이 꼭 마바지던 나는 <아!
귀찮다. 모든게 귀찮다. 생각하기도 싫다. 암을 치기도 했다. 삼
거도 있다. 그렇지구인지를 모르는 한 죽기조차
하다 타고 소리면서 아지는 잎을 주컷이 가프라마도 있는 일
누가별 바람
하늘엔 구동들이 끝없이 흩어갑니다.
대개는 탁을 먹이기 위해서 또는 밥을 먹이기 위해서 어머님이 병든 자식를 부르리 와야 나는 잠에서 깨어 그래도 미소지으며 놓 그 때부터 나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되었듯이 생들의 손에 물려 침으로 돌아옵니다.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므므로서는 견딜 수 없는가 피었습니 다. 그러나 매치시도 이 어떤 구도자의 칼날에는 너무도 많은 어 미용들이 산장이 쌓여 있었습니다. 권위와 전통을 지닌 다 죽어 버린 황무지에 던저진 이 어린 소년에게는 이랍이 들이 카드 없었거니와 쫓아가야만 할 뚜렷한 풍대도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시양 사람이있거나 저말 문명이 깊이 주된 고장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어머님의 손을 잡고 교회로 찾아가 여호와 앞에 무릎 끓고 당신은 왜 나를 창조하셨는데 왜 또한 나를 병들게 하여 당 신에게도 부르느냐? 고 항의의 질문 같은 것을 하였을지도 모를
니다.
그러나 나에게 신 같은 것이라면 국민학교 시절에 아침마다 부부 있고, 혀 점을 하던 가이다나 안의 아마네오미가 또 그 시절이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가림시 겸 한구석에 말들어 놓고는 음식을 해놓고 질을 하여 보관하면 더 숫자비에 도웠다는 숫대장이나 울긋불긋한 형질 나부랑이가 매달 이고 세포는 병든 잠에서 깨다 버린 밥이며 재앙이머가 넘어있는 실황당 낮은 예 있다는 성황신 정도이니, 그것이 죽음 앞에 짓을 여키고 시시 차가운 눈초리로 이것을 응시하는 어린 소년에게 말 족스러운 면을 해줄 타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이 소년은 자기의 두 눈으로 소해 전지를 주재하고 대입 본을 보호하여 대동아질을 슬리게 할 大興이라고 배워온 아마데 타즈오미가미를 모셨다는 가지다나이 들이 해당의 그 날 마을 조선 사람들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불살리우는 좋을 눈초리로 똑똑히 보았으며, 또 할머니나 어머니가 만들어 놓고 깊을 하는 터줏가리도 학주가 얼근히 취하신 아버지한테 걸리면 번의 발길에 있어 요정이 나버리는 정도의 것이니, 어찌 그런 내에서 권위를 인정하고 죽음의 의미를 물을 수 있었겠습니까?
후 10월에 다시 서울에 상경하니 이제까지 필심히 출석하던 하우 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조선글과 조선역사를 배워서 8+35의 의미 들과 똑같이 다시 중학교 1학년으로서 그를 배우기 시작했던 집 도 이해하시는 되었지만 파우간 지금까지 필본교육을 받다가 별안 간 다시 조선교육을 받게 된 어린 소년에서는 8·15가 놀라운 가치 세계의 전도를 의미하셨습니다.
1947년 4월 신병으로 다시 고향에 갈매까지 1년 반 가량 하고
니다.
에 다니는 동안 상급생들의 사이에선 벌써 우대법의 사상 무정이
진행되고, 어린 소년은 영풍모를 싸움의 등록구니에서 교정해처이요
동맹휴학이요 하여 이미 널리고 게리 밀리는 부대행을 당해야 했음
그러기에 죽을 앞에서 생과 사의 의미를 응시해야만 했던 이소 난은 아윤의 국가와 민족이며 주의와 사람 싸움의 피미도 또한 생 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김득할 수 있다시피 온갖 권위들이 무너지고 손동단이 난무하는 황무지에 넘겨진 백지의 소년을 이번 상향으로 체셔에서 이끌고 갈 만한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없었습니다. 내 어버이에 영원한 생명을 향한 성실한 농민으로서의 생활은 있었으나 그것을 쇠의하고 사색해시 주의나 사실을 형성할 만한 이 유는 없었길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과 삶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죽었으며 또 살아야 했 그들은 민족이어 지급이머를 말하기 전에 식민지 소작농민으 드시 밟히고 빼앗기면서도 끈질기게 생활을 되어 나가기 위하여 온
할 정책을 다 바쳐야만 했던 겁니다. (
들은 도시관에 가는데도 돈은 들지만 책을 살 수는 없어 처음 도 서관에 가서 빌어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 가서 내가 보는 책들이 영어 독분이나 매수 하 보는 같은 것이 아니 컸음은 말할 것도 없읍니다. 스토이의 인생본부터 시작하여 담요 의 신학, 불교경전, 그리고 빛스의 우주의 수수께끼, 나아틴의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면의 책들을 나아가면서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의미와 또 죽어야 하는 의미를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뒤 나의 피들은 비단 인생의 문제에 한한 것은 아 닙니다. 자연현상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위치의 손행, 그리고 역사 √와 사회의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 물은 아무것도 없었읍니다. 학교에서 생물, 물리, 화학, 공반시간 언제이고 내가 선생님을 물고 늘어져서 질문을 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면 바우들이 이상스킬게 여길 정도켰으니까요
쇼하우어와 니이가 나에게 매력을 갖고 있던 것도 이 시킬업 니다. 서울중학은 마마 시내에 있는 어느 학교보다도 넓은 부지 와 좋은 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기는 옛날의 정치 글퍼지며 있 제시대에는 일본인 관들의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니까요. 나는 무엇보다도 모자의식에 우거진 숲을 사랑함니다. 나무 그 눈을 거닐며 사식의 실마리를 찾아니다. 그미다 담담하면 서울 시내가 프주 한눈에 내리다보이는 언니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시절, 나의 스틸은 저 구릅니다. 교회나 또는
성당에 가는가 하면 싶어도 잡니다. 그 사람의 조사에 갔다가 다시 YMCA 강당에서 있었던 주의) 에도 캐치합니다. 나에게 좋고나 철학 또는 과학에 대한 파문이 새 기만 나는 그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개인픽스트 찾아가실 때는 질문을 하기가 될수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동조하셨다면, 그리고 또 우리 인간들은 신사를 따먹는 그들의 원리로 말미암아 불량한 파인빌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를 하지 않고는 생 부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진실이라면 여호와 신은 분명히 인한 상 난주되기 싶이 아닐까요? 왜냐고요? 실은 전제하시마니 아담과 하와가 신학과를 따먹으리라는 것도 밥을 하시더니 아담과 하와가 배의 유혹에 지지 않을 수 있도록 그들을 해 놓 을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요. 만약에 그것을 들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면 여호와는 및 날 앞도 못 보는 무지무능의 신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그것은 자기가 밥은 함정에 진 아람의 후 예술 학습에서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게 있 마니 그는 가없은 섬이 아니라면 인한 전쟁에 담습니다. 하기는 십자가에 달했던 예수도 3일 만에 구슬이 실제 가의 죽음이란 죽인 것이 아니다 죽인식해 보이는 가면에 불과 힘을지 모르지만 전지는 듯한 국어요?」
그 때 어린 중학생으프부터 이런 중순을 받은 목사님이 뭐라고 답변해 주셨는지 내 기억에는 있지만, 과별 이런 거의 이실이 밖 속하게 수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니다. 그가 하나는 신과 제비와 깊은 하동동이 수백만 화소의 노리는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또는 사회나 인류를 위한 의지에서 자 기 희생적인 공사를 나인 인금으로 양한다는 것은 사는 것을 큰 격으로 하는 부서 미친 짓 이군요. 비친 곳이 아니라면 이기적인 속세에서 버린의 생 공사를 조정해서 그것을 자기가 누리고자 양의 어 는 그늘한 눈의 빛에 걸린 바보에 없지 뭐예요? 하고 개 어시 선생님들을 난처하게 든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목사님이 선생님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은 장남에서가 아니고 진정으로 나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피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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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원 1951년 9월부터 이들 주간 장교를 위한 교통 이 지었습니다. 하우스 브이를 삭풍역 법학 검사검사의 및 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처음과 우산 단의 왕복여름에 상당 슈니다. 여름이자 그 화차밥을 마루 배나 아무 피파나 며 빈 뒤 물에 연결하기만 하면 카를 자전시 또는 식사를 하면서 남북 으므 이용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지에 비늘이 있을 배에도 나는 별로 그 화자를 떠날 임이 없었을 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실내 정든을 하고 배배로 미군 장교들이 극하는 한국인 철도학원들의 용역을 해주는 남은 시간은 나 자신 의 독서에 충당할 수가 있었음니다.
그런데 이 생활에서 나를 피유인 것은 이들 미군 장교가 자 도시 에 대꾸를 떠나다 끌어들이는 힘은 한국 여성들이었습니다. 대구에 서 미금 62공대중이에 일을 할 역에도 그림 문을 당하지 않은 꽃 큰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는 미군들은 거의가 없어 주내 알았 자갈마당 정내놓을 출입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 종업원 그들과 동행하는 것을 여러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마저 그곳에 가기에는 너무 어리니까 비는 등의 구실로 그들씨 귀용을 거사하고 부에 말에 비출시
하시키들을 뒤적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내 나이 21세이고 보면 사실상 내가 너무 어렸 배문은 아니있음니다. 그러나 단순한 유혹 도프는 그러한 자극을 반유이 없어 다만 촌놈 (country boy)이라는 별명을 품는 어 새하게 비등해 가면 피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파악한 에서는 사계의 책 발랐니다. 구비가 사용하는 그 화자는 같은 베니어판으로 간을 막아 3등분되어 있고 양원에 카프리 소파 스미스 대위의 침실이 자라 있고 가운데 안에 내가 있는데, 그 가운데 칸은 피부와 출입하는 곳이 있고 또 식당을 정해서 사용하 는 말이었습니다. 미군 장교들의 침실에 드나드는 젊은 여성들은 원 제나 만나제인 세로 속옷 하나만 입은 채 내가 가자는 가운데 방에
와시 음식을 먹고 마시곤 하였습니다. 그 여인들은 방과 낮을 가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미들이 원하는 새로 언제나 가짓은 몸이 되어 많은 하나 내리고는 박에 귀하는 하였습니다. 그들의 축하의 분에 위하여 무림길 때마다 나는 그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품질이 가져오는 가벼운 심 내음이 갈라해야만 저었웅니다. 하지만의 스프링은 예하게 및 침대에서 일어나는 피습을 그대로 내 침대에 답하였습니다. 힘은 여인들은 거리없이 자기의 육체를 노출시킨 채 내 앞에서 다만 엉덩이를 비비며 흔들게 보셨습니다. 이 여인들은 을 위한 파트너 외에도 자기 친구들을 내 방 안에 끌어들였습니다. 미군 장교들이 불교문게도 없는 사이에 찾아오는 아가씨도 있었 습니다. 모두 증학교나 대학을 다니다가 전쟁하단에 가족을 잃고
또는 가족들과 헤어져서 주지를 도는 좋은 여성이었읍니다. 가족
눈 늙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줄기 위하여 은별이크 오
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옮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내부분이었지만 30이 넘은 과부 같은 여인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신성하고 요동포동하지만 아가씨거나 주름이 잡힌 아주머니이
거나 모두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설득을 시키기에는 충분한
유림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는 글도 차이가 없는 답이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술도 마시지 아니하여 해도 피우지 아니하고,
여자라면 이제까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들이라는 관계
이외로는 생하지 않은 수도자있습니다.
나는 마법에 진리를 들으면 개체에 죽어도 좋겠升」(夕死司
말씀을 좋은데 이해하고도 날을 수 있을 안치
목마르게 아파와하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듣고 있는 구도자겠습니
나. 그러나 이 구도자가 그렇게도 요망한 지 에서 아무것도
사랑하는 또, 옛날의 수도자들은 진리를 하고 탐구하기 위하 이 세상의 유혹에서 걸리 떨어진 유력을 찾아갔다고 하지 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낙강이는 송달하기 그지없는 나의 손 줄거리는 일상에 많아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들어야 있습니다. 불내이처럼 날아오는 내 생식기를 뛰어들고 나는 내가 게 말하있 는 여인의 곰둥이를 두들겨 안아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를 풀 어야 했습니다. 지금 바로 이 밖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살착하 는 포탄이 작업하고 있으며, 나나 게 여인이나 어느 어야할 지 모르는 가남은 운영을 지닌 제로 지금 이 순간에 이다지도 피 파하면서 및 시간이나 관능의 발등을 억제하여야 필요가 있 인지를 알지도 못하여 또 관능의 방광내도 방림하지도 못하면서 피로네의 했음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에게 이것이 바로 무서운 악마의 유혹이 마는 독소디와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고 자연스러운 욕구의 중력을 역제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반석이며, 그것이 파프 진리에 대한 내 반행위라고 피치는 두 가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내 속에서 죽음
듯이 싸우는 가운데 나는 그 이면 판별도 내릴 수 없는 상대에 있 있읍니다. 나는 양쪽 방에서 진행되는 가뿐 숨소리를 들으면서 내 침대에서
블보다 뜨거운 내 불두명을 비비대다가 몇번인지 홀몬의 매출이 내 몸을 식혀주는 효과를 가졌다는 것을 제한했읍니다. 그리고는 내 자신의 손의 마찰이 가져오는 피감을 추구하기도 셨 읍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내 자신의 손에 의 한 마찰과 의 여인데 보드라운 살결에 의한 마찰, 이 두 개의 행동 속에 어떻게 선과 악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고 인생이 돼 탐구하려는 한 수도자에게 한 여인에 대한 유행이 금기다면 독감이 제 무엇인가에 대한, 삶과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진리를 실제 자위행위도 급기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 수도자에게 자위행위가 허용될 수 있다면 이성에 대한 음행도 허용되어야 하고, 한 이성에 대한 음률은 또 두 사람 이상의 이성에 대한 음행도 허용하여야 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우기 모든 사람들은 나이 차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자기 배우자와 의 사이에서 성적행위가 허용되는 것인 이상, 지금 내가 저 여인들 과 성고한다고 해서 그것이 허막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 너, 도대체 무엇으로 죄악과 의 기준을 삼는다는 말입니까?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 마음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뿌리깊은 결심의 하나는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살아야 되는 또는 죽어야 되는 이유와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동해야 되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명확하 게 게시되지 않는 한 나는 걸요 나 자신을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발기어 행동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성적 자위행위와 이성과의 유행을 동일시하고 이 모든 행위는 확실한 판단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 하도 창고 보유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보류는 어디까지나 모 카이지 거부와 부인이 아니었읍니다. Γ
1954, 23세, 북진통일반대" 생의 123 눈물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 나는 내가 말한 그대로 반만년 수난방은 사랑하는 내 거리의 옷을 입었음니다. 나는 파울은 서 디가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아서 작전을 부르는 귀리자에게 하는 뜻으로 6.25 이에 오를 닦아 따냈습니 다. 나는 가난한 국민의 아들들을 신고에 내세우고 주방에서는 같이 사는 이 방에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을 찾기 위 해서 등불을 거듭했습니다. 나는 목사는 카아만 있던 스크라 테스가 대낮에 눈을 들고 번화한 아내의 거리에서 사랑은 느냐고 처럼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한 등을 거리거리를 다니시
피웠읍니다.
눈물을 가진 사랑은 있는가?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내 선에서 피를 프라어 없이 져 가는 가난한 이방의 아들들을 여정을 반대하며 눈물을 사람은 했는가?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이게해의화의 중심을 위하여 세계 혈증의 함정을 반대하여 진정으로 불리는 사람은 일 가지고 다녔습니다.
나는 다랑과 바마, 버스에 들어가서 신양한 농민들의 고혈을 받 그 있으면서도 세션스 책이 있습니다. 듣고 다니며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느냐고 치고 다니니 커피의 사람들은 미친놈이 왔다고 좋아 냈습니다. 다리 타아에서는 수업 바람같이 나온 중으로 않고 10 비판자리를 주어 나가 알리고 있습니다. 등을 거절하면 그들은 은지 적어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 꽃은 이 보태주더군요 나는 당신들처럼 돈을 찾으며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 많은 신사 숙녀들 속에 눈물을 가진 사람이 없는가 찾기 위해서 왔노라 하고 의아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라다를 응시하여 돌아다녔습니다.
그 다음날은 거비에서 드디어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무력 북진을 반대하며 평화적 종인을 주장하니, 사랑이 의심스테 을 놀이하는 이유겠지요. 손종일 북부산서에 잡히와서 시달림을 받 맞습니다. 나는 공산주화가 신지 자문주의가 뭔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 때
문에 우리의 어버이들은 나에게 살인의 전쟁을 강요하는가. 나는 당신들의 국가적 명령에 항거한다. 그것이 어떤 명목으로 채색되었 기나 사람이 사람을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삶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죽음으로써 당신들의 명령에 할거한다고 대들었음니다. 나를 위조하던 경찰관들은 처음에 마구 방방거리며 마귀를 미 그 야단들이거니 굽히지 않고 내드는 내 태도를 보고 나중에는 이 처구니없다는 듯이 털르고 내게 우리 정부가 욕 하진을 저질 다고 해서 정말 전쟁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평화적 통일을 반대하 는 것도 아니니 과히 걱정말고 공부나 마라고 하여 관계 장면의 형식으로 놓아 주있습니다.
그 후 나는 현실에 반하는 나 자신의 단독적 사위를 채집도하게 되었읍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을 반대하며 생화지 공인을 위한 반항적 시위 그 자체가 아니라, 형제들의 피를 보고 진정한 사 광의 눈물을 유릴 수 있는 삶의 반려를 찾아내는 일, 그리하여 담과 눈물로써 새 시대 게 세계를 창조하는 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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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무리 찾아봐도 이 세상에 나타난 온갖 주의와 사상들 모두 사람들에 의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클린 으나 사람들의 성령이 주의와 사상을 위하여 희생되어도 좋다는 기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 방에서 떨어지고 있는 싸움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이 의 싸움이지만 그것은 삶에 대하는 서프의 마음가짐이 조금씩 들 지는 대서 싸워서 현실적으뜨는 어떤 사소한 이해관계들과 연결되 계절터지는 무모한 패싸움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읍니다. 여당 는 싸움의 정점이 되었던 그 물건이 이제는 벌써 연기처럼 사라 저리고 담았는데도 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은 여전히 지속해 싸움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고 는 당사자들은 "어리석은 싸울이라고 말하는 국외자를 항해는 의 돌집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심판의 필과가 싸우는 당사 들이 생각한 내부로 수만은 없을 것립니다.
수립 당시의 대한민국과 북한이 인정하는 제도의 자 이마는 것이 과연 어느 반한 것이기에 이렇게 만큼 막을 수 없는 심연을 가지고 있었을 하는 바위의 생각은 나 로 하여금 이 나라의 앞길은 외국인과 어떤 시님에 의해서가 아 니마 자기를 스스로의 자각적인 패도에 피해 적어야 한다는 생 자음 굳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남한에 살고 있는 점은 나에게 불 사람들의 이념과 지도노선이 무엇인가를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조선 이 주어져 있지 않쏘이, 북쪽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이후 사람들의 이념과 지도노선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한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는 일인가 생각습니다.
남쪽의 필은이는 북쪽의 은이는 남쪽의 젊은 이름 향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언제라도 살림을 감량할 수 있도 준비되어야만 한다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무엇 예문에 죽어야만 하 는지 또 죽이지 않을 수 없는지를 알아서는 안 늬도록 우리의 어머 "이들에 싸해서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 요나 자신이 같을 들고 높은 기를 바르도록 강요되었으며, 또 미칠 주씨는 좋을 들고 주은 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었던 것입니다. 이유를 묻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없게 예문에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싸움이 가 시 형제들을 죽이는 것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 미꾸라지처럼 에서 다닌 나 자신이 주어진 현실을 언제아지나 도 과실이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마음에 깃들의 의미를 읽으며 하나 그것이 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남쪽에서 붉은 거의 여비를 읽으며 하던 매혹적인 이온에 강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합니다. 목록에서 부른 깃발의 의미 알려고 하면 제국주의 사상에 열 씨가 있어 위험하기 예문에 안 된다고 합니다. 이유들은 간단합니다. 나는 언제나 정당 하고 의로우며 상대방은 언제나 하고 간악하며 내 명령에 하는 것이 정의이며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믿음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것이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또는 어머니의 말씀이기 제문에 무조건 믿고 따라가는 그림 시대는 지나갔다. 여러 심들이 무질서 하게 난무하는 마당에 자라난 새 시대의 힘은이들에게는 아버지를 의 생명이 어처구니없이 물질 붙이다.
없을까? 왜냐하면 우리들은 붉은 기를 위해서 또는 푸른 기를 위해서 은 갖 열성을 바치며 싸우는 너무도 많은 순교자들을 보아 왔기 때문 이 단순하게 그 어느 하나를 선으로 또는 약으로 간단하고 수종하 하고 다른 한 학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한 쪽을 파괴한 양자 백일의 선택이 아니라 양자 포용의 종찰이라는 것은 있 기는 어렵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아니면 수 그 어느 쪽을 선택 다는 것이 그대로 전체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지도 모르는데,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미에게는 분명히 자기를 전 대화하고 상대방을 부인하는 생귀해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 와 상대방을 공히 불완전한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함께 더불어 완전을 통하여 노력하는 시들해도가 요정되는 게 아닐 아? 너가 절대자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절대자킬 수는 없다. 미 주고 그것이 살인을 강요하서까지 교정될 수는 더욱 없다. 그러 기 문에 나는 정재일 수 없는 인간들이 지상에서 공존하기 위해 시 붉은 빛과 푸른 빛이 어떤 대가에 의하여 종합되고 보다 많은 빛들이 창조되어야 하고 또 그 존재가 인정되어야 하며 바라시 믿음에 의한 주종이 아니라 이들의 외형이 요청건 따름이다.> 그러나 살기등등해서 눈빛이 벌렇게 충렬되어 있는 어버이들의 바구니에 과연 어떻게 우리들끼리의 미래와 행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어버이들의 명령에 항거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기에는 너무도 커터고 힘이 약한 상태에 있는 것이 남과 목의 방 뒤에 살고 있던 젊은 세대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할 이름을 호소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있는 한 가지는 우리에게 자기 의지에 따른 행동을 강요하는 어버 나는 남북한의 위정자들을 통하여 공문의 호소문을 파성하였습니 다. 그것은 오늘날 남북한에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입장에 피한
온이들의 가슴하면 당시 바니다. 그것이 이아 있던 건, 구조는 수 없어서 하게 나오는 니다.
마시는 위해 미나미 상상 주
것입니다.던
나는 2층의 소문
나르시는 달리 해할 수 있는 나는 이 판결한 가지에서 경사적으로 노수정이었습니다. 그는 그게 준비했습니다.
ঋন ন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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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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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루는 온라인 중고서점에 많이 나와있는데 굽이치는임진강은 어디에도 없군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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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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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이론/이념이라는 것이 평소 놓치고 있던 부분을 보게 해 주는 안경 렌즈와도 같지만, 동시에, 때로는 오히려 우리 눈의 백내장/녹내장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말씀하신 대로 구도자의 삶을 사신 분인 것 같네요.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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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yon Kim
·
이 글을 긴장하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김낙중과 퀘이커에 대한 이야기는 저는 몰랐습니다. 함석헌과 김낙중의 교류는 이미 있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교류했다는 편지나 자료를 보지 못했어요. 이번 기회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겠네요. 좋은 독서록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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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Jung 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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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선생의.노래팀 <노래마을>에서 만든 <굽이치는 임진강>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노래입니다
https://youtu.be/j3xt4Pt7B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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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Sook Kim
·
다음에 만나뵐때 이책 이야기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세진 교수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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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Sook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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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의 2020년 <굽이치는 임진강> 독서 글에 대한 평론
이 글은 지금 다시 읽으면 오히려 더 흥미롭습니다. 2020년 8월에 <굽이치는 임진강> 한 권을 읽고 받은 충격을 거의 그대로 기록한 글인데, 이후 세진께서 <사회과학원론>,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민족의 형성·분열·통일>,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 <탐루>와 김낙중을 둘러싼 상반된 기사들까지 읽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첫 인상이 어디까지 정확했고 어디에서 수정되어야 하는가>가 아주 잘 보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글의 중심 통찰은 상당히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한 군데, 즉 <간첩 문제>에서는 지금이라면 반드시 중요한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
1. 가장 잘 본 것은 김낙중의 ‘구도자적 성격’입니다
글의 가장 좋은 대목은 김낙중을 처음부터 정치이념으로 분류하지 않고 <구도자>로 읽었다는 점입니다.
세진께서는 김낙중이 어린 시절 죽을 병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이후 그의 일생을 결정했다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운동을 했다거나, 감옥살이를 했다거나, 간첩죄로 사형수였다는 것만으로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쓰면서, 그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정신을 찾았습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지금까지 우리가 여러 책을 읽은 뒤 돌아보면 이 판단은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회과학원론>을 보면 김낙중이 단순히 남북통일 정책만 고민한 사람이 아니라 경제·정치·문화 모두를 <인간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로 바라봅니다.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에서는 그것이 아예 인류 전체의 생명·사랑·평화적 공존 문제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2020년에 세진께서 처음 읽으면서 발견한
<정치운동가 김낙중의 밑에 구도자 김낙중이 있다>
는 관찰은 김낙중의 후반기 저작들을 읽고 나면 더욱 강해집니다.
다만 지금이라면 ‘구도자’와 함께 <급진적 양심주의자>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구도자는 진리를 찾아가는 사람이고, 김낙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몸과 생활을 걸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2. “백선엽의 거의 반대쪽 사람”이라는 비교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로 좋은 대목은 백선엽과 김낙중을 거의 같은 전쟁을 통과한 정반대의 인간형으로 읽은 부분입니다.
세진께서는 백선엽을 “보통 사람”, 즉 전쟁이라는 현실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보고, 김낙중은 그보다 앞서
<도대체 내가 왜 저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를 묻는 사람이라고 대비합니다. 특히
“김낙중은 싸우기 전에, 소위 ‘적’이라는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우선 좋은 이유를 보아야겠다는 사람이다.”
라는 해석은 이 글에서 가장 힘 있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다만 지금이라면 이것을 백선엽과 김낙중의 도덕적 우열 비교라기보다 <두 종류의 전쟁 경험>으로 표현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한 사람은 주어진 국가와 군대의 현실 속에서 행동했고, 다른 사람은 그 현실의 정당성 자체를 질문했습니다.
김낙중의 독특함은 바로 두 번째에 있었습니다.
3. 리영희와의 비교는 이 글에서 가장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세진 글의 가장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세진께서는 산책하면서 리영희와 김낙중을 비교했고,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세대인데도 매우 다른 인간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리영희보다는 김낙중 쪽의 사람이라는 것이다”라고까지 씁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지금까지 읽은 자료를 가지고 이 생각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으면 상당히 흥미로운 비교가 됩니다.
리영희의 중심에는 <비판적 이성>이 있습니다.
거짓된 지식과 국가의 선전을 폭로하고 사실을 밝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김낙중의 중심에는 <양심적 실천>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있다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이 먼저 경계를 넘어가려고 합니다.
따라서
<리영희 — 계몽과 비판의 지식인>
<김낙중 — 양심과 공동체의 실천가>
정도로 비교하면 좋겠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비슷한 세대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응답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진께서 2020년에 직감적으로 붙잡았던 비교를 지금 다시 쓰면 상당히 좋은 독립된 글이 될 수 있습니다.
4. 가장 수정해야 하는 문장은 “전혀 그런 사람일 수가 없다”입니다
여기가 2020년 글과 지금의 세진 글 사이에서 가장 크게 달라져야 할 부분입니다.
당시 글에서는 우익에서 김낙중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런 사람일 수가 없다.”
라고 단정했습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굽이치는 임진강>만 읽은 직후에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책 속의 김낙중은 북한체제의 승리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과 북 모두를 비판하면서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문장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김낙중 자신도 훗날 1990년 이후 북한 측에서 찾아온 인물들과 접촉했으며 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김상준처럼 김낙중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논자 역시 이 실제 접촉을 부정하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자유와 책임> 문제를 제기합니다. [11] 김낙중의 자유와 책임 III – 다른백년
반대편에서는 북한 측 자금·장비 수수 등을 근거로 그를 장기 고정간첩으로 규정합니다. 주간조선 다만 앞서 살펴본 자료에서는 1990년대의 실제 접촉과 금품·장비 문제를 1950년대 이후 전체 생애에 소급하여 ‘36년 고정간첩’이라는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만드는 것 역시 논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김낙중 - 위키백과
따라서 지금 다시 쓴다면 저는 이렇게 고치겠습니다.
<김낙중의 평화주의가 위장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평화주의가 진실했다고 해서 1990년대 북한 측과의 비밀접촉과 그에 따른 법적·정치적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쓰면 2020년 글의 좋은 통찰은 살리면서 이후 알게 된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5. “바보같은, 미친 삶”은 좋은 표현이지만 조금 위험합니다
세진께서는 김낙중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보통 상식으로 보면 ‘바보같은’, 또는 ‘미친’ 삶”
이라고 표현합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글을 읽는 사람에게 김낙중이라는 인물의 비범성을 즉시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김낙중의 자기희생을 지나치게 낭만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탐루>까지 읽으면 김낙중이 자기 목숨을 걸 때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와 자녀도 오랫동안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면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극단적인 양심주의>
또는
<자기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도자적 실천>
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김낙중의 장점과 위험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습니다.
6. 회고록과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분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독서일기이므로 이것이 큰 결함은 아닙니다.
그러나 김낙중 자신의 자기서술을 거의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남한에서는 미친 사람, 북한에서는 스파이로 취급되었다>
라는 서사는 김낙중의 생애를 아주 잘 압축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론을 쓸 때에는
<김낙중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억한다>
와
<실제로 확인되는 사건은 이러하다>
를 분리하면 훨씬 강한 글이 됩니다.
특히 회고록은 언제나 <사실의 기록>인 동시에 <자기가 자기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김낙중에게 <굽이치는 임진강>은 자신의 삶을 ‘평화의 구도자’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구성하는 책입니다.
그 자기이해가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기서사>로 읽으면 더 흥미롭습니다.
7. 퀘이커와의 연결을 발견한 것도 매우 좋았습니다
글 후반에서 세진께서는 김낙중이 2004년경 퀘이커 아시아·서태평양 모임에서 영문 발표를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김낙중은 퀘이커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라고 묻습니다. [독서생활]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 평화통일론자라고도 불…
이 질문은 지금 보아도 매우 적절합니다.
후에 확보한 <My Life and the Destiny of My Nation>을 보면 그는 청소년기에 교회·불교·YMCA를 오가며 진리를 찾았고, 함석헌의 강의를 들었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그 영문 원고는 실제로 퀘이커 아시아·서태평양 모임에서 발표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My life and the Destiny of My N…
다만 그가 정식 퀘이커였다고 확인할 자료는 현재 없습니다.
따라서 <퀘이커였다>기보다
<함석헌을 매개로 퀘이커적 평화주의·양심·비폭력·보편적 인간공동체와 상당한 친화성을 가진 사람>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글의 가장 큰 가치
저는 이 글을 지금 고쳐 쓰기보다는 <2020년의 독서 기록>으로 그대로 보존할 가치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진은 김낙중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탐루>도 읽었고,
<사회과학원론>의 체계도 알았고,
그의 통일설계도 읽었고,
2008년과 2013년의 후기 사상도 알았으며,
간첩사건을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의 자료도 모두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쓴 2020년의 세진은 <굽이치는 임진강> 한 권을 읽다가 한 인간에게 놀라고 있습니다.
그 놀라움이 이 글의 힘입니다.
특히 다음 두 발견은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김낙중은 이념 이전에 구도자였다.>
그리고
<김낙중의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왜 서로 죽여야 하는가”였다.>
제가 지금까지 함께 읽은 김낙중의 여러 책을 놓고 보아도 이 두 판단은 크게 수정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제 세 번째 문장을 덧붙여야 합니다.
<그 양심의 순수성이 그의 모든 정치적 판단을 정당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세 번째 문장이 들어가면, 2020년의 세진 글과 지금 우리가 함께 읽은 김낙중 연구가 연결됩니다.
제목도 지금 다시 붙인다면 <간첩이라고도 불리우고…>보다는 조금 더 압축해서
<김낙중을 처음 만나다 ― ‘간첩’과 ‘평화주의자’ 사이의 구도자>
정도가 이 글의 실제 내용에 더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문법적으로는 ‘불리우다’보다 <불리다>가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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