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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와타나베 노부유키

알라딘: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은이),이규수 (옮긴이)삼인2023-03-31
















책소개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질문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은 왜 역사를 두고 다투는가?”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등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은 오랜 세월 갈등을 겪었다. 서로를 향해 혐한과 반일의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왜 다투는 걸까?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역사 인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역사 전문 기자로서 40년간 일선에서 활동한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직접 사료를 찾아 나선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아래 일본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일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사실史實을 하나둘 찾아간다. 동학동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에 얽힌 숨겨진 역사와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자신도 몰랐던 역사에 관해 놀라며 그는 거듭해서 이렇게 묻는다. “과연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까지 찾아내는 등 저자의 세밀하고 성실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두었다. 이 책은 2021년에 일본의 퓰리처상이라는 불리는 ‘평화·협동 저널리스트 기금상’ 대상을 수상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장 징용공 소송
1. 징용공을 둘러싼 대립
2. “일본의 조선 지배는 불법이었다”
3.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는가?

제2장 동학농민전쟁
1. 숨겨진 역사
2. 일본군 수뇌부의 철저한 의도

제3장 관동대지진
1. 강해지는 주장, “학살은 없었다”
2. 어린이들이 본 요코하마 지진
3. 왜 유언비어를 믿었을까?

제4장 두 학살을 연결하는 선
1. 일본군 병사의 실상
2. 정체불명의 적

제5장 잊힌 과거
1. 개찬된 『일청전사』
2. 전쟁사 개찬의 진상

제6장 3.1운동
1. 새로 발견된 자료
2. 하라 다카시 총리와 조선총독부의 대응

제7장 모호한 자화상
1. 없었던 일로 치부된 학살
2. ‘갑자기 탄생한’ 자경단

제8장 여러 개의 전후
1. 말할 수 없는 전장 체험
2. ‘일본인의 마음의 틈을 겨냥한 속임수

제9장 다음 시대를 전망하는 역사상의 힌트

맺음말
옮긴이의 말
자료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53 이 둘은 국토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싸움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보신전쟁의 기억이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계승되어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는지를 상기하면, 한국 의병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신전쟁은 양 진영 사망자의 합계지만, 의병은 한쪽의 사망자 숫자다. 게다가 일본군과 의병의 ... 더보기
P. 75 조선인을 지속적으로 학살한 이유는, 부대 지휘관의 일탈이라든가 병사의 개인적인 폭주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군 수장의 뜻이 병사들에게까지 철저히 전해진 결과였다. 동학농민전쟁은 근대 일본이 조선 민중과 직접 대면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민중에 대한 대처로 일본이 선택한 조치는 “모조리 살육한다”였다. ‘숨겨진 역사’의 정체가 이렇게 밝혀졌다. 2019년부터 한국에서 전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된 것이 ‘죽창’이었다. “죽창을 들고 일어나자”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막강한 적에 맞선 동학 농민들의 정신이었다. 이를 깨달은 일본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몰랐던 큰 희생의 역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을까. 접기
P. 137~138 지진이 덮쳐 불안과 공포의 혼란 속에서 유언비어가 흘러나왔다. 많은 재향군인에게는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었고,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언비어를 믿었다. 저런 일을 저질렀으니 앙갚음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실체도 없는 ‘불령선인’이나 ‘빨치산’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가 되살아났을지 모른다. 지진으로 경찰은 기능을 잃었다. 가장 먼저 유언비어가 나돌고 학살이 시작된 요코하마에서는 일곱 곳의 경찰서 중 여섯 곳이 붕괴 소실되었다. 경찰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 자경단이었다. 치안 공백 상태에서 ‘민중의 경찰’로서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적을 찾는 일에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았다. 살의에 차서 과거 한반도나 대륙에서 자행했던 만행을 일본 내에서 재현했다. 그것이 관동대지진의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의 기본적인 구도였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접기
P. 199 너무 많은 민중이 가해자였다. 지역사회는 누가 가해자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사람에게 죄를 추궁하면 엄청나게 큰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유독 악질적인 범죄를 제외하고는 학살은 없던 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도 군도 경찰도 그리고 민중도 일본 사회가 하나가 되어 은폐하고 잊어버리려 했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며, 책임을 묻지 않고 반성도 없이 애매하게 방치하면서 흐지부지하다가 그냥 잊히기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접기
P. 223 조금 냉정하게 따져보면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속임수가 명백하다. 그것이 힘을 갖게 된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일본인의 소박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따지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에 애매한 자화상밖에 그릴 수 없는, 오늘날 일본인들 마음의 틈을 노린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은 선량하다, 어떤 때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심정을 노린 속임수다. 앞에서 조선인의 처지를 생각하는 소녀의 글을 소개했는데, 그 글에 묘사된 서로를 돕는 일본인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선량하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는 가차 없는 박해와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두 모습 사이의 간극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둘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양자를 냉정하게 바라보아야만 일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사실 그대로의 역사적인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짙음과 옅음,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를 동반한 등신대의 자화상 말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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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와타나베 노부유키 (渡邊延志)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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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 1955년에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2018년까지 아시히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아오모리시 산나이마루야마三内丸山 유적 출현, 중국 시안 견당사 묘지墓誌 발견, 지바시 가소리패총加曽利貝塚 재평가 등 여러 특종을 보도하고 역사 자료 발굴에 힘썼다. 논문으로 「731부대-묻혀버린 세균전의 연구 보고(731部隊―埋もれていた細菌戦の研究報告)」(『세카이(世界)』 2012년 5월호)가 있고, 저서로 『허망의 삼국동맹虚妄の三国同盟』(2013), 『GHQ 특명 수사 파일GHQ特命捜査ファイル』(2018), 『가나가와의 기억神奈川の記憶』(2018),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関東大震災 「虐殺否定」の真相』(2021), 『청일・러일 전쟁사의 진실日清・日露戦史の真実』(2022) 등이 있다. 이 책은 2021년에 일본의 퓰리처상으로 알려진 ‘평화・협동 저널리스트 기금상’ 대상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총 2종 (모두보기)

이규수 (李圭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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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1962년에 태어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를 졸업했다.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전북대학교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2021), 『제국과 식민지 사이』(2018), 『한국과 일본, 상호 인식의 변용과 기억』(2014), 『제국 일본의 한국 인식, 그 왜곡의 역사』(2007), 『식민지 조선과 일본, 일본인』(2007)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시무時務의 역사학자 강덕상』(2021), 『다이쇼 데모크라시』(2012), 『일본제국의회 시정방침 연설집』(2012),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2006).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2000)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아시아 제국주의 질서와 역사인식>,<전후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와 역사인식>,<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 … 총 4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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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주역周易, 타이밍의 지혜>등 총 269종
대표분야 : 한국시 29위 (브랜드 지수 22,61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일본인의 눈에 벗어난’ 한국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다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질문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은 왜 역사를 두고 다투는가?”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등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은 오랜 세월 갈등을 겪었다. 서로를 향해 혐한과 반일의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왜 다투는 걸까?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역사 인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역사 전문 기자로서 40년간 일선에서 활동한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직접 사료를 찾아 나선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아래 일본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일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사실史實을 하나둘 찾아간다. 동학동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에 얽힌 숨겨진 역사와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자신도 몰랐던 역사에 관해 놀라며 그는 거듭해서 이렇게 묻는다. “과연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까지 찾아내는 등 저자의 세밀하고 성실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두었다. 이 책은 2021년에 일본의 퓰리처상이라는 불리는 ‘평화・협동 저널리스트 기금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시작은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소송’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탐색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가면서 숱한 의문점과 마주한다. 그 대부분이 한국인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모르거나 모호하게 아는 사실들이다. ‘불법적인 한국병합’ ‘동학농민전쟁의 의병 진압’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빨치산과의 전쟁’ 등이 그것이다. 기자로서 또 일본인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객관적이며 냉철하다. 이러한 입장과 자세는 어쩌면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차를 좁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일본인의 시야에서 벗어난 역사들

와타나베 노부유키가 한일 역사 인식의 차이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징용공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골격이기도 한 ‘한국병합은 무효이자 불법’이라는 논리다. 이는 일본인으로서는 ‘헛소리’로 들릴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이태진 교수가 말한 병합을 위한 일본의 “분명히 계산된 지속적인 노력”이 무엇인지 사료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동학농민전쟁의 ‘의병’이란 존재와 마주한다. “일본군의 의병 토벌은 1911년까지 계속되었다. 그간의 전투 횟수는 총 2,852회이며, 일본군은 1만 7,779명의 폭도를 살육했고, 일본군 전사자는 136명이었다. 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1908년에는 1,451회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의병 1만 1,562명을 살육했다. 다시 말해, 1908년 한 해 동안 한반도 어딘가에서 매일 평균 4회의 전투가 벌어졌고, 30명 정도의 의병이 살해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얼마나 될까? 부끄럽지만 나는 몰랐다.” 그는 의병 토벌대로 참여한 한 일본군의 종군일지를 살피며 한반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되살려낸다.
다음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이 역시 많은 일본인이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저자는 지진 재해 당시 소학교 아이들이 쓴 작문 등의 자료를 찾아 그 현장 상황을 생생히 복원한다. “많은 사람이 조선인을 다리 위에서 칼로 베거나 쇠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찔렀다. 결국에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한 사람이 쇠갈고리로 놈의 머리를 찍어 나룻배로 끌어당겼어요. 마치 목재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어요. (…) 쇠갈고리 한 방으로 이미 죽은 놈을 다시 칼로 베고 죽창으로 찔렀어요.”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학농민전쟁과 관동대지진이라는 두 학살을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낸다. 그 가해자인 후비역 병사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그들이 속한 자경단에 대해 당시 사회적인 상황과 연결하여 그 조직의 성격을 분석하고 이렇게 말한다. “지진이 덮쳐 불안과 공포의 혼란 속에서 유언비어가 흘러나왔다. 재향군인에게는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었고,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언비어를 믿었다. (…) 경찰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 자경단이었다. 치안 공백 상태에서 ‘민중의 경찰’로서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적을 찾는 일에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았다. 살의에 차서 과거 한반도나 대륙에서 자행했던 만행을 일본 내에서 재현했다. 그것이 관동대지진 당시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의 기본적인 구도였던 게 아닐까?”

왜 일본인의 기억에 사라졌을까?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역사는 일본인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일까? 저자는 개찬된 『청일전사』를 예로 들며, 정부와 군이 역사 “기록을 처분하거나 정사正史를 날조”했고, 그로 인해 동학농민전쟁과 3․1운동에서의 조선인들의 희생은 일본인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됐다고 말한다. 관동대지진의 기록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처분”되어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진 재해 직후 일본 정부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방침은 “정상참작을 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소요에 가담한 전원을 검거하지 않고 현저한 행위를 한 자로 검거 범위를 한정한다”고 발표한다. 그리하여 “모든 시와 마을 구석구석까지 폭동을 일으키고, 폭동을 일으킨 민중에 의한 살해가 있었던” 요코하마시에서 조선인을 살해한 행위로 기소된 사람은 ‘단 한 명’으로 기록된다.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너무 많은 민중이 가해자였다. 지역사회는 누가 가해자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사람에게 죄를 추궁하면 엄청나게 큰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유독 악질적인 범죄를 제외하고는 학살은 없던 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도 군도 경찰도 그리고 민중도 일본 사회가 하나가 되어 은폐하고 잊어버리려 했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며, 책임을 묻지 않고 반성도 없이 애매하게 방치하면서 흐지부지하다가 그냥 잊히기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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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한·일 역사 인식, 대체 어디에서 갈렸는가

등록 2023-03-31 05:00수정 2023-03-31 10:25


이승준 기자 사진

이승준 기자


30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서 부산겨레하나 주최로 열린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역사왜곡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일본역사왜곡 교과서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이규수 옮김 l 삼인 l 1만8000원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배상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표에 ‘굴욕 외교’라는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온다. 반대로 일본에선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과거사에 대한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인식 차이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역사 전문 기자로 40년간 활동해온 일본인 저자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던진다. ‘한국과 일본은 왜 역사를 두고 다투는가?’ 강제동원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둘러싼 갈등에 돋보기를 들이댄 저자는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일본과 불법이라는 한국의 인식 차이를 마주한다. ‘합법적인 한국 병합’이라는 대부분 일본인의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저자는 다양한 기록을 검토하며 숱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의문은 많은 일본인이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고 생각하는 관동대지진,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이러한 인식 이면에 가해의 역사를 은폐하고 망각하려 한 일본 사회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오랜 조사와 자료검토를 통해 정부와 군이 기록을 없애거나 학살을 축소하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려 했다는 다수의 정황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꼬인 한·일 갈등 앞에서 저자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지금 두 나라의 구성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언을 던진다.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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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왔어요]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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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2023-04-07 제15면인쇄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이규수 옮김/삼인/1만8천원





이 책은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소송'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탐색에서 시작했다. 역사 전문 기자인 저자는 숱한 의문점과 마주한다. 한국인은 분명히 알지만, 일본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그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의병 진압,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자면서 일본인으로서 이를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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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생각이 바뀐 계기, '강제징용' 판결이었다

한겨레21 원문 기사전송 2023-04-02


일본 기자가 일본 사료로 ‘팩트체크’ 한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한반도가 근대화된 것은 일본 덕분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으로) 비열하게 골대를 옮겼다.”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이규수 옮김, 삼인 펴냄)의 저자인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이런 주장을 철석같이 믿던 수많은 일본인 중 하나다. 한국 쪽의 전쟁 피해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던 그는 2019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한국 대법원 승소 판결을 계기로 일본 곳곳의 사료를 꺼내보며 ‘팩트체크’를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몰랐던 큰 희생의 역사”를 마주한다.

책은 양국 갈등의 뜨거운 감자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로 시작한다. 일본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된 것이 아니라 ‘(구인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와타나베가 확인한 <일본교통공사 70년사>를 보면 일본은 “조선인 노무자를 대거 수송할 계획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반강제로 끌려온 노무자들이 도망가기도 했다”. 전쟁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까지 징용령이 내려질 정도였다.

일본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동학농민운동 역시, 손에 든 무기가 죽창과 화승총뿐이던 한국 의병을 일본군 토벌대가 무참히 살해한 기록이 일본군 병사 종군일지와 소좌(소령)의 보고서에 적혔다. 일본이 기록한 일본군 전사자는 136명이었으나 조선인 의병 전사자는 1만7774명이었다.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도 일본은 그 사실을 부인하나 당시 일본인 학생들이 쓴 재해 작문집에 학살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일본군의 전쟁범죄가 왜 일본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을까. “오늘날 일본인의 역사 인식은 사실을 개찬(다시 편찬)하고, (범죄) 기록을 처분하고, 기억을 망각함으로써 일본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졌다”고 와타나베는 짚는다. “‘믿을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소박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은 선량하다, 어떤 때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심정을 노린 속임수다.”

국가의 자긍심을 위해 전쟁 범죄를 외면하는 습성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와타나베 기자는 베트남전 참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수많은 증언으로 드러난 후에도 미군이 학살을 부인한 사건을 언급하며 “국외에서 행한 병사들의 비인도적 행위를 국내에서 ‘모두의 기억’으로 남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나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일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와타나베는 이 대목에서 일본을 보지만, 베트남전 참전국인 한국은 자화상을 본다. 2023년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이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낸 지 열흘 만에 국방부 장관은 “학살은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이 기묘하게 만나는 대목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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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론
[오늘의 책] 
와타나베 노부유키, 이규수 옮김,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삼인, 2023)
* 이 책을 번역해주신 이규수 선생의 관동대지진 100주기에 관한 비평글이 《가톨릭평론》 40호(여름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따져보면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속임수가 명백하다. 그것이 힘을 갖게 된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일본인의 소박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따지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에 애매한 자화상밖에 그릴 수 없는, 오늘날 일본인들 마음의 틈을 노린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은 선량하다, 어떤 때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심정을 노린 속임수다. 앞에서 조선인의 처지를 생각하는 소녀의 글을 소개했는데, 그 글에 묘사된 서로를 돕는 일본인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선량하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는 가차 없는 박해와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두 모습 사이의 간극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둘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양자를 냉정하게 바라보아야만 일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사실 그대로의 역사적인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짙음과 옅음,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를 동반한 등신대의 자화상 말이다.”

2021-03-22

0605 "북한교회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 아이굿뉴스

"북한교회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 아이굿뉴스


"북한교회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이현주
승인 2006.05.30 21:00

2006통일포럼 진보-보수 북한전문가 한 자리서 토론


북한교회가 9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북한에도 그루터기 신앙공동체가 존재하고 그들만의 믿음이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25일 극동방송 공개홀에서 한국기독교통일포럼(공동대표:강승삼, 박종화, 이상숙) 주최로 열린 통일한국 2006포럼에 참여한 진보와 보수계열 양측 통일전문가들은 북한교회를 인정한 후에야 통일과 교회재건 논의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또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서는 남한중심의 전도를 지양하고 한국교회가 먼저 겸손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기독교계의 통일론과 북한선교 현황 등을 함께 듣는 시간으로 마련된 통일한국 2006 포럼은 경동교회 박종화목사와 아신대 김병로교수, 백석대 주도홍교수, 백석대 한화룡교수, 경찰대 조용관교수, 자유터학교 조명숙교장, 호남신대 김동선교수, 연세대 노정선교수,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회장, 월드비전 박종삼 회장, 서울신대 박영환교수 등 10명의 북한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심도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통일을 향한 북한선교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주제 발제를 맡은 박종화목사(경동교회)는 “북한은 90년대 들어와서 종교활동을 허용하되 체제 보존과 기존 사회질서 강화라는 제한된 틀에서만 가능토록 하고 있고 사랑과 화목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종교인의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박목사는 “남한교회들이 북한교회가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 뒤 상호 인정하는 바탕이 마련될 때 평화적 공존과 협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북한교회를 남한교회화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러한 시각은 통일 이후 교회재건과정에서도 상당한 난관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목사는 북한교회 재건은 봉사센터를 통한 복지선교 방식이 바람직하며 남한교회들이 갈라지고 분열된 교파교회의 이식을 처음부터 포기하거나 단절하는 방식으로 교류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회장도 북한교회의 변화실상을 증언했다. 김회장은 “2000년 이전과 이후 북한교회 설교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며 “유물론과 사회주의를 설파하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의 설교가 2000년 이후에는 90% 가까이 성경적 설교로 바뀐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북한교회 현실 및 한국교회 통일관, 탈북자 전도전략과 남북선교협력과 교단의 북한선교, NGO단체들의 대북지원 등이 다뤄졌다. 발제가 끝나고 전체토론에 참여한 북한전문가들은 교파주의를 넘어선 단일선교가 북한에 펼쳐져야 하며 교파이식을 막기 위해 교단 간 대화를 마련하고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2019-10-12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지은이)삼인2004-10-11








































372쪽
152*223mm (A5신)
670g

[절판] 이현주의 동양 고전 읽기 세트 -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책소개
1996년에 출간된 <장자 산책>을 다듬고 보완해 펴낸 개정판.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총 33편으로 이루어진 <장자> 중에서 내편만을 다루었다. 기독교와 불교 등의 종교를 넘나들며 <장자>가 다양한 종교.사상 등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를 살폈다.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책은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또한 지은이는 장자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며, 허위의식에 대한 저항, 평등 사상 등의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풍자와 비판, 역설과 우화로 이루어진 <장자>를 만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소요유(逍遙遊)
1. 붕이 남으로 날아감
2. 요가 천하를 넘겨주고자 함
3. 혜자와 장자의 대화

제2장 제물론(齊物論)
1. 하늘 소리 이야기
2. 몇 가지 문답 이야기
3. 나비 꿈

제3장 양생주(養生主)
1. 중정을 따름
2. 포정의 소 잡기
3. 공문헌과 우사의 문답
4. 노담의 죽음에 문상함

제4장 인간세(人間世)
1. 안회와 중니의 문답
2. 섭공과 중니의 문답
3. 안합과 거백옥의 문답
4. 장석과 역사의 문답
5. 남백자기와 큰 나무
6. 꼽추 지리소
7. 접여의 노래

제5장 덕충부(德充符)
1. 상계와 중니의 문답
2. 신도가와 자산의 대화
3. 중니와 숙산무지의 대화
4. 애공과 중니의 문답
5. 사람한테 본디 정이 없는가?

제6장 대종사(大宗師)
1. 진인론
2. 남백자규와 여우의 문답
3. 자사와 그의 벗들
4. 틀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
5. 맹손재가 초상을 치름
6. 의이자와 허유의 문답
7. 좌망에 들다
8. 자상의 명

제7장 응제왕(應帝王)
1. 설결과 포의자의 문답 외
2. 열자와 호자의 문답
3. 마음 쓰기를 거울같이
4. 혼돈의 죽음
접기


책속에서



혜자가 다시 묻는다.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그 몸뚱이는 유지하고 있는가?

장자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한다.

"도가 그에게 인간의 얼굴을 주었고 하늘이 그에게 인간의 꼴을 주었다!"

그런데 어찌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돌은 ...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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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최근작 : <대한민국 청소년에게>,<아가씨 피리를 부셔요>,<We Want to Be Real Christians 2> … 총 27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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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등 총 246종
대표분야 : 한국시 23위 (브랜드 지수 18,61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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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한잔 걸치고 싶은 친구, 장자와의 산책...




다시 장자를 읽는다. 이현주 목사의 장자 산책을 옛날 책으로 읽을 때는 좀 짜증났더랬는데(너무 구판이어서) 이번 책은 산뜻하게 예쁘다. 요즘 책들이 쓸데없이 두껍고 종이 질이 좋으며 비싸다는 비판적 기사가 엊그제 난 적도 있지만, 이런 고전들은 좀 두툼한 종이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고전이니까...

이번 읽기에서는 <장>별로 생각을 모아 가며 읽으려고 노력했다.

1장. 소요유. 소요한다는 말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빈둥거리며 느릿느릿 다닌다는 말이고, '놀 유游'자도 특정한 목적없이 즐기며 마음 편하게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 짧은 데 그리 아둥바둥 살 필요 있나, 젊어 노세... 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옳음>에 얽매고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건 아닐세~하는 장자 영감의 눙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가치'로 봐야 한다. 교육을 '인적 자원' 관리라고 보는 정부는 나쁜 정부다. 나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려라. 이런 말은 금강경에서도 숱하게 만난 말이 아닌가.
우리의 성모님, 어디에서 죽어가는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아, 이런 말들이 이아무개 님의 글로 읽는 고전의 맛이다. 무하유의 고향을 말하면서, 피폐해지는 인간 존재를 사랑하는 하나님, 성모님, 하눌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기쁨. 나는 행복하다.

2장. 양생주. 양생은 말 그대로, 웰빙이다. 그런데, 우린 너무 육체의 웰빙에 얽매인다. 텔레비전에 무슨 비타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몽땅 육신의 양생만을 추구한다. 물질의 양생은 결국 웰빙보다는 부유함을 추구하게 된다. 지나쳐도, 결핍되어도 병이 되는 것이 바로 비타민이다. 중도, 중정, 중용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양생이다. 웰빙은 결코 돈이 많아 '잘사는 rich' 경지가 아닌 것이다.
야생의 새는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도 새장에 갇히려 하지 않는다. 인간도 야생의 새가 되어 '육신의 웰빙', '물질의 웰빙'이란 감옥에 갇히지 말고 먼 하늘을 날아야 할 거다.

3장. 제물론. 온 세상이 잡다구레한 물질로 가득하다. 일 주일도 되기 전에 재활용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들은 가득 생산된다. 부끄럽다. 사물을 가지런히 하라... 세상을 가지런히 하라... 그 근본과 가지끝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물과 자신을 떼어 놓지 않을 수 있으련만...
자기를 잃는 일, 그것을 상아 喪我, 또는 좌망 坐忘이라 한다. 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 곧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
근본을 알고 끝을 아는 사람은 '덕'이 뿌리요, '다스림'은 가지 끝임을 안다.
흐르는 물에 있으면서 젖지 않는 달의 경지, 빛을 옴기면서 빛에 물들지 않는 허공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초연한 참여를 읽는다. '物'에 젖지 않는 경지를 만난다. 모든 '물'은 저를 있게 한 <하나>를 모신다. 하나님, 한울님, 예수그리스도...

4. 인간세. 엊그제 한 수학자가 법관을 석궁으로 쏘아 죽이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관이 대학측의 손을 두 번이나 들어줘서 한 수학자의 생을 망쳐놓았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법관을 수학자가 처벌해 버렸다. 마치 일본의 추리소설 줄거리 같다. 인간에게 '지식'과 '이름'은 흉기다.
우리의 교묘한 언술과 몸짓,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탐심,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마음을 닦고, 텅 비게 하기 위해 <장자는 유가를 비판>한다.
수학자처럼 석궁을 쏘고 싶은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독재자나 살인마, 사소하게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에게도 석궁의 욕망은 들끓지 않는가. 그렇지만, 장자는 툭 던지는 말로 마음의 팽팽한 줄을 툭, 끊는다. 물론 석궁은 발사되지 않겠지.
서로 해치고, 당하는 세상을 사는 법 : 거울의 마음, 배웅도 마중도 하지 앟으며, 응하되 간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이기면서 상하지 않는다. 아상을 버리고, 공명심을 버리라... 무아, 무공, 무명... 결국 마음을 다스시는(심재 心齋) 길. 뜻을 한 곳에 모으고,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감각에 얽매이지 말고 氣로 들어라.
세속을 떠날 것 아니고, 세속 한가운데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삶. 아멘, 소리가 나게 만드는 아무개님의 글. 연못의 더러움에 뿌리내리되, 오히려 아름다운 연못으로 피어야 하는 인간 세상.
사마귀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호랑이 조련사는 상대에 맞는 수단을 쓰지 못했고, 마부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다가 망신하고 몸을 버린다. 하, 살기 어렵다. 인간 세상은...
다른 누구에게 "쓸모"가 되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늘이 준 생존의 길을 좇는 참사람이 <신인의 나무>가 되어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비정한 세상. 그 신인은 천수를 누려 가늘고 길게 삶을 다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논한다. 지리소는 병신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 끌려나가 죽지도 않았고, 그의 열 식구를 너끈히 먹여 살렸다. 인간들아, 인간아, 글샘아, 누가 병신이냐?

5. 덕충부. 덕이 가득하면, 덕이 가득 차야 겉으로 드러난다. 덕은 껍데기에 있지 않다.
장자는 <공부>를 감각과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속의 굴레를 벗은 자유인으로 세속 한복판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걷는 길을 찾는 것, 으로 본다.
무위당 선생님 꿈을 꾼 이아무개 씨. 곧장 들어가... 문자로는 안 돼... 문자에 빠지지 말어... 마음을 잡어...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못생겼는데, 왜 사람이 끓느냐... 애태타를 바라 보라.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남들을 제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꾀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고, 잃지 않고, 사고 팔지 않는 하늘처럼 사는 사람에겐 주변이 끓는다.

6. 대종사. 큰 꼭대기가 되는 스승님. 그를 지인, 신인, 성인이라 한다. 거울처럼, 하늘처럼... 물처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도에 더 가까운 이가 마땅히 스승이어야 하거늘, 나로 하여금 바라건대 자네 뒤를 따르게 하라...(이 책은 가끔 이런 말들과 게송, 싯구들로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7. 응제왕. 제왕에게 응답함.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다시 소요유를 반복한다. 무기, 무공, 무명...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그 이름, 하느님 아버지일 따름.
마지막의 혼돈의 죽음은 인간의 '함 爲'이 얼마나 작은지 본다.

장자를 읽는 일은, 장기판에서 움직이는 말을 <훈수두는 눈>으로 보는 일이요,
싸움판에서 흥분한 두 사람에게 <심판>을 서는 일이며,
야단치는 시에미와 당하는 며느리 사이에서 말리는 <시누>의 눈을 갖는 일이다.

얄밉게도 세상에서 조금 비스듬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자리가 세상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란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너 죽을래?'하면서 쫓아오며 시비거는 사람에게 아큐정전의 '아큐'는 <정신적 승리법>으로 대응한다.
실컷 밟힌 후에 '난 똥이야, 넌 똥을 밟은 거야. 재수 없게도...'하는.

아큐는 어리석지만, 장자의 이야기도 시비에 맞대응하지 않고, <정신적 승리>를 바라본다.

장자더러 아큐라고 하면, 글쎄, 꿈속에서 나비였더랬는데, 이제 그 나비가 나냐, 아큐냐?하고 웃으려나?

장자같은 남자라면, 이런 허풍쟁이라면, 같이 대폿집에서 푸지게 막걸리 한잔 걸쳐야 제맛이다.
- 접기
글샘 2007-01-17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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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좋은 의미 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명예라는 인간 탐욕의 한 방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옛 사람들 중이 백성의 피를 빨아 먹었던 자들이 임지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비(碑)'를 세웠던 일들을 있었다. 백성을 착취한 자들이 이름까지 착취하는 탐욕이 나은 결과다.


좋은 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탓할 필요가 없지만 좋은 책을 내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 아무개'다. 그가 쓴 <이 아무개의 장자산책>(삼인 펴냄)을 손에 드는 순간 멈칫한다. '이 아무개?' 아무개라는 이름이 있나 의문이 들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 아무개는 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이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과 따끔하고도 넉넉한 말씀으로 많은 이들을 품어주는 이현주 목사임을 알게 된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1996년에 나온 <장자 산책>을 새로 다듬고 보완한 개정판이다. <장자>는 장주의 저술로 내편 7, 외편 15, 잡편 11편인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장자 사상의 정수이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내편>을 다루고 있다.



사실 <장자> <도덕경> <사서오경>을 접할 때마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2500여 년 전 중국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남긴 글들을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할 것 같은 <장자>를 읽는 것은 시간이 낭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젖은 이들에게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연이 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은 그 줄이 땅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줄이 풀어지거나 끊어지면 연은 곧장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장자의 생각이 수천 년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은 까닭은 그 뿌리가 대지에 든든히 박혀 있기 때문이요, 근본을 붙잡은 그의 생각을 울가 잃은다면 21세기 눈부신 컴퓨터 문명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라고."(10쪽)



사실 <사서삼경>과는 달리 노자와 장자는 1명이 읽었다면 얼굴이 하나이고, 100명이면 100개, 100만명이면 100만개의 얼굴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라는 텍스트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의 삶의 정황에서 치열하게 벼려진 거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실용주의가 나은 병폐는 심각하다. 이익만 되면 무조건 좋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우리 시대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존중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자본이 낳은 탐욕에 팔아버렸다. 이럴 때 2500여 년 전 <장자>를 통하여 오늘 우리 자신들이 빠져 버린 탐욕과 존엄성 훼손을 극복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임을 분명하다.



이아무개 목사는 <장자>를 통하여 기독교와 불교 등을 오고간다. 장자가 어떻게 세상의 종교와 사상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장자와 기독교, 불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텍스트에서는 서로가 다른 진리가 아니라 소통하고 있음을 말한다.



"'나'라고 하는 물건 하나 없애버리면 너 있는 자리가 곧 새 하늘 새 땅이요 네가 곧 곤이요 붕이요 남명이요 북명이요 9만 리 창공이요 회오리바람이라는 얘기다."(17쪽)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곤과 붕은 부처, 남명과 북명은 장자다. 이아무개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나’라는 관념에 예속된 사람과 그것을 벗어난 사람의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우리는 공(功) 다툼 때문에, 자기 이름 내기에 바쁘다. 이런 때에 '나'를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부질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길이다. 이아무개 목사는 이렇게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를 서로 불러모아 대화한다.



<공자> <맹자> <논어> <대학> <중용> <금강경> <산해경>, 조선의 선시, 수사(修士)의 글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진리와 인간 자신, 자연을 알기 위하여 끊임없이 내 놓았던 텍스트를 통하여 그들이 무엇을 뚫고 나아가려 했는지, 무엇이 같고, 다른 지를 <장자>를 통하여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시대는 죽은 시대다. 자연을 이해하지 않는 시대는 죽은 시대. 실용을 통한 이익 창출이 지배하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말하고, 학문을 말하고, 문학을 말하는 철학, 어문학, 인문학, 기초학문은 이미 대학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이웃이 강도를 만나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연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이익의 도구인 이용가치로 평가하면서 결국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파멸로 가고 있다고 이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미명 아래 힘을 통하여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음을 말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파멸을 향한 지구의 운명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서 '힘'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아야 한다. 예술과 종교가 새로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르고 켜서 침대로 만들 재목으로만 볼 게 아니라 더불어 노닐며 생사를 함께 할 '이웃'으로, '어미'로 보아야 한다."(51쪽)











자신을 장사 지내는 것, 버림, 완전히 여읜 상태를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 에크하르트(M. Eckhart, 1260~1328)는 '무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디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음'으로 '초탈'이라고 이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로부터의 초탈이야 말로 사랑, 겸손, 자비보다 고귀한 최선, 최상의 덕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최상의 덕이지만 가지는 것에 매어 달리니 사랑과 겸손, 자비는 찾아 볼 수 없다.



초나라 때 미치광이 접여(接與)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시들어가는 덕을 어찌하겠느냐?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도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그것을 우리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자기 목숨 살아갈 따름이니 시방은 겨우 형벌이나 면하는 게 고작인 세상.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땅에 금 긋고 그 안에서 허둥대는 짓거리.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잘리우고 옻나무는 쓸 데가 있어서 베어지네. 사람이 저마다 쓸로 있음의 쓸모는 알면서 쓸모없음의 쓸모는 모르는구가."(200쪽)



모든 것이 썩어 무너진 세상이라는 말이다. 입신양명과 출세, 탐욕만을 위하여 나무를 베어내고, 자연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는 세상을 향한 장자의 일침이다. 가난하고, 비천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장자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다.



이름이 나면 높아지고, 높아지만 탐욕이 생기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마는데 우리는 이를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 광우병을 보라, 대운하를 보라. 영어몰입교육을 보라. 파멸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것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책 읽는 것조차 대학입시와 연관시키는 우리 시대에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분명 돈 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실용과 탐욕에 찌든 우리가 <장자>를 통하여 무심과 비움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땅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인간과 함께 만물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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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 2014-11-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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