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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Amazon.co.jp: ジニのパズル : 崔 実: 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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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ニのパズル 単行本 – 2016/7/6
崔 実 (著)
4.0 5つ星のうち4.0 116個の評価

「日本には、私のような日本生まれの韓国人が通える学校が、二種類あるんだ」――。1998年、テポドンが発射された翌日、チマ・チョゴリ姿で町を歩いていたジニは、警察を名乗る男たちに取り囲まれ……。二つの言語の間で必死に生き抜いた少女が、たった一人で起こした“革命”の物語。全選考委員の絶賛により第59回群像新人文学賞を受賞した、若き才能の圧倒的デビュー作!


★第33回織田作之助賞受賞!★

オレゴン州の高校を退学になりかけている女の子・ジニ。ホームステイ先でステファニーと出会ったことで、ジニは5年前の東京での出来事を告白し始める。

ジニは日本の小学校に通った後、中学から朝鮮学校に通うことになった。学校で一人だけ朝鮮語ができず、なかなか居場所が見つけられない。特に納得がいかないのは、教室で自分たちを見下ろす金親子の肖像画だ。

1998年の夏休み最後の日、テポドンが発射された。翌日、チマ・チョゴリ姿で町を歩いていたジニは、警察を名乗る男たちに取り囲まれ……。

二つの言語の間で必死に生き抜いた少女が、たった一人で起こした“革命”の物語。全選考委員の絶賛により第59回群像新人文学賞を受賞した、若き才能の圧倒的デビュー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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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の長さ

185ページ
言語

日本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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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について
崔実(チェ・シル)
1985年生まれ、東京都在住。2016年、『ジニのパズル』にて第59回群像新人文学賞を受賞。

登録情報
出版社 ‏ : ‎ 講談社 (2016/7/6)
発売日 ‏ : ‎ 2016/7/6
言語 ‏ : ‎ 日本語
単行本 ‏ : ‎ 185ページカスタマーレビュー:
4.0 5つ星のうち4.0 116個の評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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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고구마
5성급 중 5.0 어쨌든 강력한
2018년 1월 27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 2018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 경향신문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2018.09.18 21:30 입력
이영경 기자


재일조선인 소설가 최실, ‘지니의 퍼즐’로 일본문학 신인상 석권



재일조선인 3세 소설가 최실은 데뷔작 <지니의 퍼즐>로 일본 군조신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재일조선인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실상이 잘 드러난 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은행나무 제공

데뷔작으로 일본 군조 신인문학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예술선장 신인상을 석권했다.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재일조선인 3세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지니의 퍼즐>(은행나무) 이야기다. <지니의 퍼즐>은 재일조선인 3세 소녀가 성장하며 겪는 차별과 폭력, 갈등과 방황을 그린 소설이다. 실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최실(33)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본에서 북한 뉴스가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 대포동 미사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지금도 일본에는 ‘조선학교’ 하면 ‘북한’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재일조선인 처한 모순적 현실에
불화하고 갈등하다 치유되는
작가의 자전적인 성장소설




최씨의 말대로 소설은 1998년 북한이 처음으로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재일조선인 3세 박지니는 일본, 한국, 북한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존재다. 일본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식민지 시대 한국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래, 이건 박지니 같은 사람들 이야기네”라고 말한다. 학교 친구들은 지니에게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조센진”이라고 말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설립한 조선학교로 진학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지니에게 그곳도 편한 곳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린 교실은 어딘지 ‘틀린 풍경’처럼 보인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지니는 평소처럼 치마저고리 차림의 교복을 입고 등교하다 지하철에서 폭력과 성추행을 당한다. 학교에는 테러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아이들은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고, 독극물이 섞여 있을까 봐 수도꼭지는 막아놓는다.


“조선학교에 1년 반 정도 다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대포동 미사일 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동안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고, 수돗가 수도꼭지엔 접착테이프가 붙어 있었습니다.”


끔찍한 폭력을 당한 지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교실 앞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존재를 견딜 수 없다. 지니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분노의 창끝은 아이들이 위험으로 내몰리는 데도 변함없는 조선학교를 향한다. 지니는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떼어내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길 바란 것뿐인데… 내가 맞서야 할 상대는 어디일까요. 누구일까요. 내가 틀린 거예요? 나는 이름을 잃어버렸어요. 더는 일본 이름도, 한국 이름도, 어느 쪽도 말할 수가 없어요.” 지니는 이후 미국 하와이, 오리건주 학교를 전전한다.



작가는 실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 작가는 “그걸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일본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 헤이트스피치와 폭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설 중간중간엔 북한에 살던 지니의 외할아버지가 쓴 편지가 들어가 있다. 처음에 북한을 ‘아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썼던 외할아버지가 병원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일이 드러나며 ‘초상화의 나라’의 비참함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은 재일조선인이 처한 모순적 현실을 세밀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지니라는 아이가 세상과 불화하고 갈등하다 누군가의 이해와 사랑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도망칠 수 없는 과거가 들러붙어 있다’는 지니를 세상과 다시 화해하도록 돕는 것은 그림책 작가 스테파니다.


작가에게 재일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묻자 “태어나서부터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내가 있을 곳을 쭉 찾아 헤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디에나 차별은 존재한다는 걸 실감한 무렵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며 “스무 살 즈음부터 ‘재일한국인’이란 자각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영어를 접하고 세계가 확장되면서 제 경험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위는 어둠에 잠기고, 이 비참한 생은 희미한 소리도 없이 끝나리라고 생각한 와중에도… 우리의 시는 끊없이 늘어나리라, … 두려워 마라. 이 세상은 교과서보다 예술로 가득하다.” 소설 속 구절처럼 <지니의 퍼즐>을 쓰는 과정 또한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차별 실감 후 편안해져
난 지구인이라 일본·남북한 등
이 행성을 통째로 사랑”


자신을 ‘재일조선인’으로 규정짓는 걸 경계하는 듯한 작가는 자신을 소개할 때 ‘Earthling(지구인)’이라는 말을 쓴다며 “지구인이기에 일본, 한국, 북한은 물론 이 행성을 통째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행도 여러 번 하고, 서울에서 1년 정도 살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헤드윅>은 세 번이나 봤어요. 서울에서 음식, 음악, 무대를 즐긴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명동 리어카에서 산 양말을 지금도 신고 있습니다.” ‘지구인’다운 경쾌한 답이 돌아왔다.

2024-08-04

알라딘: 지니의 퍼즐 원제 ジニのパズル

지니의 퍼즐 책표지
알라딘: 지니의 퍼즐




지니의 퍼즐  최실 (지은이), 정수윤 (옮긴이) 은행나무 2018-08-17
정가  12,000원



8.2
100자평 1편
리뷰 10편
세일즈포인트 193

원제 ジニのパズル양장본
196쪽

책소개
군조 신인문학상(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등 수상), 오다사쿠노스케상(미우라 시온, 니시 가나코 등 수상), 예술선장 신인상 등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동시 수상하고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재일 한인 3세 소설가 최실의 첫 장편소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녔던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픽션"으로, 경쾌한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더해 보편적인 성장소설로 발전시켰다.

고독감 속에서 세상과 투쟁하는 사춘기 소녀의 좌절과 절망, 분출하는 에너지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는 평가 속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한다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 직후 2만 5천 부의 중쇄를 찍는 등 신인 작가의 순수 문학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을 낳았다. 오다사쿠노스케상 심사위원 다카무라 가오루는 작가를 "언어 표현의 재능과 의지, 행운, 이 세 가지가 모인,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작가 나카지마 교코는 작품에 대해 "틀림없는 걸작"이라고 단언했다.



목차


지니의 퍼즐 ·7
작품해설/문경수(리츠메이칸대학 교수) ·178
옮긴이의 글·190



재일문학의 북한 표상 󰠏 최실의 󰡔지니의 퍼즐󰡕 󰠏 김 계 자** 2020

 SSWUHR 41(1), 149󰠏167 (2020)

DOI http://dx.doi.org/10.24185/SSWUHR.2020.02.41.149 * 

재일문학의 북한 표상  󰠏 최실의 󰡔지니의 퍼즐󰡕 󰠏

김 계 자**

서경식의 ‘식민주의 저항’ 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조관자 2008

02 조관자.pdf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소개된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민족담론
서경식의 ‘식민주의 저항’ 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조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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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일조선인의 ‘저항서사’는 탄광의 카나리아? 

“옛날에 탄광의 갱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 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 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태어난 재일조 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비유컨대 나의 저술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다.”1

1951년생인 서경식은 스무 살 무렵부터 1989년까지 비전향 장기수인 두 형(서승, 서준식)의 구호활동을 펼친 후, 폭력과 저항이라는 근현대의 세계 사적 문제에 천착해온 미술평론가이자 저술가다. 일본의 식민지배 원죄와 일본인의 국민적 책임을 추궁하는 그의 논리는 일관되고 견고하며, 민족해 방의 과제를 일깨우는 그의 문체는 유려하면서도 감성적이다. 그의 일본어 저서는 여러 번역자들에 의해 한국어로 소개되었다. 그는 학살의 기억을 갖 는 유대인은 물론, 유대인에게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과도 공감하며, 백인 제국주의에 저항한 프란츠 파농(Frantz Fanon)과 중국 대륙을 계몽했던 루쉰 (魯迅)을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체험과 지식과 사유를 담아낸 그의 글은 독자를 압박하는 힘이 있다.2
2006년 번역 출판된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서경식은 자신을 ‘일본의 서사’와 ‘자본주의 근대라는 승자의 서사’와 싸우는 이야기꾼으로 소개한 다.3 자신의 저술에 대해서는 탄광의 붕괴 위기를 알리고 죽어가는 ‘카나리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KBS 뉴스 2010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KBS 뉴스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입력 2010.08.2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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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가운데는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국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조선적인데 이들은 사실상 무국적자 취급을 받고 있어, 국권 침탈 100년을 맞는 이 시점의 또 다른 현안입니다.
구경하 기자가 만났습니다.

===
재일동포 김양자 씨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해방을 맞은 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12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국적은 예 이름 '조선', 그 뜻을 이어 받아 김 씨의 가족들은 4대째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양자 (재일동포 2세/57세):"우리는 처음부터 조선 국적이니까 끝까지 조선 국적으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는 무국적자입니다.


한반도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 일본정부가 한반도 출신자에게 붙인 호칭이 국적이 돼버렸습니다.

조선적 동포들은 학교를 세워 우리 말과 역사를 가르쳐 왔습니다.

이들은 북한사람으로 오해 받아, 일본 교육당국에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일본정부는 고등학교 수업료를 전면 무상화했습니다. 하지만 조선학교만 유독 그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유엔도 차별이라며 일본 정부에 시정을 권고한 상태입니다.

조선적 동포는 한국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통역사 황자선 씨는 그동안 3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지난해부터 임시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자선:"조선 국적이라는 표시를 갖고 있는 것 때문에 한국에 못들어가고 있죠."

학술행사에 참석하려던 대학강사도, 대학원에 합격한 학생도 모두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인터뷰> 정영환:"고향에 돌아갈 수 있고 오고 갈 권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억제하는 게 아닌가."

조선적 동포의 98%는 경상도, 제주도 등 한국이 고향이거나 그 후손입니다.

KBS 뉴스 구경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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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알라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 
정영환 (지은이),임경화 (옮긴이)푸른역사2019-08-29































미리보기

정가
38,000원
===
Sales Point : 358

10.0 100자평(0)리뷰(1)

624쪽

책소개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 정영환이 2013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朝鮮独立への隘路: 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를 번역한 것으로, 1945년 해방의 날로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해방 5년의 역사를, 실로 방대한 자료를 구사하며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들이 이에 맞서 조련을 중심으로 거주권과 생활권 옹호를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그것은 중앙은 물론 지방, 심지어 도서지역인 쓰시마에까지 미쳤음을 밝혀낸다. 그들은 전국에 초중등교육기관 및 활동가 양성을 위한 고등학원, 청년학원을 설립하고 일본공산당을 포함한 일본의 진보진영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운동조직과 민중을 잇는 젊은 활동가(일꾼)들을 소개하며 운동을 입체화시켜간다.

또한 재일조선인들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조국에의 공헌과 외국인으로서의 권리획득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둘러싼 내부 논쟁도 이때부터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재일조선인 2세의 의식이나 젠더 문제 등도 다루어졌다. 또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도쿄재판’을 둘러싸고 재일조선인들이 전쟁책임론을 식민지 지배 책임론과 관련시키고자 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아시아의 동시대 식민지 해방의 움직임에 강한 관심을 표했다는 논의는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VIP코스까지 제공하며 재일 조선학교를 지키는 이유는? [여러분의 북마크 162회]



북한이 VIP코스까지 제공하며 재일 조선학교를 지키는 이유는? [여러분의 북마크 1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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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0 views Mar 1, 2022 #북한 #일본 #재일교포[여러분의 북마크 162회] 
▶진행 - 임형주 팝페라 테너, 신미정 아나운서
 ▶이슈텔러 - 박향수 / 재일교포 3세, 북한인권시민연합 회원 다른 교포사회와 다른 재일한국사회의 특수성 식민통치 과정에서 정착했고, 일본 사회의 단일민족 신화 속에서 각종 멸시와 차별을 겪었던 재일교포들. 이후 한일 관계 개선, 본국 정부와 재일동포 사회의 법적 지위 및 처우 개선 노력, 한류 붐 등으로 일본 사회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일 간 '경계인'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느덧 재일교포 1.2 세대를 넘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3.4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일 교포사회의 일상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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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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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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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면서 엉덩 회 이제 비행기를 타고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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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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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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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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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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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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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친구들이 란 나는 기업은 생생합니다
3:19
그래도 웃어 움으로 없어졌어요 다
3:21
이러다가 여기서 일본으로 못 돌아가는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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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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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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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교회가 보는 거잖아요
3:46
이렇게까지 하크 신경 쓴 이유가
3:48
아닐까요 김정일이 지쳐 이건 말한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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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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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가요 조선 업소에서 자란 인재들이
4:04
감로 가 되고 북한을 자주 왕래하면서
4:07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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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즐겁게
4:13
조성할 졸업하고 운동 성스러운 이제
4:15
일본 사회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4:17
선수들도 계시지만
4:19
1 중엔 분명히 강도로 양성이 됩니다
4:21
그 간부 양성을 위한 교육도 따로
4:24
고등학교 붙어있어요 음 저는 그 간부
4:26
양성 코스의 들어갔어요 오웰 없으니까
4:29
언니도 학교가 끝나면 방과후에 이제
4:32
학습 빡 또는 열성 작 아 교육이라고
4:35
따로 있어 옹 저 얼렁 자에 에
4:37
그러면 이제 1박 2일로 한 달에 한
4:39
번씩 학교에 합숙을 하면서 다른 일이
4:42
이념 교육을 받고 몸 훈련도 따로
4:45
하고 그때부터 너무 힘들어 지기
4:48
시작합니다 t 싸요 전설 2 으
4:51
4 그렇군 데모 일본의 현상의 조선
4:54
학교가 얼마가 4 한때 1 70 년대
4:57
80 년대 피크 이때는 169 이상이
5:01
속과 학생들도 45,000 에서 5만
5:03
열거 왜 참 그때가 피그 라고 할 수
5:06
있는데 그래서 지금은 제가 알기로는
5:08
어육 씹 교 60 개 정도로 줄었고
5:12
학생수도 그 당시에 10분에 1
5:15
오천면
5:16
또 안 될 거예요 놀아요 4
5:19
어 그래서 이제 지금 시대와 받지를
5:21
않는다 그래서 저 손 학교를 선택하지
5:24
않은 제일 교포들이 당연히 많아지고
5:27
눈 추세입니다 그럼 반대로 우리 민단
5:30
계열 학교는 내일 많았어요
5:38
민정 케어 학교는 저희 4개 4개 에
5:41
이제 큰 대도시 도쿄 오사카 쿄토
5:44
에요 않지 가 자우림 인던 전장 내에
5:48
그래서 에 으
5:50
뭐 제일 교포 1세대 나이 2세대는
5:53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꽤나 힘든
5:56
마치 개를 보냈는데 환자는 상황이
5:58
많이 나라도 떨어요 왜 여전히 조선
6:01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꽤 많아
6:03
보이고 그 이유가 뭘까요 인간 관계의
6:06
연장선으로 보낼 분들이 많지 않아
6:08
왜냐면 생활 거니까 그게 손 생 님도
6:11
알고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지금 더
6:14
살아도 수가 더 래 정쟁 님 2 3
6:16
4
6:17
일본의 전세 좋은 자격증이 있는 것도
6:19
아니고 음부 촌년 내부의
6:21
조선대학교에서 인정은 교사 이잖아요
6:24
어떤 수동태가 없으신가 왜 아직도
6:27
올해 가실 때까지 해야 되는 상상 속
6:29
좁 은 그 녀 의 처 별에서 그 쪽과
6:31
같은 연대감 경제활동 도 거기서 돈을
6:34
벌고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이제 인한
6:36
관계 연장 손을 보내는 분들이 계시긴
6:38
뭐 또 하나는 정말 북한은 어져
6:40
구기고 지지한다는 분들도 계시겠죠
6:42
없고 사상 교육은 싫지만 언어는 좀
6:45
배워야 되지 않나 언어를 조금
6:46
배우겠습니다 근데 그 언어도 사진은
6:48
수상 해요 일본에서 평생 자란
6:50
교사들이 가르치다 보니까 어색해요 으
6:53
저도 여기서만 놀림을 받았거든요
6:55
조선학교에 식 우리말 아까 그것도 좀
6:58
지적이 많이 되고 있고 또는 이제 져
7:01
천년 간부 자식들 요 전년 산하 에서
7:03
일하시는 분들은 물론 자식들을 조성
7:06
학교로 보내 시 겠죠 4
7:08
조카 분들이 후손 학교 다니신다
7:10
그랬던거 같은데
7:12
조카 분들의 생각은 어때 아무래도
7:14
시대가 좀 변 했으니까 갈라져 쓰니까
7:17
조선 학교 교육 내용도 교과목 또
7:19
예전과는 조금 다르겠지 아무래도 저어
7:22
가 다녔던 시대 보다는 이념적인
7:24
교육이 줄어들었지만 그래 라는
7:26
00:00 뭐 소년단 활동이 있고
7:29
그러니 제목 요시 같은 것도 이제
7:31
가끔 돼야 되고 또 이제
7:34
한발 밖에 나가면 일본 미디어를
7:36
통해서 형 시를 들어오는데 애니와
7:38
다르게 또 가르치기 때문에 또 제 k
7:41
팝으로 한국이 위상이 대상 안내를
7:43
한국에서 가르쳐줄 겠어요 아 예
7:46
한국이 아니라 남조 손이라고 에
7:48
교과서에 아무리 몫 이라고 않아도
7:50
않아
7:51
예 그게 이제 시대착오적인 거죠 그런
7:53
걸까 아 이 절이 있지만 모순을
7:56
느끼는것 저축을 뒤떨어질 그저 아예
7:59
그 얘기를 쭉 떠 보니까 북한의 뭐
8:01
실상에 나 현실적인 문제를 알면서도
8:05
북항 간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8:07
내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좀
8:08
있나봐요 5 그것도 있어요 네 그
8:10
이외의 뭘까요 아 그거 참 좋은
8:12
질문이다 있는데 왜 북한과의 관계를
8:15
끊지 못하는 야 물론 2년 적으로
8:17
모사 해주니까 좋다 뭐 이렇게
8:19
생각하시고 어 한국어 인정한 하시는
8:22
분들도 계세요 뭐 괴뢰 정권 뭐 저도
8:25
미국의 앞잡이라고 배웠고 요나 학생이
8:27
그만
8:28
막돌 4 아 까 짱이야 그래서
8:31
생각하실 분도 계시고 또는 실적으로
8:33
저희 가족도 그래요 북한의 정말로
8:36
많은 제일 교포들이 북한의 가족이
8:39
있습니다 아 그게 이제
8:41
특송 선회하는 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
8:44
뭐 저야 예 귀국 구서 귀국 운동
8:47
이라는게 이제 크게 정말 크게 에
8:51
60년 내 부터 이제 일어났고 벨
8:54
교보에 여섯 명에 한 명 쭉 이제 약
8:57
10만명 언급만 3341 10만명
9:00
정도가 이제 북한이 뭐라 적으므로 통
9:04
님 되면 뭐 남쪽으로 도 자유롭게 갈
9:06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대대적으로
9:08
선전을 했어요 그게 기분 사업이라고
9:10
하거든요 일본에서 평생 태어나고 자란
9:13
사람들이 북한으로 건너간 거죠 벽송사
9:17
업 때문에 향수 님의 가족 중에도
9:20
인구로 간 가족 뿐이고 해준 거예요
9:22
그렇죠
9:24
제 엄마의 남동생 바로 분뇨 외상
9:27
전이죠 에 영상을 전인데 외 3 전
9:30
이제 조손 학교 걸음 학교 시절에
9:32
혼자 단신으로 어부 칸으로 건너
9:35
같고요 어 좀 학교 학생들이 만 명
9:38
상 건너 갖지만 이제 부분들이 그
9:41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9:43
어 대부분이 모르고요 아 그러면 왜
9:45
3 좋은 분의 생사도 모르세요 rc
9:47
일수록 어 잡혀서 어
9:50
고문으로 이제 조사과정에서
9:52
돌아가셨다는 걸을 아내 나중에 알게
9:55
됐고 그 그때 이제 남은 아이들 셋이
9:58
랑 부위는 다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10:01
놀라고 그 장면을 목격한 탈북민 문
10:04
통해서 알게 3 알고 거군요 이
10:07
지금은 생사를 몰라요 마음이 언
10:09
좋으시겠어요 쵸 예
10:11
사실 오늘 취 원하신다고 그래요 저희
10:14
기초 살 많이 해봤거든요 현서 쎄
10:17
이력에 관한 앞선 이에 일본에서는
10:20
조선 할 카라 다니며 넣고 부분에
10:22
대한 사상 교육을 받으셔서 때 어
10:24
근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의 인권
10:27
활동 에 의해서도 열심히 활동을 하고
10:29
계시는 다일 교포 시고 이제 어휘 1
10:32
이름을 가지신 분이다 라는 상만
10:34
122 넘 거든요 근데 많은 사연이
10:38
이렇게 담겨 들었어요 아 네 한국어로
10:41
돌아오신 이후에 어떤 생각과 어떤
10:44
기대를 가지면서 이런 활동을 하고
10:46
계신지 좀 궁금하구요 오전은
10:49
일본에서 자란 평범한 제일 교포 지만
10:51
늘 부카 의식 가뭄 일본 의식하고
10:56
한국 의식하고 그 경계선에 서 사랑
10:59
것 같아요 어 그리고 제 교포 사례도
11:01
많이 분열이 돼 있어요 민단 을 찌지
11:04
않는 사람 초청 년에서 아주 북한을
11:06
좋아하는 사람 전구 모든 공부가
11:08
지금도 교류가 있고 공감대가 있거든요
11:11
그 누구를 너는 앱스 로 이 사람은
11:14
틀렸다고 제가 말할 수 없는가 왜냐면
11:16
저는 너무 많은 경계에 소 있다는
11:19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어쩌면
11:21
혼란스럽고 원망스럽고 평범한 한국사람
11:24
평범한 일본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11:26
옛날에는 정말 부러웠어요
11:29
얼마나 시프 갈까 정체성 혼란이
11:31
없잖아요 어 근데 난 왜 이렇게
11:32
복잡할 까
11:34
근데 억 자세 모 으
11:37
[음악]
11:39
아 으
11:42
하지만
11:44
빳 지금은 그게 저한테는
11:47
기 회 음 어 이거 갖고
11:51
어절 제가 해야될 뭔가가 있기 때문에
11:54
음 명가인 4
11:57
그래서 제가 억지가 아니라
11:59
기프 방으로
12:00
사명감으로 이제 이런 활동들을 하고
12:04
있는것 같아요 마저 예 아까 니
12:06
각자가 다른 입장이고 작은 위치에
12:09
있지만 이제 저 아닌 거잖아요 뭐
12:12
언니 는 1 힘만 4g 대뇌 자나 예
12:16
으 아니 잖아요 자네는 누구의
12:18
이야기를 들어도 다 공감하실 수도
12:21
이거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
12:23
이제 생기실 것 갔으나 그 일을
12:26
하셔야 됩니다 예
12:28
오늘 은 아니라 리 군가를
12:31
5패 들으셔서 지수 그만의 하실 저도
12:34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12:35
또 저도 몰랐던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12:38
비극 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시간이
12:40
지날수록 정치적 색깔이 짙어 지긴
12:43
했지만 조총 년이나 우리 민다
12:45
조선학교에 시작은 일본에서 우리
12:48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서 엿짜 나요
12:50
그 마음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는
12:52
생각이 듭니다 4
12:55
제 7호 라는 그의 특수한
12:58
성향을 가진 그 역사와 특송을
13:00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온전히 이
13:03
마음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13:05
있겠습니다만 차지해서 이 조국의
13:08
소중함을 10시 느끼는 마음만은
13:11
모두가 다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13:12
하게 됐구요
13:14
나무 부모 선을 쫙 긋는 것보다는
13:16
서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13:19
그런 관계로 발전해 나가길 저도
13:22
바랍니다 오늘 저희와 함께 해주신
13:24
제기 보상 3 박형수 쉽게 다시 한번
13:27
감사 행사 뒤에 계약 보아 쓴 다음
13:29
사람들아 아
13:32
how
13:33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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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2시 텔러 에게 한번 더
궁금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슈 텔링
시간입니다
[음악]
지금 한국 쪽으로 취득하는 것은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카
북쪽 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음
구곡 강속구 라는 이름으로 이제 민족
교육으로 시작을 했어요 제가 기도 품
단 대처는 공극이 북쪽과 남쪽 5
치지 않은 땅 싸 로 단체 줄 갈래
지기 시작합니다 겨루기 북한 쪽으로
변질이 대해 가는 죄에서 5명으로
썩여 왼쪽 외로 과목 이예요 예 간격
아주 중요한 첫 번째 밤 5 탑뷰
소스는 간 호 들도 친구 라는
단어보다 동 모 아 에 놀라운
일입니다 자자 노래를 뽕 있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학교가 위치한
일본의 있으라 죠이 교육의 내용이나
시스템이 북한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하고 들리는데 좀 학교에서
행사할때 낸 세겜 왜 국가나 모교가
부르잖아요 내가 하나의 조생
학교에서는 그것도 아니라면서 좀 정말
한국의 20 20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 정말 한국도
나도 죄송 있어요 이제 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 남편이란 결혼을
하고 살고 있지만 전어 한국의 국가
를 못 풀어 쓴 에 굵기도 먹 그랬어
5
눈감고 인공기 는 그릴 수 있어요
유출 듯도 하다 맘에 그려서 북한의
굳기를 그리고 모든 행사가 북한의
애국가 아침 우리나라 지금도 나와요
o 아니 그 노래를 일본 땅에서 배우
셨다 왜 지금 1호 행사할 때 부를
거예요 아 얘네 요에 그리고 김송
창구의 노래 그 다음은 누르고 김일순
지방분을 l 호 팀도 가사 나와요
뭔가에 장 맥스 1층 예초기를
시작하는데 그 다음에 요즘에는 부르게
는 하지 않고 연주를 듣게 한다 아
고등학교 부터는 불을 꺼 같은데
중학교까지 는 가사를 부르게 능하지
않고 연주만 틀어 놓는다 이렇게
들었어요 5
오늘 녹화 가 되다 편입되지 않을꺼라
무상 내는 일입니다 찾은 논란이 또
이거든요 그래요 조선 학교에서 수학
여행도 굉장히 특별한 곳으로 간다고
하거든요 온대 느끼며 요즘 여자 5
젖어 가자 것 인간으로 같겠죠 어제
않게 해서 어조 밀기 그러고 보니까
맞습니다 앤 아까 고등학교 3학년때
수확량이 북한입니다 뭐 애는 끝에
놀자 나요 오랜 못 1호 어떻게 가
좋은거 다 가져가고 에 북한의 명승지
유용한 것은 하난데 vip 코스로도
2r 멜 때 새 뭐 며칠이나 겁니까
보통 한 10으로 우리 얼을 넣어
10대 여유를 기본은 평양 호텔에
머물면서 엉덩 회 이제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 선재 까지도 같구요 뭐 또
이제 근간 산 더 가까워 홍도 이제
뭐 혁명 역사 못 하는 도 정범 완결
되고 양 직 웃기 회정 있네요 낫다는
그런데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다
주체사상 답 다 끝까지 올라가고 크게
아주 문제의식 없이 하지만 괴리감은
많이 이질감 의미 엔저 국 인 자 나
여기서 어느 붓 은혼 3 살라고 하면
살생 이나 무 쌀 지 그런 대화를
친구들이 란 나는 기업은 생생합니다
그래도 웃어 움으로 없어졌어요 다
이러다가 여기서 일본으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아 그때는 그런 감정이 거
학생이다 보니까 업소 어 그래서 살도
그때는 북한이 그렇게 무서운 나라다
그런 그 인식이 더했고 아니 정말
vip 코스로 러쉬를 다녀오신 것
같은데 어쨌든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북한의 어떤 캐 절정
코스를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교회가 보는 거잖아요
이렇게까지 하크 신경 쓴 이유가
아닐까요 김정일이 지쳐 이건 말한
말인데 져 천년이라는 조직 아내의 소
조소 닦여 는 생명선이 다 고소 느껴
를 지켜라 왜 누가 수천년을 이어
가요 조선 업소에서 자란 인재들이
감로 가 되고 북한을 자주 왕래하면서
이제 그렇게 자라나고 있어요 물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즐겁게
조성할 졸업하고 운동 성스러운 이제
일본 사회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선수들도 계시지만
1 중엔 분명히 강도로 양성이 됩니다
그 간부 양성을 위한 교육도 따로
고등학교 붙어있어요 음 저는 그 간부
양성 코스의 들어갔어요 오웰 없으니까
언니도 학교가 끝나면 방과후에 이제
학습 빡 또는 열성 작 아 교육이라고
따로 있어 옹 저 얼렁 자에 에
그러면 이제 1박 2일로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 합숙을 하면서 다른 일이
이념 교육을 받고 몸 훈련도 따로
하고 그때부터 너무 힘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t 싸요 전설 2 으
4 그렇군 데모 일본의 현상의 조선
학교가 얼마가 4 한때 1 70 년대
80 년대 피크 이때는 169 이상이
속과 학생들도 45,000 에서 5만
열거 왜 참 그때가 피그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지금은 제가 알기로는
어육 씹 교 60 개 정도로 줄었고
학생수도 그 당시에 10분에 1
오천면
또 안 될 거예요 놀아요 4
어 그래서 이제 지금 시대와 받지를
않는다 그래서 저 손 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제일 교포들이 당연히 많아지고
눈 추세입니다 그럼 반대로 우리 민단
계열 학교는 내일 많았어요
민정 케어 학교는 저희 4개 4개 에
이제 큰 대도시 도쿄 오사카 쿄토
에요 않지 가 자우림 인던 전장 내에
그래서 에 으
뭐 제일 교포 1세대 나이 2세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꽤나 힘든
마치 개를 보냈는데 환자는 상황이
많이 나라도 떨어요 왜 여전히 조선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꽤 많아
보이고 그 이유가 뭘까요 인간 관계의
연장선으로 보낼 분들이 많지 않아
왜냐면 생활 거니까 그게 손 생 님도
알고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지금 더
살아도 수가 더 래 정쟁 님 2 3
4
일본의 전세 좋은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부 촌년 내부의
조선대학교에서 인정은 교사 이잖아요
어떤 수동태가 없으신가 왜 아직도
올해 가실 때까지 해야 되는 상상 속
좁 은 그 녀 의 처 별에서 그 쪽과
같은 연대감 경제활동 도 거기서 돈을
벌고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이제 인한
관계 연장 손을 보내는 분들이 계시긴
뭐 또 하나는 정말 북한은 어져
구기고 지지한다는 분들도 계시겠죠
없고 사상 교육은 싫지만 언어는 좀
배워야 되지 않나 언어를 조금
배우겠습니다 근데 그 언어도 사진은
수상 해요 일본에서 평생 자란
교사들이 가르치다 보니까 어색해요 으
저도 여기서만 놀림을 받았거든요
조선학교에 식 우리말 아까 그것도 좀
지적이 많이 되고 있고 또는 이제 져
천년 간부 자식들 요 전년 산하 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물론 자식들을 조성
학교로 보내 시 겠죠 4
조카 분들이 후손 학교 다니신다
그랬던거 같은데
조카 분들의 생각은 어때 아무래도
시대가 좀 변 했으니까 갈라져 쓰니까
조선 학교 교육 내용도 교과목 또
예전과는 조금 다르겠지 아무래도 저어
가 다녔던 시대 보다는 이념적인
교육이 줄어들었지만 그래 라는
00:00 뭐 소년단 활동이 있고
그러니 제목 요시 같은 것도 이제
가끔 돼야 되고 또 이제
한발 밖에 나가면 일본 미디어를
통해서 형 시를 들어오는데 애니와
다르게 또 가르치기 때문에 또 제 k
팝으로 한국이 위상이 대상 안내를
한국에서 가르쳐줄 겠어요 아 예
한국이 아니라 남조 손이라고 에
교과서에 아무리 몫 이라고 않아도
않아
예 그게 이제 시대착오적인 거죠 그런
걸까 아 이 절이 있지만 모순을
느끼는것 저축을 뒤떨어질 그저 아예
그 얘기를 쭉 떠 보니까 북한의 뭐
실상에 나 현실적인 문제를 알면서도
북항 간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내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좀
있나봐요 5 그것도 있어요 네 그
이외의 뭘까요 아 그거 참 좋은
질문이다 있는데 왜 북한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야 물론 2년 적으로
모사 해주니까 좋다 뭐 이렇게
생각하시고 어 한국어 인정한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뭐 괴뢰 정권 뭐 저도
미국의 앞잡이라고 배웠고 요나 학생이
그만
막돌 4 아 까 짱이야 그래서
생각하실 분도 계시고 또는 실적으로
저희 가족도 그래요 북한의 정말로
많은 제일 교포들이 북한의 가족이
있습니다 아 그게 이제
특송 선회하는 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
뭐 저야 예 귀국 구서 귀국 운동
이라는게 이제 크게 정말 크게 에
60년 내 부터 이제 일어났고 벨
교보에 여섯 명에 한 명 쭉 이제 약
10만명 언급만 3341 10만명
정도가 이제 북한이 뭐라 적으므로 통
님 되면 뭐 남쪽으로 도 자유롭게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어요 그게 기분 사업이라고
하거든요 일본에서 평생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북한으로 건너간 거죠 벽송사
업 때문에 향수 님의 가족 중에도
인구로 간 가족 뿐이고 해준 거예요
그렇죠
제 엄마의 남동생 바로 분뇨 외상
전이죠 에 영상을 전인데 외 3 전
이제 조손 학교 걸음 학교 시절에
혼자 단신으로 어부 칸으로 건너
같고요 어 좀 학교 학생들이 만 명
상 건너 갖지만 이제 부분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어 대부분이 모르고요 아 그러면 왜
3 좋은 분의 생사도 모르세요 rc
일수록 어 잡혀서 어
고문으로 이제 조사과정에서
돌아가셨다는 걸을 아내 나중에 알게
됐고 그 그때 이제 남은 아이들 셋이
랑 부위는 다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놀라고 그 장면을 목격한 탈북민 문
통해서 알게 3 알고 거군요 이
지금은 생사를 몰라요 마음이 언
좋으시겠어요 쵸 예
사실 오늘 취 원하신다고 그래요 저희
기초 살 많이 해봤거든요 현서 쎄
이력에 관한 앞선 이에 일본에서는
조선 할 카라 다니며 넣고 부분에
대한 사상 교육을 받으셔서 때 어
근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의 인권
활동 에 의해서도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다일 교포 시고 이제 어휘 1
이름을 가지신 분이다 라는 상만
122 넘 거든요 근데 많은 사연이
이렇게 담겨 들었어요 아 네 한국어로
돌아오신 이후에 어떤 생각과 어떤
기대를 가지면서 이런 활동을 하고
계신지 좀 궁금하구요 오전은
일본에서 자란 평범한 제일 교포 지만
늘 부카 의식 가뭄 일본 의식하고
한국 의식하고 그 경계선에 서 사랑
것 같아요 어 그리고 제 교포 사례도
많이 분열이 돼 있어요 민단 을 찌지
않는 사람 초청 년에서 아주 북한을
좋아하는 사람 전구 모든 공부가
지금도 교류가 있고 공감대가 있거든요
그 누구를 너는 앱스 로 이 사람은
틀렸다고 제가 말할 수 없는가 왜냐면
저는 너무 많은 경계에 소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어쩌면
혼란스럽고 원망스럽고 평범한 한국사람
평범한 일본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옛날에는 정말 부러웠어요
얼마나 시프 갈까 정체성 혼란이
없잖아요 어 근데 난 왜 이렇게
복잡할 까
근데 억 자세 모 으
[음악]
아 으
하지만
빳 지금은 그게 저한테는
기 회 음 어 이거 갖고
어절 제가 해야될 뭔가가 있기 때문에
음 명가인 4
그래서 제가 억지가 아니라
기프 방으로
사명감으로 이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는것 같아요 마저 예 아까 니
각자가 다른 입장이고 작은 위치에
있지만 이제 저 아닌 거잖아요 뭐
언니 는 1 힘만 4g 대뇌 자나 예
으 아니 잖아요 자네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도 다 공감하실 수도
이거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이제 생기실 것 갔으나 그 일을
하셔야 됩니다 예
오늘 은 아니라 리 군가를
5패 들으셔서 지수 그만의 하실 저도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또 저도 몰랐던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 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색깔이 짙어 지긴
했지만 조총 년이나 우리 민다
조선학교에 시작은 일본에서 우리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서 엿짜 나요
그 마음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4
제 7호 라는 그의 특수한
성향을 가진 그 역사와 특송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온전히 이
마음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차지해서 이 조국의
소중함을 10시 느끼는 마음만은
모두가 다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나무 부모 선을 쫙 긋는 것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발전해 나가길 저도
바랍니다 오늘 저희와 함께 해주신
제기 보상 3 박형수 쉽게 다시 한번
감사 행사 뒤에 계약 보아 쓴 다음
사람들아 아
how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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