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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9

[서경식 칼럼]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연재를 끝내면서

[서경식 칼럼]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연재를 끝내면서

[서경식 칼럼]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연재를 끝내면서
엄혹한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얼굴을 들고, ‘진실’을 계속 얘기하자. 세계 곳곳에서 천박함이나 비속함과는 거리가 먼, 진실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벗이다. 오랜 세월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정 2023-07-06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이 연재는 이번 글을 끝으로 마감하게 됐다. 내가 바란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동아시아에도 화약내 풍기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좀 더 사태의 행방을 차분하게 살피면서 미흡하나마 뭔가 한마디라도 보탬이 될 만한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 글이 연재의 마지막 회이니만큼, 과거를 좀 뒤돌아보며 소감을 적어두고자 한다.

내가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때는 2005년 5월이다. 애초에는 ‘심야통신’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뒤 연재 제목과 형태가 몇번인가 바뀌었으나 대강 18년간에 걸쳐 계속 써왔다. 내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한 신문에 한 작가가 연재한 칼럼으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부류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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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한겨레의 한승동 기자가 일본에 국제전화를 걸어 집필 의뢰를 했을 때 일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이니치(재일동포) 2세인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오래 살아 본 경험도 없었다. 당연히 한국 사회의 실정에 어둡고, 국내(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어지간히 망설였으나 디아스포라(이산자)로서의 나 자신의 관점, 또 마이너리티(민족적 소수자)로서의 관점에서 문화비평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으로 이 일을 통해서 ‘조국’(선조들의 고향이라는 의미)의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고 싶다, ‘과제를 공유하는 동포’로서의 유대를 쌓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연재가 20년 가까이 이어진 것이다.


이런 나의 자세가 어느 정도 이해를 받으면서 수용된 결과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내 ‘초심’이 어느 정도 실현됐을지, 아니면 공허한 꿈에 지나지 않았을지, 그것을 지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나 자신의 인생에서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학 객원교수로서 체류할 수 있었던 경험까지 포함해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을 통해서 많은 한국의 선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대다수의 재일동포들이 조국 분단을 비롯한 여러 요인들 때문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 해방 뒤 지금까지 이미 80년이 가깝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이 자라고 또 세상을 떠나고 있다. 어느샌가 이런 상황을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평화로 가는 꿈, 통일의 꿈, 어느새 그런 꿈을 단념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친해진 벗 ㄱ씨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두명을 데리고 굳이 일본까지 찾아와 주었다. 내 건강을 염려해서 몸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온 것이다. 내가 서울에 머물렀던 2006년, 그는 ㅇ대학에서 공부하던 철학도였다. 몇번인가 세미나 강사로 나를 불러 주었다. 나는 그와의 교우를 통해 한국의 ‘선하고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배웠다. 그 시절에 그는 성악가인 멋진 여성과 결혼해서 육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기록한 책도 썼다. 한국에 체류하지 않았다면 그와 사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의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얕은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탈리아 가곡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원기 왕성했고 기가 막힐 정도의 식욕을 거리낌 없이 발휘해 주었다.

나보다 30살 정도 젊은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직 어린 아이들, 이 ‘선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운명을 살아가게 될까? 부디 평화를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조국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향유하기를 바란다. 아니 ‘조국의’라는 말도 필요 없다. 나와 ‘친한 사람’과 그밖의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사람들, 특히 부조리한 역경을 강요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미얀마, 그런 곳의 사람들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뒤돌아보면 내가 머물렀던 시대의 한국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문민정권 시대, 긴 군정을 극복하고 아직 문제투성이라고 하면서도 희망과 활력을 느끼게 해 주었던 시대였다.

나 자신은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 새로운 숨결을 접하고 크게 고무되었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받아들여진 것도 그런 시대의 공기 덕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지금은 윤석열 정권 아래서 한국 사회는 역회전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남북 대립의 위태로운 시대가 다시 찾아온 것일까.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70년 남짓 살면서 일본과 한국에서 많은 것을 봐온 나는 쉽게 낙관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비속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처럼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그래도 한마디 충고를 한다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효율이나 속도보다 더 나은 다른 가치를 소중히 여겨 달라는 것이 될까. 말하자면 인문주의적 사고를 중히 여기고 인간미가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떠올려 보고 싶다. (왜 1967년 이후 정치적 실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팔레스타인 투쟁이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거의 승산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계속 말하려는 의지의 문제였습니다.”(<펜과 칼>)

우리도 승산이 있든 없든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혹한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얼굴을 들고, ‘진실’을 계속 얘기하자. 사이드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천박함이나 비속함과는 거리가 먼, 진실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벗이다.

오랜 세월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번역자인 한승동 기자와 편집부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23년 7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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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0

Park Yuha - 민사재판 종료 소회—-‘지식인‘은 있는가

(5) Park Yuha - 민사재판 종료 소회—-‘지식인‘은 있는가 나쁜 기억은 잊으라는 분들이 계시고, 물론 기본적으로는... | Facebook


Park Yuha  250220

민사재판 종료 소회—-‘지식인‘은 있는가

나쁜 기억은 잊으라는 분들이 계시고, 물론 기본적으로는 그럴 생각입니다.
동시에 문제적 상황의 선두에 섰던 이들이 ‘학자’였다는 사실이 저에겐 여전히 무겁게 다가 옵니다. 심지어 나름 명민한 ‘진보‘ 학자들이었으니까요. 물론 그들 중 저에게 사과한 이들은 아직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저는 앞으로도, 저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사회 전체를 위해서 생각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배경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 3년전 오늘 글과 그 때 공유한 11년전 오늘 글을 붙여 둡니다.
길고 긴 글이니 잠 못 드시는 분들 보세요.

**글을 다시 읽다 보니 ‘국민의 힘’이라는 단어를 쓴 게 보이는데, 물론 정당 ‘국민의 힘‘과는 상관이 없다.
저작권 요청할까 3초쯤 생각했는데, 좋은 의미로 쓴 게 아니라 이건 그냥 넘어가기로.
** 첨부한 사진은 홈피에 올린 2018년 책.

학자들의 비판/비난에 대한 반론을 써서 출간했지만 누구 하나 반응한 이가 없었다. 학계는 이후 내가 쓴 얘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는데도.
**댓글에 올린 사진은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가 북해도에서 했던 강연 내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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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9

8년전 이맘때, 그러니까 고발당하기 전인데, 윤미향이 저를 고발할 생각이었다고 북해도강연에서 말했다는 사실과, 국문학자 권명아의 비판을 알게 되어 쓴 글입니다. 물론 정대협의 고발의지는 발간 직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글이 기니 요약해 둡니다. “사고의 결함”과 함께 때로 그들의 “지적 태만”을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를 비판 했던 학자중 단 한사람도 저에게 사과한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법정에서 해방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없습니다. 8년이 지나도록.
서경식이 말한 “지적 퇴락”이라는 말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려 줍니다.

<(11년전 글)요약>
*「제국의 위안부」는 정대협이 못한 “일본의 추가보상”을 이끌어내려 한 책이다.
*일본판 「제국의 위안부」에선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사죄를 일본이 국회결의라는 형태로 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눔의 집이 주도한 고발 이전에(출간 직후) 정대협의 윤미향은 나를 고발하려 했다
*청와대도 대적하지 못했던 ‘정대협의 힘’이란 그들의 말만 믿은 ‘국민의 힘’이었다.
*권명아같은 지식인조차 내 책이 “일본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책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비슷한 계통 지식인인 천정환도 내 책이 8만부 팔렸다는 등 허위사실 유포했으나 이제껏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의 여성학자들은 박유하에 대해 처음 1년정도 침묵했으나 윤미향등의 부추김을 받고 비난에 동참했다.

당시 박노자 등과 Facebook 에서 대립하면서 대부분 국민들과 생각을 달리 한다 해서 ‘비국민’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글. 이로부터 4개월 후 고발당했고, 이재명 같은 정치가까지 나서면서 전 국민들에게 비국민 취급받게 되었다.
정대협이 당시 나를 고발 하지 않은 이유는 윤미향에 의하면 “어차피 한국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논의를 펼치는 박유하에게 관심을 집중시켜 ‘띄워주는’ 일 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고발 자료는 정대협의 협조없이 불가능한 자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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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19
'비국민'의 장소

오늘은 다른 얘기를 쓸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나에 대한 권명아선생님의 비판글을 봐버려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권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분이기에 좀 아프다. 하긴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비판을 받는 것이 처음 일은 아니지만. 긴 댓글을 달았는데 권선생님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 듯 해 그 댓글을 여기에도 올려둔다. 댓글내용에 덧붙이자면,지금 일본어판 막바지 작업중인데 ,일본어판을 내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죄와 보상'의 추가조치를 하라는 말을 일본정부와 국민들에게 '설득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어제는 정대협대표가 내 책을 가처분신청하고 나를 고소할까 생각했다고 일본에서 말한 글을 봤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박유하의 논조는 실제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정대협이 반발해 박유하를 고소하게 만들어 주목받고 관심받고 싶은 것이 책의 의도인 것 같으니 무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인 듯 하다.
책에도 썼지만 '정대협의 힘'은 대통령도 이기지 못했을만큼 강하고,무엇보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판국이지만 없는 '의도'를 굳이 읽어내려 하는 '정대협대표의 힘'에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정대협의 힘이란 국민과 언론이 20여년에 걸친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믿고 지지하기에 나오는 힘이니,'국민의 힘'이기도 하다. 몇몇 언론이 나에 대해 호의적이었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국민의 힘'에 맞서고 있는 나는 분명 '비국민'이 분명한 듯 한데,비국민에게도 자리를 내어 주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동해'와 '일본해' 사이 어디쯤을 날아다니는 새 노릇도 때로는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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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아선생님.이 글을 이제야 봤네요

제가 선생님께 책 보내드리지 않았던가요. 페북에 올린 글들은 단편적이어서 그렇게 들렸을 수 있지만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원단체가 요구하는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구조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어렵다는 것이 제 요지입니다. 나아가 사상적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철저한 추궁과 '국가'라고 하는 애매한 대상에 대해 정치적 '철저한' 책임을 묻는 일은 다른 층위의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구요.
'민족주의냐'는 식의 물음은, 물음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더이상 묻지도 않는 물음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박노자선생도 제가 그저 민족주의비판자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제가 비판한 건 분명 '극단좌파'이지만 소수 '극단좌파(페미니스트)'의 문제점을 '좌파(페미니스트)'들이 말하지 않아 한국도 일본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제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아직 영향력이 살아있지만 일본은 2000년대 이후 진보지식인의 담론이 현저히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오늘의 한심한 양국상황은 그 결과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해 전에 책을 썼지만 무력했으니 저역시 큰소리는 못치지만, 그 때 문제를 직시해 주었더라면 이런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거라 확신합니다.
국가/정치문제가 되어버려, 체험이 다 다른 위안부를 하나의 형태로 책임지고 보상해야 하는 형태가 된 것 자체가 모순이고, 그런 모순을 끌어안으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위안부문제의 최대모순입니다.
곧잘 밀양이나 다른 문제로 비유하며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말씀대로 깊은 '사유'를 하기 위해선 모든 사안의 '고유성'에 철저하게 접근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문제라는 것만으로 똑같은 문제인 것처럼 간주하시는 건 적절한 '비유'도 아니거니와 선생님처럼 깊은 사유를 하시는 분의 것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제가 '일본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정리하신데에 당혹감을 금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 정리는, 저에 대한 비난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곧잘 하고 싶어하는 왜곡된 정리니까요.
최근에 정대협 대표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제 책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더군요. 어떤 의미에서건 페미니스트들의 침묵은 저도 문제있다고 봅니다. 비판이든 수긍이든 '공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고.이 글도 기왕이면 제 담벼락에 태그해 주셨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저는 일본국회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결의를 언젠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책도 쓸 생각이지만 위안부문제로는 불가능하고 요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왜인지는 책을 봐 주시면 이해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일반서라 '깊은 사유'까지 들어가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냉전붕괴 이후의 일본/재일/한국진보지식인들의 사고에 대한 책도 쓸 예정이니 좀 기다려 주시면 좋겠군요. 혹시 제 책을 받지 못하셨다면 우선 보내드리지요.








All reactions:75You, 이충원, Pyung-joong Yoon and 72 others


Park Yuha

尹美香(2014\2)講演一部。







Park Yuha

홈피.
https://parkyuha.org/new-books




PARKYUHA.ORG
『제국의 위안부』 관련 서적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제국의 위안부』 관련 서적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진민

선생님 제 댓글에 대한 충분한 글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없는 건 저의 식견이 부족한 거고 마음은 이미 충분해요~ㅎ
저로서는 단순무지하게 이런 위안이나마 드립니다
감히 박유하 선생님과 윤미향 같은 위인이 동급으로 자료나 말 속에 섞이는 것조차 끔찍하고 그토록 예의를 다한 권명아란 사람의 오만한 그릇된 생각을 이해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제 3의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해요.
결국은 이득과 저 잘난 개인의 자만스런 공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ㅜ ㅜ
나머지 대의적인 차원은 감히 제가 낄 자리는 아닌 듯 하고요~^^;;


Park Yuha

진민 별말씀을요. 마침 오래전 글이 떴기에 겸사겸사 올린 거예요.
잘 아시는 분들은 지겨우실 거라는 거 알면서도 올린 건 제 나름의 ‘정리’의 의미고요. 일종의 ‘전환’ 표명이죠.
그러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권명애가 아니고 권명아예요.^^
나이로는 한참 후배인데, 세대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아주 늦게 알게 되었죠.


진민

박유하 아~ 오타는 이미 좀 전에 바로 잡았어요 ㅎ
어떤 의미로든 선생님께서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단 의미입니다~♡



Brian KC Park

오늘 글은 차분히 여러번 읽겠습니다 ^^



2024-12-18

권성우 - 서경식 선생(1951~2023)의 1주기 김석범의 [화산도>

권성우 - 오늘은 고 서경식 선생(1951~2023)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일년 전이던 2023년 12월... | Facebook

권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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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 서경식 선생(1951~2023)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일년 전이던 2023년 12월 18일 저녁에 나가노 신슈 집 근처 온천에서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쓸쓸하고 장엄하고 운명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1년 동안, “보면 볼수록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 비슷한 생각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탄산수의 포말같이 솟아나는 것이다.”라고 서경식 선생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적었던 것처럼 나는 당신의 존재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늘 시대의 풍향계였던 당신의 예리하면서도 아름다운 칼럼을 한겨레에서 읽으며 한껏 지적 자극을 받고 고민을 정리하곤 했다. 그건 내가 세상에 살아있다는 걸 인식하는 한 절차이기도 했다. 이제 당신의 새로운 칼럼을 영원히 접할 수 없다.

어제 저녁에는 전 박성제 MBC사장이 운영하는 북카페 오티움에서 열린 서경식을 기억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오래간만에 서경식이라는 존재를 통해 서로 우정을 나눠온 분들과 모여, 서경식 선생에 대한 여러 추억담과 그리움의 언어를 나누었다. 서경식 선생의 파트너 후나하시 유코상의 가곡 세 곡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각별한 기쁨이었다. 후나하시 상은 참석자 모두에게 서경식 선생의 유고 신간 <어둠에 새기는 빛>을 선물했다. 깊이 감사드린다.
 
오랜 세월 동안 정말 좋아했었던 저자이자 친구(토끼띠 띠동갑이지만 그는 나를 친구로 다정하게 대해주셨다)의 1주기에 이 공간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올해 여름에 쓴 에세이를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한 편 올려본다. 이 글은 사실 서경식을 추모하는 의미로 쓴 글이기도 하다. 페북에서 읽기에는 꽤 긴 글이지만 이 공간에서라도 서경식을 아끼고 좋아하는 분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아마 페북이기에 비로소 이런 글의 공유가 가능하지 싶다)
.......................................................
- <책이 만든 어떤 운명의 표정>

도쿄 신주쿠역에서 주오선(中央線) 쾌속 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20여 분 가면 고쿠분지(国分寺)역이 나온다. 이 역 남쪽 출입구에서 10여 분 걸으면 도쿄경제대학이 있다. 역 북쪽 출입구에서 조금 걸어가 시영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가면 무사시노미술대학 정문 앞이다. 바로 이곳 건너 편이 도쿄경제대학 기숙사(게스트하우스)다. 나는 2015년 2월 중순부터 6개월 동안 이곳에서 홀로 지냈다.

2014년 가을 당시 향년 74세 어머니가 림프암으로 세상을 뜨신 후에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에 휩싸여 있던 시절, 일 년 여 전에 미리 예정돼 있던 일본행은 마치 하나의 구원처럼 다가왔다. 어떻게든 한국을 떠나 있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낯선 도시 곳곳을 산책하며 인생과 공부를 다시 설계하고 싶었다. 오래 전 비평가 김현이 「아르파공의 절망과 탄식」(<김현예술기행>, 1976)에서 적은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고 싶다. 매일 나무 우거진 공원길을 산보하고 싶다. 오후 7시면 카페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여 맥주를 마신다.”는 문장은 그즈음 내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이제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늘 마음 한 켠에 똬리를 틀던 시절이었다.

동료 연구자들이 방문학자로 도쿄에 체류하는 경우 흔히 가곤 하는 도쿄 도심의 도쿄대학이나 와세다대학이 아니라, 나는 왜 고쿠분지의 도쿄경제대학으로 가게 되었을까? 도쿄경제대학 기숙사는 고쿠분지의 캠퍼스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고다이라(小平)에 있다. 이곳은 도쿄 도심에서 꽤 멀기에 세계적인 메가시티 도쿄의 문화와 역사를 온전히 체험하고 원활한 학문적 교류를 수행하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곳에 가고자 했으며, 그곳 생활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게스트하우스 근처 무사시노미술대학 캠퍼스와 다마가와조스이(玉川上水) 산책로를 거닐곤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이 생각날 때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 전인 청춘 시절 재즈 카페 ‘피터켓’(peter-cat)을 열기도 했던 고쿠분지역 근처 이자카야에서 시메사바를 안주로 혼술을 하며 이국의 애수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일주일에 2~3일은 도쿄 시내로 가서 여러 대학 캠퍼스와 미술관, 박물관, 거리와 골목을 답사했다. 어떤 시기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두문불출하며 해방 직후에 월북한 작가 허준(許俊, 1910~?)의 대표작을 엮은 <잔등: 허준 중단편선>(문학과지성사, 2015)의 해설과 500개에 가까운 주석을 작성하며 보냈다. 허준의 소설에는 일본어가 한글 발음으로 표기된 대목이 많다. 이를 하나하나 검색하고 찾아서 주석을 다는 작업을 허준이 일본 유학을 위해 거주하던 지역과 가까운 공간에서 수행한다는 사실이 어떤 필연적인 운명처럼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내가 고쿠분지시의 도쿄경제대학 방문학자로 올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이유는 당시 그 대학에 근무하던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고(故) 서경식(徐京植, 1951~2023)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청춘의 사신> 등 그의 초기 저서들을 한 권, 한 권 읽어 내려가면서 뭔가 독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의 책과 글쓰기(칼럼)는 당시 어떤 늪에 빠진 듯한 우울과 무력감에 시달리던 내게 소중한 자극과 동력으로 작용했다. 서경식의 책과의 만남은 이전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서경식은 2019년 도쿄에서 있었던 한 좌담 자리에서 “청년 시절에는 김석범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거니와,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서경식의 에세이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기도 했다.

도쿄경제대학에 방문학자로 있던 시절 내게 가장 커다란 지적 자극과 깊은 슬픔을 전해준 시간은 서경식 교수가 주도한 재일조선인문학 세미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전개된 세미나에는 한인 유학생, 인근의 조선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재일조선인 신진학자 등이 참여했다. 주로 이양지(李良枝, 1955~1992)의 소설, 고마쓰가와(小松川) 사건 등 재일조선인문학과 연관된 몇 가지 쟁점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이 세미나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미처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인생에 드리워진 치명적 불우, 실존적 고뇌, 단단한 의지를 곁눈질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한 사람의 재일 한인(조선인)으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차별과 우울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만남이었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자신을 둘러싼 차별, 모순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 사회에서 민족적 자의식과 현실적인 진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늘 분열된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시 이들의 치열하면서도 처절한 실존의 고뇌가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바로 이런 체험이 일본에서 보낸 한 학기 직후 한국어로 번역된 김석범 대하소설 <화산도>에 그토록 몰입하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서경식을 온전히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된 도쿄경제대학 방문학자 시절 지금도 눈에 선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은 그의 나가노 신슈 산장에서 3박 4일간 함께 보낸 체험이었다. 서경식, 그의 파트너 후나하시 유코(船橋裕子), 나, 이렇게 셋은 함께 마을을 산책하고 인근 미술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저녁마다 재일 한인문학이나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에 대해 자유로운 방담을 나누는 즐거운 술자리가 있었다. 그 3박 4일의 시간 중간 중간에 미리 준비해 간 약 30개의 질문을 던지고 서경식이 답변하는 장시간의 대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후에도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 연구실에서 네 차례의 대담이 있었다. 2015년 8월 17일 대화에서 내가 그에게 던진 질문 중의 하나는 “재일조선인 예술가 중에서 당신이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분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였다. 서경식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흔쾌히 소설가 김석범(金石範, 1925~)을 꼽았다. 그 이유로 김석범 작가가 일본어로 일본 사회에서 문필 활동을 수행하면서도 일본인 다수자의 논리에 빠지지 않고 드물게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서경식은 김석범 작가의 대작 <화산도>가 한국에서 완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화산도>가 과연 일본에서 얼마나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이런 질문은 지금의 한국사회와 문단에도 그대로 던져질 수 있으리라.

서경식의 이 발언이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지 싶다. 이 대화 이후 두 달만인 2015년 10월 16일, 드디어 <화산도> 12권 전권(김환기·김학동 역, 보고사)이 한국어로 완역 출간됐다. 일본어판 출간(1997) 후 18년 만이었다. 일본의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鵜飼哲)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화산도> 전권의 한국어판 번역에 관해 “우리 시대 동아시아 최대의 문화사업이 아닐까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화산도>가 나오자마자 주문해 설레는 마음으로 1권을 읽었다. 그 한 권만으로도 과연 사상과 사유의 드문 깊이, 인간의 섬세한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 엄청난 몰입력과 문학적 매력, 역사에 대한 치열한 응시를 담보한 대작이라는 사실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내친김에 12권 모두를 완독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지만, 수업 등 여러 급한 일이 밀려 있는 학기 중이었기에 <화산도> 읽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겨울방학을 기다려, 약 보름간 두문불출한 채 2016년 1월 중순 <화산도>를 완독했다. 그야말로 먹먹한 감동과 우뚝한 경지, 완독이라는 충만감이 느껴지는 잊을 수 없는 독서 체험이었다. 그 직후 완독의 커다란 여운을 간직하며 <화산도>에 대한 비평 「망명, 혹은 밀항(密航)의 상상력」(<자음과모음> 2016년 봄호)을 썼다. 어느 날 광화문에서 있었던 저녁 모임에서, <화산도> 번역자인 동국대 김환기 교수의 주선으로 일본에서 그 평문을 직접 읽은 김석범 작가와 국제전화로 통화하는 기회가 생겼다. 운명과도 같은 문학적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도쿄에 갈 때마다 김석범 작가와 만나 <화산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며 작가의 육성을 기록하고 정리했다.

돌이켜 보니 2015년 도쿄경제대학 방문학자 시절이야말로 그 이후 <화산도>와의 뜨거운 만남을 가능케 한 원체험이지 싶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는 10년 가까운 세월은 무엇보다 <화산도>를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한 도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화산도>에 푹 빠져 지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에 대한 자발적인 공부야말로 어떤 놀이 이상의 행복한 체험이 아닌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계속 <화산도>에 대해 공부하고 <화산도>에 대한 글을 매만지고 싶다. 이야말로 한 권의 책(작품)이 만든 운명이 아니겠는가.

청춘 시절 내 인생의 행보와 미래를 결정지은 책이 
  • 김윤식의 <문학과 미술 사이>, 
  • 김현의 <김현예술기행>, 
  • 최인훈의 장편소설 <회색인>이었다면(이 세 사람 모두 고인이다), 

2000년 이후 새로운 열정과 지적 자극, 깊은 공감, 공부의 신선한 지평을 열어준 책으로는 
  •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과 
  •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들 수 있겠다. 

내게 책과 글의 매력에 관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고 서경식 교수의 영원한 안식과 올해 백수(白壽, 99세)에 이른 김석범 작가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 글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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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북월드'(2024.9)에 수록된 글임)


그가 많이 그립다...











All reactions:94Hyuk Bom Kwon, 김영재 and 9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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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벌써 1년!!!



Author권성우

네 그렇네요...








Joseph Kwon

작년 오늘, 규슈문학기행 중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ㅜㅜ 서경식 선생님 저서들 그리고 사두고 읽지 못한 『火山島』를 새해엔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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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권성우

권요섭 권목사님 내년에는 꼭 '화산도' 완독하시고 저와 긴 커피타임을 통해 '화산도'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참 도쿄에 돌아오셨나요?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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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Kwon

권성우 『화산도』전문가와 나눌 대화의 시간을 기대하며 읽겠습니다.
토요일에 들어왔습니다.



2024-10-13

Young-Jun Lee - 화제의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데 앞장선 극우지원단체... | Facebook

Young-Jun Lee - 화제의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데 앞장선 극우지원단체... | Facebook



화제의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데 앞장선 극우지원단체 닛폰파운데이션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졌구나. 빔벤더스가 미친거 아닌가. 원래 그런 인물이었던가. 그 영화와 감독에게 감탄했던 관객들에게 똥물을 끼얹는 소식이다. 주연 배우는 며칠 전에 인사차 서울에 오기도 했었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소식인가. 아니면, 어쩌면, 제목이 계속 이상하게 찜찜했는데, perfect 라는 말로 우리 모두에게 침을 뱉어준 것인가. 퍼펙트 좋아하시네 하면서 말이지. 똥과 오줌을 버리는 장소를 짓는데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동원한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퍼펙트하게 지어봤자 닦아봤자, 결국 화장실이라고? 설마, 빔벤더스가 그 정도까지 나갈리가. 아무튼, 이 사실을 영화 크레딧에서 발견한 컬럼비아대학교 출판부의 이창재 선생에게 감사한다.









Chang Jae Lee

sdtSnoperohg2myli9t 2ai01ft74892J496a64i58lu8mi73i4111aah7ft ·

My Kind of (Un)Perfect Days.
(나만의 [불]완벽한 나날들. 5월 마지막 주에 사내 승인된 표지와 7월 첫 주에 사내 승인된 표지는 각기 아홉 주와 네 주가 지난 지금까지 최종 승인되지 못한 채 수정만 거듭하고 있다. 그 사이 내년 봄 시즌 카탈로그에 실리게 될 내게 배정된 표지 작업 리스트는 점점 늘어만 가고... 지난주 내내 서울서 사 온 서경식 작가의 유고작인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을 다 읽었고, 저자로부터 6년 전에 선물 받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을 그때 내 책 쓰느라 성의 없이 너무 건성으로 읽었던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반즈 앤드 노블 서점은 매년 7월 한 달간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DVD의 50% 세일을 진행하는데, 올해부터 매장에 4K와 블루레이 DVD만 입고해 놓았다. 생일 주간이던 지지난 주 금요일, 내가 나한테 주는 생일 선물로, 온라인 반즈 앤드 노블에서 아홉 개의 일반 DVD를 반값에 구입했다. 그제 패키지가 도착했지만, 어제서야 상자를 풀었다. 이번에 산 DVD는 극장에서 본 영화는 단 세 편뿐이고 근래 개봉작을 포함해 보지 못한 영화가 대부분. 마그리트 뒤라스의 영화 두 편과, 셀린 시아마의 영화 두 편, 로라 포이트라스의 낸 골딘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토드 헤인즈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각각 한 편, 뉴욕의 대학원으로 떠나던 해 여름에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 안에서 영화를 보는 야외 상영장에서 전(이라고 단순히 썼지만, 실은 나의 마지막) 여자 친구와 같이 보았던 장-자크 베넥스의 영화 <베티 블루37.2 Le Matin>,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Mirror>. 마지막으로, 다른 하나가 지난 17일 발매된 빔 벤더스의 <페벡트 데이즈Perfect Days>인데 작년 가을 뉴욕필름페스티벌 상영 때도, 이후 올봄에 개봉했을 때도 보지 못했다. 어제 해지기 한참 전의 이른 저녁 시간이라 실내가 충분히 어둡지 않았지만,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이 DVD를 제일 먼저 틀었다.
국내 문화비평가나 영화평론가가 쓴 이 영화를 추앙하는 평론은 여러 지면에 널려있고,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 감명받아 열광하며 추천하는 일반 관람평도 SNS에 넘쳐나고 있으니, 내 감상 따위는 전부 생략할 생각이다. 다만 아무도 보지 못하고 놓쳤는지,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지, 그 누구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딱 하나만 말할까 한다. 참, 그 전에 빔 벤더스의 영화를 오래전부터 꽤 좋아해 왔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파리, 텍사스Paris, Texas>와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Der Himmel über Berlin>는 대학 다닐 때 시애틀 대학가의 단관 극장 넵튠에서 보았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은 1999년 6월 뉴욕의 앤젤리카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앤젤리카에서 영화를 본 게 바로 이맘때였다. (그걸 유독 기억하는 이유는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두 차례 크게 다투었고, 두 번째 다투고 나서 화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스와 <부에나 비스타>를 함께 보아서였다. 퇴근 후, 해 질 무렵에 극장 앞에서 만난 엑스가 그날 입고 나왔던 옷과 그 색상까지 기억이 선명하다. 이런 기억은 머릿속에서 깔끔히 지워져도 무방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영화 세 편은 DVD를 가지고 있고, 가끔 혼자서 다시 돌려보곤 했다. 하지만 <페벡트 데이즈Perfect Days>를 끝으로 앞으로 빔 벤더스의 영화는 보지 않을 거다.
크레딧 롤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요즘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어대는 '코모레비木漏れ日' 영상이 나오기 직전의 크레딧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책과 음악 크레딧을 지나서, 열여섯 명의 도쿄 공중화장실을 만든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이름이 나오고, 이들 공중화장실이 소재한 시부야 구청장 이름이 나온 다음에 같은 화면에 좀 뜬금없이 올라온 한 '재단'과 이 재단 (상임)이사의 이름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같은 화면에는 일본 최대 주택건설업체라는 '다이와 하우스'와 일본 변기 제조사 '토토'에 이어서 빔 벤더스 감독의 개인적인 감사 인사가 이어져 있다. 그 영상을 서너 번 반복해 돌려보고, 구글로 검색해 재확인까지 하고 나서도 설마 하며,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주연 배우 야쿠쇼 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감독 빔 벤더스에게는 적잖은 실망감이 들었다. 문제의 이 재단 이름은 'The Nippon Foundation日本財団니폰재단 또는 일본재단(주의: 정부 기관인 The Japan Foundation国際交流基金국제교류기금과 혼동하지 말 것)'이고 화면에 등장한 이사 이름은 사사카와 줌페이. 니폰재단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박애 활동과 어마어마한 기금 지원의 이면에, 일본 내에서는 2차대전 중 일본이 자행했던 전쟁범죄를 전면 부인하는 역사 수정론과 극우적 관점의 교과서 개정 운동과 평화헌법 폐기와 함께 일본 재무장을 주창하는 극우단체들을 지원해 오고 있는 걸로도 알려져 있다. 참고로 현 재단 이사장은 재단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인 사사카와 요헤이다. 사사카와 줌페이는 아마도 초대 이사장의 손자로 짐작된다.
아래 링크들은 파리의 시앙스포(Sciences Po파리정치대학) 연구자를 상대로 프랑스 소재 니폰재단la Fondation franco-japonaise Sasakawa(FFJS)이 제기한 니폰재단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사사카와 료이치 명예훼손 소송(libel suit) 사건의 전후 맥락을 깊이 있게 다루는 아시아 퍼시픽 저널-저팬 포커스Asia Pacific Journal-Japan Focus의 소논문과 그 소송 결과를 알리는 프랑스 웹진 넌픽션nonfiction의 기사(영어로 번역이 가능하다). 사사카와 료이치는 (1995년 7월 20일 자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부고 기사에 따르면 다른 무엇보다) "일본의 마지막 A급 전범The last of Japan’s A-class war criminals"으로, (같은 날 프랑스 르몽드지의 부고 기사에 따르자면) "전 전쟁범죄자이자 박애주의자로 변신한 일본 범죄 집단 우두머리들 중의 한 명Former war criminal, one of the dons of the Japanese mob, converted into philanthropy"으로도 호명되었다. 이 아티클은 (명예 훼손 소송의 피고소인이기도 했던) 시앙스포의 선임연구원 캐롤린느 포스텔-비네Karoline Postel-Vinay와 코넬대학의 동아시아학 선임연구원인 마크 셀던Mark Selden이 공동 저술한 글이다. 참고로, 아시아 퍼시픽 저널-저팬 포커스는 2002년부터 20년 넘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정학과 경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제 관계를 아우르는 비판적 분석을 실어 온 학계에서 공신력 있는(peer-reviewed) 온라인 학술지다.
https://apjjf.org/mark-selden/3349/article
https://www.nonfiction.fr/article-4366-de_quoi_la...
https://www.independent.co.uk/.../obituary-ryo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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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wak Lim
누가 보라고 카톡으로 권했는데,안 보길 잘 했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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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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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 봐야겠어요.ㅜㅜ
Sunny Hwang
이런!!
Wan Jun Kim
왠지 찜찜했는데...안 보길 잘했네요ㅠㅠ
Sukhee Lee
일뽕 가득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네요.
Sun Gyu Yang
완벽한 나날이라는 제목이 보통 싸구려는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찬사를 받을 작품이라면 그런 제목은 아마 사양했을 겁니다. 제 정신이라면.
2
이선외
안보길 잘했어요
Chang Jae Lee
감사라니 별말씀을요;; 이 사실을 발견한 후 제가 느낀 황당함과, 감독에 대한 실망감에 공감해주시니 제가 감사하지요. 더구나 선생님께서 공유해 주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