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청일은 왜 조선에 파병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9회 - YouTube

청일은 왜 조선에 파병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9회 - YouTube

청일은 왜 조선에 파병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9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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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동학의 봉기 후 조선의 관군이 동학군에 연전연패하는 과정에서 청에 파병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일본까지 파병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청과 일본이 조선에 출병하면서 노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전개된 치열한 수싸움과 힘 대결의 의미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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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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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녕하십니까. 함재봉입니다. 아,
또다시 한국인의 탄생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동학이
어떻게 봉기하게 되었나, 왜 봉기하게 되었나 어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렸고 전주성까지 입성하게 되는 과정 그런 거를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오늘은 그것이 결국은 어 청일 전쟁으로 청일 전쟁이란 도화선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사실은이 과정에서도 어 갑자기 전쟁을 하겠다는게 아니라
막상 상 총하고 과연 자기가 전쟁까지 치를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어떻게든지
피해 보려고 하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그지만 동시에 청을 결국은
축출해 갖고 특히 조선을 계약을 해야겠다라는 것 때문에 어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 막후에서 어 양국의 지도자들이 또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이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어 그
자기 나라의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는 그런 광경이 어 참
드라마틱하게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동학군이 결국은 어 예상했던 거보다 훨씬 강한 어 세력으로 어 봉기를
하고 그리고 전주성으로 어 오면서 전주성이 합락이 되자 어 결국 조선
조종은 어 고민 끝에 청의 어 파병을
요청을 하기로 합니다. 그 날짜가 1894년 6월 3일입니다. 어 여러 가지로
피해 보려고 어 애를 썼지만 특히 민시척의 입장에서는 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공학이 노골적으로 민시 척을 타도해야 된다. 백성들이 겪고
있는이 고초의 원인은 인식 정권이다. 이제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면서 하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떻게서든지 진압을 해야 될 텐데 관군을 이미 보내봤지만 홍개원 장군을 통해서
보내보고 군사까지 파병을 했지만 결국은 어 연전 연패 동학군한테 연전
연패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어쩔 수 없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어 청의 파병을 요청하기로 합니다.이 이 상황을 당시 일본의 일본의 어
외무 대신이었던 무스무네미츠라는 사람이 어 쓴 유명한 어 겐겐로크 어
건건록이라는 자서전 비슷하기도 하고 자기가 외교 장관 장관으로 있으면서
쭉 겪었던 일들을 갖다가 기록해 놓은 어 책이 있습니다. 참 중요한
사려인데요. 거기에 청일 전쟁으로 가는요 상황에서 지금 어 조선 조종이
청한테 파병을 요청했다는요 때에요 당시에 그 자기가이 상황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기록을 남기는게 있습니다. 그걸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당시 조선왕조의 정황을 돌아본다면
세상은 왕비의 일족인 민시들이 전행하는 시대였고 그러한 와중에서도
붕당 상쟁이 계속하여 극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민시일파의 대표자인 민영준 후에 민영 개명하게
되는 민영준은 왕실 외척이란 신분을 이용하여 세도의 핵심이 되어 그
권력이 하늘 닿은 줄 모를 정도로 컸음에도 불구하고 동학당에 난이 일어나 관군이 계속 패하자
내외로부터의 공격이 한 몸에 집중되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활로를 찾기 위해 미책으로 청나라 사신인 원세계와 결탁하여 천국 군대
출을 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문에 의하면 당시 조선 대신들
안에서는 특히 국왕까지도 북군대 조선 출병은 일본의 출까지도 가져오는
상황을 몰고 오기 때문에 천국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방책이라 하여 민영준의 결의를 비난하기도 했다고는 하나 떴듯이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모든 책임을 통과하면서 이러한 정리학은 난국
타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용기 있게 건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영주는 마침내 국왕에게 천국의 신하로 자칭토록하여
출병을 구걸하도록 조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 조선 조종 내부에서도 민영준이 이제 어 우리 청군 화병을
요청합시다. 그랬더니 내부에서도 아니 1885년의 텐진 조약에 의하면은 한쪽 나라가
출할 경우에 상대방한테 꼭 통보를 해야 되는 거고 결국은 한쪽이 출을
하면 다른 쪽도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 아니냐. 괜히 이랬다가 일본군까지도
일본까지도 출하면 어떡할 것이냐 이제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무스의 말대로
끝까지 이것은 절대 안 됩니다. 자기 목을 내놓고 자기 자리를 내놓고 어
이거는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라고 가하는 용기를 가진 대신이 어 조선
조종 내부에는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결국은 어 고종이 어 그 파병 요청을 하게
됩니다. 원세계와 민영주는 청병을 어
요청한다라는 거를 통보만 하면 됐지. 그렇다고 해서 꼭 일본이 출할 이유는 없다.
그걸 우리가 잘 설명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자기 합류화를 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어 6월 3일
참미 교섭 통상사무 성기훈이라는 사람을 조선 조정이 원세계한테 보내서
공식적으로 청회 출을 요청합니다. 그 파병 요청 공문이 있습니다. 공문
내용이 이렇습니다. 조선 의정부 좌회정 조우가 조회아 회방의 전라도
소관 태인 고부 등의 현은 백성의 숲속이 흉한하고 즉 흉하고 사납고
성이 헌엄하고 속임이 많아서 평소 통치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에 부에 동학 교비 1만여명이
모여서 현읍여옷을 공격해서 함락하고 이제 또 북쪽으로 몰려가 전주 성취
가명이죠. 전주 가명을 함락했습니다. 전에 연군을 파견해서 훈련된 군사를
파견해서 초무했지만이 비도들이 끝끝내 목숨을 걸고 항전에서 연군이 패하고
많은 대포를 잃었습니다.이 휴만한 자들이 오해 요란을 일으킬니 크게
우려됩니다. 더구나 지금 한성까지 겨 거리가 겨우 400 몇십리에 불과하니
다시 북쪽으로 달다란나게 내버려 둔다면 아마도 기보 즉 수도 근방
경기도 이런 얘기입니다.에 에 소동이 생겨서 적지하는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에 갓 조련한
각 군대의 현재 숫자가 간신히 도회를 포위할 수 있을 정도요. 또 전진을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전쟁 경험이 없는 군대라서 흉구를 진재하는데
쓰기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이들이 오래 불어난다면 중조에 더욱 많은
근심을 꺼 끝 끼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점점 커지도록 내보면 오히려 중국에도
큰 수환이 어 될 것입니다. 조사해 보니 패방의 이모늄과 갑신년 두 차례
내란해서 모두 중조의 병사들이 대신 감정해 준 것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이 이모군란과 어 갑신정변 때도 청이 와서 도와줘서 민신 척쪽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해 나갔지 않습니까? 이제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에 전례를 원형하려고 하니
부디 귀총리께서는 신속히 북양 대신에게 전보를 보내서 몇 개 부대를 파견해서 속히 대신 처를 해 줄 것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패방의 병수와 장수들이 뒤를 따르고 군물을 익히게 하서 이로써 장례 한위의
계책을 삼는다면 사나운 비도들이 꺾여서 사라진 이후에 즉시 철병을
청할 것이니 감히 유방을 요청해서 천병을 외국에서 오랫동안 수고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서는 그냥 군데 조금만 보내
주시면 금방 비도들이 달아날 것이고 진압이 될 것이니까 조선에 와서 그렇게 수고롭게 오래 안 있어도 될
것입니다. 굉장히 간단하게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런 거죠. 아울러 귀총리께서는 속히 원조할 방도를 계획해서이 급박한 상황을 구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공식적인 청병 요청에 갑니다.
그랬더니 원세계는 이것을 곧바로 이홍장한테 어 그 알립니다. 그리고
조선 정부가 우리한테 병력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라는
거를 그때 같이 조선에 있던 일본 공사 스기무한테
알립니다. 그렇죠? 이제 일본 본국 정부에도 알려야 되겠지만 이제 여와 있으니까 일본 대표가 와 있으니까
이제 알립니다. 그때에 스기무라가 당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원세계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의 어 상황을 기록해 놓은게 있습니다. 음. 6월 4일 원은 그의 비수를
보내와 조선 정부로부터 청애 군대를 보내 달라는 공식 요청서를 받았음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나는 우리 정부의 전부를 보내 원세계는 그 서기관을
보내서 원병 요청권과 관련해서 조선 정부가 지난밤에 공문을 보내왔다고 통과했습니다. 저는 그 서기관을 통해
원씨에게 귀국이 조선에 출하는 것과 관련해서 텐진 조약에 따라 적절한 조
졸차를 취할 것을 귀국 정부에 상신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낸다
그랬습니다. 제짐작대로라면 원병의 수는 대략 100명으로 웨하이웨이에서
직화돼서 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바로 출해야 합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 정부에 우리도 저쪽에서 아마 100명 정도가 외하에 의해서 올 것 같으니까 어 우리도 출을 해야
된다라고 자기도 어 본국 정부에 일본 정부에 보고했다라고 지금 이제 기록을
자기 일기에다 기록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날 나는 내 비서 태이 어 태시 태이호를 원세계에 보냈다.
여기에 태시가 어 대시 대시라고도 한데 이게 정시입니다.이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은 명나라가 멸망할 때 청에 멸망할 때 그때 일본에 건너가
있던 일본 사람들 또 아니면 멸망한 이후에 일본에 건너가서 나가사기 근처에서 오랜동안 그 화교촌을 그
형성해서 살고 있었고 특히 중국하고 일본이 교류하는데 통역 같은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는데 이번에도 여기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어 스기무라의 비서로
있었어 있었기 때문에 중말을 당연히 잘하고 확교니까 그래서 이제 그 사람을 원세계한테 이제 보냈답니다.
원세계는 청명의 군사를 산해관에서 산하관에서 출석시킬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도쿄의 전보를 보낸 후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다. 6월 6일 밤 11시 30분 답이 왔다. 옷돌리가 전함을
타고 300명의 수병과 20명의 경찰을 경험 병력으로 조선으로 향할
것. 그러나 아직 조선으로 수병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말걸 것.
이렇게 훈령이 왔다. 따라서 나는 이것을 비밀로 하였다. 즉 저쪽에서
출을 한다 그러니 우리도 빠예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랬더니 외무성 본부에서
딱 연락이 오기를 옷돌리 오돌리가 누구냐면 주조선 일본 공사였었는데이 동학난이 일고 있는 중에 잠깐 귀국을
했던 거고 스기무라가 이제 대리공사로 있었던 거죠. 근데 이제 오돌리가 다시 자기 임지루 귀 귀환을 하는데
그때에 아예 군대를 이제 이끌고 온다. 그 대신이 얘기를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서 수모라도 자기가 빗걸 비밀로 하였다. 이제 이런 거죠. 그러면서 이제 어
베이징에 있는 어 고모라주따로 그러니까 주천국 일본 대리공사가 벌써
소식을 다 듣고 어 이제 중국 정부내 청정 정분에서 움직임을 보고서는 어
청이 1500명 정도의 군사를 보낼 것이라고 하면서 주다로도 이제 본국에 알리는 거죠. 그러니까 원세계도
알리는 거고 원세계 그니까 스키무라도 알리는 거고 주따로도 알리고 그러면서 이제 여러 채널을 통해서 이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청은 이미 5월 달부터 그렇죠. 이게
조선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라는 걸 알고 이홍장이 군대를 그 슬슬
움직이기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5월 초부터 직례 그 북경을 에워싸고
있는 직례 성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로 말하면 경기도 같은 거죠. 서울을 에어싸고 경기도 같은데 이제
거기에 총독을 맡고 있는게 이홍장이고 그 직의 형의 수도가 바우딩이고
그래서 옛날에 이홍장이 대원군을 압성해 갔을 때도 자기가 직례 총독으로서 했던 거고 직례의 수도인
바우딩이 이제 대원군을 앞서면서 구금을 시켰던 것이죠. 근데 거기에서 이제 산동과 만주의 군사들을 직내에서
동원을 하기 어 시작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과 전쟁 준비는 아니고
그 뭐 그런 상상은 아직은 안 하는 상태였고 동학란이 심상치 않으니까 이거 우리가 출을 할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거를 어느 정도 예감 예감을 하고 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조선이 파병을
요청합니다. 하하자마자 청조종은 곧바로 섭취초 장군을 휘하에
2,500명을 우선 한양에서 남쪽 70km 떠진 아산으로 파병을 하기로
하고 군사들을 텐진의 다크코 포대에 집결시켜서 이제 갑니다. 그러니까
이제 6월 3일 날 공식적으로 조선 조종이 원세계한테 청병을 요구청을
했고 소식들이 이제 쫙 본국으로 청으로 일본으로 이제 다 건너가서 청이 딱 군대를 보내기로 해서 이제
어 티엔진에서 건너갈 준비를 집결을 시켜서 이제 준비를 딱 하고 있으니까
그다음날 6월 4일 날 어 천국 공간에서이
만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만찬에 이제 미국 공사, 뭐 영국 공사,
일본 공사 다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당시에 보면은 창조하는 외교관을 파견한 나라가 몇 나라 되지
않습니다. 그렇죠? 일본, 천국, 어 미국, 러시아, 어, 뭐 독일, 영국
뭐 이런 정도죠. 그러니까이 사람들은 참 자주 모입니다. 자기네들끼리 늘 같이 회식을 하고 같이 만찬하는데
이날도 이제 이번에는 천국 공사관에서 그 개최할 차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어 이제 모여 있었는데 이때에
이때 이것도 이제 그 당시 기록입니다. 6월 4일 저녁 주한양 청관에서 공식 만찬이 열리고 있을 때
1,500명의 청군이 중국에서 출발하였다는 전보가 도착한다. 그 자리에 있던 호르살란 미국 공사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하도 노골 쪽이어서 중국 측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깨닫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의시의 소침해졌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포레살랜드 와 있었는데 미국 공사로
자격으로 와 있었는데 총에서 군대를 파견한다 소식이 들 딱 그 만찬
와중에 전해지니까 누가 좋아해요? 일본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천분이 1500명이 오는데 왜 1번이 좋았냐? 일본은 이제 됐다. 이제
우리가 청하고 한번 깨뜨리든지 아니면 이제 조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군대를 보내서 개입할 수 있는 구실이 완전히 생겼다. 자신은 있고 그까이 상황을 보고 그당 거기에
있었던 중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 왜 우리가 군대를는데 쟤네가 저러지
그러면서 아 아차 싶은 거 이제 깨달은 거죠. 아, 일본이 완전
완전히 준비를 하고 있고 조선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파병을 결정한 것이 이거는 진짜 뭔가 엄청난 실수를
우리가 저지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알렌의 그 당시 증언에 의하면은
만찬을 개최했던 중국 사람들이 청나라 사람들이 의기 소침해졌다고. 그리고
6월 5일 1번은 곧바로 전시 체제합니다. 그래서 역사상 최초로
대본용을 차립니다. 그러니까 전시의 통수권을 갖고 있는 그건 합참이죠.
그 그거를 이제 만드는 거죠. 전쟁 시에만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대동화 전쟁 뭐 2차대 하면은 쭉 그
대본형이라는 거가 모든 전쟁 결정을 내리지만 거기에 이제 천왕까지도 어 그 포함이 돼서 이게 이제 역사상
최초로 대본형이 꾸려지는 거죠. 그 전에 시대에는 막부라는게 그겁니다. 막부라는게
장군을 쇼군을 임명을 해서 외적을 물리치라고 그 막부를 천막을 쳐서
군대 지휘를 하라라는게 그래서 막부입니다. 근데 이번에 이제 군대 현재를 통해서 대본영을 만들고
그리고는 곧바로 그 군대의 동원령을 내리고 그다음에
모든 민간 민간 배들을 곧 나라가 수영을 해 버립니다. 어 대표적으로
NYK 해온 일본 우선 주식께서 우편물을 나르는 그 그 우편국에
말하자면 우체국의 밴 배 배들인데 그게 이제 섬나라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있었던 거죠. 그니까 도서에도
다 우편을 전 그 배들을 전부 다 증발을 합니다. 그리고 6월 6일 날
육군성이 모든 언론에 전쟁에 대한 보도는 일체 금한다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6월 5일 이제 조선에서는 원세계가 그
주조선 영국 총용사 월터 힐리에를 만납니다. 이제 일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제 제3자 영국 사람을 이제 만나서 원세계가 얘기를 하는 겁니다.
힐리에가 그 그 원세계를 만나서 아유 이거 동학난이 걱정이다. 그랬더니 원세계가 그 자리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힐리야 보고 가난한 백성들이고 모두 걱정이 겁쟁이기 때문에 숫자는 문제가 안 된다.
이렇게 힐리한테 얘기를 했다고 힐리가 또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서워하지 않는
않는다는 것만 보여주면 그들은 사라질 것이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요.이 도시는 내가 책임질지겠소. 내하에는
천명의 군인이 있는데 조선의 어떤 군중도 잠시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요. 그런데 그때에 이제 힐리에는
아이고 너무 섣불리 저 자신 갖고 너 너무 자신만해 하지 말라. 지금
자기가 보기에는 일본이요 기회만 지금 보고 있고 아 요걸이어서
한바탕 청나라하고 붙어볼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다라면서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저는 어 그 원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가 얘기고 원세계는 나중에 이제 황제까지도 칭하게 되고 어 그리고 저 중앙국의 대통령까지도 초대
대통령이죠. 어 신의혁명 때 그 그런 사람인데 물론 이모군란과 갑신 정변
때 재빨리 개입을 해서 일본을 축출해 버리고 자기네가 10여년 동안 조선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를 할 수 있었때 보면은 어 참 판단력이 빠르다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은 어 지금요 상황에서 보면은 파병 요청을 하도록 민영준하고 같이
그거를 의논을 해서 그렇게 하도록 유도를 하고 그것이 절대 일본을 불러들이지 끌어들이지 않을 거라는
거를 생각하고 오히려 너무 자신만하게 동학을 동학군을 진압할 생각만 하고
있다. 있었다는 거. 그리고 제3자였던 영국 총용사라는 사람조차도
어 이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거 같지 않은데라는데 그거를 모르고 있었다라는 거죠. 주변에 있었던 다른
나라들,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관려들이나 외교관들이나 지도자들이 갖고 있었던 정세를 보는 눈과
판단력은 조선이나 중국의 관리들과 지도자들의 판단력은 훨씬 떨어졌다는
거를 참 절실히 느끼고 여러 번 느낀데이 여기가 아주 결정적인 대목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6월 3일
날 조선이 공식 요청을 하고 그리고 6월 7일이 되니까 주일본
청나라 공사 왕봉조가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이제 우리가
이렇게 출을 합니다라고 일본 외무성에 통보를 하는 겁니다. 일본 외무성에
보냈던 어 청이 출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쭉 설명하는 그 문들이
당연히 다 남아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분만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청 헌명 출사 대신 왕봉조가 대일본 외무 대신 무스무네미스께 조회합니다.
본 대신이 북양대신 이홍장의 전보 지시를 바로 받아보니 그 안에 광서
11년 즉 1885년 을류에 맺은 청일 두 나라의 강화 조약 안에
그러니까이 조약이란게 뭡니까? 텐진 조약이죠. 갑신정변 후에 양국이 다 철수 조선에서 철수한다. 이제 출할
때는 통보 서로 통보한다. 이제 이런 얘기를 그때 텐진 조약을 이제 인용을 하는 겁니다. 은류에 맺은 청일 두
나라의 강화 조약 안에 이후 조선에 무슨 일이 생기면 청나라는 조선의 군대를 보낸다. 그 전에 반드시 먼저
일본에게 조회하고 조선이 평정되는 즉시 군대를 철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보낸 전보를 받아보니 동학 패거리가
전라도에서 난을 일으켜 여러 고울을 파괴했습니다. 그 형세는 북쪽으로 진전주를 침범할 것 같습니다. 저희
나라는 군대를 보내 죄인들을 잡아 다스리려고 했으나 조사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만일 시일이 오래되어
더욱 널리 퍼진다면이는 바로 상국 중국이죠. 한국이라고 부릅니다.에서
우려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 광서 8년 이임년 82년 이모군란 때
그리고 84년 갑신년 갑신정변의 일을 생각해 보건데 저희 나라 땅에서
도적들의 위험이 있었을 때 황제께 의뢰하자 대신 소탕해 주었습니다.
감히 이러한 전례에 따라 급히 천자의 군대를 일으켜서 하룻밥이 동쪽으로 보내 주시기 요청합니다. 변란을
철저히 평정하고 즉시 개선하신다면 천자의 군대를 모래도록 수고롭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그 내용이었습니다라고
이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이홍장이 자기가 조선으로 받았던 편지라고 해서
그 내용을 보낸 이홍장의 편지를 또 소개를 합니다. 본 대신 이장이
조선에서 보내온 군대를 요청하는 급한 전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일의 형세가 매우 다급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종은 본래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어진 마음이 매우 두터워서 번복을 가만히 두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속방이죠. 즉시 황제를 뵙고 아연이 명령하시기를 직례제독
섭지초는 정애병을 선발하여 거느리고 조선의 충청도로 달려가서 속히 재앙과
난리를 평정하여 속번 그죠. 번국이죠. 어 조선의 위급함을 알리는
봉화가 올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또 그 나라에 머물러 있는 각국의 관리와 상인들도 믿는 데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게 하라. 또 섭지초는 그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따르는 자들을
해산시킨 후 하루빨리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내리신 그를 봉선이 적어 급히 귀대신
왕봉조에게 통지하니 청일 화약을 참작해 보고 일본 외무성에도 조회해
주시기를 아울러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해 본 대신이 조회합니다. 내용이이
이래서 우리 그때 친진 조약 때 맺었던 내용이이 이런 거라서 우리가 보냅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제
이홍장이 자기한테 보냈던 명령을 훈령을 보냈던 그 편지까지도 이제 동봉을 해서 보내서 아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보냅니다. 그리고 평정이 되면 곧바로 철수할 겁니다. 이제이 보냈던 거죠. 그랬더니 거기에
대해서 이제 천국에서 공식적으로 그런 얘기가 왔으니까 이제 당연히 일본
외무성에서 외무 장관, 외무 대신 무스가 회신을 합니다. 왕봉주한테
이렇게 회신을 합니다. 대일본 제국 외무경 무스미네미스는 대청 흠차 대신 왕봉계 조회에 대해 답장합니다.
귀대신의 조회를 받아보니 귀국은 메이지 18년 은류 4월 18일에
청일 조약에 따라 조선의 군대를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본 대신이이 일을 꼼꼼히 살펴보건데 귀국이 비록
조선을 가리켜 번복이라고 언급했지만 속방이죠. 그러나 예로부터 조선은
스스로 귀국의 속국이라고 한 적이 없으니이 일을 자세히 살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군대를
보낸다에 대해서 지금 문제를 삼는게 아니라 먼저 문제를 삼는게 뭡니까?
조선이 자기네가 당신들의 속방이란 얘기를 하는 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이제 이런 식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갑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일본은 어떻게서든지
조선이 청의 속방이다. 중국의 일부라는 이거를 끊어 버리려 그런
거죠. 그러니까 조선에 대한 중국의 청의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끊어
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죠. 그래서 군대를 출하는 문제보다도
왜 속방이라고 그러냐? 나 조선 사람은 자기네가 속방이라고 한 적 들어본 적이 없는데 뭐 사실 조선
사람은 맨날 이때는 자기네가 속방이라 그랬고 아까 말 그 소개해 드렸던 조선에서 천국에 보냈던
그 파병을 요청하는 그래도 전부 다 자기네가 작은 나라 속방저 이런 얘기
끊임없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제 무수는 요거를 이제 그 걸고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이게 벌써
전쟁을 통해서라도 조선을 청의 속방 지우로부터 끄집어내고자
했었던 것. 그리고 그게 이제 나중에 시모노 새끼 조약에 명확하게 명시되면서 1조에 조소는 중국의
속방이 아니다라는 거를 하도록 그게 처음부터 이제 계획이 되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제 일 청나라에 있는
메이징에 있는 주청 일본 공사를 고무라주 따로를 통해 가지고 뭐를
합니까? 우리도 청병한다라고 청의 외모에다가 총리기 아문에다가
통지를 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그 통지 내용 1번이 우리도 출한다는
통지 내용이 이렇게 갑니다. 대일본 제국 헌명서리 출사 대신 고무라주다로는 대천국 총리 각국
사무화문의 경친왕 및 각 대신들께 조회합니다. 우리 일본 조정이 본 사신에게 제시 지시하시기를 메이지
18년 은류 4월 18일에 일본이 귀국가 맺은 조약에서 만일 두 나라가 파병하여 조선에 가게 된다면 피차
서로에게 좋아하기로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 조선에서 내란이 크게 일어났으니 우리나라로서는 파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이 때문에 이미 장수들에게 군대를 출동하도록 명령을 내렸으니이 일을 중국
총리화문에 알리도록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해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로는 자기가 이렇게 총리화문에서
전달하라는 훈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훈련까지 포함해서 이제 전 그랬더니
청의 총리하문이 이제 여기에 대해서도 회담을 한합니다. 대천국 총리 각국 사무화문의 경친왕 등이 대본 제국
혁명이 출사 대신 고무라 주다러에게 회답합니다. 귀 조회를 받아보니
귀정부는 조선의 내란으로 인하여 파병에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무릇 우리 청나라는 조손이 거듭 요청하기
때문에 파병하여 그 나라의 내란을 철저히 하하려는 것이고 또 번복을 어르만져
편안케 했던 관리를 살펴적의 기운이 철저히 평정된 뒤에는 군대를
철수하려고 합니다. 인천, 부산 두 지역의 경우 이것은 전체적인 통상을 위해 특별히 군함을 파견하여 탄압한
것이지 별다른 중요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귀국의 파병은 단지 공사, 영사 및 각 관리와 통상
사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니 귀국은 특별히 많은 군대를 파견할 일이 아닙니다. 또 조선은 귀국에게
군대를 요청한 적도 없으니 귀국의 군대가 그 나라의 땅에 깊숙히 들어가서 그 나라 백성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군대가 당당하게 전진하다가 귀국의 군대와 서로 만나게 된다면 말과 글이
통하지 않고 군율이 서로 달라 더어 얘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까 걱정됩니다. 귀공사의 조회에 답장하니
귀공사께서는 우리들의 변변지 못한 뜻이 남아 구보살피셔서 다만 사단이
커지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귀국 정부의 전보러 아래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광서 20년 갑보 5월
6일 이렇게 답을 하는 거죠. 그니까 아니 우리는 속방이기 때문에 보냈는데
당신들을 왜 보내냐? 그 거기에 당신도 외교관 이런 사람들 별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보냈다가
혹시 그 군대가 서로 만나면 두 군데가 만나면 이거 큰 일 날 수도 있지 않느냐. 본국 정부에다 얘기해서
안 파병하지 않도록 좀 해 달라.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6월 7일 굉장히 빨리
움직입니다. 3일 날 청병 요청을 파병 요청을 했는데 6월 7일 날 따쿠포돼서 섭지초와 섭사성의 지휘하에
어 2,500명의 천군이 세척의 수송선에 승승선에서 뭐 바로 앞히니까
텐진에서 뭐 하루 만에 8일 날 아산만에 도착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수승 국양함대의 전함 진원 뭐 이제 평원 순양함 치원 양위 초용 뭐
엄청난 함대가 북양 함대가 위용을 자랑하면서 어 2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도착을 하고 9일 날이 군이 이제 상륙을 해서 아산에 이제 진주를
합니다. 이때 조전 조종에서는 이중하라는 대신을 보내 갖고 이제 총군을 맞이하도록 합니다. 그러자 뭐
사실 같은 날이죠. 6월 9일입니다. 6월 9일 오토리 게이스케가 인천에
상륙을 합니다. 그리고 인천의 1번 영상 안에 머물다가 어 머물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조선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죠. 지금 아산에는 아산만에는 지금 천문이
들어왔는데 동시에 지금 인천에 일본이 옷돌리 공사가 군대를 이끌고 오니까
맞이하러 간게 아니라 이제 좀 막어 보려고 민상호를 보내. 그래서 민상호가가 가지고는 막아 보려고 그
되돌려 보려고 하지만 아예 그 옷돌리를 만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토리가 그 군대를
이끌고 환냥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천군은
수도 한양으로 간 것도 아니고 재물포로 가는 것도 아니고 뭡니까? 순전히 자기네다는 순전히 동학을
진압한다고 해서 중요한 도시들을 다 회피해서 아산만으로 가서 거기에서
군대를 전개를 하는 거죠. 근데 일본은 어떡합니까? 훨씬 소수긴 하지만 어떻게해요? 그냥 재물포로
들어와서 한양으로 군대를 끌고 들어가 버립니다. 6월 10일 날 오후 7시
어 30분에 해병 420명과 순사
20명 그리고 야포 두 문을 포두 개를 가지고 한양으로 갑니다. 그래서
어 옷 오토리가 마포에 이르렀을 때 또 조종에서는 이용적을 보내 가지고
제발 좀 철수를 해 달라 이제 계속 거기서 존경을 합니다. 그런데 오뚜리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일본 황제 명령을 받고 왔다. 우리는 일 황제 명령이 아니면 군대를 철수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은
일본근 여단 병력이 한양의 진주를 해 버리고 그이 사람들은 그 한양 도성의
요지에 다 그 배치를 하면서 군사적으로 한양을 장악해 버립니다.
일본 군대는 한양을 점령하고 있을 때 한양에 전개되고 있을 때 섭지초의 군대는 이제 전주성에 입성을 합니다.
그러면서 전주성에 방을 붙여 놓습니다. 방을 이런 방을 붙입니다.
그때 실제로 붙였던 방의 내용입니다. 총리조선 교섭 통상사의 겸 전군장
원세계가 전보로 보낸 조선 정부의 공문에 따르면 전라도 관할 각 현에서
도둑대들이 변란을 일으켜 고울여곳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또 북적으로는
전주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까 북양 내신한테 요청을 해서
이렇게 군대를 보내입니다라면서 이래서 우리가 왔다라고 소개를 하고 그다음에 이제 얘기를 합니다. 본
군문은 이러한 명령을 받고 도둑대 소탕을 동료하고자 이미 밤을 세워 바다를 건너왔다. 전부터 거느린 각
영은 경험이 많은 군사들이 한 번 북을 쳐서 적들을 평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위협을 받은
백성들이 시세에 쫓겨어 내키지 않는데도 적들을 따라다니다가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어 좋은 풀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진정 마음속 깊이 참아 한꺼번에 토벌하지 못하고 너희 백성들을
깨우치도록 하니이를 우러러 받들어서 여러 고울의 백성들은 잘 알기 바란다. 너희 위협받은 설량한
백성들이 즉시 해산하도록 노력하거나 혹 군용으로 와서 스스로 투항하면 본
군무은 관대하게 처리하고 결코 깊이 캐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너희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잘못하여
적에게 이용당했을뿐 진정으로 난리를 읽힌 것은 아니다. 전량한 백성들이 만약 무기를 버리고 죄를 뉘우쳐
투항해 온다면 반드시 또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스스로 세 새로워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끝내 어리석게 고집을 피우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관군에게 맞서
반항한다면 본 군무는 오직 극형으로 소탕하여 천토를 펼칠 것이다. 이에
너희들과 약속한다. 서로 진을 쳤을 때 무릎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여 정성을 보이는 자는 결코 죽이지 않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사람은 총이나 대포에 죽임을 당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로잡아 목을 자른 다음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목숨을 생각하여 도적의 우두머리에게 어리석게 붙지
말라. 위험을 갖추고 특별히 위와 같이 타 이르니 모두 알아듣도록 하라. 광서 20년 5월 7일 이렇게
전주에다가 항을 붙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전주성을 관군이 수복을 합니다.이 이
수복 과정에서 우리 그냥 일반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기를 그때에 청군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동학군하고
관군이 그때에 야 우리 이랬다가는 나라 전체가 절단이 나니까 빨리
우리가 먼저 화의를 하자. 그래서 서로가 약속을 하고 그래서 동학에서는
뭐 24개 조건을 이렇게 얘기를 걸고 뭐 관군에서는 그걸 지켜 주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동학이 스스로 물러났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건 다 소설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지금 말씀드렸던 섭취초에 방이 붙고 그러고는 나서는
이제 관군이 어 공격을 합니다. 그 관군의 장수였던
홍계훈이 나중에 보고 올린 내용이 여기 있습니다. 친군 장의영 정령관
양호 초토사 신 홍계우는 삼가 치계하오니 살피시기 바랍니다. 이달 3일 적에 무리 수천 명이 북문을
열고 쏟아져 나와 달려올 때 그 괴수 김순명과 동사 이봉 이복용을 우선
잡아다 참하였고 동당 500여명을 사살하였으며 총검 500여자료를 거뒀고 남은 물인 사방으로 흩어졌고
도망하여 수분 적은 각처의 백성들이 차례를 붙잡는 것을 기다려 잡힌 대로 참았다는 것은 이미 치계한 바
있거니와 적도는 그 뒤로부터 얘기가 꺾여 비록 호소이 있기는 하나 연이어
귀화를 구걸하니 그 속을 헤아릴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또 도당은 많고 성첩도 후환하여 가볍게 대적할
수도 없고 하여 각별히 생각하고 있을 점에 적도가 동북 두 문으로 때를 지어 도망하는 자가 있다고 하여 그날
사시경에 사다리 300여개를 만들어 성밖에 매달을 세우고 병정들에게 일제히 성을 넘어들어가 남문을 열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쨌든 쭉 이제 자기네가 뭐를 무기들을 뭐 어떤 거를
탈출했고 몇 명을 이제 그 사살하였고 이제 이런 얘기들을 쭉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기가 올린 그
장계의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천국 군대가 지금 전진하고 있다 하는데 양호에서 지공할 일을 생각함에
궁색함이 많을 듯하여 심히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오면은 지금이
조선 땅에 얼마나 많은 또 회를 정말 와 갖고 약탈을 하고 이제 이럴 텐데이 이게 걱정이 됩니다. 그러면서
현재 성을 수복하였고 순변사가 거느린 기형 병정들이 내일이면 전주에 도착할 것인즉 천군을 전진시키는 일만은 다시
처분이 있었으면 하오며 이에 우선 치계합니다.이를 갖추어 개문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조정보고 홍개원이 그런 거죠.
이제 다 끝났으니까 상황 끝났으니까 청군까지 올 필요가 없으니까 청군을 좀 되돌려 주십시오. 이러는 거죠.
그래서 조선 조종이 그때 원세계한테 그리고 이제 옷돌리한테이 일본
공사한테도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라는 이런 위협 다 이제 없어졌다 그러면서
군대 좀 다 철수해 주십시오. 이제 이렇게 한 거죠. 그렇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러한 정부의 조선
조종의 요청이 들어오니까 우선 처음에는 일본하고 청이 특히 일본
측에서 대화를 철 철군을 논의하는듯한 대화를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6월 11일 날 오돌리가 어 전북 본국 정부에 전문을 보내 갖고
상황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따라서 우리가 청군하고 청측하고
만나서 양측이 동시에 또 철군하는 거를 논하겠습니다. 그 전보를 이제
보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일본의 제5사단의 구헌성 혼성 여단 제대로
된 이제 병력이 오시마 요시마사의 지위하에
어 우진화 군황을 출발 하면서 조선으로 인천으로 향하기 시작을
합니다. 오히려 조선 현지에 있는 오돌리 공사나 이런 사람들은
외교관들은 아 상황이 끝났으니까 설수하자 이런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전부를 보는데
일본에서 벌써 군대가 어 여단히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6월
중순이 되면은 인천항은 완전히
전 세계의 열강들의 군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2월 13일에는 일본 군함과
수성선 아홉척, 청군 전남 네척,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군남 각
척 다을 내리고 재물포에서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6월
16일 일본 군남 두 척이 3천의 병력을 싣고 재물에 드디어 도착을
합니다. 육군소장 오시마 요시마사가 지휘하는 바로 그 원성 여단입니다.
분함 일곱 척, 호함 두 척, 최신선 한 척 이은 재물에 정막을 하고 어
무기를 실은 수선 수성선 다섯 척도 착을 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오토리
공사는 어 우리가 이거이 지금 협상을 하기로 했는데 철군 협상을 하기로
본국에도 명령을 내리고 그랬는데 이제 군대가 오니까 이태 사람을 보내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럼 그
대신 한양에까지 말고 여기 머물르라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어 그
일본군 장교는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군량을 받고
어 왔다. 그러면서 그래서 일본군이 여단히 한양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한양을 장악을 합니다. 그리고 6월 중순에는 열척의 일본 군남이이 조선 근해를
전체를 이제 정찰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촉발의 상황이 이제 전개가
되면서 일본이 물러나지 전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오돌리하고 원세계가 협상을 합니다. 철군 협상입니다. 그래서 6월 13일
날 협상을 시작해서 6월 11일 15일 날 일본은 인천에 250명
정도의 병력만 남기고 어 청구는 아산에 400명만 남기고 철권한다.
이렇게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옷돌이는 그렇게 했고 뭐 원세계가
당연히 그렇게 하기를 바랬었는데 그런데 오토리의 그 밑에던
참사관이었던 스기무라부터 반대를 합니다. 여기서 철근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무스문의 미츠 일본 외모 대신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상황은
어느 쪽이 우세한 군사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라면서
철군하지 말자 그럽니다. 자기 내가 훨씬 더 어 군사력에서 앞선다라는
자신감이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이 또 내각에서 논의를 했는데 지금 동학란이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이게 언제 다시 발발할지 모르는 상황 아니냐 그러면서
지금은 철병할 때가 아니라고 내가 결정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깐 6월
16일자 The Japan Weekly라고 일본에서 영국 사람들이 운영을 하고 있는
신문입니다. 영자 신문에서 이렇게 보도를 합니다. 인민들의 어쩔 줄
모르는 에너지가 외국과의 전쟁에서 분출구를 찾고 있다. 그 일본 내의
분위기는요. 완전히 전쟁으로 가자는 거예.이 이 상황이 이모근란 때 물러났었고
갑신 정변 때 물러났었고 김옥균 암살 때 청이 너무 이홍장이 너무 말도 안
되게 개입을 해 갖고 일본의 민권파 이런 사람들의 영웅이었던 김옥균내
시신을 저렇게 처참하게 해서 다시 본국으로 보내면서 그 암살했던 홍종홍한테는 엄청난 상을 주고 영웅
대접을 하고 이런 일이 마구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일본 여론을 계속해서
자극하 자 자극하고 있었고 어떻게든지 뭐를 어떻게 한번 손을 봐야 된다.
이제 이러고 있었는데 갑신정변 이후 10년 동안에 1번이 엄청 변했던 거
너무 많이 변했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내각제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군대를 완전히 새롭게 해서 독일에서 독일에서 멜켈 소령
같은 사람을 불러갖고 완전히 육군사관학교 다시 만고 참모를 다시 만들고 경제를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었고 교육을 수만 개의 초등학교를 만들고 중학교를
만들고 대학을 만들고 하면서 모든 면에 있어서 눈부신 발전을 해
왔거든요. 그러니까이 상황까지 도달하니까 이제는 10년 전에 일부이
전혀 아닙니다. 더군다나 여론까지도. 그러니까 저는이 대목에서
놀라운 변화가 뭐냐면 중국은 그냥 여전히 본건 국가예요. 지도부가
전쟁하자 그러면 이제 농민들 보통 사람들 끌고 와 갖고 그냥 전쟁하는 것뿐인데 일본에서는 이미
나라가 내 거라는 거를 느끼기 시작하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그게 이제 의회 정치나
이런 거에 무서운 점이고 교육 제도의 놀라운 효과입니다. 그러면서 본
국가였던 일본이 완전히 근대 국가에 국민으로 변해 갖고 우리 전쟁해야
된다. 이런 것이 이제 신문 이런 거를 통해서 여론을 통해서 이제 나오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지유신을
일으킨 어 조주하고 사스마 야마가 딸리 또뭐 이또 히로붐이 전부 다
이쪽 사람이고 옥구보 도시미지 뭐 이런 사람들은 또 사스마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모든 거를 운영하니까 이제 그때에 거기서 같이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지만 거기서 튀어나온
사람들 작은 번 도사 이런데 번 사람들이 만든 자유민권당 이런 것이
이제 야당이 되는 거죠. 그래서이 야당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당을 공격할 건덕지가 없어요. 사실 별로.
왜냐면 야당이 처음에는 야 의회 정치하라. 그러니까 권력을 좀 나누자. 의회 정치하라 그랬더니
이또가 그래 의회 정치하자. 그래 갖고는 헌법을 만들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의회를 만드니까 이제 야
야당으로이 사람들이 참여를 했죠. 그러니까 공격할 건덕지가 없으니까 뭐를 공격했습니까? 왜 도대체 일본은
조선을 조선을 상대로 좀 강한 외교 정책을 안 피고 맨날 도망만 다니 그
사람들도 개혁을 시켜야 되는 거지. 그렇죠? 그러니까 무슨 오사과 사건 같은데 막이 사람들이 민권파들이
건너가 갖고 김옥균과 박영호를 다시 자리에 앉혀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도록
하자 뭐 이런 음목까지도 벌어지고 그랬었던 거죠. 그러니까는 야당에서는
조선에 적극 개입을 해서 청을 물리치고 조선에 있는 기존 반동
세력을 자기네 보기엔 반동 세력은 빨리 없애라고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어떻게 됩니까? 드디어 내각이 결정을 하죠. 그래 알았어.
우리 전쟁으로 간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각이 그래
한다. 우리 전쟁한다. 그러니까 할 말이 없어지는 거죠. 근데 할 말만 없어지는게 아니라 이때 진짜로
열렬하게 야당도 정부를 지지합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그 야당 그 세력이었던 옷마 시계 농무 야당으로가 있었던 사람이 뭐
물론 나중에 이제 총리 대신도 하고 외모 대신도 하고 그런 사람입니다만 오쿠마가 누구냐면 와세대 대학을
창립하는 사람입니다. 오쿠마가 어 그 신문에다 이런 글을 씁니다. 은자의
나라를 처음 열어 근대문명의이기를 경험 경험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일본이고 조손을 독립국으로 전 세계에
소개한 것도 일본이다.이 작은 왕국을 문명의 길로 인도하여 번영하면서 국력을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일본의 의무다. 일본의 의무는 조선의 진보를 늦추고 독립을 훼손하는 그
어떤 열강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력하게
정부의 어 그 조선반도 개입 정책을 지지를 합니다. 오늘은 어
어떻게 해서 사실 청이 청일 전쟁에 말려들었는가라는
어 그 부분을 좀 살펴봤습니다. 어 자기네는 당연히 조선이 출을 하니까
아 속방에서 일어난 난리를 약간 진압을 하기 위해서 좀 보내는 정도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일본에다
통보를 하면은 일본도 뭐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더군다나 진압이 되자마자 자기 철근할
거다라고까지 다 약속을 하면은 괜찮겠다 싶었죠. 그렇지만 일본은이
기회만 지금 엿보고 있었던 거죠. 그니까 국가의 국내적인 문제를 다
정비를 하고 국력을 대폭 향상시키고 최정의 군대를 만들어 낸 다음에 이제
어떻게 이거를 이용해서 우선 조선에서 청의 영향 청을 축출하고 그러면서
자기네 영향을 넓혀갈까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완전히 청이 거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너무나 좋은 기회를 주는 거죠. 어처군이 없게 학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즉 한쪽이 출하면 다른 쪽도 출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이 출을 하는 거죠. 물론 조선의 입장에서 굉장히 간절했었던 거고 민시척쪽 입장에서 출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거듭 요청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이용해서 일본이
본격적으로 출을 하고 청구는 아산으로 진주를 해서 그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중점을 두지만 일본은 아예 재물포로 군대를 전개를 하면서 한양을 장악을
하면서 이때부터 뭡니까? 두 가지를 합니다. 청과 전쟁을 통해서 청을
조선해서 축출하는 거. 그리고 조선의 내정을 개혁을 해서 갑신정 때도
못했던 조선의 근대화를 꾀해야겠다. 즉 갑보 경장을 시행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어떻게 일본이 군대를 아산으로 전개시키면서
천군과 전쟁이 시작되는가 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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