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 -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9
박찬승 (지은이)역사비평사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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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9권. 191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의 출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출범, 192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좌우 분화와 상호연대, 1930년대 독립운동 진영의 재편, 중일전쟁.태평양전쟁 시기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 등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기별로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각 장의 앞부분에는 독립운동사의 배경으로서 각 시기 일제의 지배 정책을 정리했다.
1980년대 이후 학계 안팎에서 독립운동의 주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1.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 2. 민족협동전선(민족통일전선) 세력 중심론, 3. 사회주의 세력 중심론 등이 논쟁을 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박찬승은 이렇게 독립운동의 한 특정 세력을 주류로 설정하는 것은 다른 세력을 비주류로 설정하거나 아예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어느 한 부류를 중심에 둔 서술을 피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서술로 한국독립운동사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목차
발간사 ‘20세기 한국사’를 펴내며
책머리에 한국 독립운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01 일본의 한국병합과 국내외 독립운동의 개시(1910~1919)
일본의 한국병합과 조선총독부 설치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무단통치’
의병과 비밀결사로 일제에 저항하다
서북간도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만들다
러시아와 미주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되다
스페셜 테마 :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자결 순국한 이들
02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출범(1919~1930)
1919년, 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치다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다
임시정부, 리더십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국민대표회의와 민족유일당 운동
독립군,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승을 거두다
의열단, 총독부와 동척에 폭탄을 던지다
03 ‘문화정치’와 민족·사회주의운동의 분화(1919~1930)
사이토 총독의 이른바 ‘문화정치’
‘문화운동’과 자치운동의 모색
민족협동전선으로서 신간회를 결성하다
사회주의운동이 시작되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다
청년·노동·농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다
스페셜 테마 : 독립운동 탄압을 위한 악법들
04 ‘만주사변’ 이후 독립운동 진영의 재편(1931~1936)
우가키 총독의 ‘농촌안정’과 ‘자원수탈’ 정책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혁명적 노동·농민운동
한인애국단, 임시정부를 구하다
정당 중심의 독립운동이 시작되다
만주에서 유격대의 무장투쟁이 전개되다
스페셜 테마 : 아나키스트의 독립운동
05 중일전쟁·태평양전쟁기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1937~1945)
미나미 총독의 황국신민화 정책
전시체제와 강제동원
국내 항일운동 세력, 해방을 준비하다
중국 관내 좌우파, 연합을 시도하다
화북·만주의 무장 세력, 후일에 대비하다
임시정부, 좌우 통합정부로 다시 태어나다
06 글을 맺으며_한국 독립운동의 의의와 한계
한국 독립운동의 의의
한국 독립운동의 한계
독립의 완성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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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찬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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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목포대와 충남대 교수를 거쳐 한양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2022년 2월 정년퇴직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일본국제문화연구센터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역사문화학회·한국사회사학회·한국구술사학회·한국사연구회 회장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문위원장·국사편찬위원회 위원·동북아역사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주로 한국근현대의 사회사, 사상사를 연구했으며, 단독 저서로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민족주의의 시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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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역사비평 155호>,<상놈과 국왕>,<경계를 건너다>등 총 301종
대표분야 : 역사 12위 (브랜드 지수 357,52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제강점기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의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감옥을 수없이 드나들어야 했으며, 열악한 환경의 감옥에서 질병으로 희생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국외의 독립운동가들은 어느 나라로부터도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 가산을 팔고 재외 동포의 후원에 의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무장투쟁이나 의열투쟁에 참여한 이들은 처음부터 목숨을 내놓고 뛰어들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은 각지에서 각자 치열하게 싸웠으며 큰 희생을 감수했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은 모두 그 나름대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분열과 반목이 아닌 연대와 통합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활동은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라
낡은 질서를 버리고 평등과 자유의 새나라를 건설하라
해방과 건국에 모든것을 바친 치열한 역사를 만난다
조국해방, 민주공화국 건설에 매진한 국내외 독립운동사 총정리
일본의 한국병합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동학농민군, 의병 등으로 결집하여 치열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병합 이후에도 만세운동, 무장투쟁, 외교운동, 의열투쟁, 노동쟁의와 소작쟁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끈질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인들은 단지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원했던 것은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설이었다. 다양한 이념과 경제체제의 구상이 엇갈리는 가운데 독립운동의 분열은 뼈아픈 현실이었지만, 이념의 대립을 절충하고 한국의 실정에 맞는 우리만의 건국이념을 만들어내 좌우를 통합하려는 노력도 분명히 있었다. 20세기 한국의 독립운동은 외세에 의한 분단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지만, 해방과 건국을 향한 그들의 희망과 열정을 이어받아 ‘통일’로써 ‘독립’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각 시기별 독립운동의 양상과 함께 그 배경이 된 일제 지배 정책을 살피다
좌·우파의 독립운동에 대한 균형 있는 서술과 교과서적 구성
이 책은 191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의 출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출범, 192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좌우 분화와 상호연대, 1930년대 독립운동 진영의 재편, 중일전쟁·태평양전쟁 시기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 등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기별로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각 장의 앞부분에는 독립운동사의 배경으로서 각 시기 일제의 지배 정책을 정리했다.
1980년대 이후 학계 안팎에서 독립운동의 주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①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 ② 민족협동전선(민족통일전선) 세력 중심론, ③ 사회주의 세력 중심론 등이 논쟁을 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필자 박찬승은 이렇게 독립운동의 한 특정 세력을 주류로 설정하는 것은 다른 세력을 비주류로 설정하거나 아예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어느 한 부류를 중심에 둔 서술을 피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서술로 한국독립운동사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1차 완간 D-1
저자 연속강좌 비롯 다양한 행사로 그간의 성과를 점검하고 2차 도약을 준비
‘20세기 한국을 꿰뚫는 대중역사서’를 목표로 2007년부터 한 권 한 권, 느리지만 충실한 걸음으로 출간되어온 <20세기 한국사 시리즈>가 이번 <한국독립운동사> 출간으로 아홉 권째가 되었다. <20세기 한국사 시리즈>는 6월 말 출간 예정인 <일제시기 사회문화사>(가제)를 열 권째로 시리즈의 1차 출간분 완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현대사 3권(<이승만과 제1공화국>,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북한사 2권(<북한의 역사> 1, 2), 일제시대 3권(<일제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한국독립운동사>, <일제시대 사회문화사>), 그리고 주제사 2권(<20세기 한국경제사>, <20세기 한일관계사>) 등은 “개항기 이후 오늘날까지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대중역사서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축적한 근현대사 연구 성과를 망라해 일반인들에게 전하는”(<한겨레신문>) 것을 목표로 했다. 1차 완간은 시리즈의 ‘끝’이 아니다.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비평사는 저자 연속강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로 시리즈 1차 완간의 성과를 기념하고 점검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아우르지 못한 20세기 현대사의 다양한 이야기들로 더욱 알찬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한 준비에 매진할 예정이다. 공감순

망조가 든 이 시대에 한번쯤은.. 아니 꼭 읽고, 알고, 곱씹고, 새기고 가야할 책 중 하나.
VANITAS 2014-12-2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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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해도 안되는 시기에 뭐라도 하려는 치열함...
호~~잇! 2023-02-14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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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을 자세히 저자의 관점에서 담담히 서술한 책
smarxible 2015-08-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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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러티브가 하나도 없고 정보만 가득해서 눈이 팽팽 돌아요 ㅠㅠ 저는 주제별, 인물별 독립운동사를 읽는 쪽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일락 2019-06-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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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를 생각하며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라는 말이 있다. 친일파의 후손이 정계, 재계, 학계에 있으면서 친일의 성채를 견고히 쌓고 있다. 낡은 옷을 입고, 누추한 집에서 사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생각하며, '한국독립운동사'를 펼쳐들었다.
1. 처음 알게된 5.30 만주 봉기
1930년 두도구 방면에서 한인의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조선인 민회 사무실과 일본 영사관 분관이 습격당했으며, 용정에서는 전화선을 차단하고 발전소를 습격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간도출장소에 폭탄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간도영사관 경찰에 39명이 체포되었다. 5.30봉기 실패 이후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지에서 12월 까지 봉기가 계속되었다. 일본경찰이 2천여 명을 체포하여 4백명을 예심에 넘겼고, 272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중 12명이 옥사하고 22명이 사형을 언도 받았다. 참으로 격렬한 민중봉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봉기를 이책을 통해서 처음알았다. 사회주의 계열의 강렬한 항일운동이라서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5.30 만주 봉기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했다면 좌우익을 가릴 필요가 없다.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아직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사회의 갈길은 멀다는 생각에 쓸쓸함을 느낀다.
2. 누락된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
박찬승이라는 저명한 역사학자가 우리의 독립운동을 정리한다기에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박찬승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가장 강렬한 항일 운동이 무장투쟁을 누락시켰다. 그중에서도 1930년대 남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양세봉 장군의 조선혁명군과 북만주를 호령했던 지청천 장군의 한국독립군을 누락시켰다. 대전자령 전투는 제2의 청산리대첩이라 불리는 유명한 전투이다. 이를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빠뜨려서는 안된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박찬승 교수는 누락시켰다.
박찬승 교수가 일부러 누락시켰다기 보다는 그가,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도 항일 무장투쟁사에 대한 평가가 낮고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추후라도 이부분은 반드시 보충해주길 기대한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정리하고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한 책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지만, 박찬승교수 조차도 한국 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을 모른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한다. '암살'이라는 영화의 한배우는 "우리 잊으면 안돼"라고 외쳤다. 만주벌판에서 쓸쓸히 쓰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은 외치고 있다.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라고... 우리는 기억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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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9-10-31 공감(3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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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식민지기 역사는 독립을 위한 역사였다.
2007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역사비평사 ‘20세기 한국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책이다. 이 책보다 조금 뒤에 나온 ‘일제강점기 사회와 문화’ 책을 통해 총 10권의 기획이 일단락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 그간 이 시리즈의 책들을 수시로 찾아봤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어떤 주제/내용의 책일까’ 기대하며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20세기 한국사’이면서도 그간 대한제국을 다룬 서영희 선생 책을 제외하고는 식민지기에 대한 책이 없었는데, 이번 두 권의 발간으로 공백을 메웠다.
‘한국독립운동사’라는 제목이 뭐랄까,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익숙한 제목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대사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보았지 책 제목으로 독립운동사를 내세운 건, 최근 현황에 둔감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더욱이 최근 책들 가운데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2년 전 즈음 독립운동사 강의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 자신 독립운동사를 전공했지만 근대사 전공자 가운데서도 독립운동사를 주로 하는 연구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연구자들에게도 어렵기 때문이라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도 무엇을 배웠고 남겼는지 모를 만큼 복잡해 그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정도로 지나쳤었는데, 그런 기억을 떠올리니 왜 제목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고 생각했는지 알 것 같고 그 낯섦이 실은 반가운 낯섦이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기 독립운동을 3·1운동 이전, 3·1운동과 임시정부, 1920년대 민족주의/사회주의운동의 분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일전쟁 이후, 총 다섯 시기로 구분해 서술하고 있다. 각 시기마다 일제의 지배정책을 개괄해 독립운동이 어떤 맥락에서 전개되었던 것인지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의 설명처럼 식민지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주체는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민족협동전선 세력,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이 중 무엇을 주류로 볼 것인지는 역사관이 개입된 미묘하고 논쟁적인 문제일 수 있다. 또한 거시적 관점에서 ‘해방’과 ‘건국’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독립운동가들이 각지에서 각자 치열하게 싸웠고, 큰 희생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모두 나름대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각각의 독립운동 양상을 객관적으로 충실히 정리하고자 했다.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떠나 식민지기 우리 조상들이 독립을 위해 어떻게 애써왔는가를 알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찾아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여담이지만 사회주의운동이 독립운동/민족해방운동의 영역에 처음으로 포함, 서술되었던 것이 1980년대, 강만길 선생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반쪽짜리 역사가 나머지 반쪽을 찾아 나선 게 불과 30여 년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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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fjj 2014-07-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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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오늘날 대한민국 광복절 70주년을 맞이할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갈등과 역겨운 고난을 극복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일일이 보여주면서 어떻게 그런 절망과 고통들을 이겨내어 현재의 우리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건지를 일목요연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시한번 대한민국의 광복절이라는 개념을 다시 재정의 내릴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오기에 힘겹게 독립운동을 위해 애써준 분들의 의미까지도 되새길 수 있었던 뿌리 깊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준 의의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dhdud204 2015-08-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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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사: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요약 및 평론
1. 도서 핵심 요약
박찬승의 <한국독립운동사: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은 구한말 의병운동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에서 전개된 한국 독립운동의 전체적인 흐름과 체계를 거시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정리한 통사적 연구서다. 저자는 독립운동을 단순한 일제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지 않고,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주체적 과정으로 재조명한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핵심 축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첫째, 독립운동의 이념적 진화와 국가 구상의 변천이다. 저자는 의병운동과 계몽운동 시대의 '복벽주의(선왕의 왕조를 되찾으려는 사상)'가 1919년 3·1 운동을 거치며 '민주공화주의'로 대전환을 이루는 과정을 명확히 지목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은 단순한 망명 정부의 탄생이 아니라,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인민이 주권자가 되는 민주공화제 이념이 상징적으로 실현된 사건이었다. 이후 좌우익을 막론하고 제시된 다양한 건국 강령들은 해방 후 어떠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열띤 고민의 결과물이었음을 밝힌다.
둘째, 공간적·노선별 다각화다. 독립운동의 공간을 만주, 관내(중국 본토), 연해주, 미주, 그리고 국내로 세분화하여 각 지역적 조건에 따라 전개된 다채로운 투쟁 방식을 조명한다. 무장투쟁, 외교독립론, 실력양성운동, 사회주의 노동·농민운동 등 다양한 노선이 서로 대립하고 협력하며 발전한 역사를 균형 있게 포착한다.
셋째, 좌우합작과 민족통일전선 운동의 역동성이다. 1920년대 신간회 운동부터 1930~40년대 중국 관내에서 전개된 민족혁명당 및 임시정부로의 좌우 세력 결집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다. 저자는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권 회복'과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연대를 모색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한국 독립운동사가 단지 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슬픈 투쟁사가 아니라, 현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의 초석을 놓은 '건국 투쟁사'였음을 명확하게 입증한다.
2. 평론: 저항을 넘어 '새로운 국가'를 향한 주체적 역동성
박찬승의 <한국독립운동사: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은 독립운동사 연구가 쌓아온 학술적 성과를 집대성함과 동시에,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힌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학술적 공헌은 독립운동의 성격을 '지배에 대한 저항'에서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주체적 형성 과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독립운동사가 일제의 수탈과 폭력에 맞선 피해자적 저항이나 영웅적인 무장 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면, 저자는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해방 이후의 사회 구조와 국가 형태'에 주목한다.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의 헌법 제정, 조소앙의 삼균주의, 좌우합작 세력의 건국 강령 등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독립운동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민주공화국의 사상적·제도적 모태였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또한 노선과 이념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분단과 이념 대립으로 인해 오랫동안 독립운동사는 좌와 우, 혹은 특정 노선 중심으로 편향되거나 파편화되어 기술되는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저자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계열의 외교·무장 투쟁뿐만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의 사회주의 계열 무장투쟁, 국내 노동자·농민의 계급 투쟁까지 동등한 역사적 비중으로 끌어안는다. 이들을 대립적 관계로만 보지 않고, '민족 해방'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상호 작용한 역동적 관계 속에서 기술한 점은 학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성취다.
다만, 통사적 포괄성을 지향하다 보니 개별 사건이나 인물의 내면적 갈등, 그리고 민중의 일상적 삶과 독립운동의 접점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간결하게 처리된 감이 있다. 거시적인 정세 변동과 조직, 이념 중심의 서술 구조 때문에 대중적 입문서로서는 다소 딱딱하게 읽힐 여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계승해야 할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지적한다. 분단과 이념 갈등이라는 현재적 한계를 넘어, 80여 년 전 선열들이 꿈꾸었던 통일된 민주공화국의 비전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중후한 역사서다.
<한국독립운동사―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요약 평론
박찬승의 <한국독립운동사―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은 1910년 한일병합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는 한국 독립운동의 전개를 국내외의 다양한 세력과 운동을 종합하여 설명한 개설서다. 이 책의 특징은 어느 한 계열을 독립운동의 주류로 내세우지 않는 데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장독립군, 의열투쟁 세력, 노동자와 농민, 학생과 여성, 종교계와 해외 한인사회를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움직인 복수의 주체로 파악한다.
저자가 보기에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본을 몰아내기 위한 저항이 아니었다. 독립 이후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준비하는 건국운동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누가 일본에 저항했는가>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가>에 있다.
- 병합과 독립운동의 새로운 출발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면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헌병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크게 제한되었고, 토지조사사업을 비롯한 식민지 정책은 조선인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었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겼다고 저항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의병운동의 일부는 국내 산악지대와 만주로 이동해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독립의군부, 대한광복회와 같은 비밀결사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파를 처단하며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서북간도에서는 신민회 계열 인사들이 독립군 기지를 건설했다. 경학사, 부민단, 신흥무관학교 등이 만들어졌으며, 이곳에서 훈련받은 청년들은 이후 독립군의 핵심이 되었다. 연해주에서는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가 조직되었고,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대한인국민회가 외교와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이 시기 독립운동은 국내 투쟁과 해외 근거지 건설이 결합된 형태였다. 국권회복운동이 장기적인 독립전쟁 준비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년 3·1운동은 독립운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종교인과 학생들이 준비한 독립선언은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도시뿐 아니라 농촌과 장터, 학교와 광산에서도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노동자, 농민, 상인, 여성,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3·1운동은 일본의 지배를 즉각 끝내지는 못했지만 세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남겼다.
첫째, 독립운동의 주체를 일부 지식인과 무장세력에서 일반 민중으로 확대했다. 둘째, 왕조를 복원하려는 복벽주의보다 민주공화국을 세우려는 공화주의가 독립운동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셋째, 국내외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하려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19년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다. 이는 독립운동이 단순한 국권회복을 넘어 국민이 주권을 갖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곧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국내에서 세금을 걷거나 군대를 운영할 현실적 기반이 약했고, 외교독립론·무장투쟁론·실력양성론 사이의 전략 갈등도 컸다.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과 지도력 문제는 임시정부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켰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열렸지만 개조파와 창조파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그럼에도 임시정부의 의미는 작지 않았다.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부였으며, 민주공화국이라는 건국 원칙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 독립전쟁과 의열투쟁
3·1운동 이후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독립군 부대가 크게 성장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고, 김좌진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을 비롯한 여러 독립군 부대는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대표적인 승리였다.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전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국내외 한인사회에도 큰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간도참변을 일으켜 조선인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을 학살했다. 독립군은 러시아령 자유시로 이동했지만,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만주의 독립군은 참의부·정의부·신민부 등으로 재편되었으나 통합과 분열을 반복했다.
한편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은 총독부, 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같은 식민지 통치기관을 직접 공격했다. 의열단은 소수 정예의 폭력투쟁을 통해 식민통치에 공포를 주고 민중의 혁명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의열투쟁은 군사적으로 일본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가 안정되었다는 일본의 선전을 깨뜨리고, 독립운동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
3·1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했다. 총독부는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바꾸고 일부 조선어 신문의 발행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지배의 본질을 바꾼 정책이 아니었다. 경찰 인력과 정보망은 오히려 확대되었으며, 민족운동을 분열하고 온건세력을 회유하려는 통치방식이었다.
1920년대 민족운동 진영에서는 교육과 산업을 발전시켜 민족의 실력을 키우려는 문화운동이 전개되었다.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민족적 자립의식을 높였지만, 식민지 권력과 지주·자본가 중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일부 민족주의자는 일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치권을 얻자는 자치운동으로 기울었다. 이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공동전선을 모색했다. 그 결과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 세력이 함께 참여한 국내 최대의 합법적 민족운동단체였다. 전국에 지회를 두고 노동·농민·학생운동을 지원했으며,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진상조사와 민중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그러나 내부 노선 갈등과 일제의 탄압 속에서 1931년 해소되었다.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운동도 빠르게 성장했다.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었고 노동자와 농민은 파업과 소작쟁의를 전개했다. 여성운동과 청년운동, 형평운동도 활발해졌다. 독립운동은 민족해방뿐 아니라 계급차별, 성차별, 신분차별을 철폐하려는 사회해방운동으로 넓어졌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은 학생과 청년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광주학생운동은 전국적인 동맹휴학과 시위로 확산되어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대중운동이 되었다.
- 만주사변 이후의 재편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우면서 독립운동의 조건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군은 만주의 독립군 근거지를 공격했고 중국 세력과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남만주에서는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북만주에서는 한국독립군이 활동했다. 만주의 공산주의 계열 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해 유격전을 전개했다.
중국 관내에서는 김구가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는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운동의 존재를 알렸다. 특히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독립운동은 개인 의열투쟁에서 정당과 군사조직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투쟁으로 재편되었다.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민족혁명당 등 여러 정당이 등장했다. 그러나 좌우 이념과 지도자 사이의 갈등으로 통일전선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찬승은 이 분열을 독립운동가 개인의 성격이나 욕심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소련의 영향, 국제정세의 변화, 독립 이후 국가체제에 대한 차이가 함께 작용했다고 본다.
- 전시체제와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조선은 일본의 총력전 체제에 편입되었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고 조선어 사용을 억압했으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수많은 조선인이 노동자, 군인, 군속,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
국내의 공개적인 독립운동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비밀결사와 학생운동, 노동현장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동맹은 일본의 패망에 대비해 국내에서 건국을 준비했다.
중국 관내에서는 좌우 독립운동 세력이 점차 결집했다. 김원봉 계열은 조선의용대를 조직했고, 일부는 화북으로 이동해 조선의용군으로 발전했다.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임시정부는 좌우 통합을 추진하면서 김원봉과 민족혁명당 계열 인사들을 받아들였다.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주장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이는 독립 이후 토지와 주요 산업을 개혁하고 보통선거와 공교육을 실시하려는 사회개혁적 국가 구상이었다.
미국 전략첩보국과 한국광복군은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항복하면서 실행하지 못했다. 독립운동 세력은 일본과 장기간 투쟁했지만 연합국의 정식 교전국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고, 해방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 독립운동의 의의
이 책이 평가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첫 번째 의의는 식민지 지배를 한 번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본은 조선의 병합이 합법적이며 조선인이 일본제국에 동화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지속적인 독립운동은 이러한 주장을 부정했다.
두 번째 의의는 민주공화국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치면서 독립국가의 형태는 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정이어야 한다는 합의가 형성되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임시헌법, 건국강령은 해방 이후 국가의 기본 원리를 미리 구상한 문서들이었다.
세 번째는 독립운동이 민족해방과 사회개혁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들은 단순히 일본인을 몰아내고 옛 사회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토지개혁, 노동권, 여성의 권리, 교육의 평등과 경제적 균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를 구상했다.
네 번째는 국내외 한민족을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만주, 연해주, 중국 관내, 일본, 미주 등 세계 각지의 한인사회는 자금과 인력, 외교와 군사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독립운동의 한계
그러나 독립운동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장 큰 한계는 독립운동 세력이 하나의 통일된 지도부와 군사력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념과 전략, 지역과 인맥의 차이로 분열이 반복되었다.
두 번째 한계는 국제적 역량의 부족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소련,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지원을 얻으려 했지만 국제정치에서 한국 문제는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었다.
세 번째는 국내 대중과 해외 독립운동세력의 연결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군이 국내에 지속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1945년 해방은 독립운동 세력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패배시켜 얻은 해방이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의 항복으로 찾아왔다.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고, 독립운동 세력은 새 국가 건설의 주도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박찬승은 이를 한국 독립운동의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고 남북에 각각 정부가 세워졌지만,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던 통일된 민주국가 건설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립운동사를 영웅 중심의 순국서사로만 서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존중하면서도 각 운동의 전략과 조직, 사회적 기반, 내부 갈등과 실패를 함께 다룬다.
특히 민족주의 계열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만을 독립운동의 정통으로 설정하지 않고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의 활동을 함께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저자는 특정 세력을 주류로 설정하면 다른 세력은 자연스럽게 비주류나 배제 대상으로 밀려난다고 본다. 따라서 책은 독립운동의 전체상을 균형 있게 보여주려 한다.
이러한 서술은 냉전시대의 독립운동사 인식을 넘어선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이 오랫동안 축소되거나 금기시되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항일무장투쟁사가 과도하게 강조되었다. 박찬승은 양쪽의 국가 중심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을 여러 세력이 참여한 복합적인 민족해방운동으로 복원한다.
또 하나의 강점은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주의, 조소앙의 삼균주의, 좌우합작과 민족유일당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이 단순한 국권회복을 넘어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상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특정 인물이나 정부에서만 찾기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의 민주공화적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다만 책의 균형적 서술은 장점인 동시에 한계가 된다. 많은 조직과 사건을 빠짐없이 다루다 보니 개별 인물의 내면과 독립운동 현장의 구체적인 삶은 상대적으로 압축된다. 청소년과 일반 독자를 위한 개설서라는 성격상 조직명과 정당명, 인물명이 연속해서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독자가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또한 독립운동의 최종 목표를 ‘통일’로 규정하는 결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통일이 독립의 완성이라는 주장은 분단이 외세의 개입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통일 자체가 자동으로 민주주의, 평화,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통일국가는 단순히 영토가 하나인 국가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균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이었다. 따라서 독립의 완성은 통일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적 평등,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함께 실현할 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 종합 평가
<한국독립운동사―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은 독립운동을 몇몇 영웅의 업적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계보로 축소하지 않는다. 한국의 독립은 국내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참여한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투쟁의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무기를 들었고, 폭탄을 던졌으며,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학교를 세웠다. 노동자는 파업했고 농민은 소작쟁의를 벌였으며 학생은 거리에서 만세를 외쳤다. 여성은 비밀문서를 운반하고 군자금을 모았으며 독립군과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독립운동은 하나의 조직이나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었다.
동시에 이 책은 독립운동을 성공담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독립운동 세력은 분열했고 국제정세를 주도하지 못했으며, 해방 이후 통일국가 건설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 때문에 독립운동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식민지 지배가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시대에도 독립과 민주공화국을 상상했고, 그 구상을 조직과 문서와 행동으로 남겼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 독립운동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이 주권자가 되는 민주공화국, 민족과 계급과 성별의 차별을 줄이는 사회, 세계의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공존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독립운동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것은 독립운동가를 기념하고 훈장을 수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사회적 균등,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오늘의 조건에서 계속 실천하는 일이어야 한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박찬승의 <한국독립운동사>는 한국의 독립이 1945년 8월 15일 하루에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다양한 사람들의 해방과 건국을 향한 집단적 실천이었음을 보여주는 균형 잡힌 독립운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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