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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알라딘: 나는 제사가 싫다 이하천

알라딘: 나는 제사가 싫다
나는 제사가 싫다 - 삼십년 동안 가부장제와 맞서 싸운 한 여성작가의 외침 
이하천 (지은이)이프(if)2000-01-01
===
 8.0 100자평(1)리뷰(6)

272쪽148*210mm (A5)354gISBN : 9788995040928

책소개

한국의 기혼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제사'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유교문화의 핵심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시댁의 제사를 치르며 느꼈던 왠지 모를 억울함, 중노동 뒤의 피로와 그 절차의 터무니 없는 부당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대다수 기혼남성들에게 '제사'는 끝까지 지켜야 할 미풍양속이고 신성한 의식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남성들, 당신들이 다 가져가라'고, '왜 그 좋은 것을 여성에게 강요하느냐'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때로는 날카롭고 차분한 어조로 '호주제'와 '제사'로 대표되는 이땅의 가부장제도와 뿌리깊은 성차별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남녀 양성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제사 양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에 이어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출판부에서 펴낸 세번째 단행본이다.


목차
1.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사회가 바로 상전이다.
2. 자라지 않는 아이 한국남성의 영혼
3. 구걸하는 영혼, 남성은 거지가 아니다.
4. 우리집 동물이야기
5. 가부장제와 나의 자녀교육
6. 근대성의 발견과 정신해방
7. 메이크업의 사회적 의미와 나의 스타일
8. 우리는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9. 생존을 위해 문학을 하다니!

책속에서
제도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된 제도는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부계조상에 대한 제사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듯이 여성에게 강요해온 이 제도를 나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젖줄을 대놓고 있지 못한 제도를 어른으로써 내 후손들에게 절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본문 267~268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하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49년 충북 제천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17살 때 스승으로 나타난 한 남자와 만나 6년뒤 결혼해서 맏며느리가 되었다. 결혼후 남편의 공부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 다시 5년 후 캐나다로 건너갔다. 어느 누구와도 형식적인 만남을 강요당하지 않는 삶에서 의의를 찾고 싶었던 그는 15년의 외국 생활동안 만났던 교포 여성들에게서 마치 죄인과도 같은 모습을 보았다.

교포 여성들이 풍기는 '피해의 냄새'와 남성들의 '권위의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아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해 그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천착하다가 한국의 가부장제 제사를 만났다.

지은 책으로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통나무, 1993) <불타는 대지>(중명, 1997)등이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나의 제사 격파기'와 '엄마의 독이 아들을 죽이다'등을 기고했다. 접기
최근작 : <내가 증오한 사랑>,<나는 제사가 싫다>,<불타는 대지> … 총 3종 (모두보기)

이하천(지은이)의 말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실험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이와 같은 언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싸움을 기본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감을 한다. 나는 이 언어의 싸움을 우리가 해낼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이 사회에 험상궂고 찌그러진 양철들처럼 왜곡되어 웅크린 모습으로 서 있는 가부장제의 귀신들을 몰아내고, 해방된 자아가 곳곳에서 숨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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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사가 싫어' 서 읽어봤는데 꽤 동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한번쯤 읽어보시길.. 
Matilda 2011-09-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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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즈음에 다시 제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 새창으로 보기
처음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건 <시사저널>에선가, 이 책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였다. 일단 매우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 남의 집 며느리된 여자 치고 제삿날이 즐겁기만 한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만, 그렇다고 <나는 제사가 싫다>고 사회에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이하천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었지만, 이 책만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하천이라는 사람 역시, 다른 대부분의 여성학자들처럼 매우 잘 이해해주는 시어머니가 계시거나, 남편이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할 것이다.

이름 있는 여성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생각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일단 그들의 처지가 나와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을 딛고 일어섰으면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그들의 얘기를, 나는 오히려 답답하다고 느끼던 차였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여성학자들이 밤새워 토론하고 때로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행사에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아이를 돌봐주는 친정어머니(아주 가끔은 시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었고, 특별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면서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한 여성학자도 집안을 꾸리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모와 함께 살았다.

아마 이하천이라는 작가도 이런 부류가 아닐까 나름대로 의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훨씬 용감한 종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최소한 책에서 보자면).

<제도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된 제도는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부계조상에 대한 제사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듯이 여성에게 강요해 온 이 제도를 나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젖줄을 대놓고 있지 못한 제도를 어른으로서 내 후손들에게 절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

책의 맨 앞에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낯 붉힐 줄 모르는 감각으로 반만년이나 멍청하게 연장되어 온 낡은 권리를 움켜쥐고, 우는 것과 제사지내는 것밖에 모르는'

이라고 이야기했고, 부모란 모름지기 운운하시는 시아버지에게는

'부모가 뭔데요? 부모는 책임지는 자예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책임지셨지요? 그리고 무엇을 책임지실 건가요? 며느리는 자식이 아닙니다. 당신 아들이 죽어보십시오. 또 내가 당신 아들과 이혼이라도 해보십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들 자식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이입니다.'

라고 항변했다.

인간의 도리 운운하면 '그렇게 시시한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혼자 남을까 전전긍긍해하는 스스로에게 '내 기꺼이 혼자 죽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했단다.

일년에 몇 차례 그냥 눈 딱 감고 제사 지내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 어려운 말들, 남편과 헤어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이런 말들을 쏟아붓고 가정을 깨느니, 그냥 '나 하나만 입 다물면 집안이 조용해지기 때문에 참자'는 논리로 참아버리고 만다. 이하천 씨는 바로 이런 생각이 여성의 생명력을 없애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학의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처음으로 발표했던 향아설위(제사 지낼 때 위패와 밥그릇을 벽 쪽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살아 있는 사람 쪽으로 위패와 밥그릇을 갖다 놓는 것)에 남녀 평등의 개념을 접목시킨 새로운 제사 형식을 소개했다.

1. 제사상은 집에서 가장 좋은 곳에 준비한다.

2. 맑은 물을 아름다운 그릇에 그득 담는다. 계절에 맞는 꽃잎을 서너 개 띄운다.

3. 꽃과 향과 촛불을 준비한다.

4. 가족 전체가 제사상을 중간에 놓고 빙 둘러 앉다.

5. 사회자를 한 명 정하고, 그 사회자는 오늘은 누구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 조상에 대해 알릴 사항이 있으면 알린다.

6. 사회자의 주도로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요즈음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7. 3분 정도 묵념의 시간을 가지며 조상과 나의 삶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식이 끝나면 청수를 한 모금씩 돌아가면서 마신다.

8. 끝나고 파티타임을 갖는다. 그 전에 사회자는 오늘의 파티타임을 위해 누구누구가 수고해 주셨는지 이야기하고, 파티타임이 끝나면 수고하지 않은 사람들(물론 남자도 포함)이 설거지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9. 파티는 축제 분위기에서 (누구에게도 절대로 짐이 안 되도록 사전에 조정한다.

내 생각에는 6번 순서에 제사를 지내는 그 조상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며느리나 손자들이 모르는 조상일 경우엔 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떤 성품을 가진 분이었는지, 그분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제삿상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시사저널>에 가끔 시론을 썼던 설호정 씨는 <나의 제사 혁신기>라는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2001년? 혹은 그 이전?  4월 27일자 시사저널에 쓴 글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설호정이라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만 그 사람의 글은 예전에 <샘이 깊은 물>이라는 월간지에서도 비교적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었다. 매우 예리하고 때로는 신랄하지만 항상 대안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분, 요즘 뭘 하시지?)

큰며느리였지만 직장이 있었던지라 제사상 준비는 시어머니와 동서들이 했다. 그리고 그는 철저히 금품으로 보답했단다. 그러다가 결혼 스무해 쯤만에 드디어 전업주부가 되었고, 지체없이 시집의 대소사는 그의 앞에 떨어졌다. 몇 번 해 보니 역시 스트레스였다. 전통문화의 민족적 계승도 물론 좋지만 그 대단한 일이 왜 피 한방울 튀지 않은 며느리 집단의 노고로 감당되어야 하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동지의 입장일 것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그 시어머니의 아킬레스 건은 '형제 간에 의 상한다'였다. 그리고 제삿날 며느리들이 침울해하면 와서 잡수시는 넋들도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의 일은 시어머니가 다 알아서 하셨단다. 물론 그 과정에 긴 이야기들이 오갔겠지만 결과는 '절에서처럼 제삿상에는 꽃과 과일과 떡만 놓고 정성껏 지내자'였단다. 며느리도 현명하고 시어머니도 무척 현명하셨다.

난 태생적 한계인지 최소한 내 생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심하고 단순하다. 가끔 시집에 서운한 일이 있을 때도 '나 하나 참으면 세상이 조용하다'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리고 제사라는 제도 역시 이하천씨의 말처럼 '여성의 생명력을 말살시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히려 명절이면 오랜만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 얼굴 볼 수 있어서 반갑고,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면서 동서들끼리 남편들 흉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다가 난 큰며느리라서 제사 의식에 참여해 술도 따르고 절도 하면서 크게 소외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시어머니의 희생이 들어 있다. 웬만큼 제사음식 준비도 해 놓으시고, 며느리들에게 큰 부담을 지워주지 않으시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제는 주도권을 쥔 어른들의 생각이다. 시어른들이나 혹은 남편이 며느리(혹은 부인)를 철저히 노동력과 생산력으로만 본다면 제사뿐만 아니라 시댁의 어떤 행산들 즐거울 수 있겠는가.

후에 내 주도로 제사가 넘어왔을 때, 그때도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그땐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은 꼭 먹을 것만 하고(어차피 대가족이 모이면 먹어야 할 음식 양도 엄청날 터이니까), '유세차~' 하는 건 생략하고, 손자건 손녀건 부엌일은 같이 거들도록 하고, 설거지는 남자들에게 하도록 하고... 그 이름이 파티이건 명절이건 혹은 축제이건 제사이건 이름과 상관 없이 즐거운 날이 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제사가 즐겁다>는 말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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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9-10 공감(8) 댓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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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싫다 새창으로 보기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적지 않은 거부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우선 이책을 출판 기획한 '이프'가 종전까지 펴낸 책들처럼 제목부터가 파격적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난후엔 비록 아주 적절한 언어로 표현되었다고 말하는 데에는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제사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의 폐단을 극렬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미로 '제사' 라는 제도를 꼽은 것이다.작가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 작가 나름의 해결방안도 내놓고 있다. 지나치다 싶은 면이 없지 않으나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면에서 그러하듯이 투쟁하지 않으면 귀 기울이지 않는 토양에서 살아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양쪽 극단이 존재함으로써 평형을 이룰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남다른 성장 배경과 결혼 직후미국, 캐나다 등 인권 선진국에서의 이민 생활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꿰 뚫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대항할 수 있는 여력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한 사회의 가장 그 밑바닥에는 가부장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가부장제의 핵은 제사와 호주 제도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폐지든 개혁이든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라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폐해는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눌러도 된다' 는 의식을 한국인에게 심어준 데 있다고 보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권이 무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여성운동의 한 갈래에서 보기를 거부한다. 결국 이같은 사회속에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모두 피해자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아직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부장제와 뿌리를 같이하는 '충효' 사상 역시 우리가 떨쳐내야 할 악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개인 각각의 사회적인 책무를 망각한 체 충효사상에 입각한 가족 논리에 매달려 공공성은 던져버리고 부정 부패와의 결탁을 시작한다. 이에 대한 죄책감은 가족과 고향에서 칭송받고 그 속에서 우뚝 섬으로써 모두 위로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실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잘못도 '효' 앞에서 모두 용서되어 진다는 것은 있을수 없고 또 그것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효' 사상의 굴레를 벗고 인간으로서 개개인서로를 살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 할 때 이 사회는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작가는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바로 사회가 상전다' '근대성의 발견과 정신 해방' 이라는 두 가지를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로 적고 있는데,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정신세계 만큼은 아직도 저 중세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들, 한번 쯤 접해 볼 만한 책이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결코 평범 하지만은 않은 사회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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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mmyej 2003-04-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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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y2k님의 글에 동의하며 평점을 조금 낯추려고 참가.. 새창으로 보기
lhy2k님의 서평에 전적으로 동의..철없는 20대보다 조금 더 성숙한 자신에 대한 증거의 글 이상은 아니라는 말에 가슴이 후련.. 그러나 내용이 기대에 못 미쳐도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제목이 주는 파급효과와 영향력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비로그인 2000-10-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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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정말 싫다. 새창으로 보기
기혼자들의 가장 걱정과 큰 고통중에 하나가 이 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결혼을하고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그냥 하루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된다 라고 생각을 할수 있겠지만 일년에 몇번씩이나 돌아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제사라는 말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밀려오는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남자들에게라고 너무 힘들다고 조금의불평을 한다치면 그것을 이해못하고 그것이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오히려 위로라기 보다는 불평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당연히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지만 말 한마디라고 따뜻하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서운함도 든다. 이책을 읽은면서 많은 부분이 공감되는 것도 아주 많다. 왜 꼭 이렇게 힘들면서 까지 명절은 명절대로 있는데 또 제사를 치루어야하는지 하는 부분을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런 구세대적인 생각들이 어서 변화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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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2003-04-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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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개성, 확실한 색깔 새창으로 보기
오랫만에 확실한 개성과 확실한 색깔을 지닌 작가와 글을 만났다. 당당하고 확실한 필체에 매료되어 나의 하루는 한권의 책과 함께 헛되지 않은 시간으로 채워졌다. 매력적이다. 그 당당함. 그 확실함. 자신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30년을 줄기차게 괴로워 했고 정면으로 온몸으로 타협하지 않는 정신으로 작가 이하천씨는 우리 앞에 우뚝 섰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져라, NO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기억되는 두마디였다. 네가 인간이면 인간답게 당당한 자존심으로 너의 삶을 만들어 가라는 그녀의 꾸짖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는 정직함과 용기를 그녀는 가르친다. 아. 정말 나는 그럴수 있을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끝까지 말하고 나의 생활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쪽으로 만들어 갈수 있을까. 그래.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년이 걸리든 10년 20년이 걸리든 나두 해 보겠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을 찾아 해보겠다.

생활 속에 젖여 있는 봉건성과 식민성에 대항하여,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보겠다. 사람들 머리 속에 들어 있고, 또한 언어로써 수시로 표현되는 그 무지한 가부장제적 봉건성과 천박한 식민성에 아연해 있지만은 않겠다. 나도 나의 싸움을 준비해 갈 것이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멀었어..그래 너나 열심히 해봐.. 난 이대로 사는게 편해..어디 너 잘하나 두고 보자. ' 이런말 정말 너무 싫다.

왜, 왜 지금. 바로 지금 바꾸려 들지 않는가 , 왜 남들이 안되고 있으니 나도 안 하는게 당연하다고 하는가, 남들 핑계대지 말고 그래, 나라도 생각을 바꾸고 생활 방식을 바꾸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내 속에 있는 징징대며 불만족해 하는 어린아이를 자라게 하고 싶다. 나의 영혼을 자라게 하고 싶다. 언제까지 어린애로서 머물러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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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이하천씨의 재반론 - 시사저널

[논쟁] 이하천씨의 재반론 - 시사저널

[논쟁] <나는 제사가 싫다> 이하천씨의 재반론
 이하천(작가) () 승인 2000.03.09

"조상의 개념 다시 설정하라"
여성 작가 이하천씨가 <나는 제사가 싫다>를 펴낸 이후 우리 사회에 ‘제사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2월3일 전상인 교수(한림대·사회학)가 <문화일보>에 이씨 글에 대한 반론문을 기고하자, 이씨가 <시사저널>에 재반론을 보내왔다.

나는 제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남성 중심적인 지금의 제사 형태에 너무나 문제가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뿐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사 양식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뿌리를 자르는 틀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선택할 권리는 없고 단지 선고만 받는다. 그런 틀은 여성의 주체성을 빼앗는다.

나는 작가다. 작가는 정서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자연히 한국인의 심리 속으로 무수히 잠수해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내게 부각된 것은, 지금은 좀 먹고 살 만한데도 왜 이렇게 너도나도 내면에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건져올려진 것이 바로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틀이었다. 가부장제의 핵은 제사와 호적 제도이다.

“조상은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는 언제부터인지 어두운 그림 하나가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여성의 내면에 어린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장면이다. 남성은 어떤가? 남성도 역시 그 속에 어린아이가 하나 웅크리고 앉아 피를 흘리고 있다. 이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피를 흘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아이를 거대한 바윗돌이 빙 둘러싸고 있다.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책은 바로 이 거대한 바윗돌을 쳐내기 위해 쓴 책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조상의 개념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이란 무엇인가? 조상이란 부드러우며, 따뜻하고 인정스럽고 품위있고 자존심 있는 존재로 풀어내야 한다. 조상이라는 개념을 격상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조상은 깡패가 아니다. 더더욱 협박하는 자가 아니다. 나한테 경배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자손에게 벌을 씌우겠다는 식으로 조상의 개념을 축소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것은 가부장제가 특권적 권력 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유아독존적 발상이다. 뿌리는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도 엄연한 뿌리가 존재한다.

 


나는 이 책을 내놓고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 두 50대 여성의 입을 통해 나온 언어다. ‘그런 말 하면 칼 맞는다’‘화형 당할라’라는 언어이다. 이것은 조상을 핑계 삼아 이 가부장제가 얼마나 여성을 심리적으로 협박해 왔는지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래도 남성들이 할말이 있는가? 인간은 말 한마디에 걸려 몇십 년을 고생할 수 있는 극도의 심리적 동물이다.

사실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해야 하는가? 이 일은 이 땅의 사회학자·심리학자를 포함한 학자들이 우선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내가 하는 것뿐이다. 반박문을 쓴 이는 사회학자이다. 자신들이 했어야 할 일을 누가 해주었으면 사실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경박하다니! 그럴 때 쓰라고 ‘힘든 일을 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언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보낸 경박이라는 언어에 ‘낯 붉힐 줄 모르는 감각으로 반만 년이나 멍청하게 연장되어 온 낡은 권리를 움켜 쥐고’라는 언어를 되돌려 준다. 얼마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인구의 절반이 그토록 오랫동안 울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있는가? 그래도 할말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잘났나?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는 알 바 없고 적당히 서양에서 배워온 학문을 가르치고 효도나 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가부장제가 이 땅에 저지른 폐해는, 첫째 우리에게 강자의 논리를 심어주었고, 둘째 무엇이 이익이냐라는 잣대를 우리의 심리 속에 심어주었고, 셋째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서 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금방 드러나는 결론이다. 이 땅에서 장애자나, 정신병자나, 그 외의 약자 처지에 한번 서 보라. 그들은 천형의 벌이라도 갖고 태어난 생명처럼 살다 가야 한다. 강자가 강자인 것은 강자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약자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으라고 강자가 있다는 말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고 제 조상묘나 화려하게 하고 제 어머니에게 효도나 하고 고향에 가서 돈이나 뿌리라고 강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잣대를 끊임없이 심어주어 합리성을 쟁취할 심리적 갈피에 무엇이 이익이냐를 심어주었다. 이익 때문에 딸보다 아들을 좋아했고, 이익 때문에 작은아들보다 큰아들을 좋아했다. 이것은 가정에서 닭 한 마리 삶아 분배하는 과정만 보아도 금방 드러난다. 가정에서조차 이렇게 원칙의 잣대가 무너졌으니 무슨 할 말이 더 있는가?

또 여성들은 시댁에 가서 써야 할 언어·표정·옷차림과 친정에 갈 때의 언어·표정·옷차림이 틀리다. 남성은 어떤가? 그들은 사회에 나가 정의를 부르짖으며 난리를 치다가도 가정에 들어오면 권력자로 돌변해 무너져 내린다. 사회의 정의와 가정의 정의는 같은 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이런 남성들을 믿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자는 자신이 사회적 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도둑놈이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만 씹고 있는가? 또 친정 부모는 딸이 결혼하기 전에는 ‘너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너를 희생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린 여성에게 너무도 황당한 장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이 사십만 넘으면 책을 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원칙을 살리려고 책을 읽는 것 아닌가? 왜 여성에게 이토록 패배감이 들도록 만드는가? 그 보복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느냐는 말이다.
“가부장제는 우리 영혼의 문제”

극심한 억압은 반드시 다른 희생의 피를 빨아 먹고서야 휴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억압은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압의 구조를 풀어내야 한다. 이 땅의 여성은 이런 억압의 언어를 곳곳에서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이 억압은 어머니라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을 때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심리학을 조금만 공부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반박하는 이는 서양의 바버라 부시가 한 선택과 한국 여성의 선택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바버라 부시에게 한국 여성의 억압 구조를 설명하면 아마 ‘오 마이 갓!’할 것이다. 서양은 이미 거지 노릇조차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사회다.

한국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남의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그 집 조상을 모셔야 하는 선고를 엄중히 받는다. 그래서 나는 가부장제를 물고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래도 못 알아듣겠으면 남성들의 위치를 여성과 바꾸어 보면 그 해답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아마 남성들은 벌써 3·1 운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사회에 어떻게 근대성을 확립할 것인가 하는 화두로 이 책을 던지는 것이다. 이 울고 있고, 피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자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나오도록 언어 싸움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실행되었을 때 우리는 참다운 근대성을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반박문을 내는 그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완벽한 논리의 세계로 내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시하게 적당히 쓰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에 잣대가 가 있는 글을 생산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대참패를 당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 사회적 뿌리와 개인적 뿌리가 이렇게 썩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꿈속에서조차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거짓말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거짓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다. 어른이 어른인 것은 어른답기 때문이다. 겨우 공경이나 바라고 효도나 바라고 남의 집 자식을 데려다가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벌떼처럼 달려들고, 아들 아들 부르짖으며 며느리에게 관련도 없는 조상을 숭배해야 복을 받는다고 협박하는 것이 어른이 아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조상의 개념을 다시 설정하라고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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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천(작가)

‘나는 제사가 싫다’ 작가 李河泉 2000

‘나는 제사가 싫다’ 작가 李河泉  (김정근 부인)

<나는 제사가 싫다>로 가부장제에 도전한 작가 이하천(李河泉)씨
(2000.3) 

글·이혜련 기자 동아일보


“조상은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다고 자손에게 벌을 내리는 깡패가 아니다.”
“그런 말 하면 칼 맞는다.”

작가 이하천씨(51)가 <나는 제사가 싫다>를 내고 나서 한 50대 여성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이 땅의 가부장제가 조상을 핑계삼아 여성을 얼마나 심리적으로 억압해왔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한다.

“조상이 깡패입니까? 자신을 섬기고 경배하지 않으면 자손에게 벌을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게 조상의 모습입니까? 이젠 조상의 개념을 다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인정스럽고 품위있고 자존심 있는 존재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잘 섬기면 복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식으로 조상의 개념을 축소시킨 것은 가부장제가 특권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유아독존적 발상이에요. 그리고 뿌리는 남자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여자에게도 엄연한 뿌리가 있어요.”

그의 말은 격렬하다. 하지만 정곡을 찌른다. 그는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산맥과 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땅의 여성들이 죄의식과 모멸감에 시달리는 것은 가부장제가 만든 거짓언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 성질이 나빠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내 욕구가 너무 커서’ 빚어낸 불협화음이라고 여겼다.

“말은 똑바로 해야죠. 이 세상은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두 아이를 둔 여성이 있는데, 남편이 간암으로 죽어 남편이 남긴 퇴직금과 약간의 보험금으로 살아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을 하기는커녕 ‘너 혼자 다 차지하고 사니까 좋지. 죽은 내 아들만 불쌍하게 되었다’며 악다구니를 쓰더라는 겁니다. 그 시어머니는 먹고 살기 힘든 상황도 아니었고, 다른 자식들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어머니의 모습이 이 땅의 시어머니들이 보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일 겁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 시어머니들은 아직도 며느리도 자식이란 말을 낯뜨겁게 하고 있어요.”

그는 낳지도 기르지도 않고 한 번도 정성을 쏟은 적이 없는 시부모가 어떻게 부모냐고 묻는다. 자기 아들과 이혼이라도 하면 남이 되는 사이인 며느리에게 자기가 부모라고 우기면서 희생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묻는다.
그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그 앞에서 자주 울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체구의 반밖에 안되는 시어머니를 작고 가련하고 순박한 시골 노인네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울음이 며느리의 영혼을 움켜쥐려는 ‘음모’라는 걸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고야 알았다고 한다.

그는 1970년 만 스물한 살에 결혼했다. 당시 그에겐 시집 간다는 의식이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산다는 것밖에 몰랐다. 남편은 3개월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는 2년 뒤 남편을 따라갔다.
시어머니는 공항에서 그에게 “니는 좋겠다. 내 아들 따라 미국에 가니 니는 좋겠다” 하며 엉엉 울었다. 시집에서는 유학비용을 한푼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린아이처럼 우는 시어머니에게 왠지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미국에서 5년, 캐나다에서 10년간 사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전화만 하면 “니그들 부모 모시기 싫어서 갔제? 니는 좋겠다. 외국에 가서 사니” 하며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시부모로부터 라면 한봉지 받은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을 들은 적도 없어요. 오히려 돈을 보내라는 압력을 받았고, 시집을 위해 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뼈아픈 한숨소리를 들었죠. 그러나 그땐 그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몰랐어요. 천근만근 짓누르는 죄의식에 시달릴 뿐이었습니다. 시부모라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 그저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어요. 아니, 왜 어른이 어린 며느리 앞에서 웁니까? 울고 싶으면 자기 부모에게 가서 울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것은 동정심을 유발해서 며느리를 자신의 뜻대로 따르게 하려는 계획된 행동이었어요.”

86년 귀국 후 시집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 갔을 때 그는 시집식구들이 어둡고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걸 보고 의아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밝고 구김살없는 표정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중엔 그게 다 쇼라는 걸 알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어요. 다들 먹고 살 만한데도 일부러 금방이라도 굶어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이젠 맏며느리인 네가 이 집안의 짐을 다 떠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제 옷을 벗어서 거는 것까지 가정부가 따라다니며 해주었을 정도로 곱게만 자랐다. 결혼한 후에도 친정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냈기 때문에 시집에 갈 때도 가정부가 아기를 업고 가서 부엌에 들어가고 그는 우아하게 앉아 있다가 오곤 했다. 그래서 그땐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볼 수 없었고, 자신과 시집 식구들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귀국한 후 그는 시집에 가면 부엌으로 직행해야 했다. 남자들은 방안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음식을 해다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는 엄청난 굴욕감과 견딜 수 없는 낭패감을 느꼈고, 이런 틀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심했다.

“남자들은 처가에 갔을 때 부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깍듯이 손님 대접을 받는데 왜 여자는 그런 대접을 못 받는 거죠? 나를 더 분노하게 한 것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그 인습이었어요.”
외국에서 고생하면서도 그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존심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교포사회의 문제를 많이 보았지만 그는 그들이 하층 출신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귀국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텔레비전만 틀면 시위, 분신자살, 성폭행, 부정부패, 사기 이런 단어들이 매일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자부심이 박살나는 것을 느꼈다. 추하다고 여겼던 교포사회 문제점들의 뿌리가 바로 조국에 있었다. 그가 무엇보다 분노한 것은 정치가, 관료, 대학교수, 작가 등 사회적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태였다. 그들은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채 제 식구들끼리 잘 먹고 잘 살고 제 조상 제사나 지내고 산소나 가꾸고 있었다.
자신을 짓누르던 알 수 없는 죄책감, ‘결혼한 여자는 무조건 시집 식구들을 받들어야 한다’는 인식,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사고, 거기다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지도층의 행태… 귀국 후 그는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나는 작가입니다. 작가는 공적인 에너지를 가져야 하고, 그래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습니다. 또 작가는 정서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한국인의 심리 속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갔죠. 그런 과정에서 부딪친 것은 먹고 살 만한데 왜 그렇게도 내면의 상처가 많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보니 마지막으로 건져올려진 게 바로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틀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핵심이 바로 제사와 호주제도입니다

그는 제사를 거부한다. 그러나 제사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남성중심적 제사형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 현재의 제사는 여성의 뿌리를 자르는 틀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선택할 권리를 빼앗깁니다. 단지 선고를 받죠. ‘너는 시집식구에게 잘해야 한다’ ‘시집풍습을 따라야 한다’ ‘시집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런 강제된 틀은 여성의 주체성을 빼앗아갑니다.”

어느날 그가 시집에 가니 시어머니가 “제사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울었다. 그의 시집은 거의 매달 제사가 있는 집안이었다. 그가 “힘든데 왜 합니까? 힘들면 안하면 되지. 그렇게 힘들면 저 주세요”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울음을 그치고 반색을 하며 “정말 니가 가져갈래?” 했다. 그가 제사를 지내기로 하고 명절때가 되었다. 그는 시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제사는 우리가 잘 지내줄 테니 각자 집에서 묵념하라고 하세요. 이 교통전쟁에 뭐 때문에 사람들을 부릅니까?” 했다. 파격적인 며느리의 행동에 시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다.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요? 나는 그런 복은 거부합니다. 복은 자신이 정당하게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지, 나하고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죽은 조상에게 엎드려 비는 그런 천박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는 제사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동학에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사람 중심의 제사의식을 발견했다. 남편과 함께 들꽃을 꺾어 청수와 촛불을 함께 놓고 상을 차렸다. 그런데 언어가 없었다. 종교적인 언어를 싫어하는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 몇구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제사를 지냈다.
제사의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고 만족했지만 그는 지금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다. 이 사회의 가부장제 뿌리가 너무 깊기 때문이고, 수많은 사회 문제에는 눈감고 자기 가족만 잘 살게 해달라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대신 그는 사람들이 기르다 버린 고양이 20 여 마리에게 하루에 두 번 먹이를 주며 돌보는 것으로 제사개념과 종교개념을 대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동물에게는 잘 하면서 왜 시부모에게는 그렇게 못하느냐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동물을 돌보는 것은 선택이지만 시부모는 그에게 선택의 자유를 아예 주지 않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제적인 틀이 인간적인 면마저 왜곡시킨다고 말한다.

“한 번은 시집에 가보니 시어머니가 몹시 쇠약해져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시집 식구들이 모여서 정말 한줌도 안되는 아픈 사람을 두고 서로 안 모셔가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형식만을 위해 살도록 짓눌림을 당한 결과 인간적인 면마저 파괴되어버린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모셔가겠다고 했더니 다들 놀란 눈치예요. 자신들 마음대로 되지 않던 큰며느리가 그렇게 나오는 게 뜻밖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는 시어머니를 모셔와 정성을 다해 간호했다. 시어머니는 며칠 지나지 않아 기운을 차렸다. 그때부터 그는 시어머니와 매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런 가족의 틀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서로 영혼을 갉아먹을 뿐이라고.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본 결과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며 “요번에 내가 여기를 못 와보고 죽었다면 너를 잘 모르고 한스럽게 죽었을 것이다. 우리가 너를 오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 시어머니가 만나는 사람마다 ‘내 며느리’ ‘내 며느리’ 하며 며느리 칭찬을 하고 다니는 걸 보며 또다시 참담함을 느꼈다.

“내가 시어머니를 간호한 것은 며느리이기 때문도 아니고, 그 분이 시어머니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한없이 약자 입장에 선 한 인간을 위해 한 행동이었을 뿐, 의무도 형식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며느리와 시집 관계에서는 모든 것이 의무와 형식의 틀에 맞춰져 왜곡되니 기가 막히죠.”
결혼한 여자는 자동적으로 시아버지나 남편의 호적에 올라간다. 호주제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시집 호적에 올라 있지 않다. 시집 호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버렸다.

“시집 식구들이 기세등등하게 난리를 치는 이유를 따져보니 한마디로 그들이 잘났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근거가 호주제였어요. 귀국한 후에 등본을 처음 보았는데, 시아버지가 호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아, 이러니까 저들이 잘났다고 나를 찍어누를 수 있는 거구나
싶더라구요. 최후의 선택으로 서양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어요. 국적회복과정에서 국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망설이다가 캐나다 국적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집 호적에서 내 이름을 파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더라구요. 모든 여자들이 나처럼 할 순 없을 테고, 호주제가 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는 가부장제가 이 땅에 약자를 짓밟더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강자의 논리,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를 따지는 이익의 잣대 그리고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이중성을 심어주었다고 비판한다.
“강자의 논리에는 윤리성도 예의도 없습니다. 얼마나 예의가 없으면 남의 귀한 자식인 며느리를 자기들의 호적에 데리고 와서 자신들에 게 잘하라고 강요하고 잘못하면 벌떼처럼 달려든단 말입니까? 또 딸보다는 아들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딸을 차별하고, 작은아들보다는 큰아들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큰아들을 편애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이렇게 공평성이 깨졌는데 사회가 어찌 공평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 사람들은 두 가지 얼굴과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들을 보면 시집에 갈 때 차림새와 말과 표정이 친정에 갈 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서는 정의를 부르짖다가도 집에 오면 군림하는 권력자로 돌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인 권력을 잡으면 다 도둑놈이 됩니다. 정치인만 썩었다고 욕할 게 아녜요. 가정에서부터 기본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이 모양인 것 입니다.”
그는 자신을 극렬 페미니스트로 보는 일부의 시선을 거부한다. 그는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어떤 주의에도 자신을 가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인간이고,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여성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고, 우리 영혼의 문제입니다. 이 땅의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를 포함한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내가 나선 겁니다.”

그는 자신에게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 완벽한 논리를 갖고 오라고 말한다. 당당한 체구와 화려한 화장은 그를 정말로 ‘전사’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화장을 좋아한다. 화려한 색을 좋아한다. 일상이 주는 억압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화려한 색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화장에 대해 말이 많다. 그는 그 사실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가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금은방에 들른 적이 있었다. 볼일이 다 끝나갈 때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주인남자가 손을 잡을 듯이 다가와서 은밀하게 속삭였다.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지요?” 그를 술집 여자로 본 것이었다. 그는 하하 웃으며 빠져나왔다.
또 한 번은 어느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과 밤을 새우며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밖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이 음산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그 중 한사람이 그를 보며 “혹시 무언가 힘을 쓴 게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그 사람은 그를 마녀로 본 것이다. 그는 그때도 깔깔 웃었다. 또 어느 철학자는 그만 보면 남성들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그는 또 다시 하하 웃었다. 그 남자에겐 그가 가진 여성관, 즉 얌전함과 곱상함을 벗어버린, 그래서 쉽게 점령할 수 없을 것 같은 당당한 모습과 언어가 재수없게 느껴진 것이었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와 언어 때문에 그는 간혹 혼자 사는 여자이거나 이혼한 여자가 틀림없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도 남편 김정근 부산대 교수가 더 궁금했다. 단적으로 한국남자 가운데 시부모가 어떻게 부모냐고 말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하천씨와 김정근 교수 부부는 부산 해운대에서도 차로 40분쯤 걸리는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귀국한 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는 이하천씨는 90년 이 산골로 이사한 후 겨우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5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글만 썼다. 그때 쓴 장편소설이 93년에 나온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와 97년에 나온 <불타는 대지>다.
시골에서 그는 동물을 기르고 농사일을 하며 영혼의 힘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집 앞 텃밭에 25그루의 배나무와 각종 채소를 가꾸는 그는 가끔 도시에 나갔다가 마음이 시끄러워지면 집에 돌아와 파릇이 돋은 새싹을 보거나 잡초를 뽑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시끄러웠던 마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히 가라앉는 걸 느낀다.

직접 지은 그의 집은 독특하다. 한 울타리 안에 세 채의 건물이 있는데, 안채는 이하천씨의 공간, 바깥채는 남편 김교수의 공간 그리고 또 하나는 아들이 오거나 손님이 오면 머무는 곳이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다른 채에 거주하는 이유는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하천씨는 글을 쓸 때 음악을 틀어놓아야 하는데 김교수는 조용해야 한다. 또 이하천씨는 새벽 2시나 돼야 잠자리에 드는데, 김교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서로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 따로 지내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원래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내가 책을 냈고, 아내의 일이니까 혼자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하천씨에 대해 “아마 저 여자는 혼자 사는 여자일 거야” “이혼한 여자일 거야”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기꺼이 인터뷰와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김교수는 말씨나 태도가 조용하고 부드러워 점잖은 선비 같은 인상이다. 김교수에게 가부장제에 정면도전하는 아내 때문에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진 않느냐고 묻자 그는 “심리적인 불편함은 있죠. 그러나 그건 참으면 되는 겁니다. 내가 이하천을 도와준 거라면 그게 유일한 일이죠” 한다.

남편보다 2년 늦게 캐나다에서 돌아온 이하천씨는 주위 사람들이 남편이 학문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부모 형제, 고향, 동창이었다. 특히 시집에서는 그동안 못한 아들노릇을 하라는 듯이 난리였고, 워낙 모범생인 김교수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고 있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던 이씨는 이 골짜기로 이사온 후 누구라도 허락없이 오지 못하게 했고, 전화도 대신 받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그의 행동에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은 교수입니다. 교수는 공인이에요. 공인은 개인적 삶보다 사회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남편도 한국남자이기 때문에 몸속에 가부장제의 세균이 잠복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남편은 천성적으로 인습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또 교육자적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른 것은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죠.”

이하천씨에 의하면 김교수는 처음에 반쯤 저항했다. 그러다 30%, 20%, 10%로 점점 저항의 수위가 낮아지다 결국엔 “나는 누구 편도 아니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고 선언했다.

김교수가 이 사회의 정서적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아내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여제자들에게 있었다. 학창시절엔 똑똑해서 큰 재목이 될 줄 알고 열심히 가르쳤던 여제자가 결혼만 하면 생명력이 쑥 빠져버리는 것을 몇차례 경험한 김교수는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여자들이 사회적 에너지가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만약 남편이 끝까지 저항했다면 ‘너 사기꾼이지?’ 하고 말했을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진리를 이야기하면서 집에서 다르게 행동하고 말한다면 그게 사기꾼이 아니고 뭡니까? 나는 남편이 사기꾼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사기꾼과 한집에서 살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강경하게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자신의 에너지를 나에게 쏟으라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한 것 아닙니까?”

김교수는 서울대 영문과 석사를 마치고 유학, 시카고대 도서관학과 석사, 컬럼비아대 도서관학과 박사를 하고 다시 정치학으로 석사를 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교육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하천씨는 다른 사람의 몇배가 되게 공부한 이유가 가족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잖느냐고 말한다.

“남편만큼 지독할 정도로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친구들과 어울려 밤에 술을 먹고 놀러 다니며 헛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성실성에 헛점을 보였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하천씨가 김교수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김교수는 이하천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영어교사로 6개월간 재직했었다. 그 때 이하천씨는 김교수의 무겁고 심각한 태도와 그가 쓰는 언어에 흠뻑 빠졌다. 2년 뒤 서울로 대학 진학한 이하천씨는 김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두사람이 결혼하겠다고 하자 딸을 부와 권력을 겸비한 집에 시집보내고 싶어했던 이하천씨의 부모는 거세게 반대했다. 어머니는 임신한 이하천씨를 산부인과로 끌고 가 강제로 낙태시키려고 했고, 아버지는 화가 나서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빠는 김교수를 찾아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결국 결혼 허락을 받았지만 그는 그때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무시한 부모에게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는 효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부모는 낳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는 한 생명체를 자기들 마음대로 낳았기 때문에 당연히 잘 키울 의무가 있다. 자기가 낳은 생명체를 책임지고 기르는 것은 당연한데 “내가 널 키웠으니 빚을 갚으라”라고 하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하천씨 부부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외아들 철훈씨는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결혼하더라도 아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어떤 강요도 할 생각이 없다.
“내가 아들과 그 가족들에게 좋은 인간이었고, 좋은 어머니였고, 좋은 시어머니였고, 좋은 할머니였다면 그들은 날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인간이 아니라 심리적인 짐만 잔뜩 건네준 조상이었다면 과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라고 할 겁니다. 또 조상을 위해 에너지를 쏟지 말고 이 사회를 조금이라고 밝게 하는 데 에너지를 쏟으라고 말할 겁니다.”
그는 젊은이들이 하루빨리 효의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효는 어른이 어른임을 포기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효도나 충성이나 무슨 무슨 주의가 아니라 진리, 창의, 사랑, 열정 같은 단어들입니다. 나는 이 단어 들이 빛을 발할 때까지 외칠 것입니다. 이 땅의 볼썽 사나운 가부장제 귀신들아, 이제 한국인을 그만 괴롭히고 썩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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