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현준입니다. 오늘 이 곳 대한민국 광복회에 가입하였습니다. 제 조국 대한민국에 이렇게 광복회라는 사이트가 존재하고 가입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제가 이 곳 광복회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밝혀드리고, 자그마한 부탁을 청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소 길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2013년부터 일본으로 도일하여 일본에서 약 8년간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고 작년 귀국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하였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현지에서 체험하였습니다. 약 8년간의 일본생활을 하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과는 달리, 사실 일본 국민 거의 대다수가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사조와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 기간동안 근대화를 이루고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감사해야 하며, 일제 식민지 지배는 합법이었으며 강제 징집 위안부 제도는 사기라고 말하는 등의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에 많은 일본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함께 제가 몸소 경험한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실체적 내용을 통해서 예전부터 갖고있던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 일본을 향해 이전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작년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약 8년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의 귀국을 결심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국내 이영훈, 류석춘 교수 등 일본의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청탁받은 사람들이 다름 아닌 일본의 극우세력과 같은 주장을 담은 서적을 발간한 사실과 함께, 비단 이들 몇몇 교수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관을 그대로 퍼뜨리면서 일본의 역사의식 조작 전략, 정신 침탈 전략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이에 세뇌당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개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귀국하게 되면, 일본의 정신 침탈 전략으로 인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릇된 역사관을 갖지 않게 되도록 제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도움을 주고 싶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실체를 좀 더 정확하게 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제 자그마한 지식이나마 알려드리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지난달 3.1절을 얼마 앞두고 서대문 형무소에 안치되어 있는 순국선혈들의 위령비 앞에 섰을 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너무나도 죄스러운 마음과 적지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교과서로만 접했던 '조국'이라는 대상,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과 순국선혈분들께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저의 선조 분들에게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국선혈분들의 위령비 앞에서 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고, 돌아가신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서적, 출판물, 개인 1인 영상 등을 통해 국내 혐한극친일파들이 일본 극우세력들의 역사관을 빠른 속도로 확산시키고 있으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받고 있고, 특히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그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정신침탈은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또한 이들 혐한극친일파들이 이른바 자칭 '보수우파'라는 탈을 쓰고 자기들의 역사관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신감과 비판이 날로 고조되어 감에 따라 이들 국내 혐한극친일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반일정신병자' 혹은 파시즘이라며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역시 일본 자금재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아직까지 일본의 역사의식 조작 전략이 우리나라 사람들 정신 기저에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큰 문제의식과 경각심을 느낍니다.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청와대 국민청원을 신청하기 위해 글을 게재하였고 지금 현재 사전동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곳 URL로 접속하셔서, 읽어주시고 소중한 동의 부탁드립니다. 혐한극친일파들의 역사왜곡에 대한 처벌 법령 제정에 대한 청원내용입니다. 물론 이같은 법령 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은 국내 혐한극친일세력의 역사왜곡 행태를 묵과할 수 없기에 저의 건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게재하였습니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신이자, 혼이자 곧 그 나라 그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꼭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역사는 한 나라의 정신입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왜곡 규탄, 시정 운동을 '제 2의 독립운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뿐 아니라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함께 이 제 2의 독립운동의 첫걸음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의 주인공에게 선각의 깨닳음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필사의 중요함에 큰의미를 두기엔, 현실로 빗어진 망각의 그릇이 너무 크고 넓습니다. 귀중한 생각과 행동에 마땅히 박수를 드립니다. 모든이들의 생각도 같을것입니다. 허나 대중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존재의 근간을 버리고 외우기에도 벅찬 국가, 민족을 위해 그쉽지않은길을, 독립운동가의 절절한 이름으로 자신을 버렸던 용기를 우리는 잊지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용기있는 당신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공감합니다. 지록위마를 주장하는 조중동 언론 매체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개탄 합니다. 해방초기 이승만 정권들어 게다짝이 총칼들고 명동과 종로통을 누비는 시대와 비슷한 현실을 보노라면 분노와 울분이 앞서며 조직범들의 괴변을 듣고 있으려니 스트레스 쌓여 머리까지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개인재산도 보호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가정을 파괴하고 저의 재산을 마음대로 쪼개고 빼앗아 가고 있음에도 경찰들은 범죄자를 비호하고 있었습니다.
친일(나라를 팔아 먹으면서)로 얻은 재산을 환수 하자는 법을 반대 하는 정당을 광복회 회원이라면 당연히 비난 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 단체가 더불어 민주당 이었어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http://blog.daum.net/minjujuimanse/1024 http://www.slrclub.com/bbs/vx2.php?id=free&no=21436418
제7회 청소년 민족캠프에 참가했던 한 학생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고국 한국의 많은 것들이 세계인들에게 관심과 호감을 갖게하는 요즘 광복회 호주지회는 멀리 이역만리 재외동포사회에 꼭 있어야 할 본인의 뿌리를 잊지않는 한인 청소년 교육사업을 위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 노력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8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5주동안 진행된 제7회 청소년 민족캠프 일정이 성공리에 종료됐다. 광복회 호주지회(회장 황명하)와 시드니한국교육원(원장 권진)이 공동 주관했고 코로나 확산으로인해 5회의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됐다.
참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국 역사, 문화, 인성, 통일 관련 교육이 진행됐다.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
신주백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레오니드 페트로프 ANU 교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등
9명의 강사와
16명의 운영위원들이 강의(10회),
체험학습(1회),
조별활동(3회),
특별활동(3회), 게임과
즉석 퀴즈 등을 진행했다.
마지막 날에는 강수연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의 ‘한민족이 사랑하는 노래 아리랑’ 강의와 아리랑 뮤직박스(오르골) 만들기 체험학습이 이루어졌다. 조별활동 시간에 6개조로 나누어 주제를 선택, 토의하고 준비한 조별 발표회가 열렸다. 최우수상은 3조(광복군팀), 우수상은 5조(백두산팀)가 차지했다. 5명의 운영위원이 패널로 나선 ‘멘토링패널토의’가 이어져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퇴소식에서 황명하 회장은 “민족캠프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이 있다. 무슨 일이든 조금 어렵다고 옆으로 비켜서고, 조금 힘들다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정면돌파해 보라. 청소년들은 포기가 아닌 도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진 교육원장은 축사에서 “한국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여러분들은 정말 멋진 청소년이고 멋진 한국인이다. 대한민국의 후손인 여러분들의 미래도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격려했다.
유민지, 임여은, 채서영 학생이 온라인교육 모범상, 김유수, 김재윤, 민병권 학생이 퀴즈왕상을 각각 수상했다. 김도연 학생이 참가자 대표로 결의문을 낭독하고 순국선열의 노래 제창으로 퇴소식을 마쳤다.
한편, 민족캠프 참가학생들은 11월 17일(수) 오후 6시, 시드니 에핑클럽(예정)에서 열리는 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에 온•오프라인으로 실시간 참석할 계획이다.
【참가 학생들의 민족캠프 소감】
김하연 “정체성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민병권 “무심했던 한국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배재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이 재밌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운영위원들이 공유해준 대학생활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유민지 “같은 청소년들이랑 한국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오붓한 시간이었다”
이유찬 “아리랑에 대해 배우면서 일제강점기의 설움과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채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와 호주 한인 청소년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허정하 “한국 사람이라는 뿌리를 찾고 자긍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한국어를 더욱 유창하게 잘 하고 싶어졌다”
광복회 호주지회 산하단체인 호주한인차세대네트워크(Korean Australian Youth Network, 약칭 KAYN) 회원들이 올해 민족캠프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하여 제작한 민족캠프 참가학생 모집 광고입니다. KAYN은 이미 민족캠프에 참가했던 학생들로 구성된 광복회 호주지회의 청년단체입니다.
태극기로 수놓은 시드니한인회관 ‘3•1독립운동 정신’ 기리며 만세삼창 회관 앞 ‘태극기 3.1 정신’ 창공에서 드론 촬영 기자명 고직순 기자
만세삼창
‘세계만방에 고하야’란 표어를 내건 2021년(102주년) 3•1절 기념식이 1일(월) 시드니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코로나 위생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약 80명이 참석해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렸다.
식전 ‘대한이 살았다’ 동영상 시청 후 국민의례를 한 뒤 인서경 광복회 호주지회 기획이사가 3•1독립운동 경과보고를 했다. 이어 6명의 고교생들(기민정, 조지은, 김은우, 조성현, 이채원, 배재민)이 독립선언서를 힘차고 엄숙한 어조로 낭독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홍상우 시드니총영사가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환경에서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세계는 우리의 발걸음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인도주의와 다자주의, 상생과 포용의 정신으로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상우 총영사가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했다
민병찬, 우진현 대학생과 조지아 사씨(Georgia Sassi, 대학원생)가 헌시를 한국어와 영어로 낭송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 중 한 명인 조지 쇼(1880~1943)의 호주 후손(외고손녀) 사씨가 이 기념식에 참석해 헌시를 낭송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참석자 기념 촬영
윤광홍 시드니한인회장의 축사에 이어 3.1절 노래가 제창됐다. 조기덕 전 시드니한인회장의 선도로 참석자들 모두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했다.
기념식 전 참석자 전원이 한인회관 앞마당에 태극기로 쓰여진 3•1 정신을 에워 쌓았고 드론이 이를 촬영했다. 참석자들은 한인회관 앞에서 태극기와 호주 국기 게양 후 태극기로 둘러쌓인 한인회관을 한 바퀴 돌며 3•1정신을 되새겼다. 헌시를 낭송한 조지아 사씨
이날 기념식 행사는 KAYN(Korean Australian Youth Network: 호주한인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주관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영국인 기업인이던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는 단둥에 설립한 무역회사 이륭양행 건물 2층에 임시정부 단둥교통국의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도록 도왔으며 무역선을 이용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무기 운반, 군자금 전달, 독립운동가의 출입국, 한국 국내와 임시정부와의 연락 등 중요한 창구역할을 했다. 1920년 7월 내란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인의 망명 계획과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1963년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쇼의 후손이 호주로 이주해 멜번에 거주하고 있으며 훈장을 대리 수상했다.
후손 중 한 명인 조지아 사씨는 대학원과정(미디어 전공)을 하기위해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데 2월 21일 어머니 레이첼과 함께 황명하 광복회 호주지회장을 만났다. 조지아는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영문시를 낭송하며 동포들에게 인사를 했다. 한인회관에서 태극기와 호주 국기가 게양됐다 한인회관 앞 3.1정신과 태극기를 둘러싼 참석자들(드론 촬영) 한인회관 앞 3.1정신과 태극기 앞에 선 참석자들(드론 촬영) 고직순 기자 editor@hanhodaily.com
▲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0년 꼬마민주당 시절 노무현, 김정길, 이철 등 동지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감옥 갔다 오고 고생할 때 나는 (공화당-민정당에서) 따뜻한 밥 먹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이것을 '원죄'라 여기며 원칙에 맞춰 충실하게 살겠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앞서 김 회장은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한민국을 광복하라"라고 외치며 "국립현충원에 친일 군인을 비롯한 반민족 인사 69명이 안장돼 있다며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연설 이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김 회장의 과거 경력을 지적하며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화당, 민정당에 몸담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지냈는데 거꾸로 보수 세력을 '친일'로 공격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사과 이후) 그 시절부터 내 이름을 걸고 다니는 행보에 있어서는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서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의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라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김근수, 전월선 선생의 장남인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1944년 3월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재학시절 박정희 정부의 한일조약 체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됐다. 그러나 1971년 박정희 정권 당시 공화당 사무처에 공채로 합격해 당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 탄생 후에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대전 등에서 지구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 회장이 비판받는 지점이다.
▲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5일 광복절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조선일보가 크게 칭찬했던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전두환이었다. '단군 이래 최고 지도자'라고 평했다. 돌아보면 조선일보가 가장 비난했던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빨갱이'라면서 정권 내내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도 똑같았다. 사이토 총독과 이완용을 칭찬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선 '흉악한 행동을 했다'면서 '흉행'이라고 평가했다."
- 그러나 과거 공화당과 민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을 놓고 '친일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인정한다. 그런 비판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대학 졸업할 당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그때 서울대 문리대에 '안내문'이 붙었다. (공화당에서) 공채한다고. 다른 당은 없었다. 그렇게 공화당에 들어가 사무직원을 했다. 이후 공화당이 민정당으로 바뀌었다. 계속 당직자로 일했다. 그런데 1990년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합당'이 발생했다. 이때 노무현, 김정길, 이철 등과 함께 논의해서 나오게 됐다. 그때 40대 초중반이던 나는 당시 동지들에게 말했다. '(한일협상 반대로) 감옥 갔다오고 당에서 일했다. 이후 당신들이 고생하며 감옥을 왔다 갔다 할 때 나는 따뜻한 밥을 먹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것을 원죄라 여기고 원칙에 충실하며 살 것이다'라고.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 걸고, 더 철저하게 몸가짐을 바로 하면서,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의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 하지만 이후에도 한나라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꼬마민주당 시절 15대에서 낙선한 이후 노무현, 이철, 유인태와 함께 했다. 당시 '하로동선'이라는 식당을 함께 꾸렸다. 문제는 당시 우리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이기택 총재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이 총재가) 조순과 상의하더니 한나라당이 된 거다. 한나라당 내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후 남북문제에 있어서 이회창 총재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나중에는 '민족적 관점에서 벗어난 당론에는 승복하지 않겠다'라는 말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 시절에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일제강점기 진상규명법도 만들었다. 전부 한나라당 내에서 한 일이다. 당과 관계없이 진행했다. 그런데 2년을 그렇게 했는데 잘 안되더라. 결국 대선 지지율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3등일 때, 혼자 나와 개혁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비록 내가 한나라당에 있었지만, 행보는 명료했다. 나를 부역자라고 말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 광복절 경축사가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결코 아니다. 주택문제와 검찰개혁 등 여야 쟁점에 대해선 일체 말하지 않았다. 오직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광복회가 친일청산을 말하지 않으면 누가 그 문제를 말하겠나. 무엇보다 지금 시점을 놓치면 친일청산은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과반을 넘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강조하고 언급한 거다. 광복절 경축사 후 독립유공자 유족들로부터 엄청난 전화를 받았다. 이제야 광복회답게 말했다고. 일관되게 밀고 나갈 것이다."
- 결국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강제이장, 끝까지 간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면돌파만이 답이다. 반대하는 의원들 명단 작성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독립군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이는 좌우의 이념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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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독재정권서 일한 것 원죄지만... 노무현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팟인터뷰] 광복회장, 보수정당-보수언론 맹공에 답하다
김종훈(moviekjh)
등록 2020.08.18 17:02수정 2020.08.1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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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0년 꼬마민주당 시절 노무현, 김정길, 이철 등 동지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감옥 갔다 오고 고생할 때 나는 (공화당-민정당에서) 따뜻한 밥 먹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이것을 '원죄'라 여기며 원칙에 맞춰 충실하게 살겠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앞서 김 회장은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한민국을 광복하라"라고 외치며 "국립현충원에 친일 군인을 비롯한 반민족 인사 69명이 안장돼 있다며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연설 이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김 회장의 과거 경력을 지적하며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화당, 민정당에 몸담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지냈는데 거꾸로 보수 세력을 '친일'로 공격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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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사과 이후) 그 시절부터 내 이름을 걸고 다니는 행보에 있어서는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서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의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라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김근수, 전월선 선생의 장남인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1944년 3월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재학시절 박정희 정부의 한일조약 체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됐다. 그러나 1971년 박정희 정권 당시 공화당 사무처에 공채로 합격해 당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 탄생 후에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대전 등에서 지구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 회장이 비판받는 지점이다.
아래는 김 회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부역자라고 말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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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5일 광복절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조선일보가 크게 칭찬했던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전두환이었다. '단군 이래 최고 지도자'라고 평했다. 돌아보면 조선일보가 가장 비난했던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빨갱이'라면서 정권 내내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도 똑같았다. 사이토 총독과 이완용을 칭찬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선 '흉악한 행동을 했다'면서 '흉행'이라고 평가했다."
- 그러나 과거 공화당과 민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을 놓고 '친일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인정한다. 그런 비판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대학 졸업할 당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그때 서울대 문리대에 '안내문'이 붙었다. (공화당에서) 공채한다고. 다른 당은 없었다. 그렇게 공화당에 들어가 사무직원을 했다. 이후 공화당이 민정당으로 바뀌었다. 계속 당직자로 일했다. 그런데 1990년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합당'이 발생했다. 이때 노무현, 김정길, 이철 등과 함께 논의해서 나오게 됐다. 그때 40대 초중반이던 나는 당시 동지들에게 말했다. '(한일협상 반대로) 감옥 갔다오고 당에서 일했다. 이후 당신들이 고생하며 감옥을 왔다 갔다 할 때 나는 따뜻한 밥을 먹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것을 원죄라 여기고 원칙에 충실하며 살 것이다'라고.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 걸고, 더 철저하게 몸가짐을 바로 하면서,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의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 하지만 이후에도 한나라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꼬마민주당 시절 15대에서 낙선한 이후 노무현, 이철, 유인태와 함께 했다. 당시 '하로동선'이라는 식당을 함께 꾸렸다. 문제는 당시 우리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이기택 총재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이 총재가) 조순과 상의하더니 한나라당이 된 거다. 한나라당 내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후 남북문제에 있어서 이회창 총재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나중에는 '민족적 관점에서 벗어난 당론에는 승복하지 않겠다'라는 말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 시절에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일제강점기 진상규명법도 만들었다. 전부 한나라당 내에서 한 일이다. 당과 관계없이 진행했다. 그런데 2년을 그렇게 했는데 잘 안되더라. 결국 대선 지지율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3등일 때, 혼자 나와 개혁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비록 내가 한나라당에 있었지만, 행보는 명료했다. 나를 부역자라고 말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 광복절 경축사가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결코 아니다. 주택문제와 검찰개혁 등 여야 쟁점에 대해선 일체 말하지 않았다. 오직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광복회가 친일청산을 말하지 않으면 누가 그 문제를 말하겠나. 무엇보다 지금 시점을 놓치면 친일청산은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과반을 넘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강조하고 언급한 거다. 광복절 경축사 후 독립유공자 유족들로부터 엄청난 전화를 받았다. 이제야 광복회답게 말했다고. 일관되게 밀고 나갈 것이다."
- 결국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강제이장, 끝까지 간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면돌파만이 답이다. 반대하는 의원들 명단 작성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독립군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이는 좌우의 이념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
이글의 주인공에게 선각의 깨닳음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필사의 중요함에 큰의미를 두기엔, 현실로 빗어진 망각의 그릇이 너무 크고 넓습니다. 귀중한 생각과 행동에 마땅히 박수를 드립니다. 모든이들의 생각도 같을것입니다. 허나 대중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존재의 근간을 버리고 외우기에도 벅찬 국가, 민족을 위해 그쉽지않은길을, 독립운동가의 절절한 이름으로 자신을 버렸던 용기를 우리는 잊지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용기있는 당신도 소중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