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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9

18 왜 ‘위대한 영도자’는 쌀밥에 고깃국 못 먹일까



중앙시사매거진



201810호 (2018.09.17) [54]목차보기
기사 제보|편집장에게 한마디


[집중분석] 70년간 지속된 北 식량부족 실태
왜 ‘위대한 영도자’는 쌀밥에 고깃국 못 먹일까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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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미사일 가진 나라가 농업 생산성과 추수 효율은 떨어져…
김정은, 재정 확보 차원서 농업개혁 접근하면 중국 모델 난망




▎평양 교외의 농촌 풍경. 국제식량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남한의 25% 수준이다.

백로가 지나가자 북한 들녘에도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다. 북한 평야지대는 남한보다 평균 3도 정도 기온이 낮은 만큼 시베리아 북서풍이 일찍 불어닥친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다. 벼를 베고 탈곡하는 가을걷이는 남한과 비교해 보름 정도 서두르지 않으면 서리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콤바인 등 농기계가 부족해 매년 10월 북한 농촌지역에선 벼를 수확하는 ‘가을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된다. 들판 곳곳엔 ‘당은 부른다. 모두 다 백일 전투에로’란 가을걷이를 강조하는 입간판이 노적가리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통치체제라 농사도 전투적인 용어로 농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9월부터 11월까지 100일 동안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공부와 업무를 중단하고 벼 베기 노력 봉사에 나선다, 북한의 최고 명문 김일성종합대 학생조차 예외 없이 최소 2주 이상 휴업하고 농촌 지원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가을 수확기엔 평균 20일 동안 애국 노동과 농촌 지원 명목으로 무보수 노력 동원이 전국적으로 이뤄진다. 북한 대학생들은 남한의 농활 MT와 유사하게 지방으로 내려가 단체 영농 지원을 하게 된다. 일부 학생은 일하다가 휴식시간에 노래를 부르는 등, 놀면서 학생들끼리 혹은 지방의 농촌 처녀들과 연애도 한다.

북한 2대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내놓는 “볏단 운반과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현지지도 지시는 10월 이후 노동신문 단골 보도 사항이다. 특히 “다 지어놓은 낟알을 한 알도 허실함이 없이 제때에 거두어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라는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가을걷이 전투의 금과옥조다. 핵과 미사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6개국만이 성공했다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기술인 콜드 론치(Cold launch)를 성공시킨 북한 지도자가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지시를 남발하는 것은 북한 농업이 당면한 딜레마다. 북한은 지난해 SLBM의 두 차례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기술 개발자를 포옹하는 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정책적 관심만 있으면 핵과 미사일 기술 개발 노력의 100분의 1만 투입해도 해결할 수 있는 볏단 운반을 지도자가 연일 노동신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불가사의다. 대형 장거리미사일을 1만㎞ 이상 떨어진 미국 LA에 투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들판의 노적가리를 적기에 이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정책의 오류가 아니고선 설명이 어렵다.

사실 북한의 가을걷이 전투처럼 노동력을 단기에 집중 투입하는 추수 행태는 남한에선 1990년대 이전에 마감했다. 남한 농촌지역은 1991년 충남 당진군과 경북 의성군에서 RPC(Rice processing center)라는 미곡종합처리장를 건립하는 사업을 시작해 1990대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사실상 벼 수확의 기계화가 완료됐다. 벼의 수집·건조·저장·가공·포장·판매의 전 과정을 일괄 처리함으로써 농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관리비용을 줄여 미곡의 품질 향상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북한의 경우엔 이러한 일관 처리 시설이 없기 때문에 가을철만 되면 학생 및 직장인 등 비농업 노동력을 일시에 대거 동원해 수작업으로 벼 수확에 나선다. 심지어 벼를 수집해 건조하기 위해 들판에 늘어놓으면 쥐 같은 들짐승들이 곡식을 훔쳐 먹는 양이 전체 생산량의 2~3%에 이른다는 추정 통계도 있다.

“쌀은 공산주의다”의 허구




▎북한 협동농장원들. 통일이 되면 북한의 협동농장은 규모 면에서 국제경쟁력을 가질 것이란 예상이다. / 사진:통일문화연구소

필자는 정부 협상대표단의 일환으로 2000년 가을 평양을 방문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가는 약 40㎞ 구간의 농촌 지역 도로는 온통 벼 베는 풍경으로 분주했다. 멀리 협동농장 앞 논두렁에 덩그러니 서 있는 ‘쌀은 공산주의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빨강 글씨의 7개 입간판에 한 글자씩 표기되어 있는 모습은 북한이 사회주의 계획경제 농업체제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백일전투’ ‘풀판을 고기로 바꾸자’ 등 각종 노력 동원을 강조하는 전투적 구호에 적응하는 일은 10여 차례 방북하면서 차츰 무뎌졌다. 그러나 노동력 투입으로 식량 증산을 강조하는 구호가 2018년에도 건재한 것은 북한 식량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평양사범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남한 망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메이슨 대학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현식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라며 이를 ‘북한의 식량정치(food politics)’라고 표현했다. 식량 확보가 최고지도자의 최우선 과업이란 의미다. 남한은 의식주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식의주라고 표현된다. 몸에 걸치는 옷이나 사는 집보다 먹고사는 문제, 즉 식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은 김일성의 사고에서 비롯됐다. 김일성은 일찍이 ‘쌀은 사회주의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 농업을 통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사회주의를 해야만 먹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그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김일성 주석이 ‘먹는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일성의 식량문제 해결의 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한에서 실현됐다. 쌀 등 주곡을 증산하고 밀과 콩, 옥수수 등 부족한 곡물은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수출해서 획득한 외화로 수입함으로써 식량문제 해결에 성공했다. 식량을 완전 자급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일부 국가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곡물을 수입한다. 남한의 경우 쌀 재고량이 적정 수준을 넘어 보관 비용만 연간 300억원을 넘어서고 있으니 김일성의 ‘쌀은 공산주의’란 담론은 허구였으며 쌀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란 명제가 타당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화성 14호 등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두 차례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첨단 전자 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왜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 70년 동안 경미한 자연재해에도 외부 세계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는 걸까? 특히 3세대 젊은 지도자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식량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노동당 주체사상 비서이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한 황장엽은 1997년 탈북해 필자가 소장으로 근무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문으로 일했다. 황장엽이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최고층에게만 전달된 북한 내부의 식량 통계였다. 그는 저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에 극심한 식량난을 설명했다.

“1996년 가을이 되면서 북한의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됐으며, 인민들의 고통과 불행은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다. 비서들이 모여 1996년도 알곡 생산량을 종합해 봤더니 210만t밖에 안됐다. 물론 여름에 식량이 떨어져 미리 따다먹은 강냉이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210만t의 식량을 가지곤 군량미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이 되자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해 농민들은 정말 어렵사리 남겨놓은 3개월 분의 식량을 군대에 무조건 내줘야 했고, 우리 비서들도 장에 나가 200kg씩 쌀을 사다가 군대에 바쳤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갔다. 평양의 경우도 중심가만 조금 벗어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배낭을 멘 채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바람에, 교외 장마당으로 가는 길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가정에선 부모들이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어지자, 그저 얻어먹기라도 하라고 밖으로 내보내는 집이 속출했다. 이 얘기는 내 셋째 딸이 들려준 것인데, 어느 날 아침에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어린 학생 두 명이 새까만 손을 내밀더니 밥 좀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우선 손부터 씻게 하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 아버지가 다 굶어 누워서 우리만이라도 나가 얻어먹으라고 해서 남포에서 걸어왔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딸한테 그 말을 듣곤 (비서) 김덕홍에게 아사자들의 통계를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조직부 일꾼을 만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다. ‘조직부 일꾼에 의하면 지난 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해서 50만 명이 굶어죽었고, 올해(그때는 11월 중순이었다)엔 벌써 100만 명가량이 굶어죽어 간다고 합니다.’”

황장엽은 주체사상 비서로서 핵과 미사일에 관한 특급 군사정보 이외에 어떤 통계도 받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받아 본 식량생산량 통계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만 올라가는 수치를 포함했다. 황장엽은 계속된 식량난으로 북한체제가 존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탈북을 결심했다. 하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측의 대규모 식량 지원으로 황장엽의 예측과 달리 북한체제는 붕괴되지 않았다.

북한이 식량 자급자족 안 되는 이유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유엔아동기금(UNICEF) 요원들이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하던 중 촬영한 농촌. 북한의 어려움을 함축하고 있다.

1996년 북한 인구는 북한 중앙통계국, 남한 통계청 및 유엔 통계 기준으로 2200만 명 수준이었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 현지를 방문해 작성한 1996년 11월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 11월 1일~1997년 10월 31일 식량 수요는 조곡기준으로 645만t, 정곡기준으로는 426만t이 필요했는데, 실제 생산량은 황장엽이 언급한 250만t에 옥수수까지 포함해 299만t으로 추계됐다. 결국 조곡기준으로 236만t, 정곡기준으로 126만t이 부족하며 50만t을 상업적으로 전량 수입한다면 약속된 인도적 지원량 3만t을 합산해도, 실제 조곡기준으로 73만t이 모자란다. 결국 부족 비율은 30%선으로 연간 기준 3개월 동안은 식량 배급이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당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이유는 1995년 홍수와 우박, 1996년 100년 만의 가뭄, 1997년 낮은 기온과 홍수 및 1998년 가뭄 등 4년 연속 자연재해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생산량이 450만t대로 회복되면서 부족 비율은 15%선으로 축소됐다. 매년 중국으로부터 50만t 내외의 식량지원이 이뤄지고 자연재해가 빈발하지 않자 당국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최소 소요량 기준이며 식량의 자급자족은 요원한 실정이다. 특히 북한은 효율적인 물 관리체계가 미비해 지구 온난화 시대에 가뭄과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식량 생산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관개시설 및 저수지 등 물 관리를 위한 농업기반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북한이 식량을 자급자족 못하는 이유는 생산량 부진 탓이다. 논 200평 기준으로 남한은 평균 80kg 들이 가마 4~5개 분량의 쌀이 생산된다. 반면 북한은 2∼3가마가 생산된다. 북한 인구의 37%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자급생산에 실패했다. 남한은 6%의 농민이 주곡인 쌀을 생산한다. 북한의 경지 면적 역시 남한과 비교하여 크게 작지 않다.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다.

북한은 일제가 건설한 동양 최대의 명성을 자랑하던 흥남비료공장 등이 노후화되면서 비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남한은 1999년 처음으로 화학비료 15만5000t을 북한에 지원했다. 이후 2007년까지 북한에 총 255만t을 지원했고 2008년 보수 정부 출범 이후 민간차원의 소규모 지원을 제외한 대규모 비료 지원은 중단됐다. 북한의 2000년대 이후 비료 생산량이 평균 성분량 기준으로 20만t 수준임을 감안할 때, 당시 남한이 북한에 지원한 비료는 북한 생산량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으로써 북한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 북한은 화학비료 생산의 한계를 절감하고 유기질 비료 생산을 늘리면서 유기농업에 주력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2013년 2월 ‘북한에서 유기농업은 국내의 긴장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농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 정부가 관련 시책들을 일관하게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2013년 7월 21~23일 평양에서 국제유기농업강습이 열렸으며 국내외 유기농업 전문가들이 과학적 문제들을 논의하는 좋은 계기였다’고 선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중국이 북한에 자금과 물자, 비료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료 지원으로 북한 식량 생산이 정상화되는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화학비료가 화학무기 생산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해화학, 경농, 농우바이오 등 비료 관련 주식이 대북지원 기대감으로 상승하는 것은 북한의 강력한 요청을 예상한 주식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료, 농기계, 농약 등 중화학 공업은 사실상 농업 외부요인에 좌우된다. 따라서 일반경제의 발전 없이 농업이 발전할 수 없다. 결국 선진국치고 농업이 약한 나라가 없고, 농업이 발전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집단농장의 문제점 해소한 중국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왼쪽)가 1997년 4월 20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측근인 김덕홍씨와 함께 감개무량해하고 있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식량난에 절망해 망명을 감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소프트웨어 분야다. 벼는 쌀 미(米) 글자에서 보는 것처럼 88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한다. 효율적인 노동력이 중요하다. 개별 농민들이 어떤 자세로 농사에 임하는지는 생산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북한 농업은 1946년 토지개혁과 1958년 농업협동화를 통해서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토지개혁은 북한 사회주의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형성한 기본정책이다. 북한은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단행해 4%의 부농이 60%의 토지를 편중 소유한 문제점을 해결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김일성은 토지개혁으로 받은 땅의 소유권 등기 잉크도 마르기 전인 1954년부터 5년에 걸쳐 집단화 영농인 협동농장 제도를 정착시켰다. 현재 북한의 농업 생산은 1000여 개의 국영 농장·목장과 3000개의 협동농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텃밭이나 뙈기밭을 제외하면 협동농장이 북한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생산단위다. 협동농장은 리(里) 단위 기본 생산조직으로 전국에 3000여 개가 있으며 북한 전체 경지면적의 90%인 180만㏊, 농업 생산의 90%를 담당하고 있다. 반면에 국영농장은 지역단위에 제한되지 않은 생산단위로 육묘와 축산 등 국가 소요 농·축산물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결국 협동농장은 텃밭이나 뙈기밭 등을 제외하곤 사실상 북한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생산단위다. 북한 농민들은 1946년의 토지개혁과 1954년의 협동화 조치에 의해 협동농장 소속으로 농사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며, 집 앞 30평 정도의 텃밭 생산물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문제는 집단생산이 개인의 영농 의욕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는 점이다.

집단농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의 1978년 농가 청부 생산책임제 개혁을 살펴보자. 중국은 대륙의 공산혁명과 1950년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소유한 자가 농사를 직접 짓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실현했다. 하지만 1958년부터 불어닥친 집단영농 제도인 인민공사는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꺾었다. 중국은 1960년대 10년 동안 식량 생산량 부족으로 3000만 명이 아사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1966년부터 홍위병을 조직해 자신을 비판한 지식인과 관료들을 압박하는 문화대혁명을 단행하여 중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하면서 인민공사가 와해되는 것을 덩샤오핑(鄧小平)이 묵인하고 사실상 개인영농제로 전환을 추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농업과학원을 참관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농업개혁을 줄곧 강조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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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1월 24일 안후이성 펑양현 샤오강촌의 지방 농민 18명은 전년도 식량 부족으로 마을 주민의 30%가 기근에 시달리자 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인민공사체제를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농지를 가구별로 나눠 경작하자는 농가청부 생산책임제를 도입했다. 즉 농민 수대로 토지를 분배받아 경작한 후 일정 양의 양식을 국가에 납부하고 잔여량은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하는 제도다. 제도 위반은 공안당국의 강력한 단속을 받았으나 굶어죽는 것보단 좋다는 농민들의 저항을 덩샤오핑은 기꺼이 허용했다. 덩샤오핑의 묵인 아래 시작된 새로운 제도로 그해부터 샤오강촌의 곡물생산량은 매년 20% 이상 급증했다. 1978년의 3만2500㎏에서 1997년에 60만㎏으로 18배가 증가했다. 개인이 강렬한 의욕을 갖고 노력한 만큼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이기심은 어떤 정책보다 증산에 효과적인 무기였다. 샤오강촌의 성공은 덩샤오핑이 주창한 개혁과 개방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적 지도자들은 1980년 들어 생산력 향상을 앞세워 전국적으로 인민공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인민공사가 해체되며 2억5000만 명이었던 농촌의 절대빈곤 인구는 1998년 4200만 명으로 줄었다. 1978년 3억744만t이던 중국의 식량 생산은 1997년 4억9417만t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식량 증산이 없었다면 대량 기아는 불가피했다.

북한 역시 중국이 경험한 집단영농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업단위를 축소하고 개인의 영농 인센티브를 늘리는 조치를 수차례 검토했다. 2011년 12월 김정은 정권 출범 후 북한 경제 및 농업 부문에서 가장 큰 변화 요인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6·28 방침’이다. 북한은 2012년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한데 대하여’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른바 6·28 방침의 농업 관련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동농장과 공장의 생산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국가가 보장한다. 둘째, 국가와 협동농장이 7대3으로 생산물을 분배한다. 셋째, 농산물 가격 책정은 시장가격으로 한다. 넷째, 개인 소유 몫의 처분은 자유로 한다. 다섯째,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의 규모를 4~6명으로 줄인다.

김정은의 ‘6·28 방침’은 무늬만 농업개혁




▎함흥에 있는 흥남비료공장 전경. 일제가 건설한 동양 최대시설이었지만 노후화됐다.

하지만 6·28 방침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등 선전매체를 통해 개혁적 조치로 소개됐으나 자강도 일부를 제외하곤 전국단위에선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 우선 비용의 국가부담은 사회주의 경제관리체제의 전형이다. 국가가 생산비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바로 세우겠단 발상이다. 둘째,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의 3요소에서 국가가 협동농장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자본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국가의 몫이 70%나 된다는 것은 적절한 분배라 할 수 없다. 셋째, 북한 산업부문(비농업부문)의 가동율은 30% 이하로 알려져 있다.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비료의 공급도 필요량의 30%를 밑돌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가가 초기비용을 보장하는 방법은 농자재 가격을 시장가격으로 지불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초(超)인플레이션 국면에 있기 때문에 시장가격으로 농자재를 보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넷째, 개인소유분의 처분을 자유화한다는 것은 곡물의 시장거래를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다. 시장으로 유출되는 곡물의 양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면 곡물의 국가 수매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작업분조의 규모 축소는 새로운 분조관리제(1996년)와 7·1 경제관리개선조치(2002년)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그 후 실제 작업분조 규모가 축소됐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6·28 방침을 개혁적 조치로 해석하기엔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이 방침은 붕괴된 정부 수매·조달체계를 보완해 국가가 농장과 공장기업소의 생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보인다. 6·28 방침의 목적대로 단기적으로 정부재정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통화 증발이 불가피하며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5월 30일 김정은 위원장은 담화를 통해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한데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른바 5·30 조치의 주요 내용은 협동농장과 공장기업소에서 자율경영제 도입,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 폐지와 가족영농 도입, 농장 노동력 1인당 농지 1000평 할당, 분배 비율은 국가와 개인이 4대6 등이 거론됐다. 농업에서 사적 경영을 허용하고 정부 설정 목표 초과생산분에 대해 자유처분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지만 전국단위 시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시행 시, 협동농장 제도의 근간을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정치적 지적을 북한 최고지도부가 무시하지 못했다. 농업개혁은 최고지도자의 톱다운(top-down) 방식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새 농업 조치들은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시행을 독려한 중국, 베트남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탁상공론 수준이었다. 식량 보급에서 시장의 역할은 확대됐으나, 여전히 목표생산량이 할당되고 농자재 공급 역시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협동농장의 통일 후 미래경쟁력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실질적인 개인영농제를 허용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단초였다.

북한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집단생산에서 2∼3 가족 중심의 개인생산 형태로 영농 단위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집단농의 형태를 띤 혼합개인농’ 이란 변형된 영농구조가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회주의 특성상 개인농 구조를 전국단위에서 선언하긴 어렵고 지방의 협동농장 차원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중앙에서 부분적으로 묵인하는 행위가 증가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전국 협동농장들도 이러한 경향을 부분적으로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본격적인 개인영농제를 도입하는 것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시범적 성격의 혼합농은 단순히 증산을 위한 잠정적인 개혁 조치로 이해된다. 노동당이 주도하는 농업개혁은 여전히 본질적 측면의 개인영농제(individual farming)를 도입하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제한적인 증산 실험에 골몰하고 있다. 개인의 영농 의욕을 고취하는 각종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한다면 농업생산은 근본적으로 증가하기 어렵다.

매년 초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농업문제 해결을 강조한다. 농업 부문에서 물 절약 농법을 비롯한 과학농법들을 적극 개발할 것, 영농물자를 원만히 보장하며, 생산조직 및 지도를 실정에 맞게 추진할 것, 알곡 생산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 전국의 축산·양어·버섯생산기지를 정상화할 것, 강원도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을 적극 추진할 것 등이 단골 강조 사항이다. 하지만 곡물생산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농업생산량은 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발표한 2015년 세계식량정책보고서에서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2012년 1ha에 1450달러로 남한의 25%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IFPRI는 보고서에서 식량문제를 겪는 지역들의 정책을 평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쌀 생산성 증대, 곡물 유실 방지, 수자원 확보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북한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다.

1990년 이후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 연간 농민 1인당 노동생산성의 경우 1961년 남북한 모두 500달러 수준으로 비슷했지만, 2012년 북한은 남한(9063달러)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한 1233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북한 농민 비율은 37% 이상이다. 북한이 빈곤국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요약하면 북한 농업은 비농업적 요인인 일반경제와 연관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원유·원자재 생산 및 도입이 증가해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의 정상적인 공급이 가능해지면 증산이 가능할 것이다. 농업 내부 요인에선 영농시스템 개편 및 농업기술 개선, 주체농법의 탄력적 적용, 작부체계 개선을 통한 효율성 제고, 농산물 가격체계를 바꿔 생산 인센티브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

다만 통일 이후 집단농의 문제점을 감안해 협동농장을 해체해 남한의 소농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평균 500ha 넓이의 협동농장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바람직한 면적이다. 평균 3000평인 남한 소농 규모로는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통일 후 남한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외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협동농장이 보유한 규모의 경제란 장점이다.

北 석탄 받느라 南 쌀값 올라갔다?




▎북한으로 가기 위해 쌀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석탄 반입의 대가로 한국 쌀값이 오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최근 나돌고 있다.

북한 식량난은 통일 이후 한국농업의 부담이 될 것이다. 우선 이들에게 긴급 식량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한국식량안보재단이 발간한 ‘선진국의 조건: 식량자급 보고서’에서 북한 식량난에 대비해 통일미 120만t의 상시 비축을 제안했다. 통일을 고려한 남한 농정이 한반도 전체의 식량수급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논의다. 농업부문의 성장률은 빈곤을 감소시키는데 있어 비농업부문의 성장률에 비해 2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2008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남한 쌀값이 80kg당 20만원선으로 급등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12만 원선이었던 쌀값이 1년 만에 거의 60% 이상 상승한 것은 시중에 쌀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는 북한산 석탄을 싣고 온 선박에 엄청난 양의 쌀을 선적해 북한으로 보낸 결과란 것이 학교 주변에서 주로 학생·교직원을 대상으로 식당을 경영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항변이었다. 필자는 과거 남한 정부가 매년 30만t의 쌀을 북한에 보내던 시절 직접 모니터링 차원에서 선적과 하역 현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1만t의 쌀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만t은 8t 대형트럭 1200대를 동원해야 수송이 가능하고 배에서 하역할 때 쌀이 산더미처럼 보였다. 따라서 정부가 대량의 쌀을 언론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북한행 선박에 선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정부가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서 정부 보관 양곡을 시중에 방출시키지 않은 결과라고 얘기했으나 아주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및 물가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또한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 친화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확산된 여론이라고 해석했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이처럼 쌀은 남과 북 모두에 예민하고,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 모두 정부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품목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깊어가는 가을밤, 남과 북 모두 먹는 문제를 해결해 한반도에서 굶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18-11-16

06 "북한의 대중 경제종속 더욱 심화될 듯"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37〉김정일 訪中 이후 남성욱



"북한의 대중 경제종속 더욱 심화될 듯"




"북한의 대중 경제종속 더욱 심화될 듯"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37〉김정일 訪中 이후
남성욱 고려대 교수
2006.01.31 16:07:00


***I. 북·중 경제관계의 특수성과 일반성**

연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박 9일의 중국 잠행은 북·중 관계의 특수성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시사하였다. 북한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40개 국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외교관계의 일반성은 북·중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중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을 면담하고, 특급 의전 속에서 언론을 철저히 따돌리며 남쪽 개혁·개방의 주요 도시 등을 둘러봤다. 중국이 김 위원장을 영접하는 방식은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와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후진타오(胡錦燾) 주석은 물론 권력 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3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별도 회담을 하였다. 그 외 4위 자칭린(賈慶林) 전국 정협 주석에서 9위 뤄간(羅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4세대 지도자 모두가 김 위원장 방중 활동에 참여하였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방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철통 보안 일정을 요청받았다. 중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락하여 모스크바, 상하이 등 다양한 행선지와 열차, 비행기 및 승용차 등 각종 이동수단을 언론에 흘려 김 위원장의 동선 추적을 철저히 차단하였다. 닝푸구이(寧賦魁) 주한 중국 대사도 김 위원장 방중기간 중 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방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며 비밀 방문을 옹호하였다. 필요하면 적극 행동한다는 중국의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외교 책략이 북한의 난국 타개 의지와 절묘하게 결합한 격이다.

중국은 1996년부터 수교국과의 양자 관계를 5단계로 분류하였다. 5단계는 단순 수교->선린우호->동반자->전통적 우호협력->혈맹 순으로 격이 높아진다. 이 중에서 동반자 관계는 전면적, 합작, 협력 등 세 단계로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동반자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가에 따라 세분화 된다. 현재 중국 외교부는 대외 관계를 5단계와 동반자 관계를 6단계로 구분함으로써 총 11단계로 분류한다. 북한은 최고 수준인 '혈맹' 관계에서 한·중 수교 이후 1단계 하락하였음에도 2단계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한국은 '92년 수교 이후 단순 수교 관계에서 경제통상 중심의 선린우호 관계를 거쳐 '98년 이후 8단계에 해당하는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 중이다. 9단계에 해당하는 선린우호 관계인 일본 바로 위 단계다. 김 위원장의 금번 방중은 이러한 외교 의전이 철저히 적용된 사례다. 금번 방중은 북·중간 특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향후 경제관계를 진단하는 청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바람직하다.

후진타오(胡錦燾) 중국 주석은 2006년 1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국제 및 지역정세에서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중(中)·조(朝)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 유리하다. 최근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중·조 관계는 새로운 진전을 이룩하였다. 중·조 선린 우호 협조 관계를 공고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또한 선린 우호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신에 따라 여러 분야에 걸쳐 쌍방의 교류와 협조를 가일층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오랜 전통을 지닌 조·중 친선을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두 당, 두 나라 인민의 공동 염원이다. 조·중 친선 관계가 지금과 같은 복잡다단한 정세 속에서도 줄곧 발전하고 있는데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조·중 친선의 강화는 양국 정상회담의 확실한 목표라는 데 이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후(胡) 주석은 "전반적인 조·중 친선 강화 흐름 속에서 경제 분야 역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제·무역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호혜적인 협조는 새로운 성과를 거뒀다. 우리는 선린 우호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신에 따라 여러 분야에 걸쳐 쌍방의 교류와 협조를 가일층 확대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공동으로 전통적인 친선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함으로써 향후 경제 분야 역시 협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II. 김정일 경제개혁 현장 시찰과 북·중 경협의 시사점**


금번 방중은 위폐로 인한 금융제재와 북핵 6자회담의 지속을 둘러싸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경제시찰과 경제협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압력에 공동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는 이른바 '외경내정(外經內政)' 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데 주력해야 하는 만큼 김 위원장의 방중은 외형적으로 중국 경제개혁의 실험장을 방문하는 데 주력하였다.

형식적인 대의명분은 지난 '92년 정월초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벤치마킹하여 북한식 개혁·개방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중국 개방의 실험장인 광저우(廣州)와 최남단 선전(深圳)을 방문하여 개방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경제발전 모델을 참관하는 현장학습용 겨울여행은 실제 정상회담 명분 축적의 성격이 강하였다. 김 위원장의 광폭(廣幅) 행보는 평양에 귀국하면 그가 추가 개방특구 지정 등 마치 중국식 개혁·개방 조치를 즉시 단행할 착각을 갖게 한다. 하여튼 그는 선진농업 시설은 물론 첨단산업 현장 등 다양한 지역을 시찰하였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중국의 6개 도시를 방문했다. 신의주와 접경지대인 단둥(丹東)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간 후 곧장 우한(武漢), 이창(宜昌), 광저우(廣州), 주하이(珠海), 선전(深圳), 베이징(北京)에 이르는 코스를 밟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농업분야였다. 김 위원장은 1월 14일 광저우(廣州)시 판위 구에 있는 둥성(東升)농장유한공사를 방문했다. 홍콩 기업인이 건설한 둥성농장은 광둥지역에서 현대식 농법의 선두기업이라고 한다. 녹색 식품과 유기농 채소, 고품질 과일 생산으로 유명하다. 김 위원장은 이 농장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농법 등을 자세히 청취했다고 한다. 북한은 2005년 430여만톤의 대풍을 기록했지만 남한에서 50만톤, 중국에서 15만톤의 식량을 지원받지 않으면 최소 소요량 520만톤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신년사설에서 경제건설의 주공(主攻)전선을 농업 증산으로 확정할 만큼 식량이 부족함에 따라 김 위원장으로서는 중국의 농업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는 2001년 상하이 방문 때도 쑨차오 현대농장 구역을 방문하였다. 중국이 김 위원장의 귀국 후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정상간 만남의 장면도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이 1월 17일 중국농업과학원을 방문해 연구원으로부터 농작물 신품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사진이었다. 2004년 4월 방중 당시에는 박봉주 내각 총리를 시켜 베이징 근교의 대표적인 농촌 시범지역인 한춘허(韓村河)를 둘러보게 했다. 다만 중국의 농업과 북한의 협동농장 운영 시스템이 다르나 김 위원장이 이러한 생산 체계의 구조적인 차이보다는 곡물 증산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 개발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의 시찰이 내포하는 불가피한 한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경제개혁의 실험장 선전과 광저우, 주하이 방문이다. 후 주석은 지난해 10월 평양 방문시 김 위원장에게 선전 등을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후 주석은 지난 10월 평양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 밑에 중국 인민은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등소평이론 등 세 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지침으로 독립자주와 개혁 개방을 견지하고 시대와 더불어 전진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끊임없이 완성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을 부단히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중국의 모습에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사회생산력과 종합적 국력, 인민생활 수준을 계속 높였다."고 언급하였다.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대표적인 천지개벽의 무대인 선전의 현지 시찰을 제안하였다. 김 위원장이 주변의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직접 현지를 볼 경우 개혁과 개방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첨단 자본주의 도시 홍콩과 맞붙은 선전의 주민, 그 중에서 젊은 세대의 변화된 생활상을 직접 보는 것은 김 위원장에게 호기심과 불안의 양면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또한 광저우에서는 방중 사상 처음으로 새로 조성한 대학촌을 방문하였다. 물론 김일성 종합대학 동문인 광둥성 장더장(張德江) 서기와의 인연으로 중산(中山)대학 분교를 방문했다는 지적도 있으나 과거 베이징을 3차례 방문했으나 대학을 방문한 전례가 없어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돌아와서 대학교육에 관심을 집중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선전과 광저우 방문은 1월 17일 후진타오 주석이 마련한 환영연회에서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특구발전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중국의 발전상이 중국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의 결과"라고 언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관심사는 첨단산업 분야였다. 김 위원장은 1월 14일 선전 난산(南山)구 과기원(科技園, 과학기술단지) 본부와 첨단산업 업체를 방문했다. 첨단업체의 공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소수의 기술직원만 출입이 가능한 밀폐공간에 들어가 핵심 시설을 참관했다. 특히 전자동 생산 설비에 흥미를 보이며 일부 설비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를 묻기도 했다. 이 회사는 과거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문했던 곳이다. 김 위원장은 2000년 방중 당시 베이징에서 개인용 컴퓨터(PC) 생산업체인 롄샹(聯相)을 방문하여 해박한 컴퓨터 지식을 과시한 적이 있다. 단번도약을 꿈꾸며 정보통신(IT)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 첨단기술 업체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다만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첨단 설비를 개발할 여건과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중국으로부터 전자동 완제품을 수입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데 주력함에 따라 IT 발전은 전력 및 하드웨어의 부족으로 경제발전의 주력 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농업과 첨단산업과 특구 개발 분야는 북·중 경제협력이 강화될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될 부분이다.

***III. 북·중 경제관계의 실상과 평가**

후(胡) 주석은 지난해 10월 평양 방문시 "우리는 중조 친선 협조관계를 보다 더 깊이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중조 쌍방은 고위급 내왕을 가일층 밀접히 하고, 의견 교환을 강화하며 교류 분야를 확대시키고, 협력 내용을 풍부하게 하며 무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공동의 발전을 촉진하며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협력하며 공동이익을 수호해야 하는데 합의를 보았다"고 연설했다. 양국 경제협력의 강화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북·중간의 경제협력은 기존의 소비재, 서비스업 및 광물자원에 이어 해저유전 공동개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북·중간 경제협력은 무산 광산의 철광석 등 지하자원에 이어 유전 공동개발로 확대되면서 에너지 분야가 완성되었다. 노두철 북한 내각 총리와 쩡펜이옌(曾培炎)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는 2005년 12월 24일 베이징에서 「중·조(中朝) 정부 간 석유 해상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특히 석유는 생전에 김일성이 "우리나라에 원유만 터지면 통일은 물론 큰 부자가 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을 정도로 주목한 자원이다. 실제로 북한은 80년대 초와 중반 강원도 통천 앞바다와 서해에서 원유 시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간 북한은 캐나다 소코社(98년), 독일 피닉스 원유회사(2001년) 등 서방의 회사들에게 조광권을 부여하고 자금 지원을 받아 유전 시추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그 후에도 미국과 영국계 회사들이 참여를 타진했으나 북한이 국제 원유 메이저들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본격적인 유전개발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북·중 양국은 지난해 10월말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시 20억 달러 경협 추진의 후속 조치로서 정부 차원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계약 조건은 서방회사들보다 유리한 조항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 경협과 무상지원성의 투자가 혼합된 복합계약일 것이다.

중국자본의 대북 진출은 지난 2004년 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宝) 총리는 2004년 4월 2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경제·무역 협력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 정부는 중국기업이 북한측과 다양한 형태의 호혜협력을 행할 것을 적극 장려한다'고 표명했다. 중국기업의 대북 진출을 장려한 것은 신의주 특구의 양빈장관이 구속되고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이 지연되는 등 북·중간 이상설이 확산되는 당시 상황에서 극히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중국 정부의 보증문서가 나옴에 따라 민관 차원에서 대북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중국은 우선 2004년 2월 '베이징자오화유렌문화교류공사(北京朝華友聯文化交流公司)'를 설립하여 정부 차원에서 대북 진출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간 민간상업 촉진 및 투자업무 자문회사인 이 회사는 북한이 유일하게 자문 권한을 인정한 중국의 민·관영기업이다. 그러나 형식은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정부를 대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중국기업들의 대북투자는 중앙정부와의 교감하에서 진행된다.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영민(金永民) 부위원장은 2005년 2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투자사업설명회에서 2004년 말 현재 북한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300개사이며, 그중 40%인 120개가 중국기업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오화유렌공사의 티엔하뤼이(田海瑞) 기획부 경리에 따르면 2005년 6월말 현재 동 공사를 통해서 북한과 협상을 진행 중인 사업수가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의 대북진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구한말 서구 열강이 조선을 침략할 때 경쟁적으로 얻어낸 지하자원 및 목재 채굴권이다. 둘째, 에너지, 항만 및 물류 등 사회간접자본의 투자 및 조차권이다. 셋째, 의류, 신발, 식품 및 가전제품 등 소비재 상품의 직접 수출이다.

우선 가장 활발한 분야가 지하자원 채굴이다. 빠른 성장으로 각종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중국경제는 북한의 지하자원 획득에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중국의 동북부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서 건설 경기 활성화에 따라 각종 건설 원자재를 확보하는데 비상이 걸림에 따라 성(省) 차원에서 북한 지하자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지린(吉林)성의 퉁화(通化)철강그룹, 옌벤텐츠(延邊天池)철강그룹, 중강(中鋼)그룹 등 3개 기업은 가동율이 미흡하나 총 매장량 30억t, 가채 매장량 13억t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무산광산 개발에 최소 70억위안(약 9,000억원)을 투자해 50년간 개발권을 따내는 계약을 북측과 체결했다고 홍콩 대공보(大公報) (11월 2일자)가 보도했다.

***IV. 김정일 방중후 북·중 경제협력의 전망**

중국 세관통계에 의하면 2004년 중국의 대북수출 품목 1위는 53만톤의 원유를 포함한 광물성 연료다. 2위는 냉동육류다. 육류는 2003년에는 전년대비 6배, 2004년에는 전년대비 2배가 증가했다. 3위 품목인 컬러 TV는 2002년 7만대, 2003년에는 17만 5,000대, 2004년에는 21만대로 증가했다. 비디오는 2002년 0.2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03년 41만 달러, 2004년에는 216만 달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전년대비 2004년 급신장세를 보인 소비재는 커피와 차(4.7배), 유제품 및 베이커리(3.7배), 음료 및 알코올(2.9배), 도자기제품(2.2배), 악기(9.4%), 가구 및 침구(73%) 등으로 비교적 북한에서는 고급소비재로 분류되는 품목이다.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일반 식당의 증가와 일부 부유층이 공식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통계다. 고급 육류를 섭취하고 중국산 차와 술을 마시고 컬러TV와 비디오로 외국 유명드라마를 보며, 악기를 즐기는 고위층과 비즈니스 계층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표1> 중국의 대북한 수출품목
http://www.kifs.org/new/Dbview.html?sec_sort=4&no=1816

한편 신의주 역시 중국 단둥의 하청생산 기지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터, 셔츠 등 중국 업체들이 요구한 임가공이 신의주의 저렴한 임금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둥-신의주 벨트는 북·중 국경지대에 가설된 9개의 통로 가운데 가장 물자교류가 많고 비즈니스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둥 주민들은 돈이 되면 무슨 업종이든 가리지 않는 신의주 지역을 보고 '돈산주의'라고 놀랜다. 돈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벨트를 통해 북한 산업 분야를 야금야금 잠식해가고 있다. 평양시내 정보통신 전문상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컴퓨터와 관련 용품은 대부분 중국산(made in China)이다. 중국의 렌상(聯相)그룹은 북한의 정보통신(IT)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부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공장에서 조립된 미국산 델(Dell) 컴퓨터도 판매되지만 686 펜티움 컴퓨터가 1,500달러선에 팔리는 중국산이 가격 면에서 저렴하여 압도적이다. 평양 시민의 주된 수송수단인 자전거도 중국이 투자한 평양자건거합영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북 진출 분야는 여행사, 호텔 및 무역업 등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2005년 1월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조선반도투자사업설명회에 나온 첸용창(陳永昌) 성(省) 행정간부학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조만간 보험, 증권 및 은행부분의 투자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같은 중국자본의 북한 진출 러시는 한·중·일 3국간의 대북한 무역 비율을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중국의 무역비율은 2004년 현재 13억 8,500만 달러에 36.6%로 한국의 6억 9,700만 달러에 18.4%, 일본의 2억 5,200만 달러에 6.7%를 각각 두 배 및 여섯 배 차이로 따돌렸다. 북·중과 북·일간의 비중은 2000년 당시 중국이 4억 8,800만 달러, 일본이 4억 6,400만 달러의 비슷한 규모에 비해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표2> 한ㆍ중ㆍ일 3국의 대북한 무역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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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중국 자본은 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가난한 북한에 진출하는 것일까? 평양은 가까운 시일 안에 수익을 남기는 시장이 될 것인가? 북한은 중국자본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는가라는 경제적 고려사항 이외에 정치적 요인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부딪친다. 중국자본의 평양 투자는 북·중간에 몇 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합치된다. 우선 북한은 북핵 위기에 따른 미·일의 경제봉쇄로 중국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강화하는 바람에 돈줄이던 무기 수출과 마약밀매가 막히고 있다. 2004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경제교류협력을 합의한 이후 2004년 북한의 대중(對中)교역 규모는 13.8억 달러로 전년보다 무려 34%가 증가하였다. 북한의 전체 무역액 중에서 대중 무역 규모는 6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5년 3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봉주 내각총리와 「대북(對北) 투자촉진 및 보호협정」을 체결하였다. 연초부터 북한은 중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하여 협정체결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지난 10월 28일 후진타오 주석 방북시에는 북한과 중국간에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이 조인되었다.

주목할 부분은 중국의 평양시장 선점전략이다. "중국인은 (한국전쟁에 이어) 다시 압록강을 건넌다. 이번엔 상인으로서" "조선(북한)에서 금 캐기 그 전망은" 등 지난해 하반기 발행된 중국 시사지 요망동방주간(膫望東邦週刊)의 헤드라인은 최근 중국의 대북 자본진출 러시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005년 1월 15일 중국 하얼빈시에서 열린 '조선반도 투자합작설명회'에서는 "중국의 어제가 북한의 오늘이고, 중국의 오늘이 북한의 내일이다" 라며 지금이 대북 투자 적기임이 강조되었다. 지난해 1만여명의 중국 기업인이 투자를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평양의 상주 비즈니스 인원만도 3천여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4년 하반기 중국기업 대상 대북투자 설명회만도 10여 차례에 이른다.

중국 자본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압록강을 건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이후 기업의 독립채산제가 확립되고 비즈니스 관행이 정착되기 시작한 평양의 기업활동 여건 개선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세금인하 등으로 투자환경이 대폭 개선되고 저렴한 생산비용은 중국 기업인들에게 10년 안에 훌륭한 시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하였다. 푸젠(福建)성 대외경제무역청 대표로 베이징에 근무하는 왕웨이리(王位力) 주임은 "북한의 현재가 중국의 70년대 말 80년대 초와 비슷하며 지금 조선에 진입하는 것이 시장을 점령함에 있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언급하였다. 미개척 시장의 봇물이 터짐에 따라 경공업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단기보다는 장기적인 미래시장 선점의 논리는 명확해진다. 특히 중국 기업인들은 북한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중국에 비해 높고 상대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은 낮아 노동집약적 산업의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중국에서 5위안 하는 티셔츠가 북한에서는 4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반대로 중국인들의 평균 임금이 100불을 넘어 서고 있는데 평양의 임금은 100위안 수준인 20-25달러 선에서 결정된다.

세 번째 관심 부분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경제 버전(version)이다. 중국으로서는 김정일 이후(Post-Kim)까지도 한반도 북반부에 대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외교목표를 지켜야 한다. 중국의 입김이 정치적 차원을 떠나 경제영역에까지 확대될 경우 역사에 이어 경제 분야의 동북공정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동북 3성의 중화경제권이 한반도로 확대되는 것이다. 중국은 백두산 관리권을 강화함으로써 옛 간도지역에 대한 영토 분쟁의 싹을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이후 수많은 한국인들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으며 '만주땅은 양보 못한다'라는 구호에 놀란 중국은 치밀한 고구려사의 당(唐) 역사 편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만주지역의 고구려 유물에는 한국인의 접근이 봉쇄되었다.

역사적으로 수천년 중국 역사에서 단일 왕조의 평균 수명이 150년이 채 안된다는 사실은 통합과 분열의 기록으로 점철된 중국 역사의 서문에 기록되었다.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50개 국가 중에서 분열의 싹을 피울 수 있는 지역이 타이완과 만주지역 이다. 조선족의 민족주의가 만주지역에서 발흥하는 것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경제적 통합이다. 중국 위정자들은 역사와 경제 분야에서 중화사상으로 북한에 억지력을 행사한다면 한국민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히 간도 지역의 조선족은 한민족의 민족주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요주의 대상이다.

북한 경제 회복의 수장인 박봉주 내각총리의 2005년 3월 중국 방문은 북·중 경제 협력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당국간 최우선 관심과제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후 주석은 2005년 10월 방북에서 향후 북·중관계 발전의 4원칙을 천명했다. △고위층의 상호방문 전통 지속, △협력적 내용이 담긴 교류 영역 확대, △경제무역 협력을 통한 공동발전 모색,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 추구 등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분야가 경제적 측면에 치중한 제안이라는 것이 베이징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이 후진타오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북한에 약 20억 달러의 장기원조 제공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물론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북한이 어려울 때 우리의 능력이 닿는 선에서 도울 수 있다는 답변으로 20억 달러 지원설을 완곡하게 부인했지만 북한의 요청이 반영된 보도일 것이다. 이는 북·중간의 관계가 경제혈맹(血盟)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은 제품을 생산하여 내수시장을 구축하기 전에 중국제품의 소비지로 전략함으로써 경제종속은 불가피하다. 자체적인 자본축적을 통한 생산증가->소비증가->투자증가->자본축적의 경제의 선순환 발전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소비재의 수입대체->생산 중단-> 자본축적 실패-> 재투자 중단 등의 악순환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중국경제 종속은 불가피할 것이다.

마지막 대목은 중국의 국제정치적 고려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전개되고 있는 지정학적 변천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방 확대와 미국의 세력이 아프카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완충지대까지 확산되었다. 미·일동맹의 확대로 타이완 해협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국위험론'이 이론에서 현실로 확산됨에 따라 미군의 아시아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9.11 테러 이후 반테러 전선은 중동과 북한 등 중국 주변부에 집중되었다. 중국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게 요충지가 되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핵 해결과정에서 중국에 경제제재 동참을 요구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전략적 병풍(屛風)'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안정이 동북아 정세의 균형에도 매우 중요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수행을 통한 화평굴기(和平屈起) 정책에도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또한 베이징을 주기적으로 괴롭히는 탈북자 망명도 경제적 안정이 달성되면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10월 평양 방문기간 중 26년간 연평균 9.4%의 경제성장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우회적으로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의 수용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훈수하였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결국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이 오늘날 초보적 수준의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첩경이지만 수용 여부는 평양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후 주석은 그보다는 김정일 총비서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굳건한 영도와 일심단결된 조선 인민의 힘이 조선의 미래에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현재 베이징 국제관계학 박사지도교수이며 외교학 주임교수인 예쯔청(토自成)은 북중관계를 이해하는 데 주목해야 할 지침을 내놓고 있다. 그는 2005년 5월 출간된 저서 '중국의 세계전략'에서 한반도는 중국외교에서 하나의 함정이며 중국이 임진왜란, 청일전쟁 및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이 진흙탕에 다시 빠져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중국은 한반도의 현존질서를 보존하며, 북한정국의 안정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한국과도 정치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적극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비핵화 입장을 지지한다는 정책이다. 또한 일부 대국의 전쟁 혹은 대북경제 제재 압력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두개의 한국(Two Korea)' 정책이며 현상유지(Status quo)를 깨는 어떤 움직임도 단호히 배격한다는 입장이다. 이 정책은 동북공정의 역사와 경제버전이라는 양축을 통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V. 결론**

김 위원장의 2006년 정초 방중이 완료됨에 따라 이제는 남순강화에 대한 학습효과, 즉 덩사오핑의 남순강화와 유사한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드는 귀환강화(歸還講話)가 나올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경제개혁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지난 10월 정상회담 이후 유포된 20억 달러 지원설의 구체화다. 시간이 없는 북한은 중국의 신속한 투자를 경제회복의 종자돈(seed money)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반면, 중국은 북한을 단기간에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면서 북한 경제에 대한 구조적 장악을 모색하는 동상이몽을 꿈꿀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중국자본은 대북 진출의 속도를 높일 것이다. 중국은 대북 경제지원 대가로 자신들이 추진했던 경제특구 방식의 개혁·개방을 권유할 것이다. 북한도 양빈 구속으로 종결된 신의주특구보다는 남측 지역에 경제특구를 지정하여 중국 자본과 기술을 접목시키고자 할 것이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대계도 지역이 유력한 경제특구로 부각될 것이다. 대계도 지역은 신의주와 정주 사이에 위치하여 신의주와 같이 중국인들을 겨냥한 유흥특구로 개발될 가능성이 적고 순수 중국의 임가공 산업 및 제조업 기지로 육성될 가능성이 크다. 북ㆍ중 양측은 최근 대계도의 명칭을 '장군항 독립경제구'로 확정하였다고 한다. 장군항은 경의선과 접하고 항구로 연결되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면적도 신의주 예정 면적의 1.5배인 200㎢에 달한다. 중국이 북한의 저임금을 이용할 목적으로 대계도를 '북한판 선전특구'로 개발할지, 혹은 중국 자본의 북한 진출 전진기지로 활용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 위원장 방중 후에 대규모 북·중 경제협력에서 경제특구가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향후 북한의 대외경제교류와 합작은 한국의 투자가 중심이 되는 개성공업단지, 러시아와 중국 투자를 노린 나진ㆍ선봉 경제특별구 및 중국 투자를 겨냥한 '장군항 독립경제구'의 삼각 형태를 보일 것이다.

중국 자본의 급격한 북한 진출과 관련,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우선 중국이 낙후된 동북 3성을 개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단순히 북한과 협력한다는 순수 경제적 관점의 주장이다. 1인당 평균소득이 1500달러 수준인 동북 3성을 개발하는 데 있어 북한이 오히려 이 지역의 부족한 자원 공급기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견해다. 에너지 블랙홀인 중국 경제에 북한의 지하자원이 중국 자본과 결합되어 개발되는 것이다. 특히 신의주와 단둥은 이미 단일 경제권으로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위탁 임가공을 통해 양측이 경제적 상생 전략을 적절하게 추진하고 있다.

다른 관점은 북한의 동북 4성(省)화 주장이다. 중국 자본의 대북진출이 정부의 보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논거 중의 하나이다. 2004년 4월 2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양국간 경제·무역 협력 강화에 합의한 이후 경협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북한측과 다양한 호혜협력을 행할 것을 적극 장려한다"는 총리의 천명 이후 정부 산하에 베이징차오화유롄(北京朝華友聯)문화교류공사를 설립하여 망설이는 중국기업들의 대북 진출을 독려했다. 그 뒤 호텔, 서비스업을 거쳐 대안친선유리공장 등 중공업과 지하자원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북 진출이 전개되었다. 중국은 지난 10월 옌벤의 조선족 자치주가 보유하던 백두산에 대한 관리권을 지린성으로 이관했다. 같은 시기 중국의 훈춘기업들은 나진항 개발자금을 투자하는 대신 3·4부두의 50년 사용권을 조차(租借)했다. 금년 양국의 무역규모는 전년대비 30% 이상 증가한 2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중국 자본에 의존하는 한 경제적 대중(對中) 종속은 불가피하다. 북한이 북한성(省)이 되는 동북 4성으로 전락하면 동북공정의 경제버전이 완성된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후자의 관점은 중국 자본의 대북진출이 경제적 목적에서만 진행된다는 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 자본의 급격한 평양 진출이 경제적 상호협력만을 의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속도와 폭이 신속하고 넓다. 평양시장에 대한 선점을 통해 소비처와 투자처를 점령하는 경제논리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동북 3성의 단일 경제권에 북한을 포함시키는 것이 북한의 경제적 붕괴를 방지하는 중국의 '두개의 한국(Two Korea)' 정책과 가장 부합한다는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북핵 압박을 피하여 중국 자본에 의존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중국은 많지 않은 자본 투자로 한반도 북반부에 대한 영향력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단기적으로 달러 위폐 등에 대한 미국의 대북제재도 북·중 관계가 경제혈맹으로 확대되는 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유효하게 체결된 각종 북·중간 조차 및 개발 계약은 한반도의 통일정부도 승계가 불가피할 것이다. 해저 유전공동 개발은 유전지역의 공동 순찰함대 구성을 통해 서해안에서 양국간 군사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양국의 경제혈맹이 단순히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후 주석이 방중 기간 중 김 위원장에게 정치안정을 권유했다는 보도로 인해 양국간 이견설이 대두되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중국 신화통신간 발표 내용이 일부 상이함으로써 중국의 최국빈 대우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이견은 존재한다는 추론이다. 북·중 양국 지도자들은 총론에서 일치하였으나 각론에서 은연중 이견이 노출됐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정치안정은 경제안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며 경제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개혁·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국의 경험이나 북한이 이를 전적으로 벤치마킹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북한은 항상 종심(縱深)이 짧다며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북한의 전면적인 개혁·개방보다는 서해안 특구에 중국 자본이 급속히 진출하는 형태와 내륙에서 중국 기업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확보하는 데에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 양측의 경제협력에 대한 상이한 속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조정될지 주목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inkyu@pressian.com다른 글 보기

04 [서울 리포트] 북한의 새 시장- 이원희 기자



[서울 리포트] 북한의 새 시장이원희 기자



[서울 리포트] 북한의 새 시장
이원희 기자

북한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농민시장을 시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그 동안 농수산물을 팔아오던 시장에서 각종 공업제품도 판매 할 수 있도록 해 북한이 암시장을 사실상 양성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바뀐 시장에 대해 고려대학교 북한학 남성욱 교수와 탈북자들의 모임인 숭의동지회 김원형 사무국장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서울에서 이원희 기자가 전합니다.

북한의 국가 계획 위원회 최홍규 국장은 최근 조총련기관지를 통해 농민시장이 시장으로 바뀌어 시장기능이 전환되어 국가의 식량공급 망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부 지방에서는 시장에서 쌀을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농민시장이 이렇게 바뀐 것에 대해 남한 고려대학교 북한학 남성욱 교수는 지난 7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북한의 물가가 상승하고 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돈이 많이 풀려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만 물자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나온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남 교수는 말합니다.

남성욱: 이번 조치는 정부의 물자 공급량에 한계에 왔기 때문에 오히려 그럴 바에는 사적인 경제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용을 함으로서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본격화 한 것으로 보고 정부가 일률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겠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농민시장은 1950년 10월 북한이 농민시장개설 의정서를 발표해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국가계획경제가 부진하자 농민시장을 단속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남성욱: 농민시장이 너무 활성화되면 국가의 계획경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로 주기적으로 단속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금하지는 못했습니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그 동안 농민시장과 함께 암시장도 활성화가 되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을 했습니다. 지난 97년 신의주에 살다가 탈북한 탈북자 모임 숭의동지회 김원형 사무국장은 암시장에는 농민시장에서 팔지 못하는 상품들이 거의 다 있다고 말합니다. 김원형: 암시장에 모든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일제 공업품 같은 것은 시장에서 판매 못하도록 했지만 공업품이 다 판매되고 필요한 기계품목 같은 것도 심지어는 필요한 것이 모두 판매되어 일체 다 유통을 할 수 있는 시장 . . .

남성욱 교수도 농민시장에서 못 파는 물건들은 암시장이 활성화가 되자 북한당국도 이를 묵인해 왔다고 말합니다.

남성욱: 쌀 같은 곡물은 불법품목으로 팔지 못하게 외어 있었습니다. 간단한 채소나 양념종류 등의 농산물품목이었는데 워낙 식량을 구하지 못하니까 암시장에서의 판매를 묵인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가 금한 불법적인 물품이 아니라면 농민이장인 시장을 통해 거래를 허용해 암시장을 양성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욱: 정부가 금한 사치품 암시장 거래 품목이었는데 정부가 아주 불법적인 물품이 아니라면 농산품 공산품 품목을 가리지 않고 농민시장을 통해 거래가 되도록 허용할 것으로 그러나 총기류 마약류 등의 문제가 되는 품목은 어렵겠죠.

아울러 앞으로는 주민들은 비상금을 풀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성욱: 북한은 은행에 그 동안 네차례 거친 화폐개혁이 있었고 은행에서 돈을 동결하는 조치를 가끔 취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민들이 집안의 벽장 속에 많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김원형 씨도 북한에 있을 때는 적은 돈이라도 은행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원형: 은행에다 돈을 저금하면 다 공개가 되고 누가 얼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자기 마음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1만원을 은행에 저금했다고 하면 그것을 찾으러 여러번 걸음을 해야 되고 또 한번에 다 찾을 수가 없는 조건이 있어요.

따라서 주민들이 숨겨두었던 돈으로 시장을 이용할 경우 돈과 시장의 원리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남 교수는 말합니다.

남성욱: 국가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못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구매를 해야하기 때문에 시장의 원리가 같이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북한당국의 조치가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남 교수는 지적합니다.

남성욱: 국가의 계획경제 부분이 80%이상 되고 사경제가 아무리 활성화되었던 시절도 20-25% 이었기 때문에 25%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볼 수는 없죠.

그러나 일단 주민들이 먹는 물자를 조달하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원형 씨도 북한에 있을 당시 농민시장이 없었다면 주민들이 더 많이 굶어 죽었을 것이라며 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원형: 제가 있을 당시에는 식량배급 공급이 안되어 기본 시장구매로 생활을 했어요. 시장이 없으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텐데 시장에 나가 물물교환도 하고 현금 주고 사기도 하고 . . .

김원형 씨는 앞으로 농민시장이 시장으로 바뀌면 북한의 경제관리가 나아질 것이라 크게 반겼습니다.

김원형: 북한이 다소 개방정책을 하면서 지난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해보았자 별 소득이 없으니까 시장을 개방해야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 . .

남 교수도 근래에 온 탈북자들을 조사한 바로는 월급은 상당히 올랐지만 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소비를 많이 하기에는 불안한 실정이지만 이번 조치가 개혁개방으로 가는 일 단계 조치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이원희 였습니다.

0509 남성욱.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0509 남성욱.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분석> 북한이 '긴급구호'보다 '개발지원' 선호하는 이유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2005.09.12 11:12:00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이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측에 2006년 1월부터 식량지원 방식을 '긴급구호'에서 '개발구호'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인도적 식량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음에 따라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와 120여 명에 달하는 모니터링 요원의 철수도 요구했다. 북한의 지원 방식 변경 요구의 배경은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왜 긴급구호를 거절했을까?**

우선 최소한의 식량수급이 안정됨에 따라 WFP의 긴급구호의 필요성이 감소했다. 북한은 지난 2003년 415.6만 톤, 2004년 423.5만 톤의 식량을 생산함으로써 9년만에 대풍을 기록했다.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소폭이나마 증산에 성공한 데 이은 결실이었다.

이를 북한 사회의 연간 최소 식량소요량 510만 톤과 비겨 볼 때 부족량은 100만 톤 미만이다. 그나마 우선 한국에서 50만 톤, 중국에서 15만 톤의 식량을 지원함으로써 부족량은 30만 톤 미만일 뿐이다. 또한 최근에는 경제난이 소폭이나마 개선되어 국제사회에서 상업적 베이스로 수입하는 양이 10만 톤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 95-98년 간의 극심한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350만 톤 미만으로 하락하고 부족량도 200만 톤 수준이던 시기와는 수급상황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된 것이다. 이같은 식량 수급상황의 개선은 국제기구의 지원이 갖는 중요성이 약해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지원 효과가 큰 경제적인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현행 국제기구의 대북한 긴급구호(emergency assistance)는 지난 1995년부터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통상 지원기간인 3년을 넘어 10년째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지원자가 한계를 절감하는 기부자의 피로(doner's fatigue)가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은 WFP의 긴급지원 순위에 있어서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아프카니스탄 등 기아로 신음하는 국가보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량도 95년 초기에는 100만 톤을 넘었으나 현재는 10만 톤 수준으로 전체 외부 지원량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모니터링은 북핵 위기 등으로 대폭 강화됨에 따라 지원의 긍정적 효과보다는 지원에 따른 체제노출의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인도적 차원의 긴급 지원은 단순히 물고기를 던져주는 것으로 농업 생산성 증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특히 인도적 지원은 주민들의 대외 의존성을 확산시키고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식량 부족의 근본적 해결에 근본적인 기여도 하지 못한다. 결국 북한 당국은 농업생산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개발구호(development assistance) 형태로 지원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우선 석유수출기구(OPEC)의 자금대출로 2004년 완성된 개천-태성호 물길공사 등 농업 기초 인프라 구축은 개발지원의 바람직한 사례다. 주민들의 자립심을 배양하면서 증산에 기여하는 방안이 '작업과 식량연계 프로그램(Food For Work Program)'이다. 이는 댐 및 저수지 등 관개시설 보수나 경지정리 등에 북한 주민을 참여시켜 작업대가로 식량을 지원받게 하는 동시에 농업구조 개선사업을 진행시켜 농업생산성을 배가시키는 자립 프로그램이다. 식량 지원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생산성 증가에 기여하게 하는 일석이조 프로그램으로 후진국에서 개발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모니터링'은 자칫 김정일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어**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의 철저한 모니터링에 대한 거부감이다. WFP는 지난해부터 배급의 투명성을 위해 감시제도를 강화함에 따라 전국 213개 군에 대해 한달 평균 450회에 걸쳐 배급 상황을 확인하고 있고 올해부터 무작위로 70여 곳을 추출해 실사(實査)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물자는 환영하지만 인적 접촉은 최소화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강도, 양강도 등 산간오지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실사는 지방의 체제유지에 상당히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빈곤으로 생활수준이 낙후된 지역에 대한 국제기구 요원들의 접근은 김정일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국제기구 요원들이 산간 오지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지방 모니터링 활동은 김정일 체제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지역의 민심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농업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크게 농업 내부와 외부로 구분된다. 농업 내부의 원인은 효율성이 부족한 협동농장의 집단생산 방식에 기인한다. 협동농장은 생산의 작업단위인 분조의 규모가 15인 이상으로 작업 과정에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발생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개인의 이기심이 발휘되는 텃밭의 생산성이 협동농장의 생산성보다 높은 것은 불가피하다.

농업 외부의 원인은 농업자재의 절대 부족과 연관돼 있다.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및 활판 비닐 등은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자재들이다. 이들의 투입은 생산성 향상에 직결되는데, 이 농업자재는 일반경제의 발전 수준과 연계돼 있다. 


즉,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야 하고 농기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계공업이 발달돼야 하나 현재 북한경제의 수준으로 농자재를 충분히 공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북한의 농업 생산성은 1ha(3000평)당 4000톤으로 200평 1마지기에서 3-4가마를 생산하는 수준이다. 남한의 6-7가마와 비교해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개발지원 요구는 이와 같은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토양의 개선, 이모작의 개발, 농기계 수리공장의 건설 등이 북한의 요구사항이다.

***'개발지원으로의 전환'을 WFP가 수용할지는 미지수**

북한의 요구를 국제기구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개발지원의 경우에도 '현장 접근 없이는 식량지원도 없다(no access, no food)'는 원칙에 따라 식량배급 실태조사 없는 개발 구호가 북한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식량 지원량이 적은 개발구호를 북한에게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효율성도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6년이되면 일단 긴급구호를 중단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국 6개 지역의 WFP 사무소를 철수시켜 일반 주민과의 접촉을 중단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 당분간은 제한된 지역에서 개발구호를 부분적으로만 시행하는 방안을 WFP와 협상할 것 같다. 2006년에도 식량 생산이 흉작을 기록하지 않고 한국과 중국 등 연례적인 외부의 지원량이 축소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WFP 지원 요청은 체제노출이 최소화되는 수준에서만 이뤄질 것이다. 특히 남북농업협력 등을 통해 남한의 농자재를 체계적으로 공급받고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농업구조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namsung@korea.ac.kr

미래전략연구원 남성욱



미래전략연구원






이 름 :
남성욱

이메일 :oskysung@orgio.net

T E L :041-860-1273


학력/전공 고려대학교 경제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주리 컬럼비아대 응용경제학 박사
소속/직책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경력 1986. 1 ∼ 2002. 2 국가정보대학원 북한경제 교수
1998. 9 ∼ 2002. 3 이화여자대학교 북한경제 강사
2002.3 ∼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경제 조교수
2000.3 ∼ 현재 북한경제 포럼 상임이사
2001.3 ∼ 현재 통일농수산포럼 북한농업 상임이사
2002.3 ∼ 현재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2002.3 ∼ 현재 북한연구학회 북한경제 총무이사
2001.11∼ 현재 Financial Times 북한경제자문위원

게재칼럼 

북한 식량난과 인구변화 추이 1961∼1998
북한의 시장경제 부문 추정에 관한 연구: 1998년을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회복과 성장전망에 관한 소고
남북농업 생산의 교류와 협력방안
주체농법의 철학과 현실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남북경협 및 투자관련 의제와 전망
효율적인 개성공단 개발 추진 방향과 향후 전망
최근 북한의 신사고 經濟改建 추진전략과 향후 변화 전망
북한의 협동·국영농장의 생산성 한계와 농업구조 개혁 방향
북한 주민의 식·의·주 조달체계와 수급현황
남,북한 경제의 구조와 역량
북한의 통신 산업 현황
Prospects of Grain Production, Consumption and Trade in North Korea
남북한 대학간 학술교류 활성화 방안
최고인민회의 제10기 4차 회의를 통한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 전망
북한농업의 회복 가능성과 정책 과제
북한의 이동통신사업 진출과 정책적 함의
대북 이동통신사업 진출과 정책적 함의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경제교류의 협력추진방안
남북교류 협력확대 발전을 위한 과제와 정책방향
북한 협동농장의 거시적 운용체제 변화와 향후 개혁 방향
탈북동포에게 체계적인 시장경제 교육을 시켜야
북한경제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남북한 관계와 국가신인도 : 남북관계와 주가지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북한 경제관리개선조치의 함의와 농업개혁
[17회 포럼] 남북정보통신(IT)산업협력의 현황과 과제
북한 경제관리개선조치의 함의와 농업개혁
신의주 경제특구와 남북경협
차기 정부 대북 경제협력 정책의 방향
美는 평양을 연구하라
위기에 처한 남·북한 농업
북핵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북한의 경제개혁
남북한 대학간 학술교류 활성화 방안
북한 협동농장의 거시적 운용체제 변화와 향후 개혁 방향
북한의 협동·국영농장의 생산성 한계와 농업구조 개혁 방향
북한의 경제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남북한 관계와 국가신인도 : 남북관계와 주가지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The Prospect and Meaning of Recent Economic Reform in North Korea
파병 그 불가피한 선택
2004년 북한의 경제정책 방향과 남북경협
2기 노무현 정부에게 정책 A/S를 바란다: 통일분야
평양시장 先占하는 중국 자본 러시
장관급 회담 이후 경제협력 전망과 과제
김정일 訪中후 북·중 경제관계 전망
전작권 논란이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
2.13 북핵 합의, 그 이후?
정상회담 평가: A학점과 B.C학점 사이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한반도 전망
북핵 해결시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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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저서 

1. 번역서 : 『김일성의 북한 : CIA 북한보고서』(2001.8) 남성욱 김은영 공역, 도서출판 한송.

2.「남북한 전력협력방안에 관한 연구」 고려대 북한학 연구소, 한국전력 연구용역과제, 2000. 12.21.

3.「데이콤의 대북한 진출방안」 고려대 북한학 연구소, 데이콤 연구용역과제, 2000. 11.30.

4. Prospects of Grain Production, Consumption and Trade in North Korea : 1961∼1997,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 1998.

5. "북한농정의 특성과 주체농법의 역할" 남성욱, 1998.8.29.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춘계학술 발표 논문집.

6. "Input Factors of Grain Production and Grain Production and Grain Consumption in North Korea," Sung-Wook Nam, 1998.11.30, 「Journal of Rural Development」, vol. 21 No.2 Winter 1998.

7. "21세기 통일대비 농정수립의 방향과 과제" 남성욱, 1999.6.25, 제7회 농정연구 연례 심포지엄 주제발표 논문집.

8. "북한의 식량난과 인구변화 추이, 1961∼1998" 남성욱, 1999.7.25, 「현대북한연구」 제2권 1호, 경남대 북한대학원.

9. "북한에서의 市場經濟부문 擴散과 示唆點" 남성욱 문명인, 1999.11.4, 한국은행 북한경제 세미나 발표논문.

10. "북한의 경제回復과 成長전망에 관한 小考" 남성욱, 1999.11.10,「북한연구(Journal of North Korean Studies)」,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연구실.

11. "위기에 처한 북한경제의 회복과 성장은 가능한가?" 남성욱, 2000.6.25, 「통일문제연구」 제12권 1호, 평화문제연구소.

12. "남북한 경영 경제학 분야의 학술교류 추진전략" 남성욱, 2000.7.11, 제2회 전국학술대회 발표자료,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13. "Prospects of Grain Production, Consumption and Trade in North Korea" 2000년 8월 Nam Sung Wook, 「북한학 연구」 창간호.

14. "북한 주체농법의 철학과 현실" 남성욱, 2000.8.30, 「농민과 사회」, 2000년 여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15. "북한의 시장경제 부문 추정에 관한 연구 : 1998년을 중심으로" 2000.8.20, 남성욱,「현대북한연구」제3권 1호,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16. "남북한 경제의 구조와 역량" 2000.9.27, 남성욱, 남북한 경제공동체 형성과 활성화 전략 2000년 교수통일문제 세미나 발표자료, 아시아태평양 지역연구소.

17. "최근 북한 농정추진방향과 남북농업협력 추진방안" 2000.11.4, 남성욱, 북한농업연구회 추계 학술발표회 발표자료.

18. "인터넷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친북한 인터넷 사이트 현황" 2000.12.20, 남성욱, 「북한연구학회보」 제4권 제2호.

19. "최근 북한경제 회복요인 분석과 향후전망" 2000.9.23, 북한경제포럼 발표자료, 「북한경제논총」 6호(2000년 12월), 북한경제포럼.

20. "북한 농업정책과 남북한 농업협력방안" 2000.11.23, 남성욱, 농업기반공사 주최, 북한농업기반 세미나 발표자료.

21. "Theory and Practice : Kaesong and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Sung-Wook Nam, 「EAST ASIAN REVEW」 vol. 13 No.1 Spring 2001.

22. "최근 북한농정추진방향과 남북농업협력 추진방안" 남성욱, 2000.11.20 「북한농업연구」 제7권, 북한농업연구회.

23. "북한의 수산업 실태와 향후 남북 수산협력 방안" 남성욱, 2001.4.24. 남북수산협력에 관한 세미나 발표 논문.

24. "남북경제협력의 이상과 현실" 남성욱, 2001.4.25 「극동문제(EAST ASIAN REVIEW)」극동문제연구소.

25.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사고'론과 신진엘리트-북한사회 변화의 전망 최근 북한의 신사고 經濟改革 추진전략과 향후 변화" 남성욱, 2001.5.4. 고려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창립 3주년기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6. "북한의 협동 국영농장의 생산성 한계와 농업구조 개혁 방향" 남성욱, 2001.5.26. 북한농업연구회 춘계학술 심포지엄 발표논문집.

27. "최고인민회의 제10기 4차회의를 통한 북한의 경제 정책 변화 전망" 남성욱, 2001.5.6. 「통일경제」제75호, 현대경제연구소.

28. "남북한 대학간 학술 교류 활성화 방안" 남성욱, 2001.7.8, 「대학교육」제112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9.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남북경협 및 투자관련 의제와 전망" 남성욱, 2001.8.20, 「북한학연구」 제2집, 고려대학교 북한학연구소.

30.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경제교류의 협력추진방안" 남성욱, 2001.10.5, 한국동북아경제학회 정책개발세미나 발표논문집.

07 통일외교안보전공 교수진소개 남성욱

통일외교안보전공

교수진소개 교수진소개
남성욱
【학력】 - 미주리주립대학교대학원 응용경제학 박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개발학 석사 - 고려대학교 경제학 학사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 학사
【경력】 2002-2005 북한경제포럼 연구이사 2002-2007 남북경제연합회 부회장 2002-현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003-2005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2004-2007 북한경제전문가 100인포럼 이사 2004-2006 한국북방학회 회장 2005-2005 KBS, CBS 북한문제 객원해설위원 2005-2012 남북경제연구소 소장 2006-2006 경기도 남북관계 자문위원 2007-2009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 2002-2012. 2 민주평통 자문위원 2008-2012. 2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 2012. 2. 4-2013. 6. 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저서】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의 대응』(2007) 공저
『현대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2004) 
『북한의 정보통신(IT)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2002.10)
『김일성의 북한:CIA 북한보고서(번역서)(2001.8)

2018-11-13

16 Julie Meadows MA. Agricultural Production Trends in the DPRK from 1995 to 2015

RISS 통합검색 - 학위논문 상세보기

Agricultural Production Trends in the DPRK from 1995 to 2015etc

  • Julie Paige Meadows /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 석사학위논문, 2016/02
이 연구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유엔세계식량 계획이 조사한 북한작황 및 식량 안보 평가 특별 보고서를 중심으로 연구 되었으며, 북한 농업과 식량 공급 상황들을 분석 하기 위해 북한 정부에 의해 초대 된 FAO/WFP 인원 들의 자료에 의하여 조사했다. 북한작황 및 식량 안보 평가 특별 보고서는 북한을 조사하는 수 많은 연구원들에 의하여 사용 되거나 비판 받기도 했지만, 그러한 연구들은 이 자료 자체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 지지 않았었다.  

이 연구는 북한작황 및 식량 안보 평가 특별 보고서의 경작면적, 기상조건, 화학비료사용, 농업 투입 변수와 곡물 생산량과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 하였으며, 생산물 추세와 투입변수 경향 사이의 상관 관계 또한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 연구는 1995년부터 2015년 시기 동안 유엔 식량 농업기구와 유엔 세계 식량 계획 특별 보고서에 보고된 북한농업상황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간결한 그림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한다.



Agricultural Production Trends in the DPRK from 1995 to 2015 : 1995년~ 2015년 북한 농업 생산 추의: FAO/WFP북한의 작황 및 식량안보평가 특별보고서 중심으로 :A study of the FAO/WFP Crop and Food Security Assessment Missions

2018-10-24

04 '기아의 돌파구', 北 협동농장 개혁 - 남성욱. 통일뉴스



'기아의 돌파구', 北 협동농장 개혁 - 통일뉴스





'기아의 돌파구', 北 협동농장 개혁
연합뉴스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04.02.22 10:32:00




(서울=연합뉴스) 이귀원기자 = 북한의 식량부족 사태는 최근 북핵(北核) 문제에 가려 세인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1995∼1998년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던 북한의 식량난은 국제사회의 원조등에 힘입어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태다.

특히 2003∼2004년 양곡연도를 기준으로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415만6천t에 그쳐 최소 소요량 550만t에도 140여만t이나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교수. 한울 아카데미.총 447쪽)은 이같은 식량난의 근원을 북한 농업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협동농장의 비효율성에 두고 있다.

협동농장은 북한 전역에 3천여개가 있으며 전체 경지면적의 90%인 180만㏊, 농업생산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리(里) 단위 기본 생산조직.

저자는 협동농장의 생산 및 분배체계가 국가에서 일관된 단일체계에 의해 통제돼 협동농장이 독자적으로 품목과 생산량을 결정하거나 유통 등을 추진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생산량과 작업량을 작업반과 분조 단위로 하달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제약되는 등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며 협동농장의 중앙집권적 관리와 비민주성, 조직ㆍ운영의 경직성 등을 꼬집었다.

농자재 및 에너지 부족에 따른 수확량 감소, 열악한 노동자원에 의한 낮은 노동생산성 등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저자는 북한의 곡물생산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요 생산단위인 협동농장의 운영상 변화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농장해체 등 협동농장의 전면적 개혁보다는 운영체제 개선 등 부분적 개편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 농업을 포기, 농지를 사유화하하는 등 근본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한 협동농장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저자는 이같이 북한의 협동농장 제도에 대해 역사ㆍ사상ㆍ정책ㆍ조직ㆍ운영실태ㆍ구소련 및 중국과의 비교ㆍ개혁방안 등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분석하고 있다.

또 남북간 농업협력 방안으로 북의 협동농장과 남측 농업주체간 계약재배 활성화, 협동농장 지원을 위한 남북농업채권 발행, 잠업 협력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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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남성욱, 정유석. 개방과 폐쇄의 딜레마, 북한의 이중적 경제 - 북한의 경제




알라딘: 개방과 폐쇄의 딜레마, 북한의 이중적 경제 - 북한의 경제


개방과 폐쇄의 딜레마, 북한의 이중적 경제 - 북한의 경제 l 살림지식총서 407

남성욱, 정유석 (지은이) | 살림 | 2012-04-17







이 책의 전자책 : 1,900원



반양장본 | 96쪽 | 120*190mm | 125g | ISBN : 9788952217905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살림 지식총서 407권.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 경제의 세세한 구조를 살펴보고 실상을 파악함으로써 개방과 폐쇄 사이에서 제자리걸음할 수밖에 없는 북한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통일을 앞두고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자세 준비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경제의 발전 과정: 경제체제의 특징
금융제도와 화폐개혁
에너지
정보기술과 첨단산업
농업
대안의 산업체제
독립채산제
개인소유
지하경제
장마당



P.10 : 북한의 금융은 사회주의 금융제도로써 국가은행을 중심으로 금융행위가 이루어지며 사적인 자금거래는 금지된다. 국가의 계획에 따라 금융의 자금이 유통되고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주의체제국가의 금융부문은 그 역할이 제한된다. 경제계획에 따라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수행되고 실물거래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금융의 주체적인 역할은 부정되고 실물의 유통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한정된다.


P.27 : 북한이 정보통신을 선택한 것은 사회주의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경험을 참고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모델은 점진적인 발전 모델이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러시아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도입 및 시행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고 시행착오를 담보할 경제적 여유도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북한은 역설적으로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정보통신을 통해 강성대국 대열에 합류하고자 하는 것이다.


P.40 : 한편 북한은 2003년 4월 국제 이동통신업무를 시험 개통하였다. 국제이동통신업무는 북한 국내 고정 전화망과 연결되지 않아 국제전화만 송·수신할 수 있고, 국내전화는 송·수신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북한은 2002년 4월부터 평양과 남포 등지에 거주하는 중국과 러시아 주민을 상대로 한 국내이동통신업무를 개통하였다. 이어 북한은 2003년 4월 주로 북한 외국인과 외자회사, 외국합자합동경영회사, 북한의 수출입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이동통신업무를 시작했다. 새로 개통한 국제이동통신업무는 북한 국내 고정 전화망과 연결되지 않아 국제 전화만 송·수신할 수 있고 국내 전화는 송·수신할 수 없다고 한다.



지은이 : 남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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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개혁>,<한국의 외교 안보와 통일 70년> … 총 11종 (모두보기)
소개 :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교수(2002~현재) 겸 행정전문대학원장(2016~현재)
국방부 정책자문위원(2014~현재)
법무부 법무연수원 통일관계 자문교수(2014~현재)
중소기업중앙회 통일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2014~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2014~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차관급, 2012~2013)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차관급, 2008~2012)
한국북방학회 고문(2007~현재)
기상청 남북관계자문위원(2007~현재)
북한연구학회 부회장(2007~2012)
경기도 남북관계 자...




지은이 : 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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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개방과 폐쇄의 딜레마, 북한의 이중적 경제>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 고려대학교대학원 북한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현재는 민주평화자문회의 공무원과 남북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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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일로의 암울한 경제
북한 경제의 치명적 이중성을 논하다.

▶ 내용 소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북한의 경제는 악화 일로에 빠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경기 침체로 인한 주민들의 생필품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공업이나 산업 시설 정비, 경제 운영의 정상화, 첨단 정보통신 분야의 집중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을 모색하였다.

그 가운데 정보통신 분야는 사상적 기반과 군사적 역량은 갖추었으니, 경제적으로 강성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핵개발 이외에 또 다른 카드였다.

부분적인 개방경제를 경험한 북한은 계급의 차이에 따라 개인 소유를 인정해 주고 있으며 장마당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 개방보다는 핵개발을 선택함으로써 다시 경제 침체의 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통한 북한의 외국 의존도 또한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이 책『개방과 폐쇄의 딜레마, 북한의 이중적 경제』는 이러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 경제의 세세한 구조를 살펴보고 실상을 파악함으로써 개방과 폐쇄 사이에서 제자리걸음할 수밖에 없는 북한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통일을 앞두고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자세 준비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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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Contemporary food shortage of North Korea and reform of collective farm

자료유형단행본서명/저자사항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Contemporary food shortage of North Korea and reform of collective farm /
남성욱 지음개인저자남성욱
발행사항파주 :한울아카데미 :
한울엠플러스,2016형태사항574 p. :

도표 ;23 cm총서사항한울아카데미 ;1876
총서부출표목한울아카데미 ;1876ISBN9788946058767
서지주기참고문헌(p. 552-568)과 색인수록이용제한사항일반비통제주제어북한 농업 , 농업 정책 , 테제 , 식량난 , 협동 농장 , 주체농법 , 중국 인민공사 , 소련 콜호스,

소장정보
번호소장처등록번호청구기호도서상태서비스1 북한자료센터 / 7층 국내서 EM68436 520.9111 남54ㅎ 이용제한 출력


목차


목차
개정판 머리말...5
초판 머리말...8
제1장 북한 농업의 현황과 정책 방향...21
1. 북한 농업의 현황...21
2. 최근 북한 농업정책 추진 방향...25
1) 감자 증산정책...28
2) 이모작 면적 확대...31
3) 종자혁명...33
4) 토지정리사업과 토지보호대책...34
5) 초식 가축사육 및 양어 사업 확대...36
6) 미생물 비료 도입...39
7) 국영농장 신설...40
8) 주체농업정책의 탄력적 적용...41
9) 기상재해 최소화를 위한 농업 기반 정비...42
10) 외자 유치를 위한 농업경제특구 지정...43
3. 북한 곡물생산과 소비의 역사적 고찰...43
1) 생산량 추이...43
2) 북한의 식량 수출입 고찰...47
제2장 북한 농업정책의 추진과 협동농장체제 도입...51
1. 북한 농업 발전과 협동농장체제 도입의 불가피성...51
1) 제1단계(1945∼1949): 인민민주주의 개혁기...56
2) 제2단계(1950∼1953): 동란기...57
3) 제3단계(1954∼1959): 사회주의 혁명기...57
4) 제4단계(1960∼1970): 사회주의제도 건설기...58
5) 제5단계(1971∼1976): 사회주의제도 안정기...59
6) 제6단계(1977∼1986): 주체경제 확립기...60
7) 제7단계(1987∼1993): 사회주의제도 완전승리기...60
8) 제8단계(1994∼1999): 사회주의 농업제도 고난기...61
9) 제9단계(2000∼현재): 사회주의 농업제도 보완기...61
2. 1946년 토지개혁의 의의와 협동화...62
3. 북한의 농업협동화 정책...67
1) 농업집단화의 시대적 배경...67
2) 농업집단화의 전개 과정...68
3) 북한 농업협동화 과정의 특성...70
4) 북한 농업협동화 운동 경과의 개관...76
5) 북한 농업협동화 운동 추진 사례별 내용과 특성...82
6) 개별조합의 협동화 사례...90
7) 협동화 과정상의 쟁점 검토...98
제3장 1964년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와 협동농장 운영 개혁...109
1. "테제"의 일반적 해석과 협동농장 운영...109
2. "테제" 발표의 배경과 협동농장 운영 개선...114
3. 농업협동화와 농정조직 구축 정책...116
1) 농업성...117
2) 도 농촌경리위원회...118
3) 군 협동농장 경영위원회...118
4) 리 협동농장 관리위원회...119
제4장 북한의 협동농장 거시적 운영 조직 및 미시적 운영 정책...123
1. 북한 협동농장의 거시적 현황...123
2. 협동농장의 재산과 소유...128
3. 협동농장 조합원의 의무와 권리...130
1) 조합원의 의무...130
2) 조합원의 권리...130
4. 협동농장의 기능별 조직...131
1) 협동농장의 주요 기관...131
2) 협동농장의 내부 조직...135
3) 협동농장의 생산 체계...137
4) 협동농장의 공급 및 분배 체계...142
5. 협동농장의 영농자재 조달공급체계...143
6. 협동농합의 영농자금 조달공급체계...145
7. 북한의 분배 체계...147
1) 북한 분배 체계의 원칙과 기준...147
2) 협동농장의 수입과 지출...149
3) 협동농장 수입 분배...151
4) 작업반우대제...156
5) 분조관리제...157
6) 협동농장 운영과 농산물의 수매...162
제5장 협동농장 운영체제와 규약의 변화 양상...163
1. 농업법 제정과 협동농장 운영체제 변화...163
2. 국영농장의 신설 증가...165
3. 협동농장규약기준 적용의 이완...166
4. 협동농장 생산ㆍ분배 제도의 변화와 효과...167
5. 1996년 분조관리제와 농장원의 영농행태...170
6. 1996년 분조관리제의 문제점과 향후 전망...171
7. 생산성 증대 목적의 제도...173
제6장 북한의 주체농법과 협동농장 운영체제...177
1. 주체농법의 의의...177
1) 주체농법 도입의 배경...177
2. 주체농법 대두의 시대적 배경...179
1) 경제적 배경...179
2) 주체농법의 도입 시점...180
3. 주체농법의 철학...182
4. 주체농법의 내용과 협동농장 운영...184
1)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186
2) 밀식재배와 연작(連作)...187
3) 시비체계의 과학화...188
4) 다락밭 건설...189
5. 주체농법의 문제점과 향후 방향...191
1) 주체농법의 문제점...191
2) 주체농법의 향후 방향...193
제7장 협동농장 운영과 곡물생산함수 분석...196
1. 북한 식량난 원인 분석과 기존 연구 검토...196
2. 곡물생산함수를 통한 회귀분석...201
1) 데이터 출처...201
2) 곡물생산함수의 구성...202
3. 곡물생산함수에 대한 회귀분석 결과...212
4. 협동농장체제와 개별 투입 요소에 대한 논의...217
5. 곡물생산함수 분석과 식량증산을 위한 대책...221
제8장 협동농장 개편 방향과 가족농의 역할 증대...229
1. 북한의 협동농장 개편 가능성...229
2. 현행 협동농장 운용체제의 한계와 개선 방향...231
3. 가족농의 역할...236
제9장 북한 협동농장과 중국 및 구소련 협동농장 비교분석...241
1. 중국 인민공사의 운영 형태와 개혁 내용...241
1) 사회주의혁명과 토지개혁...241
2) 농업집단화와 인민공사의 형성...244
3) 인민공사의 성장...247
2. 인민공사의 운영 형태...249
1) 관리 체계...249
2) 생산조직...250
3) 분배 체계...254
3. 인민공사의 개혁 내용...257
1) 개혁 배경...257
2) 제1단계 개혁: 생산책임제 도입과 인민공사 해체...259
3) 제2단계 개혁: 토지제도 개혁과 경영규모 확대...269
4. 소련 콜호스의 운영 형태와 개혁 내용...275
1) 콜호스의 성장과정: 사회주의혁명과 토지개혁...275
2) 농업집단화와 콜호스의 형성...278
3) 콜호스와 집단농장의 성장...282
4) 콜호스의 운영 형태...286
5) 협동농장의 생산 체계...286
6) 분배 체계...287
7) 콜호스의 개혁 내용...288
5. 제2단계 개혁: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300
1) 1단계 개혁의 실패...300
2) 농업체제전환: 토지개혁과 농민경영 창설...302
3) 농업체제 전환의 실태...303
6. 북한 협동농장과 중국ㆍ소련의 비교...306
1) 집단농장 개혁 유형...306
2) 농업집단화의 비교...308
3) 관리 체계의 비교...311
4) 생산조직의 비교...315
5) 분배 체계의 비교...319
6) 역사적 경험의 비교...323
제10장 북한 협동농장체제의 개혁 방향과 대응 방안...326
1. 향후 협동농장 개혁 여건과 방향...326
2. 협동농장 개편의 기본 원칙...328
1) 농장원의 자원성 원칙 보장...330
2) 형평성 원칙에 의한 생존권 보장...331
3) 효율성 원칙에 의한 농업생산구조 유도...331
4) 여타 산업 부문과 연계된 개혁 방향 유도...332
3. 협동농장의 개혁 방향...332
1) 거시적 개혁 방향...332
2) 미시적 개혁 방향...335
4. 북한 농업개혁과 남북 농업협력...336
5. 협동조합 재건과 남북한 농업협력 방향...341
1) 협동농장과 국내 농업주체 간 계약재배 방식의 활성화...342
2) 협동농장의 감자 증산정책에 참여...344
3) 협동농장 지원 관련 국제사회와 연계 추진...345
4) 특정 협동농장 대상 잠업협력 적극 추진...346
5) 협동농장 지원 관련 남북농업채권 발행...347
6) 협동농장 대상 과잉 농축산물 지원...347
7) 각종 영농자재 지원...348
제11장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농업개혁...350
1. 7ㆍ1 조치와 북한 경제...350
2. 물가인상: 국정가격과 농민시장 가격의 비교분석...353
1) 국정가격 제정의 기준과 원칙...353
2) 국정가격 인상의 실태 분석...355
3) 농민시장 물가동향...359
4) 최근 농민시장 물가동향: 초인플레이션 만연...362
3. 임금 인상의 원칙과 목적: 직종별 차별화와 근로의욕 제고...363
1) 임금 인상의 원칙과 목적...363
2) 계층별 임금 인상의 비교: 선군정치와 직업별 차별화...365
3) 공업 부문별 임금 인상 비교...368
4) 7ㆍ1 조치에 따른 임금 인상 내용...370
4. 임금과 물가 인상에 따른 생산ㆍ소비 행태의 변화와 사회적ㆍ경제적 함의...373
1) 생산ㆍ소비 형태의 변화 양상...373
2) 임금ㆍ물가 인상과 사회적ㆍ경제적 함의...375
5. 7ㆍ1 조치의 평가와 향후 개혁추진 전망...377
6.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농업개혁...379
1) 농업관리개선조치의 내용...379
2) 농업개혁 평가 및 향후 전망...384
제12장 김정은 집권 이후 농정과 향후 전망...391
1. 김정은 집권 이후 농정의 내용과 식량수급 실태...391
1)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 및 농업현황...391
2) 김정은 집권 이후 농정 방향...395
3) 김정은 시대 식량수급 실태...405
2. 김정은 시대 농업개혁 평가: 6.28 조치와 5.30 조치...409
1) 6.28 조치와 5.30 조치의 내용과 평가...410
2) 북한의 농업생산성 평가...414
3. 북한의 농업경제특구와 복합농촌단지 건설...417
1) 북청농업개발구...418
2) 이랑농업개발구...424
3) 숙천농업개발구...428
4) 농업개발구 과급효과와 남북농업협력...432
부록...443
1.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승리와 농촌경리의 앞으로의 발전에 대하여...444
2. 분조관리제를 정확히 실시하며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 데 대하여...484
3. 농촌경리의 당면한 과업의 성과적 실행을 위하여...497
4.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505
5. 북한의 주요 농업 연표...533
6. 농업협동조합 기준규약(잠정)...542
참고문헌...552
찾아보기...569

04 남성욱 교수, "식량문제 해결되야 북한의 민주화 가능"



남성욱 교수, "식량문제 해결되야 북한의 민주화 가능"




남성욱 교수, "식량문제 해결되야 북한의 민주화 가능"
입력 2004-03-01 19:23
수정 2009-10-05 04:07


“지금까지 어떤 사회든 기근 때문에 체제가 무너진 예는 거의 없습니다. 북한개혁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여 그 사회 내부의 정치개혁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북한 식량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책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한울)을 내놓은 남성욱 고려대 교수(45·북한경제학)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식량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의 경우 빨치산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는 데다 이미 1995∼98년의 대기근까지도 견뎌냈기 때문에 식량을 무기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



남 교수는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해지던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 농업문제를 연구해 왔다. 북한의 농업정책을 분석하고 현지 농촌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남 교수가 찾은 원인은 무엇보다도 협동농장의 비효율성에 있었다.



“북한 농업의 약 90%를 차지하는 협동농장은 분조 체제로 경작되는데 현재와 같은 25명 분조 체제로는 불필요한 인력이 너무 많아 생산성을 높일 수 없습니다.”



남 교수에 따르면 그 해결책은 이미 1996년 북한에서 제시됐다. 분조를 7, 8명 단위로 나눠 노동 강도를 높이고 일정 목표량 이상의 성과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도록 하면 생산성은 자연히 향상된다는 것이다.



“96년 강원도와 함경도 일부 지역에서 이 ‘신 분조 관리제’를 시행해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될 경우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는 데까지 나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전면실시를 유보했죠.”



남 교수는 남한이 북한 농촌을 지원할 경우 북한 식량문제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남한의 농업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한의 잉여농산물을 북한으로 보내 남한 농산물의 가격을 조절하는 한편 남한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북한의 농업개혁을 유도할 경우 농기구 비료 등 남한의 농업관련 산업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04 남성욱 교수,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발간 - 고대신문



남성욱 교수,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발간 - 고대신문


남성욱 교수,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발간유영지 기자l승인2004.04.12


남성욱(인문대 북한학과) 교수가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을 통해 북한 식량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남 교수는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해지던 199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 7월 28일에서 31일까지 평양 등 북한을 다섯 번째로 방문했으며 식량 부족 사정의 해소를 위해 현지 농촌을 여러 차례 방문, 작물의 생육상태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남 교수는 북한식량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주요 원인은 북한 농업의 약 90%를 차지하는 협동농장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협동농장의 작동체계와 장단점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남 교수는 “식량문제가 해결돼야 북한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며 “이 책을 통해 북한의 현주소를 알고 우리가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지 기자 uozzone@dreamwiz.com

18 [월간중앙] 남성욱.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월간중앙 집중분석]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월간중앙 집중분석]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중앙일보] 입력 2018.08.23 01:00

북한 내부 소프트웨어 분석 없어 권력의 속성 정확하게 투시 못해…미국서 북한판 [국화와 칼] 나와야 북핵 문제 해법도 나오지 않을까.   150년간 북한 깔보다 판판이 당했다!


지난 6월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 관광객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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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사태는 미국에서 중국 연구(China Studies)를 촉발했다. 중국은 1956년부터 인민공사라는 집단농장 시스템으로서 농사를 지은 결과 10년간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는 없었다. 정치적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마오쩌둥(毛澤東)은 홍위병이라는 정체불명의 청소년 완장단체를 조직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초대 중앙인민정부 주석인 마오를 공격하는 지식인과 비판적 반대세력을 인민재판식으로 압박했다. 장유유서의 유교사회에서 십대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파괴 없이는 건설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기득권의 장년층을 혼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정확히 설명해 줄 전문가가 미국에는 없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횡행하는 광기의 역사를 해설해줄 만한 전문가를 구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뒤에서 조종하는 혹세무민의 사건이란 정도의 추측만 난무할 뿐 언제, 어디까지 문제가 확산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자유, 진보 등 서구가치를 신봉하는 미국 정치학자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조반유리(造反有理)의 전통문화 파괴 운동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미국 학계에는 마오의 부인인 장칭(江靑) 등 극좌 4인방이 주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라는 당대의 중국 현대사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학문적 논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중국 연구는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여전히 국공내전의 혼란 속에서 소련과 유사한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가 수립된다는 초보적인 인식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기자로서 13년간 거주하며 최초로 마오쩌뚱을 인터뷰한 에드거 스노가 저술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China)](1968년 초판) 정도가 대표적인 중국 연구서였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기록한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어린 홍군 병사(小鬼)에 이르기까지 중국 혁명에 참가한 인물들의 면면과 현대 중국 탄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만으로 중국을 모두 설명할 순 없었다. 중국이라는 고대와 근대 및 현대국가에 대한 하드파워는 물론 역사, 문화 및 행동양식 등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와 질서와 권위에 순응하는 공맹(孔孟)의 유교문화가 기형적으로 결합됐다. 게다가 “변방이 시끄러우면 황제가 베개를 똑바로 베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1개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 안팎에 그칠 만큼 권력의 부침이 극심하고 이민족의 발흥과 몰락 등으로 순식간에 왕조가 교체되는 중국사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의 시간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최고지도자 암살 시도가 없는 이유



지난해 4월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북한군 경비병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일행의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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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미국 정부와 학계는 체계적인 중국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미국 국무부, 교육부를 비롯한 당국은 각 대학에 설치된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중국학연구소를 별도로 분리, 확대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 등 중국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학자들에게 거액의 연구 펀드를 제공했고, 유능한 신진학자를 발굴해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중국의 문화와 역사, 인민들의 습성 및 마오쩌둥 후계 권력층의 리더십 등 다양한 연구는 성과를 나타내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죽(竹)의 장막’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키신저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이어지고 핑퐁외교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북·미 간의 핵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대(對) 북한 무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통념적인(unconventional leader) 지도자야 ‘돈이 제일 중요하다(Money does matter)’는 인생관이 모토인 만큼 예외로 치더라도 미국 조야의 수많은 대북 협상 경험조차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과거의 협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유사한 협상의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대통령 역시 과거 협상 결과와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로 없다는 인식을 갖는다. 연구와 분석이 미진하니 대책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과거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해 지금도 미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필자에게 단골로 제기하는 질문의 하나는 “언제쯤 북한이 붕괴(collapse) 되고, 쿠데타의 주역은 어느 세력이 될 것인가”이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쿠데타군이 평양의 주석궁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대동강과 보통강에 있는 11개의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이다. 평양의 지도를 펼쳐 놓고 평양방어사령부의 병력과 반란군 병력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호위총국의 부대 위치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의 상상만이 난무할 뿐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인 1979년 10·26 사태와 같이 최측근이 최고지도자를 암살하는 기묘한 사건이 왜 평양에서는 발생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과거 필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재직 시절 김정일 위원장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총국의 최말단 부서에 잠깐 근무하였다는 탈북자와 제3국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왜 김 위원장에 대한 살해 시도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우선 물리적으로 저격이나 살해 시도는 불가능하다. 경호체계는 철벽이다. 심지어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신에 사로 잡혀 있다. 특히 저격이나 살해를 시도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집안에 누구 하나라도 호위총국 근처에만 근무해도 사돈에 팔촌까지 호위호식하며 사는데 최고지도자를 위해할 필요가 있는가?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반대로 삼족이 몰살당하는데 위험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빈곤도 권력도 모두 상대적이다. 북한에서 우리 부처의 과장급 정도의 관직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지 3년 정도 지나면 남한 사회가 참 무료(?)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북한에서 과장급 정도의 직책이 민간에 대해 누리는 권력의 맛에 비하면 남한 사회는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도 별것이 없다는 인식을 한다. 고위급 탈북자들은 철저한 계급·권력 사회의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쥐꼬리만 한 권력도 그것을 행사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 상당했다고 고백한다.

북한 붕괴나 최고지도자에 대한 암살 기도 등은 북한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투시하지 못한 결과에 따른 궁금증이다.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등 동유럽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의 말로가 김씨 혈통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추론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특히 70년간 지속돼 온 독재 정권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라는 것은 토정비결을 믿거나 말거나 신수 보기와 다를 바 없다. 미국 정보당국은 해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를 불러들여 식량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연명하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요구한다. 미 국민의 입장에서 햄버거를 두 개 먹다가 한 개 먹으면 죽고 살 일이지만, 빨치산 전통을 이어받은 북한 인민에게 한 끼 굶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젖먹이 시절부터 주체사상을 학습해 온 인민들이 수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미 서부개척시대에 막강한 보안관에게 저항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으로 재직했던 황장엽 전 주체사상 비서는 ‘서울에 와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매주 토요일 아침에 소속기관 전체 직원 앞에서 일주일간의 잘못된 일을 자아 반성하는 ‘사상 총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주체사상 비서와 김일성 대학총장인 선생도 총화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주 30분가량 지난 한 주 무조건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면 인간이 더 이상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미국의 북한 연구자들은 이 같은 북한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동양문화를 넘어 권위주의 가부장제와 유일수령 사상체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감시와 통제로 인민은 물론 간부조차 촘촘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같은 한민족으로 대학에서 북한학과(Northkorealogy)를 설치하며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는 남한의 전문가조차 북한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하물며 미국의 전문가들의 분석 수준은 매우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문은 미국 북한 연구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에 대해 사전 학습이 부실함은 미국 행정부가 과거 북한의 협상 행태와 전략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 싱가포르 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은 매우 전략적이고 계산된 발언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랬던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박사 수준의 김정은 발언, 고등학생 수준의 트럼프 발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첫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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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결단으로 회담을 제의했고, 실행했다는 의도를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길지 않은 두 문장이지만 북·미 관계의 과거, 현재 및 미래를 압축해서 본인들의 의지를 과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박사과정 수준이었다면 그에 반해 트럼프의 발언은 고등학생 수준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다. 아주 좋은 대화가 될 것이고, 엄청난 성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영광이다. 우리는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도, 의지도 결여된 청소년들의 인사말에 불과했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의 모두발언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기습적인 한 방을 먹은 것이다. 권투선수가 링에 올라가서 워밍업도 하기 전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부실한 합의문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준비 없는 정상회담이 가져올 외교 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대상이다.

미국 전문가와 국무부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임하는 북한 외교의 전략과 합의문 도출 전후의 협상 행태를 포함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핵실험이 6차례가 지속되도록 ‘북핵 매뉴얼’을 만드는 등 북핵 대응에 손을 놓았다. 오바마 정부(2009~2016)는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 수수방관 정책으로 북핵 처리에 실패했다. 체계적으로 준비된 북한 상대 외교 매뉴얼을 협상의 바이블로 삼았다면 사상 최초의 세기적인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의 수준과 내용이 총론적인 모호성과 애매함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1항은 “6자는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6자회담의 목표라는 것을 일치하게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을 포기하며 멀지 않은 시기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였다”이다. 외교적 방법으로 비핵화를 실현하며 북한의 이행을 명기함으로써 합의문의 외형 구조상 특별한 문제는 없다. 문제는 2항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쌍무적 정책들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3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건설 및 200만kW 전력 공급 약속, 에너지 지원 등으로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보상에 관한 것이다. 지뢰밭은 마지막 항에 있다. “6자는 이상의 일치 합의사항들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리행하기 위한 조화로운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은 성명에 서명할 때 1항이 먼저 진행되고 2, 3항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북한은 2항이 우선이거나 최소한 1, 2항이 동급이며 1, 2, 3 항의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나 중요도가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에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먼저 언급됐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마지막 항목에서 단계별 원칙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행동이 일차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묵시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



사령부 예하 포병중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사진:노동신문

결국 미국과 북한은 선(先) 행동조치를 요구하며 샅바싸움을 전개했고, 북한은 다시 무력시위를 감행함으로써 양측의 협상은 휴지조각이 됐다. 북한은 협상 체결 10개월이 안 돼 미국 독립기념일인 2006년 7월 4일 대포동 2호를 발사, 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에서 대포동 2호 1발과 깃대령 851 부대에서 노동 1호와 스커드 미사일 5발을 각각 발사했다. 이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단행해,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행동의 선후 기싸움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향후 6∼8개월 내에 현재 보유한 핵탄두의 60~70%를 미국 또는 제3국에 넘기라는 요구를 했으나 ‘강도 같은 요구’라며 거절당한 것은 여전히 과거부터 지속된 선후 행동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상에 올인했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왜 추후 이견으로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은 합의문에 서명했을까? 협상문을 도출하는 자체만으로 외교관의 능력이 올라간다는 인식을 보유했는가? 아니면 미국의 한 개 주도 안 되는 북한 정도는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걸까? 협상에서 시간과 순서를 명확히 기입해 향후 계약서의 해석을 둘러싼 이견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힐 전 차관보는 2014년에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외교는 결코 전쟁의 연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파들 속에서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집념의 협상가였다. 하지만 1995년 1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협상 당시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상시적으로 접촉하며 협상을 풀어 갔던 힐에게 북한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폐쇄된 체제였다. 그는 북한과 세르비아와는 비교불가라는 사실을 수 년간의 협상 끝에 겨우 파악했다.

최근 콜로라도 덴버 대학 국제관계대학원장으로 있는 힐 전 차관보는 “완전한 비핵화 합의 가능성에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겠다”며 트럼프의 미북 협상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경험 때문일 것이다. 왜 힐 전 차관보와 같은 노련한 외교관이자 협상가조차도 사전에 북한 협상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수많은 협상을 경험하고 나서야 북한이 지구상의 어떤 체제와도 같지 않다고 인식할까?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힐 전 차관보가 수년 간 경험한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fallacy of North Korea)는 사실상 1866년 7월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에 진입한 제너럴셔먼호가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불에 탄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이후 15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시행착오의 역설은 1953년 한국전쟁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준비 부족의 스미스 대대가 북한군에 의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군이 미군의 존재만 봐도 진격을 멈출 것이라는 순진한 판단 아래 스미스 부대를 투입했다. 훗날 유엔군을 지휘하게 되는 리지웨이 장군은 그의 회고록 [한국전쟁]에서 “맥아더는 침공군의 세력을 잘못 판단했으며 인민군 10개 정예사단 앞에 1개 대대를 투입한 것은 맥아더의 지나친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미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군이 미군 참전을 목격하고 소련의 명령에 따라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전체적으로 10일을 벌었다고 평가했다. 엄청난 피해를 입고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과 탐구는 혼선과 혼동이었다.

이러한 오류와 비체계적인 미국의 대응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이패드로 멋진 동영상을 보여주며 비핵화를 설득했다, 비핵화를 하자마자 북한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방 자본, 새로운 철도, 공장과 리조트 등 장밋빛 비전이 포함된 3차원 영상이었다. “그들은 멋진 해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 쪽으로 포를 발사할 때마다 볼 수 있죠. 그렇죠? 저는 전경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멋진 콘도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요?” 트럼프는 첨단 그래픽에 의한 동영상이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개방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도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평양의 협상 상대를 뉴욕의 부동산 개발 전문가로 오판했다. 김정은은 북한에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만 서구 투자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 독이 든 사과를 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확실하다. 그가 스위스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 만으로 개혁·개방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인식은 무지몽매한 것이다. 약 5년간의 베른 체류 기간 동안에 김정은은 1년에 최소 3개월 정도는 각종 행사 참석을 이유로 평양에 체류했다. 특별히 베른 학교 시절에 서구 문화에 충격을 받은 경험도 별무하다. 숙소 이외의 외출은 당시 스위스 북한대사관의 통제를 받았다. 딱히 서방문화를 경험하려는 노력이나 일탈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십대 시절의 보통 청소년들처럼 농구나 게임 정도에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는 “개방을 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을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는 평양의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 연구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몇 주 후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북한 전문가는 물론이고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North Korean Watchers)에게도 공히 해당된다.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경수로 2기를 2003년까지 건설해 주기로 약속한 것은 북한이 그 전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는 갈루치 수석대표 등 외교관들의 과거 발언은 미 외교 당국자들의 솔직하고도 무지한 고백이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북한에 대한 오판의 재연이었다.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이란, 이라크와 북한은 ‘악의 축’ 이라는 발언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 북한과의 협상 진행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북핵 위기를 해결하려는 협상과 압박 사이에서 수사적(修辭的) 혼돈을 거듭했다. ‘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 힘에 의한 압박도 한계를 보였다. 결국 창의적인 대안도 없이 제네바 합의를 덜컹 포기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얻을 국익이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집권기간이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북핵 문제의 정확한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란 구(舊)소련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너지리라는 순박한 기대만을 가지고 은둔의 왕국을 관망한다면 역사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결국 1994년 1차 핵 위기가 발생한 지 23년 만에 재발된 2차 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수준 미달’인 미국의 북한 연구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이제 미국의 북한 정보의 생산 경위와 학문적인 연구 수준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자. 미국의 북한 정보의 산실은 중앙정보국(CIA)이다. CIA의 북한 정보 수집 및 분석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보고서는 필자가 지난 2001년 번역한 [CIA 북한보고서: Kim Il-song‘s North Korea]다. 1970년부터 20년간 CIA에서 극동문제전문가로 일한 헬렌-루이즈 헌터(Helen-Louise Hunter)가 집필했다. 정보기관에서 축척된 자료를 기본으로 작성된 비밀문서였으나 1980년 초 이래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 연방하원 의원의 강한 요청에 따라 비밀 해제된 책이다. 솔라즈 의원은 뉴욕 브루클린이 지역구로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한 바 있다.


21개 분야 북한의 사회학적 분석 시도한 CIA 보고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지난 8월 3일 촬영한 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 사진:연합뉴스

솔라즈 의원은 1980년대 초부터 1993년 의회를 떠날 때까지 윌리엄 케이시 국장 이후 모든 CIA 국장에게 헌터의 기념비적인 연구의 결과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CIA는 업무를 위해서 작성된 보고서들이 비밀로 유지되기를 원했기에 CIA가 이 책의 출간을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CIA가 납득하는 데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솔라즈 의원은 책의 추천사에서 “이제 당분간은 누구도 다시는 북한에 관해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은둔의 왕국의 불가사의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이제 출간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급과 성분을 시작으로 김일성 숭배, 결혼과 가족생활, 교육, 주택 및 보건 의료체계 등 21개 분야에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했다. 이 책은 주로 북한을 방문했던 외교관, 기업인, 운동선수 등과 북한에 있는 친척을 방문한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브리핑 받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북한 인민들의 실제 감정이나 마인드 등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저자인 헌터가 실제로는 한 번도 평양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취약점이다.

미국 학계에서 북한 연구의 독특한 결과물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논쟁적인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2004년 집필한 [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필자가 당시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를 모방해 [김정일 코드]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남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결과는 김정남의 이복동생 김정은이 평양 권력을 승계받았다.

이러한 저자의 일부 빗나간 예상을 제외하면 이 책은 북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북·미 양자 간 갈등의 근원을 구조적,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던 브루스 커밍스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가 집필했다. 북·미 간 갈등의 근원은 한국전쟁이라는 것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깊은 탐구가 전제돼야 하고, 그렇기 위해선 대결이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외에 외교관들의 대북 경험을 정리한 책들이 있지만 일회성 접촉 경험 회고에 그치고 있어 체계적인 지식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북한과 인도에 기만당한 미국의 기술정보력



미국의 인공위성이 획득한 정보를 수신하는 이글비전 시스템 안테나. 북한은 미국의 위성 정찰을 기만하는 작전도 세웠다.

한편, 미국이 생산하는 경쟁력 있는 북한 정보는 기술정보(Technical Intelligence)를 통해 수집된다. 기술정보(TECHINT)는 영상정보(IMINT),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 SIGINT), 징후계층정보(MASINT) 등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최첨단 전략자산 등을 동원하여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각종 통신활동을 감시한다. 주로 북한군의 통신과 평양의 국제전화 통화 등이 대상이 된다. 항공정찰과 위성정찰을 통해 북한군의 이동 등을 체크한다. 미국이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는 영상정보는 해상도 1m급 영상은 군사목표물의 90%까지 판독 가능하고 50㎝와 30㎝는 각각 93%, 96%까지 판독이 가능하다. 사실상 북한군의 지상목표물은 감시가 가능한 수준이다. 북한이 괌에서 날아오는 각종 전략자산에 극도로 민감한 이유다.

정부가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관련 전문매체 [38노스]를 운영하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 연구소(USKI)에 대해 예산지원을 6월부터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가장 큰 이유는 [38노스(38 North)] 때문이다. 사실 [38노스]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끈질긴 스토커’라 할 수 있다. [38노스]는 미국 스페이스 이메이징사(Space Imaging Company)가 판매하는 50㎝ 내외의 민간 위성사진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사전에 수차례 발견해 냈다. 2016년 1월에는 신포항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SLBM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처음 판단했다. [38노스]의 예견대로 그해 3, 4, 7, 8월에 북한은 SLBM을 발사했다. 미국은 NSA 주도 아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에셜론(ECHELON)’이라는 비밀 감청 조직을 결성하여 감청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에는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 미군 비행장으로 알려진 험프레이 캠프에 에셜론과 관련된 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미국 공군기지에서 한반도에 대한 감청 시설이 확충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정보 수집은 다른 대응기술로 차단 내지 방어가 가능하다. 미국은 1974년 최첨단 첩보 위성을 보유하고서도 사전에 인도의 핵실험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인도는 미국 정찰위성이 인도 지역을 통과하면서 감시하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 시간을 피해서 핵실험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전웅, [현대 국가정보학]).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미국의 첩보위성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실시하려는 다양한 징후를 포착했다. 하지만 그러한 징후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기만행위였다. 1998년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도 첩보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에 근거해 제기됐으나 이후 미국 조사팀이 방문해 본 결과 핵시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은 금창리 지하시설 방문을 허용해 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60만t의 식량을 챙겼다. 결국 아무리 최첨단의 첩보 위성이라 할지라도 관찰 및 감시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상대국은 위성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기만책을 구사할 수 있다. 휴민트(Humint) 즉 인간정보에 의해 상호 보완되지 않는 기술정보는 제대로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기술정보의 하드웨어와 인간정보의 소프트웨어간의 균형적인 결합만이 정보의 효능을 배가시킬 수 있다.

휴민트 수집과 함께 미국의 북한 연구에 가장 큰 약점은 현장 접근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특히 폐쇄된 유색 인종 국가에는 과거 모스크바에 파견했던 백인의 외모를 갖는 신문기자, 연구자, 여행객, 상사원 등의 파견이나 체류가 원천 봉쇄돼 있다. 방문자를 통한 디브리핑(debriefing) 방식의 첩보 수집만으로 체계적인 분석은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CIA에 북한 데스크를 설치해 한국계 미국인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다만 정보기관의 분석은 매일 일보(日報) 체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매우 부족하다. 연구소와 대학이 긴밀하게 상호 보완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


6·25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한반도에 파견한 대대급 미 지상군 부대인 스미스 부대.

이제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미국은 ‘북한 스터디(North Korean Studies)’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북한 연구를 과거 소련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던 ‘소련학(Sovietology)’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소련학 연구는 소련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크레믈린 연구(Kremlinology)’로 불리기도 했다. 우드로윌슨센터는 1974년 산하에 캐넌연구소(Kennan Institute)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소련 연구를 전담했다. 미국의 러시아 탐험가인 조지 캐넌(George Kennan)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러시아 연구기관으로 도약하며 다양한 저술 및 현장 접근 사업 등을 수행했다.

현재 미국의 북한 연구는 사회주의 독제체재라는 상식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소나 기관에서 1~2년 근무한 후 갑자기 언론에 나타나 북한 문제 전문가로 활약하는 수준은 이제 지양하자. 워낙 전문가 층이 두텁지 않고 틀려도 아니면 말고 식이기 때문에 경제학 등 여타 분야에서는 도저히 활약할 수 없는 수준의 신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그들의 분석 수준은 역사성이나 논리성 등이 턱없이 부족하며 근거도 별로 없다. 서울에서 생산된 정보가 영어로 전환되며 새로운 정보로 변질되는 패턴은 미국의 북한 협상 실패의 중요한 근거다. 워싱턴 북한 연구자들의 강점은 유창한 미국식 영어 이외에는 특별히 찾아보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북한 연구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무부와 교육부 등 행정부는 대학과 민간의 북한학 연구를 중국,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연구에서 독립시켜 특화된 전문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강좌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와 남한과 북한 연구를 분리해야 한다. 남북한은 동일 민족이지만 언어를 제외하고는 분단 70년 동안 북한은 사회주의와 유일 수령사상 체계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체계와 동일 선상에서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하고 있다. 한반도 연구와 북한연구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연구기관과 공조해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남한의 북한 연구자를 미국에 초청해 연구시키고 미 전문가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기초적인 연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 의회는 ‘Northkoreanology 연구 장려 법안’을 발의하고 예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중국과 일본 연구 수준으로 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연구서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북한 연구에서도 나오는 순간, 핵문제의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반도 사태 진전을 분석하고 향후 효율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데 정확한 로드맵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남성욱 -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한국북방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북한의 IT산업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집중분석]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