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4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 | 동아시아 한국학 연구총서 32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동아시아 한국학 연구총서 32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엮음 | 알라딘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 | 동아시아 한국학 연구총서 32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엮은이)소명출판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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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구 한국학의 토대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후반까지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한 영국 해군 탐험대들과 프랑스 선교사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한국에 학문적 관심을 쏟은 소수의 외교관들과 다수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 책은 이들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목차


간행사 3
서문 6

홍옥숙ㆍ김낙현|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항해기-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까지
1. 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선행연구 17
2. 19세기를 전후한 유럽인 항해자들의 북태평양 진출 22
3. 19세기 후반의 유럽인 방문자들과 조선의 개항 57

이영미|한국을 연구한 초기 개신교 ‘선교사 겸 학자(missionary and scholar)’들
1. 개인에 대한 연구에서 집단에 대한 연구로 67
2. 19세기 말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구성과 특징 71
3. ‘선교사 겸 학자’들의 등장과 『리포지터리』 76
4. ‘선교사 겸 학자’들의 생애와 연구 활동 83
5.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93

이고은|번역과 선교-H. G. 언더우드의 중문 기독교문헌 번역(1886~1896)
1. 내한 선교사들의 중문 기독교 문헌 번역 97
2. H. G. 언더우드의 번역서 목록과 번역 동기 102
3. 언더우드의 중문 전도문서 입수 경위 110
4. 언더우드와 번역자들, 그리고 번역서의 독자들 113
5. 언더우드의 번역서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 120
6. 향후 과제 124

이상현|프랑스 외교관이 남긴 한국학의 흔적-『한국서지』(1894~1896, 1901)의 출간과 그 이후
1. 서울의 추억과 『한국서지』 127
2. 『한국서지』의 출간과 유럽 동양학자의 한국학 132
3. 『한국서지』 출간 이후 한국 개신교선교사의 한국학 154
4. 『한국서지』와 서양인 한국학의 현장 195

이영미|1900~1940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와 서양인들의 한국연구
1.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탄생 203
2.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06
3. 트롤로프와 영국국교회 선교사들의 참여 215
4. 전문 연구자로서의 선교사 2세들 223
5. 서구 한국학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31

홍미숙|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와 성과
1. 시작하며-에카르트가 심취하였던 한국학 연구 235
2.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생애와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의 활동 238
3. 에카르트가 펼친 한국학 연구와 성과 247
4. 마치며-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를 탐구해야 하는 이유 278

김서연|미국 ‘제1세대 한국학자’의 해방 전후 한국인식-조지 맥아피 맥큔의 Korea Today
1. 태평양전쟁 전후 미국 한국학의 흐름과 맥큔 289
2. 전후 시기 맥큔의 한국 관련 활동 292
3. Korea Today에 나타난 맥큔의 한국인식 300
4. 미국 학계에서 Korea Today의 의의 314
5. Korea Today-‘제1세대 한국학자’의 첫 한국사 개설서 317
부록|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맥큔 가족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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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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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동아시아 상생과 소통의 한국학’을 의제로 삼아 인문한국(HK)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상생과 소통을 꾀하는 동아시아한국학이란, 우선 동아시아 각 지역과 국가의 연구자들이 자국의 고유한 환경 속에서 축적해 온 ‘한국학(들)’을 각기 독자적인 한국학으로 재인식하게 하고, 다음으로 그렇게 재인식된 복수의 한국학(들)이 서로 생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구성해내는 한국학이다. 우리는 바로 이를 ‘동아시아한국학’이라는 고유명사로 명명하고 있다.

최근작 : <가교>,<프랑스인을 위한 한국문화통사>,<나는 왜 한국학·조선학 연구자가 되었나> … 총 4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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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해국문견록>,<『오뇌의 무도』 연구>,<망명과 지성>등 총 1,734종
대표분야 : 역사 21위 (브랜드 지수 99,90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구 학계에 한국을 포함시킨 서양인들―탐험가, 외교관, 그리고 선교사
1787년 5월 브로튼(William R. Broughton, 1762~1821)의 팀을 위시한 여러 영국 탐험대가 한반도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파견을 받은 해군 탐험대로, 국책에 따라 미지의 지역을 조사하여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통상을 개시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목표는 한반도와 인근 해안에 대한 지리적 탐사와 한국 및 한국인들에 대한 정보 습득이었다. 그들은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한 최초의 서양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830년대부터 약 30년간 한반도에서는 소수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을 주제로 상당한 양의 기록을 생산하였다. 한국인들과 함께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산 선교사들의 그것은 객관성과 정확성의 층위가 다양한 민족지학적 정보의 보고로, 한국을 깊이 알고자 하는 외부인들에게 오랫동안 필수적인 자료로 인정되었다. 그들이 탐험가들처럼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한국에 대한 서구 세계의 지식과 정보가 그들에 의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현저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 왕조가 일본 및 서양 국가들과 근대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계승한 사람들은 외교관과 선교사였다. 특히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내내 한국 연구를 주도한 것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배우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잡지에 발표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성장하였으며, 나중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를 창립하여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학술지를 발행 및 보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930년 전후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구 제도권 한국학의 발판을 마련한 이 사람들은 거의 다 선교사 출신이었으며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18세기 말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집적하고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배우고 한국을 서구 학계의 연구 영역에 포함시킨 이 서양인들―탐험가, 외교관, 선교사―에 대한 연구 결과 7편을 모은 것이다.

서구 한국학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소장 임학성)는 2019년 9월부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2년 8월 1단계 사업을 마치고 2단계 사업을 수주하여 2025년 8월까지 총 6년간 수행할 계획이다. 사업명은 ‘동아시아한국학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해외 한국학의 집단전기학’이다. <동아시아한국학 연구총서> 제32권으로서 발간된 이 책에는 18세기 말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집적하고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조사하고 나아가 한국을 서구 학계의 연구 영역에 포함시킨 서양인들이 소개되어 있다.

홍옥숙과 김낙현은 1797년 10월 부산 용당포에 정박한 영국 해군 브로튼(William R. Broughton, 1762-1821)의 탐사 항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한편, 1816년 한국의 서해안과 류큐 등을 돌아보고 간 홀(Bail Hall, 1788~1844), 1845년 제주도와 남해안을 탐사하고 간 벨처(Edward Belcher, 1799~1877) 등을 차례로 소개하였다. 이 글은 이 시기 한반도에 접근한 서양 선박들의 상당수가 탐사 항해를 통하여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려던 영국 군함이었음을 드러내고, 한국에 대한 탐험가들의 지식과 정보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 및 계승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라 페루즈(La Perouse)’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프랑스 탐험대장 드 갈로(Jean-Francois de Galaup, 1741~1788)가 한반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바다만 돌다 간 것은 자신보다 130여 년 먼저 한국에 온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의 기록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고은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가 내한 후 10여 년간 번역한 한문 기독교 문헌 15종의 종류와 성격, 번역 동기, 실제 번역 주체 등을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언더우드가 흥미로운 기독교 소설류 대신 실제 선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논리정연한 교리서를 주로 번역한 것, 자신이 본격적인 번역자로 나서는 대신 감독만 하고 실제 번역 작업은 한국인들에게 맡겼던 것 등을 구명하였다. 이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언더우드는 한국어를 대단히 빨리 습득하고 일찍이 사전까지 편찬하였으나, 자신의 어학적 재능을 직접 선교에 필요한 만큼만 계발하였다.

이영미는 한국 연구에 푹 빠진 선교사 4명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존스(Heber G. Jones, 1867~1919), 게일(James S. Gale, 1863~1937), 랜디스(Eli B. Landis, 1865~1898)에 대한 집단전기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네 사람은 출신 국가, 성장 배경, 교육 수준, 소속 교단 등이 달랐으나 모두 평신도 선교사 또는 평신도(헐버트)로 출발하였다. 이들은 평신도로서 학교와 병원 등지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영미의 또 다른 글은 이 ‘선교사 겸 학자’들 중 3인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를 다루었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한국 연구를 전담하는 최초의 정식 학술 단체로서 지난 2020년에 창립 1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단체는 창립 초반에는 연구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의 부족으로 고전하였으나, 1910년대 초 게일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하여 한국 안팎의 전문가들을 아우르는 어엿한 연구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도 한국 연구에 가장 앞장선 것은 평신도 선교사들이었다.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연구한 인물로는 ‘프랑스 한국학의 선구자’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가장 유명하다. 이상현은 20세기 전후 서양인들의 한국 관련 학술 활동을 쿠랑을 중심에 놓고 검토하였다. 쿠랑은 일찍이 한국을 연구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나 중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13년 리옹대학 중국어과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재한서양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이상현은 그들이 쿠랑과 개인적 친분이 없었지만 그의 연구를 읽고 번역하고 참고하여 각자의 연구를 계속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는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학계에 정착하여 제도권 서구 한국학의 출발선을 그은 사람들도 다루어지고 있다. 홍미숙(전남대학교, 미술사)은 천주교 선교사 출신으로 독일 한국학의 첫 번째 주자가 된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에 주목하였다. 에카르트는 1909년부터 1928년까지 한국에서 상트오틸리엔연합회(일명 분도회)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한국의 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수십 년간 한국 연구 및 교육에 종사한 인물이다. 자타 공인 ‘에카르트 전문가’ 홍미숙은 에카르트의 한국 연구를 분야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였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관련 자료도 풍부하게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서연은 미국 한국학의 초창기 멤버인 맥큔(George M. McCune, 1908~1948)을 검토하였다. 맥큔은 북장로교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조선의 외교 관계를 연구하여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옥시덴탈대학교를 거쳐 UC 버클리 사학과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두 번째 사람으로, 1948년에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한국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가 대학원 재학 시절에 고안한 맥큔라이샤워표기법은 지금까지도 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글쓴이
홍옥숙(洪玉淑, Hong Ok-sook)한국해양대학교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김낙현(金洛賢, Kim Nak-hyeon)한국해양대학교 세계해양발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영미(李映美, Lee Yeong-mi)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이고은(李高恩, Lee Go-eun)한국학중앙연구원
이상현(李祥賢, Lee Sang-hyun)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부교수
홍미숙(洪美淑, Hong misuk)전남대학교 강사
김서연(金瑞淵, Kim Seo-yeon)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박사수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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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 요약 및 평론

1. 도서 개요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동아시아 한국학 연구총서' 제32권으로 간행된 학술서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에 한국(조선)에 대한 지식이 어떠한 경로와 주체들을 통해 형성되고 전파되었는가를 다각도로 추적한다.

전문적인 학술 연구자가 부재했던 시절, 서구에 '한국'이라는 미지의 국가를 처음 기록하고 해석한 세 가지 핵심 주체인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들의 활동을 조명한다. 이들이 남긴 기행문, 보고서, 언어 사전, 종교 서적 등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초기 서구 한국학(Western Korean Studies)의 발생적 궤적과 그 기초를 이룬 서구적 시선 및 문화적 토양을 심층 분석한다.

2. 핵심 요약

이 책은 서구 한국학의 초창기 형성 과정을 세 가지 핵심 주체의 역할과 지적 배경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 탐험가들의 지리적·인류학적 발견: 19세기 서구의 지리적 탐험 열풍 속에서 한국에 들어온 탐험가들과 항해자들은 한국을 '지형학적 미지의 땅'이자 인류학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의 기록은 한국의 자연환경, 풍속, 주민들의 외형적 특징을 서구에 알리는 첫 선구적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서구 중심주의적 호기심과 에스노그래피(민족지)적 타자화의 시선이 공존했다.

  • 외교관들의 정치·사회적 관찰과 정세 분석: 개항 이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묵수호통상조약 등을 시작으로 주재한 서구의 외교관들은 한국의 정치 체제, 법도, 조정의 동향, 그리고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 한국의 지리학적 위치에 주목했다. 이들은 조정 내부의 정쟁과 근대화 개혁 시도를 문서화했으며, 이들의 보고서와 회고록은 서구 정부와 지식인 사회가 한국을 '독립국' 또는 '동아시아의 요충지'로 인식하게 만든 주요한 지적 자산이 되었다.

  • 선교사들의 언어·문화적 체계화와 서구화 매개: 초기 서구 한국학 형성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집단은 개신교 및 가톨릭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포교를 목적으로 한국어 사전 편찬, 문법서 출판, 성경의 한글 번역, 그리고 민속과 역사 연구를 정교하게 수행했다.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나 제임스 게일(James Gale) 같은 선교사들은 단순한 종교인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체계화한 초기 한국학 연구자의 면모를 보였다.

3. 학술적 평가 및 평론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은 서구 한국학의 뿌리를 지식사회학과 제국주의 역사학의 접점에서 성찰하게 만드는 매우 뛰어난 학술적 성과이다.

첫째, 초기 서구 한국학의 복합성과 이중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이 책은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들이 생산한 한국 관련 지식이 단순한 순수 학술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한다. 이들의 기록에는 19세기 서구의 근대주의, 제국主义적 아시아관, 그리고 기독교적 우월주의가 짙게 투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의 헌신적인 기록과 언어적·문화적 데이터 수집이 없었다면 서구 세계에서 한국학이라는 학문적 지평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음을 입증하며, 비판적 성찰과 학술적 가치 평가 사이의 균형을 이뤄낸다.

둘째, 한국학 형성의 지적 매개자로서 선교사들의 역할을 정교하게 재조명한다. 선교사들이 수행한 한글 연구와 역사·민속 연구는 단순히 종교적 포교 도구를 넘어, 조선 내부에서도 잊혀가던 한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한국의 고전 문화를 서구의 학문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통로가 되었다. 책은 이들이 단순한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한국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지식을 쌍방향으로 생산했던 매개자였음을 보여준다.

셋째, 글로벌 한국학의 역사적 연원을 제공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한 한국학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동아시아로 모여든 서구인들의 지적·정치적·종교적 욕망과 호기심이 얽혀 형성된 자산 위에 서 있음을 입증한다. 이는 한국학 연구가 스스로의 학문적 출생 성분을 되돌아보는 자전적·반성적 계기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서구의 시선에 포착된 초창기 한국의 모습을 복원함과 동시에, 그 시선을 생산해 낸 서구 지식 체계의 문화적 토양을 예리하게 파헤친 한국학 학술사의 필수적인 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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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외교관, 선교사―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엮음
― 1,000단어 요약·평론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은 서구의 한국학이 대학과 전문 연구기관에서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탐험 항해와 외교활동, 선교사업을 통해 장기간 축적된 지식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공동연구서다. 2022년 소명출판에서 간행되었으며, 18세기 말부터 해방 직후까지 한국의 지리·언어·역사·종교·문화를 조사하고 서구 학계에 소개한 서양인들을 다룬 일곱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Yes24)

책의 중심 문제는 명확하다.

<서구 한국학은 누가, 어떤 목적과 조건 아래 만들었는가?>

오늘날 한국학은 대학의 역사학·문학·언어학·인류학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전문 학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한국학자’라는 독립된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지식을 생산한 사람들은 한국을 연구하기 위해 온 학자들이 아니라 바다를 측량하러 온 해군 장교, 외교적 임무를 수행한 공사와 영사, 복음을 전하려고 입국한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에게 한국 연구는 본래 목적이 아니라 활동 과정에서 생겨난 부수적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항해기, 사전, 번역서, 지리서, 역사서와 학술논문이 이후 서구 한국학의 기초가 되었다.

1. 탐험과 측량에서 시작된 한국 지식

첫 번째 논문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항해기를 분석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북태평양으로 해군 탐험대를 파견했다. 이들의 임무는 미지의 해안을 측량하고 세계지도를 완성하며, 항구와 해류, 수심, 기후와 주민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1790년대 영국 해군 장교 윌리엄 로버트 브로튼의 탐험대는 한반도 동남해안과 부산 부근을 조사했다. 이후 바질 홀, 에드워드 벨처 등도 한국 서해안·제주도·남해안을 방문하여 항해기를 남겼다. 이들은 조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언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해안선과 항구, 주민들의 외모와 의복, 배와 집, 교역 가능성 등을 기록했다. 이 자료들은 유럽인이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에 딸린 주변 지역이 아니라 독자적인 지리적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Yes24)

그러나 탐험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도 제작은 해군력과 제국의 팽창에 필수적이었다. 항구의 위치와 수심, 주민의 성향과 군사력에 관한 정보는 훗날 통상과 침략에도 이용될 수 있었다. ‘지식의 추구’와 제국주의적 전략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서구 한국학의 가장 이른 지리적 지식은 근대 과학과 해양제국의 결합 속에서 생산된 것이다.

2. 선교사에서 연구자로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체는 선교사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한국에 장기간 거주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운 서양인의 대부분이 선교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어를 익혀야 했고, 성서와 교리서를 번역해야 했으며, 사람들의 관습과 종교를 이해해야 했다.

이영미의 논문은 호머 헐버트, 헤버 존스, 제임스 게일, 엘리 랜디스를 ‘선교사 겸 학자’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출신 국가와 교단, 교육 배경은 달랐지만 학교·병원·선교기관에서 일하면서 한국어와 역사, 민속과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 호기심이 연구로 발전하고, 연구 결과를 잡지와 단행본으로 발표하면서 선교사와 학자의 경계가 점차 흐려졌다. (Yes24)

이들의 연구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한국어 사전과 문법서, 역사서와 번역서를 만들고 서구에 한국문화를 알렸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비판적이거나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 사람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선교사들은 한국의 종교와 풍습을 기독교적 기준으로 평가했다. 무속과 불교, 유교를 미신이나 퇴폐적 전통으로 해석하고, 한국 사회를 기독교 문명에 의해 개조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한국학은 한국에 대한 애정과 문화적 우월감이 공존하는 지식이었다. 깊이 관찰했지만 완전히 중립적이지 않았고, 한국인을 존중하면서도 서구 기독교 문명을 발전의 기준으로 삼았다.

3. 언더우드의 번역과 숨은 한국인 협력자들

이고은의 논문은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1886년부터 1896년까지 번역한 한문 기독교 문헌을 분석한다. 언더우드는 직접 모든 문장을 번역했다기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기독교 문헌을 선정하고 한국인 번역자들의 작업을 감독했다. 그는 흥미로운 기독교 소설보다는 선교 현장에서 교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문헌을 주로 선택했다. 실제 번역은 상당 부분 한국인 조력자들이 담당했다. (Yes24)

이 사례는 초기 서구 한국학에서 자주 가려졌던 문제를 보여준다. 서양인 학자의 이름으로 출판된 사전과 번역서, 역사서는 사실상 한국인 교사와 서기, 번역자들의 지식에 크게 의존했다. 서양인은 저자로 기록되었지만, 한국인은 이름 없는 ‘정보 제공자’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서구 한국학은 서양인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관찰하여 만든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서양인과 한국인의 공동작업이었다. 다만 식민주의적·선교주의적 지식체계 안에서 저자의 권위와 명예는 대체로 서양인에게 돌아갔다. 이 책이 초기 한국학의 주체를 재구성하려면, 유명한 서구 인물뿐 아니라 그들을 가능하게 한 한국인 협력자의 존재도 함께 복원해야 한다.

4. 외교관과 서지학

이상현의 논문은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를 중심으로 외교관이 한국학 형성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한국서지』는 한국에서 간행된 서적과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해설한 대규모 서지 작업이었다. 외교관으로 한국에 체류한 쿠랑은 현지에서 접한 자료와 인맥을 활용하여 한국의 문헌세계를 유럽 학계에 소개했다.

서지는 단순한 책 목록이 아니다. 무엇을 하나의 국가 문헌으로 분류할 것인지, 어떤 책을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할 것인지, 한국 지식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작업이다. 쿠랑의 작업을 통해 한국은 유럽 동양학 안에서 중국과 일본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문헌전통을 가진 연구대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헌을 분류하는 일 역시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서구 학자는 한국의 지식을 서양 학문의 분류방식에 맞게 재배열했다. 한국인이 자기 전통을 이해하던 방식과 서양 서지학자가 그것을 분류한 방식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5.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1900년 창립된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초기 서구 한국학이 개인적 취미에서 제도화된 연구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학회는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학술지를 발간했으며, 선교사·외교관·의사·교사들이 한국의 언어·역사·민속·고고학에 관한 연구를 공유하도록 했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서양인들의 한국 연구를 연결하는 중심 기관이었던 셈이다. (Yes24)

학회의 등장은 한국 연구가 개인의 경험담 수준에서 문헌 인용과 자료 검증, 회원 간 비판을 갖춘 학문적 활동으로 이동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회원 대부분이 서양인이었으며 한국인은 연구의 동등한 주체라기보다 조사 대상이나 자료 제공자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한국에 관한 지식’과 ‘한국인이 생산하는 지식’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구 한국학은 한국을 연구영역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한국인 자신의 학문적 주체성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

6. 에카르트와 전문 한국학자의 등장

홍미숙의 논문은 독일인 선교사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를 분석한다. 에카르트는 한국에서 활동한 뒤 독일로 돌아가 한국의 언어와 예술, 음악과 역사를 연구하고 대학에서 가르쳤다. 이는 선교사의 현장 경험이 유럽 대학의 전문 한국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30년 전후 독일과 미국에서는 한국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선교사 본인이나 선교사 가정 출신이었고,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자료와 인적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Yes24)

에카르트는 한국 예술과 문화를 높은 수준의 독자적 문명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연구 역시 당시 유럽 민족학과 동양학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국문화는 종종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민족적 특성’으로 설명되었다. 이는 한국을 인정하면서도 이국적인 타자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7. 맥큔과 미국의 제1세대 한국학

마지막 논문은 미국의 제1세대 한국학자 조지 맥아피 맥큔과 그의 『오늘의 한국』을 다룬다. 선교사 가정에서 성장한 맥큔은 한국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해방 전후 한국의 역사와 정치를 미국 학계와 정책사회에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맥큔은 한국을 일본 식민사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역사적 주체로 이해하려 했다. 동시에 냉전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조건 속에서 한국을 해석했다. 그의 연구는 학문과 정책의 경계에 있었다. 한국에 대한 전문지식은 미국의 군정과 외교정책에도 활용될 수 있었다.

이는 탐험기의 지도 지식에서 시작된 서구 한국학이 결국 국가정책과 국제정치의 전문지식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8. 책의 장점과 한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학의 형성을 몇몇 위대한 학자의 업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탐험가·외교관·선교사라는 직업집단과 제도적 환경의 산물로 분석한다는 점이다. 학문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항해기술, 제국주의 경쟁, 외교조직, 선교 네트워크, 출판과 번역, 학회와 대학이 결합하여 하나의 학문분야를 만든다.

특히 ‘선교사 겸 학자’라는 개념은 유용하다. 선교와 연구를 서로 완전히 다른 활동으로 나누지 않고, 선교 목적이 언어학·민속학·역사학적 지식 생산을 어떻게 촉진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를 한국학의 형성 주체라고만 부르면 서양인 중심의 학문사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그들의 연구 뒤에는 수많은 한국인 언어 교사, 번역자, 서기, 개종자, 지식인과 자료 제공자가 있었다. 이들이 없다면 서양인 연구자는 한국어 사전도 역사서도 번역서도 만들 수 없었다.

또한 이 책은 초기 서구 연구자들의 공헌을 복원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이 지식이 제국주의와 선교 권력에 어떻게 봉사했는지를 더 날카롭게 묻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국에 대한 지식을 많이 생산했다는 사실과 한국을 공정하게 이해했다는 것은 같지 않다. 상세한 관찰도 문화적 편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결론

『탐험가, 외교관, 선교사』는 서구 한국학의 시작을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군함의 갑판, 외교공관, 선교학교와 병원에서 찾는다. 탐험가는 해안을 측량했고, 외교관은 문헌과 정치 정보를 수집했으며, 선교사는 언어와 종교, 풍속을 연구했다. 이들의 작업이 축적되면서 한국은 서구 학계에서 독자적인 연구대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순수한 문화교류의 역사가 아니었다. 과학적 탐험에는 제국의 욕망이 있었고, 선교적 이해에는 개종의 목적이 있었으며, 외교적 연구에는 국가이익이 작동했다. 초기 한국학은 호기심과 지배, 존중과 편견, 학문과 정책이 뒤섞인 복합적 산물이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 관한 지식이 축적되었다고 해서 한국이 있는 그대로 이해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학은 초기 서구 연구자들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 지식을 만든 권력관계와 한국인 협력자들의 지워진 역할을 함께 밝혀야 한다. 서구 한국학의 역사는 단순한 학문 발전사가 아니라 누가 타자를 관찰하고, 분류하고, 번역하며, 그 지식의 저자가 되었는지를 묻는 지식권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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