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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3

박유하 - 도서출판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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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심리제출용 답변서(박유하)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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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10 Jul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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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inute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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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심리제출용 답변서(박유하)



<도서출판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


본인이 이 책을 쓴 첫 번째 이유는 20년 이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라 기존의 연구나 운동방식에도 원인이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이미 9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 위안부/야스쿠니/독도>에서 본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쓴 바 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비교적 호평이었지만 팔리지 않아 영향력은 없었고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보(조선인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죄와 보상을 둘러싸고 일본정부가 한 사죄와 보상등의 기본정보)가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후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한일갈등은 심화되었고 그로부터 또다시 1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특히 2006년에 피해자들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냈던 소송(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이 정부의 패소로 결정된 2011년 여름의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그 해 12월에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소녀상설치 이후 한일간의 갈등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에 따라 본인은 한일양국사회가 이 문제를 윤리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론을 쓴 것입니다. 원래는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고방식(정부/지원운동단체/우익을 중심으로 한 부정파)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을 향해 일본어로 썼던 원고를 번역하고 한국을 향한 글을 덧붙여 2013년 여름에 출간했습니다.




본문에도 있는 것처럼 이 책에는 이 문제에 관한 기존의 사고와는 다른 부분이 많아 어떤 반응일지 우려했지만 예상밖으로 언론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서평,인터뷰 등 자료참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8092100545&code=960205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123/3/70070000000123/20130810/56940279/1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09269







http://m.hankooki.com/t_view.php?WM=hk&FILE_NO=aDIwMTMwODExMjA1MTE3ODQyMTAuaHRt&ref=www.google.co.kr




http://m.donga.com/Main/3/all/20130824/57188470/3







https://www.facebook.com/forreconciliation/posts/398522113584083






따라서,출간 후 10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고소사태가 일어난 것은,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이 책의 내용을 곡해하여 위안부할머니들께 왜곡 전달한 주변인들의 독해력과 그 밖의 정치적인 요인 탓으로 생각합니다.

정치적 요인이란,본 고소장에도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위안부문제에 관한 기존의 연구와 운동을 비판한 본인의 주장이 세간에 침투되는 데 대한 우려와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판단합니다. 본 고소장에 언급되어 있는 심포지엄 <위안부문제 ,제3의 목소리>는, 본인의 취지에 찬동하는 유지들을 모아 행한 것으로, 위안부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중 하나로 운동이나 연구에 일본전문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감안하여 일본전문 학자와 언론인이 중심이 되었었습니다 (자료참조)이 심포지엄에서는,대립하는 한일양국의 기존의 주장에서 가려졌던 생각과 정보,지원단체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위안부할머니들의 생각을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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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notes/박유하/위안부-문제-다시-생각해야-하는-이유/874401815920067






이 밖에도 일본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무엇을 했는지, 한계가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었는지에 대해서 이른바 <양심적지식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와다하루키 교수가 발제했고, 기존의 운동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20년이상 이 문제에 관여하며 운동과 연구에 매진해 왔고 위안부관련 자료전시관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수준의 전시관을 사재를 털어 마련하여 운영중인 부산정대협회장이 발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한 기대와 반응은 이하처럼 호의적이었을 뿐 아니라,일본의 언론도 NHK와 아사히신문등 여러매체가 적극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40414/62760452/1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567733&cloc=olink%7Carticle%7Cdefault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008280547&code=41111411


http://www.hankookilbo.com/v/663d477b2254455e9cfa9d54e06e7989






또하나의 요인으로, 본인이 가깝게 교류하던 위안부할머니(고 배춘희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고발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봅니다. 할머니의 사망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고발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가늠케 합니다. 만약 나눔의집의 다른 할머니들과는 좀 다른 사고를 가졌던 고인이 살아 계셨더라면 이번 고발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최소한 더 지연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본인은 고인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어 왔고 출간 이후 처음 만난 고인은,본인이 책에서 주장한 이야기가 옳았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따라서,<생존자의 증언>이 중요하다면 앞으로 필요시 <고인의 증언>을 세상에 내놓을 생각입니다.




1.<매춘으로 매도>?




본인이 이 책에서 <매춘>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허위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가 군인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이 일반인식이지만 그런 케이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위안부제도는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이었습니다.이는 당시의 자료는 물론,위안부들의 증언에도 다수 존재합니다. 또한 1970년의 한국신문에는 처음엔 <화류계여성>들이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1965년에 제작된 정승화감독 영화 <사르빈강에 노을은 진다> 에는 위안부들이 등장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여성들은 <순진한 소녀>의 모습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본인은 <조선인 위안부>를 둘러싼 정황을 정확히 해두기 위해 그러한 상황을 지적했을 뿐, 매춘을 <비하>하거나 위안부문제를 부정하기 위해 그런 사실을 쓴 것이 아닙니다.

매춘사실에 대한 언급을<비하>했다고 간주하는 것은 매춘에 대한 차별의식이 만드는 발언입니다. 또한 ,<성>에 관계되는 체험을 했다는 것 만으로 해방이후 50년동안이나 위안부들의 존재를 차별하고 망각해온 <위안부문제 발생 이전>의 이식을 답습하는 사고입니다. 저는 일본의 부정파에 의해 <비하>되고 <부정>되고 있는 <매춘>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 단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매춘>이라는 단어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매춘>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고 <순진한 소녀>만을 위안부상으로 정립하려 했던 기존지원단체들의 사고와 방식은 매춘에 대한 차별의식이 보인다는 점에서 일본의 부정파들과 오히려 공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그러한 소녀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다른 팩트를 정확히 보는 일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실과는 다른 과장된 이미지까지 생산하도록 만듭니다.(예를 들면 2014년 1월에 한일간 갈등을 일으킨 앙굴렘 만화제는 지원단체의 협조하에 이루어졌는데,여기에는 사실과 다른 과장이나 왜곡이 다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간 대립은 그런 데에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사 매춘이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의 비참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저는 처음부터 이른바 <매춘녀>였는지 아닌지는 조선인 위안부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생존해 계신 위안부할머니들이 설사 <매춘>에 관계가 없었다 해도 <매춘>이라는 단어를 위안부할머니들을 <비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본서에 등장하는, <매춘>임을 증언한 다른 할머니들을 <비하>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이런 식의 강변과 비난이 일본의 부정파들을 자극하고 해결을 지연시킨 원인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2,<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는,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지만 당시 <일본인>으로서 동원되었습니다..<일본군>으로 동원된 조선인은 일본군과 함께 싸웠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곳에서 협력하였고 (물론 그 협력의 정도나 진실성 여부는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제가 조선인 위안부를 <협력자>라고 한 것은 그 협력에 실제로 <마음>이 존재하였는지 여부를 떠나 구조적으로 중국이나 네덜란드인 위안부와는 다른 협력자적 구조안에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식민지였던 조선의 현황을 정확히 들여다 보기 위한 것일 뿐, 결코 <매도>하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사실이 그들이 받은 차별이나 강간,폭행등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건 마치 일본군인 역시도 상관에게 가혹한 징벌을 요구받고 때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위안부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일층의 차별을 받았습니다. <협력자>적 구조라 해서 그런 상황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면 곧바로 위안부문제에서의 일본의 가해성이 희석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무엇보다, 여러정황을 볼 때 지원단체가 요구하는 <법적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저로서는 오히려 이러한 접근방식이 결과적으로 <법적해결>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애국>이라는 단어를 쓴 것 역시 그러한 기본구조를 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고 결코 위안부를 <매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그런 위치를 정확히 봄으로써 <일본군조선인>에게는 보장되었던 보상이 위안부에게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구조를 지적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저의 의도였고,이는 지금까지의 지원단체와 연구자들의 논리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3.<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은 잊고 스스로 피해자라고만 주장하면서 한일간 역사갈등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고 기술>?




이러한 기술은 완전한 곡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해자>임에 틀림없으나 이제까지 생각해 온 식의 <일본군이 강제로 끌어간 소녀 피해자>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보려했을 뿐입니다 . 또한,그들이 자신들의 그런 체험과 기억을 <잊>으려 한 것은 분명 지적했지만 그건 위안부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은 <우리사회>가 만든 일로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본서에서 <한일간 역사갈등의 주요원인>으로 비판한 것은 그러한 무의식이나 운동일 뿐, 위안부할머니들이 아닙니다.




4.<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는 위안부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매춘이며 일본군의 동지였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피해자의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




이 부분은 제소자측이 보도자료에도 내보내 저에게 마녀사냥적 비난이 집중하도록 만든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란 2부 3장 134쪽을 인용하며 지적한 <70세가 되어가도록 ..직시>라는 부분을 말한 듯 한데,이 부분은 할머니들이 아니라 <해방후 한국>에 대해 말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기초적인 오독에 의한 비난입니다. 할머니들이 70세라면 해방당시 0세였다는, 실소할 수 밖에 없는 지적이고 학생들을 데리고 행한 본서의 분석이 얼마나 거친 것인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거친 분석은 결과적으로 저의 책에 대해 전체적으로 악의적인 왜곡을 자행했습니다(24쪽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피해자의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은 할머니들에게 한 말이 아니라 지원단체들에게 한 말입니다. 위안부의 복합적인 모습,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비로서 일본을 설득시킬 수 있고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정교한 작업을 게을리 한 지원단체나 연구자에 대한 비판을,할머니들에 대한 비판으로 곡해한 주장일 뿐입니다.




5.<성적착취와 학대를 당한 피해자>임을 부정?




저는 이 책에서 위안부가 <피해자>임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

<성적착취와 학대>의 또하나의 주체인 업자가 간과되었음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 또한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인의 인신매매나 유괴를 일본군이 직접 행하거나 지시한 것처럼 생각하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형법 .. 조>를 위반했으니 일본에 국가적 책임이 있다고 말해온 기존 논리가 결코 일본을 설득할 수도 없고 따라서 <법적책임>을 지울 수도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행한 예외적인 케이스는 있을 수 있습니다.)대신 이 책에서는 <도의적 책임>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다만 책을 낸 이후, 4월 심포지엄에서 말한 것처럼(자료),남성들에게는 조선인이라 해도 보장되어 있던 법이 이른바 매춘여성을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예정된 일본어판에서는 그 부분을 강조할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기존의 법체계에 따라 일본이 <법적책임>을 져야 할 의무를 말하는 것은 어렵고 따라서 지원단체가 해온 논리처럼 일본의 의무로서 요구하기는 어렵지만,이 문제가 남성중심적이었던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임을 강조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이 문제에 <주체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6.<허위>?

이 책에는 허위는 없습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제소자들이 부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7. <피해자들의 명예훼손>?


할머니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전달자들의 왜곡된 전달에 의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1)나눔의 집 밖에 거주하시는 어떤 할머니는 고발 이후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서울대교수가 책을 나쁘게 말했다더라>면서 저의 해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녹취록 존재)
2)나눔의 집에 계시는 한 할머니는 눈이 불편하여 책을 읽을 수 없는 분인데, 어느날 나눔의 집 직원이 책을 들고 와 책에 <강제연행은 없었다><매춘부라고 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8.<손해배상 책임>?




따라서 <매춘>이라는 표현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 자신의 매춘이나 협력자적 위치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동안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간과하거나 감춰 왔던 부분이 밝혀지는데 따라 있을 수 있는,지원단체나 기존연구자들의 권위훼손에 대한 위기의식이 만든 말인 것입니다.

오히려 왜곡된 내용을 배포했을 뿐 아니라 본인이 재직하는 학교까지 찾아 와 <파면하라,구속하라.책을 폐기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쳐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이나 학생들로 하여금 이 책과 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만들고 실제로 사이버테러를 감행하도록 선동한 책임을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심지어 나눔의집 소장은 <더러운 일제의 창녀,오다가다 만나면 면상에 침을 뱉어 줍시다>라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하는 식으로 저를 모욕했고 (자료), 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기본적으로 <창녀>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식의 문제점은 여성학연구분야에서는 이미 충분히 공유된 일이기도 합니다.




9.강제성/매춘의 문제




1)제소자들은 <모집에 응해 자발적으로 성을 제공한 매춘>을 문제 삼지만 이상 쓴 것처럼,저는 그런 뉴앙스로 쓰지 않았고 무엇보다 매춘에 대한 언급은 위안부할머니들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그동안 듣거나 볼 기회를 박탈당했던 이들의 감성에 호소하여 기존의 <소녀>이미지가 깨지는 데 대한 반발이 시키는 일일 뿐입니다.

<위안부가 매춘을 했다>는 것은 사실로서는 허위가 아닙니다.이에 관해서는 다수의 자료와 증언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2)생존해 계신 위안부할머니들이 전부 <강제로 끌려간 소녀>였다 해도(앞서 언급한 저와 교루했던 할머니는 스스로 소개소에 갔고 하얼빈에서 유곽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예는 증언집에 다수 나옵니다) 가서 지낸 곳은 기본적으로 보수가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업주가 착취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런 이상 <매춘>(성노동이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합니다)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노예>라는 단어는 수입이 없는 <노예>를 연상하게 하므로 <성노동>이라는 단어를 저는 함께 사용했습니다.




10,<일본군의 동지이자 협력자가 아니>다?




ㅡ<일본제국에 애국한 동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저는 앞에서 쓴 것처럼 <사실>과 <구조>를 말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구조를 강요당한 <식민지>의 슬픔을 일본이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말했을 뿐입니다. 일본,조선,대만이 <대일본제국>의 일원이었다는 구조를 보아야만 그 안에서 이루어진 교묘한 차별과 폭력의 구조에 대해서도 그들이 인식하고 반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국처녀의 미소>라 한 부분은, 일본의 부정파들이 <매춘부들이 웃음으로 오히려 자신들을 유혹했다>고 한 데 대한 비판입니다. 후반부는 전부 그러한 <일본을 향한 비판>의 문맥에서 쓰였을 뿐입니다. 이는 전후문맥을 보면 명료하고 ,이 역시 그동안 일본이나 한국의 지원자들이 부정하는 이들의 말을 비난하기에 급급했을 뿐 논리적으로 비판하지 못한 데 대한 저나름의 시도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2013년 2월 무렵.일본의 혐한경향이 강해지던 무렵 일본을 향해 그런 시도를 했고 저의 트윗을 증거자료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원단체들이 대적해야 할 것은 오히려 그들이고 저는 지원단체가 부정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에 치중하는 동안 부정파들을 설득 가능한 논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앞으로 일본어판이 나오게되면 일본정부를 부정파들과 구별해 그들이 한 일을 인정하면서 부정파들을 비판하는 저의 시도가,이제까지 지원단체와 대립만 하던 부정파들을 설득시키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일본정부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소자들은 이러한 저의 시도를 무시할 뿐 아니라 모든 인용문을 문맥을 도외시하고 읽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책에 사용하지 않은 자료 중에 <여자의 무기>라는 제목의 <조선인위안부>수기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업자에게 속아 일본군인에게 강간 당하고 울면서 위안부생활을 하게 되지만 후에는 자신의 역할을 전쟁을 위한 또 하나의 <무기>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는 지금 보면 처참한 모습이지만 그건 황국신민으로 자란 소년소녀들의 슬픈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25쪽의 모든 인용문은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한 것일 뿐 <허위>일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명예훼손>이라 하는 건 <성노동>과 관계없는 것처럼 위안부를 인식해온 이 20년동안의 운동과 연구의 생각일 뿐입니다.




예컨대 생존해 계신 위안부할머니들이 전부 <매춘>과 상관없는 무보수의 강제적인 성노예적인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앞서 말한 것처럼 <조선인 위안부제도>는 모집에의 응모,사기에 의한 인신매매등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 졌을 뿐 아니라 위안소라는 곳이 부대 안이건 부대바깥의 유곽이건 기본적으로 <임금>이 지불되는 곳이었다는 중심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생존할머니들이 <강제로 끌려갔고 임금을 받지 않았다>하더라도, 책에서 쓴 것처럼 그것은 <다양한 체험>중의 하나일 뿐,<조선인 위안부제도>의 근간이 관리매춘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들과 주변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신들을 지칭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지만,저는 그들을 특정해서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끌려간 소녀>가 <조선인위안부>의 중심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는 저의 책과 비슷한 무렵에 출간된 <일본군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를 보면 역력합니다.

그 분들이 제가 말한 <대다수의 케이스>(물론 이 안에는 사기나 속임수로 간 이들도 섞여 있습니다)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케이스는 <소녀>이자 <강제로 끌려간> 소수케이스였다고 말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도 자신이나 주변의 케이스밖에 인지하지 못했던 할머니들과는 달리, 보다 많은 케이스를 인지했을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은,그들이 간과하거나 무시한 케이스가 실은 위안부증언의 대다수(주변인이나 모르는 이에 의해 속아 끌려 가거나 자발적 응모)임을 재확인하고, 관계부처와 언론에 공식적으로 공지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분석이 나눔의집의 할머니를 특정해서 말한 것이 아닌 이상<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란, 지원단체가 처음에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여 일어난 <강제로 끌려간 소녀>에 고집하는 순결주의적 의식이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고 그런 오류를 알면서도 대사회적으로 공지하지 않고 수정하지 않은 기만과 그에 따른 혼란야기를 비판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들 중에는 위안부할머니들이 <강제로 끌려 갔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분조차 있었습니다 (녹취록). 물론 그 분의 시각 역시 자신의 한정된 체험 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이 곧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진실성에서 상대적인 우위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진실>을 보아야 하고 그에 근거해 한일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제3자들이 이런 모든 상황을 정확히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제소자측이 제가 할머니들을 <전쟁범죄에 가담한 자로 매도>했다고 하는 것은,일본을 최대 <전쟁범죄국>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문제의식은 식민지로 만든 나라의 국민을 <제국확장>에 가담시킨 행위자체를 비판하는 <제국일본>비판에 있고 책 제목은 바로 그런 의식을 담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한 주체적이건 비주체적이건 결과로서의 <가담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수행은 어디까지나 그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지가 결코 <위안부들을 매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협력구조를 만들어 가담시킨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음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둡니다.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다 해도 독립군으로서 일본과 맞서 싸우지 않은 이상 그것은 그러한 구조 안의 일이었고, 그것이 바로 식민지조선의 딜렘마이기도 했습니다.




11.사실이 아니다?(27쪽)




따라서 제가 말한 <자발>이란 어디까지나 제소자들도 말하는 <넓은 의미의 강제>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27쪽 주석.그리고 실은 그러한 넓은 의미의 강제를 지칭한 <구조적강제>라는 단어는 9년전의 저의 책 <화해를 위해서>에서 제가 처음 사용한 개념입니다. 이후 저에 대한 비판자들은 인용 없이 제가 제시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저를 비판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기까지 합니다)

저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매춘행위에 지원>했다고 말하는 일본의 부정자들을,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조선인>의 경우이고 여기서 제시된 필리핀이나 네덜란드라고 하는(27-28) <적국의 여성>에 대한 물리적 강제성이 표면적으로는 <일본>-자국이 되었던 국가의 여성들에겐 행해질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동지>라는 개념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등,일본의 점령지에 나가있던 위안부들은,일본의 패전 직후 현지인들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사실도 그러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생존해 있는 구체적인 <조선인위안부>의 케이스에 대한 <명예훼손>을 주장하기 위해 다른나라의 여성들을 향해 행해진 <물리적 강제성>의 케이스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자 오류입니다. 책에서도 저는 그 부분을 지적했고 28쪽에 있는 <군에 의해 위안소가 설치>된 사실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비판의 대목에서 충분히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남아있는 위안부증언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물리적 강제성>이 아니라 사기나 인신매매등 ,<구조적 강제성>하의 일임을 알 수 있는 정황입니다.

또한, 28쪽의(3) <일본인 포로 심문서>에는 <유괴와 인신매매>에 대해 적고 있지만 <일본군이> 그렇게 했다고는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군이 ..끌고 온>이라고 적은 제소자의 기술은 허위입니다.

<극동군사재판>자료로 언급된 내용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나 네덜란드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따라서 <조선인>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4)조선인위안부 모집시 <강제로 위안부가 되는>것을 <엄중하게 단속>하지 않았다고 하지만,이 기술의 근거가 되는 서류는 오히려 <엄중하게 단속>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해석의 차이일 뿐이고 그 부분은 책에서도 언급했습니다.

<군이 통제하고 업자를 선정>한 것은 오히려 <강제로 데려>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군의 책임이 없을 수 없고 그러한 수요를 만들고, 혹은 총체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경우에 따라 묵인한 것으로 보이는 사태에 대해서 저도 비판했습니다. <관련지역의 헌병과 경찰과 긴밀하게 연계>하였다는 자료는 일본본토에 해당되는, 일본인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자료입니다. 그나마 업자들이 마음대로 <강제>로 끌고 오거나 사기나 유괴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2, 위안부들이 <비참한 >상황에 있었음을 저는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설사 강제로 가지 않았고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개별적인 강간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볼 때 그러한 강간범도 처벌되어야 하지만 그들을 처벌할 <법>자체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존 연구자나 지원단체의 논리로는 일본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자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동안의 관계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시도했고 저는 오로지 위안부할머니들 입장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기존 관계자들은 저의 시도가 그들의 지론에 반한다는 이유로 저의 시도를 폄훼할 뿐 아니라 공격하고, 사회 속에 침투되어 가는 것을 우려하여 이제 봉쇄작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13, <진실로 믿지 않았다>?




저는 기존운동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증언집을 중심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그 증언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기존 연구자들이 간과한(처음에 내놓은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은 증언들이어서 그들이 무시하고 배제한) 증언들에 귀기울였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증언>을 무시한 일은 없으며 오히려 일본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부의 증언>일수도 없고,<빈약한 역사사료>가 아닌 위안부할머니들의 증언이며 그것을 <일부><빈약>으로 폄훼하는 것은 그들의 기존주장을 견지하기 위한 레트릭일 뿐입니다.




14 <공공의 이익>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썼고 그 내용이 기존 단체나 연구자들이 무시한 증언을 채택하거나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인식을 드러냈다고 해서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과 생각은 20년 이상 위안부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의도여부를 떠나 운동을 위해 할머니들을 볼모로 삼은 측면조차 있습니다 .

저는 위안부할머니들을 그러한 정황에서 해방시켜 드리고 싶어 이 책을 썼고 크게는 한일간 갈등원인중 하나를 해소하여 청소년들의 우애와 동아시아 평화에 한걸음 가까이 가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단순히 일본과의 화해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둡니다.

기존 연구자나 운동단체는 <전쟁>의 문제로 이 문제를 접근했고 그런 전략에 따라 운동은 세계적으로 성공했지만, <조선인 위안부> 라는 존재가 왜 생겼는지를 묻는 <식민지배>문제가 사라진 데 따른 문제제기였습니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과하고 보상하며, 피해자들의 용서를 구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제국>의 문제로 접근한 저의 시도쪽이었음을 밝혀 둡니다.

따라서 저의 책이 <일본의 입장만 반영>했다는 것은 이 책을 완전히 왜곡한 기술입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화해>라는 것도 저에 대한 비판이 앞서는 그들의 이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거나<피해자들의 피해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고 따라서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가해자의 일방적 /강압적 논리에 불과>하다는 말 역시 곡해일 뿐임을 밝혀 둡니다.




이하 33쪽의 <보전의 필요성>에 기술된 사항 역시 이상 적은 것처럼 성립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단 한사람,어떤 위안부할머니(이용수)의 <기억과 주장>(33)의 변화에 대해 적었지만 그 조차 할머니 탓이 아니라 주변인과 사회 탓이라고 적었습니다. 위안부와 정부의 사이에 서서 보다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관계자들이 그런 변화에 무심했을 뿐 아니라 이 신청서에서처럼 오히려 감싸는 태도가 일본의 부정파들의 반발을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출처도 확인되지 않는 증언과 자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저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상처입었다면 저의 책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저의 책을 왜곡전달한 주변인들 때문입니다.




15.<사회적 해악> ?




이 책은,<민족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기는커녕,<제국비판>의 시각에서 쓴,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책이기조차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탈민족주의적인 입장이지만 사상적인 입장과 정치적인 입장이 꼭 일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인식과 접근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라는 의견은 이 신청서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인식입니다. 분명 저는 그런 인식에서 출발하였고 이미 9년전에 그런 인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저의 문제제기가 한국에서는 힘을 얻지 못하였고 다시 내놓은 책이 힘을 얻기 시작한 데 따른 반발이 이번 고소의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저의 책이 <사회적 해악>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해악>인 면이 있었음이 밝혀지는데 따른 두려움이 만든,부당한 공격일 뿐입니다.




<추가적 침해>로서 든 사례는 전부 그러한 두려움을 말하고 있을 뿐아니라 학자의 자유로운 활동과 사상을 침해하려는 심각한 인식수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책 출간 이후의 인터뷰나 서평회는 제가 부탁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회적 관심이 만든 것입니다. 심포지엄 역시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함께 만든 것이고 대부분 일본을 아는 전문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들은,기존 연구자나 지원단체들이 일본을 모르는데 따른 폐해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 역시 일본을 무조건 편드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른바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와다하루키교수를 초청한 것만으로 그 모임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다른 논문활동은 <근대일본과 현대일본>에 대한 치열한 비판서이기도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활동을 일본 편을 드는 것으로 폄훼하고 <잠재된 위험성>을 가진 책으로서 공격하는 고발을 통해 저를 매장하여 향후 활동을 막으려는 시도야 말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현대한국사회의 위험성>을 드러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과거의 책이 일본(저에게 상을 수여한 아사히신문사가 주최한 동계열의 상에,예를 들면 오에겐자브로나 우에노치즈코등 이른바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일본인>들에게 수여하는 상이 있습니다)뿐 아니라 제소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었다(우수교양도서)라는 사실이,이들의 주장이 곡해와 무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16.

따라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접근금지 처분도 부당합니다. 제소자들은 할머니들이 저에게 한 이야기를 <고령의 착오>로 폄훼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녹취록을 공개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다른 생각뿐 아니라 지원단체에 대해 실상은 할머니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한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어 공개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나눔의 집 소장은 저와 친했던 할머니가 저와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이미 막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 후 나눔의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할머니를 나눔의 집에 돌려보냈고 3주일만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낸 이후 할머니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또다른 연구나 <의도된 질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지원단체가 아닌 할머니들 자신이 <어떤 사죄와 보상방식>을 원하는지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의 주장이 신청인들에게 <불리한 증거>로 인용된다고 하지만 지원단체의 주장의 관철에는 불리할 수 있어도,해결을 원하는 할머니들에게는 불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될수 있음은 앞서 말한 대로입니다.

실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지원단체의 주장과는 다른 해결방식을 원하고 있고 실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그러한 사실을 숨긴 모순에 찬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자신들의 공적 주장과 배치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접근금지 하는 것은 인권침해일 뿐입니다. 할머니들을 통제하여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은 오히려 나눔의 집등 할머니의 주변인들입니다.







2014/7/7 박유하

2020-06-24

위안부증언집 < 증언자료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할머니 목소리 < 증언자료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http://www.hermuseum.go.kr/cop/bbs/anonymous/selectBoardList.do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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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Chan Un Park - 두 번째 서평 ‘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8) Chan Un Park - 두 번째 서평 ‘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Chan Un Park
23 August at 10:13 ·



두 번째 서평

‘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
이영훈 교수와 그의 사단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강제징용과 함께 대한민국 반일 종족주의의 극단적인 예로 제시하는 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이교수는 위안부 장을 다룬 총 120쪽 글에서 80쪽이 넘는 양을 직접 쓰고 있다. 그만큼 위안부 문제는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하는 그에겐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

이영훈 교수의 관점

이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외에서 형성되어 온 성노예로서의 위안부(그러므로 이를 운영한 일본군은 국제범죄의 당사자가 됨)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이교수가 위안부를 보는 관점을 그의 글로 직접 확인해 보자.
.

저는 위안부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라는 인식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당시의 제도와 문화인 공창제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을 일본군의 전쟁범죄로 단순화하고 줄기차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한 것은 한국의 민족주의였습니다.”(337)
.

이교수는 위안부가 일제 강점기에 공식적으로 존재했던 공창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위안부의 성격규정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

“일본군 위안부제는 민간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되고 편성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301)
.

나아가 그는 위안부를 전 근대의 남성 중심의 착취적 성문화와 연결시킨다. 즉 그는 위안부의 뿌리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그것이 일제강점기의 공창제로 나아가 해방 이후엔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이어졌다고 한다.
.

“기생제, 공창제, 위안부제는 본시 역사적으로 한 계보였습니다.”(291)'
.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1945년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위안부 제도는 1960년대까지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군 위안부의 형태로 건재했으며, 오히려 발전하였습니다.”(273)
.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가 당시의 성문화의 군대식 표현에 불과하고, 공창제를 범죄시 할 수 없었다면 위안부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수 십 년 동안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 사고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교수(또 그의 사단)가 사용하는 집단적 광기로서의 민족주의, 반일 종족주의가 나온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밑바닥에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종족주의적 적대 감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271)

......

나의 비판
.

이교수의 관점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이 중심이 되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아 온 전시 성노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문제의 초점은 일본군 위안부를 당대(1930년대 후반에서 1945년까지)에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많은 지역에서 허용되어 온 공창제(이것은 지금도 많은 나라가 시행하고 있음)와 본질적으로 같은가 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

위안부를 공창제로 이해하는 것은 어불성설

공창제가 비록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과 일본군 위안부는 그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공창제에서도 인신매매에 희생되어 성매매업에 종사한 여성이 있지만, 그것(인신매매)은 그 당시에도 범죄에 해당되었다. 본질적으론 근대사회의 공창제는 성매매업을 허용하면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권리보호와 국민의 보건 위생을 위해 국가가 그 관리 운영에 간섭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인신매매를 허용하면서까지 성매매업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

그런데 위안부는 어땠는가. 많은 경우가 이교수도 인정하는 것처럼 기망에 의해 전장의 위안소로 갔고 거기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굶주린 병사의 성노리개감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신매매 이상의 범죄가 저질러졌음에도 국가는 방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주도했다. 도저히 공창제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또한 근대의 공창제는 민간이 운영하는 성매매업에 국한된 것이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일본군 위안부는 민간이 위안부를 모집하고 운영하는 데 역할은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일본군 곧 국가이었다.
.

일본군은 전장에서 군인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위안소 운영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국가권력을 이용해 시행했다. 다른 말로 말해 국가가 위안소를 직접 운영한 것이다. 더욱 그 운영방법은 폭력적이었고 위안부 개인의 인권은 (대부분)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것은 이 책에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

“위안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었습니다. 군이 직접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민간 업소를 군 전용의 위안소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형태였습니다. 어느 경우든 위안소의 운영은 군의 세밀한 통제 하에 놓였습니다.”(302)
.

일본군 위안부의 반인권적 처우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시인된 내용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3년의 고노담화인데, 이 책은 그 내용까지도 이렇게 소개한다.
.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고,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는 일본군이 직접 간접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있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그를 담당했지만, 이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한 사례가 많이 있었으며, 당시 관헌 등이 직접 모집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또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 상황에서 처참한 것이었다.”(356)
.

사실이 이럼에도 이 교수가 위안부를 공창제에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명백히 사실왜곡이며 논리의 비약이다.
.

미국 흑인노예도 백인남성을 사랑하기도 했다

이교수가 위안부의 삶이 노예적 삶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선에서 병사와 위안부는 어느 의미에선 한 덩어리의 운명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짓눌러지기도 했지만, 남녀가 살을 섞는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위안부를 사랑한 병사도 있었고, 병사를 사랑한 위안부도 있었습니다. ... 위안부라 하지만 생활실태에서나 정치의식에서 심리 감정에서 무권리의 노예상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326)
.

이것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어느 구절을 연상시키는데(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이 책이 나옴), 살아남아 투쟁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겐 머리를 들기 어려운 대목이다. 나는 저 대목에 대해 특별한 반박을 하기 보다는, 몇 글자만 바꾸어,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노예제 하에서 사랑을 주고받았던 어느 백인과 흑인의 이야기로 돌려주고 싶다.
.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노예제도 하에서도 백인과 흑인노예는 어느 의미에선 한 덩어리의 운명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짓눌러지기도 했지만, 남녀가 살을 섞는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흑인 여성노예를 사랑한 백인도 있었고, 백인을 사랑한 흑인노예도 있었습니다. ... 흑인이라 하지만 생활실태에서나 정치의식에서 심리 감정에서 무권리의 노예상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

정대협에 대한 비판, 도를 넘었다
.

정대협(현재 명칭 정의기억연대)은 지난 30여 년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했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끌어내 세계의 양심에 호소했다. 그 결과 전시 성노예라는 개념이 국제범죄로 재정립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은 정대협의 이런 활동을 철저히 무시하고 폄하하며 나아가 반일 종족주의로 낙인을 찍는다.
.

“정대협은 그들의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원 위안부들을 앞세운 시위를 줄기차게 벌여왔습니다.”(337)

“정대협, 그 이름을 바꾼 정의기억연대는 실상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로 일본을 무릎 꿇리려 해 왔습니다. 2015년 박근혜-아베 합의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었는데도 역시 걷어찼습니다. 문재인 정권도 똑 같은 입장이죠. 진정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이 문제를 이용해서 한일관계를 파탄 내는 게 이들의 진짜 관심사일 것입니다.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373. 이 부분 집필은 이영훈 교수가 아니라 이영훈 사단의 주익종 박사임)
.

아무래도 이것은 과도한 비판이다. 정대협의 관심사가 한일관계를 파탄 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데, 한국인이 쓴 책에서 이런 대목을 만난다는 게, 나로선 경이로울 뿐이다. 나도 일정 기간 정대협에 관여했지만 무슨 억하심정으로 한일관계를 파탄낼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말인가. 정대협으로선(정대협을 지원한 사람들로선) 모욕 중의 모욕이다. 소송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저자들이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 같지만, 책 여기저기에서 사용되는 원(元)위안부라는 용어가 영 마땅치 않다. 구 위안부라는 뜻인데, 순수 일본어다. 일본에서 출판하는 책이라면 몰라도, 한국인이 한국에서 출판하는 책에, 이런 용어를 써도 되는 건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406나일경, Shin-pyo Kang and 40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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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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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서 '반일 종족주의' 비판 서평 잇따라학계서 '반일 종족주의' 비판 서평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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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비판하는 교수들 서평 잇따라'반일 종족주의' 비판하는 교수들 서평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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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반일 종족주의' 저자 "강제징용 한국정부 인식 잘못" 유엔에 의견서 제출[단독] '반일 종족주의' 저자 "강제징용 한국정부 인식 잘못" 유엔에 의견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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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반일 종족주의` 비판 서평 쇄도, YTN "이우연 극우단체 지원으로…학계 `반일 종족주의` 비판 서평 쇄도, YTN "이우연 극우단체 지원으로 UN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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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선생님, 멋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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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경 교수님, 이 책 읽으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님,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하고,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 을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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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hyang Yoon 문아경 고민이 깊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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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Chool Kim 박 교수님, 제가 2014년 8월 일본 현지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라고 유엔에 처음 제기한 국제인권법 권위자 도츠가 에츠로 선생을 만나 인터뷰한 게 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유엔이 왜 성노예로 규정했는지 맥락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국제인권법 주류나 유엔 주류 논의 등의 논의와 얼마나 동떨어지는 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돼 링크 올립니다.http://harmonyroute.com/japanese/4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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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 사람들 - 국제인권법 권위자 日 도쓰카 에쓰로 (下) “국제법상 인신매매…열도 사람들 - 국제인권법 권위자 日 도쓰카 에쓰로 (下) “국제법상 인신매매 금지 위반… ‘위안부=성노예’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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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 Un Park Yong-Chool Kim 좋은 기사 읽었습니다. 저도 90년 대 초부터 도츠카 변호사를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보니 기억이 새롭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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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wa Cheong 명쾌한 해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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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song Lim 황진이가 이영훈인가 싸대기를 올려 붙일 거 같아요
뉴라이튼가 하는 사단들 포함한 곪아터진 친일매국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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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송 선생님처럼
잘 서술해주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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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은 이런 자가 한때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니....
근대사조차 알지 못하는 무식함에 놀랄따름입니다.
조국 법무부 내정자가 구역질 난다고 하였으나, 저는 피를 토할 것 같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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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책제목 '종족주의'라는 말부터 저자의 편협한 글방향성이 드러나네요. 민족주의도 아니고, 종족주의라. 마치 민족주의를 비웃는 듯해서 거부감이 듭니다.

기생제, 공창제, 위안부제가 같은 계보다? 전쟁속에서도 위안부와 병사사이에 사랑은 피어나고, 서로 의지도 했다? 어느 의미에서 한 덩어리의 운명 공동체다? 극히 드문 예를 일반화시키고 사실인 것처럼!!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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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 거칠게 짓눌러진 남녀가 살을 섞는 관계로 표현한다면 강간이나 성폭행도 그리 미화되어야 하므로 강간범이나 성폭력도 범죄로 판정하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읽다가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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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ck-hee Bang 접입가경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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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호 이교수는 일본 자금을 받고 감격해서 일본을 위해서 글 썼다고 보입니다.
그러고도 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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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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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iyun Lim 저자에게 하고픈 말.
“혀로 쌓은 업보를 어떻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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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희 이영환이라는 사람이 한국인인지가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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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우 나는 이 짐승을 먹여준 서울대 경제학과도 밉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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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현 위안부들 가운데 일본병사와 사랑했다는 구절은 위안부증언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 상상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죠. 그 지옥에서 살아나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한들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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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열 일본의 종족주의에 편승하려는 자들에요. 자기의 엄마나 딸들이 넘어가거나 끌려갔다고 해도 이렇게 꼿꼿히 나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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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조 다른 것은 모르겠고,
재팬의 본토인들 중에서 힘이나 돈있는 것들의 딸과 아내가 그 제도에 동원되어 지들이 떠드는 위대한 황군을 위해 가랭이 벌린 예가 흔하냐는 것이지요. 아니 일반평민들중에서도 흔한 예이야고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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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sup Song 이런 무지막지한 자칭 학자가 바라는 것은 “논란" 그 자체 아닐까요? 소위 "관종"으로서 클릭수에 따라 전범기업으로부터의 보상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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