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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9

04 “北에 유기질 비료 공급해야"



“北에 유기질 비료 공급해야"



“北에 유기질 비료 공급해야"
[평화나눔센터 정책포럼] 김성훈 전 장관, “쿠바 유기농법, 北에 필요”

김한규 기자
2004.08.20 15:07:00

“北에 유기질 비료 공급해야"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유기농업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95%까지 끌어올린 같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쿠바도 북한처럼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부족한 화학비료를 유기질비료로 대체, 환경과 생산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쿠바 당국자들이 북한에 대한 유기농법 지원 용의를 밝히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한은 위기에 봉착한 북한의 식량 및 농업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북한에 유기질 비료(퇴비) 보내기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쿠바, 유기농업으로 식량자급률 크게 올라” **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훈 중앙대 교수는 19일 “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은 유기농업의 세계적인 메카로 인정받고 있는 쿠바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훈 교수는 이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가 개최한 제7회 정책포럼에서 <쿠바는 어떻게 식량위기를 벗어났나-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이 북한에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쿠바는 유기농업 이전인 1990년에는 식량자급률이 43%에 불과했으나 1991년 유기농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2002년에는 자급률이 95%로 크게 올랐다. 아울러 식생활 패턴이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뀜에 따라 쿠바 국민건강 수준도 크게 상승해 병원환자수도 30% 격감했으며 영아사망률도 세계 제2위로 크게 낮아졌다.

김 교수는 “총생산성도 초기 2년 기간에는 약간 떨어졌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 일반 관행농업 생산실적과 비슷해지고 1997년 이후부터는 오히려 더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유기농업은 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는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즉 한때는 70년대 범지구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가 뒷받침한 종자혁명에 의한 관행농업을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고 불렀으나 쿠바의 사례를 보면 이 관행 농업은 인류의 건강과 환경생태계를 파괴한 '검은 혁명(Black Revolution)'일 뿐이며 유기농업이 진정한 '푸른 혁명(Blue Revolution)'이라는 설명이다.

***“쿠바, ‘치밀하고도 단순’한 유기농업 전략으로 성공”**

김 교수가 설명하는 쿠바의 유기농업 전략은 정말 ‘치밀하면서도 단순’하다. 1991년 유기농업을 선포하고 민관합동으로 사업을 추진한 쿠바가 이 사업에서 성공한 기술적 요인은 유기농법에 알맞은 분변토(지렁이가 내뱉은 비옥한 토양)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쿠바는 가장 이상적인 분변토를 찾기 위해 세계 각국의 지렁이를 다 모았으며 어떤 지렁이가 가장 많은 분변토를 생산하는지 찾아 이를 전국에 보급했다. 이제는 이 단계를 넘어 어느 먹이를 주면 어떤 성분의 분변토를 주는지까지 파악, 필요에 따라 다른 분변토를 생산해내기까지 한다.

또한 유기농업을 최대한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 모든 토양을 분변토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는 토양 부분에만 분변토를 채우고 고랑이나 두덕 등 직접 관련이 없는 땅은 그대로 둬 유기농업 정착 시간을 단축시켰다. 아울러 친환경적인 노력을 기울여 유기농지 주변에는 허브나 옥수수를 재배, 해충을 쫒고 바람을 막는 효과를 찾아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소박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지도자 결단 중요”-“북한 상황, 쿠바의 유기농 시작 배경과 비슷”**

쿠바의 유기농업이 성공하게 된 또다른 요인으로는 제도와 정책을 들 수 있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국민교육을 토한 친자연적 마인드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쿠바는 유기 농업을 여성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고 중학교 이상 학생들은 연간 45일 이상의 친자연적 영농체험활동을 하도록 했다.

김 교수는 또 “쿠바의 카스트로는 이미 1967년부터 대학 졸업생들에게 레이첼 카아슨 여사의 명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을 선물했다”고 강조했다. <침묵의 봄>은 관행농업의 폐해를 지적한 선구자적 저서로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과감하게 토지 소유는 국가로 하되 개별 이용을 허용, 다양한 형태의 토지제도를 설정, 국민의 의욕을 증대시켰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토지 제도는 당시 쿠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농기계나 석유 등을 자유로이 수입하지 못해 자재난을 겪고 있던 쿠바는 토지의 규모화 대신 토지의 분산화를 통해 농기계보다는 인력에 의존하게 됐다.

쿠바는 또 기존에 연간 1백만톤의 화학비료, 2만톤의 화학농약, 그리고 석유를 원료로 하는 화학합성물질을 수입해 왔으나 구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이마저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이러한 점들이 쿠바가 유기농업에 치중하게 되는 배경을 마련해준 셈이다. 쿠바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봉쇄와 구 소련 붕괴로 원조 및 수입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김 교수는 역설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식량 및 농업문제와 환경생태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시대적 과제를 쿠바는 국가 비상사태를 계기로 삼아 과감히 근대 화학농법의 사슬을 벗어버리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도전했고 그 시도가 기적처럼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北, 식량난 해소 위해 쿠바 유기농업 고려해야”**

김 교수는 이어 “쿠바와 사정이 비슷한 북한은 이러한 쿠바식 유기농업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쿠바처럼 미 경제봉쇄와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주체농법 등의 대규모 영농을 하기에는 농기계와 석유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행농법을 하기에도 화학비료 등이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또 “옥수수, 감자 등의 밭작물 위주인 북한은 쿠바도 밭작물 위주의 유기농업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변 상황도 북한에게는 유리한 상황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쿠바 유기농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쿠바를 방문했던 김 교수는 쿠바 농림부 차관과 행정처장 등 유기농 보급 책임자를 만나 북한 식량난 해결을 위해 지원 의사를 타진했는데 이들은 모두 지원 용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그 쪽의 의지 여하에 달려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생산량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는데 당장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생기고 있는 북한에서 어느 관료가 책임을 맡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도자의 결단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한, 北에의 유기질 비료 공급 운동, 1석3조 효과”**

게다가 토양에 유기질 성분이 이미 고갈돼, 자연 순환이 이뤄지고 있지 못한 북한에게 있어서는 ‘순 순환’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습물이나 퇴비 등의 유기질 비료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이러한 고민의 일단은 김 교수가 캐나다 UBC 대학에서 머물던 2002~3년 동안 만났던 북한 농업과학원 및 평양 농과대학 대표 일행의 설명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들은 북한 농업을 친환경 농업분야로 전환할 것을 내심 고민하고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유기농 자재와 기술 확보에 어려움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북한에 유기질 비료(퇴비) 공급 운동“을 제안했다. ”북한은 현재 상당수준의 미생물제제를 개발해 놓고 있으므로 우리가 유기질 비료를 제공하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또 “이 운동은 축산분뇨가 과잉방출됨으로 인해 산천오염 등의 환경오염과 가출질병이 만연되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롭고 토질에 유기성분이 부족, 생산력 증대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북한에게도 이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전국에서 넘쳐나는 산림 및 농업 부산물을 섞어 발효시켜 국제 규격의 유기질 비료를 만든다면 국내 유기농업도 지원하게 돼 1석 3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정치인, 환경.농업 불감증”“농업 홀대, 큰 위기 봉착”**

김 교수는 “이러한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며 “국내 농정 예산의 일부분만 절약해도 이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골프장 건설을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 활성화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부내 일부 관료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스런 모습”이라며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일부 정치인들은 환경과 농업문제에 대해서는 불감증에 걸린 듯한 모습”이라고 지적하며 “농업을 홀대하면 에너지 파동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며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04 식량난 북한·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 신동아



식량난 북한·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 신동아

2004년 11월호

특별 기고
식량난 북한·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제언

글: 김성훈 중앙대 교수·농업경제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기사입력 | 2004.10.2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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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이룬 농법으로 식량 자급의 꿈을 실현한 나라가 있다.
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그 주인공이다. 서방세계의 경제 봉쇄와 사회주의권 몰락의 틈바구니에서 쿠바는 어떻게 자력갱생의 활로를 개척했을까.
쿠바의 한 농장에서 담뱃잎을 거두는 농민들.지난해 5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한 27개국 600여명의 친환경 유기농업 전문가는 식량자급도 이루고 환경생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아바나 세계유기농대회는 화학비료와 맹독성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믿어온 이제까지의 ‘관행농법’에 마침표를 찍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여는 축제와도 같았다.

1990년 초부터 미국 등 서방세계의 경제봉쇄 조치가 강화되고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연쇄적으로 몰락해 동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북한은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그중 한 국가는 준비된 친자연적 유기농업의 활로를 개척했고, 다른 한 국가는 주체농업의 주술(呪術)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유기농업 대표자들은 올해까지 두 차례 쿠바 현지 연수를 다녀왔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쿠바가 당면한 특수한 정치경제 상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류 사회가 ‘자원낭비형’ 농법(農法)에 의존해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쿠바의 성공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대규모 생산체제와 대량유통구조는 생태계에 각종 재앙을 불러왔다. 특히 국제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세계 식량시장을 과점하면서 지구촌 곳곳의 식량주권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농촌 지역사회와 자연생태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인류의 생명과 생존권을 지키면서 지구촌 환경생태계와 공존공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친환경적 생산 양식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을 쿠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친환경 유기농업이다.


지속가능한 대안농업

화학·기계화 농법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관행(慣行)농법은 한국을 비롯, 세계농업계에 뿌리내린 지 고작 5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믿게 된 기간도 기껏해야 40년이 될까말까다. 그러나 화학농업은 최근에 이르러 급격한 산업화·도시화 추세와 함께 자연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사람의 건강과 동식물 종(種)의 다양성, 그리고 환경생태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부각된 것이다.

마침내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는 제8차 위원회에서 ‘우리들의 공동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를 세계 각국의 공동의제로 채택했다. ‘경제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이 인류의 살길’이라는 메시지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이다.

경제발전 문제를 생태학적인 자연보전 문제와 통합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이 선언은 인류문명사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나라가 쿠바다. 북유럽의 생태농업, 캐나다와 북미지역, 그리고 일본의 유기농업 운동에도 이 선언의 취지가 반영돼 있다.

뒤이어 미국정부도 친환경농업의 세계적 추세를 인정하고 2010년까지 순수 유기농업의 비중을 1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한국도 1998년 11월11일 ‘농업인의 날’을 기해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하고 직접지불제를 시행하는 등 다각도로 유기농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업은 자연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사회·경제적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가족농(family farming)과 지역사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인다. 이제까지의 기계 및 화학농법 위주의 대형기업농 또는 초대형 다국적기업 중심의 생태파괴적인 대량생산체제로는 더 이상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지속가능한 생태유기농업의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고 있는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유기농업 운동’이라든지, EU 각국이 생태환경과 자연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생태 바이오 농업’이 대표적인 대안운동이다.

일본의 경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한국에서는 농협 주도로 신토불이(身土不二), 도농불이(都農不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운동도 지속가능한 대안농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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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1991년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유기농업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공산체제하의 대형 국영관행농업을 소규모 가족농이나 협동농 중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전환시켰다. 미국의 경제봉쇄에 이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화학비료 화학농약 그리고 수입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물질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가 ‘평화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유기농업을 진작하기 훨씬 이전인 1967년, 카스트로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레이철 카슨 여사의 명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을 선물한 바 있다. 쿠바가 이미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

쿠바는 친환경적인 유기농법을 전면 시행하기에 앞서 경제 사회 기술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농정기반을 닦았다. 국가 비상사태를 계기로 과감히 근대 화학농법의 사슬을 벗고 친환경 유기농법에 도전했다. 그 시도는 기적처럼 성공했다. 대규모 국영농장을 사적 경영형태의 개별 가족농과 인센티브제에 입각한 협동경영체제로 개편하고 지역자원을 재활용하는 순환농법을 권장했다.


한편으로 조상 대대로 전해온 전통 농업기술을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키는 데도 주력했다. 이른바 21세기형 신(新) 유기농 운동을 적극 전개한 것이다. 도회지의 유휴공지엔 토상(土床) 농법을 도입하고 전국적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퇴비로 흙을 만들었다. 가가호호마다 유축(有畜)농업, 상호 부산물과 각종 미생물 및 천적을 활용하는 자연순환형 생태농법을 보급했다.

여성이 유기농 핵심요원

쿠바는 유기농 운동에서 여성을 핵심요원으로 동원했다. 심지어 중학교 이상 교과과정에 친자연적 영농체험활동(연 45일)이 포함됐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쿠바 유기농업 총책임자인 농업부 차관, 중앙 유기농업연구소장, 유기농 관련 각종 연구소와 실행기관의 요직을 온통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건강한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젖줄과 같이 대지(大地)의 식량농업 역시 여성이 앞장서야 건강한 국민을 키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쿠바의 교수 교사 연구원들은 반세기전, 관행 화학농법이 도입되기 이전에 조상 대대로 사용해왔던 친환경적 생태농업 기술과 자재를 발굴, 현대의 생물학적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유기농 기술이 농가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농가에서 실제 써보고 효험이 있다고 하면 신기술 개발자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는 인센티브 제도도 실시했다.

쿠바의 유기농 실험은 예상을 뒤엎고 크게 성공했다. 식량자급률은 유기농업 운동 시작 이전의 43%(1990년)보다 훨씬 높은 95%(2002년) 수준을 달성했다. 초기 2년간은 총생산성이 약간 떨어졌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일반 관행농업 생산실적과 비슷해졌고, 1997년 부터는 오히려 더 높아지는 추세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매진한 결과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에서 200여만명이 기아로 숨진 데 비해, 쿠바에서는 아사자(餓死者)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육류 위주의 식생활 패턴이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뀌며 국민건강 수준도 현저히 좋아졌다.

병원 출입 환자 수가 30%나 줄어들고 영아사망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미국 등 서구사회의 고질적 현대병인 비만증 환자를 쿠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도 특기할 만한 변화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림 등 녹색지대 면적이 현저히 늘어나고 도시환경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다.

1992년 미국의 스탠퍼드대 조사단은 쿠바의 이런 시도에 대해 그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며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열대지방인 쿠바에서 유기농법으로 환경생태 보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세계 전문가와 정책집행자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지금까지 생태보전형 유기농업을 추진할 경우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관행농법을 쓰면 생태계가 오염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다.

10여년의 시험기간이 지난 오늘날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그동안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無)농약’ ‘무(無)화학비료’라는 소극적 영농 개념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환경의 지속적 순환을 가능케 하는, 한 단계 높은 현대적 생태문명체제를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산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생태계의 지속성(sustainability)을 확보하고 농업생산성 향상 및 생활양식의 전환을 동시에 이룬 ‘늘 푸른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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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4.10.27 14:38
북한 해금강 부근 들녘의 가을걷이 풍경.사실 쿠바에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생필품조차 조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 전반의 식생활 문화, 그리고 환경생태계와 조화를 이룬 생태적 문명수준만큼은 확실히 현대 인류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로 쓰는 관행농법이 범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을 이끌었지만 그 폐해가 점차 두드러지면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범지구적인 관행농법의 성행이 비록 식량증산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으나 실제로는 인류의 건강과 환경생태계를 파괴한 ‘검은(black) 혁명’이 되고 말았다”는 쿠바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증산(增産)도 이루고 생태계도 보전한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그래서 ‘푸른 혁명(Blue Revolution)’이라 불릴 만하다.


그 성공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직거래 유통 중심의 시장개혁을 들 수 있다. 흙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토상 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生藥) 및 천적을 획기적으로 개발·보급한 것도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 농가 현장에서는 분뇨 등 부산물 자원을 재활용하고 윤작 간작 휴경작 등 순환농법이 정착됐다. 이에 더해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와 생물학적인 현대과학 기술이 성공적으로 접목됐다. 농민이 참여한 현장 연구와 농가 적응시험을 중시한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각종 연구시험 과정과 결과에 일선 농민의 참여를 강조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더불어 국민의 의식주 생활패턴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하고 환경생태계를 살리면서 농업 총생산량과 농가소득 향상을 동시에 도모한 과감한 정책전환은, 비록 외부적 요인에 의한 급격한 변화였다고는 하나 주의 깊게 학습할 가치가 있다.

특히 쿠바가 다음과 같은 농업생태학적 접근방법을 유기농업 혁명의 기본원칙으로 삼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불필요한 장거리 수송과 농작업에 따른 화학에너지의 낭비를 줄이고 도시생태계의 환경개선과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간편한 도시 유기농업 방식을 시도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친환경 유기농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범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지도력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운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국가적 리더십의 결여’다.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

쿠바는 이제 세계 친환경 지속가능 농업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학술조사단은 2002년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확인하면서 새 보고서를 통해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극찬했다. 보고서는 그 비결이 전국가적인 치밀한 사전준비와 연구, 그리고 관련 사회경제 개혁을 동시에 추진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중에서도 온고지신의 연구·개발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쿠바는 화학농법이 보편화되기 이전 4000~5000년간 조상 대대로 개발·이용해오던 각종 친자연적 농업기술과 자재를 재발굴하고 이를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자재는 농민들의 시험재배를 통해 검증됐다.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사례는 화학농법에 찌들어 생태계 파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에 커다란 교훈과 희망을 준다. 특히나 아직도 ‘우리식’이라는 주체농법 관리체제 아래 매년 수백만 굶어죽는 북한의 식량난과 농업 문제를 극복할 한 방도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북한 정책결정자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길이 있다.

‘주체농법’의 몰락

북한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식량자급률 65%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북한 내정을 책임진 1994년 이후 자급률이 급속도로 악화돼 지금은 50%대를 밑돌고 있다. 물론 남한의 27%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1인당 소비량이나 품질수준을 고려할 때 비교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나마 부족분을 외국에서 사들여올 외화마저 고갈된 지 오래다.

이른바 ‘경제 3난(식량난, 물자난, 에너지난)’과 외화 고갈로 고통받는 와중에 자연재해까지 연거푸 겪은 북한은 만성적·구조적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부족한 식량을 정상적으로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북한은 해외로부터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량원조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관과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의 도움 없이는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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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부족량 추계는 1인당 식량수요량을 국제기준에 맞추느냐, 생존유지를 위한 최저수준에 맞추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생존차원의 최저수준 양곡 총수요량(560만t)을 기준으로 삼으면 해마다 약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 북한의 현단계 식량생산 기술수준으로는 최저 수준의 생존권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던 국제식량농업기구(FAO)마저 “최근 북한이 외부의 지원 없이는 식량난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곤란하며 해마다 보릿고개, 피고개를 넘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먼저 기상이변 등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생산기반 붕괴와 농지감소 현상을 들 수 있다. 북한에선 에너지난이 겹쳐 전국적으로 연료채취행위가 극성을 부렸고 산지가 난개발되었다. 산림황폐화는 자연재해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로 인한 생산력 감퇴는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종자, 종묘 품종의 불량과 결핍 그리고 비료 농약 석유 등 원자재난, 게다가 각종 농기계의 노후화로 인해 식량생산력이 해마다 20%이상 감소됐다. 한때 70%를 넘어 우리나라를 앞섰던 농업 기계화율도 사회주의권 경제의 몰락과 대외경제 차단으로 부품 조달이 여의치 않아 현재는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달라진 국제경제 여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북한의 경직된 농업경영 체제와 기술체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고수하는 중앙통제식 계획생산체제와 구태의연한 ‘주체농법’ 그리고 구소련의 ‘콜호스’식 집단주의 협동농장제엔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개별 생산농가에 생산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주의 집단 생산방식과 주체농법만으로는 북한 농업의 생산력 향상과 발전에 한계가 있음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북한의 농업 부진과 식량 부족은 국제정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체제 변화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보다 10년 남짓 앞서 개발·보급한 천리마28호 등 농업용 트랙터의 벨트가 나가고 타이어나 베어링이 마모돼도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농기계는 멈춰선 지 오래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중단됐을 때도 쿠바처럼 신속하게 생산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새벽별 보기’ ‘천리마 운동’ 등 전인민적인 노력동원 방식으로는 불충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인센티브가 없는 구호와 채찍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제한적 개방은 허용하되 한사코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거부해온 북한이 최근 ‘7·1조치’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한 것은 늦었지만 큰 변화다. 농업부문만 보더라도, 1996년 말부터 궁여책으로 시행하던 소단위의 ‘분조(分組)관리제’를 최소 5~20 농가단위까지 허용하고 있다. 국가가 할당한 생산량을 납부하고 남은 농산물은 자유가격으로 농민시장에 내다팔게 하는 등 시장경제 인센티브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실시 영역과 방식이 제한돼 있고 조건이 까다로워 그 성과는 미지수다.


“언제라도 북한 돕겠다”

필자가 캐나다 UBC대학 초청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2002~03년에 북한 농업과학원 및 평양 농과대학 대표 일행 4명이 UBC대 초청으로 캐나다의 유기농법을 연수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북한 농학자와 농업 최고행정가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북한농업을 친환경 농업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쿠바와 여러모로 정치·경제 환경이 비슷한 북한으로서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법에 기대를 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유기농업을 도입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할 유기질 자재와 유기농 기술의 지속적인 확보가 쉽지 않은 게 북한의 현실이다.

그래서 남북이 협력해 친환경적인 유기농업을 추진해 물질적 기술적 뒷받침이 보장된다면 북한으로서는 유기농법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할 처지이다. 친환경적인 대안농법이 북한이 택할 수 있는 최선임에 틀림없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문단’은 평양의 농업과학원이 상당 수준의 미생물제제를 개발했음을 현지 확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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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일행은 2003년 쿠바의 최고 농림공직자와 유기농 보급 고위책임자를 만난 자리에서 “왜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동맹국가인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돕지 않는가. 북한에 유기농법과 기술, 자재를 지원할 용의가 없는가” 하고 물은 바 있다. 이에 쿠바 당국자는 “우리는 흔쾌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문제는 북한의 의지다”라고 답했다. “쿠바 정부가 ‘캘리포니아 레드웜’이라는, 분변토 생산효과가 탁월한 지렁이 한 상자를 북측에 선물하면서 지원의지를 넌지시 전했지만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는 것.

캐나다의 UBC 농과대학 당국자도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유기농 기술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단체들도 재정능력은 여의치 않으나 언제든지 기술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한 정부당국자의 선견지명과 획기적인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공동 프로젝트는 북한에 유기질 비료(퇴비)를 공급하는 일이다. 지금 남한에는 축산분뇨가 과잉 방출돼 산천이 오염되고 가축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토질엔 유기성분이 부족해 생산력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축산이 미미하고 산림이 헐벗었으며 생활연료마저 태부족인 형편에서 농림 부산물을 제대로 퇴비화해 땅에 되돌려주지 못하는 상태인 것.


이럴 때 우리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축산 분뇨를 공동으로 수거하고 남한의 산야에 넘쳐나는 농업 부산물(‘숲 가꾸기’ 사업에서 파생된 톱밥과 이파리, 농작물 부산물 등)을 부식시켜 국제 규격의 유기질 비료를 만든다면 우리나라 환경도 살리고 국내 유기농업도 지원하며, 이를 북쪽에 보낼 경우 북한 농업의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축산분뇨에 남아 있는 항생제 등 화학물질을 적절히 제거·완화하는 기술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국제규격의 유기질 비료 및 퇴비와 각종 미생물제제 목초액 천적 배양기술도 북쪽에 지원해야 한다. 증산도 도모하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 농업은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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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농자재 지원 남북경협 열려라 유기농업



농자재 지원 남북경협 열려라




농자재 지원 남북경협 열려라
식량기반 확보와 통일농업 토대 마련
지역별 협력거점과 협력특별기구 조성
개별 농기계보다 공장 정상가동화 지원

유기질조합, 대북비료지원협의회 제안
남북 양분수지 균형과 산업활성화 기대
무기질비료, 식량증산 효과에 토양고려

5개년전략 연계 생태농업기지 조성 대안
우수유기농자재 북 지원시 20%증수효과
북한, 생물농약과 대용농약 의존도 높다
이은원 기자 wons@newsfm.kr
등록 2018.06.27 16: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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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달 농자재를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 추진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잇달아 열렸다. 북한이 해결해야 할 주요과제가 식량이기에 농업은 남북경협의 첫단추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또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농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므로 남북농업협력에 비료, 종자, 농기계, 농약, 친환경농자재 분야의 협력과 지원이 필수라는 방정식이 성립된다.


농업 생산력을 위해 우수기자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은 북에도 정착돼 있다. 북한은 2010~2020년까지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진행하면서 총1000억달러를 투자해 공업, 에너지, 농업을 중점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연산 3만톤 규모의 농약공장, 5만톤 종자기지, 종합농기계와 축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잇달아 개최된 ‘남북농기계 교류협력 추진방안 정책좌담회’(한국농업기계학회 19일), ‘가축분 재활용 활성화 간담회’(이개호 국회의원 19일), ‘친환경농자재 대북경협지원 추진방향 세미나’(한국친환경농자재협회 21일)에서는 과거 남북경협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시행착오를 벗어나자는 방향 모색이 주안점이 됐다.


목마른 이가 샘을 파듯, 내수정체라는 동병을 앓고 있는 농기자재산업계에서 남북경협을 통해 매출과 성장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읽힌다.


친환경농자재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백정민 통일농수산사업단 사무총장은 “남북 농업개발협력의 목표는 한반도의 안정적 식량기반 확보와 함께 상호경쟁력 제고와 통일농업의 토대 마련 방향으로 나가야 하며, 지역별 협력거점과 협력특별기구를 조성하고 개발 협력의 재원과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 총장은 “북한은 만성적·구조적 식량난을 완화해야 하는데 이는 농업기술·관리·영농물자를 통해 풀어야 하므로 북의 농업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남북 농업개발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남한도 남북 농업협력을 통해 북한리스크 감소와 다각적인 경제협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접근 방식은 산업별·작목별 등 부문단위보다 지역단위의 협동농장 접근방식을 강조했다. 북한은 전국 3300여개의 협동농장이 전체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립채산제 등의 변화도 일고 있다. 또 부문단위 접근시 사업기관은 해당부문 중앙지도기관이 되지만 지역협동농장 단위로 접근시에는 관리위원회(리), 경영위원회(군), 경리위원회(도), 농업성, 농업과학원이 된다.


지금까지의 남북공동영농사업은 다양한 공동협력시범·시험사업으로 우량볍씨 성능비교 시험, 볍씨 채종 기술 교류, 벼 일관기계화 시범, 병해충 및 질병 종합방제, 친환경 수도작 시험, 다수확 시범포 조성, 밭농사 작부체계 개선, 양돈연수장 운영, 과수·특작 시범, 인삼·양잠 시범, 상품화 기술 교류 등이 있었다.


남한 기술지원단에 참여했던 기관과 민간 목록을 보면 농진청을 비롯해 도농업기술원, 지역·품목농협, 한농연, 협력위원회 등과 함께 신젠타코리아, 동부한농(현 팜한농), 농우바이오, 국제종합기계, 세실, 흙살림, 한얼 등의 민간기업 등도 참여한 바 있다.


2001~2007년 농기계 단계적 지원 사례
한국농업기계학회와 농축산기계신문이 공동개최한 남북농기계 교류협력 좌담회에서는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이 운동본부 중심으로 ‘대북 농기계 지원사업의 경험과 향후 방향’을 제시했다.


홍 사무국장은 2001부터 2007년까지 지속된 대북 농기계 협력이 △1단계:농기계 수리공장 설립 및 견본기 공급과 실증시험 △2단계:농기계 조립생산공장 건립 △3단계:민족적 농기계 협력 개발 등 단계적 방안 아래 진행됐다고 밝혔다. <표1>






중고와 신품 콤바인,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등 지원, 농기계 수리공장을 신축 지원했으며 수리용부품도 지원했다.


2005년에는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과 합의해 농기계생산공장을 경협방식이 아닌 지원방식으로 추진해 그해 7월 농기계공장을 평안남도 강서군 금성트랙터 공장 내에 건설해 콤바인과 이앙기 등 농기계 조립라인을 설치했다. 콤바인 조립 기술교육도 실시했으며 9월에는 추수기에 사용할 콤바인 50대를 첫 생산했다. 당시 67명의 우리측 대표단이 방북해 9월 14일 ‘우리민족·금성·동양 농기계공장’ 준공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운동본부 지원사업과 연계, 국산 농기계 부품 일부를 이곳에서 생산해 국제종합기계에 공급하는 협력사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홍 사무국장은 이앙기, 경운기, 콤바인 등 국산 농기계가 수작업이나 북한 농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효율성을 보여 북측의 만족도가 높았으며, 경운기 등의 생산기술 이전에 대한 요구도 컸다고 밝혔다.


홍 사무국장은 농업기계화가 현 북한의 주요과제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남북협력을 통한 농기계공장 현대화, 공동투자 형식의 신 농기계공장 건설과 한반도 농업에 필요한 농기계 개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미 한국농어촌공사 통일농업연구부 과장은 현재 파악 가능한 북한의 농업생산기반 자료가 추정치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오래된 자료가 많다고 지적했다. 협력사업에 앞서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다.


북한 작물 생산량 증대의 가장 큰 제약요인은 부족한 농기계와 연료라고 밝혔다. 개별 기계 지원보다는 주요 농업용 기계공장의 정상가동화 지원을 위한 인적·물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경운기, 트랙터 등 완제농기계 지원방식이 아닌 북한 현실에 맞는 농기계 제작환경 조성을 위한 교류협력이 돼야 한다는 것. 공장의 정상가동화 지원이 돼야 유지 보수 및 필수부품이 해결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현황에 맞는 농기계 제작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


“비료협의체 구성해 지원효과 높이자”
이개호 국회의원의 ‘가축분 재활용 활성화 간담회’를 주관한 한국유기질비료협동조합 김종수 이사장은 대북비료지원협의회를 통한 대북비료지원이 북한 농업의 단기적인 문제를 완화하면서 남북의 장기적인 문제 해결도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토양은 유기물 함량이 낮기 때문에 유기질비료 시용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고, 남한은 축산분뇨와 기타 유기성 자원이 과잉 상태에 있으므로 이를 해소하는 효과가 크다. 남한의 잉여 유기물 및 해양투기가 금지된 축산분뇨를 유기질비료로 재활용해 북한에 지원함으로써 남북한 농경지의 양분 수지균형에 도움이 된다.


또한 김 이사장은 향후 대북비료지원협의회와 같은 협의체를 구성해 생산 및 공급 관련 업체의 선정, 공급량 배정, 지원 비료의 품질과 공급방법 기준을 정하는 역할을 제안했다. 북측과 협의를 통해 지원 비료의 분배 투명성을 높일 것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축산산업의 기업화로 발생되는 많은 양의 가축분뇨 처리와 유기질비료를 통한 재활용으로 축산농가의 환경개선과 유기질비료 업계의 지속적인 활성화도 기대되는 요인이다.


영농형태 맞는 무기질 신비종도 지원해야
한국비료협회(회장 이광록)도 25일 대북 비료관련 무기질비료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의 비료 소요량은 130여만톤으로 자체 생산 20여만톤, 중국산 수입 16만톤을 감안할 때 100여만톤이나 부족한 것으로 추산된다. 만일 우리측에서 무기질비료 30만톤을 지원해 벼·옥수수 재배 사용시 약 130만톤(4.4배) 식량 증산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협회는 1999~2007년 연평균 20~35만톤의 대북 비료 지원이 있었으며 요소·복합비료·황산암모늄 등 주로 고성분 비종 위주였다고 밝혔다. 북한의 척박한 토양과 농업환경이 열악해 과거 비료 지원시 요소, 복합비료 등 무기질비료 공급으로 조기에 부족한 식량확보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비료 지원이 재개된다면 최근 북한의 토양환경 및 영농형태 등을 고려, 요소·복비와 함께 원예용·밭작물용의 특화된 비종도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농업개발협력 복합단지의 성공사례 만들자”
친환경농자재 세미나에서 ‘북한농업 현실과 친환경농자재 대북경협지원 추진방향’에 대해 폭넓은 주제발표를 한 안인 한국친환경농자재협회 부회장은 2016년 북한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연계해 농촌개발 생태농업기지 조성을 제시했다. 함경남도 북청과 함경북도 어랑·숙천 농업개발구와 함께 만포·압록강·혜산 경제개발구와 위원 등에 북한 정책과 부합하는 생태농업기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개성-해주-사리원을 잇는 서부권, 금강산-새포-원산의 동부권에 농업개발협력 복합단지 조성과 개성공단 인근지역에 시범 복합영농단지 조성 등이다. 시범사업 성공사례를 밑바탕으로 지역과 방식의 다양화도 모색할 수 있다. 복합영농시범단지 중심으로 종자부터 비료, 농약, 친환경자재, 농기계, 비닐온실기자재 등 생산기지 구축 패키지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안 부회장은 북한 농업개발을 위해 복합농촌단지를 단계별로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북한 농촌 접경지에 생산기반, 생산요소, 농업기술을 지원하고 이어 단지에서 생산한 농산물 반입 투자협력 추진 등 상업적 교류를 시도한다. 그 다음 인근특구와 연계해 남한-특구-복합농촌단지로 연결된 3각 협력사업 추진을 도모하며 마지막으로 시범사업 성공사례 등의 성과를 북한 전 지역으로 확산하는 전략이다.


북한 중앙남새연구소와 중국 후베이성 농업과학원의 채소 생산기술협력을 통해 △채소 어린모 생산기술 △채소 종자 채종기술 △주요채소 육종기술 △노지채소 생산기술 △온실채소(토마오, 오이) 생산기술 △채소 유전자원 교류 등을 한 사례도 참조할 수 있다.






유기질비료와 친환경자재의 증수효과기대
북한의 유기농업은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주체농법을 지키면서 유기농법을 비롯한 새로운 선진영농방법과 기술을 장려해 왔다. 2003년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 창설, 2005년 유기산업법 제정, 2004~2010년 유기농업발전 7개년 계획을 수립해 유기생산체계와 기술개발 시범사업이 설정됐다. 2014년 북한 농업전문가 6명이 독일에서 유기농업 등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기술교육을 받기도 했다.


GNE와 농업과학원은 평양, 황해남도, 평안북도, 강원도 등에 유기농업 시범농장을 운영했다. 2012년에는 유기농법안내서를 제작했으며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 농업과학원, 국토환경보호성과 평양원예지도국 등 전국 여러 기관이 협동농장과 협력해 유기농업생산과 관련한 과학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북한은 다양한 유기질비료와 대용비료의 사용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갈탄이나 니탄에 암모니아를 섞어서 만든 흙보산비료가 인기이며 안주흙보산비료공장 등의 대규모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다. 토양 개량과 지속가능 농법을 위한 사업인 ‘세대당 1톤 유기거름 전투’도 이채롭다.


안 부회장은 “우리측의 유기질비료가 무기질비료와 비교할 때 완효성이며 폐기물을 원료로 하고 있다는 북측의 인식으로 인한 거부감을 해결하기 위해, 유박비료와 무기질비료를 묶어 지원하고 가축분퇴비는 축산 협력사업과 병행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안 부회장은 우리나라 가축분뇨 발생량이 4억6530만톤에 이르며 가축분퇴비 생산량 885만톤, 소비량은 738만톤으로 잉여분 150만톤의 절반 정도만 북한에 공급해도 북한 채소·과수가 10%정도 증수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또한 국내 유기질비료 20% 추가소비의 효과도 낼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친환경유기농자재를 선호하는 북한에 우리의 우수 유기농자재를 선발해 지원시 20%이상의 증수효과가 기대되며 우리측에 북한의 우수 유기농자재 도입 병행으로 남북 상생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옥수수 육종종사 2000여명, 사과육종도 활발
안인 부회장은 종자 분야에 대한 북한 현황도 주제발표 내용에 담았다. 북한의 식물유전자원수는 약 8만점으로 추정된다. 농업과학원 산하에 작물별 전문연구소와 지역단위 연구소에서 품종개발을 하고 있다. 옥수수의 재배면적이 60%, 옥수수 육종 종사인력은 2000여명으로 대규모이며 핵심 연구인력도 330명이 된다. 벼는 수량성에서 품종에 따라 남한보다 80% 내외이며 최근 식량난 극복을 위해 2모작을 추진하고 있다. 사료작물도 개발한 바 있다. 감자와 채소는 품종수 부족 등 낙후된 실정이다.


최근 우리측의 종자 지원은 아시아종묘(대표 류경오)가 2014년 부추, 무, 배추, 양배추, 겨자, 브로콜리, 치커리, 갓, 시금치, 완두콩, 다채, 청경채, 비타민채 등 13품종 15억원 분량을 지원한 바 있다. 독일 민간 구호단체(Welthungerhilfe)가 유럽연합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중국 배추, 토마토, 고추 8품종의 종자생산사업을 통해 북한 일부지역에 공급하기도 했다.


북한의 작물보호제 생산은 함흥 소재 2.8비날로연합기업소에서 생산되고 있다. 국가과학원 고려생물약센터에서 식물성농약 명록, 천록 등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농약기술이 없어 식물추출물이나 생물농약, 대용농약 의존도가 높다.

이은원 기자 

18 왜 ‘위대한 영도자’는 쌀밥에 고깃국 못 먹일까



중앙시사매거진



201810호 (2018.09.17) [54]목차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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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70년간 지속된 北 식량부족 실태
왜 ‘위대한 영도자’는 쌀밥에 고깃국 못 먹일까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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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미사일 가진 나라가 농업 생산성과 추수 효율은 떨어져…
김정은, 재정 확보 차원서 농업개혁 접근하면 중국 모델 난망




▎평양 교외의 농촌 풍경. 국제식량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남한의 25% 수준이다.

백로가 지나가자 북한 들녘에도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다. 북한 평야지대는 남한보다 평균 3도 정도 기온이 낮은 만큼 시베리아 북서풍이 일찍 불어닥친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다. 벼를 베고 탈곡하는 가을걷이는 남한과 비교해 보름 정도 서두르지 않으면 서리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콤바인 등 농기계가 부족해 매년 10월 북한 농촌지역에선 벼를 수확하는 ‘가을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된다. 들판 곳곳엔 ‘당은 부른다. 모두 다 백일 전투에로’란 가을걷이를 강조하는 입간판이 노적가리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통치체제라 농사도 전투적인 용어로 농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9월부터 11월까지 100일 동안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공부와 업무를 중단하고 벼 베기 노력 봉사에 나선다, 북한의 최고 명문 김일성종합대 학생조차 예외 없이 최소 2주 이상 휴업하고 농촌 지원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가을 수확기엔 평균 20일 동안 애국 노동과 농촌 지원 명목으로 무보수 노력 동원이 전국적으로 이뤄진다. 북한 대학생들은 남한의 농활 MT와 유사하게 지방으로 내려가 단체 영농 지원을 하게 된다. 일부 학생은 일하다가 휴식시간에 노래를 부르는 등, 놀면서 학생들끼리 혹은 지방의 농촌 처녀들과 연애도 한다.

북한 2대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내놓는 “볏단 운반과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현지지도 지시는 10월 이후 노동신문 단골 보도 사항이다. 특히 “다 지어놓은 낟알을 한 알도 허실함이 없이 제때에 거두어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라는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가을걷이 전투의 금과옥조다. 핵과 미사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6개국만이 성공했다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기술인 콜드 론치(Cold launch)를 성공시킨 북한 지도자가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지시를 남발하는 것은 북한 농업이 당면한 딜레마다. 북한은 지난해 SLBM의 두 차례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기술 개발자를 포옹하는 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정책적 관심만 있으면 핵과 미사일 기술 개발 노력의 100분의 1만 투입해도 해결할 수 있는 볏단 운반을 지도자가 연일 노동신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불가사의다. 대형 장거리미사일을 1만㎞ 이상 떨어진 미국 LA에 투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들판의 노적가리를 적기에 이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정책의 오류가 아니고선 설명이 어렵다.

사실 북한의 가을걷이 전투처럼 노동력을 단기에 집중 투입하는 추수 행태는 남한에선 1990년대 이전에 마감했다. 남한 농촌지역은 1991년 충남 당진군과 경북 의성군에서 RPC(Rice processing center)라는 미곡종합처리장를 건립하는 사업을 시작해 1990대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사실상 벼 수확의 기계화가 완료됐다. 벼의 수집·건조·저장·가공·포장·판매의 전 과정을 일괄 처리함으로써 농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관리비용을 줄여 미곡의 품질 향상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북한의 경우엔 이러한 일관 처리 시설이 없기 때문에 가을철만 되면 학생 및 직장인 등 비농업 노동력을 일시에 대거 동원해 수작업으로 벼 수확에 나선다. 심지어 벼를 수집해 건조하기 위해 들판에 늘어놓으면 쥐 같은 들짐승들이 곡식을 훔쳐 먹는 양이 전체 생산량의 2~3%에 이른다는 추정 통계도 있다.

“쌀은 공산주의다”의 허구




▎북한 협동농장원들. 통일이 되면 북한의 협동농장은 규모 면에서 국제경쟁력을 가질 것이란 예상이다. / 사진:통일문화연구소

필자는 정부 협상대표단의 일환으로 2000년 가을 평양을 방문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가는 약 40㎞ 구간의 농촌 지역 도로는 온통 벼 베는 풍경으로 분주했다. 멀리 협동농장 앞 논두렁에 덩그러니 서 있는 ‘쌀은 공산주의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빨강 글씨의 7개 입간판에 한 글자씩 표기되어 있는 모습은 북한이 사회주의 계획경제 농업체제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백일전투’ ‘풀판을 고기로 바꾸자’ 등 각종 노력 동원을 강조하는 전투적 구호에 적응하는 일은 10여 차례 방북하면서 차츰 무뎌졌다. 그러나 노동력 투입으로 식량 증산을 강조하는 구호가 2018년에도 건재한 것은 북한 식량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평양사범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남한 망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메이슨 대학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현식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라며 이를 ‘북한의 식량정치(food politics)’라고 표현했다. 식량 확보가 최고지도자의 최우선 과업이란 의미다. 남한은 의식주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식의주라고 표현된다. 몸에 걸치는 옷이나 사는 집보다 먹고사는 문제, 즉 식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은 김일성의 사고에서 비롯됐다. 김일성은 일찍이 ‘쌀은 사회주의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 농업을 통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사회주의를 해야만 먹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그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김일성 주석이 ‘먹는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일성의 식량문제 해결의 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한에서 실현됐다. 쌀 등 주곡을 증산하고 밀과 콩, 옥수수 등 부족한 곡물은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수출해서 획득한 외화로 수입함으로써 식량문제 해결에 성공했다. 식량을 완전 자급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일부 국가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곡물을 수입한다. 남한의 경우 쌀 재고량이 적정 수준을 넘어 보관 비용만 연간 300억원을 넘어서고 있으니 김일성의 ‘쌀은 공산주의’란 담론은 허구였으며 쌀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란 명제가 타당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화성 14호 등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두 차례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첨단 전자 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왜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 70년 동안 경미한 자연재해에도 외부 세계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는 걸까? 특히 3세대 젊은 지도자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식량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노동당 주체사상 비서이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한 황장엽은 1997년 탈북해 필자가 소장으로 근무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문으로 일했다. 황장엽이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최고층에게만 전달된 북한 내부의 식량 통계였다. 그는 저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에 극심한 식량난을 설명했다.

“1996년 가을이 되면서 북한의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됐으며, 인민들의 고통과 불행은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다. 비서들이 모여 1996년도 알곡 생산량을 종합해 봤더니 210만t밖에 안됐다. 물론 여름에 식량이 떨어져 미리 따다먹은 강냉이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210만t의 식량을 가지곤 군량미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이 되자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해 농민들은 정말 어렵사리 남겨놓은 3개월 분의 식량을 군대에 무조건 내줘야 했고, 우리 비서들도 장에 나가 200kg씩 쌀을 사다가 군대에 바쳤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갔다. 평양의 경우도 중심가만 조금 벗어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배낭을 멘 채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바람에, 교외 장마당으로 가는 길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가정에선 부모들이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어지자, 그저 얻어먹기라도 하라고 밖으로 내보내는 집이 속출했다. 이 얘기는 내 셋째 딸이 들려준 것인데, 어느 날 아침에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어린 학생 두 명이 새까만 손을 내밀더니 밥 좀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우선 손부터 씻게 하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 아버지가 다 굶어 누워서 우리만이라도 나가 얻어먹으라고 해서 남포에서 걸어왔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딸한테 그 말을 듣곤 (비서) 김덕홍에게 아사자들의 통계를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조직부 일꾼을 만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다. ‘조직부 일꾼에 의하면 지난 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해서 50만 명이 굶어죽었고, 올해(그때는 11월 중순이었다)엔 벌써 100만 명가량이 굶어죽어 간다고 합니다.’”

황장엽은 주체사상 비서로서 핵과 미사일에 관한 특급 군사정보 이외에 어떤 통계도 받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받아 본 식량생산량 통계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만 올라가는 수치를 포함했다. 황장엽은 계속된 식량난으로 북한체제가 존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탈북을 결심했다. 하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측의 대규모 식량 지원으로 황장엽의 예측과 달리 북한체제는 붕괴되지 않았다.

북한이 식량 자급자족 안 되는 이유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유엔아동기금(UNICEF) 요원들이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하던 중 촬영한 농촌. 북한의 어려움을 함축하고 있다.

1996년 북한 인구는 북한 중앙통계국, 남한 통계청 및 유엔 통계 기준으로 2200만 명 수준이었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 현지를 방문해 작성한 1996년 11월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 11월 1일~1997년 10월 31일 식량 수요는 조곡기준으로 645만t, 정곡기준으로는 426만t이 필요했는데, 실제 생산량은 황장엽이 언급한 250만t에 옥수수까지 포함해 299만t으로 추계됐다. 결국 조곡기준으로 236만t, 정곡기준으로 126만t이 부족하며 50만t을 상업적으로 전량 수입한다면 약속된 인도적 지원량 3만t을 합산해도, 실제 조곡기준으로 73만t이 모자란다. 결국 부족 비율은 30%선으로 연간 기준 3개월 동안은 식량 배급이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당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이유는 1995년 홍수와 우박, 1996년 100년 만의 가뭄, 1997년 낮은 기온과 홍수 및 1998년 가뭄 등 4년 연속 자연재해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생산량이 450만t대로 회복되면서 부족 비율은 15%선으로 축소됐다. 매년 중국으로부터 50만t 내외의 식량지원이 이뤄지고 자연재해가 빈발하지 않자 당국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최소 소요량 기준이며 식량의 자급자족은 요원한 실정이다. 특히 북한은 효율적인 물 관리체계가 미비해 지구 온난화 시대에 가뭄과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식량 생산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관개시설 및 저수지 등 물 관리를 위한 농업기반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북한이 식량을 자급자족 못하는 이유는 생산량 부진 탓이다. 논 200평 기준으로 남한은 평균 80kg 들이 가마 4~5개 분량의 쌀이 생산된다. 반면 북한은 2∼3가마가 생산된다. 북한 인구의 37%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자급생산에 실패했다. 남한은 6%의 농민이 주곡인 쌀을 생산한다. 북한의 경지 면적 역시 남한과 비교하여 크게 작지 않다.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다.

북한은 일제가 건설한 동양 최대의 명성을 자랑하던 흥남비료공장 등이 노후화되면서 비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남한은 1999년 처음으로 화학비료 15만5000t을 북한에 지원했다. 이후 2007년까지 북한에 총 255만t을 지원했고 2008년 보수 정부 출범 이후 민간차원의 소규모 지원을 제외한 대규모 비료 지원은 중단됐다. 북한의 2000년대 이후 비료 생산량이 평균 성분량 기준으로 20만t 수준임을 감안할 때, 당시 남한이 북한에 지원한 비료는 북한 생산량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으로써 북한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 북한은 화학비료 생산의 한계를 절감하고 유기질 비료 생산을 늘리면서 유기농업에 주력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2013년 2월 ‘북한에서 유기농업은 국내의 긴장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농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 정부가 관련 시책들을 일관하게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2013년 7월 21~23일 평양에서 국제유기농업강습이 열렸으며 국내외 유기농업 전문가들이 과학적 문제들을 논의하는 좋은 계기였다’고 선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중국이 북한에 자금과 물자, 비료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료 지원으로 북한 식량 생산이 정상화되는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화학비료가 화학무기 생산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해화학, 경농, 농우바이오 등 비료 관련 주식이 대북지원 기대감으로 상승하는 것은 북한의 강력한 요청을 예상한 주식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료, 농기계, 농약 등 중화학 공업은 사실상 농업 외부요인에 좌우된다. 따라서 일반경제의 발전 없이 농업이 발전할 수 없다. 결국 선진국치고 농업이 약한 나라가 없고, 농업이 발전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집단농장의 문제점 해소한 중국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왼쪽)가 1997년 4월 20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측근인 김덕홍씨와 함께 감개무량해하고 있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식량난에 절망해 망명을 감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소프트웨어 분야다. 벼는 쌀 미(米) 글자에서 보는 것처럼 88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한다. 효율적인 노동력이 중요하다. 개별 농민들이 어떤 자세로 농사에 임하는지는 생산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북한 농업은 1946년 토지개혁과 1958년 농업협동화를 통해서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토지개혁은 북한 사회주의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형성한 기본정책이다. 북한은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단행해 4%의 부농이 60%의 토지를 편중 소유한 문제점을 해결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김일성은 토지개혁으로 받은 땅의 소유권 등기 잉크도 마르기 전인 1954년부터 5년에 걸쳐 집단화 영농인 협동농장 제도를 정착시켰다. 현재 북한의 농업 생산은 1000여 개의 국영 농장·목장과 3000개의 협동농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텃밭이나 뙈기밭을 제외하면 협동농장이 북한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생산단위다. 협동농장은 리(里) 단위 기본 생산조직으로 전국에 3000여 개가 있으며 북한 전체 경지면적의 90%인 180만㏊, 농업 생산의 90%를 담당하고 있다. 반면에 국영농장은 지역단위에 제한되지 않은 생산단위로 육묘와 축산 등 국가 소요 농·축산물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결국 협동농장은 텃밭이나 뙈기밭 등을 제외하곤 사실상 북한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생산단위다. 북한 농민들은 1946년의 토지개혁과 1954년의 협동화 조치에 의해 협동농장 소속으로 농사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며, 집 앞 30평 정도의 텃밭 생산물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문제는 집단생산이 개인의 영농 의욕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는 점이다.

집단농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의 1978년 농가 청부 생산책임제 개혁을 살펴보자. 중국은 대륙의 공산혁명과 1950년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소유한 자가 농사를 직접 짓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실현했다. 하지만 1958년부터 불어닥친 집단영농 제도인 인민공사는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꺾었다. 중국은 1960년대 10년 동안 식량 생산량 부족으로 3000만 명이 아사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1966년부터 홍위병을 조직해 자신을 비판한 지식인과 관료들을 압박하는 문화대혁명을 단행하여 중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하면서 인민공사가 와해되는 것을 덩샤오핑(鄧小平)이 묵인하고 사실상 개인영농제로 전환을 추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농업과학원을 참관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농업개혁을 줄곧 강조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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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1월 24일 안후이성 펑양현 샤오강촌의 지방 농민 18명은 전년도 식량 부족으로 마을 주민의 30%가 기근에 시달리자 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인민공사체제를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농지를 가구별로 나눠 경작하자는 농가청부 생산책임제를 도입했다. 즉 농민 수대로 토지를 분배받아 경작한 후 일정 양의 양식을 국가에 납부하고 잔여량은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하는 제도다. 제도 위반은 공안당국의 강력한 단속을 받았으나 굶어죽는 것보단 좋다는 농민들의 저항을 덩샤오핑은 기꺼이 허용했다. 덩샤오핑의 묵인 아래 시작된 새로운 제도로 그해부터 샤오강촌의 곡물생산량은 매년 20% 이상 급증했다. 1978년의 3만2500㎏에서 1997년에 60만㎏으로 18배가 증가했다. 개인이 강렬한 의욕을 갖고 노력한 만큼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이기심은 어떤 정책보다 증산에 효과적인 무기였다. 샤오강촌의 성공은 덩샤오핑이 주창한 개혁과 개방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적 지도자들은 1980년 들어 생산력 향상을 앞세워 전국적으로 인민공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인민공사가 해체되며 2억5000만 명이었던 농촌의 절대빈곤 인구는 1998년 4200만 명으로 줄었다. 1978년 3억744만t이던 중국의 식량 생산은 1997년 4억9417만t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식량 증산이 없었다면 대량 기아는 불가피했다.

북한 역시 중국이 경험한 집단영농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업단위를 축소하고 개인의 영농 인센티브를 늘리는 조치를 수차례 검토했다. 2011년 12월 김정은 정권 출범 후 북한 경제 및 농업 부문에서 가장 큰 변화 요인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6·28 방침’이다. 북한은 2012년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한데 대하여’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른바 6·28 방침의 농업 관련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동농장과 공장의 생산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국가가 보장한다. 둘째, 국가와 협동농장이 7대3으로 생산물을 분배한다. 셋째, 농산물 가격 책정은 시장가격으로 한다. 넷째, 개인 소유 몫의 처분은 자유로 한다. 다섯째,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의 규모를 4~6명으로 줄인다.

김정은의 ‘6·28 방침’은 무늬만 농업개혁




▎함흥에 있는 흥남비료공장 전경. 일제가 건설한 동양 최대시설이었지만 노후화됐다.

하지만 6·28 방침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등 선전매체를 통해 개혁적 조치로 소개됐으나 자강도 일부를 제외하곤 전국단위에선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 우선 비용의 국가부담은 사회주의 경제관리체제의 전형이다. 국가가 생산비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바로 세우겠단 발상이다. 둘째,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의 3요소에서 국가가 협동농장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자본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국가의 몫이 70%나 된다는 것은 적절한 분배라 할 수 없다. 셋째, 북한 산업부문(비농업부문)의 가동율은 30% 이하로 알려져 있다.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비료의 공급도 필요량의 30%를 밑돌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가가 초기비용을 보장하는 방법은 농자재 가격을 시장가격으로 지불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초(超)인플레이션 국면에 있기 때문에 시장가격으로 농자재를 보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넷째, 개인소유분의 처분을 자유화한다는 것은 곡물의 시장거래를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다. 시장으로 유출되는 곡물의 양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면 곡물의 국가 수매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작업분조의 규모 축소는 새로운 분조관리제(1996년)와 7·1 경제관리개선조치(2002년)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그 후 실제 작업분조 규모가 축소됐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6·28 방침을 개혁적 조치로 해석하기엔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이 방침은 붕괴된 정부 수매·조달체계를 보완해 국가가 농장과 공장기업소의 생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보인다. 6·28 방침의 목적대로 단기적으로 정부재정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통화 증발이 불가피하며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5월 30일 김정은 위원장은 담화를 통해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한데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른바 5·30 조치의 주요 내용은 협동농장과 공장기업소에서 자율경영제 도입,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 폐지와 가족영농 도입, 농장 노동력 1인당 농지 1000평 할당, 분배 비율은 국가와 개인이 4대6 등이 거론됐다. 농업에서 사적 경영을 허용하고 정부 설정 목표 초과생산분에 대해 자유처분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지만 전국단위 시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시행 시, 협동농장 제도의 근간을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정치적 지적을 북한 최고지도부가 무시하지 못했다. 농업개혁은 최고지도자의 톱다운(top-down) 방식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새 농업 조치들은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시행을 독려한 중국, 베트남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탁상공론 수준이었다. 식량 보급에서 시장의 역할은 확대됐으나, 여전히 목표생산량이 할당되고 농자재 공급 역시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협동농장의 통일 후 미래경쟁력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실질적인 개인영농제를 허용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단초였다.

북한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집단생산에서 2∼3 가족 중심의 개인생산 형태로 영농 단위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집단농의 형태를 띤 혼합개인농’ 이란 변형된 영농구조가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회주의 특성상 개인농 구조를 전국단위에서 선언하긴 어렵고 지방의 협동농장 차원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중앙에서 부분적으로 묵인하는 행위가 증가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전국 협동농장들도 이러한 경향을 부분적으로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본격적인 개인영농제를 도입하는 것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시범적 성격의 혼합농은 단순히 증산을 위한 잠정적인 개혁 조치로 이해된다. 노동당이 주도하는 농업개혁은 여전히 본질적 측면의 개인영농제(individual farming)를 도입하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제한적인 증산 실험에 골몰하고 있다. 개인의 영농 의욕을 고취하는 각종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한다면 농업생산은 근본적으로 증가하기 어렵다.

매년 초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농업문제 해결을 강조한다. 농업 부문에서 물 절약 농법을 비롯한 과학농법들을 적극 개발할 것, 영농물자를 원만히 보장하며, 생산조직 및 지도를 실정에 맞게 추진할 것, 알곡 생산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 전국의 축산·양어·버섯생산기지를 정상화할 것, 강원도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을 적극 추진할 것 등이 단골 강조 사항이다. 하지만 곡물생산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농업생산량은 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발표한 2015년 세계식량정책보고서에서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2012년 1ha에 1450달러로 남한의 25%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IFPRI는 보고서에서 식량문제를 겪는 지역들의 정책을 평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쌀 생산성 증대, 곡물 유실 방지, 수자원 확보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북한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다.

1990년 이후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 연간 농민 1인당 노동생산성의 경우 1961년 남북한 모두 500달러 수준으로 비슷했지만, 2012년 북한은 남한(9063달러)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한 1233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북한 농민 비율은 37% 이상이다. 북한이 빈곤국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요약하면 북한 농업은 비농업적 요인인 일반경제와 연관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원유·원자재 생산 및 도입이 증가해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의 정상적인 공급이 가능해지면 증산이 가능할 것이다. 농업 내부 요인에선 영농시스템 개편 및 농업기술 개선, 주체농법의 탄력적 적용, 작부체계 개선을 통한 효율성 제고, 농산물 가격체계를 바꿔 생산 인센티브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

다만 통일 이후 집단농의 문제점을 감안해 협동농장을 해체해 남한의 소농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평균 500ha 넓이의 협동농장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바람직한 면적이다. 평균 3000평인 남한 소농 규모로는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통일 후 남한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외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협동농장이 보유한 규모의 경제란 장점이다.

北 석탄 받느라 南 쌀값 올라갔다?




▎북한으로 가기 위해 쌀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석탄 반입의 대가로 한국 쌀값이 오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최근 나돌고 있다.

북한 식량난은 통일 이후 한국농업의 부담이 될 것이다. 우선 이들에게 긴급 식량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한국식량안보재단이 발간한 ‘선진국의 조건: 식량자급 보고서’에서 북한 식량난에 대비해 통일미 120만t의 상시 비축을 제안했다. 통일을 고려한 남한 농정이 한반도 전체의 식량수급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논의다. 농업부문의 성장률은 빈곤을 감소시키는데 있어 비농업부문의 성장률에 비해 2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2008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남한 쌀값이 80kg당 20만원선으로 급등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12만 원선이었던 쌀값이 1년 만에 거의 60% 이상 상승한 것은 시중에 쌀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는 북한산 석탄을 싣고 온 선박에 엄청난 양의 쌀을 선적해 북한으로 보낸 결과란 것이 학교 주변에서 주로 학생·교직원을 대상으로 식당을 경영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항변이었다. 필자는 과거 남한 정부가 매년 30만t의 쌀을 북한에 보내던 시절 직접 모니터링 차원에서 선적과 하역 현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1만t의 쌀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만t은 8t 대형트럭 1200대를 동원해야 수송이 가능하고 배에서 하역할 때 쌀이 산더미처럼 보였다. 따라서 정부가 대량의 쌀을 언론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북한행 선박에 선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정부가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서 정부 보관 양곡을 시중에 방출시키지 않은 결과라고 얘기했으나 아주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및 물가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또한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 친화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확산된 여론이라고 해석했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이처럼 쌀은 남과 북 모두에 예민하고,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 모두 정부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품목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깊어가는 가을밤, 남과 북 모두 먹는 문제를 해결해 한반도에서 굶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14 [[정은미.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14 [[정은미.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 『모심과 살림』 4호(2014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글 루카스 바움가르트 (Lukas Baumgart. 유기농업연구소(FiBL) 연구원(북한유기농업프로젝트 연구 담당자) Lukas.Baumgart@fib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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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문지영 (한살림연합)

요약

북한은 다년간 식량위기로 고군분투해 왔으며 1990년대에는 기근을 겪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상황은 불안정한데다, 언제든지 기근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북한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저투입농업과 유기농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농업 전문가들도 유기농업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 경험을 강화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농업기술 수준을 넘어선 포괄적인 농업체계로서 유기농업을 거대 규모로 북한에 도입하고자 할 때, 몇 가지 제약이 눈에 띈다.

유럽연합 유럽원조협력청(EuroAid) 프로젝트(시행기간: 2010년 4월~2014년 7월)를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담보하는 향상된 유기농업 기술을 지원해서 북한의 식량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첫 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새로 설립된 북한유기농업지원센터(KCCOA)가 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 동시에 유기농업 기술 소개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훈련기관의 중심지로 기능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북한 기술자와 기관들이 자신들의 기술적 지식을 최신화해 연구 역량을 높이고, 이것을 통해 북한이 자체 국가적 수단을 가지고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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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90년대, 대기근으로 인한 북한의 사망자 수는 24만 명에서 42만 명으로 추산된다.1) 일반적으로 농업 분야의 문제들은 식량 불안정과 식량난 위험에 따른 인도주의적 측면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정 농작물의 생산 개선에도 불구하고 만성적 영양결핍은 북한의 건강 문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식량위기는 북한에서 과제로 남아있는데,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인센티브와 마케팅 구조, 기계화의 미비, 병충해와 질병에 대비한 합성비료와 화학물질 투입 제한 등이 문제 해결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불충분하고 불균형한 양분(질소/인산/칼륨) 사용으로, 이것의 부족은 수확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아직까지도 북한 정부가 목표한 수확량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2)

1980년대 이미 북한 정부는 단위면적당 곡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집약적 농업생산을 목표한 바 있다.3) 하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집약적 농업생산은 국가 경제사정에 크게 좌우된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 등 외부 자재의 투입 부족 및 단조로운 공급 역시 수확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특히 소련 붕괴 후 국가 생산 및 해외로부터의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고, 북한의 협업농장(co-operation farms)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왔다.4) UN식량농업기구와 유럽연합, 그리고 다른 여러 기관들이 토양에 필수적인 영양분을 공급해 간극을 메우고자 노력했으나 국가적인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록 식량 생산이 더디게 늘어났으나 그것으로는 전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2011년 북한의 필요 곡물 수입량은 약 73만9천 톤으로 추산된다.5)

북한의 에너지공급 분야가 가진 문제와 투입기반 시스템이 수반하는 낮은 에너지 효율을 목격한 북한 농업부와 국가연구소(농업연구소)는 최근 들어 유기농업과 같은 자원효율적인 시스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부 자재 투입 여부와는 별개로, 유기농업은 천연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통해 보다 안정된 생산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또 다른 주요 문제는 토양의 비옥도가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시비施肥와 윤작輪作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토양 내 부식토 함량을 높이기 위한 유기자원이 한정돼 있다 보니 지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사용하는 농업 기술은 도리어 토양의 산성도를 높여왔기 때문에, 농업 효율성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토양 내 어떤 영양소는 아예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북한 내 모든 작물의 수확량은 관련 국제기준 및 지역기준과 비교했을 때 꽤 낮은 편이다. 동시에 밀과 보리를 이모작 해온 터라 이미 지력이 고갈된 상태여서 수확량이 낮기도 했다(재식기의 제한된 연료 사용 역시 낮은 수확량의 원인이 됐다). 그래서 국가연구소는 경작지 내 낮은 부식토 함량이 가진 문제를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찾았다. 그리하여 녹비 개발과 콩과科 작물의 윤작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아직 대규모로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 북한 농업부는 북한 농업이 외부 자재 투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최근 몇 년간 농업 부산물과 가축 분뇨, 그 외 바이오매스의 퇴비화를 권장해 왔다. 양질의 퇴비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토양 비옥도를 높이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장 가축과 그 가축을 먹이기 위한 사료작물에는 불균형이 수반되는데, 이는 토양 비옥도와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파급효과를 일으킨다.6)

농업 생산과 식품 소비에 있어 식품안전상 위험은 서로 다른 문제다. 한국과 유럽의 소식통은 부적절한 농약 사용으로 인한 문제들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한편에서 농장 노동자들(farm workers)은 충분한 예방조치가 적용되지 않거나 안전 장비를 이용할 수 없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임산부나 여성,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게 식품 잔류 농약이 가장 해로운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과학적 수준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유기농업이 식품 잔류농약의 위험을 줄이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독성이 없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식품 소비 과정에서 그 어떠한 농약도 섭취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성공적인 예방책이다.



자원 및 방법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연구 및 훈련 목적의 지원센터를 북한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국가 차원에서 연구원들과 정책 결정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연수 과정을 통해 검증된 유기농업 전문가 그룹에 의해 시행됐으며, 현장 방문, 기술 자문, 참여형 워크숍, 국제 유기농업 컨퍼런스 참석, 그리고 유럽 선진지 견학까지 유기농업연구소(FiBL) 출신의 국제 전문가들이 연수 과정을 준비하고 지도했다. 동시에 함께한 북한의 지역 전문가들은 시범농장에서 실천적 경험을 쌓은 사람들로, 유기농 전환을 지원하고 촉진하기 위한 연구실험농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 실험농장은 북한 농업연구원(AAS) 출신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유기농업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연구센터로 기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업과 지속가능농업을 북한 전역으로 확대 적용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맥락에서 이 실험농장은 실용적 경험을 쌓으면서 농업기술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그 효율성을 평가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에는 유기농업 체계 속에서 농업 생산을 향상시키는 데 적합한 유기농업 기술을 엄선하고 결합하기 위한 조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시범농장에서의 연구 및 생산을 통해 축적된 과학적 결과들과 유기농으로 완전 전환해 기능하는 농장에서의 실질적 실험은 북한 농업부의 정책 결정과 계획 수립의 근거는 물론 농업 생산에서 유기농업 기술의 확대를 가속화하는 확고한 토대로서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다.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북한과 유럽연합의 연구기관들은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으며 북한 농업연구원(AAS)은 국제교류 및 협력에 폭넓게 참여함으로써 세계 유기농업 동향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연계는 유기농업과 관련한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유기농업의 발전을 명확히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정치적 전략과 결합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국내 및 해외의 관련 기관들과 이미 확립된 관계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과 및 전망

유기농업연구소(FiBL)와 파트너로서 북한의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 - OARI) 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2010년에 북한에 유기농업을 소개하기 위한 연구조사 수준의 협력안이 만들어지고 승인됐다.

2011년 4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유럽연합 유럽원조협력청(EuroAid)의 기금을 받아 유기농업기술 도입으로 식량안보에 기여하고자 하는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이었다. 유기농업연구소(FiBL)는 협력기관인 북한 농업연구원이 농장에 센터를 설립하는 것을 지원했다. 센터는 연구뿐 아니라 유기농업기술의 실제 적용 및 실험, 북한 내 유기농업 기술 도입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와 그에 딸린 시범농장, 그리고 조사 활동들은 기후, 토양, 농작물 및 사회경제적 조건 등 북한의 특수한 조건들을 고려하는 한편, 유기농 생산의 실질적인 경험을 획득하고 현지에 적합한 농업기술과 경종농업 및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북한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OARI)가 관리하는 30 헥타르 규모의 국영 실험농장(미림 농장)에서 이뤄졌는데, 선정된 농장은 평양 시내에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북한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OARI) 연구단지로부터는 8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비화학非化學 자재와 익충益蟲을 이용한 해충 방제기술, 그리고 퇴비나 미생물비료 제조법과 같은 각기 다른 유기농업 기술들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기술들은 보다 총체적인 농장의 관점에서 유기농업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북한이 가진 특수한 맥락에서 유기농업을 발전시키고 적용시키는 차원에서 기존의 노하우와 경험을 활용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농장 단위는 농작물과 가축에 대한 실질적 몫을 포함한다. 1헥타르 경지면적당 가축 약 0.5마리 같은 기준이 그렇다. 이러한 유형의 농가는 북한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며, 또한 성공적인 유기농업 운영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최우선 사항은 적절한 윤작과 녹비, 최적화된 퇴비화 기술, 그리고 축산업을 포함한 순환농업을 통해 토양 비옥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북한 내 넓은 면적의 토양이 황폐화되어 있는 만큼 토양 비옥도 개선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유기농장뿐만 아니라 모든 농장까지 지속가능한 농업기술로서 바꿔낼 수 있다. 토양 비옥도 향상은 북한의 식량안보 개선에 결정적인 요인이며, 현재 구상 중에 있는 저투입 전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이것은 보다 더 효율적인 농업생산 양식을 갖추는 데 기여한다. 농가의 토양 내 부식토 균형 정도는 토양 비옥도의 개선을 확인하는 지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부식토는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미림농장에서 진행 중인 농장연구(OFR, On-Farm-Research)는 시범농장의 통상적 확립을 목적으로 하며, 이는 적합한 농업 접근법을 선택하거나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목표는 대규모 시험재배로부터 실행된 비반복 실험과 작은 구획의 땅에서 이뤄지는 반복실험을 통해 달성될 것이다. 첫 시험재배는 2011년에 시작되어 2012년과 2013년에도 진행됐다. 클로버와 클로버 혼파초지가 농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첫 대규모 시험재배는 클로버 혼파초지를 심는 데 전념하였다. 시험재배를 통해 최적의 파종 시기를 알아냈고, 북한 환경에 적합한 유럽산 클로버나 다른 풀 품종의 서리 내성 정도 등에 대해 전반적인 성질을 조사했다. 반복 실험은 옥수수와 클로버를 보호작물로 함께 심는 것과 이모작으로 겨울곡류 작물을 수확한 뒤 대두를 심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예비조사 결과, 유럽산 콩 작물이 겨울보리나 겨울밀 등 이모작으로 겨울곡류 작물을 수확한 후에 성공적으로 기를 수 있는 작물로 보였다. 한 철에 밀이나 대두 같은 두 가지 주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농업 생산성(식량안보)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윤작을 하는 동안 더 많은 콩과科 작물을 도입함으로써 토양 비옥도를 높일 수 있다. 향후 활동을 위한 현명한 아이디어를 더욱 정교화시키고, 국가 공식기록 저널을 통해 발표된 첫 시험농장사례를 실제로 구현해 낸 것은 농장연구(OFR)의 주된 결과라 할 수 있다.7)

이외에도, 이 프로젝트는 북한의 기술진과 연구기관들이 외국의 기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통해 북한은 자체의 국가적 수단들을 통해 식량안보 문제를 완화하는 전문 지식을 강화해 올 수 있었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는 북한과의 협력 단체들에게 북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식량 안보 조치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고 최적의 접근법으로 다가가도록 하는 역량을 길러내는 기회를 제공했다. 연수 활동에 포함된 분야로는 유기농업으로 경작 가능한 작물과 채소류 생산, 유기질 비료, 천연자원 관리, 가축 사육, 경영 및 관리상 문제 그리고 (시범농장에 대한) 유기농 목표생산량 적용 등이 있다.

시범농장과 농장연구 확립의 첫 단계를 거친 후, 북한 농업연구원(AAS)은 실제 현장에서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최종 수혜자에게 미칠 영향을 상기해 볼 때, 북한의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러한 경험과 추가적 노하우를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의 중요성은 확장과 훈련의 단위로써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시범농장이 온전히 시행되고 기능하게 된다면 유기농업이 북한에서 어떻게 시행 가능한지를 확인하게 되고, 유기농업의 적용을 통해 축적된 과학적 결과들을 바탕으로 농업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들은 지속가능하고 안정된 식량 생산을 목표로 북한의 국가농업 정책을 개선하고 적용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지지할 것이다.

* 이 논문은 유럽연합의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이 논문 내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유기농업연구소(FiBL, http://www.fibl.org)에 있으며, 유럽연합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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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poorenberg, T. and Schwekendiek, D. (2012). Demographic Changes in North Korea: 1993.2008.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38: 133.158.

2) Gunjal, K., Goodbod, S., Coslet, C., Hollema,S., Vurumuku, E., Singhkumarwong, A., Wanmali, S. (2012). Special Report: Crop and Food Security Assesment Mission to the Democratics People’s Republic of Korea, 12 November 2012,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ROME.

3) Kim, U. G. (1999). The agricultural situation of North Korea, No. 475. Food & Fertilizer Technology Center.

4) Ireson, R. (2006). Food security in North Korea: Designing realistic possibilities. In Proceedings of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Meeting(May). Beijing, China.


5) Gunjal et al., 2012.

6) 위 논문.

7) Pyongyang. 2014. DPR Korea No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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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의 관점에서 본 북한의 유기농업*69)

정은미(서울 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이 연구는 2010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 아 수행되었다(NRF-2010-361-


이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공간(公刊) 문헌에서 유기농업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다. 쿠바의 유기농업 경험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은 단순히 영농기술적인 측면에서 유기농업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견된다. 쿠바와 북한이 공통적으로 대외적 고립과 수입 영농 자재의 부족과 같은 유사한 상황적 제약 속에서 유기농업에 관심을 돌렸 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와 달리 북한은 집단농 업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영농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유기농법 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 에도 북한 사회에서는 식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농촌과 도 시 모두에서 유기농법에 의거한 가족농이 십수 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은 열악한 영농 조건 속에서 농업 증산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하여 유기산업법의 제정 및 생태환경의 보존 문 제에 이르기까지 담론이 진화해왔다. 또한 유기농법에 대한 북한의 초기 적 관심은 부족한 화학비료를 대체할 친환경적 방법의 유기비료를 자체 적으로 개발하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2000년대 이후 외부 세계의 유기농업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관심의 폭을 넓혀갔다.




그동안 남북한 간에 이루어진 농업교류협력은 주로 북한의 농업정책 요 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으며, 화학화와 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남한의 관행농법의 영농기술과 자원의 이전에 불과하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될 남북한의 농업교류협력은 한반도 차원에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촌과 생태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대 안적인 통일농업의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북한 정권이 관심을 보이는 유기농업은 남북한 농업교 류협력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제어: 유기농업, 관행농업, 남북농업교류협력, 식량주권, 생태, 가족농, 통일농업
1. 들어가며

1950년 에 미국의 주도로 시작된 ‘녹색 명’은 1970년 발생한 세계 식량 기를 극복하는 데 분명히 크게 기여하 지만 결과 으로 오늘날 녹색(생태)을 멸하는 녹색 명이 되고 말았다.[1]) 이에 비 인 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식량주권 개념이다. 2007년 2월 23~ 27일에 말리(Mali) 닐 니(Nyeleni)에서 개최된 식량주권 포럼에서 공표

된 닐 니 선언(Declaration of Nyeleni)에 의하면,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란 “환경친화 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문화 으 로도 합한 식량에 한 민 의 권리이며, 한 민 이 그들의 고유 한 식량과 농업생산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이다.[2]) 식량주권의 개념은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산물의 자유무역화 과 정에서 피해를 입은 농민들―특히 소농, 무토지 농민, 여성 농민, 농업 노동자 등―이 모여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라는 국 사회운 동조직에서 수년간의 토론을 거쳐 1996년에 창안되었다.[3])

식량주권의 개념은 1970년 에 발생한 세계 식량 기를 계기로

등장한 식량안보(food security) 개념을 비 하며 안으로 등장하 는 데, 기존의 식량안보 개념이 기에는 식량자 에 기 한 증산정책과 농업보호정책을 강조했지만 차 무역(=수입)을 통한 안정 인 식량 확보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변화하여 1990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농산물의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 을 받고 있다.[4]) 피터 로셋(Peter Rosset)은 “식량안보는 아 이, 여성, 남성 모두가 매일 충분한 먹거리를 보장받는다는 확신이 있 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량안보의 개념에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오는 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한 언 이 없다”[5])며 식량안보 개념의 한 계 을 지 하고 이 한계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식량주권을 주장한다.

비아 캄페시나에 따르면 식량주권은 국가 으로 충분한 양의 먹을 거리 생산과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제뿐만이 아 니라 어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가, 어떻게 생산하는가, 어떤 규모로 생산하는가의 문제도 같이 요하게 본다.6) 특히 비아 캄페시나가 제시한 ‘식량주권 실 을 한 7 원칙’ ―기본 인권으로서의 먹거리, 굶주림의 세계화 끝내기, 농업개 , 먹거리 무역의 재조직, 민주 통제, 제 조건으로서의 사회평화, 자연자원의 보호―을 통해 확인되는 바처럼, 식 량주권은 단순히 먹거리 농업의 문제뿐만 아니라 평화와 생태의 문제까지 포 하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가치들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 와도 충분히 목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결과 으로 식량주권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실 할 수 있는 안

인 농업모델은 근 행농업이 아니라 소농 는 가족농 심의 통 농경―특히 유기농―방식을 지향한다. 구체 으로 식량주권 개념에 기반을 둔 안 농경은 다각 농으로 단작을 체하고, 다양성으로 단일성을 극복하며, 화학비료와 농약 신 천연비료와 생 물학 해충 방제를 통해 자연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신에 자연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간략하게 비교해 설명하면, 행농업의 패러다 임은 집 화, 의존, 경쟁력, 자연에 한 지배, 문화, 착취 등을 특징 으로 한다면, 안 농업의 패러다임은 탈집 화, 독립, 공동체, 자연과 의 조화, 다양성, 규제(혹은 안 장치) 등을 특징으로 한다.7)

이미 남한에서는 지속 가능한 새로운 안 농업모델로 유기농업 에 한 심이 1990년 부터 지속 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흥미

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공간(公刊) 문헌에서 유기농업에 한 강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인민의 기 인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 정권이 유기농업을 운운하는 것은 분명 우리에 겐 낯설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남한 주민에게조차 유기농 제품이란



6) 아네트 아우 리 데스마 이즈(Annette Aurelie Desmarais), 󰡔비아캄페시나: 세계 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구: 한티재, 2007), 72쪽.

7) 의 책, 136~138쪽.

일부 제한된 계층만이 소비할 수 있는 것처럼 아직은 이지 않 기 때문에 기근에 허덕이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을 강조하는 것이 실 과 무나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유기 농업에 심을 갖게 된 배경은 우리와 무나 다른 역사 ·구조 맥 락을 갖고 있다. 남한에서는 1990년 부터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농업과 안 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하기 해 유기농업에 한 정책 심이 시작되었다면, 북한에서는 장기 화된 경제 쇄 속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농업 증산의 자구책 의 하나로서 유기농업에 해 심을 갖기 시작하 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쿠바는 미국의 경제 쇄에 응하여 식량문

제를 해결하기 해 기존의 화학화·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규모 앙집권 행농업을 신하여 가족농 심의 유기농업으로 환하

여 식량자 을 달성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역시 오랜 기간 미국의 경제 쇄에 직면하고 있지만 쿠바의 사례와 같이 근본 으로 농업생 산체계를 개 하는 차원에서 유기농업에 심을 갖고 추진하려 한다 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넘어 핵 보유를 체제수호의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한 외부 세계의 북 경제 쇄가 쉽게 해 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자구 인 농업 증산의 수단으로써 유기농업 방식은 분명히 실 인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김 정부·노무 정부 시기에 남북한 간에는 경제의 여러 분야 에 걸쳐 교류 력이 활발하게 개되었으며 여기에는 농업 분야의 교 류 력도 포함된다. 농업 분야의 남북교류 력은 그동안 화학비료, 농 약, 비닐, 농기계 등과 같은 농자재와 농기술의 지원을 통해 북한 스스로 농업 생산력을 복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다. 하지만 10년 넘게 추진해온 남북 농업교류 력에는 통일 비 농업공동체의 형성이나 통일된 한반도 농업의 미래상과 같은 장기 이고 근본 인 합의 없이 당면한 북한의 식량 부족 문제를 돕고 식량 생산능력의 복 원을 해 남한이 일방 인 농업 자원과 기술을 북한에 이 하는 방 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농업교류 력을 추진하는 남한 의 ·민 모두 북한 지역의 토양 산성화와 산림 황폐화가 심각하여 화된 농기계 농자재의 충분한 투입 없이 재의 농업체계와 농업기반으로는 식량 증산이 구조 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한의 ·민이 추진해온 북농업교류 력 방식은 기존의 생산 구조를 복원하거나 보조(補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왔 다는 에서 기존의 교류 력 사업에 한 종합 인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근본 인 문제 은 통일의 선상에서 남북한 농업교류 력이 궁극 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구체 으로는 통 일된 한반도의 농업 방향성에 한 남북한의 공유가 없다는 이다.

이상의 문제의식하에서 이 은 우선, 쿠바가 세계 인 유기농업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 역사 ·정치경제 맥락뿐만 아니라 유기농업의 실천 노력을 살펴 으로써 쿠바의 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 을 도 출해보고자 한다. 특히 쿠바의 경험은 북한이 최근 심을 보이는 유 기농업 정책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유 기농업 정책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 은 북한 문헌의 검토를 통해 유기농업과 련된 담론 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세히 검토해보고 실 으로 진행되고 있 는 유기농업의 실태는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선 유기농업과 련된 담론(는 이데올로기)과 실천 간의 간극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간극은 어쩌면 쿠바의 경험을 통해서 도출된 북한의 유기 농업이 구조 으로 내포하고 있는 한계 (는 제약)일 수도 있을 것 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진행해온 남북한 농업교류 력의 반을 성 찰해보고 안 비 의 에서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북한 의 유기농업 정책을 포함하여 통일 한반도의 농업공동체 형성에 필요 한 농업교류 력의 방향에 해 제언하고자 한다.
2. 쿠바의 유기농업 전환 경험과 북한의 적용 가능성

북한이 공간 문헌을 통해 유기농업에 심을 보이기 시작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그 배경이나 맥락에 해 크게 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쿠바가 외 계의 쇄 속에서 식량난 해소를 해 기존의 화학화·기계화를 기반 으로 한 앙집권 행농법을 포기하고 유기농업으로 환한 것이 북한에 주는 시사 이 크다며 쿠바의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아직까지 학계를 비롯하여 남북농업교류 력에 참여하는 민간단체들 사이에서 공감 를 형성하 지 못하고 있다.

쿠바가 세계 인 유기농업의 메카로 떠오르기 이 에 쿠바 농업은

명 이후 도시화가 속히 이루어지면서 농 노동력이 부족하고 사 탕수수와 같은 단작재배체계로 기부터 규모 기계화를 통한 농 방식이 발달하 다. 소련이 붕괴하기 이 쿠바의 농업은 1,000헥타 르당 21의 트랙터를 이용하여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최고의 수 이 었으며 화학비료 투입량은 미국보다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규모의 근 농업을 지탱했던 농업자재를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농약 98%, 화학비료 94%, 가축사료 97% 등 종자에서 트랙터와 연료, 부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공 해주었다. 그 러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 지고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사탕 수수 주의 단작농업체계는 기에 직면했다. 사탕은 1980년 쿠바 수출액의 80%를 차지했는데 소련의 구매 능력이 없어지면서 수출길 이 막혔고, 사탕 국제가격이 추락하면서 농자재나 석유 등의 수입액 이 크게 었다. 농자재 수입이 어들면서 그 향으로 설탕 생산량 도 1989년 810만 톤이었던 것이 매년 크게 어 1995년에 336만 톤 으로 락했다.8)

농자재의 수입이 락하면서 쿠바의 경제는 마비되었으며, 미국은

이 기회에 카스트로(Castro) 정권을 무 뜨리기 해 1961년부터 지속 해온 경제 쇄를 더욱 강화했다. 1992년에 미국 의회는 국내외의 미 국계 기업 모든 자회사가 쿠바와 거래하는 것을 지한 ‘톨리체리

법(Toricelli Act)’, 이른바 ‘쿠바 민주화법’을 제정했다. 당시 러시아를 비롯해 소련붕괴 후 탄생한 신생국들은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했는데, 그에 해 미국이 제시한 조건 하나가 쿠바 와 모든 무역을 단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3년 3월에는 세기 최악이라는 허리 인이 습하여 쿠바 명 이후 처음으로 쿠바 는 국제사회에 긴 원조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 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쿠바에 한 경제 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주요 에 지원인 석유의 수입량은 1989년에 1,330만 톤이었지만 1993 년에는 약 570만 톤으로 었다. 석유뿐 아니라 원료, 기계 등의 부품 마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공장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1993년 말까



8)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주: 들녘, 2004), 37~39쪽.

지 공장의 80%가 폐쇄되었고,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어 실업률은 40%에 이르 다. 식량을 생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농약, 화학비 료, 트랙터 연료 등 생산자재의 부족도 심각한 상태 다. 1989년에는 130만 톤 이상의 화학비료, 1만 7,000톤 이상의 제 제, 1만 톤 이상의 농약이 수입되었지만 1992년에는 화학비료는 23% 었고, 살충제는 60% 이상 감소했으며, 가축사료도 200만 톤에서 47만 5,000톤으로 었다. 석유 부족으로 1991년 11월에는 이미 농업용 트랙터의 12% 가 가동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반가량을 가동할 수 없게 되었다.[6]) 한 연료 부족으로 개용 펌 와 콤바인도 정지해버렸다. 이 게

하여 농업 생산은 1992년에 10%, 1993년에는 23%, 1994년에는 1990 년 기 으로 55%까지 감소했다.[7])

이 게 하여 식량 기가 나라 체를 흔들었으며, 카스트로(Fidel Castro)는 ‘평화시의 특별 기간’, 곧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나라를 시의 경제통제 아래 두었다. 아사자가 속출할 기의 순간 아바나 시민이 선택한 비상 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일명 ‘도시농 업’이 시작되었다. 국가가 시민에게 국유지를 빌려 으로써 1993년부 터 시작된 이 제도를 통해 도시의 버려진 땅이 개간되고 쓰 기장이 채소밭으로 변모하기 시작하 다. 이로써 아바나시에만 3만 이상의 공동체 텃밭이 생겨났고 역에 100만 이상의 공동체 텃밭이 생겨났

다. 이 텃밭은 식량 생산이 최우선으로 되었다.[8]) 그리고 도시농업은 화학비료나 농약의 부족으로 자연스럽게 유기농업으로 진행되었다. 화학비료는 지 이를 이용한 퇴비로 체되고 화학농약 신 미생물 농약이 이용되었다.

도시농업 운동은 결국 쿠바의 규모 국 행농업체제를 소규모

가족농 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환시켰다. 규모 국 농장은 부 분 개별 가족농과 동 경 으로 쪼개져 철 히 지역 자원의 재활용 과 순환농법 그리고 자연생태계 과학기술과의 연계에 바탕을 둔 21세기형 유기농운동이 개되었다.[9]) 이 게 하여 사탕수수와 방 목지를 제외한 약 190만 헥타르 경작지의 [10]할이 유기농업이나 농약 화학비료를 폭 인 환경보 형 농업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경제 기 이 에 130만 톤 가량 수입되던 화학비료도 2001년에는 약 16만 톤만 수입되고 농약 역시 같은 해에 1,900톤밖에 사용되지 않았다.[11][12]) 이와 같은 농업개 의 과정을 거쳐 결국 쿠바는 식량자 률이 유기농

업 운동 시작 이 의 43%(1990년)보다 훨씬 높은 95%(2002년) 수 을 달성하기에 이르 다.14)

쿠바가 유기농업에 불리한 자연 조건을 가졌음에도 단기간에 성

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쿠바는 1959년 명 이래 학까지 무료 교육제도를 확립하 고 농업 련 연구기 이 33개에 이르는 등 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유기농업의 기술 개발에 동원되었고, 연구자들은 탁상공론이나 실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각지의 농민과 얘 기를 나 고 장에서 최첨단 바이오기술과 재래농법을 결합시켜 자 재가 부족한 가운데서 실천 가능한 정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그 결과 지 이를 이용한 퇴비 만들기, 미생물 비료의 개발, 천 을 활용한 해충 방제, 각종 곰팡이나 식물 엑기스로부터 얻은 바이오 농 약, 먹고 남은 음식을 사료로 용한 순환형 축산 등 각가지 유기농법 기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쿠바의 식량 기 극복을 단순히 농방식을 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투입 생태 생산방식으로 농업을 개편한 쿠바 정부는 1993년 반에 이르 러 복잡한 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수입 농자재의 부분을 입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당시 체 농지의 20%정도를 차지하던 소농 부 문은 높은 효율을 내며 투입 생태 농업에 응해간 반면 체 농 지의 80%를 차지하는 집단 부문(국 농장과 동농장 포함)은 새로운 체 농법에 잘 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1993년 9월 쿠바 정부는 효과 인 유기농업에 필수 인 소규모 경 단 를 조직 하기 해 농업생산체계를 근본 으로 개편했다. 이 개편의 핵심은 국 농장을 농장 노동자들에게 실질 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국 농 장을 폐지하고 이를 노동자들이 소유한 기업 는 동조합인 UBPC

(unidades basicas de produccion cooperativas, 동생산 기 조직)로 개편했

다. UBPC는 정부에 의무 으로 주(主)작목 일정량을 납부하기만 하면 나머지 농산물은 농민의 몫이었고, 농민들은 과생산한 농산물 을 농민시장에 매하 다.[13]) 이처럼 쿠바의 유기농업으로의 환과 식량 기의 극복 배경에는 농기술 인 측면에서의 환뿐만 아니 라 집단농장의 구조 개편이 함께 병행됨으로써 가능했음을 간과해 서는 안 된다. 특히 이것은 최근 북한 정부가 강조하는 유기농업 정책 이 과연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한 근본 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임시방편의 정책 제안으로 그칠 것인가를 평가하는 데 요한 시사 을 제공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토 로 쿠바의 유기농업이 성공한 요인을 요

약해보면 첫째, 사 경 을 허용한 가족농 심의 토지개 , 둘째, 직거래 유통 심의 시장개 (농민시장의 개설), 셋째, 지 이 분변토, 토상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 천 개발 보 , 실용 인 흙살 리기운동, 넷째, 유축농법 등 지 자원의 재활용과 윤작, 간작, 휴경 작 등 순환농법의 정착, 다섯째, 통농업 기술 자재의 생물학 과학기술과의 성공 인 결합, 여섯째, 농민참여하의 장 연구와 농가 응시험의 시 등이라고 할 수 있다.[14]) 쿠바의 유기농업의 시 작은 ‘강제된 선택’이었지만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쿠바 시민의 자발 참여, 일반 소비자의 호응,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의 과 학자와 연구기 의 합작 등으로 인해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 다.[15]) 이로써 쿠바는 과감히 근 화학농업을 버리고 친환경 유기농 법을 선택함으로써 환경생태보 과 생산성 향상―요약하면 지속 가능 한 발 ―이라는 21세기 인류 사회가 직면한 시 과제를 성공 으 로 해결할 수 있는 발 을 만들었다.

쿠바의 유기농업을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한반도의 용 가능성을 극 으로 주장하는 김성훈은 한편으로 화학농업에 들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환경생태계의 극심한 오염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 으로 수입 개방으로 쓰러져가는 남한의 농업에, 그리고 아직도 ‘우리 식’ 주체농법의 통제하에 수백만의 아사자를 배출하고 있는 북한의 농업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주장한다.18) 한 그는 남북한이 력하고 친환경 인 유기농업을 통해 북한이 식량 증산과 국민건강 환경보 을 장기 으로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서 남북한 간의 농업 력 분야의 하나로 친환경 유기농업의 자재, 기술, 그리고 가공 유통 분야의 력을 요한 의제로 제안한다.

김연철은 쿠바의 사례를 두 가지의 측면, 즉 집권 농업체제의 개

모델이라는 과 유기농법이라는 에서 북한 농업개 의 방향을 망하는 데 주목하 다. 그는 북한이 당분간 정치 필요로 인해 앙집권 농업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면서 인센티 강화와 분권화, 그리고 농민시장의 허용 등을 요지로 하는 쿠바의 국 농장체계의 개 편이 실 으로 북한 농업정책에 주는 시사 이 크다고 하 다. 동시 에 장기 인 농업발 목표로서 기계화를 심으로 한 집체농업의 한 계를 지 하면서 에 지의 부족과 농자재 련 산업의 침체 등을 고 려할 때 쿠바와 같이 유기농업으로의 환을 제안한 바 있다.19)이와 함께 그는 남북한의 유기농업 력 방안에 한 극 인 모색의 필 요성을 제안한다. 구체 인 방안으로 미생물 비료를 포함한 바이오



18) 의 , 5쪽.

19) 김연철, “집권 농업체제의 개 : 쿠바의 농업개 이 북한에 주는 시사 ,”

󰡔북한연구󰡕, 제5권 제2호(2002), 136~137쪽.

농업의 기술과 재래 농업의 특징을 결합한 공동 연구와 통일 이후를 비해 북한 지역을 유기 농업 지역으로 육성하는 농업분업체계의 형 성 필요성을 제시하 다.[16]) 김연철의 논문은 쿠바의 유기농업에 한 구체 인 서술이나 북한의 유기농업 환 가능성 등의 서술까지는 진 척되지 않았지만 남북한의 유기농업 력 방안이나 한반도 통일농업 의 방향성 차원에서 북한 지역의 유기농업 육성을 제기했다는 은 주목할 만하다.
3. 북한 문헌에 나타난 유기농업에 관한 담론 구조의 진화

처음부터 북한의 유기농법이 정책 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은 아니 다.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한 응 수단으로 개별 으로 추진 되던 농업정책이 장기화되면서 구조 으로 순환 생산방식과 연계 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경제 기가 발생한 기에는 화학비료와 농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과 옥수수의 생산 이 부족해져 그것을 보충할 감자의 증산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유기농 법 방식이 단편 으로 고안되었다.

김정일은 감자농사를 잘하면 식량문제뿐만 아니라 고기문제도 풀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농장 안에 돼지공장을 건설하여 감자를 가공하고 나오는 꺼기로 돼지를 사육하고, 돼지를 기르면서 나온 물거름을 다시 감자농사에 쓰는 ‘순환 ’ 생산방식을 의미했다. 창 기에는 이것이 바로 홍단식 감자농법의 핵심으로 두되었다. 김정 일은 홍단군의 감자농사 지 지도에서 “이제 홍단군에서는 감자 를 가지고 돼지를 길러 돼지 부자가 되며 흰 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감자에 돼지고깃국을 먹게 만들어야 한다”21)고 언 하면서 홍단군 종합농장의 매 분장마다 돼지공장을 하나씩 지어 돼지와 감자가 연 된 순환생산 구조를 조성할 것을 주문하 다. 이것은 농업생산 구조의 변화가 주민들의 식생활 구조의 변화까지 동반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다. 최근에 조선로동당에서 발간한 경제이론 해설서 역시 “의 감자농사는 반드시 축산과 배합하여야 한다”22)고 강조 하 다. 따라서 감자증산정책과 더불어 새로운 생산방식의 축산업이 육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양어 분야가 축산업과 연계되었다. 2000년 5월의 담화 “양어

를 과학화, 집약화할데 하여”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이 풀과 고기를 바꾸라고 했듯이 자신은 “풀과 고기를 바꿀 뿐 아니라 강냉이와 물고 기를 바꾸어야 합니다”23)라고 강조하면서 양어업을 발 시켜 인민의 식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구하 다. 한 북한 당국은 2001년 에 양어법을24) 개정하여 양어사업을 체계 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 다. 인공 양어 수역보다는 하천, 호수, 수지, 물 웅덩이, 개용 물길 등과 같은 자연 수역을 이용한 양어사업이 입지 조건이 유리한 각 농장과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다. 당 김정일은 곡



21) 김재호, 󰡔김정일강성 국건설 략󰡕(평양: 평양출 사, 2000), 141쪽.

22) 서재 외, 󰡔우리 당의 선군시 경제사상해설󰡕(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142쪽.

23) 김정일, “양어를 과학화, 집약화할데 하여,” 󰡔김정일 선집󰡕, 제15권(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53쪽.

24) 양어법은 1998년 12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 원회 정령 제288호로 처음 채택되었다.

물과 물고기를 바꾼다고 했지만 곡물사료의 부족으로 체사료로 개 발된 미생물 번식에 가축 배설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어 장은 농장 안에 조성되었다. 농장의 양어장에서 길러진 물고기는 탁아 소, 유치원, 농장원 세 에 공 되었다.

양어업에서 ‘동물성 먹이’의 확보는 양어업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북한 당국은 동물성 먹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축산업에서 찾았다. 󰡔로동신문󰡕(2005.7.26)은 메기 양 어를 으로 발 시키기 해서는 먹이문제를 ‘우리식’으로 해결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방법은 메기공장이 치한 시·군의 농목장에 서 나온 단백질 부산물, 즉 가축의 배설물을 메기공장에 보내는 것이 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민주조선󰡕(2005.12.16) 역시 황해남도 청 단군 갈산 동농장의 양어장(10개) 사례를 들며 양어장 주변에 농장의 비육 분조를 비롯한 축산시설을 배치하여 가축 배설물로 물고기 먹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가축 배설물은 양어의 먹이가 되는 미생물을 번식시키는 데 요한 원료가 된다.

북한의 표 인 축산 문 동농장의 하나인 황해북도 은정축산

문 동농장에서는 2006년 8월에 양어장 공식을 진행하 는데, 무 려 6정보 면 에 양어못 35개를 조성하 다. 은정 양어장은 축산업과 양어사업을 유기 으로 결합시킨 표 인 모델이다. 송화메기공장 역시 축산과 연계하여 메기를 생산하고 있다.[17]) 양어업은 1998년 12 월에 채택된 양어법 제44조 “해당기 , 기업소, 단체는 양어 수역에서 미생물 번식에 리용할 수 있도록 집짐승 배설물 같은 것을 보장하여 야 한다”고 명시한 것처럼 애 부터 축산업과 연계해 계획한 것은 사 실이지만 두 부문의 연계가 실화된 것은 2000년 반에 들어서이

다. 새로운 방향의 축산업이 발 하면서 물고기 먹이 역시 안정 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농업은 감자+축산+양어 등이 유기 으로 결합된 순환 생

산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순환 농업생산 구조가 처음부터 계획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90년 후반에는 축산, 양어, 감자농 사 부문이 각각 개별 인 증산정책으로 시작되었지만 2000년 에 들 어서는 세 부문이 상호 연계 인 생산구조로 발 했다. 순환 농업생 산 구조는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확 주식의 다종화 방향으로 식생활 구조를 개선하고, 화학비료의 부족 심각한 토지의 산성화 등과 같은 취약한 농 조건하에서 가능한 체 생산방식을 고안한 데서 형성되었다.

순환 농업생산 구조의 강조는 단순히 증산 차원을 넘어 식생활 구조의 환과 연계되며 정책의 범 가 확장되었다. 오랫동안 다각 농이 제한되고 벼과 옥수수 심의 작부체계는 주민들의 식생활 구 조를 주식 주로 바꾸어놓았다. 경지의 부분이 벼와 옥수수 재배에 돌려졌기 때문에 부식물 생산과 공 이 충분하게 되지 않아 불균형 인 식생활 구조를 래하 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해서는 주식 소비를 이고 부식물 소비를 늘리는 식생활 구조의 개선이 필요했 다.[18]) 김일성 시 에 이상 인 식생활로서 ‘흰 밥에 고깃국’이 지향 되었다면, 김정일 시 는 ‘고깃국에 흰 밥’을 지향했다. 따라서 1990 년 말부터 2000년 최근까지 북한 당국이 농업 부문에서 주력하고 있는 닭·오리공장, 염소목장, 돼지공장, 메기 양식장 등의 신설 는 개건 화 사업, 그리고 감자농사의 확 는 바로 식량문제 해결과 함께 식생활 구조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 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1996년 4월 당 앙 원회에서 김정일이 농업생산 구조의 개선을 언 한 이후 ‘집짐승(식 가축)’ 심의 축산업과 메기, 잉어, 송어 등 민물고기 심의 양어사업이 국 인 군 운동으로 개되었다.

한 식생활 구조의 개선은 기존의 과 옥수수 심의 주식 구성

에서 감자의 비 을 늘리는 것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구조를 바꾸기 해서는 먼 주식원을 다종화할 필 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과거에는 과 옥수수가 주식물이었다면 이제 는 과 옥수수와 함께 감자를 제3의 주식물로 만들려는 것이다. 양강 도, 자강도, 그리고 함경도와 같은 고산지 와 내륙지 는 기후와 토 지의 조건상 과 옥수수를 많이 생산할 수 없다. 반면 감자는 내한성 과 내병성이 강하여 의 지역에서도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따라 서 감자의 증산은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요한 안 으로 떠올랐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감자가 제3의 주식원으로 주 목을 받게 된 데는 화학비료가 으로 부족하고 토지의 산성화가 매우 심각한 농환경 요인들도 크게 작용하 다. 일반 으로 감자 는 벼나 옥수수보다 비료의 소비량이 으면서도 단 당 소출량이 많 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자를 주식원으로 하는 감자 증산은 식생활 구조와 농업생산 구조의 변화를 동시에 수반하 다.27)



27) 이상에서 서술된 북한의 순환 농업생산 구조에 한 은 정은미 , “북식량 자원의 사회 분배효과와 ‘순환 ’ 농업생산구조,”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북한 당국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해 새로운 농업정책을 내놓은 것은 2003년 5월 21일 김정일 국방 원장이 조선노동당 앙 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우리 당의 농 업 명방침을 철 히 철할데 하여”에서이다. 하지만 이 담화에서 직 으로 유기농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고 유기농업의 구 체 인 방법에 해서 언 하 다. 이 담화에서는 지 까지 농 에서 주로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사를 지어온 실태를 지 하면서 “화학비 료를 많이 쓰면 부침땅이 산성화되고 생태환경이 괴되게 됩니다”라 고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확 되고 있는 유기농업의 추세에 해 언 하 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화학비료를 게 쓰고 미생물비료와 유기질비료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로 방향 환을 하여야 합니다”28) 라며 유기농업으로의 환 필요성을 부분 으로나마 제시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국정운 의 방향에서 유기농업을 처음으로 언 한 것

은 2010년 신년 공동사설 “우리는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 환을 이룩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에서이다. 이 사설에서 2010년을 “경공업과 농업을 인민생활향상을 한 투쟁의 주공 선” 으로 설정하고 농업 생산을 늘리기 한 실천 방법의 하나로서 “주 체농법의 요구를 철 히 지키며 유기농법을 비롯한 새로운 농방법 과 농기술을 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 하 다.

유기농법에 한 북한 당국의 심은 201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이 사설에서는 “농업 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



논문집󰡕, 제12호(2009), 120~137쪽을 발췌한 것이다.

28) 김정일, “우리 당의 농업 명방침을 철 히 철할데 하여,” 󰡔김정일선집󰡕, 제15권(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415쪽.

선”이라며 농업 생산에 변 을 일으키는 것은 “강성 국의 문을 열 기 한 건 고리”라고 강조하 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설은 농업 생산을 올리기 한 실천 방침으로 “당의 종자 명방침, 두벌농사 방침, 감자농사 명방침, 콩농사방침을 철 히 철하고 유기농법을 비롯한 선진 농방법과 기술을 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 하 다.

이후 유기농법은 유기산업이라는 더 넓은 범주에 포함되어 언 되 곤 하 다. 북한 당국이 추진하는 유기산업이 구체 으로 언 된 문헌

은 경제 련 문학술지 󰡔경제연구󰡕(2011년 1호)에 실린 리 일의 논 문에서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유기산업법은 2005년 11월 23일 최고 인민회의 상임 원회 정령 제1396호로 채택되었다. 이 법의 문은 제5장 제39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산업법의 목 을 “유기제품의 생산과 품질인증, 수출입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인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국토와 생태환경을 보호하는데 이바지한다”(제1 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산업에 한 정의를 “화학 인 방 법으로 합성하여 만든 비료, 농약, 사료, 수의약품, 원료, 자재, 가공첨 가제 같은 것을 거의 쓰지 않고 인민들의 건강 증진에 유익한 농산물, 수산물, 목제품,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공 품, 방직 피복제품 같은 것을 생산하는 경제 부문”(제2조)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유기 산업은 유기농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 친환경 제품 생산을 포 한 다. 하지만 의 리 일 논문에서 “사회주의 유기산업의 발 이 경제 강국 건설을 물질경제 으로 담보하게 하자면 우선 나라의 식량문제, 인민들의 먹는 문제부터 푸는 데 힘을 집 하여야 한다. 농업에서 기 본은 알곡 생산이며 알곡 생산을 늘여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경제강 국 건설에서 선차 으로 나서는 미의 문제라고 할 수있다”29)라고 언 되어 있듯이 유기산업법의 실 용은 농업 분야, 특히 식량문 제를 해결하는 것과 [19] 히 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논문에서도 유기산업의 발 이 실제로는 식량문제의 해결

과 히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손리학의 논문은 비료와 농자재의 생산 수송원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 의한 흉작과 인구의 속한 증가, 농경지의 사막화 진, 그리고 식량가격 의 상승 등과 같은 환경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방법의 하나 로 녹색자원의 극 인 개발과 이용을 제시한다. 우선 논문은 북한에 서 녹색자원의 개발과 이용이 “단백질 문제를 해결하며 특히 식량문 제를 푸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을 주목한다. 이어 논 문은 “알곡 주의 식생활 양식을 고칠 수 있게 단백질 식품문제를 풀게 되면 식량문제를 푸는 데서 환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인민생활 을 좀 더 향상시킬 수 있다. 이로부터 록색식품의 개발과 리용문제는 우리나라 유기산업발 의 요 요구로 나선다”[20])라고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논문은 녹색상품의 개발과 이용이 사회경제생활에 미치는 정 인 요인으로 첫째 “그것이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그의 지속 인 발 을 보장하는 데 극 이바지한다는 것”[21])이라고 설명한다. 둘째 요인으로는 “순환경제의 발 을 진시켜 경제를 끊임없이 발 시킬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며 이어 여기서 순환경제란 자원을 반복 이용 하는 경제로, 다시 말해 생산과 폐설물의 종합 이용을 결합시킨 경 제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 인 추세가 녹색기술에 한 연구 와 개발 비용이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녹색 명의 명목하에 막 한 양의 알곡을 생 물 원료로 환시켜, 한편으로는 세계 인 식량 기를 조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 도상국가들을 통제하는 무기로 식량을 이용하고 있 다며 비 한다. 한 북한 당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녹색상품의 개발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알곡작물로 생물 에 지를 개발하는 신에 비알 곡작물로 생물 에 지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문헌에서 언 되는 순환생산 는 순환경제 용어는 쿠바의 유 기농업 특징 하나인 지역 내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농법을 떠올리 게 한다. 쿠바의 경우, 교외의 축산 농가에서는 도시의 스토랑, 호 텔, 학교 등에서 나오는 음식물 꺼기를 가공 처리하는 등 도시에서 배출되는 유기성 폐기물이 모두 농사에 재이용된다. 분뇨도 간단한 메탄가스 발효장치에 의해 에 지로 활용되는 등 지역 내 자원이 재 활용되고 있다.32)

마지막으로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 당국은 다시 유기농 업을 언 함으로써 2010년부터 3년 연속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유기 농업의 요성을 역설하 다. 이 사설에서는 “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미의 문제”라고 하면 서 “농산과 축산을 결합하는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우리식의 유기농 법들을 극 받아들이며 농업생산 목표수행에 필요한 농물자와 설 비들을 수요 로 제때에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 다. 다만 기 존과 달리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우리식의 유기농법’이라는 수식어구가 붙었다는 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다. 이후 사회과학



32)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유기농업으로 나라가 변한다,” 107~136쪽.

련 북한의 공간 문헌에는 종종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나 유기농법에 한 이 등장하기 시작하 다.

우선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에 한 구체 인 내용은 2012년 5월에

발간된 󰡔사회과학원학보󰡕에 실린 리민재의 논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악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서로 련 되는 생산공정, 부문들의 생산물이나 부산물, 지어 폐설물까지도 원료, 자 재로 리용할수 있게 하는 생산체계”[22])라고 하며, 이러한 생산체계의 장 으로 첫째, 추가 인 투자 없이 기존의 생산기반으로 증산할 수 있어 좀 더 큰 실리(수익)를 낼 수 있다는 , 둘째, 세계 으로 천연자 원이 고갈되고 있는 기 상황에서 자원의 재활용성을 높여 지속 가능 한 경제발 을 할 수 있다는 , 셋째, 자연생태환경의 괴를 방지하 고 훌륭한 생활환경과 경제의 지속 발 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는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첫 번째 장 의 실례로 “농산과 축산을 유기 으로 결합시킨 고리형 순환생산체계하에서 축산 부문은 조성되는 유기질 원천으로 농산 부문에 필요한 유기질비료의 생산을 최 한으 로 늘릴 수 있게 하며 농산 부문은 축산 부문에 필요한 사료를 좀 더 게 히 생산 보장할 수 있게 하여 총체 으로 추가 인 투자 없이 같은 생산 조건에서 농산과 축산을 다 같이 빨리 발 시킬 수 있게 한다”[23])고 설명한다. 이처럼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단순히 농 업 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축산업 부문을 포함한 체 산업 부문에서 자원의 부족 상황을 타개하기 한 안 인 생산방식의 하 나로 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가 오랜 경제 쇄로부터 부족해진 경제 자원의 기 상황을 극복하기 한 체요 법으로 제안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논문에서 “이미 마련된 생산 토 에 기 하여 생산을 최 한으로 늘리며 자원 기와 환경 기를 극복하 고 경제의 지속 발 과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다 같이 보장한다는 데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의 확립이 갖는 거 한 사회경제 의의가 있 다”35)고 언 한 것은 시 에서 세계 인류사회가 공통 으로 고민하 는 문제의식을 북한 역시 공유하고 있다는 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다면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언 된 ‘우리식의 유기농법’ 이란 무엇일까? 2012년 4월에 발간된 󰡔김일성종합 학학보: 철학, 경 제학󰡕 제58권 제2호에 실린 김 길의 논문 “유기농업의 정보화의 기 본 내용과 그 실 을 한 요구”에서 ‘우리식의 유기농법’과 련된 흥미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은 “나라마다 경제 리체계와 농업 리체계가 다르고 유기농업이 진행되는 환경과 구체 조건과 방법이 다르며 유기농업 생산과 리에 정보기술 수단을 용하는 목 과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다”36)며 유기농업정보체계의 로그램을 “우리식으로 개발하는 문제는 우리식의 유기농업발 과 유기농업 정 보화를 실 하는 데서 건 문제”37)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의 유기농업에 한 심은 농업 증산

을 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하여 유기산업법의 제정와 같은 제도화 수 까지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북한의 유기농법 정책에 한 구상과 체계가 구체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2000년 이



35) 의 , 45쪽.

36) 김 길, “유기농업의 정보화의 기본내용과 그 실 을 한 요구,” 󰡔김일성종합 학학보: 철학, 경제학󰡕, 제58권 제2호(2012), 124쪽.

37) 의 , 127쪽.

에는 화학비료를 비롯하여 농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 옥수수 의 부족을 메워 감자의 증산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다음에는 화학비 료를 체할 재래식 방법으로 생산된 유기질비료를 생산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순환 ’ 생산방식이 고안되었고 그것이 다시 식생활 구조 의 명과 연계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농업 증산과 생태환경의 보존 문제의 동시 해결이라는 논리 구조로 진화했다.
4. 북한 유기농업의 실태와 한계

북한 정권이 유기농법에 심을 갖던 창기에는 화학비료를 체 할 유기농비료를 자체 으로 개발하는 데 역 을 두었다. 유기산업법 이 제정되고 농업이 ‘주공 선’으로 선언되었던 2005년에 북한의 <조선 앙통신>은 “과학원에서 미량원소 복합비료를 연구·완성했 다”며 “이 비료는 붕소·아연·구리 등 필수 미량원소를 보충해 으로 써 식물의 활성을 높여주고, 합성과 양물질 합성 등 물질 사 과 정에 원만히 진행되게 한다”고 소개하며, 이와 함께 함경북도를 비롯 한 각지 주민들은 농사에 비료로 사용하기 해 이탄 캐기에 주력하 고 있다는 소식을 했다. 이탄은 늪지 등에 서식하던 갈 류나 이끼 류의 식물이 죽은 뒤 땅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남은 부분으 로 형성된 것으로 비료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통신은 비료뿐 아니 라 화학공법이 아닌 친환경 방법으로 만들어진 농약도 자체 개발하 다고 했다. 과학원 함흥분원 유기화학연구소가 개발한 이 새 농약 은 특히 콩과 과수에 효과가 있다고 방송은 소개하고 있으며, 생물 분원 과학자들이 개발한 식물성 농약은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표 1> 경제 기 이 과 1998년도의 농업동력 비교


구분

기 이

1998년




동력 종류

가용량

사용 메가와트

비율

(%)

가용량

사용 메가와트

비율

(%)


사람

3.4백만

254

9

4.4백만

328

27


축력

80만 마리(소)

418

14

80만마리(소)

418

35


트랙터

70만

1,947

67

20만

418

35


기타 기계

8만

(소엔진모터)

284

10

2만

(소엔진모터)

44

3


합계



2,902

100



1,209

100


자료: Daud Kahn, “북한 농업 하부구조 복구 개발 방안,” 󰡔북한 농업개발을 한 력 방안 모색󰡕, 한국농 경제연구원 국제학술 회(2000.11.1), 64쪽.

병충해의 피해를 입지 않게 했으며 소출도 18~20% 증가하게 했다고 했다.38)

1990년 반 탈냉 이후 사회주의진 으로부터 화학비료나 농 약, 비닐, 농기계의 연료와 부품 등 요한 농자재의 수입이 크게 면 서 불가피하게 북한의 농업은 <표 1>에 나타나듯이 기존의 행농 업이 크게 후퇴하고 통 인 재래식 농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제 기가 발생하기 이 의 주요 농업동력은 트랙터로 체 동력의 67%를 차지하 다. 반면에 사람과 축력의 의존도는 각 각 9%, 14%에 불과하 다. 하지만 1998년에는 트랙터의 비 은 35% 로 크게 감소하고, 그 신 사람과 축력의 비 이 각각 27%, 35%로 크게 증가하 다.

농기계를 신하여 사람과 축력에 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뿐만 아

니라, 화학비료 신에 가축 배설물이나 인분 등을 이용한 거름이나



38) 󰡔연합뉴스󰡕, 2005년 7월 6일.

퇴비와 같은 자 비료의 사용도 크게 증가하 다. 이와 같은 농환경 의 변화는 북한의 공간 문헌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비료와 연유, 비닐박막들이 계획 로 공 되지 않는다니 어떻게 하 면 좋은가. 부족되는 량을 어떻게 자체로 해결한단 말인가.) 생각다못해 그는 다음날 진거름 달구지를 끌고 20여 리 떨어진 읍에까지 갔다 왔다. 그날 녁 그는 작업반장들을 모아놓고 이 게 말했다.

“비료는 자체로 해결합시다. 읍에서 진거름만 다 날라와도 상당할 것

같소. 세 당 계획된 퇴비도 무조건 생산하게 하고……자 비료 반출 엔 연유가 부족한 만큼 뜨락 르 신 달구지와 손수 들을 총동원시킵

시다. 웬만한 소에는 모두 보습을 메워 논밭에 내보내고 그래도 안되면 모두가 삽을 들고 떨쳐나섭시다.”(략)

인호는 이삭비료를 얻으려 군은 물론 도농 경리 원회나 농업 원

회까지 뛰여나갔다.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다 만나 사정을 하 지만 찾 아가는 사람마다 몹시 딱해하며 빈 손바닥을 내보일 뿐이 다. 하긴 그 들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는 없었다.39)

의 인용문에서 나타나듯 심각한 경제 기 속에서 북한 농 은

불가피하게 기존의 행농업 방식을 버리고 통 인 재래식 농경 방 식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 게 회귀한 농경 방식은 장기화된 경제 침체 속에서 북한 농 에서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앞 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농경의 변화는 2000년 이후에 유기농법이라는 이름 으로 하나의 요한 농업정책으로 발 하기에 이르 다.



39) 김혜 , “원한 노을,” 󰡔조선문학󰡕, 제4호(2004), 36쪽.

유기농법에 한 북한의 기 심은 부족한 화학비료를 체할

친환경 방법의 유기비료를 자체 으로 개발하려는 데 집 되어 있 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북한은 외부 세계의 유기농업의 기술에 심을 갖으며 유기농업에 한 심의 폭을 넓 갔다. 농림부 장 출신인 김성훈 교수의 언에 의하면, 그가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청으로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2002~2003년에 북한 농업과학원 평양 농과 학 표 일행 4명이 UBC의 청으로 캐나다의 유기농법을 연수했다. 그리고 김 장 이 캐나다에서 만난 북한 농학자와 농업 부문 고 료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북한 농업을 친환경 농법방식으로 환하는 방 안에 해 고심하고 있었다고 한다.40)

하지만 외부 세계로부터 유기농법과 련된 기술을 배우려는 가시 인 움직임은 2011년부터 본격 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의 민간단체 한스 자이델 재단(Hanns Seidel Foundation)의 웹 소식지에 따르면, 2011년 5월, 한스 자이델 재단의 표단은 북한의 나선시에 있는 동물 육종농장(나선시 청계농장)과 곡식농장(선 시 운성농장) 두 곳을 방문했는데, 특히 농장 표자들에게 농업 문학교를 통해 유기 농 농업훈련을 수행하는 데 동의했다. 이 재단의 소식지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은 화학비료와 해충제의 부족으로 매우 요한 문제가 되었 으며, 재단이 유기농업에 련된 과학 교과서 업무를 평양에서 수행했 다고 했다.41)

김정은 국방 원회 제1원장이 집권한 첫해인 2012년에는 유기농



40) 김성훈, “식량난 북한, 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신동아󰡕, 통권 542호(2004년 11월호), 474~482쪽.

41) http://www.hss.or.kr/A1286Korean.html

과 련된 외부의 선진 농방법과 기술을 배우기 한 시도가 활발하 게 이루어졌다. 2012년 1월 신년 공동사설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방법의 하나로서 유기농의 극 인 도입이 언 된 직후 북한 과학원이 북한에서 처음으로 ‘유기농법 안내서’ 수천 권을 제작해 평 양 인민학습당과 김일성 학 등의 농업 련 학과와 각 도의 동농 장에 비치했다. 이 최 의 유기농법 안내서는 유럽의 한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인쇄된 것이다.[24]) 유기농법 안내서의 인쇄를 담 당했던 민간단체의 계자는 최근 북한 당국이 유기농법을 극 으 로 권장하고 있다고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유기농연구소는 북한 농업지도자들에게 친환경

농법을 교육하는 동연구농장을 평양 인근에 운 이라고 밝혔다.

이 유기농연구소의 비아 테 후버(Vias Te Hoover) 변인은 “유럽연합 에서 약 50만 유로를 지원받아 올해부터 2014년까지 3년 계획으로 농업지도자 20여 명에게 유기농 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했다. 이어 후버 변인은 “유기농연구소에는 독일 에서 견된 연구원 5명이 북한 농업과학원 산하의 유기조사연구원과 함께 약 30헥타르 규모의 농장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곡물을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25]) 이처럼 북한 당국이 유기농업에 한 심이 높 아진 배경에 해 외부 세계의 민간단체 계자들은 화학비료 부족과 토양의 산성화 등의 제약 속에서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해 유 기농법을 극 장려한 것이라고 공통 으로 분석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북한의 유기농업 실태가 집단농업 부문에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다른 한 축으로 북한 인민에 의해 자발 으로 이루어지는 유기농업 부문이 있다는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심지어 북한 문헌을 통해 북한의 도시 외 곽지역과 농 지역에서 개인농(는 가족농) ―그것이 불법 경작이든 합법 경작이든 상 없이―이 상당히 범 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텃밭이나 소토지와 같은 경지가 개인 농 는 가족농의 주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농의 경우 사실상 유기농법에 한 의존도가 높다. 화학비료 신 인분이나 가축 배설물을 이용한 거름 는 두엄 등이 주로 사용되며 틈틈이 김 매기, 제 작업, 해충 제거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도 높은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유기농법을 기반으로 한 개인 텃밭의 경작은 오랫동안 집단농장과 공존해온 북한 인민들에게 꽤 익 숙한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는 발간되지 않는 농근 맹 앙 원회 기 지인 󰡔농업근로자󰡕에는 1960년 반 농 의 텃 밭 경작 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가 실려 길을 끈다.

룡강군 오신 동농장 제7작업반 김윤희농근맹원네 집에서는 마당 한 쪽으로는 남새를 심고 집 뒤와 집 에는 포도나무, 살구나무 등 과일나 무들을 보기 좋게 심어 놓았다. 텃밭에는 배추, 무우, 쥐무우, ( 와 가을 ), 근 , 부루, 마늘(풋마늘과 김장용 마늘), 오이, 고추, 호박, 박 그밖에 완두콩, 당콩, 올감자, 사탕수수 등 열다섯 가지를 심고 잘 가 꾸고 있다. 좁은 뜰 안에는 시 치를 심어 먹은 후에 배추를 심었고 그 뒤그루도 고추를 심었다는 것이다. 김윤희 농근맹원의 말에 의하면 온 가족이 아침 일 기 일어나 오 을 물에 타서 덧거름을 주는 일, 김매기 와 씨솎음, 벌 잡이를 하는데 이제는 아 습 이 되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게 가꾸는 남새를 가지고 이른 부터 가을까지 떨구지 않 고 푸짐이 먹는다고 한다.44)

의 인용문에 묘사된 것처럼 농가에 딸린 텃밭은 유기농법에 의해

경작되며 부식물의 주요 공 원 역할을 한다. 한 생산성도 매우 높 음을 알 수 있다. 텃밭은 일반 으로 이모작 는 삼모작의 형태로 경작되는데, 주로 옥수수와 감자와 같은 알곡 작물이 함께 재배되고 추수 후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심어진다. 이외에 콩(두부용)과 강낭 콩,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채소류를 함께 심으며, 특히 고추와 마늘 은 환 성이 높아 체로 시장 매용으로 심는다. 연구자가 심층 면 한 농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텃밭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양은 텃밭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면 비 집단농장의 경우보 다 게는 3배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쿠바의 유기농업 경험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은 단순 히 농기술 인 측면에서 유기농업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에서 근 본 인 차이 이 있다. 앞 에서 자세하게 살펴본 것처럼 쿠바와 북 한이 공통 으로 외 고립과 수입 농자재의 부족과 같은 유사한 상황 제약 속에 유기농업에 심을 돌렸다는 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가 식량자 을 성공 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유기농업으로의 농기술 환에만 국한하지 않고 집단농 업체제의 근본 개편과 농산물 유통시장의 개 등을 병행했기 때문 에 가능했다. 반면 북한은 집단농업체제는 그 로 유지하고 농기술 인 측면에서만 유기농법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에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44) 󰡔농업근로자󰡕, 1966년 7월 5일.
5. 나오며: 대안과 정책적 시사점

사실상 북한의 농업체계는 오랫동안 근 행농업과 가족농

심의 통 인 농업이 공존해왔다. 자는 국 농장과 동농장에서, 후자는 농 과 도시의 가구에 합법 으로 배정된 텃밭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공존은 북한에서만 발견되는 모습은 아니다. 󰡔이코노미 스트(The Economist)󰡕에 따르면, 세계 부분의 지역에서 행농업은 “불편하지만 통 농경 행 들과 동거”해왔다.[26]) 유엔의 식량농업 기구/세계식량계획(FAO/WFP)에 의하면, 2012~2013년 북한의 식량 작물 총 식부면 은 총 202만 5,000헥타르로 추정되는데 개인과 기 이 보유한 텃밭 2만 5,000헥타르와 경사도 15°를 넘는 산지에 조성된 비탈밭 약 55만 헥타르가 포함된다. 동농장의 농가는 최 30평의 텃밭을 경작할 수 있는데 약 170만 농가가 경작하고 있는 텃밭은 1만 7,000헥타르에 이른다. 430만에 달하는 도시 거주자들도 가구당

5~10평 정도의 소규모 텃밭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27])

북한의 텃밭과 비탈밭에서는 체로 가족농 심의 통 인 방식

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식량 사정이 좋았던 시기에는 주로 부식물의 해결을 한 주요 원천이었고, 1990년 ·반에 발생한 규모 식 량 기 시기에 텃밭과 비탈밭은 식량 기로부터 살아남는 데 매우 요한 역할을 하 다. 그리고 텃밭의 생산성이 국 농장 는 동농장 과 같은 집단농장의 생산성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은 쿠바의 사례처럼 국가의 정책 환은 없었지만 이미 북한은 식량 부족을 타개하기 해 자발 으로 농 과 도시 모두에서 유기농법에 의거한 가족농이 십수 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본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농약·무비 료’라는 소극 개념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환경의 지속 순환을 가 능하게 하는 생태문제를 이룩했다는 에서 인류문명 발달사

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으며, 자원의 지역 내 순환과 생산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생태계의 지속성과 농업 생산성의 지속성, 그리고 생활양 식의 환을 동시에 이룬 “늘 푸른 농업 명”이라는 에서 한반도 통일 농업의 미래 비 으로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할 수 있 다.[28]) 쿠바의 경험은 생태학 농업 기술에 바탕을 둔 ·소형 농장들 로 체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그 게 됨으로써 좀 더 자 인 먹거리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을 시사한다.[29]) 이러한 안 농업은 쿠바의 경험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식량 기와 경제 쇄에 직면한 북 한에도 충분히 용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신년 공동사설에서 유기농법을 거론한 것은 분명히 이례 인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서 유기농법이 요한 농업정책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간 으

로 보여 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강조되고 있는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에는 두 가지의 정치경제학 맥락이 작용한다고 해석 할 수 있다. 하나는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에 한 국제사회 의 경제제재가 쉽게 해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비용·고투입의 행 농업은 실 으로 불가능하다는 단하에 쿠바의 사례와 같이 유기 농법이 북한에서도 농업 생산력을 최 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실 인 안이 될 수 있다는 이다.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군사 긴장 고조로 인해 남북 계는 크게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동 안 남한 정부로부터 받았던 규모의 화학비료나 농자재의 지원이 단되었다. 한 그동안 농업교류 력에 극 이었던 남한의 민간 단체나 지자체로부터의 지원도 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열악한 농업 환경에서 유기농법의 강조는 북한 인민이 농업 생산의 참여를 독려하 고 자력갱생의 구호를 철하는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북한이 유기농업에 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존에 추진되어온 남

북한의 농업교류 력을 성찰하고 향후 방향성에 해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남북한 간 농업 부문에서 이루어진 교류 력의 방향은 주로 생산 효율성에 맞춰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식량 기 이 까지 고수해오던 화학화와 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고도 로 집약화된 행농법의 복원이나 남한 행농법의 선진 농기술과 자원의 이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지난 시기 남북 당국 간에 합의 되고 진행된 농업교류 력 사업에서 한반도의 환경생태계를 유지하 는 지속 가능한 농업발 을 한 친환경 생산양식으로의 환과 같 은 통일된 한반도의 농업공동체의 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정부 당국보다 더욱 활발하게 진행해왔던 민간 차원의 농업교류 력 역시 방향 교류 력보다는 북한의 농업 생산성 향상을 해 남한 의 물자와 기술을 일방 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원 사업의 내용 역시 결과 으로는 이모작(두벌농사) 확

, 감자농사 명, 종자 명 등과 같이 북한의 농업정책 요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동안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차원 에서 이루어진 모든 남북 농업교류 력에는 통일될 한반도의 농업 공 동체의 비 , 목표, 방향 등에 한 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지 까지 추진해온 방식 로 남북한이 농업교류 력을 지속 한다면 궁극 으로 북한의 자립 인 농업 생산능력이 복원될 수 있는

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외의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은 단될 수 있고 그 다면 북한의 자립 인 농업 생산능력의 복구는 북한 경제가 완 히 정상화될 때까지는 불가 능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 남한의 농업은 21세기 인류 문 명사회의 공통 화두인 안 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지속 가능한 발 과 생태보 등의 문제가 주요 쟁 으로 두되고 있는 반면에 남 북한 농업교류 력은 20세기 개발 산업화 시 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만일 향후 추진될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이 궁극 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통일 한반도의 농업공동체의 형성이라고 한다면, 통일 한반도 의 농업공동체가 생태질서를 괴하고 농업 기반을 무 뜨리며 먹거 리의 안 을 하는 기존과 같은 비평화 인 녹색 명 방식을 추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될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은 체 한반도 차원에서 농 과 생태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인간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안 인 통일농업의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이 병행되 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에서 볼 때 최근에 북한 정권이 심을 보이 는 유기농업은 남북한 농업교류 력에서 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남한은 유기농업 분야에서도 북한에 비해 월등히 발 된 농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유기농업이 최종 인 통일농업의 안 모델이 될 것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요한 것은 유기농업 분야의 남북한 농업교류 력이 장기 인 차원에서 식량권의 확보뿐 만 아니라 평화와 생태의 문제까지 포 하고 있는 한반도의 식량주권 문제에 해 남북한이 동시에 고민하고 가장 이상 인 안을 함께 찾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은 분명히 의의가 있을 것이다.

■ 수: 2월 28일 / 수정: 3월 27일 / 채택: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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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North Korean Organic Farming from the Perspective of Food Sovereignty

Jeong, Eunmee(Institute for Peace and Unificatio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the background and context of organic farming which has been often mentioned in the literature published in North Korea for the last few years. In comparison with the experience of organic farming in Cuba, Cuba and North Korea have in common with paying attention to organic farming when there is a lack of imported farming materials and foreign isolation. On the other hand, unlike Cuba, North Korea has not solved the food problem because they are likely to introduce organic farming only in terms of technical aspects while maintaining collective agriculture. However, in the North Korean society,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organic farming based on family farming in both rural and urban areas voluntarily has been practiced in order to overcome the lack of food for several decades.

The discourse on organic farming has evolved the enactment of organic industry law and ecological conservation from a means for increasing production. Also, North Korean regime’s early interests in organic farming concentrated on developing the organic fertilizers to substitute insufficient chemical fertilizers on its own. Since the 2000s, however, North Korea has broadened its interests into organic farming technology of the outside world.

Agricultural cooperation between the North and South tends to be determined in accordance with the requirements of the agricultural policy of the North and limited to transfer of resources and farming technology of custom farming of the South based on chemistrization and mechanization.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needs to ensure food sovereignty over the entire Korean Peninsula while seeking alternative joint agricultural model that is able to recover the health of agriculture and ecology. Therefore, organic farming that North Korean regime has been interested in will become an important opportunity for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Keywords: organic farming, custom farming,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food sovereignty, ecology, family farming, joint agriculture






[1] ) 권 근, “식량 기에 얽힌 진실과 안,” 󰡔환경과생명󰡕, 통권 59호(2009, 호), 214쪽.


[2] ) http://www.nyeleni.org/spip.php?article333.


[3] ) 송원규·윤병선, “세계농식품체계의 역사 개와 먹거리 기-안의 모색: 식량안보에서 식량주권으로,” 󰡔농 사회󰡕, 제22집 제1호(2012), 290쪽.


[4] ) 송원규·윤병선, “세계농식품체계의 역사 개와 먹거리 기-안의 모색: 식 량안보에서 식량주권으로,” 289쪽; 장경호, “식량안보인가, 식량주권인가?,” 󰡔민 의 소리󰡕, 2012년 11월 1일.


[5] ) Peter Rosset, “Food Sovereignty: Global Rallying Cry of Farmer Movements,” Backgrounder, Vol. 9, No. 4(Fall, 2003), p. 2.


[6] ) 1990년 쿠바는 총 8만 5,000의 트랙터를 사용했으나, 1990년 수입석유의 공 이 60%까지 감소하자 연료의 부족으로 인해 부분의 트랙터 사용이 불가능하 게 되었다. 이로써 1997년에 트랙터 7만 3,000를 활용했으나 2000년에는 4만 로 었고 2012년에는 100km2당 203만 남았다. 트랙터 사용이 어든 신 에 쿠바의 농업에서는 73만 5,000마리 이상의 가축이 활용되고 있다. Eduardo Francisco Freyre Roach, “쿠바의 유기농업과 한국에서의 용,” 2012년 한국유기 농업학회 국제심포지엄, 󰡔세계 유기농업 황과 망󰡕(2012.10), 60~61쪽.


[7] ) 의 , 41~43쪽.


[8] ) 스테 쥬니스(Stephen Zunes), “쿠바는 녹색국가가 되는가,” 󰡔녹색평론󰡕, 제67 호(2002), 137~141쪽.


[9] ) 김성훈, “쿠바는 어떻게 식량 기를 벗어났나?: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이 북한 에 주는 교훈,” 제7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정책포럼(2004.


[10] .19), 2쪽.


[11]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유기농업으로 나라가 변한다,” 󰡔녹색평론󰡕, 제67호

(2002), 107~136쪽.


[12]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 6~7쪽.


[13] ) 드 맥도(FredMagdoff)·존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드릭 버텔 (Frederick H. Buttel), 󰡔이윤에 굶주린 자들󰡕(서울: 울력, 2011), 310~316쪽.


[14] ) 김성훈, “쿠바는 어떻게 식량 기를 벗어났나?” 3쪽.


[15] ) 의 , 2쪽.


[16] ) 의 , 137쪽.


[17] ) 󰡔로동신문󰡕, 2006년 7월 31일.


[18] ) 물론 충분한 주식 섭취도 어려운 상황에서 주식의 소비를 이고 부식물의 소비를 늘리자는 것이 북한 정권의 허구 이데올로기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농정에서 감자 증산과 축산 양어 기지 건설이 강조되고 김정일이 이 분야의 지 지도를 자주 했던 은 부인하기 힘들다.


[19] ) 리 일, “경제강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유기산업을 발 시키는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경제연구󰡕, 제1호(2011), 29쪽.


[20] ) 손리학, “록색식품을 개발리용하여 유기산업발 에 이바지하기 한 방도,”

󰡔경제연구󰡕, 제4호(2009), 32쪽.


[21] ) 리성길, “록색상품의 개발과 리용이 사회경제생활에 미치는 향,” 󰡔경제연구󰡕, 제2호(2012), 37쪽.


[22] ) 리민재,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그의 사회경제 의의,” 󰡔사회과학원학보󰡕, 제2호(2012), 44쪽.


[23] ) 의 , 44쪽.


[24] ) 󰡔노컷뉴스󰡕, 2012년 1월 12일.


[25] ) 󰡔노컷뉴스󰡕, 2012년 11월 7일. http://m.nocutnews.co.kr/view.aspx?news=2308305.


[26] ) The Economist, March 25, 2003.


[27] ) 김 훈, “북한의 식량사정 농업 동향,” 󰡔KDI 북한경제리뷰󰡕, 1월호(2013), 38~39쪽.


[28]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 6~7쪽.


[29] ) 드 맥도(FredMagdoff)·존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드릭 버텔

(Frederick H. Buttel), 󰡔이윤에 굶주린 자들󰡕,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