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0

류대영 함재봉의 기독교의 역할 비교

류대영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 요약 평론 - Google Gemini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특히 '친미기독교파')에 나타난 기독교관을 앞서 살펴본 류대영 교수의 시각과 비교하여 정리한 요약 평론입니다.

<근대적 한국인 형성과 기독교: 함재봉과 류대영의 시각 비교 평론>

<1. 서론: '한국인'을 묻는 두 가지 지적 경로>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과 내면적 원형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치학자 함재봉과 역사학자 류대영은 모두 개화기 이후 유입된 '개신교'를 결정적 변수로 지목한다. 그러나 두 학자가 서구 기독교와 한국 근대사의 접점을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가치 평가는 정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선명하게 갈라진다.

함재봉은 <한국 사람 만들기>를 통해 조선이라는 유교적 전근대 사회의 한계를 돌파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적합한 근대적 주체, 즉 <친미기독교파>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해 낸 '문명사적 도약'에 주목한다. 반면 류대영은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 등에서 그 이면에 도사린 미국 제국주의의 팽창 질서, 선교사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인종주의, 그리고 조선인의 저항 의식을 거세한 '탈정치화와 순응주의'라는 구조적 그림자를 정밀하게 고발한다.

<2. 핵심 비교: 네 가지 쟁점>

<조선 말기의 현실 인식: 해방의 계기인가, 제국주의의 침투인가>

  • 함재봉의 시각: 19세기 말 조선을 유교적 신분제와 빈곤, 무기력이 지배하던 '문명적 막다른 골목(아비규환)'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서구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개신교는 조선인을 전근대적 예속에서 건져내어 개인의 존엄성, 만인 평등, 법치, 과학기술을 수용하게 만든 결정적인 '신의 한 수'이자 문명사적 구원의 통로였다.

  • 류대영의 시각: 조선 말기의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선교사들의 등장을 서구 자본주의 및 미국 팽창주의(명백한 운명론)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한다. 선교사들이 베푼 시혜적 의료와 교육 이면에는 조선의 주권을 열강의 이권 각축에 종속시키고, 전통문화를 미개한 악습으로 단정하는 서구 중심적 패권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미국 선교사의 역할과 본질: 문명 전환의 촉매인가, 제국의 대리인인가>

  • 함재봉의 시각: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초기 선교사들을 근대 서구 문명의 첨단 제도와 가치관을 이식한 '선구적 매개자'로 평가한다. 이들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영미권의 의회민주주의와 청교도적 직업윤리, 독립적 개인주의를 조선 청년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같은 근대 엘리트를 길러냈다고 본다.

  • 류대영의 시각: 선교사들의 기록과 외교 문서를 바탕으로, 이들이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한 미국 정부의 현실주의 외교에 철저히 공조했음을 실증한다. 선교사들이 내세운 '정교분리' 원칙은 실상 식민 지배 권력과 충돌을 피하고 자신들의 선교 기득권을 보존하기 위한 기만적 타협책이었음을 냉정하게 폭로한다.

<근대적 인간형(친미기독교파)의 성격: 자유민주주의 시민인가, 체제순응적 보수주의자인가>

  • 함재봉의 시각: 기독교를 수용한 한국인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낸 '성공적인 한국인(친미기독교파)'의 원형이라고 규정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독교적 자각이 유교적 가부장제와 계급 의식을 타파하고 자조(self-help)와 자율성을 갖춘 근대 공화국 시민을 탄생시켰다는 해석이다.

  • 류대영의 시각: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 등에서 극대화된 신앙 형태를 '내면화된 죄책 고백'과 '사회정치적 거세'로 분석한다. 식민지 현실과 국가적 모순에 저항해야 할 에너지를 탈정치화된 개인 영성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이후 한국 보수 기독교가 독재 정권과 미국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맹목적 반공주의자로 귀결되는 토대를 놓았다고 진단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 미친 유산: 번영의 원동력인가, 분열과 우경화의 기원인가>

  • 함재봉의 시각: 한국이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대 경제강국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선 배후에는 서구 기독교 문명권과의 결합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위정척사파나 친소공산주의파 등 다른 경쟁적 정체성과의 투쟁에서 친미기독교파가 주도권을 쥐었기에 번영이 가능했다는 긍정적 역사관이다.

  • 류대영의 시각: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물질적 성장에 편승하여 대형교회 중심의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었으며, 냉전 체제 하에서 국가폭력과 손잡았던 역사적 과오를 성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극우 포퓰리즘, 혐오 정치, 배타적 기독교 민족주의와 결탁하여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위기에 직면했다고 비판한다.

<3. 종합 평론: 문명사적 결과론 대 비판적 사료주의의 긴장>

함재봉의 작업은 정치철학적 거대 서사의 매력을 지닌다. 유교 문명과의 단절을 통해 한국인이 어떻게 서구적 개인으로 변모했는가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며, 현대 대한민국의 번영을 낳은 사상적 원류로서 기독교를 재조명한다. 그러나 역사적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목적론적·승리주의적으로 구성하여, 제국주의 침탈의 폭력성과 종교적 타협을 문명화의 불가피한 비용으로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반면 류대영의 연구는 철저한 1차 사료 비판과 탈식민주의적 시각에 확고히 서 있다. 기독교가 지닌 신화를 해체하고 그 속에 얽힌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와 탈정치화의 기제를 객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규명해 낸다. 다만 교회의 과오와 제국주의적 맥락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신앙을 통해 실존적 자유와 민족적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한국인 수용자들의 자발적 역동성을 다소 협소하게 다룬 측면이 있다.

결국 두 학자의 시선은 현대 한국인을 형성한 기독교라는 동전의 양면을 비춘다. 함재봉이 기독교를 통해 이식된 '근대 자유주의 문명의 씨앗'을 올려다본다면, 류대영은 그 씨앗이 배태되고 자라난 토양에 드리워진 '제국주의와 탈정치화의 깊은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한국 근현대사의 심층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함재봉의 문명사적 통찰과 류대영의 엄정한 사료주의적 비판을 반드시 교차시켜 읽어야 한다.

함재봉 교수가 자신의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의 집필 배경과 '친미기독교파'의 문명사적 계보를 직접 설명하는 강연인 함재봉 교수의 한국 사람 만들기 강연을 참고해 보실 수 있습니다. 유교 문명권이었던 조선 말기에 기독교와 서구 사상이 유입되면서 어떻게 새로운 유형의 한국인이 탄생했는지에 대한 그의 고유한 시각을 직접 확인하는 데 유익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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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떤 ‘한국인’을 만들었는가 — 함재봉과 류대영 비교>

두 사람을 나란히 읽으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함재봉과 류대영 모두 기독교가 조선 말 한국사회에 단순히 ‘새 종교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교육·문자·여성·신분·정치의식까지 바꾸는 중요한 힘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어떤 한국인을 만들었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함재봉에게 기독교는 <유교적 조선인과 구별되는 새로운 근대적 인간형, 즉 ‘친미기독교파 한국인’을 만들어낸 문명적 프로젝트>입니다.
류대영에게 기독교는 <한국인이 근대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개인·인민·여성·시민의 형성에 참여한 여러 역사적 힘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하나>입니다.

즉 함재봉은 ‘인간형’을 강조하고, 류대영은 ‘역사적 과정’을 강조합니다.

1. 함재봉: 기독교는 새로운 <한국 사람>을 만든다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전체의 출발점 자체가 현대 한국인이 하나의 단일한 전통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현대 한국인의 기저를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라는 다섯 경쟁적 인간형의 계보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함재봉에게 ‘기독교인’은 단순히 일요일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가진 새로운 한국인입니다.

그 형성과정을 그는 아주 길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칼뱅 → 제네바 → 스코틀랜드 장로교 → 네덜란드 개혁교회 → 영국 청교도 → 미국 개신교 → 미국 선교사 → 조선 개신교인>

이라는 일종의 문명사적 계보입니다.

『한국 사람 만들기 3: 친미기독교파 1』에서 함재봉은 이 칼뱅주의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단순한 신학을 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을 개혁”했고, 주자성리학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종의 <문명 충돌>이었다고 서술합니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변화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신분제에 대한 도전, 남녀차별에 대한 도전, 근대교육과 의료, 한글 사용, 교회 구성원의 선거와 자치, 그리고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 규율을 받아들이는 ‘규율의 내재화’입니다. 실제로 책의 제3장 목차 자체가 <근대 의료 → 근대 교육 → 신분제에 대한 도전 → 남녀차별에 대한 도전 → 조선 최초의 선거와 자치 → 한글의 재창제 → 개종과 규율의 내재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함재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의 변화>입니다.

유교적 조선에서는 사람의 자리가 가족·신분·성별·연령·군신관계에 의해 주어집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개인이 직접 하나님 앞에 선다고 봅니다. 성경을 직접 읽고, 스스로 회심하며,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자발적으로 헌금하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규제합니다.

그래서 함재봉은 장로교의 장로 선출 같은 사건도 대단히 중요하게 봅니다. 그는 1887년 새문안교회에서 교인들이 장로를 선출한 사건을 조선 사람들이 자기 지도자를 직접 뽑은 매우 초기의 선거 경험으로 해석하고, 이를 장로교적 자치와 민주주의의 연관성으로 연결합니다.

함재봉에게는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인과관계가 성립합니다.

<개신교적 개인 → 자치하는 교인 → 시민 → 민주주의적 한국인>

이것이 그의 <친미기독교파>론에서 가장 강한 주장입니다.

2. 류대영도 상당 부분 같은 현상을 본다

흥미로운 것은 류대영도 사실관계 차원에서는 함재봉이 지적하는 변화의 상당 부분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류대영은 한말의 『죠션크리스도인회보』와 『그리스도신문』을 분석하면서 기독교 언론이 전근대적 ‘백성’이나 ‘신민’과 다른 새로운 개념으로 <인민>을 제시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인민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공정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에 대해 주인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갖는 존재였습니다. 또한 한글과 대중교육, 신문 보급이 그러한 새로운 인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을 여기까지만 보면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함재봉류대영
신분질서기독교가 신분제에 도전자유·평등한 인민 개념 확산
문자한글을 통한 평민의 해방한글이 근대 인민·공동체 형성에 기여
교육근대적 인간을 만드는 핵심문명개화와 국민 형성의 수단
개인하나님 앞에 선 자율적 개인권리와 책임을 가진 인민
정치교회자치→민주주의 훈련근대국가·시민의식 형성에 기여
여성유교적 남녀질서에 도전여성의 활동영역 확대와 여성 주체 형성

그러므로 <기독교가 한국인의 근대적 주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큰 명제에서는 두 사람이 상당히 가깝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단계에서 갈라집니다.

3. 가장 큰 차이: 함재봉의 <단절>과 류대영의 <혼합>

함재봉은 유교와 개신교의 관계를 상당히 강하게 <대립과 단절>로 봅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주자성리학이 불교문명의 고려인을 무너뜨리고 ‘조선 사람’을 만들었듯이, 개신교가 주자성리학적 조선인에게 도전해 새로운 한국인을 만들어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대체 문명입니다. 그래서 ‘친미기독교파’라는 비교적 뚜렷한 인간형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류대영에게는 상황이 훨씬 혼합적입니다.

그의 후기 연구에는 아예 <한국적 기독교>라는 범주가 있고, 대표적인 사례로 김교신을 <복음적 유자(儒者): 유교적-기독교적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함재봉식으로 보면:

유교적 조선인 → 기독교로 개종 → 새로운 기독교적 한국인

이라는 전환이 강조됩니다.

류대영식으로 보면:

유교적·가족적·민족적 전통을 가진 조선인 + 미국 개신교 + 근대교육 + 민족주의 + 식민지 경험 → 여러 형태의 ‘한국적 기독교인’

입니다.

후자가 훨씬 잡종적(hybrid)입니다.

4. 두 번째 큰 차이: <미국>과 <기독교>를 얼마나 붙여놓는가

함재봉은 의도적으로 <친미기독교파>라고 부릅니다.

그에게 미국은 우연히 선교사를 파견한 나라가 아닙니다. 청교도·복음주의·장로교·민주주의·교육·시장경제·시민사회라는 문명적 복합체의 전달자입니다. 그래서 갑신정변 이후 일본식 근대화 프로젝트가 좌절된 뒤 미국식·기독교적 근대화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최근 강연에서도 이를 일본식 근대화에서 미국식 기독교 근대화로의 일종의 ‘바통 터치’로 설명합니다.

류대영은 이 결합을 훨씬 조심스럽게 분해합니다.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에서 그는 <미국 정부 / 미국 선교사 / 조선 왕실 / 한국인 개종자>를 서로 다른 행위자로 구별합니다. 선교사들이 조선을 돕고자 했던 선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치외법권과 불평등조약이라는 제국주의적 질서의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봅니다.

그러므로 류대영에게는

<기독교 = 미국 = 근대 = 민주주의>

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나는 류대영의 해석이 함재봉의 약점을 상당히 잘 보완한다고 생각합니다.

5. 세 번째 차이: 함재봉에게 ‘근대성’은 긍정적 성취, 류대영에게는 양면적 현상이다

함재봉의 서술에는 기독교가 봉건적 조선을 근대로 이끌었다는 상당히 강한 진보적 서사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 만들기 3』의 책소개도 칼뱅주의가 유럽을 근대로 이끌었고, 그 전통을 가진 선교사들이 조선의 일상을 개혁했다고 명시합니다.

반면 류대영은 바로 그 ‘문명개화’의 어두운 면까지 추적합니다.

그가 분석한 기독교 신문들은 자유·평등·인권·한글·교육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문명개화론에는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이 들어 있었습니다. ‘문명국/야만국’, ‘진보한 민족/뒤처진 민족’이라는 위계가 있었고, 류대영은 바로 이런 세계관 때문에 일부 미국 선교사들이 훗날 일본의 조선 지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함재봉은 묻습니다.

“개신교가 어떻게 조선인을 근대인으로 만들었는가?”

류대영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붙입니다.

“그들이 말한 ‘근대인’과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에는 어떤 권력과 제국주의적 전제가 들어 있었는가?”

6. 그래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독교적 한국인’도 다르다

함재봉의 <친미기독교파 한국인>을 이상형(ideal type)으로 재구성하면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으로 서며, 신분보다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고, 남녀교육을 받아들이며, 한글로 읽고 쓰고, 자발적 결사에 참여하고, 대표를 선출하고, 스스로 규율하며, 미국적 자유주의·민주주의·근대 문명에 친화적인 사람입니다.

반면 류대영에게서 등장하는 기독교적 한국인은 그렇게 하나의 유형으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윤치호도 기독교인이고, 독립운동가도 기독교인이며, 친일적 기독교 지도자도 있고, 농촌운동가도 있으며, 김교신 같은 유교적 기독교인도 있고, 여성운동가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하나의 ‘완성된 인간형’을 수입했다기보다 새로운 언어와 제도를 제공했고, 한국인들이 그것을 서로 다르게 사용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두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함재봉은 기독교가 한국인을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류대영은 한국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자신을 ‘다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7. 그런데 두 관점을 합치면 오히려 더 좋은 설명이 된다

나는 이 두 설명을 어느 하나만 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함재봉의 장점은 <기독교가 인간의 일상을 얼마나 깊숙이 바꾸었는가>를 매우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지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배워라. 성경을 직접 읽어라. 술과 도박을 끊어라. 딸도 학교에 보내라. 첩을 두지 마라. 헌금하라. 회의에 참석하라. 장로를 선출하라. 다른 신분의 사람과 함께 예배하라.”

이런 실천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로 새로운 <habitus>, 즉 새로운 생활습관을 가진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류대영의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함재봉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매끄러운 <칼뱅 → 미국 → 선교사 →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직선적 계보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민주주의자를 만들었지만 권위주의자도 만들었습니다. 신분평등을 가르쳤지만 교회 안에 새로운 위계도 만들었습니다. 여성교육에 크게 기여했지만 가부장적인 교회도 만들었습니다.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식민권력에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를 가르쳤지만 강력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와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류대영은 바로 이 <모순>을 더 잘 보여줍니다.

결론: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를 하나의 도식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함재봉>
칼뱅주의 → 미국 개신교 → 선교사 → 조선의 일상혁명 →
개인·평등·교육·한글·자치·민주주의 → <친미기독교파라는 새로운 한국인>

반면

<류대영>
미국 개신교 + 제국주의적 국제질서 + 조선의 사회구조 + 한국인의 능동적 수용 + 민족주의·유교·식민지 경험 →
다양한 형태의 <한국적 기독교인>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한 유형의 한국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는 함재봉이 훨씬 대담하고 선명하고, 실제 역사적 인간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류대영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특히 함재봉의 가장 흥미로운 통찰은 <기독교를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인간을 훈련하는 사회제도로 본 것>입니다. 반면 류대영의 가장 중요한 교정은 <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인간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을 결합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인간형을 다음처럼 정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 근대 한국인>은 하나님 앞의 개인, 교육받은 평민, 한글 독자, 자발적 결사체의 구성원, 민족국가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동시에 획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교적 가족주의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으며, 민족주의·미국주의·반공주의·민주주의를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했다.

이 마지막 문장이 함재봉의 <친미기독교파>를 류대영의 역사학으로 보정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현실적인 ‘한 유형의 한국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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