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 동북아 역사재단 번역총서 3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은이),배대화 (옮긴이)동북아역사재단2013



책소개
체호프는 1890년 4월 21일 모스크바를 출발, 4월 29일 예까쩨린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는 시베리아를 횡단한 뒤 7월 11일 사할린섬에 도착했고, 10월 13일 사할린섬을 출발하여 12월 8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사할린섬 여행 이후 1893년 10월부터 1894년 7월까지 「러시아사상」에 <사할린 섬>을 연재하였다. 1895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는데, 390여 쪽의 현장 보고서였다.
전체 23장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부터 3장까지는 체호프의 니꼴라옙스크에서 아무르강 하구까지 여행과정, 사할린 도착 과정, 사할린 유형수의 조사 등이었다. 4장부터 11장까지는 사할린 알렉산드롭스크 지구의 유형수와 농민, 아이누인과 길랴크인의 역사 등이었다. 12장에서 14장까지는 체호프의 남사할린 조사, 러시아의 사할린 영유권 역사 등이었다. 15장에서 23장까지는 사할린 유형수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유형수의 가족생활, 유형수의 도덕성과 범죄성 등이었다.
목차
역자 서문
해제: 사할린 섬과 갈매기
제1부 시베리아에서
제2부 사할린 섬 - 여행기 중에서
I. 니콜라예프스크, 바이칼 호, 프론게 곶과 리만 시로 하선, 사할린 반도, 라페루즈, 브라우톤, 크루젠쉬테른과
네벨스코이, 일본인 연구자들, 좌오레 곶, 타타르 기슭, 데-카스트리
II. 간략 지리, 북사할린 도착, 화재, 선착장, 마을, L 씨 댁에서 식사, 지인, 코노노비치 장군, 주 총독의 방문,
식사와 조명
III. 조사, 통계 카드의 내용, 내가 물어본 것과 내게 답변한 것, 통나무집과 거주자들, 조사에 관한 유형수들의 의견
IV. 두이카 강, 알렉산드로프스크 분지, 알렉산드로프카 자유촌(슬로보드카), 부랑자 크라시브이,
알렉산드로프스크 진, 진의 과거, 유목민 천막촌, 사할린의 파리
V. 알렉산드로프스크 징역유형교도소, 공동방, 족쇄 찬 죄수들, 황금손, 변소, 도박장(Майдан), 알렉산드로프스크의
강제 노역, 하인, 공방들
VI. 예고르의 이야기
VII. 등대, 코르사코프 마을, P. I. 수프루넨코 박사의 수집품, 기상관측소, 알렉산드로프스크 지구의 기후,
노보미하일로프카 마을, 포킨, 전 형리 테르스키, 크라스느이-야르 마을, 부타코보 마을
VIII. 아르카이 강, 아르코보 초소, 제일·제이·제삼 아르코보 마을, 아르코보 분지, 서쪽 해안 마을들: 므가치, 탄기,
호에, 트람바우스, 비아흐트이, 반기, 툰넬, 케이블 집, 두에, 가족용 감방, 두에 교도소, 탄광, 보예보드스카야
교도소, 외바퀴 수레에 매인 죄수들
IX. 트임 혹은 트이미, 해군 대위 보쉬냐크, 폴랴코프, 베르흐니-아르무단, 니즈니-아르무단, 데르빈스코에 마을,
트이미 산책, 우스코보 마을, 집시들, 타이가 숲 산책, 보스크레센스코에 마을
X. 르이코프스코에 마을, 이곳 교도소, M. N. 갈킨-브라스키 관측소, 팔레보 마을, 미크류코프 마을, 발즈이 마을과
론가리 마을, 말로-트이모보 마을, 안드레예-이바노프스코에 마을
XI. 입안된 지구, 석기시대, 자유식민이 있었는가?, 길랴크 인들, 이들의 인구 구성, 외모, 체격, 음식물, 의복, 주거,
위생환경, 성격, 이들을 러시아화하려는 시도, 오로치 족
XII. 남쪽으로 출발, 쾌활한 부인, 서해안, 해류, 마우카(眞岡), 크릴온, 아니와(亞庭), 코르사코프 진, 새로운 지인,
북동풍, 남사할린의 기후, 코르사코프 교도소, 소방차
XIII. 포로-안-토마리, 무라비요프스크 진, 제1골짜기, 제2골짜기, 제3골짜기, 솔로비요프카 마을, 류토가 마을,
민둥곶 마을, 미쭐카 마을, 낙엽송 마을, 호무토프카 마을, 볼샤야 옐란 마을, 블라디미로프카 마을,
농장 혹은 회사, 루고보예 마을, 오두막신부촌, 자작나무촌, 십자가촌, 볼쇼에 타코에 마을과 말로에 타코에 마을,
갈키노-브라스코에 마을, 떡갈나무촌, 나이부치, 바다
XIV. 타라이카(多來加), 자유민촌, 그들의 실패, 아이누 인, 그 분포도, 인구 구성, 외모, 음식물, 의복, 주거, 풍습,
일본인들, 쿠순-코탄, 일본 영사관
XV. 징역유형수 세대주들, 이주유형수로의 승격, 새 마을들을 위한 장소 선정, 세대경영, 공동소유주들.
농민으로의 승격, 유형수 출신 농민들의 대륙이주, 마을 생활, 교도소 주변, 출생지와 계층별 주민 구성,
마을 권력
XVI. 성별에 의한 유형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여성 징역유형수와 여성 이주유형수, 내연의 동거남과 동거녀,
자유신분의 여성
XVII. 연령별 주민 구성, 유형수 가족상황, 결혼, 출산율, 사할린의 아이들
XVIII. 유형수들의 일, 농업, 수렵, 어업, 회귀어종: 연어와 정어리, 교도소의 수렵, 수공업
XIX. 유형수들의 식사, 죄수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옷, 교회, 학교, 문자해독력
XX. 자유민, 지역 군대의 하사관들, 간수들, 지식인들
XXI. 유형민의 도덕성, 범죄성, 심리(審理)와 재판, 형벌, 매와 채찍, 사형
XXII. 사할린의 탈주자들, 탈주 원인, 출생지별, 소속별 그리고 기타 등에 의한 탈주자들 구성
XXIII. 유형주민의 발병률과 사망률, 의료기관, 알렉산드로프스크 병원
Endnotes
저자와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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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체호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이 교육을 위해서 교과서와 참고서 등 약 4,000권의 책을 모아서 사할린으로 보낸 것이었다. (13) - 不二
얼굴은 수척하고 그늘져 풍상에 찌들었다. 도무지 이들의 얼굴을 표현할 길이 없다! 틀림없이 둘씩 한 조가 돼 수갑을 찬 채 죄수선을 타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이든지 아니면 빈대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물어대던 농가에서 숙박해가며 국도로 호송되어 오는 동안에 골수까지 돌처럼 굳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벌거벗은 기슭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물에 밤낮으로 젖어가며 이들이 지녔던 모든 온기를 영원히 상실했고 삶에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술과 계집, 계집과 술....... 이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그런데도 내 마부 노인네의 견해에 따르면 저세상에서 이들은 더 나빠질 것이란다. 죄의 대가로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57) 접기
즉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하지 않는 모든 새로운 조치는 그런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슬프고 기괴하다 해도 감옥과 유형 중 어떤 것이 러시아에 더 유익한가라는 목하의 문제를 해결할 정당성조차도 우린 가지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도소가 어떤 것인지, 유형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유형으로 구금되고 고통을 겪는 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의 원인이나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문학에서의 몰이해의 원인은 러시아 법률가의 극도의 무교양에서 비롯된다. 법률가는 유형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 그는 오로지 인간을 재판하고 구금형이나 유형을 선고하기 위해 대학 시험을 치를 뿐이다. ... 범죄자가 재판 후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는지, 감옥이 뭔지, 시베리아가 어떤지 모르고 흥미도 없으며 그런 일은 그의 권한에 속하지도 않는다. 이 일은 이미 코가 빨간 호송 감독관이나 교도소 감독관의 것일 뿐이다! (90) 접기
소나무 주위로 등에 배낭과 솥을 짊어진 탈주자가 어슬렁거린다. 거대한 타이가와 비교한다면 그의 악행, 심지어 그 자신까지도 얼마나 작고 사소한가! 그는 이곳 타이가에서 죽어갈 것이며 그의 죽음에는 모기의 죽음처럼 어떤 현명함도 무서움도 없을 것이다. ...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라는 문구가 이곳에서만큼은 사뭇 걱정스럽고 허황되게 울린다. 만약 시베리아 대로를 따라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이 타이가를 없애기로 합의하고 도끼와 불로써 그 일에 착수한다면 바다를 태워 없애고자 했던 파랑새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 한 학자가 동쪽 기슭에 체류하던 중에 무심코 숲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눈에 보이는 푸른 지역이 전부 불길에 휩싸였다. ... 그러나 이 거대한 타이가에서 수십 km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화재가 있었던 장소는 지금은 통과할 수 없는 숲이 생겨 곰들이 평화롭게 돌아다니고 들꿩들이 날아다니며 이 학자의 작업은 그를 놀라게 했던 무서운 재앙보다 훨씬 더 큰 흔적을 자연에 남겼을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척도는 타이가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109)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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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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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했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중학 생활을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전반, 수년에 걸쳐 〈어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작가 그리고로비치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편지에 감동하고 자각해 〈초원>을 썼다. 희곡 〈이바노프> <지루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우 울한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 갈 때까지 단편소설 <결투> <검은 수사> <귀여운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골짜기> 등을 집필했다.
1896년 희곡 <갈매기>의 상연 실패는 그를 잠시 극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으나, <바냐 아저씨>를 써낸 이듬해인 1898년, 모스크바 예술 극단의 <갈매기> 상연은 성공적이었다. 1904년 병고 속에서도 <벚꽃 동산>을 집필해 상연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요양지인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접기
최근작 : <갈매기>,<체호프 단편선>,<고독 이야기> … 총 569종 (모두보기)
배대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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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동 대학원을 거쳐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러시아문학 전공)
경남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국어국문학교 교수 역임. 현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 저서 및 역서 |
『오이디푸스와 서사』, 『세계의 소설가 2』(공저), 『이선관 시 전집』(공동편저), 『사할린 섬』(체호프 저, 역서)
| 논문 |
「벨르이의 《뻬쩨르부르그》에 대한 라캉적 읽기 1; 꿈-무의식적 담론」, 「도스토예프스키, G. 프로이트, J. 크리스테바」, 「뿌쉬낀의 「메타 텍스트로서 뿌쉬낀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석상 손님”」, 「따르꼽스끼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영화 이미지와 창조적 자의식」, 「김춘수의 『들림 도스토옙스끼』에 대한 시론적 연구」, 「이선관 시의 미학적 특성」, 「백석과 마르샤크 ? 러시아 문학과 백석(4)」 등. 접기
최근작 : <푸르른 그대로>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체호프는 1890년 4월 21일 모스크바를 출발, 4월 29일 예까쩨린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는 시베리아를 횡단한 뒤 7월 11일 사할린섬에 도착했다. 체호프는 10월 13일 사할린섬을 출발하여 12월 8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섬 여행 이후 1893년 10월부터 1894년 7월까지 '러시아사상'(Русская мысль)에 <사할린 섬>을 연재하였다. 1895년 <사할린 섬>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사할린 섬>은 390여 쪽의 현장 보고서였고, 전체 23장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부터 3장까지는 체호프의 니꼴라옙스크에서 아무르강 하구까지 여행과정, 사할린 도착 과정, 사할린 유형수(流刑囚)의 조사 등이었다. 4장부터 11장까지는 사할린 알렉산드롭스크 지구의 유형수와 농민, 아이누인과 길랴크인의 역사 등이었다. 12장에서 14장까지는 체호프의 남사할린 조사, 러시아의 사할린 영유권 역사 등이었다. 15장에서 23장까지는 사할린 유형수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유형수의 가족생활, 유형수의 도덕성과 범죄성 등이었다.
□ 학술적 가치
1) 체호프, 그의 정신세계 비밀
체호프는 정신세계의 비밀을 찾으려 현실을 파고든 러시아 대문호였다. 체호프는 후대 비평가에게 기이함, 호기심 등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중 ‘체호프의 수수께끼’라는 표현은 그의 문학작품의 해석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동안 문학과 연극 등에서 체호프 작품에 대한 해석이 진행되었다. 황혼을 노래한 작가 또는 미래를 꿈꾸는 작가로 해석이 달랐다. 또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 또는 제정러시아 몰락 이후 희망의 작가로 엇갈렸다. 러시아 문학가 추다꼬프(А.П. Чудаков)는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 곧 희극과 비극이 결합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연극연구자 듀크스(A. Dukes)는 체호프의 희곡을 자연주의로 이해했다. 스타이언(J.L. Styan)은 사실주의로 그의 연극을 수용했다. 하우저(A.G. Hauser)는 체호프 희곡을 인상주의 관점으로 포착했다. 러시아 연극연구자 중 일부는 체호프와 그의 희곡을 사실주의적인 관점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들은 체호프를 그의 소설 작품에만 기초해서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체호프의 작가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90년 사할린 섬 여행 이후 그가 남긴 현장 보고서 <사할린 섬>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2) 체호프, 문헌수집 및 현장조사에 기초한『사할린 섬』완성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방문 전후한 문헌수집 및 현장조사를 토대로 4년 만에『사할린 섬』을 완성하였다.
『사할린 섬』을 최초로 국내에 번역한 배대화(경남대 교수)에 따르면 “체호프는 사할린섬 여행 이전에 러시아형법, 금고와 유형, 사할린 관련 자료 등을 조사했다. 그는 중앙형무소 당국의 보고서, 통계문헌과 해양선집 등을 연구했다. 체호프는 여행 기간 중 저녁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여행관련 기록도 정리했다. 체호프는 유형수의 삶을 조사하기 위해서 마을마다 모든 집을 돌아다니려고 노력했다. 체호프는 집주인 부부, 가족, 동거인, 일꾼 등을 직접 기록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섬을 작성하기 위해 다양한 참고문헌을 조사했다.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체호프는 사할린 섬에 대한 학술지, 즉 광산저널, 해양총서, 역사통보 등의 다양한 문헌을 활용했다.”
3) 러시아와 일본,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
체호프는 러시아와 일본의 남사할린 영유권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체호프에 따르면 일본은 1613년부터 처음으로 사할린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측량기사 마미야 린조(Мамиа Ринзо, 間宮林藏)는 1808년에 사할린 서쪽 해안을 따라 여행했고, 처음으로 사할린이 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체호프는 일본인의 남사할린 주요 이권이 어업이었다고 판단했다. 체호프는 기사 로빠찐(Лопатин)의 말을 인용하였다. “일본인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거나 겨울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남사할린에 오는 일본인은 단지 어업에 종사하여 야영 생활을 했고, 겨울철 최소한의 인원만 남긴 채 일본에 귀국했다. 일본인은 채소밭을 가꾸지 않았으며 가축도 키우지 않았다. 생활필수품을 전부 일본에서 가져왔다. 일본어민을 매료시킨 것은 단 하나 물고기였다.”
체호프는 남사할린의 포유류 중 강치를 주목했다. 체호프에 따르면 사할린의 해안 가까이 바다 위로 암벽이 홀로 솟아 있는데 “위험한 바위(Камнем Опасности)”로 불렸다. 한 목격자는 범선 예르마크(Ермак)를 타고 이 바위를 탐사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바위까지 아직 2.4미터나 남았다. 그런데 바위는 커다란 강치들로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 이 무수한 야생의 무리들의 울음소리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짐승들은 전설처럼 커서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바위처럼 보였다. 강치의 크기는 약 4미터 정도 혹은 더 컸다.”
이러한 사실은 강치가 19세기 후반 동해의 독도인근 해역뿐만 아니라 사할린 섬 해역에도 넓게 분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체홉은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분포한 아이누인도 주목하였다. 아이누인은 홋카이도의 마쓰마이(松前) 섬부터 남사할린의 쩨르뻬니예(Терпение) 만까지 거주했다. 체홉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아이누인을 쿠릴인이라고 불렀다. 체홉은 아이누인이 “온순하고 순종적이며 쌀 없이는 살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체홉에 따르면 아이누인은 러시아의 남사할린 점령 전까지 일본인의 농노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1875년 러시아와 일본은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양국의 경계로 확정하는 뻬쩨르부르크조약을 체결했다. 체홉은 러시아가 쿠릴열도(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ы) 전부를 일본에 넘겨준 것을 비판했다. 체홉은 쿠릴열도의 양도 때문에 “일본에게 매년 100만 루블의 소득을 넘겨주었다”며 쿠릴열도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체호프는 일본인이 사할린을 최초로 탐험했고 처음으로 남사할린을 점령한 것을 인정했다. 해제를 작성한 동북아역사재단 김영수 연구위원에 따르면 체호프는 사할린의 발견에 대해서 러시아보다 일본이 앞섰다고 기록했지만, 실제 러시아는 이미 17~18세기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정보를 갖고 있었다. 김영수 연구위원에 따르면 “1700년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레메조프(С.У. Ремезов)는 자신의 시베리아 지도에 쿠릴열도를 표시했다. 1779년 4월 30일 예까쩨리나 2세는 ?어떤 세금도 내지 않는 러시아의 신민이 된 쿠릴열도 주민?에 대한 포고령을 발표했다.”
4) 1880년 전후, 한국인의 사할린 최초 거주
체홉은 남사할린에 1880년 전후 한국인 노동자가 상당수 거주했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근대 시기 사할린 거주 한국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체호프는 남사할린 꼬르사꼬프 지구 마우까(Маука 현재 홀름스크시)의 다시마(해조류) 채취 사업에 한국인 노동자를 주목했다.
“마우까는 두에 남쪽으로 450킬로미터 지점 북위 47도에 위치하며, 상대적으로 좋은 기후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 상인 세묘노프(Семенов)가 다시마사업을 소유하였고, 스코틀랜드인 덴비(Демби)가 다시마사업을 관리하였다. 세묘노프는 다시마 채취사업에 한국인(корейцы), 만주인(Манзы), 러시아인을 고용하였다. 1886년부터 러시아 이주유형수가 개인적인 영리추구를 위해서 마우까에 진출하였다. 마우까에는 유태인 3명, 러시아군인 7명, 한국인(Корейцев), 아이누족(Айно), 중국인(китайцев)으로 구성된 700명의 노동자가 거주하였다.”
5) 체호프가 사할린을 방문한 이유
그런데 왜 체호프는 왜 시베리아와 사할린섬을 방문했을까?
시베리아와 사할린 여행은 체호프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체호프는 1892년 3월 모스크바 남쪽에 인접한 멜리호보(Мелихово)에 정착했다. 그는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체호프는 콜레라가 유행할 때 의사로서 일했고, 굶주린 농민을 구제했고, 학교 건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체호프는 여행 중 자신의 인상을 담은 ‘구세프(Гусев, 사람 이름)’를 집필했다. 그밖에 ‘6호실(Палата No.6)’, ‘유형지에서(В ссылке)’, ‘살인(Убийство)’, ‘공포(Страх)’ 등이 있었다. 이 작품들의 핵심은 힘과 위선에 대한 투쟁과 단순함이었다. 체호프는 일부 관련 작품을 제외하고 사할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아, 모든 것이 사할린에 대한 것이 되어버렸소.”
체호프는 ‘위안’을 얻으려고 시베리아와 사할린 여행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 그 위안은 잠시 시베리아라는 이국적인 자연에서 자신의 현실적 고민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 사회에서 사할린섬의 필요성에 대한 체호프의 고민이었다. 체호프는 러시아 식민지의 모습 및 유형수에 대해 관찰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체호프의 결정이었다.
체호프 소설의 전환은 사할린 섬이었다. 체호프는 1890년 시베리아와 사할린섬 여행 이후 인간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체호프는 권력에 의한 우연성이 인간의 삶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상황을 주목했다. 체호프는 작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체호프는 사할린 여행 이후 작가가 민중의 삶에 기초해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현실의 삶은 체호프에게 무거웠다.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은 현실의 삶과 꿈꾸는 삶의 이중성으로 고통 받는다. 작가는 현실의 삶과 꿈꾸는 삶의 이중성을 동시에 투영해야 한다...”라고.
작성일 : 2013년 2월 20일
작성자 :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김 영 수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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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묘지 삼을 수 있다면 나는 이 책 속에 묻혔으면 한다.
워너군 2013-09-29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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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벗꽃동산, 희곡선 등등 같은 것만 재탕,삼탕 찍어낼 것이 아니라 이 얼마나 참신한 발상인가? 그냥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걸작을 발굴해낸 동북아역사재단의 안목에 감사한다. 번역도 흠잡을 데 없음.
푸우 2013-07-1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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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 대해 가장 읽을만한 책. 사하린에 대한 제대로 된 입문서가 없는 중에 이 책은 사할린의 형성과 주민들, 그들의 생활관습 등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 체홉의 전작들처럼 소설이나 희곡아닌 레포트에 가깝다. 이 책을 들고 사할린 여행에 나서면 그 감흥이 배가 될 것 같다.
rubrain 2016-02-1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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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와 사할린. 탐나지 않을 수가 없는 책. 그리고 품절이다.
하지만빨랐죠 2017-10-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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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 Chekhov`s Sakhalin Island to be brought to life on stage by British neuroscientist in 2014. Please read the article from TheIndependent (UK) 27 Dec, 2013
cenacles 2014-01-0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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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섬, 시베리아, 러시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이다. 이번 책도 돈이 아깝지 않은 선택이었다.
가람 2013-04-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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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더 전에 사할린과 같은 곳이 있을 줄이야 읽다보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미국개척시대가 미국에서만 일어난게 아니라 사할린에서도 일어났다는게 감동적입니다.
베가본드 2022-02-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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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二 2016-03-0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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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체홉 사할린섬
1Q84에서 텐고가 후카에리에게 읽어주었던 책이다.길랴크인에 대한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로웠고,소설의 매력적인 인물인 다마루(조선인2세)의 부모도 일제시대 강제징용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섬이다.얼마전 TV에서 사할린동포들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본이 패망하면서 자국국민들은 모두 데리고나오면서 강제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단다.고향이 북쪽인 사람들은 돌아갔지만 남쪽인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남았다.그래서 사할린섬에서 러시아인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다.
사할린섬은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후 1850년대부터 죄수들의 유형지로 개발되었다.호주가 영국죄수들의 유형지로 시작된것과 흡사하다.
유럽에 위치한 모스크바에서 바라보면 머나먼 시베리아를 뚫고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동쪽끝섬인 사할린섬은 변방의 끝이었을 것이다.안톤체홉은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을 거쳐 사할린섬으로 와서 꼼꼼하게도 사할린섬의 곳곳을 방문하여 기록을 남겼다.징역유형자들이 만기출소하면 새로운 정착지를 배당받아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평범한 마을과는 사뭇다른 모습으로,어떠한 유대감도 형성되지 않은 마을로 시작된다.대다수의 마을인구조사에서 여자의 비율이 항상 모자란다.
혹독한 기후탓에 농사도 제대로 되지않고 배고픔에 굶주리고 질병에 시달리며 기회만 되면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떠날생각이 팽배해 있는섬.교도소 관리들이나 병사들도 희망을 잃은채 변방의 삶에 지쳐있다.
안톤체홉은 당시 일반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안목으로 열악한 교정시설의 개선,당시 사법제도의 불합리성,무지몽매한 죄수출신 농민들의 삶의 개선방안,제대로된 정착지의 개발등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피력한다.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상습적인 구타나 매춘)이나 아동들에 대한 관심도 크다.
특히,원주민인 길랴크인이나 아이누인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주로 추운 북쪽에 거주하는 길랴크인은 아마도 몽롤계통일것이다.먹을것을 찾아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섬에 들어왔을것이고 거의 석기시대의 모습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남쪽의 아이누인들은 보다 순종적이며 일본인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쌀을 얻는다.조선인이 있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안톤체홉이 189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글을 남겼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년전 일인데도 당시의 생활상을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충분한 영양공급과 질병치료가 되지 않아 평균수명이 40세정도이고 특별한 소일거리 없이 도박이나 술과 매춘에 짜들어 사는 삶이 암울하다.
불과 100여년만에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울 것이다.
안톤체홉의 꼼꼼한 기록을 통해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년전의 사할린섬을 방문한듯한 기분이 들었다.기회가 된다면 사할린섬도 한번 가보고 싶다.
- 접기
유토피아 2019-02-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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