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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2

* 조선 쇠국/망국/개항/개화/근대화 문제 문헌 목록

조선 쇠국/망국/개항/개화/근대화 문제 문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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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새로보기 신복룡 2001.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 | 김건태 외 2024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 | 동아시아사 연구총서 2 | 김건태 외 | 알라딘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 | 동아시아사 연구총서 2
김건태,김경숙,임종태,이상훈,이새봄 (지은이),박훈 (엮은이)빈서재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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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세기 경세가 포세신의 개혁론을 사(士)들의 정치참여론으로 볼 수 있는가? 청말 개혁운동의 관점을 상세한 검토 없이 19세기전반까지 소급적용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에도 일본의 신분제는 촘촘하게 짜여져있었다. 메이지 유신기 특히 폐번치현 이후 이것이 붕괴되었는데, 그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이다.

전근대·근대 국가를 막론하고 부세제도 운영원리로 식리를 택한 나라는 조선 외에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그것의 실상을 부분적이나마 수치로 파악해볼 수 있다. 조선의 여성들은 전근대 사회 구조와 인식 속에 매몰되지 않고 재판 및 청원 활동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냈다. 특히 효·열(烈)·위선지심(爲先之心) 같은, 당시 사회에서 공인된 가치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목차


1장 조선시대 재정정책 이념
2장 조선 후기 산송과 여성의 행위성
3장 조선 후기 과학기술사 서술의 변천과 이후 전망
4장 19세기 전반 청 경세론과 ‘사’의 행정 참여 확대 모색
5장 신분제와 메이지유신



저자 및 역자소개
김건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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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전공,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대한제국의 양전』(2018),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2004), 『단성호적대 장연구』(2003) 등

최근작 : <조선시대 계와 향촌사회>,<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진주 마진마을과 재령이씨가 고문서> … 총 6종 (모두보기)

김경숙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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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시대 사회사를 전공했고, 관심 주제는 청원·소송 활동, 유배 생활, 여성사 등이다. 대표 논저는 《조선의 묘지 소송》,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공저), 《새로 쓴 한국사 특강》(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작은 사람들의 일상사>,<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조선의 묘지 소송> … 총 8종 (모두보기)

임종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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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대학 과학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조선 후기 서양 과학 수용, 중국과 조선의 과학 교류, 유교 관료제하에서의 과학기술 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17, 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여행과 개혁, 그리고 18세기 조선의 과학기술』이 있다.

최근작 :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여행과 개혁, 그리고 18세기 조선의 과학기술> … 총 13종 (모두보기)

이상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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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 청대 재정 및 법제,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작 :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

이새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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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케이(成蹊)대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19세기 일본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상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自由」を求めた儒者?中村正直の理想と現實』(中央公論新社, 2020)가 있다. 그 외 1차 사료의 번역과 그에 대한 분석을 쓴『메이로쿠 잡지』(빈서재, 2021)가 있고, 역서로는 와타나베 히로시(渡邊浩)의『동아시아의 왕권과 사상』(고려대출판문화원, 2023),『네덜란드 풍설서』(빈서재, 2023)가 있다.

최근작 : <인물로 본 근대 (워크북 포함)>,<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총 10종 (모두보기)

박훈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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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흔들리는 구체제의 양상은 단면만 봐도 알 수 있다.

19세기 경세가 포세신의 개혁론을 사(士)들의 정치참여론으로 볼 수 있는가? 청말 개혁운동의 관점을 상세한 검토 없이 19세기전반까지 소급적용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에도 일본의 신분제는 촘촘하게 짜여져있었다. 메이지 유신기 특히 폐번치현 이후 이것이 붕괴되었는데, 그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이다.

전근대·근대 국가를 막론하고 부세제도 운영원리로 식리를 택한 나라는 조선 외에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그것의 실상을 부분적이나마 수치로 파악해볼 수 있다.

조선의 여성들은 전근대 사회 구조와 인식 속에 매몰되지 않고 재판 및 청원 활동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냈다. 특히 효·열(烈)·위선지심(爲先之心) 같은, 당시 사회에서 공인된 가치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은 외래의 서양 과학이 실학의 발흥에 끼친 영향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이것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면 20세기 후반 민족주의 역사서술에 내재한 민족과 근대 사이의 긴장을 이해해볼 수 있다. 접기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아다치 게이지 2023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일본사 연구총서 1 | 아다치 게이지 | 알라딘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전제국가사론 | 일본사 연구총서 1
아다치 게이지 (지은이),박훈 (옮긴이)빈서재2023-01-23
원제 : 專制國家史論: 中國史から世界史へ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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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목차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6
머리말 . . . . . . . . . . . . . . . . . . . . . . . . . . 15

제 1 장 전제국가 인식의 계보 . . . . . . . . . . . . 19
1.1 중국에서 발견한 전제국가 . . . . . . . . . 19
1.1.1 고염무 . . . . . . . . . . . . . . 19
1.1.2 량치차오 . . . . . . . . . . . . . 23
1.2 근대일본에서 형성된 중국 전제국가론 . . . 29
1.2.1 나이토 고난 . . . . . . . . . . . 29
1.2.2 1930년대 사회과학의 중국 인식 32
1.3 전후 일본의 연구동향 . . . . . . . . . . . . 47
1.3.1 ‘세계사의 기본법칙’ . . . . . . . 47
1.3.2 전제국가론으로의 재접근 . . . . 50

제 2 장 전제국가와 봉건사회 . . . . . . . . . . . . 55
2.1 중국사회와 일본사회 . . . . . . . . . . . . 55
2.1.1 중국의 촌락과 일본의 무라 . . . 55
2.1.2 가족 ·동업자 조직 . . . . . . . . 64
2.1.3 중국의 사회재생산 . . . . . . . . 68
2.1.4 중국사회의 결합원리 . . . . . . 74
2.2 권력의 편성형태 . . . . . . . . . . . . . . . 78
2.2.1 일본 봉건사회의 단체중적체 성격 78
2.2.2 전제국가의 사회 ·정치편성 . . . 79

제 3 장 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 . . . . . 85
3.1 전 국가사회의 발전이론 . . . . . . . . . . . 85
3.1.1 공동체 해체사에서 단체 형성사로 85
3.1.2 인간사회의 형성 . . . . . . . . . 89
3.1.3 무리에서 수장제까지 . . . . . . 97
3.2 중국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 . . 110
3.2.1 중국수장제의 형성 . . . . . . . . 110
3.2.2 국가형성을 이끈 두 개의 힘 . . . 116
3.2.3 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122
3.3 고전고대국가와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 . . . 132
3.3.1 고전고대국가 . . . . . . . . . . 132
3.3.2 고대국가 형성의 일본적 특질 . . 139
3.4 국가단계의 위치 . . . . . . . . . . . . . . . 143
3.4.1 집단발전의 굴절점인 국가단계 . 143
3.4.2 초기국가론 . . . . . . . . . . . . 145
3.4.3 단계 ·유형 ·상호관계 . . . . . . 147

제 4 장 봉건사회와 전제국가의 발전 . . . . . . . . 149
4.1 일본 봉건제의 형성과 발전 . . . . . . . . . 149
4.1.1 소경영 ·공동체 ·영주제 . . . . . 149
4.1.2 공동체와 영주제의 강화발전 . . 154
4.2 전제국가발전의 체계와 제반 단계 . . . . . 158
4.2.1 초기 전제국가 . . . . . . . . . . 158
4.2.2 전제국가의 변질과정 . . . . . . 163

제 5 장 근대로의 이행 1 - 경제 . . . . . . . . . . . . 171
5.1 사회유형과 경제발전 . . . . . . . . . . . . 171
5.2 중국사회의 경제형태 . . . . . . . . . . . . 174
5.2.1 조숙한 유통형성 . . . . . . . . . 174
5.2.2 면업으로 본 중일의 시장형성과정 . . . . . . . . . . . . . . . . 179
5.2.3 중국적 유통의 기본형태 . . . . 182
5.2.4 일본 봉건사회의 유통기구 형성 . 186
5.2.5 중국사회와 중국적 유통 . . . . . 193
5.2.6 노동력 지배의 실현형태 . . . . . 203
5.3 중국의 자본주의 형성 . . . . . . . . . . . . 208
5.3.1 중국형 자본주의 . . . . . . . . . 208
5.3.2 경제조직화의 진행과 규정 요인 . 217

제 6 장 근대로의 이행 2 - 정치 . . . . . . . . . . . . 223
6.1 일본 봉건사회의 성숙과 근대국가로의 이행 223
6.1.1 절대주의 . . . . . . . . . . . . . 223
6.1.2 시민혁명 . . . . . . . . . . . . . 226
6.1.3 근대일본과 전제 . . . . . . . . . 229
6.2 중국에서 근대이행의 사회적 전제 . . . . . 233
6.3 중국 내 근대적 통합의 형성과정 . . . . . . 237
6.3.1 임의단체에 의한 ‘자치’ . . . . . 237
6.3.2 공화정의 시행 . . . . . . . . . . 245
6.3.3 임의단체 대표제 권력구상 . . . 249
6.3.4 중국국민당의 당=국가제 . . . . 252
6.3.5 중국공산당의 당=국가제 . . . . 258

맺음말: 세계통합과 사회 . . . . . . . . . . . . . . . 263
후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77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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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중국의 정치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론은 적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평등이라는 정당성의 근거가 사라졌을 때 논의를 통한 합의가 결여된 국가의 통합에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나 대외확장이라는 민족주의가 중요하게 된다. 여전히 중국은 ‘1인에 대한 복종’으로 간신히 통합되고 있다.
? 후기
P. 233 일본과 비교해서 분명해진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중국 전제국가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할 즈음에는 이른바 시민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주제의 폐절, 중간단체특권의 부정, 봉건적 토지소유에서 근대적 토지소유로의 이행 같은 변혁들은 모두 절대주의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할 때 나타난 특수한 현상에 불과했다. 중국의 경우 영주제는 물론 특권적인 중간단체도 단순한 지주제와는 다른 봉건적 토지소유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것들의 폐절이 변혁과제가 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집중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통일적인 국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양무운동은 물론 신해혁명이나 난징 정부조차 종래 사회편성의 근본적인 변혁이나 권력구조의 폐절과 재구축 없이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 접기
P. 177 이러한 사회적 요인에 규정되어 중국농민은 이른 시기부터 유통경제에 의존하고 있었고, 농산물의 상품화율도 높았다. 전근대에서 농산물의 상품화율을 일반적으로 추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근대의 통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전국적 추계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버크의 조사는 1920년대 전반 중국 농산물의 상품화율을 52.7%로 추계했다. 이 수치는 근대일본의 농산물 상품화율과 비교해도 높다. 접기
P. 116 국가형성단계를 논하기 전에 공동체형 사회와 전제국가라는, 다른 구조를 지탱하는 다른 힘이 형성 · 분기하여 가는 과정을 분쟁처리 양식의 역사적 발전 경향을 통하여 개관하겠다.

먼저 두 개의 구조를 표현하는 두 가지 재판제도의 도달점을 확인한다. 한쪽의 사례는 공동체사회에서의 아곤 (agon)형 소송이고, 다른 쪽은 중국 전제국가에서의 제소형 소송이다.

중국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국가형성을 이룩한 고전기 아테네에서는 민중 법정에서의 원고와 피고가 엄밀하게 제도화된 대등한 변론과, 배심원의 양자택일 표결에 의해 재판은 결론이 났다. 원고·피고·판결자를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규칙 공유를 전제로 다툼을 벌이는 양자 사이에서, 확정된 쟁점에 대한 심판으로 아곤 소송의 결론은 확정된다.

이에 비해 중국의 재판은 소송에 응한 행정기구의 처분을 기본 성질로 한다. 진대에 기본적으로 제도가 확립된 중국재판은 현에 제소하는 것으로 시작되어....행정행위이다. 판결은 다투는 양자가 확인한 논점에 대한 판정이 아니라 상황과 법률에 의거한 질서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다. 접기 - puttyclay
P. 121 장기적 관점에서 조감해 보면 특정된 재판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제도화된 합의를 배경으로 조정결과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재판으로 진행하였다. 재판의 권위를 한층 높여가는 과정에서 두 갈래로 길이 갈라졌다.

하나는 집단 내 규칙 공유 관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재판의집단적 제도화를 강화하고 판정 복종에 대한 단체 내의 일반적 합의를 높여서 판정을 확정하는 길이었다.

또 하나는 집단발전과정에서 합의 형성의 제도화와 나란히 진행되고 있었던 지휘관리 기능의 강화에 의거하여, 조정 확정성의 강화하는 길이었다.

후자에서는 조정대상자를 포함하여 규칙의 공유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정은 그 자체로서는 최종 확정성이 부족했지만 권력이 이를 보완했다. 접기 - puttyclay
P. 167 송대의 주호객호제, 호등제에 보이듯이 농민편성 자체가 소유를 기준으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직역의 형태로 농민은 말단행정업무에 동원되었다. 동시에 기본적으로 농민을 군사편성에서 제외했다. (일본 율령 군제의 모범이었던) 부병제는 폐지되고 이후에는 용병제가 기본이 되었다. 초기 전제국가가 병농일치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에 대비되는 ‘병농분리‘가 이때 실현되었다. 봉건사회에서 병농분리는 지배계급이자 사회관리의 중추를 점하는 무사가 무력을 점유하는 과정이었지만,
전제국가에서의 병농분리는 조세납입으로 군대를 지탱하는 농민에게서 용병을 창출해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전제국가 최대의 업무를 인민의 노역이 아니라 재물로 유지하는 체제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했고, 재정은 액면상 현저하게 팽창하게 되었다. 국가적 물류시스템의 정비가 요청되고 전매제도가 강화되었으며, 국가적 지불수단으로 동전이 대량으로 공급되었다.

행정 형식이 정비되고 전제가 순화됨에 따라 점차 사회로부터 국가가 분리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소농민경영의 발전은 ‘경지를 부여받은 농민의 군사편성‘이라는 초기 전제국가의 원칙을 변경시켰다. 전제국가의 통합능력은 저하되기 시작했다. 접기 - puttyclay
P. 167 기본적으로 농민을 군사편성에서 제외했다. 일본 율령 군제의 모범이었던 부병제는 폐지되고 이후에는 용병제가 기본이 되었다. 초기 전제국가가 병농일치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에 대비되는 ‘병농분리‘가 이때 실현되었다. 봉건사회에서 분리는 지배계급이자 사회관리의 중추를 점하는 무사가 무력을 점유하는 과정이었지만,
전제국가에서의 병농분리는 조세납입으로 군대를 지탱하는 농민에게서 용병을 창출해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전제국가 최대의 업무를 인민의 노역이 아니라 재물로 유지하는 체제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했고, 재정은 액면상 현저하게 팽창하게 되었다. 접기 - puttyclay
P. 252 공권력 창출의 난관과 당의 등장

중국에서는 사회전체를 대표하는 공권력을 사회 속에서 창출하는 것이 어려웠다. 임의단체 대표제 권력 구상도 미성숙한 상태에서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사회를 대신해서 일정한 정책을 수행하고 통일적으로 사회를 규율하는 임의단체로서 권력 집중 원리를 가진 당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 puttyclay
P. 248 선거에 의한 공화정 창출의 실패

그러나 실시된 선거의 실상은 매우 초라했다.

광둥에서는 선거 비용 부담의 명목으로 선거권자에 부과된 노역에 대응하는 면공비를 내주는 식으로, 한 현당 수만 명의 표가 매수되어 당선이 확보되었다.

낙선후보에 대해서 당선자가 배상을 지불할 것을 후보자들이 사전에 약속하는 연맹 배상 및 출자자를 현 정부 자리에 임명하는 것을 사전에 약속하여 선거자금을 모으는 합고 연합 등이 널리 행해졌다.

후난에서도 성 본부 단계부터 선거인 명부가 위조되었고 그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표의 매매와 무력 쟁탈이 발생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현장 및 성 의회 의원이 사회에서 권위있는 집행자 및 결정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광둥 등의 상황을 보면 당선자들도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후난에서도 ‘민주적 헌법‘을 제정자 자신이 무시했고 의회는 자오형티 총사령관을 통제할 수 없었다. 접기 - puttyclay
P. 251 임의단체 대표제

실체가 없었던 선거제도에 비하면 이것은 사회적 기반을 갖는 권력형성으로 일보전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태인 단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자치운동성 권력을 지탱하는 단체 가운데 몇 개가 앞에서 본 ‘전제국가형의 단체‘
였다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른바 구식 사단만이 아니라 신식 사단도 기초가 강고하지 못했다. 후난의 농민협회가 자립적인 조직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북벌군이 북상했을때 경이적으로 조직을 확대했으면서도 그런 조건이 사라졌을 때 급속하게 해산된 데서도 볼 수 있다. 접기 - putty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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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아다치 게이지 (足立 啓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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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972년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78년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단위를 취득했다. 구마모토 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는 『명청 중국의 경제구조』, 『중국 역사상의 재구성』, 『중국 전제국가와 사회통합』, 『심포지움:역사학과 현재』 등이 있다.

최근작 :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총 3종 (모두보기)

박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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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국은 전제국가, 일본은 봉건국가 체제에서 근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2022년 시진핑은 주석 3연임에 성공했다.

춘추시대 이후 통일국가를 경험한 중국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명청시대에 전제국가의 극점에 도달한다.
서유럽과 일본의 사례처럼 근대는 봉건사회에서 탄생했다. 반면 전제국가 중국의 근대화는 계속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현대 국민국가의 사회통합은 약해지고 있다. 우리는 단체성이 약했지만 의사결정이 집중되었던 나라를 이미 역사속에서 경험했다. 바로 전제국가 중국이다.

[출판사 / 총서 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접기








군주제 앞에 잘 붙는 단어가 있다. 전제 국가의 바로 그 ‘전제‘이다. 한국은 공화국이지만 현 대통령제는 전제주의의 그늘이 짙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워낙 막강하여 나팔 불지 않는 임은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행령을 칙령으로 착각하는 순간 민주 공화국은 헌법 전문에서 흐릿해진다.
청아한아이다 2023-03-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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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역사적으로 형성된 당=국가제
puttyclay 2023-03-04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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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근세사회구조 (近世社會構造) 비교

일본학자 아디치 게이지(足立啓二)가 1998년 출간한 책을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교수가 옮긴 책입니다.

크게 보면 중국과 일본의 근세사회구조를 비교한 사회사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근세사회 혹은 근대이전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일반적인 사회의 발전과정에 비추어 두 사회의 특징적인 면이 무엇인지 비교합니다.

그리고 가 사회구성원들이 벌이는 경제활동과 정치참여 등의 형태와 국가의 개입여부 그리고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집니다.

전반적으로 사회사의 틀안에서 경제사와 정치사가 같이 설멸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또한 근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중국의 사회가 어떻게 반응을 하고 변화를 해왔는지도 다룹니다.

간략하게 특징 몇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회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전제정치의 유산을 현재의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도 이어받고 있으며, 중국사회는 사회전체를 대표하는 공권력을 사회 속에서 창출하기 어려웠고, 사회를 규율하는 임의단체로서 당(黨)이 권력을 집중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이다.

저자는 중국사회가 전제국가(專制國家)적 전통으로 자율성이 결여되고 근대적 통합을 위해 정당이라는 임의단체를 통해 정치권럭이 집중된 중국적 정치체제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p252). 이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공산당이라는 정당을 기반으로 국가와 군대가 만들어졌다는 팩트와 부합합니다. 중국은 공산당을 기반으로 한 당중심 국가체제인데도 합의에 따른 결정보다 지도자 1인의 결정을 따르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런면에서 전제주의 정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현재 이런 정치체제는 국가를 기반으로 군대가 무력을 독점한다는 전형적 서구적 국가론과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반면 일본은 초기 중국의 전제주의 정치에 영향을 받았으나, 근세사회에 이르면 각기 완결적인 영주위주의 봉건제(封建制) 사회로 서구의 봉건제( Feudalism)사회와 유사한 방향으로 서구적 근대화를 이루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달리 사회조직이 아래로부터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실력에 따른 정치참여의 틀을 마련해왔다고 봅니다. 이렇게 봉건사회를 기반으로 한 국가는 사회통합의 어려움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쉽게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p227).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중국과 일본 사회의 비교를 간략하게 발췌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지은이는 일본이 서구의 사회발전방향을 따라갔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닌지 고려할 문젭니다. 책에서 서구식 단선적 사회발전론을 따라가지 않고 여러 경우를 살펴볼예정이라고 하였지만 , 서구의 봉건제와 일본의 봉건제의 비교논의를 여기서 고려 안하더라도, 결국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래로 일본이 추구하던 탈아입구(脫亞入歐)논의를 벗어나지 않는 현대적 해석이라는 의심이 듭니다.


책에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근세 사회통합을 이룬 일본의 봉건제는 일본이 사회적으로 아시아에서 제일먼저 근대화되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바탕이 되었지만 오랜기간 전제주의 정치의 역사적 유산이 남아있는 중국은 근대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그래서 일본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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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23-06-2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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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박훈 외 2023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일본사 연구총서 5 | 박훈 외 | 알라딘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메이지 인물 6인의 삶을 관통한 국가 | 일본사 연구총서 5
박훈,이새봄,조국,박완,오윤정,박은영,이은경 (지은이)빈서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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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사 연구총서 5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의 충성 대상은 다이묘, 쇼군에서 천황으로 바뀌었다. 충성심이 애국심으로 바뀌는 과정 속에서 근대 일본인들에게 국가란 어떤 것이었는지 읽어본다.


목차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6

총론 : 일본 국가주의의 기원 . . . . . . (박훈)
‘국가’의식의 형성 . . . . . . . . . . . . . . . . . 9
도쿠가와 시대와 막말기의 ‘국가’ . . . . . . . . . 11
도쿠가와 시대 충성의 중층성 . . . . . . . . . . . 19
제1의 충성대상 : 주군과 오이에 . . . . . . . . . 23
천황으로의 충성의 전회 . . . . . . . . . . . . . . 28
메이지인들의 국가의식 : 본서의 구성 . . . . . . 32

제 1 장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국가 구상. . (이새봄) 1
1.1 문명론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 . . . . . . 41
1.2 국민국가 형성의 전제 조건 . . . . . . . . . 43
1.3 ‘양학자’로서의 정체성과 현실: 막부말기에서 폐번치현까지 . . . 48
1.4 『학문의 권장』: 국민국가론의 시작 . . . . 54
1.5 『문명론의 개략』: 일본의 문명 이론 . . . . 62
1.6 『분권론』이후의 전략 . . . . . . . . . . . 77
1.7 『민정일신』: 1879년의 전환 . . . . . . . . 82
1.8 국회 개설을 앞두고 . . . . . . . . . . . . . 87

제 2 장 오쿠마 시게노부의 국가 인식 (조국)
2.1 유명하지만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정치가 97
2.2 막말?메이지 초기의 오쿠마 . . . . . . . . . 101
2.3 영국식 의원내각제의 구상과 좌절 . . . . . 111
2.4 여론과 세론의 구별 . . . . . . . . . . . . . 124
2.5 헌정 실시 이후의 오쿠마 시게노부 . . . . . 128
2.6 현실정치가로서의 미덕과 한계 . . . . . . . 142

제 3 장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메이지 국가 건설. . . (박완)
3.1 ‘동지이자 라이벌’ 이토와 야마가타 . . . . . 147
3.2 어친병 편성과 중앙 집권화 추진 . . . . . . 152
3.3 징병령 제정과 국민 국가 건설 . . . . . . . 161
3.4 민권파에의 대항과 입헌제 구상 . . . . . . 173
3.5 국회 개설 대책으로서의 지방 자치 제도 설계 183
3.6 현실주의와 침략주의가 공존하는 외교 ·국방론 193
3.7 끝없는 ‘적’에 맞서서 . . . . . . . . . . . . 215

제 4 장 다카무라 고운과 국가 건설기 일본미술 . . (오윤정)
4.1 ‘국가를 위한 미술’과 직인의 에토스 . . . . 221
4.2 박람회와 수출공예품 . . . . . . . . . . . . 230
4.3 도쿄미술학교와 ‘일본미술’ . . . . . . . . . 241
4.4 ≪구스노키마사시게상≫과 ≪사이고다카모리상≫ . . 256
4.5 메이지 일본의 ‘국가 미술가’ . . . . . . . . 272

제 5 장 우치무라 간조와 근대 일본 (박은영)
5.1 우치무라 간조라는 인물 . . . . . . . . . . . 279
5.2 사상형성의 계기들 . . . . . . . . . . . . . 285
5.3 일본국의 천직 . . . . . . . . . . . . . . . . 294
5.4 주전론과 비전론 . . . . . . . . . . . . . . . 301
5.5 허위의 애국과 진정한 애국 . . . . . . . . . 317
5.6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스트 . . . . . . . . . 330

제 6 장 쓰다 우메코와 일본의 사이 (이은경)
6.1 쓰다 우메코와 일본 . . . . . . . . . . . . . 337
6.2 최소한의 전기와 미 ·일 인식의 원점 . . . . 347
6.3 ‘가까운’ 일본: 황실?정부?애국심 . . . . . 354
6.4 ‘아쉬운’ 일본: 이교도?남녀차별?학교 교육 373
6.5 다시, 일본 . . . . . . . . . . . . . . . . . . 391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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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2 자칫 쇼군은 본래의 ‘왕자王者’인 천황을 억누르고 권력을 장악한 ‘패자?者’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주자학에서 왕자와 패자, 왕도와 패도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18세기 후반 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자, 본래의 왕자는 천황이며 막부는 그의 위임을 받아 대권을 대행하고 있다는 ‘대정위임론大政委任論’으로 자기 변호했다. 막부 로주老中이자 당대 최고의 유학자 중 한명이었던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는 아예 일본 전국의 60여주는 천황으로부터 맡겨진 것이라고 명언했다. 오규 소라이나 아라이 하쿠세키는 한때나마 천황을 뛰어넘어 막부의 통치정당성을 사상적으로 확보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이 시기에 와서 막부는 아예 그런 시도를 포기한 것이다. 막부의 힘이 천황을 압도할 때에는 ‘대정위임론’에 새삼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없었지만, 이 논법은 ‘위임’의 종식과 그 ‘반환’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기도 했다. ‘대정위임론’은 사실 그 후 100년도 채 안되어 일어난 ‘대정봉환론’으로 가는 길을 예비한것이었다.
- 대정위임론은 논리적으로 천황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대정봉환과 가깝기 때문에 쇼군에게는 위험했음 접기
P. 92 후쿠자와의 국회에 대한 낙관은 정부가 초연주의를 주장하고 의원내각제를 사실상 부정하는 상황 속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장차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정당 내각이 실현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국회가 개설된 이후에도 몇 년 간은 ‘회의의 훈련’이나 ‘의사議事 연습’의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으리라는 전망 속에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을 무탈하게 보낼 것인가가 관민조화론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제국의회의 현실은 그의 기대를 계속해서 배신했다. 결국 후쿠자와는 정부와 정당 사이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관민조화론을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국회 해산 등의 수단에 호소해 정당과 힘으로 대결하라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 관민조화를 지향했으나 현실정치 속에서 종종 국권파의 입장에 서기도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접기
P. 143 문제는 이같은 일관된 인식과 정치활동이 내재적으로 완결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주지하듯 근대 일본의 역사는 한국, 중국 등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이기도 했다. 오쿠마의 시대 흐름에 대한 민감한 포착은 일본 국내에서의 헌정 실시에 대한 일관된 인식으로 나타났으나,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한 안이한 인식으로 이어졌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우세로 전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오쿠마는 일본이 산동성, 나아가 양자강 지역까지 점령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론을 내세웠다. 물론 오쿠마가 중국에 대한 침략 행위 자체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중일 간 우호 관계를 심화할 수 있다 보았다. 실제로 청일전쟁, 의화단 사건 이후 와세다대학은 청국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인 청국유학생부를 신설하는 등 중일 간 교류와 우호관계 수립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중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21개조 요구를 강요한 것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쿠마 내각 시기에 이뤄졌다. 중국과의 우호 관계 수립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국익이라는 관점 속에서만 이해되었던 것이다.
- 주변국과의 공존을 지향하면서도 청일전쟁에서 강경하게 나아갔던 오쿠마 시게노부 접기
P. 207 그리고 슈타인이 본 일본의 이익 강역은 바로 조선이었다. 다만 그는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각 육 · 해상 교전국에 대해 조선의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으로 조선의 중립은 일본의 권세 강역을 보전하기 위해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충족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일본은 조선 점령이 아닌 “조선의 현상을 보존”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일본의 이익 강역은 조선의 중립을 인정하는데 있으므로 적어도 이를 방해하려 하는 자가 있을 때는 힘을 다하여 이를 간섭해야 한다” 라는 조선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은 적군의 통행 또는 일부 영토 점령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러한 경우에 전력을 다하여 막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병력을 파견해둘 수밖에 없다” 라고 하여 조선의 독립 유지 가능성을 부정하고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상주시킬 필요성까지 언급하였다. 이는 앞서 ‘군사 의견서’에서 확인한 야마가타의 대조선 방침 및 조선 인식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 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한 야마가타가 조선을 일본의 이익선으로 정의하게 된 계기 접기
P. 273 메이지 국가 건설기 일본을 부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본이 문명국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본이란 국체를 시각화하기 위해서 미술이 소환되는 중요 장면마다 고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미술가로 인정받아 태정관 차관과 동격인 종삼위의 벼슬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 ‘국가 미술가’라는 호칭을 붙이기 조심스럽다면, 그것은 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국가 건설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지 못한 직인의 작업이 ‘국가의식’ 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국가에 필요한 것은 국가를 이성적으로 이해한 국민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도 충성하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신을 모르고도 신앙을 키우는데 불상이 기여하는 바와 같이 국가를 모르고도 애국심을 기르는 데 고운의 조각이 천황을 매개로 기여한 것이다.
- 다카무라 고운의 기여에 대하여 접기
P. 331 나는 두 개의 J를 사랑하고 세 번째는 없다. 하나는 예수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다. 예수와 일본중 어느 쪽을 더 사랑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예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일본 때문에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국가적이고 협소하다고 미움을 받는다. 이로 인해 나는 친구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예수와 일본을 잃을 수 없다. 예수를 위해 어떤 다른 신을 나의 신이나 아버지로 삼을 수 없고, 일본을 위해 외국인의 이름으로 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다. 굶주림이 오고 죽음이 와도 나는 예수와 일본을 버릴 수 없다. 선교사들이 그 이름을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나는 결단코 일본의 크리스천이다. 예수와 일본, 나의 신앙은 중심이 하나인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이다. 내 마음은 이 두 가지 소중한 이름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리고 한쪽이 다른 쪽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는 나의 일본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하고 순수하게 하고, 일본은 나의 예수에 대한 사랑을 명확히 하고 객관화한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나는 단순한 몽상가, 광신자, 부정형의 보편적인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 우치무라 스스로가 설명하는 두 개의 J 접기
P. 390 우메코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황실 및 화족여학교와의 관계를 끊는 배수의 진을 쳤다. 그것은 일본에서 15년 동안 누렸던 최고의 지위와 대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대신 오랜기간 자신을 얽매었던 보수와 관습, 그것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와 관료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계급과 관습과 이름이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고백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계급과 관습과 이름에 얽매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과 같이 우메코가 일본의 정부, 정부가 세운 여자학교와의 관계를 끊은 것이 결코 그들과 대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협력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그리고 일본 여성을 위해서도 우메코는 일본이라는 국가 혹은 그 정부 나아가 그것을 구성하는 남자들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협력하는 관계를 원했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미국 유학과 일본으로의 귀국을 거듭하는 남다른 여정을 경험했지만 그 모든 것이 일본 여자, 나아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일본’을 위한 것으로 귀결되었던 셈이다.
- 쓰다 우메코가 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하는 과정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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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 총 33종 (모두보기)

이새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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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케이(成蹊)대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19세기 일본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상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自由」を求めた儒者?中村正直の理想と現實』(中央公論新社, 2020)가 있다. 그 외 1차 사료의 번역과 그에 대한 분석을 쓴『메이로쿠 잡지』(빈서재, 2021)가 있고, 역서로는 와타나베 히로시(渡邊浩)의『동아시아의 왕권과 사상』(고려대출판문화원, 2023),『네덜란드 풍설서』(빈서재, 2023)가 있다.

최근작 : <인물로 본 근대 (워크북 포함)>,<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총 10종 (모두보기)

조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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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와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고, 성신여대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개항장 외국인의 존재를 축으로 삼아 일본의 대외관계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근대 일본과 아시아 ? 메이지·사상의 실상』(반노 준지)을 번역했고『논점 ·일본사학』을 공역했다.

최근작 : <근대 일본, 아시아를 향해 열다>,<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총 6종 (모두보기)

박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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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하였다. 2019년부터 강릉원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을 거쳐 202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육군을 중심으로 한 근대 일본의 정치·군사사이다. 주요 연구 성과로는 《교류와 전쟁으로 본 일본사》(2023, 공저),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2023, 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1880년대 울릉도와 동남개척사 관계자료집>,<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교류와 전쟁으로 본 일본사> … 총 5종 (모두보기)

오윤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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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일본 근대미술과 시각문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1920년대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운동과 백화점」, 「1930년대 경성 모더니스트들과 다방 낙랑파라」, “Oriental Taste in Imperial Japan: The Exhibition and Sale of Asian Art and Artifacts by Japanese Department Store... 더보기

최근작 :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 … 총 4종 (모두보기)

박은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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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일본 근대사, 일본 기독교사를 전공했다. 근대국가와 전쟁, 종교 문제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 여성사의 관점에서 근대 일본 여성의 사상 형성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공저로 『일본사 시민강좌』,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메이지 인물 6인의 삶을 관통한 국가』, 『근현대 동아시아 지식장과 정치변동』등이, 번역서로 『메이로쿠잡지』, 『환경으로 보는 고대 중국』, 『서양을 번역하다』, 『번역된 근대』(이상 공역), 『한중일 비교 통사』등이 있다.

최근작 : <일본사 시민강좌>,<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근현대 동아시아 지식장과 정치변동> … 총 17종 (모두보기)

이은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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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 근대 일본의 역사를 주로 여성 인물과 운동을 중심으로 연구해 왔고, 일본과 일본사를 주제로 한 대중적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공저로『젠더와 일본 사회』·『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일본사 시민강좌』등이 있다. 역서로 『부인·여성 ·여자』가 있다.

최근작 : <인물로 본 근대 (워크북 포함)>,<일본사 시민강좌>,<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 총 1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의 충성 대상은 다이묘, 쇼군에서 천황으로 바뀌었다. 충성심이 애국심으로 바뀌는 과정 속에서 근대 일본인들에게 국가란 어떤 것이었는지 읽어본다.

ㅇ 후쿠자와 유키치의 국가론은 독립된 주체인 개인이 모여 한 나라의 독립으로 이어진다는 발상에 기초한다. 관에 의존하지 않는 민의 존재를 강조했으나 그의 이상론은 국가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현실론에 종종 가려졌다.
ㅇ 오쿠마 시게노부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정치가·군인에게는 나라가 망할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들에게 국민은 국가가 이끌고 가야 할 대상이었고 국가는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ㅇ 다카무라 고운·우치무라 간조·쓰다 우메코 등의 문화인에게는 예술·종교·여성교육이라는 주요 과업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로 그들의 과업은 국가라는 대명분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본인들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개국 30년만에 어떻게 일본은 강국이 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따라가다보면 메이지 시기의 인물들에게 관심가질 수 밖에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개화를 논하고 곧이어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에게 민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민권과 국권이 충돌할 때 그는 서슴없이 국권의 손을 들기도 했다. 국권과 민권이 어떻게 밀고 당기며 국가를 만들어나가는가는 메이지 시기를 바라보는 핵심 관점이다.

이 점은 오쿠마 시게노부에 있어서도 비슷했는데 민권파의 리더격이었던 그는 의회정치의 지지자이자 선거건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수상이 된 이후에는 대중의 인기를 노려 청일전쟁에서 강경노선을 취하는 등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자유민권운동 진영에도 권력지향형 정치가는 많았으며 메이지 정부의 번벌정치에 반발한 인물 상당수가 참여했다. 그 가운데서 오쿠마 역시 안으로는 입현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정치가였다.

그 점에서 군인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경우는 직관적이었다. 충성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충성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야마가타의 최대 과업이라면 어떻게 번단위로 분산된 병력을 중앙군으로 일원화할 것인가였는데 그 과정에서 제도를 유연하게 활용했을 뿐 아니라 칙유 등을 통해 천황과 군인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주변국가의 세력관계에 대해 주의깊게 분석하는 신중한 타입이어서 군 현대화와 대외정책등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군인의 본분에 충실한 나머지 정치가로서는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민권파를 상대로 싸워왔다.

다카무라 고운은 본인의 일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게 된 경우이므로 그가 능동적으로 국가를 인식하진 않았다. 하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것에 충실히 따르고 그것을 명예로 여겼다는 점에서 그의 아들이 비판한 것처럼 예술가적인 자의식도 그리 크진 않았다. 근대가 요구하는 예술가상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가와 위화감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이후 등장하는 근대적 미술가들 상당수가 국가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음을 생각해보면 다카무라는 비자발적으로 국가와 잘 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말에 걸맞는 인물이고 그에게 그 두가지 단어는 모순적이지 않았다. 우치무라는 국가라는 권력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일본은 기독교적 정신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을 문명화해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우치무라에게 공감하는가 여부와는 별개로 그는 자신만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되는 사상가인 것이다. 우치무라는 일본을 과도하게 사랑한 것과 동시에 일본 정부가 행하는 문제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쓰다 우메코는 미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는 이력 때문에 일본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고, 여성으로서 경력쌓기와 학교 설립 및 운영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살기보다는 생김새가 같고 국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더 편안함을 느껴 일본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기독교와 애국심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우치무라 간조와도 공통점이 있고 국가로부터 받았으니 국가에 그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발상을 보면 분명 쓰다 우메코는 다른 메이지 인물들과 비슷한 국가관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 종속된 안정된 길을 마다하고 사립학교를 만드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진취적이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분명 그 선택은 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인물들을 보다보면 다들 애국심이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총론에서 메이지 유신과 이후 충성개념의 변화가 언급되는데 과연 근대 일본인의 애국심이란 것은 강렬하기까지 하다. 제국 일본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결코 달가울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옆 나라에는 이런 사람들이 살고있었고, 그 후예가 지금도 살고있다. 이들의 애국심과 한국의 애국심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제대로 공부해두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일본사를 공부하는 한국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이다.

[출판사 / 총서 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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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이 인물들이어야 했는지, 총론의 설명이 조금 아쉽다. 분명히 좀 더 중요한 인물들이 많았을텐데. 제목도 국가인식이라기보단 국가구상이나 국가과의 관계에 더 가까울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개별 논고들은 그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 내면을 파악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음.
housen 2024-03-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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